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해체작업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서구청장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현상금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주변인들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유플러스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2
  • ◎철수·폐기 어떻게 하나/재래무기에 장착된 탄두부터 철수/폐기방법은 지상폭파·발사 두가지 지상이나 함정에 배치된 전술핵무기의 철거는 재래식무기에 장착한 핵탄두를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전폭격기에 탑재하는 소형핵폭탄이나 핵지뢰·핵배낭등은 모두 수거해서 폐기장소로 보내진다. 핵탄두가 제거된 미사일본체는 지상폭파하거나 배치지점에서 일정목표의 사격장으로 발사폐기하는 두가지 방법을 택한다. 지난 87년 중거리핵전력폐기에 관해 합의했던 미소양국은 보유중인 중거리미사일의 80%는 지상폭파하고 20%는 발사폐기키로 결정했었다. 핵무기폐기를 위해서는 핵탄두와 미사일을 분해폐기할 수 있는 특수시설을 건조해야 한다.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이 시설에 도착하면 미사일에 전자꼬리가 붙여지고 전자꼬리는 미사일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전파를 발사한다.방사능물질탐지기와 특수 카메라가 핵미사일의 분해과정을 촬영한다. 해체작업중 가장 중요한 과정은 핵탄두안의 핵물질과 유도장치의 분해과정이다.핵물질과 유도장치는 핵무기기술의 핵심이다. 이런 특수시설에서 분리과정을 거쳐 핵이 제거된 미사일의 탄두는 파괴공장으로 보내져 분해된다.미사일의 액체연료는 감시하에서 해상에서 발사,연소시키고 고체연료통은 구멍을 뚫어 폐기한다. ◎핵무기의 종류와 성능/사정 5백㎞ 기준,전술·전략핵 구분/잠수함발사 미사일이 가장 위협적 핵무기는 운반수단의 사정거리에 따라 전술핵과 전략핵,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술핵은 사정거리 5백㎞이하의 핵무기로 단거리핵전력(SNF)이라고도 하며 지상발사랜스미사일과 F4팬텀이나 F16 등 전폭격기에 탑재하는 소형핵폭탄 또는 함정에 배치되어 있는 토마호크미사일을 말한다. 전술핵중에는 보병 한사람이 메고 다닐 수 있는 25㎏의 소형 핵배낭도 있으며 적의 기계화사단을 저지시킬 수 있는 원격조정의 핵지뢰까지 포함된다. 또 지상의 1백55㎜·2백3㎜등의 화포에 장착할 수 있는 사정거리 14∼30㎞의 야전용 전술핵도 있으며 어니스트 존·나이키·허큘리스등 재래식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사정거리 2백∼3백㎞의 핵무기도 모두 전술핵에 속한다. 나이키·허큘리스·랜스등 개발된지 이미 30년이나 지난 이들 전술핵은 지난번 걸프전쟁에서도 첨단무기에 밀려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95년 이후에는 수명과 성능이 다해 자연적으로 폐기되어야 할 입장이다. 사정거리 5천5백㎞이상의 전략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B52등 대형 전략폭격기에 탑재되어 있는 핵폭탄등 3가지로 나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열차나 지상컨테이너에 실려 이동할 수 있는 것과 지상에 고정배치되어 있으면서 미소양국이 상대방의 국토에 직접 공격할 수 있다. 항속거리가 긴 전략폭격기는 재래식 원자폭탄과 수소폭탄등 핵폭탄을 탑재한채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인도양등을 횡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핵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핵(SLBM)이다. 최근 첩보위성과 통신위성의 발달로 상대방의 지상발사전략핵이나 전략폭격기의 움직임은 감시할 수 있으나 수중에서 은밀하게 이동하는 잠수함(SLBM)은 감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군사전문가들은 우주공간의 개발로 서로 상대방의 영토를 감시하는 현체제에서 지상핵은 두려운 것이 아니며 수중과 지하핵시설이 앞으로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1945년 일본에 첫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46년이 지나는 동안 핵무기의 개발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오늘날 전세계가 보유한 파괴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1백30만배에 달해 지구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가공할 만한 분량이다.더욱이 지상·해상·수중·공중투하등 종류에 따라 파괴력이 다양해 1천만인구의 거대도시도 폭탄 1개로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 전술핵과 비슷한 의미로 전역핵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술핵보다는 사정거리가 길고 전략핵보다는 사정거리가 짧은 5백∼5천5백㎞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말한다. 이는 미국이 국지전에 사용키 위해 개발한 것으로 나토에 배치되어 있다. 미소간의 중거리핵전력(INF)은 지난 88년6월 유엔군축총회에서 모두 폐기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미국의 퍼싱Ⅰ·Ⅱ,소련의 SS4·12·20·23등이 모두 폐기됐다.
  • “소,KAL블랙박스 보관중”/일 TV,인양작업 참여 기술자와 회견

    【도쿄 연합】 지난 83년 9월 사할린 앞바다에서 격추된 KAL기의 인양작업에 나선 소련군 당국은 사건발생 50일 후에 블랙박스를 회수,보관하고 있다고 일본 니혼 TV가 10일 작업에 참여했던 전자기술자 다리에리 마나틴씨(47)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마나틴씨는 니혼 TV 회견에서 『소련군 당국이 사건직후 KAL기 수색작업에 나서 사건발생 50일 만인 10월21일 북위 46도33분28초,동경 1백41도19분24초,수심 1백66m 지점에서 KAL기 동체 후미에 장치된 블랙박스를 회수했다』고 밝히고 『자신은 군당국의 지시에 의해 블랙박스 해체작업을 벌여 녹음 테이프를 확인했으나 군관계자가 테이프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마나틴씨는 또 『소련군 당국은 블랙박스를 인양하기 위해 기체조감도를 그리는등 철저하게 사전준비 작업을 했다』고 말하고 『블랙박스가 인수된 뒤에도 부식을 막기위해 비닐 봉지속에 담수를 채워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그는 『사고기의 항속계에 나타난 비행시간은 7천3백79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 “제명파동”… 신민호가 흔들린다/조윤형의원 징계결정 안팎

    ◎「금품수수 발설」이 감정싸움 비화/정발연의 반발 강도가 주목거리/김 총재 추인과정 남아 타협 가능성도 신민당의 주류측과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간에 「공천관련 금품수수설」을 둘러싸고 증폭되어온 내분은 급기야 주류측이 발설자인 조윤형국회부의장을 제명결의함으로써 당이 균열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아직 당기위 제명결의에 대한 당무회의와 의원총회의 최종결정절차가 남아있지만 조의원에 대한 가장 가혹한 처벌인 제명조치에 대해 정발연측이 『철회하지 않으면 공천비리를 부득이 밝히지 않을 수 없으며 제명이 확정될 경우 공동대응하겠다』고 즉각 반발하고 있어 제명확정여부에 따라 집단탈당사태까지 예견되고 있다. 주류측의 이같은 조의원제명결의 배경은 사안이 김대중총재주변에 대한 추잡한 잡음과 관련되어있다는 점과 이를 방치할 경우 14대총선전 또다시 당내 분란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하고 있다. 또 그간 정발연소속의원을 접촉한 결과 전원이 행동통일을 할것 같지 않다는 판단에따라 단호한 조처를 통해정발연해체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볼수있다. 그러나 당기위의 제명결의가 곧 조의원의 출당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며 김총재의 재가및 당무회의추인과정과 조의원의 태도표명 여부에따라 징계의 강도가 수그러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이같은 시각은 주류측이 조의원에 대해서는 서슬푸른 단죄의 칼을 휘둘렀으나 같은내용의 발언을 하고도 김총재와 당에 두차례 사과한 이형배의원에 대해서는 징계조치를 유보한데서도 짐작할수 있다. 또 제명결의추인을 위한 당무회의가 위원들의 지역구활동및 하기휴가등으로 2주일후에나 열릴수 있다는 점과 정발연측이 겉으로는 공동대응하겠다고 나섰지만 일단 징계취소를 요구하고 징계가 확정될 경우 집단탈당등 대응방안을 밝히겠다고 일보후퇴함으로써 정치적타협의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는 셈이다. 특히 조의원제명결의가 나오기하루전 주류측의 김원기의원과 정발연의 정대철의원이 비공식접촉,양측의 이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기위의 결의이전에 조의원은 이미 제명결정을 통보받은 것으로 확인돼 「당기위의 제명결의→조의원의 해명사과→당무회의의 경감조치」등 일련의 정치적 절충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날 제명조치로까지 비화된 조·이의원의 「김총재측근 금품수수발언」은 지난21일 서교호텔에서 열린 김총재와 정발연회원들과의 대화모임에서 발단됐다. 이모임에서 조의원이 김총재에게 「측근들의 전횡」을 지적하면서 그증거로 ▲남원지역 공천잡음 ▲수서사건 ▲롯데상가 분양사건 ▲이철용·이해찬의원 탈당사태를 거론했다.당시모임에서는 『한 집안식구들끼리 못할 얘기가 없겠지만 언론등 외부에는 발설하지 말자』는 선에서 마무리 됐었다. 그러나 다음날 「남원공천과 관련해 김총재측근이 금품을 수수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발설자가 이형배의원(전국구·13대공천당시 남원지역공천탈락자)으로 알려지자 당지도부는 즉각 이의원을 당기위에 회부,진상을 조사토록하는 등 분란이 확대됐다.이과정에서 또 조의원이 공천대가로 조찬형씨가 건네준 수표(1천만원권 30장) 사본이 있다고 발설함으로써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내분사태로 번져 정발연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의원총회(26일)와 당기위(29일)에서 조의원 제명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조의원과 이의원 및 정발연관계자들이 밝히고 있는 공천잡음의 전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3대총선을 앞두고 남원지역에는 이지역 11대의원인 이형배씨와 검사출신인 조찬형씨가 공천경합을 벌였다.이씨는 김총재를 보좌해왔던 경력을 앞세우며 공천을 요구했고,조씨는 조윤형(당시 총재비서실장) 조승형씨(현 총재비서실장) 등 조씨 문중과 이들과의 친분을 지원삼아 공천경합을 했다. 조씨는 이 과정에서 대통령선거지원 헌금을 포함,김총재측근에게 모두 4억원이 넘는 돈을 건네주었다.그러나 조씨는 공천이 안될 조짐이 보이자 미리 준비했던 수표복사본과 고발장을 들고다니며 조윤형씨와 김총재주변인사들에게 압력을 가했다.이 때문에 최종공천발표 하루전날 열린 공천심사위에서 공천자가 이씨에서 조씨로 바뀌었고 그대신 이씨는 전국구(9번)로 옮겨앉았다. 이때 조씨가 3억원을 별도로 지원키로 하고 현찰대신 땅을 내놓았고 88년당시에는 수천만원에 불과하던 땅값이 올라 지난 광역의원선거때 3억원에 매각했다」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던 이같은 공천잡음에 대해 김총재등 주류측은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발끈했다. 이같은 공방을 배경으로 진행됐던 당내파문은 조의원제명이라는 최악의 대치상태로 진행됐으며 정발연의 대응과 주류측의 제명절차진행에 따라 앞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 소 ML주의 포기와 한반도 파장/최평길 연세대교수

    ◎크렘린의 변화를 보고/북한 개혁파 입지 넓어져 체제변화 촉진(특별기고) 소련은 현재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고르바초프가 54세의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것 자체가 이변이었다.1985년 3월11일 서기장이 되면서 그는 『소련사회를 경제적으로 능률이 있고 사회적으로 자율성이 있는 진정한 인간적 사회주의로 탈바꿈하자』고 주장했다.그래서 90년까지만 해도 인간적 사회주의,즉 스탈린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고 레닌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르네상스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정의되고 제창되었다. 90년에 들어오면서 이같은 애매한 어휘는 다당제·시장경제로의 전환·탈냉전시대에서 방위에만 전념하는 소수 정예군·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핵무기 감축·각 공화국의 자율권보장등 서방세계에서나 관행이 되는 보다 구체적 개념으로 소련 사회개혁의 표상이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91년 오늘에는 소련사회의 가장 근본적 토대였던 공산당 계급성을 포기하고 말았다. 헤겔의 변증법,상시몽의 사회주의개혁론,영국의 복지경제 이론에 힘입어 1백25년 전에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한다.대부분의 임금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일한 만큼의 대가는 받지 못하고 항상 착취하므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폭력으로 응징되어야 한다는 자본론의 논리는 상당한 매력이 있었다.인류 역사를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는 공산당 이론은 척박한 땅 소련사회에 적응되어 74년이 지나왔다. 그러나 개인의 재산소유가 인정되지 않는 소련은 소수의 공산당 지도층과 관료가 거대한 재산을 통제하면서 공산혁명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시하는 민초에게는 생존권 마저 박탈하는 전제정치를 하였다.여기에 미국과의 대결에서 생산비의 우위개념도 없이 군수용의 중공업정책을 추진한 나머지 이제 소련국민은 생필품의 절대 부족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전체 근로자·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소련공산당은 국내외의 압력에 눌려 이제는 더이상 무산자계급을 위해 투쟁하고 그들을 대표한다는 강령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것이다. 출발당시에는 개혁진보파였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어느새 집권정당의 대표로 중도파가 되었고 공산당을 탈당하여 대중정치로 위상을 확보하려는 옐친주도의 민주강령파,그리고 토지를 포함한 사유재산의 인정,주식형 기업의 인정등을 통하여 빠른 시간안에 민주적 사회주의,사회적 민주주의사회로 탈바꿈하고자 하여 야코블레프와 셰바르드나제에 의해 조직되는 공산당내의 온건개혁파가 나오고있다.이것은 바로 공산 일당의 당우위국가는 와해되고,공산당은 다당제 속의 일개 보수정당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민주국가의 다당제 정치로 변신하는 신호탄이 된다. 공산당이 무산자계급을 대표하지 않겠다는 것은 계급정당에서 대중정당,국민의 이익표출을 결집시키고 직업적 정치단체로 체질변경을 하겠다는 표시이다.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연방조약과 신헌법이 올해안에 최고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연방대통령도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광범위한 국민지지기반을 가진 대중정당을 조직하지 않을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현재 소련 공산당에는이념적 해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물론 당의 주요간부가 속속 당을 떠나 대통령실과 정부기관으로,혹은 옐친 진영으로,각 공화국 정부로 일자리를 옮기고 있다.이같은 공산당 해체작업과 다당제의 부상,그리고 대중정당의 지지기반에 근거한 직선제대통령이 지방공화국과 연방공화국으로 확산되고 시장경제가 신속히 정착되게 하려는 일련의 노력은 소련이 서방세계에 현재 요청하고 있는 사회주의 피해 복구를 위한 마셜플랜 지원에 서방이 동정적이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 르네상스를 부르짖던 초반기의 개혁을 공산당은 무산자를 대변하는 정당임을 포기하는 공산주의 이상향으로 가는 사회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2단계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일단계의 와중에서 동구권은 민주화가 되고 시장경제 원리에 따르는 사회가 되었다. 일단계에서 잘 버텨낸 중국·북한·쿠바의 집권당이 공산당 해체라는 이단계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화 요구의 시련을 이겨내고 고립과 보수회귀를 계속 고수할 수 있는 역행적 체제능력이있을지는 의문이다.천안문사태 이후 실물정치 개혁파인 50대인 천진 시장 이서환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그리고 상해 시장 주용기를 부총리로 배출한 상해·천진에서 만났던 일부 공산당 간부들은 말하기를 『공산당은 변화되고 개혁은 직속되며 공산당이 변모되어 다당제가 되어도 겁날 것이 없다.경제·정치개혁의 업적을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북한에는 50년 전후에 소련·헝가리·체코 등에 유학후 경제기업소·지방행정 분야에서 민생 실물정치로부터 정치위원이 된 50∼60대의 개혁파 지도계층이 있다.총리 연형묵,강성산,당 국제부장 김용순,당 재정경제기획통 박남기 등은 남북경제교류를 주장하고 있다.한편 대외무역,경제협력,외교분야에서 국외사정에 정통한 중간관리계층은 북한 대외고립 탈피를 일상 업무처리과정에서 요구하고 있으며,최근 모스크바·부다페스트·동백림에서 유학했거나 유학중인 20대의 대학생,초급 군간부들은 그들이 체험한 동구권의 민선대통령,민선수상을 보고 북한의 차세대 지도자는 다당제에 의해 직전제로 선출되기를 주장한다. 이같은 흐름은 소련의 공산당 해체와 다당제에 의한 직선대통령 선출,여야당이 있는 의회제 정치를 가속화시킬 것이다.북한은 이같은 정치개혁 압력과 시장경제 도입,대외고립 탈피,남북경제교류의 복합적 압력에 놓이게 될 것이고 합리적 자기개혁에 바빠질 소련은 비합리적 체제보존의 들러리는 안할 것임이 확실하다.
  • 타워크레인 해체 인부등 5명 사상/쇳덩이에 맞아

    6일 하오1시4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169의2 대화빌딩 신축공사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작업을 하던 신호근씨(32·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선1리)가 갑자기 떨어진 크레인 철구조물에 머리를 맞아 숨지고 김호봉씨(49·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889) 등 인부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바 기구 해체작업 마무리/탱크ㆍ포 등 나라별 감축규모 합의

    ◎대 나토협상 장애 제거 【프라하 AP UPI 연합】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은 27일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와의 협정에 따른 탱크와 포의 감축규모를 각국 별로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에 관해 마침내 합의함으로써 나토와의 재래식무기 감축협정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애를 제거하는 한편 바르샤바기구 자체의 해체를 앞두고 마무리작업을 끝냈다. 로베르트 하렌시아 체코슬로바키아 외무차관은 이날 프라하에서 열린 바르샤바기구 회의에서 소련은 보유 탱크 수를 1백50대 줄여 1만3천1백50대를 유지하기로 했으며 다른 나라들도 약4백90대의 탱크를 나눠서 줄이기로 합의,나토와의 협정에 따라 기구내 탱크 수를 2만대로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토와 바르샤바기구는 전체적인 무기감축 규모에 관해서는 합의했으나 이를 각국 별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는데 이날 합의는 소련이 다른 5개 동구 국가들의 의견에 따름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전투기와 헬리콥터 및 장갑차량 감축규모 배분에 관한 합의는 이미이달초에 이루어졌으나 탱크와 포에 관한 합의는 회담 네번째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 통독이 한반도에 준 교훈(새 독일 탄생:5ㆍ끝)

    ◎「통일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서독,69년 동방정책 이후 꾸준히 접촉/물적ㆍ인적 교류 늘려 갈등해소 노력을/한민족 공감대 형성… 북한 개방분위기 조성 도와야 독일 통일은 동독국민들의 「대탈출」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1월이후 불과 1년도 못되는 사이 ▲2월6일 동독내의 비공산당연립정부 출범 ▲6월17일 동독국가 해체작업 시작 ▲7월1일 동서독 경제ㆍ사회 통합 ▲9월14일 통독조약 조인 등 급템포로 이루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패전의 페허에서 49년 출범한 서독 기민당(CDU)의 아데나워 정권은 자유민주정치제도와 친서방 보안정책으로 서방진영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하면서 경제 재건과 번영을 바탕으로 착실한 분배정책을 펴 내부적인 안정을 다졌다. 이어 69년에 출범한 사민당(SPD)의 브란트 정권은 CDU 정권의 업적을 토대로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을 이룩했으며, 「일민족 이국가」론에 기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동독과의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독관계를 안정시키고 인적ㆍ물적 교류 확대의 물꼬를 텄다. 82년에 다시 집권하게 된 CDU의 콜 정권은 SPD의 동방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동독 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동독국민들 가슴 속에 개방과 민주화의 씨앗을 묻었다. 그 씨앗이 때마침 불어닥친 소련 개혁정책의 화풍 속에 발화,마침내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 저간의 과정이다. 이같이 치밀하고 장기간에 걸친 통일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숨쉬던 조직들이 하나로 묶이기까지에는 겪어야 할 많은 후유증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4일 독일 통일 후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에서 가진 첫번째 전독의회에서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된 헬무트 콜 총리는 『이제 독일이 통일되었으나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모든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내부적인 분단을 공동의 목표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수년간 정신적ㆍ문화적ㆍ경제적ㆍ사회적인 분단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통일 작업은 이처럼 역대 정권들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얻어진 것이지만 막상 통일이 이루어진 오늘 독일 사회에서는 내부적 갈등의 해소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서분단 이후에도 경제적인 교류와 인적왕래가 이루어지고 TV시청 등을 통해 양 체제 속에 사는 국민들이 서로를 잘알고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반분야에 남아 있는 갈등과 후유증 극소화가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동서독과 같은 인적ㆍ물적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양체제의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문화적ㆍ사회적 갈등과 충격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볼 때 같은 냉전의 결과로 빚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독일분단은 「지리적인 분단」이라는 점을 빼 놓고는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독일은 하나의 게르만민족이라는 정신 아래 상호신뢰의 기틀을 다져 왔으나 우리의경우는 적개심의 심화만이 가속화되었다고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의 개방과 상호교류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와 함께 통일에 대비한 힘의 축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독은 시장경제에 뿌리내린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의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추진해왔다. 서독은 동독과의 무역거래에 있어 동독이 제15위의 교역상대국이지만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 서독은 소련 다음의 교역상대국이어서 동독경제가 서독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대서독 무역거래에 있어 매년 2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보았으며 서독으로부터 지난 10여년간 1백억달러의 무이자 신용대출을 받아 그 결과 서독의 경제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파산될 취약구조로 바뀌로 말았다. 특히 서독은 지난 83년 동독이 외화부족으로 외채지불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7억달러의 현금차관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동독의 개방과 양독간의 교류증대를 요구하는 등 동독의 개방을 계속해서 유도했다.이와 함께 독일통일이 대중매체인 TV의 상호시청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동서독간에는 TV시청에 관한 합의는 없었지만 동독국민들은 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서독 TV를 시청하고 있어 서독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동독국민들은 TV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으며 결국 트라비승용차 한대를 구입하는데 신청 후 13년이 걸리고,냉장고나 TV를 구입하려면 3∼5년이 걸리는 사회주의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에 염증을 느껴 대탈출을 결행했던 것이다. 통독으로 독일이 하나의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동안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동독지역을 얼마나 빨리 서독지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느냐는 것이다. 통일독일정부는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시급한 도로ㆍ상하수도ㆍ주택 문제를 서독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 아래 이미 복구작업에 착수했다. 독일의 통일 뒷마무리 작업이 이같이 순조로울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로는 단단한 내실과 이해득실을 떠난 한민족이라는공감대가 강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독일의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통일에 대비한 노력과 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하겠다.
  • 통일기대에 부푼 베를린 현장을 가다(이제 독일은 「하나」:1)

    ◎「냉전의 벽」넘어 게르만이 새로 난다/경제ㆍ사회 통합따라 동독 “국가해체”가속/「정치통합」남았지만 「분단아픔」역사속에/「거대국가」출현에 이웃나라선 경계의 눈초리 동서독이 7월1일부터 발효되는 경제ㆍ사회통합을 시작으로 「새로운 유럽 평화질서의 창조」로 의미되는 독일 재통일의 장도에 들어섰다. 타의에 의해 갈라섰던 동서독의 이같은 하나됨은 전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돼온 동서 냉전체제의 종언을 알리는 첫 신호이자 동구개혁의 값진 열매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본지는 김진천 파리특파원을 독일에 급파,현재의 뜨거운 통일에의 열정과 그들에게서 배워야할 교훈을 발굴하는 긴급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통일」,거의 반세기에 걸친 독일 민족의 염원이 드디어 실현된다. 1990년 7월1일­ 남의 뜻에 의해 나뉘어지고 등돌려 살아오던 동서독 국민들은 이날을 기해 양독간의 경제ㆍ사회통합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민족분단의 비극 45년만에 처음 느끼는 감격이며 베를린 장벽을 쓰러뜨리고 공산정권을 몰아낸지 7개월만에 이룩해낸 쾌거다. 완전통일까지는 아직 정치통합이라는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하나로 묶인 양쪽 시민들의 경제ㆍ사회생활에 있어 나머지 순서는 그리 대수로울게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일에의 마지막 수순인 정치통합이 올해안에 실현될 것이 거의 틀림없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때 보다는 양독간에 통일을 위한 공식적인 첫 조치가 취해지는 이날 7월1일을 「통일의 날」로 하자는 성급한 주장이 진한 호소력을 갖는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경제통합은 동독의 경제주권 상실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동독화폐의 가치와 효력이 소멸되고 서독의 마르크화가 단일통화로써 유통되게 된다. 또한 동독에서도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고 자유경쟁ㆍ자유물가 제도가 실시되며 노동ㆍ자본ㆍ상품 및 용역의 수급에 있어서도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특히 이와 같은 통합원칙에 맞지 않거나 사회주의국가 및 사회기반을 형성해 온 동독의 헌법조항들이 사문화된다. 통화통합에 따른 발권은행은 서독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이며 이 은행은 앞으로 동서독 전체의 통화공급과 여신수준을 총괄한다. 사회통합은 노동3권의 보장,사회복지제도 등 서독이 시행하고 있는 각종 제도를 동독에서도 함께 실시토록 했다. 이번 조치를 동독쪽에서 보면 국가해체작업의 착수를 의미한다. 국가기능의 유지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이 부분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되며 또한 경제주권이 서독에 이양됨과 아울러 각종 사회제도가 서독과 합쳐진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분야에서 국가로서의 동독은 이미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사라지는 마당에 종전에 이나라를 지배하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됐음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여러차례 민족이 갈라졌고 주변 나라들에 의해 통일을 방해받아온 독일민족으로서는 이번 조치가 45년만의 분단해소 착수라는 단순한 감격과 흥분의 차원을 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금세기안에는 불가능한 것만으로 그리고 1년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동서독의 통일논의가 촉발된 것은 바로사회주의 경제의 몰락과 공산독재정권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지난해 11월의 동독 국민들의 시위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의 경제ㆍ사회통합 실현은 독일의 재통일이라는 측면외에 동서의 냉전체제가 실질적으로 끝났음을 알리는 첫 신호음이며 동구개혁의 값진 열매로 치부되고 있다. 전후 냉전시대를 상징해온 베를린 장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독측은 이번 경제ㆍ사회통합조치의 실현에 맞추어 이달들어 지난 61년 베를린장벽 설치로 단절됐던 동서독간의 모든 도로망의 복원작업을 펴왔으며 오는 2일까지는 양독 연결도로를 막고 있는 장애물들이 모두 제거된다.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바로 「경제대국 독일」의 출현을 의미한다. 게르만민족에 의한 피침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안고 있는 이웃나라들은 통독에 따라 다시금 독일민족의 세력 확대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의 비대는 자칫 유럽의 세력균형을 흔들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럽통합을 주축으로 한 EC(구주공동체)의 기능 강화를서두르는 것도,폴란드가 국경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속셈도,소련이 통독의 나토 잔류를 반대하는 이유도 모두 거대 독일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동서독 국민들은 이날부터 실질적인 통일을 경험하며 「한나라」로의 완전통일을 향해 다시 남은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ㆍ사회통합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한두가지가 아니며 양쪽의 지도자나 국민들이 겪게 될 어려움도 만만치가 않다.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여하히 극복하느냐가 마지막 남은 통일작업의 수순을 결정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베를린=김진천특파원〉 □동서독 주요일지 ▲45. 5. 8 나치독일 항복. 미ㆍ소ㆍ영ㆍ불 독일분할통치 ▲48. 4. 소,서베를린 봉쇄 ▲49. 5.23 서독 정부수립 ▲49.10. 7 동독 정부수립 ▲55. 5. 서독,나토가입. 동독,바기구 가입 ▲61. 8.13 동독,베를린장벽 구축 ▲72. 양독,외교관계수립 ▲87. 호네커 동독공산당서기장 첫 서독방문 ▲89. 1. 8 동독인들 대량탈출 시작 ▲89.11. 9 베를린장벽 붕괴. 동독국경 개방선언 ▲90. 2. 6 동독,비공산연립정부출범 ▲90. 2.13 동서독 통화단일화추진합의 ▲90. 3.18 동독총선. 기민당승리 집권 ▲90. 4.23 서독,화폐 1대1교환 동의 ▲90. 5.18 양독,경제ㆍ사회통합협정조인 ▲90. 6.17 동독 국가해체작업 시작 ▲90. 7. 1 동서독 경제ㆍ사회통합 실현
  • 베를린 통일수도 추진/동ㆍ서베를린 의회 첫 회담

    【동베를린 로이터 연합】 동ㆍ서 베를린 시정부는 12일 40년만에 처음 연석회의를 갖고 베를린을 통일독일의 수도로 만들기로 맹세했다. 동베를린의 웅장한 「붉은 시청」건물에서 회합을 가진 동ㆍ서베를린 시의원들은 베를린이 유럽의 「동반자관계로 향하는 다리」가 될 것을 희망했으며 공동성명을 통해 베를린에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상설기구들이 주재해야 한다는 소련측 제안을 환영했다. 양베를린은 냉전이후 안정된 세력균형으로 이행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서 CSCE를 점차 선호하고 있다. 동ㆍ서 베를린 정부는 또 베를린이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파리와 바르샤바 및 모스크바의 유대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8년간 동ㆍ서 베를린을 갈라 놓았던 베를린 장벽의 완전 해체작업은 13일부터 시작되며 오는 7월1일부터는 지난 61년 이후 봉쇄됐던 「유령의 정거장」들이 다시 개방되고 고가철도도 지금까지 정차하지 않았던 서베를린의 정거장들에 다시 서게된다.
  • “미ㆍ소,연내 군축협정 조인/WP지/소서 레이다기지 해체따라”

    ◎「스타트」 최대 장애물 제거 【워싱턴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소련은 미국과의 군축협상에 의견불일치의 상징이었던 크라스노야르스크의 대형 레이다기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고 소련 외무부의 한 고위관리가 29일 밝혔다.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의 측근 보좌관인 비탈리 추르킨은 이날 ABC­TV의 프로그램에 출연,이같이 밝혔다. 미국이 START 협정조인을 맞는 요인으로 지적해온 이 레이다기지의 해체작업이 시작됨에 따라 START 협정조인의 주요 장애물이 제거되게 됐다. 한편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날 크라스노야르스크 레이다기지의 해체작업 시작으로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이번 주말 정상회담에서 연내에 새로운 START 협정에 조인할 수 있을 것임을 발표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 소 경제난 날로 심각/보ㆍ혁 대결도 첨예화

    ◎“통제경제 유지… 안정개혁이 최선” 보수/“생산성 향상 급선무… 이념 포기를” 급진 소련내에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비롯한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주장하는 세력과 기존의 중앙통제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안정적인 개혁을 추구하자는 보수파간의 경제이념논쟁이 최근들어 국민들의 생활여건이 계속 열악해지고 가까운 시일안에 경제가 회생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데 따라 새롭게 불붙고 있어 주목된다. 작년 12월 레오니트 아발킨 부총리가 급진적인 경제개혁안을 제시하자 리슈코프 총리는 아발킨의 급진개혁안을 희석시킨 내용의 2단계 개혁안을 절충안으로 내놓은 후 금년들어 몇주동안 잠잠하던 급진개혁파 정치인들과 경제전문가들은 최근들어 생필품 부족현상이 심화되고 실업자가 양산되는 등 경제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다시 수구파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당시 리슈코프 총리는 ▲90∼92년은 경제의 안정화에 역점을 둬 현재 GNP(국민총생산)의 11%에 달하고 있는 예산적자를 감축하고 국가독점체제의 타파,물가 및금융제도의 개혁 등을 추진해 나가며 ▲93∼95년에 가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완전한 구축방안을 검토키로 하며 이 기간중에 비상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는 2단계 경제개혁안을 제시,보다 급진적인 개혁을 기대해온 소련 국내외전문가들을 실망시켰다. 급진개혁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리슈코프의 절충안은 결국 주요 경제개혁조치의 단행을 유보시킴으로써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가운데 식품 및 여타 생필품의 부족현상을 심화시켜 국민들의 불만을 한층 고조케 될 뿐 아니라 보수파의 반동을 초래,결국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정신 자체마저 위협받게 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최고회의(의회)의 급진파 대의원으로 장차 개혁성향의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산업관리담당 고위책임자가 될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미하일 보차로프는 『기다린다는 것은 중대과오이며 이는 결국 경제가 완전히 거덜나고 만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90년도가 허송세월이 돼버리면 91년에 가서 경제는 두배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보차로프는 『돈은 있으나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은 없고 범죄는 급증하고 있으며 각계 각층에서 부패행위가 만연되고 있어 국민들 사이에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고 오늘의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나 공산당정치국 및 노조의 보수주의자들은 견해가 다르다. 오늘날 소련의 경제문제가 악화된 것은 70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엄격한 중앙통제경제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시험적인 조치가 시행된데 연유하고 있다는게 이들 보수파의 주장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개혁ㆍ보수 양쪽 모두로부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도입한 지 5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나아지고 있다는 징조가 없을 뿐 아니라 국가경제 자체를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한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집중포화를 받고 있으며 정부관리들마저 공공연히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방기업들과의 합작투자 건수가 아직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한때 기대에 부풀었던 외국기업들 사이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루블화로 확보한수익금을 어떻게 경화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대한 걱정이 태산이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경제보좌관 알렉산데르 쇼킨은 오늘날의 경제혼란이 어정쩡한 개혁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는 이번주 외교전문지인 베스트니크의 기고문을 통해 『지금까지 중앙통제채제의 해체작업이 진행돼오긴 했지만 여기에 효율적인 시장관리체제가 뒷받침돼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프라우다지도 이번주 새로운 자세를 가져줄 것을 정부관리들에게 촉구하는 사설을 1면에 게재함으로써 개혁정책이 부진한데 따른 초조감을 나타냈다. 사회주의경제연구소의 올레그 보고몰로프 소장은 『우유부단한 태도와 미봉책 때문에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대혼란과 폭동,나아가서는 소련이라는 국가의 전면해체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는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토지 및 재산의 사유를 금기시 하는 공산주의 이념을 타파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최고회의내 개혁파그룹의 일원인 보고몰로프는 『진정한 인센티브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식품부족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며 페레스트로이카도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말하고 이와 함께 통화개혁과 루블화의 탈환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동독 시위대,비밀경찰본부 습격/“즉각해체”요구

    ◎전국서 수십만 반정집회 【동베를린 AFP UPI 로이터 연합】】 동독 전역의 여러 도시들에서 15일 정부의 민주화조치 확대와 통일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와 경고성 파업이 발생하고 수도 동베를린에서는 10여만의 시민들이 집회를 갖던 도중 일단의 시민들이 비밀경찰 슈타시본부에 난입,파괴와 약탈행위를 벌임으로써 동독 정국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동베를린에서는 이날 하오 정부와 야권 대표간의 제7차 원탁회의가 열리는 것에 맞춰 재야단체 노이에스 포룸의 주도로 10여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시위가 진행되는 도중 비밀경찰 해체작업의 지연에 항의하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갑자기 슈타시 본부를 급습,이를 점거하고 서류와 사무집기 등을 파괴했다. 한편 동베를린에서 이처럼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것과 함께 동독민주화의 요람지 라이프치히에서는 10만,드레스덴과 남부도시 카를 마르크스 슈타드에서 각각 15만의 시민이 반정부 시위나 집회를 가진 것을 비롯,에르푸르트와 로스토크,할레등 여러도시들에서도 이날중 소규모의시위가 잇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