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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범근 “故최진실 가슴 쳤던 그 마음 100%공감”

    차범근 “故최진실 가슴 쳤던 그 마음 100%공감”

    차범근 해설위원이 악플로 인한 아픔을 털어놓던 중 故최진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차범근은 미투데이의 ‘차범근위원에게 물어보세요’ 코너를 통해 “우리 막내는 축구를 싫어한다. 1998년 월드컵 감독 중도 해임으로 돌아왔을 때 온 집안이 지옥 속에 가라앉은 듯 했다.”고 회상했다. 2006년 차두리와 공동해설을 맡게 됐을 때도 막내아들이 욕먹을까봐 말렸다는 차범근은 최진실이 악플로 시달렸던 아픔에 대해서도 이해한다고 밝혔다. 차범근은 “최진실 씨가 자살하기 전 날, 루머를 퍼트린 사람하고 통화를 하다가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하는 말에 가슴을 쳤다는 얘기에 100% 공감했다.”며 “사람들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본인들이 받는 상처는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차범근은 차두리 선수가 나이지리아 전에서 선제골을 내준 후 ‘저승사자를 만났다’고 한 발언에 대해 그 저승사자가 바로 차두리의 아내였다며 악플을 경험하게 될 아내 걱정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사진 = SBS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차범근 “우리 가족에겐 98년이 生지옥” 고백

    차범근 “우리 가족에겐 98년이 生지옥” 고백

    차범근 해설위원이 미투데이의 ‘차범근위원에게 물어보세요’ 코너를 통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감독 중도 해임으로 인한 가족들의 상처를 털어놨다. 차 위원은 ‘아들이 두 명인데 차두리만 축구를 시킨 이유가 있냐’는 한 네티즌의 질문에 “우리 막내는 축구를 싫어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1998년 월드컵 감독을 수행하던 중 성적 부진으로 경질돼 돌아왔을 때 온 집안이 지옥 속에 가라앉은 듯 했다.”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막내 아들 차세찌는 내가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되면 불안해해서 2006년에 차두리 선수와 공동해설을 맡게 됐을 때도 (세찌가) 사람들에게 욕먹으면 어떻게 할 거냐며 말렸다.”고 가족의 상처가 깊었음을 표현했다. 또한 “최진실이 자살하기 전 날, 루머를 퍼트린 사람하고 통화를 하다가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하는 말에 가슴을 쳤다는 얘기에 100% 공감했다.”며 “사람들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본인들이 받는 상처는 훨씬 크다.”고 인터넷 상에서 악성 댓글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차 위원은 차두리 선수가 나이지리아 전에서 선제골을 내준 후 “저승사자를 만났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 그 저승사자가 바로 차두리의 아내였다며 “자신의 실수로 악플을 경험하게 될 아내 걱정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사진 = 미투데이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軍고속단정 사고 대령 2명 보직 해임

    지난 3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특수부대 소속 고속단정(RIB) 전복사고로 현직 대령 2명이 보직 해임됐다. 군 관계자는 7일 “군 작전에 쓰이는 고속단정을 사적인 목적에 사용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이모 해군 대령과 국방부 정보본부 예하 정보사령부 소속 특수부대의 부대장인 김모 대령을 보직 해임했다.”고 밝혔다. 해군본부 정보처장인 이 대령은 고속단정을 보유한 이 부대의 부대장을 역임했으며 현 부대장인 김모 대령의 해군사관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이 대령은 사고 선박에 탑승하지 않았지만 김 대령에게 고속단정의 사용을 요청한 혐의를 받고 보직 해임당했다. 한편 사고 당시 두개골 골절로 입원했던 공군 이모 대위는 이날 새벽 사망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방문진, MBC사장 해임안 부결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7일 오후 정기 이사회를 열고 김재철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부결시켰다. 방문진 사무국은 “방문진 이사들이 MBC 사장 해임안에 대해 논의를 거친 뒤 표결에 들어갔고, 그 결과 이사 9명 중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고 전했다. 정상모 방문진 이사는 지난 1일 “김 사장이 MBC 노조와의 약속을 어겨 파업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사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방문진에 해임안을 제출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강원교육감 “해직교사 복직 추진”

    진보 성향의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5일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해 해임된 교사들에 대한 항소를 취하해 오는 9월 복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 교육감은 “취임 인사차 춘천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검찰 관계자를 만나 해임된 교사들에 대한 항소 철회를 요청했다.”며 “학업성취도 평가 거부 교사들에 대한 해임·파면은 과도한 징계라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복직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항소가 취하되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논의를 다시 한 뒤 해직교사들이 오는 9월1일자로 교단에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강원도교육청은 지난해 1월 일제고사를 대신해 정상수업을 진행한 동해지역 2개 초등학교 교사 4명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어 3명은 파면, 1명은 해임하기로 의결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2월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해임한 교육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넘어 위법하다는 춘천지법의 판결이 내려지자 항소했다. 민 교육감은 춘천여고에 근무하던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해직됐다 1994년 3월 복직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교육계 징계태풍 온다

    교육계 징계태풍 온다

    서울시 교육계에 ‘징계태풍’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곽노현 교육감 취임을 전후해 58명이 중징계 의견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데 이어 경찰이 곧 수학여행 리베이트 사건 결과를 시교육청에 통보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파면·해임 등 중징계 대상이 100명을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취임 전부터 시교육청 내부 인사를 빼고 외부인사로 징계위원 과반을 채우기로 약속한 곽 교육감은 다음 주중 징계위원 구성을 끝내기로 했다.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버리고 비리 징계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징계와 관련, “인민재판식 도매금 정의는 없다. 구체적인 정황에 따라 징계위에서 엄정하게 수위를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시교육청의 기존 입장보다 유연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렇게 되면 억울한 사람은 ‘배제징계(파면·해임 등 공직에서 배제하는 징계)’가 아니라 정직이나 감봉을 받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안 받겠다는데 몰래 놓고 간 것을 나중에 알게 된 경우, 여행업체가 집요하게 금품을 받도록 한 경우 등이다. 수학여행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은 업체 선정 대가로 금품을 받은 서울·경기지역 전·현직 초등학교장 157명에 대한 조사를 끝내고 조만간 해당 교육청에 수사 결과를 통보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서울지역 교장만 13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금품수수 총액이 500만원 이상이거나 한 번에 300만원 넘게 받은 교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기소대상자는 40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시교육청은 4월 도입한 비리 교원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에 따라 인사비리(39명), 학교공사 비리(6명), 방과후학교 업체선정 비리(11명), 자율형사립고 특별전형 부정 입학 비리(7명)와 관련된 인사 63명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 이 가운데 51명에게 파면·해임이, 8명에게 중징계 의결이 요구된 상태다. 시교육청에는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로 중징계 권고를 받은 전국교직원노조 소속 교사 16명과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 선거개입 혐의로 재판을 받는 교사에 대한 징계 절차도 계류되어 있다. 이들에 대해 진보 성향인 곽 교육감은 비리 혐의보다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선거개입 혐의 등에 대해 법원이 엄중한 판결을 내릴 경우 징계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희경·김효섭기자 saloo@seoul.co.kr
  • 서울 초등교장 최대 40여명 기소될듯

    검·경이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장 수십명을 ‘수학여행 뒷돈 비리’ 로 무더기 기소하기로 해 파장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수사가 중·고교로 확대될 가능성도 커 교육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올 게 왔다.”며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경찰은 지난 3월부터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장들이 학교 단체행사와 관련해 업체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여 왔다. 지금까지 전·현직 학교장 53명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번 주중 금품수수 총액이 500만원이 넘는 전·현직 교장 40명 안팎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서울시 교육청에도 수사 결과를 전달키로 했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는 모두 586곳으로, 이 가운데 경찰 수사를 받은 초등학교만 무려 157곳에 이른다. 초등학교 4곳 가운데 한 곳은 수학여행 또는 수련회 비용을 ‘비싸게’ 받아 교장의 배만 불려준 꼴이다. 경찰 수사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장들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도 내부적으로 수사를 중·고교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 고위 관계자는 “아직 확실한 관련 제보나 수사의뢰가 없어 손을 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계나 시민단체 등에서 수사 단서만 제공해 준다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사에 어려움도 없지 않다. 대가성 돈을 현금으로 주고받을 경우 당사자들의 자백 말고는 다른 증거를 찾기 어려운 뇌물 사건의 특성 때문이다. 수사가 마무리되면 ‘징계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칠 전망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수사결과를 통보 받으면 외부인사를 포함한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심사를 거쳐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징계위에 회부된 사람은 76명이지만 이번 수학여행 뒷돈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수학여행 관련자는 통보받지 못했다.”면서도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사람은 무조건 파면 또는 해임을 시키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공표한 만큼 이에 따라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3월 100만원 이상 비리와 연관된 사람은 파면, 해임 등 무조건 직위배제 징계를 내리겠다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밝혔었다. 다만 서울시 교육청은 “인민재판식의 일괄 징계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교장 및 해당 학교의 개별 정황도 살펴보고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이전 사건의 경우 소급적용·사후입법 등의 논란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학부모나 일선 교사, 교육단체 등은 비리 시기에 상관없이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초등학교 1·6학년과 중학교 1학년 취학 자녀를 둔 주부 이광숙(가명·43)씨는 “5월에 10만원을 내고 6학년 딸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왔다.”면서 “다른 학교는 식비, 버스비, 숙박비 등 명세서를 가정통신문으로 보내줬다는데 딸 학교는 그런 게 전혀 없어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어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에는 제발 뿌리를 뽑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은 “예전부터 있던 것이 이제서야 드러난 것”이라며 “학교 운영위원회의 심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리베이트는 있을 수가 없다.”면서 유명무실화된 학교운영위의 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상임대표도 “일벌백계해야 한다.”면서 “수학여행 업체 선정 등의 과정을 학부모와 교사 등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비리를 저지른 자에 대해 엄단을 해야 한다.”면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선의의 피해자는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변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장은 “단순 비리교장 교체만이 아니라 교장에게 인사·승진·예산권이 집중된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 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효섭·김양진·윤샘이나기자 newworld@seoul.co.kr
  • 타임오프 불똥… 공공기관 ‘잔혹한 여름’

    공공기관이 ‘잔혹한’ 여름을 맞고 있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기관장 경영평가 결과와 ‘공공기관 성과 연봉제 권고안’의 칼바람이 임원에게 불어닥친 데 이어 1일부터 도입된 유급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는 노조의 대대적인 슬림화를 예고하고 있다. 2일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에 따르면 연맹 소속 80개 공공기관 노조는 타임오프 한도에 따라 기존 전임자 570명을 100명가량 줄여야 한다. 철도노조의 경우 64명인 전임자를 17명까지 줄이게 된다. 공공운수연맹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1일 사측과 물밑교섭을 통해 기존 전임자 수를 보장받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소속 공공기관들의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노동계 관계자는 “화합적 노사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조의 입장을 수용할 여지가 있는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은 이면합의 적발 때는 기관장 해임 등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 노조가 사측과 벌이고 있는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타임오프 한도 이상의 전임자 수 보장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공공기관 노조가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전임자 수를 보장받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노동부 역시 공공기관에서는 이면합의 발생 가능성이 적다며 안심하는 눈치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경우 매년 감사원 감사와 기관 및 기관장 평가를 받기 때문에 이면합의를 벌일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이달 중순부터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일선 현장의 타임오프 위반 여부를 집중점검하고, 위반 사항이 있으면 사용주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공공기관이 그동안 ‘노사관계선진화’ 정책의 본보기가 돼왔던 만큼 타임오프제 역시 조기정착을 유도하겠다는 의지에서다. 한 공공기관 노조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의 감독 때문에 공공기관 노조가 힘을 많이 잃었는데 타임오프제 도입으로 기존 전임자 수까지 줄어들면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하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선거개입 공무원 무더기 징계 착수

    모 군청 기획관리실장인 A씨. 6·2지방선거 군의원 후보로 나선 조카의 선거운동을 한 것은 물론 행정안전부 선거특별감찰단의 추적을 받던 중 불륜을 저지르다가 현장에서 적발돼 두 가지 징계를 한꺼번에 받게 됐다. 동장인 B씨는 민간단체 회원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지금까지 봉사한 분을 찍어야 한다. 그런 사람(타 후보)은 절대로 찍어 주면 안 된다.”고 발언을 했다가 덜미가 잡혔다. ●향우회 참석해 식비 대신 납부 한 군의 C팀장은 향우회에 군수와 함께 참석해 군수가 인사말을 하고 나가자 “자신이 식대를 납부한다.”고 알린 뒤 65만원을 내다가 적발됐다. 행안부는 6·2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무시한 채 선거운동에 개입하거나 단속을 게을리 한 공무원 48명을 징계하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중 5명에 대해선 파면, 해임 등 중징계가 요구됐다.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은 14건의 선거개입건, 각 시·도가 자체 적발해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45건 등을 합하면 징계 대상자는 100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선거철마다 반복된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은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왔지만 처벌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사실상 처음인 이번 무더기 징계사태로 공직자 줄서기 문화가 개선될지 주목된다. 행안부는 2월부터 선거일인 6월2일까지 지자체와 함께 200명 규모의 특별감찰단을 구성해 선거현장 불법 활동을 단속했다. 선거개입 28건, 불법방치 및 복무기강 해이 77건 등 총 105건이 적발됐다. 이 중 선거개입 혐의로 경찰, 선거관리위원회 조사를 받았거나 업무태만 행위로 직접 적발한 48명이 징계를 받는다. 이 중 8명에게는 파면, 해고 등 중징계를, 또 다른 8명은 경징계를, 35명은 훈계·경고 조치를 해당 지자체에 요구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후보로 나선 현직 단체장에게 잘 보여 영전하려고 선거에 개입하면 징계를 면할 수 없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 주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단속으로 공직문화 개선 기대 행안부는 이번 감찰활동을 발판 삼아 다른 선거에서도 공무원의 선거개입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6·2선거에서 처음으로 시·도와 합동으로 특별감찰단을 편성해 선거운동 개입 공무원을 무더기 단속하고 징계했다.”면서 “이번 단속을 계기로 다음 지방선거부터는 공직 문화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망명설’ 北 축구선수들, 혹독한 군사훈련 받을 것

    ‘망명설’ 北 축구선수들, 혹독한 군사훈련 받을 것

    남아공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북한선수 4명이 귀국 후 가혹한 군사훈련을 받을 것이란 외신보도가 나와 사실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28일(이하 한국시각) “북한축구팀은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그들의 나라로 가게 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월드컵 실패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북한 선수들의 미래가 무섭고도 불투명하게 됐다.”고 보도했다.이 매체는 영국 주재 한국대사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적어도 4명의 선수가 군대에서 군사훈련을 받을 것이 유력하며 북한 대표팀을 이끈 김정훈 감독은 해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4명의 선수는 김명원(FW.압록강 체육단), 안철혁(FW.리명수 체육단), 김금일(FW.4.25 체육단), 박성혁(DF.소백수 체육단)으로 이들은 브라질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잠적설’에 휘말렸던 선수들이다.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이 출전선수 명단에 이들이 경기에 ‘불참’했다고 기록해 논란이 일었고 일부에선 ‘망명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확인 결과 스타트 리스트에 4명의 선수 이름은 인쇄하는 과정에서 잘못돼 불참 선수로 표기된 것일 뿐, 실제 선수들은 경기장에 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소화한 북한 수비수 차정혁(압록강 체육단)은 스위스로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에이전트이자 북한 선수들의 유럽 진출에 대한 이적 대행권을 갖고있는 칼 머설리는 지난 27일 독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차정혁이 스위스 2부 리그인 윌(Wil)에 입단한다.”면서 “윌에서 6개월 뛴 후엔 더 큰 구단으로 보낼 계획도 갖고있다. 이와 관련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 = 다음 서울신문NTN 김민경 인턴기자 cong@seoulntn.com
  • 경기대도 양측 대립

    ■비리퇴출 사립대 옛재단 복귀 가시화…사학분쟁 다시 꿈틀 임시이사(관선이사)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사립대에 옛 재단의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임시이사 체제의 구성원들은 비리로 퇴출된 옛 재단의 재입성을 반대하고 있고, 옛 재단 측은 임시이사 체제가 오히려 학교 발전을 후퇴시켰다며 직접 운영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사학분쟁 2라운드가 익어가는 형국이다. 옛 재단들이 이처럼 복귀의 신호탄을 쏘고 있는 것은 ‘시기와 시대적 차이’와 맞물려 있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색깔이 현 정부 들어 보수적 색채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최근 상지대의 사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분위는 17년간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았던 상지대의 정이사 추천권을 옛 재단 측에 대폭 넘길 방침이다. 비리로 물러난 김문기 전 이사장 측에 이사 9명 중 5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한 것이다. 또 2007년 대법원은 “임시이사들이 학교가 정상화된 상황에서 학교 설립자 측과 협의없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학의 설립과 운영에는 자유가 인정되기 때문에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옳다는 해석이다. 사분위 관계자는 “실형을 받았지만 사면복권된 옛 재단 측이 학교 운영에 참여한다고 해서 법리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광운대, 경기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등 임시이사체제인 20개 대학의 이사회는 정상화 이후 설립자 측 인사로 구성된 정이사진 형태로 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옛 재단의 학내 재입성에 대해 일부 학교 구성원과 총학생회가 반대하고 있어 분쟁의 불씨는 살아 있다. 해당 대학의 총학생회는 옛 재단의 도덕성 문제를 들어 비리재단의 재진입을 반대한다. 옛 재단 입성 반대의 목적이 학교내 ‘밥그릇’ 싸움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립대학 운영권을 놓고 ‘옛 재단-학생-교과부(사분위)’ 삼자간 분쟁이 불가피한 이유다. 사분위 관계자는 “사학비리, 이사진 공백 등의 이유로 대학에 임시이사가 파견돼도 횡령자금을 보전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갈등관계가 상존하다 보니 대학 정상화와 정이사 임명이 쉽지 않은 것”이라며 “상지대의 경우 재논의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분위는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임시이사 파견 원인을 제거해 나갈 것”이라며 밝혔다. 현재 사분위의 행보로 봤을 때 과거 조선대, 영남대처럼 20년 이상 임시이사 체제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옛재단측 “관선체제후 학교발전 후퇴” 총학생회 “부패없는 건실한 재단 유치” 7월 초 임시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기대의 경우 복귀를 노리는 옛(舊) 재단 측과 총학생회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현재는 탐색전 수준이지만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강한 인화성을 내포하고 있다. 손종국 전 총장은 ‘설립자의 건학 이념 구현’과 ‘학교 발전’을 명분으로 학교를 되찾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손 전 총장은 28일 “설립자의 설립 취지를 이어받은 구성원이 법인의 주체가 돼야 한다.”며 복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손 전 총장은 “현 체제는 개인적 출세나 욕심에만 관심이 있었지 학교를 발전시키는 데는 뒷전이었다.”고 임시이사 체제를 비난했다. 그는 “임시이사 체제가 들어서기 전 전국에서 27위(언론 대학평가 순위)이던 학교가 현재 70위권으로 밀려났고, 관선체제 이후 학교 재산이 주는 등 경기대학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옛 재단 입성을 반대하고 있는 총학생회와의 대화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대화에 적극 나설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기존 총학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학교 이사회는 작은 국회처럼 의견이 분분해 언제든지 삐걱댈 수 있다.”면서 “학내 교수들이 옛 재단의 재입성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은 잘못됐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학교인 만큼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옛 재단의 학내 재입성을 반대하는 측은 “사립학교는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로 볼 수 없다.”면서 “옛 이사장이 비리를 저질러 해임됐다면 법인의 모든 권리를 상실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유승훈 경기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은 “2004년 손 전 총장의 비리가 터지기 이전부터 재단 측의 비리와 부패가 쌓여 왔다.”면서 “지금은 학교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건실한 재단을 유치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경기대 총학생회 측은 옛 재단이 다시 학교로 들어올 것을 대비, 과반수의 학생들과 교수, 총장으로부터 ‘입성 반대서명’을 받아 사학분쟁위원회에 제출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학을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갖 인사전횡, 공금횡령 등이 자행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시이사진이 코드 인사라는 옛 재단 측의 주장에 대해 “선임할 때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거치는 만큼 코드인사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씨줄날줄]軍과 문민통제/노주석 논설위원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맥아더(1880~1964) 원수는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전설적 군인이자 당대 누구 못지않은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정치감각은 좀 지나친 측면이 있었다. 태평양전쟁 초기 3개월 동안 태평양사령부에서 나온 언론성명서 142건 중 109건이 맥아더 장군의 이름으로 공식발표됐다. 다른 장교의 이름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모든 공문서 표지에 ‘맥아더사령부’라는 겉표지를 따로 붙였다. 이 시기 사령부는 공식 명칭 대신 맥아더사령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 정도는 약과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병력감축 문제를 놓고 맥아더와 갈등을 빚던 트루먼 행정부는 1945년 9월과 10월 두 차례 맥아더에게 귀국을 요청했다. ‘요청’이라는 격식을 갖췄지만 사실상 군통수권자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최고 연장자이며 선임 장교인 맥아더는 불응했다. 맥아더는 너무 바쁘고 위험하기 때문에 도쿄를 떠날 수 없다는 이유를 대 트루먼을 격앙시켰다. 야심만만하던 맥아더는 자신이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에 필적하는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그저 그런’ 대통령에 불과했다. 맥아더는 이 사안의 중요성과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아마 나는 역사상 본국으로 소환하려는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첫 번째 군인이 될 거야. 할 일이 많아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할 작정이야.”라고 보좌관에게 말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후에도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미국의 타이완 정책을 놓고 정부와 장군 간 불협화음이 계속됐지만, 맥아더의 대중적 인기가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대통령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51년 4월11일 마침내 트루먼은 대통령의 안보정책에 관한 함구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한 맥아더를 명령 불복종으로 해임했다. 트루먼은 탄핵위기를 맞았고, 맥아더의 해임에 반대하는 여론에 의해 미국에는 헌정위기가 닥쳤다. 그러나 미국 국민과 의회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Civil Control )’ 원칙을 수호했다.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도 ‘군은 항상 민정당국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해임되지 않으면 민정당국의 군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됐다고 미국 국민이 비난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리면서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아프간 정책을 비판한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군 사령관을 소환해 전격 경질했다. 맥아더 이후 60년 만의 항명장군 파동이지만 미국의 문민통제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차범근 “‘무릎팍도사’ 출연하기엔 아픔 너무 커”

    차범근 “‘무릎팍도사’ 출연하기엔 아픔 너무 커”

    차범근 해설위원이 계속되는 러브콜에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차 위원은 미투데이의 ‘차범근위원에게 물어보세요’ 코너를 통해 차두리 선수와 함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달라는 한 네티즌의 요청에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차 위원은 “98년 이후 온 가족이 많이 힘들었다. 남들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마음 놓고 하기엔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1998년은 월드컵 감독 중도해임, K리그 승부조작 발언으로 인한 지도자 자격정지 등 차범근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이에 차 위원은 1998년 당시 각종 루머에 대해 언론이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해명해주지 않아 서운했다고 밝히면서 “(98년에 받은 상처로) 온 가족이 각종 여성지나 토크쇼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무릎팍도사’의 진행자인 강호동에게는 김성주 전 아나운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출연 제의를 했는데 자꾸 거절하는 사정을 이해해달라며 SBS 중계로 MBC가 많이 섭섭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 SBS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차범근, ‘무릎팍’ 출연거부 의사 밝혀 ‘왜?’

    차범근, ‘무릎팍’ 출연거부 의사 밝혀 ‘왜?’

    차범근 해설위원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혔다. 차 위원은 최근 미투데이의 ‘차범근위원에게 물어보세요’ 코너를 통해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할 수 없는 사연을 공개했다. 그간 강호동과 김성주 전 아나운서 등에게 수없이 출연 제의를 받아온 차 위원은 “남들 앞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마음 놓고 하기에는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또한 98년 당시에 각종 루머에 대해 언론이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해명해주지 않아 서운했다고 밝히면서 “이럴 때 본인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팀도 망가진다.”며 “한국 축구가 잘 되려면 그럴 때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차 위원은 “(98년에 받은 상처로) 온 가족이 각종 여성지나 토크쇼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며 ‘무릎팍도사’ 출연 제의를 사실상 거절해 차두리 선수와 차범근 감독의 월드컵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팬들의 기대는 현실화되기 어려워졌다. 한편 차 위원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대표팀 감독직 수행 중 성적 부진으로 인해 중도 해임되었으며,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K리그의 승부 조작설 등을 밝히면서 축구협회로부터 5년간 지도자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미투데이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
  • 차범근, ‘98년 루머’가 뭐길래..‘무릎팍’ 출연거절?

    차범근, ‘98년 루머’가 뭐길래..‘무릎팍’ 출연거절?

    차범근 해설위원이 MBC ‘무릎팍도사’의 연이은 러브콜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 위원은 최근 미투데이의 ‘차범근위원에게 물어보세요’ 코너를 통해 차두리 선수와 함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달라는 한 네티즌의 요청에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와 함께 차 위원은 “98년 이후 온 가족이 많이 힘들었다. 남들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마음 놓고 하기엔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당시 차 위원이 시달렸던 루머에 대해 궁금증을 표하고 있다. 차 위원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대표팀 감독직 수행 중 성적 부진으로 인해 중도 해임됐으며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K리그의 승부조작설 등을 밝히면서 축구협회로부터 5년간 지도자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1998년은 차 위원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던 셈. 이에 차 위원은 당시 각종 루머에 대해 언론이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해명해주지 않아 서운했다고 밝히면서 “(당시 받은 상처로) 온 가족이 각종 여성지나 토크쇼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 SBS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스폰서 검사’ 면직… 솜방망이 처벌 논란

    법무부는 24일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스폰서 검사’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 등 2명을 면직하기로 의결했다. 면직은 검사징계법상 해임 다음으로 무거운 징계 처분이지만 변호사 등록이 거부되거나 퇴직금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해임은 3년간 변호사 자격을 얻지 못한다. 사회적 파장에 비하면 가벼운 징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징계위는 이날 부산·경남 지역의 건설업자 정모(51)씨로부터 금품이나 접대를 받고 정씨의 진정을 부당하게 묵살한 것으로 드러난 현직 검사 10명의 징계 여부를 심의해 이같이 결정했다. 성매매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 부장검사의 징계 수위는 계속 심의하기로 했다. 박 지검장은 지난해 6월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정씨로부터 접대를 받고, 지난해 8월부터 접대 의혹 진정과 관련해 보고를 누락하는 등 지휘·감독을 태만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전 부장은 지난해 3월 부산의 참치집 등에서 접대와 현금 100만원을 받고 올해 1월 접대 의혹과 관련한 보고를 누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는 이날 징계가 청구된 검사 10명 가운데 3명의 징계를 논의했고, 다른 검사 7명은 추후 심의하기로 했다. 앞서 진상규명위원회는 향응과 금품을 받은 현직 검사 10명을 대검찰청에 징계 건의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천안함, 60년전 보는 듯…한국 지켜낸 건 트루먼

    [한국전쟁 60주년] 천안함, 60년전 보는 듯…한국 지켜낸 건 트루먼

    한국전쟁 하면 떠오르는 미국 대통령이 있다. 참전 결정을 내렸고, 3년 뒤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의 운명을 바꿔놓은 제33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다.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있는 트루먼대통령도서관의 마이클 드바인(65) 관장과 22일(현지시간) 전화 인터뷰를 갖고 한국전쟁 60주년의 의미와 한·미동맹의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특별행사들을 많이 준비했는데 트루먼 대통령과 한국전쟁과의 관계는. -한국전쟁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집권 중 가장 어려운 결정 중 하나였다. 유엔 깃발 아래 미군을 처음으로 해외에 파병한 힘든 결정이었다. 전쟁 와중에 인기가 높았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불러들여 전역시킨 것은 어려운 결단이었다. 늘어나는 사망자와 전쟁포로들로 인해 1952년 트루먼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중반까지 떨어졌고, 이 낮은 지지율은 2008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 초반을 기록할 때까지 50년 넘게 깨지지 않았다. 이처럼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던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트루먼대통령도서관은 미국에 있는 13개 대통령도서관 중 하나로 문서 약 1500만쪽과 2만 5000점의 각종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60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한반도는 긴장이 여전히 높고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다. 하지만 1953년 휴전 이후 거의 60년간 남북한간에 전쟁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의 천안함 사건은 60년 전 북한의 도발적 행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휴전협정에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 3차전쟁을 막은 것과 함께 한국을 자유롭게 독립된 민주주의 국가로 남아 있도록 한 것이야말로 트루먼 대통령의 업적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은 군사·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도 무력을 통한 통일은 원치 않는다. 주요 국가들은 지역 안정을 해쳐 가면서까지 통일을 추진하길 원치 않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남북한이 스스로 평화적으로 통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북한 정권의 변화 가능성은. -현 김정일 체제에서는 가능성이 낮다. 북한 지도부는 개방 후 중국의 부와 파워를 부러워하지만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많다. →트루먼은 남북한이 60년씩 분단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을까. -아니다. 수년 내에 협상을 통해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동·서독의 분단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이임연설에서 소련의 독재체제가 내부적으로 붕괴에 이를 것으로 정확히 내다봤다. →추가로 밝혀져야 할 비사가 있다면. -한국전쟁과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들이 공개됐다. 남아 있다면 미국과 중국간에 주고받은 북한과 관련된 외교 서신 정도인데, 이 부분이 공개된다면 한국전쟁과 관련해 보다 자세한 내용이 드러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한국민들의 무관심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는데. -한국 국민들이 트루먼 대통령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1970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인천에 갔었다. 큼지막한 맥아더 장군 동상은 있었지만 어디에서도 트루먼 대통령의 자취는 없었다. 맥아더 사령관을 트루먼 대통령이 해임한 데 대해 한국인들의 반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았다.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해 남북 통일이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통일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산주의 체제로 말이다. 한국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나 평화봉사단원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데 정작 트루먼 대통령에게는 인색한 것 같다. 역사학자로서 한국을 위해 트루먼 대통령보다 더 많이 기여한 개인은 없다고 본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다. 전쟁을 도발한 공산진영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과 맞선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또 한 사람은 5성 장군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정책결정자 트루먼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맥아더의 최후는 참담했다. 연합군이 중국군에 쫓겨 38선 이남으로 후퇴한 1951년 4월11일 트루먼으로부터 연합군 사령관직 등 모든 직위에 대한 해임통보를 받았다. 상원청문회장에 선 ‘전설적 장군’은 문민통제에 대한 불복종과 오판은 물론 거짓말까지 줄줄이 드러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 의회는 전쟁영웅에 대한 예우를 참작, 청문회 공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도쿄에 머문 맥아더 전세 파악못해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대통령의 그늘에서 인기 없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직을 지낸 트루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는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스탈린과 함께 냉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뤄진 트루먼 대통령의 확신에 찬 해군 및 공군 출동명령과 엿새 만의 지상군 참전결정이 없었다면 낙동강전선 사수와 인천상륙작전의 역공, 서울수복과 압록강 국경까지의 북진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재임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적 앙숙인 맥아더를 사장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매도당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 3만 3000여명을 전사시키고도 전쟁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맥아더 해임 당시 트루먼은 패배자였지만, 후일 승리자로 기록됐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군사자문기구인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군사적 결정’이란 점이 작용했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은 트루먼의 참전결정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분수령이었다. 보급라인이 길어진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해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역사상 육군의 공급선을 차단하면 열에 아홉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다.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대기에는 “그의 인생에서 군인으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날은 1950년 9월15일 하루였다.”고 적혀 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의 거대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확률은 맥아더 자신의 언급이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 작전이 도박이라면 후에 1달러로 변해 나오게 되는 5센트를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가 남한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한반도를 민주국가로 통일시키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국 장군이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수호자’로 숭배를 받았다. 한국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천명한 1950년 10월의 유엔결의가 맥아더의 호승심(好勝心)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행정부 및 군 수뇌부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고,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한국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제한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맥아더의 거침없는 북진이 못마땅했지만,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의 신’으로 격상된 맥아더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맥아더는 중국정부의 개입 경고를 무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도 엄포라며 한 귀로 흘렸다. 오히려 원폭투하 발언과 압록강 교량 폭격으로 가뜩이나 민감해진 중국 지도부를 자극했다. 오만에 빠진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었다. ●1951년 전시중 해임통보 받아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제10장 맥아더의 해임’ 편을 보면 미국 대통령과 내각,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군사정책에 관련된 정책수립 및 자문기구를 맡는 합참과 맥아더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합참요원은 예외 없이 맥아더 장군보다 후임이었다. 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는 육사 12년 선배인 맥아더 준장 아래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콜린스 육참총장과 셔먼 해군참모총장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초급장교였다.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사관생도에 불과했다.”고 기술했다. 또 “군사조직이 이러한 인적관계로 구성됨에 따라 그 영향이 의사전달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서신에서는 합참에 대한 암시적인 훈계 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발견됐다. 역으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결정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들이 기안한 지침서는 선임자에게 실례나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공손한 말로 표현됐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1보를 보고받은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쿄의 극동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무관심하면서도 초연했다. 함께 있던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 걱정하자 맥아더는 “단순한 정찰병력이며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26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덜레스가 “무초 미 대사가 서울을 탈출했다.”는 급보를 전하자 그때야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적어도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맥아더에게 한국은 관심 밖의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듭되는 보고를 무시했으며, “남한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맥아더의 보좌관 바워즈의 회고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한국문제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전용기를 타고 전황을 살펴보러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나 북진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까지 거침없이 북진하면서 “중공군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뒤로 밀리자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대표들은 맥아더가 한국의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사령관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파면된 이후 자리를 이어받은 리지웨이 장군은 종전 후 40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지 도쿄의 사령부가 알지 못했다는 점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든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트루먼의 대처는 단호하고 빨랐다. 미국은 결코 ‘한반도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판단을 비웃듯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6월30일 새벽 5시 지상군의 투입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도 한국에서의 무력사용을 의결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1950년 6월25일자로 트루먼과 맥아더의 삶이 함께 엮였다. 대통령은 장군을 통제하지 못해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장군은 대통령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루먼은 우연히 대통령이 되었지만, 맥아더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썼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미국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 동안 역대 최고 학점을 기록했고 미군 역사상 모든 최연소기록을 갈아치웠다. 1918년 처음 별을 단 이래 최연소 사단장, 웨스트포인트 교장, 육군 참모장, 소장, 대장, 원수에 올랐다. 1944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트루먼은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함정을 파거나, 말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저격당한 지 90년이 지난 뒤에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링컨을 거울로 여겼다. 트루먼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는 그가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야. 자기가 일개 육군장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잘못이지.”라고 맥아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인생은 쇼, 세상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맥아더가 보기에 트루먼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쟁자였다. 워싱턴에 있는 반대세력의 수장이었다.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군 경력은 주 방위군 대위 계급장이 전부인 ‘미주리 촌놈’에 불과했다. 자신을 파면한 트루먼을 탄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가 도쿄를 떠날 때 25만명의 일본인이 성조기를 흔들며 울었고, 뉴욕에 도착해 행진을 벌였을 때 700만명의 인파가 열광하면서 장군의 귀향을 슬퍼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전쟁의 순교자로 여겼다. 맥아더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헌정위기를 불러왔다.’고 기술될 정도로 혼란상을 가져왔다. 상원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장군의 진면목은 매일 3000만명이 지켜보는 TV중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일흔 살 대원수의 진실은 미리 준비한 연설과 달리 사흘 내내 계속된 청문회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는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했던 10월17일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장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두 번씩이나 본국소환에 불응하는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장군이기도 했다. ●군사작전 실행후 추후 보고 합참은 맥아더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4월8일 전원회의에서 참모들은 ‘예외 없이 맥아더 해임’에 찬성했다.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열거한 맥아더 해임의 주요 이유는 타이완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의 불화였다. 맥아더는 중립을 추구하는 트루먼 정부의 타이완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의 개입에 대한 오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뒤 38선 돌파와 압록강까지 북진, 압록강 교량 폭격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을 실행 후 추후 보고형식으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대외정책에 대해 공개 언급하지 말라는 대통령 훈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했다. 맥아더가 3월24일 중국본토로의 확전을 언급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더는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해임을 결심했다고 미국 합참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법사위 스폰서 검사 특검법 통과

    여야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를 열고 ‘검사 등의 불법자금 및 향응수수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스폰서 검사 특검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특검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대법원장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은 준비기간 20일, 수사기간 35일, 1차 기한 연장 20일을 포함해 모두 75일동안 가동된다. 이날 여야는 법사위 등 11개 상임위를 열고 각종 현안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법사위, 특검 규모·범위 논란 법사위는 스폰서 검사 특검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여당은 사상 최대 규모 수사팀과 광범위한 수사범위를 문제 삼아 법률안 수정을 요구한 반면 민주당은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 내용대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은 “그동안 수차례 특검 수사팀 규모가 40여명 내외였던 반면 이번에는 최대 105명까지 참여할 수 있는데 비용 등을 감안할 때 50명 내외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귀남 법무장관도 “검찰 진상조사단도 고검장 1명을 포함해 34명이었다.”고 거들었다. 반면 야당 간사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여야 협상 과정에서 수사 대상이 ‘전·현직 검사’에서 ‘전·현직 공무원’으로 바뀌며 검사뿐 아니라 경찰, 판사 등으로 수사대상이 확대됐고, 수사 기간도 35일밖에 안 돼 수사인원이 그만큼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여당의 공세가 계속되자, “우윤근 법사위원장이 어떻게 회의를 이렇게 진행하느냐. 똑바로 하라.”며 한나라당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법사위는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면서 정회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여야는 정회 끝에 특별검사보를 당초 5명에서 3명으로 줄여 전체 수사팀을 103명으로 조정하기로 합의하고 통과시켰다. ●환노위, 타임오프제 도입 신경전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서는 노동부가 다음달 1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기업체 등에 배포한 ‘유급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매뉴얼’이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여당은 현실에 맞게 매뉴얼을 보완할 것을 요구한 반면 야당은 매뉴얼 배포를 ‘노조 길들이기’로 규정하고 폐기를 요구했다.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은 “노동부의 지도감독 권한에 따라 매뉴얼도 만들고 현장 설명회도 할 수 있다.”면서 “다만 기업별로 사정이 다르므로 유연성 있게 매뉴얼을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강성천 의원은 “타임오프의 선정기준과 절차, 사용방법을 매뉴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활동 등은 타임오프 한도를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노사관계는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노동부가 나서 법적 근거가 없는 타임오프 매뉴얼을 노사에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찬열 의원은 “매뉴얼은 노조탄압 내지 말살을 위한 노동부의 지침”이라고 주장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매뉴얼은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한 해설 지침에 불과하다.”면서 “(법에 규정된 것 외에) 추가적인 타임오프 한도를 인정하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행안위, 양천서 고문사건 질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을 놓고 여야 의원들의 따가운 질타가 이어졌다. 지휘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해임 요구도 터져나왔다.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2010년에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김태원 의원은 “고문의 증거가 될 폐쇄회로(CC)TV의 각도가 전부 바뀌었는데 제대로 관리했어야 한다.”고 따졌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경찰이 1980년대 군사독재 시대에나 저지르던 고문을 행했다.”면서 “경찰 수뇌부가 성과주의에 사로잡혀 일선 경찰관을 쪼다 보니 무리한 수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최규식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매맞는 경찰이 되지 말라고 당부한 것 때문에 수사하면서 국민에게 매 드는 것 정도는 우습게 생각하는 경찰이 된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강희락 경찰청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고문 의혹 사건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질문 똑바로 해라” 터프해진 이재오

    “질문 똑바로 해라” 터프해진 이재오

    2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고압적인 답변 태도를 야당의원들이 문제 삼으면서 파행을 겪었다. 이 위원장이 과거 제기했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문제가 발단이 됐다. 민주당 홍재형 의원은 지난해 10월12일자 서울신문의 이 위원장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면서 “이 위원장 취임 당시 공수처 신설 필요성을 얘기했는데 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의지를 가져도 법은 전적으로 국회 소관이다.”면서 “권익위는 법안제출권이 없고, 야당에서 ‘권익위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집중포화를 가해 초보적인 것도 못하기 때문에 야당 의원들이 좀 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되받았다. 공수처 신설 불발 책임을 야당에 돌리자 홍 의원은 “권익위원장께서 야당이 뭐라고 하면 꼼짝을 못하시는군요?”, “말만 하시고 행동을 안 하면 안 되죠?” 라며 물고 늘어졌고, 이 위원장도 “꼼짝을 못하는 게 아니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하니까…”, “입법 필요성을 두고 그때 (야당이) 국민권익위원장 개인의 권력을 강화한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느냐.”고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급기야 홍 의원이 “누가 ‘행정부의 법안 제출이 위원장 권력강화’라고 했느냐?” “답변을 똑바로 하세요.”라며 언성을 높였고, 이 위원장은 “ 질문을 똑바로 하세요. 뭐 이래. 질문 같은 질문을 해야죠.”라고 훈계조로 말했다. 허태열 정무위원장이 제지에 나섰으나 야당 의원들이 업무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반발하면서 한 때 정회됐다.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 전원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에게 이 위원장의 해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총리실 업무보고까지 본질의가 모두 끝난 뒤 다시 회의에 들어가 정식 사과한 뒤 돌아갔다. 이 위원장이 평소 국회에서 겸손한 태도로 답변에 임했던 것과 달리 이날 돌출 행동을 벌인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7월 재·보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일부러 ‘트러블’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최근 복잡한 심경 때문에 단순한 실수를 한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린다. 한편 이 위원장은 오는 7·28 재·보선 출마를 위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아직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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