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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출ㆍ경기 침체국면 탈출의“청신호”/환율 700원대 재진입의 파장

    ◎평균환율제로 변경 이후 달러화 급등/핫머니 격감에 외환 보유 가수요 늘어/수출업체 선적 연기ㆍ수입상 결제 서둘러 달러당 7백원 시대가 열렸다. 수출업자들의 대금결제에 적용되는 전신환매도율이 9일 달러당 7백원을 넘어선 데 이어 외국환은행 거래의 기준환율도 이날 6백98원10전을 나타냄으로써 환율이 1년 4개월만에 사실상 7백원대에 올라섰다. 환율이 7백원까지 올랐다는 것은 종전 7백원을 덜 주고도 1달러를 살수 있었지만 이제는 7백원을 지불해야 1달러를 살 수 있을 만큼 달러값이 비싸졌다는 말이 된다. 해외여행을 하기위해 환전을 할 때 지불해야 될 원화의 금액이 커져 여행자들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수입대금을 결제해야 될 상사들도 달러값 상승으로 자금부담도 커지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 원고에 시달려온 국내수출업체들에겐 반가운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환율은 지난 85년 10월25일에 달러당 8백93원40전까지 올랐었다. 정부가 80년 2월27일 환율제도를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바꾸고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펴기 위해 원화를 꾸준히 절하시켰던 탓에 지속적인 절하추세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86년들어 달러화의 강세기조가 꺾이고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함에 따라 미국의 원화절상 압력이 본격화되면서 이후 환율은 절상의 길로 들어섰다. 87년 11월6일 달러당 7백99원60전으로 8백원대가 무너졌고 다시 1년 뒤인 88년 7월1일에는 6백99원90전으로 7백원대마저 붕괴됐다. 한국의 무역흑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도 원화절하의 덕을 앉아서 톡톡히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원화를 절상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워낙 거세게 작용한 때문이었다. 물론 복수통화바스켓 제도 아래에서 환율조작국이라는 불명예를 씻고 국제수지증대로 해외부문에서 늘어나는 통화를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도 작용했다. 원화절상 추세는 지난해 4월까지 지속됐다. 4월22일에는 달러당 6백65원90전까지 주저앉았다. 환율이 이처럼 바닥권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국내 수출업체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말 할 수 없이 컸다. 월 1억달러를 수출하던 기업의 경우 매출액이 8백억원에서 7백억원이하로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수출전선 여기저기서 비상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수출업체들이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수출상품의 단가를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이에 따라 외국바이어들이 수입선을 다른 나라로 옮기는 바람에 수출은 날로 격감했다. 섬유ㆍ완구류ㆍ전기ㆍ철강ㆍ시멘트 등 수출경제를 이끌어온 주력산업의 경기가 악화일로에 들어섰다. 수출은 줄고 수입자유화 등으로 수입물량이 상대적으로 늘면서 국제수지 흑자폭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 역시 환율의 영향 탓이었다. 환율 때문에 도산직전에 이르는 한계기업들이 속출하면서 경기에 적신호가 나타났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원화절상의 고삐는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국제수지 흑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부터 서서히 잡혔다. 지난해 4월22일 환율 최저치를 고비로 원화는 절하추세로 돌아서 연말엔 달러당 6백79원60전으로 회복했다. 올들어서도 절하추세는 계속됐고 환율운용이 종전 외국에서의 주요통화시세를 기준으로 하는 복수통화 바스켓방식에서 시장평균환율제로 바뀌면서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내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세가 결정되는 시장평균환율제 실시 이후 환율의 가격기능이 제고돼 지난 2일 이후 대미달러 환율이 큰폭의 오름세를 보이며 7백원에 육박했다. 최근의 이같은 원화절하추세는 수출부진과 국내경기의 침체양상으로 볼 때 일단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그동안 환율조작국 시비와 무역보복에 짓눌린 나머지 원화가 필요 이상으로 절상되었다는 전문연구기관들의 지적도 많았던 터였다. 수입증가와 수출부진으로 3개월째 해외부문에서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이 최근 원화절하의 요인이라는 것이 외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수입으로 지출해야 하는 달러의 수요가 많아 달러값이 비싸지고 있다는 설명인 것이다. 이와 함께 환율제도 변경 이후 환율조작국 시비가 다소 줄어들게 됨에 따라 정부가 적정수준에서 원화절하를 유도해나가리라는 기대심리도 최근 원화절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정부가 최소한 7백원∼7백10원선에서 환율을 운용해나가지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달러를 갖고 있어도 내놓지 않고 또 환율 상승기대로 미리 사두려는 가수요가 일기 때문이라는 것. 이밖에 월초에 집중되고 있는 수입대금결제로 달러화의 실수요가 늘어난 것이나 국제시장에서의 달러화 강세기조도 최근의 원화절하를 부채질한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원화가 절하되자 수출업체는 환차익을 겨냥해 선적을 늦추고 수입업자들은 대금결제를 서두르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신탁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원화절하가 큰 폭으로 이루어지자 수입업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달러화를 많이 사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원화절상과 국내 고금리를 노려 들여왔던 핫머니도 원화절하 추세속에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다. 한은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송금의 형태로 빠져나간 돈만 11억2천7백만달러로 88년 4억8천9백만달러에 비해 배이상 늘어난 것으로나타났다. 수입업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해외여행자들의 비용이 증대되는 점은 있으나 수출회복과 이에 따른 경기진작 측면에서 최근의 원화절하는 수출업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전문가들은 그러나 앞으로 원화절하추세가 그렇게 가파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환율이 단기간에 급변동을 할 경우 외환을 많이 갖고 있는 한은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환율제도를 바꾼지 얼마 안되는 데다 오는 4월15일이 미행정부가 우리나라에 대해 환율조작판정을 내리는 시한이어서 정부로서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특히 노사분규 진정세와 함께 2ㆍ4분기 이후에는 설비투자지원 등의 정책효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여 원화절하가 큰 폭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선 지배적이다.
  • 1월중 경상적자 4억불/85년 1월이래 최다

    ◎수출 줄고 해외송금 급증 수출부진으로 지난 1월중 경상수지가 4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2일 한은이 발표한 「1월중 국제수지동향」에 따르면 1월의 경상수지는 4억2천3백만달러로 지난해 8월(7천9백만달러 적자)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적자규모는 85년 1월 5억7천5백만달러의 적자이래 최대규모이다. 국제수지가 이처럼 큰 폭의 적자로 돌아선 것은 1월중 수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11.7% 감소한 39억2천6백만달러에 그친반면 수입은 같은 기간 7.5%가 증가한 43억4천2백만달러를 기록,무역수지 적자가 4억1천6백만달러에 달한 때문이다. 무역외수지도 해외여행 자유화 등으로 여행경비 지출과 로열티 지급이 늘어나 투자수익이 개선됐음에도 1월중 4백만달러 흑자에 그쳤다. 특히 금융실명제 실시등의 영향으로 해외로의 개인송금액이 1월중 8천1백만달러에 달하는등 급증세를 지속했다.
  • 경로우대예금 새달 발매/국민은 55세이상 대상… 건강진단등 혜택

    국민은행은 55세이상 노인들에게 건강진단과 해외여행수속등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경로우대정기예금을 개발,다음달 2일부터 발매키로 했다. 경로우대정기예금은 예치금액이 최저 5백만원이상으로 예치기간은 2년이상 2년6개월까지이며 연 12% 매월 이자가 지급된다. 예금가입후 1년이 지날때마다 종합건강진단을 해주며 건강진단시 ▲예금액이 5백만원이상 1천만원미만일 경우는 20%할인 ▲1천만원이상 2천만원일 때는 1인무료 ▲2천만원이상일 때는 2인(부부)모두 무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가입후 긴급자금이 필요할 때 5백만원이내에서 우선 대출해주며 국민종합통장의 거래기간이 1년이상인 사람에게는 1천만원까지 융자가 가능하다. 이와함께 연금ㆍ배당금ㆍ전화ㆍ전기요금ㆍ보험료 등이 자동처리되고 가입과 동시에 국민카드발급자격이 주어지게 되며 가입자에 대해 금융ㆍ세무ㆍ법률ㆍ회계 등에 대한 상담도 실시된다.
  •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남북한 부문」

    ◎북한,정치범 10만5천명 격리 수용/기본권 박탈… 동창회등 「비정치」 모임도 금지/한국은 보안사범 증가… 전반적으론 개선 추세 미 국무부는 세계 각국별 인권상황에 관한 연례보고서를 21일 의회에 제출했다. 다음은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가운데 한국과 북한에 관련된 내용의 요약이다. ▷북한◁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그들은 주민 개개인에게 보안 등급을 매겨서 이에 따라 직업교육 의료시설 상점 등에 대한 접근과 노동당 입당 허용여부를 결정한다. 89년에도 여전히 북한은 주민들의 가장 기초적인 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종교조직은 당에 의해 통제되고 있고 신뢰받는 간부에게만 외국 접촉이 허용됐다. 북한정부가 테러리즘의 사용을 포기했다는 증거는 없다. 탈출자들에 의하면 북한 정권은 일부 정치범들을 즉결 처형했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살해됐다. 인권단체인 아시아워치와 미네소타 법률가 국제인권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내 많은 수감자들이 고문ㆍ질병ㆍ기아ㆍ유기 등으로 인해 죽었다. 89년에 한국으로 넘어온 북한 사람들 추산에 따르면 최소한 10만5천명의 정치범과 그 가족들이 집단수용소에 억류돼 있다. 이들은 결혼이 금지돼 있으며 식량을 자급해야 한다. 북한이 오지의 수용소에 억류중인 정치범과 그 가족의 숫자를 한국정부는 약 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에는 12개의 집단 수용소가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 가운데 4개소는 김정일 반대세력에 대해 숙청 작업을 벌였던 82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6천∼1만5천명의 새로운 정치범이 이곳에 수용됐다. 북한의 정치범은 재판없이 구금되며 면회나 통신은 한때 허용했었으나 다시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여행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개인여행은 가까운 친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국한된다. 정치적으로 믿을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강제이주 조치를 취하며 평양거주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해외여행은 관리,믿을수 있는 예술인,체육인,학자등에 국한되고 이민은 허용되지 않는다. 89년에 북한은 일본에서 열린 단기 세미나에 학생들을 파견했다. 이것 이외에북한이 학생들에게 공산권 밖 국가에서의 연수를 허가한 예는 없다. 지난해 동구 유학생 6명이 망명한후 북한은 해외유학생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지난 59∼82년 사이 북송된 재일교포 9만3천명에 포함된 일본인아내 6천6백37명 가운데 일본으로 귀환한 사람은 1명도 없으며 대부분이 소식불명이다. 대부분의 북송교포들은 북한에서 「주체성 없는 계급」으로 분류돼 곤궁한 의식주 속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는 1년에 단 며칠만 열리며 지도부에 의해 제안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것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북한에 자유선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장애자들의 평양거주는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를 떠나 민주화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전진중이며 민주제도와 관행을 강화하는 절차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강력한 공안기관의 활동은 88년에 뚜렷이 둔화됐었으나 89년 들어 다시 증대됐다. 공안합수부가 활동한 4월부터 6월 사이에 보안법 위반혐의로수백명이 체포됐다. 합수부가 해체된 후에도 체포는 계속됐다. 88년 2월 노태우정부 출범후 89년 8월말까지 공안관계 사범으로 2천94명이 체포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천3백15명이 89년도에 체포된 것이다. 일부 보안법이나 노동법 위반 구속자에 대해서는 변호사 면회가 금지됐다. 믿을만한 고문 주장도 일부 있었다. 국회는 사회안전법을 폐지했으나 논란의 대상인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 개정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모든것을 고려해 보면 한국은 과거에 비해 훨씬 관대하고 개방된 사회가 되었다. 인권관계자들은 89년말의 소위 정치범 숫자를 약 8백명으로 추산했다. 이 숫자는 정부시설을 화염병으로 공격한 폭력행위 관련자들도 포함하고 있다.
  • 환율제 어떻게 달라지나/일문일답

    ◎「환율조작국」 이미지 벗게 시장기능 도입/전날 은행간 거래가격ㆍ양 가중평균 계산/엔화등은 종전대로… 일반환전 변동없어 정부가 시장평균환율제를 도입키로 한 것은 무엇보다 환율의 시장가격기능을 살리고자 하는데 있다. 나아가 지금까지 운용해 온 복수통화바스켓 방식으로 인해 받아온 환율조작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외환시장 활성화를 통해 외환 자유화와 자본시장개방에 대비코자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환율은 외환수급 사정과는 무관하게 미국ㆍ일본ㆍ영국ㆍ서독ㆍ프랑스등 주요 교역상대국의 통화시세와 물가상승률등을 감안한 정책변수에 의해 「밀실」에서 결정돼 온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환율조작의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국제금융시장의 점진적인 통합추세속에 언제까지 그같은 방식으로 환율을 결정할 수만 없게 됐고 외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환율의 시장가격 기능을 살려야 할 필요성이 점고돼 왔다. 정부는 그러나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도의 이행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서도 자유변동환율제도의 급격한 제도 이행이 가져올 충격과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과도기적 단계로 시장평균환율제를 도입하고 환율의 하루 변동폭을 일정 범위로 제한했다. 또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급변하거나 매물부족 사태등 비상상황이 벌어질 때 한은이 「큰손」으로 개입하여 환율시세가 안정될 수 있도록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울러 지난 1일부터 10일동안 재무부ㆍ한은ㆍ금융결제원ㆍ외국환은행 관계자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시장평균환율제의 모의연습까지 마친 상태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하는 시장평균환율제가 앞으로 환율의 안정적 운용에 얼마나 기여하게 될 지 주목된다. 새로운 환율제도는 어떤 것인지 문답으로 알아본다. ­매일매일의 환율은 어떨게 결정되나. ▲현재는 한은이 복수통화바스켓 방식으로 매일 아침 그날의 환율을 정해 고시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날 은행들이 다른 은행들과 사고 판 환율과 거래량을 가중평균하여 환율이 결정되며 이 환율을 기준으로 상하0.4%이내에서 그날의 환거래가 이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A은행과 B은행이 6백90원에 1백만달러를,C은행과 D은행이 6백93원에 50만달러를 거래했다면 690×⅔+693×⅓=691원이 다음날의 시장평균환율이 된다. ­대미달러화이외의 기타 통화에 대한 환율은 어떻게 되는가. ▲기타 통화에 대한 환율은 현재와 같이 국제 외환시장에서 형성된 미달러화의 기타 통화의 환율을 적용해서 결정한다. 예컨대 시장평균환율이 6백88원이고 1달러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1백45엔이 되었다면 1백엔당 원화환율은 688÷145×100=474.48원이 된다. ▲기본적으로 외환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대미환율이 결정되므로 수출이 호조를 보여 외환 공급이 많으면 외환 시세가 내려가 절상될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수출이 부진할 경우 절하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루의 변동폭을 설정하고 한은의 시장개입을 터 놓았기 때문에 환율의 급변동은 없을것 같다. ­기업이 수출대금을 받거나 수입대금을 지급할 때의 환율은 어떻게 결정되나. ▲은행이 기업과 전신환을 사고 팔때 시장 평균환율의 ±0.4%(달러화이외 통화는 0.8%)범위에서 협의하여 결정한다. ­일반 국민이 해외여행경비등을 은행에서 환전할 때는 어떻게 되는가. ▲외화 현찰이나 여행자수표를 은행에서 매입하는 절차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는 한은이 결정,고시한 집중기준율에 일정한 수수료(현찰의 경우 통상 1.5%)를 더한 환율을 적용해 왔으나 앞으로는 시장평균환율을 기준으로 하여 수수료를 더하게 된다는 점만이 다르다. ­시장평균환율제를 도입하면 환율조작국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가.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외환 시장에서 외환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환율이 결정됨에 따라 비난의 소지가 전보다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작년 경상수지흑자 51억불/한은발표/88년 1백41억불의 36%뿐

    ◎외환보유고 1백52억불… 순외채 29억불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는 총 51억3백만달러(국제수지기준)로 88년의 1백41억6천만달러에 비해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작년말현재 외환보유고는 1백52억4천만달러로 전년보다 28억6천만달러가 늘어났으며 총외채는 2백94억달러,대외자산은 2백65억달러로 순외채 규모는 29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중 무역수지 흑자도 45억1천만달러에 그쳐 전년(1백14억5천만달러)의 절반이하로 떨어졌고 대일무역적자가 개선되지 않은채 대미무역흑자 규모는 격감했다. 19일 한은이 발표한 「89년중 국제수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2.7% 증가한 6백12억8천만달러를,수입은 17.8%가 늘어난 5백67억7천만달러를 각각 기록해 45억1천만달러의 무역수지흑자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무역외수지도 88년엔 12억6천만달러의 흑자를 냈으나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른 여행경비지출과 로열티지급증가로 지난해에는 3억5천만달러의 흑자에 머물렀으며 이전거래수지 역시 해외로의 개인송금이 크게늘어 88년 14억5천만달러에 달했던 흑자규모가 2억4천만달러로 축소됐다. 국제수지 흑자규모가 이처럼 줄어든 것은 수출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데다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른 여행경비지출 및 소비재수입의 급증등 과소비성향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별무역수지 동향을 보면 대일무역수지는 39억9천만달러의 적자를 보여 전년(39억3천만달러)보다 무역역조가 심화됐고 대미무역수지는 88년 86억4천만달러에서 지난해 47억3천만달러로 흑자폭이 크게 줄었다. 대EC(유럽공동체) 지역도 전년(20억9천만달러)에 비해 10억달러이상 줄어든 9억달러의 흑자에 그쳤다. 품목별 수출동향을 보면 자동차(마이너스 35.3%) 완구(〃10.3%) 신발(〃5.5%)등 주력상품의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전기전자 기계류 섬유제품등의 수출증가세도 크게 둔화됐다. 수입면에서는 내수용수입이 소비재(38.6%증가)를 중심으로 전년보다 27.2% 증가한 반면 수출용수입은 전년보다 크게 둔화된 6.2% 증가에 그쳤다. 한편 1월중 무역수지(통관기준)가 6억6천여만달러의 적자를 보이는등올들어서도 국제수지가 더욱 악화되고 있어 올 경상수지 흑자규모(20억달러)의 달성이 매우 불투명해지고 있다. □89년 국제수지 (단위:백만달러,%) 구 분 1988 1989 ◇경상수지 14,160.7 5,103.1 무역수지 11,445.4 4,514.5 수출 59,648.2 61,281.0 (증가율) (29.0) (2.7) 수입 48,202.8 56,766.5 (증가율) (24.9) (17.8) 무역외수지 1,267.2 351.2 수입 11,251.9 12,668.7 지급 9,984.7 12,317.5 이전거래 1,448.1 237.4 ◇자본수지 ­1,396.5 ­3,109.7 장기자본수지 ­2.732.8 ­3,412.1 단기자본수지 1,336.3 302.4 ◇오차및누락 ­589.0 403.3 ◇종합수지 12,175.2 2,396.7
  • 여행사 대표,여직원과 월북/일 거쳐/6천만원 빚진뒤 집 팔아

    【도쿄AP연합특약】 한국인 2명이 제3국을 통해 자진 입북,망명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구로관광사 및 용마관광대표인 김원석씨(55ㆍ구로구 가리봉동 115의55)와 용마관광여행사 여직원 유설자씨(29)가 해외여행도중 2일 북한에 도착했다고 도쿄에서 청취된 방송이 전했다. ◎지난달 14일 출국 김씨와 유씨 등 2명은 지난달 14일 NW 022편을 이용,도쿄로 가 26일쯤 돌아올 예정이었다. 경찰조사결과 김씨는 여행사운영이 잘안돼 6천여만원의 빚을 지게되자 출국전 시가 2억3천여만원의 집을 처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김씨가 사업실패로 빚독촉을 받자 내연의 관계를 유지해온 유양과 함께 월북,애정도피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는 한편 김씨가 여행사일로 평소 외국왕래가 잦았던 점으로 미루어 밀수 등에 관여해오다 꼬리가 잡히자 망명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와 유씨는 모두 고향이 충청도로 북한에는 친인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부인 박모씨(51)와 1남3녀를 두고 있으며 큰 딸은 미국으로 출가했다.
  • 교통부 업무보고 내용

    ◎지하철 교통분담률 서울 50ㆍ부산 40% 2천년까지/서울 도시고속도로 64.6㎞ 건설/해외여행자등에 관광기금 징수/자동차 성능시험 6개 항목서 40개 항목으로 ▷대도시 교통개선◁ ◇지하철 확충 ▲2000년까지 도시전철 교통분담률 서울 50%,부산 40%,대구ㆍ인천ㆍ광주ㆍ대전 25% 수준으로 제고 ▲지역별 도로율도 20∼25% ▲소요자금 23조원중 11조원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12조원은 지하철공채ㆍ공영개발수입금ㆍ호텔 등의 교통유발 부담금ㆍ유류가격의 목적세로 부과되는 도시교통기금으로 충당 ▲서울지하철 2단계 1백8㎞ 조기착공 ▲대구지하철 착공 ▲서울 64.6㎞ ▲부산 12.7㎞ 도시고속도로 ▲서울 9천9백20대,부산 9백대 수용 규모의 공영주차장 건설 ▲수도권ㆍ부산ㆍ대구ㆍ광주ㆍ대전 등에 광역지방교통관리기구 설치 ▷컨테이너 항만건설◁ ◇항만건설 ▲부산ㆍ광양에 2대 컨테이너중심항 체제구축 ▲광양에 항만배후도시기능 개발 ▲컨테이너부두공단 설립 ▲북방교역 확대에 따른 항만 정비 ▲인천 5ㆍ6부두건설 ▲군장신항건설 ▲동해항 2단계건설사업 추진 ▷자동차관리제도 개선◁ ▲보유절차ㆍ등록절차 간소화 ▲판매전문인(딜러)제도 확립 ▲검사의 일원화추진 ▲자동차성능 시험시설 건설 착수 ▲성능시험을 6개 항목에서 40개 항목으로 증가 ▷항공기안전운항대책◁ ▲항공기종합안전대책의 수립 ▲민간항공 조종사 양성기관설립 ▲항공행정 기능강화 ▲10개 비행장 관리업무를 공항관리공단에 이관 ▲안전사고대책및 운항관리 ▲항공기술인력 대폭 보강 ▷관광진흥◁ ▲민속여관ㆍ전통음식개발 ▲관광사업의 범위확대 ▲관광의 날 행사 ▲94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선포 ▲외국관광객 유치를 활성화 ▲경주보문단지ㆍ감포해안단지·서남천관광단지·제주중문단지 2단계 개발 ▲성산포해안단지 개발 ▲각 생활권ㆍ문화권 관광지 개발 ▲관광시설 이용자및 해외출국 여행자들에게 국민관광개발기금을 징수하는 내용의 관광진흥법 관계규정 개정
  • 해외송금 1년새 7배 증가/작년 8억불 유출… 핫머니 대량 빠져

    ◎외국인 국내소비액은 6.5% 줄어/「여행비」도 1인 2천1백불/「연령」 철폐뒤 출국자 67.3%나 늘어 해외여행 자유화와 해외송금 자유화 한도 확대 조치에 따라 지난해 한햇동안 엄청난 뭉칫돈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외로 나간 개인송금액이 88년에 비해 7배 가량이나 늘어난 것으로 추정돼 그동안 원화절상 등에 따라 국내로 유입됐던 핫머니가 다시 대량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됐다. 30일 한은이 분석한 「89년중 무역외수지(외환수급기준)의 주요항목별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한햇동안 해외여행수지는 수입이 35억6천만달러인 반면 지급이 25억9천만달러로 9억6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88년(19억1천만달러)에 비해 흑자폭이 9억5천만달러가 축소됐다. 이처럼 해외여행수지가 악화된 것은 지난해 1월부터 해외여행자의 연령제한이 철폐돼 우리나라 사람들의 출국이 88년에 비해 67.3% 늘어났고 지난 88년 11월부터 해외여행 경비지급 한도의 확대로 우리나라 출국자의 1인당 소비액이 2천1백39달러로 전년에 비해 14.6% 증가한반면 외국인 입국자의 1인당 소비액은 1천3백4달러로 6.5%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여행 경비지급은 지난 한햇동안 25억9천만달러를 기록,88년의 13억5천달러에 비해 무려 12억4천만달러(91.9%)가 늘어났다. 한편 증여수지는 수입이 11억5천만달러인 반면 지급이 11억4천만달러로 겨우 1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88년(11억2천만달러)에 비해 흑자폭이 11억1천만달러나 줄어들었다. 증여수지가 이같이 악화된 것은 투기성 외화자금 유입규제,증시침체 등으로 개인송금 수입이 감소한 반면 거주자의 대외송금 자유화 한도확대 조치에 따라 개인송금 지급이 급증한 때문이다. 개인송금 지급은 지난 한햇동안 8억1천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돼 88년의 1억1천7백만달러에 비해 6.9배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개인송금을 포함한 증여지급은 지난 한햇동안 11억4천만 달러로 88년의 4억9천만달러에 비해 1백32.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 공무원 국적기이용 아시아나까지 학대

    정부는 현재 공무원 해외여행시 국적기 이용을 위해 대한항공과 계약체결,운영하고 있는 정부 항공운송의뢰제도(GTR)를 올해부터는 아시아나항공에도 적용키로 하고 이달 중으로 계약을 체결키로 했다. 총무처의 관계자는 16일 『공무원의 해외여행시 대한항공을 이용토록 의무화하고 있는 GTR제도를 아시아나항공에도 확대 적용키로 했다』고 말하고 『아시아나 항공측과 계약조건을 비롯한 모든 실무협의를 끝냈다』고 밝혔다.
  • “마지막 남은” 알바니아도 흔들린다/비상 선포설속 세계관심 집중

    ◎젊은층 외국TV 시청… 동구변혁 알아/국내여행 규제등 최근 주민통제 강화 유럽 최후의 스탈린식 강권통치국인 알바니아가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바니아는 지난해 동구국가들을 차례로 격변시킨 개혁ㆍ민주화의 물결에도 아랑곳없이 이를 비웃으며 폐쇄적인 독자노선을 고수해 오고 있다. 라미즈 알리아 인민회의 간부회의의장이 신년사를 통해 『동구의 개혁노선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알바니아의 독자노선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히는등 알바니아는 자주노선의 추구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따라서 「세계의 미아」인 알바니아에 반정부ㆍ민주화 시위가 발생,제2의 도시인 슈코더르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보도는 세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알바니아는 2차대전동안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배를 받았으며 44년 엔베르 호자 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좌익정권의 수립에 이어 46년 1월11일 알바니아 인민공화국이 선포됐다. 이후 호자는 최고권력자의 위치를 지난 85년 사망할 때까지 지켜왔으며 그의 부인인 네즈미아는 현민주전선 의장으로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나라에 시위가 퍼져가고 있는 것은 지난해 동구의 민주화 바람이 알바니아 대학생등 청년층을 자극한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 청년층은 주변국인 유고 그리스 이탈리아의 TV 프로를 몰래 시청,서방세계에서 일고 있는 움직임을 접할수 있고 동독 체코 루마니아에서 젊은이들이 큰 활약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해외에 망명중인 알바니아인들도 알바니아 정부가 인권을 보장하도록 압력을 가해달라는 청원을 서방세계에 내기도 했으며 10년동안 남아공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레카국왕은 알바니아의 민중봉기를 유도하기 위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할 것이라고 지난주 밝히기도 했다. 알바니아 정부는 지금까지 강온 양면정책으로 알바니아인들을 철저히 묶어놓고 있다. 먼저 알바니아 정부는 국민들의 여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해외여행은 공무로 한정되어 있다. 또한 헌법에 차관금지법이 있을 정도로 자급자족을 추종하는 정책을 실시,크롬등 자원의 수출로 89년말 외채는 1억5천만달러에 불과한 실정이다. 비밀경찰과 군은 알바니아인들의 외국인과의 접촉을 감시하는 한편 국외탈출을 막고 있다. 알바니아는 「국부」로 통하는 호자와 그의 뒤를 이은 현 알리아 인민회의 간부회의의장 등 지도자들에 대한 숭배가 생활화되어 있으며 지난해 건립된 「호자 박물관」은 학생들의 필수 관람코스가 되고 있을 정도. 알바니아는 최근 비교적 완화된 정책을 표방,서독ㆍ프랑스 예술품에 대한 관람기회를 알바니아인들에게 제공하기도 했으며 영국 및 소련을 제외한 유럽 각국과의 관계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인구 3백20만의 동구 최소국으로 면적은 경상남북도 보다 약간 작은 2만8천㎢에 불과하며 지난 48년 스탈린주의를 도입,친소 노선을 채택했으나 흐루시초프와의 불화로 61년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그후 친중 노선으로 돌아섰으나 중국이 72년 대미접근을 시도하자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여 중국과의 관계도 단절된 상태에 놓여있다.
  • 합법성 논쟁에 휘말린 「노리에가 재판」(특파원리포트)

    ◎김호준 워싱턴특파원 미 법률전문가,“선례없는 불법” 대정부 비난 파나마의 전실권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에 대한 미국의 재판은 미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지도자를 국외에서 체포,국내재판에 회부한 전례없는 처사라는 점에서 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많은 국제법 학자들은 미 정부의 처사에 대해 『역사상 선례가 거의 없으며 사후 법적논거만을 가진 거친 정치행위』라고 말한다. 일부 학자는 『그런 선례를 찾으려면 2천년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꼬집으면서 『노리에가 장군이 미국으로 압송도중 C­130 수송기내 유치장에서 수갑에 채는 모습은 고대로마를 연상케 했다』고 말했다. 고대로마인들은 사로잡은 정복지의 통치자들을 사슬에 묶은 채 로마로 데려와 원형경기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내보였다. 노리에가는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투항했다는 것이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미 정부 관리들은 노리에가의 투항이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고 역설하지는 않지만 노리에가는 미군 비행기에탑승하기 전까지 체포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변호사협회의 국제형법분과위원장인 브루스 자가리스는 『노리에가가 구금되고 자유를 박탈당했을때 그의 체포는 이뤄진 것』이라고 정부측 주장을 반박하면서 『미국의 노리에가 체포는 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 정부의 이번 행위는 미국에 비우호적인 외국정부로하여금 해외여행중인 전직 미 관리의 체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플래처 법률ㆍ외교학교의 국제법 교수 알프레드 레빈은 『노리에가 체포는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악마의 시」 저자인 살만 루시디를 회교모독 혐의로 영국 영토에서 체포해 이란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던 것과 다를바 없다』고 말했다. 노리에가는 지난 4일 마이애미 법정에서 개시된 자신에 대한 심리에서 자신은 정치범이므로 미국 법원은 자신을 마약밀매혐의로 재판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그의 법정대리인 프랭크 루비노 변호사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은 불법이며 노리에가는 국가원수로서 미국내 기소에 대해면책특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리에가 재판을 둘러싼 법률논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하나는 노리에가가 실제로 파나마의 통치자였느냐는 점이다. 부시정부는 지난해 5월 파나마 선거에서 길레르모 엔다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노리에가는 파나마의 진짜 정부수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카고 대학의 국제법교수인 기돈 고틀리에브는 『미국정부가 노리에가를 합법적인 지도자로 간주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는 국가수반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소추면책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미 연방법원 판사들은 외국인 피고가 법정에 어떻게 불려나왔는지에 관해서는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노리에가를 외국영토에서 끌어왔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틀리에브 교수는 아돌프 아이히만 사건을 예로 들면서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면 그건 파나마 주권에 대한 것이지 노리에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아이히만 사건에서 아르헨티나가 했던 것 처럼 파나마만이 항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 이스라에 정보원들은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원흉인 아이히만을 피신중이던 아르헨티나에서 납치했다.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의 국권 침해를 인정했지만 그것이 아이히만을 돕지는 못했다. 그는 전범으로 재판에 회부돼 결국 처형됐기 때문. 플레처학교의 레빈교수는 나치전범의 경우와 노리에가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국제법에는 문명질서에 반하는 범죄로서 어느나라가 기소해도 무방한 보편적 범죄의 개념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마약거래와 자금 「세탁」은 그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민정 새 대표 박태준의원 기용의 함축

    ◎「당 결속ㆍ정계개편」 겨냥한 다각 포석/“무색의 중립”… 대야창구로 적격/3김과 교분 두터워 「노대통령의 짐」 덜듯/취약한 당내 기반,후속인사로 보강 예상 노태우대통령이 5일 민정당대표위원에 포철회장으로 더 유명한 박태준의원을 기용한 것은 그의 다각적인 정치적 중립성을 높이 산 결과로 풀이된다. 당직개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민정당내의 파워게임은 6일의 나머지 당직개편이 끝나봐야 분명해지겠지만 일단은 무승부로 가고 있는듯한 인상이 짙다. 노대통령이 이번 인선에서 고심했던 것은 5공청산 과정에서 심화된 당 분열을 해소할 수 있는 인화력과 정계개편 추진을 위한 돌파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박 신임대표의 철저한 당내 역학구조상의 중립성에서 당화합의 가능성을,포철을 세계 최일류기업으로 키워낸 경영능력에서 돌파력을 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박 신임대표는 노대통령이 『당의 결속과 융화,대야협조를 위해 가장 적임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임명이유를 밝혔듯이 적어도 네가지 부문에서 당내외 갈등을 해소하기 쉬운 입지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는 박 신임대표가 전두환 전대통령과 사돈간이라는 데서 드러나듯이 5공과 6공참여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두번째는 지금껏 정치보다는 포철경영에 전념함으로써 당내 세력 어느곳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세번째는 경남 양산에서 출생,성장은 일본 도쿄에서 함으로써 TK(대구ㆍ경북)나 SK(서울ㆍ경기) 등 지역적 분파성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임 박대표는 야당의 3김총재와 비슷한 연령대에 속하면서 이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의회정치나 정계개편작업 과정에서 노대통령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임 박대표가 지난 3공화국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권의 비중있는 대야 막후대화창구로 가동돼 왔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평민당 김대중총재ㆍ김종필 공화당총재와의 관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밀착돼 있는 것으로 민정당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노대통령이박대표를 현재의 당위기상황과 관련해 「유일한 적임자」로 여기고 있음은 포철회장을 당분간 겸임토록까지 배려한데서 잘 드러난다. 당대표 인선과정에서 신임 박대표 외에 노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윤환 전총무,TK그룹의 원로인 유학성 당고문이 마지막까지 신임 박대표와 경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대표 인선문제는 그 성격이 당내 세력간 파워게임의 대리전으로 비약,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져 온 것이 사실이다. 대표직 제의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김전총무등 TK일각에서는 신임 박대표를 추천한 바 있다. 반면 이춘구총장ㆍ이한동총무 등은 오히려 유고문을 내심 추천하는 양상을 띠었었다. TK측이 친TK이면서 계파성이 없는 박 신임대표를 당의 얼굴로 앉히려고 든 것은 나머지 당의 요직을 장악하려는 정치계산으로 볼 수 있다. 「이­이라인」이 유고문을 내심 선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TK를 얼굴로 함으로써 역시 총장ㆍ총무를 비TK로 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던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한동총무가3일 밤과 4일 아침 공개적으로 「박태준대표­김윤환총장」 가능성을 미리 비토하고 나선 것은 당직개편을 둘러싼 당내 세력간의 갈등을 드러낸 상징적 일화로 여겨지고 있다. 박의원이 대표로 기용됨으로써 일단 김 전총무등은 거시적 구도에서는 정치적 운신의 폭이 크게 넓어진 셈이다. 그러나 당3역을 포함한 나머지 당직개편문제에서 현체제 유임 또는 중부권의원으로의 대체가 점쳐지면서 당직개편을 둘러싼 당내 파워게임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형국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TK세력들의 구도대로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임 박대표의 기용을 단순히 위기상황에 처한 당분열 치유를 위한 위기관리용이 아닌 노대통령의 후계구도와 관련된 포석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즉 신임 박대표가 앞으로의 정계개편 방향과 상관없이 노대통령의 후계자로 낙점됐거나 대상인물중의 하나로 선정돼 첫 시험무대에 올려 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일부 당내외 인사들에 의해서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 이후의 후계자를 가시화시켜 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시간적 개연성과 다음 대권주자는 비TK일 필요성을 여권이 공동인식하고 있다는 점,신임 박대표의 이미지가 「한국의 아이아코카」란 별칭만큼 신선할 수 있다는 점등에서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밖에도 신임 박대표가 군출신이면서 경영자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고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그의 당대표 기용을 「확대해석」하려는 당내외의 욕구는 점차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박대표는 그러나 당내에 뚜렷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은 당대표로서 기용되기까지는 대단한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당의 실제운영과 통솔에는 상당한 단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는 3월쯤 시도지부장이 대의원들의 경선에 의해 선출될 경우 중집위가 실세화되고 상대적으로 당내 지지기반이 없는 신임 박대표로서는 당운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때문에 6일의 후속인사는 신임 박대표의 당장악력을 높이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고려될것이다. 당3역을 포함한 나머지 당직개편이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지든 정계개편 논의의 활성화와 함께 당내 중진들의 분파활동은 보다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13대총선 낙천자그룹등 여권 외곽세력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포항의 황무지에서 포철을 만들어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신임 박대표의 경영능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정치적 수완이 어떤 것인지는 그러나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박태준 신임 민정 대표위원의 포부/“정계개편등 현안해결 주력/흐트러진 당내전열 재정비” 포항제철을 세계 초일류 철강업체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탁월한 추진력을 과시,「철인 박」(아이언 박)이란 별명을 가진 박태준의원이 5일 민정당대표위원에 임명돼 『기왕 나선 이상 신명을 다해 국민들이 정치걱정없이 생업에 충실할 수 있게 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박 신임대표는 캐나다 밴쿠버를 떠나 일본 도쿄를 거쳐 이날 낮 귀국해 곧장 청와대로 노태우대통령을 면담,대표직 임명을 통보받고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박 신임대표는 한때 대표직을 고사했다는 얘기에도 불구,『일단 결심한 이상 최선을 다해 정치의 신뢰도를 회복하겠다』고 말해 5공청산 과정에서 다소 흐트러진 민정당의 전열을 굳게 다잡을 것임을 다짐했다. 박 신임대표는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중책을 맡아 아직 생각이 정리 안됐다』면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으나 당의 주요 시책방향을 미리 메모해와 참고하는등 용의주도한 면을 보였다. ­어려운 때 대표를 맡았는데 소감은. 『평소 정치의 신뢰도가 대단히 저하되고 있음을 느껴왔다. 동료 국회의원과 당원의 협조를 얻어 정치신뢰를 회복시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걱정없이 생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겠다』 ­총재가 어떤 이유로 대표를 임명했다고 생각하나. 『총재가 아실 것이다. 나 자신은 전문정치인ㆍ직업정치인이 아니다. 당초 당을 대표하는 직을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를 했었다. 무엇이 총재의 숙제인지 앞으로 깊이 생각해 실천에 빈틈이 없도록 하겠다』 ­5공청산을 둘러싸고 당내내분이 있었던 것처럼 비쳤는데. 『당정책과 방향은 민주화실천이나 당면 경제난국 타개,국가번영하의 통일기반 조성에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것 아니냐. 이런 목표들은 당총재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며 이를 실천하면 된다. 5공청산 문제를 중심으로 마치 당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당은 창당때부터 평생동지이므로 당의 융화라든가 결속이라든가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당 내분수습이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인데. 『이념이나 뜻이 같았기 때문에 민정당에 들어온 것이다. 개별사건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그것이 단결ㆍ인화를 근본적으로 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일이 생기면 대화를 통해 당원으로서 동지의식을 돈독히 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정계개편이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정계개편 발언으로 전임대표가 말썽난 것 같고 일부 야당총재도 비슷한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들의 뜻이 어디 있는지 공부하고 직접 만나 들어 보겠다. 우리 당 생각도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나중에 얘기하겠다. 이제까지는 경제분야에만 주력했으나 앞으로는 정계개편을 포함,정치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겠다』 ­야당총재들에 대한 인식은. 『그분들은 평생동안 정치해온 분들이며 정치역량등 여러면에서 월등히 훌륭하다. 앞으로 배워나가겠다』 ­김종필 공화당총재와 특히 친하다는데. 『3김총재가 모두 존경하고 서로 얘기 나눌 수 있는 입장이다. 김종필총재는 포철만들 때 공화당직과 총리를 맡았기 때문에 친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87년 대선때 3김 총재가 오랜만에 정치 일선에 나와 과거 안면도 있어 각각 만난 적이 있다』 ­포철회장직은. 『포철이 92년까지 생산량 2천만t이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하고 해외수주관계등 계속 사업 때문에 당장 그만 두긴 어렵다. 사임문제는 그런 일이 해결되는 대로 차차 생각하겠다』 ­나머지 당직개편은. 『당헌상 내가 건의토록 돼 있으므로 조금 생각해 본 뒤 내일이나 모레 대통령께 건의하겠다』 ­이번 대표임명을 대권후계와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는데. 『5ㆍ16직후 정치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정치 않겠다고 한지 오래다. 대표 맡은 것도 우연이며 그런 우연이 또 올 수 없다고 본다. 또 온다해도 그럴 위인이 못된다고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경남 양산에서 출생한 박 신임대표는 일본 와세다대 수료후 육사6기로 임관,5ㆍ16이후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이어 대한중석사장을 거쳐 67년 포철설립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경영의 귀재로 등장,「한국의 아이아코카」로 불렸다. 5공 들어와 11대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본격 입문,국회재무위원장을 역임했고 13대 전국구로 재선,3ㆍ4ㆍ5ㆍ6공화국에 걸쳐 재계와 정계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강력한 추진력,비타협적 성격으로 「카리스마적」 「불도저식」 이란 평가를 받고 있으나 한번 잘해주면 「화끈하게」 봐줘 아래사람의 신망도 두터운 편. 골프(핸디 18) 유도(2단) 등으로 단련된 다부진 체력에 소문난 독서가. 부인 장옥자씨(59)사이에 1남4녀를 두고 있으며 막내딸(경아ㆍ25)을 5공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에게 출가시켰다.
  • 대규모 소 관광단 서울 온다/한ㆍ소 여행사 계약 체결

    ◎7백60명 규모… 상ㆍ하반기 나눠 사상 처음으로 올해 7백60명의 대규모 소련관광단이 한국에 온다. 이들 관광단은 소련국영관광여행사 「인투어리스트」사의 주관으로 상ㆍ하반기 두차례에 걸쳐 각각 3백80명씩 우리나라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들은 소련관광유람선 「루스」호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와 2박3일동안 용두산공원 자갈치시장 등 부산일원과 경주,그리고 서울의 경복궁 창경원 및 용인민속촌 등 관광지를 돌아보게 된다. 인투어리스트사는 지난해 초 우리나라의 아주관광 및 드래곤여행사와 관광송객 업무협조계약을 체결한 뒤 그 첫사업으로 올 관광단을 한국에 보내는 것이다. 인투어리스트사는 지난해에도 한차례 관광단을 보낼 계획이었으나 일국비자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연기했었으나 최근 이 문제가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소련은 해마다 7천여명의 관광객을 유람선편으로 일본ㆍ동남아 등 아시아지역 해외여행을 시켜오고 있어 올해 한국관광단의 방한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과 소련의 관광객 협조계약에 따라이번 소련관광단의 한국방문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한국인들의 소련관광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전두환 전 대통령 국회증언 속기록

    ◎“「6ㆍ29선언」 배경 훗날에 밝힐 터”/「항공사 2원화」 따라 「제2민항」을 인가/언론통폐합,지금은 수긍 어려운 면도 ○이ㆍ장 어음사기사건 이 사건들은 이미 모두 철저한 수사와 재판이 끝났으며 그 과정에서 진상이 상세히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철희ㆍ장영자사건이 정치자금과 연관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인데,꿈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도대체 이철희ㆍ장영자 이 두사람과는 일면식조차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둡니다. 그리고 명성그룹의 해체가 본인이 세무사찰을 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주장의 사실여부를 물으셨으나,명성그룹은 명성사건 발생과 함께 대표자가 구속되고 대부분의 자산이 적법절차를 거쳐 처리됨으로써 자동적으로 해체된 것이지 세무사찰로 해체된 것은 아니었으며 본인이 세무사찰을 지시한바 없습니다. ○제2 민항 인가 제2 민항문제가 제기된 것은 제5공화국 초기부터 국제교역의 증대와 해외여행자율화 시책으로 항공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87년초부터 교통부에서 실무검토에 착수,그해 11월 항공사 2원화 방침을 보고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송업 경험이 풍부하고 자본력이 견실한 호남지역 기업 중에서 대상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검토한 교통부가 이미 85년경부터 항공운수사업을 추진하고,87년부터 한국공항터미널 주식회사의 일부를 인수하는 등 항공 전문업체로서의 본격적인 발돋움을 하고 있는 금호그룹에 제2 민항 설립을 허가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장관을 통해 건의해서 이를 재가하였습니다. 재가 시기가 본인의 퇴임 직전에 이루어진 점에 대해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동 인가문제는 87년초부터 계속 검토되어 왔던 것으로 오히려 늦게 결정된 것으로 생각하며 본인의 재임중에 시작된 일이어서 재임중에 종결짓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재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원전ㆍ노스럽 의혹◁ 원전 11,12호기 도입과 관련한 시공업자의 로비설은 경쟁탈락 회사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며 원전 낙찰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원전 선정은 동력자원부와 한국전력의 주관하에 관계전문가 1백50여명으로 구성된 입찰 평가팀이 다양한 조건을 비교검토한 결과 조건이 가장 유리하여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군 주력항공기 선정사업은 공군의 전투력 향상과 항공산업 육성의 측면에서 지난 83년부터 추진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F­16과 노스럽사의 F­20이 경합하게 되었는 바,정부는 공동생산의 경제적ㆍ기술적 실익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생산업체를 선정하여 미국업체와 공동생산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84년 10월 수원,85년 5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F­20기가 시험비행과정중 추락하는 등 사고가 있어 노스럽사가 F­20의 개발을 중단함에 따라 정부는 F­20을 검토대상기종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비자금 운운하며 의혹이 있었는 바 이는 본인 또는 정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일입니다. ▷골프장 인가◁ 내인가 골프장 중 일부 기업이 성금ㆍ기금 등을 낸 것이 바로 특혜가 아니냐 하는 의혹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이해부족에서 오는 낭설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내인가라는 것은 행정의 합목적적인 수행을 위해 쓰고있는 행정관행인 것입니다. 골프장 내인가 권한은 교통부장관에게 있으며 대통령에게는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하는 것입니다. ○「기부」가 오해불러 일부 골프장 인가 과정에서 수십억대의 금액이 사례비조로 오고 갔다는 주장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골프장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고려해서 공익과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조건은 지역별로 공익시설을 건설토록 하거나 장학금 또는 장학기금을 내도록 하거나 총 골프장 건설소요자금의 10%이상을 국민관광지 조성에 쓰거나 그에 상응하는 기금을 내도록 한 것이 잘못 이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골프장을 설립한 기업중에는 새마을 성금 등 공익법인에 기부한 사례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회관설립기금을 기부한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부행위가 정치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인식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으며 정치자금 수수는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삼청교육ㆍ언론통폐합◁ 삼청교육은 상습적이고 조직적인 폭력ㆍ공갈ㆍ사기ㆍ마약ㆍ인신매매 등 각종 사회악을 제거하여 사회기강을 확립함으로써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는 시국수습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삼청교육은 당시 사회혼란을 틈타 난무하고 있던 고질적인 상습범들에 대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특별교육을 통해 교정함으로써 민생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사회악이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불안을 조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법치주의의 맹점을 이용하거나 법망을 교묘히 피해나감으로써 통상적 방법으로는 다스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성실한 대다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추진된 것입니다. 당시 사회안정을 시급히 회복시킨다는 목적에서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다 보니 시행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바,이 점은 매우 유감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해에 있었던 공직자 정화조치는 이권개입 등 부패공직자,공사생활에서 지탄받는 자 등을 정리함으로써 공직기강을 바로 잡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상자 선정은 사정기관의 자료와 각 부처별 대내외 첩보와 여론수집을 통해 엄밀히 심사토록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정실,또는 개인적감정에 의해 처리된 사례도 없지않았다고 봅니다. 이점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 입니다. 언론인 해직조치 또한 사회각계 정화조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대상은 각 언론사에서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실제적으로는 계엄당국의 언론관계 담당관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론통폐합은 건전언론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그 전부터 몇차례 건의를 받은 바 있었습니다. 본인은 당시 언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결국 80년 11월 언론통폐합 계획을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되돌아 보건데 당시 언론계에는 소위 「사이비기자」 「사이비언론」 등 문제점과 폐단이 적지않아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충격적 조치가 불가피 하다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부정축재 환수◁ 그 외에 80년 당시 있었던 일로서 10ㆍ26 이후 사건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에서 발견된 자금문제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총 9억6천만원중 2억원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5천만원은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주어 이를 활용토록 하고 1억원은 당시 계엄사령관의 승인을 받아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비로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유족에게 전달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정축재 환수 재산처리는 적법절차에 의하여 농어촌후계자 육성기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헌납액에 차이가 있는 것은 환수재산중 일부는 현금이 아닌 서화 토지 등 실물자산으로서 이에 대한 평가액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0ㆍ27불교 법난◁ 소위 10ㆍ27 불교법난으로 알려진 불교계에 대한 정화는 사회전반에 대한 정화조치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특정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비추어진 점에 대해서는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일은 정화조치의 일환이기는 하나 본인의 대통령 취임후 몹시 바쁜 기간이었으므로 중대한 사안인데도 집행기관을 자세히 챙기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정치자금◁ 70년대에는 집권당 간부 중심으로 정치자금을 조달,관리함으로써 정치권의 부패가 여론화 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취임초부터 깨끗한 정치를 위해 나름대로의 의욕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재임기간중에 집권당이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도록 강조해 왔으며 그 결과 재임기간중에 당의 고위 간부중에서 정치자금과 관련된 물의가 거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인은 기업 또는 개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 받은 바 있으나 국고보조 확대,선관위 기탁금,후원회를 통한 모금,당원의 당비 납부 등 외부로부터 정치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정기적 지원 없었다 실제로 민정당 창당시부터 자립정당을 표방하여 평소 당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당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했으며 필요한 자금을 가끔 지원한 적이 있으나 그 금액은 생각하는 것만큼 큰 규모가 아니었으며 본인이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지원한 사실은 없습니다. 질의 내용중에 양대 선거와 관련한 자금 문제도 있으나 어느 당을 막론하고 선거때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지원을 받아온 것은 비밀일 수도 없는 공지의 사실인 것입니다. 후보자간의 과열경쟁과 유권자의 기대심리가 높은 우리의 선거풍토에서 본인은 정치자금에 대한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에 곤혹스러움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이러한 고충은 아마 모두가 비슷하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의 내역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과장되게 알려진 측면이 없지않을 뿐 아니라 정치자금에 대한 논란은 자칫 정치불신만을 심화시킬 우려가 큰,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본인이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없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평화적으로 정권을 인계해 주고 나온 어떤 통치자도 정치자금의내역을 공개하여 왈가왈부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습니다. 본인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 싫다기 보다는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되고 세기말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과거의 수렁에 빠져 헤어날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강제징집문제◁ 병역법상 대학생은 스스로가 원하면 졸업시까지 징집을 연기할 수 있지만 대학을 그만두거나 휴학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연기혜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휴학한 대학생은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입대하여야 하며 의식화된 대학생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의식화된 대학생이 퇴학된 경우,징집에 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를 강제징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입대한 사람들은 당연히 군부대에서 다른 병사들과 함께 똑같이 병영생활을 영위했을 것으로 생각되나,그중 몇명이 사망하자 사망사실 자체가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인 본인이 병영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할때마다 보고받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당시 본인은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물은바가 없습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란 것은 공식적인 정부기구가 아니라 국가 중요 현안이나 업무내용이 여러부처와 관련되는 사안인 경우 관련부처의 책임자 또는 실무자들이 모여 주무부서 책임자 주관하에 서로 의견을 개진하고 대책을 협의하는 비상설회의로 운용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의는 의결 또는 집행기구가 아니라 단순히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모임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회의는 참석 대상자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해당 안건과 관련있는 부처의 공무원들이 그때 그때 참석하는 것으로서 대통령이 회의소집을 지시하거나 참석자를 지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에 따른 국가안보상의 위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이었으며 당시로서는 대응 댐 건설이 정부가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대응방안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84년 9월께 북한에서 북한강 상류에 80만㎾ 규모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사실이 노동신문ㆍ평양방송 등을 통해 수차 보도된 바 있어 저들이 공표한 발전용량을 근거로 저수량을 역산해 본 기술진의 검토결과 최대 저수량 2백억t에 달하는 초대형 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북측 대응 최선책 북한의 이러한 대규모 댐 건설은 하류에 있는 우리측의 수자원 및 발전량 감소를 초래함은 물론 인위적으로 파괴하거나 또는 자연붕되될 경우에 10여시간 후에는 수도권 일대가 대부분 수몰되는 등 우리 국민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특히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악랄한 반대와 방해공작을 펴오던 북한으로서는 무슨 일을 저지를 지도 모르는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이었음은 국민 여러분도 상기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86년 10월께 수차례에 걸쳐 북한측에 국제관례를 무시한 금강산 댐 건설을 중지하도록 촉구하였으나 북한측이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여 86년 11월께 국가보위를 위한 자위 조치로서 수공을 방지할 수 있는 대응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국민들의 성금으로 건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의 댐은 당시 정부의 정보 판단에 따른 최선의 대응방안이었으며 정권유지 차원에서 금강산 댐의 위험성을 과장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분명히 말씀드린다면 우방이 제공해준 항공사진 등 여러가지 정보 자료에 비추어 이 댐은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하여 축소중이었음이 확실하며 그 뒤 북한이 댐 공사를 중단한 것은 우리가 평화의 댐을 축조함으로써 저들의 의도가 사전 봉쇄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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