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中 작년 2885만명이 ‘세계로 세계로’
중국에 해외여행 바람이 거세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고 고도성장에 힘입은 신흥 중산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면서 세계 관광업계의 큰손으로 등장했다. 올 상반기 중국인들의 1인당 해외쇼핑 금액은 987달러(약 100만원)로 세계 1위를 차지, 세계 관광업계의 VIP(귀빈)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인근의 충원먼(崇文門) 둥자오민강(東郊民港) 거리에는 중국 최대 여행사 중 하나인 중국여행사(中國旅行社) 5층짜리 본관이 자리잡고 있다.
1층 로비의 비자신청 창구에는 해외여행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왼쪽 모퉁이를 돌아서면 홍콩·마카오·동남아·유럽 등 지역별 사무실마다 문의자들이 적지 않다.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사원 정안(鄭安·27)은 “지난해 홍콩 여행이 너무 좋아 1년간 저축한 돈을 모두 털어 유럽여행을 계획 중”이라며 “TV나 책으로 접한 고풍스러운 유럽의 저택들을 직접 본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고 밝게 웃는다.
●중산층 확대로 해외여행 붐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 역시 마찬가지다.35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우두 공항의 출국 대합실에는 짧은 반바지 차림의 여대생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계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마오판(毛范·25)은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라며 “복잡한 일상을 떠나 이국적인 분위기를 맘껏 즐기는 해외여행은 젊은이들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은 1980년대 초 해외 친척 방문이 허용되면서 기지개를 켰다.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 폭이 넓어지면서 그동안 눌려왔던 해외로의 꿈을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중국의 해외 여행자는 1억 1000만명이다. 특히 해외여행 규제가 대폭 완화된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43%가 늘어난 2885만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중국은 지난해 아시아 관광객 수에서 1위를 차지했고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70여개국으로 여행 대상국도 다양해지고 있다. 세계 여행업계는 2015년 전후로 중국의 해외 관광객 수가 연간 1억명을 돌파, 세계 최대의 관광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독신자 유혹하는 해외여행
“애인과 함께 카리브해 백사장을 거니는 낭만적인 여행에 독신자들을 초대합니다.”
최근 급증하는 독신자들을 대상으로 관광과 ‘배우자 찾기’를 겸하는 이색 여행상품들도 속출하고 있다.26∼30세의 남녀 화이트 칼라들이 주요 대상이며 비용은 5000∼1만위안(약 130만원)선이다. 디스코장과 노래방, 수상배구 등 여행 프로그램도 ‘짝짓기’에 적합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동남아 독신자 여행 상품을 고른 옌팅(嚴·29·여)은 “대학교 졸업 이후 바쁜 회사 생활로 데이트할 시간이 없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근사한 남자를 만나 동화속의 공주가 되고 싶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독신자 여행상품은 춘제(春節·설)와 노동절, 국경절 등 중국의 대표적 연휴 기간에도 성행하고 있다.
‘효도 관광’도 강세다. 북경신보(北京晨報)는 지난해 전체 해외관광객 가운에 56세 이상이 29%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평생 자식들 때문에 희생한 부모들을 위해 자식들이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다.3000∼5000위안 안팎의 비교적 저렴한 동남아 여행 상품이 인기다.
●쇼핑가 싹쓸이하는 중국 여행객
세계 2위의 외환 보유국인 중국은 넘쳐나는 달러를 바탕으로 해외 여행업계에서 큰손으로 통한다.AC닐슨과 세계면세협회(TFWA)가 올 상반기 해외여행을 다녀온 베이징,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해외여행시 쇼핑규모가 1인당 평균 987달러(약 98만 7000원)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상하이 시민의 경우 유럽여행 시 1인당 1781달러어치를 쇼핑했다.
중국인의 1인당 해외여행 경비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이지만, 여행 총경비의 3분의 1가량을 물건 구입에 소비하는 ‘쇼핑광’으로 조사됐다.
루이뷔통 가방을 비롯한 명품 제품들이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다. 중국의 수입관세 등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명품 가격은 중국 국내에 비해 30%가량 저렴하다. 홍콩·유럽을 여행하는 중국인 대부분이 쇼핑에 혈안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을 간파한 유럽의 유통업체는 여행 패키지에 쇼핑몰을 포함시키는 등 중국인 관광객 급증에 따른 특수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 관광업계 ‘중국 특수 잡기´
칭녠(靑年)여행사 가오즈젠(高志堅)이사는 “과거 유럽은 중국 여행객들을 시끄럽고 예의 없다는 이유로 경원시하던 콧대높은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인 유치를 위해 관련업체 종사자들 사이에서 중국어 학습 열풍이 불고 있다.”며 변화된 분위기를 전했다.
이탈리아 여행업체인 아르피(RP)투어는 지난해 가을부터 베이징 사무소를 열고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10여개의 중국 여행업체와 제휴한 RP투어의 마우로 피치니 사장은 “중국인 관광객에게 이탈리아의 패션과 음식·문화 등을 경험할 수 있는 패키지를 개발하고 있다.”고 공략법을 소개했다.
2003년 전체 중국인 관광객의 6.7%를 차지했던 유럽의 경우 비자 수속이 미국에 비해 간편해지자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유럽지역의 대형 여행업체들은 중국에 직원을 파견해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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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 중산층이 해외여행붐 주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의 해외 관광붐을 주도하는 계층은 중국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형성된 신흥 중산층들이다. 중산층의 수는 대략 13억 인구의 10% 안팎으로 월 소득은 5000위안(75만원)∼2만위안(260만원)선으로 추정된다.
중산층 가운데 여행업체들이 군침을 흘리는 집단은 화이트 칼라로 불리는 ‘샤오쯔(小資·소자본 계층)’ 집단이다.20∼30대의 청장년층인 이들은 외자기업과 정보기술(IT)산업, 국영·민간기업 임직원, 은행·보험 등 금융업 종사자는 물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중국 인구의 5%선인 700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커피와 팝송을 즐기는 샤오쯔들은 명품을 선호하고 영어 회화는 이들의 ‘신분증’에 해당한다. 미국과 유럽 문화를 동경하는 서구 지향적 취향을 갖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톈진(天津), 충칭(重慶), 난징(南京), 시안(西安) 등 중국 대도시 인구의 15∼20%에 해당된다. 중국 푸단(復旦)대 궈딩핑(郭定平·정치학) 교수는 “직접적인 정치 참여 기회가 없는 이들은 정치보다 돈과 여가를 즐기면서 해외 여행 등에서 분출구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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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사 2배 급증 고가 상품도 불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은 이제 단체 관광에서 보다 자유로운 개인·소규모 여행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 최대 여행사 가운데 하나인 중국여행사 둔지둥(頓繼東) 총경리는 “소득 수준이 높아진 젊은층들이 해외 여행을 주도하면서 아프리카 오지 탐험 등의 테마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유럽여행의 경비는 1인당 9500위안(약 120만원)∼1만 8000위안(230만원)으로 고가이지만 부유층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영국과 프랑스에 집중돼 있지만 점차 이탈리아와 스페인, 북유럽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이번 여름방학 중에는 부유층 자녀들의 영어권 어학 연수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둔 총경리는 “비자가 까다로운 미국 대신 유럽과 호주, 캐나다 등의 어학 연수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승마나 사교춤까지 배우는 ‘귀족 어학연수’ 상품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국 관광과 관련,“지난해 전체 고객의 8% 정도를 차지했지만 매년 줄어드는 추세”라며 “보다 다양한 관광 상품개발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둔 총경리는 “중국인들은 특히 상대적으로 위락시설이 많고 이색적인 제주도를 선호하고 있는데 동남아나 유럽과 비교해볼 때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에서 해외관광 영업 허가를 받은 여행사는 700여개로 1∼2년 사이에 두배 이상 급증했다.
둔 총경리는 “해외여행 전체 매출 규모는 3년전인 2002년보다 무려 10배가 성장했지만 과당 경쟁으로 인한 경영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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