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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저장성-신선거·설두산 신선이 머문 비경 속을 걷다

    해외여행 | 저장성-신선거·설두산 신선이 머문 비경 속을 걷다

    신선거·설두산신선이 머문 비경 속을 걷다 중국엔 산이 많다. 히말라야 고원부터 뻗어 내려온 산맥은 대륙의 한복판까지 이어진다. 상하이를 둘러싼 저장(절강, 浙江)성에도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그 산자락 속, 신선들이 머물렀다던 신선거神仙居와 설두산雪窦山을 두 다리로 걸었다. ●신선거神仙居를 오르다 10분 만에 후회했다 신선거의 본래 이름은 영안永安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북송의 황제가 절경에 넋을 잃고 ‘신선이 살 만한 곳’이란 뜻을 담아 새 이름을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혹자는 이곳에 대해 “장자제張家界의 기이함과 화산华山의 험준함, 태항산太行山의 웅장함과 황산黃山의 수려함을 고루 갖췄다”라고 표현한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나름의 기대와 매번 봐 오던 진부한 풍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함께 찾아왔다. 이번 여정은 신선거여유국에서 마련한 ‘한중친선걷기대회’의 일환이다. 서울과 부산, 상하이에서 모여든 참가자가 200여 명. 사람들은 공항에서부터 달뜬 얼굴로 천하의 절경에 대한 기대들을 부풀려 가고 있었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산으로 향하는 길목 너머로 유문암 산의 거대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으로 뻗어 올라간 웅장함은 구태여 위압감을 숨기지 않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산마루에서 우거진 숲의 속살로 거슬러 들어가는 길은 산책길과 다름없이 평탄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말을 주고받으며 트레킹의 시작을 즐겼다. 신선거를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걸어서 가든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든가. 케이블카 쪽은 이미 줄이 5만리다. 튼튼한 다리가 있으니 산이 보여 주는 아름다움을 오롯이 즐겨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코끼리의 코를 닮았다는 상비폭象鼻瀑을 등 뒤로 흘려 보낸 그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280mm짜리 발이 다 들어가지 않을 만큼 폭이 좁다. 그런 계단들이 가파르게 층을 이루며 산을 휘감아 오른다. 아찔하다. 계단을 많이 오르면 얼마나 심신이 괴로워지는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푹푹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겠는가.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왔으면 오르는 수밖에 없다. 그게 산이 아니던가. 하이힐로 산을 오르는 중국 여성의 위엄 미리 밝힌다. 내가 걸은 코스는 대략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 길지 않다. 물론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 산 좀 탄다는 이들에게 얘기하면 “그 정도면 편하네”라는 답이 돌아오기 딱 좋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문제는 계단이다. 거의 대부분의 길이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알면서 오르던 사람들도 질리고, 아무 생각 없이 오르던 사람들도 대략 3분의 2 지점에서 주저앉아 쉬게 된다. 그 힘든 길에서 입을 떡 벌리게 되는 놀라운 광경을 만났으니, 중국의 여인네들이었다. 중국은 남성보다 여성들의 기세가 더 대단하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굽이 바짝 오른 하이힐을 신고 가파른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을 오르는 모습을 봤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미니스커트까지 차려 입고 빌딩숲을 정복하듯 산을 정복하는 모습이라니…. 함께 산을 오르던 남자친구는 웃옷을 몽땅 벗어 들고 맨살을 드러낸 채 간신히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런 차림으로 힘들지 않아요?”(나) “이 정도쯤은 괜찮아요.”(하이힐 그녀) 이름을 물어볼 새도 없이 그녀는 휑하니 계단을 따라 사라져 버렸다. 남자친구는 저 아래 계단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 쉬는 중이었다. 신선거를 오르는 동안 이런 광경을 몇 차례에 걸쳐 목격했다. 계단을 따라 오르는 마지막 30분 구간은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체력이 급격히 방전되기 시작했다. 허벅지가 찢어질 것 같고 종아리에 쥐가 나는 통증은 덤이다. 앞서 가던 사람들은 곳곳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한 발, 다시 한 발. 무거워진 다리를 들어 땅을 딛고 몸을 위로 끌어올리기를 수차례. 비로소 평지가 보였다. 산의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잔도였다. 그제야 비로소 깎아지른 벼랑들이 눈에 들어왔다. 잔도는 케이블카에서 내리는 곳부터 시작해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신선거를 관람하는 코스. 여기부터가 진짜 신선거 유람의 시작인 셈이다. 문제는 연무였다. 순식간에 자욱한 안개가 산 전체를 휘감아 돌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서 흘러오는 공기는 산의 능선을 타고 급격하게 흘러내린다. 그 흐름에 끌려온 안개는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한 치 앞도 구분 못할 만큼 부옇게 산 전체를 집어삼켰다. 황망함 그 자체. 올라오는 길에선 딱히 볼 게 없었는데, 정상에서도 안개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니. 할 수 있는 건 터덜터덜 잔도를 따라 걸으며 이따금씩 안개 사이로 고개를 내민 풍경을 곁눈질하는 것뿐이다. 3시간의 고통을 날려 버린 비경 계단 후유증이 찾아왔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수시로 쥐가 났다. 가다 쉬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서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닮았다는 ‘고애급문명古埃及文明’, 도원결의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결의봉結義峰’ 같은 이정표들을 만났지만,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천 길 낭떠러지를 따라 30분쯤 걷다 보니 눈앞에 120m 길이의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신선거의 절정으로 향한다는 ‘남천南天교’다. 밑으로는 100m가 넘는 낭떠러지. 출렁다리가 눈에 들어올 무렵부터 조금씩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 시운곡時運谷이라는 절벽을 돌아나가는 순간, 머리 위로 바람이 느껴졌다. 깊은 계곡의 골을 타고 빠져나가는 공기인 듯했다. 그 흐름에 짙었던 운무가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저 멀리에 우뚝 선 거대한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림잡아도 150m는 훌쩍 넘는 듯한 봉우리가 합장을 한 채 서 있었다. 자연이 빚어낸 관세음보살의 모습. 봉우리의 이름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딴 ‘관음觀音산’이다. 중국에 명산이 많다지만 이런 비경은 오로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 압도적인 경관에 모두가 동시에 “와!” 하는 감탄을 터뜨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곁에 놓인 사진을 보아 하니 관음산을 배경으로 이쪽 낭떠러지와 저쪽 낭떠러지에 줄을 연결해 줄타기대회를 여는 모양이었다. 이 절경 앞에서 줄 한 번 타 보겠다고 나름 줄타기의 고수라는 동·서양의 인물들이 모여든다. 그 역시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볼거리일 것이다. 신선거 유람의 절정은 낭떠러지가 만들어내는 절경을 감상하며 잔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곳부터는 남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면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길, 저 멀리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관음산 너머로 물들어 가는 붉은 하늘은 내 가슴에도 붉은 물을 들인 듯했다. 그 먹먹함에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끄러미 하늘과, 하늘의 색에 물들어 가는 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북송의 황제가 이곳에 신선이 살고 있을 거라며 ‘신선거’라는 이름을 하사한 이유를, 그 순간 절감할 수 있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가졌던 막연한 우려 따위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설두산雪窦山을 걷다 골짜기 속 끊임없는 폭포의 세계 신선거가 하늘 위에 감춰진 선계仙界라면 설두산은 골짜기 속에 숨겨진 선계다. 닝보宁波시 시커우진溪口镇 서북 9km 지점에 위치한 설두산은 면적 85km2의 국가급풍경명승구国家级风景名胜区, 중국 내의 관광·문화·과학적 가치가 있고 독특한 풍경을 가진 지역로 유명하다. 산 정상 유봉乳峰의 샘에서 백색의 물이 흘러나오는데, 마치 우유와도 같다고 하여 유천乳泉 혹은 설두雪窦라 불렀다. 설두산 역시 두 가지 방법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거나,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거나.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루트를 택했다. 설두산에서 가장 유명한 관람 요소 중 하나인 삼은담三隐潭 폭포가 출발지점이다. 각각 형성시기가 다른 3개의 폭포 군을 일는 ‘삼은담’이란 이름은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 그곳에 폭포가 있다는 걸 모른다’는 의미다. 실제로 위에서 볼 때는 연못만 보이고 폭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연못 가까이로 내려가야 비로소 멋들어진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신선거가 유문암이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웅장함이 특징이라면, 설두산은 전반적으로 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있지만, 그 아래에 머물고 있는 물의 흐름이 정적인 탓일까, 여유롭다. 산 자체가 그런 느낌이 강해서인지, 사람들도 대체로 여유롭게 경치를 즐기는 편이다. 무엇보다 계곡의 절경을 곁에 두고 걸음걸음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2시간을 걸어가는 동안 계곡을 따라 폭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름이 붙을 만큼 큼직한 폭포는 7개, 이름 없는 작은 폭포들까지 하면 대략 15개 정도 된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적잖게 놀랐던 것은 그중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폭포와 연못이 꽤 된다는 점. 주변의 자연경관들과 잘 어우러질 정도로 인공미가 크게 거슬리지 않았던 걸 보아, 이곳을 가꾸는 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156m 폭포 위에서 장제스를 만나다 2시간 남짓 폭포를 벗 삼아 걷다가, 길의 끝을 만났다. 여기서부터는 모노레일을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마치 설두산의 1부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2부는 천장암千丈岩 폭포로 시작하는 역사 기행이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조금 걸어 가니 설두산의 하이라이트인 천장암 폭포가 펼쳐진다. 높이 156m, 고개가 아플 정도로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무지개를 품은 폭포의 광경 앞에서 모두가 발걸음을 멈췄다.설두산이 위치한 시커우진계구진, 溪口眞은 타이완의 국부라 불리는 장제스장개석, 蔣介石 총통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장제스는 이 지역에서 꽤 오랜 시간을 살았는데,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이 산을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곳곳에 장제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얽혀 있다. 천장암 폭포 위에 자리한 장제스의 별장 묘고대妙高台·‘오묘한 경치를 자랑하는 높은 자리의 건물’이라는 뜻 앞뜰에 서면, 그가 왜 그런 이름을 붙여 놓았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묘고대가 있는 자리는 본래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설두산은 예부터 중국 선종의 성지로 명성이 높아, 곳곳에 사찰이 꽤 많았다. 장제스는 평소 풍수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어느 곳보다 뛰어난 명당인 이곳에 별장 자리를 잡아 묘고대를 지었다고. 확실히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장제스는 국민당 정부와의 갈등으로 세 번을 사직하고 시커우진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그만한 인물이 없는 탓인지 다시 국민당의 부름을 받았다. 묘고대 내에 전시된 손문孫文의 위임장은 그런 과거의 흔적이다. 결국 그는 국민당을 이끄는 총통의 자리에 올랐고, 타이완의 국부로 추대됐다. 그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총통이 되었다. 설두산을 떠나며 이곳의 유명한 사찰인 설두사雪窦寺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설두사는 과거 ‘자성선사資聖禪寺’라고 알려진 중국불교의 성지다. 미래에 올 부처인 미륵보살을 모시는 미륵성지로도 이름이 높다. 그 때문인지 이 절에는 거대한 미륵보살상이 조성돼 있다. 높이만 56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상이다. 아쉽지만, 이런 것이 여행이다. 아쉬움을 품고 돌아서기로 했다. 그래도 이미 가슴 속은 풍족하다. 신선들의 세상을 보고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길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el info 浙江省 AIRLINE신선거와 설두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하이 또는 항저우를 거쳐야만 한다. 그중 상하이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한국에서 상하이로 향하는 항공편수가 항저우보다 훨씬 많다. FOOD저장성은 양쯔강 이남을 뜻하는 ‘강남’ 지역을 대표하는 곳이다. 신선거와 설두산이 있는 곳은 저장성 내에서도 산에서 나오는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이 많다. 주로 간장을 많이 활용하고, 감칠맛을 살린 요리들이다. 특히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토란이다. 그런데 토란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어지간한 김장무 사이즈다. 이곳을 찾는다면 꼭 한 번 먹어 볼 만한 요깃거리다. PLACE 장씨고거蒋氏故居닝보시 시커우진에 위치한 장제스 총통 일가의 주거지역이다. 국공내전 이후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옮겨갔지만, 전쟁에서 이긴 마오쩌둥 주석은 이곳을 파괴하지 말고 보존하도록 특별히 지시를 내렸다. 펑하오팡, 위타이옌푸, 샤오양팡 등의 건축물들이 유명하며 1996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다. 칠보노가七寶老街홍차오공항에서 3km 떨어진, 강남의 오래된 마을이다. 예부터 이 지역은 번화한 상업 지대였다. 근대 이후 상하이의 도심 개발로 점점 잊혀져 가던 이곳을 2000년부터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칠보七寶라는 이름은 이 거리 한 쪽에 위치한 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남북으로 나 있는 큰길을 따라 남쪽에는 군것질거리, 북쪽에는 공예품, 골동품, 그림 등이 볼 만하다. 종루, 연화정, 패루, 당교 등의 옛 건축물들도 빼놓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항저우대교杭州大橋중국 저장성 북쪽의 자싱嘉興과 항저우만을 가로질러 저장성 남쪽의 닝보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대교다. 총 길이가 36km에 달한다. 2003년 11월 착공되어 2008년 6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완공됐다. 너비 33m의 왕복 6차선이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닝보와 상하이를 오가는 시간이 평균 6시간에 달했으나 지금은 2시간 정도로 단축됐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정태겸 취재협조 잇츠투어 02 2613 7863, 신선거여유국, 설두산여유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콜택시 결제시장 쟁탈전

    콜택시 결제시장 쟁탈전

    고급 콜택시 결제시장을 두고 모바일 선두 주자 카카오와 글로벌 1위 택시예약업체와 손잡은 KB국민카드가 맞붙었다. KB국민카드는 4일 우버와 국내외 마케팅 업무 협약을 맺었다. 우버는 전 세계 68개 국가, 400여개 도시에서 택시 예약 서비스를 운영 중인 글로벌 1위 업체다. 우버가 국내 카드사와 손을 잡은 것은 처음이다. 두 회사는 우버의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라인 연계) 플랫폼과 국민카드의 금융서비스를 결합해 공동 마케팅을 추진한다. 연계 카드상품도 개발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국내 1400만명에 이르는 국민카드 이용자(신용+체크카드)가 우버 택시를 예약하면 포인트 적립과 할인 혜택 등을 준다. 2013년 우리나라에 진출한 우버는 유독 한국에서 고전했다. 진출 초기 우버택시(일반)를 시도했지만 정부 규제와 택시 업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지난해 9월 여객자동차운송사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고급 택시에 한해 시장 진출 기회가 열렸지만 불과 두 달 후 카카오가 ‘카카오블랙’이라는 이름으로 고급 콜택시 사업에 먼저 진출하면서 원조 타이틀을 내줘야 했다. 우버는 지난 1월 중순부터 ‘우버블랙’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카카오와 KB는 일단 국내 결제시장에서 맞붙었지만 해외에서도 격돌할 전망이다. KB국민카드가 우버와 손잡은 것을 계기로 해외시장 진출에도 욕심내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카드 측은 “국내 콜택시 시장 규모는 연간 15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KB카드 고객이 해외여행이나 출장 때 우버택시 네트워크를 손쉽게 이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제휴 업무 등을 해외마케팅 부서가 총괄한 것만 봐도 KB의 ‘글로벌 구상’이 엿보인다. 카카오도 여러 차례 기업설명회(IR) 개최를 통해 카카오택시 사업의 해외 진출을 공식화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해외여행 | [슬램덩크]의 배경 속으로 가마쿠라 추억여행

    해외여행 | [슬램덩크]의 배경 속으로 가마쿠라 추억여행

    <슬램덩크>의 배경 속으로 가마쿠라 추억여행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는 칼의 문화가 시작된 곳이다. 1185년 최초 무인정권이었던 다이라 정권을 제압하고 쇼군將軍이 된 요리토모는 군사거점이었던 가마쿠라에 막부를 설치했다. 이로써 민간 정부인 조정은 교토에, 군사 정부인 막부는 가마쿠라에 있는, 한 나라 두 정부의 무사 정권 시대가 시작된다. 가마쿠라에는 대불大佛이 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으뜸 관광물이다. 교토, 나라가 귀족 불교의 고장이라면 가마쿠라는 사무라이 불교 혹은 시민 불교의 고장이다. <슬램덩크>를 보며 농구의 세계에 빠졌던 세대에게 가마쿠라는 성지와 같다.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도시가 바로 가마쿠라다. 이 고풍스런 작고 예쁜 도시에서 에노덴江ノ電 기차를 탔다. 1900년에 운행을 시작한 기차로, 기관사의 수신호가 아날로그의 정취를 제대로 발산한다. 그 안에서 강백호와 채치수를 닮은 검은 교복의 일본 학생 무리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마쿠라코코마에역鎌倉高校前駅에 내린다. 가마쿠라 고교 앞 철로 건널목을 가기 위해서다.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 강백호가 채소연을 기다리는 장소로 나왔고, 만화책에서는 안선생이 능남고와 경기를 마친 북산고교 선수들을 데리고 가던 길로 등장했다. 건널목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가면 가마쿠라고등학교가 나온다. 이곳은 윤대협, 변덕규, 황태산이 다니던 능남고의 모델이 됐다. 에노덴 기차를 타고 계속 가면 에노시마江道에 닿는다. 작은 참새 모형이 반겨 주는 예쁜 역이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어느 한때, 교과서 안쪽에 슬램덩크를 숨겨 보며 강백호의 치기에 웃고 윤대협과 서태웅의 대결에 숨죽이고 안선생의 묘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던 경험이 있다면, 가마쿠라는 좋은 추억여행의 장소가 될 것이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 Travie writer 윤용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www.jroute.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전남 강진군, ‘사랑+구름다리’ 결혼할 커플 1쌍 공개 모집

    전남 강진군, ‘사랑+구름다리’ 결혼할 커플 1쌍 공개 모집

    전남 강진군이 오는 7월 석문공원에 있는 ‘사랑+구름다리’ 개통을 앞두고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릴 주인공을 찾는다. 사랑이 넘쳐 구름 위에 서 있다란 뜻을 가진 다리다.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할 석문공원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사로 선정된 1쌍에게는 500만원 상당의 해외여행권을 준다. 모집 기간은 오는 30일까지다. 신청 자격은 오는 7월 2일 토요일에 결혼할 예비부부다. 선거법상 강진군에 주민등록을 둔 사람과 강진군 향우와 그 가족은 제외된다. 신청서는 온·오프라인 모두 제출 가능하다. 군청 홈페이지 고시·공고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이메일(ilchimi@korea.kr)로 보내거나 신청서를 작성해 군청 해양산림과로 우편 제출하면 된다. 군은 접수한 신청서의 내용 사실 여부를 검토한 후 다음 달 공개 추첨, 예비 신혼부부 1쌍을 선정할 계획이다. 만덕산과 석문산의 단절된 등산로를 연결하는 ‘사랑+구름다리’는 길이 111m, 폭 1.5m로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형 출렁다리 공법의 구름다리다. 2014년 5월 착공해 오는 7월 개통한다. 전문 등산객은 물론 연인, 가족 단위 등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등산로 및 산책로를 개설과 기존 등산로를 정비했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멋진 명품 구름다리 탄생을 축하하고, 석문공원과 더 나아가 강진군을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며 “재미있고 특별한 결혼식을 원하는 젊은 예비 신랑 신부들의 많은 신청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팝과 샹송과 칸초네를 들으며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팝과 샹송과 칸초네를 들으며

    스물 몇 살 때다. 여자 친구가 불쑥 두 가지를 제안해 왔다. 혹시라도 자기와 결혼할 생각이 있으면 먼 훗날 체코 프라하와 사이먼&가펑클 콘서트에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헐, 이과 출신인데 뜻밖에 낭만스러운 면도 있구나 하며 우선 놀랐다. 그렇게 어려운 조건도 아니고 또 결혼해야겠다고 내심 맘먹은 나는 즉각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제안에 대해 지금 세대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카를 다리가 황홀한 프라하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80년대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도 또 자유로워도 경제적으로 쉽게 갈 수 있는 풍요의 시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눈먼 나는 호기롭게 약속했다. 문제는 내가 약속 강박증이 심하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뱉은 말은 죽지 않으면 지킨다는 황당한 원칙을 정해 놓고 살아왔다. 그래서 주변 누구도 내가 한 말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프라하야 언젠가 갈 수 있을 것이고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동안 수많은 유럽 여행길에도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프라하만큼은 애써 가지 않았다. 프라하 얘기가 등장할 때면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이를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으로 달래 가며 언젠가 같이 가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약속 중의 하나인 사이먼&가펑클 콘서트였다. 어려운 것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래전에 결별한 두 분이 죽기 전에 회동해 콘서트를 열어야 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 콘서트가 서울이나 도쿄에서라도 열려야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이 전설적인 듀오는 나의 맘도 몰라 주고 점점 할아버지가 되어 갈 뿐 콘서트를 열 낌새조차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뉴욕 센트럴파크 82년 실황공연 DVD를 구해 주며 달래 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먼 훗날 결혼을 하고 떠난 유학 중에는 짬을 내어 공연이 열렸던 센트럴파크와 캐나다 접경 메인주까지 다녀왔다. 바닷가재와 개기일식으로 유명한 메인은 스티븐 킹의 베스트셀러 소설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무대. 그러나 나의 목적은 메인주 초입의 시골 동네 스카버러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여행 책자에서 시 당국이 스스로 밝혔듯이 이 작은 동네가 사이먼&가펑클의 ‘스카버러 페어’와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는지는 불분명했다. 그러나 단지 스카버러에 가 봤다는 것만으로도 나와 아내는 그날 밤을 감동으로 설쳤다. 80년대는 이처럼 외국 노래가 넘쳐나는 시대였다. 누구나 팝을 듣고 좀더 세련되어 보이는 사람은 샹송과 칸초네를 들었다. 과 엠티나 서클 엠티에는 으레 유명 팝이나 실비 바르탕의 ‘라 마르차 강변의 추억’, 산레모의 영웅 니콜라 디 바리의 칸초네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안치환도 신입생 환영회 때 캔자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를 불렀다가 사람들의 권유에 의해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조금 윗세대야 말할 것도 없겠다. 우리 대중음악이 빈약하던 그 시절, 선배 세대인 세시봉 세대도 수많은 외국 노래들을 번안해 불렀다. ‘하얀 손수건’부터 ‘썸머와인’ 등등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한 가락은 대개 팝을 번안한 곡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이먼&가펑클이 있다. 이분들이 부른 노래는 70년대를 거쳐 80년대 이 땅을 풍미했다. ‘엘 콘도르 파사’,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사월이 오면’ 등등은 다방에서 빵집에서 심지어 영화가 상영되기 전 막간에 허구한 날 흘러나왔다. 거기다가 명문대 박사라는 후광까지 더해지면서 그 시절 젊음을 사로잡았다. 그러고 보니 까까머리 고1 때 교생 선생이 가르쳐 주던 “아름다운 스카버러여 / 나 언제나 돌아가리 / 내 사랑이 살고 있는 / 아름다운 나의 고향…”을 따라 부르던 생각이 난다. 35년 만에 최근 귀국한 박인희 선생이 그 옛날 부른 노래다. 사이먼&가펑클은 영화 ‘졸업’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빨간색 스포츠카 쉐보레 카마로를 몰고 버클리대학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찾으러 가는 더스틴 호프먼이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우여곡절 끝에 여친의 결혼식장에 침입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손을 잡고 냅다 뛴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도망치는 라스트 신은 지금도 자주 패러디되고 있는 명장면. 미국 중산층의 타락한 생활과 60년대 말 신세대의 심리적 불안을 그린 영화는 80년대 방황하던 이 땅의 청춘에게 먼 나라에 대한 동경을 꿈꾸게 했다. 영화는 무명의 연극배우 더스틴 호프먼에게 오스카상을 안겨 줬다. 또 배경음악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스카버러 페어’ 등이 알려지면서 사이먼&가펑클은 일약 세계 포크계의 지존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스카버러 페어’는 영국 민요에서 멜로디를 따왔다. 전쟁에서 죽은 병사가 자신의 몸에 피어난 풀들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이다.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저항 노래로 시작했지만, 지구촌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리며 클래식 반열에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결이 고운 노래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도어스, 핑크 플로이드, 조 코커, 딥 퍼플, 리 오스카 등등은 물론이고 지미 페이지, 리치 블랙모어, 프레드릭 머큐리, 믹 재거, 핼러윈 등등은 고래고래 따라 부르며 고함쳤던 우리가 몹시도 사랑했던 아티스트였다. 신촌과 이태원의 데카당한 술집 벽면을 장식한 지미 페이지의 털북숭이 가슴과 중요 부위를 유난히 도드라지게 입었던 스키니진에 킥킥거리며 독한 술을 가슴에 들이부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분노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분노를 가슴에 담고 살았다. 퇴폐적이고 불온한 팝은 불만투성이 그 시절 앵그리 영맨을 위로해 주었다. 클래식을 듣고 교양 있는 척하며 얘기하던 것도 그 시절 유행이었다. 덕분에 궁핍했던 청춘 시절 입주 과외를 하면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마련한 명품 오디오가 몇 세트 있고 오랜 세월 어렵게 사 모은 적잖은 분량의 그래머폰, 데카 원판은 지금도 장롱 깊숙이 잠자고 있다. 바하의 파르티타는 내가 즐겨 듣는 레퍼토리이고 빈한했던 시절 아르바이트한 돈을 꼬불쳐 뒀다가 가끔은 폼나게 콘서트홀을 찾기도 했다. 1988년 가을 서울올림픽 기념으로 삼성그룹에서 초대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공연 팸플릿 서문도 내가 썼다. 주최 측에서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 내게 부탁해 왔고 그날의 팸플릿은 지금도 서재 한 구석에 잠자고 있다.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신세대 가수 SG 워너비가 사이먼&가펑클을 닮고 싶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이다. 노래가 발표될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들이 전설적인 듀오를 닮고 싶다는 당찬 고백에 못내 그리운 80년대를 잠깐 생각해 봤다. 그러면서 나의 아내가 SG 워너비 공연에 모셔가면 그 옛날의 약속을 지킨 것으로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월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어야 하는 잔인하고도 기막힌 계절이 왔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매체경영) yule21@empal.com ●알림 토요일자에 격주로 연재되던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이 4월부터 금요일자로 옮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해외 관광객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각 나라별 행동은?

    해외 관광객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각 나라별 행동은?

    전 세계적으로 해외여행, 유학, 어학연수가 많아진 요즘, 여행에 앞서 해당 국가의 문화에 대해 사전 조사하는 것은 퍽 보편적인 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직접 듣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겠지요.지난 16일, 전 세계인들이 이용하는 소셜 뉴스사이트 ‘레딧’(Reddit)에 ‘여행객들이 각국에서 저지르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주제로 많은 네티즌이 활발한 토의를 가졌습니다. 이 중 다수의 이용자에게 호응을 얻었던 몇 가지 중요한 사례들을 집어 보겠습니다. 1. 태국태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만져선 안 됩니다. 태국 사람들에게 있어 머리는 인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기에 존중받아야 할 부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지폐를 밟는 것만으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인데요. 지폐에는 태국 왕의 초상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에서는 국왕의 사진을 밟거나 왕에 대해 증오발언을 하는 것조차 범죄행위로 간주됩니다. 2. 영국사진을 찍을 때 두 손가락을 들어 ‘V’자를 그리는 것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이 최초로 시도했던 일로 알려져 있지요. 이제는 주로 동양, 특히 한국에서 많이 하는 행동인데요. 영국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V자를 그리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이 때 손등을 상대방에게 향하면 중지손가락을 사용한 ‘손가락 욕’과 똑같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관광객들의 또 다른 흔한 잘못으로는 왕실 근위병을 놀리는 행동이 꼽혔습니다. 표정을 바꾸거나 움직일 수 없는 근위병들의 입장을 악용해 괴롭히려드는 관광객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영국 네티즌들은 그들 또한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진짜 군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3. 중동중동에서는 발바닥 혹은 신발 바닥을 보여주는 행동이 큰 무례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발바닥이 신체에서 가장 낮은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꼬아 발바닥이 보이게 할 경우에도 불쾌감을 줄 수 있다니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스웨덴서양 국가 대부분은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을 매우 중시합니다. 개체 공간이라고도 부르는 이 용어는 남에게 침범 받지 않기를 원하는 개인의 일정한 물리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다가와도 되는 최단거리’를 말하는데요.스웨덴 사람들은 이 개인공간의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현지 네티즌에 따르면 미국과 같이 비교적 개체공간 개념이 보편적인 국가 국민들조차 스웨덴 사람들의 기준엔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느껴진답니다. 5. 미국한 미국 네티즌은 관광객들의 ‘흥정’ 행동을 대표적 추태로 지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벼룩시장이나 중고차 매장 같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격 흥정을 벌이지 않는다며 정가제가 실시되는 다른 매장에서는 부디 흥정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특히 이 네티즌은 ‘한국 관광객’을 콕 집어 추가적인 당부를 전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우리 미국인들 또한 노인을 공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인들이 팔꿈치로 다른 사람들을 밀어가며 새치기를 하거나, 젊은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버스 및 식당에서 자리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견은 1546개의 찬성표를 얻었습니다. 이외에 브라질에선 손가락으로 만든 'OK' 표시가 욕설에 해당한다는 의견, 아이슬란드에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코를 풀어선 안 된다는 의견, 캐나다에서 미국 달러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하지 말아달라는 의견 등이 많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발·입 묶인 中전직 주석들, ‘출판 정치’로 존재감 연명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해외 강연료는 1회에 20만 달러(약 2억 3000만원)나 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숱한 비난 속에서도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통치 컨설팅’을 해 주며 돈을 벌고 있다. 중국의 전 국가주석인 장쩌민(江澤民)이나 후진타오(胡錦濤)가 해외 강연에 나선다면 클린턴이나 블레어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강연은커녕 해외여행조차 갈 수 없다. 전직 주석은 물론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던 모든 지도자는 정부 승인 없이는 나라 밖으로 못 나간다. 국내에서의 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지난 26일 후진타오가 고향 장쑤성 타이저우를 방문한 사진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랐다가 바로 삭제된 것도 당국의 허가 없이 전직 지도자의 동정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현대중국연구소장인 보즈웨 교수는 “전직 지도자들에겐 아예 여권이 없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전직 지도자들에게 ‘족쇄’를 채우기 시작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다. 덩샤오핑은 1980년 8월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지도자 종신제를 폐지하면서 “퇴직 간부가 업무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나의 마지막 과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이 조용하면 현직의 권력은 극대화된다. 발과 입이 묶인 전직 지도자가 세상을 향해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정치 행위’는 책을 내는 것이다. 장쩌민은 최근 리란칭(李淸) 전 부총리와 함께 ‘세계유명가곡 45선’이란 책을 냈다. 가곡을 즐겨 부르고 피아노를 잘 치는 장쩌민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다. 지질학도였던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자서전 형식의 ‘원자바오 지질(地質) 수기’라는 책을 펴냈다. 리펑(李鵬) 전 총리는 은퇴 후 책을 13권이나 냈다. 후진타오도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책을 내려면 당 중앙판공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이 떨어지면 판공청 내에 편집팀이 꾸려진다. 편집위원들은 저자의 초고 중 고쳐야 할 곳에 일일이 연필로 동그라미를 친다. 수정이 끝나면 판공청과 신문출판총국이 이중 검열을 한 뒤 출판사로 보낸다. 예전에는 인민출판사 등 6곳에서만 출판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다른 출판사에서도 책을 낼 수 있다는 게 자유라면 자유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2) 증강현실, 가상현실 너머의 세계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2) 증강현실, 가상현실 너머의 세계

     수상한 회사, 매직리프  체육관 바닥에서 고래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육중한 몸이 천정까지 솟구쳤다. 고래가 파도 속으로 몸을 날리자 체육관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술과 같은 장면에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래는 사라지고 마른 바닥이 드러났다. 한동안 IT 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증강현실(AR, Augment Reality) 스타트업 매직리프(Magic Leap)의 소개 영상 내용이다. 증강현실은 실제 세계에 가상의 이미지를 겹쳐서 보여주는 기술이다. 2015년 판매가 중단된 구글 글래스는 대표적인 AR 기기였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도 홀로렌즈(Hololens)라는 AR 헤드셋을 공개하였다. 가상현실은 오큘러스 리프트나 삼성 기어 VR과 같이 헤드셋을 쓰면 바깥을 볼 수가 없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증강현실과 다른 점이다. 최근에는 360도를 촬영하는 카메라로 만든 영상도 가상현실이라고 불러 가상과 증강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매직리프의 동영상을 보면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공개된 몇 개의 홍보 영상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어 조작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3D선샤인사의 창업자인 스티븐 박사는 허핑턴포스트를 통해 매직리프가 미래의 내러티브(이야기)를 팔아먹는다며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에 빗대어 꼬집었다. 뉴스위크지도 이 회사가 아무런 기술도 없이 허풍을 떤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도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가상현실 시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는 수상한 회사 매직리프의 진실은 무엇일까.  마이애미 해변에 있는 신생 벤처 기업인 매직리프의 투자자들을 살펴보면 더욱 궁금증이 커진다. 2014년 구글은 본사가 나서 이 회사의 투자를 주도하였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도 칩 메이커 퀄컴, 세계적 투자사 안데르센 호로비츠, 미국 대표 사모펀드 KKR 등 쟁쟁하다. 그 해 10월, 매직리프는 5억 4200만 달러의 기록적인 펀딩을 성사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구글의 CEO 순다르 피차이 당시 수석 부사장이 이사회에 참여하고 퀄컴의 폴 제이콥스 회장도 옵저버로 이름을 올렸다. 무명의 매직리프는 12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서 한순간에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등극하였다. 2016년 2월에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 워너브라더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막강한 투자사들이 참여한 펀딩에서 8억 달러에 이르는 신규 투자를 받았다. 올해 1, 2월 두 달간 가상현실 업계 전체 투자액 11억 달러의 70%가 넘는 금액이다. 이번 투자로 매직리프의 기업가치는 45억 달러가 되어 몇 개월 사이에 4배 가까이 뛰었다.  베일에 싸인 스텔스 기업이라고 불리는 이 회사를 조사하던 중 몇 가지 단서가 포착되었다. 첫째로, 2015년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테크놀로지 리뷰는 올해의 ‘10대 혁신기술’(10 Breakthrough Technologies)로 매직리프를 선정하였다. 심사단들이 본 내용의 일부가 알려지면서 윤곽이 드러났다. 두 번째로는 최근 공개된 매직리프의 특허를 통해 기술이 알려졌다. 350페이지의 방대한 내용으로 특허 항목만도 703개에 이른다. 세 번째는 중국 텐센츠의 QQ에 올라온 “매직리프, 어쩔 수 없이 밝힌 비밀”이라는 구글 연구원과 뉴욕대 교수의 강좌 내용이다. 이 세 가지 단서를 간단히 요약하였다.  매직리프의 비밀  매직리프의 CEO 로니 애보비츠(Rony Abovitz)는 우주복을 입고 TED 강연을 하고 록그룹에서 기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신문에 만화를 기고하고 집안에 온갖 동물을 키우는 등 자유분방하고 기발한 인물로 유명하다. 2004년에는 수술로봇 회사 마코서지칼을 설립하였다. 이 회사의 수술로봇 리오에는 국내 기업 큐렉스의 특허가 적용되어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촉감을 전달하는 로봇 팔을 개발하던 중 환자의 뼈를 보면서 수술을 할 수 있는 가상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존의 가상현실 기기들로 시도를 해보았지만 모두 실망스러웠다. 마침내 애보비츠는 새로운 기술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워싱턴 대학의 에릭 세이벨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의 만남은 애보비츠를 증강현실의 세계로 이끌었다  세이벨 교수는 혈관 속을 볼 수 있는 초소형 내시경을 연구하던 중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시경은 몸속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카메라이다. 그는 거꾸로 내시경으로 빛을 쏘아 빔프로젝터처럼 영상을 만드는 증강현실 기기를 생각했다. 2010년 세이벨 교수가 발표한 내시경 프로브는 직경이 1mm에 불과했다. 이 가느다란 관에서 나오는 빛을 렌즈를 통해 직접 망막에 쏘아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 세계에서 들어오는 빛과 컴퓨터가 만든 가상의 빛이 뒤섞여 사람의 눈은 이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체육관에서 튀어나온 고래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영상의 데모 버전이다. 세이벨 교수의 시제품을 본 애보비츠는 2011년 매직리프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증강현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2013년에는 마코서지칼을 16억 5천만 달러에 매각하고 매직리프에 올인 하였다. 그 이후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애보비츠가 공개를 망설이는 것은 신비주의 전략이라기보다는 말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 가지 짐작을 해 보았다. 우선 냉장고만한 시스템의 크기를 몸에 착용할 만큼 작게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실내에서 시연을 하였지만 그보다 수백, 수천 배 이상 밝은 태양빛 아래에서 제대로 영상이 보일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레이저를 눈에 직접 쏘는 것이 걱정스럽다. 신체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 약한 레이저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아직 의학적으로 검증된 결과는 없다. 그 밖에도 좁은 시야각, 선명도, 응답 속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 VR을 인수할 때 후원했던 스파크 캐피탈은 “매직리프의 증강현실은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애보비츠는 “디지털과 물리적 현실 세계를 융합해 새롭고 놀라운 세상을 만들겠다”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구글, 퀄컴, 알라바바는 그 미래를 확신하고 매직리프에 수억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현실 속의 증강현실  증강현실의 대명사로 불리던 구글 글래스는 현재 판매가 중단되었지만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리고 있다. 구글에 인수된 네스트의 창업자 토니 파델이 구글 글래스를 맡으면서 산업용을 겨냥한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도 매직리프에 투자한 이후 “구글 글래스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재천명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의 예약 판매를 시작하였다. 전문가들은 가상현실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보다 한 수 위의 제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홀로렌즈를 쓰면 게임 속의 인물이 튀어나오고 벽면에는 가상의 TV가 나타난다. 테이블 위에서 미식축구를 관람하고 마인크레프트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증강현실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가까이 와있다. 그래픽 화면 앞에서 진행하는 일기 예보나 선거 중계방송도 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자동차의 앞 유리에 교통 정보를 보여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중요한 증강현실 기기이다. 아이언맨이 쓴 헬멧의 눈앞에 나타나는 화면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허공의 스크린을 손으로 조작하는 것과 같이 SF 영화의 단골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증강현실 서비스도 재미있는 것이 많다. 이케아의 AR 앱과 카탈로그를 이용하면 미리 가구를 배치해 볼 수 있다. 어떤 색상과 디자인이 우리 집에 어울릴지 고민하는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서비스이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길거리의 안내판이나 식당의 메뉴를 읽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구글이 인수한 퀘스트비주얼에서 개발한 ‘워드 렌즈’라는 앱은 이런 걱정을 덜어준다. 스마트폰으로 외국어 글자를 비추면 자동으로 번역을 해주는 AR 기능 덕분이다. 그 외에도 교육, 국방, 의료, 공공 서비스 분야로 증강현실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게임과 같이 단절된 가상공간에서 사용하는 가상현실에 비해 응용 분야가 넓어 시장 전망도 밝다. 전문 컨설팅 업체 디지 캐피털에 따르면 2020년 증강현실 시장은 1200억 달러로 300억 달러인 가상현실의 4배에 달한다. 이 거대 시장을 향해 선두 기업들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겠다.   김지연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경제 블로그] 재형저축보다 반응 신통찮은 ISA

    [경제 블로그] 재형저축보다 반응 신통찮은 ISA

    ‘국민 부자 프로젝트’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나온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기대만큼 열기가 뜨겁지 않습니다. 2013년 ‘요란한 빈수레’ 핀잔을 받은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보다도 못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는 ISA 출시 2주째인 지난 25일까지 92만 6103명이 가입했다고 28일 밝혔습니다. 첫 주에는 65만 8040명이 가입했지만 둘째 주에는 26만 8063명으로 인기가 뚝 떨어졌습니다. 둘째 주만 놓고 보면 하루 평균 5만여명이 가입하는 데 그쳤습니다. 일각에선 ISA가 재형저축의 뒤를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1995년 폐지됐다가 18년 만에 부활한 재형저축은 비과세 혜택에 큰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됐지만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지난해 가입 시한이 끝날 때까지 189만명이 가입하는 데 그쳤습니다. 첫 2주만 놓고 보면 ISA 가입자 수는 재형저축에도 뒤집니다. 재형저축의 경우 출시 9일째 100만명을 돌파했고, 2주째에는 109만 5170명이 가입했습니다. 금융 당국은 ISA 첫해 가입자가 영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8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심 기대했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힘들어 보입니다. 금융권은 ISA 출시 전 승용차와 골드바, 해외여행 상품권,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내걸며 고객몰이에 나섰으나 반짝 흥행에 그치는 모양새입니다. ISA가 인기몰이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로는 높은 가입 문턱과 각박한 비과세 혜택이 꼽힙니다. ISA는 근로·사업소득자와 농어민만 가입할 수 있으며, 5년간 계좌를 깨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받는 혜택은 5년 통틀어 200만~250만원입니다. 박선호 메리츠종금증권 금융·내수팀 부장은 “안전하게 예·적금에 투자하는 사람은 굳이 수수료를 내 가며 ISA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며 “펀드나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사람도 5년이나 돈을 묶어 두는 게 부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ISA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정부의 ‘근본 틀’ 변경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2월 항공여객 813만명, 전년 대비 15% 증가 “노선별 실적은?”

    2월 항공여객 813만명, 전년 대비 15% 증가 “노선별 실적은?”

    2월 항공여객이 813만여명으로 지난해보다 15.3% 증가했다. 2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선 여객은 228만 2000여명, 국제선 여객은 584만 9000여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14.6%, 15.7% 증가했다. 국토부는 신규노선 및 운항 확대,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와 내외국인의 제주관광 수요가 증가했고, 올해 2월은 29일이라 여객 숫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국제선은 국적 저비용항공사(LCC)의 노선 활성화와 저유가로 인한 유류할증료 면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국제선 여객은 동남아 노선 여객이 188만 1000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중국 노선 137만여명, 일본 노선 98만 4000여명, 미주 노선 30만 8000여명 등이었다. 지난해 2월 대비 일본 노선 여객은 30.5%, 대양주 21.8%, 동남아 14.8% 각각 증가했다. 중국 노선은 공급이 지난해보다 10% 증가했으나 탑승률은 2.2%포인트 하락해 여객실적이 6.9% 증가하는데 그쳤다. 공항별로는 김해공항에 국제선 신규노선이 늘면서 국제선 여객이 올해 2월 64만 2000여명으로 전년보다 44.1% 늘었다. 반면 양양공항은 지난해 2월 6159명이 이용했지만 올해 2월에는 한 차례도 전세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전체 2월 국제선 여객 중 46.7%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18.3%는 국적 저비용항공사, 나머지는 외국항공사들이 수송했다. 국내 여객은 제주노선 비중이 85.5%를 차지했다. 제주노선은 중국인의 이용이 증가해 작년보다 17.1% 증가했고, 나머지 내륙노선 여객은 작년대비 1.3% 소폭 늘었다. 국내선 여객을 공항별로 보면 청주공항이 53.2%, 김해공항이 24.5% 늘었다. 전체 국내선 여객 중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44.2%, 저비용항공사들이 55.8%를 수송했다. 국토부는 항공여객 성장세는 지속하지만 3월부터 동계 성수기가 끝나고 북핵도발에 따른 한반도 긴장고조, 브뤼셀 공항테러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각 나라 사람이 말하는 ‘관광객 추태’ 모아보니…

    각 나라 사람이 말하는 ‘관광객 추태’ 모아보니…

    전 세계적으로 해외여행, 유학, 어학연수가 많아진 요즘, 여행에 앞서 해당 국가의 문화에 대해 사전 조사하는 것은 퍽 보편적인 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직접 듣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겠지요.지난 16일, 전 세계인들이 이용하는 소셜 뉴스사이트 ‘레딧’(Reddit)에 ‘여행객들이 각국에서 저지르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주제로 많은 네티즌이 활발한 토의를 가졌습니다. 이 중 다수의 이용자에게 호응을 얻었던 몇 가지 중요한 사례들을 집어 보겠습니다. 1. 태국태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만져선 안 됩니다. 태국 사람들에게 있어 머리는 인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기에 존중받아야 할 부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지폐를 밟는 것만으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인데요. 지폐에는 태국 왕의 초상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에서는 국왕의 사진을 밟거나 왕에 대해 증오발언을 하는 것조차 범죄행위로 간주됩니다. 2. 영국사진을 찍을 때 두 손가락을 들어 ‘V’자를 그리는 것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이 최초로 시도했던 일로 알려져 있지요. 이제는 주로 동양, 특히 한국에서 많이 하는 행동인데요. 영국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V자를 그리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이 때 손등을 상대방에게 향하면 중지손가락을 사용한 ‘손가락 욕’과 똑같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관광객들의 또 다른 흔한 잘못으로는 왕실 근위병을 놀리는 행동이 꼽혔습니다. 표정을 바꾸거나 움직일 수 없는 근위병들의 입장을 악용해 괴롭히려드는 관광객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영국 네티즌들은 그들 또한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진짜 군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3. 중동중동에서는 발바닥 혹은 신발 바닥을 보여주는 행동이 큰 무례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발바닥이 신체에서 가장 낮은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꼬아 발바닥이 보이게 할 경우에도 불쾌감을 줄 수 있다니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스웨덴서양 국가 대부분은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을 매우 중시합니다. 개체 공간이라고도 부르는 이 용어는 남에게 침범 받지 않기를 원하는 개인의 일정한 물리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다가와도 되는 최단거리’를 말하는데요.스웨덴 사람들은 이 개인공간의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현지 네티즌에 따르면 미국과 같이 비교적 개체공간 개념이 보편적인 국가 국민들조차 스웨덴 사람들의 기준엔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느껴진답니다. 5. 미국한 미국 네티즌은 관광객들의 ‘흥정’ 행동을 대표적 추태로 지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벼룩시장이나 중고차 매장 같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격 흥정을 벌이지 않는다며 정가제가 실시되는 다른 매장에서는 부디 흥정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특히 이 네티즌은 ‘한국 관광객’을 콕 집어 추가적인 당부를 전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우리 미국인들 또한 노인을 공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인들이 팔꿈치로 다른 사람들을 밀어가며 새치기를 하거나, 젊은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버스 및 식당에서 자리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견은 1546개의 찬성표를 얻었습니다. 이외에 브라질에선 손가락으로 만든 'OK' 표시가 욕설에 해당한다는 의견, 아이슬란드에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코를 풀어선 안 된다는 의견, 캐나다에서 미국 달러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하지 말아달라는 의견 등이 많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대박 났어요, 작은 나눔 프로젝트”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대박 났어요, 작은 나눔 프로젝트”

    현장사진 엽서 5일새 300장 판매 모금사이트 온라인 캠페인 선정도 1년 만에 현장 찾아 생필품 지원 “한동안 국제적인 재난 소식이 뉴스에 나오면 부모님이 제 여권부터 숨겼어요. 지난해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집에 행선지를 알리지도 않고 네팔 구호활동을 갔던 것 때문에요. 하지만 미래에 대해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네팔 아이들이 지금도 눈에 밟혀요.”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승지(21·여·경희대 정치외교학과)씨는 지난해 6월에 만든 ‘네팔 프로젝트’의 팀원들과 함께 네팔에서 들여온 수공예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100여개의 수공예 다이어리와 60여개의 팔찌였다. “지난달 네팔 구호활동을 갔다가 팀원들과 카트만두에서 사온 건데, 다음달 1일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팔려고 해요. 수익금은 네팔 아이를 위해 쓸 계획이죠.” 최씨가 네팔을 처음 찾은 것은 지난해 4월 현지에 대지진이 발생하고 약 3주 뒤였다. 터키와 발칸반도 3국을 지나 몽골을 여행하던 최씨는 네팔에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뉴스를 접하자 여행을 중단하고 5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르면 위험하다고 못 가게 할 거 같아 몽골에 있다고 둘러댔죠. 3일간 친구집에서 네팔행을 준비하고 5월 15일 출국했어요.” 그는 2주일 동안 카트만두를 베이스캠프 삼아 인근의 작은 마을을 방문해 주택 재건을 위한 봉사 활동을 했다. 이곳에서 6시간이나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돌라카에도 머물렀다. “돌라카는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예요. 집이 다 무너져서 10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양철판을 덧댄 창고에서 지내더군요. 카트만두에서 1시간 거리인 두크찹 마을은 ‘불가촉천민’이 사는 곳이라 더 열악했습니다. 지푸라기 흙집은 다 무너지고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지내더라고요.” 최씨는 틈틈이 참담한 현실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촬영 장비가 없어 스마트폰으로 찍은 13분 분량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지난해 10월 아시아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한국에 와서도 아이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네팔에서 찍어온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장당 1000원씩 받고 판매했죠.” 최씨의 뜻에 공감한 장은선(21·여·경희대 경영학과)씨와 이정희(25·여·경희대 미대)씨, 김승혜(22.여.경희대 정치외교학과)씨가 동참하면서 ‘네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씨는 로고 디자인을 맡았다. 이후 최아영(21·여·경희대 언론정보학과)씨, 길예슬(21·여·중앙대 영어영문학과)씨, 김준호(21·서울대 체육교육학과)씨, 여자영(23·여·경희대 철학과)씨까지 합세해 현재 팀원은 8명이다. “100장만 팔려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5일간 300장이 판매됐어요. 지난해 9월부터 벼룩시장에도 참여하고 있죠. 연말에는 한 온라인 모금 사이트에 우리 캠페인이 선정돼 100만원 기부도 받았죠.” 최씨는 지난달 22일 성금과 후원받은 재생 노트·크레파스 등을 들고 팀원들과 네팔을 다시 찾았다. 지진 피해가 컸던 다딩 지역 인근의 카툰제 마을과 카트만두 인근 초가운 마을에서 2주간 교육 봉사도 했다. “1년 만에 갔는데도 아이들이 제 이름을 알고 ‘승지’라고 크게 부르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들의 표정에서 희망도 보였어요. 전 세계의 작은 도움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기적이 시작된 거죠. 거기에 우리도 작은 보탬이 된 것 같아요.”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구이저우성- 하늘 아래 천국 구이저우성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구이저우성- 하늘 아래 천국 구이저우성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변하지 않아서 보석이 된 곳들도 있다. 창문만 열면 어디에서든 산이 보이는 구이저우성(귀주성, 貴州省)이 그렇다. 사방이 산이다. 평균 해발이 1,000m. 성 전체가 청정지역인 데다 기이한 산과 폭포, 동굴이 곳곳에 숨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56개 민족 중 49개 민족이 이곳에 살고 있다. 중국에서 구이저우성만큼 다채로움을 자랑하는 곳이 있을까.소수민족의 아름다운 전통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구이저우성소수민족의 보금자리 구이저우성은 성 자체가 하나의 세계다. 구이저우성 3,900만 인구 중 1,300만명이 소수민족으로 같은 성 안에 49개의 다른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거대한 중국에서 이런 다양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의외의 즐거움이다.구이저우성을 이야기할 때 ‘하늘 맑은 날이 3일도 없고 땅에는 3리도 평평한 곳이 없으며 사람은 3푼의 돈도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里平 人無三分銀’라는 말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여전히 때묻지 않은 구이저우로 남아 있다. 그래서 구이저우로의 여행은 더욱 특별하다.구이저우성 인구 중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38%. 49개 민족 중 묘족苗族이 가장 많다. 포의족布依族과 동족侗族, 토가족土家族이 그 뒤를 이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구이저우성에 둥지를 틀고 있다. 묘족은 50% 이상이 구이저우성에 살고 있는데, 섬세한 수공 자수와 뛰어난 은장식을 자랑한다. 또한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화려한 복장을 입는 민족 중 하나로 입는 옷 색깔에 따라 홍묘, 흑묘, 백묘, 청묘, 화묘 등 갈래도 많다. 손님이 오면 문 앞까지 나와 술을 대접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환대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봄이면 청춘남녀가 만나는 ‘자매반축제’가 열린다묘족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주먹밥으로 하는 사랑 고백 ‘자매반축제’봄에 열리는 자매반姉妹飯축제는 소수민족 축제 중 가장 유명하다. 묘족 자치주인 카이리(개리, 凱里)시 동북쪽에 있는 시동에서 벌어지는데, 이 축제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매반축제를 보기 위해 유럽 관광객들은 1년 전부터 숙소를 예약할 정도다.자매반축제는 청춘남녀가 만나는 행사로, 축제기간 중 서로 춤추고 노래하고 어울리면서 여자들은 짝을 생각해 둔다. 여자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마음을 표현하는데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빨간 장미꽃을 넣은 주먹밥을 주고, 좀 더 생각하고 싶을 때는 솔잎을, 우정의 상대로만 만나고 싶으면 토막 낸 젓가락을, 상대가 싫다면 고춧가루를 넣어 전한다. 생각해 보라. 좋아하는 여자에게서 받은 주먹밥에 장미꽃이 들어 있다면, 장미꽃 주먹밥을 여러 개 받은 남자가 당신을 선택한다면. 이보다 더 가슴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소수민족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다채구이저우풍多彩貴州風>이라는 공연을 놓치면 안 된다. 구이양대극원에서 볼 수 있는 이 공연은 17개 소수민족의 춤과 노래를 한 공연에 모두 선보이는 것으로, 중국 20개 도시뿐만 아니라 러시아, 영국을 비롯한 해외 6개국에서 공연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관객이 무대 위에 올라 직접 소수민족의 옷을 입어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아시아에서 가장 큰 황과수폭포물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웅장한 쇼 구이저우성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황과수폭포黃果樹瀑布가 있다. 폭포 앞에 서면 엄청난 규모와 소리에 압도된다. 웅장함에 눈이 번쩍 뜨이고 신비로움에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황과수폭포는 이과수와 빅토리아, 나이아가라폭포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폭포로, 폭이 100m가 넘고 전체 높이는 20층 건물 높이와 맞먹는 78m에 이른다. 큰 낙차 때문에 근처에만 가도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진다. 도대체 이 많은 물이 어디서 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황과수폭포는 다양한 크기의 폭포 18개로 이뤄진 폭포군으로, 그중 가장 큰 황과수대폭포를 보통 황과수폭포라고 부른다. 북반강의 상류, 백수하에 있는 이 폭포는 주변에 오렌지가 많아 폭포에 비치면 그 물색이 아름다워, 황과수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사람들이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도 작명에 한몫했을 것이다.황과수폭포 입구를 지나 물이 떨어지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분재원이 있다. 꽤 넓은 정원에는 잘 가꿔진 분재와 각양각색의 돌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중국 각 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내 준 선물이라고. 잘 정돈된 나무와 독특한 모양의 돌이 즐비한 정원은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원을 지나 걷다 보면 저 멀리 황과수폭포의 물 떨어지는 소리와 형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황과수폭포 앞에 서면 거대한 폭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폭포의 낙차가 워낙 커 물보라가 수백 미터까지 솟아올라 보슬비가 오는 것 같다. 황과수폭포의 감동은 폭포 뒤편으로도 이어진다. 폭포 뒤쪽에 오랜 시간 폭포수의 낙하작용으로 형성된 동굴인 수렴동水簾洞이 있기 때문이다. 수렴동은 물로 된 커튼이란 뜻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동굴 안에서 밖으로 폭포를 내다보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황과수폭포는 폭포의 앞뒤, 양옆, 위아래 6가지 방향에서 폭포를 즐길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폭포로 알려져 있다.매년 7, 8월에는 황과수폭포축제가 열리는데 개막식 때 성대하게 열리는 행사가 볼 만하다. 축제기간에는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포의족 젊은이들이 전통 민요를 불러 주는 등 포의족 문화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황과수폭포에서 30km 떨어진 지하동굴 ‘용궁’산 위의 호수, 그곳에 숨은 용궁의 비경 구이저우성에는 황과수폭포 외에 중국 풍경구의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인 5A급 국가지정풍경구가 또 하나 있다. ‘용왕의 수정궁’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지하동굴 용궁龍宮이 그것이다. 안순安順에 있는 용궁은 황과수폭포에서 30km 떨어져 있어 황과수폭포와 용궁을 함께 여행하는 이들이 많다. 원래 이 지역은 수력발전을 위해 개발될 예정이었는데 1982년, 관계자들이 이 지역을 탐사하던 중 동굴의 절묘한 모습을 보고 수력발전보다는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계획이 수정됐다. 1988년에는 5A급 국가지정풍경구가 되었으니, 사람도 자연도 운명은 알 수 없다.용궁에 들어서면 폭포 ‘용문비폭龍門飛瀑’이 나타나 입구임을 알려 준다. 이곳을 지나 산을 조금 오르면 넓은 호수가 있고 여기에서 용궁으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용궁에는 크고 작은 종유석 약 90개가 있는데, 모양이 각양각색이다. 종유석의 다양한 모양에 넋 놓고 있으면 큰일이다. 수면에서 천장까지 가장 높은 곳은 100m에 달하지만, 주위를 살피지 않으면 순간 머리끝에 위에서 내려온 종유석이 다가와 있을 수도 있다. 사공은 배가 동굴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능숙하게 노를 젓고, 가이드는 목청껏 노래를 들려준다. 매년 4월이면 유채꽃 축제도 열리니 4월에 용궁을 방문한다면 일거양득이다.마령하대협곡자연이 만든 가장 큰 흉터, 마령하협곡 구이저우에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흉터’도 있다. 싱이(흥의,興義)시 남쪽에 위치한 마령하대협곡馬靈河大峽谷은 7,000여 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인해 생긴 협곡으로, 깊고 넓다. 특히 지면의 갈라진 틈이 웅장하고 아름다워 그 모습을 우주에서 바라보면 마치 흉터처럼 보인다고 한다. 마령하대협곡은 골짜기 길이만 74.8km, 깊이는 약 300m에 이르고 협곡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물이 흐르는 곳의 낙차는 1,000m에 이른다.협곡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협곡을 감싸고 있는 이끼를 볼 수 있다. 절벽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물이 똑똑 떨어지기도, 파릇파릇한 잎이 보이기도 한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이끼가 석회수와 함께 흘러내려 태고적 풍경을 보여 준다.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은 약 2.5km 정도. 협곡과 협곡을 이어 주는 흔들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절벽 위에 서 있는 듯 아찔하다. 협곡에는 약 10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있다. 물줄기가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폭포부터 폭포 뒤로 트레킹 길이 나 있어 떨어지는 물방울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폭포까지 다양하다. 여름에는 협곡에서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신선이 살 것 같은 만봉림과 팔괘전신선이 노니는 듯한 풍경, 만봉림 마령하대협곡의 중하류 부근에는 만개의 봉우리가 겹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만봉림萬峯林이 있다. 신선이 사는 곳이 이와 같을까. 마치 중국산수화의 명장면을 화폭에서 떼어내 눈앞에 펼쳐 놓은 것 같다. 옛날 바다의 융기작용으로 이뤄진 경관이라고 하니 자연이 만들어낸 그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넓은 평야에 봉우리들이 도깨비 방망이에 난 조그만 뿔처럼 솟구쳐 있다. 이런 신선만 살 것 같은 마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산 안쪽에는 묘족이, 산 아래쪽에는 포의족이 거주하고 있다.이곳의 팔괘전八卦田은 논의 모양이 마치 팔괘 모양 같다고 해서 ‘팔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마치 조물주가 중국 도가의 음양도를 땅에 아로새긴 듯한 모습이어서 색다른 감흥을 안겨 준다.팔괘 모양의 밭은 봄에는 유채꽃으로 노란빛이, 유채꽃이 진 여름에는 초록빛으로 가득 찬다. 만봉림에서 마을로 내려오면 포의족 마을이 나오는데 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전동차가 지나가면 조용히 길을 비켜 주고 카메라를 들이밀면 수줍어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서울과 다를 것 없는 중국의 번잡한 도시에 실망했다면, 선인들이 도를 연마하며 살 것 같은 구이저우성의 분위기가 그 마음을 달래 줄 것이다.*본문에 나오는 중국의 지명은 중국어 발음으로 적고 한자 음과 한자를 동시에 표시했다. 관광지, 사람 이름, 산 등 지명 이외의 것은 한자 음을 적고 한문을 병행 표기했다.▶travel info 貴州省Airline구이저우성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인천에서 상하이(상해, 上海)나 충칭(중경, 重慶), 쿤밍(곤명, 昆明)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때때로 인천-구이양(귀양, 貴陽) 전세기를 운항한다.TIP구이저우의 명주 ‘마오타이주’┃세계 3대 증류주로 꼽히는 마오타이주茅台酒는 최소 5년 이상 숙성시켜 만들어낸다. 알콜 도수가 50도를 넘지만 배향을 품고 있고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다.쑤안탕위┃묘족의 전통음식으로 매운탕과 색은 비슷하지만 맵지 않고 시큼하다. 매운탕의 얼큰함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먹다 보면 달짝지근하면서 새콤한 맛에 빠져들게 된다.함께 가볼 만한 곳┃600년 역사의 건축물이 즐비한 청암고진靑岩古鎭은 구이양 시내에서 29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청나라 때부터 도교, 천주교, 기독교, 불교가 함께 공존해 각종 종교와 인문, 건축문화를 볼 수 있다.에디터 트래비 정리 Travie writer 채지형 사진 트래비CB, 중국국가여유국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 각 나라 사람들이 직접 말하는 ‘관광객 추태’ 모음

    각 나라 사람들이 직접 말하는 ‘관광객 추태’ 모음

    전 세계적으로 해외여행, 유학, 어학연수가 많아진 요즘, 여행에 앞서 해당 국가의 문화에 대해 사전 조사하는 것은 퍽 보편적인 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직접 듣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겠지요.지난 16일, 전 세계인들이 이용하는 소셜 뉴스사이트 ‘레딧’(Reddit)에 ‘여행객들이 각국에서 저지르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주제로 많은 네티즌이 활발한 토의를 가졌습니다. 이 중 다수의 이용자에게 호응을 얻었던 몇 가지 중요한 사례들을 집어 보겠습니다. 1. 태국태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만져선 안 됩니다. 태국 사람들에게 있어 머리는 인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기에 존중받아야 할 부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지폐를 밟는 것만으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인데요. 지폐에는 태국 왕의 초상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에서는 국왕의 사진을 밟거나 왕에 대해 증오발언을 하는 것조차 범죄행위로 간주됩니다. 2. 영국사진을 찍을 때 두 손가락을 들어 ‘V’자를 그리는 것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이 최초로 시도했던 일로 알려져 있지요. 이제는 주로 동양, 특히 한국에서 많이 하는 행동인데요. 영국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V자를 그리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이 때 손등을 상대방에게 향하면 중지손가락을 사용한 ‘손가락 욕’과 똑같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관광객들의 또 다른 흔한 잘못으로는 왕실 근위병을 놀리는 행동이 꼽혔습니다. 표정을 바꾸거나 움직일 수 없는 근위병들의 입장을 악용해 괴롭히려드는 관광객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영국 네티즌들은 그들 또한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진짜 군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3. 중동중동에서는 발바닥 혹은 신발 바닥을 보여주는 행동이 큰 무례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발바닥이 신체에서 가장 낮은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꼬아 발바닥이 보이게 할 경우에도 불쾌감을 줄 수 있다니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스웨덴서양 국가 대부분은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을 매우 중시합니다. 개체 공간이라고도 부르는 이 용어는 남에게 침범 받지 않기를 원하는 개인의 일정한 물리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다가와도 되는 최단거리’를 말하는데요.스웨덴 사람들은 이 개인공간의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현지 네티즌에 따르면 미국과 같이 비교적 개체공간 개념이 보편적인 국가 국민들조차 스웨덴 사람들의 기준엔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느껴진답니다. 5. 미국한 미국 네티즌은 관광객들의 ‘흥정’ 행동을 대표적 추태로 지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벼룩시장이나 중고차 매장 같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격 흥정을 벌이지 않는다며 정가제가 실시되는 다른 매장에서는 부디 흥정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특히 이 네티즌은 ‘한국 관광객’을 콕 집어 추가적인 당부를 전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우리 미국인들 또한 노인을 공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인들이 팔꿈치로 다른 사람들을 밀어가며 새치기를 하거나, 젊은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버스 및 식당에서 자리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견은 1546개의 찬성표를 얻었습니다. 이외에 브라질에선 손가락으로 만든 'OK' 표시가 욕설에 해당한다는 의견, 아이슬란드에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코를 풀어선 안 된다는 의견, 캐나다에서 미국 달러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하지 말아달라는 의견 등이 많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해외여행 | 역사가 흐르는 동방의 파리 하얼빈

    해외여행 | 역사가 흐르는 동방의 파리 하얼빈

    정교한 바로크풍 건물 사이로 웅장한 러시아 음악이 흐른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하얼빈. 겨울이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한 빙등제가 펼쳐진다. 그뿐인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의 현장도 이곳에 있다. 그래서인지 하얼빈은 다른 중국 도시에 비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하얼빈에서 가장 번화한 중앙대가. 유럽스타일의 건물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얼빈합이빈, 哈爾濱은 추울수록 더욱 빛나는 도시다. 일 년의 반 이상이 겨울. 1월 평균기온은 대략 영하 20℃에 이른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에는 아이스박스가 필요 없다. 상온에 놓아도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기 때문이다. ‘얼음의 도시’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매년 1월5일이 되면 세계 3대 겨울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하얼빈 빙등제가 열린다. 눈과 얼음의 축제인 하얼빈 빙등제에 전시할 거대한 얼음조각을 위해 매년 5,000여 명 이상의 조각가가 동원된다. 축제가 시작되면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얼음 조각가들도 바빠진다. 낮에 녹은 얼음조각을 밤새 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화강 북쪽 태양도공원에서는 빙설제도 함께 열린다. 하얼빈은 높은 강설량 덕분에 스키장도 발달해 있다. 일 년 중 스키를 탈 수 있는 날이 네 달이 넘는다. 눈의 질이 좋고 슬로프 경사도 적당해 스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6년 동계아시안게임을 치른 야부리스키장은 풍부한 자연설로 유명한 헤이룽장성의 대표적인 스키장이다. 하얼빈에서 200km 떨어져 있다. 하얼빈은 중국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헤이룽장성흑룡강성, 黑龍江省의 성도다. 도시 자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얼빈은 만주어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한가한 어촌이었다. 여유로웠던 어촌마을이 동북지역 중심도시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초 러시아의 철도 기지가 건설되면서부터다. 러시아 사람들이 철로를 건설하면서 30여 개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개국의 영사관이 들어서고 하얼빈은 국제적인 도시로 재탄생했다. 하얼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1946년 4월28일 중국에서 가장 먼저 해방되어, 다른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에는 국가급 역사문화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예술면에서도 중국 최초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였으며, 지난 2010년에는 UN 음악도시로 선정되었다. 중국 10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얼빈역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안중근 의사의 뜨거운 행적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강교항전기념관의 마점석 장군상항일투쟁 역사가 살아 있는 헤이룽장성 하얼빈 하면 빙등제가 떠오르지만, 하얼빈이 속한 헤이룽장성 곳곳에 우리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김좌진 장군, 이범석 총리가 활약한 항일투쟁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하얼빈은 항일애국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로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다. 하얼빈역 플랫폼에는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2014년 하얼빈 역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문을 열어,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기념관은 하얼빈역 앞에 있던 VIP 대합실 일부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입구는 하얼빈역의 옛 모습을 축소해 만들었다. 기념관 안에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록들과 안중근 의사의 흉상, 손가락을 잘라 조국 독립을 결의했던 그의 손을 형상화한 브론즈 조각품 ‘거룩한 손’, 의거 당시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자료들 중 가슴이 뜨거워지게 한 것은 안의사가 하얼빈에서 보낸 11일간의 행적이었다. 얼마나 두려웠을지, 어떻게 마음을 다졌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기념관 한 쪽 벽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는 장면을 그린 대형 벽화가 걸려 있다. 국가 1급 화가 권오송이 그린 작품으로, 인상적이다. 기념관에서 빠트리면 안 되는 것이 통유리 너머로 의거 현장을 보는 것이다. 안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현장은 하얼빈역 1번 플랫폼으로, ‘안중근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라는 문구가 천장에 붙어 있다. 역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기념관 안에서 볼 수 있다. 헤이룽장성 제2의 도시인 치치하얼제제합이, 齊齊哈爾에서도 우리의 항일투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치치하얼 태래에 가면 강교항전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대한민국 초대 총리를 지낸 이범석 전 총리의 활약을 만날 수 있다. 강교항일 투쟁은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지 두 달 만에 중국군이 태래현에서 일본군과 벌인 첫 번째 전투로, 중국의 항일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전투다. 이범석 전 총리는 마점석 장군이 지휘하던 중국항일군에 합류해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중국 사람들이 731부대가 생체실험에 사용한 도구들을 보고 있다아직 발굴 중인 731부대의 잔해들 731부대 죄증진열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현재의 731부대 죄증진열관은 이 건물 앞에 2015년 8월15일 3층 규모로 새로 지어진 것이다 731부대에 참여한 조직을 비롯해 고문방법과 과정 등 731부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마루타의 아픔이 느껴지는731부대 죄증진열관 하얼빈에서 꼭 가 봐야 할 곳 중 하나는 731부대 죄증진열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만행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중국인들의 역사적인 상처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731부대는 일본 관동군의 세균전 부대로 1945년까지 3,850명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던 부대다. 일본의 비인도적 잔악행위를 보여 주는 곳으로 6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731부대를 조직하는 과정들이 소개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생생한 기록들이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손과 발을 묶는 족쇄와 수술용 칼, 생체 실험에 사용된 도구와 문서들은 그때의 시간을 보여 준다.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해부실 앞에서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731부대는 이곳에서 100가지가 넘는 실험을 실시했다. 페스트 벼룩을 연구하기 위해 쥐를 사육해 쥐부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731부대는 전쟁이 끝나고 그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건물을 폭파했다. 그러나 보일러실과 지하실험실 등 잔해가 지금도 남아 있다. 중국정부는 2015년 8월15일 731부대 죄증진열관을 재개관했다. 기존 벽돌건물 앞 부대 터에 검은색 3층 규모의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입구에는 한국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도구가 마련되어 있어,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하얼빈은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러시아풍 건물의 내부 러시아 문화를 테마로 한 볼가장원. 여름철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러시아풍의 이국적인 거리 중앙대가 하얼빈은 역사적인 도시면서 국제적인 도시다. 특히 러시아 문화가 일찍 들어왔다. 제정 러시아 때는 국제 상업도시로 ‘동양의 파리’로 불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곳곳에 남아 있는 러시아풍의 건물들 때문에 ‘동방의 모스크바’라는 별명도 얻었다. 1913년에는 하얼빈의 인구중 반 이상이 러시아인이었다. 지금도 하얼빈은 러시아와 3,000km가 넘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하얼빈은 중국의 다른 도시와 달리, 도시 곳곳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얼빈에서 러시아 문화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 중앙대가中央大街. 중앙대가는 바로크풍, 르네상스풍 등 여러 유럽스타일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거리로 하얼빈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1898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름은 중국대가였는데 1925년 중앙대가로 이름을 바꿨다. 송화강 홍수예방승리기념탑까지 이어져 있다. 유럽 중세거리를 생각나게 만드는 돌로 바닥을 장식한 1.4km의 대로에도 눈길을 줘야 한다. 대로의 보도블록은 당시 1개에 1달러를 투자해 만든 것으로, 100년이 흐른 지금도 단단함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와 젊은이들로 활기를 띠는 중앙대가에는 70개 이상의 유럽풍 건축물과 13개의 시급 보호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건축물을 보면 이곳이 중국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점에서도 눈이 큰 러시아 인형을 팔고 있고 길거리 곳곳에서 쉽게 러시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얼빈의 상징인 소피아 성당. 밤에 보면 더 아름답다하얼빈 맥주는 러시아를 통해 전파된 유럽식 맥주 문화를 담고 있다 비잔틴 양식의 소피아 성당 중앙대가 근처에 있는 소피아 성당은 하얼빈의 대표적인 심벌 중 하나다. 비잔틴 양식의 전형적인 러시아 성당으로, 앞에 서면 러시아의 대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소피아 성당은 하얼빈 근대사의 중요한 유적으로 문화혁명 기간에는 성당의 벽화와 십자가가 훼손되거나 분실되기도 했다. 낮에 보는 것도 좋지만 밤에 찾아가 보자. 은은한 조명 덕에 더 고풍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은 ‘하얼빈 건축 예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다.하얼빈 시민들의 여름 휴가지로 인기 있는 볼가장원Volga Manor, 伏爾加莊園도 러시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볼가장원은 러시아 문화를 테마로 한 공원으로 호수를 가운데 두고 러시아 정교회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숲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아름다워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다. 볼가장원 안에는 러시아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갤러리와 러시아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있어, 다양하게 러시아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중국에서도 유명한 하얼빈 맥주도 러시아 영향을 받은 것 중 하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하얼빈 맥주는 1900년 당시 러시아가 밀려들어오면서 유럽식 맥주문화가 함께 하얼빈에 자리 잡게 됐다. 하얼빈 맥주는 역사만 깊은 것이 아니다. 하얼빈 사람들은 중국에서 1인당 평균 맥주 소비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맥주를 사랑한다. 매년 여름에는 하얼빈 국제맥주축제도 열린다. 자롱자연보호구에서 단정학이 비상하고 있다치치하얼의 자롱자연보호구는 끝없는 갈대밭으로도 유명하다 두루미의 비상을 볼 수 있는 자룽자연보호구 헤이룽장성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것 중 하나가 단정학丹頂鶴이다. 치치하얼은 학의 도시로, 전 세계 2,000마리 중 400마리의 단정학이 살고 있는 자룽찰용, 擦龍자연보호구가 유명하다. 자룽자연보호구는 국제 람사르습지에 등록된 중요 습지로 2,100km2에 1,000여 종의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다. 자룽자연보호구의 주인공인 단정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알려져 있으며 천년을 장수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신성시되는 새다. 머리에 붉은 점이 있어 단정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가롭게 물가에서 노니는 단정학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단정학이 떼를 이뤄 날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룽자연보호구의 또 다른 장관은 끝도 없이 펼쳐진 갈대밭. 갈대밭 사이로 나무데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travel info 하얼빈Airline인천에서 하얼빈까지 아시아나항공과 중국남방항공이 직항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VISA귀국 항공권을 제시하면 72시간 동안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Place동북호림원 | 세계 최대의 호랑이 인공 번식장인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 백두산호랑이 80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넓은 들판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들을 볼 수 있다. FOOD안중근 식단 |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하얼빈을 찾는 한국 여행자를 위한 ‘안중근 식단’이 있다. 안중근 식단은 안의사가 하얼빈에 11일간 머물면서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들로, 100년 전 하얼빈에서 주로 먹던 음식들이다. 동북지역 탕수육인 꿔바로우鍋包肉를 비롯해, 돼지고기와 조로 만든 궁미완쯔貢米丸子, 아이스크림에 밀가루 옷을 입혀 튀긴 여우자빙군油炸氷棍 등 다양한 서민음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안중근 식단을 개발한 음식점은 125년 전통의 식당인 노주가老廚家. 청 말기인 1890년 문을 열어 4대째 이어가고 있는 식당으로 꿔바로우를 만든 원조집이자 인기 음식점이다. 붉은 소시지 | 하얼빈에서 꼭 맛볼 것 중 하나는 붉은 소시지. 헤이룽장성 고기에 마늘과 후추 등 조미료를 넣어 유럽식으로 만든 소시지다. 씹는 맛이 좋다. 아이스크림 | 중앙대가의 마디얼 아이스크림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이스크림으로 진한 바닐라맛이 특징이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 해외여행 |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소 HOSHINO RESORT KAI ASO- 따뜻한 신세계

    해외여행 |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소 HOSHINO RESORT KAI ASO- 따뜻한 신세계

    Ryokan HOSHINO RESORT KAI ASO어느 해인가 아소의 산 구비를 구불구불 오르며 울컥 올라왔던 멀미를 기억했다. 참기 힘든 시간이 지나고 한껏 나른해진 시선 안으로 들어온 원시의 산 덩어리와 평야. 놀라운 그 풍경에 경외와 감동이 절로 일었었다. 그리고 몇년이 흘러 다시 찾은 아소. 그 산 풍경을 바라보며 계곡 속에서 머물렀던 하루가 다시 그 따뜻함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터이다. 노란 카보스를 띄워 더욱 운치 있는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소의 개별 노천탕 일본의 대표적인 럭셔리 료칸 & 리조트 브랜드인 호시노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카이界, KAI’는 일본 전역 14곳에 자리한 온천 료칸 브랜드로 각각 그 지역만의 특별한 매력을 차별화해 부각시키는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다. 호시노 리조트 특유의 지극한 환대에 지역 특산물로 만든 먹거리, 온천으로 완성되는 힐링 여행을 지향한다. 지난 2015년 12월에는 이시카와현 야마시로 온천의 옛 자취를 느낄 수 있는 호시노 리조트 카이 가가界加賀가 새롭게 리뉴얼 오픈했다. kr.hoshinoresort.com 카이 아소 본관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소 규슈 구마모토현과 오이타현에 걸쳐 있는 아소쿠주국립공원에 자리한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소. 약 2만6,500m2 대지에 12개의 객실 동이 들어서 있는 퓨전 온천 료칸으로 2인실 8동, 4인실 4동으로 구성된 객실들이 너른 대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객실이 들어선 정원 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본관 건물에는 다이닝 레스토랑, 전망 테라스, 라운지와 스파 및 숍 등이 들어서 있으며 간이 라이브러리와 벽난로를 설치해 그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군고구마와 소주 칵테일 등을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숲길 곳곳에 자리한 별채 객실의 내부는 무엇보다 투숙객의 편의를 고려했다향기로운 노천탕 풍경 조용하고 깔끔한 산 속 마을 풍경. 별채 객실들이 숨은 듯 길 굽이굽이 자리하고 있다. 시선을 빼앗는 아소의 풍경과 하늘 그리고 사위에 내려앉은 고즈넉함에 호흡마저 한 템포 느려진다. 쉬어 가기에 온전한 조건이다. 열쇠로 문을 열고 나만의 객실로 들어서면 차분한 거실 너머 창밖으로 깊은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객실은 일본 전통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투숙객의 편의를 고려했다. 각 객실의 실내는 전통 이부자리 ‘후통’을 이용할 수 있는 일본식 다다미방과 침대가 놓여 있는 양실 그리고 소파와 텔레비전이 갖춰져 있는 온돌식 마루 거실, 실내 자쿠지가 놓여 있는 실내 욕실로 구성해 투숙객의 다양한 취향과 편리에 신경을 썼다. 와이파이 이용 또한 원활하다. 침대 방과 거실이 양실의 장점을 살렸다면 다다미방은 자연 속으로 한껏 연장되어 있는 듯 한결 시원한 느낌을 준다. 방의 벽 두 면에 드리워진 커튼을 열어젖히면 숲의 풍경이 시원스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물론 그중 최고는 나만의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개별 노천탕. 탕 한 켠에 물에 띄울 노란 카보스 대여섯 개가 바구니에 담겨 입수를 기다리고 있다.망설임 없이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갔다. 짜릿한 따뜻함이 온몸에 밀려들고 물 위에 동동 뜬 노란색 카보스가 물결에 흔들려 이리저리 몸을 뒤챈다. 알 듯 모를 듯 올라오는 과실의 향기에 숲속을 떠도는 겨울 바람이 한껏 싱그러운 향기를 매달고 합세한다. 몸은 이완되고 머리는 한껏 깨어나는 최상의 상태. 이런 호사가 없다. 겨울 밤, 따뜻한 물속에 앉아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것. 한겨울 일상의 냉기를 한동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따뜻하고 또 따뜻하다. 아소가 펼쳐지는 환상적인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와 레스토랑 등이 자리한 본관 건물 일본의 대표적인 럭셔리 료칸 & 리조트 브랜드인 호시노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카이界, KAI’는 일본 전역 14곳에 자리한 온천 료칸 브랜드로 각각 그 지역만의 특별한 매력을 차별화해 부각시키는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다. 호시노 리조트 특유의 지극한 환대에 지역 특산물로 만든 먹거리, 온천으로 완성되는 힐링 여행을 지향한다. 지난 2015년 12월에는 이시카와현 야마시로 온천의 옛 자취를 느낄 수 있는 호시노 리조트 카이 가가界加賀가 새롭게 리뉴얼 오픈했다. kr.hoshinoresort.com 온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아소에 내려앉았다카이 아소가 안내하는 칼데라 아소의 칼데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로 카이 아소에서는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리조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칼데라의 매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소소하고 귀여운 프로그램들로 인해 자연 속 한적하고 조용한 시간들에 유쾌한 균열이 일어난다. 그 첫 번째가 2015년 10월에 개장한 칼데라 바에서 진행하는 칼데라 체험 시간. 바텐더가 직접 아소의 사계절을 영상으로 보여 주고 아소 특산품과 지역 특성, 칼데라 생성 원리 등에 대한 설명과 간단한 체험을 진행한다. 아카우시赤牛 육포에 아소의 고구마 소주 칵테일을 마시며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매일 20여 분씩 5회 진행되며 참여하려면 체크인시 미리 예약해야 한다. 또 매일 아침 7시30분에는 투숙객들을 위해 체조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겨울 아침, ‘칼데라 체조’는 본관 발코니에 서서 멀리 아소의 기슭에 먼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큰 기대 없이 꼼지락거리며 시작한 간단한 몸풀기 체조였는데 떠오르는 해의 기운과 아소의 기운이 함께하며 새삼 특별한 시간이 된다. 카이 아소에서는 영양 많고 질 좋은 지역의 특산물로 맛깔난 식사를 차려 낸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대접받다 카이 아소에서는 본관 건물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매 끼니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한 물과 화산재의 양분을 받고 자란 달고 맛있는 고구마를 포함해 각종 야채, 초원에 방목해서 키운 지방이 적고 건강에 좋은 아카우시, 영양이 풍부하고 질 좋은 해산물과 고구마 소주까지, 제철 재료와 지역 특산품으로 차려 낸 정갈한 코스 요리는 눈과 입맛을 사로잡는다. 거기에 아침이면 운해에 깔린 산 풍경이, 저녁이면 온 세상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의 환상적인 풍경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오감이 자극받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저녁 식사 후 벽난로 주변에 앉아 입에서 살살 녹는 달디 단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담소를 곁들이면 그 시간은 더욱 훈훈해진다. 극진하고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으며 흥미로운 코스 요리에 열중하다 얼핏 주위를 돌아보면 식사를 즐기고 있는 투숙객이 많아 새삼 깜짝 놀라게 된다. 카이 아소는 겨울은 물론, 녹음이 우거진 자연과 시원함을 찾아든 사람들로 여름에도 인기다. 외국 여행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일본 내국인들에게도 희망 여행지로 손꼽힌다고. 구로가와 온천마을은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아 반나절 정도 시간을 보내기 좋다 카이 아소와 구로가와 온천마을 카이 아소의 객실들이 자리한 길을 따라, 또는 리조트 밖으로 한적하고 별다른 산책에 나서 본다. 자그마한 산사 주변을 걷듯,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주변에는 작은 케이크 집과 카페 이외에 편의시설이라곤 전혀 없다. 특별할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다. 꼭 필요한 물품들이 있다면 구로가와黑川 온천마을까지 나가 사 와야 한다. 그 불편함이 다시 나를 쉬게 하는 이상한 역설. 카이 아소는 구마모토현 구로가와 온천마을을 거쳐 들어가게 된다. 차로 약 10분 정도.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로 2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구로가와 온천마을에 도착한다. 구로가와 온천마을은 매해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규슈 최고의 온천마을로 해발 700m 산 속에 자리해 있으며 계곡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를 따라 마을 곳곳에 온천 료칸들이 들어와 있다. 구로가와 료칸에 투숙하지 않더라도 구로가와 온천마을 사무실에서 1,200엔에 자유이용권을 구입하면 3개의 온천을 두루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 맛집과 도예품 판매점, 우동집 등이 자리해 걸어다니며 점심도 먹고 구경도 하고 필요한 물품도 사면서 반나절 정도 즐기기 좋다.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소에서는 구로가와 온천마을까지 왕복 송영 차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소 628-6 Yutsubo Senomoto, Kokonoe-machi, Oita +81 (0) 50 3786 0099 자유여행 전문 컨설팅 여행사 샬레트래블앤라이프Chalet Travel and Life는 ‘내가 원하는 나만의 여행을 위해’라는 콘셉트로 하이엔드 럭셔리 여행 브랜드인 ‘샬레프라이빗’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 일정 및 가이드, 차량까지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일대일 맞춤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샬레트래블앤라이프는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소 상품을 비롯해 유럽·미주 등 지역별 맞춤 여행상품들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www.chalettravel.kr 02 323 1202글·사진 한윤경 기자 취재협조 샬레트래블앤라이프 www.chalettravel.kr
  • 국내 첫 지카바이러스 감염, 각국 발생 현황?…WHO “브라질 등 52개국 발생”

    국내 첫 지카바이러스 감염, 각국 발생 현황?…WHO “브라질 등 52개국 발생”

    국내에서도 처음 지카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도 지카바이러스 발생 국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지난달 26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07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브라질, 콜롬비아 등 전 세계 52개 국가에서 지카바이러스 발생과 전염 사실을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WHO는 지카바이러스 상황 보고를 통해 지난해 5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지난해 5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지카 바이러스를 확인한 이후 중남미 지역 31개 국가에서 지카 바이러스 발생과 전염을 보고하는 등 지리적으로 폭넓게 확산됐다면서 모기, 특히 ‘이집트숲 모기’를 통해 앞으로 더욱 놃게 퍼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WHO는 또 지금까지 지카 바이러스와 관련된 신생아 소두증과 같은 신생아 기형은 브라질과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와 관련된 사례만 보고됐다면서 현재까지 보고된 사례는 총 594건으로 브라질 583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9건, 하와이 1건, 슬로베니아 1건으로 하와이와 슬로베니아 사례 모두 브라질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명했다. 브라질은 지난해 10월22일에서 올해 2월20일까지 총 5640건의 신생아 소두증과 중추신경계(CNS) 기형 의심사례가 보고됐고 이 중 120명이 사망했다. 지난 2001년과 2014년 사이에는 연평균 163건의 소두증 사례가 발생했다. 하지만, 총 5640건의 사례 중 4107건은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고 조사가 끝난 1533건 중 583건만 지카 바이러스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됐다. WHO는 지카 바이러스와 관련된 신경마비 증세인 길랑 바레 증후군(GBS) 사례는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브라질,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등 8개 국가에서만 보고됐다고 밝혔다. 한편 아시아 주요 국가 중에서는 지난달 19일 중국인, 25일 일본인 환자가 발생했다. 두사람 모두 해외여행 중 감염된 사례다. 아시아 국가 중 감염 지역은 필리핀과 태국 두 곳이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핫뉴스][단독] 7세 딸 암매장한 엄마는 ‘집주인의 꼭두각시’였다 [핫뉴스][현장 블로그] 피투성이 강아지… 때린 주인에게 돌려보낸다고요?
  • [월요 정책마당] 출입국 편리와 보안 두마리 토끼 잡으려면/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월요 정책마당] 출입국 편리와 보안 두마리 토끼 잡으려면/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매스컴을 통해 자주 목격하듯 출입국심사장에 몰리는 인파는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나라 국경을 넘는 내외국인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러한 모습은 향후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하루 평균 한국을 드나드는 내국인과 외국인을 통틀어 출입국자 수는 20만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도 17% 이상 늘어난 것이다. 출입국장이 붐비면서 좀 더 편리하고 신속한 출입국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보안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도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나라 밖의 범죄자가 함부로 우리 국경을 넘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출입국의 편리함과 보안 관리, 이 두 가지 과제는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일정 부분 충돌하는 가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법무부는 이러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정책을 내놓았다. 해외 우범자에 대해서는 입국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선량한 국민에게는 간편하게 출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선 ‘탑승자 사전확인 제도’는 국경 안전을 확보하는 강력한 방안이다. 이 제도는 위험인물 데이터를 활용해 항공권 발권 시점에서부터 입국을 차단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 제도를 시범 실시한 결과 마약사범, 성폭력사범, 신분세탁자, 분실여권 소지자 등 위험 인물 400여명이 국내로 들어오려다 좌절됐다. 실제 사례로 국내에서 마약사범으로 강제 퇴거된 외국인이 지난해 태국 방콕 수왓나폼 공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태국 공항에 있는 항공사는 이 외국인의 정보를 우리나라 출입국사무소로 보내와 조회를 의뢰했고 탑승 부적격자임이 확인돼 항공권 발급을 차단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법무부는 해외 범죄자의 입국을 차단하면서도 선량한 내국인에게는 출입국심사관의 대면심사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자동 출입국 심사의 문호를 대폭 넓힌 것이다. 자동 출입국 심사는 시행 중이나 지문을 등록해야 하는 사전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이 제도를 아는 국민들도 선뜻 이용하기에는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등록증 발급 시 이미 제출한 지문 정보를 활용함으로써 사전등록 절차를 생략하도록 했다. 또한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은 현실을 감안해 주민등록증이 없는 7세 이상 아동도 가족과 함께 자동출입국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현재 전국 공항과 항만에 설치된 자동출입국심사대가 대폭 확대되고 인천공항에 자동출입국심사대 전용 지역이 설치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법무부는 이번에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외국인의 국내 체류 환경도 크게 개선했다. 91일 이상 장기 체류하는 등록 외국인이 국내 거주지를 옮기게 될 경우 현재는 14일 이내 출입국관리사무소 또는 시·군·구에서 체류지 변경 신고를 해야 하나 앞으로는 가까운 읍·면·동에서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결혼 이민자 가족의 경우 이사를 하게 되면 한국인 배우자와 그 자녀는 가까운 주민센터(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할 수 있으나 외국인 배우자는 멀리 떨어진 출입국사무소나 시·군·구에 가서 주소 변경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불편이 있었다. 올해 9월 말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이러한 불편은 해소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외교관, 영사, 국제기구 직원과 그의 가족 등 외국인 등록 의무가 면제된 사람도 인터넷 가입, 은행 계좌 개설 등 국내 생활을 위해 외국인등록번호와 외국인등록증이 필요한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에게도 본인이 원하면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출입국사실증명서를 재외 공관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해외 거주 국민이 증명서 발급을 위해 국내로 들어와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법무부는 이번 조치가 우리나라가 선진 글로벌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출입국자가 6000만명에 달하고 체류 외국인 190만명이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더욱 안전하고 편안한 나라가 되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 나갈 방침이다.
  •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②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②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

    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파리에서는 꼭 한 번 부티크 호텔에 묵고 싶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좀체 들지 않았던 호기심이 고전미의 도시, 파리에서는 몽실몽실 피어올랐기 때문이다.산 레지스 호텔 곳곳에 걸린 그림의 수준만 보아도 산 레지스 호텔의 격이 드러난다파리 패션신의 한 장면으로 종종 등장했던 산 레지스 호텔의 현관●부티크 호텔의 기준 호텔 산 레지스Hotel San Regis 샹젤리제 거리의 국립미술관이자 갤러리인 그랑팔레Grand Palais 인근 호텔인 산 레지스의 게스트 중에는 유명인이 많다. 그중 한 사람은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제물로’ 회장이다. 23년 동안 페라리를 이끌었던 그는 어떤 인연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마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뉴욕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브 몽탕을 만났는데 그가 슬쩍 ‘산 레지스’를 알려 줬어요.”몬테제물로나 이브 몽탕처럼 산 레지스를 각별히 여긴 셀러브리티는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광고 아닌 친분을 통해 산 레지스를 알게 되었고, 비밀의 장소처럼 산 레지스를 간직했다.지난 시절 산 레지스에는 영화감독 루이 말,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배우 진 켈리 등 여러 배우와 유명인이 드나들었다.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멜 스노는 산 레지스를 한동안 자기 집처럼 사용했다. 한 번은 그녀가 어느 신진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뉴 룩New Look’이란 신조어로 소개했는데 그 디자이너가 바로 크리스찬 디오르다. 카멜 스노와 크리스찬 디오르로 인해 산 레지스는 고전적인 파리지엥 스타일의 정수를 간직한 파리 패션 신의 주요한 스폿으로 등장했다. 지난 시절, 유명인들이 숨어 지내기를 좋아했던 산 레지스에 요즘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느냐는 질문에 산 레지스의 매니저 사브리나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요즘도 셀러브리티들이 많이 오지만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어요. 그들이 먼저 미디어 앞에서 말하기 전까지는요.”사브리나는 15년째 산 레지스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 오기 전 다른 호텔에서 일한 기간까지 합치면 27년째 호텔리어로 일하고 있는데 산 레지스의 분위기와 꼭 닮았다.“사브리나가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호텔 브로슈어를 살펴보다 그녀에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머리를 단정히 모으고, 하얀색 투피스를 입은 그녀는 산 레지스처럼 기품 있고 우아했다.딜럭스룸의 붉은색 커튼을 마주하고 있으면 시간은 순식간에 19세기로 돌아간다파리의 고전미가 강렬한 산 레지스의 스위트룸럭셔리 부티크 호텔이지만 카페의 음료와 디저트 메뉴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 ‘Paris-Breast’가 맛있다산 레지스에서 머무는 동안 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19세기 파리의 타운하우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산 레지스는 호텔이라기보다 저택에 가깝다. 19세기의 타운하우스를 1923년 호텔로 개조했다. 방의 컬러는 밝은 노란색에서 진한 붉은색까지 제각기 다르다. 특히 딜럭스룸, 프레스티지와 스위트룸에선 아름다운 옷장, 글을 쓸 수 있는 책상, 화장대, 윙체어 같은 유니크한 걸작품을 볼 수 있다. 산 레지스는 클래식한 아름다움에 모던한 편의성을 더했다. 신중한 서비스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디테일에 집중해 ‘Home away from home’, 말 그대로 ‘내 집처럼 편안한 호텔’이다. 나로선 1857년에 지은 타운하우스가 159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 럭셔리 부티크 호텔로 온존해 왔다는 사실이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1980년대 중반 산 레지스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이는 엘리 조르주Elie Georges라는 남자다. 1984년 산 레지스 호텔을 인수한 그는 호텔리어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사업가였다. 엘리 조르주는 처음 산 레지스 호텔을 방문한 후 이렇게 말했다.“신고전주의 파사드와 실내 공간, 그리고 그때까지 여전히 남아있던 고가구가 서로 완벽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매혹됐어요.”1985년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피에르 이브 로숑Pierre-Yves Rochon에게 호텔의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을 의뢰했다. 타운하우스의 성격을 살리면서 동시에 각각의 방을 유니크하게 꾸미기 위해 모든 소품을 결정한 사람이 바로 피에르였다.산 레지스는 지난 해 다시 한 번 리노베이션을 시작했다. 샤워 부스를 별도로 만들었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발을 쭉 뻗어도 발끝이 닿지 않을 만큼 욕조가 커졌다. 클래식이란 명목으로 설비의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늦은 밤, 차를 마시고 싶어 룸서비스에 뜨거운 물을 부탁했다. 잠시 후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새하얀 린넨에 묵직한 금색 포트와 꿀, 찻잔을 들고 나타난 이는 깨끗하게 차려 입은 노년의 신사였다. 차 한 잔을 마시는 게 매우 행복했던 밤이었다. 오후에 카페에서 쇼콜라쇼를 서빙해 준 웨이터, 조제는 33년째 산 레지스서 일한다고 했다. 어쩌면 조금 전 포트를 가져다준 그도 조제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19세기 파리의 타운하우스에서 파리지엥처럼 하룻밤을 보낸다. 꿈같은 시간이다.다음 날, 아침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내려가니 손님의 수는 채 열 명이 안 됐다. 산 레지스의 객실은 전부 42개뿐이다. 내게 산 레지스는 파리의 멋, 파리의 색, 파리다운 완벽한 호텔로 기억된다.“Merci, San Regis, Au revoir고마워요, 산 레지스, 또 만나요.”여담 한 가지. 산 레지스 레스토랑의 지붕은 유리다. 체크인 후 유리를 통해 떨어지는 햇살을 맞으며 카페에서 쇼콜라쇼를 마셨다. 진하지만 달지 않아 좋았다. 맙소사, 그 자리에서 쇼콜라쇼 세 잔을 내리 마셨다. 며칠 후 다시 산 레지스를 찾았다. 며칠 동안 내내 첫날 마신 쇼콜라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호텔 산 레지스★★★★★ 12 rue Jean Goujon 75008 Paris, France +33 1 44 95 16 16 www.hotel-sanregis.fr러시아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러브 스토리를 간직한 나폴레옹 호텔나폴레옹 로비 한 편에서 호텔 오너였던 프랑스 여자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나폴레옹 호텔의 주니어 스위트 애비뉴룸. 창밖으로 개선문을 볼 수 있다●러시아 남자, 파리 여자의 사랑 호텔 나폴레옹Hotel Napoleon 1920년대 후반, 파리의 프랑스문학클럽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남자는 러시아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였고, 여자는 아름다운 파리지엔느였다. 남자는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 파리로 온 것 같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져 들었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특별한 결혼 선물을 준비했다. 이 선물을 통해 여자가 파리 상류층의 사교계에 들어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를 원했다. 남자가 준비한 선물은 파리 8구에 있는 ‘호텔’이었다. 개선문에서 가깝지만 샹젤리제 대로변에서 한 블록 뒤에 자리 잡아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7층짜리 건물이었다. 호텔의 7층, 스위트룸에선 한쪽 창문으로 개선문이, 다른 한쪽 창문으로 에펠탑이 보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파리의 호텔 중에서도 개선문과 에펠탑이 동시에 보이는 방은 거의 없다. 남자와 여자는 이 방에서 파리의 유명인들을 만나고 파티를 즐겼다. 이 호텔의 이름은 나폴레옹Napoleon이다.체크인을 하고 잠시 로비와 레스토랑을 둘러보는데 소파를 장식한 루비색과 황금색 스트라이프 패턴이 강렬하다. 러시아 남자와 파리지엔느 여자의 뜨거운 사랑 같다. 로비 한 편에 한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호텔을 선물받은 바로 그 여자다.긴 세월이 흘렀다. 남자와 여자는 세상을 떠났고, 남자의 아들이 호텔 오너가 되었다. 이제 아들의 나이도 여든에 이르렀다. 2층의 내 방으로 가는 복도에서 스트라이프 패턴과 다시 만난다. 복도 양편을 장식한 붉은 컬러의 패브릭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마법의 패턴이다. 아직 방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복도의 패브릭과 레스토랑의 소파만으로 나는 거듭 감탄한다.내 방은 주니어 스위트 애비뉴. 창밖으로 개선문이 슬쩍 보인다. 방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건 세이프티 박스 전원 플러그다. 전원 플러그를 가진 세이프티 박스는 처음 봤다. 나폴레옹은 클래식한 부티크 호텔이지만 아이팟 스테이션 같은 모던한 서비스와 균형을 맞춘다.호텔의 어떤 방은 향기로 기억될 때 가장 강렬하다. 나폴레옹 호텔은 록시땅의 향기로 상기된다.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단순한 샴푸와 바디 젤이 아닌 호텔의 향기다.나폴레옹 호텔은 지난 해 6월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무리했다. 건물이 낡았다고 해서 재건축 운운하며 바로 헐어 버리고 새로 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설업자의 개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국과 달리 100년, 200년 넘은 건물이 즐비한 파리에서 지은 지 30년 정도 되었으면 ‘새’ 건물이다.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친 지난 해 9월21일, 나폴레옹 호텔은 입구에 붉은 카페트를 깔고 손님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였다. 파티의 제목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손님들은 활기와 자신감에 넘쳤던 1920년대 사람들 모습으로 분장하고 파티를 즐겼다. 그날, 시간은 2015년에서 1920년으로 순식간에 돌아갔다.그런데, 왜 하필 이름을 나폴레옹이라 했을까? 나폴레옹은 남자의 조국 러시아를 침략한 장본인 아닌가? 호텔 매니저 오드리는, “러시아 남자가 ‘남자’로서 프랑스 남자, 나폴레옹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1806년 자신의 군대를 기리기 위해 개선문을 세운 나폴레옹은 인근에서 역사적인 전투를 치렀는데 호텔 이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증표 같다.파리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무심코 서랍을 여니 록시땅 핸드크림이 있다. 선물로 받았지만 좀체 쓰지 않았었다. 록시땅을 손에 발라 본다. 은은하게 피어나는 향기에 문득 나폴레옹 호텔의 욕조에 몸을 담고 있던 순간이 떠오른다.호텔 나폴레옹★★★★★ 40 avenue de Friedland 75008 Paris, France +33 1 56 68 43 21 www.hotelnapoleon.com리도쇼를 보며 식사를 즐기는 ‘디너 앤 쇼’. 좀 비싸긴 해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90분 동안 펼쳐지는 리도쇼는 관능적이고 몽환적이며, 우아하고 낭만적이다●리도쇼가 파리다 파리의 카바레에는 물랑루즈만 있는 게 아니다. 리도Lido de Paris도 있다. 물랑루즈의 쇼를 보지 못했으니 비교할 수 없지만 리도쇼는 심장이 쿵쾅거릴 만큼 대단했다고 말하고 싶다.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리도쇼를 오해했다. ‘여자가 가슴을…’ 운운하는 누군가의 말을 얼핏 듣고, 늘씬한 여자가 가슴을 드러내거나 엉덩이를 세련되게 내밀거나 흔드는 공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공연이 펼쳐진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얼이 빠진 듯 기분 좋은 전율에 빠져 들었다. 내 상상이 일천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이제껏 ‘내 인생의 쇼’라는 걸 꼽는다면 2006년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델리리움DELIRIUM>이었다. 공연 타이틀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황홀경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한 탓인지 나는 내심 공연보다는 영화의 표현력이 우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음악과 춤, 비주얼 이미지가 하나로 합쳐져 절정으로 치달아 가는 델리리움을 보면서 무대가 영화를 압도할 수 있다는 걸 난생 처음 알았다.리도쇼는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했을 때 규모는 작지만 무대 사이즈와 상관없이 ‘내 인생의 쇼’ 리스트에 오를 만큼 굉장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아주 짧은 시간에 경험한 것 같다.리도쇼는 영화적인 장면에서 불현듯 연극적인 장면으로, 뮤지컬 같은 장면에서 느닷없이 서커스 같은 장면으로 끊임없이 무대를 바꿔 간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몸짓 다음에 태연자약하게 등장하는 거위나 스케이트 링크는 또 어떤가? 춤, 노래,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온갖 이미지들의 실루엣으로 관객들은 소인국과 거인국을 오간다. 공연을 본다는 게 마치 그림책을 읽거나, 몽환 속을 헤매는 것 같다. 때로는 현실과 4차원 세계를 넘나들고, 때로는 관능적이었다가 순결하고, 때로는 잔인하며,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낭만적이다. 나는 리도쇼에서 하나의 무대가 아닌 열 개, 아니 백 개의 무대를 보았다.무대가 춤추듯 변하는 덕분이다. 내가 이제껏 보았던 무대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질투가 날 만큼 이들의 상상력이 부러웠고, 기분 좋은 전율감이 온몸을 감쌌다. 저마다 파리를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리도쇼가 파리다. 나는 리도쇼에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파리지엥 또는 프랑스와 유럽의 상상력을 보았다. 아, 잠깐 잊고 있었다. 여기는 파리, 파리라는 걸.리도쇼를 만든 이는 프랑코 드래곤Franco Dragone이다. 뜻밖에도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인데 세계적인 공연 연출자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 초기 공연의 일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가 뉴욕이나 도쿄, 뮌헨이 아닌 파리이기 때문에 그가 리도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매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쇼를 보는 ‘디너 앤 쇼Dinner and Show’는 이른 저녁인 7시, 라이브 뮤직과 댄스 공연으로 시작한다. 가격은 1인 165유로부터 자그마치 300유로까지. 매우 비싸다. 하지만 샹젤리제의 전설적인 카바레 리도에서 ‘저염 버터에 살짝 구운 가리비와 시트러스 버터를 발라 조리한 바삭바삭한 엔다이브’ 하는 식의 메뉴 이름도 이해하기 어려운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풀코스로 이 세상 최고의 쇼와 함께 즐긴다 생각하면 한 번은 기꺼이 치를 가치가 있다. 식사를 하지 않고 음료와 함께 쇼를 보는 옵션도 있다.카바레 리도에 들어서면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당신을 맞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여기는 파리입니다. 자, 리도쇼를 볼 준비가 되었나요? 더없이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리도Lido de Paris 116 bis, avenue des Champs-Élysées 75008 Paris, France 9:00~20:30 +33 1 40 76 56 10 www.lido.fr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fr
  •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①‘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①‘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

    파리를 매일 걷고 걸으며 오늘의 파리와 만났다.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듯 걷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 속절없지만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내가 걸어온 길을 자꾸 뒤돌아보았다.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 한가운데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왜 단테의 ‘지옥’에 매혹되었을까? 부티크호텔 산 레지스의 스위트룸에서 보이는 에펠탑. 왼편 아래 건물은 이브 생 로랑의 저택이다샹젤리제 인근 나폴레옹호텔 스위트룸에서 보이는 개선문과 프히들렁 거리파리에선 길을 잃어도 좋아. 파리에 대한 낯간지러운 찬사다. 좀 민망하지만 과장은 아니다. 파리는 어디를 가나 황홀할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할로겐 가로등 덕분인지 거리에 덩그렇게 놓인 쓰레기통조차 예쁜 도시. 세상에 이런 도시가 또 있을까? 파리에서 만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파리의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 행복해져요. 봐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요.”지나친 말이 아니다.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나도 그랬으니까. 파리에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어제와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듯 걸었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길이었다. 이런 간절함 때문일까. 나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파리와 만났다. 파리는 매일 변한다. 나는 파리에서 3주간 머물렀지만 에펠탑이나 루브르, 개선문은 내내 뒷전이었다. 과거의 파리가 아닌 오늘 이 순간의 파리를 보고 싶었다.1977년에 지어진 퐁피두센터는 2016년에 보아도 미래지향적이며 도발적이다. 20세기 건축의 아이콘퐁피두센터 안에는 국립근현대미술관도 있고 도서관, 사진 갤러리도 있다. 기획전을 제외하면 무료다퐁피두센터 바로 옆,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조각가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가 함께 만든 ‘니키 분수’가 자리했다퐁피두센터 설립을 결정한 프랑스 전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는 파리 한가운데 있는 근현대미술관이자 복합문화시설이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퐁피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에서 며칠을 지냈다. 중정中庭을 가진 좋은 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안한 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빵을 사러 갈 때마다 자연스레 퐁피두와 마주쳤다. 저 앞에 턱하니 자리 잡은 퐁피두를 뒤로하고, 동네 주민인 척 퐁피두의 뒷골목을 걸어 다녔다. 바게트를 사서 반으로 ‘접어’ 에코백에 넣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가벼웠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파리지엥인 척하는 시간의 한가운데 퐁피두가 있어 내가 지금 파리에 있음을 더욱 실감했다. 파리에 오지 못한 기나긴 시간 동안 파리를 떠올릴 때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가장 그리운 곳이 퐁피두였다. 퐁피두 하면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 지워지지 않은 시간 때문이다.아주 오래 전 퐁피두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퐁피두에서 ‘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를 느꼈다. 퐁피두 앞 광장에서 파리의 싱그러운 청춘들을 보았다. 외부에 노출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퐁피두 6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시가지의 나지막한 스카이라인도 잊을 수 없다.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 그리고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같은 파리의 풍광 속에 한껏 젖어 들었다. 여기가 파리구나. 그때 파리에 왔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퐁피두에서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퐁피두 앞 광장에 않아 주변을 살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퐁피두의 외관만 바라보고 있어도 어느새 기분이 유쾌해진다. 퐁피두를 난생 처음 보는 관광객은 “왜 파리 한가운데 공장이 있죠?” 하고 묻기도 한다. 공장이 아니라고 하면 공사 중인 건물이냐고도 묻는다. 그만큼 겉모양이 파격적이다. 얼핏 건물은 안이 다 들여다보이고 에스컬레이터뿐만 아니라 수도관, 가스관, 철근 등이 모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발전하는 공간의 도해Evolving Spatial Diagram.’ 퐁피두란 공간의 의미는 시각적으로 이렇게도 표현된다. 2016년에 보아도 미래지향적인 이 건물이 정작 1977년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감동은 배가된다.1977년 문을 연 퐁피두센터는 이탈리아 출신의 렌조 피아노와 영국 출신의 리처드 로저스가 지었다. 전 세계 공모를 통해 모인 49개국 681점의 설계안 중에서 이들이 선정되었을 때 렌조의 나이는 겨우 서른다섯이었다. 작년 초 입주한 광화문의 KT 신사옥을 설계한 이가 바로 렌조 피아노다. 퐁피두는 강철과 유리로 지은 건물이다. 1만5,000톤의 강철과 표면 면적 1만1,000㎡에 달하는 유리가 사용되었다. 안에서는 밖을, 밖에서는 안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건물 안과 밖이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한다. 에스컬레이터는 건물 가운데가 아닌 바깥쪽으로 빼내 내부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내부에 기둥 또한 없어 자유롭게 공간을 변경해 사용할 수 있다.지금은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의 하나가 되었지만 건립 당시에는 논란이 많았고, 반대도 거셌다. “안이 다 들여다보이잖아요!” “외부의 벽을 다 벗겨낸 것 같다고요!”퐁피두의 반대자들은 이단아 같은 퐁피두의 외양이 클래식한 도시, 파리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파리 중심부를 재개발하면서 퐁피두 설립을 강력한 의지를 갖고 결정한 이는 프랑스 전 대통령인 조르주 퐁피두다. ‘퐁피두’란 이름은 바로 그에게서 따왔다. 그 후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퐁피두는 외관만으로도 많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대통령이 가져야 할 혜안이고,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정이다.퐁피두센터는 유럽 아트신scene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역사와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현재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많은 근현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해진다.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건축, 사진 그리고 뉴미디어 작품까지 포괄한다.가로 166m, 세로 60m, 높이 42m의 공간에 7만점의 작품이 정기적으로 교체되며 매년 스무 개 정도의 새로운 전시를 이어간다. 그러니 지난달에 퐁피두를 갔다 해도 이번 달에, 다음 달에 또 가야 할 일이다. 퐁피두에선 전시뿐만 아니라 음악, 댄스, 연극, 공연과 영화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진다. 갖가지 장르의 이벤트와 순수미술의 접점, 상호작용은 퐁피두의 큰 관심사다.퐁피두는 1989년을 경계로 과거와 새로운 시대를 구별한다. 1989년 11월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유럽 미술계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한편 유럽은 천안문 사태를 통해 엿보게 된 중국의 새로운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럽의 시선으로 볼 때 새로운 예술적 영토가 생겨났다.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컨템포러리 아트 비엔날레 같은 인터내셔널한 아트신에 불현듯 등장하면서 세계 예술계의 지형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퐁피두는 이처럼 세계 예술계의 변화된 지형에 포커스를 맞추고 특히 동유럽, 중국, 레바논과 여러 중동 국가, 인도, 아프리카, 남미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파리에 여행을 왔는데 시간이 넉넉지 않다면 나는 루브르나 오르세보다 퐁피두를 권하고 싶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몬드리안, 미로 등 다양한 작품을 짧은 시간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퐁피두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서관, 서점, 기념품 숍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파리 청춘들의 평범한 일상을 엿보기 좋다. 퐁피두 옆, 프랑스 조각가인 니키 드 생팔이 만든 ‘니키 분수’도 놓치면 안 될 볼거리다.쿠바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인 아버지와 콩고 출신 어머니를 둔 작가, 위프레도 람Wifredo Lam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퐁피두센터는 전통적인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 장르의 믹스 같은 다양한 컨템포러리 아트에 관심을 기울인다퐁피두센터Place Georges-Pompidou, 75004 Paris, France +33 1 44 7812 33 11:00~22:00 (화요일 휴무) 성인 14 www.centrepompidou.fr로댕박물관은 한때 로댕, 장 콕토, 마티스, 이사도라 덩컨이 살았던 저택이다높이가 6.5미터에 달하는 주조물인 ‘지옥의 문’은 로댕 박물관의 장미정원에서 볼 수 있다루브르보다 로댕이 좋은 이유로댕박물관Musee Rodin이 2015년 11월12일에 새로 문을 열었다. 3년간의 리노베이션으로 전에 비해 좀 더 박물관답게 면모했다. 로댕이 살았던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전면적인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긴 처음이다. 매년 70만명이 지나다닌 쪽모이 세공 마룻바닥의 많은 부분이 말끔히 교체되었다. 석고, 회반죽, 흙을 섞어 물로 갠 플라스터를 재료로 쓴 작품도 새로이 전시되었다. 그동안 수장고에서 잠자던 작품들이다. 플라스터 작품들은 로댕의 작업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볼 수 있는 단서들이다.로댕박물관 건물은 18세기 초에 지은 저택이다. 로댕이 한때 살았던 집이다. 1908년 로댕은 자신의 비서였던 릴케의 소개로 1층에 있는 4개의 방을 빌려 4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로댕뿐만 아니라 작가 장 콕토, 화가인 앙리 마티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한때 이 집에 살았다. 로댕박물관의 컬렉션과 작품만큼 박물관 건물 자체가 특별한 역사를 가진 셈이다.나로선 사이즈만 보면 루브르보다 로댕박물관 같은 곳이 더 좋다. 물론 루브르는 명실공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박물관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숨이 막힌다. 일단 관람객이 너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제 아무리 비집고 들어가도 모나리자 그림에서 5m 이내에 접근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루브르의 모든 관람객이 모나리자를 향해 돌진하기 때문이다. 루브르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보면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다. 봐야 할 예술품이 너무 많은 것도 때로는 고역스럽다. 미로 같은 박물관에서 빠져 나오기도 쉽지 않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무작정 걷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루브르에 갈 때는 자기만의 테마를 갖고 작품을 선별적으로 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불평이 길었지만 루브르가 좋을 때도 있다. 늦은 밤, 루브르 호텔 옆 파사쥬 리슐리외 입구를 지나 유리창 너머 루브르를 보았을 때처럼 관람객이 한 명도 없는 루브르는 의심할 바 없는 예술의 신전이다.로댕은 말년에 이르러 자기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평생 수집한 예술품, 여기에 수반하는 저작권을 모두 국가에 기부했다. 로댕박물관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로댕박물관이라고 해서 로댕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처럼 로댕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의 작품도 있고, 고흐나 뭉크 같은 화가의 그림도 볼 수 있다. 로댕미술관에서 그의 조각만큼이나 내 눈길을 잡아끈 건 로댕의 데생 그림들이다. 로댕은 장장 7,000여 점의 데생을 남겼다. 그는 흑연과 목탄, 브라운 컬러의 수채물감으로 종종 여성 또는 인체의 움직임을 그려냈다. 조각뿐만 아니라 데생에서도 로댕은 자기의 두 손으로 인간을 완전히 창조했다. 그는, 신이 조각가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신의 손’을 가진 조각가라고 여겼을 것이다.새롭게 단장된 로댕박물관은 로댕의 연대기와 테마에 따라 18개 전시실로 구성된다. 예컨대 ‘비롱 저택의 로댕Rodin at the Hotel Biron’이란 방은 로댕이 실제 살았던 시기의 모습으로, 당시 사용한 가구와 그가 수집한 작품으로 정교하게 복원되었고, ‘로댕과 고대Rodin and Antiquity’란 방은 로댕이 앤티크 딜러에게 사들인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으로 꾸며졌다. 로댕은 수많은 그리스, 로마의 조각 파편을 수집했고, 그중 100여 점이 이곳에서 전시 중이다. 로댕은 젊은 시절부터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지옥’이란 테마에 매혹된 계기가 된 것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게 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때문이다. 그의 작품 ‘워킹 맨The Walking Man’의 경우처럼 로댕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고대 그리스에 대한 존경을 그의 컬렉션으로 표현했다.로댕박물관 건물 자체는 크지 않지만 정원은 크다.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생각하는 사람’처럼 로댕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조각품을, 좁은 박물관 실내가 아닌 한가로운 정원에서 볼 수 있다. 고요한 정원은 아무도 없는 심야의 루브르처럼 평화롭지만 ‘칼레의 시민’이나 ‘지옥의 문’ 같은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내게 칼레의 시민은 칼레시를 구하기 위한 영웅들이 아니라 죽음에 직면한, 죽음을 자기의지로 선택한 사람들로 보인다. 모든 인간이 한 번은 마주하게 될 순간이다.‘지옥의 문’은 또 어떤가? 지옥에서 입맞춤하고, 생각하고‘생각하는 남자’의 전신, 달아나고, 떨어지고, 순교하고, 타락하는 인물상의 모습에서 폭력, 절망, 열정 등 지옥이란 또 다른 세계에 매혹된 로댕의 심경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지옥의 문은, 박물관에 들어서면 만나는 장미정원의 왼쪽 끝에 있고, 오른편 끝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로댕이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아 지옥의 문을 만든 거라면 그는 지옥 자체가 아니라 지옥 다음에 이어질 ‘연옥’과 ‘천국’이란 세계 또한 떠올렸을 것이다. ‘지옥의 문’ 건너편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건 자연스럽다.위대한 조각가에게도 세상사의 부침은 어쩔 수 없는 걸까. 로댕은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8살 때 가사를 돕기 위해 석고 세공업자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각을 시작했지만 그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년에 이르러 자기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부하고자 했지만 그것도 간단치 않았다. 프랑스 국회는 로댕의 작품 기증 건을 표결에 붙였는데, 찬성 391표, 반대 52표로 개운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삶만큼이나 죽음도 드라마틱하다. 그는 1917년 1월29일, 평생 자신의 모델이 되어 주고 함께해 준 로즈 브레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불과 보름 후인 2월14일에, 로댕은 같은 해 11월17일에 세상을 떠났다. 스물네 살의 청년, 로댕이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수업을 듣다 우연히 만난 여자가 로즈 브레다. 로댕박물관은 로댕이 세상을 떠나고 2년 후인 1919년에 오픈했다.로댕박물관에는 로댕의 조각뿐만 아니라 고흐나 뭉크 같은 화가의 그림도 있다공간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매우 현대적인 제스처의 ‘워킹 맨The Walking Man’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뜬 소문’‘칼레의 시민’은 신체의 특정 부위를 과감하게 확대, 묘사해 극적인 효과를 준다로댕박물관 77 rue de Varenne, 75007 Paris, France +33 1 44 18 61 10 10:00~17:45(월요일 휴무) 성인 €10 www.musee-rodin.fr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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