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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행정구역명은 북제주군 추자면이다. 그런데 추자도에서 제주도 토박이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대개 호남 말씨다. 남도 사투리의 ‘징함’이 빠진 채 표준화되어 조금은 무미건조하다.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조금 달라 제주도 말투가 엿보인다. 자연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지대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전라남도 영암·완도군 등에 딸린 섬이었다.1946년 북제주군에 편입됐으니 불과 60여년 전이다. 재미있는 것은 1831년에 잠시 제주목에 이속됐다가 1891년에 완도군이 창설되면서 이곳으로 되넘어간 기록이 나온다. 좀 왔다갔다 했지만 그러나 추자도는 틀림없는 호남문화권이다. 뱃길은 여전히 목포로 열려져 있어 농산물 공급은 물론이고 상급학교도 대부분 이곳에서 다녔다. 덕분에 추자도 1세대들은 ‘전라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근래 2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이 덕분에 그들은 비교적 ‘제주도적’이다. 이곳 공무원들이 대개 제주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추자도 토박이로 제주도에서 교육받고, 집안에서는 전라도 말을 쓰는 사람의 경우, 그 문화적 정체성은 대단히 복잡하다. 제사나 장례, 세시풍속 등은 확실히 전라도적이다. 반면 제주도 출가 잠녀가 아니라 토박이 잠녀들이 물질하는 형태는 ‘제주도적’이며, 전복이나 소라맛 역시 ‘제주도적’이다. 그러나 묵리의 처녀당에서 해마다 올리는 당제의 명칭과 이때 걸궁이란 풍물굿을 동원하는 것은 ‘전라도적’이다. 풍물굿이 없던 제주도에 ‘걸궁’이 전파된 것이니, 추자도 걸궁은 본디 한반도 최남단의 풍물굿이 아니었던가 싶다.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추자도의 이런 중간자적 성격은 예로부터 육지와 제주도의 징검다리였다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지어졌다. 제주행 비행기에서는 망망한 바다 위에 떠있는 추자군도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다가 바람을 피해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추자도다. 지금도 상추자항의 봉줄리산 기슭에는 최영 장군 사당이 위엄있게 포구를 굽어보고 있다. 옛날에는 추자도를 징검다리 삼아 제주도로 향하였다. 예전에는 추자를 주자(舟子)로 불렀으니, 영암·무안·나주·진도 등 전라남도 남서해안으로 가는 뱃길이었다. 제주도는 애월이나 조천으로 드나들었다. 당연히 이름난 유배지였다. 유배객 중에는 해배 후 되돌아간 이도 있었으나 아예 섬사람이 된 이도 많았다. 정조 때 안조환은 유배 당시 천신만고의 생활상을 이렇게 노래했다.‘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천리 다 지내어 추저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하다.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아는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니 물소리라….” 상추자, 하추자로 위·아래 섬이 갈리는데 추자교로 이어져서 이제는 상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상추자항은 대서·영흥리, 하추자항은 신양리 소속이며, 그밖에 예초·묵리 같은 아름다운 포구들이 흩어져 있다. 단단한 바위밭에 해류가 거칠게 흘러 흐리멍텅한 고기들은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참돔이나 감성돔·우럭·농어 같은 고급 어종이 바위밭에서 물살과 씨름하면서 육질을 키우는 까닭에 그야말로 ‘바다낚시의 천국’이다. 도처에 보이느니 낚시꾼들이다. 추자도는 끊임없이 왜구에게 시달렸다. 왜구들은 제 집 드나들 듯 추자군도를 드나들었으며 심지어 20세기 초반까지도 수적(水賊)이란 이름의 바다도둑이 설쳐댔다. 일제시대, 이곳 수산자원에 눈독을 들인 일인들은 대서리에 진을 쳤다. 학교와 조합을 만들고 삼치어업에 매달렸다. 기선급 선박이 엄청난 양의 삼치를 잡아 그대로 상고선에 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른바 추자도 삼치파시는 이들 일본배들 때문에 이뤄졌다.1000여명이 넘는 ‘뱃동서’들이 일시에 포구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술집과 여관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일본 기생도 들어오고, 술꾼들은 취하여 쌈박질을 일삼아 이래저래 ‘난장’이었다. 당시의 여관 흔적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본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삼치어업은 이어졌다. 삼치는 예전 방식대로 잡는 즉시 일본으로 수출했으며, 덕분에 파시도 70년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시와다 그물사건’이라는 전설 같은 일제하 어민항쟁이 전해진다.1926년 5월14일, 추자면민들이 대거 운집해 면장과 추자어업조합에 대한 불편과 불만을 토로했다. 형세가 대단히 격렬해 목포와 제주에서 경찰이 들이닥치고, 주동자 21명이 검거,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어업조합과 면장 등이 공모, 은행 빚으로 어구를 사들인 뒤 2배나 비싸게 팔았는가 하면,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우뭇가사리를 강제 매입해 빚어진 사건이었다. 낌새를 알아 챈 조합장이 주재소와 결탁해 어민들을 억압하려 하자 예초리 남녀 700여명이 함께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본디 이곳 사람들은 외줄낚시로 필요한 만큼의 고기만 낚았으나 일본인들이 대형 그물로 싹쓸이하듯 고기를 잡아가자 이에 반발한 사건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곳 노인들은 “물반 고기반이었는데 왜놈들이 싹쓸이해 가 그걸 못 보겠어서 다들 일어선 게지.”라고 말한다. 일제의 수탈적 약탈어업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추자도에는 딸린 섬들이 42개나 된다. 돈대산에 올라서니 완도군 청산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청산도 삼치파시가 추자도 삼치파시와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구로시오 해류가 흐르는 청산도와 나로도, 추자도 남쪽에 삼치떼가 몰려든 것이다. 추자도 최남단에는 관탈도가 있다. 옛적 귀양객들이 이곳에 이르러 다왔다는 생각에 갓을 벗었다 해서 ‘관탈’이라는 지명이 붙었단다. 관탈도에서는 불과 30분이면 제주항에 닿는다. 그러니 완도-청산도-추자도-관탈도 등이 징검다리처럼 일렬로 늘어서 육지와 제주도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옛날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와 남해 바다를 만들 때 징검다리는 박아놓은 섬들은 아닐는지. 이곳 토박이인 황필운(38) 선장과의 약속에 맞춰 선착장으로 나갔다. 매일 아침 9시면 정확하게 행정선 추자호가 바다로 떠난다. 횡견도와 추포도를 들러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길게 누워 있는 횡견도의 바람막이 돌담이 이곳의 모진 삶을 웅변해 준다.13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여자들은 물질로 전복·소라 등을 잡고, 남자들은 톳·가사리·미역 등 해초를 뜯어 생활한다. 한때 횡견분교까지 있었으나 잡초만 무성하고, 보리농사로 자족자급이 가능했던 섬이 지금은 인적이 끊겨 한적하다. 추포도는 2가구가 등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1가구만 산다. 낚시꾼들 뒷바라지로 생계를 잇는다. 고도에서 사는 1가구, 결코 쉽지 않은 삶일 것이다. 정 다산이 ‘남도경영’을 부르짖으며 경세유표에서 ‘남도의 섬을 잘 다스려야 재물이 숲처럼 일어서리라.’라고 했건만, 이들 낙도는 오로지 낙도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파도 아래 잠들어 있을 뿐이다. 요트처럼 빠른 배라면 뭍에서 불과 1시간도 채 안돼 당도할 수 있는 이 ‘보물섬들’이 오로지 ‘떠나가는 섬’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우리 바다의 미래는 아득하다. 추자군도의 최대 문제는 역시 물이다. 횡견도 같은 섬에서는 아예 빗물을 받아 쓴다.‘물 쓰듯’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추자 본도에는 담수화공장이 있어 바닷물로 만든 비싼 물을 먹고 산다. 그래서 집집마다 거대한 물탱크 한두 개쯤은 갖추고 있다. 추자도는 아름다운 풍광에 비해 너무나 덜 알려진 섬이다. 강태석 면장은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천혜의 어족자원을 갖고 있어 21세기형 관광에 적합한 곳인데, 문제는 뱃길이지요.” 무인도를 이용한 청소년 자연생태체험학습장과 유료 유어장 등이 면에서 꿈꾸는 올 여름 사업들이다. 제주항에서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1일 관광도 가능하지만 배편이 하루에 편도 1회뿐이라 잠을 자고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추자의 돈대산을 오르자 눈 아래 신양항이 굽어보이고, 멀리 전라도 바닷가가 한눈에 잡힌다.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도 보인단다. 해양성 기후라 바람 심한 것을 빼면 아열대식물도 생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선지 곳곳에 동백이 유난히 많다. 추자도에 딸린 사수도는 상록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고, 여기에 흑비둘기와 슴새들이 번식해 1982년 천연기념물(333호)로 지정되었다. 전복, 소라, 미역, 톳, 천초가 지천인 곳이 이곳 말고 또 어딨겠는가. 아,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상식이 하나 있다. 추자도 특산품하면 대개 멸치젓을 꼽곤 한다. 지금도 멸젓이 팔리고는 있지만 오늘날 추자도의 최고 특산은 ‘추자굴비’다. “어획량은 최고지만 문제는 덜 알려졌다는 점”이라는 김금충 수협 상무의 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조기들이 동중국해에서 추자도 근해로 몰려오기 때문에 해마다 엄청난 양이 잡힌다. 예전에는 그대로 영광 등지에 생조기로 출하했으나 이제는 아예 굴비로 말리고 있다. 어족이란 참으로 묘한 것, 칠산바다를 떠돌던 조기들 간 곳 몰라 했더니 추자도에 운집했었나 보다. 지금 추세라면 법성포 굴비 못지 않아 ‘추자굴비’ 없으면 차례도 지내지 못할 날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실제로 추자군도에서 최대의 주력품으로 굴비를 키우고 있으니 곳곳에 조기잡이 안강망 어선들이 눈에 뜨인다. 조기를 잡지 않는 비수기에는 돔이나 고등어 낚시로 살아간다. 떠나 오면서, 추자도가 ‘오지’란 생각을 싹 잊어버렸다. 제주항에 1시간 만에 도착했고, 곧장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는 데 고작 1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횟감과 함께 넣어 온 얼음이 서울에 도착해서도 그대로이니 ‘멀고도 가깝다.’거나 ‘가깝고도 멀다.’는 야누스적 표현이 모두 맞는 곳이다.
  • 바다도 위생등급 매긴다

    수산물을 생산하는 해역에 대해서도 위생등급이 매겨진다. 해양수산부는 19일 “전국의 해역을 60개로 나눠 매년 15개 해역에 대해 수은, 납, 카드뮴, 생균수, 대장균 등을 매월 조사하는 수산물생산해역 위생등급화 사업을 추진, 기준치를 초과한 해역의 품종에 대해서는 생산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차연도 조사대상은 강원도 강릉연안을 비롯해 경기 화성 연안, 경남 고성과 거제 연안, 전남 순천만, 전북 곰소만 등 15개 해역이다. 이들 해역에 대해서는 오는 6월부터 매월 2차례씩 위생조사를 실시해 결과에 따라 수산물 생산 안전해역, 제한해역, 금지해역으로 구분할 예정이다. 금지해역으로 판정된 지역의 부적합 수산물에 대해서는 채취를 금지하고, 안전해역의 수산물은 대표 품종으로 선정해 수산물 소비촉진 활동을 벌인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박은영의 DVD 레서피]씹으면 씹을수록 비리네

    [박은영의 DVD 레서피]씹으면 씹을수록 비리네

    남해 청정해역에서 잡아 말린 삼천포 쥐포는 붉고 두툼하며 결에 따라 쉽게 찢어진다. 석쇠 위에 놓고 녹녹하게 구우면 말랑하고 쫄깃한 육질에서 씹을 때마다 달콤하고 깊은 맛의 육즙이 흘러나온다. 질긴 어육을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오징어와 달리, 쥐포는 씹는 감이 좋아서 오래 씹어도 달고 부드럽다. 씹는 일만큼 익숙한 일도 없다. 음식은 물론 정치인들, 탈세를 일삼는 부자들, 양심 없이 행동하는 이들은 씹히게 마련이다. ‘공공의 적’은 강철중이라는 인물을 통해 통쾌함을 안겨줬다. 돈만 알고 도덕을 모르는 인간을 잘근잘근 씹는 과정을 보여줬달까.‘공공의 적 2’는 전편에 비해 씹는 강도가 덜하다.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강철중은 날렵한 턱선과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강력계 검사다.“형이 오늘은 기분이 나쁘지 않거든∼.” 하며 17대 1의 개싸움을 벌이던 질기고 쌩쌩한 강철중의 디테일은 모호해졌다. 대신 거대 사학재단의 비리 이사장부터 부패 국회의원까지 싸잡아 수갑을 채우는 시원한 결말이 있다. 정치인들의 비리가 문제인 것은 우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시리즈물 ‘웨스트 윙’은 미국 백악관을 조명한다.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 비리, 사건들을 참모진이 헤쳐 나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성조기가 휘날리며 시작하는 인트로는 정치 드라마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들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지만 전반적인 짜임이 탄탄하고 곱씹는 맛도 그럴듯하다. ●공공의 적 2 속편을 기획하면서 감독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누가 공공의 적인가?”라는 문제였다고 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기 위해서 좀 더 힘 있는 자를 악당으로 점찍었고 그에 따라 강철중의 지위도 승격되었다. 기본 구도는 전편과 유사한데, 좀 더 고급스러운 배경이라는 것이 2편의 다른 점이다. DVD는 1편보다 한결 매끄럽게 출시되었다. 영화가 어떻게 기획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되었는지를 단계별로 친절하게 설명하는 부가영상은 심도 있으며 화질과 사운드도 좋은 편이다. 별도로 수록된 김상진·장윤현 감독의 부분 연출 장면 제작과정도 흥미롭다. ●웨스트 윙 시즌 4 ‘웨스트 윙’은 백악관 비서실의 간부들이 근무하는 곳을 일컫는 용어다. 제목이 말하듯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니라 지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참모들이다. 이번 시즌에선 대통령의 재선 과정이 전개된다. 대통령과 참모진의 관계가 수직이 아닌 수평적으로 표현되며, 자유롭게 의견과 농담이 오가는 모습이 이상적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보는 시리즈로 유명세를 탔으며, 탄핵되었을 때 인용했던 ‘California 47th’ 에피소드가 이번 시즌에 있다.‘The Letter of the World’에서는 4년간 엘 고어 수석 연설문 작가로 있었던 엘리 애티의 음성해설도 있다.
  • 바다위 사투 14시간…죽어가며 “여보, 미안해”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시 입파도 근해에서 발생한 레저용 보트 침몰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인 구자희(30·여)씨는 남편과 6살 난 딸,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구씨의 이야기는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구씨가 병원에서 친척에게 구술한 A4용지 2장 분량의 사고 당시 메모에서 18일 확인됐다. 15일 오후 4시10분 경기도 화성시 입파도. 야유회를 마친 구자훈(39)씨 가족과 매제 김심환(33)씨 가족 등 2가족 14명 중 1차로 8명이 구씨 소유의 1t급 레저용 보트에 몸을 싣고 대부도 전곡항으로 향했다. 운항 시작 10여분 뒤 보트가 그물에 걸렸는지 앞부분이 들리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살려달라” 외쳤으나 보트 지나쳐 보트 주인 구자훈씨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보트를 세워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모든 가족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바다도 잔잔했기 때문에 “구조될 수 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먼발치에서 보트가 지나는 것이 보여 가족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나 무심한 보트는 이들을 지나쳤다. 이후 밤이 찾아왔고, 물 위에 떠 있던 식구들은 지쳐 갔다. 구자희씨가 있는 힘을 다해 “도연아, 자면 안돼.”라고 외치며 딸의 구명조끼를 흔들어 잠을 깨웠으나 딸은 깊은 잠속으로 빨려들어가며 대답이 없었다. 가까이에 있던 남편 김씨에게 “여보, 도연이가 정신을 잃어요.”라고 소리쳤지만 김씨 역시 “여보 미안해.”라는 말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구씨는 남편과 딸이 눈 앞에서 숨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을 위해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칠흑 같은 바다에서 부표를 잡고 버티기를 14시간.16일 오전 6시20분 자욱한 안개 사이로 해경 경비정이 나타났을 땐 이미 가족 7명이 숨진 뒤였다. ●유족 늑장출동항의 영구차 인천해경 방문 한편 보트사고 유가족 50여명은 이날 안산시화병원에서 발인식을 가진 뒤 “늑장 출동으로 인명피해가 커졌다.”며 영구차를 앞세우고 인천해양경찰서를 항의방문했다. 유족들은 이원일 인천해양경찰서장과의 면담에서 “사고 당일 오후 6시30분에서 7시 사이에 해경 전곡출장소에 신고를 했는데 그날 자정이 지나서야 경비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면서 “해경의 구조작업이 조금만 빨랐더라면 희생이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경은 신고 접수 시각을 오후 7시55분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유족들의 주장과 달라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중국을 겨냥하여 ‘서해안 시대’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천은 서해안의 대중국 창구이자 교두보였다. 강화 고인돌과 단군의 유향(遺香)이 전해지고,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미추홀과 비류백제로 상징되는 해양세력의 거점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인천시의 남동갯벌, 도장리에서 승학천을 따라 이어지는 저지대는 바닷물이 들어오거나 습지였기에 문학산과 승학산이야말로 지리·환경적으로 초기국가 단계의 도읍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백제시대에는 대외 창구로 기능하여 오늘날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의 능허대를 거점으로 해 중국과 넘나들었다. 한강 하류인 인천을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산둥반도 등주에 이르는 등주항로야말로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칠때 이용한 바로 그 항로이다. 오늘날 능허대는 아파트촌에 뒤덮이고 말았으나 조선 후기 읍지에 ‘백제조천시발선처(百濟朝天時發船處)라 하였듯 역사의 현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인천이 한반도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뜬’ 것은 역시나 조선시대가 아닐까. 수도 한양에 이르는 입구, 이른바 인후지지(咽喉之地)로 온갖 역사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서해 뱃사람들에게 ‘행주참을 댄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수, 즉 밀물이 몰려들면 바닷물은 강물 위로 뜨고 바다로 내려가는 강물은 밑으로 깔리는 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인천쪽에서 한강을 거슬러 행주나루를 거쳐 마포까지 직행하는 뱃길 노정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 그 뱃길을 따라서 열강들이 빈번하게 침범을 강행했으니, 지금도 남아있는 수많은 포대가 이를 웅변해준다. 대개의 개항장이 시련을 겪으며 탄생했지만 인천만큼 열강들의 침략의 손길이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 뻗친 곳이 또 있으랴.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등대는 바로 이런 개항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물이다. 조선에 진출하려는 열강들은 인천 해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가 그것으로, 선조들은 이들의 도래를 온몸으로 싸워 막았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조선 진출의 기선을 제압하고자 운요호(雲揚號)사건(1875)을 감행했고, 끝내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1876)으로 문을 열게 되었음은 교과서적 상식이다. 구미 열강과도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니 은둔국 조선은 갑자기 봇물 터진 외압을 직접 받게 된다.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제물포는 하룻밤 새 개항장으로 둔갑하여 1883년에 인천해관과 감리서가 설치되고, 각국 영사관과 외국인 조계들이 설치되기에 이른다. 청일전쟁, 노일전쟁 등 일본의 전쟁을 위하여 조선땅을 내준 꼴이 됐으니, 이후 일본군의 군화발이 인천항을 자기 땅처럼 짓밟았다. 1892년,‘일본 밖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이루어진 가장 완벽한 일본책’으로 자평하는 ‘인천사정’이란 책자는 당시 ‘일본 영사관이 일장기를 아주 높게 휘날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서 장엄하고 수려하게 인천항을 삼킬 듯 바라보고 있다.’고 썼다. 정말 그들은 인천항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삼켜버렸다. 그 후 우체국, 경찰서, 일본거류지의회, 인천상법회의소, 무역상조합, 잡화상조합, 영어소학교, 공립소학교, 교토의 본원사(本願寺), 공립병원와 강제병원, 정미소, 제물구락부, 조선신보, 활자소, 그리고 제일국립은행, 제18국립은행, 제58국립은행, 일한무역상사, 우선주식회사의 일본지점 등이 속속 들어섰다. 대불호텔과 이태호텔, 수월루 등의 여관도 들어섰다.‘근래 불경기라는 소리가 인천항의 온 시가를 뒤덮는 데도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러(花紅柳綠) 흥청대기 이를 데 없으니 술집에는 어린 소녀들도 많았다.’고 한 기록도 있다. 이로써 유곽이 번창하여 도심까지 집창촌이 뻗어 나가 항구를 드나드는 뭇사내들을 유혹하였다. 교회도 빠질 수 없었으니 영국 성공회를 필두로 답동성당, 내리교회 등이 속속 들어섰다. 수출입세를 관장한 해관(海關)만큼은 조선정부 관할이었다. 물론 해관 운영에 ‘왕초보’였기에 대대로 영국, 독일, 일본인 등이 도맡아 했고 그들은 그야말로 ‘엿장사 마음대로’ 개항장을 농락하였다. 일본인들이 잘못된 협약서를 근거로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축적했던 수탈 과정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당시 수입된 면직물은 대부분 영국제로 일본인이 수출을 독점했는데 영국도 저렴한 세금을 관철시켰다. 제국주의 경제침탈의 전형적인 모습이 인천항에서 관철되었다. 개항 당시 서울은 ‘좋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인천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적었고, 총인구 2649명 중 쓰시마, 나가사키 사람들, 그리고 시모노세키가 위치한 야마구치(山口), 규슈의 오이타(大分)사람들이 주류였다. 일제침략기를 통해 대개 한반도에서 가까운 규슈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건너왔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쪽 방언들이 즐겨 쓰였으며, 도쿄, 오사카, 쓰시마 등 여러 곳의 언어가 섞인 것을 ‘인천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인천에는 관리 세관원 은행원 회사원 무역상 중개인 운수업 하역업 여관 요리점 목욕탕 음식점 양주집 일본주점 약국 의사 사진사 이발업 재봉업 활판인쇄업 세탁소 양조장 대장간 오락실 과자점 창고업 고용직과 잡상 목수 석공 농업 등 온갖 직종 종사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장차 식민지가 될 조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러일전쟁·청일전쟁 등이 터졌을때는 자발적으로 전선구호와 간호 등에 힘을 보탰으며 스스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즉, 개항장에 나와 있던 일본거류민들을 순수한 의미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일본의 관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식민지 개척의 첨병으로 움직였다.‘생돈’이 생기는 만큼 화려한 의복과 음식으로 사치를 부렸다. 웅장한 반양반일(半洋半日) 가옥들이 앞다퉈 들어섰다. 개항장은 일본거류지, 각국거류지, 중국거류지로 삼분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확연하다. 은행건물 등이 남아있는 일본인 거리, 음식점이 즐비한 중국인 거리가 그것이다. 각국 거류지라고는 해도 19세기말에는 영국인 7명, 독일인 13명, 미국인 4명, 프랑스인 3명, 이탈리아인 1명 등이 거주했을 뿐이고 대개 일본·중국인들이었다. 그런데 각국거류지 회의는 인구비례가 아니라 국적별로 참여하도록 했으며, 서양인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게다가 회의조차 영어로 진행하니 일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대대적인 간척을 통해 땅을 확보, 도심을 불려나갔다. 오늘날 인천항 주변이 대부분 간척지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다면 조선인들의 대응은 전무하였던가. 인천 출신의 역사학자 임학성(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인천객주협회를 모체로 1897년에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는 민족 상인의 상권을 옹호·신장하였다.”고 지적한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에서 역주한 ‘인천개항25년사’(1907)를 보면, 조선인들은 오늘로 치면 송월·전·복성·인현·경·신포·답·신생·사·유·신흥·선화·도원동 등에 몰려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개항 초기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상권 경쟁이 치열했다. 중국인들은 특유의 근면과 상업적 재기를 토대로 일본에 맞섰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결국 중국 상권도 몰락했다. 그럼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중국인들은 다시금 성실하게 상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천시가 중국인거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중국집이나 운영하고 살았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들은 옥양목 같은 옷감장사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상권을 장악해 ‘비단장사 왕서방’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조선의 쌀을 싸게 사들여 일본에 되팔아 엄청난 돈을 거머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경인철도가 부설되자 서울을 오가는 보따리장사는 물론이고 석유장사 등으로 일본인들 역시 큰 돈을 벌어들였다. 군인들이 자주 부르는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도 당시 이후 첨단 공장인 성냥공장이 인천에 많았음을 방증하며, 그만큼 선진적 공장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의 하나였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제 인천은 일본인 대신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목이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거니와 산둥반도 등지를 오가는 페리에서 사람과 짐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인 거리에 가면 대하소설 삼국지를 연작 벽화로 그려놓아 길거리를 걸으면서 책읽기를 끝낼 수 있게 해놨다. 게다가 원조자장면집을 아예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라니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박물관만큼은 ‘대박’이 예감된다. 하고많은 박물관 중에 자장면 박물관은 특이성도 돋보이지만 인천에 딱 어울리는 까닭이다. 김춘선 인천해양수산청장은 “거대한 대중국 서해시대의 거점이기도 하지만 대북 통일시대의 거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포, 해주 등지를 오가는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북핵문제 등으로 긴장이 조성되고 있지만 바닷길만큼은 항상 열려 있어 민족화합에도 이바지하는 셈이다. 인천항의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다.1970년대에 대대적으로 건설된 파나마식운하의 물을 가두었다 풀어 놓는 갑문이 낙후해 머잖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할 형편이다. 갑문으로 가보니 5만t,10만t급의 거대한 선박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인천항도 이제는 외항시대로 접어들었다.“인천항도 북항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돌이켜 보면, 일제시대의 인천은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 고베와 나가사키 쓰시마 부산 원산 톈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잇는 정기연락선이 오고갔으니 지금보다도 훨씬 바다를 통한 국제간 교역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가 근자에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바다를 통한 교류는 무려 반세기나 묶여 있다가 재개된 셈이다. 당시 인천은 ‘완연한 한국의 요코하마’로 불렸다. 국제 첨단 신도시로 개발되는 송도신도시가 완공되면 인근 인천공항과 더불어 인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니 돌고 도는 역사의 변화가 다시 온 몸으로 느껴진다.
  • [김홍신의 세상보기] 우리 역사의 아픔

    [김홍신의 세상보기] 우리 역사의 아픔

    멀쩡한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며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일본의 가당찮은 역사인식은 일본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들끓듯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좀더 성숙되고 냉정하게 우리의 미래를 갈고 다듬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이참에 우리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종합진단과 조화로운 대책을 강구하는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헤게모니는 언제나 이동하기 마련이다. 근래 들어 가장 두려운 존재가 중국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듯하다. 친디아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 할 만큼 중국과 인도의 잠재 결속력까지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중국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중국위협론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족과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거대인구 중국은 사회주의를 대신할 이념적 고리로 민족주의를 선택했다. 이런 중화민족주의의 일환으로 현재의 중국 영토 안의 과거 역사는 모두 중국역사로 편재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동북공정의 잣대는 중국의 중화사상과 중국민족주의의 가늠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광활한 고구려 땅과 호쾌한 고구려 역사는 모두 중국의 변방사요, 고구려보다 훨씬 넓은 영토의 주인이었고 장대한 역사를 가졌던 발해도 중국변방사로 재편해 가고 있다. 중국은 발해를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규정해서 아예 중국사로 규정지으려 한다.1712년에 조선과 청나라가 합의하여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토문강으로 국경을 삼아 정계비를 세웠다. 토문강은 송화강 지류라는 게 드러남으로써 간도 일대가 조선영토였음이 밝혀지기도 했다.1907년 일본은 간도가 조선땅이라고 주장하다가 1909년에 청나라에 간도를 넘기고 안봉선 철도와 무순 탄광의 이권과 바꾸어버렸다. 그러나 근래에 규장각에서 발견된 자료를 통해 한·일관계의 협약이 무효임이 밝혀졌으니 간도협약은 무효이며 간도가 조선 땅이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현재 발해의 흔적들은 철저한 보안 속에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신당서의 기록으로 보면 사방 5000리(중국은 5㎞가 10리)의 광대한 땅, 고구려보다 무려 두 배 가까운 영토를 소유했던 발해 역사는 지금 중국역사로 재편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도읍지 상경용천부의 고궁터는 외성의 둘레가 16㎞가 넘고 10개의 성문과 잘 다듬어진 도로가 위풍당당하다. 비록 화산석 주춧돌과 고성의 위용만 남아 있지만 5경·15부·62주를 다스린 흔적은 장대하기만 하다. 연길의 계림으로부터 화룡현 도산자 동산촌까지 이어지는 100리 장성은 실제로 300리 장성이다. 당나라와 대적하며 황제 칭호를 거침없이 사용했으며 장안의 관문인 등주를 매섭게 공격하는 위용도 보였다. 바닷길을 갈라 일본과 문물을 교환하며 고구려 정신을 계승한 우리의 조상이 펼친 담대한 모습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동모산 정상에 서서 1300여 년 전의 발해의 혼을 흡입해 본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며, 귀하디귀한 정효공주 비문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이며, 막새기와 한점 만져본 사람이 있으며, 러시아와 북한에 흩어져 있는 유물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은 얼마일까? 거란의 침공으로 처절하게 멸망한 탓에 구당서와 신당서, 일본사기 속에 아주 작은 기록밖에 자료가 없는 형편이다. 그러하기에 유적 발굴작업은 발해를 재현하는 귀하디귀한 사료이다. 정효공주 무덤에서 발굴된 묘비석 하나 때문에 얻어낸 사료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과서에서조차 발해역사를 가볍게 다루는 우를 범하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송기호 박사는 중국과 러시아를 헤짚으며 발해 역사를 낱낱이 규명해 주어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다. 송 교수의 주장(저서 ‘발해를 다시 본다’)처럼 역사는 객관적이어야 하고 개방적이며 독점물이 아닌 공동의 역사로 설정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발해 멸망이후 줄곧 줄어든 우리 영토의 아픔을 치유하는 자세를 우리 시대의 소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진지하게 거론되기를 소망한다.
  • 불법조업 중국어선 4척 어민들이 잡아 해경에 넘겨

    인천 연평도 어민들이 1일 북방한계선(NLL) 남방 180m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 4척을 7시간동안 억류하다 인천 해양경찰서로 넘겼다. 해경은 중국 선원을 영해 및 접속수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인천 해경에 따르면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 30여척은 이날 오전 10시50분쯤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북서쪽 0.4마일 지점에서 중국 어선 4척을 에워싸고 연평도로 예인해 왔다. 중국 어선은 30∼50t급 형망어선으로 선원 25명이 타고 있었다. 연평도 어선들은 이날 조업을 나갔다 중국 어선이 보이자 선박 통신망을 이용, 실력행사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한꺼번에 조업구역을 벗어나 NLL 남방 180m 지점까지 쫓아가 중국 어선을 붙잡았다.NLL 남방 2마일 해역은 해군조차 접근이 제한된 곳이다. 해군은 어선의 집단행동을 감지하자마자 고속정 4척을 투입했지만 동시에 움직이는 30척을 막지 못했다. 어민들은 한때 중국 선원을 강제 억류하고 해군의 인계 요청을 거부했었다.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극심한 꽃게 흉작이 계속되자 어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인천지역 꽃게 어획고는 2002년 1만 4281t(1180억 4000만원),2003년 6547t(829억 7000만원), 지난해 1390t(292억 8000만원)으로 2년 전에 비해 10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어선들이 남북 상황을 악용,NLL을 넘나들며 꽃게 등 어족자원을 싹쓸이하기 때문. 낮에는 NLL 위쪽에서 조업하다 밤에 해군의 감시를 피해 한계선을 넘고 있다. 최율 연평어민회장은 “해경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 중국 어선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해양조사원 ‘해일 모니터망’ 구축

    국립해양조사원은 해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폭풍 해일 모니터링망을 구축한다. 해양조사원은 29일 올해 전남 여수 남방 30㎞ 지점 간여암 해역에 해양 기상관측 부이를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마산, 제주, 부산 등 전국 8개 지역에 해일 모니터링망을 구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육상에 설치되는 ‘극초단파 파고 관측시스템’, 해저에 설치되는 ‘실시간 파고 관측시스템’, 해수면에 고정되는 ‘해양기상 관측 부이시스템’, 해류에 따라 이동하는 ‘이동식 위성 뜰개시스템’ 등 4가지 시스템이다.
  • 남해안도 ‘조스’공포

    봄철이면 전북과 충남 서해안을 공포로 몰아넣던 톱니 이빨의 식인상어(조스)가 전남 남해안에도 나타나 어민들에게 경계령이 내려졌다. 전남 여수해양경찰서는 25일 “24일 낮 12시쯤 여수시 남면 소리도 0.5마일 해상에서 조모(46·여수시 돌산읍)씨가 쳐놓은 정치망에 몸길이 4m, 무게 3t 가량의 백상아리 암컷 1마리가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1일에도 소리도 앞에서 조씨의 그물에 백상아리 암컷과 엇비슷한 크기의 수컷 1마리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남해안에서 식인상어가 나타나기는 지난 95년 이래 10년 만이다. 죽은 상어는 마리당 35만∼36만원에 팔렸다. 만약 이 정도 크기의 고래라면 2000만∼3000만원을 웃돌아 고래가 그물에 걸릴 경우 어부들은 횡재로 여긴다. 여수해경은 식인상어 출현해역에서 경비함정 순찰을 강화하고 어민들을 대상으로 패류 채취나 야간작업을 일절 금지시켰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과학플러스] 정지해양관측위성 개발 착수

    해양수산부는 이달부터 한반도 적도 상공에서 정지상태로 해양을 관측할 수 있는 ‘정지해양관측위성’ 개발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한국해양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프랑스 아스트리움사와 공동으로 개발할 이번 위성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서해와 동해, 남중국해를 포함하는 ‘2500㎞X2500㎞’구역을 관측할 수 있다. 미국, 일본에서 개발한 기존의 지구관측위성이 한반도 주변해역을 1∼7일에 1회 정도 관측했던데 비해 이번 위성은 매 시간 관측이 가능해 한반도 주변 해양관측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부는 “기존 위성은 관측해역의 구름으로 인해 자료 결측이 발생했으나 매 시간 관측이 가능한 정지위성은 구름이 없는 위성자료를 보내올 가능성이 높다.”면서 “황사 정밀분석, 산불 발생지역, 폭설지역 감지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독도 영유권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독도 영유권

    일본 시마네현이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정한 조례를 제정해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군국주의 일본의 과거사를 왜곡한 후소샤 교과서를 검인정에서 통과시켜 한국은 물론 중국과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왜곡한 전력이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의 역사 왜곡은 강력하게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결국 국익을 위해서는 어떤 파렴치한 행동도 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독도 뿐만이 아니라 일본은 중국, 러시아와도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독도 문제와 비슷한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다. 영유권 분쟁은 작은 섬을 차지하기 위한 것보다는 주변 지역에 매장된 지하자원이나 수산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각국의 목적이다. 각국의 분쟁 사례와 독도 문제에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세계의 영유권 분쟁 독도 영유권 문제와 비슷한 각국의 도서(島嶼) 분쟁은 한두건이 아니다. 일부는 분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국제법에 따라 결론이 난 곳도 있다. ▲센카쿠제도·쿠릴열도=센카쿠제도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남서쪽으로 300㎞, 타이완에서 동북쪽으로 200㎞ 떨어진 무인도로 가장 큰 섬이 우오쓰리시마(釣魚島·중국명 댜오위다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1971년 이 섬을 일본에 반환했다. 그러나 중국과 타이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섬이라며 반발해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근처 해역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어 중국과 일본의 분쟁은 격화하고 있다.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 반도를 잇는 2개섬(에토로후·구나시리)과 홋카이도 북쪽 2개섬(하보마이·시코탄) 등 북방 4개섬(쿠릴열도)의 영유권을 놓고 일본은 러시아와 다투고 있다.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옛 소련이 이 섬을 차지해 일본이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남쪽 2개섬을 반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모두 다 달라고 주장해 양국이 맞서고 있다.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이 군도는 걸프만∼말라카해협∼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로의 중간에 있다.100개 가 넘는 작은 섬과 산호초로 이뤄져 있지만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사실이 확인돼 중국, 타이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6개국이 싸우고 있다. ▲이스트리아 영유권 분쟁=1993년 이탈리아의 네오 파시스트 정당들이 집권하면서 북동쪽 이스트리아 반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들은 1975년 오시모조약에 따라 구 유고 연방에 반환된 이스트리아반도 내 접경지역의 반환을 요구했다. 이 지역은 현재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독도 영유권 분쟁 한국 정부는 1952년 이른바 ‘평화선’을 선포,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일본도 같은 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외교문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와 그때부터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일 분쟁이 시작됐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는 1905년 시마네현(島根縣)의 고시(告示). 그러나 이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던 시기의 일로 역사적인 근거는 없다. 울릉도에 세워진 우산국은 신라시대 이사부(異斯夫)에게 정벌된 뒤 조공관계를 맺고 신라와 고려에 토산물을 바쳐왔다. 독도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지리지의 동계(東界) 울진현조(蔚珍縣條)에 나온다. 조선 1432년(세종 1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도 “우산·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고 돼 있다.1531년(중종 26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울릉도와 독도를 한 섬을 보고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울릉도와 독도는 점차 잊혀져갔다. 그러다 경상도 동래 출신 어부 안용복(安龍福)이 1693년(숙종 19년) 봄 울릉도에 출어(出漁)하였다가 일본 어민들에게 일본으로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측은 울릉도가 일본 영토임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조선은 수용하기 않았고 일본은 1696년 죽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 일본 어민들의 도해(渡海)금지령을 내렸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독도라는 명칭은 조선 말기 석도(石島)라고 표기한데서 연유한다. 석도를 돌섬, 독섬이라고 부르다 독도로 바뀐 것이다. 일본 메이지 정부도 독도가 한국 섬임을 인정했다. 그러다 일본이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 영토로 강제 편입했다. ●독도 문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물론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망발에는 외교적으로 정부는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할 필요가 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에 상정하려 한다는 것이 일본의 속셈임을 알면 우리가 스스로 흥분하고 문제를 키워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국제사법재판소에 상정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꼭 이긴다는 법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떤 땅의 영유권을 따질 때 중요한 조건은 한 나라가 얼마나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도리어 못들은 척하고 시간을 끄는 게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분쟁이 격화될 것임을 가정한다면 소유 기간을 최대한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도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과 해외 홍보와 외교적 활동도 강화해야 한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어선월북저지 육·해군·해경 작전 ‘구멍’

    최근 동해에서 발생한 어선 황만호의 월북을 군 당국이 저지하지 못한 것은 육군과 해군, 해경의 통합작전 실패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 정한열(육군 대령) 검열과장은 15일 이 사건 조사 결과 발표에서 “황만호의 북상을 추적하던 육ㆍ해군 레이더기지 간에 상호 추적감시와 인수인계 등 정보교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체적으로 통합작전 체제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합참은 해안경계를 맡았던 육군 모부대 사단장(소장)과 대대장(중령), 해군 1함대사령부 사령관(소장), 전파탐지감시대장(중령) 등 4명을 문책키로 했다. 또 해양경찰청에도 조사결과를 통보해 경계의 문제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합참은 황만호 발견 당시 보고와 경고방송·경고사격 등 즉각대응한 것으로 밝혀진 육군 해안 경계부대 소초장 2명(소위와 중사)은 포상키로 했다. 군 당국은 해군 고속정이 강원 거진항에 위치해 접적해역으로 신속히 움직여 임무를 수행하기 곤란했다는 기동성의 문제점이 드러남에 따라 거진항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저진항 일대에 기동성이 뛰어난 소형 고속정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면 육군과 해군, 해경간 단일 지휘 체계가 이뤄지도록 관련 대통령 훈령의 개정도 건의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군은 13일 오후 1시25분쯤 속초 레이더기지에 최초로 포착된 황만호를 일반 어선으로 판단하고 추적하다가 5분 뒤 거진 레이더기지에 임무를 인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거진 육군 레이더기지와 저진 해군 레이더기지는 황만호를 각각 관심표적으로 설정했을 뿐 정보 교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또 어선이 북방한계선(NLL) 이남 2마일 지점에 설정된 어로한계선을 넘어 북상한 3시42분부터 4시까지 18분간 경고사격을 가했으며, 육군은 3시50분쯤 뒤늦게 해군 1함대에 고속정 출동을 요청했다. 4시4분쯤 어선이 군사분계선(MDL) 연장선을 통과해 월북하는 과정에서 군과 해경간 작전협조체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밝혀졌다. 해경의 경우 황만호 월북 3시간 전인 오후 1시부터 군의 대공포사격훈련 때문에 경비정 2척을 거진항 동방 해상으로 남하한 상태여서 당시 거진항 북쪽수역에는 어선을 통제할 만한 전력이 전혀 없었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中 “日 가스전 시굴은 국익 도전”

    |도쿄 이춘규특파원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과 일본관계가 중국내 반일시위에 이어 일본 정부의 동중국해 가스전 시굴권 부여 강행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13일 시굴권 부여 착수를 “우연히 (반일시위와)겹쳤을 뿐”이라고 말했으나 시굴권 부여 자체가 일본 정부의 치밀한 계산에서 이뤄진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민간회사들은 가스전 시굴이 중국내 다른 사업에 미칠 악영향과 채산성 때문에 사업 자체를 꺼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에너지 자원을 지키기 위해’라는 핑계와 달리 ‘중국의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견제하기 위한 속셈’에 따라 시굴권 부여 절차에 착수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중국을 견제할 카드 수를 늘리려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것이다. 반면 데이고쿠석유, 석유자원개발, 신니혼석유자회사 등 민간회사들은 매장량 추정이 불명확하고, 특히 “중동처럼 가스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채산성과 경제성을 의심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내 다른 사업에의 악영향을 우려한 민간회사들이 꺼리자 일본 정부는 1곳에 20억∼40억엔이 소요되는 시굴비를 정부가 부담하고, 해상보안청의 엄호 속에 시굴을 강행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성공 확신도 없이 그저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강경책을 구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는 “매장량이나 수송비를 고려하면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중국측에 판매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일본의 가스전 시굴 강행 방침에 중국 외무성은 강력히 반발했다. 친강(秦剛) 대변인은 14일 “중국의 권익과 국제관계 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일본을 성토했다. 그는 단순 항의가 아닌 직접적인 대항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 향후 긴장의 파고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친 대변인은 또 “이 해역(동중국해의 가스전)의 경계를 둘러싼 갈등과 관련, 중국은 일관되게 외교교섭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중국의 정당한 주장을 무시, 중간선을 경계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이고 있다.”고 흥분했다. taein@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⑤ 청해진에서 해법을 찾는다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⑤ 청해진에서 해법을 찾는다

    ■ 어류양식 ‘쪽박’… 전복양식은 ‘대박’ “빼도 박도 못하요.”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전남 완도군 신지도. 쪽빛 바다와 모래사장, 해송 등 빼어난 경관 뒤로는 어민들의 슬픔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육지와 바다에 온통 어류 양식장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지금 빚과의 전쟁 중이다. 불과 5년 전, 완도읍 내 단란주점 등 술집에서 “신지도 사장님과 사모님들 덕분에 산다.”는 말이 돌았다.90년대 말 광어와 우럭을 키워 뭉텅이 돈을 만졌을 때다. 신지면사무소 앞 금모래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5년 전에는 면 소재지에 다방만 9개나 됐고 여종업원만 20명 가까이 됐으나 지금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완도수협 신지지점 남자 직원도 “신지도 수협 대출자 1000여명 중 10% 가량이 악성 연체자”라고 실상을 전했다. 완도군 내 어류양식 400여 가구 중 신지도(1900여가구)에만 160여 가구가 우럭과 광어를 기르고 있다. 나머지는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 양식을 한다. 이 섬에서 ‘부자마을’로 통하던 송곡리.163가구 중 45가구는 어류양식이고 나머지는 패류와 해조류를 기른다. 어류양식 중 35가구는 바다에서 가두리를 막아 우럭을,10가구는 육상 축양장에서 광어를 키운다. 이 마을 김원재(59) 이장은 “마을 주민 중 50명 이상이 신용불량자이고 빚 5억원은 기본,10억∼20억원도 부지기수다. 일반대출 때 서로가 연대보증해 줄초상 났다.”고 말했다. 사모님 소리 듣던 이 마을 젊은 아낙들 가운데는 완도읍 내 전복 선별장이나 미역·톳 가공공장을 전전하며 날품을 팔고 있었다. 가두리 양식장으로 종종걸음을 치던 박종두(50·송곡리)씨는 “수협과 농협 빚이 10억원도 넘소.2년 동안 키운 우럭이 30만마리나 되는 데도 본전은 커녕 연체이자(17.0%)도 못낼 판이요.”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해상 우럭과는 달리 육상 광어는 값이 지난해 절반으로 폭락하면서 부도자가 속출하고 있다. 신지도에서는 지난해 말이후 네집이 부도처리됐고 서너집이 경매로 나올 태세다. 2㎏짜리 광어는 마리당 5000원가량 손해보고 1만 500원이나 1만원에 넘긴다. 사료값을 아끼기 위해서다.8만마리 기르는데 한 달에 사료값 3600만원, 전기료 700만원, 영양제·어병 약품비·인건비(3명) 600만원 등 5000만원이 든다. 20∼50% 수입관세를 무는 중국산 농어는 ㎏에 5000원선이다. 완도지역 양식업자들이 중국으로 건너 가 기른 뒤 다시 들여오기도 한다. 수입된 농어와 점성어는 완도읍 내 농공단지 축양장에서 기른다. 지난해 완도항으로 수입된 중국산 활어는 1만 7000㎏. 농어·점성어·감성돔 순이다. 지지난해는 2만㎏ 넘게 들어왔다. 반면 완도군 노화읍은 대박을 터트린 전복 양식장으로 유명하다. 미역과 다시마 등 전복 먹이를 직접 기르는 복합양식으로 생산원가를 줄였고 남들보다 먼저 시작해 성공했다. 지난해 노화읍 내 830㏊에서 400억원을 벌어들였다. 미라리 마을에서만 150억원을 벌었다. 미라리 최운재(45) 자율어촌계장은 “92년 전복 시험양식을 거쳐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고 지금은 70가구가 호당 연 평균 3억원을 번다.”고 말했다. 글 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기고] 어획량 제한 어종 확대해야/ 김영규 국립수산과학원 원장 최근 우리나라의 수산자원은 지속적인 생산을 위협할 정도로 자원이 크게 줄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어획물의 구성도 고급어종에서 저급어종으로 바뀌고 각 어종의 미성어 어획비율도 증가하는 등 생태적으로 불안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수산자원 회복정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정부뿐만 아니라 과학자, 업계, 어업인 등 수산관련분야에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과학자들은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자원을 보다 정확히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자원조사전용선 등을 이용해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원조사를 하고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 주요 어종들에 대한 정확한 자원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산란, 성숙, 성장, 분포 이동 등 자원생태학적 변동요인 역시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어업인 스스로 자원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자율관리어업체제의 확산을 유도하고, 현재 고등어 등 9개 어종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총허용어획량 대상 어종을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수산자원보호를 위한 법령, 규제 등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하며, 수산자원관리법 같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법령제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과다사용 어구수를 제한하고 어구의 실명제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 생분해성어구, 치어탈출장치 등 환경친화적이고 자원관리형의 어구를 어업인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적극적인 자원조성을 위해서 생태학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우량품종인 수산종묘의 연구개발 및 환경보전을 위한 연안환경의 변화와 예측능력을 높이는 연구도 뒤따라야 한다. 황폐화되어 가는 연안어장에 대해서는 연안 해조장, 해중림의 조성, 종묘생산과 방류, 인공어초어장 조성 등을 통해 산란장과 성육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생활하수의 유입을 차단하는 하수처리종말처리 시설 등을 확충해 바다 오염을 최대한 막고 해상쓰레기 수거시설을 확대해 깨끗한 바다를 유지하는데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산자원을 이용하는 어업인들은 수산자원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우리 앞바다 자원은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양식 성공사례 2題-경남 거제수협 김선기 조합장 “품종 선택만 잘하면 해외시장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경남 거제수협 김선기(42) 조합장은 내로라하는 어류양식업체 3개를 경영하면서 2000여 조합원의 소득증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경영자다. 김 조합장은 지난해 7월 아무도 생각지 못한 해삼 종묘생산에 성공, 이를 어민들의 소득증대로 연결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해삼은 해저의 모래나 뻘 속에 포함된 유기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어느 해역에서도 양식이 가능하다.”며 “양식대체 품종으로 적격”이라고 강조했다.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진 넙치·우럭 등을 대신할 경우 생산량 조절로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해삼은 판매가 용이해 1석2조라는 것이다. 지난해 울진 어류센터로부터 종묘를 분양받은 ‘강도다리’도 ‘대박’이 예감된다. 곧 채란할 수 있어 종묘를 대량으로 생산할 채비도 갖췄다. 희귀종을 선호하는 중국 바이어들이 몸길이 5㎝를 기준으로 마리당 3달러에 사겠다며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6남매의 맏이로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그는 거제고를 졸업한 84년 피조개 양식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고,2년 후 우렁쉥이 종묘생산에 성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넙치와 우럭 종묘를 생산, 히트를 쳤다. 그는 “대량생산의 ‘노하우’는 초기 먹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먹이의 영양과 양, 방법, 시기 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의 수산통계는 엉터리”라며 정확한 통계와 어자원 보호를 위해서는 수산물 ‘강제상장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임의상장제로는 집계가 제대로 될리 없고, 치어 남획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1차 산업도 하늘만 쳐다보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배우고 연구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거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양식 성공사례 2題-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2리 아미노산이 풍부한 건강식품 참전복 등의 양식사업으로 ‘부자(富者) 어촌’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2리 어촌계. 이 마을은 지난 96년부터 황폐화된 마을어장을 새롭게 단장, 고부가 품종인 참전복을 비롯해 성게·미역·해삼 등을 대량 생산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자연산 참전복 6.6t을 비롯해 미역 등 어패류 50여t을 생산,37명의 계원들이 가구당 27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을어장의 연간 어업생산에 따른 어촌계원들의 수입은 50만원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어촌계는 지난 10년 동안 스스로 어린 전복 100만 마리를 방류하는가 하면, 불가사리 등 어패류 해적생물 퇴치와 함께 오·폐수 수거작업 등을 꾸준히 벌여 왔다. 이른바 어촌계원들이 타율적 어업관리에서 벗어나 어장과 어자원을 직접 관리하는 ‘자율관리형 어업’을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2002년 전국 최우수 어촌계로 선정돼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사업비 10억원 전액도 양식장 개발사업에 투자했다. 아울러 매년 어촌계원들의 수익금 가운데 20%를 적립했다가 다시 어장에 투자하는 등 ‘기르는 어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어촌계는 이와 함께 양식장 개발과 관광기반 조성을 위해 1㏊의 먹이어장을 개발하고, 전복초를 이용한 양식 및 보라성게 채취 체험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근 들어 나정2리 어촌계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서·남해 어민 등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규섭(53) 나정2리 어촌계장은 “이런 추세라면 2007년쯤에는 가구당 4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①어장 황폐화 주범 고테구리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①어장 황폐화 주범 고테구리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해양수산부에서 어선감척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연안어선은 90년대 중반부터 실시됐으며 어장황폐화를 가져온 소형기선저인망어선에 대해서는 이달부터 본격적인 단속과 함께 정리에 들어갔다.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어천을 다섯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어장 황폐화를 가져온 소형기선저인망어업은 속칭 고테구리로 불린다. 일제때 우리나라 연안에서 일본인들이 자행한 어법으로 광복이후 국내 어민들도 도입했다. 당시는 무동력이어서 어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어업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시켰다. 1953년 수산업법이 제정되면서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연안에서의 조업이 금지됐으나 50년이 넘도록 쉬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남 1815척… 절반넘어 해양수산부가 소형기선저인망어선 정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조사한 결과 국내 고테구리어선은 3586척. 지역별로는 전남이 1815척(50.6%)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남((726척)·전북(656척) 등 순이며, 경기에는 단 한척뿐이다. 대부분 어업허가를 갖고 고테구리어업을 하고 있으며, 무허가 어선은 499척에 불과하다. 고테구리 어선들은 경남 홍도 및 남해 세존도, 전남 소리도와 백도주변 해역, 서해안은 전북 위도와 어청도사이 해역을 훑고 다닌다. 지난해 8월 이후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부는 제주근해까지 내려가 조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도 김상옥 어업지도계장은 “도내에 선적을 둔 10t급 고테구리 10여척이 추자도 근해에서 조업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요즘은 주로 야간이나 새벽에 조업하면서 단속을 피하고 있지만 종전에는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조업했다.30∼50척씩 선단을 이뤄 조업하다 단속에 조직적으로 맞서거나 예사로 단속 공무원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업지도선 고의로 들이받기도 지난해 8월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불법어업을 단속하던 공무원이 폭행을 당했고,2003년 2월에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고테구리 어선을 적발한 공무원 3명이 어민 김모(42)씨가 휘두른 흉기에 부상을 입었다. 또 지난해 6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어업지도선이 고테구리선을 적발, 선원을 검거하려고 하자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27척이 몰려 방해했다. 고테구리 어선이 어업지도선을 에워싼 채 1척이 돌진, 선박을 파손시켰으며, 다음날에는 여수지역 어민들이 여수신항에 정박 중인 어업지도선을 국동항으로 강제예인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고테구리는 지난 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성행했으나 동해안과 제주해역에서는 7∼8년 전쯤 근절됐다.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해안에서는 여전히 고테구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어업에 대한 당국의 단속은 미온적이었고, 처벌이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지역경제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반짝 단속에 그쳤고, 지난 96년이후 연간 3000여건이 적발되지만 생계형 범죄라는 이유로 벌금형으로 선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해양부는 지난해 8월부터 법무부와 검찰, 해양경찰청, 행정자치부 및 지자체 등과 합동으로 불법어업은 물론 불법어획물 유통에 대해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고테구리 조업은 강력한 단속에 크게 위축됐지만 불법조업은 여전하다. 지난달 29일 자망어선 선주 유모(54)씨와 통발어선 선장 제모(51)씨가 고테구리 어업을 하다 통영해경에 긴급체포됐다. ●연안 어업소득의 1.5배 달해 어민들이 고테구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손쉽게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테구리 어선의 연간 소득은 2500만∼6500만원으로 여타 연안어업에 비해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어민회 총연합 김인규 의장은 “수입이 얼마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한달에 15일정도 조업하는 것으로 보고 판단하라.”며 정확한 수입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 공무원들은 부부가 조업하는 3∼5t어선의 경우 한번 조업으로 30만원정도 벌어 기름값 등 경비 10만원을 제하고도 20만원쯤 남긴다고 설명했다.10t이상 대형은 이보다 훨씬 높다. 선원 3명이 4∼5일 조업으로 400만∼500만원을 거뜬히 번다는 것이다. 고테구리 그물에 걸리는 어류는 고급 횟감인 넙치와 돔을 비롯, 새우 문어 등 저서어종. 자연산 선호풍조에 따라 활어는 부르는 게 값이다. 아울러 몸길이 2∼3㎝정도의 치어는 가두리양식장에 넘길 수 있어 판매도 손쉽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고테구리 어업이란 소형기선저인망어업인 고테구리(小手繰)는 주로 20t 미만의 소형어선을 이용, 바다 밑바닥을 그물로 끌어 고기를 잡는 저인망 어업을 일컫는다. 고테구리 어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25∼30㎜ 크기의 촘촘한 그물망코로 만들어진 어구를 사용, 치어부터 성어까지 온갖 어종을 싹슬이해 자원을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고테구리는 일제시대때 우리나라 수역에서 불법으로 고기를 잡던 일본 기선저인망 어업이 그 유래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그만 목선인 무동력선을 이용하고 어구나 고기잡이 기술이 원시적인 수준이어서 그다지 문제가되지 않았는데, 광복이후 사회 질서가 혼란한 틈을 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고테구리 어업을 막고 수산자원 보호 등을 위해 1953년 연안수역에서의 기선저인망 영업을 금지시키는 수산업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1965년 한·일어업협정때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어민들을 지원하자 일부 어민들이 동력선을 구입, 고테구리 어업에 나서는 등 한때 전국적으로 그 규모가 5000척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어업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어선 한척이 자루모양의 그물을 로프로 연결해 바닥을 끌면서 고기를 잡는데 어구 입구를 넓힐 수 있는 전개판(展開板)을 달고 있어 어획량이 다른 어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특히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어구 끝부분에 자루를 매달아 놓아 치어의 남획은 물론, 어구가 바다 밑바닥을 끌게 돼 생태계를 파괴시켜 연안 어족자원의 씨를 말리는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바다청소선 ‘환경1호’ 홍기주 선장 양식장이 늘고 대형그물 사용 횟수가 증가하면서 바닷속이 쓰레기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해양부는 지난해 조사한 국내 10대 어장의 쓰레기 양은 2만t이고 연안어장으로 확대하면 40만t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수거실적은 2678t이고 이중 폐어망이 2400t에 그쳤다. 올해 정화 사업비는 지난해와 같은 100억원이 책정됐다.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 소속으로 전남도 내 바다 청소선인 환경 1호(120t급) 선장 홍기주(55)씨는 34년차 선장이다. 유령어업이 무엇인가. -폐그물이 올라올 때면 주렁주렁 걸려 죽은 썩은 고기들의 냄새로 코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심하다. 작은 고기나 게 등이 폐그물에 걸리면 이를 잡아먹으려는 좀 더 큰 고기가 순차적으로 걸려들어 죽어간다. 이를 어민들이 유령어업이라 부른다. 폐그물에 한 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가 없다. 불법어구량은. -지난해 여수 관내 거문도 나로도 일대에서만 폐어구와 폐기계 등 800t을 건져 올렸다. 수백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는 양식장에서 버린 10여m짜리 굵은 동앗줄과 여기에 끼어둔 고무, 태풍에 떠밀려 온 그물량이 엄청나다. 또 게나 낚지·문어 등이 들어가는 폐통발이 가장 많다는 게 문제다. 삼중자망은 길이가 200m 폭 20m도 넘는다. 농어잡는 유자망, 피조개와 새조개 채묘틀 그물 등 가지가지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새 그물도 적잖게 올라온다. 아마 달아나면서 잘라버린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작업하나. -한국해양기술원이 음파탐사기로 쓰레기 지점을 파악하거나 어민들 신고로 잠수부가 확인한 뒤 작업에 들어간다. 양식장과 어장이 형성된 곳에 쓰레기도 많다. 지형적으로 완도군과 신안군 해역은 섬으로 둘러싸여 조류의 흐름이 약해 쓰레기가 더 많다. 한 지역에서 3∼4개월씩 작업한다. 수심 7∼40m에 쇠갈고리를 던져 넣어 배를 끌면서 쇠줄로 감아 올린다. 길이 40m 폭 30m 짜리 그물이면 20t도 넘는다. 그물이 바닥 70㎝ 이상 박혀 있다가 배가 끌면서 튕겨 나와 100t이 넘는 배가 기우뚱할 때면 아찔하다. 그물이 크고 엉켜 있다 보면 2∼3일 동안 끌고 다니다 잠수부가 줄을 잘라 올리기도 한다. 이 쓰레기는 바지선으로 옮겨져 운반·처리된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해군·해경 이달말 ‘독도 合訓’

    일본정부는 5일 오후 새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한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교과서 왜곡여부를 놓고 한·일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4일 지난달말 미리 입수한 일본 교과서 합격본에 대한 분석을 거쳐 최종 평가를 내렸으며,5일 오후 5시 대응책을 공식 발표할 방침이다. 정부는 문제의 후소샤(扶桑社) 공민교과서의 경우 표지에 독도 전경(全景)사진이 게재됐고 독도영유권 주장이 실려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개악(改惡)’이라고 볼 수 있으며, 역사교과서의 개선도 대체로 미흡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독도관련 왜곡이 실려 있는 공민교과서는 독도문제에 넣어 대응하면서 역사교과서 왜곡은 이와 분리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오는 8월까지 문제의 교과서 채택률을 낮추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등과 연대해 총력 대응하는 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역사교과서가 많이 개선됐으며 특히 조선식민지 근대화론과 관련해 변화가 있었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에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우리 해경과 해군은 4월말∼5월초에 독도해역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이 이날 밝혔다. 합동훈련은 일본인의 독도 상륙, 독도 해역 및 상공 접근 등의 우발사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변인은 “이번 훈련은 지난해 만들어진 독도 위기관리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해경이 주관하고 해군은 정보제공 등 간접지원 형태로 훈련에 참여하는 것인 만큼, 해군 군함이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도 “합동훈련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전인 올해 초부터 계획됐던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박정현 김상연기자 jhpark@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5)통영의 해양문화와 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5)통영의 해양문화와 굴

    국방, 예술, 수산, 관광, 생태. 이 복잡하고 동거가 불가능해 보이는 항목들이 한 동네에 밀집된 곳을 한 곳만 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남해안 통영을 꼽겠다. 무언가 하나쯤이 돋보이는 바닷가는 많지만, 통영같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곳이 또 있을까. 이름하여 ‘조선의 나폴리’. 섬과 섬이 꼬리를 문 한려수도의 미려한 절경이 펼쳐진 가운데 하얀 집들이 초록빛 바다색과 어우러지고, 비구름이 섬 봉우리를 감싸도는 풍광은 가히 ‘조선의 나폴리’란 별칭이 어울릴 만하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탈리아의 통영’이란 표현이 오히려 걸맞을 것 같기도 한 곳. ●군사와 예술이 묘하게 어우러진 곳 그래선지 예술가들이 유난히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윤이상 김상옥 박경리 유치환. 그들의 고향도 통영이다. 임진왜란의 엄혹했던 시절,‘지고도 이긴 그 전쟁’을 상징하는 세병관이 있는 곳인가 하면, 코 앞에 한산도가 있어 당대의 피어린 해전을 돌이켜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 보니 승전무 같은 ‘국방예술’을 비롯, 나전칠기, 통영갓, 소목, 두석 같은 수공업이 발달했다.1604년 통제영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육방이 설치돼 군수품·관수품·민수품 등 다양한 수공예품이 생산되었다. 통영오광대, 남해안별신굿 같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가 가장 많이 밀집된 곳 또한 통영이다. 군사와 예술이라는, 언뜻 서로 조화될 것 같지 않은 양자가 절묘하게 결합해 예부터 예향의 본거지로 꼽혔다.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도 기실 어부 김천손의 첩보에 힘입은 것이었다. 숱하게 왜구에 시달려 온 이곳 어부들은 평소에는 고기를 잡지만 유사시에는 전선에 배치돼 그들을 물리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순신의 전략가적 자질을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그 바탕에 어부들의 숨은 공로가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통영 사람들은 배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방이 바다인 곳에서 살아 바다생활에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태평양 팔라우제도의 원주민들을 보면 그들이 천부적인 뱃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작은 배로 망망대해를 용하게도 떠다닌다. 자잘한 다도해의 섬 사이를 누비면서 거칠 것 없이 달리고, 맘 먹은 곳에 닻을 내리고, 정확하게 낚시를 던진다. 해저 지형은 물론이고 조류, 어종, 바람, 암초 등 선대에게 배우고 스스로 체득한 온갖 바다정보를 유전인자처럼 내장하고 바다삶을 살아가고 있다. 통영사람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바다를 마당 삼아 살아온 덕분에 왜병을 물리치는 든든한 파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으리라. 이순신이 새삼 강조되는 시대에, 그 이순신을 가능하게 한 인적 토대로서 바다사람들의 삶을 한번쯤 진지하게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왜란 때 통신수단으로 사용… ‘충무 방패연’ 통영의 삼덕포구, 한산도, 사량도, 견내량, 적덕, 착량, 걸망포 등은 당시 승첩의 현장이거나 함대의 병참·기항지로 제 역할을 다한 곳들이다. 전쟁이 끝나면서 지금의 통영땅 전신인 두룡포에 경상·전라·충청도 3도의 수군을 관장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옮겨오게 된다. 두룡포기사비문에 ‘서쪽으로는 판데목에 의지하고 동으로는 견내량을 끌고 있으며, 남으로는 큰바다와 통하고 북으로는 육지와 이어져 있어 깊어도 구석지지 않고 얕아도 드러나지 않아 진실로 수륙의 형세가 국방의 요충’이라 하였다. 말하자면 임진왜란이란 미증유의 전란을 겪으면서 국가적으로 건설된 계획적인 군사도시가 곧 통영이니, 그로부터 일제에 의해 통제영이 철폐될 때까지 300여년간 지속되면서 독특한 해양문화를 형성해 온 셈이다. 돌이켜 보면 ‘상처입은 용’ 윤이상 선생이 애타게 보고싶어 하던 고향도 바로 통영의 푸른 바다였다. 그는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에서도 ‘보고 싶은 고향땅 쪽빛 바다’를 애달프게 증언하지 않았던가. 그는 아마 꿈 속에서 훨훨 날아오르는 유명한 ‘충무 방패연’을 상상했을 것이다. 내륙지방에서 만든 한지 반장짜리 연과 달리 바람이 센 바닷가 통영의 연은 대문짝만 하게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 통신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유서깊은 그 연 아닌가. 그 연에 날지 못한 윤이상 선생의 비원이 서려 있는 듯하다. ‘통영문화의 지킴이’ 김세윤 문화원장은 “윤이상 선생이 통영에서 살 적만 해도 국악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며 통영의 문화적 환경을 설명한다. 그의 음악에서 한국적 정서를 읽을 수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고향 바닷가에서 싹 틔우고, 배불린 것이리라. 그는 “통영이 예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통제영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활발한 수산업에 기반한 물적 토대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향’ 만들어낸 또 다른 공신, 굴 옳은 말이다. 수많은 통영의 예술인이 외국 유학을 떠날 수 있는 배경에는 수산업으로 형성된 진취적 기질과 풍요가 바탕이 된 셈이다. 이렇듯 통영의 역사와 문화라는 것도 모두 어업에 종사하며 삶을 일궈 온 통영 사람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배태한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전통시대의 뛰어난 해군이자 노련한 어민들이었다는 사실이 곧 이곳의 역사이자 문화인 셈이다. 오늘날의 통영 어업을 이해하려면 통영항에 위치한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이란 다소 긴 이름의 조합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굴의 80%가 이 조합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굴이 없다면 통영경제도 사실상 ‘끝’이며, 도시의 소비자들도 굴 대신 금을 먹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굴껍데기를 까는 여성 노동력, 굴 양식에 필요한 자재를 공급하고 판매하는 이들, 굴을 조리해 파는 음식점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무려 4만여명이 굴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 그만큼 굴은 통영 경제에 절대적이다. 20대에 굴조합에 뛰어들어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굴 하나에 바친 이 조합 이종훈 전무를 만났다. 그에 따르면 굴은 바위에 붙어사는 바위굴, 그리고 줄에 매달아서 물 속에 드리워 키우는 수하식 굴로 나누는데, 바위굴은 전체 생산량의 10%도 안 된다.90%의 굴이 수하식이다. 그런데 그 수하식을 사람들은 ‘양식’이라고 ‘오해’한다. 굴은 엄밀하게 말해 양식이 없다. 긴 줄에 수직으로 매달아 키워낼 뿐 인공 먹이를 주거나 하는 따위의 양식과는 전혀 다르다. 굴은 양식어류와 달리 제공하는 사료가 아닌 자연 플랑크톤을 먹고 성장한다는 아주 간단한 상식을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한국인의 수산물 선호도는 높아가지만, 정작 수산물 이해도는 아직 낮다. 굴에 대해서도 엄청난 오해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도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맹종죽을 이용한 뗏목식 시설을 도입했다. 그러나 비싼 대나무값 때문에 물 속에 줄을 드리워 굴을 매다는 연승로프식인 수하식을 개발했다. 한국 굴의 대부분이 자라는 통영, 거제, 고성, 여수 바닷가에 둥둥 떠있는 긴 줄과 부표들이 바로 수하식 굴밭의 표지판이다.“수하식은 바다면적을 늘리는 일대 전환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싸게 좋은 굴을 섭취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수하식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FDA도 인정한 통영의 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바위에 붙은 작은 굴, 즉 석화를 선호한다. 반면에 알이 큰 수하식 굴은 상대적으로 낮게 친다. 바위굴은 썰물 때 성장을 멈추는 반면 수하식굴은 항상 물 속에 잠겨 있어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한다. 이런 이치를 아는 외국에서는 그래서 우리와 달리 수하식 굴을 더 위로 친다. 실제로 미국 FDA는 매년 조사관을 파견해 통영, 고성, 여수, 고흥, 거제 일대의 굴밭을 샅샅이 조사한다. 미국은 물론 EU 및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수입식품으로 인한 자국민의 공중보건상의 위해를 차단하기 위해 자국으로 수입되는 수산물에 대하여 수출국이 그 위생상태를 보장하여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이렇게 현지조사를 벌이고 있으니, 그들의 검증이 곧 상품의 보증이기도 하다. FDA는 고흥, 여수, 남해, 통영, 거제, 고성 등의 남해안 일대를 수출용 패류생산 지정해역으로 설정, 엄정한 검사기준을 적용해 수입을 허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까다로운 선진 외국에서 그 청정성을 인정해 사들이는 굴이 이곳 남해안의 수하식 굴이며, 국내 소비량도 90% 이상을 이곳에서 공급한다. 한려수도가 한국 최고의 청정해역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씨알 작은 자연산 굴이 아무래도 좋다.”는 오해로는 더 이상 우리의 식탁 안전과 소비량, 낮은 가격 등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이곳에서는 오후 6시면 전국 유일의 굴공판장이 열린다. 저마다 자신들이 생산한 굴을 박스에 담아 낸다. 굴조합 엄철규 과장은 “생산자들의 이름이 모두 등록되며, 같은 굴이라도 실명제로 체크되어 가격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굴이 클수록 비싸다. 이곳에서는 ‘벗굴’이라고 부르는, 크기가 주먹만 한 굴을 접시에 올려놓고 칼로 썰어먹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선호하는 ‘쪼잔한 굴’은 상품으로 치지도 않는다. 알이 꽉 차서 영양가가 오를대로 오른 큰 굴이 그들의 기호에 어울린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예전에 먹던 식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전국 생산량의 10%에도 못미치는 바위굴을 선호한다. 사실 바위굴 중에는 깨끗한 곳에서 나는 것도 있지만 갯가의 오염된 환경에서 채취되기도 해 식탁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일도 없지 않다. 한국인의 보수성과 과거 집착은 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거기에서 비롯된 온갖 편견과 오해가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회는 물론 전, 찜, 튀김, 구이, 국이나 죽, 밥, 젓 등 세기조차 어려운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굴은 그저 날로 먹는 것으로만 아는 실정이다. 중국에서 선호하는 굴은 말린 건굴이며, 미국인들은 통조림문화에 길들여져 면실유로 만든 통조림을 수입해 간다. 반면 우리는 이만큼 다양한 굴음식을 향유하고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의 인식은 이렇듯 보수적이다. 술꾼들 해장용으로 선짓국, 콩나물국 등은 알려졌지만 굴국은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철마가 새끼치고, 돌계집은 노래하고 통영을 떠나오면서 습관처럼 미륵섬 미륵사를 찾았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었던 효봉선사가 창건한 절이다. 그가 미륵섬에 온 것은 한국전쟁 때. 도솔암에서 도솔선원을 차려 문제(門弟)들을 거느리고 선정(禪定)에 들었다. 아름다운 다도해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아 미래사라는 현판을 걸었으니, 그도 미륵의 당래하생을 염원했던 것일까. 미래사 입구에 세운 효봉 스님 비문에 담긴 화두를 떠올린다.‘천지가 뒤바뀌고, 철마가 새끼치며, 돌계집은 노래하고, 나무장승 춤을 추다.’ 이 뒤집힘의 엄청난 미학까지 통영 바닷가에서 배우고 온다.
  • [사설] 시대착오적인 KBS의 노조 도청

    국민에게서 시청료를 꼬박꼬박 거두는 공영방송 KBS에서 최근 잇따라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노무팀 직원이 노조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하다 현장에서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 노조가 급기야는 어제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불법 도청·녹음을 하다니. 노조의 성명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군부독재 정권 아래서나 있을 법한,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작태이다. 정 사장은 사과문을 발표해 노무팀 차원이 아닌, 담당직원 개인의 의욕과잉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필요하면 검찰 수사를 벌여서라도 도청에 연루된 임직원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도청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도 KBS에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들이 지난 열흘새 잇따라 일어났다. 일본 해역에서 강진이 발생했을 때는 50분이 더 지나서야 뉴스 특보를 냈고,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누드 패러디와 동해 대신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를 방영하는 등 거듭 물의를 빚었다. 이러니 KBS를 두고 나사가 빠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KBS는 지난해 638억원 적자라는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다.2002년에 1032억원의 흑자를 낸 것에 견주면 2년새 1600억원이상의 뒷걸음질 경영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사가 함께 국민 앞에 반성하고 경영개선을 위해 ‘제 살을 도려내는’ 특단의 노력을 해야 할 처지이다. 이번 도청 사건은 물론 엄중히 처리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최근 KBS의 위기 국면에서 노조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KBS 노사는 이번 일을 신속히 마무리지은 뒤에는 힘을 합쳐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 [뉴스플러스] 99년 독도해역서 한·미 군사훈련

    지난 1999년 국민의 정부 당시 독도 인근 해역에서 비공개리에 한·미 해상군사작전이 실시돼 일본측이 항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장성민 대표는 2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일본의 대(對)동북아 전략과 한반도’포럼에서 이같이 밝히고 당시 일본측이 주일 한국대사를 소환, 훈련 중단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1999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쯤 실시된 ‘독수리연습’(Foal Eagle) 당시 독도 해역이 연습지역에 포함된 적이 있다.”고 확인했다. 장 대표는 당시 한국 정부가 “독도는 우리 수역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으며, 외교전으로 비화되지 않고 마무리됐다고 소개했다.
  • 부산 가덕도·진해만 패류독 검출

    부산 가덕도와 경남 진해만 일부 해역에서 마비성 패류독소가 검출돼 이 지역에서의 패류 채취가 금지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5일 전국 연안에 대해 마비성 패류독소 검출여부를 조사한 결과, 진해만 동부해역인 마산시 덕동과 난포, 진해시 명동, 거제시 칠천도 등의 진주담치(홍합)에서 100g당 37∼73㎍(마이크로그램)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특히 부산 가덕도(천성동)의 진주담치에선 허용기준치인 100g당 80㎍을 초과하는 패류독소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수산과학원에서는 가덕도 해역과 마산시 덕동 연안 해역에 대해선 패류 채취를 금지시키는 한편 진해만 등 패류생산 해역에 대해 패류독 조사횟수를 늘리고 있다. 패류독이 다량 축적된 패류를 사람이 섭취하면 중독되는데 보통의 경우 30분 내에 입술과 혀·안면 등에 마비증세가 나타나고 심할 경우 호흡마비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연안에서 발생하는 마비성 패류독은 해수 온도가 8℃ 부근에서 검출되기 시작해 11℃에서 허용기준치를 초과하고 20℃ 이상으로 상승하면 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당분간 패류독 농도가 증가하면서 인근 지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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