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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6] 중국이 바라보는 서해 5도와 수역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6] 중국이 바라보는 서해 5도와 수역

    서해 NLL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는 양측의 간극이 조금씩 메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서해의 남북 접경수역을 마주하는 중국의 태도는 더 복잡하다. 남북 NLL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해양안보 측면에서 서해 5도의 질서 변화는 중국에게도 매우 민감해서다. 산둥반도 웨이하이(威海)에서 백령도까지 거리는 약 178㎞에 불과하다. NLL의 서쪽 한계는 북황해로 이동하는 통로의 중앙까지 뻗어 나간다. 산둥반도 위쪽이어서 북한과 중국 모두에게 불편한 것은 틀림없다. 북한과 중국의 해상활동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그 길목을 위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조임목(choke point)이다. 한국이 통제하는 형태의 NLL 선이 안정화되는 일은 중국에게도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다. 지역해 전략에서도 서해 5도에 대한 중국의 이해는 해양자원 확보, 핵심 해상교통로 접근, 군사활동의 수월성, 제3국(미국)의 진입 차단에 달려 있다. 역설적이게도 신뢰의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남북관계는 중국의 이익을 적절히 투영하고 유지하는 발판이 됐다. NLL과 한강 하구를 싹쓸이 하는 중국의 3무 어선(무허가, 무등록, 무검사)은 남북한 해상 경계선을 오가며 자원을 독점했다. 남북 해상 교류의 장벽이 된 NLL과 서해 5도 해역은 중국을 북황해와 남황해를 관통하는 핵심 통항로의 유일한 이용자로 만들어 주었다. 이 와중에 중국은 황해 124도를 작전구역으로 설정하고, 광역 해양조사와 대형 부이를 설치하는 등 서해를 점진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남북한 접경수역의 민감성을 자국의 지역해 전략에 그대로 이용해 왔다. 서해 5도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민감하다. 중국의 해양패권을 견제하는 미국의 해양세력도 남북한 특수한 관계로 정의되는 NLL과 주변 수역 진입이 매우 조심스럽다. 이 지역은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가 관리하는 한강 하구, 북한과 유엔사가 합의한 비무장지대와도 다르다. 국제적 민감성은 서해 5도 주변 해역에서 남북한 외의 세력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또한 중국에겐 호재로 작용한다. 중국이 제3국의 간섭과 남북의 견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남북을 관통하면서 서해를 통제하고, 군사적 활동 반경을 확대할 수 있는 이유다. 남과 북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질서가 중국의 서해 5도 진입과 역할 안정화의 근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70여년 이런 질서를 전환시킬 만한 반전의 시나리오는 없었다.중국에게 남북 서해 접경수역의 질서는 현상유지가 최선이다. 국제적으로는 남북 갈등의 완충지대이면서, 제3국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방파제다. 지역패권이 점증하는 분위기에도 이 지역 만큼은 중국의 영역별 이익 진출이 여전히 가능하다. 남북한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이익이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중국의 이 지역 진출 이익을 변화시킬 요소는 있다. 남북의 관리방식 변화다. 남북이 신뢰할수록 중국의 황해 활동범위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남북 접경수역의 새로운 관리 질서라는 점에서 국제적 긴장완화를 위한 지원도 강력한 억제 수단이 될 것이다. 서해 5도와 NLL을 축으로 하는 남북의 평화적 관리모델은 지역적 파급성이 매우 크다. 일단 NLL의 역할이 경계선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NLL은 산둥반도 이북의 38도선을 넘어 북황해 중심부에 진입하는데 새 관리모델은 이 선을 축으로 하는 일정 범위의 이북(以北)과 이남(以南)을 포괄해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해 5도에 대해 남북이 주도해 의사 결정을 하면 분단국 갈등 완화라는 국제적 당위성과 접목돼 호소력이 높아진다.이렇게 되면 남북한과 중국의 서해 경계가 획정되지 않더라도 중국의 진출은 제한되고 자제될 수 밖에 없다. 서해 NLL과 새 관리 모델이 지역해 전체의 행위모델로 확대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남북한만이 할 수 있다.
  •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6] 북한이 바라보는 서해 5도와 수역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6] 북한이 바라보는 서해 5도와 수역

    ‘내재적 접근’의 필요성 평화는 실리적 이해가 서로 얽혀 있지 않으면 모래 위의 성처럼 쉽게 무너져 내린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경제적 실리로 군사적 대결을 덮어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서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행동은 그 이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경쟁이 따르기 마련이고, 나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면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대화와 협상을 위해서건, 백전불태(百戰不殆)를 위해서건 상대방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는 것은 중요하다. 불완전한 정전협정과 NLL 설치 정전협정은 적대행위와 무력충돌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체결되었다. 하지만 해상의 분계선은 지상과 달리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서해의 경계는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道界)를 연장한 A-B 선으로만 그어졌다. 그마저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섬들의 관할 기준을 나타내는 표시였을 뿐이다. 다만 서해 5도는 A-B 경계선 북쪽에 있었지만 유엔사 통제 아래 두기로 결정되었다. 북방한계선(NLL)은 유엔사 내부적으로 초계활동과 어민들의 진출 범위를 제한하여 무력충돌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자 설치되었다. 서해 5도 주변 수역은 정전협정에 명시된 인접해면 존중 원칙에 따라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가상의 선으로 연결한 NLL은 사실 북한과 합의되거나 설정 직후 통보된 적이 없다. 실제 유엔사도 1990년대 이전까지 서해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인접해면을 침범했다고 문제 삼았지, NLL을 넘어 왔다고 항의하지 않았다. 공동어로 제안을 통한 체제 우위 과시 북한은 1955년 3월 내각 결정을 통해 12해리 영해를 선포하였다. 하지만 전쟁 직후 북한은 12해리 영해를 담보할 군사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 사이 남한의 어민들은 해마다 5~6월이 되면 군 당국의 눈을 피해 북한 해역 깊숙이 들어가 조기를 잡았다. 북한은 어선들이 연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진입하게 되면 나포하여 조사를 벌였다. 조사 과정에 어부라고 판단되면 평양 관광도 시켜주고 어선도 수리하여 돌려보냈다. 북한은 1958년부터 남한 어민들이 일정한 규칙을 지키면 어장을 개방하겠다는 제안도 하였다. 1967년까지 계속된 이 제안은 남한의 경제 수준보다 앞섰다는 체제 과시의 표현이기도 했다.해상경계선에 관한 문제제기 북한은 1973년 12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해상경계선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북한은 정전협정 어느 조항에도 “계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서해 5도에 출입하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였다. 북한이 해상경계선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첫째, 북미간 직접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1973년 11월 유엔에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유엔군 사령관은 정전협정의 서명 주체이자 그 이행의 담보를 책임진 당사자였다. 북한은 유엔군 사령관이 사라지게 되면 정전협정이 개정되거나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것을 기대하며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북한은 서해 5도 수역이 불완전한 정전협정의 대표로 쟁점화하기 좋은 주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있었다. 북한은 데탕트 시기 한반도 문제가 미중간 대화를 통해 결정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언커크 해체 문제와 관련하여 주한미군 주둔과 연계시켜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는 북한의 의도와 달리 미국의 뜻대로 표결 없이 처리하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 그러자 북한은 과거 중국 어선들도 활동했던 서해5도 수역을 분쟁 지역화하고자 했다. 실제 북한은 1962년 중국과 국경조약을 체결하며 압록강 하구의 섬들에 대해서는 중국의 양보를 얻어냈지만, 영해에 관해서는 압록강 하구인 동경 124도 10분 6초의 기준선에 합의함으로써 손해를 떠안았다. 셋째, 1973년 12월 개막된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회의는 바다에 관한 국제사회의 규범을 제정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남북한은 분단 후 처음 유엔 무대에서 각자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 즉 북한은 이 회의 개막 이틀 전에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 등의 설정에 있어 남한보다 우위에 서려 했다. 북한은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가 진행 중인 1977년 6월에 200해리 EEZ를, 8월에는 경계수역을 각각 선포하였다. 처음으로 논의된 NLL 문제 NLL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0년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에서였다. 이 회담에서 불가침경계선 문제는 첨예한 쟁점 중 하나였다. 남한은 ‘영역’을 내세웠고 북한은 ‘선’을 주장했다. 각각의 강조점이 달랐던 이유는 NLL 때문이었다. 남한은 NLL이 이미 해상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이남의 ‘영역’을 강조한 반면, 북한은 NLL을 인정한 적이 없다며 새로운 경계선의 설정을 요구하였다. 결국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에는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되었다. 남한은 NLL을 기준으로 한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에 방점을 둔 반면, 북한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었다. 서해교전의 발발과 일방적 군사분계선의 선포 불완전한 합의는 1999년 6월 서해교전으로 이어졌다. 교전 당일 북한은 “당신 측이 멋대로 그어놓은 분계선을 인정한 적도, 통보받은 적도, 합의한 적도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한 달 뒤 북한은 충돌이 빚어진 것은 양측이 합의한 해상 군사분계선이 없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해상분계선 설정을 위한 회담에 나서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엔사가 응하지 않자 1999년 9월 일방적으로 해상경계선을 선포하였다. 2000년 3월에는 후속 조치로 좌우 폭 1마일의 ‘통항질서’도 발표하였다. 북한이 선포한 해상분계선은 정전협정 상의 A-B선을 기점으로 황해도 강령반도 끝단인 등산곶과 경기도 굴업도 사이의 등거리 점, 황해도 웅도와 경기도 서격렬비도 사이의 등거리 점, 중국과의 반분 교차점을 연결한 선이었다. 북한은 이 선이 A-B 선을 기점으로 했기 때문에 정전협정에도 부합하고, 등거리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유엔해양법협약 정신에도 맞는 것이라고 하였다. 남북공동어로 구역을 둘러싼 입장 차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서해에서의 무력충돌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2005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공동어로 문제를 공식 제의하였다. 김 위원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서해에서의 긴장 완화 문제를 함께 협의하자고 제안하였다.수산협력 실무협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문제는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였다. 북한은 장성급 회담에서 ① 무력충돌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해상분계선 확정 ② 공동어로 실현을 위한 군사적 대책 ③ 민간 선박의 해주항 직항 ④ 민간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안건으로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해상분계선 설정과 관련하여 남북이 기존의 모든 주장을 포기하고 통일 한반도의 영해 기선을 확정해 새로운 영해권을 내외에 선포하자고 주장하였다. 공동어로수역과 관련해서는 그 구역을 강화만 일대의 넓은 수역까지 포함하자고 제안하였다. 아울러 NLL 때문에 해주항으로 입항하는 민간 선박들이 백령도 서편으로 우회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며 제주해협 통과 문제와 함께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제주해협 통과 문제만 해운회담으로 이관되고 나머지는 모두 거부되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제안과 후속 회담의 답보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정상회담에서 서해 문제를 군사회담에서 논의하니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양 정상이 함께 풀어낼 것을 제안하였다. 노 대통령은 안보군사 지도 위에 평화경제 지도를 덮는 방식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자고 역설하였다. 김정일 위원장도 노 대통령의 해주 특구 제안에 난색을 표하다가 점심 식사 후 전격 받아들였다. 그 결과 10·4 선언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이 명시되었다. 정상회담 직후 국방부장관과 인민무력부장 사이에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되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었을까, 양측은 공동어로구역의 기준점을 두고 팽팽히 맞섰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공동어로구역 설치를 위해 새롭게 해상경계선을 긋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NLL을 인정할테니 자신들의 해상경계선도 인정하라며 그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으로 삼자고 제안하였다. 반면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NLL을 기준으로 한 등면적 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분계선의 설정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고 진행된 회담에서 남북은 공동어로구역의 기준점을 두고 논쟁하다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의 변화와 실리를 통한 평화 정착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2018년 판문점 선언을 통해 원론적인 차원에서 재확인되었다. 아울러 그해 가을 평양에서 체결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구체화 되었다. 이 합의서에는 북한이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겠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 조항의 삽입은 10·4 선언 직후 공동어로구역의 기준점 설정 문제로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교훈을 되새긴 성과였다. 아울러 이 조항이 삽입돼 대선 과정에 불거진 ‘NLL 포기 발언’ 시비도 불식시킬 수 있었다. 북한은 NLL을 인정하더라도 경제적 이해관계로 덮어버리면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합의서에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을 군사연습 중지 구역으로 설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과거 북한이 공동어로구역 범위를 협의하면서 강화만 일대까지 넓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이 실리를 따져 본 뒤 제안을 받아들인 사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의 실무 책임자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1990년대 남북고위급회담부터 10·4 선언 이후 장성급 회담까지 NLL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새로운 해상분계선 설정을 요구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실무 책임을 맡은 회담에서 NLL을 인정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이처럼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를 포착하여 서로의 이해관계를 얽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는 실리적 이해가 얽히지 않으면 모래 위의 성처럼 쉽게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쟁의 서해를 평화와 경제의 바다로 변화시키는 봄바람이 불어오길 바란다.
  • [이슈플릭스] 남극 해저 900m, 극한 환경에 사는 미지 생명체 발견

    [이슈플릭스] 남극 해저 900m, 극한 환경에 사는 미지 생명체 발견

    남극의 차갑고 어두운 빙붕 아래와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해양 생물이 발견됐다고 미국 CNN 등 해외 언론이 15일 보도했다. 영국 남극조사단 휴 그리피스 박사 연구진은 남극 빙붕(얼음이 바다를 만나 평평하게 얼어붙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 아래, 해저 900m 지점에서 돌에 붙어 살아가는 해양 생물체의 모습이 처음으로 확인했다. 연구진은 남극 남동부 웨델해 지역의 차가운 빙하해역에 있는 빙붕 해저에서 퇴적물을 채취하기 위해 얼음을 시추했다. 깊이 900m의 시추공을 통해 남극 해저에 있는 돌에서 서식하는 해양 생명체 22개체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중에는 고생대 캄브리아기(5억 4000만 년~4억 9000만년 전)부터 지구상에 서식한 것으로 알려진 해면도 포함돼 있으며, 따개비와 관벌레 등으로 추정되는 미상의 생물도 있었다. 이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는 빙붕 아래 깊은 바다는 수온이 영하 2℃ 정도이며, 햇빛도 거의 없어 광합성이 불가능하다. 플랑크톤이 서식하는 바다와도 160㎞이상 떨어져 있어 에너지를 얻고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다. 연구진은 히드라와 말미잘, 해면처럼 다른 물체에 붙어사는 고착동물이 이토록 깊은 바다에서 발견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또 돌에 붙어서 생활하는 동안 햇빛이나 플랑크톤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거센 조류에 실려 수 백㎞를 흘러온 플랑크톤 사체로부터 영양분을 얻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를 이끈 그리피스 박사는 “거대한 빙붕 아래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서식지 중 한 곳이다. 이 외딴곳에서 해면 등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면서 “확인되지 않은 일부 생물은 완전히 새로운 종이거나 남극 대륙에 일반적으로 서식하는 종의 또 다른 종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길게는 몇 년 동안 에너지 섭취를 하지 않는 방식에 적응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이토록 강건한 유기체가 극한의 조건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외국 해역에서 불법 조업으로 나포되면 즉시 어업허가 취소

    외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해 조업하다가 나포되거나, 어선을 대체 건조한 후 기존 노후어선을 제때 폐기하지 않으면 어업허가가 즉시 취소된다. 해양수산부는 수산관계법령 위반행위에 대한 행정처분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규칙을 이 같이 개정해 25일부터 시행한다고 24일 밝혔다. 해수부는 우리 어선이 해당 국가의 해역을 침범할 경우 어업정지 수준의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앞으로는 무허가로 침범조업하다 나포되면 즉시 어업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 단, 외국의 어업허가를 받고 조업하던 중에 나포되는 경우는 제외한다. 또 무등록 노후 어선의 운항으로 인한 어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후 어선의 폐기 등을 조건으로 신규 어업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치결과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기존에는 2차 위반 시 어업허가가 취소되었으나 앞으로는 1차 위반 시 어업허가를 취소한다. 행정처분 절차를 집행하는 경우 어업인이 2회 이상 계류 항구 지정 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협의를 완료한 것으로 간주, 행정처분이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사설] 후쿠시마현 ‘방사능 우럭’, 日 농수산물 검역 철저해야

    일본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잡힌 우럭에서 치명적 방사성물질인 세슘이 기준치를 넘겨 검출됐다.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가 그제 소마시 신치초 앞바다에서 잡은 우럭의 세슘 농도가 ㎏당 480베크렐(Bq) 검출돼 정부 기준치(㎏당 100Bq)의 5배, 현 기준치(㎏당 50Bq)의 10배 가까이 됐다고 밝혔다. 이곳 앞바다에서 기준치를 넘긴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생선이 잡힌 것은 2019년 2월 홍어 이후 2년 만이다. 다음달이면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1~3기가 붕괴된 지 10년이 된다. 원전 참사 직후 54개 국가·지역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수입을 막았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2월 후쿠시마 해역의 모든 어종 조업을 허용하는 등 농수산물이 먹을 만하다고 강변해 왔다. 일본의 로비가 먹혀 지난달 이곳의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국가·지역은 15곳으로 줄었다.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 중국이 빗장을 여는 데 머뭇거리자 일본은 줄기차게 수입을 재개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세슘 우럭’ 때문에 더는 할 말이 없게 됐다. 더 충격적인 것은 도쿄전력의 허술한 원전 관리 실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3일 이 지역에 규모 7.3의 지진이 덮친 뒤 여드레 만에야 이 회사가 원자력규제위원회에 보고한 데 따르면 지난해 7월 폭우에 지진계 둘이 고장난 사실을 파악하고도 7개월째 수리하지 않아 지진에 무방비였음이 드러났다. 또 원전 오염수를 보관하는 탱크 가운데 20개 안팎이 지진 때문에 원래 위치를 벗어났는데도 이 회사는 기준치를 넘긴 세슘이 가득한 탱크의 손상 여부를 맨눈으로만 확인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앞서 제출한 보고서에는 두 내용이 빠져 있어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마저 사고 있다. 안전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후쿠시마 농수산물이 국내 식탁에 오르지 않게 해야겠다.
  • 서해 인근 中보하이(발해) 해역서 1억t급 대형 유전 발견

    서해 인근 中보하이(발해) 해역서 1억t급 대형 유전 발견

    중국이 한반도 서해와 가까운 보하이(渤海·발해)에서 또 대형 유전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중국매체 관찰자망에 따르면 국유기업 중국해양석유(CNOOC)는 톈진에서 약 140㎞ 떨어진 보하이 중부 해역에서 석유·가스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유전은 매장량이 1억t급이며, 하루 평균 석유 300t과 천연가스 15㎥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CNOOC 설명이다. CNOOC는 해양석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작업을 추진해왔으며, 지난 2년간 보하이에서 대규모 유전을 잇달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CNOOC는 지난해 3월에도 보하이 남부 라이저우만에서 연간 40여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을 찾아냈다고 밝힌 바 있다. CNOOC는 “이번 발견은 석유·가스의 안정적인 공급, 중국의 에너지 안보 및 대외 의존도 축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CNOOC의 원유 생산 증가량은 2년 연속 중국 내 3대 석유기업 가운데 가장 많았으며, 지난해에는 중국 전체 원유 생산 증가량의 8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입천장 까져도 홀라당… 바다향 매생이 호로록

    입천장 까져도 홀라당… 바다향 매생이 호로록

    전남 남해안에 매생이가 풍년이다. 수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해안가는 끝물이다. 깊은 곳에서는 3월까지도 생산된다. 매생이는 한때 김양식장 ‘잡초’로 여겨졌다. 어민들은 양식장 김발에 달라붙는 매생이를 제거하느라 애를 먹었다. 골칫거리였던 게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건강식 또는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뜨끈한 매생이국은 목을 넘기는 부드러운 식감과 입안에 퍼지는 바다 향이 일품이다. 10여년 전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에 ‘매생이의 계절’이 소개되면서 ‘국민 음식’으로 떠올랐다. 녹조류인 매생이는 원래 ‘잉여’가 아니었다. 조선조에는 궁중음식으로 진상됐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다.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고 맛은 달고 향기롭다”고 기록돼 있다. 예부터 선조들이 즐기던 해조류였으나 1980~90년대에 유행하던 김양식에 잠시 밀려났을 뿐이다. 매생이 인기는 최근 상종가다. ‘웰빙과 다이어트’ 열풍에 힘입은 덕택이다. 특히 냉동과 건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겨울 한철 식품에서 사계절 음식으로 변신했다. 호남지방의 웬만한 도시에는 매생이 음식을 주 메뉴로 파는 식당이 즐비하다.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장흥 매생이가 최고 매생이는 생육 조건에 따라 맛과 향 등 품질 차이가 크다. 우리나라 매생이의 대부분은 전남 완도~장흥 대덕·회진~보성~고흥 해안으로 이어지는 득량만에서 나온다. 득량만은 해양 수중 환경지표인 ‘잘피’ 군락이 번성할 정도로 청정 갯벌이 발달해 있다. 이런 환경에 적절한 수온·유속·조수 간만의 차이 등이 더해지면서 매생이 생육 조건과 딱 들어맞는다. 완도 고금·약산도~득량만 초입에 위치한 장흥 대덕 매생이는 품질이 최고로 꼽힌다. 장흥산은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다고 해서 ‘찰매생이’로도 불린다. 장흥군에 따르면 대덕읍 등 160여 어가가 매년 1000여t을 생산한다. 한때 초콜릿 등 과자와 건강 기능식품으로 가공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주로 생물 또는 동결 건조 상태로 유통된다.우리나라에서 매생이 양식이 처음 이뤄진 곳도 장흥 대덕읍 내저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현재 50여 가구 중 20여 가구가 매생이를 양식한다. 앞바다에 장대를 세워 발을 펼치고 매생이 포자를 붙이는 방식이다. 조권규(53)씨는 “동네 앞바다가 매생이 생육조건에 최적이란 사실이 우연한 기회로 알려졌다”며 “같은 해역이라 할지라도 수심과 조류, 일조량 등에 따라 품질이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조씨에 따르면 20여년 전 마을의 한 주민이 김과 파래를 생산하기 위해 대나무 발을 설치했다. 그러나 김 등 상품성 있는 해조류는 붙지 않고 시퍼런 매생이가 치렁치렁 자라났다. 매생이를 버리기 아까워 읍내 전통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김양식장보다 관리하기 쉽고 잘 팔린다는 소문이 퍼졌다. 같은 마을 주민 몇 명이 매생이 양식에 가세했다. 해마다 풍성한 수확을 내줬다. 때마침 허영만이 만화로 소개한 데다 웰빙 열풍도 불며 불티나게 팔렸다. 마침내 20여 가구가 마을 앞바다 40㏊에 양식장을 설치하고 공동 생산한다. 이웃 마을인 옹암리를 비롯해 인근 보성·강진·완도 약산 등 득량만 일대 전 해역으로 생산지가 확대됐다.이 가운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내저마을 매생이를 최고로 친다. 때깔부터 다르다. 더 검푸른 빛을 띠고 끓이면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식감이다. 마을 앞바다가 썰물 때 뻘밭이 드러나고 밀물 때 평균 수심도 2m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양식장 발에 붙은 매생이는 물이 써면 자연스레 뻘 바닥에 달라붙는다. 청정 갯벌에서 각종 미네랄을 흡수한다. 양식장 앞바다는 내륙 쪽으로 반구형을 띠고 있다. 난바다에서 아무리 큰 파도가 치거나 사리 때 물살이 거세게 흘러도 이곳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지형이 북서풍을 막아 준다. 이는 매생이 포자의 활착과 생육에 최적 조건이다. 겨울 한철 가구당 7000만~8000만원을 버는 효자 수산물이다.●매생이는 다이어트와 속풀이에 안성맞춤 매생이국은 술을 마신 후 숙취 해소용으로 으뜸이다. 콩나물보다 아스파라긴산과 비타민이 3배 이상 많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분이 풍부해 노장년층 여성들이 선호하는 식품이다. 칼륨·아이오딘·칼슘 등이 많이 들어 있어 뼈질환자나 성장기 아이들에게도 좋다. 칼로리가 적고 식이섬유 덩어리로 이뤄진 만큼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는다. 다른 해조류에 비해 비타민 등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매생이를 파는 음식점은 10여년 전쯤부터 생산지인 장흥읍 ‘정남진 토요시장’ 일대를 중심으로 성업하기 시작했다. 한우와 키조개·표고버섯 등 기존 지역 특산품 ‘3합’ 음식에 자연스레 매생이가 더해졌다. 토요시장에는 ‘황손 두꺼비 식당’, ‘끄니 걱정’ 등 매생이 탕이나 국을 파는 식당이 즐비하다.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결합된 이색적 전통 시장으로 단체 관광객이 주 고객이다. 이곳에서 10여년간 식당을 운영하는 위효숙(65·여)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손님이 줄긴 했지만 주말에는 외지인들이 꽤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위씨는 말린 디포리(밴댕이)와 멸치를 반반씩 섞고 무·양파·다시마를 끓여 육수를 만든다. 이 육수에 매생이와 키조갯살을 잘게 썰어 넣고 잠깐 끓인 뒤 생굴을 넣어 살짝 익힌다. 참기름 몇 방울을 넣으면 고소함이 더해진다. 매생이는 지역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된다. 전라도 해안가에서는 매생이를 국물이 거의 없이 뻑뻑한 상태로 끓여 먹는다. 솥에 매생이가 잠기지 않을 정도로 물을 살짝 넣고 국자 등으로 휘저으면서 2~3분 정도 끓인다. 간장으로 가볍게 간을 해서 먹는다. 대도시 일부 식당은 상대적으로 국물을 더 많이 붓고 생굴 등을 넣어 끓여 낸다. 산낙지를 칼로 잘게 쪼아 매생이와 버무린 뒤 부침개로 지져 먹기도 한다. 김치를 잘게 썰어 넣은 매생이국을 비롯해 칼국수·떡국·죽·계란말이·탕 등 다양한 요리로 응용된다. 매생이는 뜨거울 때 입이 데기 십상이니 조심해야 한다. 딸을 못살게 구는 ‘미운 사위’에게 장모가 내놓는 음식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매생이를 끓이면 엽체가 머리카락처럼 촘촘하게 뭉쳐지면서 열기를 속에 담는다. 김도 많이 나지 않고 색깔도 검푸르러 차가운 음식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조심하지 않고 덥석 삼키다간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기도 한다. 겨울철에 차갑게 식혀 먹어도 그만이다. 광주에서 매생이 요리집을 운영하는 이모(61·여)씨는 “제철인 요즘 나는 매생이 맛이 최고”라며 “찬바람이 부는 겨울날 특별식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살인적 파도에 40시간… 뒤집힌 배 안에서 죽음 뒤집은 사투

    살인적 파도에 40시간… 뒤집힌 배 안에서 죽음 뒤집은 사투

    전복된 어선에 갇혀 있던 선원이 40여 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배가 전복됐지만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에어포켓(뒤집힌 배에 남아 있는 공기층)이 있었기 때문에 선원이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포항해양경찰서는 21일 오전 10시 23분쯤 경북 경주시 감포항 동쪽 해상에서 전복된 9.77t급 연안통발 어선 거룡호의 선내를 잠수사가 수색하던 중 어획물 창고(어창)에 쓰러져 있던 한국인 기관장 A씨를 구조했다. 지난 19일 오후 6시 46분쯤 거룡호가 전복됐으니, A씨는 40여 시간 동안 차가운 물과 칠흑 같은 어둠, 죽음의 공포와 싸운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이날 구조된 기관장 A씨는 저체온증이 심각했지만, 간단한 말 등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서 “40여 시간 동안 전복된 선박에서 버틴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A씨가 ‘어선이 전복되기 직전에 승선원 6명 가운데 4명이 구명조끼를 입고 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면서 “총력을 다해 나머지 실종자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A씨는 사고가 난 뒤 다른 4명과 같이 탈출을 하려다가 발을 다쳐서 어창으로 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가 뒤집힌 후 어창에는 물이 완전히 차지 않아 공기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이 덕분에 그는 사고 발생 약 40시간 만에 해경 구조대원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앞서 해경은 이날 오전 9시 20분쯤 사고 선박 인근 바다에서 베트남 국적의 선원 B(37)씨를 발견했다. 그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의식과 맥박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B씨는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에 해경과 해군 등은 사고 해역 주변에 함정 10척과 항공기 7대 등을 동원해 나머지 선원 4명을 구조하기 위한 수색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날 동해 전 해상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린 상태로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수색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포항해양경찰서는 지난 19일 오후 6시 46분쯤 감포항 동쪽 42㎞ 바다에서 거룡호가 침수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거룡호에는 한국인 2명과 베트남인 3명, 중국 교포 1명 등 모두 6명이 배에 타고 있었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에어포켓 덕분” 기적 일어났다…경주 전복 어선 선원 1명 구조

    “에어포켓 덕분” 기적 일어났다…경주 전복 어선 선원 1명 구조

    잠수사 선체 내부 수색 중40시간 만에 생존 선원 1명 구조선내 형성 공기층 ‘에어포켓’ 덕분인 듯 경주 앞바다에서 전복 사고가 난 어선 안에서 선원 1명이 4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전복된 배 안에 형성된 공기층 ‘에어포켓’ 덕분으로 보인다. 해경은 21일 오전 10시 23분쯤 전복 어선 내부에 잠수부를 투입해 수중수색한 결과 실종된 선원 1명을 발견했다. 지난 19일 전복 사고가 난 지 3일째, 39시간 37분 만이다. 해경은 뒤집힌 선박 내부에 형성된 에어포켓 덕분에 생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행히 의식이 있었고, 저체온증 등 증상을 보여 해경 헬기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구조된 선원은 서울이 주소지인 55세 한국 선원으로 알려졌다.앞서 오전 9시 20분쯤에는 사고 인근 해역서 실종 선원으로 추정되는 1명이 발견됐지만 의식과 맥박이 없어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19일 경북 경주 앞바다에서는 홍게잡이 어선이 전복돼 한국인 2명, 베트남인 3명, 중국 교포 1명 등 선원 6명이 실종됐고, 해경과 해군 등이 3일째 수색에 나서고 있다. 해경은 사고 어선 내 수색을 강화하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경주해상 전복어선 선원 6명중 1명 40시간만에 극적 구조…1명은 의식없이 발견

    경주해상 전복어선 선원 6명중 1명 40시간만에 극적 구조…1명은 의식없이 발견

    경북 경주시 감포항 동쪽 해상에서 9.77t급 홍게잡이 어선 거룡호가 전복돼 타고 있던 선원 6명 가운데 2명이 사고 이틀만인 21일 구조됐다. 구조된 선원 가운데 뒤집힌 배안에서 발견된 1명은 의식이 있으나 바다위에서 구조된 1명은 의식과 맥박이 없는 상태다.경북 포항해양경찰서는 지난 19일 오후 경주시 감포항 동쪽 해상에서 전복된 거룡호 선원 2명을 해상과 배안에서 이날 오전 각각 발견해 구조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이날 오전 9시 20분쯤 사고 선박 인근 바다에서 실종 선원으로 추정되는 1명을 발견해 구조했다. 구조된 사람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의식과 맥박이 없는 상태다. 해경은 이어 오전 10시 23분쯤 어선 안에서 잠수사를 동원해 수색을 하던 중 뒤집힌 배 뒷쪽 어획물 저장고(어창)안에서 선원 1명(한국인 기관장)을 추가로 발견해 구조했다. 배안에서 구조된 기관장은 의식이 있지만 저체온증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선박은 침몰되지 않고 뒤집힌 상태로 바다위에 떠 있어 물이 들어차지 않은 공간(에어포켓)이 있었으며 구조된 기관장은 이 공간에서 40여시간을 버틴 끝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해경에 따르면 구조 선착대가 사고해역에 도착하자 마자 선박안에 생존자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선체를 두들겨 생존반응을 살폈지만 배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해경은 생존반응은 없었지만 실종선원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구조하기 위해 선체안 수색을 진행한 끝에 1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두 사람을 헬기를 이용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해경에 따르면 이날 배안에서 구조된 기관장은 “어선이 전복되기 직전 승선원 6명 가운데 4명이 구명조끼를 입고 나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해경과 해군 등은 사고 해역 주변에 함정 10척과 항공기 7대 등을 동원해 나머지 선원 4명을 구조하기 위한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해경에 따르면 동해 전 해상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린 상태로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수색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고 주변 해역은 풍속이 초속 13~16m, 파고가 2.5~3.5m다. 앞서 포항해양경찰서는 지난 19일 오후 6시 46분쯤 감포항 동쪽 약 42㎞ 바다에서 거룡호가 침수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신고를 받고 해양경찰과 해군 등은 함정과 항공기, 공군 항공기 등을 사고해역에 투입하고 조명탄을 사용해 야간수색을 벌여 3시간 만에 신고 지점에서 4㎞쯤 떨어진 해상에서 뒤집힌 어선을 발견했다. 해경 등에 따르면 전복 어선은 포항 장기에 선적을 둔 연안통발 홍게잡이 배로 한국인 2명과 베트남인 3명, 중국 교포 1명 등 모두 6명이 타고 있었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속보] “경주 전복 어선 선원 추정 1명 발견”

    [속보] “경주 전복 어선 선원 추정 1명 발견”

    경북 경주 앞바다에서 선원 6명이 탄 어선이 전복돼 해경 등이 수색작업을 벌인 가운데, 어선 선원 추정 1명을 발견했다. 21일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앞서 19일 오후 6시 49분쯤 경주 감포 동방 약 42㎞에서 9.77t급 어선 거룡호(승선원 6명)가 침수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해경은 사고 해역에 조명탄을 투하하고 해양경찰 및 해군 소속 함정과 항공기, 공군 항공기 등을 동원해 합동 야간수색을 벌였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경주 앞바다 침몰어선 탑승 6명 이틀째 실종…해군·공군 총투입

    경주 앞바다 침몰어선 탑승 6명 이틀째 실종…해군·공군 총투입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이 지난 19일 오후 6시 49분에 경주 감포 앞 바다에서 발생한 홍게잡이 어선 침몰 사고와 관련 해경과 해군 등 관계기관에 실종 선원 수색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20일 이강덕 시장은 구룡포 수협에 마련된 사고대책본부를 방문 “실종자 수색과 가족 지원, 상황관리 및 행정지원 등에 관계기관과 적극적인 협조 체계와 동원 가능한 모든 선박을 투입, 실종자 수색에 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해군과 해경에 수색 헬기와 함정, 해양수산부에 어업지도선 등을 급파 해 줄 것과 실종자 가족보호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지시했다. 사고 어선은 지난 19일 오전 3시1분 구룡포항을 출항해 경주 감포 동방 43km해상을 항해 하던 중 오후 6시49분쯤 침수사고로 침몰했다. 구룡포 선적 홍게잡이 어선인 A호(9.77톤)에는 선장 등 한국인 2명과 베트남 선원 3명, 중국인 교포 1명이 타고 있다. 사고 해역에는 부산해경 3000톤급 대형함정 등 26척, 해군 해상초계기 1대, 해경, 공군 헬기 10대, 중앙특수구조단, 울산, 울진, 동해해경구조대를 투입해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다. 사고 해역에는 12~14m의 강풍과 3.5m의 파도가 치고 있어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경주 앞바다서 어선 전복으로 선원 6명 실종 …밤샘 수색

    경주 앞바다서 어선 전복으로 선원 6명 실종 …밤샘 수색

    경북 경주 앞바다에서 선원 6명이 탄 어선이 전복돼 해경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실종된 선원 6명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20일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49분쯤 경주 감포 동방 약 42㎞에서 9.77t급 어선 거룡호(승선원 6명)가 침수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해경은 사고 해역에 조명탄을 투하하고 해양경찰 및 해군 소속 함정과 항공기, 공군 항공기 등을 동원해 합동 야간수색을 벌여 2시간 30여분 만에 신고 지점에서 4㎞ 정도 떨어진 해상에서 전복된 어선을 발견했다. 해경 등은 함정 10척과 항공기 7대, 상선 2척 등을 동원해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나 선원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기상 악화로 어선 내부에 선원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현재 동해 전 해상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린 상태다. 전복 어선은 포항 장기에 선적을 둔 홍게잡이 배로 한국인 3명과 베트남인 2명, 중국 교포 1명 등 총 6명이 타고 있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경주서 6명 탄 어선 침수…“인명구조에 가용자원 총동원”

    경주서 6명 탄 어선 침수…“인명구조에 가용자원 총동원”

    해경 수색 중…아직 배 발견 못 해 경북 경주시 감포읍 인근 바다에서 어선 침수 신고가 들어와 해경이 수색과 구조에 나섰다. 19일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49분쯤 경주 감포읍 동쪽 약 42㎞ 바다에서 9.77t급 어선 ‘거룡호’가 침수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 어선은 포항 장기에 선적을 둔 홍게잡이 배다. 어선 승선원은 침수 중에 지인에게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룡호에는 한국인 3명과 베트남인 2명, 중국 동포 1명 등 모두 6명이 타고 있다. 포항해경은 해군과 협조해 항공기 3대와 함정 1척, 경비함 3척 등을 동원해 현장을 수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배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고가 난 해역은 풍랑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해경 관계자는 “동원할 수 있는 배와 항공기를 현장으로 긴급 출동시켜 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문 장관은 이날 오후 해수부 종합상황실에서 사고 현장의 수색·구조 상황을 점검하며 이렇게 밝힌 뒤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라”고 주문했다. 해수부는 아울러 사고해역 주변에 있는 민간 선박과 어선들에도 인명 구조와 수색작업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밧줄로 꽁꽁”…호랑이상어를 옭아맨 플라스틱쓰레기의 저주

    “밧줄로 꽁꽁”…호랑이상어를 옭아맨 플라스틱쓰레기의 저주

    천하의 호랑이상어도 플라스틱 쓰레기의 습격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19일(현지시간) 인디펜던트는 미국 하와이섬 앞바다에서 폐밧줄에 꽁꽁 묶인 호랑이상어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하와이섬 수중사진작가 제이슨 라퍼티(36)는 얼마 전 카일루아코나시 앞바다에 다이빙을 나갔다가 거대 호랑이상어와 마주쳤다. 라퍼티는 “막 다이빙을 시작한 찰나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호랑이상어였다”고 밝혔다. 최대 몸길이 9m, 최대 몸무게 1.5t의 호랑이상어(뱀상어, 학명 Galeocerdo cuvier)는 뱀상어속 흉상엇과에 속한다.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의 열대 및 온대 해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등과 배에 나 있는 줄무늬가 호랑이를 닮아 호랑이상어라고 불린다. 성질이 난폭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먹이로 여기지는 않아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굳이 공격하지는 않는다.라퍼티가 환상적인 줄무늬에 넋을 빼앗긴 사이 호랑이상어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다랐다. 그런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여느 호랑이상어와 달리 마른 몸집이 눈에 띄었다. 라퍼티는 “주변을 맴도는 상어를 보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상어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얼마나 말랐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어 옆쪽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딸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밧줄이었다. 몸 전체를 옭아맨 밧줄이 가죽을 파고들면서 상어는 심한 열상을 입었다. 오른쪽 지느러미 밑 쪽으로 뼈가 튀어나왔을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라퍼티는 “상어가 왜 저체중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밧줄이 너무 꽉 조여 식욕이 감퇴한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밧줄을 끊어주기 위해 상어를 쫓아다니며 몇 분간 헤엄을 친 라퍼티는 그러나 상어를 구해주지는 못했다. 맨손으로 끊어내기에는 밧줄이 너무 두껍고 질겼다. 절단 장치를 가지고 상어를 목격한 지점을 다시 찾았을 때 상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며칠 후, 상어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상어를 목격한 주민들이 나섰지만 역시 밧줄은 끊지 못했다. 그래도 라퍼티와 주민들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건지 다행히 마지막으로 목격됐을 때 상어는 밧줄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는 전언이다.라퍼티는 “이빨이 단단해 바다거북 등껍질도 부숴 먹을 수 있는 호랑이상어조차 플라스틱 쓰레기 앞에서는 미약한 존재였다”면서 “우리가 무심한 사이 해양 생물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쓰레기 처리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라퍼티의 지적처럼 하와이를 비롯해 몰디브, 발리 등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휴양지 바다까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로 고역을 치르는 중이다. 지난 8일 인도양 섬나라 몰디브 바다에서도 폐밧줄에 꽁꽁 묶인 고래상어가 포착됐다. 다이버가 나서서 밧줄을 끊어주려 했으나 너무 단단해 구조에는 실패했다. 쪽빛 발리는 우기에 접어들면서 해변으로 몰려든 쓰레기로 바다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1000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신규로 바다에 유입된다. 이미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70m 높이로 쌓으면, 그 면적은 맨해튼 섬을 통째로 뒤덮고도 남을 정도다. 2050년이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쓰레기가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문제는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가 분해되는 데 길게는 수 세기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종류별 분해 기간은 우유팩은 5년, 비닐봉지는 10년~20년, 종이컵은 30년, 플라스틱 빨대는 200년, 페트병은 450년 수준이다. 스티로폼은 500년, 낚싯줄은 무려 600년이 걸린다. 유리병은 추정 불가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배 끄트머리 매달려 36시간…대서양 한가운데 표류 난민 극적 구조

    배 끄트머리 매달려 36시간…대서양 한가운데 표류 난민 극적 구조

    대서양 한가운데를 표류하던 자메이카 난민이 인근을 지나던 낚싯배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18일(현지시간) ABC뉴스는 전복된 미국행 보트에 매달려 36시간 동안 바다를 떠돌던 난민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보도했다. 보트에 타고 있던 다른 난민 6명은 실종 상태다. 12일 아침 플로리다주 남동부 포트피어스 32㎞ 해상에서 자메이카 국적 난민 1명이 발견됐다. 전복된 보트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난민은 침몰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인근을 지나던 낚싯배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표류 36시간 만이었다.낚싯배 선장은 “승객들을 태우고 낚시하기 좋은 지점으로 배를 몰고 나갔다가 표류자를 발견했다. 우리가 다가가자 그는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표류자는 자메이카 국적 난민으로 저체온증과 탈수 증세를 보였다. 보트에서 새어 나온 기름을 뒤집어써 온몸이 끈적거렸다. 낚싯배 선장과 승객들은 난민에게 물과 음식을 내어주고 기름을 닦아준 뒤 해안경비대 구조선을 기다렸다. 선장은 “낚시 여행이 돌연 구조 드라마가 됐다. 하필 그때 그 지점으로 배를 몰고 간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등골이 오싹했다”고 설명했다. 보트는 10일 바하마 최서단 비미니에서 출발해 같은 날 밤 8시 전복됐다. 거친 파도에 보트가 뒤집히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보트에 오른 난민 7명이 모두 바다에 빠졌다. 구조자는 이후 36시간 동안 북쪽으로 160㎞ 이상 표류했으며, 다른 승선원은 모두 사라졌다고 전했다. 마이애미해안경비대는 140시간 동안 인근 1만7210㎞ 해역을 뒤졌지만 나머지 6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색 작업을 중단했다. 해안경비대 측은 15일 “수색 및 구조 작전 중단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면서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고 발표했다.해안경비대는 또 플로리다키스 제도에서 실종된 쿠바 이민자 10명에 대한 수색도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자메이카 난민이 구조된 날 플로리다키스 제도 앞바다에서는 스티로폼과 나무로 만든 1.8m 길이의 조악한 사제 선박이 텅 빈 채로 발견됐다. 해안경비대에 따르면 사고 당일 쿠바 아바나에서 출항한 선박에는 쿠바 난민 10명이 타고 있었다. 15일까지 86시간 동안 총 2차례에 걸쳐 수색을 벌였지만 실종 난민들을 찾지 못하고 해안경비대는 철수했다. 미국은 2017년 오바마 정부 때 ‘젖은 발, 마른 발'(wet foot, dry foot) 정책을 폐기했다. 미국으로 들어오려다 해상에서 붙잡힌 난민(젖은 발)은 돌려보내되,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마른 발)은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었다. 이 정책이 폐기되면서 강제 송환 가능성도 커졌지만 미국행 보트에 몸을 싣고 해상 국경을 넘으려는 난민 행렬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에도 미국행 보트에 올랐다가 배가 전복되면서 플로리다 남쪽 무인도에 표착한 쿠바 난민 3명이 33일 만에 구조된 바 있다. 난민들은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와 쿠바 사이에 위치한 작은 산호섬 앵길라 케이에서 코코넛과 고둥, 야생 쥐를 먹으며 버티다 극적으로 구조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5] “정전협정 정신으로” “해상경계 획정 유연해져야”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5] “정전협정 정신으로” “해상경계 획정 유연해져야”

    정태욱-정전협정 정신으로 찾는 평화 해법 한국 정전협정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를 규율하는 정전협정은 비록 한국전쟁의 산물이었지만,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나아가자는 법이었다. 그 기본 목적은 적대행위의 방지와 평화의 증진이었다. 그에 따라 서해5도 수역과 한강하구는 육상의 비무장지대와 달리 민간 이용에 개방된 곳으로 규정되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거의 망각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남북의 접경지대를 3개 부분으로 나누어 규율하고 있다. 육상의 비무장지대, 한강하구, 서해 5도 수역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육상의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을 가운데 두고 있으며, 민간인 출입과 왕래를 엄격히 통제하는 군사적 완충지대로 규정되었다. 반면에 한강하구는 군사분계선을 두지 않고, 남북 민용 선박 항행에 개방하였다. 다만, 군사정전위원회와 유엔사가 선박 등록과 민사행정을 관할한다. 서해 5도 수역은 더 나아가 군사분계선도 없을 뿐더러 유엔사의 관할 수역이 따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다. 남북의 인접해면, 즉 영해 존중의 원칙만 천명하였을 따름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영해만 침범하지 않으면 누구든(제3국 선박도) 국제해양법에 따라 해수 이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정된 것이다. 원론적으로 우리 어선이 중국 양쯔강 유역까지 가서 조업을 할 수 있듯이, 북한의 남포 앞 바다에도 갈 수 있고, 마찬가지로 북한 어선도 우리 경기만에서 어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 상 인접해면만 침범하지 않으면 남북의 어선이 서로 오르내리며 조업활동을 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하여 유엔사는 물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다. 육지에 휴전선이 있으니 바다에도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분단 무의식’의 반영일 따름이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해상분계선 없어 서해 5도 수역은 ‘민간 자유 이용’ 규정 이후 EEZ 선포하면서 적대 현장 변질 남북이 다시 평화수역으로 만들어야 정전협정 체결 당시 국제법 상 ‘공해자유의 원칙(mare liberum)’이 확립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아직 12해리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해양법이 정립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바다를 남북으로 가르는 ‘휴전선’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해5도 수역 문제는 정전협정의 제1 의제인 군사분계선 설정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제3 의제인 휴전감시 방법에서 다루어졌다. 해상 군사분계선은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휴전회담 당시 서해 5도 수역에서는 해상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섬들의 귀속이 문제되었다. 육상의 군사분계선은 유엔군과 공산군의 접촉선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육상의 군사분계선에 준하여 섬들의 귀속을 정할 경우 38선 이남, 황해도-경기도 도계(道界) 이북에 있는 섬들은 북한에 속할 우려가 있었다. 이는 남측의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더욱이 당시 제해권은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원래 남측이 통제하던 38선 이남의 섬들 가운데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다섯 개의 큰 도서군(島嶼群)들은 유엔사의 통제 하에 두고, 나머지 섬들은 북한에 귀속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서해 5도 수역 정전협정 규정의 또 하나의 쟁점은 남과 북의 연해(인접해면, 영해) 문제였다. ‘영해’는 정치적 문제로 간주되어 ‘군사’ 정전협정에서는 영해가 아니라 연해(coastal waters) 혹은 인접해면(contiguous waters)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당시 유엔사는 미국의 표준에 따라 3해리를 주장하였고, 북한은 제3세계의 경향에 따라 12해리를 주장하였다. 결국 그 범위는 타결되지 못하고 다만, 인접해면을 존중하며, 어떠한 봉쇄도 하지 않는다는 규정으로 봉합되었다. 그러나 3해리와 12해리의 다툼이 있었다면, 적어도 3해리에 대한 합의는 존재한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정전협정 상 서해 5도 수역에는 휴전선은 존재하지 않고, 대신 남북 각기 그 육지를 둘러싼 3해리의 띠 모양의 영해가 있을 뿐이었다. 그에 따라 휴전 직후 우리 군이 어로 활동과 초계활동의 한계를 정하기 위하여 북한 3해리 영해를 기준으로 황해도를 둘러싼 형태의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북방한계선은 어디까지나 우리 어선이나 병력 진출의 북방한계를 정한 것이지, 북한 비무장 선박의 남하와 북한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제약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다만, 당시 남측의 해군력이 월등하였고, 따라서 남한 어민들의 어로 활동이 활발하였다. 북방한계선이 곧 우리 어민들의 어로한계선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해군력에서 열세였던 북한은 위와 같은 ‘공해자유의 원칙’과 ‘3해리 영해’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북한은 휴전회담 당시부터 해상 군사분계선을 언급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군사정전위원회에서도 육상의 군사분계선의 연장선 혹은 황해도-경기도 도계의 연장선을 해상 군사분계선으로 주장하였다. 또한 북한은 인접해면의 범위를 12해리로 주장하였고, 1955년에는 내각 결의로 12해리 영해를 선언하였다. 서해5도 수역에서 남북 어민들의 나포와 분쟁이 잦아졌고 군사적 충돌도 발생하였다. 마침내 1968년 박정희 정부는 어로저지선(어로한계선; 조업한계선)을 현재 수준으로 남하시켰다. 이후 국제해양법의 발전으로 12해리 영해는 물론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주장되면서 북한은 1977년 서해 5도 수역에 군사경계수역과 해상경계선을 선포하였다. 그에 맞서 남한 역시 12해리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공표하였으며, 북방한계선을 일종의 해상 군사분계선처럼 관철시켰다. 이렇게 서해 5도 수역은 남북의 배타적 관할 수역이 중첩되는 모순과 적대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3해리 영해를 제외한 수역에 ‘공해자유의 원칙’을 적용하여 남북이 모두 공유할 수 있게 한 원래의 정전협정 정신은 사라졌다. 서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결국 1999년 연평해전을 시작으로 남북의 군사적 충돌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남과 북은 다시 정전협정의 정신으로 회귀하여 평화의 해법을 찾으면 좋겠다. 서해 접경수역에서 남북의 배타적 구역을 3해리로 확인하고, 그 너머의 부분은 남과 북이 평화롭게 협력하여 함께 이용하는 수역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협정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정태욱 인하대 법전원 교수 water@inha.ac.kr이석우- 수역 안정 유지하며 공간관리 인식 제고를 1982년에 체결된 유엔해양법협약은 해양에서의 모든 행위에 대한 법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영토 및 영역을 이유로 주장될 수 있는 해양 구역을 규정하고 있다. 영해를 획정하는 일반규칙은 동 협약 제15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경계는 두 국가 간 중간선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 협약은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획정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향국간 또는 인접국간의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획정에 관한 협약 규정은 제74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공평한 해결’에 이르기 위하여 국제법을 기초로 하는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상당한 기간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관련국은 분쟁해결 절차에 회부한다; 합의에 이르는 동안, 관련국은 이해와 상호협력의 정신으로 실질적인 잠정약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며, 과도적인 기간동안 최종 합의에 이르는 것을 위태롭게 하거나 방해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약정은 최종적인 경계획정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관련국간에 발효중인 협정이 있는 경우 경계획정에 관련된 사항은 그 협정의 규정에 따라 결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 협약에서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를 획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명시하지 않아 해양경계획정 관련 법규범은 일반적으로 국제사법기관을 통해 형성된 판례를 통해 발전하고 구체화되고 있다. 2009년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흑해(黑海) 해양경계 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적용한 해양경계획정의 소위 ‘3단계 접근법’은 그 이후 2012년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의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간의 벵갈만의 해양경계획정 사건과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니카라과와 콜롬비아 사이의 경계획정 사건 등 후속 판결들을 통해 일반적으로 해양경계획정에 있어서 실행가능한 통상적인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3단계 접근법은 첫째, 잠정적인 등거리선/중간선 설정, 둘째, 형평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등거리선/중간선에 조정을 요구하는 어떠한 요소들이 있는지의 여부 고려, 그리고 셋째, 조정된 경계선이 각국의 해안선 길이 비율과 각 당사국에 속하게 될 관련 해양 면적의 비율 간에 심각한 불균형으로 인해 형평하지 않은 결과를 도출하지 않도록 점검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3단계 접근법의 이론적 완결성에 대한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서 이 3단계 접근법을 배제하고는 현존하는 해양경계 미획정 지역에 있어 결과를 예측하여 협상에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 이론적인 적용 가치가 증대되고 있다. 즉, 해양경계획정 과정에 있어 예측가능성의 제고가 해양경계획정에 적용되는 동 3단계 접근법의 객관성을 보장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국제법에 당사국 간 공평한 경계 강조 서해5도 해상은 한중일 관할권 중첩 남북 관할권 미치는 수역 최소화하고 이해 조정해 통합 관리방안 강구해야 첫 번째 단계인 잠정적인 등거리선/중간선 설정에 있어 인접국 간 해양경계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등거리선이, 대향국 간 해양경계에 있어서는 양국 연안의 중간선이 잠정적 경계선이 되며, 이러한 등거리선 또는 중간선은 모두 해양경계획정을 위한 수단이므로 그 자체로 어떠한 법적 결과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서해5도 및 동해상 남북한 간의 가상중간선을 표시하면 첨부한 지도와 같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가상중간선에 형평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잠정적인 중간선의 수정 또는 이동을 요하는 요소들이 존재하는지를 고려하는데, 연안길이 간의 불균형, 어업활동, 안보 등을 해양경계획정을 위한 고려사항으로 보고 잠정적인 중간선에 수정을 가한다. 실제 해양경계획정과 관련된 협상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이 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처음 설정한 조정된 중간선을 적용해 설정된 해양경계획정이 최종적으로 공평한 결과에 도달하였는지를 소위 비례성 테스트를 거쳐 획정한다. 그렇다면 3단계 접근법을 통해 최종적으로 획정될 서해5도 수역의 해양경계획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첫번째 단계에서 설정한 가상중간선이 두번째 단계와 세번째 단계에서 어떠한 변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획정될 것인가는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남한과 북한이 동 사안을 제3자 국제사법기관에 의뢰하는 경우에 해당 방식을 통해 분명해 질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동 사안을 제3자 국제사법기관에 의뢰하지 않고 양자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3단계 접근법은 결과의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기에 원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서해5도 수역은 남북한만의 해양 문제가 아닌 한중일 3국의 관할권이 중첩되는 수역이라는 점이다. 남한과 북한간의 서해5도 수역에서의 해양질서의 법적인 지위에 변화를 가하는 어떠한 행위의 결과는 양자간에 해양경계획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과 중국, 북한과 중국과의 해양질서의 법적인 관계 설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해당 수역의 관리와 분쟁해결의 해법 강구에 있어 관할권 확보 및 해양경계획정을 위한 전통적인 접근에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유엔해양법협약 체제는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수역, 공해 등으로 전 해역을 공간적으로 구분하여 각 공간에서 연안국과 비연안국의 권리를 기능적으로 분배하고 있는데, 서해5도 수역의 경우는 국가의 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을 최소화하고, 남북한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해당 수역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1974년 한일간 합의된 북부대륙붕경계선을 제외하고 주변국과 해양경계획정이 전무한 현재의 한국의 해양질서 유지는 주변 해양강국들간의 역학관계의 부산물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이 한반도 수역에서의 최소한도의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해양질서의 안정적 유지 관리는 필수요건이다. 현재 서해 NLL을 포함하여 정전협정에서 유래한 남북한 간의 해양경계획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한반도 해양질서의 안정적 관리 및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을 위해서 서해5도 수역의 해양공간관리의 활용에 대한 인식의 전향적인 제고가 요구된다.  
  • [핵잼 사이언스] 남극 해저 900m, 극한 환경에 사는 미지 생명체 발견

    [핵잼 사이언스] 남극 해저 900m, 극한 환경에 사는 미지 생명체 발견

    남극의 차갑고 어두운 빙붕 아래와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해양 생물이 발견됐다고 미국 CNN 등 해외 언론이 15일 보도했다. 영국 남극조사단 휴 그리피스 박사 연구진은 남극 빙붕(얼음이 바다를 만나 평평하게 얼어붙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 아래, 해저 900m 지점에서 돌에 붙어 살아가는 해양 생물체의 모습이 처음으로 확인했다. 연구진은 남극 남동부 웨델해 지역의 차가운 빙하해역에 있는 빙붕 해저에서 퇴적물을 채취하기 위해 얼음을 시추했다. 깊이 900m의 시추공을 통해 남극 해저에 있는 돌에서 서식하는 해양 생명체 22개체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중에는 고생대 캄브리아기(5억 4000만 년~4억 9000만년 전)부터 지구상에 서식한 것으로 알려진 해면도 포함돼 있으며, 따개비와 관벌레 등으로 추정되는 미상의 생물도 있었다.이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는 빙붕 아래 깊은 바다는 수온이 영하 2℃ 정도이며, 햇빛도 거의 없어 광합성이 불가능하다. 플랑크톤이 서식하는 바다와도 160㎞이상 떨어져 있어 에너지를 얻고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다. 연구진은 히드라와 말미잘, 해면처럼 다른 물체에 붙어사는 고착동물이 이토록 깊은 바다에서 발견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또 돌에 붙어서 생활하는 동안 햇빛이나 플랑크톤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거센 조류에 실려 수 백㎞를 흘러온 플랑크톤 사체로부터 영양분을 얻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를 이끈 그리피스 박사는 “거대한 빙붕 아래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서식지 중 한 곳이다. 이 외딴곳에서 해면 등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면서 “확인되지 않은 일부 생물은 완전히 새로운 종이거나 남극 대륙에 일반적으로 서식하는 종의 또 다른 종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길게는 몇 년 동안 에너지 섭취를 하지 않는 방식에 적응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이토록 강건한 유기체가 극한의 조건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법원, 마로 해역 바다 주인은 ‘진도군’

    법원, 마로 해역 바다 주인은 ‘진도군’

    황금어장을 놓고 벌어진 마로해역 진도·해남군 간 갈등에 대해 법원이 진도군의 손을 들었다.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민사부(재판장 김재근)는 지난 10일 마로해역 행사계약절차 이행과 어장 인도 청구 소송에서 해남군은 진도군에 어장을 인도하고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선고했다. 이번 소송의 주요 쟁점은 김 양식을 위해 마로해역 면허지를 영구적으로 해남군이 사용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지난 2011년 법원 조정 당시 해남 어민들이 마로해역에 대해 한시적인 면허기간을 연장 받은 것으로 영구적인 사용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는 1370㏊의 전국 최대 규모 김 양식어장인 ‘마로해역’이 있다. 어업 행사권을 놓고 벌어진 두 지자체 어민들간 분쟁은 지난 1980년초부터 시작됐다. 해남군 어민들이 마로해역의 진도 바다로 넘어가 김 양식을 하며 높은 소득을 올리자 진도군 어민들도 경쟁적으로 김 양식에 뛰어들면서 분쟁이 일었다. 결국 2011년 법원의 조정으로 마로해역 김 양식장 1370㏊에 대해 해남군이 2020년까지 양식장 권리를 행사하고, 진도군에는 그 대가로 같은 크기인 1370㏊의 양식장을 신규 개발해 주기로 합의했다. 시간이 흘러 지난해 6월 7일을 기점으로 10년간의 조건부 합의기한이 만료됐다. 진도군 수협은 기간 종료를 앞두고 어업행사권 종료 통보와 함께 해남군측에 어장 반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대해 해남지역 어민들은 양식을 계속할 수 있도록 어업권 행사계약 절차 이행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조정을 위한 변론이 계속되는 과정에서도 양측 어민들은 지난해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고 해상에서 충돌하는 등 대립을 이어왔다. 진도군 수산지원과 관계자는 “1심 판결 결과 마로해역은 진도 바다로 확인이 됐다”며 “진도 어민들이 행사하는 어업권으로 증명된 만큼 하루 빨리 해당 해역에서 김 양식을 할 수 있게 행정적 지원을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어부들의 개밥그릇·재떨이로 ‘천덕꾸러기’… 700년 만에 보물로 깨어난 침몰선 도자기

    어부들의 개밥그릇·재떨이로 ‘천덕꾸러기’… 700년 만에 보물로 깨어난 침몰선 도자기

    1970년대 어부 그물에 도자기 자주 걸려당시 중요성 몰라 다시 바다에 던져 버려1976년 도굴꾼 유물 팔려다 존재 알려져 수중발굴 경험 없어 해군 등과 합동조사세계 수중고고학 사상 대규모 유물 나와금속품·도자기 등 2만 4000여점 찾아내 목간 글씨 연구 결과 원나라 국적 밝혀져당시 항로·유물 추정… 고려 거쳐 日향한 듯신안보물선 14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실증1970년대 중반 보물선 신드롬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발굴된 신안보물선에서 값진 고려청자와 송·원대 도자기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수중 발굴은 물의 흐름, 기상조건, 기압차이 등에 따라 매우 한정된 시간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까다롭기 짝이 없고, 고가의 발굴 장비와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수중고고학은 신안보물선 발굴 전까지 국내에서 매우 생소한 학문이었지만, 이 일을 기점으로 급속히 발전했다.●어부 그물에 걸린 도자기 6점의 가치 신안보물선은 1975년 8월 처음 확인됐다. 어부 최모씨 그물에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온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다른 어부들은 도자기가 올라오면 바다에 다시 던져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가 개밥그릇이나 재떨이로 썼다. 최씨도 도자기의 중요성을 몰랐지만,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동생은 달랐다. 동생의 관심으로 신안군청에 신고해 나온 감정 결과, 중국 송·원대의 도자기였다. 그 이듬해 침몰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무려 700년 동안 깊은 바닷속에 잠들었던 보물선이 비로소 물 위로 떠올랐다. 이듬해 9월 도굴꾼이 잠수부를 고용해 유물을 건져내 팔려다 검거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에도 도굴이 잇달아 일어났고, 발굴 해역 주민들도 도굴에 가담했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관계 당국은 조사를 서둘렀지만 수중발굴 경험이 없던 탓에 유물을 건져 올릴 수 있는 도구나 장비도 딱히 갖추지 못했다.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국립중앙박물관과 해군해난구조대 등이 합동조사단을 꾸렸다.신안보물선의 발굴 위치는 전남 신안군 증도 해역이다. 증도는 전남 목포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 40㎞ 떨어진 섬이다. 발굴 현장은 증도와 임자도에서 각각 4㎞ 떨어진 해역이었다. 여기서 1976년 10월 26일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발굴이 시작됐다. 이후 약 10년 동안 조사가 이어진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물의 흐름이 바뀌는 정조 시간에만 발굴할 수 있었다. 수심은 평균 20m 정도였는데, 수중 시야가 좋지 않고 조류가 빨라 조사에 어려움이 상당했다. 1977년 제3차부터 바둑판 모양의 철재로 된 ‘그리드’를 설치해 육상 발굴처럼 조사 결과를 기록했다. 해군이 발굴하고, 학자들은 유물과 도면을 정리했다. 이렇게 해 선박과 송·원대 도자기 등 무려 2만 4000여점이 최종 출수됐다.신안보물선의 국적은 뜨거운 관심사였다. 고려냐, 중국이냐, 아니면 일본이냐로 의견이 속출했다. 연구 결과 중국 선박으로 최종 밝혀졌다. 신안보물선에서 나온 ‘지치삼년’(至治參年)이라고 새겨진 목간의 글씨가 중국 원 영종 3년(1323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가와 연대가 확인된 것이다. 선박의 구조는 어땠을까. 당시는 고려시대로, 우리나라에서 수중발굴된 선박은 모두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었지만 신안선은 중국 선박으로 배 밑이 ‘V’자 모양인 첨저선이었다. 신안보물선은 중국 푸젠 지역 첨저선으로, 수심이 깊은 해역에서의 운항과 파도를 가르기에 적합하고, 배를 만들 때 무사 항해와 안녕을 기원하는 보수공이 있어 중국 선박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공은 선수·선미 용골재 연결부에 위치한다. 선수 수직접합면 원형 구멍에는 청동거울을 넣었고 선미에는 송대 화폐인 태평통보를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했다. 선체는 모두 720여편(조각)으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여년 동안 보존처리 후 복원했다. 추정 실물 크기는 길이 34m, 폭 11m, 깊이 3.7m이다. ●신안보물선에 고려인들도 승선한 듯 신안보물선의 유물은 도자기 2만여점, 금속품 1000여점, 자단목 1000여점, 향신료, 약제품, 석제품, 목제품, 유리·골각제품, 동전 28t(약 800만개) 등이다. 도자기는 길이 50~70㎝, 너비 40~60㎝, 높이 40~60㎝ 정도 나무상자에 10~20개씩 포개서 끈으로 묶어 적재했다. 배의 균형을 잡고자 자단목을 배 밑에 골고루 깔고 그 위에 28t이나 되는 동전을 쌓았다. 동전 상단에는 도자기와 칠기·금속제품 등을 수납했다.우리나라 유물은 청자 매병과 청자 베개, 선원들이 배 위에서 사용하던 청동숟가락 등이 있다. 고려청자는 12~13세기 강진 사당리요와 부안 유천리요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에서 수집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인이 쓰던 것으로 보이는 숟가락이 나온 것으로 보아 고려인들도 승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당시 신안보물선의 항로나 유물로 봐서는 고려를 거쳤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고려 왕실과 귀족들에게는 중국의 영향으로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고, 꽃을 감상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 취향은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공예의 발전을 이끌어 고품질 상감청자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 유물로는 세토매병과 나막신, 칼코 등이 있다. 일본 가마쿠라시대는 중국과 외교 관계가 중단된 상태였지만,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교류는 활발했다. 차 마시고, 향 피우고, 꽃을 감상하는 문화가 선종사찰, 가마쿠라 막부의 주요 인사와 상급 무사들 사이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이런 문화를 즐기고자 관련 기물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이와 관련한 유물들이 향로, 향합, 꽃병, 잔, 주전자 등이다. 신안선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많은 것은 도자기·토기류로, 2만 660여점에 이른다. 도자기는 청자와 청백자가 다수였는데 대부분 중국 용천요와 경덕진요계였다. 도자기 분류로 편년과 생산지 등도 밝혀냈는데, 이렇게 대량으로 출수된 도자기는 지금까지도 세계 수중고고학 사상 유례가 드물다. 금속 유물은 1000여점으로 분향구, 불교의식구, 주방용구, 생활용구, 금속정 등 다양했다. 금속덩어리인 금속정은 녹여서 불상이나 기타 기물 제작에 사용하고자 했을 터다. 주석정과 철정이 340여점으로 가장 많고 ‘왕구랑’(王九郞)이라는 장인의 이름이 새겨졌다. 특히 ‘경원로’(慶元路)가 새겨진 청동추 덕분에 선박 출항지가 중국 경원로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목제유물로는 목간, 목기발, 목제반, 칠기완, 자단목 등이 나왔다. 목간 360여점은 화물표이니만큼 화물주·적재품 단위 등을 밝히는 데 요긴하게 쓰였고 침몰연대를 분석하는 데에도 사용됐다. 이 중 목간에서 언급한 ‘도후쿠지’(東福寺)는 일본 교토시 도잔구에 있는 임제종 사찰을 가리킨다. 1319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325년 가마쿠라 막부의 도움으로 재건됐다. ‘도후쿠지’ 목간은 1323년 도후쿠지 사찰 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신안보물선을 일본 가마쿠라 막부의 묵인 아래 파견된 무역선으로 보는 근거이기도 하다. 식물류는 후추, 은행, 빈낭(기호식품), 여지(과일) 씨 등이 나왔다. 이러한 식물은 한약재와 향료 등이 거래되거나 구급약, 혹은 식용이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며 당시 해상운송의 규모와 교류 정도를 가늠케 한다.●출항한 신안보물선, 최종 목적지는 신안보물선의 항로는 두 갈래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추정은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항에서 연안 항로를 따라 온저우 등을 거쳐 칭위안으로 북상해 무역품을 싣고 고려, 일본으로 향하는 항로다. 중국 저장성 칭위안항을 출발한 배는 고려 개경을 중간 기착지로 삼았을 것이다. 배의 발굴 지점은 한중 항로인 서남해사단항으로, 기상재해 등 돌발 상황으로 인해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다른 추정은 중일 무역이 활발했던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항이 목적지인 항로다. 중국에서 출발해 일본으로 직항하던 무역선이 남송·원대의 중국과 일본 간 주요 무역품이던 도자기와 동전들을 싣고 표류하다 침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화물주는 일본인과 기관의 대리인 등이 많았으며 목간에 새겨진 ‘조자쿠암’(釣寂巖), ‘하코자키’(筥崎) 등은 규슈의 사찰로, 하카다항과 관련이 있다. 출항지는 청동추에 새겨진 대로 ‘경원로’이다. 칭위안은 현재 중국 저장성 닝보 지역으로 남송대에 광저우, 취안저우와 더불어 국제항으로 성장한 곳이다. ‘지치삼년육월삼일’(至治參年六月二日) 목간은 신안선이 6월 남풍 시기에 출항했음을 알려준다. 신안보물선과 유물은 14세기 전후 해양 실크로드 무역의 실증이며 고려·일본 유물도 출수돼 한중일 관련성도 증명한다. 당시 중국 범선의 무대는 고려·일본과 동남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였다. 신안보물선이 고려를 경유해 일본으로 갔는지, 아니면 바로 일본으로 갔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출수가 우리나라 해역인 것은 분명한 만큼 우리나라가 해양 실크로드의 일원이었음을 대변한다. 신안보물선 수중발굴은 우리나라를 아시아 수중고고학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복원된 신안보물선의 선체와 다양한 도자기, 자단목, 목간, 금속제품 등 유물은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전시하고 있다. 연구소를 방문하면 영상과 전시를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신안 증도 발굴해역은 현재 사적 제274호로 지정돼 안내판과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생생한 해양 실크로드를 보고 싶다면 직접 방문해 볼 만하다. 김병근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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