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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기탈취 사건 용의자 혐의점 없어 돌려보내

    동해안 해안초병 총기피탈 사건을 수사중인 군·경 합동수사본부는 22일 오후 8시10분쯤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되는 P(23·강원 동해시)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신병을 확보, 조사를 벌였으나 혐의점이 드러나지 않아 이날 밤 12쯤 귀가시켰다. 군·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날 배포한 몽타주를 본 사람이 “몽타주의 인물이 군복무 당시 함께 근무 했던 사람 같다.”는 제보를 해와 이를 바탕으로 추적 조사를 벌여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에서 P씨의 신원을 확인, 지난 20일 밤 근무를 섰던 권모 중위와 이모 상병을 불러 P씨와 대질신문을 벌였으나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 앞서 P씨와 함께 있던 4명도 임의동행형식으로 함께 연행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해 돌려보냈다. 군·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날 이상병을 상대로 최면수사를 벌여 총기탈취 범인들의 몽타주(그림)를 작성했다. 이에 따라 수사본부는 범인 3명 중 168∼170㎝ 키에 검정색 정장바지와 구두, 검정색 라운드 쫄티를 입고 있던 둥근 얼굴을 한 1명의 몽타주를 작성해 전국에 배포했으며 결정적인 제보를 한 신고자에게는 최고 1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또 군경 합동수사본부는 사건 당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번호 ‘서울34허 ××××’ 뉴 그랜저 승용차를 봤다는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차량 추적을 벌이고 있다.동해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사설] 눈앞에서 월북 어선 놓친 해상경계

    소형 어선 한척이 엊그제 동해쪽으로 월북한 사건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강원도 속초 선적 황만호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가는 것을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제지하지 못했다. 소총과 기관총 경고사격을 하고, 해군 고속정까지 출동했으면서 월북을 못 막은 과정이 석연치 않다. 해상경계 태세에 구멍이 뚫려도 단단히 뚫린 셈이다. 정부는 황만호를 타고 북한으로 넘어간 황모씨가 술에 취해 무모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음주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월북을 기도했다면 더더욱 막았어야 했다. 대낮에 ‘음주선박’이 북쪽으로 향하는 상황을 30여분간 지켜보면서 놓쳤다니 도대체 해상경비를 어떻게 서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지난해 10월에는 중부전선 3중철책이 어이없게 뚫려 비난을 받았던 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번에는 해상에서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군은 어선 월북을 못 막은 관련 부대에 대한 정밀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육군 해안초소 레이더망에 어선이 최초 포착된 뒤 해군과 해경측에 통보가 늦었고, 고속정 출동도 제시간에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늑장대응 경위를 철저히 규명해 일벌백계함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육군과 해군, 해경 사이의 협조체계도 전면 재검토해 해상방위에 이상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황만호 선장의 월북 경위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추측한 대로 술김에 북쪽으로 향한 것이라면 빨리 송환해주길 바란다. 북한은 최근 산불진화 및 민간선박 구조활동을 위해 남측과 적극 협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황만호 사건도 그러한 정신을 살려 풀어나가야 한다.
  • 어선1척 동해서 사격받고도 월북…軍 늑장출동·발표 오락가락

    13일 오후 4시4분쯤 강원도 고성군 저진항 3∼4㎞ 앞바다에서 남측 주민이 탄 어선 1척이 육군 해안초소로부터 경고사격을 받았으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월북했다. 군당국은 월북하는 어선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고속정을 늑장출동시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합참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30분쯤 동해 NLL 남쪽 6마일 지점에서 약 10노트(20㎞) 속도로 북상하는 3.9t 규모의 어선 ‘항만호’가 육군 해안 레이더부대에 처음으로 포착됐다. 항만호에는 이 배의 주인인 어민 황모(57·남·강원도 속초시 중앙동)씨 한 명이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어선은 3시42분쯤 NLL 남쪽 2마일 지점에 설정된 어로한계선을 넘었고, 군은 경고방송을 6차례 실시했다. 이어 MG-50 기관총 300여발과 81㎜ 박격포 1발,106㎜ 무반동총 3발 등으로 경고사격을 했다. 해군 고속정은 어선이 NLL을 넘고 난 3시55분쯤 현장에 출동했다. 더욱이 합참은 당초 이날 오후 3시30분쯤 선박이 NLL로 접근하다가 경고사격을 받고도 북상했다고 발표했다가,2차 브리핑에서 3시42분쯤 NLL보다 2마일이나 아래에 있는 어로한계선을 넘는 선박을 발견했다고 수정했다.3차 브리핑에서 최초 발견 시간을 오후 3시30분으로 다시 고쳤다. 합참 관계자는 “발견 시간대가 부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선박이 어로한계선에 접근하면 경고방송을 실시하고 그래도 북상하면 경고사격을 가하도록 작전 예규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사건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해당 부대인 22사단을 방문하고 나온 직후에 발생해 정 장관 일행에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정부는 상선 통신망을 이용해 북측에 조속한 송환을 요구했으며, 북한의 최근 월북선박 처리 사례를 감안하면 자체 조사를 거쳐 남측에 인계할 가능성이 높다. 조승진기자·고성 구혜영기자 redtrain@seoul.co.kr
  • 허 경찰청장 “다케시마는 없다”

    허 경찰청장 “다케시마는 없다”

    “지구상에 다케시마는 없습니다. 독도만 있을 뿐입니다.” 허준영 경찰청장이 19일 치안총수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허 청장은 이날 오전 유홍준 문화재청장 등과 헬기로 독도를 찾아 경비대원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독도 경계태세와 민간인의 독도 관광 허용을 앞두고 안전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허 청장은 “독도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경찰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고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허 청장은 독도경비대원 37명을 격려한 뒤 등대와 해안초소, 접안시설 등 독도 곳곳을 둘러봤다. 또 경비근무 중 순직한 대원들의 묘비를 찾아 추모식도 가졌다. 독도경비대장 이재현 경위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동쪽 끝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한 치의 빈틈없이 독도를 지킬 것을 국민에게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유영규기자·독도 경찰청 공동취재단 whoami@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최후를 목격하는 일처럼 불행한 경우가 있을까. 낡은 사진첩과 답사노트를 뒤지면서 시계바늘을 18년 전으로 되돌려본다. 시화호가 망가지기 직전을 목격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사회적으로 공개할 의무감을 느낀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틈만 나면 시화호에 가서 살았다. 당시에는 시화호란 명칭도 없었고 그저 화성이나 안산 앞바다로 일명 ‘반월만’이었다. 물론 갯벌을 둘러싼 환경운동이나 갯벌환경에 관한 인식조차 공론화되지 않던 시절.1987년 6월10일, 역사적인 시화호 방조제공사가 시작되었다. 엄습해오는 예감이라고나 할까. 시화호 내의 음도나 형도, 어도, 아니면 화성의 송산면이나 서신면, 우정면 등의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면서 민중생활사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흔적없이 사라진 계명산 봉화대 저울섬이라 불렀던 형도는 물이 썰면 송산면 독지리 쪽에서 30여분만에 쉽게 걸어들어갈 수 있었다. 독지리 사람들은 봄에는 가무락·동죽·대합·피조개·소라·낙지를 잡고, 여름에는 맛, 가을에는 낙지·쭈꾸미 등을 채취하였다. 물고기는 숭어·농어·민어·새우·꽃게·전어를 잡았다.1988년, 독지리 사람들은 보상 문제에 골몰하였다. 오래 살아온 1등급은 호당 900여만원, 분가한 이들은 2등급으로 호당 850만원, 심지어 최저 100만원 정도를 받는 이도 있었다. 배 보상도 이루어져 작은 배는 서신면의 용두리, 궁평리 쪽으로 팔려나갔으며, 큰 배는 소래포구로 팔렸다. 형도에는 30여가구 120여명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낙지와 바지락·굴·피조개·숭어, 새우, 농어 등을 잡았다. 본디 어부들의 살막만 있던 무인도였는데 기미년(1919) 만세운동으로 쫓겨온 이들이 정착하여 어업에 종사하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피란민이 밀려들어와 마을이 커졌다. 형도 복판의 계명산을 허물어 바지선으로 돌을 실어날라 방조제를 막았다. 그래서 형도 동쪽 해변에는 중동에서 퇴직한 중장비들이 대체 일감을 찾아 빼꼭하게 들어차 있었다. 계명산 정상을 올라가니 봉화를 올리던 석축봉화대가 완형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계명산을 신성한 신으로 모시고 있었으며, 봉화대 밑에는 바위가 겹쳐진 동굴이 있어 이 역시 신성시되었다. 마고할매가 쌓은 봉화대라고 했다. 동굴은 비단실 열꾸러미를 넣어도 바닥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고 했다. 호기심이 동하여 동전을 던져보았더니 실제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관해기’를 쓰기 위하여 다시 찾았을 때, 동굴도 없어졌으며 봉화대도 사라졌다. 쉽게 말하여, 문화유산을 깔아뭉갠 것. 음도는 형도와 달라 지명유래처럼 소가 누워 있듯 나지막한 섬이다. 파평 윤씨가 사화 때 역적으로 몰려서 낙향하여 개척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160여명이 살고 있었으며 어업이 주종이었다. 섬 북쪽 선착장에서 뱃길로 안산시 사리포구쪽으로 빠지거나 화성의 독지리와 고정리 사이에 위치한 목섬을 거쳐서 걸어들어갔다. 형도 가는 길과 달리 음도는 멀어서 무려 한 시간여를 걸었다. 물 때를 잘못 맞추면 걸어가다가 조류에 휩쓸려 죽는 이도 많았던 섬이다. 갯벌을 걸어가면서 굴따는 ‘자세’로 지천으로 널린 굴을 까먹으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음도 사람들은 섬 정상의 숲속에 소당이라 부르는 신당을 모셨다. 조기잡이의 신인 임경업 장군, 각시, 소댕애기씨, 말구중 등 무속신을 모시고 있었다. 선착장 갯가에는 당나무가 서있고 바위가 쌓인 곳은 군웅당이라고 했다. 고정리 쪽 갯가의 돌출바위는 각시당(일명 나락부리당)이라 불렀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고 썰물에만 모양이 나타나는 각시당은 갯벌 복판에 서있어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하였다.18년 뒤의 음도에도 여전히 신당 건물은 숲속에 남아 있다. 우거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시금 신당문을 여니 그림들은 간곳이 없다. 찾아온 길손에게 낙지를 거저 주면서 연신 술잔을 권하던 어민들도 사라지고 쥐죽은 듯 고요하다. 옛사람들이 일부 살기는 하지만 예전의 떠들썩함은 찾을 길이 없다. 초등학교를 찾아가니 아직도 건물은 의연한데 주인 잃은 그네는 줄이 끊어진 채로 시간이 멈춰섰다. 마산포에서 걸어들어가던 어도는 음도나 형도와 달리 당시에도 시멘트 포장이었다. 마산포구에는 횟집이 번성하고 있었고 물이 나면 쉽게 어도로 들어갔다. 포도밭을 지나 언덕배기를 내려가면 어도 가는 길목의 해변 초입에 해안초소가 있고 터주가리처럼 생긴 신당이 바위 위에 모셔져 있었다. 고포리의 마산포는 반월만의 어업전진기지로서 형도·어도·선감도·탄도·불도와 연계되었다.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인천 가는 연락선이 대부도와 영흥도를 거쳐서 다녔다. 따라서 대부도 사람들은 마산포를 거쳐서 사강장을 보았으며, 이곳의 생활권도 뱃길로 인천과 서울로 이어졌다. 이제 대부도와 영흥도는 시화호로 연결되어 4차선 도로로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고포리 어촌계는 당시에 224호에 도합 1000여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거느리는 대단위 조직이었다. 고포리의 굴은 알이 작은 대신에 맛이 뛰어났다. 갯벌에서는 맛이 지천으로 잡히고 있었고, 봄·가을에는 숭어, 여름에는 농어, 그 외에 꽃게와 게장용 박하지가 많이 잡혔다. 오랜만에 찾아가본 시화호는 정말이지 예전이 아니었다. 상전벽해는 이를두고 말함이렷다.‘남양인천’으로 불릴 정도로 큰 외항이었던 비봉면 유포리(일명 버들무지)는 예전에는 남양관아로 연결되던 중요한 포구였다.1960년대까지는 조기잡이 중선배가 있어 연근해어업을 다녔다. 가리맛의 주생산지였으나 건너편에 반월공단이 들어서면서 어업은 일찍이 막을 내렸다. 우정면 호곡리를 들어서니 예전에 없던 어시장이 들어섰다. 호곡리는 범아지라 불렀으며 바닷가를 백년거지라 했다.‘백년을 거처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뜻. 범아지의 바닷가로 돌출한 산에는 당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백년거지는커녕 화옹호에 가려졌다. 수산물이 어획되지 않는 동네에 웬 어시장일까. 거개가 수입산이나 외지에서 들여온다는 솔직한 답변이다. ●물고기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 물새가 노닐던 해변이 갈대밭으로 덮이면서 아예 ‘우음도 갈대축제, 갈대보러 오세요’ 그런 글이 인터넷에 떠있다. 해초 대신에 갈대라! 문전옥답인 바다밭은 갈대밭으로 변하고, 아직도 죽은 조개껍질들이 하얗게 뒤덮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갯벌에 관한 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지난 20여년간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시화호 출신 해양생태학자로서 국회로 진출한 제종길 의원은,“갯벌문제는 간단히 보면 해양생태 보존과 개발론의 싸움이지만, 지역감정은 물론이고 지역정치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문제점들이 모조리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시화호도 끝나지 않았다. 시화호가 미완의 장인데 바로 코밑에서 화옹호를 기어이 막았다. 세인들은 간척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갯벌문제만 나오면 이제는 지겨워한다.‘듣기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지겹다.’(歌曲雖艶 恒廳斯厭)는데 불길한 예언만 쏟아져나오니 아무리 취지가 좋은들 약발이 덜 먹힌다. 간척론자들은 호재를 부른다. 결코 사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간척주도집단의 ‘밥벌이’를 위해서 간척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 있다. 문제점 투성이인지라 종합성적이 낙제점 이하인데도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잘못한 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감증사회’답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물고기도 돌아오고 심지어 돌고래까지 돌아오고 있다는 밑도끝도 없는 낭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한다. 시화호에서 돌아오기 전, 예전에 늘 드나들던 송산면 옛바닷가로 나갔다. 갯벌로 가던 언덕배기를 넘자 한가로운 오솔길 대신에 신작로가 나타났고 조개를 캐던 갯벌터에 농구골대도 들어섰다. 배는 사라지고 연습용 경비행기들이 마중한다. 물고기가 부려지던 선착장은 흉물스럽게 콘크리트더미만을 남기고 있고 죽어버린 따개비만이 ‘여기가 예전에는 잘나가던 포구였소.’라는 무언의 항거를 하는 듯하다. 물고기가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이다. 해수유통이 되면서 한결 나아졌고, 온갖 철새들이 몰려오고, 옛갯벌은 갈대밭이 되어 야생동물의 보고로 변하고 있으며, 공룡알들이 발견되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어찌 이토록 무정하게 ‘무단가출’했던 오염된 바다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으랴. 해결책은? ‘무식과격’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동안 투자한 그 모든 것이 아깝더라도 눈 딱감고 방조제를 허무는 길 뿐이다. ●새만금 운명도 시화호의 전철 못벗어날듯 오랜만의 시화호 외출에서 느낀 소감이 이러하니, 현재 진행되는 새만금의 운명 역시 시화호의 전철에서 한치도 못 벗어날 것 같다. 과거를 거울 삼아 오늘의 현실에 살리자는 감고계금(鑑古戒金)의 전범이 시화호일진대, 새만금은 시화호에서 충분히 배웠음에도 아직도 수업료가 부족한 것일까. 성호 이익은 ‘관가에 일이 없으면 촌동네도 조용하다.’(公府無事 村巷方安)고 하였다. 관청에서 불필요한 간척 같은 일을 벌이지 않으면 살 만하다는 뜻이거니와,‘지도가 바뀐다.’‘5000만평 땅을 건지다.’ 등등으로 국민을 현혹하면서 8000억원 이상의 돈을 들이고도 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국민대사기극’, 시화호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싶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근대’는 그림처럼 다가왔다.그것이 ‘식민지 근대’였건,‘제국주의 근대’였건 어김없이 왔다.비행기가 없었던 시절,‘문명’이라 이름붙은 것들은 대개 해양을 통해 들어왔다.19세기말의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국의 바다’는 등대 건설로부터 시작됐다.침략이었건,무역교류였건,해저 지형에 익숙지 않은 외국배가 들어오자면 등대는 필수 시설이었다.이 땅의 등대는 그렇게 제국주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로 태동했다.어느날 갑자기 포구 앞의 무인도에 일본인들이 높다란 기둥 건물을 세우자 사람들은 그것을 ‘등대’라고 부르며 수군댔다.등대에 불이 점화되고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인천 앞바다 칠발도등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한국 등대 100주년 기념식’이 그것.100주년 회년은 비단 칠발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울기등대(1906),시하도등대(1909),죽변등대(1910),어룡도등대(1910) 등 전국의 수많은 등대들이 속속 회년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도 우도등대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지난 100년을 생각한다.양정식(32) 등대지기가 길안내를 맡는데 세살배기 아들이 쫄랑거리며 층계를 앞서 오른다.등대 주변에서 사는 덕분에 그 나이에도 인근의 지형지물을 꿰뚫고 있다. 등대지기의 삶은 이처럼 가족공동체적일 수밖에 없다.등대지기 중에는 더러 급환으로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애달픈 경험도 가지고 있다.편의상 등대지기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공식 직함은 ‘항로표지원’.명칭은 아무래도 좋다.뱃길을 지켜주는 ‘바다의 지킴이’ 역할은 그대로이므로. ●세계 등대역사 실물 모형 한눈에 우도를 찾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섬에 만들어진 등대공원은 우도가 처음이다.호미곶,부산영도,여수 오동도 등지의 등대들이 속속 박물관·조망관·체험관 등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제주도 우도등대도 그 행렬에 동참했는데,특기할 점은 세계의 등대 역사를 알려주는 실물 모형을 만들어 앉은 자리에서 세계 등대여행을 할 수 있게 한 점이다. 상하이항의 파고다,신화 속의 등대인 파로스,독일의 브레머헤븐,일본 최초의 양식 등대인 쓰루가만 입구의 다데이시사키,1355년에 세워진 프랑스 코르투앙,뉴욕 허드슨강 입구의 킹스턴,그리고 한반도의 이러저러한 등대들이 모형으로 모여 있는 산교육장이다. 서기 874년 중국 상하이의 마호강 중앙에 세워진 마호타파고다등대는 글자 그대로 탑이다.송나라 때인 1279년까지 불을 밝혔으며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목탑 양식으로 서구의 근대적인 기능형 등대와는 다른 민족적 조형미를 보여준다.오로지 원통형기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파고다등대는 등대 건축에서도 민족적 형식이 도입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더구나 신화 속의 등대로만 알려진 파로스등대에 이르면 서구의 등대가 가히 빌딩 수준의 규모였음을 알게된다. 우리 등대도 근래 들어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등대가 항로표지뿐 아니라 정서적,미학적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갖는다는 각성이 낳은 결과다.거북선 모형의 한산도등대,새가 올라앉은 형상의 몽하도등대,첨성대를 바위에 올려놓은 듯한 호도등대 같은 재미있는 등대도 있다. 민족건축 양식은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오래된 등대의 건축사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등대 건축은 1900년대 초반부터 콘크리트를 사용한,당대로서는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 건축물이었다.벽돌조,철근콘크리트조,철골조 등 다양한 건축기술은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해 로마시대나 르네상스풍을 연상케하는 등대도 많다. 칠발도등대(1905)를 필두로 팔미도(1903)·부도(1904)·거문도(1905)·제뢰(1905)·우도(1906)·울기(1906)·죽도(1907)·시하도(1907)·당사도(1909)·목덕도(1909)·하조도(1909)·격렬비도(1909)·가덕도(1909)·죽변(1910)·소리도(1910)·방화도(1911)·어청도(1912)·산지(1916)·주문진(1918)·홍도(1931)·미조항(1939)·서이말등대(1944) 등은 대한제국기와 일제 침략의 요동치는 현장을 지켜본 근대 문화유산의 총아들이다.그런 점에서 지금 남아 있는 수십개의 등대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그만큼 문화사적으로 값진 유산이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 현장 지킨 근대 문화유산 우도에 왜 이렇게 수많은 등대모형을 만들어 전시했느냐고 묻자 부원찬 제주해양수산청장은 이렇게 답변했다.“한국 등대사가 100년을 돌파했음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21세기가 문화의 세기인 만큼 등대도 변해야 합니다.바닷길만 밝힐 게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해양문화의 바닷길도 아울러 열어야지요.” 등대의 역사 자체가 ‘제국의 역사’였던 만큼 이전까지만 해도 ‘시민과 함께하는 등대’는 사실 구두선이었다.그러나 근래 등대들은 분명히 변신을 시작하였다.영도등대에서는 문학인들의 시낭송회가 열리고,우도등대에도 숙박을 하며 등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이제는 명승지나 대충 둘러보고 마는 바다여행이 아니라 등대 여행도 꿈꿔볼 일이다. ●“바닷가 절경엔 등대 아니면 초소” 필자는 지인들에게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대한민국 바다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은 등대 아니면 해안초소’라고.동해안의 절경마다 해안초소가 서있어 접근을 막는다면,만이 훤히 굽어보이는 높다란 곳에는 또한 등대가 서있었다.그러니 근대적 관해(觀海)의 가장 빼어난 조망지는 등대일 수밖에 없다.불빛이 퍼지자면 사방팔방 관망되는 절벽이나 산봉우리,우뚝 솟은 암초의 등을 타고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도등대도 그런 곳이다.등대에 오르니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바다가 열린다.절벽 아래로 아낌없이 부딪혀 깨어지는 파도를 보노라니 세상을 잊고 이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과욕(?)이 머리를 쳐든다.조용하다.그리고 아름답다.그러나 막상 역할이 바뀌어 정작 내가 등대지기가 되어도 주변의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할까.오고가는 배들이 모두 걱정거리로 보이는데도 말이다.그래도 좋다.제주도에서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 가운데 한 곳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우도등대는 돔형의 탑으로 1906년 3월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2년만 지나면 이 등대도 100살의 나이를 채운다.이렇듯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등대들은 나름의 설치 배경이 있다.모두 하나같이 외해(外海)로부터 들어오는 길목의 험난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우도등대 바로 앞은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수심도 깊다.그래서 다리도 놓지 못하고 늘 도항선으로 오가야 한다.제주도 등대의 맏형이 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등대 ‘낭만’은 만들어진 환상 1123년에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던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도 ‘바닷길은 깊은 곳이 두려운 곳이 아니라 얕은 곳이 무섭다.’고 기록돼 있다.이른바 ‘배가 깨지는’ 해난사고는 대부분 해변에 가까운 곳에서 빚어지는 사고다.등대는 이런 곳에 설치된다. 등대는 ‘낭만’인가.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그러나,단연코 그렇지 않다.‘등대낭만’은 등대에 관한 수많은 미화와 환상이 불러일으킨 환영일 뿐이다.영국의 사학자 홉스 바움의 표현대로 ‘만들어진 전통’이다.근대적 등대가 선보인 이래 등대의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환상 창조’의 위력이 문학예술 곳곳에서 발휘돼 그런 ‘환영’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나라에 등대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20세기 초만 해도 등대는 ‘선진기술’의 집약체였다.단순하게 불빛만 비추는 곳이 아니라 이곳에 최초로 무선전신지국을 설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하는 중요한 목적까지 수행했다.무선국의 존재는 등대지기가 최소한 무선기술을 습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인데,당시에 무선사는 최고의 첨단기술자였다.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면 적의 함대나 항공기가 등대를 우선 공격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일제시기의 모든 등대장들은 일본인들로 채워졌다.비밀유지를 위해서였으며,한국인들은 일용직으로만 일할 뿐이었다.광복 당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식 등대원으로 잔존한 사람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지방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등대장도 초대받아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 사회적 위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복되던 해,많은 등대들이 민중들의 공격을 받았다.일본인 등대지기가 철수한 상태에서 등대의 값진 설비들을 모조리 뜯어가기도 했다.그만큼 등대의 장비가 첨단 시설이자,고가품이었다는 방증이다.또 당시 민중들의 의식 속에 깃든 등대에 대한 민족적 적대감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등대는 24시간 가동하므로 3교대를 돌리자면 쉴틈이 없다.우도등대의 경우 주변에 흩어진 8개의 등표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하루에 세 번씩 이상유무를 점검해 해난의 여지를 살핀다.선박 조난의 책임을 등대에서 져야 할 이유는 없지만 막상 관할 해역에서 사고라도 나면 등대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그런 즉,등대를 두고 말하는 ‘낭만타령’은 얼마나 속절없는가! 지금도 등대가 밝히는 뱃길을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물동량과 정보가 숨가쁘게 세계에 전달된다.그 ‘오고 감’이 없다면 우리 경제가 아예 돌아가지 않는다.등대는 ‘현실’이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깎아지른 절벽위 여신모신 성소가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에게해와 그리스신화가 관심을 끈다.아테네 도심의 파르테논 신전 못지않게,아티카반도 끝자락 수니온곶(串)의 포세이돈 신전도 낙조 풍경과 어울려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포세이돈 신전.에게해의 찬란한 석양이 비끼는 천애 절벽에 각인된 역사와 신화의 지문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신화시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바다의 신 포세이돈.그의 뜻에 따라 질풍과 노도가 일어나니,바다의 모든 것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포세이돈의 황금전차가 말발굽 요란하게 바다 위를 가로지를라치면 거센 폭풍은 간데없고 잔잔한 고요가 그를 옹위했다.원형은 파괴됐으나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는 고스란히 남아 에게해의 험한 바닷길을 아우르고 있다.지금도 이 신전 앞을 지나는 그리스 어부들은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첨단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뱃길에 나선 사람은 누구나 포세이돈의 신화적 영력에 깊은 외경과 간절한 기원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도국가 그리스의 끝자락에 바다의 신전이 있다면,같은 반도국가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할까? 우리라고 왜 바다신을 모신 신전이 없을까만,남의 떡만 크게 보이고,내 것은 초라하게만 여기는 문화사대주의의 병폐가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에 취해 박연폭포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필자가 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은 ‘우리 것부터 좀 챙겨 보라.’는 충고이다.포세이돈이 중요하다면,중국의 여자 해신 마조(祖)도 알 필요가 있으며,더불어 ‘문화 종다원성’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바로 이 땅의 수성당할머니를 생각해야 한다. ●서해바다 거닐며 거친 물길 다스려 해신은 세계 어느 바다에나 있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변산반도의 끝자락 격포 수성당은 우리 해신의 위엄과 격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신성(神聖)의 성소(聖所) 격이다.우선,위치가 눈길을 끈다.잘록한 자루처럼 돌출한 곶의 깎아지른 절벽을 ‘성소’로 선택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성당 길목은 해안초소를 설치해 민간인 출입을 막는 군 작전구역이었다.그 후 전주박물관에서 이곳 일대를 발굴한 결과,고대의 제사터임이 확인되었다.민간의 구술(口述)전승이 이루어진 이곳에서 확인 발굴이 이루어졌음은 우리 문화에서 구술이 지닌 실증적 힘을 웅변한다.트로이문명이 애초에 구술과 신화에서 출발했다가,훗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입증된 것과 다를 게 없다. 수성당은 시누대가 창검처럼 밀집해 빼곡하게 들어찬 단애(斷崖)에 숨어 있다.바닷물이 밀물처럼 다가와 이 안에 들면 절벽에 서있다는 느낌을 잊게 된다.그러나 자칫 한발 잘못 내디디면 벼랑으로 곤두박질이다.오금이 저리도록 가파른 곶.벼랑 아래로는 여근처럼 갈라진 해식동굴이 있어 조수가 드나들며 보는 이의 현기증을 자아낸다.일명 용굴 혹은 여우골이라 불리는 이곳이 수성당할머니의 거처이다.서해 어업의 중심기지였던 위도가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관망대에 해당하는 곳으로,임진왜란 때 왜군이 여우골로 몰려오는 것을 할머니가 무찔렀다는 전설은 지금도 남아 전한다. ‘개양할미’라고도 불리는 수성당할머니는 딸만 여덟을 낳아 각도에 한명씩 시집보냈다고 전해진다.더러는 그녀가 딸 일곱을 낳았으며,그들이 수성당에서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일곱 섬 지킴이가 되었다고도 한다.수성당 할머니는 엄청나게 큰 키로 굽나무신을 신고 저벅저벅 서해바다를 걸어다녔다.위험한 곳에는 표지를 남겨 어부들이 해를 입지 않게 돌보았으며,심지어 수심까지 재어 어부들이 알도록 했다.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을 보여준 ‘서해 창건주’의 전설이므로 이 말이 맞느냐,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변산 격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초에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다.세상이 바뀌어 서해 여신으로서의 지위는 볼품없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때의 마을굿 양식이 여전히 잔존해 있으며,무신도도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불타고 없다.‘1804년 상량(上樑)’이라고 적힌 상량문으로 미뤄 적어도 200여 년 전에 이 신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신당이 어찌 사람의 신탁(神託)의식과 같은 나이일 수 있겠는가.이 상량문과 무관하게 훨씬 이전에 신당이 있었고,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수성당할머니가 살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수성당은 변산반도 일대를 지켜주는 ‘지역신’으로 ‘강등’되었으나,그 해양문화적 원형은 바다를 지켜주는 거녀(巨女)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제주도의 설문대나 전국에 골고루 분포한 마고할매는 수성당할머니의 문화적 원형이다.마고나 설문대가 순 토속어인 반면 수성(水星)이라는 한문투 용어가 후대에 덧 씌워졌을 뿐이다.즉,마고식의 해양문화 원형질에서 수성이란 지역적 여신이 탄생한 것이다. ●거대한 치맛자락에 가려 어둠 내리고 사실,우리의 의식에는 가부장적 남신들만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바다만은 달라 그곳은 늘상 여신들의 무대였다.바다는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최초의 자궁이다.그런데도 기이하게 바닷가에서 여성은 사실상 금기의 대상이다.지금은 그런 금기의식이 많이 희석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신권(神權)만큼은 여신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여신을 숭앙하는 바다’의 신권과,‘여성을 배척하는 바다’의 생활이란 두 측면은 바다문화를 둘러싼 대단한 역설을 설명해 주는 단초가 된다. 수성당에서 서쪽을 굽어보니 초여름 햇살을 받은 칠산바다가 싱싱한 비늘을 반짝이며 꿈처럼 펼쳐져 있다.그곳에 서서 신화적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수성당에 기대 칠산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의 물길을 따라 당할머니가 들어왔다.그녀는 저물어 수평선 아래로 잠겨드는 해를 안간힘으로 붙들려고 했으며,그러다가 이른 저녁의 별밭을 거닐어 내게 이른 것이다.그 덕분에 칠산바다는 여름의 붉은 황혼에 늦도록 젖어 있었다.흡사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첫마디를 속삭였을 때처럼 그렇게 붉게. 그녀는 깊은 바닷물에 겨우 발목만 적신 채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다.아주 천천히,우리 역사의 태고적 울림은 그렇듯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서해바다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우리와 중국이 육지로 맞붙어 있던 그 옛날의 땅을 디디고 걸었음직한 그런 발걸음이다.생각해 보면 수성할머니 같은 거녀는 한반도 탄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여신들은 늘 바닷가를 뚜벅뚜벅 걸어다녔다.풍랑이 일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깊었다.깊은 곳으로 발을 잘 못 내디뎌 빠지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짝 젖었다.끝모르게 큰 여신들이었지만 치맛자락이 젖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젖은 치마를 벗어 산 위에 펼쳐 널었다.산에서는 난리가 났다.치마를 널자 지상이 온통 컴컴해졌고 동물들은 갑자기 맞은 밤이 두려웠을 것이다. 여신은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소피도 여러번 보았다.여신의 오줌이 물길을 만들어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여신의 똥은 군데군데 섬으로 남았다.저녁 무렵에 찬 이슬을 맞자 마고는 기침을 했다.그러자 폭풍이 불어 풍랑이 일었고,산과 들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다.이윽고 밤이 왔다.여신은 하늘의 별을 만지고,달을 껴안고 그렇게 외로운 밤을 지냈다.참으로 외로웠다.사람이 탄생하기 전이라 그녀를 즐겁게 할 미물 인간이 아직 없었던 탓이다. ●위도 핵폐기장엔 인간사 갈등 고스란히 얼마나 컸으면 바다를 걸으며 치맛자락만 적셨을 뿐일까.참으로 막강한 여성의 위력이다.우리 신화의 들머리를 차지하는 마고,수성당할머니 등은 지모신(Great Mother,Mother Goddess)이다.수성당을 찾아온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잃어버린 여성의 힘.거녀로서 세상을 창조하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문화적 원형질을 당할머니에게서 발견한다.현대인들은 그만 그 거대한 신화적 힘,자연친화적 순응을 거부하고 말았으니,수성당 코앞의 새만금간척지나 위도 핵폐기장 같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갈등이 그것이다. 당할머니가 바다를 걷는 발자국소리를 듣노라니 상상력은 멀리 상전벽해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왜 하필이면 국가적인 큰 제사터가 수성당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우리는 그동안 ‘전북지역은 곧 백제문화권’이라는 도식적 편견에 함몰돼 있었다.전주박물관 발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병하는 이를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마한,백제,가야,왜의 노천제사라고 주장했다.3세기 후반에는 마한,4세기는 마한과 백제,5세기 전반과 6세기 전반은 백제,가야,왜의 제사가 이루어진 듯하다. 마한,백제는 그렇다치고 멀리 가야와 왜의 유물이 나온 사실은 흥미롭다.백제 땅으로 들어서자면 반드시 변산반도를 돌아,고군산열도를 비집고 들어가,금강하구로 들어서야 했을 것이니,수성당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의 길목이다.위도나 고군산에서 바라볼 때,곶의 신비로운 장소에 신당을 세우고 해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렸으리라.채석강과 적벽강이 펼쳐진 천혜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으니 신들조차도 비경을 선호했음이다. 근년까지도 풍어기(豊漁旗)가 올라가던 수성당 앞바다에서 역사시대의 제사가 올려졌고,더 앞선 시대에는 마고할머니가 걸어다녔다는 사실에서,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수성당 신앙의 해양문화적 지속성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이렇듯 바다에는 인간 이전에 여신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니,‘바다에 살어리랏다‘에서 어찌 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인가.˝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깎아지른 절벽위 여신모신 성소가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에게해와 그리스신화가 관심을 끈다.아테네 도심의 파르테논 신전 못지않게,아티카반도 끝자락 수니온곶(串)의 포세이돈 신전도 낙조 풍경과 어울려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포세이돈 신전.에게해의 찬란한 석양이 비끼는 천애 절벽에 각인된 역사와 신화의 지문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신화시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바다의 신 포세이돈.그의 뜻에 따라 질풍과 노도가 일어나니,바다의 모든 것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포세이돈의 황금전차가 말발굽 요란하게 바다 위를 가로지를라치면 거센 폭풍은 간데없고 잔잔한 고요가 그를 옹위했다.원형은 파괴됐으나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는 고스란히 남아 에게해의 험한 바닷길을 아우르고 있다.지금도 이 신전 앞을 지나는 그리스 어부들은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첨단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뱃길에 나선 사람은 누구나 포세이돈의 신화적 영력에 깊은 외경과 간절한 기원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도국가 그리스의 끝자락에 바다의 신전이 있다면,같은 반도국가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할까? 우리라고 왜 바다신을 모신 신전이 없을까만,남의 떡만 크게 보이고,내 것은 초라하게만 여기는 문화사대주의의 병폐가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에 취해 박연폭포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필자가 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은 ‘우리 것부터 좀 챙겨 보라.’는 충고이다.포세이돈이 중요하다면,중국의 여자 해신 마조(祖)도 알 필요가 있으며,더불어 ‘문화 종다원성’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바로 이 땅의 수성당할머니를 생각해야 한다. ●서해바다 거닐며 거친 물길 다스려 해신은 세계 어느 바다에나 있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변산반도의 끝자락 격포 수성당은 우리 해신의 위엄과 격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신성(神聖)의 성소(聖所) 격이다.우선,위치가 눈길을 끈다.잘록한 자루처럼 돌출한 곶의 깎아지른 절벽을 ‘성소’로 선택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성당 길목은 해안초소를 설치해 민간인 출입을 막는 군 작전구역이었다.그 후 전주박물관에서 이곳 일대를 발굴한 결과,고대의 제사터임이 확인되었다.민간의 구술(口述)전승이 이루어진 이곳에서 확인 발굴이 이루어졌음은 우리 문화에서 구술이 지닌 실증적 힘을 웅변한다.트로이문명이 애초에 구술과 신화에서 출발했다가,훗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입증된 것과 다를 게 없다. 수성당은 시누대가 창검처럼 밀집해 빼곡하게 들어찬 단애(斷崖)에 숨어 있다.바닷물이 밀물처럼 다가와 이 안에 들면 절벽에 서있다는 느낌을 잊게 된다.그러나 자칫 한발 잘못 내디디면 벼랑으로 곤두박질이다.오금이 저리도록 가파른 곶.벼랑 아래로는 여근처럼 갈라진 해식동굴이 있어 조수가 드나들며 보는 이의 현기증을 자아낸다.일명 용굴 혹은 여우골이라 불리는 이곳이 수성당할머니의 거처이다.서해 어업의 중심기지였던 위도가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관망대에 해당하는 곳으로,임진왜란 때 왜군이 여우골로 몰려오는 것을 할머니가 무찔렀다는 전설은 지금도 남아 전한다. ‘개양할미’라고도 불리는 수성당할머니는 딸만 여덟을 낳아 각도에 한명씩 시집보냈다고 전해진다.더러는 그녀가 딸 일곱을 낳았으며,그들이 수성당에서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일곱 섬 지킴이가 되었다고도 한다.수성당 할머니는 엄청나게 큰 키로 굽나무신을 신고 저벅저벅 서해바다를 걸어다녔다.위험한 곳에는 표지를 남겨 어부들이 해를 입지 않게 돌보았으며,심지어 수심까지 재어 어부들이 알도록 했다.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을 보여준 ‘서해 창건주’의 전설이므로 이 말이 맞느냐,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변산 격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초에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다.세상이 바뀌어 서해 여신으로서의 지위는 볼품없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때의 마을굿 양식이 여전히 잔존해 있으며,무신도도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불타고 없다.‘1804년 상량(上樑)’이라고 적힌 상량문으로 미뤄 적어도 200여 년 전에 이 신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신당이 어찌 사람의 신탁(神託)의식과 같은 나이일 수 있겠는가.이 상량문과 무관하게 훨씬 이전에 신당이 있었고,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수성당할머니가 살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수성당은 변산반도 일대를 지켜주는 ‘지역신’으로 ‘강등’되었으나,그 해양문화적 원형은 바다를 지켜주는 거녀(巨女)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제주도의 설문대나 전국에 골고루 분포한 마고할매는 수성당할머니의 문화적 원형이다.마고나 설문대가 순 토속어인 반면 수성(水星)이라는 한문투 용어가 후대에 덧 씌워졌을 뿐이다.즉,마고식의 해양문화 원형질에서 수성이란 지역적 여신이 탄생한 것이다. ●거대한 치맛자락에 가려 어둠 내리고 사실,우리의 의식에는 가부장적 남신들만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바다만은 달라 그곳은 늘상 여신들의 무대였다.바다는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최초의 자궁이다.그런데도 기이하게 바닷가에서 여성은 사실상 금기의 대상이다.지금은 그런 금기의식이 많이 희석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신권(神權)만큼은 여신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여신을 숭앙하는 바다’의 신권과,‘여성을 배척하는 바다’의 생활이란 두 측면은 바다문화를 둘러싼 대단한 역설을 설명해 주는 단초가 된다. 수성당에서 서쪽을 굽어보니 초여름 햇살을 받은 칠산바다가 싱싱한 비늘을 반짝이며 꿈처럼 펼쳐져 있다.그곳에 서서 신화적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수성당에 기대 칠산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의 물길을 따라 당할머니가 들어왔다.그녀는 저물어 수평선 아래로 잠겨드는 해를 안간힘으로 붙들려고 했으며,그러다가 이른 저녁의 별밭을 거닐어 내게 이른 것이다.그 덕분에 칠산바다는 여름의 붉은 황혼에 늦도록 젖어 있었다.흡사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첫마디를 속삭였을 때처럼 그렇게 붉게. 그녀는 깊은 바닷물에 겨우 발목만 적신 채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다.아주 천천히,우리 역사의 태고적 울림은 그렇듯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서해바다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우리와 중국이 육지로 맞붙어 있던 그 옛날의 땅을 디디고 걸었음직한 그런 발걸음이다.생각해 보면 수성할머니 같은 거녀는 한반도 탄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여신들은 늘 바닷가를 뚜벅뚜벅 걸어다녔다.풍랑이 일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깊었다.깊은 곳으로 발을 잘 못 내디뎌 빠지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짝 젖었다.끝모르게 큰 여신들이었지만 치맛자락이 젖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젖은 치마를 벗어 산 위에 펼쳐 널었다.산에서는 난리가 났다.치마를 널자 지상이 온통 컴컴해졌고 동물들은 갑자기 맞은 밤이 두려웠을 것이다. 여신은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소피도 여러번 보았다.여신의 오줌이 물길을 만들어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여신의 똥은 군데군데 섬으로 남았다.저녁 무렵에 찬 이슬을 맞자 마고는 기침을 했다.그러자 폭풍이 불어 풍랑이 일었고,산과 들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다.이윽고 밤이 왔다.여신은 하늘의 별을 만지고,달을 껴안고 그렇게 외로운 밤을 지냈다.참으로 외로웠다.사람이 탄생하기 전이라 그녀를 즐겁게 할 미물 인간이 아직 없었던 탓이다. ●위도 핵폐기장엔 인간사 갈등 고스란히 얼마나 컸으면 바다를 걸으며 치맛자락만 적셨을 뿐일까.참으로 막강한 여성의 위력이다.우리 신화의 들머리를 차지하는 마고,수성당할머니 등은 지모신(Great Mother,Mother Goddess)이다.수성당을 찾아온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잃어버린 여성의 힘.거녀로서 세상을 창조하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문화적 원형질을 당할머니에게서 발견한다.현대인들은 그만 그 거대한 신화적 힘,자연친화적 순응을 거부하고 말았으니,수성당 코앞의 새만금간척지나 위도 핵폐기장 같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갈등이 그것이다. 당할머니가 바다를 걷는 발자국소리를 듣노라니 상상력은 멀리 상전벽해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왜 하필이면 국가적인 큰 제사터가 수성당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우리는 그동안 ‘전북지역은 곧 백제문화권’이라는 도식적 편견에 함몰돼 있었다.전주박물관 발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병하는 이를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마한,백제,가야,왜의 노천제사라고 주장했다.3세기 후반에는 마한,4세기는 마한과 백제,5세기 전반과 6세기 전반은 백제,가야,왜의 제사가 이루어진 듯하다. 마한,백제는 그렇다치고 멀리 가야와 왜의 유물이 나온 사실은 흥미롭다.백제 땅으로 들어서자면 반드시 변산반도를 돌아,고군산열도를 비집고 들어가,금강하구로 들어서야 했을 것이니,수성당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의 길목이다.위도나 고군산에서 바라볼 때,곶의 신비로운 장소에 신당을 세우고 해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렸으리라.채석강과 적벽강이 펼쳐진 천혜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으니 신들조차도 비경을 선호했음이다. 근년까지도 풍어기(豊漁旗)가 올라가던 수성당 앞바다에서 역사시대의 제사가 올려졌고,더 앞선 시대에는 마고할머니가 걸어다녔다는 사실에서,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수성당 신앙의 해양문화적 지속성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이렇듯 바다에는 인간 이전에 여신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니,‘바다에 살어리랏다‘에서 어찌 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인가.
  • “한국 현대사의 슬픈 초상 담았죠”

    저예산 실험영화 감독과 흥행배우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영화 ‘해안선’의 김기덕(42)감독과 주연배우 장동건(30)이 14일 부산을 찾았다. ‘해안선’은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수영만요트경기장 내 상영관 시네마테크부산에서 시사를 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축제의 문을 여는 데 미흡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는 소감을 밝혔다.아직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장동건은 “긴장된 마음으로 여러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고 운을 뗐다. 오는 22일 일반 극장에서 개봉될 ‘해안선’은 해안초소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광기를 그린 작품.장동건은 오직 간첩을 잡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강 상병을 연기했다.술에 취해 해안선에서 정사를 즐기던 인근 마을의 젊은 남녀를 오인 사살한 뒤 정신이 이상해져 의가사제대를 하지만,계속 부대를 맴도는 역이다. ‘친구’‘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의 굵직한 영화에서 멋진 역으로 출연한 장동건이 최대로 망가지는 이번 역은 충격적이다.그는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에서 일정정도 선을 긋는연기를 하는 데 지쳤다.”면서 “일상적이지 않은 감정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 김 감독을 먼저 찾아갔다.”고 말했다.실험영화에 흥행배우가 출연하는 선례가 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단다. 김 감독에게 장동건을 평가해 달라고 부탁하자 “스타와 함께 일해서 떨렸지만 차마 사인은 받지 못했다.”며 재치있게 받아 넘겼다.“오래 전부터 그의 연기를 보며 내면에 있는 끔찍한 캐릭터를 끄집어내고 싶었습니다.하지만 좋은 이미지를 깎지는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그는 영화 편집 후주위에서 “장동건이 손해볼 건 없겠다.”고 평가해 안심이 된다며 웃었다.하지만 장동건은 “오히려 내가 김 감독의 독특한 색깔을 변색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팀워크’를 과시했다. 1996년의 데뷔작 ‘악어’에서부터 내내 소외된 인간 군상을 충격적인 영상에 담아온 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기질을 발휘했다.“영화 ‘해안선’은 우울한 작품입니다.한반도의 긴장이 자해적 상황을 연출하는,한국 현대사의 슬픈 초상을 담았죠.” 세계 3대영화제인 베니스와 베를린에 ‘섬’‘수취인불명’‘나쁜 남자’를 잇따라 출품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김 감독.하지만 여전히 캐릭터와 이야기 중심으로 흘러가는 국내 영화계에서 그의 영화는 비주류다.최고 스타의 출연과 부산영화제 개막작이라는 명함이 이번엔 흥행의 행운까지 가져다줄지,영화팬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부산 김소연기자 purple@
  • 해안초소 근무 전경 총맞고 숨진채 발견

    28일 오전 6시5분쯤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 해안에서 제127전경대소속 조준환(20·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2동) 일경이 머리에 총을 맞고 숨져 있는 것을 동료 전경대원들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대원들에 따르면 해안초소 근무중 조 일경이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온평초소에서 100m쯤 떨어진 분견초소 해안가에 이마 부분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있었다는 것이다.숨진 조 일경 부근에서는 실탄이 장전된 M16소총과 탄피 1개가 발견됐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수해복구 군장교 폭발물 터져 중상

    수해복구작업을 하던 군장교가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다. 4일 오전 11시50분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 대진 해안초소 인근 강명원(71)씨 집앞에서 육군 모부대 김모(28) 중위가 갑자기 터진 폭발물로 양 손과 가슴,눈 등을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김 중위는 양 손 손가락 모두가 훼손되는 중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 강씨는 “김 중위가 수해복구작업 중 길이 15㎝ 가량의 폭발물을 발견하고 옮기던 중 터졌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고성 조한종기자 bell21@
  • 군초소서 총기사고 근무사병 2명 사망

    3일 오전 11시40분∼낮 12시 사이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육군 모부대에서 총기사고로 사병 2명이 숨졌다. 군당국에 따르면 사천면 방동리 사천해수욕장 인근 해안초소에서 해안 경계근무중이던 최모(21) 상병과 박모(21) 일병이 K-2소총 실탄을 맞고 숨져 있는 것을 오후 1시쯤 근무 교대자가 발견했다. 군당국은 사망 사병을 국군 강릉병원으로 옮기는 한편 인근 주민들이 총성2발이 울린 뒤 잠시 후 1발이 더 들렸다고 말한 것과 총상 형태 등을 확인하며 자살 여부 등 정확한 총기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최 상병과 박 일병은 각각 지난해 3월13일과 지난 1월2일 입대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
  • 제주 해안초소 아름답게 단장

    제주도내 해안초소들이 국제관광지에 걸맞게 단장된다. 제주지방경찰청은 5일 내년부터 오는 2002년까지 59억4,000만원을 투입,도내 72개 해안초소를 내무반과 식당,화장실,샤워장,창고시설 등을 갖춘 현대식 복합건물로 신·개축하기로 했다.주변 환경도 각종 조경수 등으로 단장한다. 사업 첫해인 내년에는 17억7,800만원으로 23개소를 신·개축하고 나머지는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이와 함께 해안 경계에 보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 10개 주요 해안초소에 야간투시경도 설치할 방침이다. 제주도내 해안초소들은 대부분 지난 79∼84년 만들어진 반지하 시설로 식당과 샤워시설은 물론 냉·난방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특히 지난96년부터는 근무인원이 9명에서 15명으로 증강됐으나 수용시설은 제자리여서 내무반 환경도 열악한 실정이다. 현성일(玄誠一) 청장은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 계획과 근무요원들에 대한 복지 향상책으로 해안초소 정비계획을 마련했다”며 “새 초소가 완공되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해안도로 미관도 한층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北 반잠수정 南海 침투­발견에서 격침까지

    ◎육·해·공 입체작전 7시간35분/18일 새벽 함포3발에 “상황 끝”/17일밤 해안초병 여수앞바다서 괴선박 첫 포착/경비정·초계함·조명기 총출도에 2차례 교전끝 격침 긴박했던 7시간35분동안의 추격전.육·해·공군은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공동 입체작전을 펼치며 북한의 반잠수정을 격침시켰다. ▷발견◁ 17일 밤(음력 10월 29일) 11시15분쯤. 육군 31사단 95연대 1대대 여수 임포소초 초병 金泰完 이병(21)은 그믐밤의 칠흙같은 어둠을 실감했다. 해안경계 강화태세가 내려진지 7일째. 야간감시장비(TOD)를 확인하는 순간 두눈이 번쩍 떠졌다. 전방 2㎞ 지점에서 수상한 선박 1척이 1.5m의 파도를 넘나들며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선박에 안테나와 해치 2개가 설치돼 있고 4∼5명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도 확인했다. ‘간첩선’임을 직감한 金이병은 인터콤을 통해 소초 상황실 林承煥 병장(22)에게 괴선박의 출현을 보고했다. 15분후 경비정 2척이 출동했으나 반잠수정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반잠수정이 다시 임포소초 TOD에 포착된 것은 18일 오전 1시40분쯤. 반잠수정은 발각됐다는 낌새를 채고 임포소초 전방 8㎞ 해상에서 공해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추적◁ 군은 레이더 추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오전 2시10분쯤 조업중인 어선이 정지토록 하는 선박경보를 발령했고 경비정 2척이 시속 40∼50노트(70∼80㎞/h)의 고속으로 반잠수정을 뒤쫓았다. 오전 3시7분,합참본부는 위기조치반을 소집했다. 3시18분 해군은 진해기지에 정박중이던 800t급 초계함 광명함(함장 孫민 중령)을 현장으로 출동시켰고 공군도 김해비행장에 있던 CN­235 조명기 3대를 급파했다. 함정 8대로 도주로도 차단했다. 오전 4시38분쯤 반잠수정과 첫 조우한 광명함은 경고 사격을 하며 정지할 것을 명령했다. 반잠수정은 기관총을 난사하며 공해쪽으로 달아났다. 우리 해상을 침투한 괴선박을 좆던‘날치’작전이 괴선박으로부터 응사가 있은 이때부터 ‘망둥이’작전으로 격상됐다. 새벽 4시45분쯤 CN­235 조명기 3대가 도주하던 반잠수정을 발견,조명탄 175발을 투하,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또 기총과 2.7인치 로켓으로 무장한 F­5전투기 1대와 S­2E 초계기가 상공을 맴돌았다. 오전 5시35분쯤 거제도 남방 100㎞ 해상에 도달한 반잠수정은 35노트에서 8노트로 속도를 갑자기 떨어뜨렸다. ▷격침◁ 5시48분쯤 반잠수정에서 갑자기 기관총이 발사됐고 나포하려고 접근하던 고속정 좌현에 ‘퍽’하는 파열음과 함께 7.62㎜ 총탄이 박혔다. 투항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남원함(함장 李순항 중령)은 오전 5시48분 76㎜,40㎜,20㎜ 함포로 집중사격을 가했고 10분 뒤인 5시58분 함포 3발이 반잠수정에 명중했다. 반잠수정이 가라앉으면서도 5노트(8㎞)의 속도로 움직이자 수중 도주에 대비,폭뢰 5발을 투하했다. 오전 6시50분쯤 반잠수정은 마침내 수면 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격침 시간대별 조치 ●17일 오후 11시15분=육군 00사단 여수 임포소초 초병,미상선박 접근 탐지 ●〃 〃 11시30분=해경정 육경정 1척씩 출동 수색 ●18일 오전 1시40분=임포소초 초병,도주중인 미상선박 2차 포착 ●〃 〃 2시10분=선박경보 발령,해경정 육경정 추적 ●〃 〃 2시46분=육군 레이더 미상선박 3차 포착 ●〃 〃 3시7분=합참 상황접수 ●〃 〃 3시20분=해군 광명함 출동 ●〃 〃 3시35분=공군 CN­235 조명기 출동 ●〃 〃 4시38분=해군 광명함 미상선박에 경고사격 및 응사 ●〃 〃 4시39분=북한 반잠수정 확인,F­5F 전폭기 출동 ●〃 〃 5시1분=P­3C 대잠 초계기 출동 ●〃 〃 5시10분=해군함정 8척 외해 차단 ●〃 〃 5시48분=북한 반잠수정 아군 고속정에 응사,도주 ●〃 〃 5시58분=해군 남원함 함포 사격,3발 명중 ●〃 〃 6시20분=추가사격 및 폭뢰 투하 ●〃 〃 6시25분=반잠수정 침몰 시작 ●〃 〃 6시50분=반잠수정 완전 침몰 ●〃 〃 8시7분=잠수복 차림의 북한군 시신 1구 인양
  • 남해 침투 北 반잠수정 격침/수류탄 휴대 시신 1구 인양

    ◎17일밤 여수 앞바다 접근… 추적 7시간만에 합동참모본부는 18일 북한 괴선박이 남해안에 침투,해안 경계병에게 발각돼 달아나다 공해상에서 우리 군에 의해 격침됐다고 발표했다. 합참은 격침된 괴선박은 10t 크기의 북한 반잠수정이며 4명 이상이 승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군·경은 해군 함정과 특수수색대 요원들을 동원해 수심 108∼190m 가량의 해상에서 수색작전을 펼쳐 이날 오전 8시7분쯤 물위로 떠오른 승무원 시신 1구를 인양했다. 군 당국은 사망한 승무원이 잠수복과 구명의,특수오리발,수류탄 1발 등을 소지한 점으로 미뤄 대남침투 특수공작요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해군은 격침 현장에 인양선 2척을 급파,예인을 위한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하지만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빠른데다 반잠수정도 상당히 파손됐기 때문에 예인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에 앞서 17일 오후 11시15분쯤 전남 여수시 돌산읍 임포리 육군 31사단 해안초소 전방 2㎞ 앞바다에 괴선박이 출현,상륙을 시도하다가 해안 초병 金泰完 이병(21)에게 발각되자 동남쪽 해상으로 도주했다. 육군은 10t급 경비정으로 추격을 시작하는 한편 이를 합참에 보고,해군과 공군,해경 등의 대잠초계기 P­3C,링스 대잠헬기,F­5F 전폭기,CN­235 조명기,고속정 등이 출동해 합동 추격작전에 들어갔다. 군·경은 35노트 속도로 달아나는 반잠수정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며 추격,경남 거제 남방 100㎞ 공해상까지 쫓아가 나포작전에 들어갔으나 반잠수정측에서 오전 5시30분쯤 우리 함정에 사격을 가해와 함포 등으로 응사했다. 군·경은 이어 해군 초계함 남원함의 76㎜,40㎜ 함포에 명중돼 속도가 5노트로 떨어져 기우뚱한 채 도주하는 반잠수정을 향해 폭뢰를 터트려 오전 6시50분쯤 완전 침몰시켰다. 군 당국은 경찰과 안기부 등으로 합동신문조를 구성,반잠수정의 소속부대와 침투목적 등에 대한 정밀분석에 착수했다. 한편 군은 북한 공작원의 육상침투 가능성에 대비해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반잠수정이 첫 발견된 전남 여수와 순천 일대에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경남 남해에 ‘진돗개 둘’을 각각 발령,주요 길목을 차단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 또 잠수정 침투라니(사설)

    북한의 반잠수정이 또 남해안에 침투하려다 우리 군에 의해 격침됐다. 잠수복차림의 특수공작요원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간첩을 침투시키거나 호송하기위한 간첩선임이 명백하다. 지난 6월 속초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잡혔던 것을 비롯,지난 달 강화 앞바다 침투 기도에 이은 잇단 도발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의해 남북간 교류·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은 변함없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바다위로는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고 바다밑으로는 간첩선이 내려오는 상황이라 하겠다. 우리 정부의 일관된 대북포용정책으로 그동안 남북간 교류·협력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금강산관광객을 맞는태도나 교류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등 북한에도 많은 변화가 보이고 있다. 올들어 지난 달말까지 경제 종교 문화예술등 각 분야에서 2,600여명이 방북했다. 지난 89년부터 지난 해까지 9년동안의 방북 인원이 모두 2,400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라 할 수 있겠다. 제3국에서 북한주민을 만나는경우나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상봉등도 크게 늘고있다. 얼마전에는 남한의 이산가족이 민간차원에서 북한에 들어가 가족과 만나기도 했다. 금강산관광도 시작된지 한달만에 5,800여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金正日 체제출범이후 ‘강성대국’을 부르짖으며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전투력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금창리 핵의혹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문제이후 미국과의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며 연일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전쟁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서해에 이어 남해안까지 잠수정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경제난을 해결하기위해서 외부지원과 협력이 절실한 한편 내부적으로는 체제결속이 필요한 북한의 딱한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을 도발행위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정말 안타깝다. 교류·협력의 확대와 변화만이 북한을 살리는 길이다. 긴장과 불신을 조장하는 도발행위들은 중단해야 한다. 침투하는 경비정을 해안초소에서 재빨리 발견,기민한 입체작전으로 격침한 우리 군이 믿음직스럽다. 잇단 사고로 떨어진 사기를 되찾아 신뢰받는 국민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대북포용정책은 굳건한 안보태세가 뒷받침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고독한 사령관 경찰서장:3(공직 탐험)

    ◎지역민과 애환 함께하는 마당발/지방서장 지역정화 더 신경/수시로 관내 돌며 애로 청취/승진기회 적어 의욕 잃기도 “영감님,서울 자제분이 연락 자주 하세요?” “뭐라고,허리가 아파”. “지난 번에 말씀드렸잖아요,읍내 약국에 좋은 약이 나와 있으니 사 드세요”. 농촌을 끼고 있는 충청 지역의 C모 서장이 지역 순찰을 나갔다가 논길에서 마주친 70대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내용이다. C서장은 수시로 관할지역을 돈다. 특별한 현안이 있어서가 아니다. 노인정도 들르고 마을회관도 들른다. 주민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애로사항도 청취한다. 신문이나 TV를 제대로 보지않는 노인이나 부녀자 등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시골서장은 C서장처럼 범죄 예방 및 단속보다는 지역 주민이 느끼는 불편을 덜어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도시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사건이 적기 때문이다. 추수철에 정미소 쌀이나 농가의 양파를 훔쳐가는가 하면 소나 인삼 등 농특산물을 차량을 이용,훔쳐가는등의 ‘계절성’도둑이 이따금기승을 부리는 정도다. 때문에 시골서장은 법집행보다 ‘특수사업’에 더 신경쓴다. C서장은 ‘노인에게 인사잘하기 운동’을 벌였다. K모 서장은 ‘도박근절’을 지역정화의 과제로 내세웠다. 도박근절을 강조하자 제보도 많아 1년에 36명을 구속시켰을 정도다. 그는 ‘사망사고 줄이기’도 함께 추진했다. 상습사고 지역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과속 방지턱을 많이 만들어 사고율을 줄였다. 시골서장은 걷는 양이 엄청나다. 주민수는 적으나 지역은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넓을 뿐만 아니라 차로 다닐 수 없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강원도 인제·홍천,충북 괴산 경찰서는 관할 면적이 서울 전체보다 넓다. 홍천서장을 거친 L모 서장은 “관할 면적이 서울의 3배였다”면서 “전체 180개 이(里)를 수시로 돌다보니 1년에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을 상대로 산불조심 등을 당부하거나 간첩용의자 등 거동수상자를 신고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서장이 챙기는 일이다. 접적(接敵)지역이라면 군부대 부대장과 협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해안경계선중심의 치안으로 새벽에 해안초소 순시도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시골서장이 의욕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본청 및 본청 산하기관,서울청에서 일하는 100여명의 총경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약 300명 가량의 총경들은 이른바 ‘지역총경’으로 분류돼,경무관으로 승진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계급정년이나 연령정년이 임박할수록 승진 욕구보다 퇴직 이후를 생각하느라 부정과 무사안일에 빠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지역 주민들의 불신과 외면으로 이어져 치안공백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韓·美 對潛훈련 대폭 강화/합참

    ◎年 4회로… 민·관·군 주기적 통합훈련 앞으로 북한의 위협적인 도발에 대비한 ‘민·관·군 통합 위기상황 조치 훈련’이 주기적으로 실시되고 한미 대잠 연합훈련도 대폭 강화된다. 합동참모본부는 16일 합참회의실에서 金辰浩 합참의장 주재로 예하 작전사령관 및 관·경 등 관계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합 방위관계관 회의를 열고 이같은 ‘민·관·군 통합 대비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제 실시를 계기로 지난해 마련된 통합 방위법에 근거한 민·관·군의 협조체제가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통합위 기조치 훈련을 갖기로 했다.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한 통합 방위교육도 실시한다. 한미 대잠 연합훈련은 기존 1회에서 4회로 늘리는 등 대잠활동을 대폭 강화키로 했다. 해안경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동해안을 중심으로 해안초소를 늘려 해안경계력을 높이기로 했다. 지금은 약 300m 간격으로 해안초소가 운영되고 있다.
  • 꽁치잡이 어선 선장이 속초 어업국에 신고/시간대별 상황

    ◎해군함정 7분만에 출동… 船體 확보후 예인 북한 잠수정 발견 신고를 받은 경찰과 해경,해군,공군은 신속하게 현지로 출동하고 해안 경계근무를 강화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잠수정 승선자의 해안 침투에 대비해 5분 대기조 출동 태세를 갖추고 모든 해안초소에서 경계 근무에 돌입했으며 해군 P­20정은 신고 7분만에 출동해 1시간만에 현장에 도착,수색에 들어갔다. 이어 해군 고속정 3대도 잠수정 확인차 전속력으로 항해해 현장에 도착했고 고성 거진에서도 해군 함정이 출발하는 등 급박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시간대별 상황은 다음과 같다. ▲22일 하오 4시33분 속초선적 꽁치자망어선인 동일호 선장 金仁龍씨(38)가 조업중 北잠수정 발견,속초 무선어업국에 신고 ▲속초무선어업국은 즉각 속초해경에,속초해경은 속초경찰서에 통보 ▲속초경찰서 등 동해안 각 경찰서 해안경계근무 강화 및 전 해안초소 해안 경계근무 강화 ▲4시40분쯤 해군 P­20정 현지 이동 ▲5시15분 거진에서 잠수정 확인차 함정 출발 ▲5시 해군 고속정 3척 잠수정 확인차 전속 항해 ▲5시20분쯤 잠수정 발견 해상 상공 헬기수색 ▲5시50분쯤 해군 P­20정 현장 도착 ▲6시11분 선체 확보하고 투항 권유 ▲7시35분 예인작업
  • 시비중 수류탄 터뜨려/중사·상병 등 2명 사망

    【삼척=趙誠鎬 기자】 6일 하오 7시50분 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육군 모 부대 해안초소에서 이 부대 소속 張泰昊 상병(24)이 갖고 있던 수류탄을 터뜨려 張상병과 李起太 중사(28) 등 2명이 숨졌다. 군당국은 사고 당시 張상병과 李중사가 다투었다는 부대원들의 말에 따라 張상병이 우발적으로 수류탄을 터뜨린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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