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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로 달아난 미얀마 경찰들 “내가 발포 명령 거부한 이유”

    인도로 달아난 미얀마 경찰들 “내가 발포 명령 거부한 이유”

    “시위대를 향해 쏘라는 지시를 들었다. 난 그들에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미얀마 군부의 유혈 진압 명령에 반발해 인도 북동부 미조람주로 넘어가 숨어 지내는 나잉(가명·27)을 비롯한 여러 명의 미얀마 경찰관, 그 가족들을 영국 BBC 인도 기자가 어렵사리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얀마 서부의 한 마을에서 9년째 말단 경관으로 복무했던 나잉은 지난달 말부터 시위가 격렬해지자 두 차례나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달아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상사에게 못하겠으며 난 국민들 편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군부는 몰려 있다. 그래서 점점 더 잔인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잉은 인터뷰하는 도중 휴대전화를 꺼내 아내와 다섯 살과 6개월 된 두 딸을 집에 남겨두고 왔다며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는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 경관은“군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뿐인 무고한 사람들을 내 손으로 죽이거나 다치게 할까봐 겁이 났다. 우리는 군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킨 것은 잘못됐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인도 접경지역인 북서부 캄파에서 경찰로 복무한 타 펭(27)이 “경찰 규정상 시위대를 저지할 때는 고무탄을 쏘거나 (실탄은) 무릎 아래만 쏴야 하는데도 죽을 때까지 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고 로이터 통신도 이날 보도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달 1일 쿠데타로 정부를 전복시킨 뒤 반발하는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하며 강경 진압해 지금까지 60명 이상이 사망했다.BBC 기자가 미얀마 경관들을 만난 곳은 국경으로부터 16㎞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들은 유혈 사태 초기에 이곳으로 피신한 사람들인데 미얀마에 들불처럼 번지는 시민불복종운동(CDM)에 가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다만 경관들이 말하는 내용을 독자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현지 관리들은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100명 이상이 미조람주로 탈출했다고 말한다. ?(가명·22)이란 경관은 군부가 정부를 전복한 날 밤에 인터넷이 차단되고 그의 경찰서 근처에 군 초소가 설치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동료 경관과 짝을 이뤄 군인들과 한 대도시의 길거리를 순찰했는데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명령을 들었지만 거부했다고 털어놓았다. “군인 간부가 우리에게 5명 정도 밖에 안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했다. 난 사람들이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고한 이들이 피를 흘렸다. 내 양심 상 그런 사악한 행동에 가담할 수 없었다.” 경찰서를 몰래 빠져 나온 그는 모터바이크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그레이스(가명·24)란 여자 경관은 BBC 특파원이 만난 미얀마 경찰 출신으로 인도 망명을 희망하는 두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군인들이 채찍과 고무총탄을 사용하고 최루가스를 어린이들도 포함된 시위대에 발사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가 군중을 해산시키고 우리 친구들을 체포하길 원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경찰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제 시스템이 바뀌었다. 우리는 경찰 일을 계속할 수 없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심장이 아주 좋지 않다고 했다.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하지만 자신과 같은 미얀마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쪽으로 몰리고 있다고 했다.미얀마 군부는 이들을 송환해달라고 요청했다. 두 나라의 우호 관계를 위해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미조람주 수석장관은 인도에 도착하는 이들에게는 임시 보호소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연방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BBC 특파원은 경찰 뿐만아니라 한 가게 주인도 만났다. 미얀마 당국은 그가 온라인 반정부 활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이기심으로 달아난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모두가 걱정스럽다. 안전을 위해 이곳에 왔다. 이곳에서 운동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에야 미얀마 군부의 시위대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미얀마의 우방인 중국을 포함해 15개 이사국이 전원 찬성한 이 성명은 이날 오후 의장성명으로 공식 채택된다. 의장성명은 결의안 바로 아래 단계의 조치로 안보리 공식 기록에 남는다. 영국 주도로 작성한 초안에 비해 상당히 후퇴했다고 AP 통신은 지적했다. 영국이 회람한 초안에는 ‘쿠데타’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를 규탄하고, 유엔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수정된 성명에서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미국 재무부는 미얀마 군정을 이끄는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가족을 제재하기로 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두 성인 자녀와 이들이 장악한 기업체 6개에 대해 미국 내 자산 동결, 거래 금지 등 제재를 내린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미국이 제재를 부과한 직후 트위터로 “영국도 추가 제재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미얀마 정권이 권력 남용과 인권 침해로부터 이익을 얻어선 안 된다는 우리의 입장은 명확하다”고 밝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사진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봄이 오면 생각나는 맛, 베트남 음식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봄이 오면 생각나는 맛, 베트남 음식

    봄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베트남 음식이다. 새콤달콤 강렬한 맛의 태국 요리와 기름진 중국 요리의 중간쯤에 있는 듯한 베트남 요리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입맛을 사르르 녹여 줄 별미 같다고 할까. 베트남 음식 하면 쌀국수나 월남쌈이 연상되는 정도였지만 요즘은 다르다. 분짜, 분보훼, 짜조 등 현지에서나 들어봄 직한 음식을 동네 베트남 식당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동남아’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사실 그 안에 포함된 나라들은 한중일만큼이나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중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 온 나라다. 기원전 3세기부터 10세기까지 약 1300년 동안 북부 베트남은 중국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던 만큼 밥상 곳곳에서 중국의 흔적을 쉽게 엿볼 수 있다.새해를 축하할 때 찹쌀로 만든 떡을 먹는 관습, 국수 문화, 젓가락 중심의 식습관은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 일본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한중일 대부분의 음식에 간장이 들어가듯 동남아에서는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간장인 피시소스를 기본으로 사용한다. 특히 북부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으로 간장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후추, 식초 등을 다른 지역보다 많이 쓴다. 중국 다음으로는 영향을 준 나라는 1860년부터 약 100년간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다. 한국이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동안 일본 식문화가 스며들었던 것처럼 프랑스 식문화도 베트남에 큰 영향을 줬다. 대표적인 게 베트남 쌀국수 ‘퍼’다. 퍼의 유래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중국 광둥 지역의 쌀국수 ‘휜’에서 왔다는 설과 1900년 초 베트남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이 만든 소고기 국물요리인 ‘포트푀’를 근원으로 한다는 설이다.중국이 베트남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전자가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현지에서는 ‘포트푀’ 유래설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하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하기 전에는 소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국수 형태의 음식은 전부터 존재했지만 진한 소고기 사골 육수를 쓰는 방식은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소고기 육수에 소고기 고명을 얹어 내는 것을 베트남식 쌀국수라고 부르지만 베트남에서 정식 명칭은 ‘퍼보’이며 북부 음식으로 통한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음식은 또 있다. 짧은 바게트에 고기와 야채를 넣는 샌드위치의 일종인 ‘반미’다. 들어가는 재료는 베트남식이지만 프랑스식 바게트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가벼운 한 끼 간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베트남 지도를 보면 남북으로 가늘고 길쭉하게 뻗은 모양새다. 그만큼 북부와 중부, 남부의 기후는 서로 다른 나라라고 할 정도로 제법 차이가 난다. 사람들의 기질과 문화 그리고 음식도 다르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북부는 짭짤하고 담백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쌀국수를 필두로 석쇠에 구운 고기를 식초물에 담가 먹는 ‘분짜’, 라이스페이퍼에 고기와 야채를 만 월남쌈 ‘반꾸온’ 등이 유명하다. 쌀가루에 전분을 섞어 반죽해 만든 라이스페이퍼를 가장 많이 먹고 다양하게 이용하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잘게 썰면 쌀국수가 되고, 넓게 잘라 물에 적셔 음식을 싸 먹거나 기름에 튀겨 먹기도 한다.남부는 음식이 훨씬 다채롭다. 인근 태국과 인도 요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새우를 발효시켜 만든 새우페이스트, 시고 상큼한 맛을 내는 레몬그라스와 강렬한 향신료를 사용해 단맛과 짠맛, 신맛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메콩강 하류와 인근 바다에서 잡은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해 고기류보다 해산물 요리가 주를 이룬다. 프랑스 식민 지배 당시 이주해 온 남인도 출신 노동자들로 인해 인도풍 커리 요리도 찾아볼 수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카리’라고 부른다. 남부와 북부 음식이 선명하게 다른 데 비해 중부지방 음식에선 ‘후에’라는 베트남 궁중요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응우옌 왕조의 투덕 왕은 같은 요리를 한 해 두 번 이상 먹지 않을 정도로 무척 까다로운 미식가였다고 한다. 궁중요리사들은 왕을 위해 2000가지가 넘는 레시피를 고안해야 했다. 다양한 조리기법을 사용해 복잡하고 화려한 편이다. 후추나 고추 등을 적극 사용해 매콤한 음식도 대부분 중부 요리에 속하는데 대표적인 건 매운 쌀국수 ‘분보훼’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태국식 똠얌꿍 스프나 우리나라 육개장을 연상시킬 만큼 자극적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쉽게 맛볼 수 있는 이국의 맛이라고 할까.
  • [글로벌 In&Out] 3·8국제부녀절과 북한/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3·8국제부녀절과 북한/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북한은 기념일이 많은 나라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 ‘명절’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첫 번째 뜻으로 ‘나라와 민족에 의의 깊고 경사스러운 날로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축, 기념하는 날’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3·1운동을 기념하는 ‘반일인민봉기일’이나 1947년 8월 20일 김일성이 북한 역사상 최초의 비행대를 창설한 것을 기념하는 ‘공군절’ 같은 기념일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민족적 기념일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도입된 국제기념일도 있다. 보통 사회주의 명절이라 하면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이 5·1 노동절이지만 한 가지 더 대표적인 것이 있다. 바로 여성의 날, 일명 ‘3·8국제부녀절’이다. ‘여성의 날’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요일이었던 1909년 2월 28일, 미국 사회당이 여성의 날을 처음 선포하고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후 여성의 날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퍼졌으며 국제적인 기념일로 승격됐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당시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1917년 3월 8일(구력 2월 23일) 러시아 2월 혁명의 배경까지 됐다. 하지만 2월 혁명이 러시아 국민의 염원에 응답하지 못하자 10월 혁명이 일어나 레닌을 수반으로 하는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다. 사상 최초 노농정권인 레닌 정부는 1919년 이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국제 근로여성의 날’이라 명명했다. 여성의 날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20년대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을 비롯한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모체였던 염군사가 1924년 3월 8일 종로 청년회관에서 ‘국제 부인 데이 기념강연’의 개최를 시도했으나 일제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국제부인절을 계속 기념해 나갔다. 해방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국제 여성의 날을 공식화하려던 지식인들의 노력이 남한에서 미군정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북한에서는 반대로 소련군의 지지와 지원을 얻었다. 1946년 3월 8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기관지인 ‘정로’에서 국제부녀절을 기념하는 일련의 기사가 발표되고 일부 지역에서 각종 행사도 진행됐다. 공산당 기관지이지만, 김일성이나 당을 찬양하는 내용이 극히 적었다. 재미있게도 북한에서 명절의 국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기념일이 유럽에서 등장한 1911년을 원년으로 해서 해마다 ‘3·8국제부녀절 ○○돐’이라고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북한에서 국제부녀절의 의미도 변화했다. 1920년대 한반도에 들어온 국제부녀절은 근대화의 상징으로 봉건적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1945~1948년 건국 시기의 북한은 민족의 통일과 ‘민주국가 건설에 민족영웅’이 돼야 한다는 뜻이 강조되고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 북한 국제부녀절 행사에서는 북한 여성들도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선전이 비교적 강했다. 북한이 기념하는 국제부녀절의 특징이 한국전쟁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 초 국내·소련·연안파가 숙청되고 김일성의 우상화가 진행된다. 1960년대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되면서 여성의 날은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혁명활동과 관련된다. 이 과정이 본격화되면서 1970년대 이후 여성 해방이 김일성의 송가로 바뀐다. 이러한 추세는 나날이 강화되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돼 왔다. 2020년 3월 8일 노동신문이 북한의 여성을 ‘영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지니고 일편단심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는 참된 혁명가’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다.
  • 군산에 대해 미처 몰랐던 것들, 울외장아찌 채만식 이은주

    군산에 대해 미처 몰랐던 것들, 울외장아찌 채만식 이은주

    전북 군산이 좋은 도시란 것은 누구나 안다. 신선하고 횟감이 그득하고 아름다운 섬들이 지척이다. 전라도 땅이면서 충청 사람이 많아 한결 부드럽고 눙치는 사투리가 질펀하고 지붕 없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지난해 도발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늬들이 서울을 알아?’을 펴냈던 SBS 기자 출신 김병윤 선배가 2편 격으로 ‘늬들이 군산을 알아?’(감미사)를 펴냈다. 전작이 조선시대 얘기가 많았다면 이번은 불과 100년 전, 일제 강점기 아픈 얘기들이 수놓는다. 1987년 야구 취재를 위해 처음 찾았다가 바쁜 기자생활 속에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군산을 30년을 훌쩍 넘긴 지난 2019년 운명처럼 다시 찾았단다. 군산의 속살을 취재한다며 고샅을 누비다 창피함을 느꼈다고 했다. 군산의 아픔을 모르고 살았던 스스로가 미워질 정도였다고 했다. 해서 속죄의 심정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예 군산에 터 잡고 군산사람들 얘기를 속속들이 글로 옮겼다. 과거를 끄집어냈다. 현재를 적었다. 미래를 그렸다. 한 문장을 쓰느라 2시간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원고를 미리 살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울외장아찌였다. 임금님이 먹던 음식이다. 군산의 특산물이다. 울외는 군산에서 많이 재배하는데 성산면이 울외장아찌 특화마을로 조성돼 있다.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덩굴식물인데 박과 오이, 참외를 두루 닮았다.호남평야의 좋은 쌀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비옥한 농지는 일본인에게 빼앗겼다. 소작농으로 전락해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군산의 선조들은 먹을 쌀이 없어 벼 옆에 자라는 잡초인 피죽으로 연명했다. “피죽도 못 먹었냐”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군산에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사찰 동국사가 남아 있다. 일본식 가옥 170여 채도 잘 보존되고 있다. 히로쓰 가옥은 거의 원형 상태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군산세관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 국내 3대 서양고전주의 건축물의 하나로 보존돼 슬픈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군산내항은 수탈당한 쌀들이 실려나간 고통의 현장이다. 빛바랜 임피역은 그 시절의 아픔을 감춘 채 낭만을 찾는 이들에 쉼터가 되고 있다. 군산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섬이 아름답다. 왕들이 반한 섬이다. 신선의 섬이다. 군산의 섬을 걷다보면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된다. “석양이 비출 때 몽돌해변을 걸어 보라. 황혼의 노부부가 걸으면 지나온 삶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서로가 미안한 마음에 두 손 꼭 잡게 된다. 젊은 연인이 걷게 되면 말없이 껴안게 된다. 석양의 붉은 빛보다 더 뜨겁게 사랑해야 되겠다며.” 너무 아름다운 섬들이 많은데 다섯 곳만 책에 실어 안타깝다고 했다. 싱싱한 해산물. 바닷바람을 견뎌낸 채소 등 음식 재료가 풍성한 곳인데 손맛이 더해지고 넉넉한 인심에 사투리가 더해진다. 군산에 머무는 내내 저자는 객지에 와서 먹을 걱정을 안해 행복했다고 했다. 군산 사람들은 강하다. 자신의 아픔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과거의 아픔을 미래의 희망으로 탈바꿈 시켰다. 진취적이다. 현대중공업과 GM자동차의 철수로 지역경제가 힘들지만 문화예술관광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융합된 특색 있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해양관광도시가 설립된다. 군산은 이방인의 도시다. 많은 예술인들이 정착을 하고 있다. 유명 아티스트들이 터를 잡아 채만식과 이은주 등의 뒤를 잇고 있다. 군산은 건강의 도시다. 시내에 나지막한 산이 많다. 해발 200m 안팎의 산이다. 언제나 부담 없이 올라갈 수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가면 된다. 자연과 역사가 숨쉬는 트레킹 코스도 자랑거리다. 11개 코스로 이뤄진 구불길은 트레킹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백제부터 현재의 역사를 체험하며 걸을 수 있다.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된다. 몽돌해변의 파도 소리에 시름을 씻겨 보낼 수 있다. 아! 군산 가고 싶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판소리 중고제 명창 이동백/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판소리 중고제 명창 이동백/손성진 논설고문

    판소리는 전승 계보에 따라 음악 특성이 달라지는데 이를 ‘제’(制)라고 한다. 호남의 판소리는 대개 섬진강을 경계로 동쪽은 동편제, 서쪽은 서편제로 불린다. 운봉·남원·구례·곡성 등에서 발달한 동편제는 대마디 대장단을 선호하며 잔기교를 덜 부리고 감정을 절제하는 창법을 구사한다. 소리를 꿋꿋하고 튼실하게 내며 소리 끝을 여운 없이 탁 그치며 마친다. 영화 ‘서편제’로 잘 알려진 서편제는 익산·고창·광주·나주·목포 등지에서 발달했는데, 소리가 애절하고 구성지며 기교적이다. 붙임새도 다양하고 소리의 꼬리도 길어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중고제(中高制)는 경기 남부와 충청 지역에서 전승된 판소리 형식이다. 경기와 충청은 말투부터 호남과는 다르다. 반음을 많이 쓰고 소리의 끝이 매우 높아 동편제 계열에 속한다고 한다. 이동백(1866~1949)은 충남 서천 비인 출신의 중고제 명창이다. 송만갑(동편제), 김창환(서편제), 김창룡(중편제), 정정렬(서편제)과 함께 근대 5대 명창으로 불린다. 이동백과 김창룡을 배출한 서천은 중고제의 요람이었다. 이동백은 13세 때 김정근에게 잠시 판소리를 배우고 김세종 문하에서 5년 동안 공부했다. 20세 전후에 도만리 호리산에서 2년간 독공(獨工)하고 다시 진주 이곡사에 들어가 3년간 공부했다. 절에서 나오자 경남 창원부사의 부름을 받고 ‘새타령’을 불러 이름을 떨쳤다. 이후 창원에서 살며 명창으로 차츰 알려졌다. 이화중선 등이 그의 제자다. 이동백은 45세 무렵 서울로 올라와 김창환, 송만갑과 함께 원각사에서 창극을 공연했고, 원각사가 해산된 뒤 연흥사, 광무대 등에서 공연했다. 광고에 나오는 최초의 창극 음반인 ‘일축조선소리반 춘향전 전집’을 녹음했을 때 그의 나이 60세였다. 1933년 송만갑, 정정렬 등과 조선성악연구회를 조직, 이사장을 맡아 판소리 교육에 힘썼다. 1939년 부민관에서 은퇴 공연을 하자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두 달 동안 전국과 만주, 연해주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고 한다. 풍채가 당당한 이동백의 성음은 매우 미려하고 웅장했다. 판소리 애호가 이영민은 이동백의 풍부한 성량을 여산폭포의 세찬 물결에 비유했다. 고음의 가성으로 새 울음소리나 귀곡성을 표현하는 부분도 탁월했다. 고종은 이런 그를 특히 좋아해 통정대부(通政大夫) 직계를 내리고 어전에서 소리를 하게 했다. ‘심청가’와 ‘적벽가’를 잘 불렀고 특히 새타령은 이날치, 박유전 이후 최고로 꼽힌다. 그의 소리를 담은 음반이 수십 종 남아 있다. ‘흥보가’ 중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심청가’ 중 ‘범피중류’(泛彼中流) 대목도 걸작이다.
  • 미얀마 관리 인도에 편지 “국경 넘은 경찰관 등 송환해달라”

    미얀마 관리 인도에 편지 “국경 넘은 경찰관 등 송환해달라”

    미얀마의 한 관리가 인도 관리에 편지를 보내 국경을 넘어 인도에 들어간 8명의 경찰을 체포해 미얀마로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군부에 고용된 국제 로비스트는 6일(현지시간) 미얀마 군부가 중국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국제사회에 확산돼 외교적으로 고립된 것을 탈피하려는 안간힘으로 보인다. 인도 북동부 미조람주 참파이 지역의 고위 관리인 마리아 주알리는 미얀마 팔람 지구 관리로부터 경찰관 8명이 국경을 넘어 인도에 입국했다는 정보를 들었다며 이들을 송환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편지에는 “두 이웃 나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경관들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주알리는 인도 내무부의 훈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에 경관들과 가족까지 30명 정도가 국경을 넘어와 난민 자격을 얻겠다고 신청했다. AFP 통신은 인도 관리들을 인용해 군경의 유혈 진압에 놀란 미얀마인들이 상당수 국경을 넘어와 인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외에도 현재 최소 85명의 미얀마인이 접경지대에서 대기 중이라고 한 인도 관리는 밝혔다. 인도는 미국 등 서구와 달리 미얀마 쿠데타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등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도는 미얀마, 남아시아 등으로 확대되는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최근 코로나19 백신을 미얀마에 무상 지원하는 등 주변국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에 고용된 로비스트는 이스라엘계 캐나다인 아리 벤메나시로 로이터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군부가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정치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회사인 ‘디킨스 앤드 매드슨 캐나다’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미얀마 군부에 고용됐다면서 서방 국가들이 미얀마 군부를 오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군부가 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지나치게 중국과 가까워졌다면서 “중국 쪽으로 붙을 것이 아니라 서방과 미국 쪽으로 가까이 가야 한다는 (군부의) 압력이 실제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군부)은 중국의 꼭두각시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벤메나시는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수단 군부 등과 계약을 맺고 이들을 대변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미얀마를 방문해 국방장관과 협정서에 서명한 뒤 현재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그는 미국 등 서방이 미얀마 군부에 부과한 제재가 철회되면 수임료를 지급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난민들을 아랍 국가로 보내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와 접촉해 자금 지원을 받아내라는 임무도 군부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주말에도 미얀마 전역에서 쿠데타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양곤 시내의 한 심야 집회에 군경이 또 발포하며 해산에 나섰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사상자가 발생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미얀마 군부 계엄령 선포 임박설...여전히 이어진 시위대 강제진압

    미얀마 군부 계엄령 선포 임박설...여전히 이어진 시위대 강제진압

    6일에도 미얀마 곳곳에서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와 경찰의 강제진압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군부가 곧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소문이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오전부터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과 제2 도시 만달레이를 비롯한 곳곳에서 대규모 쿠데타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국영 매체는 “오는 8일부터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공무원은 파면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시위 현장에는 교사와 국영 철도 노동자 등 공무원들이 함께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고, 양곤에서는 섬광 수류탄을 쓰기도 했다. 앞서 전날 만달레이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구경하던 20세 남성이 목에 총을 맞아 숨졌다. 이로써 유엔(UN)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1일 발생한 쿠데타 이후 시위대를 향한 군경의 총격에 의해 최소 55명이 숨졌다. 이런 가운데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은 전날 안전 공지문에서 “24시간 인터넷 차단과 단전 조치를 수반한 계엄령이 조만간 선포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급속히 유포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교단, 유엔 사무소, 언론 매체 등에서도 관련 소문을 알고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라며 “안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미얀마서 한국 최루탄 사용됐나…문 대통령 “폭력 중단”

    미얀마서 한국 최루탄 사용됐나…문 대통령 “폭력 중단”

    문재인 대통령은 6일 미얀마 군부의 반군부 시위대 유혈 진압이 계속되는 것과 관련해 “미얀마 국민들에 대한 폭력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더이상 인명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얀마 군과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규탄하며,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을 비롯해 구금된 인사들의 즉각 석방을 강력히 촉구한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와 평화가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미얀마 군부의 유혈진압과 관련해 SNS로 메시지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지난 4일 미얀마 사태와 관련해 평화적 시위에 대한 미얀마 군과 경찰의 폭력적 진압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미얀마의 헌정질서가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하는 동시에 우리 교민과 진출 기업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해 나가기로 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양국이 최근 미얀마 상황에 대해 우려를 공유하고, 민주적·평화적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전날인 5일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시위 진압 경찰의 총에 맞은 남성 1명이 사망했다. 미얀마 군부의 유혈진압으로 UN이 확인한 공식 사망자는 54명이며,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제 무기 거래와 사용을 감시하는 해외 비정부기구는 최근 미얀마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산 최루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내놨다. 영국의 무기 거래 조사단체 오메가리서치재단(Omega Research Foundation)은 지난 4일 단체의 SNS 계정을 통해 미얀마 노스 오칼라파에서 발견된 최루탄 발사체와 카트리지가 한국의 D사의 제품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재단은 지난달 미얀마 중부의 핀마나(Pyinmana)에서 발견된 수류탄형 최루탄 제품이 D사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오메가리서치재단은 미얀마 경찰이 착용한 장비들이 찍힌 사진을 근거로 한국에서 생산된 최루탄 발사기 또한 미얀마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2014년 국내 업체들은 미얀마로 최루탄을 수출한 기록이 남아있다. 지난 2014년 당시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경남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그해 한해 27만7742발의 최루탄이 미얀마로 수출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들 제품은 모두 D사에서 생산된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이후 올해까지는 미얀마로의 최루탄 수출이 확인되지 않았다.최루탄의 외형만 보고 해당 제품이 한국산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2013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최루탄 수출에 대해 인도적 문제가 제기되면서 최루탄 수출이 중단되자 경찰이 안전수칙 준수와 탄피에 한국산 표기 금지를 조건으로 수출허가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제조사로 지목된 D사 측은 “미얀마에 수출한 내역이 없다”라며 “5년 정도까지는 수출 내역을 보관을 하는데 그전에 자료는 폐기돼 확인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년(2011년~2021년2월) 사이 한국에서 국외로의 수출 허가를 받은 최루탄은 모두 1173만4817발로 1년에 평균 100만발 정도 수출이 이뤄졌다. 국제엠네스티가 최루탄 오남용 사례로 꼽은 31개 국가 중 프랑스, 이스라엘, 케냐, 나이지리아, 터키, 페루,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 튀니지 등 9개 국가에도 한국산 최루탄이 수출됐다. 이중 터키의 경우에는 10년간 최소 220만발 이상의 최루탄이 수출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년 한국이 바레인으로 수출한 최루탄이 중동의 봄 이후 촉발된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는 데 사용되고 바레인 정부군이 쏜 한국산 최루탄에 맞아 15세 소년이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한국으로 쏟아졌다. 1999년 경찰이 국가신용도 추락을 방지한다며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면서 국내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은 사라졌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다 잘될 거야’ 믿은 19세 여성의 죽음에 미얀마軍 편대비행 ‘위협’

    ‘다 잘될 거야’ 믿은 19세 여성의 죽음에 미얀마軍 편대비행 ‘위협’

    4일 미얀마 두 번째 도시인 만달레이에서는 전날 군부 규탄 시위 도중 군경의 흉탄에 스러진 19세 여성 마 키알 신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총알이 날아와 머리에 박혔을 때 그녀는 ‘다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란 문구가 흰 글씨로 새겨진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38명 이상이 시위 도중 목숨을 잃어 지난달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날이었다. 이날 장례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됐다. 하지만 오전 만달레이 상공에는 제트기 다섯 대가 편대비행을 해 민의를 억누르겠다는 군부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의대생들은 군정 규탄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했다. 활동가 마웅 사웅카는 로이터 통신에 “우리는 언제든지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군사정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마 키알 신은 소셜미디어에서 ‘에인절(천사)’ 별칭으로 통했다. 지난해 11월 총선에 생애 처음 투표권을 행사했던 그녀는 민의를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군부에 맞서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가 흉탄에 당했다. 피격 직전까지 함께 있었다는 친구 미얏 뚜는 로이터 통신에 “경찰이 총을 쏘기 시작했을 때 그가 ‘총알에 맞을 수 있으니 앉으라’고 말했다”며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보호하려 했던 친구였다”고 돌아봤다. 피격되기 직전 왼손에 콜라 병을 든 모습도 포착됐는데 군경이 무차별적으로 쏴대는 최루탄 가스를 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미얏 뚜는 경찰이 총격을 가하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나중에 ‘한 소녀가 사망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친구인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페이스북에 올라온 친구의 숨진 사진을 보게 됐다. 미얏 뚜는 태권도 수업에서 치알 신을 처음 만났다고 소개했다. 그가 방학 때 태권도복을 입고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사진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춤추는 동영상들도 올려놓았다. 생애 첫 총선 투표에 나서 아버지와 함께 자랑스럽게 찍은 인증 사진도 올라와 있다. 그리고 붉은 색 수의를 입고 반듯이 누워 있는 사진도 올라왔다. 이 옷은 생애 첫 투표 때 입었던 옷이었다. 붉은 색은 아웅 산 수 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상징색이다. 죽음을 각오한 듯 그는 목에 건 팻말에 자신의 혈액형 B형과 비상 연락처, 그리고 ‘가망이 없으면 시신을 기증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죽음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큰 힘과 격려를 줄 것이라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미얀마 시위대는 물론 해외 언론인이나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추모 글도 넘쳐난다. ‘미얀마의 전사’란 표현도 적지 않다.4일도 미얀마 전역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최대 도시 양곤의 산차웅구(區)와 파떼인구, 흘라잉구 등에서는 오전부터 수백~1000명 안팎의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전날 양곤의 북오칼라파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흘라잉구 인세인로에서는 군경이 진압에 나서지 못하도록 시위대가 나무와 쓰레기 봉지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또 시위대 주변에 줄을 친 뒤 그 위에 천이나 전통치마 등을 걸어 저격수나 군경이 ‘조준 사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수도 네피도에서도 시위대 해산 과정에 군경이 고무탄을 발사하고, 허공으로 실탄을 쏘아 경고사격을 했다고 보도했다. 부상자 여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프런티어 미얀마는 전했다. 미셸 바첼렛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날 언론에 미얀마 군경의 총격에 희생된 이가 최소 54명이라며,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쿠데타 이후 1700명 이상 구금됐으며, 최근에는 언론인도 29명 이상 군경에 체포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얀마 군부가 시위대에 대한 잔인한 탄압과 살인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공원 지으려 지도 펴니 ‘친일파의 땅’, 전담기구 없이… 의욕뿐인 국가환수

    공원 지으려 지도 펴니 ‘친일파의 땅’, 전담기구 없이… 의욕뿐인 국가환수

    정부가 이해승·이규원 등 친일파 4명의 후손이 소유 중인 27억원 상당의 토지에 대해 국가귀속 절차에 착수했다. 독립유공자와 후손으로 구성된 광복회는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전담기구 부재에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은닉, 반환 소송까지 맞물리면서 친일 재산 환수는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법무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해승과 이규원, 이기용, 홍승목의 후손이 소유한 땅 11필지에 대해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서부지법에 소유권이전등기 및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1일 밝혔다. 법무부가 환수에 나선 토지는 이규원 후손이 소유한 경기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 7필지와 이기용 후손이 소유한 경기 남양주시 이패동 2필지, 홍승목 후손이 소유한 경기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의 1필지,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1필지다. 대상 토지는 총 8만 5094㎡(2만 5740평), 토지가액은 공시지가 기준 26억 7522만원이다. 앞서 법무부는 2019년 서울 서대문구로부터 공원 조성 사업부지 중 친일 재산으로 의심되는 토지에 관해 국가귀속 대상에 해당하는지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8월 광복회로부터 추가 검토 요청도 받았다. 검토 결과 법무부는 전체 의뢰 토지 66필지 중 11필지에 대해 친일 행위의 대가성이 명백하고 관련 증거도 모두 확보돼 국가귀속 절차 진행이 바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토지에 대해선 친일 행위 대가성 인증 증거 부족 및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소송 제기 결정을 미뤘다. 법무부는 추가적인 증거 확보 및 법리 검토를 통해 환수 가능한 토지로 확인될 경우 추가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특히 이번에 포함된 이해승의 토지는 이전 정부에서 환수를 추진하다 2010년 법원에서 패소했던 토지가 아닌 새롭게 발견된 토지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2007년 11월 친일에 앞장선 대가로 일제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하고 경기 포천시 선단동 임야 등 토지 192필지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환수 재산은 당시 시가 300억원대로 추정됐다. 이에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은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하라며 이듬해 2월 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0년 이 회장 측 승소가 확정돼 국가로 귀속됐던 땅도 이 회장 측으로 돌아갔다. 법원 판결에 광복회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폭증하자 국회는 2011년 친일재산귀속법을 개정해 친일파 후손들로부터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하면서 개정법을 소급 적용할 수 있다는 부칙도 만들었다. 법무부는 이를 근거로 다시 이 회장 등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위원회 해산 이후 현재까지 23건의 환수 소송을 제기해 17건이 국가 승소로 확정됐으며, 총승소금액은 약 260억원이다. 하지만 광복회는 이미 처분된 친일 재산도 상당한 가운데 수백억원대 이상의 토지가 친일파 후손 소유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피로 물든 도로·주인 잃은 신발… 군부 총격에 30명 목숨 잃었다

    피로 물든 도로·주인 잃은 신발… 군부 총격에 30명 목숨 잃었다

    한 달간 1132명 체포… 사망자 더 늘 수도엄마 잃은 아이 사진엔 ‘엄마한테 갈래요’군경 앞 무릎 꿇은 수녀 등 수십만건 공유미얀마 군부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무력 진압해 최악의 유혈사태를 일으킨 뒤인 1일에도 양곤 등에서는 규탄 시위가 계속 이어졌다. 온라인에서는 ‘피의 일요일’의 참상을 저하는 사진, 동영상과 피해자들의 사연이 속속 알려지며 공분이 커지고 있다. 미얀마 시민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지난달 쿠데타 발생 이후 한 달간 약 30명이 군경의 총격 등으로 사망하고 1132명이 체포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날 발생한 2차 총파업 시위 과정에서 최소 18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인데, 소셜미디어(SNS) 등에선 26명이 숨졌다는 발표도 나오는 만큼 사망자와 부상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현지 매체들은 이날 양곤 중심부 흘레단 네거리에서 경찰이 최루탄과 섬광 수류탄 등을 동원해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고 전했다. 온라인에서는 시위 과정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들에 대한 정보와 함께 추모글이 봇물을 이뤘다. 만달레이에서는 한 여성이 총을 맞고 즉사한 사실이 알려지자 SNS에 이 여성이 혼자서 아들을 키워 왔다는 글이 올라왔고, 아들의 우는 모습과 함께 “엄마한테 가고 싶어요. 오늘 밤에는 누굴 안고 자요?”라는 설명이 담긴 사진도 게시됐다. 또 SNS 영상에는 시위대가 총격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모습, 최루탄을 피해 숨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물탱크나 나무 패널 등으로 몸을 가리는 시민들도 보였다. 페이스북에는 주인을 잃어버린 신발 수십 켤레가 나뒹굴고 있는 모습, 피로 물든 도로 등 게시물 수십만건이 올라왔다. 미얀마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된 양곤 대교구의 찰스 마웅보 추기경은 트위터를 통해 “미얀마는 전쟁터 같다”고 전했다. 북부 카친주에서는 수녀복을 입은 한 수녀가 방패를 든 군경을 향해 두 손을 치켜들고 무릎을 꿇은 동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이 수녀가 군경에게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지 말고 체포를 중단하라고 외쳤다고 적었다. 한편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 대해 이날 하루에만 선동 등 범죄 혐의를 2개 추가하며 정치적 제거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수치는 쿠데타 직후 불법 워키토키를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고, 코로나19 예방 조치를 지키지 않았다며 추가 기소됐다. AFP에 따르면 수치의 변호인 킨 마웅 조는 “얼마나 더 많은 혐의를 받게 될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며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대테러용 섬광탄까지… ‘시위대 해산’ 아닌 ‘진압 작전’ 펴는 미얀마 군부

    대테러용 섬광탄까지… ‘시위대 해산’ 아닌 ‘진압 작전’ 펴는 미얀마 군부

    2021년 2월 22일 ‘22222 총파업 시위’ 일주일 만인 2월 28일은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 최소 18명 이상이 사망한 ‘피의 일요일’이 됐다. 수백만명이 결집한 ‘22222 시위’ 때보다 희생자가 는 이유는 미얀마 군경의 태세가 전환된 탓이다. ‘22222 시위’ 이전까지 ‘해산’에 주력했던 미얀마 군경은 이후 ‘진압’에 방점을 찍었다. 군경이 사용한 수단도 물대포, 최루가스 등에서 고무탄과 실탄, 섬광탄 등으로 변모했다. 특히 대테러부대 작전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섬광탄이 활용되며, 추가 집단살상 우려가 제기된다. ‘기절 수류탄’이라고도 불리는 섬광탄은 터질 때 매우 밝은 빛과 엄청 큰 소리를 내는 무기다. 터질 때 일시적으로 약 5초 동안 눈이 멀고, 이후에도 시력이 손상된 느낌을 받게 된다. 폭음 공격 역시 일시적인 난청을 유발하거나 귀의 전정기관에 영향을 줘 몸의 균형을 잃게 만든다. 폭발할 때 열도 생성돼 인화성 물질이 주변에 있으면 불을 붙일 수도 있다. 폭발과 함께 강철 파편을 흩뜨리는 일반 수류탄과 같은 살상용 무기는 아니지만, 섬광탄 역시 신체에 영구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로 주로 대테러부대가 건물에 진입할 때 사용하는 무기다. 28일 18명의 희생 대부분은 미얀마 군경이 공중을 향해 또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쏜 총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지만, 양곤의 한 교사는 군경이 섬광탄을 사용한 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양곤의 한 의대 주변에서 시위하던 의료진을 향해서도 섬광탄이 발사됐다. 교사와 의사들은 쿠데타 반대 시위와 성명을 초기에 낸 집단이며 지금까지도 이들이 파업과 집단저항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대열을 깨는데 섬광탄이 적극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양곤의 한 시민은 “(군경은) 민간인을 총격하는 테러리스트다. 너무 잔인하다”고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호소했다.미얀마 군부가 ‘시위대 해산’이 아닌 ‘진압’에 방점을 찍으며 국제사회의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미얀마 군경이)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다”면서 “우리는 버마(미얀마)의 용감한 사람들과 굳건히 연대한다”고 밝혔다. 영국 외무성은 “우리는 이 폭력이 중단되어야 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대변인 성명을 냈다.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소속 인도네시아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비오는 3·1절 서울 곳곳서 집회... “불법상황 발견 시 엄중 조치”

    비오는 3·1절 서울 곳곳서 집회... “불법상황 발견 시 엄중 조치”

    3·1일절인 1일 서울 곳곳에서 보수단체들을 중심으로 정부 규탄 집회가 열렸다. 오후에는 일부 단체들의 차량 시위도 예고됐다. 이날 자유대한호국단 관계자 등 10여명은 오전 11시쯤 광화문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앞서 이들은 50명 규모의 집회를 신고했다가 서울시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서울행정법원이 20명 이하로 제한된 집회를 허가하면서 광화문 앞에 모였다. 앞서 법원은 일부 보수단체들이 방역 당국의 3·1절 집회 금지 처분에 불복해 낸 집행정지 신청을 대부분 기각했으나, 일부 집회에는 최대 20∼30명이 모이는 것을 허용했다. 우리공화당은 이날 탑골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오후 1시부터 서울 전역의 지하철역·전통시장 등 150여곳에서 9명 이하씩 참여하는 집회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우리공화당은 3·1절 대국민총력투쟁을 통해서 대한민국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유를 드리는 자유혁명을 완수할 것”이라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합법집회에 대한 그 어떠한 탄압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광복절집회 참여단체 등이 모인 자유민주국민운동은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태극기혁명국민본부는 오후 1시부터 명동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소규모 차량 시위도 이어질 예정이다. 이날 오후 애국순찰팀은 서대문 인근에서 출발해 도심을 거쳐 서대문구 한성과학고 인근으로 가는 차량시위를 시작한다. 비상시국연대 차량시위대는 낮 12시 30분쯤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인근으로 향하고, 국민대연합 차량은 오후 1시쯤 을지로 인근에서 출발해 동대문구 신설동으로 이동한다. 이들 시위 참가자들은 차량 9대에 1명씩 타야 하고 방역·교통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 한편,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서울 도심에서 3·1절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된 건수는 1600여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서울시내에 경찰력 118개 중대 7천여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은 미신고 불법집회는 참가자가 집결하는 단계에서부터 모두 제지할 예정이다. 또한 집회 자제 요청에 응하지 않는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하고, 공무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즉각 체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도 경찰과 함께 현장 채증을 하며 불법집회를 할 경우 고발하고, 방역수칙을 위반하면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이외에도 상황에 따라 전철역 출구를 막거나 광화문, 시청 일대 정류장에 버스 정차를 막을 계획이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서울시 3·1절 집회 1670건 접수…경찰 “6000명 투입”

    서울시 3·1절 집회 1670건 접수…경찰 “6000명 투입”

    일부 보수단체의 3·1절 집회 허용으로 방역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서울시가 이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서울 지역에 총 1670건의 3·1절 집회 신고가 접수됐다. 기자회견, 1인 시위, 9인 이하 집회 등의 형태로 2500여명이 도심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집회 허용 지역 내 △9인 이하 규모 △방역수칙 준수 등 기준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을 경우 모두 불법집회로 보고 고발조치할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불법집회는 원천 차단된다”며 “불법집회에 대해서는 고발 조치를 통해 엄정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집회금지 조치 위반 시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서울시는 서울광장 등에 펜스를 설치하고 집회단체에 방역수칙을 안내했다. 상황에 따라 지하철 출구 통제, 시내버스 우회도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개천절과 한글날 도심집회 때도 시청역(1·2호선)·경복궁역(3호선)·광화문역(5호선) 등 지하철역 4곳에 대해 열차 무정차 통과, 출입구 폐쇄 등의 조치를 하고 시내버스도 우회 운행하도록 했다. 집회 시 현장 채증도 진행한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등 주요 장소를 대상으로 경찰과 합동근무를 실시하고, 위반 사례에 따라 고발 및 과태료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직원들이 이날 경찰 등과 집회가 열리는 주요 지역에 나가 방역수칙 준수 여부 등을 안내하고 점검하겠다”며 “집회 규모가 1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면 해당 단체에 즉시 금지를 통보하고 해산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금지구역 집회나 10인 이상 집회 등이 금지통고를 받았지만 서울행정정법원은 최근 일부 단체의 3·1절 집회를 조건부 허용했다. 자유대한호국단 집회에 대해 오전 11시~오후 1시, 20명 이내, 집회 장소 이탈 금지 등의 조건 하에 제한적으로 집회를 허가했다. 대한민국애국순찰팀이 주도하는 차량 시위에 대해서도 오전 11시~오후 2시, 승합차 9대, 차량 내 1인 탑승 등의 기준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허용했다.서울시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도심 내 10인 이상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집회로 성북 사랑제일교회·광복절집회발 집단감염이 번지면서 전국적인 2차 대유행을 겪었기 때문. 이후 시는 집회에 대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조치를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등에서는 집회가 전면 금지된다. 경찰은 이번 집회가 새로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의 기점이 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10여개 중대, 5000~6000명 인원이 투입될 것”이라며 “차벽의 경우 대규모 집회의 기미가 보이면 상황에 따라 칠지 말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경찰은 법원에서 방역 등 준수사항을 제시했기 때문에 방역당국, 지방자치단체 등과 공동으로 3·1절 집회에 대응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법원 판결에 최대한 맞게 준수사항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할 것”이라며 “불법상황이 발견될 시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안철수 “3·1절 집회, 정권이 반길 것…꼬투리 줘선 안돼”

    안철수 “3·1절 집회, 정권이 반길 것…꼬투리 줘선 안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8일 입장문을 내고 3·1절 광화문 집회를 예고한 보수단체들에 대해 자제를 촉구했다. 안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무능, 폭주에 항의하는 단체들이 3·1절을 맞아 서울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정권 규탄 집회를 예고했다”며 “취지에는 당연히 동의한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19 방역을 거론하면서 “집회라는 방식과 시점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법원이 불허한 집회는 즉각 취소할 것을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온갖 정책실패로 곤경에 빠진 이 정권은 집회 강행을 마음속으로 크게 반기며 공격의 칼을 갈고 있을 것”이라며 “집회 강행은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 도우미가 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허가받은 집회도 준비부터 해산까지 방역 지침을 철두철미하게 준수해 달라”며 “진정 정권 심판을 바란다면, 그들에게 단 하나의 빌미도, 한 치의 꼬투리도 줘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4·7 보궐선거 투표장으로 나가 이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구국과 자유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미얀마, 시위대에 폭력 진압 계속...女 1명 총격 사망설까지(종합)

    미얀마, 시위대에 폭력 진압 계속...女 1명 총격 사망설까지(종합)

    27일 미얀마 경찰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한 폭력 진압을 이어갔다. 주요 도시에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섬광 수류탄, 고무탄, 물대포를 쏘고 공중을 향해 경고사격까지 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또한 선봉대에 선 시위대를 마구잡이로 체포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전하는 취재기자들까지 주요 표적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에 참여한 여성 1명이 총격을 받아 숨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날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대 도시 양곤과 제2 도시 만달레이 등 전국 곳곳에서 아침부터 쿠데타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경찰이 양곤 흘레단 사거리 등 주요 집회 장소를 선점하고 고무탄 등을 쏘며 접근하는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특히 소수민족 수백 명이 시위에 참여한 양곤에서는 최루탄과 섬광 수류탄, 고무탄을 쏜 데 이어 공중을 향해 총을 쏘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실탄을 발포했는지는 불분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토 통신은 미얀마 중부 몽유아 지역에서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기도 했으며, 이곳 시위에 참여한 여성 1명이 총격을 받아 숨졌다고 현지 언론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이 사실로 확인되면 지난 1일 쿠데타 이후 군경의 총격을 받고 숨진 민간인은 최소 5명으로 늘어난다. 이날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펴고 수십 명을 붙잡았으며, 이들 가운데에는 취재 기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 ‘미얀마 나우’에 따르면 몽유아 지역에서는 SNS로 현장 상황을 중계하던 다수의 기자들이 체포됐으며, AFP 통신에 따르면 양곤에서 미얀마 나우 기자 등 취재진 3명이 체포됐다. 이는 군경의 폭력 진압 상황이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쿠데타 불복종 운동을 벌이는 시민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지난 1일 쿠데타 이후 최소 771명이 체포됐고, 이 가운데 82명이 풀려났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수도 네피도에서 가택 연금 중 다른 곳으로 옮겨진 아웅산 수치 고문의 소재가 이틀째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꼬부랑 고갯길 관광상품으로 거듭나…‘하늘재, 십이령, 고초령’

    꼬부랑 고갯길 관광상품으로 거듭나…‘하늘재, 십이령, 고초령’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고개는 열두 고개 고개를/ 고개를 넘어간다” 동요 ‘꼬부랑 할머니’ 노랫말이다. 그 옛날 꼬부랑 할머니가 넘었던 꼬부랑 고갯길이 관광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경북 문경시는 2022년 상반기까지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를 잇는 하늘재(3㎞)를 복원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하늘재’로 불리 이 고갯길은 신라시대에 만들져 국내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의 하나로 꼽힌다. 삼국사기에는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로 기록돼 있다. 고구려 온달장군과 후삼국 궁예, 신라 마의태자·덕주공주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시는 이 길이 복원되면 코로나19 사태로 침체한 지역 관광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시는 옛길인 문경새재를 복원해 연간 500만명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새재 1관문에서 3관문까지 6.5㎞의 옛길은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선비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문경새재는 2013년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1위에 이름을 올려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울진군도 동해안에서 내륙을 잇는 옛길 관광자원화에 나섰다. 군이 최근 대구한의대 산학협력단에 옛길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연구를 맡겼다. 군과 산학협력단은 앞으로 6개월간 기존 보부상 길 장단점을 파악해 대규모 정부 추진사업, 소규모 지역개발사업 등 개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울진에는 십이령(북면∼봉화군 소천면), 고초령(원남면∼영양군 수비면), 구주령(온정면∼영양군 수비면) 등 옛길이 있다. 이 옛길은 과거 보부상이 울진장이나 매화장에서 소금, 생선, 미역 등 해산물을 사서 내륙에 있는 봉화 춘양장, 영양 수비장에 팔기 위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보부상은 지방 장시를 돌며 상품을 유통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소식을 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했다. 이들이 지나가는 길에 생긴 주막촌이나 각종 비석 등 유적도 문화적·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울진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옛길을 활용한 관광상품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다.봉화군·영양군·청송군 등은 옛길을 활용한 관광상품인 외씨버선길을 공동 개발, 외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길이 200㎞, 총 13개의 구간으로 이어진 외씨버선길은 청송에서 시작해 영양, 봉화를 지나 강원도 영월을 이어준다. 외씨버선길은 영양 출신인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닮아 붙인 이름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꼬부랑 옛길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이 뿌리 내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민초들의 삶의 애환, 인문환경, 자연생태환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관광자원화하는데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서 “특히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풀수 있는 최적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年 수백만병씩 팔린다 … 우린 왜 ‘칠레 카소’에 빠졌나

    年 수백만병씩 팔린다 … 우린 왜 ‘칠레 카소’에 빠졌나

    세상에 와인처럼 다채로운 맛을 내는 과실주는 와인뿐입니다. 와인이 ‘신의 물방울’로 불리는 건 ‘포도’라는 단일 과일을 발효시켜 양조했을 뿐인데, 완성된 와인 한 잔에선 포도를 뛰어넘는 상상 초월의 맛의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 품종에 따라, 포도가 자란 땅의 특성(테루아)에 따라, 숙성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을 내는 와인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재미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와인 마니아도 많죠. 우리가 각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매칭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와인의 다양성 덕분이고요. 이토록 다양한 맛의 세계를 자랑하는 와인이지만 유독 한국 시장에선 특정한 와인 스타일이 불티나게 팔린답니다. 바로 ‘칠레산 카베르네 소비뇽’(카소)인데요. 묵직한 보디감, 강렬하고 풍부한 과실향, 약간의 단맛, 섬세한 오크향, 부드러운 타닌 등이 특징인 칠레산 카소는 국내 와인 시장이 막 형성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국민와인’으로 불리는 ‘몬테스 알파’입니다. 칠레 카소인 이 와인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홈술 열풍이 불었던 지난해에만 무려 120만병이나 팔렸습니다. “와인은 몰라도 몬테스 알파는 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죠. 이 와인을 생산하는 현지 와이너리의 수출량도 한국이 1위라고 하네요. 같은 스타일의 ‘1865’ 와인 또한 전 세계 판매량 순위가 한국이 2위입니다. 이 정도면 한국인의 칠레산 카소 사랑은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죠. 대체 한국인은 왜 수많은 와인 가운데 ‘진하고 강렬한’ 칠레산 카소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요인이 꼽힙니다. 먼저 음식 문화의 영향입니다. 한국 음식은 대체로 양념이 진하고 강한 편입니다. 매콤한 고춧가루를 듬뿍 뿌리거나 풍미가 깊은 참기름, 들기름 등을 아낌없이 넣은 메뉴가 많습니다. 이런 음식에 길들어 있다 보니 음식에 지지 않는 강렬한 캐릭터의 와인을 선호하게 됐다는 겁니다. 반면 와인 시장의 규모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일본에선 여리여리하고 가벼운 캐릭터의 피노누아와 소비뇽블랑 와인이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일본 음식에 해산물이 많고, 음식에도 강한 양념보다는 부드럽고 담백한 양념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국·칠레 FTA의 영향도 한몫했습니다. 한국에 와인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입니다. 이 시기 칠레도 국가적으로 와인 산업을 키우기 위해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고 협회를 조성해 적극적인 해외 프로모션을 시작했죠. 국내에선 소수의 와인 수입사들이 신생 국가 칠레의 가성비 좋은 와인을 들여와 소개하고 있었고요. 그러던 중 2004년 FTA가 체결됐고, 칠레 와인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선 “칠레 와인=가성비 뛰어난 와인”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인생의 첫 와인으로 칠레산 카소를 고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소비자가 대폭 늘어났죠. ‘세대적 요인’도 있는데요. 초창기 국내 와인 시장을 이끌었던 소비자는 40대 이상의 남성이었고, 주로 4060 남성들이 진하고 강렬한 캐릭터의 술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 칠레산 카소가 한국 와인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환경은 변화하고 트렌드도 바뀝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홈술 열풍이 불면서 ‘와인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렸죠. 과거보다 훨씬 더 다양한 와인을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요즘 소비자들은 더이상 칠레산 카소만을 고집하진 않는답니다. 가볍게 집에서 마실 수 있는 화이트와인의 소비량도 지난해 전년 대비 27% 증가했고요. 칠레산 레드와인보다 오크향이 강한 미국 와인, 타닌이 강한 보르도 와인 등을 찾는 와인 마니아도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첫사랑’은 잊히지 않는 법이죠. 처음 마셨던 와인,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마셔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와인,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돋우는 와인.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칠레산 카소가 우리의 ‘소울 와인’이 아닐까 합니다. macduck@seoul.co.kr
  • 성주 사드기지 공사 차량 42대 반입…주민·경찰 간 충돌로 4명 실신·부상

    성주 사드기지 공사 차량 42대 반입…주민·경찰 간 충돌로 4명 실신·부상

    국방부는 25일 오전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기지에 공사 장비·자재 등을 실은 차량 42대를 반입했다. 장병 숙소의 리모델링 공사에 필요한 장비를 비롯해 시멘트, 모래, 자갈 등 자재를 들여왔다. 국방부 관계자는 “주로 골재와 교대 부대원들의 장비, 부식 등을 사드기지에 보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사드기지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 강제해산에 나섰다. 주민 50여 명은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서 연좌시위를 하며 공사 차량 출입을 막았다.이들 중 10여 명은 격자(바둑판처럼 직각 구조로 짠 구조물)에 한 명씩 들어가 경찰 강제해산에 저항했다. 주민들은 이전에 사드기지 정문 인근 진밭교에서 시위했으나 경찰이 이날 새벽 진밭교를 장악한 뒤 이동을 제지하자 마을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해산 과정에서 주민 4명이 실신하거나 타박상을 입었으나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현욱 소성리 종합상황실 대변인은 “경찰이 비밀리에 작전을 강행하는 바람에 지난달과 이번 국가인권위에 보호요청도 하지 못했다”며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해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성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주방의 재간꾼, 초리소의 매력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주방의 재간꾼, 초리소의 매력

    가끔 사랑에 빠지듯 어떤 식재료에 완전히 꽂히는 때가 있다. 머릿속에 온통 그 재료 생각뿐이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도 ‘어라? 여기에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이 음식에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상념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병원을 찾아야 할 것도 같지만 어찌 됐건 요즘은 스페인식 소시지의 일종인 초리소에 푹 빠져 버렸다.초리소는 돼지고기와 지방 그리고 훈제한 고춧가루인 피멘톤을 넣어 만든 소시지를 가리킨다. 고춧가루가 들어가 매콤한 향은 나지만 혀와 입안이 아파 올 정도로 맵지는 않다. 적당히 매콤한 맛이 소시지의 풍미를 한껏 살려 준다. 스페인이 본고장이지만 옆 나라 포르투갈도 한 초리소 하는 곳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초리소를 쇼리수라고 부른다. 16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교황이 거대한 남미 대륙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영토로 나눠 버리면서 양국 식문화도 남미에 함께 자리를 잡았는데 이때 초리소도 바다를 건너갔다. 멕시코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도 초리소를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현지의 여러 가지 식재료가 더해지는 바람에 그 다양성은 본토를 뛰어넘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동네마다 초리소를 만드는 방식이 다른데 바다 건너에서는 오죽했을까. 초리소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 건조 정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흔히 와인 안주로 떠올리는 얇게 썰린 초리소는 딱딱하게 말린 것이다. 말라 있다는 건 씹을 때 턱 근육을 강화시켜 준다는 것 말고도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고 대개 발효 과정을 거치므로 자꾸 맛보고 싶은 독특한 풍미를 가진다는 점이다.말린 초리소는 얇게 잘라 손으로 집어 스페인산 레드와인과 먹는 게 일반적인 용도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요리에 쓰임새가 많다. 슬라이스해서 각종 샐러드나 샌드위치 속으로 넣는 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말린 초리소와 열, 기름이 만나면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초리소를 다지거나 썰어 넣은 후 천천히 열을 가하면 초리소에 있던 돼지기름과 피멘톤이 서서히 빠져나온다. 중식당에서 고추기름을 내듯 피멘톤은 기름과 만나 붉고 아름다운 피멘톤 기름을 형성한다. 단지 색깔만 물들인 게 아니라 초리소에 사용된 돼지의 기름과 초리소 자체의 독특한 풍미가 더해지면서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기름 소스가 탄생한다. 이렇게 만든 기름을 어디다 써야 할지는 이제부터 상상의 영역이다. 기름을 이용한 요리면 어디든 사용할 수 있다. 초리소 기름을 두르고 야채를 볶으면 초리소 야채볶음이, 파스타를 말면 초리소 파스타가 탄생한다. 짭조름하면서도 매콤한 고추와 발효 소시지의 미묘한 풍미는 음식을 한껏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준다. 마치 마법처럼. 돼지고기를 이용한 식재료지만 해산물과도 궁합이 꽤 잘 맞는다. 초리소를 볶은 기름에 오징어나 주꾸미, 새우 같은 해산물을 볶으면 스페인풍의 해산물 요리가 뚝딱 만들어진다. 우리가 고춧가루를 음식에 많이 사용하듯 스페인에선 피멘톤 가루를 전가의 보도처럼 많이 쓰는데 피멘톤 가루 대신 초리소를 넣으면 음식에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불어넣을 수 있다.말린 초리소가 있다면 한편엔 말리지 않은 생초리소가 있다. 자체만으로 완전한 음식인 말린 초리소와 달리 생초리소는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거치면 재미있는 식재료로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생초리소를 보통 구워 먹거나 국물요리에 넣어 먹는다. 국물요리로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파바다’ 요리가 대표적이다. 흰 콩과 초리소, 염장 삼겹살과 훈제한 피순대인 모르시야를 넣고 푹 끓여 낸 겨울 음식이다. 따로 피멘톤을 첨가하긴 하지만 초리소에서 나오는 특유의 맛이 국물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려 준다. 생초리소를 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한계를 깨부수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겉을 감싸고 있는 케이싱을 벗겨 내 보자는 이야기다. 껍질로 감싼 초리소는 그 형태대로만 이용할 수 있지만 껍질이 없는 초리소는 매콤하게 조미된 다진 돼지고기로 활용할 수 있다. 만두 속 안에 넣어 초리소 만두를 만든다든지 프라이팬에 볶아 더 보슬보슬한 식감의 볶음 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두드려 얇게 편 다음 삶은 달걀을 감싸 빵가루를 묻혀 튀기면 스페인식 스카치 에그 요리가 될 수도 있다. 스페인 식재료로 꼭 스페인 요리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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