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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윤주기자의 교육일기] 아이 마음의 상처 보살피는 일 미적대선 안될말

    며칠전 회사 인근의 성공회 성당에 들렀다.미술치료사이자 고교 수학교사인 이희경 선생님은 일선 교사들에게 8주간 ‘미술 심리치료 강좌’를 하고 있다며 시간이 나면 한번 들르라는 연락을 해왔다.이 선생님은 취재중에 안면을익힌 분이다. 교사들은 자신에 대한 ‘셀프 이미지(Self Image)’를 뜻하는 ‘나무그림’,가족관계를 암시하는 ‘물고기 가족화’등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줄기도 없이 그루터기만 남은 이 나무그림은 외압에 의해 자기성장이 멈췄다는 뜻이에요.하늘의 구름은 근심을의미하고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들의 목을 물어뜯는 이 그림좀 무섭죠? 아이에게 ‘작은 물고기들은 누구야.’하고 물었더니 ‘아빠의 여자들’이래요.” 강사의 설명에 교사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을 잊는다.철부지같은 아이들에게 저런 것이 숨어 있었나 하는놀라움 탓이리라. “참 신기하죠? 아이들은 그림속에 자기의 마음과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며 ‘SOS’를 치고 있어요.” 이희경 선생님은 “아이의마음을 읽는 건 오히려 쉽다.”며 먼저 상담교사로서 갖춰야 할 자격조건을 덧붙였다. 남들은 잡초라며 함부로 다루는 것을,소중하게 받아들이며 “아니야,넌 꽃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그런 각오도 없으면서 미술치료나 상담기법을 배우는 건 “상처만 잔뜩 벌려놓고,니가 알아서 꿰매라.”하는 거랑 똑같다고. 강의가 끝날 무렵,몇몇 교사들은 기자에게 다가와 각자의 경험담과 고충을 들려주었다. 중학교에 재직하는 여교사는 “그림을 보며 아이에게 몇마디 물었더니 ‘어떻게 그걸 아세요.점쟁이 같아요.’하며 놀라더라.”면서 “상당수의 아이들이 이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카운슬러 자격증을 딴 뒤 상담교사로 겸임중인 한 교사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봐줘야 하는 데 수업하랴,성적 매기랴 시간이 없다.”며하소연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서울 A중학교 동급생 살해사건 등 학교폭력이 잇달자 학생 생활지도와 상담만 맡는 전문 상담교사제를 하반기부터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대한매일 4월20일자 보도].그러나 기사가 나간 뒤 곧바로 “아직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다.확정된 바 없다.”며 말을 바꿨고 아직도 세부방침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살피는 일,마음속 억눌린 분노를 녹여주는 일,결코 미적대서는 안될 일이다. 허윤주기자rara@
  • 상가 임대료 20%이상 상승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내년 실시를 앞두고 임차인들의 사업포기가 크게 늘고 있다.이 법이 시행되면 건물주들이 임대료인상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올해 5년 인상분까지 한꺼번에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성남 분당에서 커피숖을 하는 나모씨는 최근 장사를그만두기로 했다. 건물주가 3000만원인 보증금을 7000만원,월 160만원인 임대료를 250만원으로 인상 요구한 탓이다. [피해사례 속출]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장사를 하는 문모씨는 최근 “보증금 2000만원을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을 받고 두차례 나눠 인상분을 내겠다고 사정을 했지만 바로 계약해지를 당했다.문씨는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만도 1억원에 달해 어떻게든 장사를 해볼까 했지만 건물주가 이렇게 야박하게 나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강남구 신사동의 건물세입자 21명은 평당 1200만원의 임대료 인상을 요구받은 뒤 이중 15명은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포기하고 나갔다.6명만이 명도소송중이다. 상가임대차보호운동본부는 영세상인들의 피해사례가 민주노동당에 1500여건,전국임차상인연합회에 200여건,참여연대에300여건 등 모두 2000여건이 접수된 상태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세입자피해신고센터 임동현 부장은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한꺼번에 인상,임차인들이 제발로 나가도록 유도한다.”면서 “연초부터 건물주와 세입자간 임대료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 얼마나 올랐나] 올들어 서울 강남,신촌,여의도 등주요상권의 상가임대료는 30∼40%이상 올랐다.수도권도 분당,산본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최소 20%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우진공인중개사사무소 고재영 사장은 “경기가 회복세인데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잘못된 이해로 상가임대료가 급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놓고 있는 정부] 정부는 지난달 서울시 등 6개 도시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강화해 상가임대차 분쟁을 조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나마서울시에만 피해사례를 접수·상담해주는 ‘임대차분쟁조정상담실’이 있다.상가임대차보호법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홍보활동을 강화하겠다는 대책도 법의 내용을 몰라 세입자와 건물주간에 불필요한 갈등이 급증하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지금껏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다 문제가 커지자 임시방편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법 시행시기를 앞당겨 그나마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정부, 中·日에 신속해결 촉구

    장길수군 친척 5명이 선양(瀋陽)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하다 좌절된 사건과 관련,우리 정부는 중·일간 외교갈등이 이들의 처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고있다.다만 이 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대두된 만큼 인도주의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것이란 낙관적 기대를 버리지 않고있다. 정부는 우선 중국과 일본이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데 대해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신중한 자세로 접근하고 있다.일본 정부는 지난 8일에 이어 12일에도 중국 경찰이 일본의 동의없이 탈북자 5명을 연행해갔다고 거듭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일본 부영사가 체포에 동의했으며 사의까지 표명했다.”는 중국측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일본측의 일관된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탈북자들의 체포과정에 대한중·일간 논란과 별도로,탈북자 문제가 조속히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중·일 정부에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스기우치 세이켄(杉捕正健) 일본 외무성 부상이 13일 베이징으로가 중국 정부와 본격적인 의견조율에 들어갈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장길수군 친척 5명에 대한 처리 방침도 조만간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2)오락가락하는 대 한반도 정책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910년 한일합병전후까지 러시아의 대(對)한반도정책은 현상 유지(독립국가 유지)와 무력점령,38선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 등 3개안을 기본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가하면 국내외의 정치 상황과 역학관계에 따라 중립국안,완충지대안,만주 및 몽고와의 거래에 의한 양보안까지 오락가락하기도 했다.특히 일본이 1896년 처음 제기한뒤 러시아도 솔깃해진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안은 광복및 6·25전쟁과 함께 남북 분단으로 현실화됨으로써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서울에서 체결한 조·러 수호통상조약문을 동봉한다.외무성은 조선과의 수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영국이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황제 폐하(니콜라이2세)의 윤허를 얻어 서울에베베르(전권위원,초대 대리공사)를 보내 조약을 체결했다.이 조약은 독일과 영국이 체결하지 못한 영사관 설치문제가 제2조에 명문화돼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영사관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그곳에 조선영사관을 허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1884년 10월8일 기르스 외무상이 톨스토이 내무상에게 보낸 조·러 수호통상조약 13조 전문 등23쪽에 달하는 극비문서) 이 문서는 제정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찾아낸 방대한 분량의 한국 관련 문서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서 중 하나로 한국과 러시아의 최초 공식 외교협정인 조·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배경에 대한 러시아측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러시아의 1차적인 관심은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을알 수 있다.물론 수교불가피론의 근저에는 영국과 독일 등 열강에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함께 남하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부동항의 획득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을 점령하는 것이 러시아에 바람직한가.점령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1888년 4월26일 아무르 총독과 외무부 아시아국장의 특별회의록).러·일간 우호확립에 유일한 방해요인은 대한제국 문제이다.일본 천왕의 총애를 받는 야마가타(山縣有朋) 원수는 대한제국 분할에 관한 러·일간의 협정체결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그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수도를 포함한 남부를 차지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항구와 대부분의 대한제국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할 준비가돼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는 대한제국의 완전독립과 모순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1899년 2월9일 외상이 황제에 상주한 문서). 이들 문서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 외무상과 야마가타 특사 사이에 체결된 모스크바의정서는 물론,1898년 로젠-니시협정으로도 대한제국의 독립을 일본측으로부터 완전히 담보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으며,남북분할점령안을 거부했지만 여전히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당시 일본이 주도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이로 인해 촉발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아관파천·1896년)으로 곤경에 빠진 일본 대신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조야를 주무르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대한제국 독립국가 유지정책은 조금씩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여기에는 100만명에 달하는러시아군의 대부분이 유럽지역에 주둔하고 있어 극동지역에서의 군사력 약세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었다.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는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기 전까지외교적으로만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원,현상유지시키겠다는 속셈도 작용했다. 만주와 극동에서 러시아가 굳건한 기반을 확립하고 만주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는데 25∼30년이 걸릴 것이다.만주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일본의 민족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는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1902년 12월 뷔테 재무상이 람즈돌프 외무상에게 보낸 러·일 협상관련 비밀문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철도 및 은행 등을 장악하는것은 무의미하다.문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장악해야 하는데 대한제국 남부의 점령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므로 대한제국 전역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봐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먼저 만주를 지배하지않으면 안된다(1902년 10월8일 도쿄(東京)주재 러시아 공사인 로젠 남작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보고서).황제(니콜라이2세)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북쪽으로는 두만강,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점령해도 좋다는 결심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황제는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면 군사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생각한다.(1903년 6월11일 해군제독 아바자가 베조브라조프에게 보낸 전문). 로젠 공사의 보고서에 대해 파블로프 공사도 의견서를 통해 “러시아는 실제적으로 국익에 손상을 입지 않고 대한제국 문제 해결을 명분삼아 일본정부에 대한제국의 행정감독은 물론 철도,우편,전신 등에 유리한 권한을 인정하면서 재정과 군사부문까지 참여를 허용해야 하며 러시아는 만주문제에 대한 일본의 불간섭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니콜라이2세는 문서 상단에 ‘파블로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친필로 남겼다. 니콜라이2세는 1904년 1월26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친필서명이 든 전문을 보내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는것보다는 일본이 먼저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일본이 먼저 개전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대한제국의 남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만약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병과 함대가 북진해오면 적군의 첫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공격하라.”고 긴급지시했다. 러시아의 정책이 대한제국의 양보쪽으로 서서히 방향을틀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이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하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마지노선’을 암시하고 있다.1902년 1월 런던에서 체결된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이 시기를 전후해 대한제국의 중립화안이고개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러시아 군부는 대한제국 전역 혹은 북부지역의 무력 점령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러시아는 일본뿐 아니라 어떤 국가에게도영향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점령해러시아에 합병시켜야 한다(1900년 두바소프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극동의 정치상황).일본은전 병력을 만주전선에 투입했다.러시아는 대한제국으로 진격해야 한다.현재의 16개 부대로는 병력이 부족하다.진격계획은 8월로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904년 6월 아무르 군관구 참모부에서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보낸 전문). 일본군이 만주전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틈을 이용해대한제국 영토에서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국지전(局地戰) 계획이긴 하지만 점령안을 지지하는 군부의 의사를엿볼 수 있다.무력점령안에 따른 진격계획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이들 부대는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로 진출했으며 평양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군부 및 일부 외교라인의 강경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903년 6월 여순에서 베조그라조프 등 극동정책수립에 전권을 위임받은 수뇌부가 참석한가운데 특별회의를 갖고 한반도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회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전역혹은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점령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일본이 점령하면항의는 할 수 있으나 자국군대를 투입해서는 안된다.▲일본의 점령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만주와 대한제국은 별개의 문제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1903년 7월4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이 로젠 주일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러·일 분할점령안에 따른 중립지대(완충지대)설정에 대한 극비메모도 흥미롭다. 중립지대 설정에 대한 자료는 외무성에 없으며,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니콜라이 1세의 손자) 대공의 1899년 3월6일자 극비메모에는 아무르강 하구에서 원산만까지,그리고 서울과 제물포를 포함하고 있다(1903년 3월11일 외무상이황제에게 보낸 상주서). 다소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독립국 유지를사실상 포기한 채 이권 챙기기에 주력했음을 다음의 외무성 훈령은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해관계나 대한제국의 심각한 하소연이 없는한 일본 통감부의 지시에 가급적 관여하지 말 것.일본 당국에 대한 한인의 불만에 개입하지 말고 열강의 최혜국 국민으로서 법적인 권리를 사수하라.열강이 영사관을 개설하는 지역에 러시아영사관 개설의 필요성 여부의 의견을 상신하라.특히 러시아제국 정부에 전폭적인 충성심과 믿음을 보인 고종이 실현불가능한 기대를 갖고 러시아에 요구를해올 때 일본과의 사이가 악화되지 않도록 어떠한 약속도자중하라(1906년 외무상이 대한제국에 부임하는 플란손 총영사에게 내린 훈령). 러·일전쟁에서 패배,일본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러시아의 비탄과 몸조심은 더욱 두드러졌다.플란손은 1905년 12월 작성한 비망록에서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대한제국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공을 잃어버렸다.”고 자탄했다.니콜라이2세는 같은해 11월 고종의 계속되는 독립유지 지원 호소에 대해 “고종 황제에게 ‘패전 이후 혁명세력의 확장으로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전문을 보내라.”는 칙령을 외무성에 내렸다. 제정 러시아는 신흥 일본제국주의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로젠 당시 미국대사는 1906년 외무성에 보낸 문서에서 “러시아가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국토를 확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영향이 이제 대한제국에까지 미쳤으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30∼40년 후퇴했을 뿐이다.”라고 기록했다. 이같은 지적은 40년 뒤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러시아)의 38선 이북 점령으로 현실화됐다. 노주석기자 joo@ ■러 당시 외교라인 대한제국 말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이 오락가락한 이유는무엇일까? 가능하면 일본이나 청과의 전쟁을 피하되 대한제국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에 1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당시 매파와 온건파로 양분됐던 외교라인의 분열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한반도정책의 최고 결정자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였다.이번에 발굴된 러시아 극비문서에 따르면 그는 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가 “서울에서 개에 물려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으러 도쿄에 왔다.”고 보고하자 “휴가를 줘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라.”는 시시콜콜한 것부터 “일본군이 서해 38선을 월선해 상륙하면 즉각 발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정도로 모든 사안을 직접 챙겼다. 니콜라이2세가 극동관련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는 공식외교라인은 외무상의 직접 보고,극동총독의 상주서,일본·청·조선주재 공사들이 황제 또는 외무상에게 올리는 보고서 등 크게 세 가지 경로였다.이밖에 황실근위연대 기병장교출신으로 상서(명예 무임소장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측근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황족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뷔테 재무상 등 비선(秘線)보고도 영향을 끼쳤다. 니콜라이2세는 모든 보고서를 빼놓지 않고 탐독한 뒤 자신의 의견을 보고서에 남겨 정책에 반영토록 했다.하지만대한제국의 독립국가 유지,일본과의 분할점령안,전역 점령안 등 상황에 따라 바뀌는 외교정책의 큰 틀에 대해서는개인적인 판단은 갔다.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훈령을 통해 각국주재 공사를 통제하고 황제에게 의견을 올린 외무상이었다.기르스,로바노프,람즈돌프 등 역대 외무상들이 대체로 온건파여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자는 주장이 득세한 것으로 드러났다.여기에 뷔테 재무상과 쿠르파트킨 육군상 등이가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의 일전불사,한반도 무력점령을 주장한 매파로는베조그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과 아바자 극동특별위원회 사무총장,플라베 내무상,알렉세이예프 극동총독,두바소프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이 대표적이다.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은 극동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903년 여순에 설치된 극동총독부는 외교권을포함,극동관련 사무의 1차적인 처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러·일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시아의 극동정책은 외무성과 극동총독부가 공동으로 관여하는 2중구조로 돼 있었다.극동총독부의 설치와 권한부여는 당시 러시아의 신(新)극동정책을 주도한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로젠 주일공사도 일본에서 한반도정책을 원격 조정하는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로젠 남작은 세 차례에 걸쳐 일본주재 공사를 역임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공사였다.이후 미국대사로 승진,1905년 포츠머스 러·일강화조약 당시 러측 협상부대표를 맡았다. 노주석기자
  • 구한말 정치외교비사 100년만에 ‘햇빛’- 베베르 러공사 수기 첫 공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등 구한말 일본의 침략야욕 및 러시아의 국정 개입에 대한 비밀을 풀어줄 조선 주재 러시아 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가 작성된 지 100년만에 처음 공개됐다.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이란 제목이 붙은 이 수기는 당시 미국공사였던 알렌이 쓴 ‘알렌의 일기’,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공사였던 플란손의 ‘플란손의 수기’와 함께 구한말의 정치·경제·사회상을 밝혀줄 희귀사료로 평가된다.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모를 밝혀내 본국에 알렸고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을 보호,1년 동안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한 베베르의 수기가 발굴됨에 따라 그동안 미국·일본·중국의 자료에 의존해온 학계의 근대사 해석에도 일부 수정이 가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국(외무성 소속) 서고에서 찾아내 8일 공개한 베베르의 수기는 1903년 3월 서울에서 작성,러시아 외무성에 보고한 극비문서이다. 당시 그는 고종의 재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경축특사로 서울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베베르는 “조선 역사상 1894년 하반기(청·일전쟁,동학혁명,갑오경장)와 1895년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같은 가혹한 압박은 없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기술했다. 또 청·일전쟁(1894∼1895년) 이후 관리와 군인들의 월급조차 지급할 수 없었던 열악한 재정상황, 1∼2차 러시아군사교관단의 파견과 대한제국 군대의 훈련과정, 아관파천 당시 자신이 고종과 협의해 시행한 행정개혁 내용 등도 소개했다. 그는 1903년 수기를 쓰면서 경부선철도 부설, 서울~부산~일본을 잇는 전신선 복구공사, 일본은행권의 남발과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한제국의 재정사정 등을 예로 들면서 “”현재의 경제적인 예속이 조만간 정치적인 속박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주석기자 joo@
  •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1895년 10월8일 민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된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를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고종왕은 일본군의감시아래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 있었다. 베베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이자 궁궐경비원이었던 사바틴의 증언서와 자신의목격담을 난수표 암호전문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잽싸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니콜라이2세 황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친필로 “천인공노할 사건이니 좀 더 자세히보고하라.”고 지시했다.이어 극동지역에 주둔하던 아무르군관구 사령관에게 비상경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일본군의 감시하에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있던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아침 7시30분 여인복장으로 변장하고 왕세자와 함께 부인용 가마 두 대에 앉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오는 데 성공했다.뜻밖의 정변이 발생한 것이다.고종의 탈출소식을 들은 수천명의 군중이 공사관 담벽 아래로 몰려와 국왕의 탈출을 만세로 환호했다.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온 이후 모든 국사는 러시아제국의 국기가 게양된 러시아공사관에서 경비해군 160명의 호위 아래 행해졌으며,각부 대신들은 공사관건물 안에 병풍을 친 임시 사무실을 사용했고 본인과 협의하라는 왕명을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대신과 단둘이서 논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 옆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1년동안 자신이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이때부터 러시아는 이전에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했다.베베르가 분석했듯이 러시아는 1884년 수교 이후 10여년간 대한제국 문제에 무관심했다.당시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청국이었으며 시베리아의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었다.따라서 러시아공사관의 임무는 청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1년은 베베르와 러시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지만 고종에게는 암울한 시기였다.당시 러시아공사관 서기였던 쉬테인은[“그는 두개의 방에 왕세자와 각각 따로 앉아공사관 뜰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가끔씩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궁궐(경운궁)에 계신 노대비(명헌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려고 몰래 세자와 함께 가곤 하셨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방안에 은둔하고 앉아 계셨다.”]고 외무부에 보고했다.고종의 공사관 생활은 수인(囚人)과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다. 청·일전쟁 후 지방세가 서울로 납입되지 않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일본인 재정관리자와 고문관이 떠나버리자국고에 잔액이 얼마 남았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관리들의 월급,특히 군인과 경찰관에게 제때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탁지부(재무부)의 재정실정을 밝혀야 했다. 베베르는 영국인 해관총무사 브라운을 재정고문으로 천거해 이 일을 맡겼다고 밝혔다.브라운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입을 올바르게 수령,장부에 기입하고 지출을 줄여 관리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수 있었으며,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기록했다.1896년말 국고는 1,660만엔의여유가 생겼으며,일본에서 차관으로 들여온 300만엔 중 100만엔을 상환하고 이듬해 가을 또 100만엔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이 환궁한 후 신변안전책으로 단행된 조선군의 개편작업에도 베베르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에서 2차에 걸쳐 군사교관단을 초청,대궐시위대 2개 대대를 교육시켰으며 러시아식 군운영체계를 도입했다.여타의 대한제국군들은 러시아교관단이 관리하는 대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베베르는 러시아국가회의 체제로 의정부의 개편,13개 도와 342개 군으로의 행정구역 분할,범법자에 대한 처벌 법규 시행,재정고문 알렉세예프 파견 요청,러시아어학교 개교,러청은행 지점 개설 등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이 기간동안 서북 석탄광개발과 압록강,두만강변의 벌목이권을러시아가 따낸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알려졌지만 고종과 황실인사는 물론,한국과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을 떠난 지 5년만에 다시 와보니 거리의 남루한복장은 이전보다 두배나 많았다.…고종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嚴妃)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정치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일본인들이 다시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한국인은 러시아,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제대로 몰랐다.…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고종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품이지만 많이 쇠약해졌으며,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 결정됐다. 1903년 다시 서울에 와보니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면서도 정치,경제적 예속화를 촉진시키는 데모든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한국인들은 일본의 속셈을알지 못했고,러시아는 법적으로 그런 정책을 중지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일본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대한제국의 조정과 국민자산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를열거하면서 대한제국이 조만간 일본의 정치적 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2만명을 넘으며,일본인 1인당 한인 5명이 식모,사무실 서기,잡부,납품상인 등으로고용되다시피 했다.…대한제국 연간 무역액의 72%를 일본이 차지할 정도였다.…1898년 9월 경부선철도 부설권 협정서 중 ‘철도에 필요한 역사,창고 등 대한제국측이 제공하는 부지는 철도회사에 귀속되며 역사는 필요한 곳에 건설하되 역 앞에는 일본인 이외 타민족의 거주를 금한다.’는 불평등 조항 때문에 철도부설과 동시에 대한제국의 철도및 역사주변 땅은 일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일본은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들이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서울∼부산∼일본해저 전신선을 통제했다.…개항지마다 일본은행이 개설돼 일본엔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베베르는 누구 우리나라에 부임했던 역대 외교관 중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외교관은 없었다. 베베르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최측근 인사로 통했다.그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친러시아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대한제국의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고종은 베베르가 멕시코 공사로 발령나자 ‘이임이 유감스럽다.장기간 유임시켜달라.’는 친서를 니콜라이2세에게 보냈다.니콜라이2세는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식(1902년)에 당시 야인이던 베베르를 사절단장으로 특파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 중에도 ‘베베르는 고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베베르를 경축사절단장으로 결정한 것은 고종황제에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종은 서울에 온 베베르를 자문역으로 붙잡기 위해 니콜라이2세에게 서울체류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베르에 대한 학계의 연구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하다.그의 출생연도와 학력,수기 등도 이번의 문서 공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베베르는 1841년 6월5일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부친은 루터교 선교사였다.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 동양어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5년동안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이후 톈진영사와 일본 총영사를 거쳐 조선주재초대 대리공사로 부임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와 중국,일본 등 주변국 외교가에서 ‘친한파’로 낙인찍힌 데다 수뢰사실(2만엔)이 외무부에 알려지는 바람에 서울을 떠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주석기자 ■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러 문서국 20곳서 10년간 자료 뒤져” “러시아에 산재한 20여개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한국과관련된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러시아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서수집 및 번역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지난 90년 한·러 재수교 직후 러시아문서보관소가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자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문서보관소는전세계에서 몰려온 학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지만 한국관계문서를 찾는 학자는 박 전 교수뿐이었다.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문서를 조사,열람한 뒤 복사하려면 기록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한국 학자들의 이름은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어와 러시아사,한국사,한·러관계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드문 탓도 있었지만 소장된 문서가외교,군사,경제 등 전문 분야의 필사본이어서 웬만한 학자들은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보관소의 서고를 뒤져 한국관련 문서를 찾아내기란 숨은 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최근에야 러시아어와 역사를 전공하는소장학자 몇명이 한국관련 자료 수집작업에 합류했다. 박 전 교수는 99년부터 2년 동안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연구비를 지원받아 문서찾기와 번역,해제작업을 해왔으며,조만간 ‘러시아국립문서국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해제집’이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비밀문서의 목록을 총망라,문서목록해제집을 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일입니다.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군사문서보관소,연방문서보관소의 서고에 숨겨져 있던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러시아가 견지해온 한반도정책의 과거는 물론,현재와미래까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교수는 러시아측의 공개 제한조치로 ‘극비문서’들이 소장된 크렘린문서보관소와 KGB문서보관소에 접근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그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소련 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원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독토르)을 땄고 모스크바대학 객원교수로대학원생들에게 한·러관계사를 강의했다. 노주석기자
  • 집중취재/ 범죄 키우는 신용카드

    ‘카드빚 100만원을 갚기 위해 다시 카드빚을 얻어 돌려막을 경우 20년 후에 갚아야 할 돈은 1억 1500만원.’ 월 2%인 현금 서비스 수수료를 복리로 환산할 경우 3년이면 2배,10년이면 10배,20년이면 115배,30년이면 1247배로 부풀려진다.연체할 경우 이자는 월 20%로 껑충 뛴다. 카드빚을 갚기 위해 다시 카드빚을 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카드빚으로 인한 각종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얼마전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여성 6명 살해사건도 카드빚 때문이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뒤 어렵게 첫 직장을 얻은 정모(26·서울 은평구)씨는 최근 카드 회사로부터 급여를 압류당했다.대학 1학년 때 130만원을 현금 서비스받은 게 화근이었다.한달 봉급 140만원을 몽땅 쓸어 넣어도 1000만원으로 늘어난 카드빚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결국 직장까지 잃은 정씨는 요즘 문을 걸어잠근 채 하루종일 허공만 바라보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주부 박모(33·서울 강서구)씨는 치킨가게를 차리기 위해 3년전 현금 서비스 900만원을 받았다.생각처럼 장사도 안되고 이자만 늘어나자 박씨는 남편의 카드 등 모두 12개의 카드로 빚을 돌려막았다.박씨 부부는 지난달 20일 신용불량자 통지를 받았다.이들이 갚아야 할 카드빚은 모두 1억 1000만원으로 늘어 있었다.박씨는 지방의 한 식당에서 숨어 지내고,남편은 가출했다. 이는 카드회사들이 연령이나 개인 신용 등을 따지지 않고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한데 따른 것이다. 카드회사들은 최근 정부가 길거리 카드발급 등을 금지하자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변칙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고 있다.20개의 카드를 동시에 발급해 주는 사이트도 있다.신용확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이트는 D커뮤니케이션,L코리아,P프리챌,H드림 등이며 4월 한달동안 이들 사이트를 통해 모두 60만장의 카드가 발급됐다. 7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발급된 신용카드는 2000년말 5788만장,2001년말 8933만장,올해말에는 1억 2000만장에 이를 전망이다.10장 이상의 카드를 소지한 사람도 23만 3360명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 4장 이상을 보유한 사람 가운데 53만여명이 1000만원 이상의 카드빚을 지고 있으며 빚을 막는데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여연대 박원석(朴元錫) 시민권리국장은 “카드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될 경우 카드를 발급해 준 금융기관에도 책임을물어야 한다.”고 말했다.서울여대 이종욱(李鍾郁·경제학)교수는 “신용을 따지지 않고 카드를 발급해 주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꼬집었다. 김문기자 km@
  • 새영화/ 하트의 전쟁

    미국 할리우드가 2차대전을 주물러 만든 신제품 행렬엔 끝이 있을까 싶다.‘하트의 전쟁’(Hart's War·17일 개봉)은 그 중 독특한 변주다. 기록자의 펜을 거머쥔 하트(콜린 파렐)는 눈망울에 아직 순수가 뚝뚝 묻어나는 젊은 미군 중위.미션을 수행하던 그가적에 포위돼 해골 골짜기로 굴러떨어질 때,아군기의 폭격을당해 포로들끼리의 인간사슬로 POW(전쟁포로)문자를 만들 때만 해도,관객들은 영화가 포로들의 아우슈비츠 같은 암울한삶,또는 사활을 건 저항 수순을 밟아가리라 점쳐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2차대전류 문법을 답습하는 건 딱 거기까지다.미군포로 막사로 들어선 하트는 순식간에 중차대한 인권법정의 한가운데로 동댕이쳐진다.그를 얼얼하게 만든 건 미군들의 총지휘관격인 맥나마라 대령(브루스 윌리스)의 난데없는 지명.수용소내 백인중사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흑인장교가 지목되자,새파란 법대생 출신 하트를 변호사로 찍어붙인 것. 잡힐듯 빠져나가는 사건의 꼬리,끈적하게 묻어나는 음모의흔적….스크린은 미스터리,휴먼드라마까지종횡무진 선을 넘나들며 예기치 않은 반전의 벽돌을 착착 쌓아올린다.‘프라이멀 피어’에서 관객들의 허를 찔렀던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답다. 모처럼 탄탄한 극적 재미.그런데 뒷맛이 어째 씁쓸하다.그감동이란 게 고스란히 미국식 영웅주의에 헌납되는 때문일까.실존의 문제와 씨름하는 인간 드라마로 읽어보려 해도,‘큰형’으로 나선 브루스 윌리스가 쑤시고 다닌 할리우드 목록들이 자꾸만 떠올라 집중을 방해한다.다른 건 몰라도 윌리스는 ‘JSA’의 송강호 같은 맏형 이미지하곤 거리가 멀다. 손정숙기자
  • 인권침해사건 ‘기획조사’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민주국가 실현을 위한 기반 조성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버림받은 아동,학대받는 노인의 인권보호를 특별기획사업으로 선정해 추진키로 했다. 김창국(金昌國) 위원장은 6일 오후 위원회 출범 이후 처음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이같은 내용의 올해 업무를 보고했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출범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총1664건의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에 대한 진정이 접수됐다.”면서 “신속한 조사와 구제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제소자의 진정권 보장을 위해 구금시설 현장방문을 대폭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기획조사’를 실시해 구금·다수인 보호 시설의 인권침해와 장애인·외국인·연령 차별을 시정해나갈 것”이라면서 “인권관련 법령에 대한 개선 및 권고를 강화하고 수사기관,군,행정기관,학교 등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실시하겠다.”고덧붙였다. 인권위는 특히 학대받는 어린이와 소년소녀가장,복지시설 거주 어린이,버림받은 노인을 인권취약집단으로지정해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령과 정책을 개발하고 지속적인캠페인을 펼치기로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박근혜의원 11일 북한 방문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오는 11일 북한을 방문한다.이에따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여부가 주목된다. 김 국방위원장과 박 의원간 만남이 성사될 경우 남북한대치가 정점에 달했던 70년대 남북 양측 지도자의 자녀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될 전망이다. 박 의원은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자격으로 11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라며“김 위원장 면담을 따로 요청하지는 않았으나,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코리아재단은 주한 유럽 24개국 외교관과 기업인 등600여명의 참여로 지난해 5월 주한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가 설립한 단체로,각종 대북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방북 목적은. 북한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3만여개 보내는 등 대북협력 활동을 한 데 대해 북한이 감사의 뜻을 전해 왔다.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누구를 만나나. 일정을 협의하고 있어 확실히 말하긴 어렵다. ●김정일 위원장도 만나나. 일정이 확정되면 말하겠다. ●정부측과 협의했나. 3일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을만나 방북승인을 신청하고,방문목적을 설명했다.사전협의한 일은 없다. ●혼자서 가나. 나를 포함,재단 이사진 4명이 간다. ●육영수(陸英修) 여사 시해사건 등 불행을 겪은 만큼 방북 소회가 남다를 텐데. 남북은 그동안 어려움과 실망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고,그나마 지금은 많은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나도 개인적으로 불행을 겪은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욱 평화공존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어떻게든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서 남북간 평화증진에 협력하고 노력하는 상대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진경호기자 jade@
  • 강원도 상하이 관광사무소 개설

    강원도가 빠르면 이달중에 중국 상하이(上海)에 관광사무소를 개설한다. 3일 강원도에 따르면 이달중 중국 상해영사관에 한국관광공사 상해지사를 개설하는 것에 발맞춰 강원도 관광사무소도 함께 열 계획이다. 강원도는 우선 현지인을 채용,강원도의 관광을 홍보하고양양 국제공항에 항로를 개설하고 있는 동방항공사와의 연락 및 항공권 예매 업무를 담당토록 할 예정이다. 또 오는 8월부터 별도 사무소를 마련하는 한편 상해 스키관광객 모객 등의 업무를 위해 도 공무원 2명을 파견하기로 했다.강원도 관계자는 “양양국제공항이 개항됨에 따라 상하이시를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관광 마케팅이 필요해사무소를 개설하게 됐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2000-9595)
  • [대한광장] 엽기살인 막을 ‘도덕 리더십’ 필요

    9·11테러에 버금가는 연쇄 살인사건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20대 여성 연쇄 살해사건이다.도덕규범이라는 한국인의 마음 속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두 명의 테러리스트에 의하여 처참하게 무너져 버렸다.그들은 야수보다도 못한 자들이다.야수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동물을 죽이지만,그 살인자들은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사건은 요즘 문화의 핵심 코드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엽기’가 현실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사람을 납치하여 강간한 후 무참하게 살해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몇 년 전에 제작된 한 국산영화는 외딴 산장의 주인 가족들이 투숙객들을 연쇄 살해하여 암매장하는 과정을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미국 할리우드액션 영화의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범죄자들이 자동차를 훔치거나,차량번호판을 바꿔 달고 살인·강간·강도질을 하는 내용이다.가상 세계이지만 살인을 학습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하는 컴퓨터 게임이 하나 둘이 아니다.동영상 시청자나영화 관객,또는 컴퓨터 게임 이용자는 영상 속 엽기적 행동을 범죄가 아니라 단순한 흥미 거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는 알게 모르게 인명경시 풍조,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살인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을 배양한다.그리고 도덕적 자제력을 상실한 극소수 미치광이 인간이 자신이 학습한 엽기 문화를 실천에 옮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도덕적 규제의 끈을 끊어 버렸는가? 달리 말해,왜 그러한 미치광이들이 자꾸 생겨나는가? 그것은 현대문명의 병폐 때문이다.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대중사회에서 인간들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느낀다.주위에 수많은 사람이 있으나 내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내가 아는 사람은 있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자신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익명의 공간에서,모래알처럼 고립된 개인은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행동하기 쉽다.지난 40년간 이루어진 공업화·도시화의 결과,한국사회에서도 이웃으로 구성된 지역공동체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 대신 나와 내 가족의 이익만을 앞세운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다.특히 아파트로 대표되는 도시적 생활양식은 고립된 개인,이기적 개인을 양산하였다.최근 급속히 보급된 인터넷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또한 외양을 중시하여 무분별하게 과시소비를 일삼는 소비문화가 일탈자들을 양산하고 있다.신용카드업계는 호황을구가하지만,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카드 빚에 시달리는 젊은이 중 일부는 돈을 강탈할 희생양을 찾아다니고,또 다른 일부는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일부 여성들은 소위 ‘원조교제’를 통해 그 빚을 갚으려 시도한다.이러한 일들은 궁지에 몰린,나약한 이기주의자들이 택하는 전형적 행동양식이다. 문제는 이기주의자들의 엽기적인 행동이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이 연쇄 살인사건을 통해 ‘우리가알고 있던 세계’는 이미 몰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지금당장 ‘총체적 무규범상태’를 극복할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한국인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9·11테러 직후 미국인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합하며 위기 수습에나섰던 것 이상으로,우리도 이 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무너진 과거 도덕규범의 잔해를 치우면서,21세기시대 정신에 걸맞은 도덕규범을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각계 각층,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하다.특히 정치가들이 진실로 그 일에 앞장서야 한다.올해 두 차례에 걸친 선거에출마하는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한 단계 수준 높은 도덕공동체를 이 땅에 건설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걸었으면좋겠다.그들 모두가 자기 말의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이다.사회가 위기에 처할수록 도덕적 리더십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설동훈 전북대교수·사회학
  • EBS ‘PD리포트’ 새달 2일 방영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며 동심의 나래를 활짝 펴야 할때 각종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한국의 어린이들.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린이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악’이 있다.무책임하고 잔인한 일부 어른들의 아동 성폭행이 바로 그것이다. EBS ‘PD 리포트’가 가정의 달을 맞아 5월2,9일(오후 9시20분) 두차례에 걸쳐 한국의 아동 성폭행을 주제로 한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제1부 ‘상처받은 어린 영혼 꽃님이의 슬픈 오월’편에서 한국 아동 성폭행의 실태를 점검한 뒤 2부 ‘치료와 교육을 한자리에,미국의 아동보호현장’편을 통해 개선방향을 짚는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행 피해사례 중어린이 피해자가 21.6%나 차지했다.2000년도에 비해 30%가깝게 늘어난 것이다.1부는 이처럼 성폭행 피해가 늘어나는데도 대책은 미비하기만 한 실상을 고발한다.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아이를 위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자애쓴다.병원은 사건에 끼어들기를 꺼려해 진단서를 떼어주지 않는가 하면,상담소라는 데는 무고 등으로 역 고소를 당한다면서 조용히 넘기라고 하기 일쑤다.여기에 치료시설을 갖춘 병원도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비용부담도 만만치가 않은 실정을 낱낱이해부한다. 제2부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치료와 교육 등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에 대한 사후 대처 방안을 제시한다.미국의 아동학대 치료센터와 법적 보호 기구인 아동상담협회의 활동을 집중 소개한다.지난 72년 설립된 ‘캠프센터’는 30년째아동학대의 예방과 치료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어린나이에 치명적인 정신적 상처를 받은 아동들이 정상적인생활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주 목표이다.‘미국 아동상담협회’같은 곳은 성폭력 피해 아동들에게 지속적으로 법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미국의 두 기관 활동과 한국의 열악한 상황을 대비시킨다.또 LA경찰국과 LA고등법원이 운영하는 아동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개선책을 제시한다. 이송하기자 songha@
  • ‘학교 사랑 모임’ 창립/ 교육문제 학부모가 나섰다

    서울지역 530여개 초·중·고교 학부모 대표들로 구성된‘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은 24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학부모들이 직접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정부의 수많은 교육개혁 정책에도 불구하고 입시지옥,교실붕괴,사교육비 과중이라는‘교육 삼중고’는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학부모 반성문’에서 “학교 폭력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자식교육으로 일관했던 태도를 반성한다.”면서 “건강하고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드는데 노력하겠다.”고다짐했다. 이들은 지난 15일 서울의 중학교에서 발생한 동급생 살해사건과 관련해 학부모,교육청,학교,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
  • 韓末 의병장 유인석 친필 유묵 최초 공개

    명성황후 시해사건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맹활약했던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의 친필이 발굴, 공개됐다. 독립기념관(관장 李文遠)은 지금까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의암 유인석 의병장의 친필 유묵을 발굴했다고 24일 밝혔다. 공개된 친필은 가로 79㎝,세로 47.5㎝의 한지에 ‘大眼活胸 硬脊 健脚’이라는 세로로 쓴 8자 족자로,유인석 의병장의 평소 생활신조를 표현한 친필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친필은 지난 23일 독립기념관으로 초청받은 전 통문관(通文館) 대표 이겸노(93)옹으로부터 기증받았다. 강대덕(姜大德) 독립기념관 학예실장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병장 유인석은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의 문하에서수학하고 제천에서 학문을 연구하던 중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며 충주,단양,원주,영월,안동,문경 일대에서 대활약을 펼친 의병의 상징적 인물이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
  • 전경련 ‘차기정부 과제’내용/ “국정원장·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도입을”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22일 내놓은 ‘차기정부 정책과제’는 정치,행정,사법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특히 지금까지의 정치를 실패라고 규정한 뒤 정치부문의강도높은 개혁을 강조하고 나선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계의 그간 행태를 감안할 때 전경련이 과연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느냐.”며 “권력 교체기를 맞아 다분히 재계의 입지강화를 노린 전략·전술의 성격이 짙다.”고 꼬집었다. 한경연은 고비용 정치구조를 없애고 정치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고해성사를 할 경우 특별법을 통해사면하고 정치자금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대표적이다. 정치자금 지출에 대한 신용카드 및 수표 사용을 의무화한것도 같은 취지로 볼 수 있다. 또 정치시장의 진입·경쟁·퇴출을 활성화시켜 정치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즉 공직자나 전문직 종사자가 공직선거에 출마할 때 본래의 직장에서 사직하지 않고도 출마할 수 있도록 하고,낙선하면 종전의 직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이와 관련,“정치시장의 진입장벽이 없어야 유능한 인재가 정치에 몰리게 되고,한국정치가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작지만 유능하고도 투명한 정부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우선 국가정보원,검찰 등 특수권력기관장의 인사청문회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대통령비서실에간언기능을 부활하고,대통령 친·인척의 공직임명을 제한토록 했다. 한경연은 이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부처별로는 또 총액인건비예산제도를 도입해 장관의 책임 아래 조직·정원·보수 관리를 자율화하고 경쟁임용제도의 정착과 공정·유연한 인사시스템을 확립하는 방향으로공무원 임용제도를 개선토록 했다. 부패척결을 위해서는 내부 고발자 보상 및 보호제도를 강화하고 공무원의 보수를 현실화할 것을 요구했다. 법치 실현을 위한 선진사법 구현을 목표로 삼았다. 사법권의 실질적 독립과 법원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법원의 인사,조직,예산을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키고 대법원장및 대법관을 법관회의에서 추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특허·행정·가정 등으로 전문화된 법원을 노동,조세,환경,파산,금융에 추가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기정부 임기 초반에 법률시장을 조기 개방해 법률서비스 개선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부문의 핵심과제는 공기업 민영화,규제개혁,엄격한 재정·예산 운영,합리적인 조세정책,공적자금 관리·감독체계 정비 등 5가지로 나뉜다. 공기업 민영화 대상으로는 금융산업과 마사회 등 공적기관,지방공기업,KBS를 제외한 공영방송 등이 대상으로 올랐다. 철도·수도·우체국사업은 먼저 공사화를 한 뒤 추후에 민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유명 연예인매니저 사칭 여성 농락 30代 영장

    서울 서초경찰서는 18일 유명 연예인의 매니저를 사칭해미혼여성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맺고 수천만원을 빼앗은 최모(32)씨를 사기와 혼인빙자간음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신청했다. 최씨는 2000년 초 대전 유성구 거리에서 만난 이모(23·여)씨에게 유명가수 조모씨와 영화배우 최모씨의 매니저라며 접근해 “연예인으로 만들어주겠다.결혼하자.”고 꾀어 2년 동안 성관계를 가지며 사업비 명목으로 7000만원을챙기는 등 미혼여성 11명과 성관계를 맺고 8500여만원을가로챈 혐의를 받고있다. 그는 지난해 말 시트콤에 출연시켜주겠다며 접근해 성추행한 모델 정모(23)씨의 고소로 덜미가 잡혔다. 최씨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월세 23만원짜리 고시원에 거주하면서 외제 승용차를 빌려타고 다니며 방송연기학원,방송국,백화점 주변에서 마주친 미모의 여성들에게 접근해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최씨의 수첩에 40여명의 여성 및 연예인 연락처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한준규기자 hihi@
  • 中 여객기 참사/ 이모저모

    ■중국 여객기 추락사고 조사반장으로 파견된 국내최고의항공기 사고 전문가인 최흥옥(52) 건설교통부 사고조사과장은 17일 오후 미국측 조사단과 첫 미팅을 가진 뒤 “다양한 부분을 조사해야 한다.”며 “사고조사 초기이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최 반장은 “다만 날씨가 나빴지만 비행기가 못 내릴 만큼 나쁘지는 않았다고 본다.”고 말하고 “그외 다른 부분은 계속 조사해야 하며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부산롯데호텔에서 한·중·미 합동조사단이첫 협의를 가진 가운데 미국 특별조사단 단장인 알프레드디킨슨(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단장은 “한국이 사고조사를 컨트롤한다.”고 밝혔다.디킨슨 단장은 “우리는 한국정부의 조사에 협조하기 위해 왔으며,그것이 우리의 임무다.”라며 “앞으로 사고조사와 관련한 모든 계획은 한국정부가 주도적으로 컨트롤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중·미 합동조사단은 오전 부산롯데호텔에서 사고현장조사팀과 사고기 기장조사팀 등2개팀으로 나눠 정밀조사활동에 착수했다. 이날 사고 사흘째를 맞아 부산롯데호텔 중국 사고조사단상황실은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정중동’의 모습.중국측은 한국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등 외부인과의 접촉을 일절 차단한 채 호텔 3층 상황실에 집결해 1시간 남짓 자체 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중국측은 이번 사고가 조종사의 경험부족 또는 조종미숙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한국언론의 보도와 관련,자료를 비밀리에 요청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대한적십자사 부산 강서구·김해시 부녀봉사회,김해시 의용소방대·새마을부녀회 등 여러 봉사단체들은 이른 새벽부터현장 지휘통제본부 주위에서 사고현장을 오르내리는 구조대원들에게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며 격려했다. ■타국에서 변을 당한 중국인과 조선족 동포 희생자 유족의 슬픔은 더욱 깊다.중국 국적을 가진 11명의 부상자들중 일부는 아직 가족과 연락조차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족 아내 리앙쳉위(27)와 어머니를 잃은 박종필(35)씨는“시신 확인을 위해서는 중국에 있는 아내의 친인척들이한국에 들어와야 하는데 비자가 발급되지 않고 있다.”며한국 유가족대책위와 당국이 중국인이나 조선족 피해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사고로 부상한 조선족 박춘자(32)씨는 “병원에 누워 있어 부모님께 전화도 못했다”며 “어서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먹였다. ■중국 여객기 사고 희생자의 장례식이 이날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치러졌다.지난 16일 대구로운구된 안선육(44·여·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씨의 유족들은 오전에 발인,안씨의 시신을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가족묘지에 안장했다. ■김해시청 별관 5층 유족대기실의 게시판에는 각 병원에안치된 미확인 시신의 연고자를 찾기 위해 시신의 특징이나 유품을 소개하는 내용의 글들이 실렸다.이 글들은 30대한 유족이 글을 게재한 이후 유족들이 잇따라 게시판에 자신이 본 시신의 특징을 적은 것이다. ■합동 분향소 설치를 놓고 마찰을 빚었던 유가족과 사고대책본부는 오후 2시쯤 김해문화체육관에 분향소를 설치,운영하되 유가족대책위와 정부측 사고대책본부가 함께 문화체육관으로 옮기기로 합의했다. 유족들은 “전체 유족들에 대한 시신 확인작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청 밖에 설치된 분향소를 이용할 생각이 없다.”며 시청 별관 5층에 분향소 설치를 요구했다.이에 대해사고대책본부는 문화체육관의 불편한 교통·통신 문제를적극 해결해줄 것을 약속해 합의를 이끌어냈다.그러나 많은 유족들이 “시신 확인 없이는 분향소를 설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갈등은 계속됐다. ■희생자 유가족 대부분이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애를 태우고 있다.현재 수습된 사체 126구 가운데 불과 6구만 신원이 확인됐고,나머지 120구는 심하게 훼손돼 육안으로 개인식별을 할 수 없는 상태다. 특별취재반
  •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 국제표준 ‘P3P’ 확정

    [뉴욕 AP 연합] 웹사이트 사용자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쉽게 점검할 수 있는 국제표준이 지난 5년여의 줄다리기 끝에 16일 확정됐다. 월드 와이드웹 컨소시엄은 이날 ‘프라이버시 보호 우선강령(Platform for Privacy Preferences: 일명 P3P)’을 확정했다고 밝혔다.컨소시엄의 기술사회 그룹 책임자인 대니와이츠너는 “사용자들이 P3P를 통해 웹사이트의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 지를 쉽게 알아 볼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사용자들이 웹사이트에 등록할 때마다 일일이 프라이버시 규정을 검토해야 했으나 P3P덕택에 앞으로는 그런 번거로움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P3P란 식품에 성분을 설명하는 라벨이 붙는 것처럼 웹사이트의 프라이버시 보호 정도를 점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사용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웹사이트에 첨부되며,프라이버시 보호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를 자동적으로 점검해사용자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P3P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P3P를반대하는 전문가들은 프라이버시 보호 효과도 없고 관련 입법만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정책평가위원들 “잘나갑니다”

    정부의 정책업무를 평가,부처별 점수를 매기는 ‘정책평가위원회(총리실 산하)’ 위원 출신들의 요직 발탁이 잇따르고 있다.장·차관 등 정부직 진출은 물론 은행 등 민간기업과 국제기구에서도 약진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제일 먼저 입각한 사람은 양승택(梁承澤)정보통신부장관.양 장관은 지난 98년 6월부터 2000년 2월까지 정책평가위 경제 2소위에서 정보통신부에 대한 정책 평가를 담당했으며 지난해 3월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됐다. 정책평가위 출범 당시인 98년 4월부터 제도·운영소위 간사를 지낸 김신복(金信福)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은 최근 교육부차관에 발탁됐다. 경제 1소위에서 금융감독위원회 평가를 맡았던 이덕훈(李德勳)씨는 KDI 선임연구위원을 지내다 대한투자신탁사장을 거쳐 현재 한빛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명수(金明守) 외국어대 교수도 부총장으로 승진돼 활동하다가 최근 퇴임했다.2000년 36세로 정책평가위원들 가운데 가장 어렸던 해양수산개발원 책임연구원 출신 이지현(李知炫)씨는 평가위 활동 9달만에 유엔기구인 국제해사기구에 영입됐다. 최광숙기자 b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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