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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사 58기 졸업 임관식

    해군사관학교 제 58기 졸업·임관식이 12일 노무현 대통령과 조영길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진해시 해사 연병장에서 열렸다. 해군 152명,해병대 21명의 신임 해군 소위가 배출된 이날 졸업식에서는 김근향(23·여) 소위가 해사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여생도로서 수석졸업,대통령상을 받았다. 졸업식이 진행되는동안 해사 연병장 앞 해상에는 최신예 한국형구축함(KDX-Ⅱ 1번함) 충무공 이순신함과 잠수함 나대용함을 비롯한 10여척의 환영 전단이 배치된 가운데 예포 21발이 발사됐다.또 임진왜란 당시 모습으로 복원된 거북선에서 총통 16발이 발사되고 해군 특수전 여단장병들의 고공 해상강하와 제트스키 및 반잠수정 기동 시범행사가 펼쳐졌다. 그러나 이날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직후 졸업식이 열린 탓인지 행사장 분위기는 예년과 달리 무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태양의 섬 사이판 & 로타

    서태평양의 미국령 두 섬 사이판과 로타의 최대 매력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때묻지 않은 트로피컬 휴양지라는 점이다.그래서 대단한 볼거리나 다양한 풍물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하기 일쑤다.그러나 바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때묻지 않은 자연에서 느림의 미덕을 온몸으로 체험하기엔 더이상 좋은 곳을 찾기도 어렵다. 사이판엔 올 들어 한국 여행객이 조금씩 늘고 있다.해외여행 자유화 초기 한때 허니문 여행지로 각광받다가,‘휴양 여행’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외면받던 것이,웰빙 바람을 타고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때늦은 폭설,그리고 기나긴 추위로 지친 몸을 따뜻한 남국의 섬에서 녹여봄은 어떨지.사이판과 로타섬을 다녀왔다. ●사이판 사이판은 서태평양 한복판에 위치한 북마리아나 제도의 주도이다.남북으로 21㎞,동서로는 8.8㎞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섬으로,섬에서 가장 높은 타포차우산에 오르면 사방의 해안이 손금보듯 명확하게 보일 정도.사이판에선 최근 산호섬인 마나가하섬이 가장 인기가 있다.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불과 20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미니섬.사이판의 마이크로비치 끝 선착장에서 배를 타니 20여분 만에 섬에 닿는다. 바닷물은 꼭 코발트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가슴 정도의 얕은 물속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떼지어 헤엄쳐 다닌다.겁없는 놈들은 다리를 톡톡 쪼아대기도 하는데,간혹 팔뚝 굵기의 물고기가 쪼아대면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고기들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스노클링을 이용해야 한다.물안경과 호스를 연결한 스노클을 쓰고,물갈퀴를 신으면 준비 끝이다.대여료는 10달러 정도.좀 더 깊은 곳에 들어가려면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된다.요금은 어른 100달러,아이 80달러.이밖에 스피드보트에 줄을 매고 낙하산을 즐기는 패러세일링,제트스키 등도 즐길 수 있다.꼭 마나가하섬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사이판엔 때묻지 않는 비치가 즐비하다. 특히 사이판의 유흥가인 가라판에서 무초곶까지 눈부신 백사가 깔려 있다.하루에도 몇번씩 바다 색깔이 바뀌며,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이곳에선 특히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배를 타고 나가 50m 정도의 깊이까지 낚싯줄을 내려 3∼20㎏의 씨알 굵은 물고기들을 낚아올린다.요금 60달러. 사이판에 처음 왔다면 섬을 한 바퀴 돌며 사이판의 다양한 모습을 구경해보자.먼저 섬 중앙의 해발 473m의 타포우차산에 올랐다.사이판에서 가장 높은 곳.‘사이판이 이 정도로 작을 줄이야.’란 느낌이 들 정도로 섬 선체가 한눈에 들어온다.만세절벽,자살절벽도 가볼 만하다.모두 일본인들의 한이 어린 곳이다.만세절벽은 2차대전 당시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7월 일본군이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던 곳.하지만 공격에 실패한 일본인 수천명이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절벽 아래 푸른 바다속으로 투신 자살한 곳이다.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짙은 코발트 빛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풍광이 장관이다. 해발 249m의 마피산 산정의 서쪽 절벽인 자살절벽은 1944년 미국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감행하자 수백명의 일본군 병사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뛰어내려 자살한 곳이다. 사이판 북동쪽의 새섬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섬에는 들어갈 수 없고 건너편 전망대에서만 볼 수 있는데,석회암 섬과 연둣빛 바다,섬을 뒤덮은 새가 어우러져 환상적 그림을 그려낸다.이밖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최후 사령부가 있던 ‘라스트 커맨드 포스트’,일본 통치 시대부터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유흥가 가라판도 들러볼 만하다. ●로타섬 로타는 사이판과 괌 사이에 있는 면적 125㎢의 작은 섬이다.사이판에서 경비행기로 35분 거리에 있으며,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외부 차만 보면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할 정도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있다. 로타섬에선 북부해안의 스위밍홀(Swimming Hole)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로타 북부 해안의 산호초 안쪽의 천연 수영장이다.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갯바위와 산호초가 만든 지름 20여m의 공간에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아늑한 천연풀을 만들어준다.물에 뛰어들면 ‘언제 다시 이런 곳에서 헤엄을 쳐보나.’하는 생각이 들어 좀처럼 떠나기가 싫은 곳이다. 해수욕이나 해양레포츠를 즐기기엔 섬 남쪽의 테테토 비치가 좋다.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하다.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가면 손바닥 크기에서 아이만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반긴다. 로타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섬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조류보호구역이다.수백m 높이의 벼랑 아래 펼쳐진 숲에 붉은발가마우지,하얀꼬리열대새 등 수십종의 새들이 군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섬 서쪽엔 유일한 마을인 송송마을이 자리하고 있다.마을뒤 송송전망대에 서면 마을과 함께 두겹의 케이크처럼 생겨 ‘웨딩케이크산’으로 불리는 타이핑고트산,그 뒤로 산호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이판,로타(북마리아나 제도) 글 임창용기자 sdragon@ ●항공편 및 교통 매일 오후 8시20분 아시아나항공(1588-8000)이 인천발 사이판행 비행기를 띄운다.4시간 소요.사이판에서 로타까지는 얼라이언스항공이 운영하는 30인승 세스나기를 이용해야 한다.35분 소요. 사이판에선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싸면서 편리하다.주요 리조트를 연결하는 PDI셔틀버스를 타면 사이판의 중심 도로인 비치로드를 중심으로 주요 호텔과 쇼핑센터 주변에 쉽게 갈 수 있다.번화가인 가라판에 가려면 시내 면세점인 DFS갤러리아가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대부분의 호텔을 경유한다.택시는 호텔 프런트에서 불러 이용할 수 있다.기본요금은 1달러50센트지만,2분마다 32센트가 가산돼 가까운 거리라도 금방 10달러를 넘어가기 쉽다.로타섬엔 택시가 없으므로 개인 여행자의 경우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야 한다. ●렌터카 렌터카는 한국 면허증만으로 이용할 수 있다.임차료는 차종에 따라 보험료 포함 50∼90달러.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지렌트카’(233-2000) 등 10여개의 렌터카 업체가 있다.섬이 크지 않으므로 스쿠터를 빌려서 타도 좋다.16세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이면 면허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배우고 탈 수 있다.가라판 시내에서 한국인이 유일하게 ‘아시아스쿠터’(233-1114)를 운영한다.대여료는 1일 25달러. ●호텔 사이판의 리조트 호텔은 대부분 섬 북부나 가라판 등 해안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PIC사이판,하얏트리젠시사이판 등 특급 리조트 호텔은 숙박비가 170∼200달러,일급 호텔은 100∼180달러로 비싼 편이다.비용을 아끼려면 사이판월드리조트 등 60∼99달러인 중급호텔을 이용하면 된다.규모는 작지만 깔끔하면서 위치가 좋은 호텔도 있다.로타섬엔 ‘로타리조트 & 컨트리클럽’(532-1155)이 유명하다.필리핀 해를 바라보는 곳에 빌라형 객실과 골프장,아로마테라미 마사지 시설 등이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다.골프장이 특히 아름다워 골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기타 -시차: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환전:미국 달러를 사용하므로,공항에서 미리 바꾸는 게 편리하다. -전화:호텔 객실의 전화를 이용할 경우 1분당 2∼3달러.수신자 부담전화를 이용하면 호텔에 별도로 서비스요금을 내야 한다.사이판 월드 리조트의 경우 1회당 50센트.전화카드를 구입해 호텔내 공중전화를 이용해도 된다. 주요 현지 전화번호 아시아나항공(288-2625),북마리아나 제도 관광청(664-3200),경찰(234-0406),사이판국제공항(664-3500),전화번호 안내(411).˝
  • “美, 아이티 쿠데타 배후”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망명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 전 대통령이 미군에 의해 강제 출국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1일 반정부 무장세력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입성하고 미 해병대와 프랑스 군대가 치안활동을 시작한 가운데 나온 이같은 주장으로,미국의 쿠데타 개입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그러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 등은 이를 공식 부인하고 있다.마리에 호이체 유엔 대변인도 2일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사임했다고 밝히면서 피랍설을 일축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한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은 1일 AP통신 및 CNN방송 등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에 의해 거의 납치되다시피 강제 망명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미군 보안)요원들이 만일 떠나지 않으면 총격을 가하고 살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폭력사태를 우려해 권력이양 문서에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운동가 랜들 로빈슨은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미국이 조종한 쿠데타로 인해 미군들에게 총으로 위협당해 납치됐다.”며 이를 세계에 알릴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또 프랑스의 에르텔라디오 방송도 아이티 대통령궁 관리인의 말을 인용 “지난달 29일 오전 2시쯤 중무장한 미군이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을 끌어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측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우리는 그를 강제로 비행기에 태우지 않았고,그가 자발적으로 비행기에 타고 떠났다는 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했다.하지만 이런 공식 반응과는 달리 일부 미 관리들은 미국이 아리스티드에게 ‘망명하지 않을 경우 반군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지 않겠다.’고 통보했었다고 털어놨다고 AP통신이 2일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관리는 1주일전 미국이 포르토프랭스의 미 대사관 보호를 위해 50명의 해병대를 파병했을 때,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반군의 공격이 임박하면 대통령궁으로 병력을 배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미국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와 미 의회 일부 의원 등이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의 망명 과정에 미 행정부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의회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할 것을 요구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1일 기 필립(36) 전 카프아이시앵 경찰서장이 이끄는 70여명의 반군은 수천명의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포르토프랭스 중심가로 진입했다.이에 따라 반군과 미군 등이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도착한 미 해병대 병력은 대부분 포르토프랭스 공항 주위에 배치됐지만,반군이 입성한 대통령궁 근처에서도 목격되고 있다.이날까지 아이티에 도착한 미 해병대는 400여명으로,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000여명까지 파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프랑스는 외교공관 보호를 위해 130명의 인원을 파병했고 앞으로 240여명을 더 보낼 계획이다. 황장석기자 surono@˝
  • 유엔, 아이티에 국제군 파견

    카리브해 연안국 아이티의 내전 사태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망명한 가운데 다국적군이 속속 도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전날 아이티를 탈출한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1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다.그는 이곳에 며칠 머문 뒤 망명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사임한 29일 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이사회를 열고 아이티의 치안유지를 위한 국제군 파견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국제군은 일단 3개월 동안 아이티에 머물고 그후에는 안정화군이 파견될 계획이다. 이와 관련,150여명의 미 해병대가 다국적군 선두부대로 1일 오전 아이티에 도착했다.이들 해병의 임무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치안확보 ▲아이티의 향후 정치 일정 추진 지원 ▲인도주의적 지원협력 ▲아이티내 미국 시민 보호 등이다.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총 1000여명의 병력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병력 200명과 무장경관 100여명 등 총 300여명을 파병할 예정인 프랑스의 선발대 병력도 이날 도착했다.또 캐나다와 브라질도 병력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보니파스 알렉상드르 아이티 대법원장은 29일 자신이 아이티의 새 지도자가 됐다고 밝혔다.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보복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한편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떠난 뒤 포르토프랭스 일대에서 성난 아리스티드 지지자들이 무장한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무정부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일부는 대통령궁 앞 샹 드 마르 광장에서 군중을 향해 난폭한 모습으로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시 외곽에 위치한 경찰서 약국 슈퍼마켓 등에서 약탈행위 발생했으며 몇몇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석방되는 등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1일 반군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수도에 입성했다.이에 따라 수도에 남아있는 아리스티드 지지자들과 유혈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전경하기자 외신 lark3@˝
  • [씨줄날줄]아이티 政變/이기동논설위원

    아프리카 중서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여객선을 타고 30분 나가면 그리 크지 않은 고레섬에 도착한다.좁은 골목길을 따라 10분을 걸어가면 나타나는 ‘노예의 집’.16세기부터 아프리카 전역에서 노예사냥꾼들에게 잡혀온 흑인들이 신대륙으로 실려가기 전 집결지였다.선착장으로 난 장방형의 문은 그들이 자유와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던 ‘돌아오지 않는 문’.300여년에 걸쳐 이렇게 끌려간 흑인이 2000만명.그중 600만명은 도중에 대서양의 상어밥이 됐으니 이보다 더 추악한 인류의 역사가 또 있을까. 아이티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이라며 첫발을 내디딘 곳.이후 ‘노예의 집’을 나서 끌려간 아프리카 노예들이 천신만고 끝에 세운 나라이기도 하다.아이티,브라질,쿠바,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일대의 사탕수수 식민지를 새로 찾은 유럽 정복자들은 수백만명의 노동력이 새로 필요했고 이를 아프리카 노예들로 충당했다.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가 앞장섰다.그러나 독립심 강한 아이티 노예들은 백인지배에 끊임없이 반발,1804년 1월 이곳에 세계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 독립국을 선포했다. 하지만 무자비한 독재,남녀 평균수명 50세 미만,연간 1인당 국민소득 480달러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그동안 이들이 걸어온 독립의 역사는 처절하다.이번에 물러나 망명길에 오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아이티 역사상 최초로 합법적 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된 인물.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는 국민들을 상대로 ‘마음에 평화,배(腹)에도 평화’를 구호로 내걸어 한때는 열광적 지지를 받던 가톨릭 사제였다.‘파파 독’‘베이비 독’으로 불리던 뒤발리에 부자의 수십년 학정에 시달린 시민들은 그가 당선된 날 수도 포르토프랭스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했다. 이미 30번이 넘는 쿠데타 기록을 보유한 아이티는 이번 그의 축출로 안타까운 기록 한번을 더 추가한 셈이 됐다.1994년 쿠데타가 일어나자 해병대를 보내 그를 구했던 미국도 이번에는 그를 구하지 못했다.정치적 무능함에 겹친 독선적인 성격에 등돌린 민심을 이웃 나라가 어떻게 해볼 수는 없는 일.무정부상태로 빠진 치안을 바로잡기 위해 미군과 과거 ‘주인 나라’군대로 구성된 다국적군이 진주하게 됐으니 안타까운 일이다.하루빨리 이 나라가 최초의 노예 독립국 이름에 걸맞은 나라를 갖게 되도록 바랄 뿐이다. 이기동논설위원 yeekd@˝
  • 아이티 대통령 도미니카로 탈출

    내전 중인 카리브해 연안국 아이티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반군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아이티를 떠나 도미니카공화국에 도착했다. 이봉 넵튄 아이티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사임문서에 서명했다고 밝히고 “대통령은 다시 한번 희생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넵튄 총리는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사직서에 “아이티 헌정이 국민들의 피로 물들어서는 안 되며 내가 사임함으로써 유혈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면 대통령직을 떠날 것”이라고 썼다고 전했다. 아리스티드의 사임으로 아이티 헌법상 대통령직 승계권을 가진 보니파스 알렉상드르 대법원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규정에 따라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고 선언했다.그는 “누구도 자신들의 손으로 정의를 구현하려 해서는 안된다.”며 국민들에게 물러난 정권에 대한 보복 자제를 강조했다.알렉상드르 대법원장은 극도로 부패한 아이티 사법부에서 나름대로 양심을 지켜온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알렉상드르의 기자회견에 동석한 제임스 폴리 아이티 주재 미국대사는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이 신속하게 아이티에 배치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의 한 미 국방부 관리는 이날 미해군 선박 3척이 버지니아주 노퍽항에서 해병대원을 태운 채 아이티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리스티드 축출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반군 지도자 윈터 에티엔은 수도 포르토프랭스 북쪽의 요충지인 생트 마크까지 계속 진격할 의사를 밝혀 아이티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에 앞서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의 대변인은 “아리스티드가 탄 비행기 등 모두 3대의 항공기가 수도 산토도밍고 남동쪽 바라호나 공항에 착륙했다.”고 확인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모로코나 타이완 또는 파나마로 망명할 예정이라고 핵심측근인 레슬리 볼테르 보좌관이 말했다.모로코 정부는 아리스티드의 망명추진 사실을 즉각 부인했다.타이완 당국도 “아이티 정부로부터 그같은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으나 아리스티드의 망명 가능성은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날 아침 포르토프랭스 공항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흰색 제트기가 공항을 이륙했으며,이 제트기에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탑승했다고 볼테르는 전했다.그는 또 프란츠 가브리엘 대통령궁 경호실장이 아리스티드 대통령과 동행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빈민가 목사 출신으로 지난 90년 아이티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던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한 권력남용과 부패,실정으로 13년만에 정권의 종말을 맞았다.그는 2000년 정권 연장을 위해 불법선거를 자행한 뒤 국내외로부터 사임압력을 받아왔다. 아리스티드의 출국 소식이 알려지자 북부 캅 아이티엥을 기반으로 한 반군과 주민들은 “아리스티드가 떠났다.”며 환호했다.반면,아리스티드를 옹위했던 군인들은 무장한 채 대통령궁으로 몰려들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포르토프랭스 등 아이티 전국에서는 약탈과 방화 등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 백악관 관계자는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출국을 환영한다.”면서 “이는 아이티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다.미국은 아리스티드가 집권 직후인 지난 91년 쿠데타로 실각하자 2만명의 군을 보내 그가 94년 재집권하도록 지원한 바 있다. 또 아이티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프랑스 외무부도 그의 출국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아이티 출국은 2월5일 내전에 돌입한 반군이 수도 북쪽 40㎞ 지점까지 진격해 오는 가운데 이뤄졌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태운 제트기가 이륙한 직후 차량 행렬이 두번째 제트기가 있던 공항 활주로에 멈춰선 것이 취재진에 목격됐다.두번째 제트기에 누가 탑승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아리스티드 부인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지난주 두 딸을 뉴욕에 있는 장모에게 보냈다. 이도운기자 외신 dawn@˝
  • 美해병, 내전격화 아이티 파견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아이티 반군들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면서 내전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 해병 50명이 아이티 주재 미국대사관의 요청에 따라 아이티에 파견됐다고 CNN 방송이 23일 보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국방부 소식통들은 이번에 파견된 해병대 병력이 엘리트 요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병력 파견이 아이티에 대한 대규모 군사개입의 전조는 아니라고 말했다.이 병력은 대사관 직원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임무만 수행한다고 소식통들은 덧붙였다.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공격을 계속중인 아이티 반군은 22일 아이티 제2도시인 카프아이시앵을 점령하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대한 공격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카프아이시앵이 반군에 점령된 것은 아이티 전체의 절반 이상이 반군에 장악됐음을 의미한다. mip@
  • '사마리아’ 김기덕씨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김기덕 감독이 제5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회는 14일 영화 ‘사마리아’로 원조교제를 하는 두 소녀와 형사인 한 소녀의 아버지의 복수 과정을 통해 용서와 화해,원죄와 구원 의식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린 김 감독에게 감독상(은곰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한국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관련기사 18면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곰상은 터키계 2세 독일 감독 아티 아킴스의 ‘벽을 향해’가 차지했다. 황수정기자 sjh@ ■김기덕 감독은 누구 김기덕(43)은 논란을 몰고다니는 감독이다.‘아웃사이더의 수호자’로 떠받들어지는가 하면,‘여성비하와 폭력을 수단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며 곱지않은 눈길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1996년 주류 질서의 바깥으로 밀려난 밑바닥 인생을 다룬 데뷔작 ‘악어’ 이후 ‘섬’ ‘나쁜 남자’ ‘수취인불명’과 ‘사마리아’에 이르는 10편이 대부분 찬사와 함께 비난을 받았다. 이런 그이기에 지난해 구도(求道)를 다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발표되자,“예전 작품과 다르다.”면서 `김 감독의 작품에 쟁점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냐,단점이냐.’ 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무엇이 불편한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김 감독은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표준적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지 않고 고유한 시각과 정체성,스타일을 드러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독자적인 철학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자,앞으로 관객의 불편함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암시가 아닐 수 없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한번도 정식 영화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최종 학력이 중학교 졸업인 그는 해병대에 복무하고는 서양화 공부를 하기 위하여 1990년부터 3년 동안 파리에 머무르기도 했다. 1994년 ‘화가와 사형수’가 영화진흥공사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영화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내 머릿속의 감독이란 시나리오도 직접쓰는 사람”이라면서 “무협지와 멜로물을 가지고 와서는 영화를 만들자는 사람도 있는데,남이 쓴 것은 소화할 능력도 없고 칼싸움 같은 데는 관심도 없다.”고 밝혔다.앞으로도 ‘사마리아’같은 저(低) 예산 영화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음 영화는 유럽에 입양된 한국인들을 다룰 계획이다.독일과 프랑스에서 제작비를 모두 대겠다는 조건을 내놓아 최종 결심만 남아있다고 한다. 박상숙기자 alex@˝
  • 김기덕 감독은 누구

    김기덕(43)은 논란을 몰고다니는 감독이다.‘아웃사이더의 수호자’로 떠받들어지는가 하면,‘여성비하와 폭력을 수단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며 곱지않은 눈길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1996년 주류 질서의 바깥으로 밀려난 밑바닥 인생을 다룬 데뷔작 ‘악어’ 이후 ‘섬’ ‘나쁜 남자’ ‘수취인불명’과 ‘사마리아’에 이르는 10편이 대부분 찬사와 함께 비난을 받았다. 이런 그이기에 지난해 구도(求道)를 다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발표되자,“예전 작품과 다르다.”면서 `김 감독의 작품에 쟁점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냐,단점이냐.’ 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무엇이 불편한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김 감독은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표준적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지 않고 고유한 시각과 정체성,스타일을 드러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독자적인 철학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자,앞으로 관객의 불편함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암시가 아닐 수 없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한번도 정식 영화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최종 학력이 중학교 졸업인 그는 해병대에 복무하고는 서양화 공부를 하기 위하여 1990년부터 3년 동안 파리에 머무르기도 했다. 1994년 ‘화가와 사형수’가 영화진흥공사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영화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내 머릿속의 감독이란 시나리오도 직접쓰는 사람”이라면서 “무협지와 멜로물을 가지고 와서는 영화를 만들자는 사람도 있는데,남이 쓴 것은 소화할 능력도 없고 칼싸움 같은 데는 관심도 없다.”고 밝혔다.앞으로도 ‘사마리아’같은 저(低) 예산 영화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음 영화는 유럽에 입양된 한국인들을 다룰 계획이다.독일과 프랑스에서 제작비를 모두 대겠다는 조건을 내놓아 최종 결심만 남아있다고 한다. 박상숙기자 alex@˝
  • [이라크 파병안 통과] 파병 일정·투입 장비

    이라크 추가 파병동의안이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군 당국의 향후 파병 준비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됐다. ●향후 일정 국방부는 파병동의안 처리가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일단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미국측과 약속한 4월 말 파병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다만 동의안 처리 지연으로 세부적인 파병 일정은 약간씩 순연됐다. 우선 이달 중순까지 인원 선발과 부대 편성을 마치고 23일 파병부대 창설식을 갖는다.파병부대 지원율은 이미 15대1에 육박하고 있다.이라크 평화·재건사단(일명 자이툰부대)으로 명명된 파병부대장에는 황의돈(육사 31기) 소장이 내정된 상태다. 24일엔 이라크 현지에 협조단을 보내 부대 지휘관계와 한국군 배치지역,한·미간 업무협조 문제 등에 대해 미측과 협의하게 된다. 이어 3월 초부터 7∼8주가량 소요될 교육훈련에 착수하고,3월 말∼4월 초엔 장비 및 물자의 해상수송에 들어간다.당초 3월 말 보내기로 했던 선발대는 4월 초부터 2차례에 걸쳐 나눠보내고,본대는 4월 말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 도착해 현지 활동중인 미 173공정여단과 임무를 교대하게 된다. ●파병 부대 구성과 투입 장비 한때 특전사와 특공대 등 이른바 ‘전투부대원’ 비율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부대원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부대 편제는 바꿀 수 없다는 게 국방부측 판단이다. 파병부대는 사단사령부 예하에 민사여단 2개를 두고,민사여단은 민사담당 대대(특전사)와 1개 경비대대(특공부대),장갑차중대 등으로 구성된다. 재건지원임무는 민사작전의 요체인 ‘친한(親韓)화’를 전담할 민사여단 예하의 특전사 요원 1000명과 서희·제마부대원 600명 등 1600명이 맡는다.또 경계근무에는 육군 특공부대원과 장갑중대,해병대 등 800명이 투입된다.이밖에 사단사령부와 직할대에 1200명이 편성돼 전체 파병인원은 3600여명에 이른다.이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3번째 규모다. 파병부대는 한국군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으며,키르쿠크 지역의 치안을 전담하는 만큼 한국군 부대장(사단장)이 모든 작전을 운용한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이라크 파병안 통과] 파병안 처리 안팎

    국군부대 이라크 추가파견 동의안은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찬성 속에 순조롭게 통과됐다.‘반대 당론’을 택한 민주당 소속 의원 4명이 열띤 반대 토론을 펴고 찬성 토론은 1명도 없었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의원 12명은 극심한 내부 논란 끝에 무더기로 ‘당론’을 따르지 않았고 국가적 현안임에도 불구,표결에 불참한 의원도 59명에 이르러 16대 말기 의회의 ‘아노미’를 보여줬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정한 당론대로 임해 반대 의원이 4명으로 가장 적었다.전재희 의원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반대했다.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다 지도부와 틀어진 이규택·박희태 의원 등은 불참했다. 열린우리당은 본회의에 앞서 가진 의원총회에서 찬성 당론을 재확인했다.당초 반대했던 김근태 원내대표와 장영달 국방위원장도 더이상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 찬성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여전해 열린우리당은 ‘권고적’이란 수식어를 붙여 파병반대 단식을 한 임종석 의원 등의 소신을 허용했다.이라크에 다녀온 뒤 한때 추가파병에 찬성했던 송영길 의원은 결국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본회의장에서도 열린우리당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젊은 층과 진보 진영 등에 어필하려 애썼다.‘한·민공조’를 깨면서 당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김영환 의원은 “추가파병안은 특전사·해병대 등 최정예 전투부대”라며 “정부가 ‘혼성부대’라고 말하는 것은 속임수”라고 주장했다.김경재 의원은 “노무현·부시 대통령의 ‘노·부동맹’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세계 車업계 “Y세대 잡아라”

    “Y세대를 잡아라.” 최근 자동차 회사들이 당면한 과제다.2차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층을 뜻하는 Y세대가 세계 자동차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Y세대는 2010년에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25%,2020년에는 40%까지를 각각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10일 보도했다. 특히 현재 18∼22세에 해당하는 연령층을 지금 공략하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소형차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차량 구매자 2명 중 1명은 이전에 자신이 택했던 브랜드의 차를 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엔트리 시장(생애 첫 구매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도요타는 이미 Y세대를 겨냥,지난해 ‘사이언’ 브랜드를 내놨다.상자 형태의 모델 xB,곡선을 좀 더 강조한 모델 xA가 지난해 6월부터 미국 시장에서 판매에 들어갔다.혼다 역시 지난해 엘리먼트를 출시했다. 현대자동차도 8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현대조사팀’을 구성,이들에게 매년 모터쇼를 관람시킨 뒤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자사의 미국 내 고객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만으로 팀을 구성했다. Y세대는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것이 큰 특징이다.이 때문에 GM,포드,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미국계 자동차 회사들은 자사의 차종 구성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례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들은 자국 내 자동차 판매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나 Y세대의 부상으로 시장을 위협받고 있다. 또 Y세대는 차의 성능보다는 낮은 가격에 스포티한 외관을 좋아한다.색상·액세서리 등 부수적인 기능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하고 이를 이메일을 통해서 또래집단과 공유,파급효과가 크다.자동차 광고가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가도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컵홀더 등 작은 부품도 자신의 선호에 맞춰 디자인하기를 원한다.이를 간파한 도요타가 지난주부터 변속기·색상·액세서리 등 많은 부분을 주문자 취향에 맞춰주는 마케팅을 시작,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Y세대의 선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아직은 어려운 상태다.현대차의 여성 조사팀원들 간에도 폴크스바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투아렉,폴크스바겐의 뉴 비틀 중 무개차,해병대 전투차량 험비를 개조한 GM의 허머H2 등 개개인에 따라 선택한 차량이 달랐다.도요타의 사이언도 아직까지는 목표 연령층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은 35세가 주요 구매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하기자 lark3@˝
  • FTA·파병안 9일 처리 불투명

    국회는 9일 본회의를 열어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처리할 계획이지만 각 당의 모호한 태도로 통과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라크 추가파병안은 3당 지도부가 대체로 정부의 혼성부대 안에 동의하는 듯했으나 최근 들어 열린우리당 장영달·김근태 의원 등이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급속도로 냉각되는 분위기다.9일 본회의에 앞서 열리는 국회 국방위에서 통과될지도 관심사다. 한나라당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책임있게 찬성 당론을 먼저 모으라.”고 촉구하고 있다.민주당은 ‘권고적 반대 당론’을 채택할 것으로 점쳐진다.정범구 의원 등 31명은 8일 “정부안이 특전사와 해병대 위주로 짜여져 추가파병 인력 3100명이 사실상 전투병”이라며 반대 서명을 했다. ▶관련기사 4면 한·칠레 FTA는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가운데 한나라당·민주당이 자유투표에 임하면 처리될 가능성이 있으나 농촌 출신 의원들의 실력 저지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박관용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해 농촌 의원들의 단상 점거를 막을지도 주목된다. 또한 농촌 의원의 소신투표를 끌어내기 위해 재적의원 5분의1 이상 동의로 이뤄지는 ‘무기명 비밀투표’를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으나 민주당 추미애 의원 등은 “무기명 투표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농민단체 회원 2만여명이 상경할 것에 대비,경찰 버스 수십대를 동원해 이날부터 국회와 각 당사 주변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박정경기자 olive@˝
  • [러일전쟁 100주년]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본지 기고 (상)

    8일은 러일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일본은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이겨 사실상 대한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최근 일제 식민시대의 서막을 연 러일전쟁의 발발지가 중국 뤼순(旅順)항이 아니라 제물포 팔미도(八尾島)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박종효 전 국립모스크바대 교수가 러시아국립 해군함대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다.박 전 교수가 서울신문에 보내온 ‘러일전쟁의 서막,러시아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의 제물포해전’이라는 글을 2회에 걸쳐 요약한다. 러일전쟁으로 대한제국은 위태롭게 유지하던 독립을 일본에 약탈당하게 되었다.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남한은 패전국 일본 대신 전승국 미국이,북한은 공교롭게도 제정 러시아의 후신인 구 소련이 점령하여 각각 자기 세력권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은 1896년 야마기다 원수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사절로 보냈다.야마기다는 러시아 외무장관 로바노프 로스토프스키에게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여 각각 러·일의 영향권으로 설정하자는 제안을 했다.러시아는 이 제안을 거부했으나,한반도 분할문제는 이때부터 러·일 사이에 잠정적인 논의 대상이 됐다.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소련에 제의한 38선 분할안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1945년 8월13일부터 청진과 원산 등으로 상륙한 소련군의 남하를 시급히 차단해야 했다.이에 제정 러시아 시대에 이미 일본이 제안한 38선을 상기했다.우리의 비극적 근·현대사의 기원과 원인 제공은 열강의 침투와 러일전쟁에서 비롯되었다. ●러 국립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에 따르면 러일전쟁의 첫 포성은 중국 뤼순항이라고 한국학계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제물포 팔미도 앞바다에서 울렸다.일본 함대는 1904년 2월9일 새벽 뤼순항에 앞서 2월8일 우리 영해에서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함과 처음 교전했다.고려인이라는 뜻의 ‘카레예츠’는 마산포 개항을 기념하여 러시아 해군이 붙인 이름이다.이날 밤 제물포에 상륙한 3000여명의 일본군은 대한제국군 2만여명과 청룡1호 해군훈련함이 있었지만,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서울을 점령했다. 앞서 1903년 말 한반도에는 동학교도가 일본인을 내쫓기 위해 다시 봉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일본군이 이를 진압하려 상륙하면 대한제국군은 동학교도들에 가담하여 폭동을 일으키고,독립을 위협하는 영일조약 당사자인 일본공사관과 영국공사관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놀란 영국은 12월 말 공사관 보호를 위해 순양함 시리어스함에 28명의 해병대원을 승선시켜 제물포로 파견하고,곧 이어 탈보트함에 도착했다.다른 열강도 제각기 함대를 급파했다.미국을 빅스버그,프랑스는 파스칼,이탈리아는 엘바,독일은 한사,일본은 지오다,러시아는 바략함을 보내 제물포는 마치 열강 해군의 집합소처럼 변모했다. 일본군은 전신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800명,원산에 400명,부산에 400명을 주둔시키고 있었다.그런데 1904년 2월 초부터는 마산포에 1만 2000명을 상륙시키고,군수품과 식량을 수송해 왔다.원산에도 민간인 복장을 한 예비군과 군인 및 군마를 비롯한 군수품과 탄약 등을 수송했다.일본은 이처럼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하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일협상은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이 무렵 러시아 극동총본부는 1904년 2월2일부터 4일까지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아무르 군관구 사령부로부터 극동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귀국하고 있다는 긴급보고를 받았다.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일본인 귀국여객선이 대기하고 있었다.긴박감을 느낀 극동총독은 니콜라이 2세에게 총동원령과 함대 배치 칙령을 요청했으나,황제는 일본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한반도 남쪽이나 동해안 원산 이남에 상륙할 경우 러시아가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그러나 서해안에 일본의 상륙군을 수송하는 군함이 나타나거나,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군함이 있으면 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선제 공격하라고 덧붙였다.이처럼 러·일 양국은 이미 묵시적으로 각각 한반도 남북의 영향권을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러시아는 제물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뤼순항의 배후 항으로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과 멀지 않은 제물포에 1903년 3척의 순양함을 파견했다.1904년 1월18일 두 척의 순양함이 뤼순으로 귀항하자,제물포에는 바략함과 소형 포함 카레예츠함,여객선 순가리(송화강)호만 남았다.일본은 1903년 말에 러시아가 아직 미완성이었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하여 유럽지역으로부터 일부 군대를 연해주 군관구로 이동시켰다는 첩보를 받고 크게 놀랐다.대한제국 협상에서 러시아가 시간을 끄는 것도 일본에 불안감을 가중시켰다.일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러시아에 유리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반대로 러시아는 태평양함대와 극동 주둔 육군이 일본에 열세였으므로 협상을 통하여 철도를 완성시킬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어떻게든 대한제국 문제를 카드로 만주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악화를 원하지 않았다.대한제국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면서 직접적으로 국경선을 접한 만주의 이권을 보호하고 만주개방을 요구하는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고려하고 있었다.극동 현상유지 정책으로 대한제국이 독립국가로 있는 것이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특히 고종에게 정치적의 호의를 보이면서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1904년 2월4일 청나라 주재 일본영사가 뤼순항의 러시아군함이 모종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출항했다는 급보를 도쿄에 보냈다.그러나 28척의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해상훈련을 나간 것이었다. ●日, 러 공사관·군함 통신망 봉쇄 일본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4일 밤 일왕 특별 어전회의를 열어 대 러시아전쟁을 결의했다.일본이 외교단절을 선언했지만 제물포의 러시아 함대와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일본은 한반도의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으면서,전략적으로 서울 러시아 공사관이 외부와 통신연락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봉쇄했다. 5일 한 미국인이 중국의 상하이에서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러·일 사이에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6일 아침 일본 해군중장 도고는 사세보(佐世保)로 함장들을 소집했다.전 함대는 황해로 발진하여 제물포와 뤼순항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함대를 습격하라고 명령했다.일본 연합함대는 6척의 전함,14척의 순양함,35척 이상의 어뢰정으로 구성됐다. 7일 제4전투함대사령관 우리우 소장은 5척의 순양함과 8척의 어뢰정,3척의 대형 상륙군 수송선으로 제물포로 향했다.제물포에 정박중이던 순양함 지오다함은 8일 새벽 출항하여 러시아 함대 동향을 보고한 뒤 일본함대에 합세했다.우리우는 러시아의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은 제물포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방해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는 바략함장 루든예프에게 공사관의 비밀 보고문서를 카레예프함으로 직접 뤼순항으로 전달하라고 지시했다.이 긴급문서 가운데는 고종 황제가 은밀히 전한 문서도 있었다.일본 함대가 압록강 하구로 항해하고 있으며,제물포에 일본군이 상륙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카레예츠함은 8일 오후 3시40분 제물포를 출항하여 15분 만에 멀리서 2열종대로 다가오는 일본 순양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마침내 제물포 남방 13.5㎞ 지점에 있는 작은 섬 팔미도 근해에서 일본함대와 조우했다.카레예츠함장 벨야예프 해군중령은 러시아와 일본의 외교단절을 모르는 상태였다.일본함대가 진로를 가로막고 공격태세를 취하자 카레예츠함은 제물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4척의 일본 어뢰정 가운데 한 척이 어뢰로 첫 공격을 했을 때 벨야예프도 전투경보를 내렸다.오후 4시35분이었다.제2,제3의 어뢰정이 잇따라 어뢰를 발사했다.벨야예프도 두 번째 어뢰공격을 받자 발포명령을 내렸다. 일본측의 ‘해전기록(海戰記錄)’은 카레예츠함이 일본의 어뢰정을 보자 갑자기 오른쪽으로 피하면서 어뢰정에 포를 발사했고,수송선에 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만 되어 있다.일본함대가 응사하여 교전이 이루어졌다는 대목은 없다.그러나 대형 함대에 소형 포함 한 척이 먼저 포를 발사했다는 일본측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 ●러 바략함 수장, 카레예츠함 폭파 이렇게 러일전쟁은 뤼순항이 아니라 2월8일 오후 4시40분쯤 제물포 팔미도에서 일본측이 먼저 발포하여 시작됐다.그러나 통신이 두절된 제물포의 러시아군은 본국에 보고할 수 없었고,다음날 새벽 뤼순의 태평양함대가 기습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페테르부르크에 먼저 전달되면서 전쟁 발발 날짜가 2월9일로 기정사실화된 것이다.한편 제물포의 일본함대는 9일 낮 바략함 및 카레예츠함과 다시 본격적인 교전을 벌였고,전함수 14대2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러시아군은 결국 바략함을 수장시키고,카레예츠함은 폭파시켰다.러시아는 제물포해전을 패전이 아닌 러시아 해군 사상 가장 영웅적인 전투로 평가하면서,전설적인 신화처럼 한 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있다.˝
  • 해병대전략연구소 창립총회

    해병대 예비역들이 주축이 돼 미래 안보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해병대 전략연구소(RIMS·초대 이사장 김성은 전 국방장관)가 5일 서울 대방동 해군호텔 영빈관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발족한다.연구소장과 부소장에 이정윤(해사 18기) 예비역 준장과 정국본(해사 20기) 예비역 소장이 각각 선출됐고 상임위원에는 이갑진(해사 21기) 전 해병대 사령관,김길도(해사 22기) 박사,김현기(해사 23기) 박사가 뽑혔다.˝
  • [국제플러스]“오키나와美軍 현행수준 유지”

    |도쿄 연합|가와구치 요리코 일본 외상은 4일 오키나와 주둔 미국 해병대 약 3000명이 이라크 임무를 위해 빠져 나가더라도 미국은 궁극적으로 이와 맞먹는 교체병력을 오키나와에 보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가와구치 외상은 이날 참의원(상·하원의 상원에 해당)예산위원회에서 “미군 이라크 파병 이후에도 오키나와에 주둔키로 돼 있는 미군 병력이 배치될 것으로 들었다.”고 밝혔다.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는 현재 약 1만7000명으로 앞서 미 국방부는 해병대의 이라크 파병후 교체병력을 투입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 문화일보 정치부장 우리당 입당

    민병두 전 문화일보 정치부장과 이철우 전 해병대 사령관이 3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두 사람은 4월 총선에서 전국구 중·상위 순번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 4월 이라크 파병부대 절반이상 특전사·해병

    오는 4월 파병 예정인 이라크 평화재건부대(자이툰 부대)는 총 3600명 규모로 이중 2000명가량은 특전사와 특공부대원,해병대원 등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29일 국방부에 따르면 자이툰 부대는 사단사령부 예하에 직할대와 서희(공병)·제마(의무)부대 이외에 2개의 민사여단으로 구성된다. 민사여단은 2개 민사담당 대대(특전사)와 1개 경비대대(특공부대),장갑차중대 등으로 구성된다.사령부의 경비는 해병대 1개 중대가 맡는다. 이에 따라 재건지원에는 민사작전을 담당하게 될 민사여단 예하의 특전사 요원 1000여명과 서희·제마부대 600명 등 1600명이 동원된다.또 경계근무에는 육군 특공부대원 500명,장갑중대 200명,해병대 100명 등 총 800명이 투입되고,사단사령부와 직할대에 1200명이 편성돼 전체 파병인원은 3600명선에 이를 전망이다. 한편 육군은 자이툰 부대에 배속될 장병 선발을 위해 다음달 10일까지 군내 전산망을 통해 개별적으로 지원서를 접수하거나 지휘 계통을 밟아 소속부대를 거쳐 지원도록 하는 등 본격적인 병력모집에 나섰다. 육군은다음달 중 정부의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곧바로 파병부대를 편성,5∼7주간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3월 말 선발대 파병에 이어 4월 말 본대를 보낼 계획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해병대도 이라크 파병

    ‘귀신 잡는 해병’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해병대와 육군의 정예 특공부대도 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함께 이라크에 파병돼 자체 경계 및 치안유지 활동을 맡을 전망이다.국방부 관계자는 4일 “이라크 현지에서의 원활한 경계 및 치안유지 업무를 위해 해병대와 특공부대 병력의 파견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우선 해병대는 한국군 사단사령부의 직할부대로 편성돼 사령부 경비를 맡는 한편 관할지역에서 테러공격과 같은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기동타격대로 투입돼 초동 진압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규모는 1개 중대(100명∼130명) 정도가 될 전망이다. 해병대(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전투부대로는 최초로 베트남에 파병돼 6년 5개월간 168회 작전에 참가,대대급 소규모 전투만 15만번을 치르면서 적군 9619명을 사살했고,687명을 포로로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특히 6·25 당시 경남 통영상륙작전을 통해 인민군 600여명을 사살한 것을 두고 미 뉴욕타임스 기자가 ‘귀신 잡는 해병’이란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 더 유명해졌다. 이후 2002년2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한국군 다산·동의부대에 장병 26명을 배속시켜 경계임무를 맡도록 했는데,이번 파병이 이뤄지면 베트남전 참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병대 파병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육군 특공부대의 경우 군 사령부나 군단 특공연대 가운데 1개 대대급 규모(500여명)를 파병부대로 편성해 특전사와 함께 지역안전 확보와 자체경계 지원부대로 운용할 계획이다.1983년 북한군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에 대비하기 위해 창설된 이 부대는 평소 소요진압 및 공수훈련,헬기 레펠,유격훈련 등을 통해 고도로 단련돼 지형과 기후에 관계없이 뛰어난 기동력을 갖고 전천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예부대다.창설 후 21년간 해외파병 경험은 없다. 육군 관계자는 “파병부대 구성에는 부대원의 동질성과 유사성이 중요한 만큼 특전사와 특공부대는 여단급의 경계지원부대에 함께 편성되고,해병대는 사령부 직할대에 배속돼 자체경계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전사는 당초보다 줄어든 1000여명으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가 2월 임시국회에서 국군부대의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파병 일정이 자칫 4월 말을 넘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동의안이 통과돼도 병력선발과 부대편성 7주,교육훈련 5주,현지이동 4주 등 파병까지 4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총선뒤 3000명규모 키르쿠크 파병 유력/정부 확정… 선발대 3월 파견

    정부는 17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통일외교안보 관련 장관회의를 열고 이라크 파병부대는 독자적으로 특정지역을 맡고,추가파병 규모는 3000명 이내로 하기로 확정했다.이같은 해외파병 규모는 월남전 이후 최대다. ▶관련기사 4면 정부는 이르면 내년 3월 선발대를 파견하기로 했으며 본대는 4월 총선 이후 파견할 가능성이 높다. 나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추가파병 규모는 3000명 이내로 하되 기존의 서희·제마부대 파병규모를 포함할 경우 3700명 이내로 편성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이어 “파병부대는 효율적 임무수행과 부대안전을 위해 독자적으로 일정지역을 담당하고,치안유지는 원칙적으로 이라크군과 경찰이 맡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이르면 선발대가 내년 3월 파병될 수 있을 것”이라며 “육군 소장을 사단장으로 하는 사단사령부 밑에 재건지원 및 민사작전 부대,자체 경계부대,사단 직할대 등이 편입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경계부대에는 특전사 외에 해병대,특공대,일반 보병부대 요원들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조 장관은 파병지역과 관련,“키르쿠크와 탈아파르·카야라 등 북부 3곳과 서희·제마부대가 파견된 남부의 나시리야 중 한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키르쿠크에 파병하는 게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한국군이 특정지역을 독자적으로 맡아 재건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본대 주둔 이후 민간전문가들을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에 합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한국군 주둔지역이 결정되면 선발대 파견에 앞서 현지 협조단을 보내 주둔지 행정기관 및 미군과 협력방안을 논의토록 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김장수 합참 작전본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의 대미 협의단은 이라크 추가파병 지역과 시기 등을 협의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정부는 오는 23일 국무회의를 열고 파병안을 의결한 뒤 국회에 파병동의안을 낼 예정이다. 곽태헌 조승진기자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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