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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이야기]박성원(28·제일화재)· 최세린(24·대학생)

    [결혼이야기]박성원(28·제일화재)· 최세린(24·대학생)

    저희는 12월25일 성탄절에 결혼합니다. 신부는 저보다 4살 연하입니다. 신부가 현재 대학교 졸업반이어서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맘도 그렇고, 신부를 보내는 장모님의 마음도 많이 아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잘해서 장모님한테도 사랑을 받고, 사랑스러운 우리 신부에게도 사랑을 듬뿍 받을 겁니다. 저희가 만난건 이렇습니다.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 우리 커플은 연합동아리 선후배로 만나 5년 동안 연애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가 대학 신입생이 되자 저는 나라에 충성하고자 해병대 장교로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대학 1학년이던 그녀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휴가 나와서 울고 있는 그녀를 두고 부대로 복귀하는 게 그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3년이 넘는 힘든 군생활 동안 제 옆에 있어준 그녀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평생 그녀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을 조용히 약속합니다. 저희가 크리스마스날을 결혼일로 정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의 결혼식날이 단순히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거운 크리스마스날에 결혼을 하면 그날에 오시는 하객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기분좋게 더 축복을 해주시고 오랫동안 기억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졸업반인 그녀를 신부로 맞이한다는 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하고, 그래서 그런 아쉬움과 그런 미안한 마음 때문에 크리스마스라는 좋은 날을 결혼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구요. 올해 개봉한 ‘어린 신부’라는 영화스토리도 있지만, 현대판 어린 신부와 , 장인, 장모님께 잘해서 더 큰행복을 안겨드리겠습니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매일 미안한 감정이 앞섰는데, 앞으로 서로가 아껴주겠지만 제가 먼저 앞장서서 어루만져주며, 행복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녀에게 그렇다할 프로포즈를 하지 못했는데 이글을 보고 그녀에게 제 마음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만남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행복한 요즘,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그녀에게 사랑한단 말을 다시 한번 전합니다. 저희를 응원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도 언제나 항상 행복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英 침략행각 고스란히… ‘포트 해밀턴’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해군 함정과 상선이 거문도에 드나들었고,1885년부터 1887년까지는 해군이 기지를 두었다. 그 동안과 그 후 몇 해 동안 해군 사병과 해병대원 10명이 이 섬과 근처 해역에서 사망하여 섬에 묻혔다.1886년에 사망한 2명과 1903년에 사망한 1명의 해군 병사의 기록은 비문에 새겨져 있으나 나머지의 묘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으로 병기한 거문도 영국군 묘지에 가면 ‘주한 영국대사관, 한·영협회, 영국부인회는 한·영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이 패를 세웠다.’는 동판이 세워져 있다. 묘지의 주인공에만 관심을 갖는 위 기록으로 보면 워낙 표현이 온건하여 영국군이 잠시 나들이라도 나왔다 간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거문도 무단점령은 두 말할 것 없이 제국주의적 침략 행각이었다. 거문도는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대한해협과 대마해협의 문호에 해당한다. 영국은 일찍이 거문도를 주목,1845년에 사마랑을 보내 탐사를 한 뒤 해밀턴항으로 명명했다. 서구열강은 이곳이 동북아의 군함과 무역선 중간기착지로 적당하다고 판단했다.1866년 미국의 아시아함대 슈펠트 제독도 5일간의 정밀탐사 끝에 ‘해군기지로 손색이 없다.’고 결론내렸다.1878년에 이곳을 다시 찾은 영국 실비아호 선장 존은 아예 ‘영국이 이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응이란 관점에서 무단점령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해석상의 명분일 뿐이다.35세에 외무차관,39세에 인도 총독, 후일 옥스퍼드대학 총장이 된 커즌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에 관해,“블라디보스토크나 나가사키 사이에서 함부로 차는 축구공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거문도 점령은 동아시아에서의 거점확보가 핵심 의도였다.1885년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군기지화하면서 22개월간 장기 점령한다. 김윤식 등 조선정부의 요인들은 보고를 받고도 섬의 위치조차 몰라 강화도 앞의 주문도와 착각하기도 했다. 조선정부의 무능이 이 정도였다. ●섬 3개 사이 만 숨어있어 군항에 딱 이 엄청난 국제적 사건을 이해하려면 한번쯤은 이곳에 들러봐야 한다. 거문도엘 가다 보면 뱃길을 따라 초도, 손죽도 등이 펼쳐져 이곳이 다도해임을 누구나 알게 된다. 동·서도가 삼산교라는 교각으로 연결되며, 그 가운데에 고도(현재의 거문리)가 자리해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등대로 가다 보면 3개의 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만이 요새처럼 숨어 있어 군항으로는 그만인 곳이다. 초대형 선박의 입·출항은 어렵지만 중간 연락항으로는 그만이다. 영국이 욕심 낸 이유를 알 만하다. 제국주의의 살아 있는 전시장과도 같은 섬 거문도. 영국군 묘역 바로 아래 바닷가에는 중국과 통신하던 해저 케이블이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전선(電線)은 ‘제국주의 침탈의 동맥’이었으니, 이는 본국과 교통하며 우리나라를 삼키려 한 야욕의 증거이기도 하다. 집단취락의 흔적인 일본식 여관, 소화13년(1938)에 건립한 거문항 확충비, 삼도(三島)신사터 등 식민의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야마구치(山口縣)현의 기무라 추다로(木村忠太郞)가 무인도를 개척하여 거문리를 조성한 까닭에 왜인들 사이에서는 더러 ‘목촌(木村)의 거문도’라거나 ‘왜도(倭島)’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왜인 후손들이 일본에서 ‘거문도회’를 조직, 이따금 이곳을 찾아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한다니 그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삼치와 고등어, 갈치잡이가 주업이다. 일본인도 예전에 이곳에서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그 고등어가 이곳에 ‘거문도 파시’를 열었다.5월말에 시작,10월까지 파시가 이어졌는데, 이 전통은 일제시대부터 76년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60∼70년대에는 겨울 동안에 삼치파시도 이어 열렸다. 고등어와 삼치가 한창 들던 60∼70년대는 거문도의 전성시대였다. ●60~70년대엔 고등어·삼치 많이 잡혀 이곳에서 어획된 삼치는 모두 일본으로 수출됐다. 한창 삼치가 들 때는 배 한 척이 출어해 보통 2∼3t, 많게는 6t까지 잡아 올리기도 했다. 경남 통영이나 삼천포 등지에서 200여척의 배들이 몰려 장관을 이뤘다.17세부터 어업에 종사해온 정복래(81)씨는 ‘파시평(波市坪)’이란 역사적 용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 말뜻을 ‘온갖 장사치들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곳에서 동·서도를 잇는 삼선교까지 이런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술집은 말할 것도 없고 옷과 비단, 신발가게에 강진 칠량에서는 옹기배까지 찾아들어 고기와 물물교환을 했다. 거나한 술판에 싸움 잘 날이 없었던 때도 이 무렵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유곽이 들어차 포구에 창녀들이 진을 쳤다. 당시 거문리에는 우물이 12곳이나 있어 수백 척의 배들이 몰려들어도 식수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 영국군이나 일본인이 동·서도를 마다하고 굳이 거문리로 몰려든 것도 풍부한 식수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거문도 사람들은 고등어보다 삼치를 더 가깝게 기억한다. 고등어 잡이가 경상도 선망배에 의해 독점되었고, 그 선망배들은 밤에 작업한 뒤 낮에 잠깐 항구에 들러 물만 얻어 싣고 떠나 주민생활과 깊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고등어는 모두 부산에 모였다. 그렇지만 폭풍이라도 불라치면 이곳에는 인근의 고깃배들이 몰려들어 며칠씩 묵어가는 바람에 골목길이 흡사 장터 같았다. 한 척에 수십명이 타던 시절, 어선 수십 척만 들이밀어도 그들이 푸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며 거문도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더 이상 어로선단이 몰려들지도 않았고, 많은 거문도 사람들이 원해나 원양어선을 타고 외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로지 갈치잡이만 성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말린 갈치나 생갈치 위판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여기서 솟구친 의문 하나. 왜 60∼7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어획고를 올리던 거문도가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었을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되면서 대일 청구권자금에 의한 노후 선박과 그물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다리며 잡던 어업’에서 ‘쫓아가 잡는 어업’으로 변신, 단기간에 엄청난 어획량을 올렸으나 그만큼 어자원은 급감했다. 여수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김진영 박사의 말을 듣자.“삼치나 고등어는 떼를 지어 움직이는 외해종(外海種)이다. 서식 공간은 정해져 있고 먹이도 제한돼 있어 이들 어류는 자기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고등어를 우리는 연간 20만∼40만t씩 잡아 올린다. 엄청난 양이다. 치어기의 생존 조건이 좋으면 일시적으로 급증하기도 하지만 어류 번성의 주기는 2∼3년이다. 확실히 우리의 ‘어획 강도’가 너무 높다. 샅샅이 뒤져 씨를 말리는 ‘완전어획’으로 연안을 찾아든 외해종 치어까지 모조리 잡아버려 결국 어자원 고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은 ‘느림의 철학’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한 마리라도 더 잡아들이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을 터이니 작은 놈들까지 싹쓸이할 것이 뻔한 이치 아닌가. 자원이 고갈되면서 우리는 고작해야 1년생 고등어를 사먹고 있으니, 이덕무가 ‘청장관전서’에서 말한 바 ‘소년어’를 잡아먹고 사는 격이다. ●또 하나의 명물, 100년된 등대 거문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거문도 등대이다. 백도의 아름다운 절경도 소중하지만 이 섬의 역사를 알려면 이 등대를 찾는 게 훨씬 정확하다.1905년에 세워진 등대이니 내년이면 100년. 열강이 각축하던 100년 전에 등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거문도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등대로 가는 바닷가 벼랑길은 지나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동백나무 터널을 수백m나 통과해야 한다. 등대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이만한 숲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한준봉(56) 소장은 “등탑 자체가 문화유산 감인 데다가 숲조차 뛰어나서 연간 1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해양수산부에서 거액을 들여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등대지기의 삶은 고달프다. 한 소장도 평생 오동도와 백야도, 소리도, 거문도 등 등대만을 돌아다녔다. 그는 아내의 출산 경험담도 털어놨다. 병원없는 절해고도에서 애를 낳는 바람에 자신이 직접 탯줄을 자르고 뒤처리까지 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 앓기라도 할라치면 장장 6∼7시간이나 배를 타고 여수까지 나가야 했다. 이렇듯 등대지기의 애환은 끝이 없다. 이곳에는 한 소장 말고도 김계인(54)·한현성(29)씨 등 2명의 등대원 ‘홀아비’들이 더 있다. 이곳에 초임 발령을 받은 한씨는 총각이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묻자 “등대에서 살겠다는 아가씨만 있다면….”이라며 말꼬리를 감춘다. 농촌 총각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남들 모르는 ‘등대총각’은 어쩌랴. 혹시라도 동백꽃 피고 지는 등대섬에서 살 뜻이 있다면 누구든 나서 보시라. 마침 관사도 비어 있어 새 삶에 운이 트이기도 할 것이니. 단, 등대의 삶이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점은 알아둘 것. 영국군 묘지, 등대 100년, 일본인 어촌은 언뜻 무관한 항목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거문도 위쪽 손죽도에는 왜구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이대원 장군의 사당이 있으니 이 역시 외세와 관련된 역사의 일부이다. 구한말 거문도의 지식인이었던 귤은(橘隱)은 거문항의 만(灣)을 삼호(三湖)라 명명했다.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뜻인데, 실제로 거문도는 역사 속에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 [국제플러스] 美軍, 언론 전쟁도구화 ‘파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군이 언론을 ‘전쟁 도구’로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2일(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해병대의 대변인인 라일 길버트 중위가 지난 10월 CNN에 미군의 팔루자 공격과 관련한 잘못된 정보를 흘린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길버트 중위는 지난 10월1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팔루자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군의 팔루자 공격은 그로부터 3주일 뒤에야 이뤄졌다. 길버트 중위의 발표는 팔루자의 저항세력이 미군의 공격 발표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미리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길버트의 발언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오도하는 것이었다.”면서 “CNN으로 하여금 사실이 아닌 것을 보도하도록 만들려는 시도였다.”고 인정했다. 길버트의 거짓 발표는 LA타임스의 추적보도에 의해 드러났다.LA타임스는 “길버트의 인터뷰가 언론 보도를 조작해 이라크에서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보도했다. CNN은 LA타임스 보도 내용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국방부의 로런스 디리타 대변인은 미군 관계자들은 결코 기자들을 속이도록 허용되지 않는다면서 길버트의 인터뷰를 둘러싼 정황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LA타임스의 마크 마제티 기자는 CNN에 출연,“베트남전 이후 사람들은 군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상기시키면서 “국방부 고위인사들은 이라크전 이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dawn@seoul.co.kr /***/
  • [국제플러스] 美, 이라크전 매달 58억弗 사용

    |바그다드·팔루자 외신|미국 국방부는 이라크전으로 한 달에 58억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고 미군 고위급 장성들이 17일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밝혔다. 이는 통상 미국 국방부가 전쟁비용으로 추산해 온 금액인 매달 40억달러보다 50% 가량 많은 액수다. 이 가운데 육군이 한 달에 47억달러, 공군은 8억달러, 해병대는 3억달러를 각각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는 이라크전 및 아프가니스탄전의 수행과 관련, 국방부에 기본 연간예산 외에 추가자금 1600억달러를 지원했다. 한편 이라크 무장 저항세력 ‘유일신과 성전(타우히드 왈 지하드)’이 한국인 김선일씨 등 외국인을 납치, 살해한 장소로 이용한 비밀시설들이 팔루자에서 발견됐다고 현지 관리들이 18일 밝혔다.
  • 미군 ‘부상병 사살’ 정당방위 여부 조사

    미군이 이라크 부상병 사살 사건에 대한 자체조사에 착수했으나 ‘정당방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내년 1월 총선을 앞두고 안정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이라크 임시정부와 미군 당국의 신뢰도에는 큰 타격이 예상된다. 미군측 조사단장인 법무관 밥 밀러 중령은 16일(현지시간) “교전수칙은 적대적 의도나 행위를 보인 적군에게 군사력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며 “직접적 위협이 아니더라도 당시 반군 부상자가 적대적 의도를 가졌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증거물에 달렸지만 정당방위 차원에서 미 해병대원이 총기를 사용한 것으로 결론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 해병 1사단도 성명을 내고 “정당방위 여부를 포함해 군법을 위반했는지 교전수칙을 지켰는지 여부를 모두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부상당한 반군이 숨겨진 무기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핵심은 부상병이 당시 포로였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자지라TV를 통해 살해 장면을 목격한 수니파 이슬람 교도인 아메드 카일은 “부상당한 노인을 반군으로 볼 수 있느냐. 사원에 무기가 있었느냐. 그들은 학살당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군과 이라크군은 3000∼5000명의 병력을 동원, 북부 모술시 서부지역의 경찰서 대부분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쿠바에서는 미군과 저항세력의 교전으로 무장세력 21명이 사망했고 바쿠바 경찰본부는 로켓과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美해병, 이라크 부상병 사살 파문

    대대적 공세를 통해 팔루자를 거의 장악한 미 해병이 아무 저항능력도 없는 비무장 이라크 부상병을 확인사살하는 모습이 미 TV에 방영돼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군은 16일 팔루자에 이어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5곳의 다리를 봉쇄, 저항세력들에 대한 대공세를 시작해 전선이 이라크 북부로 확산되고 있다. 모술은 지난주 미군의 팔루자 공세가 시작된 이후 저항세력들의 경찰서 공격이 잇따르는 등 이라크 저항의 새 중심지로 떠오른 곳이다. 미 해병 제1사단 1연대 3대대에 배속돼 팔루자 공세를 종군취재한 미 NBC방송의 케빈 사이츠 기자가 촬영한 필름은 지난 13일 팔루자의 한 사원에 진입한 미 해병 1명이 부상당한 이라크 포로 1명을 발견하고 “여기 죽은 체하는 ××가 하나 있다.”고 외치며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을 담고 있다. 사이츠 기자는 또 앞서 다른 부상포로 3명도 미 해병대원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아직 이같은 보도에 대해 논평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미 군당국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미 해병대원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은 이 사건은 매우 치명적인 것으로, 미군은 이 사건에서 부상병 처우에 관한 교전수칙이 준수됐는지 답변해야 하며 다른 부상병들이 불법적으로 살해되는 일은 없었는지 밝혀야만 한다고 보도했다. 미 TV에 방송된 장면은 방아쇠를 당기는 총성과 함께 끊겼지만 사이츠 기자가 촬영한 필름에는 부상병이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음을 시사하는 모습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의 포로 학대로 곤욕을 치렀던 미군은 전쟁범죄 행위가 명확한 이같은 확인사살 행위로 더 큰 타격을 받을 게 확실시되며 이라크의 민심도 더욱 흉흉해져 저항이 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이라크 저항세력 반격 확산

    미군이 이라크 팔루자 전 지역을 점령했다고 선언한 가운데 곳곳에서 반군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15일(현지시간) 미군은 무장헬기 등을 동원해 팔루자에 남아 있는 저항세력들의 은거지에 대해 폭격을 계속했다. 미군은 팔루자 장악과정에서 저항세력의 폭탄제조실과 참수실 안에 갇혀 있던 인질 2명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저항세력들의 반격은 북부의 모술시와 바그다드 북쪽 바쿠바, 부히리즈, 바이지 등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15일 바그다드 인근 바쿠바에서는 저항세력들이 로켓폭탄 등을 동원, 미군과 이라크 경찰서를 공격했으며, 반격에 나선 미군과의 교전과정에서 저항세력 최소 9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앞서 14일 북부 모술에서는 저항세력이 주후르 경찰서와 셰이크 파티 경찰서를 공격, 최소한 이라크 군인 6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미군은 탱크를 동원, 이라크군과 합동으로 이들 경찰서 두 곳 탈환작전에 들어갔다. 두라이드 카쉬물라 모술 주지사는 “최근 경찰서 6곳과 교량, 정당 사무소에 대한 반군의 공격이 있었다.”며 “팔루자 반군을 지원하는 저항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차출된 군인 300명과 경찰특수대로는 여전히 치안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 이라크 전쟁 종전 이후 처음으로 쿠르드족 민병대 수천명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 미군 책임자인 카터 햄 준장은 “현지 상황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절망적 상태는 아니다.”라며 “앞으로 며칠간 교전이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다드 북부 바이지시에서는 14일 하루 35만배럴을 공급하는 정유시설이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았으나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 해병대의 팔루자 공격을 주도한 리처드 네턴스키 소장은 “지난 1주일간 팔루자에 대한 공격으로 반군 1200∼1600명이 숨졌다.”며 “아직 5∼30명 단위의 무장세력이 남아 있어 이들에 대한 색출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팔루자 공격으로 미군은 38명이 숨지고 27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인 희생자 규모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한편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총리실은 지난주 초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친척 여성 2명이 석방됐다고 15일 확인했다. 김균미기자 외신 kmkim@seoul.co.kr
  •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지음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지음

    한국은 언제쯤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도 한국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사이덴스티커는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해 그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사이덴스티커는 1974년 외교관 자격으로 일본에 오지만,이내 갑갑한 외교관 생활을 접고 도쿄에 머물며 프리랜서 작가 겸 번역가로 활동한다.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다니자키 준이치로,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 현대문학 3대 거장의 소설을 처음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일본인들도 현대어 번역 없이는 읽을 엄두를 못내는 고전 ‘겐지 이야기’를 10여년간의 고투 끝에 번역해내기도 했다.‘설국’에 대한 유려한 번역은 지금까지도 화제다.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원제 Tokyo Central,권영주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는 미국 최고의 일본문학 번역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자서전이다.사이덴스티커는 1921년 2월11일 미국 콜로라도주 더글러스 카운티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2월11일은 일본의 건국기념일.이 때문에 그는 전생에서부터 일본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그는 병역문제로 고민하다 우연히 해병대 일본어 통역 요원으로 입대한 것이 계기가 돼 일본 문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책에는 전후 일본 문단의 풍경,번역에 대한 저자의 소신 등이 담겨 있다.한국의 도자기와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장준하에 대한 일화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이 책은 전통적인 일본의 미를 추구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저자가 일본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는 탐미주의 경향의 다니자키 준이치로,국수주의 색채를 보이다 결국 할복으로 생을 마친 미시마 유키오(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 등 전후 일본 문학을 이끈 이들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사이덴스티커는 번역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좋은 번역의 요령에 대해 한마디 조언한다.“작품을 시작하고 끝맺는 단락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흠을 잡는 부분이기 때문이다.이런 원칙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나도 ‘설국’의 서두를 보다 직역에 가깝게 했을 텐데….” 그는 “번역이란 끊임없이 뭔가를 내버릴 것을 요구하는,마구잡이에다가 가차없는 작업”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저자는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도 관심을 갖고 좋은 인연을 맺었다.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 슬쩍 밀반출한 한국 도자기를 평생을 옆에 끼고 살았다고 멋쩍게 회고하는가 하면 장준하를 가리켜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의 전형이라고 격찬하기도 한다.장준하에 대한 추억 한토막.“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시끄럽고 싸움을 좋아하며 마늘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하지만,장준하는 그런 일본인들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다정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씨를 지니고 있었고,매우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2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日, 오키나와 미해병 철수 요구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주둔 주일미군 해병연대의 국외 철수를 미국측에 요구했다고 아사히신문이 7일 보도했다.일본측은 주일미군 재배치와 관련,지난달 20일 워싱턴에서 열렸던 양국 실무회의에서 미군부대 밀집지역인 오키나와현의 부담경감을 위해 이같이 제안했다는 것이다.대상 부대는 오키나와 미 해병대의 주력부대로 나고시에 소재한 제3해병사단 제4연대(보병 2000∼3000명)이다.이 부대는 지난 2월 이후 이라크에 파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제3해병사단 사령관인 월리스 그렉슨 준장은 요미우리신문과의 회견에서 “(국외 철수) 가능성은 있지만 전략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오키나와의 전략적 중요성은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taein@seoul.co.kr
  • [오늘의 국감]

    ●법사 안양교도소 시찰(오후 2시) ●재경 신용보증기금(10시)한국소비자보호원(14시)한국주택금융공사(16시·이상 국회) ●국방 해병대사령부(10시·해병대사령부)해군제2함대사령부 시찰(15시) ●행자 서울특별시(10시·서울시청) ●교육 인천광역시교육청 경기도교육청(10시·인천교육청) ●과기정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과학문화재단(10시·국회) ●문광 문화재청 본부 및 소속기관(10시·국립문화재연구소) ●산자 한국가스공사 한국가스기술공업㈜(10시·한국가스공사) ●보건복지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10시·국회) ●건교 한국토지공사(10시·한국토지공사)
  • 징병제 논란 대선쟁점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갈수록 악화함에 따라 미국이 쉽사리 병력을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부족한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결국 징병제를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에서 징병제가 실시된 것은 지난 19세기 남북전쟁과 20세기의 제1·2차 세계대전 기간 등 모두 세 차례뿐이었다. NYT는 ‘징병제 카드:아무도 아직 밀어붙이고 있지 않은 옵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선거 후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모두 민감성을 감안해 징병제에 대해 모호하게 언급할 뿐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140만여명의 군인을 비롯해 86만 5000여명의 주방위군과 예비군 병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상군인 육군과 해병대 인원은 비전투병까지 더해도 65만 5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미군은 이라크에 13만 5000여명,아프가니스탄에 2만여명,한국에 3만 6000여명 등을 고정 배치하고 있어 한반도나 이란에서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거나 미 본토에 테러 공격이 가해질 경우 대처 능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부시 행정부와 민주당 케리 후보측 모두 병력 부족을 해결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군대에 갈 연령대의 청년들과 그 부모들이 징병제 부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이 문제가 대선 쟁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부고]

    ●퓰리처상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 |뉴욕 연합|베트남전 때 월남군 장성이 베트콩을 사이공 거리에서 즉결처형하는 보도사진으로 유명한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가 19일 오전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루게릭병으로 숨졌다.71세.1933년 펜실베이니아주 뉴 켄싱턴에서 태어난 애덤스는 한국전쟁 때 해병대 종군 사진사로 참전한 경력도 있다.고인은 신문과 AP통신,잡지 등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13곳의 전쟁을 취재하는 가운데 1969년 사이공 즉결처형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는 등 500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美 컨트리 가수 스키터 데이비스 |내슈빌(미 켄터키 주)로이터 연합|팝송 ‘디 엔드 오브 더 월드’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 스키터 데이비스가 19일 7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친구가 밝혔다.그의 친구인 린다 파머는 스키터 데이비스가 1988년부터 유방암을 앓아왔으며 이날 켄터키주 내슈빌의 세인트 토머스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스키터 데이비스는 43년간 가수로 활동하는 동안 뉴욕의 카네기홀과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의 공연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공연한 바 있다.또 1959년에 발표한 곡 ‘셋 힘 프리’를 포함해 다섯 곡이 그래미상에 지명되기도 했다. ●나명순 경인일보 부사장 나명순(羅明淳) 경원대 부총장 겸 경인일보 부사장이 19일 오후 5시36분 세상을 떠났다.62세.나씨는 조선일보 기자와 세계일보 편집부국장·논설위원을 역임한 언론인 출신으로 1983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우일병과 분대장’이 당선된 소설가이기도 하다.유족으로는 부인 조정희씨와 아들 도빈(경원대 직원)·도현(코스닥위원회 직원)·도윤(대우일렉트로닉스 직원)씨가 있다.빈소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70. ●孟健鎬(자영업)殷鎬(의왕덕성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申東旭(순복음생명수교회 목사)盧三錫(한국경제신문 광고국 부국장)金善浩(삼성화재 청풍대리점 대표)씨 빙부상 20일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760-2016 ●曺敬煥(조경환건축사사무소 대표)豊煥(전 민주당 소사지역구 부위원장)씨 부친상 20일 광주삼성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62)519-4441 ●全泰基(전 유신코포레이션 전무)翊基(자영업)勝基(한독의료기계 사장)云基(노동부 감사관)忠基(롯데건설 CM사업본부 팀장)씨 모친상 鎭成(롯데카드 감사팀장)赫(서영기술공단 부장)勳(청문학원 부원장)씨 조모상 19일 고대안암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 (02)921-3699 ●李聖植(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씨 모친상 20일 영동세브란스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2)572-0899 ●李相信(영국 거주)相烈(영주양행 상무)相赫(한국방송광고공사 정보화추진팀장)씨 모친상 姜昌國(자영업)씨 빙모상 20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07 ●鄭世采(전 고려투자신탁 부사장)明采(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宇采(일산에너지 전무)傑采(한국산업기술대 교수)碩采(전 우리증권 차장)씨 부친상 20일 충북대부속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 (043)263-6041 ●朴仁用(문화재청 건축주사)씨 부친상 梁基世(자영업)蔡暘錫(고려대 의과대 교수)車建源(차건원이비인후과 원장)씨 빙부상 20일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 (02)3010-2293
  • 국군의날 실미도서 해병대캠프

    국군의 날인 다음달 1일 북파 공작원들의 한이 서린 인천 실미도에서 이색적인 해병대 캠프가 마련된다.해병대 교관 출신들로 구성된 민간 병영캠프 전문훈련팀인 ‘해병대 전략캠프’(www.camptank.com)는 다음달 1일부터 실미도 해변에서 1박2일 일정의 해병대 캠프를 개설한다고 19일 밝혔다.
  • 공군병사 복무 1개월 단축

    이르면 내년부터 공군 병사의 복무 기간이 1개월 단축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17일 “육·해군에 비해 복무기간이 길어 최근 공군의 지원율이 급감하는 점을 감안해 현재 28개월인 복무기간을 27개월로 1개월 줄이기로 최근 군무회의에서 의결했다.”고 밝혔다. 공군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지난해 다른 군과 마찬가지로 복무 기간이 2개월 단축됐다.이에 따라 30개월에서 28개월로 줄었지만 여전히 다른 군보다 복무기간이 길어 지원병이 급감하자 최근 추가 단축을 국방부에 요구했었다. 육군과 해병대는 지난해 복무기간이 24개월,해군은 26개월로 각각 2개월씩 줄었다. 공군은 최소한 2개월을 더 줄여 해군 수준에 맞춰줄 것을 요구했으나 국방부와 협의과정에서 단축기간이 1개월로 조정됐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병역비리 파문

    1953년 2월17일,미국 해병 항공대 제 223대대 소속의 제트 전투기 조종사인 테드 윌리엄스는 교미포 작전 참가 도중 저공비행을 하다가 기체에 총탄을 맞는다.그는 탈출하라는 동료 조종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길에 휩싸인 기체를 몰고 기지에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그가 아슬아슬하게 착륙에 성공한 후 바라본 전투기는 완전히 숯덩이였다. 그에게 한국전쟁은 두 번째 군복무였다.2차대전 때인 1942년에도 입대해 조종훈련을 받고 하와이에서 근무했었다.사실 그도 처음부터 군 입대를 달가워한 것은 아니다.1942년 1월 보충역 신분이던 그에게 현역 입영 대상자라는 통보가 오자 변호사까지 고용해서 징병 당국에 항의,다시 신분을 보충역으로 바꾸기도 했다.실제 그는 이혼한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정당하게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해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면서 앙숙이던 야구 기자들에게 ‘비애국자’,‘황인종’이란 비난을 받는다.당시 기자들은 같은 신분이던 조 디마지오나 스탠 뮤지얼이 야구를 하는 데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마음이 상한 그는 결국 가장 위험한 해군 항공대에 지원했고 두 차례의 군복무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는 군에서 야구로 복귀한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2차대전에서 돌아온 1946년에는 최우수 선수,1947년에는 타격 3관왕을 차지한다.한국 전쟁에서 복귀한 후에도 1953년부터 은퇴하던 해인 1960년까지 한 해를 빼고는 3할 타율을 유지했다. 정규 시즌 마지막을 앞두고 순위 경쟁에 관심이 쏠려 있어야 할 한국 프로야구가 병역 비리 파문으로 살아남을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에 빠졌다.우리 국민은 병역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필자 역시 병역을 기피한 사람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야구 선수가 군복무 때문에 기량이 쇠퇴하고 제대 후에도 회복할 수 없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테드 윌리엄스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현재 신인왕 후보로 주목받는 권오준만 보아도 알 수 있다.권오준은 해병대 출신이다. 병역을 치르지 않는 것이 현역 복무보다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다.군 당국도 상무 팀의 확대가 어렵다면 프로 선수들을 일정한 교육을 거쳐 국군 장병의 체육 지도자로 복무시키는 등의 대책을 세워주어야 한다. 수사를 받고 있는 선수 가운데는 상무 야구팀에서 입단 제의를 받고도 부정을 저지른 선수도 있다.이들이야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자다.그러나 대부분은 병역 기피가 중요한 범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손쉬워 보이는 유혹에 빠진 경우다.이들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스포츠투아이’ 상무이사 tycobb@sports2i.com
  • ‘빈집’ 수상으로 한국영화 올 3대 국제영화제 석권

    ‘빈집’ 수상으로 한국영화 올 3대 국제영화제 석권

    한국영화가 ‘꿈의 그랜드슬램’을 이뤄냈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이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올해 우리 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의 주요 부문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김 감독 ‘사마리아’),5월 칸국제영화제(박찬욱 감독 ‘올드보이’)의 수상에 이어 한국영화의 상복이 터진 셈이다.세계영화제에서 우리보다 앞서 주목받아온 일본 중국 타이완 이란 등 아시아권 ‘영화제 강국’들도 세우지 못한 이색기록이다.이번 수상은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무엇보다 세계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의 독자적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는 점이다. 사실 김 감독의 ‘빈 집’이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수상을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한 감독의 작품이 국제영화제에서 한 해 연거푸 주요상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은근히 자존심 경쟁을 벌이는 3대 영화제가 경쟁영화제의 수상 감독에게 잇따라 굵직한 상을 몰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제가 진행되면서 이례적인 수상기록의 조짐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올리기 시작했다.현지 호응이 기대치를 훨씬 웃돌자 국내 영화관계자들은 ‘빈 집’이 영화제의 경쟁부문(베네치아 61)에 ‘깜짝초청작’(Film Sorpresa)으로 특별대우를 받으며 진출한 대목에 새삼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김 감독의 ‘상복’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고 영화계는 입을 모은다.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에 이른바 ‘감독 브랜드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하는 평가가 지배적이다.1990년대 말부터 거의 해마다 한국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온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영화를 보는 세계의 눈은 크게 달라졌다.지난 5월 제5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그 분위기는 단적으로 읽혔다.당시 경쟁부문에 진출한 우리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2편.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복수로 진출한 첫 사례였다.최근 몇년 동안 한국영화는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임상수 송일곤 등 작가주의 ‘브랜드 감독’군을 형성한 영화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저예산 영화제작으로 정평난 김 감독은 대자본,스타 캐스팅에 의존하는 충무로 제작관행에도 일침을 가한다.이춘연 영화인회의 대표는 “저예산에 독자적 시스템을 채택하는 김 감독의 제작행태는 충무로에 교훈이 될 만하다.”면서 “그러나 소자본으로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이 국내흥행에서도 밀리지 않는 영화보기 풍토가 확립돼야 제2,제3의 김기덕 감독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김기덕은 누구인가 “스태프들과 사랑하는 가족,제가 살아온 인생에 감사드립니다.”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현지 시상식에서 밝힌 소감이었다. ‘파격’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그의 작품세계는 한국영화계에서 늘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눈을 감게 만드는 극악한 화면,소외된 인간군상을 부각시키는 등 낯설고 과감한 표현법으로 팬과 ‘안티팬’이 뚜렷이 엇갈려온 감독이었다.“살아온 인생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확신을 완곡어법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1996년 ‘악어’로 감독데뷔했다.영화계에 입문하기 이전에 정식으로 영화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중학교를 중퇴하고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감독은 1990년 그림공부를 하러 무작정 파리로 떠났다.“정식학교에 등록하지 않은 채 2년여 그곳에서 자유롭게 미술공부한 경험이 영화 화면 구상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파란대문’‘나쁜 남자’‘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 드러난 강렬한 장치는 바로 감독의 이같은 감식안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있다. ‘야생동물보호구역’(1997) ‘파란대문’(1998) ‘섬’(2000) 등을 거쳐,‘빈 집’은 그의 11번째 작품.한 부랑자의 밑바닥 삶을 그린 데뷔작 ‘악어’가 그랬듯 그는 매춘여성 등 소외받는 아웃사이더들을 주요 캐릭터로 동원해 왔다.‘섬’‘파란 대문’‘나쁜 남자’ 등은 여성비하 문제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동정없는 끔찍한 화면방식으로도 유명하다.지난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 진출한 ‘섬’의 한 장면은 현지 시사회장에서 관객을 졸도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먼저 따라붙는 수식어는 뭐니뭐니해도 ‘저예산 감독’.50억원이 평균치가 된 한국영화 제작현장에서 그는 주류 영화시장의 자본논리와 멀찍이 떨어져 소예산 제작을 고수했다.‘빈 집’의 순수제작비도 불과 10억원.‘사마리아’때부터는 아예 독립제작사(김기덕필름)을 차렸다. 스타배우에 기대지 않고 신인 등 과감한 캐스팅을 하는 것도 ‘김기덕 스타일’이다.‘빈 집’에서도 위안부 누드 파문에 휩싸인 이승연을 뜻밖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화제를 모았다.그가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 ‘섬’이 출품되면서부터.이후 ‘수취인불명’(2001,베니스) ‘나쁜 남자’(2002,베를린) 등 지금까지 5차례 3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출품해 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주요 국제영화제 수상 연보 ▲2004년 ‘빈 집’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올드보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사마리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2003년 ‘YMCA야구단’ 후쿠오카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바람난 가족’ 스톡홀름영화제 여우주연상·촬영상▲〃 ‘살인의 추억’ 산세바스티안영화제 최우수감독상·신인감독상▲〃 ‘지구를 지켜라’ 모스크바영화제 감독상▲2002년 ‘집으로‘ 블라디보스토크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나쁜 남자’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대상▲〃 ‘오아시스’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신인배우상▲〃 ‘취화선’ 칸영화제 감독상▲1999년 ‘오!수정’ 도쿄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밴쿠버영화제 용호상▲1993년 ‘서편제’ 상하이영화제 감독상·여우주연상▲1992년 ‘하얀전쟁’ 도쿄영화제 대상▲1991년 ‘은마는 오지 않는다’ 몬트리올영화제 감독상·여우주연상▲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로카르노영화제 그랑프리▲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1987년 ‘씨받이’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1961년 ‘마부’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
  • 3대째 병역이행 명문가 시상식

    3대째 병역이행 명문가 시상식

    “군대는 왜 안 갑니까.가족 중 군대 가서 죽고 다친 사람도 있지만 한번도 원망한 적은 없어요.” 최근 일부 운동선수와 유명 탤런트들의 병역 면탈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집안 대대로 병역 의무를 성실하게 마친 ‘병역 이행 명문가’들이 10일 탄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병무청은 올해 처음으로 3대(代)가 현역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40개 가문을 ‘대한민국 병역이행 명문가’로 선발,10일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윤광웅 국방장관과 김두성 병무청장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상식을 가졌다. 대상인 대통령상은 고(故) 류기태씨 가문의 장손인 범열(31·회사원·대구시 동구 율하동)씨가 수상했다.범열씨의 조부인 기태씨는 6·25전쟁 때 육군에 자진 입대했다가 두 달만에 전사했다.선친인 근영씨는 21살 때 육군에 입대,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으나 고엽제 후유증으로 2002년 6월 사망했다. 특히 범열씨 본인도 대학에서 경영학도의 꿈을 키우던 중 95년 9월 육군에 입대,최전방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했으나 차량 배터리 폭발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어 의병전역할 만큼 군과 관련된 범열씨의 가족사는 파란만장하다. 범열씨는 “시력을 잃어 1종 면허마저 취소되고 삶은 고달팠지만 결코 군 입대를 후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다.”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그리고 병든 아버지를 평생 지켜온 어머니 등 모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범열씨의 친동생 승보(29)씨와 사촌동생 2명,숙부도 모두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이 가족 7명의 전체 복무기간은 무려 162개월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는 신체검사에서 거듭된 불합격 판정에도 불구하고,끝내 해병대에 입대한 이정석 일병과 외국 영주권으로 병역이 면제되는데도 고국으로 돌아와 병역의무를 수행 중인 이민석·이재민 이병 등 15명이 ‘2004 모범장병’에 선발돼 병무청장 표창을 받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일본 직장인 20여명 극기체험

    ‘좌우로 정렬’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보트 들어’ ‘보트 내려’…. 9일 오전,철 지난 충남 서해안 해수욕장에 모처럼 함성이 메아리쳤다.온실 속에서 자란 일본 기업체 직원들이 한국의 ‘해병대 극기훈련’을 받기 위해 당진군 석문면에 있는 난지도 해수욕장을 찾았다. ㈜그리오(제약회사)와 큐비네트워크㈜(미용실 체인점),㈜TCC(인재 파견회사) 등 일본 3개업체 직원 20여명은 이날 난지도해수욕장에서 제식훈련과 고무보트 해상기동훈련 등 해병대 극기훈련을 체험하며 인내과 화합의 참뜻을 되새겼다. 2박3일 일정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일본 도쿄에서 지난 2002년부터 ‘GTR’란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장호(31)씨가 일본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제의한 ‘한국 해병대 극기훈련’이 받아들여지면서 이뤄졌다.김씨는 “일본 사람들은 군대생활 등 단체생활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 보니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성향이 무척 강하다.”며 “일본 기업체 CEO들도 직원들의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겨 이 프로그램을 수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극기훈련에 참여한 마쓰다(松田·36) ㈜TCC 영업부 차장은 “처음에는 물속에 들어가 훈련을 받는 것이 두려웠지만 훈련을 마치고 나니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당진 연합
  • [국제플러스] 세계최대 美항공모함 日입항

    |도쿄 이춘규특파원|세계 최대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미 해군의 존 C 스테니스호(10만 2000t,승무원 약 4500명)가 21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항에 입항했다.스테니스호의 일본 입항은 이번이 처음이며 원자력항공모함의 일본 기항은 지난 2002년 8월 에이브러햄 링컨호 이래 2년만이고,통산 6번째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미 해군은 6∼8월 항공모함 7척을 중심으로 공격부대가 세계 5개 해역에서 동시에 훈련하는 ‘서머 펄스 2004’를 실시중이며,스테니스는 요코스카 기지에 배치돼 있는 항모 키티호크 및 오키나와주둔 미 해병대와 공군이 참여하는 공동훈련을 실시했다.
  • 美軍, 나자프 총공세

    이라크 시아파 무장세력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본거지인 나자프에 대한 미군의 총공격이 마침내 개시됐다.이라크는 하루 동안 수백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고,임시정부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군 나자프 집결,시아파 성지 봉쇄 12일 나자프에 집결한 약 4000명의 미군·이라크군은 시아파의 최대 성지인 이맘 알리 사원으로 통하는 진입로를 봉쇄했다.사원 일대는 미군의 탱크와 장갑차가 둘러싸고 있고,나자프 중심부에는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동원한 공습이 전개됐다.시민들은 탈출 러시를 이루고 있고 사드르를 추종하는 메흐디민병대는 로켓포를 쏘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미 해병대 데이비드 홀라한 소령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중요 작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11∼12일 나자프에서 최소 25명이 숨지고 153명이 다쳤다. 이야드 알라위 임시정부 총리는 “무장세력은 항복하고 이맘 알리 사원에서 떠나라.”고 촉구했고,하젬 알 샤알란 국방장관은 “미군·이라크군의 합동공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시아파 신자들의 반감을 고려,주공격은 이라크군이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외신들은 이맘 알리 사원이 집중공격을 받을 경우 그동안 무장세력에 동조하지 않았던 시아파 신자들까지 자극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자우다트 카담 나젬 알 쿠라이시 나자프 부지사는 공격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임했다.바그다드와 바스라에서는 시아파 수천명이 나자프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수니파 지도자들도 이라크 국민들에게 ‘점령군’에 협조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 이날 시아파의 다른 근거지인 쿠트에서는 대규모 교전이 벌어져 75명이 숨졌다.수도 바그다드 중심부에서도 미군이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저항세력이 밀집해 있는 하이파거리 일대를 공격했다.팔루자·모술 등지에서도 교전과 차량폭탄 테러가 이어졌다. 사드르는 12일 성명을 통해 “내가 죽거나 투옥되더라도 민병대는 점령군을 상대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나자프 또는 쿠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아파 최고지도자 알 시스타니가 “교전을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세력과 협력하겠다.”고 밝히는 등 한편에서는 중재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사드르측 대변인은 “미군이 나자프에서 철수해야 휴전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CIA요원 참수 논란 11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라크의 한 무장단체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는 미국인 1명을 참수하는 동영상을 한 이슬람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했다.이 동영상에는 한 백인 청년이 목에 CIA의 요원이라는 메시지와 ‘방문자(visitor)’라고 쓰여진 신분증을 건 채 8명의 무장괴한에 둘러싸여 있었다.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CIA 간부는 “모든 CIA 요원을 확인했지만 실종된 사람은 없다.”며 무장단체의 주장을 반박했다.한편 이라크 임시정부에서 입법부 기능을 수행할 과도국민위원회(INC) 구성을 위한 국민회의가 오는 15일 개막한다고 이라크 당국이 12일 밝혔다.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만장일치로 이라크에서 유엔의 활동기간을 1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장택동기자 외신 taeck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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