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도청 파문… 국익을 먼저 생각하자/안병용 신흥대 교수
태풍이 온다고 한다. 과거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파문이 우리 사회의 태풍이 되고 말았다. 도청은 이유를 불문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민주투사로 한평생을 지낸 이들의 소위 ‘민주대통령’때 진행된 일들이라니 더욱 기가 막힌다. 특히 안기부 간부가 지엄한 국가기밀사항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려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실망 그 자체다. 사정이 이러고 보니 온통 안기부(국가정보원)에 대한 원망과 불신, 그리고 타도 일색이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을 돌리면 아찔하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치부와 성역이 있는 법이다. 무너뜨릴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 그럼에도 모두들 흥분한 나머지 보호하고 숨겨야 할 것을 훼손하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권 또는 언론 어디에도 그러한 우려는 없다. 그 흔한 보수주의자, 안보주의자 내지 반공주의자 누구도 없다. 아마 바보가 되기 싫든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유신말기에 대학생활을 한지라 안기부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세상사에는 명암이 있는 법이다. 싫다고 다 내칠 수만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정략의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007영화를 못 본 사람이더라도 그것은 상식이다. 이제 냉정한 마음으로 되돌아가 국익을 생각해야 할 때다.
21세기 국가의 국력은 지식과 정보력으로 평가된다. 지금 국가간에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전자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암암리에 첨단장비를 운용하여 고도의 첩보전과 해커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전에서 밀리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국가인 미국은 9·11테러 이후 대테러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해병대,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실(NRO), 국가지리공간정보국(NGA) 등 8개 국방관련 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을 포함해 15개 정보기관을 통괄하는 한층 강화된 국가정보국(DNI)직제를 신설하고 있다.400억달러(약 40조원)를 들여 운용하고 있는 ‘애셜론 프로젝트’는 특히 관심을 끈다. 애셜론 프로젝트는 120개의 위성을 쏘아올려 전 세계 모든 지역을 감청(도청)하는 것으로 고주파(HF)통신, 마이크로웨이브, 해저케이블 및 인터넷 감청을 제 손바닥 보듯이 하고 있다.
미국은 애셜론이 수집한 정보를 활용,9·11테러 이후 알카에다 요원 80%를 궤멸하였고, 외국기업의 상업비밀을 수집해 자국의 업체에 지원하다 들통나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이러할진대 우리 언론과 정치권은 국정원의 도청장비 완전폐기, 국정원 축소, 심지어 해체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정말 국정원이 감청에 대한 무장해제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 아찔하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이다. 북한의 위협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아랍권의 테러대상국이다. 국민사생활보호, 정략적 이용금지, 비밀엄수 등의 조치와 함께 오히려 정보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도청사건은 수사기관이 전말을 파헤치고 위법사항이 있으면 처벌하고 유사사건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유의할 것은 처리하는 방법이 세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한 짓을 확신한다 해도 동네방네 치부를 다 보여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은 이 도청사건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국가의 안위를 도모해야 할 일차적 의무가 있다. 이 문제를 당리당략에 이용하려 한다면 그 피해는 곧 국민이 될 것이고 국민의 비난과 지엄한 심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국가의 중추신경과 같은 기관이다. 국민의 기관이다. 아무리 군의 비리와 총기난사사건이 있다 하더라도 군을 무장해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손이 부정한 짓을 했다고 손을 자르나. 부정한 짓을 명령한 머리를 바꾸어야 한다. 정치를 바꾸고 시스템을 재건해야 한다.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국가가 오랫동안 길러낸 소중한 자원으로 보고 싶다. 당신들도 이번 일로 정말 거듭나 주길 부탁드린다.
안병용 신흥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