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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남경우(KB투자증권 고문·전 KB선물 사장)씨 장인상 6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10시 (062)250-4410 ●김명환(전 해병대 제1사단 2연대장)씨 별세 진세(한국관광공사 경영지원실장)진홍(미국 거주·사업)진호(사업)씨 부친상 곽희중(해비치산부인과 원장)전영환(영어학원 원장)씨 장인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02)3410-6914 ●이창면(전북도청 공보과장)영현(전주청과)동현(신화건설 이사)동희(근로복지공단 익산지사 과장)씨 부친상 김덕환(소야 대표)씨 장인상 윤영임(전주공고 교사)최선영(전주 중앙초 교사)씨 시부상 7일 전북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30분 010-9438-8022 ●이재홍(진영토이 전무)재환(푸르덴셜투자증권 강북지역영업본부장 상무)씨 모친상 6일 분당 요한성당, 발인 9일 오전 5시 (031)780-1156 ●정성현(현대중공업 상무)인종(장수떡집 사장)우종(광탄고 교사)씨 부친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30분 (02)2227-7547 ●김규갑(협성실업 회장)씨 별세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410-6916 ●김대현(전 한국전력 부장)씨 별세 영호(쿤스트할레 대표)씨 부친상 이희철(티유디지탈 대표)황승관(지구촌사랑의교회 목사)박우평(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장)씨 장인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02)2227-7563 ●손규헌(MBC 정보콘텐츠실 방송콘텐츠팀 부장)씨 모친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2258-5971 ●이재건(디지털타임스 광고국 부장)씨 부친상 7일 순천향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792-1634 ●이희정(전 진로그룹 부회장)씨 별세 소은(수원대 겸임교수)씨 부친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07 ●안재형(STX엔진 국내영업실장 부상무)씨 모친상 7일 경남 창녕 부곡온천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55)521-7744 ●박맹효(세계일보 전산제작단 부장·전 서울신문 전산국 입력부)씨 모친상 7일 분당 요한성당, 발인 9일 오전 7시 (031)780-1158 ●선우정호(전 경남기업 상무)씨 별세 준(스마일게이트 과장)씨 부친상 이중석(동양종금 인재개발팀장)씨 장인상 7일 수원 성빈센트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10-2723-2827
  • 정 이병 “성경 태우고 전투복에 불… 가혹 행위 당했다”

    정 이병 “성경 태우고 전투복에 불… 가혹 행위 당했다”

    해병2사단 총기사건 수사본부는 7일 해병대 총기 사건의 공모 혐의로 전날 긴급체포한 정모(20) 이병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총격으로 병사들을 살해한 김모(19) 상병은 수류탄에 의한 파편상이 심해 대전 국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본부는 이번 사건이 소속부대원과 무기, 부대 내 관리가 허술해 발생한 총체적 문제로 잠정 결론냈다. 부대 내 가혹행위와 부대관리가 허술했던 점 등에 대한 조사도 강도 높게 진행 중이다. ●가혹행위·총기관리 허술 고강도 조사 수사본부 관계자는 브리핑을 통해 “김 상병과 정 이병이 지난 6월 초순께 ‘힘들다. 휴가 때(7월 말) 사고 치고 도망가자’는 내용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사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사건의 실질적인 범행 모의는 사건 발생 당일인 4일 오전 이뤄진 것으로 두 사람의 발언이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상병은 사고 당일 오전 7시 30분께 창고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김 상병은 정 이병을 창고로 불러내 함께 범행을 모의했다. 김 상병이 “○○○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자 정 이병은 처음엔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말렸지만, 잠시 후 “소초원들 다 죽이고 탈영하자.”고 제안했다. 자신 역시 평소 괴롭힘과 무시당한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금 죽이자.”면서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당초 고가초소의 경계 근무자로부터 총기를 탈취하려 했지만 실패 가능성이 크자 상황실로 향했다. 김 상병은 오전 11시 20∼35분께 K모 일병의 K2소총과 탄약(실탄 75발,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을 훔쳤다. 초기 조사과정에서 발표된 탈취 시간 ‘오전 10시∼10시 20분’은 김 상병과 정 이병의 진술 없이 다른 병사들의 진술에 의존해 추정한 것이라고 조사본부 측은 설명했다. 당시 상황실 근무자는 3명이었지만 2명은 자리를 이탈해 있었다. 생활관 복도에 있던 총기 보관함은 근무자 교대를 위해 열려 있었다. 관행대로였다. 실탄이 들어 있는 탄통은 간이탄약고 안이 아닌 위에 놓여 있었다. 역시 근무자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수사본부는 판단하고 있다. 당직병인 슈미트(관측장비의 일종) 운용병은 김 상병의 절취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김 상병은 정 이병에게 수류탄 1발을 주고 고가초소를 폭파하라고 지시했다. 정 이병은 고가초소 근처까지 갔지만 총성을 듣고는 두려움에 돌아왔다. 공중전화 부스 부근에서 김 상병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이승렬 상병을 발견하고는 고가초소 근무자에게 이를 알려준 뒤 계속 피해 다녔다. 정 이병과 만나 그가 수류탄을 터트리지 못한 것을 안 김 상병은 “너랑 나랑 같이 죽자.”면서 안전핀을 뽑았다. 하지만 정 이병은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달아났다. 정 이병은 현재까지 “김 상병과 대화를 나누고 수류탄을 받아 들었지만 실제 범행을 실행할 것에 대해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범행을 제의한 정 이병은 그동안 자신이 당한 가혹행위에 대해 진술했다. ●김 상병, 소주 한 병 마시고 범행 수사본부의 조사에서 정 이병은 “김모 병장이 병장은 하나님과 동급”이라면서 “성경책을 읽지 말라고 압박하고 성경책에 불을 붙였다.”고 밝혔다. 또 “성기를 태워버리겠다.”면서 전투복 지퍼에 살충제를 뿌린 후 불을 붙이는 가혹행위를 했다고 진술했다. 정 이병이 당한 가혹행위에 대한 진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김모 상병은 이유 없이 정 이병을 상황실에 3시간 정도 앉혀 놓고 자극적인 연고를 목과 얼굴에 바르고 씻지 못하게 했다. 신모 상병은 자신이 몇 번째로 좋아하는 선임이냐를 묻고 이모 상병을 좋아한다고 답한 정 이병을 폭행했다. 조사본부는 이어 김 상병에 대한 2차 조사에서 “처음에 기수열외와 구타, 왕따가 없어져야 한다고 답한 것은 조만간 자신이 기수열외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후임병들에게 무시당하는 등 기수열외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란 것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김상병이 고가초소 수류탄으로 폭파 지시”

    “김상병이 고가초소 수류탄으로 폭파 지시”

    국방부는 해병대 총기사고의 가해자 김민찬(19) 상병과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6일 새벽 긴급체포된 정모(20) 이병이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김 상병과 정 이병이 ‘구타를 없애버리자. 사고 치고 함께 탈영하자’고 범행을 모의했다는 일치된 진술을 받아냈다.”면서 “범행을 실행한 부분에 대해 정 이병이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날 총기사고 합동조사단의 조사에서 김 상병은 자신이 K2 소총에 실탄을 장전할 때 정 이병에게 수류탄을 건네주며 생활관 옆 고가초소를 폭파하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변인은 “김 상병이 무기를 훔치기 전후로 정 이병이 함께 움직였다는 진술을 받았지만 실제 훔치는 행위에까지 함께했는지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상병이 동료 해병들에게 총격을 가한 후 권혁(20) 이병에게 밀려 복도로 나오자 정 이병이 겁을 먹고 “못하겠다.”고 말하며 김 상병에게 수류탄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김 대변인은 “김 상병의 진술 가운데 정 이병이 수류탄으로 고가초소를 폭파하려다 실행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인정했다.”고 밝혔다. 수류탄을 건네받은 김 상병은 생활관 옆 창고로 이동해 자살을 시도했으며, 정 이병은 가장 먼저 총격으로 사망한 이승렬 상병을 안고 복도에 앉아 있다 다른 대원들에게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합조단 관계자는 정 이병이 “김 상병이 총격을 가하고 있는 동안 생활관 입구 공중전화 부스 앞에 숨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잠깨스·앞뚫 등 전의경 ‘구타’ 줄었지만…

    인천 강화도 해병대 2사단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이 ‘기수 열외’라는 해병대 특유의 악습으로 알려진 가운데, 전·의경 사이에서도 가혹행위 및 구타 등 악습이 올 들어서까지 빈번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이 최근 전·의경 소원수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인권침해 행위를 분석한 결과 월별 구타·가혹행위 발생 건수가 1월 76건, 2월 19건, 3월 17건, 4월 9건, 5월 3건, 6월 1건으로 집계됐다고 6일 밝혔다. 하락세를 보이긴 했지만 부대 내 ‘잠깨스’, ‘물깨스’, ‘앞뚫’ 등의 음어로 고착화된 조직적인 괴롭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우려로 남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악습이 방치·묵인돼 반복될 경우 제2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상 ‘잠깨스’는 잠을 못 자게 하는 것, ‘물깨스’는 물조차 못 마시게 하는 것, ‘앞뚫’은 앞만 뚫어지게 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조사결과 선임대원의 의복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며 구두를 닦아주는 속칭 ‘똥꼬빨기’, 선임대원이 ‘샤셋’(샤워세팅)이라고 외치면 관물함에서 속옷과 수건·티셔츠를 가져다 주는 식의 불합리한 관행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부대 내 가혹행위가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군은 물론이고 전·의경 부대의 관리·점검 또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서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인 김민찬 상병 역시 군 수사당국 조사에서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열외가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구타 등 악습의 경우 선임자의 묵인과 은폐가 주요 원인인 만큼 지휘요원의 지휘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찰은 1971년 전경 창설 이후 고질적인 병폐인 선임대원의 괴롭힘 행위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1월 말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대책’을 수립, 실행해 왔다. 경찰은 이런 대책을 내놓은 지 5개월을 맞아 이날 경찰청 대강당에서 경찰 수뇌부 등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성과 보고회’를 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기간 동안 전·의경 대원 424명이 적발돼 94명은 형사 입건되고, 2명은 구속된 만큼 악습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꾸준한 지도·감독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부대 생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전우의 情 나누지도 못하고…” 눈물의 영결식

    “그들은 자랑스러운 해병이었습니다.” 지난 4일 인천 강화도 해안 소초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로 숨진 4명의 해병대원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8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장으로 엄수됐다.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영결식장에 장병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고 이승훈 중사는 동료 병사들에게 쾌활하고 친근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승렬(20) 병장은 경호원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고 했다. 입대 이후 15개월간 통신병으로 근무하며 후임병들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했다. 추도사를 맡은 강민우 상병은 “이 병장은 정말 많이 챙겨 준 선배”라며 “처음 철모를 받은 날에는 밤늦도록 철모를 손질해 주는 등 많은 일을 먼저 챙겨 주는 선임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치현(21) 병장은 입대 후 배운 요리로 부대원들을 즐겁게 해주는 동료였으며, 사고가 발생하기 3시간 전까지 경계 근무자들이 찬밥을 먹을까봐 늦게까지 식사를 준비한 배려심 많은 해병이었다고 전했다. 권승혁(20) 상병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 해병이라고 했다. 너무 열성적이라 전투화에도 구멍이 생길 정도였으며, 이로 인해 선임들에게 인정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영결식장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신음과 함께 토해냈다.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부디 편히 눈감고, 아쉬운 인생의 끈을 놓길 바란다. 전우의 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게 됐다.”며 “생전에 누리지 못했던 그것을 이제 가는 곳에서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들에 대한 회상의 시간이 끝난 후 4명의 장병들은 영구차로 운구돼 인천 가족공원으로 옮겨졌다. 희생자들은 오전 10시 30분 인천가족공원에서 화장한 뒤 오후 5시 영원한 안식처가 될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져 영면에 들어갔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해병대 상병 ‘총기난사’ 범행 공모혐의로 동료 이병 긴급체포

     해병대는 K-2 소총을 발사한 김모(19) 상병의 범행을 도운 혐의로 J모 이병을 긴급 체포했다.  군 관계자는 6일 “해병대 헌병대에서 어젯밤 J모 이병을 긴급 체포했다.”면서 “J모 이병은 김 상병이 탄약을 몰래 빼돌릴 때 인지하면서 묵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헌병대에서 J 이병이 김 상병과 범행을 모의했는지, 사전 인지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라면서 “김 상병이 자신을 도와준 병사로 J 이병을 지목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사설] 軍부적응 병사 체계적 관리 적극 나서라

    그제 인천 강화도 해병대에서 김모 상병이 전우를 향해 총격을 가해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업과 생업을 중단하고 나라를 지키고자 군에 입대한 젊은이들이 동료가 무차별 가한 총격에 숨지고 다쳤다니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이 없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문제 사병 한명이 저지른 돌발행동으로 치부하고,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징병단계부터 정확한 인성검사를 실시하고 부적응자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김 상병은 이미 입대 전 인성검사에서 위험도가 높거나 군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일컫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됐다. 이런 요주의 인물은 적절한 보살핌과 관리를 받았어야 했다. 몇년 전 국방부의 조사결과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가 10%가 넘는다고 한다.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다. 군내 자살사고나 총기사고가 대부분 이런 군 복무 부적응 병사들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부적응 병사들의 경우 군 입대 전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입대 후 선임병들의 끊임없는 구타와 가혹행위 등 폭력적인 문화로 인한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부적응 병사들이 어디 가서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털어놓고 상담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군 장병 60만명 가운데 심리상담사는 고작 95명에 불과하다. 이제 예산상의 이유로 심리상담사 확충을 더 이상 미룰 상황이 아니다. 연대 단위로 1명 정도의 전문가가 배치되려면 심리상담사를 적어도 300~400명으로 늘리고, 이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군만 하더라도 사고와 관련한 특수한 상황, 업무수행 능력 문제, 제대 후 직업 선택 등으로 나눠 체계적인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군에서 심리적 위기를 겪는 ‘관심사병’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인 관리 구축이 가장 긴요한 과제다. 이번 기회에 군 부적응 병사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당국은 전투력과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무고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가져오는 군 부적응 병사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마라.
  • [서울신문 보도 그후] 金총리 “인사철 근거없는 투서 엄단”

    김황식 국무총리가 비방과 음해성 투서가 난무하는 공직사회 인사 관행을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김 총리는 5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직인사 때가 되면 인사 대상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모함, 투서 등 좋지 않은 행태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최근 공공기관의 인사를 앞두고 이러한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각 국무위원들은 근거 없는 비방이나 투서 등을 철저하게 가려내 책임을 묻기 바란다.”면서 “나 역시 총리실을 통해 점검하고 적발된 사안은 엄중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5월 해병대 인사와 관련한 투서에 대해 국방부 장관이 신속하게 그 진원지를 찾아 엄중하게 조치한 바 있는데, 국무위원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총리의 발언은 최근 정부가 정권 말 공직기강 확립과 함께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한 가운데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 한편 국무회의에서는 학업중단 청소년 등 위기청소년을 위해 가족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상담 및 교육을 실시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도록 한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 등을 심의, 의결했다. 또 기사의 확산 속도가 빠른 인터넷의 특수성으로 인한 피해를 사전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신문 사업자가 정정보도 청구 등을 받으면 이를 알리는 표시를 하도록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법률공포안 43건·법률안 7건·대통령령안 10건·일반안건 3건 등을 의결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김상병 “나는 문제아” 메모… 전입 후 특별관리

    김상병 “나는 문제아” 메모… 전입 후 특별관리

    해병대원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사건은 합동조사단의 조사 과정에서 해병대 내 고질적인 병폐와 개인의 부대 부적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민찬 상병은 사건을 일으킨 이유로 ‘기수열외’를 시사했다. 기수열외는 기수로 얽혀 있는 해병대에서 선임 등이 집단으로 ‘왕따’시키는 고질적 악습이다. 군 관계자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김 상병이 집단 따돌림과 구타 등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대 내 부조리 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조사단이 같은 부대에서 지난 4월 전역한 예비역 이모씨를 조사한 결과 “(김 상병이) 후임병인 권모 일병이 자신보다 한 살 많아서인지 선임대우를 안해 준다는 불만을 토로했다.”는 진술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기수열외에 대한 암시였다. 하지만 김 상병 자신도 군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입대 후 인성검사에서 폭력적이고 단체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조단 조사에서 해당 소초장은 “김 상병이 훈련소에서 실시한 인성검사 결과 불안, 성격장애, 정신분열증 등이 확인돼 지난해 9월 소속대 전입 후 특별관리 대상으로 관리해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부대원들도 “(김 상병이) 다혈질적이고 불안정한 성격이었으며 임무를 주면 게으르고 귀찮아했다.”고 진술했다. 합동조사단이 그의 물품에서 발견한 메모에서는 “저를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제가 그만큼 문제아였고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고 스스로의 성격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김 상병은 참사가 발생한 4일 오전 4시20분쯤 제1생활관에서 취침 후 기상했다. 8시부터 오전 취침을 한 김 상병은 오전 10시 상황실에서 고(故) 이승렬 상병과 대화를 나누다 상황실을 감독하던 부사관이 흡연 등을 위해 자리를 비우자 상황실 복도에 있는 총기보관함에서 K2 소총과 탄환 75발, 수류탄 1발을 훔쳤다. 김 상병은 10시 30분쯤 잠에서 깬 후임병에게 “일병 ○○○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후임병은 김 상병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고 진술했다. 김 상병의 말에 놀란 후임병은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으나 김 상병은 11시 40분쯤 범행을 저질렀다. 김 상병은 부대 전화부스 옆에서 오전에 상황실에서 대화를 나눈 이 상병을 조준사격했다. 이어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고 이승훈 하사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 하사가 쓰러지자 2생활관으로 뛰어가 잠을 자고 있던 고 권승혁 일병을 향해 세 차례 총을 쐈다. 이어 고 박치현 상병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그는 이어 총소리에 놀라 깬 권혁 이병에게 총을 겨눴다. 사건 발생후 10분여. 제지당한 김 상병은 소총을 2생활관 앞 복도에 둔 채 수류탄만 들고 밖을 향해 뛰었다. 총성 소리에 놀라 달려온 소초장과 마주치자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도주했다. 김 상병은 체력단련실 옆 창고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하고 동료들에게 검거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4명 일계급 추서… 순직 처리땐 보상금 9700만원

    해병대 총기 사건으로 변을 당한 해병대원들과 현장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어떤 처우를 받게 될까. 일단 해병대는 사상자들에 대한 처리와 관련해 이번 수사가 마무리되면 전공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이들의 죽음과 부상이 사적인 부분에서 발생한 것인지 공무 중 발생한 것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피해자들의 불법행위나 사적인 문제가 확인되지 않으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국방부에 순직을 건의하게 되고 국방부가 순직 결정을 내리면 보훈처는 유족과 가족, 부상자 본인에게 보상을 하게 된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이 순직처리될 경우 군인사망보상금 9700만원과 매달 일정금액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앞서 지난 2005년 경기 연천 최전방 GP 총격 사건 당시 현장에 있다가 생존했지만 정신적인 충격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장병들과 부상자들도 모두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아 보상을 받았다. 일부 병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전역했다. 전역 후 피해자들은 모두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국방부는 사망한 이승훈 하사 등 4명에 대해 일계급 추서했다. 이 하사는 중사로, 이승렬·박치현 상병은 각각 병장으로, 권승혁 일병은 상병이 됐다. 또 더 큰 참사를 막은 권혁 이병의 경우 부상 정도가 심해 군 생활이 어려울 경우 조기 전역시키는 한편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 줄 예정이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공무상 재해 인정은 쉽지 않다. 김민찬 상병이 5일 첫 진술에서 기수 열외 등을 언급해 수사 결과에 따라 상당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김상병이 상습적으로 괴롭혀…‘성희롱적 발언도 했다’ 들어”

    “김상병이 상습적으로 괴롭혀…‘성희롱적 발언도 했다’ 들어”

    해병대 내무반에서 총기를 난사한 김민찬(19) 상병이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는 권승혁(20) 일병의 유가족들은 “죽은 승혁이는 평소에 김 상병으로부터 상습적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권 일병이 김 상병으로부터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성희롱적인 발언도 들었다.”고 가족들에게 호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 일병의 아버지 권형구(51)씨는 5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빈소에서 “승혁이는 모범생으로 군생활도 잘했다.”며 “후임(권 일병)이 선임(김 상병)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는 말은 분명히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김 상병을 무시해서 권 일병이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말을 옮기는 것에 대해 “그럼 두 번이나 억울한 죽음을 안겨 주는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권씨는 “대학 휴학 후 입대한 뒤 휴가를 나와 ‘바로 위 선임인 김 상병 때문에 많이 힘들다’는 말을 했고, 그러면 ‘군대가 다 그런 것’이라고 달래 주었다.”면서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라니…”라며 눈물을 흘렸다. 권씨는 또 “승혁이는 육군 하사로 근무하던 형에게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군에서 힘든 점을 말했다.”고 전했다. 권 일병과 친하게 지냈다는 이종사촌 이혜진(21)씨는 “부모님들이 걱정할까봐 깊은 말은 털어놓지 않았지만 김 상병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대해 말을 많이 했고, 특히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아버지 권씨는 “제대하면 배낭여행을 해 보고 싶다고 해 적금을 하나 들어 두었다.”며 “사고 현장에 가 보니 배낭여행을 위해 영어 공부를 준비하고 있던 아들의 메모가 적혀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계속 울먹였다. 권씨는 “누가 뭐라고 해도 승혁이는 자랑스러운 해병이었다.”며 “잘못된 이야기를 바로잡아 죽음이 헛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일병은 오는 9일 포상 휴가를 나올 예정이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장병 65만명에 심리상담사 95명 뿐… 예견된 사고?

    해병대 소초에서 총기를 난사한 김민찬 상병이 입대 후 인성검사에서 ‘폭력적·단체생활 융합이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일반 ‘관심사병’으로 분류되는 등 국방부의 사병 관리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병사들의 정신적·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군 심리상담사제도’(병영생활 전문상담관)마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제도적 허점이 대형 참사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병사들의 심리적 문제로 총기 난사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도입된 군 심리상담사 제도가 부족한 인력 탓에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군 심리상담사제도는 2005년 6월 경기 연천 전방초소(GP) 총기 난사 사건 이후 2006년 도입됐다. 문제는 이런 역할을 담당할 전문 인력이 크게 부족해 제도가 겉치레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육·해·공 전군을 통틀어 전문 심리상담사는 95명에 불과하다. 국방부는 2006년 8명을 시작으로 2007년 12명, 2008년 42명, 2009년 105명, 2010년 106명으로 전문 상담 인력을 점차 늘려 왔다. 하지만 올해는 운영상의 이유를 들어 지난해보다 11명이 줄어든 95명의 전문 상담사만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현재 우리 장병 숫자는 65만여명에 이른다. 국방부는 “올해 인원이 줄어든 것은 운영상의 효율성을 더하기 위한 조치였다.”면서 “제도를 정비한 후 상담관 숫자를 140여명까지 늘려 현재 사단급까지 배치된 상담관을 앞으로는 여단급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40여명의 전문가가 전군을 상대로 심리상담을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군 관련 전문가는 “현재 장병 6500명당 1명꼴로 전문 상담 인력이 배치돼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장병들과 상담해 사전에 문제를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최소 연대별로 한 명씩은 배치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최소 400명 이상의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2년마다 군 심리상담사가 바뀌는 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행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심리상담 인력은 2년 주기로 퇴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군 관련 전문가는 “전문 상담사의 경우 군종 장교나 다른 장교들과 달리 민간인 신분이어서 병사들과 친밀감이 높고, 상담 결과도 더 만족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정규직 전환이 안 돼 2년 정도 근무하면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서 “2년을 주기로 교체하는 것은 업무의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잇단 사고… 해병대 왜이러나

    해병대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4일 해병대 병사가 해안 경계 부대 생활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자신을 포함해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지난달에는 민항기를 향해 총격을 가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잇단 악재가 이어지면서 최정예 부대로 꼽히던 해병대의 기강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해병대의 기강해이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올 초부터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을 음해해 지난 5월 해병대의 박 모 소장 등 2명의 현역 장성이 잇따라 구속됐다. 지난달 15일에는 백령도의 해병 6여단에서 이모 상병이 자신의 K2 소총 실탄에 맞아 숨진 사건도 있었다. 게다가 같은 달 17일에는 교동도 대공감시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해병 초병 2명이 민항기를 미확인 비행체로 오인해 예광탄 등 99발의 경고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군의 한 인사는 “군 전체적으로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이후 훈련 강도가 높아지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면서 “해병대의 이번 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신병이 총구 방향 틀어 2차 희생 막았다

    신병이 총구 방향 틀어 2차 희생 막았다

    4일 발생한 강화도 해병부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한 신참 병사의 용감한 행동이 피해를 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찬(19) 상병이 총기를 난사하는 순간 막사 인근에 있던 권혁(19) 이병은 총소리를 듣자마자 사고 현장으로 달려와 김 상병이 들고 있던 총기의 총부리를 잡고 제압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 이병은 총부리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김 상병이 더는 총기를 난사할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권 이병은 오른쪽 허벅지 안쪽과 바깥쪽에 총을 맞았다. 해병대 관계자는 “사고 당시 권 이병이 총구의 방향을 틀어 2차 피해를 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다만, 권 이병 역시 부상을 당한 뒤라 온전한 정신에서 이야기했는지 알 수 없어 정확한 사실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초소에는 소대장을 포함해 30여명이 근무 중이었던 데 비해 피해가 적어 권 이병의 희생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권 이병은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총기 난사 사고로 숨진 병사 4명 가운데 이승렬(20) 상병과 권승혁(20) 일병의 시신은 헬기로 이날 오후 9시 5분쯤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됐다. 나머지 이승훈(25) 하사의 시신은 이날 자정을 넘겨서도 이송되지 못하다가 새벽 늦게서야 도착했다. 이에 앞서 박치현(21) 상병과 권 이병은 오후 4시쯤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과정에서 박 상병은 사망했다. 시신이 도착하자 유가족들은 구급차에 몰려들어 내려지는 시신을 보며 오열하기 시작해 통곡소리가 100m 밖 장례식장 입구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날 이후 4시 50분쯤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한 박 상병의 어머니는 장례식장 입구에 주저앉은 채 “내 아들이 죽었다.”고 오열하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 상병은 경호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제대를 1년도 남겨두지 않고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국군수도병원의 빈소를 찾은 이 상병의 고종사촌형인 개그맨 임혁필(39)씨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해병대 간다고 할 때 못 가게 해야 했었다.”며 울먹였다. 이 상병은 지방대 보디가드 학과를 다니다 해병대에 입대했으며, 평소 해병대를 나온 임씨를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해병대 사령부는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합동 빈소를 마련했으며, 숨진 장병들이 모두 도착하는 대로 유족들과 논의해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빈소에는 아직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유족들이 동의하면 언론에 공개할 방침이다. 한편, 사고가 발생한 해병대 2사단 강화도 해안 초소 주변에는 충격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초소에서 불과 5m가량 떨어진 해안도로 건너편엔 민가 수십 채와 상가 건물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총성을 들었다는 주민 이영수(47)씨는 “보통 사격 훈련을 할 때 연속적으로 여러 발의 총소리가 나는데 오늘은 규칙적으로 소리가 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 “조금 지나 군인 4명이 속옷 차림으로 초소 안에서 나와 전력질주해 도망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평소 장병끼리 막사 옆에 있는 유적지 돈대에서 족구도 하고 화기애애했던 부대인데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초소 바로 뒤쪽 민가에 사는 김모씨는 “집에 있는데 군인들이 욕하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것 같더니 갑자기 커다란 총성이 들렸다.”며 “마지막 총소리를 듣고 담 너머로 막사 쪽을 봤는데 쓰러진 병사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다른 1명이 심장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학준·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김상병 총기난사 미스터리

    김상병 총기난사 미스터리

    해병대 2사단 8연대 소속 해안경계 부대인 모 대대 예하 소대 생활관에서 김민찬 상병이 동료들에게 K2소총을 난사했다. 5명의 사상자를 낸 뒤 자신도 수류탄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여러 명의 동료에게 총기를 난사해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2005년 6월 경기 연천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김동민(현재 육군교도소 수감 중) 일병이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소총 44발을 발사해 10명의 사상자를 낸 이후 6년여 만이다.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들에게 김 상병은 왜 총기까지 훔쳐 난사하고 자신도 수류탄으로 자살하려 했을까. 국방부와 해군, 해병대의 헌병과 감찰요원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크게 3가지 원인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벌이고 있다. 우선 군 내 가혹행위다. 외부와 차단된 해안경계부대에서 발생하는 가혹행위가 김 상병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갔을 것이란 추정이다. 하지만 김 상병은 이미 이병과 일병을 거쳐 이른바 고참으로 분류되는 상병이어서 부대 내 가혹행위는 일반적인 사례로 보기 어렵다. 물론 부대 내에서 이른바 ‘고문관’으로 낙인 찍혀 ‘왕따’로 생활했다면 다른 문제다. 특히 올해 초 휴가 중 비행청소년을 경찰에 인계해 연대장 표창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 상병이 자신의 원칙과 일부 부대원들의 부조리에서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두 번째로 외부적 요인이다. 외부와 차단된 경계부대에서 외부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요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란 점이다. 인간관계를 비롯해 김 상병 개인적인 이유가 대표적이다. 앞서 10명의 사상자를 낸 최전방 GP사건의 김동민 일병은 게임 중독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부대 부적응이다. 김 상병이 소속된 소대는 지난해 말까지 해안경계 근무를 서지 않는 부대였다. 하지만 2사단 소속 연대들의 각 1개 대대가 돌아가면서 해안경계 근무를 순환하도록 되어 있는 방식에 따라 올해 초부터 해안경계근무에 투입됐다 해안경계근무에 투입되지 않는 대대의 경우 후방에서 교육과 훈련에 집중한다. 매일 경계근무에 투입되고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는 경계부대의 장병들은 상대적으로 피로도가 높다. 또 상대적으로 휴가를 나가거나 가족 등의 면회도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해당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아 경계근무를 서지 않던 김 상병이 경계근무에 투입되면서 근무 방식 등에 적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합조단은 현재 대전 수도병원에 입원 중인 김 상병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며, 수사관들은 해당 부대 소대원들을 1대1 심층 면접을 통해 김 상병의 부대 생활과 사고 발생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총격前 상담받은 관심해병이…강화서 총기난사 4명 사망·2명 부상

    총격前 상담받은 관심해병이…강화서 총기난사 4명 사망·2명 부상

    해병대 병사가 동료들이 자고 있던 생활관(옛 내무반)에 총기를 난사해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병대는 4일 “오전 11시 50분쯤 해병대 2사단의 강화도 해안 경계 부대 소초 생활관에서 김민찬(19) 상병이 부대 상황실에서 절취한 K2소총을 난사해 이승훈(25) 하사 등 4명이 사망하고 김 상병을 포함한 병사 2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총기 난사 직후 이 하사 등 3명이 생활관에서 사망했으며, 중상을 입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된 박치현(21) 상병은 수도병원 도착 직후 사망했다. 사망자는 이 하사, 박 상병과 이승렬(20) 상병, 권승혁(20) 일병 등이다. 부상자는 김 상병과 권혁(19) 이병이다. 김 상병은 사고 당일에도 소대장과 상담을 받는 등 관심사병으로 분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숨진 권 일병의 사촌형 권욱(30)씨는 “사고 당일에도 소대장과 상담을 받으면서 ‘잘 하겠다’고 말했다고 들었다.”면서 “김 상병이 관심사병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해병대는 1차 조사 결과 김 상병이 이날 오전 10시경 주간 근무자 교대 시 상황실 총기 거치대에서 총기와 탄약을 훔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상병은 1시간 50분 뒤 훔친 K2소총으로 생활관에서 야간 근무 후 취침 중인 동료들에게 실탄을 발사했다. 권 이병에 의해 생활관 밖으로 밀려난 김 상병은 생활관 옆 창고로 이동해 수류탄 1발을 터뜨려 자살을 기도했다. 군은 현재 김 상병을 국군 대전병원으로 이송해 총기를 난사한 동기와 수류탄을 갖고 있게 된 과정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해병대는 “김 상병이 병원으로 후송 도중 심하게 난동을 부려 진정제를 투여했다.”면서 “의식은 있지만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고 툭하면 난동을 부리려는 자세로 조사에 비협조적”이라고 밝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강화 해병대 소초서 총기난사···3명 사망

    해병대 2사단의 강화도 해안 초소에서 4일 오전 11시50분쯤 김모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부사관 등 3명이 사망하고 병사 3명이 부상을 당했다.  군 관계자는 “총기를 난사한 상병의 신병은 해당 부대에서 확보했다.”면서 “사망자는 하사와 상병, 일병 등 3명이고 부상자는 상병 2명과 이병 1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범인은 초소 생활관(내무반)에서 총기를 난사했으며 그도 경상을 당했다.”면서 “부상자들은 응급 조치를 한 뒤 강화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해병대는 사고 조사반을 구성해 현장에 투입,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6·25 전쟁 61주년]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가족들 반대도 많았죠”

    [6·25 전쟁 61주년]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가족들 반대도 많았죠”

    “그러니까 열여섯 살 때였지요. 전쟁 중이었지만 여자도 뭔가 해야 한다는 결의가 아주 높았습니다.” 원로 성우 고은정(75)씨는 해마다 이맘때면 6·25전쟁 당시를 잠시 추억한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자택 인근에서 고씨를 만났다. 1950년 11월 서울 수도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씨는 학생들 사이에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금방 통일된다.’는 소문을 들었다. 고씨는 “서울고와 용산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뽑혀 북진 대열에 합류한다.”고 말하면서 여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했더니 동의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결국 며칠 뒤 고씨는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여자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서울 충무로의 일신초등학교에 훈련막사가 설치됐다. 한성여고 밴드부와 동덕여고 무용반 학생들도 와 있었다. 여기에서 ‘여자의용군 예술대’가 결성된 것. 고씨의 군번은 0995862. 훈련은 주로 아침 일찍 남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었다. 20일쯤 지나자 잠시 외출을 나가게 됐다. 집에 갔더니 가족들이 “난리 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귀대하지 말라고 붙잡았다. 고씨는 “어떻게 외출 나왔다가 안 들어가느냐.”며 부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동료 3분의1이 귀대하지 않았다. 남은 예술대원은 20여명. 이튿날 예술대원들은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겨울용 잠바와 담요 한 장씩을 들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수백 명의 남자군인 틈에 끼여 무개화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 신성모 국방장관이 나타나 “왜 여자들을 지붕 없는 차에 태우느냐.”고 호통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음 날 트럭을 이용해 인천항을 거쳐 상륙함정(LST)을 타고 3일 만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후 예술대원들은 영도초등학교의 임시막사에서 지냈다. 그러던 중 고씨는 발을 다쳐 의무실 신세를 지게 됐다. 이때 한 목사의 도움으로 책 몇 권을 얻었다. 예술단원으로 병원 위문을 가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했다. 1951년 2월 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면서 휴가를 떠나게 됐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도움을 받았던 목사와 함께 제주도에 있는 피란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고씨가 제주 오현중학교에 설치된 피란민 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여기에서 그는 육군 제대자로 처리됐다. 고씨는 “당시 동료들과 가끔 만나 추억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인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선엽 장군 등 6·25 참전 군인들에 따르면 여자의용군은 당시 김현숙 소령이 최초 여군단장을 맡아 500여명으로 조직됐다. 처음 여자의용군을 모집할 때 3000명 이상 몰렸을 정도로 지원율이 높았다. 지원 자격은 18~25세의 미혼 여성으로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으로 엄격한 필기시험과 신체검사를 거쳤다. 여군은 후방지역에서 주로 행정·경리·통신 분야에서 복무했지만 일부는 전방 전투사단에 배치돼 정보수집, 수색활동, 선무활동에 참가했다. 특수교육을 받은 일부 여군들은 적진에 투입돼 첩보수집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암호명 ‘래빗’(토끼)으로 미군 첩보부대의 훈련을 받은 미모의 첩보요원들도 비밀리에 임무를 펼쳤다. 간호장교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사방이 포위됐을 때에도 끝까지 부상병을 돌보다가 많은 희생을 당했다. 제주에서는 최초의 여자 해병대 126명이 모집돼 40여일 동안 훈련을 받고 일선에 배치됐다. 여기에는 미혼인 학교 선생도 여럿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전선이 교착되는 상황과 함께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르면서 여군은 새로운 체제로 재정비된다. 1951년 11월 여군의 인사관리 등을 담당할 지휘기관으로 여군과가 육군본부 고급 부관실 내에 설치돼 각 군 감실 및 부대에 배속된 여군의 인사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재래시장 1㎞ 이내 SSM 못 들어선다

    국회는 23일 본회의를 열고 유통산업발전법·관세특례법 등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이행·지원 법안을 포함해 74개 안건을 의결했다. 해군에 넘어갔던 해병대의 인사·예산권을 강화하고 상륙작전권을 부활시키는 내용의 국군조직법 및 군인사법 개정안 등도 통과됐다.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FTA 발효로 인한 재래시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점 제한 범위를 현재 ‘500m 이내’에서 ‘1㎞ 이내’로 넓히고, 법안의 일몰 시한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관세특례법은 일정 물량을 초과해 수입되는 농산물에 대해 특별 긴급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고, 저작권법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도 전체회의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한·EU FTA 발효로 농축산물의 5년 평균가격이 기준가 대비 85% 미만으로 떨어지면 차액의 90%를 직불금 형태로 보전하도록 했다. ●행안위 “모든 수사 표현 부적절” 국회 행정안전위는 사법제도개혁특별위가 지난 20일 의결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 “형소법 개정안 196조 1항의 ‘모든 수사’라는 표현은 부적절하고, 3항에서 구체적 수사지휘 사항을 법무부령에 위임하도록 한 것은 대통령령으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서를 채택해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겼다. 행안위에 출석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모든 수사’에 내사가 포함되는지에 대해 “이때까지도 내사는 경찰이 독자적으로 해 왔다. 검찰이 새로 내사를 지휘하면 못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野 “황금평에 투자 실사단 보내”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북한과 중국의 황금평 개발사업과 관련, “우리 정부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황금평 지구에 투자할 의향을 갖고 신의주와 단둥에 실사단을 보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중국군이 북한 급변 사태 때 남포와 원산을 잇는 대동강 이북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해 북한 주민들의 동북3성 유입을 막는다는 ‘병아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들어본 바) 없다.”고 밝혔다. 한편 김 장관은 민항기 오인 사격과 관련,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홍성규·강주리기자 cool@seoul.co.kr
  • 김관진 국방장관 트위터 사과 “민항기 경고사격 죄송”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21일 트위터를 통해 지난 17일 새벽 해병대 초병들이 아시아나항공 민항기에 경고사격한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김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 팔로어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잇달아 궁금증을 나타내자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보다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특히 김 장관은 “그 민항기에 탔던 승객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라며 “아무리 따져봐도 훈련 부족, 집중력 부족, 정신적 해이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김 장관의 답변이 경고사격을 한 초병들을 질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자 “한 개인(초병)에 대한 질타가 아니라 이번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당 부대에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한편 김 장관이 공식 사과를 트위터를 통해 한 것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판단이라는 지적과, 장관들이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트위터를 해야 하는 의무감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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