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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임시로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 1명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심선택 소위, 신봉순 대위)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권유상 인터뷰 ●일시 1998년 1월 19일 ●장소 인천 부평외국어고등학교 교장실 ●대담 권유상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아들)[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회]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서울대 사범대학 2학년생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2년: 인천송림국민학교 5회 졸업 1948년: 인천공업중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입학 1950년 9월 20일: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취임 1950년 12월 18일: 경남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를 향해 남하 1951년 1월 10일: 국민방위군 사건을 듣고 최종목적지를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서 부산의 육군 제2 훈련소로 변경 1951년 1월 15일: 23살의 서울대학교 2학년 학생이어서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중학생들과 같이 사병으로 자원입대 1956년 2월 25일: 5년 1개월을 복무하고 만기 제대 #나와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147번지에서 태어난 나(권유상)는 인천송림국민학교와 인천공업중학교(현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때 6·25 사변이 일어났다. 9·15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지역은 북한 인민군치하에서 학정에 시달리던 우익학생들이 모여서 인천학도의용대를 만들어 활동 중이었고 그 본부는 용동에 있었다. 1950년 9월 20일쯤 인천학도의용대에서 나를 3대대장으로 임명하여 나는 인천주안국민학교를 대대본부로 정하였다. 우리 3대대 구역은 남구, 남동구, 연수구였고 대원은 약 1000명이었다. 우리 3대대의 대대부관은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조태휘였고 1중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6학년 권용훈, 2중대장은 인천중학교 6학년 이용구, 3중대장은 고려대학교 2학년 최수보였다.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 통영을 향해서 남하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전 대원 3000여명이 인천축현국민학교에 모두 모여서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에서 파견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의 인도에 따라 경상남도 통영의 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목표로 남하 행진을 시작했다. 그 날은 함박눈이 왔고 국도를 따라서 수원, 대전, 대구,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쳐 통영의 충렬국민학교를 향하여 매일 25㎞(동인천역에서 영등포역 거리 정도)씩 20일간 500㎞ 거리를 인천지역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 약 3000명이 대학생 형들을 따라 도보로 남하했다. #“우리는 인천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 인천학도의용대는 걸어서 내려가다가 밤이 되면 농업조합(당시 농민을 위한 기관)을 찾아가 “우리는 인천에서 남하하는 학도의용대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히면 밥을 해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줬다. 우리는 인천을 떠난 지 20일 만에 최종 목적지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 가까운 마산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가는 걸 주저한 채 마산에 있으면서 인천학도의용대(대장 이계송) 본부에 보고했다. #국민방위군과 국민방위군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해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군대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국민방위군 약 9만명이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관련 장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고향 인천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 1951년 1월 초 우리 3대대 부관 조태휘가 나에게 마산의 해병대 6기 모집에 관하여 보고했다. 대부분의 우리 3대대 대원들이 해병대에 지원했고 해병 신체검사가 끝난 후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6기 해병대원은 대부분 인천 지역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다. 나는 우리 3대대의 합격자들에게 “해병대에 가더라도 인천학도의용대의 긍지를 잊지 마라. 그리고 다시 고향 인천에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라”는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해병6기는 거의 인천출신 중학교 4~6학년 학생 그때 해병 6기 모집에 합격한 대원은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고 탈락한 대원들은 2·3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때 나도 해병대로 자원입대할까도 생각했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작아서 탈락한 대원들 때문에 도저히 해병대에 입대할 수 없었다. 탈락한 어린 대원들이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아우성에 나는 “너희들과 같이 행동 할 테니 우리 다 같이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기자”며 어린 중학생들을 달랬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갑자기 군인으로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향하던 인천학도의용대는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로 입소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고 우리들은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약 8시간 걸려 부산항에 도착하여 육군 제2 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 날 입소했다. 부산진국민학교에 있었던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한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란 존재는 사라졌고 갑자기 중학생에서 군인이 되었다. 그 후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로 가라 해서 많은 인천지역 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나를 포함하여 통신병 교육을 받고 통신병이 되었다. #인천 여학생들의 은인, 신봉순 대위님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내려왔던 많은 여학생 대원들은 오갈 데가 없어서 매우 어려웠었다.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의 신봉순 대위님은 여학생들을 통신학교 행정보조 업무를 하게 하며 보살폈고 4개월 뒤 여학생들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통신병으로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으로 있었는데 많은 인천학생들을 통신학교로 입교시켰다. 신 대위님은 지휘관 옆에 있는 통신병이 좀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어린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이끌어 주셨다. #“우리 대대장님 누룽지 드세요” 어느 날, 여학생 몇 명이 누룽지를 가져와서 ‘대대장님 드세요’라고 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서로를 감싸주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육군 중위 장교임관을 거절하고 사병으로 입대 1951년 1월 10일 나는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1956년 2월 만기 제대하였다. 국가위난의 6·25때 나라를 지키겠다고 뭉친 인천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은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 입대 후 참전하여 청춘을 채 펴 보지도 못하고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전선에서 보냈다. #“내가 이끌었던 3대대 대원들도 많이 전사”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으로서 어린 중학생들을 인천에서 부산까지 내 나름대로 판단하여 한 점 부끄럼 없이 이끌었지만 너무나 큰 국가 위기로 인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힘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3대대 1000명 중에서 100명 정도 전사했다는데 시국이 너무 급박하여 형으로서, 대대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직까지도 한(恨)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아무쪼록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발굴 작업이 성공하기를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2회 계속 참전기 1회를 마치며… ●이경종 위원이 전하는 말 권유상 옹은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23살에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5년 후 28살에 만기 제대한 인천지역 어린 중학생들의 훌륭한 형이었다. ●이규원 위원장이 전하는 말 살아 계시다면 올해 90살이 되신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1·4 후퇴 때 인천에 남아있었으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거나, 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가서 굶거나 얼어 죽을 운명의 인천학생들을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서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지만 208명이 전사하여 제대 후 고향 인천에서 전사 학생 부모님들로부터 “우리 아들 전쟁터 데려가서 죽었다”라는 비탄의 말을 들었고, 일평생 동안 동생 같았던 전사 학생들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참전 대학생 형들이 인천에 있었다.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저의 아버지(이경종)를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주신 권유상 3대대장님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장진호 용사 투혼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다”

    “장진호 용사 투혼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다”

    “장진호(湖)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1950년 12월 15일)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28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DC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첫 공식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고, 그때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중국군 7개 사단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던 미 제1해병사단이 2주 만에 극적으로 철수한 전투로, 미군 4500여명이 죽고 7500여명이 다쳤을 정도로 희생이 컸다. 미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됐다. 덕분에 흥남철수작전이 가능했다. 문 대통령의 개인사와 한국 현대사, 한·미 혈맹의 역사가 얽힌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에 청와대는 방미 일정 중 사실상 유일하게 미 측에 이 일정을 요청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고,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원고에 줄을 치고, 긋고, 다시 수정하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그렇게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라며 “저의 삶이 그런 것처럼 양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강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제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 그 급박한 순간에 그 많은 피난민을 북한에서 탈출시켜 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고 밝혔다. 행사는 당초 40분이 예정됐지만, 70분간 진행될 정도로 문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 외에도 장진호 전투 생존자인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1등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 등 미 측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한편, 앞서 미국으로 향하던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보잉 747)에선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마침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일째 되는 날이었다. 과거 순방 중 기내 간담회는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며 덕담을 주고받는 수준에 그쳤지만 문 대통령은 20여분간 북핵 해법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질 현안들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동안 정상 간 첫 대면에서 악수를 둘러싼 ‘외교 결례’ 논란에 휘말렸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상견례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도 어떻게 악수하느냐를 세계가, 우리 국민이 관심 가지고 지켜볼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겠느냐”면서 “두 정상의 우정과 신뢰를 보여 주는 악수 장면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간담회 중 난기류 탓에 기체가 극심하게 흔들리는 ‘터뷸런스’가 있었다. 선 채로 답을 하던 문 대통령의 몸도 휘청거렸고, 배석 중이던 참모진은 짐을 싣는 공간인 ‘오버헤드빈’으로 일제히 손을 뻗어 몸을 지탱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미소를 짓더니 답변을 이어 갔다. 주영훈 경호실장이 “규정상 앉아 있어야 된다”며 만류했지만, 대통령은 “조금만 더 하겠다”고 했다. 기체가 1분 넘게 요동쳤지만, 특전사 시절 거친 비행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문 대통령은 당황한 기색조차 없었다. 워싱턴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美해병대 ‘文대통령 참배’ 페이스북 생중계 22만명 시청

    미국 해병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방문 첫 공식 일정으로 28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박물관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참배하는 모습을 약 30분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 도착하는 장면부터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해 장진호 전투 참전 용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헌화 후 양국 국기에 경례하는 장면, 양국 국가를 부르는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겼다. 넬러 사령관의 축사와 문 대통령의 헌화 기념사도 그대로 전달됐다. 이 영상은 29일 0시 현재 22만명이 시청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 1만 5000여명과 국군 3000여명이 북 측의 임시 수도인 강계 점령 작전을 수행하던 중 중국군 9병단(7개 사단 병력·12만명 규모)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2주 만에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전투이다. 기념비는 8개의 판(板)으로 둘러싼 2m 높이의 팔각형 기단 위에 장진호 전투를 상징하는 ‘고토리의 별’을 올린 형태이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미 해병대, ‘흥남철수’ 영상 소개 “3년 후 미래의 대통령 태어났다”

    미 해병대, ‘흥남철수’ 영상 소개 “3년 후 미래의 대통령 태어났다”

    미국 해병대가 28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헌화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고, 문 대통령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흥남철수 사진영상을 게시했다. 미 해병대는 1950년 흥남 일대에서 피란길에 올랐던 피란민 중 문 대통령의 부모가 있었고, 그로부터 3년 후 미래의 대통령이 태어났다는 소개글을 적었다. 이 영상은 하루가 채 안돼 조회 수 13만회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방미 첫 일정으로 잡았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말 미국 해병대 1사단 1만5000여명이 북한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강계를 점령하려다 함경남도 장진군의 호수 인근에 숨어 있던 중공군에 포위돼 미 해병대 4500여명이 전사한 전투다.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미 해병1사단이 2주 간 중국군의 남하를 저지한 덕에 흥남 일대 피란민 10만여명이 193척의 미군함으로 수송선을 타고 남한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1951년 12월23일 흥남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5일 거제항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의 부모는 이 ‘흥남 철수’로 남하한 피난민이었다. 문 대통령은 2년 뒤 거제에서 태어났다. 문 대통령은 참전용사들 앞 기념사를 통해 “67년 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고, 피난민 중에 제 부모님도 계셨다”고 말했다. 이어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한편 이등병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미 해병대 중장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기도 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文대통령, 장진호 전투기념비에 산사나무를 심은 까닭은 [포토]

    文대통령, 장진호 전투기념비에 산사나무를 심은 까닭은 [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첫 방미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잡은 것은 장진호 전투가 그의 가족 및 개인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본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다. 문 대통령의 선친 문용형씨는 흥남시청 농업과장까지 지냈다. 광복 후 북한이 공산화되고 남북이 분단됐다. 6·25 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오자 문 대통령의 선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조국이 통일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고 한다.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북한 지역이 다시 공산화될 위기에 처하자 문 대통령의 부모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바로 흥남철수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흥남철수 당시 미군이 제공한 선박을 통해 약 9만 1000명의 피란민이 흥남에서 남쪽으로 철수했다. 특히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 한 명의 피란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갑판과 화물칸에 있던 무기와 화물을 바다에 버리고 정원 60명인 배에 무려 300배에 가까운 1만 4000명의 피란민을 태운 뒤 흥남부두를 출발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1만 4000여명의 피란민 중에는 문 대통령의 부모도 타고 있었다. 1951년 12월23일 흥남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5일 거제항에 도착했고, 문 대통령은 2년 뒤 거제에서 태어났다. 훗날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으로 불린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장진호 전투’였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이 북측의 임시 수도인 강계 점령 작전을 수행하던 중 중국군 9병단(7개 사단 병력·12만명 규모)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2주 만에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전투를 일컫는다. 이 전투로 미 해병1사단은 3명 중에 1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해 5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됐다. 그러나 미 해병1사단이 2주간 12만명에 달하는 중국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들이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10만명에 달하는 피난민은 북한을 떠날 수 없었다. 물론,문 대통령의 일생도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심혈을 기울여 참전용사들 앞에서 읽을 연설문을 직접 수정했다고 전한다. 연설문에서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 것은 과장없는 사실을 통해 문 대통령의 진심을 표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선 직접적인 방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등병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미 해병대 중장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옴스테드 중장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 추진단체의 고문이기도 하다. 옴스테드 중장은 “3일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 길을 찾지 못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기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해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며 당시 처절했던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문 대통령에게 기념배지를 선물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은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강조하면서 흥남철수 당시 직접 촬영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사진을 선물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갑판에서 찍은 사진인데 갑판 밑 화물칸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고 한다”며 부모님께 들은 말을 전했다. 배지와 사진 등을 선물 받은 문 대통령은 “제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라며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이 이제 50분도 남지 않았다는데 부디 오래 사셔서 통일된 한국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한 후 문 대통령은 ‘숭고한 희생으로 맺어진 동맹.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띠가 매어진 화환을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 헌화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 등과 함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오른쪽에 산사나무 한 그루를 기념식수했다. 산사나무의 별명은 ‘겨울왕’(Winter King)으로 혹한을 이겨낸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의 용기를 상징한다. 이날 행사는 40분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문 대통령이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70분간 진행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반갑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 후 현지교민과 인사

    [서울포토] ‘반갑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 후 현지교민과 인사

    문재인 대통령이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행사를 마치고 나오다 마중나온 현지교민 들과인사를 나누고있다. 콴티코=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도착했어요!” 문 대통령 방미…첫 일정은 ‘장진호 전투’

    [서울포토] “도착했어요!” 문 대통령 방미…첫 일정은 ‘장진호 전투’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미국 순방에 나선 문재인대통령과 부인 김정숙여사가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위치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했다. 콴티코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한미동맹 더 강하게 발전할 것 ”

    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한미동맹 더 강하게 발전할 것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해 첫 공식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있는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기념사를 통해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라며 “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초 제막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우리 대통령이 찾은 것은 처음이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중국군 7개 사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 속에 2주 만에 극적으로 철수에 성공한 전투로, 미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 있다. 이는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케 했고, 당시 1만 4000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문 대통령의 부모도 타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67년 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며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고, 빅토리아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제 부모님도 계셨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2년 후 저는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하다”며 “제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67년 전 자유와 인권을 향한 빅토리호의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며, 저 또한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다.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저는 오늘 이곳에 별칭이 윈터킹(winter king)인 산사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며 “이 나무처럼 한미동맹은 더욱더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며, 통일된 한반도라는 크고 알찬 결실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은 기념사에서 “장진호 전투가 대통령님께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대통령님의 가족은 우리 해병, 특히 해병1사단과 개인적 인연을 맺고 있다”며 “인연을 소중히 여겨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넬러 사령관은 “장진호 전투에 관한 위대한 전설은 불가능을 극복한 최고의 일화로 남아 있다”며 “한미 양국과 국민이 함께하는 동맹을 재확인하고 더욱 공고히 했기에 그런 위대한 유산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미 해병은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이 자리에 문 대통령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늘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라며 말을 맺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대통령 방미 출국] 美 도착 후 곧장 장진호碑 헌화… ‘동맹외교’ 시동

    [文대통령 방미 출국] 美 도착 후 곧장 장진호碑 헌화… ‘동맹외교’ 시동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9일(한국시간) 정상외교 데뷔 무대인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땅을 밟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취임 후 51일 만으로, 역대 정부를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으로 기록되게 됐다. 문 대통령은 도착하자마자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3박 5일간의 공식 순방 일정을 시작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공항을 출발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안호영 주미대사 내외, 김영천 워싱턴지구 한인연합회장, 황원균 민주평통 워싱턴 협의회장, 로즈마리 폴리 의전장 등이 마중을 나왔다. 앞서 서울공항에서 별도의 환송 행사는 없었다. 문 대통령이 의례적인 환송식을 가급적 하지 말고 환송 인사 규모도 최소화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손수 가방을 들고 이동했고 수행원이 달라고 했지만 사양하기도 했다. 14시간의 비행에 따른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문 대통령은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장진호 전투 기념비가 있는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박물관을 찾았다. 이 일정은 대통령의 개인사는 물론, 한국 현대사, 한·미 동맹의 역사가 맞물린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순방 일정 대부분을 미국 측에 맡겼던 우리 측이 준비단계부터 특별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30일 저녁(한국 시간) 이번 순방의 하이라이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갖는다. 두 정상은 회담이 끝난 뒤 양국관계 발전과 주요 현안에 대한 합의사항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공동 언론발표를 통해 정상회담의 결과와 의미를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여야 대표에게 방미 결과를 설명할 계획이다. 한편 문 대통령 방미 중 청와대는 비상근무체제로 전환했다.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은 전날 공직기강 예비주의보 1호를 내렸다. 예비주의보에는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 중 직원들은 공·사생활에서의 언동에 각별히 유의하여 주시고 음주운전, 직무 태만 등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직기강 확립에도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란다”고 돼 있다. 워싱턴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서울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나도야 귀신잡는 해병” 탈북 대학생들의 이색 해병대 병영체험

    “나도야 귀신잡는 해병” 탈북 대학생들의 이색 해병대 병영체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회에 정착하는 데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해병대 제 2사단이 탈북대학생을 대상으로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실시한 해병대 병영체험에서 훈련에 참가한 계은진씨가 소감을 밝혔다. 이날 병영체험에는 탈북대학생 45명이 지원했다. 남한학생 18명과 탈북학생 22명, 관계자 5명으로 이 가운데 여학생 19명이 참가했다. 6월 호국보훈의 날을 맞아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마련됐다. 탈북대학생들은 남한생활에서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이겨내고,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높이고자 병영체험에 나섰다.병영체험 첫날에는 2박3일간 동고동락할 팀을 편성하고 모형탑 이탈 훈련과 암벽등반 체험 훈련을 실시했다. 첫날 훈련 말미에 탈북대학생들은 자기소개와 참가 동기를 얘기하는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다소 낯설었던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자리였다. 훈련 둘쨋날에는 때이른 무더위에 외줄타기 등 강도 높은 유격훈련으로 온몸이 땀과 진흙으로 흠뻑 젖었다. 특히 무거운 보트를 머리에 이고 뜨거운 뱃사장을 뛰어다니며 바다로 돌진하는 IBS보트 훈련은 힘들면서도 즐거운 추억의 병영체험이었다. 특히 이번 체험에는 3명의 ‘귀환국군용사’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가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학생들에게 남한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겨줬다. 마지막날에는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견학하고 해병대 제 2사단 상장대대를 방문해 상륙장갑차 시승 체험을 가졌다. 이번 훈련을 지원한 교육대장 권주일 대위는 “앞으로도 탈북 대학생들을 통일미래 인재로 키우기 위해 안보교육과 병영체험 등 다양한 현장 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日, F35 전투기에 ‘지상공격 미사일’ 검토

    전수방어 벗어나 공격력 보유 ‘평화헌법’ 내용 전면 배치 의미 일본 정부가 올해 말부터 항공자위대에 배치하는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에 적의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공대지(空對地)미사일을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26일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2018년 예산에 관련 비용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치가 결정되면 자위대의 첫 공대지미사일 도입이 이뤄진다. 이는 지금까지의 전수방어에서 벗어나 공격 능력을 지닌다는 의미를 갖는다.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는 교전권을 포기한 현행 일본의 ‘평화헌법 내용’에 배치된다. 일본 정부는 외딴섬에 적이 침투하는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의 분쟁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기습 공격 가능성 견제 및 북한의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사거리 300㎞ 수준으로, 노르웨이가 개발 중인 조인트 스트라이크 미사일(JSM)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해상의 함선을 공격하는 공대함(空對艦) 능력과 함께 항공자위대가 보유하지 않은 공대지 능력도 갖고 있다. 항공자위대는 F4 전투기의 후속으로 적의 레이더에서 탐지가 힘들게 고도의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를 연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연말 아오모리현 미사와기지부터 순차적으로 42기를 배치한다. 일본 정부는 육상자위대에 신형 수송기 오스프레를 도입하고 해병대 기능을 가진 수륙기동단을 창설하는 등 외딴섬 방어 강화 계획을 하고 있다. 여기에 JSM까지 도입하면 외국함이 외딴섬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거점이 되는 섬의 탈환 작전에도 유용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중국·북한의 무력 위협을 구실로, 자위대를 전쟁과 공격이 가능한 군대로 변신시키고 있다는 지적과 무관하지 않다. 아베 신조 정권은 여당 자민당의 제언을 바탕으로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추진해 왔다. 자민당은 최근 차기중기방위력정비계획(2019~2023년)에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검토 개시를 촉구하는 중간보고를 발표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한·미 굳건한 동맹 바탕으로 ‘한반도 新경제지도’ 그린다

    한·미 굳건한 동맹 바탕으로 ‘한반도 新경제지도’ 그린다

    첫 일정 장진호 전투비에 헌화 美희생 강조 우호적 분위기 조성 오는 29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키워드는 ‘한·미 동맹’이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대부분의 일정이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상징적 행사로 채워졌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케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워싱턴에 도착해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돌입한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말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인공호수 장진호 인근에서 북상 중이던 미 해병대 위주의 유엔군이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의 야간 매복공격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은 전투를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군의 희생으로 흥남철수 작전이 가능했고, 문 대통령의 부모도 남쪽으로 피란을 왔다. 미군 측의 대규모 피해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전투로 기록된 이유다.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6·25전쟁 제67주년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서 “흥남에서 피란 온 피란민의 아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여러분과 함께 있다”며 흥남철수와 자신의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통령 문재인’도 없었을 것이란 점을 강조해 본격적인 정상회담에 앞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근현대사에 얽힌 가족사와 미국의 인연을 전면에 내세운 ‘맞춤전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번째로 이뤄지는 외국 정상(문 대통령)과의 백악관 환영 만찬, 방미 마지막 날인 30일 6·25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함께하는 6·25 참전기념비 헌화식 또한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춘 행사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번 방미를 통해 한·미 정상이 긴밀한 우의와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향후 5년간 필요할 때 수시로 통화하고 상호 방문하는 등 긴밀한 협의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관계를 복원해 한반도를 동북아 산업·물류·교통의 중심지로 만드는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구상하고 있다. 그 첫 단추가 한·미 동맹 강화다. 양국 간 정상회담이 끝난 뒤 발표할 공동 문건의 형식은 ‘공동성명’으로 했다. 공동 문건은 공동선언, 공동성명, 공동언론발표문으로 나뉘는데 ‘격’을 따지자면 공동성명은 공동선언보다 한 단계 낮다. 한·미 동맹 60주년 당시 양국은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상견례나 탐색전 형식의 첫 만남인 만큼 ‘공동성명’ 형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결과를 설명하지만 질의응답은 받지 않는다. 미국 기자들이 미국 내 이슈에 집중해 문 대통령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국 측이 질의응답을 생략하자고 우리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해병대 캠프서 친구 구하다 숨진 고교생...소송 시한 넘겨 의사자 인정 못 받아

    해병대 캠프서 친구 구하다 숨진 고교생...소송 시한 넘겨 의사자 인정 못 받아

    2013년 충남 태안 ‘해병대 병영 체험 활동’에서 친구를 살리고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의 가족이 해당 학생을 의사자(義死者)로 인정해달라 행정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에 정해진 90일이라는 소송 제기 시한을 넘겼다는 것이 이유였다.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 이진만)는 26일 숨진 A군 가족이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고 밝혔다. 2013년 7월 18일 고등학생이었던 A군은 같은 학교 재학생들과 태안군 안면읍에서 ‘해병대 병영 체험 활동’을 하다가 사고로 숨졌다. 학생들은 당시 바닷가에서 구명조끼를 벗고 어깨동무를 한 채 앞뒤로 눕기를 반복하는 훈련을 받다가 파도에 휩쓸렸다. A군은 겨우 몸을 추슬러 뭍으로 나왔으나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 친구들을 구하고,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가족은 2013년 9월 A군을 의사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으나 ‘A군이 친구들을 구조하려 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태안군수로부터 거부 통보를 받았다. 이후 가족은 복지부에 이의를 신청했으나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통보받자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군 가족이 결정을 통보받은 뒤 90일 넘은 2016년 6월 15일 소송을 제기해 제소 기간(90일)을 넘겼기 때문에 부적법하다”며 본안을 살피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각하’로 마무리했다. A군 가족은 복지부 이의신청 결과가 나온 2016년 4월 4일부터 제소 기간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복지부에 낸 이의신청을 행정소송 대상이 되는 ‘행정심판’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태안군이 A군 가족에게 의사자로 지정하지 않는다는 처분을 통보하면서 불복 방법을 ‘이의신청’과 ‘행정쟁송(심판·소송)’으로 구분해서 알렸고, 제소 기간도 처분 후 90일이라고 안내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글로 죽 가당 보믄 큰큰헌 소낭이 나옵니다게. 그듸서 노단펜으로 돌아상 돌으멍갑서” “알아수다. 온 덴 헌 건 어떵 됨수과?”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강원도 도솔산 고지 쟁탈전에서는 난데없이 이같은 말들이 무선 교신을 타고 오갔다. 암호문 같지만 제주도 말이다. 연대와 대대 등 각 통신병을 제주사람으로 두고 제주어로 교신하도록 하는 ‘비밀 작전’이 있었다. 인민군이 교신을 들어봤자 뜻을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리로 죽 가다가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달려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지원 온다고 한 것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도솔산 전투는 무전기를 적에게 빼앗기는 일로 우리 해병의 작전상의 비밀 유지가 어려웠다. 당시 대대장이던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2008년 3월 국방일보 기고문에서 “몇 대의 무전기를 빼앗겼다고 해서 연대 전체의 통신기를 다 바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며 “우리의 통신 내용을 적이 훤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걱정이 큰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평소 태평양전쟁사를 즐겨 읽었다는 공 전 사령관은 태평양전쟁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군이 인디언 ‘나바호(Navajo)’ 족의 언어를 암호로 이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미 해병대에 배치된 나바호족 인디언 400여명은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유 언어를 구사하며 전령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 대대장은 제주어 교신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후 포대 지원, 병력 이동 사항, 부상병 발생 사항 등 모든 교신이 제주어로 대대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대대로 전달됐다. 당시 해병대의 주축인 해병 3기와 4기생 3000명이 모두 제주사람이어서 제주어로 대화가 가능해 지휘 체계에서 메시지 전달이 수월했다.제1연대 1대대 통신병을 한 강용택(86)씨는 “당시에는 제주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많이 진출하지 않았던 데다, TV 등 미디어가 없어서 제주어를 난생처음 듣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강씨는 “제주어는 ‘~라고 햄쪄’(한다) 등 서술어가 짧고 표준어와 전혀 달라서 무슨 말을 하든 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부의 결정에 따라 중요사항이든 가벼운 사안이든 모든 교신을 전부 제주어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비밀 교신작전은 해병대 역사관에 전시되거나 해병대 70년사 등에 수록되지 않았다. 당시 참전한 장교 등 장병들의 증언은 있으나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작고한 해병대 종군기자인 고영일씨는 해병대 3·4기 전우회가 발간한 ‘인천상륙·서울수복 작전의 주역’에서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적에게 점령되었을 때 염리동의 미군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무선전화기가 적에게 뺏겨 부대 간 통화는 도청됐을 것”이라며 제주 출신 해병대가 작전에 동참한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제주어 교신 작전이 진행됐다고 증언했다. 해병대 역사관 관계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3·4기생 가운데 제주 출신이 많았고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 등 장병들의 증언으로 제주어 교신작전은 사실로 확인됐다”며 “이런 사실에 대한 채록 등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평창올림픽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 경기북부 경찰특공대 다음달 창설

    ‘평창올림픽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 경기북부 경찰특공대 다음달 창설

    평창 동계올림픽과 북한 도발 등을 대비하기 위한 대테러 경기북부 경찰특공대가 다음달 창설된다.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다음달 6일 경기북부 경찰특공대를 창설한다고 25일 밝혔다. 선발된 특공대원들은 UDT(해군특수전부대)·707특임대·해병대·특전사 등 특수부대 출신 비율이 절반 이상이며, 무도 단수를 합치면 총 115단으로 개인별 평균 5단이다. 앞서 선발된 전술요원, 폭발물 탐지요원, 폭발물 처리요원 등 경찰특공대 요원은 일주일간의 자체 교육과 한 달간의 전술 심화훈련을 마쳤다. 폭발물 탐지요원에는 미국 경찰견 트레이너 코스를 수료하거나 탐지견·수색견·구조견 등 특수임무견 훈련 교관 출신들이 포진했으며, 폭발물 처리요원에는 한·미 합동 폭발물 처리 훈련을 40회 이상 수행한 군 간부 출신 등 최정예 요원이 선발됐다. 이들은 앞으로 경기북부와 강원도 지역에서 테러 진압, 인질 구출, 폭발물 처리 등 독자적인 특수작전을 수행한다. 그동안 경기북부·강원지역에는 경찰특공대가 따로 없어 대테러 상황 대처나 국제행사의 안전 확인을 위해서는 서울경찰특공대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특공대 청사는 현재 의정부시 금오동 경기북부경찰청사 부지 내에 임시로 마련됐으며, 정식청사는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준비되는 대로 이전할 예정이다. 경기북부 경찰특공대는 6일 열릴 창설식에서 최근 서울 연세대에서 발생한 사제 폭발물 사건을 똑같이 재연, 대응 시범을 비롯해 레펠, 헬기 하강, 폭발물 탐지견 시범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철성 경찰청장,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지역 국회의원, 경찰 협력단체 관계자 등 약 300명이 창설식에 참석한다. 경찰 관계자는 “접경지역의 특성에 맞는 전력을 갖춰 테러 위험으로부터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라며 “내년에 개최 예정인 평창동계올림픽 대비에도 온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CEO 플러스] 강원 스키발전의 작은 영웅… 성공적 평창올림픽 꿈꾼다

    [CEO 플러스] 강원 스키발전의 작은 영웅… 성공적 평창올림픽 꿈꾼다

    제23회 평창 동계 올림픽이 앞으로 약 9개월이면 열린다. 올림픽은 2018년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개최된다. 지난 2011년 7월 제123차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결정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이자 1988년 서울 올림픽(하계) 이후 두 번째 올림픽이다. 이번 평창올림픽대회 슬로건은 ‘하나 된 열정’으로 영어로는 ‘Passion. Connected.’이다. ‘Passion’은 올림픽의 정신과 한국의 정을 의미하며 ‘Connected’는 평창의 새로운 시작과 세계의 조화를 표현한 것이다.이 올림픽 유치의 공은 김진선 전 강원도 지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많지만 이 모든 이들의 공적을 합쳐도 이 한 사람의 개척정신이 없었더라면 평창 겨울 올림픽은 불가능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의 이름은 김석원(1945년생) 전 쌍용그룹 회장이다. 그래서 현재 대한스키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2016년 4월 대한민국 스키 발전에 기여한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이 1974년 용평에 스키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리조트를 만들었고, 그가 올림픽 개최 가능성을 가장 먼저 확신한 사람이며, 그가 스키 인구 4000명을 600만명으로 키운 제1 공로자인 까닭이다. 김석원 전 회장은 만능 스포츠맨 한국보이스카우트 총재를 지내면서 1991년 8월 세계 잼버리 대회를 강원도 고성에서 개최한 적도 있는 김 전 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지리감이 선천적으로 좋다고 한다. 아버지의 자가용 운전사가 모르는 길을 갈 때는 소년 김석원을 옆자리에 앉혀 길잡이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지도를 입체적으로 본다. 김석원이 용평을 미래의 겨울 올림픽 경기장으로 발견한 때는 1971년 2월 초였다. 만 26세이던 김 씨는 해병대에 자원입대, 사병으로 근무하다가 월남전선 파견 명령을 받고 휴가를 얻었다. 이때 혼자서 찾아간 곳이 평창군 횡계리 ‘대관령 산장’이었다. 산장 관리인에게 “여기 스키장이 있다는 데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관리인은 턱짓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스키장이요? 아 저기 보이는 게 다 스키장이지요. 언덕배기에 눈이 쌓이면 그게 다 스키장 아닙니까?” 그는 특유의 지리감으로 “여기는 될 곳이다”는 확신을 가졌다. 김 회장은 월남에서 수색대 파견 뒤 의무병으로 근무하다가 귀국, 1972년 8월에 제대하였다. 아버지 김성곤 씨는 쌍용양회 등 여러 기업을 일으킨 사람이자 여당인 공화당의 실력자였으나 1971년 10월의 당내 항명파동의 주역으로 나섰다가 장기집권을 결심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에 의하여 공직에서 추방된 뒤 조심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김석원 씨는 1972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진부령, 대관령 지역을 답사했다. 지프에 트레일러를 달고 스노모빌을 실었다. 눈밭을 달리는 1인승 스노모빌을 처음 본 사람들에겐 좋은 구경거리였다. 그는 대규모 스키장의 4대 조건을 물, 도로, 전기, 그리고 휴전선으로부터의 거리로 잡았다. 이 기준으로 평가하니 진부령보다는 대관령 지역이 유리했다. 김 씨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한 편이다. 일본의 스키장 전문 조사기관 세 곳과 프랑스의 한 회사에 용역을 주었다. 이렇게 하여 확정된 곳이 해발 1400m가 넘는 발왕산 기슭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용평 일대이다. 김석원은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녔다. 일본의 사정에 밝았다. 당시 일본의 스키 인구는 약 1000만명이었다. 김석원은, 한국도 소득 향상으로 스키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될 수 있었던 요인 중엔 골프장, 스키장, 콘도미니엄 등 시설들이 세계적 수준의 친환경 미관을 가진 점이다. 이 또한 김 전 회장의 집념과 안목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강릉지역사회발전에 앞장서는 심 대표 김 전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의 큰 영웅이라면 심형섭 강릉주택 대표는 작은 영웅이다. 그는 강원도 강릉에서 ‘강릉주택’을 국내 중견 건설사로 키워오며 재단법인 효천공원 이사장으로 우리나라 장묘문화 발전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심 대표는 김 전 회장이 하는 작고 큰일에 힘을 합치며 동계올림픽 성공에 앞장서고 있다. 국민대 출신인 심 대표는 강원도 스키협회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스키 인구 저변확대에 온 힘을 기울이는가 하면 강원도 지역 스키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온 것은 강원도에서는 잘 알려졌다. 한편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종목은 아이스하키 종목이다. 아이스하키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동계올림픽의 중심이며 최고 인기 종목이자 사실상 유일한 대규모 단체종목이며 꽃이나 다름없다. 아이스하키에서 관중동원의 5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박갑철 전 아이스하키협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역사이기도 하다. 현재 심 대표는 경북 청도에서 친환경 납골공원을 꿈꾸며 재단법인 효천공원의 활성화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항상 잘될 것 이라는 긍정적인 ‘힘’으로 매사에 임하고 있다. 그는 현재 대구에는 화장장이 있으나 청도, 경산, 영천에는 아직도 화장장이 없다고 말한다. 강릉지역사회발전은 물론 건설업계, 체육계 발전에 앞장서며 국내 장묘문화를 이끌고 있는 심 대표. 우리가 심형섭 대표의 향후를 기대하는 대목이다. 홍의석 객원기자 hong5960@seoul.co.kr
  • [일자리 해법 찾기] 부사관·의무 군무원 하반기 1500명 채용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확보’ 시책에 부응하고 정예화된 병력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올해 하반기에 부사관과 의무군무원 등 1500명을 채용한다고 19일 밝혔다. ●文정부 공공 일자리 확대에 부응 총 1160명을 뽑는 부사관은 군별로 육군 817명, 해군 175명, 해병대 67명, 공군 101명 등이다. 군무원은 간호사 133명, 간호조무사 71명, 약사 38명, 치과위생사 22명, 물리치료사 20명, 의무기록사 16명, 임상병리사 10명 등 340명을 뽑는다. 이번 대규모 부사관 및 군무원 공채는 일자리 중심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1만 2000명 충원 계획에 포함된 것이라고 국방부 측은 설명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충원의 10% 이상을 군이 책임지는 셈이다. ●軍, 간부 중심 병력 정예화 속도 특히 부사관 증원은 국방개혁과도 맞물려 있다. 국방부는 병력 감축에 따른 전투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간부 중심 병력구조로의 전환을 서둘러 매년 일정 규모의 간부를 뽑고 있던 터였다. 내년에도 부사관 2915명을 포함, 총 3089명의 간부를 증원할 계획이었으나 이 중 특히 시급한 중사, 하사 등 하위계급 부사관 1160명을 연내 뽑기로 한 것이다. 의무군무원 채용은 무자격 의무병 대체 성격이다.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하반기에 군별 채용 절차를 진행해 연말까지 선발을 확정한다. 선발된 인원은 내년부터 각 군 부대에 배치되어 근무한다. 국방부는 “청년층 취업률 제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간부 중심 병력구조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한·미 연합훈련 30개월간 130여회… 키리졸브·을지 등 대규모는 10여회

    한·미 연합훈련 30개월간 130여회… 키리졸브·을지 등 대규모는 10여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최근 미국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및 미국 전략자산 전개 축소를 연계할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가 서둘러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 연합훈련 규모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15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고 북한 관영매체들은 곧바로 “연합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19일 군에 따르면 한·미 양국 군은 2015년 1월 이후 2년 반 동안 130여차례의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여기에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가 각각 별도로 주한미군 등과 진행하는 소규모 연합훈련이 포함돼 있다. 북한이 문제 삼는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은 매년 3~4월 실시되는 키리졸브 훈련 및 독수리 연습과 매년 8월 진행하는 을지포커스가디언 연습을 비롯해 10여차례로 파악됐다. 올해도 한·미 양국 군은 지난 3월 1일부터 두 달간 30여만명의 병력과 미 핵항모 칼빈슨호를 비롯한 전략자산 등을 동원해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특히 칼빈슨호 항모전단은 3월 연합훈련을 마친 뒤 남하했다가 4월 말 다시 한반도 해역에 진입, 우리 해군 함정들과 한 달여간 해상훈련을 진행해 연쇄적으로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미 전략자산의 전개도 부쩍 빈번해졌다. 지난해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나서자 미국은 4일 후 괌 기지에서 B52 장거리폭격기 편대를 한반도로 전개했고 다음달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자 F22 랩터 4대를 전개해 위력을 과시했다. 올해 들어 북한이 10차례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공언하면서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는 거의 상시적으로 한반도 상공에 출격하고 있다. 군 내부에서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ICBM 도발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미 연합훈련과 미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와 무관치 않다며 문 특보의 주장을 일축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편 한·미 해군은 23일부터 사흘 동안 캐나다 해군과 3국 해군 해상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도중에 양국 해군 간 북한 탄도미사일 탐지훈련을 별도로 진행할 계획이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6년 전 주인 재회한 개, 눈 멀었지만 체취로 알아채

    6년 전 주인 재회한 개, 눈 멀었지만 체취로 알아채

    과거 폭발물 탐지견으로 활동했던 개가 함께 복무했던 해병대 조련사와 6년 만에 다시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이 일어났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오션사이드 출신의 데이비드 헤레라(29)와 그의 예전 파트너였던 개 카쉬(9)가 재회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2010년 5월, 당시 2살이었던 해병대 탐지견 카쉬는 헤레라를 처음 만났다. 둘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하츠빌에서 함께 훈련을 받다가 아프가니스탄의 상인 지역 지뢰지대에 배치됐다. 그곳에서 헤레라는 약 30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며 도로에 폭탄이 있는지 확인하고 길 밖으로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있었던 헤레라와 카쉬는 7개월 동안 트럭에 살다시피하면서 거의 매일을 함께 보냈다. 헤레라는 “카쉬는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들었었는지, 관심을 끌려고 내 주변을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그리고 나와 우리팀 동료들의 목숨을 여러 번 구했다. 우리는 폭탄이 터지는 곳에서 어려운 시기를 몇 번이고 함께 겪으며 사이가 돈독해졌다”며 카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각별했던 둘은 2011년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고, 카쉬는 새로운 트레이너에게 보내졌다. 한동안 카쉬를 잊지 못했던 헤레라는 마침 오랜 친구에게서 카쉬가 퇴역해 텍사스주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 길로 곧장 카쉬의 가족을 방문한 헤레라는 카쉬와 재회하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사이 카쉬에게 변고가 생겼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것. 헤레라를 만난 카쉬는 그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헤레라의 체취를 인지하더니 기쁜 마음에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헤레라는 “카쉬가 처음에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내게 다가와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문 밖에 누가 있는지 냄새를 맡으려 노력중이었던 것 같다.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이 나인지를 알아차리자 매우 흥분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카쉬가 앞이 보이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슬프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그를 볼 수 있어 정말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다. 사진=인사이드에디션, 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6년 만에 만난 조련사, 냄새로 알아본 前 폭파물 탐지견

    6년 만에 만난 조련사, 냄새로 알아본 前 폭파물 탐지견

    미국 텍사스에서 앞을 못 보는 개가 6년 만에 만난 가족을 냄새로 알아봤다.前 폭발물 탐지견 캐시(Kash)는 자신과 지내던 해병대 조련사 데이비드 헤레라(David Herrera, 29)와 6년 만에 만났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18일이 보도했다.캐시는 헤레라와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돼 많은 생명을 구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 온 후 둘은 6년 동안 떨어져 지냈다. 올해 9살인 개 캐시는 이제 앞이 보이지 않지만, 냄새로 헤레라를 알아봤다. 캐시는 헤레라의 다리 사이를 뛰어다니며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뭉클한 순간은 영상에 담겼다.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 헤레라는 “매우 행복한 순간이었다. 캐시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헤레라와 캐시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하츠빌에서 함께 훈련을 받고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둘의 임무는 길 위의 폭탄을 탐지하는 일이었다고 인사이드에디션닷컴이 보도했다. 폭발물 탐지견 시절, 캐시는 급조 폭발물(IED)를 찾으면 주변을 뛰어다녀 헤레라에게 알렸다. 30명의 팀원들의 생명을 구한 적도 있다. 헤레라는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7개월 동안 거의 매일을 캐시와 트럭을 타고 위험한 도시들을 누볐다”며 “트럭이 폭발할 뻔한 적도 있다. 캐시가 우리를 살렸다”고 덧붙였다.2011년 미국으로 돌아온 캐시는 다른 조련사에게 보내져 둘은 헤어졌다. 헤라라는 캐시가 은퇴를 하고 텍사스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캐시를 찾아갔다. 헤라라는 “캐시가 제게 머리를 문질렀다.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했다”며 “제가 누군지 냄새를 맡으려고 했을 거다. 저를 알아보고 캐시는 흥분했다”고 말했다. 그는 “캐시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줄은 나중에 알았다”며 “캐시를 오랜만에 만나서 기쁠 따름이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Inside Edition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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