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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병대 첫 여자 헬기조종사 탄생

    해병대 첫 여자 헬기조종사 탄생

    해병대 창설 71년 만에 최초의 여군 헬기조종사가 탄생했다. 1일 해병대에 따르면 항공장교 조상아(27) 대위가 지난 9개월간의 조종사 양성과정을 마치고 최근 해병대 1사단 1항공대대에 배치됐다. 해병대에서 여군 헬기조종사가 배출된 것은 창설 이래 처음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는 조 대위는 2017년 해병대 장교로 임관한 뒤 병기탄약소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각종 훈련에서 항공기들을 바라보며 조종사의 꿈을 잊지 않았던 조 대위는 올해 항공장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는 해군 6전단 609교육훈련전대에서 강도 높은 조종사 양성과정을 이수했다. 헬기 이착륙, 제자리비행 등 80여 시간의 비행훈련을 거쳐 지난달 23일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을 수료했다. 조 대위는 해병 1사단 1항공대대에서 ‘마린온’(MUH1) 조종사 임무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뒤 조만간 작전에 투입된다. 마린온은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헬기로 최대 순항속도가 시속 265㎞에 달한다.조 대위는 “해병대 최초 여군 헬기조종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해병대 최고의 헬기조종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포토] 해병대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 탄생

    [포토] 해병대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 탄생

    해병대 창설 이후 71년 만에 처음으로 여군 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1일 해병대에 따르면 항공장교 조상아 대위(27·학군 62기)가 약 9개월 간의 조종사 양성과정을 마치고 최근 1사단 1항공대대에 배치됐다. 해병대에서 여군 헬기 조종사가 배출된 건 해병대가 조종사 양성을 시작한 1955년 이후 65년 만이자, 창설 연도(1949년)를 기준으로 하면 71년 만에 처음이다. 그는 1항공대대에서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 조종을 위한 추가 교육 이수 후 작전임무에 본격 투입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 로봇강국인데… 납품 못 받아 구형로봇 쓰는 軍

    로봇강국인데… 납품 못 받아 구형로봇 쓰는 軍

    폭발물 식별·회수·파괴 ‘EOD로봇’2018년부터 33억 800만원 편성에도납품 지연 등 말썽에 예산 이월·포기국회 “연구개발·해외 직구 검토하라”개인화기 조준경·고성능 확대경평가 불합격…미달 제품 보급될 뻔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로봇산업을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로 규정하고, 2023년까지 ‘로봇산업 글로벌 4대 강국’을 이루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로봇 보급량을 2018년 기준 32만대에서 2023년 70만대로 2배 넘는 규모로 늘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로봇 운용 측면에선 이미 ‘강국’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제조업 종사자 1만명당 로봇 활용대수(로봇밀도)는 710대로, 세계 평균(85대)의 8배가 넘는 압도적 1위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군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군은 2012년 처음으로 도입한 ‘폭발물 처리(EOD) 로봇’이 8년 동안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신 EOD 로봇을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경찰과 달리 장비 수요가 더 많은 군이 구형 로봇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인원이 55만명인 군이 현재 운용 중인 EOD 로봇은 29대뿐입니다. ●인원 55만명인데 EOD 로봇 29대뿐 군 EOD 요원은 평소 수류탄 폭발도 견딜 수 있는 두꺼운 방호복을 입지만, 수류탄보다 훨씬 위력이 센 폭발물도 많아 수시로 위험 속에서 임무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EOD 로봇은 숙련된 요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장비입니다. 원거리에서 의심 물체 식별, 회수, 파괴가 가능해 모든 선진국이 도입·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장에선 로봇 추가 도입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2012년부터 최근까지 허송세월만 보냈습니다. 여기엔 기막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29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국방부 화력장비 사업 예산에 EOD 로봇 도입 예산 33억 800만원을 편성했지만, 모든 군과 해병대의 획득사업 계약 지연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예산 24억 8100만원이 다른 분야로 이전됐습니다. 그나마 공군은 계약을 체결했지만, ‘선금 지급 제한 규정’에 걸려 예산 8억 2700만원이 다음해로 전액 이월됐습니다. 지난해는 더 많은 52억 4900만원을 편성했는데, 다시 계약업체 납기 미준수, 납품 지연 등의 말썽이 일어 49억 4700만원이 올해로 이월됐습니다. 3억원가량은 다른 분야로 사용처가 바뀌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올해로 예산을 이월한 공군은 아예 사업을 포기해 8억 2700만원이 불용 처리됐습니다.예산정책처 조사 결과 올해 5월 기준 EOD 로봇 도입사업은 장기간 납품 지체와 계약 불이행으로 지난해 확정됐던 예산마저 완전 취소되는 ‘참사’가 빚어졌습니다. 올해로 이월된 예산은 모두 불용 처리됐습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겁니다. ●‘장기 납품 지체’로 예산 불용 처리 국회는 신형 장비 도입이 시급한 상황에서 무작정 사업을 미룰 것이 아니라 아예 정부가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문제가 큰 ‘중개업체를 통한 해외구매’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예산정책처는 “폭발물 처리 업무를 대체하는 EOD 로봇의 조속한 획득이 필요하다는 요청에도 계약업체의 반복된 납품 지연으로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중개업체를 통한 해외 구매 방식을 연구개발로 전환하거나 해외 직접 구매로 전환하는 등 구매 방식 변경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국회가 군에 직접 제품을 개발하라고 독촉했을까요.EOD 로봇처럼 사업이 좌초된 것은 아니지만, 아찔한 경험을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워리어플랫폼 장비 예산 75억 8800만원 중 실제 집행된 금액은 21억 2300만원, 집행률은 28.0%에 그쳤습니다. 미집행된 예산 중 가장 큰 것은 ‘개인화기 조준경’(21억 6200만원), ‘고성능 확대경’(17억 2900만원) 예산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개인화기 조준경, 고성능 확대경, 원거리 조준경, 레이저 표시기 등 4개는 육군이 도입하는 ‘워리어플랫폼’ 전투장비 중 핵심으로 꼽힙니다. 워리어플랫폼은 장병들이 착용하는 피복, 장비의 성능을 개선해 전투력과 생존력을 높이는 사업으로, 2026년까지 3단계에 걸쳐 진행합니다.●조준경 등 ‘시범사업’ 도입하려다 제동 사업 추진 과정에 육군은 품질과 생산성이 검증된 해외품 도입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중소기업 육성’ 일환으로 민간 중소기업 상용품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짰습니다. 현장에서 시범사용을 해보고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은 ‘시험평가’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사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실제 전투 상황에서 사용할 장비이기 때문에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관적 잣대만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군 장비를 도입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무기 도입사업에서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평가에서 원거리 조준경과 레이저 표시기는 무난히 합격해 지난해 12월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그러나 개인화기 조준경과 고성능 확대경은 같은 해 9~11월 진행된 평가에서 군의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해 불합격 판정이 나왔습니다. 바로 군이 시범사용한 그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12월 재입찰 공고를 냈고, 올해 1~2월 평가를 다시 진행해 3월에야 최종 계약이 이뤄졌습니다.만약 검증 없이 제품을 도입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군 요구사항에도 미달하는 제품이 보급돼 큰 말썽이 빚어졌을 겁니다. 병사들의 생존성을 높이는 사업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산정책처는 “향후 육군은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장비 목적과 상용품 구매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방위사업청과의 협업을 통해 적절한 구매방식을 결정하는 등 사업계획을 철저히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죽어가는 딸 안아보겠다는 정치범 호소 외면한 필리핀 교정당국

    죽어가는 딸 안아보겠다는 정치범 호소 외면한 필리핀 교정당국

    죽음을 앞둔 생후 3개월 된 딸을 옥중에서라도 안아보고 싶다는 필리핀 여성의 호소를 교정당국이 외면해 결국 딸이 외롭게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도시 빈곤층을 돕는 카다마이(Kadamay)란 인권단체에서 일하던 레이나 메이 나시노(23). 지난해 11월 마닐라에서 동료 활동가 둘과 함께 체포됐는데 총기와 폭발물을 불법 소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좌파 활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된 경찰이 무기 등을 몰래 갖다둔 것이라고 나시노 등은 항변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월경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경찰을 피해 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가보다 했다. 감옥에서 진찰을 받으니 임신 3개월째라고 했다. 나시노는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하면서 교정당국에 석방해달라고 청했다. 코로나19을 핑계로 계속 재판을 미루던 사법당국은 지난해 4월 코로나가 확산되자 나시노를 비롯해 22명의 정치범을 석방했다. 그녀를 변호하던 변호사단체는 교도소나 병원에서 모녀가 함께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판사는 거부했다. 지난 7월 1일 리버를 낳았는데 체중 미달인 채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시노는 다음달 13일 감옥으로 돌아갔다. 필리핀 법률에 따르면 엄마와 아기는 첫 한달만 함께 교도소에서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말레이시아 교도소에서 출산한 엄마들은 아기가 서너 살이 될 때까지 함께 지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생후 18개월 때까지 지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대법원 앞에 촛불을 켠 채 항의시위를 벌였지만 소용 없었다. 나시노의 어머니는 매주 딸의 석방을 청원하는 편지를 당국에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나시노의 출산을 도운 의료진도 아기는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교도소는 모녀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등 온갖 핑계를 늘어놓았다. 여성 수감자에 대한 처우를 규정한 ‘방콕 룰’에 따르면 언제 아이를 엄마로부터 떼어놓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때를 고르도록 했다. 교도소는 변호사의 접견마저 코로나를 핑계로 허용하지 않아 전화로만 접촉할 수 있었다. 9월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리버의 상태가 나빠졌다. 설사를 매우 심하게 했다. 같은 달 24일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지난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이 소식이 알려지자 추모와 동정의 글이 소셜미디어에 넘쳐났다. 마침 성전환 여성을 살해한 미군 해병대원을 사면할 정도로 관대한 법원이 여성 정치범에게 가혹하고 잔인하게만 굴었다는 데 분노하는 이들이 많았다.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은 자녀 결혼식이나 졸업식에 참석하도록 일시 석방하면서 젊은 정치범에게는 일말의 동정도 없는 것이냐고 따지곤 했다. 궁색해진 법원은 딸의 마지막을 지키는 철야 기도회와 장례 등에 참석할 수 있도록 사흘의 외출을 지난 13일 허용했다. 하지만 교도소장이 개입해 14일 철야 기도회와 16일 안장식 3시간씩만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공무원 피살 16일째…文 “北과 마음 열고 소통하겠다”(종합)

    공무원 피살 16일째…文 “北과 마음 열고 소통하겠다”(종합)

    “한반도 ‘종전선언’ 위해 한·미 협력 희망”“북한과도 마음 열고 소통하고 이해할 것”“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 되돌릴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만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 국민을 서해상에서 총격해 사살한 지 16일 만에,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이어 다시 종전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화상으로 진행된 연설에서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다. 나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며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과 2019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화를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면서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 전쟁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고 제도화할 때 우리의 동맹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라고 강조하며, “한반도가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언급하며 “그는 ‘평화는 의견을 조금씩 나누고 바꿔가며 장벽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조용히 새로운 구조를 세워가는, 일일, 주간, 월간 단위의 과정’이라고 했다”며 “한·미 양국은 긴밀히 소통하고 조율하여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낼 것이다. 또 당사자인 북한과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이해하며,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졌다” 문 대통령은 “혈맹으로 출발한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의 핵심축이 되는 평화·안보동맹으로 거듭났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 역동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는데도 든든한 보호막이 됐다”며 한·미 동맹도 높게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우리의 동맹은 코로나 위기에서도 빛났다”며 “한국이 초기 코로나 발생국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미국은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에 기반한 한국의 방역 대응을 신뢰하며,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 허용을 유지해주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시작을 위한 한반도 종전선언을 국제사회가 지지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북한군이 지난 22일(한국시각)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총살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16일 만에 다시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엔 북한군에 사살된 해수부 공무원의 고등학생 아들 이모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바 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한미 간 정치·경제·문화·예술 분야 교류 촉진을 위해 1957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양국 국민 간 유대관계 및 이해증진을 위한 사업들을 실시해 오고 있다. 이번 만찬은 코리아소사이어티가 한미관계 발전을 위해 기여한 분들을 초청하는 연례행사이다. 이날 행사에선 한미 우호관계 증진에 업적을 세운 한국인과 미국인들에게 ‘밴 플리트 상’이 수여됐다. 올해 수상자는 찰스 랭걸 전 연방하원의원과 살바토레 스칼라토 뉴욕주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회장 등 미국 내 한국전 참전용사들, 대한상공회의소, 방탄소년단(BTS)이다. 문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축하 인사도 전했다.다음은 문 대통령의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 만찬 기조연설 전문 코리아 소사이어티 캐슬린 스티븐스 이사장님, 토마스 번 회장님, 함께하신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한미 양국을 잇는 든든한 가교입니다. 1957년 창설과 함께 양국 간 교류와 우호 협력은 물론, 국제사회가 한국을 이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연례 만찬은 한미 관계 발전에 힘써 주신 분들을 초청하는 행사입니다. 이 중요한 행사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분을 직접 뵙지 못하고 부득이 영상으로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하게 되었지만, 양국이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귀빈 여러분, 어려운 때일수록 ‘진정한 친구’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살바토르 스칼라토 뉴욕주 참전용사회 회장님은 미 해병대 1사단의 용사로, 사선을 넘나들며 싸우신 분입니다. 찰스 랭겔 前 연방 하원의원님 역시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하셨고,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을 주도하신 것을 비롯해, 46년 의정활동 내내 한미동맹의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오셨습니다. 한국인들은 두 분을 포함한 수많은 참전용사들을 ‘진정한 친구’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함께 싸워준 친구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 굳건한 한미동맹도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스칼라토 회장님, 찰스 랭겔 前 의원님, 그리고 두 분이 대표하는 모든 참전용사 여러분, ‘밴 플리트 상’ 수상을 한국 국민과 함께 축하드립니다. 한미동맹의 정신으로 경제협력을 이끌어온 박용만 회장님을 비롯한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 여러분, 양국 간 문화 교류의 핵심 역할을 해준 BTS 여러분의 수상도 축하합니다. 귀빈 여러분, 지난 67년간 한미동맹은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졌습니다. 혈맹으로 출발한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의 핵심축이 되는 평화·안보동맹으로 거듭났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 역동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는데도 든든한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미동맹은 명실상부한 경제동맹으로 양국 간 교역과 투자를 확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더욱 견고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설립자 故밴 플리트 장군은 한국의 발전을 자랑스러워하며, 한국을 “나의 또 다른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성취는 미국과 함께 이룬 것이며, 양국은 위대한 동맹으로 더 많은 성취를 이룰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공조 위에 디지털과 그린 중심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세계경제 위기도, 양국이 함께 대응하고 극복해 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을 떠받치는 힘은 양국 국민 사이의 끈끈한 유대와 문화적 가치의 공유입니다. 250만 재미동포들은 미국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자, 한미 우호 증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5만 명에 이르는 한국 유학생과 3천여 명의 미국 유학생은 더 풍성한 양국 관계의 미래를 예고합니다. 한국의 신세대는 한국적 감수성에 인류 보편의 메시지를 담아 세계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가 아카데미와 빌보드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양국이 문화의 가치를 공유해온 결과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코로나 위기에서도 빛났습니다. 한국이 초기 코로나 발생국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미국은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에 기반한 한국의 방역 대응을 신뢰하며,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 허용을 유지해주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4월 국내 코로나 확산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진단키트를 미국에 최우선적으로 제공했고, 참전용사들을 위한 50만 장의 마스크를 포함해 250만 장의 마스크를 우정의 마음으로 전달했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어느 한 국가의 힘만으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한미동맹의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할 때입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G7 정상회의 참여를 요청해주셨습니다. 양국 간의 깊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한국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것입니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입니다. 이제 한미동맹은 지역 차원을 넘어 글로벌 이슈에 함께 협력하며 새롭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안보협력과 경제·사회·문화 협력을 넘어, 감염병, 테러,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경적 위기에 함께 대응하며 ‘포괄적 동맹’으로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양국이 코로나 위기 극복의 선두에 서고 더 굳건한 동맹으로 새롭게 도약해 가길 기대합니다. 귀빈 여러분,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나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했습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만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입니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화를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합니다. 전쟁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고 제도화할 때 우리의 동맹은 더욱 위대해질 것입니다. 한반도가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평화는 의견을 조금씩 나누고 바꿔가며 장벽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조용히 새로운 구조를 세워가는, 일일, 주간, 월간 단위의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한미 양국은 긴밀히 소통하고 조율하여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또 당사자인 북한과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이해하며,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갈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코리아 소사이어티에 감사드립니다. 한국은 ‘진정한 친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향한 담대한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We go together!” 감사합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왜 마스크 안 써”…술집서 시비 끝 폭행당해 숨진 美 80세 남성

    “왜 마스크 안 써”…술집서 시비 끝 폭행당해 숨진 美 80세 남성

    미국의 한 마을 술집에서 80세 남성이 65세 남성에게 말할 때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는 등의 주의를 줬다가 폭행당해 의식을 잃은 지 나흘 만에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6일(이하 현지시간) CNN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뉴욕주(州) 이리카운티 웨스트 세네카에 있는 한 술집에서 로코 사피엔자(80)를 폭행한 도널드 르윈스키(65)가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됐다고 현지 검찰이 5일 발표했다. 존 플린 검사는 “도널드 르윈스키는 사건 당일 시내 술집에서 로코 사피엔자로부터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고 밖에서 연주하는 밴드에 맥주를 가져다줄 때 정기적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의를 받고 말다툼을 벌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르윈스키는 사피엔자를 덮쳐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사피엔자는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켜 이리카운티의료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나흘 만인 그달 30일 숨졌다. 사인은 검시 결과 두부 외상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숨진 사피엔자는 펜실베이니아주(州) 피츠버그 출신의 해병대 참전용사로 제철소에서 재직하다가 은퇴했다. 정의감이 강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었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사건 당일은 혼자서 단골 술집에 갔었다. 목격자들의 증언 등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이 술집의 단골 고객이었지만, 서로 안면은 없었으며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하지 않았었다. 단지 얼굴을 맞댄 순간부터 서로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가해자 측 변호인 배리 커트는 의뢰인은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면서 공격적인 행동을 취한 사람은 오히려 사피엔자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플린 검사는 “두 사람의 대치 상황은 또 다른 고객이 영상으로 촬영했지만, 오디오가 담기지 않았다”면서도 “유죄가 선고되면 가해자는 최고 징역 4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하태경 “자가격리 병사 164명, 공가 대신 연가 차감당해”

    하태경 “자가격리 병사 164명, 공가 대신 연가 차감당해”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를 한 육해공군 병사 총 164명이 격리기간만큼 개인 정기휴가(연가)를 차감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6일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자가격리 기간이 연가에서 차감된 불이익을 당한 병사는 육군 141명, 해군 9명, 공군 9명, 해병대 5명 등 총 164명으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코로나19 관련 장병 휴가지침’을 일선 부대에 내렸다. 지침에는 코로나19가 의심돼 자가격리가 필요하거나 확진 가족의 간호를 해야 하는 병사에게는 공가를 부여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군은 방역에 협조한 자가격리 병사 1076명 중 164명의 휴가를 공가 대신 연가로 처리했다. 공가란 공무 또는 천재지변 등으로 출근이 불가능한 경우 공적으로 부여받는 휴가다. 반면 연가는 병사 개인에게 부여된 정기휴가다. 하 의원은 “병사들의 개인 연가는 군인의 기본권으로 모든 병사가 한 달이 채 안 되는 개인 연가를 군 복무기간 동안 나눠쓴다”며 “일선 부대에서 코로나 지침까지 어겨가며 병사들의 개인 연가를 빼앗은 건 병사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 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단독] ‘로봇강국’이 8년째 구형 폭탄해체 로봇 쓰는 이유

    [단독] ‘로봇강국’이 8년째 구형 폭탄해체 로봇 쓰는 이유

    2018년부터 예산 책정해놓고…계약지연올해까지 3년간 불용예산…신형 도입 못해예산정책처 “차라리 연구개발·직구하라”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로봇산업을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로 규정하고, 2023년까지 ‘로봇산업 글로벌 4대 강국’을 이루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로봇 보급량을 2018년 기준 32만대에서 2023년 70만대로 2배 넘는 규모로 늘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로봇 운용 측면에선 이미 강국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제조업 종사자 1만명당 로봇 활용대수(로봇밀도)는 710대로, 세계 평균(85대)의 8배가 넘는 압도적 1위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군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군은 2012년 처음으로 도입한 ‘폭발물 처리(EOD) 로봇’을 8년 동안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신 EOD 로봇을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경찰과 달리 장비 수요가 더 많은 군이 구형 로봇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인원이 55만명인 군이 현재 운용 중인 EOD 로봇은 29대뿐입니다. ●인원 55만명인데 EOD 로봇 29대뿐 군 EOD 요원은 평소 수류탄 폭발도 견딜 수 있는 두꺼운 방호복을 입지만, 수류탄보다 위력이 센 폭발물도 많아 수시로 위험 속에서 임무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EOD 로봇은 숙련된 요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장비입니다. 원거리에서 의심 물체 식별, 회수, 파괴가 가능해 모든 선진국이 도입·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현장에선 로봇 추가 도입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2012년부터 최근까지 허송세월만 보냈습니다. 여기엔 기막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27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국방부 화력장비 사업 예산에 EOD 로봇 도입 예산 33억 800만원을 편성했지만, 모든 군과 해병대의 획득사업 계약 지연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예산 24억 8100만원이 다른 분야로 이전됐습니다. 그나마 공군은 계약을 체결했지만, ‘선금 지급 제한 규정’에 걸려 예산 8억 2700만원이 다음해로 전액 이월됐습니다. 지난해는 더 많은 52억 4900만원을 편성했는데, 다시 계약업체 납기 미준수, 납품 지연 등의 말썽이 일어 49억 4700만원이 올해로 이월됐습니다. 공군은 아예 사업을 포기해 기존 예산 8억 2700만원이 불용 처리됐습니다. 예산정책처 조사 결과 올해 5월 기준 EOD 로봇 도입사업은 장기간 납품 지체와 계약 불이행으로 지난해 확정됐던 예산마저 완전 취소되는 ‘참사’가 빚어졌습니다. 올해로 이월된 예산은 모두 불용 처리됐습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겁니다. ●장기 납품 지체 등으로 예산 불용처리국회는 신형 장비 도입이 시급한 상황에서 무작정 사업을 미룰 것이 아니라 아예 정부가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문제가 큰 ‘중개업체를 통한 해외구매’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예산정책처는 “폭발물 처리 업무를 대체하는 EOD 로봇의 조속한 획득이 필요하다는 요청에도 계약업체의 반복된 납품 지연으로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중개업체를 통한 해외 구매 방식을 연구개발로 전환하거나 해외 직접 구매로 전환하는 등 구매 방식 변경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OD 로봇처럼 사업이 좌초된 것은 아니지만, 아찔한 경험을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워리어플랫폼 장비 예산 75억 8800만원 중 실제 집행된 금액은 21억 2300만원, 집행률은 28.0%에 그쳤습니다. 미집행된 예산 중 가장 큰 것은 ‘개인화기 조준경’(21억 6200만원), ‘고성능 확대경’(17억 2900만원) 예산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준경 등 ‘시범사업’으로 도입하려다 제동 개인화기 조준경, 고성능 확대경, 원거리 조준경, 레이저 표시기 등 4개는 육군이 도입하는 워리어플랫폼 전투장비 중 핵심으로 꼽힙니다. 육군은 품질과 생산성이 검증된 해외품 도입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중소기업 육성’ 일환으로 민간 중소기업 상용품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짰습니다. 현장에서 시범사용을 해보고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그러나 방위사업청이 ‘시험평가‘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사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실제 전투상황에서 사용해야 할 장비이기 때문에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겁니다. 평가에서 원거리 조준경과 레이저 표시기는 무난히 합격해 지난해 12월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그러나 개인화기 조준경과 고성능 확대경은 같은 해 9~11월 진행된 평가에서 군의 요구사항을 충족 못해 불합격 판정이 나왔습니다. 바로 군이 시범사용한 그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12월 재입찰 공고를 냈고, 올해 1~2월 평가를 다시 진행해 3월에야 최종 계약이 이뤄졌습니다. 만약 검증없이 제품을 도입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산정책처는 “향후 육군은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장비 목적과 상용품 구매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방위사업청과의 협업을 통해 적절한 구매방식을 결정하는 등 사업계획을 철저히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생존 파악 후 6시간 방치한 軍… “北이 사살할 줄 예상도 못해”

    생존 파악 후 6시간 방치한 軍… “北이 사살할 줄 예상도 못해”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씨가 지난 22일 북한 해상에서 총격으로 참혹하게 목숨을 잃을 때까지 군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갈 동안 아무런 군 자산도 이를 포착하지 못해 총체적 경계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군 당국에 따르면 A씨가 NLL 북측 등산곶 인근에서 북한군에게 최초 발견된 시점은 22일 오후 3시 30분이다. 군도 그 시간에 시긴트(신호정보) 첩보를 활용해 동향을 파악했으나 당시에는 A씨라고 특정하진 못했다. 오후 4시 40분쯤 A씨의 표류 경위와 월북 진술 동향을 포착하고 나서야 북한군이 발견한 사람이 A씨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A씨는 오후 9시 40분쯤 북한군 총격으로 결국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군은 첫 포착 이후 6시간가량 아무 조치를 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 군 당국은 즉각 대처에 여러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우리 영토나 영해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즉시 대응하지 않았고, 북측 해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직접적인 대응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오후 10시 11분 A씨의 시신을 불태우는 상황을 포착하기 전까지는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가 습득한 정보를 바로 활용하면 정보자산이 그대로 드러나 앞으로 첩보를 얻지 못하는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지난 21일부터 A씨의 실종이 파악됐던 만큼 국제상선통신망 등을 이용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했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북측이 응답하지는 않더라도 군 통신선을 활용한 접촉 시도는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군 당국은 북측이 A씨에게 총격을 가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최근 북측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접경지역 무단 진입자에 대해 사살 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간과한 셈이다. 군 관계자는 “최근 (북중) 국경 지역에서 미확인된 인원을 사살한 사례는 있었다”면서도 “이렇게까지 나가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가 NLL을 넘는 순간에도 당국은 ‘깜깜이’였다. 군은 A씨 실종 이후 해병대 연평부대의 감시카메라를 모두 확인했지만 그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A씨가 이동한 약 38㎞의 경로조차 오리무중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해안 서북도서 지역의 경계작전 개념을 준수하면서 감시장비와 해상 세력의 추가 운용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A씨가 북상하는 동안 인근 지역 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NLL 가까이는 군함만 이동하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우리 군이나 북측도 잘 접근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실 은폐 및 축소 의혹도 나온다. 국방부는 A씨의 피살이 이뤄진 하루 뒤에야 실종 소식만 간단하게 밝혔다. 국방부는 “A씨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 분석 중”이라고만 했을 뿐이다. 이미 A씨가 사망한 뒤였지만 생존 여부조차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북한이 총격 이후 시신에 불을 질렀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신뢰성 검증으로 시간이 걸렸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무장하지 않은 사람에게 총격을 가하고 화장했다는 걸 첩보 상태에서 발표할 순 없다”며 “정보의 신뢰성과 사실관계 파악에 대한 검증 과정에 시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총격할 줄 몰랐다”는 軍…6시간 동안 지켜만 봤다

    “총격할 줄 몰랐다”는 軍…6시간 동안 지켜만 봤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씨가 지난 22일 북한 해상에서 총격으로 참혹하게 목숨을 잃을 때까지 군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갈 동안 아무런 군 자산도 이를 포착하지 못해 총체적 경계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군 당국에 따르면 A씨가 NLL 북측 등산곶 인근에서 북한군에게 최초 발견된 시점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이다. 군도 그 시간에 시긴트(신호정보) 첩보를 활용해 동향을 파악했다. 당시 군은 A씨라고 정확하게 특정하진 못했다. 오후 4시 40분쯤 A씨의 표류 경위와 월북 진술 동향을 포착하고 나서야 북한군이 발견한 사람이 A씨라는 것을 특정했다. 하지만 A씨는 오후 9시 40분쯤 북한군 총격으로 결국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군은 최초 포착 이후 6시간가량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 군 당국은 즉각적인 대처에 여러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우리 영토나 영해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즉시 대응하지 않았고, 북측 해역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응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오후 10시 11분 A씨의 시신을 불태우는 상황을 포착하기 전까지는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가 습득한 정보를 바로 활용하면 정보자산이 그대로 드러나 앞으로 첩보를 얻지 못하는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지난 21일부터 A씨의 실종이 파악됐던 만큼 정보 포착 이후 발 빠르게 북측에 대응해야 했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북측이 응답하지는 않더라도 군 통신선을 활용한 접촉 시도는 해 봐야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군 당국은 북측이 A씨에게 총격을 가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최근 북측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접경지역 무단 진입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간과한 셈이다. 군 관계자는 “최근 (북중) 국경지역에서 미확인된 인원을 사살한 사례는 있었다”면서도 “(북한이) 이렇게까지 나가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가 NLL을 넘는 순간에도 관계 당국은 ‘깜깜이’였다. 군은 A씨 실종 이후 해병대 연평부대의 감시카메라를 모두 확인했지만 A씨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A씨가 이동한 약 38㎞의 경로조차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A씨가 북상하는 동안 NLL 인근에서의 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NLL 가까이는 군함만 이동하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우리 군이나 북측도 잘 접근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군이 사실을 은폐 및 축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국방부는 A씨의 피살이 이뤄진 하루 뒤에야 실종 소식만 간단하게 밝혔다. 국방부는 “A씨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분석 중”이라고만 했을 뿐이다. 이미 A씨가 사망한 뒤였지만 생존 여부조차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북한이 총격 이후 시신에 불을 질렀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신뢰성 검증으로 시간이 걸렸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러 채널을 동원해 무장하지 않은 사람에게 총격을 가하고 화장했다는 걸 첩보 상태에서 발표할 순 없다”며 “정보의 신뢰성과 사실관계 파악에 대한 검증과정에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악뮤 이찬혁, 47억원대 건물 매입... “홍대입구역 근처”

    악뮤 이찬혁, 47억원대 건물 매입... “홍대입구역 근처”

    악뮤 이찬혁이 47억원대 홍대 건물주가 됐다. 지난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악뮤 이찬혁은 9월 중순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한 빌딩을 47억50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혁이 매입한 건물은 서교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의 토지면적은 313.1㎡(94.71평)이다. 또한 연면적은 555.29㎡(167.96평)이다. 1989년 준공한 이 빌딩은 지난 2016년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쳤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해당 건물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정도 거리에 있어, 입지 특성상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특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건물의 2020년 공시지가는 3.3㎡당 2052만원이지만 이찬혁은 건물가를 제외하고 3.3㎡(평)당 4749만원 수준에 매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996년생인 이찬혁은 지난해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지난 2012년 SBS ‘K팝스타 시즌2’에 동생 이수현과 함께 출연해 우승을 차지한 그는 이후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해병대 헬기사고’ 김조원에 시한부 기소중지...검찰 “최종 판단 아냐”

    ‘해병대 헬기사고’ 김조원에 시한부 기소중지...검찰 “최종 판단 아냐”

    2년 2개월 만에 기소중지검찰, 전문수사자문위 구성연말까지 사고 원인 밝힌다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 사고와 관련해 검찰이 당시 헬기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을 지낸 김조원(63)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대구지검 포항지청 형사1부(부장 김영오)는 지난 16일 김 전 수석 등을 오는 12월 31일을 기한으로 기소중지 처분했다. 시한부 기소중지는 의료·교통사고 관련 사건 등에서 전문가 감정이 필요할 경우 수사를 일시 중단 또는 보류한 뒤 감정 결과를 보고 수사를 재개하는 방식의 처분이다. 김 전 수석은 2018년 7월 17일 5명이 순직한 마린온 사건 당시 KAI 사장이었다. 고(故) 박재우 병장 등 순직 장병의 유족들은 사고 직후 “김 전 수석 등 KAI 측이 관리상 과실은 물론, 결함이 있는 헬기를 해병대에 공급해 5명의 장병을 숨지게 했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같은해 8월 유족 측을 고소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지만 이후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검찰은 최근 기소중지 처분을 내리면서 직권으로 전문수사자문위원회를 꾸렸다. 헬기 전문가들인 자문위원들은 연말까지 ▲기체 결함 ▲기어박스 결함 ▲재료 및 부품 사용 결함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감정을 할 계획이다. 해병대가 사고 당시 민·관·군 합동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한 뒤 내놓은 결과도 참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시한부 기소중지는 사안을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한 취지”라면서 “일단 전문가 감정을 통해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힌 다음에 최종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추미애 보라”…국민의힘, ‘軍 사진 인증’ 릴레이

    “추미애 보라”…국민의힘, ‘軍 사진 인증’ 릴레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관련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녀들의 군 복무 인증 사진을 잇달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의원 대화방에서 “여당이 추 장관 아들 특혜 의혹을 물타기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자녀들의 군 복무 시절 촬영한 자랑스러운 사진이나 동영상을 공유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우리당 소속 의원 자녀분들이 훌륭히 군 복무에 임하고 있거나 마쳤음을 나타내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여권 일각에서 추 장관 아들의 휴가 특혜 의혹을 부인하며 ‘국민의힘 자녀들은 대부분 군대를 안갔다’, ‘군대 다녀왔으면 이런 주장 못한다’고 반발한 데 대한 맞불성 이벤트로 풀이된다. 실제 조수진 의원은 같은날 페이스북에 “당 의원들 전체 대화방에서 이색 컨테스트가 펼쳐지고 있다”면서 곽상도 의원과 송석준 의원 아들 사진을 올렸다. 조 의원은 “남성 의원 본인, 아들들의 군 복무 시절 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며 “한눈에 봐도 누가 아버지인지, 누가 아들인지를 찾을 수 있다. 훈훈하다”고 했다. 송 의원은 주 원내대표의 독려에 앞서 지난 9일 페이스북에 해병대 군복을 입고 있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추 장관을 비호하는 여당 인사들은 야당 의원들이 애들을 군대에 안 보내 봐서 군대 보낸 부모 심정을 잘 모른다고 하는데 명백한 현실 왜곡”이라며 “험한 부대에서 성실하게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사람도 있는데 누구는 상대적으로 편한 부대에서 근무하며 온갖 특혜를 누리려고 하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기가 찰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1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군 사진 공개 기사를 소개하며 “이제는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 듯. 옛날엔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이런 사진 올렸는데”라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국민의힘 군복무 사진에 진중권 “처지가 뒤바뀐듯”(종합)

    국민의힘 군복무 사진에 진중권 “처지가 뒤바뀐듯”(종합)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카투사 군복무 시절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 아들들의 군복무 사진이 화제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전체 대화방에서 이색 경연이 펼치지고 있다”며 “남성 의원 본인, 아들들의 군 복무 시절 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곽상도 의원은 해병대에서 복무한 아들 사진을 올려뒀고, 송석준 의원도 군복을 입은 아들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의원은 “한 눈에 봐도 누가 아버지인지, 누가 아들인지를 찾을 수 있다”며 “훈훈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제는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 듯”이라며 “옛날엔 민주당 사람들이 이런 사진 올렸는데”라고 소감을 밝혔다. 진 전 교수는 추 장관이 당대표 시절 아들 서모씨의 휴가 미복귀와 관련해 민원실에 전화를 한 사실에 대해 서씨를 대리하는 현근택 변호사가 “민원실에 전화를 한 건 민원이 아니라 미담”이라고 말하자 일반인과 뇌구조가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추 장관 아들) 본인이 아닌 여당대표가 민원실을 통해 민원의 형식으로 부탁을 했다는 것은 사병 본인이 정상적인 절차로는 얻어낼 수 없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며 “그러니 부대에서도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운전병 근무는 특혜라고 맹비난했으나 추 장관 아들의 휴가 연장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민주당에 대해 “우병우는 나쁜 특혜, 추미애는 예쁜 특혜”라고 일갈했다. 앞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들의 단체대화방에서 “여당이 추 장관 아들 특혜 의혹을 물타기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자녀들의 군 복무 시절 사진이나 동영상을 공유해달라”고 독려했다. 주 원내대표도 본인의 유격 훈련 당시 사진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국민의힘 군복무 사진에 진중권 “처지가 뒤바뀐 듯”

    국민의힘 군복무 사진에 진중권 “처지가 뒤바뀐 듯”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카투사 군복무 시절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 아들들의 군복무 사진이 화제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전체 대화방에서 이색 경연이 펼치지고 있다”며 “남성 의원 본인, 아들들의 군 복무 시절 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곽상도 의원은 해병대에서 복무한 아들 사진을 올려뒀고, 송석준 의원도 군복을 입은 아들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의원은 “한 눈에 봐도 누가 아버지인지, 누가 아들인지를 찾을 수 있다”며 “훈훈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제는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 듯”이라며 “옛날엔 민주당 사람들이 이런 사진 올렸는데”라고 소감을 밝혔다. 진 전 교수는 추 장관이 당대표 시절 아들 서모씨의 휴가 미복귀와 관련해 민원실에 전화를 한 사실에 대해 서씨를 대리하는 현근택 변호사가 “민원실에 전화를 한 건 민원이 아니라 미담”이라고 말하자 일반인과 뇌구조가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추 장관 아들) 본인이 아닌 여당대표가 민원실을 통해 민원의 형식으로 부탁을 했다는 것은 사병 본인이 정상적인 절차로는 얻어낼 수 없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며 “그러니 부대에서도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운전병 근무는 특혜라고 맹비난했으나 추 장관 아들의 휴가 연장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민주당에 대해 “우병우는 나쁜 특혜, 추미애는 예쁜 특혜”라고 일갈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손성진 칼럼] 추미애의 경우가 생각나게 한 것들

    [손성진 칼럼] 추미애의 경우가 생각나게 한 것들

    힘깨나 썼던 지도층 인사라면 아들 문제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추미애 법무장관을 공격하기가 머쓱할 것이다. 이삼십 년 전 병무 청탁은 다운계약서처럼 만연했던 비리였기에 그들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후진 국가에서는 뇌물을 동반한 청탁성 비리가 활개를 치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병무 비리가 극심했다. 자식에게 좋은 보직과 조금 더 나은 복무지를 구해 주려는 지도층 어버이들이 그때는 비일비재했다. 병역 청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병역을 가볍게 해 주려는 빗나간 자식 사랑은 거슬러 올라가면 전 세대가 먼저 보여 주었다. 군율이 엄하고 가혹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는 한국의 군복무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알기에 1960년대나 1970년대에는 기를 쓰고 병역을 기피하려 했다. 당시에 유력자 부모를 둔 사람들 중에 병역을 면제받은 현재의 지도층 인사들이 많은 것은 이를 증명한다. 힘없고 가난한 흙수저 부모들은 청탁은 언감생심이었고 아들이 복무 중에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비리가 언제까지나 횡행할 수는 없었던 것은 사회의 발전과 언로(言路)의 확장으로 병무 비리가 엄격한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자식의 피해를 더욱 크게 생각하는 한국의 부모들은 그때부터 병무 비리를 최고의 사회악, 요즘 말로 적폐로 치부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병무 비리는 그만큼 민감한 소재여서 정치적으로 자주 이용되기도 해 이회창 아들의 병역 논란은 이른바 ‘병풍’(兵風)을 불러일으켜 아버지를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낙마시키기도 했다. 고인이 된 박원순 아들의 병역 논란도 두고두고 아버지에게 짐이 됐다. 그러면서 병역을 돈으로 사고팔기까지 하던 그릇된 풍조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자취를 감춘 듯했다. 추미애가 20여년 전 이회창 아들의 병역 논란을 국정조사에 붙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만 해도 오늘과 같은 상황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추미애도 자식이 커서 군복무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결국 자신도 어긋난 자식 사랑에 빠진 못난 엄마가 되고 만 것일까. 누가 추미애에게 돌팔매질을 할 수 있겠는가가 아니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지도층을 나무라고자 한다. 추미애 측이 기를 쓰고 해명하는 것을 보면 휴가가 아니라 어떤 규정이라도 곧이곧대로 지키는 청년들과 엄마들이 얼마나 분노하는지 아는 모양이다. 아들의 몸 상태가 얼마만큼 나쁜지는 알 수 없으나 측근을 동원한 자식 과보호(過保護)는 아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영국 명문 사학인 이튼칼리지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은 4690명에 이르고 748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이젠하워는 아들을 한국전쟁에 조종사로 보냈고 마오쩌둥 장남 마오안잉도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자식을 강하게 키우고 나라에 바친 지도층 부모들이 국내외에 많고도 많다. 국민이 따르고 싶은 정의로운 지도자의 자격으로 ‘집 한 채’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제 자식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생각이 짧았던 저의 불찰이었고 공정한 검찰의 수사에 맡겨 사실을 밝히라고 하겠습니다.” 정의를 외쳤던 추미애라면 수사 검사를 좌천시킨다거나 권한에도 없는 수사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말도 안 되는 생색을 낼 게 아니라 이런 유감 성명을 내놓아야 한다. 자식을 특공대나 해병대에 지원하라고 권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어느 때보다 더 강조되는 정의의 세상에 아직도 은밀한 압력과 청탁이 오갔다는 사실에 장삼이사 부모들은 분노한다. 더욱이 무조건 오리발을 내미는 추미애 측의 대응은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구직 청년들을 울렸던 취업 비리가 적폐의 단두대에 올라 단죄를 받은 것은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에 말한 4대 안보 적폐 중의 하나가 병역 기피다. 휴가청탁이 병역 기피와 같으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방부에까지 청탁과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도 전형적인 국회 권력의 갑질이다. 추미애의 경우도 조국처럼 진영 논리에 함몰되고 있다. 분별력을 잃고 정치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정의를 말했으면 따를 줄 알아야 한다.
  • “태극기 휘날리는 항모, 국력 상징하지만 비용·효율성 따져야”

    “태극기 휘날리는 항모, 국력 상징하지만 비용·효율성 따져야”

    국방부는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지난 8월 10일 발표했다. 앞으로 5년간 총 300조원의 예산을 투자해 한국군을 첨단무기 중심의 기술집약형 구조로 정예화하는 계획이다. 이 계획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됐는데 경항공모함(경항모) 사업의 공식화 때문이었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예정인 경항모는 배수량 3만t급 규모로 병력·장비·물자 수송능력과 수직이착륙기 운용 능력을 보유할 예정이다. 2019년 발표한 ‘2020~2024 국방중기계획’에서 지칭된 다목적 대형 수송함이 경항모로 구체화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구축함을 넘겨받아 사용하던 대한민국 해군이 경항모 보유를 공식화한 것은 해군과 대한민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항공모함은 누가 뭐래도 한 국가가 가진 힘을 보여 주는 현시(showing the flag)라는 측면에서는 최고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국 경항모, 포클랜드 전쟁서 위력 발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모에 탑재되는 전투기의 제트화가 진행되면서 항공모함의 크기는 급속히 커졌고 이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없는 국가들은 점차 항모 운용을 포기했다. 영국도 1970년대 말 정규항모의 운용을 포기했다. 그렇지만 냉전 시기 북대서양 항로의 안전을 보장하려면 함대 전방에서 적의 정찰기를 요격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항공전력은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당시 개발된 해리어 수직이착륙기를 소수 탑재하는 2만t급의 경항모를 건조했다. 이렇게 건조된 ‘인빈시블급 경항모’(Invincibleclass aircraft carrier)는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중소 규모의 해군력을 보유한 국가들 사이에 경항모 보유 사례가 증가해 스페인, 이탈리아, 태국 등이 경항모를 보유하게 됐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경항모와 해리어 전투기 도입 사업을 검토해 왔다. 1996년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경항모 건조계획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해군의 계획은 우선 미 해병대에서 퇴역하는 20여대의 AV8B 해리어를 운용할 수 있는 경항모를 건조해 운용 노하우를 축적하고, 이후 당시 추진하던 F35를 운용할 수 있는 항모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IMF) 사태로 인한 예산 부족으로 F35B 도입이 예정보다 15년 이상 지연됐고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연안 보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요구로 항모사업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됐다. 그러나 항모 보유 논의는 일본의 항모 보유가 구체화하면서 재점화했다. 일본은 2006~2008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한 중국과의 분쟁이 본격화하자 유사시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F35B기를 탑재할 수 있는 이즈모급 헬기호위함을 건조해 2015년 취역시켰다. 2019년 일본 정부는 보유 중인 2척의 이즈모급 헬기모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함과 동시에 2020년부터 6대의 F35B 도입을 시작으로 총 42대를 구매해 배치할 계획임을 발표함으로써 항모 보유를 공식화했다. 일본의 공식화에 한국 역시 2018년부터 다시 다목적 항공모함과 F35B 도입 사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2019년 8월 14일에 발표한 ‘2020~2024년 국방 중기계획’에 3만t급의 대형수송함II사업을 포함시켰다. 만재배수량 3만 5000t 이상, 전장 240m 이상, 전폭 36m에 이르는 다목적 강습상륙함은 스키점프 갑판을 갖추고 16대의 F35B 운용 능력을 갖출 예정이라 이탈리아의 항모 트리에스테급과 거의 동급의 함정이라 할 수 있다. 2020년에 경항모로 다시 변경됐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2019년의 발표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중국, 2030년까지 항모 4척 이상 배치 한일의 항모 보유 계획은 중국의 항모 보유가 가져온 결과다. 중국은 2012년 9월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을 취역시킨 뒤 2016년에 완전 전력화를 선언했다. 제2호함인 산둥함은 2013년부터 건조해 2017년 4월 진수시켰으며, 이후 2019년 말 실전배치함으로써 2척 항모 운용에 들어갔다. 중국은 2척 이외에도 항공기 무장탑재능력이 제한되는 스키점프를 사용하는 STOBAR 방식의 항모와는 다른, 미국의 최신예 항공모함인 포드급 항공모함에 탑재되고 있는 전자기식 캐터펄트를 장착한 CATOBAR 방식의 항공모함을 현재 건조하고 있다. 중국이 계획대로 2030년까지 최소 4척 이상의 항공모함을 배치하고 일본 역시 2척의 항모를 보유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항모를 보유하지 않는다면 동북아시아 해상에서의 전력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질 수 있다. 태극기를 휘날리는 항공모함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현시적 효과를 발휘하지만, 감당해야 할 비용과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경항모라는 명칭으로 인해 비용 면에서 저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국은 48대의 F35B와 이의 운용을 위한 각종 지원 인프라 구성 및 지원체계 구성에 91억 파운드(약 13조 7500억원)를 집행하고 있다. 이보다 3분의1 규모로 운용을 줄여도 항모와 함재기 도입에만 약 4조~5조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항모가 제 역할을 하려면 최소 2척 이상이 필요하다. 즉 10조원 가까운 비용이 발생한다. 항모의 호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자력 잠수함도 1척당 1조 6000억원이 소요된다. 6척을 건조하면 항모와는 별개로 최소 1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실제 항모전단을 상시적으로 배치하려면 최소 연간 3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잠함과 방공구축함, 대형 보급선까지 포함하면 연간 소요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이 된다. 여기에 광활한 해양에 위치한 상대의 함정을 감시할 수 있는 해양감시체계의 구축, 획득한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위성데이터링크 등의 개발까지 더해지면 필요한 예산은 막대하다. 만재배수량 6만 5000t급의 영국 퀸엘리자베스 항모가 함재기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통상 운용 시 12대, 전투임무 수행 시에도 24대 미만을 탑재한다. 한국의 경항모가 실제 운용할 수 있는 항공기 탑재량은 10대 미만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항모와 유사한 크기의 일본 이즈모급의 경우 연료탑재량 등을 감안할 때 F35B의 하루 비행횟수(소티)는 50소티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즉 시간당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2대이다. 이것이 경항모의 현실적 운용능력의 한계라 볼 수 있다. ●F35B 운용에 적합한 경항모 모델 없어 F35B 운용에 적합한 경항모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도 찾아야 한다. 일본의 이즈모급은 F35B의 개발사인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F35B 초기 개발 단계에서 제공한 기술자료를 토대로 건조했다. 하지만 미 해병대에서 F35B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운용공간과 운용지원시설 및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제 일본은 영국의 기술적 도움을 통해 F35B 운용에 적합하도록 개조할 계획이다. 아직까지 F35B의 운용에 최적화된 경항모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처음으로 항모를 건조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부담이다. 스텔스기이면서도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F35B의 존재는 많은 국가가 경항모를 건조하겠다고 결심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지만 정작 그 효용과 활용 방안은 아직도 많이 불확실하다. 수직이착륙 지원을 위해 기내에 대형 리프트팬과 롤링컨트롤 노즐 등 F35A/C에는 없는 추가적인 구조물이 장착되기 때문에 F35B 가격은 공군형인 F35A에 비해 50% 비싸다. 반면 내부 연료 탑재량이 감소하고 무장도 2000파운드(약 900㎏) 수준이 아닌 1000파운드(약 450㎏) 수준이다. 또한 내부 무장장착대의 길이가 감소해 F35A/C용으로 개발된 일부 장거리 공격무기의 탑재도 곤란할 수 있다. 해병대 지원이라는 제한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진 미국과 달리 방공, 대함공격 및 정찰 등 다양한 용도로 F35B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교리와 전술개발도 필요하다. 교관도 없이 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현재 경항모에서 사용할 신뢰할 만한 조기경보기가 없다. 이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영국은 비용 문제로 인해 제한적인 성능의 조기경보헬기를 운영하고 있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MV22 오스프리를 기반으로 하는 조기경보기 개발에는 영국이나 일본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물론 F35B의 경우 탑재된 센서를 활용해 1000㎞ 이내의 다양한 전자적 위협을 감시해 경보할 수 있지만 조기경보기 대체 역할은 아직 현실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경항모로 달성할 전략적 목표 분명히 해야 이미 심각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해군이 항모 및 호위함대 운영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도 고민할 사항이다. 고속정 등의 연안함대 축소가 대안이지만 북한의 국지 도발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는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경항모를 확보하더라도 경항모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불분명하다. 일각에서는 일본과의 전력균형 유지라는 측면에서 보유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전력상 한계가 명확한 경항모를 보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영국은 미국과의 공동작전이라는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고, 일본은 센카쿠열도에서의 중국과의 대치라는 상황이 있다. 한국은 경항모를 어떤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가. 전면전 상황에서 10여대 내외의 F35B를 통해 활용할 수 있는 공격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과거 영국과 같이 육상에서 발진하는 항공기가 다다를 수 없는 원양에서 대잠작전을 수행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이런 점에서 경항모의 보유 의미는 모호하며 소요되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현 단계에서 경항모 확보가 미국과의 안보협력에 최선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급속히 증가하는 중국의 해군력 확장에 맞서 미 해군은 현재 293척의 수상함을 향후 30년에 걸쳐 355척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1020억 달러(약 116조원)에 이르는 예산 문제로 인해 해군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경항모 대신 미군이 필요로 하는 호위함을 비롯한 다양한 수상함을 건조해 미 해군과의 공동작전에 투입하는 것이 안보협력 차원에서는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경항모 보유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곤란하다. 한국이 경항모 보유로 달성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 제거할 위협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더 나아가 서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여기에 적합한 체계를 하나씩 구축하는 것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北 진지 초토화한 K9…호주 시장도 뚫었다

    北 진지 초토화한 K9…호주 시장도 뚫었다

    압도적 화력과 높은 기동성·생존성 장점연평도 포격전 때 실전 능력 검증받아北 무도진지 초토화에 ‘사형선고’ 삐라도한화디펜스는 3일 K9 자주포가 호주 육군 자주포 획득사업의 단독 후보 기종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호주 정부는 이미 2010년 K9을 최종 우선협상 기종으로 선정했지만, 2012년 국방예산 삭감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하면서 안타깝게 계약이 무산됐다. 10년 만에 다시 성사된 이번 사업에 호주 정부는 1조원가량의 예산을 편성했다. 납품 물량은 K9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다. K9 자주포는 2010년에도 호주 육군 자주포 사업의 최종 우선협상대상 기종으로 선정됐었다. 하지만, 호주 정부가 2012년 국방예산 삭감을 이유로 자주포 사업을 중단하면서 K9 자주포 수출이 무산됐다. 당시 호주는 견인포와 자주포를 모두 도입하려고 했지만, 국방 예산이 삭감되면서 견인포만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가 다시 자주포 획득 사업을 시작하고, K9 자주포를 단독 후보로 선정하면서 10년 만에 자주포 수출이 재추진되는 것이다. 한·호주 정상은 지난해 9월 국방·방산 협력을 주요 의제로 정상회담을 하고, 그해 12월 양국 외교·국방 장관이 방산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등 양국 국방 협력을 강화했다. ●안타까운 사업 중단, 10년 만에 다시 성사한화디펜스 관계자는 “호주법인을 설립해 현지 생산시설 구축을 계획하고, 호주 방위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현지화 노력도 이번 후보 선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K9 자주포는 최대사거리 40㎞, 발사속도 1분당 6∼8발, 탄약적재량 48발이다. K9 자주포는 압도적인 화력과 높은 기동성·생존성을 자랑한다고 한화 관계자는 설명했다. 장거리 화력 지원과 실시간 집중 화력 제공 능력을 바탕으로 사막에서 설원까지 다양한 작전환경에서 운용이 가능하다. 한화디펜스는 터키, 폴란드, 핀란드, 인도,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에 K9 자주포를 수출한 바 있다. 이번에 수출계약이 마무리되면 7번째 해외수출 사례가 된다. K9 자주포는 155㎜ 구경에 52구경장(화포 전체의 길이가 화포 구경의 52배라는 뜻)으로, 길이 8m에 이르는 포신에서 발사하는 포탄이 최대 40㎞까지 날아가 적을 타격한다. K9 자주포는 이미 실전으로 성능을 검증받은 바 있다. 연평도 포격사건 때 적의 기습공격으로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주변이 불바다가 된 와중에도 K9은 불과 13분 만에 반격에 나섰다. 당시 주한미군 수뇌부도 신속한 반격에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격에 아팠던 北 ‘이승도 사형선고’ 삐라까지북한은 주력군이 밀집한 ‘무도진지’에서 큰 피해를 입어 2013년 날린 대남전단(삐라)에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장이었던 이승도 현 해병대 사령관 얼굴을 그려넣고 ‘사형선고’라고 쓰기도 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적의 공격을 받고도 신속한 반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동화된 ‘사격통제장치’와 ‘포탄 장전장치’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첫 사격명령을 받고 길게는 11분까지 걸리는 기존 포의 초탄 발사 시간을 짧게는 30초까지로 줄여 일반 곡사포의 3배 이상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다. 최대 1000마력의 강한 힘과 시간당 67㎞의 주행능력을 갖춰 산악지형이 많은 한국은 물론 평원, 설원, 정글, 사막 등 다양한 환경에서 빠른 속도로 기동할 수 있다. 이성수 한화디펜스 대표이사는 “호주의 K9 도입 결정은 한·호주 국방 협력의 값진 결실이자 대한민국 방위 산업의 기술력을 입증한 쾌거”라며 “호주 정부와 협력해 현지 생산시설 구축과 인력 양성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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