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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감식전문가 “북측 성의에 놀라…미군유해, ‘장진호전투’ 희생자 추정”

    미 감식전문가 “북측 성의에 놀라…미군유해, ‘장진호전투’ 희생자 추정”

    북한이 지난달 27일 미국으로 돌려보낸 미군 전사자 유해 상당수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장전호 전투’ 희생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수석 과학자인 존 버드 박사는 2일(현지시간) 유해가 도착한 하와이에서 미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화상회견을 하면서 유해가 담긴 상자에는 발굴지가 ‘신흥리(Sinhung-ri)’로 명기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곳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투의 하나로 꼽히는 1950년 11∼12월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곳의 동쪽 인근이라면서 “유해들은 그 유명했던 전투와 관련돼 있다”고 했다. 장진호 일원에선 미군 해병대원과 중공군이 2주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미 국방부는 이곳에 1000구가 넘는 미군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군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 등 다수의 유엔군도 그곳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55개의 유해 상자마다 발굴된 마을 등 기초적인 정보가 적힌 종이를 미국에 넘겼는데, 정보량은 많지 않은 상태다. 유해와 함께 발굴된 벨트, 전투용 물통, 부츠 등도 미국 정부로 넘어갔다. 버드 박사는 오랜기간 한국전쟁의 미군 유해를 감식해온 점을 언급하면서 “이번 유해는 우리가 과거의 한국전쟁 발굴에서 발견했던 것과 일치한다“면서 ”미군의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이어 버드 박사는 북한이 유해송환에 신경을 많이 쓴 데 놀랐다면서 “유해들은 상자 속에 충전물과 함께 정성스럽게 포장돼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 관리가 비무장 상태로 북한에 입국해 추가 유해발굴에 참여할 계획이라면 안전대책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미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하와이에 있는 DPAA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감식은 유해에서 채취한 DNA 표본과 한국전쟁 미군 실종자 가족들이 제공한 DNA 표본을 서로 대조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마린온 참사’ 원인과 방산비리 여부 철저히 규명하라

    그제 해병대 항공대의 6개월 된 신형 헬기 ‘마린온’이 시험비행 도중 지상 10m 높이에서 추락하면서 탑승자인 해병대원 6명 중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났다. 사고 당시 헬기의 회전날개가 통째로 뜯겨 나갔다고 한다. 사고 헬기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국산 기동 헬기인 ‘수리온’을 개조한 상륙용 기동 헬기인 마린온 1, 2호기 중 2호기다. 수리온의 안전성은 감사원 감사까지 했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군 당국은 철저한 사고 원인 조사와 함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촉구했듯 방산비리가 아닌지도 규명해야 한다. 나아가 수리온을 기반으로 한 소방용 및 의무용 헬기 등에 대한 안전점검도 철저히 하기 바란다. 수리온은 6년 동안 약 1조 3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자주국방용 전투용 헬기다. 2012년 12월 첫 실전 배치 이후 67대가 배치됐으나 결함투성이로 드러났다. 2015년 1월과 2월에 수리온 2대가 엔진 과속 후 갑자기 멈추면서 비상착륙했고, 같은 해 12월엔 같은 결함으로 추락했다. 잇단 사고로 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은 지난해 7월 수리온이 저온 환경에 견디지 못해 헬기 전방 유리가 쉽게 깨지고, 기체 내부로 빗물이 유입되고, 추운 곳에서 엔진이 얼어붙어 정지하는 등 비행 안전성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자동차 제조 및 개조와 달리 비행기는 수많은 부품이 결합되는 최고 정밀기계 산업의 총아로 개발에 통상 10년이 걸린다. 그런데 우리는 6년 만에 수리온을 개발한 데 이어 1년 6개월 만에 수리온을 마린온으로 개조했다고 자랑했다. 바다에서 해안까지 날아갈 수 있도록 마린온에 보조연료탱크를 추가하고 지상·함정 기지국과의 교신을 위한 장거리 통신용 무전기 등 각종 전자 및 통신장비를 추가로 탑재한 것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무게가 늘고 기능을 추가하는 등 무리하게 개조해 기체 결함이 생겼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사고가 KAI의 부품원가 부풀리기 등 방산비리에 따른 기체 결함으로 확인된다면 군 당국은 방산비리 여부도 파헤쳐야 한다. 지난해 7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수리온의 엔진 사고 현황 및 원인, 전방 유리 파손 현황 등을 보고받았으나 이를 묵인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마린온의 사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수리온 계열의 다목적 헬기인 의무후송 전용 헬기, 참수리로 알려진 경찰헬기, 산림헬기, 소방헬기 등은 안전점검을 하는 것은 물론 전면적으로 운항을 금지해야 한다.
  • [서울포토]숨진 해병대원에 대한 묵념

    [서울포토]숨진 해병대원에 대한 묵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최고위원들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회의 시작에 앞서 지난 17일 포항에서 ‘마리온’ 해병대 헬기 추락사고에서 숨진 해병대원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김명국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돌아온 오빠들, 여심은 설렌다

    돌아온 오빠들, 여심은 설렌다

    1990년대 ‘오빠 부대’를 이끌던 스타들이 속속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가수 출신다운 가창력에 오랜 연예 활동으로 입증된 끼와 쇼맨십까지 갖춘 이들은 과거 아이돌 그룹을 쫓던 여성팬들을 다시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티켓 파워’까지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국내 대표적인 발라드 가수 박효신과 이지훈은 각각 예술의전당 30주년 작품과 세종문화회관 40주년 작품에 출연해 대한민국 양대 공연장에서 티켓 대결을 펼친다. ●박효신 ‘웃는 남자’로 2년 만에 복귀 박효신은 예술의전당 30주년 공연으로 결정돼 7월 초연하는 ‘웃는 남자’에서 기이하게 입이 찢긴 남자 주인공 ‘그윈플렌’ 역을 맞는다. ‘웃는 남자’는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당시 귀족 사회와 하층민의 생활을 치밀하게 묘사한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위고는 이 작품에 대해 “나는 이보다 위대한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박효신은 2016년 뮤지컬 ‘팬텀’ 출연 이후 2년 만의 뮤지컬 무대 복귀작이다.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뮤지컬 속 주인공의 슬픈 사연과 더욱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 7월 8일~8월 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만~15만원.●‘번지점프를 하다’ 男주인공 이지훈 이지훈은 이병헌·고 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 주인공 인우 역으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창작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2012년 초연, 2013년 재연된 인기작이다. 올해는 세종문화회관 개관 40주년 기념작으로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지훈은 “가슴에 품고 있던 작품”이라며 기대를 나타낸 바 있다. 6월 12일~8월 26일 세종문화회관, 2만~8만 8000원. 1세대 아이돌 스타들의 연이은 뮤지컬 출연에도 관심이 쏠린다. 90년대 ‘복고풍 트렌드’를 소재로 한 TV 예능에서 존재감을 확인한 이들이 뮤지컬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원조 아이돌 강타 ‘매디슨…’로 데뷔 ‘원조’ 아이돌 그룹 HOT의 강타는 멜로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오른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HOT의 메인 보컬다운 가창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그의 이번 뮤지컬 데뷔는 다소 늦은 감마저 든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2014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초연돼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어워드 최우수 작곡가상 등 유력 뮤지컬 음악상을 석권한 작품이다. 강타는 여주인공 ‘프란체스카’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로버트’ 역으로 열연할 예정이다. 그는 제작사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느낌이 좋다”면서 “음악적으로 재즈나 컨트리가 복합이 된 느낌인데 중저음의 보컬이 돋보이는 곡들이 많아 저의 음색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8월 11일~10월 28일 샤롯데씨어터, 6만~14만원. ●손호영·세븐 나란히 ‘도그 파이트’에 HOT와 같은 원조 아이돌 그룹 god 출신의 손호영과 가수 최동욱(세븐)은 한국 초연 뮤지컬 ‘도그 파이트-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에서 해병대원 ‘버드레이스’ 역으로 1일부터 관객을 찾고 있다. god에서 서브 보컬을 맡았던 손호영은 ‘페스트’, ‘올슉업’ 등 뮤지컬 무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도그파이트’는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작사, ‘위대한 쇼맨’의 작곡가로 성장한 뮤지컬계의 신예 벤제이 파섹과 저스틴 폴의 음악으로 구성돼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8월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다. 8만~14만원.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한국전쟁 목격자’ 눈감다

    ‘한국전쟁 목격자’ 눈감다

    6·25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한 사진으로 전 세계에 알린 미국 사진작가 데이비드 덩컨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02세.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덩컨은 1916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다. 대학교 재학 도중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이후 해병대 장교로 자원해 참전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종군 사진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전역해 사진 잡지 ‘라이프’에서 활동한 덩컨은 6·25전쟁 발발 3일 후인 1950년 6월 28일 수원에 도착해 촬영을 시작했다. 그의 사진은 생사의 경계에 서 있는 장병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낙동강 전선 사수 작전을 펼치던 한 미군 해병대원이 탄약이 떨어진 사실을 알고 눈물 흘리는 모습, 장진호 전투 때 지친 무표정한 얼굴로 식사하는 미군 병사들, 아군 시신이 담긴 트럭 옆을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행렬 등을 담은 사진이 유명하다. 덩컨은 1951년 한 인터뷰에서 “내 목표는 마치 보병대원, 해병대원, 파일럿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처럼 가능한 한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 셔터를 누르는 것이었다”며 “독자들에게 교전 중인 이들이 겪는 불안, 고통, 긴장, 이완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1951년 한국전쟁 사진을 담은 ‘이것은 전쟁이다’(This is War!)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출간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5년째 내전 남수단에 ‘휴전 선물’… 필리핀은 ‘태풍 악몽’

    5년째 내전 남수단에 ‘휴전 선물’… 필리핀은 ‘태풍 악몽’

    성탄절을 앞두고 지구촌 분쟁지 곳곳에서 휴전 선언이 잇따르며 평화를 기원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성탄절 시즌을 겨냥한 연이은 테러 위협으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태풍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연말연시에도 재해와 사고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가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성탄절을 맞아 가장 먼저 무기를 내려놓은 곳은 남수단이다. 남수단 정부군과 반군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아프리카 정부 간 개발기구’(IGAD)가 중재한 회담 후 휴전 합의를 발표했다. 휴전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지구촌에서 ‘가장 어린 나라’로 불리는 남수단은 2011년 국제사회의 축복을 받으며 수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정치세력 간 고질적 불화로 5년간 내전을 겪으며 수만명이 숨졌다. 3년 넘게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도 잠시 총성을 멈췄다. 정부군과 반군은 23일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교전을 멈추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2014년부터 중앙정부의 친서방 노선에 반대하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 내전이 이어져 1만명 이상 숨졌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24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열흘간 공산 반군을 대상으로 한 군사작전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시리아, 리비아, 예멘 등에서는 휴전 합의가 나오지 않아 성탄절에도 내전이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빈발했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테러 위협은 크리스마스 축제를 앞두고도 계속됐다. 22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유명 관광지 ‘피어39’에서 테러 공격을 기도한 혐의로 IS를 추종하는 전직 해병대원 에버리트 에런 제임슨(26)이 체포됐다. 그는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크리스마스에 피어39 주변에서 폭탄을 터트려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 살상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호주 멜버른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32세 남성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한국인 3명을 포함해 19명을 다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중동 무슬림 국가에 사는 기독교도들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이후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집트는 내년 1월 7일 콥트교의 크리스마스 축하행사를 앞두고 경찰이 교회 주변을 수시로 순찰하기로 했다. 이스라엘도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도 성지 주변에 경력을 배치하고 순례자들을 호위할 계획이다. 한편 필리핀은 태풍과 사고로 ‘크리스마스의 재앙’을 겪고 있다. 22일 태풍 ‘덴빈’이 휩쓴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나 200여명이 사망하고 160명 이상이 실종됐다. 23일에는 남부 다바오시 NCCC 쇼핑몰에서 불이 나 최소 37명이 숨졌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추위 잊은 한·미 해병대

    추위 잊은 한·미 해병대

    한·미 해병대원들이 19일 강원 평창군 해발 1470m 황병산 해병대 산악 종합 훈련장에서 열린 한·미 해병대 연합 동계 설한지 훈련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체력단련을 한 뒤 눈을 뿌리며 강인함을 과시하고 있다. 평창 뉴스1
  • [서울포토] 지진 피해지역 복구작업 나선 해병대원들

    [서울포토] 지진 피해지역 복구작업 나선 해병대원들

    16일 경북 포항시 중성2리에서 해병대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2017. 11. 16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악뮤 이찬혁, 해병대서 훈련 받는 모습 포착 ‘살아있는 눈빛’

    악뮤 이찬혁, 해병대서 훈련 받는 모습 포착 ‘살아있는 눈빛’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모습이 공개됐다.최근 해병대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군복무를 시작한 악동뮤지션(이하 ‘악뮤’) 이찬혁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이찬혁은 해병대원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씩씩한 그의 모습에 네티즌들은 “눈빛 살아있네”, “멋진 청년이네요 건강히 잘 하고 오길!”, “영화 스틸컷 같다” 등 응원을 보내고 있다. 앞서 이찬혁은 소속사를 통해 “또래 친구들이 보통 군대가는 나이에 입대하는 걸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잠시 음악과 일을 벗어나 아무 생각없이 새로운 환경을 경험해보고 싶다”며 “군대를 다녀와서 외적이나 내면적으로도 더욱 성숙해져서 돌아오겠다“고 군입대 소감을 밝혔다. 사진=해병대 공식 블로그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美 최초 여성 함대 사령관 타이슨 38년 군 복무 마감

    美 최초 여성 함대 사령관 타이슨 38년 군 복무 마감

     미국 최초의 여성 항공모함 전단장에 이어 함대 사령관을 맡아 지난 4월 말 동해에 진입했던 미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을 지휘하는 등 미군의 ‘유리 천장’을 깼던 노라 타이슨(60·중장) 미 제3함대 사령관이 38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고 민간인이 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해군은 타이슨 제독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기지에 정박한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함상에서 열린 전역식에서 전투기 조종사 출신 존 알렉산더 중장에게 지휘권을 넘긴 후 전역했다고 밝혔다.  타이슨 제독은 1979년 밴더빌트대 졸업 후 간부후보생(OCS)으로 해군 직업 장교의 길에 들어섰다. 함대와 항공, 정찰, 전대 등 항공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합참의장실 전략기획·정책국장 기획장교, 해군 참모차장 부보좌관 등 경력도 쌓았다. 그는 핵항모 엔터프라이즈함 관제관과 연습용 항모인 렉싱턴함 작전장교 등을 거쳐 상륙 강습함 ‘바탄’(LHD-6) 함장으로 2003년 이라크 침공 작전에 참전했다. 이후 2007년 9월 준장 진급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제7함대 예하 제73 임무단 단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이어 2010년 7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항모 조지 H W 부시함을 기함으로 하는 제2항모강습전단 전단장에 취임했다.  타이슨 제독은 제2항모강습전단장으로 5·6함대 등과 함께 인도양과 걸프만에서 아프가니스탄 내 무장 반군세력 탈레반 등을 상대로 하는 공습 작전 등을 지휘했다. 이 기간 함정 13척과 80여 함재기, 승조원·해병대원 9000여명의 병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11년 8월 그의 소장 진급식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이 메인주 케네벙크포트 자택에서 화상 시스템을 통해 직접 주재해 화제가 됐다. 그는 2013년 7월 중장으로 진급, 미 해군 함대전력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어 2015년 7월 미 서부 해안 지역을 담당하는 제3함대 사령관에 취임했다. 여성으로서 함대 사령관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가 제3함대 사령관을 맡은 동안 가장 큰 변화는 3함대의 서태평양 전진배치다. 미 태평양사령부는 북핵 위협이 고조되자 한반도 해역 등에 배치된 7함대가 한반도 상황에 전념하도록 3함대를 7함대 관할 해역에 재배치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3함대는 7함대와 함께 태평양함대의 핵심 전력으로, 아태 지역 분쟁 시 7함대 등에 항모전단 등을 파견, 지원한다. 타이슨 제독은 특히 지난 4월 말 동해에 왔던 칼빈슨 항모 전단을 샌디에이고 해양작전본부에서 진두지휘했다. 그는 지난 2월 ‘해군 포럼’에서 “분쟁 가능성이 가장 큰 한반도 상황을 가상해 한국 작전 전역에서 당장 오늘 밤이라도 싸울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긴장감 안고… 백령도 복귀하는 해병대원들

    긴장감 안고… 백령도 복귀하는 해병대원들

    4일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휴가를 마친 해병대원들이 백령도행 여객선에 오르고 있다. 이날 군 당국은 북한의 제6차 핵실험에 대응해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하며 대북 무력 응징시위에 나섰다. 연합뉴스
  • “선생님은 운명을 피하지 않고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켰다”

    “선생님은 운명을 피하지 않고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켰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제자 이동호의 증언 내가 인천상업중학교를 다닐 때 쾌활한 성격이신 심선택 선생님께서는 영어 선생님이셨다. 그 후 해병대 장교가 되시어 9·15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셨다. 그때 인천에 상륙하신 선생님께서는 송현국민학교에서 6년제 중학교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학생들의 가야 할 길을 일러 주신 일이 있었다. 당시 훈시 내용 (부탁의 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들은 앞으로 통일되는 조국의 장래를 책임져야 할 역군으로 성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보호되어야 할 세대이다. 둘째, 금번 통일전쟁은 우리 기성세대에 맡기고 너희 학생들은 전후에 학교로 돌아가 공부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셋째, 학생들은 정부가 수복되고 학교가 정상화 될 때까지 학생들 스스로 자치 단체를 구성하여 상호 보호하는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 넷째, 학생자치 단체의 구성원들은 경찰이 복귀하여 치안이 안정될 때까지 군(軍)의 지시를 받아 치안 유지에 협조하여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우리 학생들의 나갈 길을 일러주신 심선택 선생님과 만남의 시간은 불과 1~2시간에 불과했지만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말씀은 우리 제자들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다. 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인천학생들은 인천학도의용대를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내 친구를 포함한 몇몇 인천상업중학교 5·6학년 제자들이 심 선생님이 계신 해병부대에 현지 입대하여 참전하였다. 심 선생님은 이들 현지 입대한 제자들과 같이 서울 탈환작전에 참전하고서 북진하던 중 함경도 지역에서 선생님의 해병부대가 갑자기 적에게 포위되어 선생님은 포위망을 피해 안전지대로 이동하려 하였으나 고향에서 데려온 한 제자가 아직도 포위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제자 해병대원을 구하기 위해 밤중에 지프를 몰고 가다가 어느 골짜기에서 산속에 매복해 있던 인민군이 쏜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전사하셨다는 말을 들었다.●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제자 민병태의 증언 심선택 선생님은 내가 인천상업중학교 1학년과 2학년 재학 중일 때 영어 과목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셨으며, 또 내가 학교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할 때 야구를 책임지셨던 야구부장이셨다. 그 후 언제부턴가 안 보이시더니 해병대 사관학교에 지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6·25사변이 일어나고 9·15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다음 날 9월 16일 오전에 상륙군인 우리 해병대를 환영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동인천 역전 광장에 나가 만세를 부르고 있을 때인데 저만치서 한 해병대 장교가 나에게 손짓을 하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심선택 선생님이셨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 야, 너 민병태 아니냐”고 말씀하시며 내게 다가오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빨리 알아보신 것은 야구부장으로 계실 때 나를 유난히 좋아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국해병 상륙부대는 화수동 쪽에서 철다리 밑으로 해서 동인천역 광장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과 공산 치하 때의 상황을 몇 마디 나누고는 선생님과 헤어졌다. 그 후 소식을 들으니까 선생님께서는 함경도까지 진격하시다 인천상업중학교 제자 해병대원을 구하려다가 전사하셨다는 것이었다.●조카 주인숙의 증언 6·25 전쟁 때 전사한 심선택 소위는 우리 어머니 막냇동생이며 내게는 외삼촌이다. 5년제 인천상업중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인천상업중학교에 와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심선택 외삼촌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나는 송현국민학교 6학년이었는데 이때 외삼촌이 교생 선생님으로 와서 우리 반 담임도 맡아 하셨었다. 우리 외삼촌이 인천상업중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재직하다가 해병대에 지원하여 해병 소위가 된 후 9·15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여 잠깐 도원동 공설운동장에 주둔하고 있을 때 면회를 갔던 일이 있었다. 이때 외삼촌이 “인숙아 내가 곧 출동하는데 출동했다가 돌아올 때 네 신랑감을 구해 올게” 말하고 서울수복 작전에 참전하였었는데 그때가 우리 외삼촌을 만나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우리 엄마가 외삼촌 전사통지서를 받고 크게 통곡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 외삼촌은 13살 때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어 우리 어머니 그늘에서 학교에 다녔다. 심선택 외삼촌은 이모였던 우리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의지하며 자랐고 우리 어머니는 막냇동생을 친아들처럼 애지중지 키웠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 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흥 보병학교 동기생 강복구 대령의 증언 심선택 동기를 처음 만난 곳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였다. 심선택 동기는 학사 출신 간부 후보생으로 1구대에 배치되었을 때 나도 같이 1구대에 있었다. 그때 심선택 동기생은 인천 출신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 6년제 공립 인천상업중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있다가 해병대 간부후보생으로 지원한 것을 알게 되었으며 교육받는 동안의 심선택은 아주 침착하고 공부도 잘 했으며 특히 영어 실력이 대단하였다. 보병학교가 6·25전쟁으로 인하여 제주도로 건너가서 거기서 계속 교육을 받았다. 심선택 동기는 6·25 전쟁 초기에 그만 전사 하였으며 그렇게 전쟁터에서 꽃다운 나이에 사라진 심선택 동기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과연 전사한 동기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이 가끔 나곤 한다. 처음 우리 해병 사관 2기생들의 총인원은 23명으로 그중 3명은 해병대 하사관에서 합격한 김동준, 신양수, 나(강복구)이고 나머지 20명은 당시 대학교를 졸업한 학사 출신 20명이었다. 이렇게 23명은 하나 낙오 없이 전원 소위로 임관한 후 나는 해병연대 2대대 5중대 2소대장으로 배치되었고 심선택 소위는 3대대 부관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1대대장은 고길훈 중령, 2대대장은 김종기 중령, 3대대장은 김윤근 중령이었다. 그 후 인천상륙작전에 같이 참전하고 서울탈환과 함경도로 진격했을 때 나는 소속이 다른 심선택 소위가 전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함흥에서 후방으로 후퇴한 후 부대를 재정비하고 도솔산으로 공격하는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가서야 심선택 소위의 전사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3대대에 배치된 심선택은 매사에 빈틈이 없고 또한 영어 실력이 뛰어나 당시 김윤근 대대장은 그를 인사부관으로 임명하고 함경도 전투에 참전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소대 지휘관도 아닌 그가 어째서 전사했는지를 알아보니까 중공군의 참전으로 아군이 포위되었을 때 3대대도 후퇴하게 되어 내일 아침 8시면 후퇴하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난 후 밤이 깊었는데 갑자기 심선택 소위가 대대장한테 “먼저 후퇴 지점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 대대장은 “심 부관 내일 아침이면 대대 전체가 이동하는데 그때 같이 가지 왜 먼저 가려고 그러는가?”라고 물으니까 심 소위는 무엇에 쫓기는 듯 “먼저 가겠습니다” 하면서 지프를 타고 먼저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런 후 이튿날 후퇴 지점에 와서 보니까 심선택 소위가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까 낙오된 해병대원을 구하려고 갔는데 함경남도 마한령의 계곡에서 인민군이 쏜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그만 전사했다는 것이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3회를 마치며 해방된 지는 6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3년 후 국가 위난의 시기에,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모교 인천상업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젊은 선생님이 계셨다. 뜻한 바가 있어 시흥보병학교에 입교하였고 해병 소위로 9·15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1950년 11월 12일 날 함경남도 마한령에서 제자 해병대원을 구하려다가 인민군의 흉탄을 맞고 24살의 나이로 전사한 인천의 아들이다. 해병 소위 심선택 선생님을 추모하는 충혼탑(忠魂塔)은 인천 그 어디에도 없다. 먼 훗날에도 해병 소위 심선택 선생님의 나라사랑 마음을 기억해주기 바라면서 이 참전기를 기록한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선택 소위는 24세에 전사했기 때문에 모교 6년제 공립 인천상업중학교 제자들, 조카 그리고 육군보병학교 동기생의 증언으로 참전기를 대신한다. ■ 심선택 소위의 인천상업중학교 제자였던 이경종 6·25 편찬위원이 남기는 말 나는 6년제 공립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재학 중일 때 6·25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50년 12월 18일 인천을 출발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서 자원입대하여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4년간 공부할 시기를 전쟁터에서 보냈다.이후 46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96년 7월 15일부터 큰아들(이규원)과 같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참전 역사와 전사(戰死) 사실이 밝혀질 때는 마음을 어떻게 가눠야 할지 모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녔고 눈물이 앞을 가린 적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다닐 때 영어 선생님이셨던 심선택 선생님의 육군보병학교 입교, 해병 소위 임관과 함경도의 마한령에서 24세에 전사한 사실을 밝혔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이제 6년제 공립 인천상업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던 심선택 선생님의 발자취와 전사를 관계된 분들의 증언으로, 그리고 동작동 국립묘지 서쪽 14블록의 한 귀퉁이에 누워 계신 선생님의 묘소를 큰아들 이규원과 함께 1997년 8월 13일 참배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 [포토] ‘군복 입어도 섹시미 철철’… 해병대 훈련받는 케이트 업튼

    [포토] ‘군복 입어도 섹시미 철철’… 해병대 훈련받는 케이트 업튼

    모델 겸 배우인 케이트 업튼이 22일(현지시간) 미국 해병대 기념 주간을 맞아 디트로이트의 훈련장을 방문해 해병대원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있다. 미국프로야구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투수 저스틴 벌렌더의 약혼자인 케이트 업튼은 다른 선수들의 아내와 함께 훈련에 참여했다. 사진=AP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생면부지 암환우 위해 훈장 몽땅 판 전 해병대원

    [월드피플+] 생면부지 암환우 위해 훈장 몽땅 판 전 해병대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누군가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영국의 한 남성은 일면식도 없는 한 아이를 돕고 싶어 자신이 받은 훈장을 모두 경매 사이트에 내놓았다. 21일(이하 현지시간)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저스트 기빙(justgiving)은 전 영국 해병대 매튜 굿맨(35)의 용기와 헌신을 칭찬했다. 영국 글로스터셔 주 첼트넘 출신의 매튜 굿맨은 아프가니스탄, 북아일랜드에서 복무해 얻은 훈장과 2003년 이라크전에 참전해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은 공훈장을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내놓았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로티 우즈 존(4)이 신경아세포종과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매튜는 로티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심지어 144㎞나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데도 로티를 돕고 싶어했다. 그는 “로티의 모금 캠페인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암과 싸우는 로티의 이야기가 너무 슬펐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만약 내 딸 프리야가 이 같은 고통을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며 “내 훈장들은 서랍 안에 방치돼 있었고 어쩌면 가치있는 일을 하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경매를 하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이어 “훈장이 팔리는대로 이젠 훈장 대신 소아암 인식을 넓히기 위해 캠페인 리본을 달고 있을 것이다. 내게 한 아이의 생명만큼 가치있는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매튜의 마음을 움직인 로티는 지난해 6월에 신경아세포종 4기 진단을 받은 아이다. 같은 해 10월에 복부에 있는 종양의 95%를 제거하고 면역 치료를 받고 있지만 재발 확률이 85%로 생존률이 낮은 상태다. 로티의 부모는 미국 뉴욕 암센터(MSKCC)에서 제공하는 혁신적인 백신 치료에 필요한 돈 20만 파운드(약 3억원)를 모으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로티의 엄마 샬롯 우즈(36)는 “매튜가 자신의 훈장을 팔아서 앞으로 로티의 치료 비용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 거머쥔 훈장이었을 텐데 만난 적도 없는 로티를 도와주고 싶어한 사실 자체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매튜의 훈장은 현재까지 최고 600파운드(약 87만원)가 넘는 낙찰 가격을 기록하고 있다. 이베이 경매는 오는 25일 끝날 예정이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휴가중 해병대원 하천둑 아래로 추락한 90대 할머니 살렸다

    휴가중 해병대원 하천둑 아래로 추락한 90대 할머니 살렸다

    휴가 중 둑 아래로 추락한 90대 할머니를 구조해 생명을 구한 한 해병대원의 미담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4일 해병대 2사단에 복무중인 송명준 상병은 휴가를 나왔다. 친구들과 함께 빛마루축제로 유명한 제주시 애월읍 ‘선운정사’ 사찰에서 관광을 하고 있었다. 사찰 전경을 보려고 절 근처 둑 위에서 구경하던 중 둑 밑 하천에서 끙끙 앓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살펴보니 2m 높이의 둑 아래에 한 할머니가 쓰러진 채 누워있었다. 아흔이 넘은 노인으로 다행히 의식은 있는 상태였다. 당시 할머니는 팔에 피를 흘리고 온몸이 피멍이 들어있었다. 둑이 수풀로 뒤덮여 있고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할머니가 떨어진 뒤 장시간 쓰러져 방치된 상태였다. 송 상병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칫 생명을 잃을 뻔했다. 즉시 송 상병은 할머니의 상태가 매우 위급하다고 느껴 119에 신고했다. 그러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할머니 상태를 관찰하며 “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라며 안심시켰다. 119구조대가 도착하자마자 사다리차로 구조대원과 함께 할머니를 들것에 싣고 차량으로 옮겼다. 송 상병은 사고 경위와 할머니의 상태를 구조대원에게 자세히 알려줬다.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은 “할머니가 고령인 데다 폭염에 오래 방치돼 있어 매우 위험했다”며 “송 상병이 즉시 신고해줘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다음날 할머니 아들 김동석씨는 “어머니를 구해줘 너무나 고맙고 고마워서 생명의 은인인 청년에게 연락처를 수소문해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더니, 그 청년은 되레 ‘자신이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이승도 해병대2사단장에게도 감사의 글을 전달했다. 이에 이 사단장은 송 상병에게 포상휴가를 내렸다. 감사 전화를 받은 송 상병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오히려 제가 그 곳에 있어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고마울 뿐”이라며 겸손해 했다. 송 상병의 미담은 국방부 국민신문고에 할머니의 가족이 감사의 글을 올리면서 알려져 전 해병대원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임시로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 1명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심선택 소위, 신봉순 대위)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권유상 인터뷰 ●일시 1998년 1월 19일 ●장소 인천 부평외국어고등학교 교장실 ●대담 권유상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아들)[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회]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서울대 사범대학 2학년생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2년: 인천송림국민학교 5회 졸업 1948년: 인천공업중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입학 1950년 9월 20일: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취임 1950년 12월 18일: 경남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를 향해 남하 1951년 1월 10일: 국민방위군 사건을 듣고 최종목적지를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서 부산의 육군 제2 훈련소로 변경 1951년 1월 15일: 23살의 서울대학교 2학년 학생이어서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중학생들과 같이 사병으로 자원입대 1956년 2월 25일: 5년 1개월을 복무하고 만기 제대 #나와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147번지에서 태어난 나(권유상)는 인천송림국민학교와 인천공업중학교(현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때 6·25 사변이 일어났다. 9·15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지역은 북한 인민군치하에서 학정에 시달리던 우익학생들이 모여서 인천학도의용대를 만들어 활동 중이었고 그 본부는 용동에 있었다. 1950년 9월 20일쯤 인천학도의용대에서 나를 3대대장으로 임명하여 나는 인천주안국민학교를 대대본부로 정하였다. 우리 3대대 구역은 남구, 남동구, 연수구였고 대원은 약 1000명이었다. 우리 3대대의 대대부관은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조태휘였고 1중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6학년 권용훈, 2중대장은 인천중학교 6학년 이용구, 3중대장은 고려대학교 2학년 최수보였다.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 통영을 향해서 남하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전 대원 3000여명이 인천축현국민학교에 모두 모여서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에서 파견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의 인도에 따라 경상남도 통영의 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목표로 남하 행진을 시작했다. 그 날은 함박눈이 왔고 국도를 따라서 수원, 대전, 대구,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쳐 통영의 충렬국민학교를 향하여 매일 25㎞(동인천역에서 영등포역 거리 정도)씩 20일간 500㎞ 거리를 인천지역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 약 3000명이 대학생 형들을 따라 도보로 남하했다. #“우리는 인천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 인천학도의용대는 걸어서 내려가다가 밤이 되면 농업조합(당시 농민을 위한 기관)을 찾아가 “우리는 인천에서 남하하는 학도의용대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히면 밥을 해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줬다. 우리는 인천을 떠난 지 20일 만에 최종 목적지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 가까운 마산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가는 걸 주저한 채 마산에 있으면서 인천학도의용대(대장 이계송) 본부에 보고했다. #국민방위군과 국민방위군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해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군대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국민방위군 약 9만명이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관련 장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고향 인천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 1951년 1월 초 우리 3대대 부관 조태휘가 나에게 마산의 해병대 6기 모집에 관하여 보고했다. 대부분의 우리 3대대 대원들이 해병대에 지원했고 해병 신체검사가 끝난 후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6기 해병대원은 대부분 인천 지역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다. 나는 우리 3대대의 합격자들에게 “해병대에 가더라도 인천학도의용대의 긍지를 잊지 마라. 그리고 다시 고향 인천에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라”는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해병6기는 거의 인천출신 중학교 4~6학년 학생 그때 해병 6기 모집에 합격한 대원은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고 탈락한 대원들은 2·3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때 나도 해병대로 자원입대할까도 생각했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작아서 탈락한 대원들 때문에 도저히 해병대에 입대할 수 없었다. 탈락한 어린 대원들이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아우성에 나는 “너희들과 같이 행동 할 테니 우리 다 같이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기자”며 어린 중학생들을 달랬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갑자기 군인으로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향하던 인천학도의용대는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로 입소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고 우리들은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약 8시간 걸려 부산항에 도착하여 육군 제2 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 날 입소했다. 부산진국민학교에 있었던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한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란 존재는 사라졌고 갑자기 중학생에서 군인이 되었다. 그 후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로 가라 해서 많은 인천지역 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나를 포함하여 통신병 교육을 받고 통신병이 되었다. #인천 여학생들의 은인, 신봉순 대위님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내려왔던 많은 여학생 대원들은 오갈 데가 없어서 매우 어려웠었다.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의 신봉순 대위님은 여학생들을 통신학교 행정보조 업무를 하게 하며 보살폈고 4개월 뒤 여학생들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통신병으로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으로 있었는데 많은 인천학생들을 통신학교로 입교시켰다. 신 대위님은 지휘관 옆에 있는 통신병이 좀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어린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이끌어 주셨다. #“우리 대대장님 누룽지 드세요” 어느 날, 여학생 몇 명이 누룽지를 가져와서 ‘대대장님 드세요’라고 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서로를 감싸주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육군 중위 장교임관을 거절하고 사병으로 입대 1951년 1월 10일 나는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1956년 2월 만기 제대하였다. 국가위난의 6·25때 나라를 지키겠다고 뭉친 인천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은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 입대 후 참전하여 청춘을 채 펴 보지도 못하고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전선에서 보냈다. #“내가 이끌었던 3대대 대원들도 많이 전사”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으로서 어린 중학생들을 인천에서 부산까지 내 나름대로 판단하여 한 점 부끄럼 없이 이끌었지만 너무나 큰 국가 위기로 인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힘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3대대 1000명 중에서 100명 정도 전사했다는데 시국이 너무 급박하여 형으로서, 대대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직까지도 한(恨)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아무쪼록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발굴 작업이 성공하기를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2회 계속 참전기 1회를 마치며… ●이경종 위원이 전하는 말 권유상 옹은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23살에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5년 후 28살에 만기 제대한 인천지역 어린 중학생들의 훌륭한 형이었다. ●이규원 위원장이 전하는 말 살아 계시다면 올해 90살이 되신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1·4 후퇴 때 인천에 남아있었으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거나, 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가서 굶거나 얼어 죽을 운명의 인천학생들을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서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지만 208명이 전사하여 제대 후 고향 인천에서 전사 학생 부모님들로부터 “우리 아들 전쟁터 데려가서 죽었다”라는 비탄의 말을 들었고, 일평생 동안 동생 같았던 전사 학생들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참전 대학생 형들이 인천에 있었다.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저의 아버지(이경종)를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주신 권유상 3대대장님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군 “소말리아 해상서 몽골 어선 피랍 정황…한국 선원 3명 탑승”(종합)

    군 “소말리아 해상서 몽골 어선 피랍 정황…한국 선원 3명 탑승”(종합)

    27일 소말리아 해상에서 한국 선원 3명이 탄 원양어선 1척이 피랍된 정황이 포착됐다. 인근 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 해군의 청해부대가 긴급 출동한 상태다.문재인 대통령은 “피랍 정황 선원 구조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군과 외교부 관계자는 “소말리아 해상서 원양어선 1척이 통신이 두절됐다”면서 “우리 청해부대가 출동했다”고 밝혔다. 이 어선은 몽골 국적의 원양어선이다. 선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의 우리 교포로 알려졌다. 연락이 끊겼을 당시 선박은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해 오만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선원 21명 중 한국인은 선장, 기관장,갑판장 등 3명이 탑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어선은 마지막 통신에서 “배 뒤쪽에 다른 선박이 1시간가량 따라오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통신이 끊긴 상태다. 소말리아 해상은 해적의 활동이 빈번한 지역으로 올해 1분기에 2건의 선박이 피랍돼 선원 28명이 인질로 잡혔다. 최근에만 최소 8건의 공격 건수가 발생, 이 중 3척의 선박이 해적에 피랍됐다는 보도도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반자치주 푼트랜드의 칸달라 해역에서 조업하던 이란 어선을 납치하기도 했다.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역에서는 우리 청해부대를 포함해 수십 여척의 군함이 해적 피해 예방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퇴치 임무 등을 수행할 해군 청해부대 24진 대조영함(DDH-, 4400t급) 장병들이 파병됐다. 청해부대 24진은 승조원을 비롯해 특수전(UDT/SEAL) 요원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해상작전헬기(LYNX)를 운용하는 항공대와 해병대원으로 구성된 경계대 등 300여명으로 편성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한반도 위기 틈타 ‘非전시’ 미군 방호 첫 명령

    일본 해상 자위대가 한반도 위기 고조 상황을 틈타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미군의 함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사실상 처음으로 수행하게 됐다. 아사히신문은 30일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해상자위대에 ‘무기 등 방호’를 명령했다고 전했다. 1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를 출항하는 항공모함급 대형 호위함 이즈모가 이 임무를 처음 수행한다. ‘무기 등 방호’는 전시와 평시의 중간 상태인 ‘그레이존’(Gray zone) 상태에서 자위대가 무기를 사용해 미군 등 외국 군대 함선을 방호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3월 시행된 개정 안보관련법(안보법)에 의해 가능해진 임무로, 이번에 처음 자위대에 실제로 부여됐다. 안보법 시행 이후 일본 자위대의 전투 행위 및 활동 영역이 한층 확대됨에 따라 미군의 제3국과의 전투와 교전에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평화헌법’은 원칙적으로 교전권을 부인하고 있어, 현행 개정 안보법과 충돌될 수 있다. 한편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와 함께 다음달 3일부터 22일까지 일본 근해, 괌, 미국령 노던 마리아나 제도 테니안섬 등 태평양 지역에서 대규모 합동훈련을 실시한다고 교도통신들이 보도했다. 이 4개국이 함께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처음이다. 해양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 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는 북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훈련을 앞두고 지난 29일에는 영국의 해군 헬리콥터들을 태운 프랑스의 강습상륙함 미스트랄이 나가사키현에 있는 해상자위대의 사세보 기지에 입항했다. 미스트랄함은 일본 자위대원과 미국 해병대원을 태우고 다음달 5일 사세보항에서 괌 쪽으로 출발할 계획이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동료 누드사진 유포한 美해군·해병대 대원, 군법으로 처벌

    동료 누드사진 유포한 美해군·해병대 대원, 군법으로 처벌

    미국 해군과 해병대가 병영 내 누드사진 유포 차단에 나섰다. 미국 CNN은 19일(현지시간) 해군·해병대 사령부가 개인의 동의 없이 사적 이미지를 유포하거나 악의적으로 사용할 경우 엄격한 규제를 가하는 내용의 수정명령을 발효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규제는 군사법원에 의해 적용되는 군법 명령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수정명령에 따라 동의 없이 동료의 누드사진을 유포한 대원은 군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군 당국의 발표는 최근 해군·해병대를 뒤집어놓은 이른바 ‘해병연합’ 누드사진 유포 사건 때문이다. 군 당국은 그동안 해병연합(Marines United) 사이트를 통해 촉발된 전·현직 여성 해병 누드사진 유출 사건 조사에서 피해자 약 20명을 확인했다. 이 사건은 캘리포니아 탐사보도센터가 해병연합 사이트를 취재, 여성 해병대원의 누드사진과 계급, 성명, 근무지가 함께 게재된 사실을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지난달 미 의회에서는 누드사진 파문의 진상을 보고하는 청문회도 열렸다. 해병연합 페이스북 사이트는 폐쇄하고 구글 드라이브로 사이트가 옮겨갔으며, 이마저도 폐쇄되자 또 다른 사이트로 숨어들어간 상태다. 여성 해병대원 누드사진 유출 파문으로 홍역을 치른 미 해병대의 로버트 넬러 사령관은 지난달 대원들에게 적용할 강력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에 서명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해병 누드사진 파문 확산...군복입은 남성 군인들이

    미해병 누드사진 파문 확산...군복입은 남성 군인들이

    미국 전·현역 해병대원 3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페이스북 그룹 사이트 해병연합(Marines United)에 군복을 입은 남성군인들의 성행위 등을 담은 사진이 한 블로그 사이트에 등장해 발칵 뒤집어졌다고 일간 USA투데이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여성 해병대원의 누드 사진 또는 동영상이 올라온 적이 있다. 군 당국은 게이 포르노그래피 웹사이트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남성군인 외설물은 해병에 국한된 게 아니다. 해군과 육군, 공군 군복을 입은 군인이 등장하는 외설 사진도 게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진은 성행위 장면을 담은 것도 있다. 에릭 덴트 해병대 공보담당관(중령)은 “블로그에서 정복 유니폼을 입고 명찰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해병대원들의 여러 성행위 사진을 확인했다”면서 “하지만, 적어도 한 명은 사진 촬영에 동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해군과 해병대, 육군, 공군, 해안경비대가 공동으로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미 의회에서 누드사진 파문의 진상을 보고하는 청문회도 열렸다. 이 사건은 캘리포니아 탐사보도센터가 해병연합 사이트를 취재해 여성 해병대원의 누드 사진과 계급, 성명, 근무지가 함께 게재된 사실을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해병연합 사이트는 파문이 일자 즉시 폐쇄됐으나 이후 ‘해병연합2(MU2.0), ’해병연합3(MU3.0)‘ 등으로 옮겨가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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