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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약 파동/뜨거운 감자 묘책은 없나/관·정가의 시각과 반응

    ◎여론주시… 집단이기주의 확산 우려/청와대·정부/“편들수도 없고” 대화 통한 해결 촉구/민자·민주 한의­약사분쟁은 정치권에서 보면 「뜨거운 감자」이다.양편 다 이해당사자가 엄청나게 많은데다 어느쪽이 옳은지 선뜻 분간을 내리기 힘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정 무효화를 시사 하지만 분명한 입장은 있다.한의학과 학생들의 수업거부및 관련 인사들의 시위,그리고 이에 맞선 약국의 파업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집단이기주의에서 발로된 과격행동은 자제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법을 찾자는 것이 정부와 여야 모두의 바람이다. ▷정부◁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사태를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가는데 있어 결정적 전기로 파악하고 있다.과거 권위주의시대처럼 정부의 강제지침이 없어도 첨예한 이해대립이 법·제도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는 풍토가 정립되느냐의 시금석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기본 입장은 내각에 맡긴다는 것이다.보사부가 나서 의사·한의사·약사·소비자·학계등 각계 대표들로 위원회를 구성,문제가 된 약사법시행규칙과 함께 모법인 약사법 자체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 좋다는 원론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1차 조사결과에서는 한약은 한의사가 제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는 김영삼대통령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관계자는 『한의학 관련 인사들의 과격행동도 문제가 있지만 약사들이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해를 달성하려는 것은 더욱 심각한 사태』라고 말했다.다른 관계자는 『이해당사자끼리 대화로 해결점을 찾는 것이 최선이나 그것이 안된다면 약사법 시행규칙개정과정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온뒤 정부의 최종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해 비리가 개입했을 경우 시행규칙개정이 무효화될수 있음을 시사했다. 총리실도 일단 주무부서인 보사부의 절충노력을 지켜본다는 입장아래 황인성총리가 26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과격행동을 자제하도록 호소할 계획이다. ○“국민건강 담보 곤란” ▷민자당◁ 「약사법시행규칙개정 과정에 비리가 드러나면 규칙백지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사태해결을 낙관하던 민자당은 이 문제가 약국 집단휴업사태로까지 번지자 25일 더이상 어느 한편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다만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처방만 내놓고 있다. 김종호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은 한의학계가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집단행동은 정부여당의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 강재섭대변인도 『약사와 한의사는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해 국민건강을 담보로 투쟁하기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가져줄 것』을 희망하고 『정부가 하루 속해 이 문제를 해결해 국가기강을 확립하라』면서 정부쪽에 해법제시를 촉구. 강삼재정조실장도 『이 문제는 현재로서는 달리 대책이 없으며 보사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만일 검찰 수사결과 시행규칙의 개정과정에 약사단체의 불법로비가 개재된 것으로 밝혀질 경우 보사부에 이의 시정을 촉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 민자당으로서는 목전에 벌어지고 있는 한·약분쟁에 끼여드는 것이 백해무익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관련,민자당의 한 정책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의약분업·양한방 협진(협진)방향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당장 한·약 분쟁의 조정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약분쟁에 대해 골치아파 하는 것은 민자당과 마찬가지. 당직자들은『도대체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 ○여당에 책임 떠맡겨 민주당은 이에따라 이 문제에 관한한 정부와 민자당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한편 한 약 양쪽으로부터 눈총을 받을 만한 발언을 매우 자제하는 모습. 박지원대변인은 25일 『민자당과 보사부의 상반된 입장,즉 정책혼선에서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정부와 민자당은 약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한의사와 한의대생들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 ◎분쟁 전말과 수사방향/6공말기 「전격 개정결재」 규명 초점/검찰 수사/송 보사 보유뜻 간부들 “강행”에 굽혀/시행경위 약사법 시행규칙의 개정으로 촉발된 한의사와 약사의 갈등이 장외 힘겨루기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상 유례없이 약국의 전국적 휴업까지 불러온 이번 갈등은 동일한 약사법과 그 시행규칙의 해석을 놓고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부마저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사부는 다만 이들의 싸움을 대화로 풀기 위해 「약사법 개정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나 아직 18명 위원이 선정되지 않아 첫 회의마저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번 사태의 전말과 수사방향을 알아본다. ○“모법따른 약사권리” ▷약사회◁ 약사회측은 약사법시행규칙 제11조1항7호의 삭제에 대해 한의사들이 집단 반발을 보이는데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다. 이들은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외에 약장을 두어 청결히 관리한다」는 문제의 조항과는 상관없이 약사의 한약조제는 당연한 권리라고 보고 있다. 약사가 한약조제를 할 수 있는 근거는 시행규칙이 아닌 모법,즉 약사법에 분명히 규정돼있다는 주장이다. 약사법 21조에서는 「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2조는 「의약품이란 대한약전에 수재된 것」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대한약전은 1백30여종의 한약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의사회◁ 63년 약사법 제정 이후 약사의 한약취급금지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한의사측은 약사법 시행규칙 11조1항 7호는 국회가 지난 75년 「약사의 한약조제를 철저히 감독할 것」이라고 부대결의를 한데 따라 정부가 80년 이 조항을 신설했기 때문에 입법취지상 당연히 약사의 한약취급 금지조항이라는 주장이다. ○“한약 취급금지” 주장 또 약사법 2조 4항에서 약사가 취급하는 의약품의 범위를 규정해놓고 다시 5항에서 한약을 따로 명시한 것은 약사가 취급할 수 있는 의약품과 한약을 구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개정경위◁ 문제의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작업이 착수된 것은 지난해 11월12일.보사부는 정기국회에서 약업사의 지위보장에 대한 청원이 의결됨에 따라 관련 규정을 정비하기 위해 관련 단체인 약사회·제약업계에 공문을 보내 개정안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한의사측은 약정국 관련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공문이 발송되지 않았다. 대한약사회는 공문을 받자 같은달 문제의 조항이 사문화됐다면서 삭제해줄 것을 건의했다. 보사부는 이에 따라 지난 1월25일 개정안을 확정,안필준장관(당시)의 결재를 받아 같은달 30일 이 개정안은 입법예고했으며 한의사협회가 2월18일 문제조항의 삭제에 대한 반대의견을 보내왔으나 이를 묵살하고 22일 개정안을 최종 확정했다. 약정국은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위간부의 정책협의회에서 이 조항의 삭제 사실과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전체80여의 개정조항 목록만 거론한데 그쳤다. 이 개정안은 2월25일 안장관의 최종결재를 거쳐 3월5일 공포됐고 4월4일 시행에 들어갔다. 송정숙장관은 시행 며칠전 삭제된 조항의 미묘성을 간파,이의 시행을 보류할 뜻을 비쳤으나 간부들이 강행의견을 굽히지 않아 예정대로 개정시행규칙을 시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수수여부 조사 ▷검찰수사◁ 약사법분쟁에 대한 수사의 초점은 약사법 시행규칙 제11조1항7조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관계공무원들의 직무유기 또는 뇌물수수가 있었는지에 맞춰져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두가지 혐의에 대해 사법처리 할만한 물증을 확보한 단계는 아니지만 약사법 개정이 공청회등을 거치지 않은채 안전보사부장관의 퇴임 이틀전 전격적으로 결재된 점을 중시,의혹해소 차원에서라도 그 과정을 철저히 밝힌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검찰수사는 관계공무원의 수뢰여부에 초점이 맞춰질 공산이 크다.
  • 언론 「예측가능한 개혁」 이끌어야/편협 매스컴세미나 요지

    ◎사정선풍속 대중의 갈채에 가담하면/개혁 장애 봉착땐 독자에 외면당할것 한국신문편집인협회(회장 안병훈)는 18일부터 2박3일간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언론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주제로 제29회 매스컴세미나를 가졌다. 오보로 기자가 구속되는 사건까지 벌어진 시점과 맞물려 편집·보도국장등 50여명의 언론고위관계자가 대거 참석한 이번 세미나는 관심을 끌었다. ○국장급 대거 참석 19일의 토론순서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언론학자 최정호교수(연세대)와 재미칼럼니스트 김상기교수(미 남일리노이대)는 한결같이 한국 언론의 최근 보도태도에 비판을 가했다.최교수는 새정부의 사정과 관련한 일련의 보도를 「언론살인」이라고 꼬집었다.김교수는 『신문이 냉정을 잃고 정부의 뒤를 허겁지겁 따르며 풍악을 울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위한 해법에 있어서는 두 교수의 견해가 달랐다. 최교수는 언론이 그 막강한 힘을 「사람을 죽이는」부정적인데만 쓰지말고 「인물을 키우는」긍정적인데도 사용하라고 충고했다.이에반해 김교수는 언론이 새정부의 인치에 환심을 사려 급급해하는데서 벗어나 「럭비공 사정」이 「예측 가능한 개혁」이 되도록 앞장서라고 촉구했다. ○인물육성에 주력 최교수는 『근래 사정바람에 편승한 신문·방송의 일부 무분별한 보도가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회의 공동체생활에 치명적인 충격을 준 황량한 결과에 언론인 스스로도 놀라는 것같다』고 주장했다.언론이 「힘」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그 「힘」이 사람을 「죽이는」쪽으로만 몰려있다는 것이 최교수의 우려이다.그는 젊은 세대들이 숭배할만한 사회의 지도자·정신적 영웅·지적인 우상을 갖지못하고 방황하는 현상이 나타난 책임의 일단을 언론에 돌렸다. ○중대한 힘의 낭비 최교수는 언론은 이제 「사람을 살리는」것에도 눈을 돌려야한다고 제안했다.단순히 불우이웃돕기,소년·소녀 가장돕기,이재민 구호사업등의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큰」인물을 키우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무명의 인재」를 「유명의 인물」로 만들어내는 역할이야말로 문민시대의 언론이 지향해야할 방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그는 『그것이 대중적 혹은 군중적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는 부정척결이란 「사정」의 회오리바람속에서도 언론이 흔들려서는 안될 역할인식의 기본방향』이라고 밝혔다. 두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김교수는 『신문이 정부의 개혁드라이브 페이스에 휘말려 대중의 환호와 갈채에 가담하는 경우 중대한 힘의 낭비라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런 식으로 가다가 개혁이 장애와 저항에 부딪힌다면 언론은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정부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김교수는 내다보았다. ○생산적 대화 유도 김교수는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사정은 의도와 상관없이 권력의 자의적 행사와 남용,공포정치로 타락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럭비공 사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요즈음 우리 신문들이 펼치는 「여론재판」이라고 김교수는 지적했다.그는 『정부가 비리척결에 나설때 언론의 할 일은 권력의 행사가 마녀사냥이나 보복으로 흐르지않나 감시하는 것이지 앞장서서 「혐의의 원칙」을 휘두르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한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보수·혁신의 생산적 대화를 위해 언론이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반대·중립가운데 뚜렷한 입장을 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 “탈·불법 구시대 재연 절대불용” 입장/정부의 시각과 대응방안

    ◎합리적 해법 모색… 공권력은 최후에 현재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대정공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노사분규사태를 보는 정부의 시각은 5공·6공등 지난 시대의 양태가 재연되어 엄청난 사회·경제적 손실을 야기시켜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분규사태가 격화되거나 장기화됨으로써 여타 사업장까지 파급되어 전 산업이 마비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비리 척결과 경제회생을 최대의 정책목표로 삼고있는 정부는 이번 사태가 겨우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에 결정적인 저해요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새정부는 노사문제에 있어서 과거의 강압적인 공권력행사나 일방적으로 사용자편을 드는 과거의 모순을 지양,법과 질서유지의 테두리안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이미 천명한 바 있다. 노사관계를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합법적·제도적 장치에 따라 대화와 타협·양보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만약 사태가 악화되더라도 공권력을 투입하여 물리적으로 타결하는 방식을 지양,끝까지 노사를 설득·종용하여 결자해지의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문에 지금까지 노동부는 근로자들의 요구나 주장을 최대한 반영하고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을 개선하기위해 노력해 온게 사실이다. 현대그룹 분규사태에 대한 노동관련 정책 당국의 시각은 최소한 과거와 같은 전면파업사태등 극한상황으로까지는 치닫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는 사회의 민주화와 각 분야에서 비리가 척결되고 있는 마당에 현대 계열사노조측도 일반 국민들의 정서나 여망을 저버릴 수 없는 입장으로 분석하고 있고 노조원들도 극한상황은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또한 근로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87,88년 때와는 달리 「요구의 증대」정도를 주창하고 있어 얼마든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쟁의가 갖는 속성상 섣부른 집단행동으로 비화,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경우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제3자 개입을 적극 차단하려는 것도 이번분규에 재야인권단체 또는 운동권등 외부세력이 가세하는 것을 막기위한 사전 예방적인 조치이다. 특히 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이 이날 불법적인 노사분규일 경우 노측이든 사측이든 엄격히 다스리겠다고 천명한 점을 중시,어떤 경우라도 「무법천지」같은 악화사태는 좌시하지 않을 방침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사태를 비롯한 어떠한 노사분규라도 인내와 애정을 가지고 중재·수습하되 탈법행위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공권력투입과 같은 방법은 자율과 개방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경제활성화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다 자칫 「노사분규=공권력투입」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대그룹노사분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 공권력투입이라는 최후카드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사설)

    한 재벌의 보훈성금을 그 뜻만 알고 거절한 대통령은 자신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해야할 일은 할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취임초 정치자금은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김영삼대통령은 개혁을 위한 것이라면 인기없는 정책도 소신껏 밀고나가겠다는 뚝심을 내보이기도 했다.재벌의 성금 거절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 어느 시대이든 한 나라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적인 요소는 국가운영책임자의 사심없는 포부와 결의와 헌신이다.한 세대를 넘는 권위주의 정치사에서 오도된 지도노선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마저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런점에서 김영삼대통령이 6·10항쟁주역들과의 오찬에서 재벌의 성금을 거절한 사실을 공개하고 자신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몇가지 시각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먼저 이제 우리는 대통령의 달라진 어법과 해법을 이해하고 신뢰를 가질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어떤 명분으로든 기업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성금도 안받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다.과거처럼 대통령의 말은 으레 정치적 수사로 돌려 퀴즈풀이를 해서야 해석하곤 했던 그런 모호함이 아니라 한번 한다면 끝까지 하겠다는 실천의 체중이 실려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기는 받을 것이다』라고 보는 사람이 40% 정도라는 여론 조사결과도 있었다.보훈성금을 내려는 기업도 그런 생각이었는지 모른다.그러나 대통령은 한번의 예외를 두어도 원칙은 무너지기 쉽다는 경계를 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개혁의 일과성」을 우려할 필요가 없음을 믿게 된다. 다음으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우리는 국정운영의 중요한 원칙 추가인 것으로 받아들인다.그동안 「인기 영합배제」라는 표현자체가 국민여론을 무시하는 독주의 뜻으로 변질된 것도 사실이다.일부에서는 대통령의 개혁을 가리켜 「신권위주의」라거나 인기주의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개혁이 효율과 안정의 측면을 소홀히 하는것이 아닌가,또 한편에서는 새로운 권력체제의 구축에만치우친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보인다. 그런면에서 대통령이 다시는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이므로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안정과 내실있는 개혁의 두가지 뜻을 함께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도덕성과 정통성을 갖춘 대통령의 새로운 의지표명은 정치불안의 근본원인을 스스로 단절하고 공정한 국가 관리를 하겠다는 뜻으로 우리는 받아들인다. 그것은 개혁으로 낡은 질서와 의식을 고쳐 새로운 안정과 효율의 큰 틀로 바꾸겠다는 큰 방향의 제시이기도 하다.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낡은 안정속에 안주하는 기득권보호요청도,집단행동에 의한 평등의 요구도 모두 엄격히 다루어야 한다.개혁은 점진적인 과정을 밟게 마련이다.조급함과,나태함에서 벗어나 자제와 협력으로 나서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 한양의 배 전회장처리 엄격해야(사설)

    자숙하고 물러갔어야 마땅한 기업과 기업인이 이러저러한 특혜를 받아 살아남은 결과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큰 폐해를 주고 있는가를 한양그룹과 배종렬전회장으로부터 보고 있다.지금 한양은 공중분해직전에서 주공인수를 위한 가계약체결상태에 있고 사주였던 배전회장은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위반과 횡령혐의로 검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다. 그동안 한양에 9천억원의 빚을 준 상업은행은 한양여파로 자회사를 매각하고 은행원 1천명을 감축할 처지에 있고 수천 한양의 직원과 수백의 하청업체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양과 배씨에 대한 경제적·법적인 처리는 아직도 우리기업내부에 그와 유사한 기업인이 활동할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모범적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엄정한 조치가 아닌,과거식의 흐지부지한 해법이 되풀이된다면 현재도 숱하게 남아있는 부실기업정리가 제대로 될리도 없고 제2,제3의 배회장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한양의 부실과정은 물론이고 당연히 퇴장당해야 할 기업과 기업인이 온존할수 있었던 원인과배경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배씨의 경우는 부도덕하고 부실한 기업경영,과도한 부동산투기에 직접적인 이유가 있지만 여기에는 주거래은행과 관계부처,로비로 인해 배씨를 지원토록한 권력층의 비호도 가세한 혐의가 짙은 만큼 그책임도 함께 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한양은 1조9천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으면서 2조8천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종업원에 대한 체불임금이 아직도 3백억원에 이르고 있다.그런데도 배씨는 부채상환을 위한 자구노력은 포기하고 막대한 회사돈을 빼돌려 타인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한양은 신도시에서만 1만9천가구의 아파트를 지으면서 건설현장마다 부실시공이 문제가 되고 있음도 드러났다. 물론 배씨가 이렇게까지 할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경제사회 구조에도 문제가 크다.의당 퇴출되어야 할 기업과 기업인이 떳떳하게 살아남는 불공정성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어야 한다.최선을 다한 기업도 살아남기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경영보다는 로비에 힘쓰고 가뜩이나 부실하기 짝이없는 회사돈을 빼돌리는 기업·기업인이 차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제정의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종업원과 경제적충격을 이유로 부실기업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바로 이것이 부실기업들이 기승을 부릴수 있었던 방패막이가 됐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차제에 상업은행에 대한 응분의 조치도 있어야 할것으로 본다.주거래은행으로서 한양이나 배씨의 경영부실을 몰랐다면 그것은 태만이고 알면서도 질질끌려왔다면 그 또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 망월동과 연희동(김호준/정치평론)

    문민시대에 들어서 처음 맞는 광주민중항쟁의 날,망월동과 연희동의 모습은 정말 대조적이었다.한때 「저주의 땅」이란 원과 한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광주는 「민주성지」로 우뚝 솟았고,대통령을 두명이나 배출한 「현대판 명당」 연희동은 어느새 을씨년스런 「고도」로 변해버린듯 했다. 역사에까지 뻗친 사정과 더불어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문민정부의 뿌리로 자리매김 되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13년전의 그날을 되새기는 광주의 표정은 누가 보기에도 과거와 크게 다른 것이었다.항쟁의 거리 금남로에선 화염병과 최루탄이 사라진 가운데 각종 추모행사가 평화적으로 진행됐고 망월동의 5·18희생자 묘역엔 이제 정권의 눈총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과거의 인식으로 볼때 무엇보다도 신기하게 들린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이 보낸 추모화환이 아무런 수난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광주시민들의 고황 깊숙이 맺혔던 한의 응어리가 풀어져 내리면서 화기가 감도는 분위기를 접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날 두 전직대통령이살고 있는 연희동은 마치 중세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두개운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수천명의 전경이 두 전직대통령의 집에 이르는 골목길들을 가득 메웠고 교통이 차단된 큰 길에선 두 전직대통령을 「체포」하려는 학생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전경들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그동안 두 전직대통령 덕분으로 범죄없는 치안을 향유하던 연희동 주민들은 갑자기 온동네를 뒤덮은 최루탄 가스로 문민시대의 매서운 맛을 보아야 했다. 문민시대는 망월동과 연희동의 위상과 그 명암을 바꿔 놓았다.서울의 대학가에선 5·18광주사건과 관련하여 두 전직대통령이 유혈진압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만일 그런 대학생들과 법에 따라 두 전직 국가원수에게 안전을 제공해야 할 전경들간의 대치가 연일 계속된다면 연희동은 6공때의 백담사나 다를바 없게 될 것이라고 현지 주민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현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고 선언한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해묵은 광주문제를 종결짓는 결정적 전기가 되었음은 이번의 광주 표정이 잘 보여주었다.물론 대통령이 제시한 해결방안과 광주시민의 요구가 전적으로 일치한 건 아니다.가장 큰 이견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문제다.이 문제만은 이번에도 해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미흡한 부분은 역사에 맡기자』고 강조했고 책임자 처벌문제에 대해서도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고 호소했다.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광주민주화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5·17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또한 지난 83년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선 23일간의 단식을 통해 민주화투쟁을 다시 점화시킨 장본인이었다.그러한 대통령이 「유예」와 「관용」을 호소한 것은 이 나라가 「5·18」의 진상규명에 매달려 구시대의 갈등을 재연할 경우 「신한국」건설의 관건인 개혁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주쪽 사람들은 5·18학살의 진상을 밝히지도 않고 가해책임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와 화해하라는 것이냐고 반박한다.일견 대통령의 호소나광주쪽의 주장이나 다같이 충분한 논리적 당위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5·18」의 진상에 대해선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이 「확신」을 갖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두 주장의 설득력엔 큰 차이가 발견된다. 80년의 봄을 엄동설한으로 돌린 5·18 유혈사태가 무엇때문에 일어났고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처음부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다만 일방적인 사법처리 때문에 진짜 죄인이 법정에 서지 않았을뿐 정치적·사회적으로는 그 진상이 규명된 상태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진상규명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이 「체포조」를 결성하여 연희동으로 돌진한 사례야말로 이를 웅변하는 역설적인 반증이 아니겠는가. 미국정부의 견해를 빌릴 필요도 없이 「5·18」은 이른바 신군부의 강압적인 정권장악과정에서 빚어진 유혈사태였다. 당시의 군통수권자는 최규하대통령이었지 보안사령관과 수경사령관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당초부터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실은 그 진상을 국민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를 피로갚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보내는 건 인간만의 미덕이다.그러나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과오가 있는자의 참회와 속죄가 전제될때 가능하다. 만일 광주사건의 가해자들이 진심에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망월동의 원혼들은 자비의 미소를 보내고 연희동은 다시 조용한 주택가로 돌아갈 것이다.그리고 개혁은 더욱 힘차게 굴러갈 것이다.
  • 「반란」에서 명예회복까지/13년만에 제자리찾은 「광주민주화운동」

    ◎80년 5월18일 「광주소요사태」로 발표/85년 2·12총선때 신민당서 쟁점화/5공때 특사 등 미봉책… 진상규명 숙제로 80년 5월18일. 광주일원에서 시작된 학생·시민들의 시위는 「광주소요사태」→「광주폭동」→「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13년의 세월이 흘렀다.긴세월동안 광주문제는 「반란」에서 「명예회복」까지 숱한 변천을 거듭해온 것이다. 그동안 당사자는 물론 전국민들의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5·18광주」문제.어떠한 성격규정의 변화와 해결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 당시 계엄당국은 광주시위를 「소요사태」로 표현했다가 유혈사태로 확대되자 「무장시민폭동」이라고 규정했다. 5·18이후 출범한 제5공화국은 정권 내내 광주관련단체와 재야·학생들의 「진상규명및 명예회복」요구에도 불구하고 「광주폭력시위」「시민폭동」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다만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적화합을 한다는 명분으로 사태관련자에 대한 특별사면과 장례비·치료비 수준의 보상에 문제해결의초점을 맞추었다. 당시 정부는 81년 3월3일과 4월4일 두차례에 걸쳐 3백89명의 사태관련자 전원을 특별사면및 감형조치했다. 국민들은 당시 정확한 진상을 모른채 엄청난 시위와 진압,총격전으로 인한 사상자를 남긴 사건으로만 전달받았다. 광주사태에 대한 성격규정이나 진상조사문제는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5공당시에는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나 「광주의 한」은 내연하고 있었다.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는 물론 전국의 학생·재야들이 술렁거렸고 간단없이 시위가 이어졌다. 「5월문학」이나 「5월시」라는 문학용어가 새로 탄생했고 「5월의 노래」등 광주와 관련한 수많은 시위노래도 등장했다. 광주진상규명문제가 최초로 정치쟁점화한 것은 신민당돌풍을 몰고온 85년 2·12총선때였다. 이어 87년 1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당시 노태우후보에 맞선 김영삼·김대중후보가 각각 정승화·정웅씨를 끌어들여 광주문제를 최대선거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이때부터 광주문제는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따라서 당선된 노후보는 광주문제 해결을 위해 취임전에 「민주화합추진위원회」(위원장 이관구)를 발족시키게 됐다. 「민화위」에서는 광주문제 성격규정을 놓고 진압당사자·피해당사자간의 뜨거운 논쟁이 오갔다. 「과잉진압에 따른 시민무장」이 시민들의 주장이었고 「폭도를 진압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군당사자들의 주장이었다. 과격시위와 과잉진압이라는 양비론과 당시 상황이 서로를 어쩔수 없는 국면으로 몰아갔다는 양시론이 적당히 조화를 이뤘다. 결국 「민화위」는 그동안의 「광주사태」로 표현되어오던 것을 처음으로 「광주학생·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성격을 긍정적으로 규정하고 정부차원의 사과와 보상을 노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명명된 것은 88년 11월 여소야대상황에서 발족된 「광주특위」에서였다. 광주특위는 13회의 「광주청문회」를 통해 66명의 증인들을 출석시켜 과잉진압여부·발포책임·양민학살에 대해 진상규명작업을 벌였고 그해 12월31일 전두환전대통령까지 증언대에 세웠다.비로소 역사에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에 6공정부와 국회는 민주화운동에 상응하는 피해자보상을 위해 「광주민주화운동 보상법」제정에 착수,90년 7월 법률공표에 이어 91년 3월 피해대상자에 대한 보상금지급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국민일각에서는 보상금지급과 기념사업만으로는 광주문제에 대한 원천적 치유는 안된다는 여론이었다. 광주문제에 대한 성격규정과 물질적보상 이외에도 명예회복 역사정립등 국가적차원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 13년이 지난 오늘까지의 숙제였다. 결국 김영삼대통령의 13일 광주특별담화는 이같은 풀리지 않는 숙제에 대한 역사적 해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 김 대통령 「5·18문제」 담화에 담긴뜻

    ◎“「광주」 연장선상의 문민정부” 천명/과감한 용서로 범민주화운동 승화/“진상규명 훗날에”… 「신한국」동참 호소 김영삼대통령이 13일 발표한 광주문제해결을 위한 특별담화는 국민의 「평균정서」를 해결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광주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반대로 그외지역이나 다른 사건 관련자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광주만을 우대한다는 시각도 병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대통령은 이같은 불만족과 시각차를 「용서」「화해」같은 종교적 어휘를 빌려 위로하면서 「신한국창조를 위한 참여」로 광주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열어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광주해법」은 역사는 올바르게 기록하되 그것이 미래로의 전진을 붙드는 족쇄여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때문에 구체적인 상처치유도 성역화·기념공원조성·전과말소 등의 명예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피해자에 대한 배상요구는 추가보상기회 제공으로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광주측의 핵심요구사항의 하나인 진상규명과책임자 처벌은 역사적 평가에 맡길 것을 제의,그것이 동서화합과 신한국창조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광주해법은 이날 상오 발표한 12·12에 대한 해법과 같은 논리 체계를 있어 이러한 방식이 과거사에 대한 새정부의 일관된 처리방침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날 상오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12·12에 대해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사건」으로 규정,역사회복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이 문제로 인한 추가논쟁의 발생은 원치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하오에 발표한 광주해법역시 명예회복을 통한 「역사 복원」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진상규명과 같은 국력소모는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광주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의 한과정에 편입시킴으로써 적극적인 동서화합을 통한 「광주의 구출」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김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을 80년 5월에서 문민정부 탄생까지 복잡다기하게 이어지는 「한국민주화운동」의 한봉우리이면서과정으로 해석했다. 이 바탕위에서 『오늘의 정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라고 밝힌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용어는 이미 지난88년 6공정부의 「민화위」에서 처음 제기돼 통용돼왔다. 새정부 출범이후 광주지역에서는 이를 「의거」로 격상시켜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그러나 이는 광주문제를 다른 민주화운동과 격리시키게 됨으로써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하고 광주를 결과적으로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국민주화운동」의 한과정으로 편입시키고 이름도 「민주화운동」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여겨진다. 김대통령은 담화문에서 『광주의 민주 정신을 전국적으로 승화시키는 방향에서 그리고 광주시민이 원하고,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못밖았다. 그 정신을 전국적으로 승화시키는 방향과,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이 기본원칙임을 스스로 천명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당시 야당총재로서 맨처음 군부정권당국에 정면으로 항의한 또하나의 당사자 위치에 있다. 당사자이되 가해자의 위치가 아님으로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이 광주문제에 제시할 수 있는 정부의 한계임을 솔직히 밝히고 또 그 범위내가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김대통령은 광주문제가 결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거나,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이는 야당의 일부 세력이나 광주현지의 특정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의 「평균정서」를 무시하고 해결을 방해할 가능성을 미리 경고한 것이라 할수 있다. 정부는 망월동 묘역 성역화에 82억원,도청이전과 기념공원조성등에 1천억원을 각각 지원할 예정이다. 이같은 재정지원과 명예회복을 받아들여 광주가 이름처럼 밝은 도시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이는 정부가 동서화합을 위해 호남측에 제시한 조건으로서의 성격도 갖는다.
  • 「대북결의」 중국 기권/13국 찬성 통과/추가조치도 명시

    【유엔본부=임춘웅특파원】 유엔안보리가 11일 하오 7시(한국시간 12일 상오 8시)대북한결의안을 찬성 13,반대 0,기권 2로 채택함으로써 북한핵은 안보리가 해법을 찾아야 할 현안문제로 부각됐다. 15개 안보리 이사국이 모두 참가한 이날 결의안 표결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등 13개국이 찬성했으며 중국과 파키스탄만 기권했다. 안보리가 이날 제8백25호로 채택한 대북한결의는 북한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복귀와 핵사찰수용을 촉구하고 필요할 경우 안보리가 추가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박길연유엔대사는 두차례의 발언을 통해 『안보리가 부당한 압력을 가해올 경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자위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한국대표부의 유종하대사는 『안보리 결의안이 적절하고 균형된 결의안이라고 생각하며 결의안 채택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자세를 재확인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오늘 결의안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씻어내기 위해 국제사회가 취하게될 마지막 조치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매우 적절한 조치/외무부,환영 논평 유명환 외무부대변인은 12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1차결의안 채택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정부는 유엔 안보리가 결의를 통해 북한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결정을 철회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수락토록 촉구한 것을 매우 적절한 조치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 재벌문제점 주체적 해법 찾기/전경련 「자체개선」 발표 안팎

    ◎국민여론 의식한 신경제정책 「함께하기」/자율 개혁통해 정부와 새 관계정립 모색 전경련이 11일 재벌의 소유집중 문제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김영삼대통령의 강도높은 재벌관련 정책을 크게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재계는 현재와 같은 개혁분위기에서 국민들에게 좋지 않게 비치는 기업집단체제를 더이상 고집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계는 당초 정부의 신경제 5개년계획 작성지침과 관련,▲대기업정책 ▲금융자율화 ▲노사문제등에 집중적인 보완을 요구하려 했으나 이같은 움직임이 정부정책에 「반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자 금융개혁에 대해서만 입장을 정리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재계는 「기업체질 개선선언」에도 불구,여전히 내부적으로 「기업집단 체제가 경쟁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경련의 이날 결정이 단순한 「선언적」 차원은 아니라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요즘같은 분위기에서 정부에 떠밀려 타율적으로 「교통정리」를 당하는 것보다 자체개혁에 나섬으로써 「고통분담」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로 귀착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분축소나 계열사 분리 문제등이 어떠한 기준과 방법으로 추진되느냐가 「자율」의 한계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이날 정부정책과 무관하게 재계 스스로 소유분산과 업종전문화를 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정부에 경제와 경영의 자율화를 요구하고 있는 재계로서는 자신들의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정부와 떳떳한 관계정립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경련이 그러나 『정부가 은행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면 5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도 정부와 보조를 맞추어 은행의 경영과 지배에 일체 간여하지 않겠다』고 단서를 붙인 것은 금융개혁문제를 새로운 여건변화에 적응,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함께 국제경쟁력 제고,기업경영의 위험분산,경영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이점이 있는 기업집단체제가 정부의 정책으로 대책없이 해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미도 있다.기존의 재벌정책이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정에서 형성돼왔던 점과 소유분산은 상속·증여세등 조세정책의 강화로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현 재계의 입장임을 감안할때,일단 유화적인 태도를 통해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다. 재계가 그러나 과거 정부가 각종 대재벌정책을 펼쳤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재벌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 것은 새로운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김 대통령­언론사 사회부장단 대화 내용

    ◎“사정속도 지금이 적당하다”/청와대선 원칙만 제시… 획일사정 안해/군은 명령 따라야… 반발은 있을수 없어 김영삼대통령은 4일낮 중앙언론사 사회부장들을 초청,점심을 함께 하며 사정·군인사비리수사·경제문제등 국정 현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요즘같은 개혁 드라이브는 언제 계획한 것인가. ▲집권하기 전부터 깨끗한 정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재산공개등은 그때부터 구상한 것이다.깨끗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나의 신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다. ­중복사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각 사정기관의 사정활동은 각기 별개의 차원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사정문제를 놓고 청와대에서 지시를 하거나 획일적인틀에 맞추어 진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자꾸 사정진행에 문제가 있는양 보도하는데 언론이 30여년간의 타성에 젖어 사안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과거에는 사정을 지시에 의해 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원칙을 제시할 뿐이며 성역없이 하는 것이 사정의 취지이다. ­사정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있는데 ▲지금의 속도가 적당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더 많다. 94%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지금같은 사정활동이라면 세금을 더 내도 좋다는 국민이 51.6%나 된다는 사실은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아 볼 수없는 현상이다. 국민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변화와 개혁은 꼭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이 시대의 대안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정은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우리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한다.과거를 들추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그러나 과거의 너무 큰 부정을 덮어두고 나가면 국민들이 용납을 하지 않을 것이다.곪은 것은 절대 살이 될 수 없다.도려내야 한다.부정부패는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사회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것은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육군에 대한 인사비리수사는 안할 것인가. ▲그것은 조사중에 있으니 잘모르겠다.지난번 육군수뇌부인사는 대담한 것이었다.잘못된 것을 완전히 바로 잡았다. ­군인사비리 수사문제에 대해 반발움직임이 있다는보고는 못받았나. ▲솔직히 군에서 누가 반발하는가.「제복」들은 명령이면 그만이고 옷벗기면 그만이다.딱 명령이 떨어지면 죽기아니면 살기다. 군인사문제는 취임하기전부터 대통령 또는 군통수권의 차원에서 과거 사람을 두고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왔다.문민시대가 그런 사람들과 적당히 타협해나간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광주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지만 미리 얘기해서는 안된다.광주문제는 나자신이 엄청난 피해자라는것을 인정해 주면된다(광주사태와 연금 단식때 핍박받은 일들을 자세히 설명). ­골프에 대하여 ▲해라 하지말라고 직접 얘기한적이 없다. 상당히 오래전에 골프를 했으나 지금은 할 생각이 없다. 전에 골프장 사장이 회원으로 들라고해서 돈이 없다고 했더니 조그만 내고 이름만 등록하라고 하여 회원이 됐었다.그러나 국회에서 제명이 되어 골프를 할 시간도 없었고 10년동안 안했다. 그러다가 87년선거때 돈이 필요해 회원권을 5천만원에 팔아 잘 썼다.골프회원권이 그렇게 금방 돈이 되는줄도몰랐었다. 13대 국회때 몇번 나갔는데 그때마다 신문에 나고해서 대통령이 돼도 안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나는 골프를 안치겠지만 누굴보고 치지말라고 강요하는게 아니고 나의 임기5년동안 모든 정성을 바쳐 성실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대통령령이 골프를 안한다는 것은 공직자들에게 하지말라고 하는 것 아닌가. ▲(너털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두달쯤 해보니 대통령이 할만하다고 생각하는가. ▲별것을 다묻네.대통령은 책임이 너무 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이번 개혁도 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다.그리고 언론,특히 사회부기자들과 같이하는 것이다. ­육군인사비리와 삐찡꼬수사에 대한 가장 최근의 보고는. ▲사정엔 성역이 없다.이거해라 저것을 해라 하는 식의 사정은 없다.사정당국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선택해서 하는 것이다. ­사정 때문에 재벌들이 긴장하고 있다는데. ▲왜 긴장하는가.돈 갖다줄데도 없고 받을 사람도 없는데.진실되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동화은행에서 돈먹은 6공인사들의 명단을 밝힐수 있는지. ▲그런 것은 묻지 말아달라. ­언론사에 대한 세무사찰이야기도 있는데. ▲다시 이야기하지만 사정에 성역은 있을 수 없다.신문들은 남의 탈세사실을 크게 쓰더니만….
  • 유고내전 1년/연일 「인종청소」… 평화 아득

    ◎사상 15만… 국제중재안 모두 무위/냉전종식후 신국제질서 수립의 최대걸림돌/세르비아 효과제재가 휴전열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이6일로 발발 1주년을 맞았다.15만명에 달하는 사망·실종자와 수십만명의 난민을 낳은 보스니아내전은 현재 유럽이 안고 있는 최대의 비극이지만 유럽은 물론 유엔등의 국제기구도 「해법」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지난 1년간 많은 평화중재노력이 있었지만 내전을 일으킨 세르비아쪽에서는 조금도 태도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계가 이처럼 강경자세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크로아티아 회교도들에 비해 월등히 앞선 군사력으로 내전이 오래 갈수록 얻을 것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계산 ▲내전확산의 우려 때문에 앞으로도 지난 1년간처럼 서방세계의 군사개입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추측 ▲이미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경제상태로 경제제재가 계속된다해도 얼마든지 견뎌낼수 있다는 자신감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전 면적의 70%를 장악하고 있으며 수십만명의회교도들이 전쟁의 포화를 피해 고향을 등짐으로써 그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인종청소」도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지난 92년초 휴전이 이뤄진 크로아티아와의 내전에서 세르비아계가 점령한 영토를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계속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얻을 수 있는데까지 다 얻은 뒤에 휴전을 하더라도 현재로선 손해볼 것이 전혀 없다는게 세르비아의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유엔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상공에서의 비행금지구역을 무력으로라도 관철시키기로 결의한데 이어 2일 나토가 이를 실행키로 합의했다.또 서유럽동맹이 5일 세르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강화를 위해 다뉴브강에서의 순찰을 강화하기로 합의하는 등 보스니아내전이 해를 넘기면서 세르비아에 대한 국제압력은 점차 강도를 더해하고 있다.따라서 세르비아로서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내전 계속이 아니라 현상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국제사회가 제1의 목표로 내세운 평화는 이뤄질는지모른다.그러나 문제는 내전을 일으킨 세르비아에 대한 응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데 있다.뿐만 아니라 무력을 통한 대세르비아 추구등을 사실상 묵인한 결과도 된다.또 세르비아에 대한 응징이 없다면 목표달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무력을 사용해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낳게될 가능성이 있다. 보스니아 내전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서방세계가 내세우는 냉전종식 이후 안보유지를 위한 새 국제질서는 한낱 말뿐으로 끝날는지도 모른다.
  • 남북대화에 “봄기운 불어넣기”/이인모씨 무조건 북송 결정의 뜻

    ◎「개방과 변화」 이끌어내기 시험작/자신감 바탕둔 새 대북정책 예고 지난 89년 3월 「말」지에 「인민군 종군기자 34년 통한」제하의 기사가 보도돼 처음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뒤 남북간 주요 회담때마다 「뜨거운 감자」가 돼온 이인모노인(76)문제가 「근본적 해결」로 가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정부가 11일 이노인 문제와 관련,4개부처 주요장관들의 전략회의에서 그를 무조건 송환하는데 따른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등을 결정키로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그간 『보낸다』『못보낸다』등으로 말도 많았던 이노인 문제의 해법이 문민시대를 연 새 정부의 정통성과 자신감 위에서 획기적으로 모색되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조속히 해소돼야 한다』는 기존입장이 재확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또다른 의지표명이자 실천이라는 점에서 향후 대북정책의 전반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노인의 송환문제는 특히 전체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반대급부없는 송환에 반발해온 우리 사회 내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측 정책 책임자의 최종결단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온 사안이었다.때문에 정부의 이번 방침은 그간 대북정책 결정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보수의 목소리에 대한 상대적인 견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북한이 지난 92년 1월 이노인의 송환문제를 주요현안으로 첫 거론한 뒤 지난해 8월에는 그의 선송환을 요구하며 이산가족상호교환합의를 무산시키는등 끈질기게 송환을 요구해왔음을 고려할 때 이노인의 송환 자체가 북한의 대내외 정치선전의 수단으로 크게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아직도 제기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노인 문제가 남북간에 본격 거론된 것은 지난해 5월이후.7차고위급회담합의에 따라 이산가족의 상호교환을 위한 남북실무협상이 시작되면서 『핵문제의 해결없이 합작사업실시등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남측의 대북정책이 발표되자 북측은 이노인의 선송환이 이뤄지지 않는한 교환방문 자체를 실시할 수 없다고 버텨 실무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이어 남북은 지난해 9월 8차고위급회담에서 이노인 문제를 공식안건으로 채택,협상을 계속했으나 별무소득이었다.당시 남측은 ▲남북동진호선원 12명의 송환 ▲이산가족교환사업 정례화 ▲판문점면회소설치등 3개안을 이노인의 송환조건으로 제시했으나 북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양측은 이노인 문제와 관련,두차례의 협상을 더 가졌으나 동진호선원 귀환문제로 끝을 맺지 못했다. 어쨌든 정부의 이번 결정은 최근 폐렴등의 합병증으로 한달이상 병원에 입원중인 이노인이 건강악화로 사망할 경우 예상되는 도덕적 부담감과 종교계,학계,법조계인사들의 잇따른 송환탄원,그리고 문민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의지등이 결합돼 도출된 「시험작」으로 평가된다.그리고 이노인의 송환을 통해 교착상태에 놓인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확인된만큼 이제는 북측이 대답할 차례가된 셈이다.
  • 경제개방 가속화하는 북한/「자유무역지대법」 제정 의미

    ◎“외국인투자 유치” 법적토대 완비/한국기업도 대상… 평양진출 늘듯 북한이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에 외국선박과 선원의 자유입항을 허용하고 무사증제도를 시행키로 한 것은 그들이 당면한 경제난의 「해법」을 대외경제개방정책에서 찾기로 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지난달말 「외환관리법」과 함께 제정된 것으로 밝혀진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공화국밖에 있는 조선동포」도 해당되는 것으로 돼있어 앞으로 대북투자에 나설 우리 기업들도 적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 43조로 된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제23조에서 『자유경제무역지대에 있는 무역항에는 무역선과 선원들이 국적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41조는 『국가는 자유경제무역지대에 직접 들어오는 외국인에게 무사증제도를 실시한다』고 규정,비자없이 자유왕래가 가능함을 밝히고 있다.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을 비롯한 3개 외국인투자관련법안의 제정은 북한이 지난 91년 12월28일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계획에 초점을 맞춰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정한 후 기존의 「합영법」만으로는 서방의 선진자본과 기술을 유치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를 법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법령정비과정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로써 북한의 외국인투자관련법은 「합영법」등 기존의 법령과 지난해 10월에 신설된 법령을 포함,모두 12개로 늘어나 외국인의 투자유치를 법제적으로 뒷받침하는 토대는 일단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또 제18조에서 『외국투자가는 자유경제무역지대안에 투자하여 기업을 설립·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품의 가격은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합의에 따라 결정한다』고 밝힘으로써 시장경제원리의 자유경제무역지대내 도입을 공식천명,향후 북한경제체제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짐작케 하고 있다. 또한 이 법은 자유경제무역지대의 관리기관을 대외경제위원회와 지대당국으로 한정하고 대외경제위원회로 하여금 이 지대의 개발과 관리운영을 전담토록 함으로써 무역부와의 업무분담이 불분명했던 대외경제위원회가 향후 북한의 경제개방을 이끄는 핵심기구로 역할 할 것임을 시사했다. 최근 북한이 일련의 새로운 경제관련 입법을 통해 경제개방의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앞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각 법률에 따르는 시행세칙 제정과 내부법과 투자관련법과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불안감없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급선무라는게 북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6공화국 5년간의 부문별 발자취(민주­화합의 시대 열다:1)

    ◎「보통사람」 존중/권위주의 불식… 대화·자율의 뿌리내려/통제→반발→재통제의 악순환 고리단절 노태우대통령의 6공화국이 이제 역사의 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민주화 열기속에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출범한 6공화국은 초반 사회적 무질서와 혼란등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민주화 정착,북방외교성공및 통일기반 조성,선진국으로의 도약발판 마련등 뚜렷한 업적을 성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부정적 시각도 없지않다.「민주­화합의 시대 열다」시리즈를 통해 6공 5년의 성과를 짚어본다. 총체적으로 노태우대통령의 6공화국 5년은 민주와 화해의 시대로 평가받고 있다.오랜기간 우리사회를 억눌러온 권위주의를 불식,대립과 갈등을 풀고 자유와 자율을 뿌리내리게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역사발전적인 측면에서는 국내외 전환기적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성장의 기초를 다져놓은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구체적인 성과로는 정치문화의 혁신등을 통한 민주화 정착,북방외교의 성공및 남북한관계 진전,경제 재도약 기반확충,사회안정과 복지증진등 각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안정성장 기초 다져 물론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특히 각론적 시각에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다.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후한 점수를 받거나 오히려 인색한 평가를 받게되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측면에서 기준점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는 점도 문제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와 오늘의 현실을 비교하고 6공화국이 부여받은 시대적 소명을 얼마나 어떻게 이행했는가를 따져보면 해법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노대통령의 6공화국은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세웠다.전정권의 잘못된 점에 대한 반성의 성격을 담고 있는 국민화합,탈권위주의가 최우선 명제였다.이는 노대통령이 6·29선언에서,그리고 대통령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내용들이기도 했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5공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불가피하게 수반됐고 노사분규,대학가시위등의 혼란양상이 한동안 계속되기도 했다.이는 「아래서부터 위로」의,탈권위적 통치스타일이 지속된데 따른 전환기적현상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남북통일 기반 조성 노대통령의 이같은 통치스타일에 대해 「물대통령」이라는 말과 함께 「허약하다」「우유부단하다」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몇차례의 선거를 통해 입증되기도 했지만 수십년간 계속되어온 우리 정치권의 「민주대 반민주」구도를 종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또 정치의 행정화,정치의 군사문화화라는 색채를 상당부분 해소시켰다. 무엇보다 국민 각자의 자율의식이 높아지고 민의에 따르는 정치가 보편화된 점이 중요한 대목으로 지적되고 있다.6공이전까지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사회적 발전에 상응하는 정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데 있었다.정치권,특히 권력의 핵심권에서 통치능률의 극대화등을 내세워 국민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비록 아직까지도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국민과 이심전심형 대화가 당연한 책무로 인식될 만큼 정치문화를 쇄신한 것은 6공의 분명한 업적으로 기록될 수 밖에 없다. 북방외교의 성과도 민주화 추진에 따른 국민적 화합과 자신감이 뒷받침 되었다고 노대통령은 밝히고 있다.이는 우리와 이념과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적대시해온 구소련,중국등 북방국가와 화해협력하는 관계를 맺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구도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을 기본목표로 했다.결과는 지난해 중국,베트남 등과의 수교로 마무리되었다.자의적 해석에서 비롯된 일각의 평가절하가 있기도 했지만 추진과정의 국내정세 등과 연관지어 노대통령이 내치보다 외치에만 신경쓴다는 비판이 나왔을 만큼 성과는 화려했다고 할수 있다.노대통령은 동서로 분열됐던 올림픽을 12년만에 재결합시킨 서울올림픽이 북방정책의 성공적 출범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남북한유엔가입,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의 체결은 북방정책의 성공에 따른 값진 결실로 평가되고 있다.노대통령이 『금세기내에 통일이 성사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여러차례 전망했지만 6공 5년동안 이루어진 남북한관계의 급진전은 앞으로 평화통일환경을 성숙시키는데 밑거름이 될 것은 분명하다. ○경제엔 평가 엇갈려 6공에 대한 평가에 있어 가장엇갈리는 분야는 경제분야이다.비판론자들은 6공 경제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전반적인 침체현상을 야기시켰다고 분석하고 있다.분배위주에서 성장위주로,다시 분배위주로 정책이 뒤바뀌면서 경제의 흐름이 상당부분 왜곡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론자들은 내외적인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국민소득이 6천7백달러로 2배이상 오르고 경제규모도 세계 19위에서 15위로,순외채 규모는 1백10억달러로 줄었다는 등의 전반적인 성과를 내세워 비판론을 일축하고 있다.그동안의 경제적 어려움은 민주화에 따른 희생과 대가였고 국제경제의 전반적 침체와 연관지어 해석해야 하며 일련의 구조조정과정을 통해 이제는 재도약의 기반이 강화되었다는 설명이다. 기타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노대통령은 공약사항을 수시로 점검하며 6공 국정의 기본목표였던 「민주·번영·통일」을 구체화시켰다. 전반적인 맥락에서 6공화국은 「능률성」을 다소 희생한 대신 「민주화」를 정착시킨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것도 강압적 수단이 아닌 국민의 자각과 자율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노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별개로 치더라도 「통제와 반발」의 악순환을 근본적으로 시정했다는 것은 6공의 명백한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 클린턴,유엔상비군창설에 전향적/미 새 정부의 지역분쟁 대처방안

    ◎민족·종교갈등 줄일 「국제재판기구」 모색/징벌위주 군사개입보단 예방외교 우선 미국의 클린턴행정부는 출발초기부터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간,종교간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부심하고 있다.이 가운데는 유엔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국제재판기구를 창설하는 문제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극제문제들이 포함돼 있다. 유엔군의 역할강화에 대하여 클린턴행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3가지로 나눌수있다.지난해 여름,부토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제의했던 독립적이고 영구적인 유엔군의 창설에 대해 부시행정부는 이를 사실상 거부했으나 클린턴행정부는 다소 전향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레스 애스핀신임국방장관은 ▲유엔의 임무를 수행하는 항구적인 부대의 창설 ▲유엔이 필요할때 운용할수있는 각국의 부대지정 ▲세계 모든 국가의 지원병으로 구성되는 「유엔의용군」의 창설등이 유엔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지난번 상원인준청문회에서 밝혔었다.그러나 미국으로서는미군부대를 유엔사무총장의 지휘권아래 둘수는 없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그 이유는 미국의 헌법때문에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수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산주의의 붕괴이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종족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유엔기구를 훨씬 초월하는 새로운 「국제심판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이와같은 기구는 기존의 유엔을 비롯,유럽공동체(EC),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안보협력회의(CSCE)등을 확대개편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세계 각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소수민족의 주장을 경청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주기 위해 「국제재판기구」같은 것을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 기구는 국가간의 법적인 다툼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기존의 국제사법재판소와는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달리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장관은 세계 곳곳의 종족·종교·지역간 분쟁에 대처하는 미국의 기본 대응방향은 분쟁집단간의 열전에 따른 희생을 미리 막기위해「예방외교」를 펴는 것이라고 인준청문회에서 강조했다.미국은 국제사회가 사후에 군사력을 동원하여 「악에 대한 징벌」식으로 대처하는 것보다는 「세계공동체의 양식」에 따라 분쟁집단들이 같은 영토아래서 함께 살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분쟁문제에 대한 미국의 이같은 기본방향은 최근 몇해사이 급격히 늘어난 분쟁의 성격이 세계사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으며 「분쟁해법=분리독립」이라는 처방은 반드시 현명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역사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있다.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분리독립식으로 해결을 한다면 이 지구상에는 곧 5천개의 국가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7일자 일요판에서 최근의 인종분쟁을 금세기들어 3번째의 세계적 물결이라고 분석했다.1차대전후 오스트리아­항가리,오스만제국의 몰락에 따라 유럽의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했고 2차대전후 아시아·아프리카의 반식민지운동의 폭발로 더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했다. 공산주의체제의 붕괴와 함께 일어나고있는 3번째의 최근인종·민족·종족간 분쟁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띨뿐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앞으로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들이다. 이에따라 유엔의 할 일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공산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한 지난 88년이래 지금까지 5년동안 수행된 유엔군의 작전만 해도 모두 14차례로 지난 40년동안 수행한 것보다 더 많았다.더욱이 올들어서는 푸른 베레모를 쓴 유엔평화유지군의 숫자가 4배로 늘어났고 지난 91년에 7억달러였던 유엔평화유지군의 예산도 지난해엔 28억달러로 4배가 됐다. 미국의 세계분쟁지역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한 개입여부,중동평화회담의 촉진등을 통해 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영해침입 불법어로/중국어선 2척 나포/선장 2명 영장

    【제주=김영주기자】 제주해양경찰서는 4일 우리 영해에서 조업한 중국선적의 1백12t급 쌍끌이 저인망어선 소관남어 1207호 선장 부장충씨(35·중국 강소성 관남현 퇴하항)와 소관남어 1208호 선장 부장정씨(36)등 2명을 영해법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관남현 소재 해양어업2공사 소속으로 구랍 27일 하오 퇴하항을 출항,3일 상오4시쯤 우리 영해인 우도 남쪽 6마일해상에서 고기를 잡다 제주해경 경비정에 나포됐다. 중국어선이 우리 영해에서 나포되기는 이번이 3번째이다. 한편 해경은 이번에 나포한 2척의 어선과 나머지 선원 34명은 5일중 공해상으로 추방할 방침이다.
  • 김영삼 차기정부의 정책과 과제(문민시대 「신한국」연다:8)

    ◎능동적 대외관계/내치안정 토대로 전방위 실리외교/통상에 체중… 미·일 등과 경협확대 주력/통일대비,북방국가와 안보협력 강화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어떤 형태의 외교스타일을 보일 것인가.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김당선자는 「강력한 정부」에 의한 내치안정을 바탕으로 이른바 전방위능동외교를 펼쳐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노태우대통령의 6공정부가 봇물처럼 터진 북방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중점을 두었다면 김당선자는 이같은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향상에 외교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김당선자는 정상외교와 관련해서도 노대통령이 우방국 지도자들과의 순방외교에 치우친 것과는 달리 이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초청외교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국빈방문(State Visit)과 같은 의전적 차원보다는 국익에 도움되는 차원의 내실외교를 강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당선자는 자신의 집권공약인 경제재도약과 발맞춰 실리경제외교를 외교업무수행의 핵심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김당선자가 유세때마다 『세계는 지금 저마다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경제전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한데서도 이를 잘 읽을 수 있다. 때문에 차기정부는 미국·일본·유럽등 대서방진영과의 실질경제협력을 보다 강화해 선진국형 경제진입은 물론 대등한 동반자관계를 확고히 할 것임이 틀림없다. 먼저 대미관계에서는 슈퍼301조등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우리경제의 정확한 실상을 알리는 경제·통상홍보 활동에 포인트를 둘 것으로 보인다. 또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는 대일관계에서도 이같은 무역불균형의 근본적 치유를 위해 한일양국간 산업·기술협력 제고및 일측의 선진기술도입을 위한 외교적 지원 노력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읽혀진다. EC(유럽공동체)제국들과도 통상협력관계를 한층 강화,지금까지의 미일편중현상에서 벗어나 수출시장의 실질적인 다변화를 꾀한다는 복안이다. 이와함께 유럽과 북미의 경제블록화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에도 상당한 체중을 실어 우리나라가 경제외교의중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우리가 지난해 의장국을 역임했던 APEC(아·태각료회의)가 중요한 매개체가 됨은 물론이다. 나아가 러시아·중국·베트남 등 북방국가들과의 실질경제협력에도 많은 비중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자본과 이들 나라의 노동력 및 자원이 결합되는 형태가 가장 유력하며 차기정부도 이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경제력에 상응한 국제적인 역할과 책임분담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동참할 공산이 크다.하지만 이같은 경제외교외에 통일외교도 김영삼정부의 외교역량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여기에도 상당한 무게중심을 실을 것으로 전망된다.통일외교의 기본축은 역시 미일관계일 수밖에 없다.김당선자도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김당선자는 이들 맹방들과의 협력관계를 보다 강화,안보환경을 공고히 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보장체제 확립에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함께 러시아·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안보협력체제구축 노력도 계속 이어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이와관련,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남북문제해결을 위한 「2+4형식」인데 6공정부가 취해온 반대입장을 어떻게 조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여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여러가지 안보상황변화 및 방위비분담증액요구,원폭피해자 보상처리문제를 비롯한 한일관계의 「과거사」완결부문도 선뜻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밖에도 김당선자에게는 적지않은 난관이 놓여 있다.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의 농수산물 수입개방문제이다. 지금까지 줄곧 반대를 표시했던 김당선자 입장에서 쌀시장이 전격 개방됐을 때 농민들의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또 치열한 경제전쟁과 맞물려 EC·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등 점차 공고해지는 경제블록화에의 대응도 난관일 수밖에 없다.
  • 영해침범 중국어선/선장 등 2명을 구속

    【제주=김영주기자】 제주해양경찰서는 19일 우리영해에서 불법조업한 중국선적의 1백5t급 쌍끌이 저인망어선 점정어10139호 선장 장국화씨(42·중국 절강성 정해구 소사향 모시촌)와 점정어10140호 선장 손유룡씨(47·〃) 등 2명을 영해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상오 9시20분쯤 우리 영해인 북제주군 우도 남쪽 6마일해상까지 침범,불법조업하다 해경 경비함에 나포돼 제주항으로 예인됐었다. 한편 제주해경은 이들 어선과 나머지 서원 28명에 대해 「다시는 우리영해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뒤 19일 상오 11시쯤 방면,공해상으로 추방했다.
  • 통일(대선공약 허와 실)

    ◎보수계층 의식,대북관계 소홀/“금세기내 통일”·“긴장완화” 등 원칙론만/내세우는 의지 비해 구체방안은 부실/이산가족재회에 큰 비중… 조기상봉 추진 약속 제14대 대통령의 임기는 93년 2월 25일부터 98년 2월 25일까지로 남북분단 꼭 50년이 되는 해에 물러나게 된다.따라서 제14대 대통령의 임기 5년은 20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시기이자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 21세기의 주역으로 나설 수 있게 될 것인가의 여부가 결정지어지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이 8차례의 고위급회담과 연간 2억달러에 달하는 교역실적을 쌓아 온 연장선상에서 따져봐도 향후 5년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페달을 밟아 통일의 길로 쾌주할 수 있을지 아니면 분단의 고착화로 지금의 자리에 붙박이가 될 것인가가 판가름날 것이기 때문이다. ○간첩사건에 제동 이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에 나선 각당 후보들의 통일의지와 통일정책은 다른 어떤 공약에 앞서 국민들의 중요 관심사로 떠올랐어야 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주요 3당후보가 내세운 통일관련공약과 정책이 다른 분야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데다 국민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큰 가닥은 대략 두개로 잡히고 있다.「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 여파로 미래 지향적 통일논의에 제동이 걸린데다 「색깔론」으로 상징되는 보수주의의 큰 흐름에 발목이 잡힌 것이 그 하나고 각당 후보들이 보수쪽의 「표」를 의식,발언을 조심하다보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게 두번째 이유다. 그 결과 각당 후보들은 정작 통일논의의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북한정권의 실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협상의 상대자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한 바탕에서 제시했던 통일정책을 자신있게 내세우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고 만 것이다.통일관련 공약들이 「공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가령 각당 후보들은 한결같이 이산가족문제의 조기해결을 공약하고 있다.그러나 이 문제의 해법은 좋든 싫든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서만 도출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이 부분을 묵살함으로써 공약의 현실성을 사상해버리고 있는 것이다.이렇듯 각당 후보들이 제시한 통일관련 공약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 대부분 쟁점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후보간 차별성도 부각되지 않고 있다. ○극도의 반발 초래 민자당은 통일방안으로 자주·평화·민주의 3원칙 아래 남북연합→남북연방→남북통일의 3단계 통일안을,민주당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의 3원칙하에 1연합 2독립정부(공화국연합체)→1연방 2자치정부→1국가 1정부의 3단계평화통일안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양당 모두 현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설정하고 있는 남북연합과 통일국가 사이에 연방형태의 과도단계를 설정하는 등 상당히 유사한 방안을 공약하고 있는 셈. 더욱이 민자당이나 민주당 모두 흡수통일론을 배제하면서 통일국가를 건설할 때까지 남북한이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민족사회의 통합을 추진한다는 대전제에 대체로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양당은 그러나 최종 통일국가의 체제와 관련해선 차이를 보이고있다.민자당이 중간단계와 완성단계를 총괄해 자유민주주의 복지주의 국제적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단일국가여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데 반해 민주당은 뚜렷한 형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반면 국민당은 민주주의와 경제력이 통일의 기초라는 전제아래 『자유경제체제속으로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이산가족의 상봉과 경제인의 자유왕래·경제교류를 통해 2년내에 「국민의 통일」을 실현하겠다는게 국민당의 공약이다. 국민당의 공약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흡수통일론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 경우 통일논의의 한 축일 수밖에 없는 북한의 실체는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는 셈인데 이같은 공약은 결과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대화에 대한 경계심과 흡수통일에 대한 극도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산가족상봉과 경제인의 자유왕래」라는 1단계 수순조차 순조롭게 밟아질 수 있을 것이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갈등지향적 정책 특히 국민당의 「5년내 완전통일」공약은 5년내 완전통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이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민족내의 갈등지향적 통일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일시기와 관련,민자당은 「금세기내 통일실현」을,민주당은 「집권후 빠른 시일안에」 1단계인 공화국연합 실현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이밖에 민자당은 통일여건조성을 위해 대내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통해 통일역량을 축적하고 미국·일본과 협력체제를 공고히해 북한의 개방·개혁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또 남북연합및 연방을 위해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내 인민민주정부수립 미군철수 대미평화협정등의 주장은 철회돼야 하며 통일방안협상은 양측 정부의 주도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남북한이 불가침선언을 하고 남북한과 미국·중국이 평화협정체결및 전쟁상태종결을 선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또한 남측의 국가보안법및 북측의 형법등 평화교류를 제약하는 법률은 양측에서 모두 폐지돼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국민당은 심각한 경제위기로 인한 북한체제의 파국에 대비,2천만 난민구호품및 식량공급계획과 통일비용 사전비축등 경제비상계획의 수립을 제시하고 있다. 또 3당은 1천만명에 달하는 실향민을 겨냥,이산가족문제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민자당은 이산가족문제를 대북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추진한다는 방침아래 고향방문단교환 정례화,남북간 우편물교환 조기실시등을 약속했으며 민주당은 집권 1년내 이산가족교류와 왕래실현을 공약했다. 국민당은 이산가족의 자유왕래와 접촉실현,이산가족면회소설치등과 함께 제3국에 이산가족 「만남의 센터」를 개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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