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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린 군사기업 아냐”…中 알리바바, 美 국방부 상대 소송

    “우린 군사기업 아냐”…中 알리바바, 美 국방부 상대 소송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가 미국 국방부의 ‘중국군 군사기업’ 지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2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전날 미 국방부의 ‘중국인민해방군 지원 기업’ 명단에서 자사를 제외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해당 소장을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법원에 제출했다. 앞서 미 국방부는 지난 8일 알리바바·비야디·바이두 등 188개 기업을 중국군 지원 기관으로 추가 지정했다. 알리바바 측은 “(미 국방부의) 판단은 사실상으로나 법률상으로 아무 근거가 없다”며 “알리바바는 독립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며 이사회 구성원 중 군과 연계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알리바바의 제품과 서비스는 소매, 물류, 기업 정보 기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무기나 국방 또는 정보 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알리바바에 중국 군사기업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알리바바를 중국군의 도구이자 미국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이라며 “이는 알리바바의 평판을 훼손하고 회사가 유지하고 있는 모든 미국 내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주장했다. 미국법에 따라 향후 수년 내 미 국방부는 명단에 오른 기업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거나 해당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조달할 수 없게 된다. 이 기업들은 거의 모두 미·중 간 치열한 기술 경쟁의 중심에 있다.
  • 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추진…기존 공적에 신규포상 더한다

    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추진…기존 공적에 신규포상 더한다

    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포상 심사기준 공청회’ 정부가 과거 자료와 연구가 부족해 공적이 누락되거나 낮은 훈격이 부여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공적 재평가 방안 마련에 나섰다. 국가보훈부는 23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사기준 공청회’을 열고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공청회에는 권오을 장관과 이종찬 광복회장, 학계 전문가, 기념사업회 및 후손, 시민단체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개회사에서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및 포상심사 기준 공청회를 준비하며 많은 분들로부터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다,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걱정을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 없다, 한번은 제대로 논쟁하든 공론화하든, 미완으로 덮든 이야기부터 하자 해서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보훈부는 재평가 필요성으로 새로운 독립운동 자료 발굴, 독립운동사 관심 증대를 들었다. 재평가 추진안 발제를 맡은 이동일 공훈심사과장은 “공적 재평가 필요성은 1962년 포상 당시부터 제기돼왔고 현재도 국회, 지자체, 기념사업회 등으로부터 재평가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평가 추진 방안으로는 기존 훈격을 조정하는 것이 아닌 신규 포상을 통해 추가 훈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상훈법상 동일 공적에 대한 중복 수여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 공적에 추가 확인된 공적을 더하는 형태가 된다는 설명이다. 심의 기구는 현 공적심사위원회를 활용해 포상의 정당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재평가 대상자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사 재정립과 상징성 재평가 요구를 고려해 대한민국장 1등급으로 통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훈부는 우선 1970년대 이전 독립장(3등급) 이상 포상자를 대상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이 과장은 “현실적으로 모든 독립유공자 재평가는 불가능하다”며 “초기 포상 당시 독립운동 관련 자료 발굴과 연구가 부족했던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애국장(4등급) 이하 포상자는 과거 공적 재평가 이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에 따라 우선 재평가 검토 대상자로 선정한 인원은 총 12명이다. 대통령장(2등급)을 받은 김동삼, 김상옥, 박은식, 이동녕, 이상설, 이상재와 독립장을 받은 나철, 박상진, 원심창, 이상룡, 최재형, 호머 헐버트다. 특히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됐다면 일단 포상하는 ‘전향적 방향’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권 장관은 “독립유공자는 맞는데 해방 이후 행적이 불분명한 행적 미상자는 일단 훈장을 주고, 훈장을 줘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발생할 때 다시 서훈을 무효화 하면 안 되나. 국민주권 정부에서는 일단 주는 방향으로 큰 틀에서 가닥을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박경목 충남대학교 교수도 “독립운동 이후 행적 관련 결격 사유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 공적 요건이 충족되는 한 포상을 허용하는 것으로 심사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中, 美기업 56곳 ‘무더기 제재’… 무역갈등 다시 격랑 속으로

    방산·드론·희토류 등 기술 기업 겨냥10곳 수출통제·46곳 정부조달 배제수출 즉시 중단, 필요 시 허가 필요美, 100여개 中기업 제재 추가 검토중국 상무부가 방산, 드론, 희토류 관련 미국 기술 기업 10곳을 수출 통제 대상 목록에 추가했다. 재정부는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등 방산기업을 포함한 미국 기업 46곳을 정부 조달 금지 목록에 올려 중국에서 구매가 불가능하게 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22일 중국 정부의 총 56개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이날부터 시행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9일 미 국방부가 중국 인민해방군을 지원한다며 ‘중국의 아마존’ 알리바바, ‘중국의 구글’ 바이두, ‘중국의 테슬라’ BYD와 니오 등 모두 188개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데 대한 보복이다. 이날 상무부는 “이번 조치는 수출 통제법 및 이중용도품 수출 관련 규정에 따라 중국의 국가 안보와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국제적인 핵확산 방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의 ‘중국 군수산업 기업 목록(블랙리스트)’ 확대에 따른 대응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수출 활동도 즉시 중단해야 하며, 수출 시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기업과의 무역이 금지된 10개 미국 기업은 드론 및 방산 관련 기업 에이비옥스, 틸드론스 등 8곳과 희토류 업체 MP머티리얼스와 USA 레어어스다. 특히 MP머티리얼스는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을 보유한 곳으로 국방부가 중국으로부터 희토류 독립을 위해 이례적으로 직접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된 기업이다. 재정부는 같은 날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미사일, 보잉 디펜스 등 미국 기업 46곳을 정부 조달 활동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자본이 투자된 중국 내 기업을 제외하면 정부 조달기관은 해당 46개 미국 기업 제품의 구매가 금지된다. 중국 정부의 이런 강력한 대응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9월 24일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미국 인공지능(AI) 기업인 앤트로픽과 오픈AI가 불법적으로 기술을 추출했다고 지목한 딥시크 등이 제재 명단에 오르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다. 미국 상무부는 AI 기업 딥시크,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 등 100여 개 중국 기업을 무역 제재 블랙리스트인 ‘엔티티 리스트’에 추가하는 계획을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티티 리스트는 국가 안보나 외교 정책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미 산업보안국이 지정하는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전혀 추가되지 않아 최장 기간 갱신되지 않은 상태다.
  • 딥시크·반도체 지키려는 中의 승부수…美 블랙리스트에 ‘맞불’

    딥시크·반도체 지키려는 中의 승부수…美 블랙리스트에 ‘맞불’

    중국 상무부가 방산, 드론, 희토류 관련 미국 기술 기업 10곳을 수출 통제 대상 목록에 추가했다. 재정부는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등 방산기업을 포함한 미국 기업 46곳을 정부 조달 금지 목록에 올려 중국에서 구매가 불가능하게 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22일 중국 정부의 총 56개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이날부터 시행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9일 미 국방부가 중국 인민해방군을 지원한다며 ‘중국의 아마존’ 알리바바, ‘중국의 구글’ 바이두, ‘중국의 테슬라’ BYD와 니오 등 모두 188개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데 대한 보복이다. 이날 상무부는 “이번 조치는 수출 통제법 및 이중용도품 수출 관련 규정에 따라 중국의 국가 안보와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국제적인 핵확산 방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의 ‘중국 군수산업 기업 목록(블랙리스트)’ 확대에 따른 대응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수출 활동도 즉시 중단해야 하며, 수출 시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기업과의 무역이 금지된 10개 미국 기업은 드론 및 방산 관련 기업 에이비옥스, 틸드론스 등 8곳과 희토류 업체 MP머티리얼스와 USA 레어어스다. 특히 MP머티리얼스는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을 보유한 곳으로 국방부가 중국으로부터의 희토류 독립을 위해 이례적으로 직접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된 기업이다. 재정부는 같은 날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미사일, 보잉 디펜스 등 미국 기업 46곳을 정부 조달 활동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자본이 투자된 중국 내 기업을 제외하면 정부 조달기관은 해당 46개 미국 기업 제품의 구매가 금지된다. 중국 정부의 이런 강력한 대응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9월 24일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미국 AI 기업인 앤트로픽과 오픈AI가 불법적으로 기술을 추출했다고 지목한 딥시크 등이 제재 명단에 오르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다. 미국 상무부는 AI 기업 딥시크,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 등 100여 개 중국 기업을 무역 제재 블랙리스트인 ‘엔티티 리스트’에 추가하는 계획을 저울질 중으로 알려졌다. 엔티티 리스트에 오른 기업은 국제적으로 ‘안보 위험 기업’으로 인식되어 투자 협력 기회가 줄어든다. 과거 짧게는 몇 주 단위로도 추가되던 엔티티 리스트가 지난해 10월 이후 전혀 추가되지 않아 최장기간 갱신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필립 럭은 로이터통신을 통해 “엔티티 리스트는 두더쥐 게임과 같아 계속 추가해서 때려 잡아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국 방문 의사를 밝혀 올해 미중 정상이 최소 4번 만날 것으로 보인다.
  • [포착] 中 극초음속 미사일로 ‘맞불’…‘둥펑-17’ 발사 첫 공개한 이유 (영상)

    [포착] 中 극초음속 미사일로 ‘맞불’…‘둥펑-17’ 발사 첫 공개한 이유 (영상)

    중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DF)-17의 발사 장면을 처음으로 공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중국 인민해방군(PLA) 로켓군이 둥펑-17의 발사 장면을 공개하며 원거리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일 중국중앙TV(CCTV)는 로켓군이 육군 및 공군과 함께 북서부 고비사막에서 합동 훈련을 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발사 차량이 작전 지역으로 이동하고 정차한 후 폭음과 함께 둥펑-17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담겼다. 이에 대해 현지 군사평론가 두원룽은 “이 영상은 로켓군의 강력한 전투 준비 태세와 둥펑-17 발사 차량이 험난한 지형과 다양한 전장 속에서도 작전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면서 “이번 훈련에는 여러 종류의 미사일이 사용됐는데, 이는 다양한 목표에 대응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훈련 영상에는 둥펑-26 등 여러 종류의 신형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장면도 함께 공개됐다. 둥펑-26은 사거리 3000~5000㎞로 미군의 서태평양 핵심 전략 거점인 괌을 사정권에 두고 있어 ‘괌 킬러’로 불린다. 중국이 실전 배치한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둥펑-17은 중국이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한 극초음속 활공 유도 미사일로 2019년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다. 최대 속도는 마하 5~10, 사거리는 1800~2500㎞로 기존 탄도 미사일과 달리 예측 불가능한 비행 궤적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특징 덕분에 미국의 사드(THAAD), 패트리엇, 이지스함의 SM-3 시스템 등으로 요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의 해군 항공모함 전단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일본 오키나와 등 제1도련선 안쪽의 미군 주요 거점 및 주한·주일 미군 기지를 겨냥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영상 공개가 지난 22일부터 오키나와와 규슈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 해병대와 일본 육상자위대가 벌이는 연례 합동 훈련 ‘레졸루트 드래곤’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훈련(RIMPAC·림팩) 개막을 앞두고 있다는 점과 미군의 최신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타이폰’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토마호크와 SM-6 미사일을 탑재한 타이폰앞서 21일 일본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은 타이폰이 22일부터 10월까지 이뤄지는 미일 합동 훈련에 투입된다고 전했다. 타이폰은 미국 록히드 마틴이 개발해 미 육군이 운용 중인 최신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발사 시스템이다. 미 해군 군함에서 쓰던 수직발사대를 트럭 위에 얹어 지상형으로 개조한 것으로 강력한 전술적 기동성을 자랑한다. 특히 타이폰은 토마호크와 SM-6 미사일을 섞어서 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토마호크는 사거리가 약 1600㎞에 달하는데, 일본 가노야 항공기지에서 발사하면 중국 베이징까지 사정권에 들어올 수 있는 거리다. 또한 대만해협과 이를 건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중국 해안 기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어 상륙함과 호위함, 레이더 기지, 군 비행장을 개전 초기에 무력화할 수 있다.
  • 지친 삶 위로하는 길 15.1㎞… “레드,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올레길에서 만난 벅차오름]

    지친 삶 위로하는 길 15.1㎞… “레드,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올레길에서 만난 벅차오름]

    이중 화산체 전형 127m 말미오름정상 서면 성산일출봉·우도 한눈에새알 닮은 알오름 풍광선 황홀함추억과 만나는 종달리 벽화 골목 일출봉 동쪽엔 이생진 시인 시비4·3 아픔 전해지는 해원의 문까지총 437㎞, 27개 코스로 연결된 제주올레길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곁을 내준다. 걷다 보면 제주의 또 다른 얼굴인 오름과 마주하게 된다. 제주에는 화산 활동이 빚어낸 기생화산인 오름 368개가 흩어져 있다. 올레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오름 10여 곳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소개한다. ●‘쇼생크 탈출’ 속 벅스턴 그 길이 제주에 “디어 레드, 당신도 이 길을 좋아했을 겁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1995년작)의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의 편지를 품고 벅스턴의 들판을 걸어가던 레드(모건 프리먼). 울창한 떡갈나무를 찾아 느릿느릿 걸어가던 그 뒷모습을 기억합니다. 제주에도 그런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닮은 길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말미오름에서 은밀한 오솔길을 지나 알오름으로 향할 때 펼쳐지는 들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늘 올레를 만들려고 빨리 가셨나 봐요.” 지난 6월 초 땅끝에 위치해 있어 말미오름이라고도 불리는 두산봉 앞. 올레길 1코스 안내센터에서 만난 올레길 안내사 최정자씨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영결식에 다녀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젠 하늘 올레에 가서 남들이 만든 길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이 가슴에 훅 박힙니다. 제주의 길을 만들었던 사람은 떠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드, 당신이라면 알 겁니다. 결국 길은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요. 최씨는 올레꾼의 옷깃을 붙잡고 기념사진을 찍어 줍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왔다며 올레길 두 번째 완주에 나선 부부에게 추억을 선물합니다. 영국 런던의 비틀스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듯한 모습도 연출합니다.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공동 완주증도 보여 주며 간세다리(조랑말·게으름뱅이의 뜻)에서 따온 간세(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파란 리본, 주황 리본의 의미 등 올레길에서 만나는 표식들을 열정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표시만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아요.” 그 말에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란 화살표는 정방향이고 감귤색 화살표는 역방향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길을 잃을까 두려울 때마다 가끔 그런 화살표가 눈앞에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말미오름 팻말 앞에 섰습니다. 전형적인 이중식 화산체인 말미오름은 동사면에서 남사면에 이르는 화구륜이 침식되어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반대쪽인 북서쪽 사면에는 풀밭의 평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말미오름은 시작부터 가파릅니다. 하지만 5분이면 정상에 다다릅니다. 해발 127m.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정상에 서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성산포 평야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내리막길에선 솔밭 사잇길이 나와 운치를 더합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숲에 서 있는 기분이 듭니다. 양탄자처럼 폭신하게 깔린 솔잎도, 솔방울도, 소나무 가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북서쪽 사면으로 가면 분화구가 열리고 밭농사를 짓는 초록빛 평야가 펼쳐집니다. 항공편이 결항될 정도로 내린 폭우 때문인지 지난가을에 왔을 때와 달리 숲속 습지엔 연못까지 생겨났습니다. ●소나무 한 그루, 자유 찾은 레드 그 감성 소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람이 훅 불어오는 순간, 레드가 벅스턴 들판에서 걸었던 길과 닮은 풍경을 만납니다. 알오름을 향해 이어지는 초록빛 들판 한가운데 가느다란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떡갈나무처럼, 소나무 한 그루가 가파른 능선에 서 있습니다. 그 길을 걷는 순간만큼은 자유를 찾아 나선 레드와 겹쳐집니다. 뻥 뚫린 ‘촐밭(풀밭의 제주어)’ 사이로 난 길 중간 지점 간세 표시엔 이름처럼 새알을 닮은 오름으로 말산메라고도 불린다고 적혀 있습니다. 모구리오름이라고도 한답니다. 전체 모습이 모로 누운 어미 개의 형체를 닮아서 모구악이라는 한자명이 붙었습니다. 정상에는 소나무 쉼터가 뚜벅이들의 다리를 쉬게 해 줍니다. LH ESG 경영 실천 캠페인의 일환으로 공공 주거단지 입주민들이 모은 플라스틱 병뚜껑을 재활용해 제작한 벤치에 걸터앉았습니다. 말미오름에서보다 더 우도가 가까이 보이고 성산일출봉과 성산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풍광만으로도 올레길 1코스에 온 수고를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자연과 사람을 이어 주는 벤치에서 멍 때리다가 내려옵니다. 레드, 당신이 자유를 찾아 떠났듯이, 혼자 걷는 이 길도 자유로웠어요. 수국, 나팔꽃, 해바라기, 호박, 동백꽃… 종달리 벽화 골목길에서 추억과 재회하는 길에선 내면마저 풍요로웠어요. 레드, 종달리 마을이 제주 최초의 염전 주산지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제주도의 염전은 16세기 이후 형성됐는데 ‘소금 하면 종달, 종달 하면 소금’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소금비치(소금밭) 종달 염전이 유명했대요. 1900년대 초 종달리 마을 353가구 가운데 160명이 소금 생산에 종사했고 소금을 생산하는 가마도 46개나 있었다고 하네요. 종달 염전은 해방 후부터 육지부 천일염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수지타산이 안 맞아 자취를 감추게 됐답니다. ●걷다 잠깐의 여유, 책방의 여유도 소금밭을 지날 때쯤 올레길에서 살짝 비켜나 저도 간세다리가 됐어요. 그곳엔 ‘소심한 책방’이 있더군요. 12년 동안 이곳을 지키며 여행자들의 쉼터 역할을 한 곳이래요. 제주도의 1호 독립 책방이기도 하고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어요. ‘슬픔에 이름 붙이기(존 케닉 지음)’. 아메리카노는 소심한 책방답지 않게 대범한 맛이 났어요. 마치 집어 든 책 속의 한 문장처럼 ‘딥 것’(deep gut·오래간만에 다시 떠오르는 감정) 같은 맛이었어요. 책 한 권을 구매하며 커피가 맛있다고 책방 주인에게 말을 걸자 그는 “책 한 권이 그렇잖아도 무거운 배낭을 더 무겁게 하면 어쩌죠”라며 지쳐 보이는 저를 안쓰러워했어요. 그 따뜻한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어요. 종달리 바다는 봄빛보다 더 아름다운 파스텔 톤으로 다가오고 있었죠. 중간 지점 스탬프를 찍는 목화휴게소 앞에는 먹음직스런 한치들이 해풍에 반건조되고, 호시탐탐 갈매기들이 그 한치를 노리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 같았죠. 시흥리에서 시작해 광치기해변 종점까지 15.1㎞인 1코스. 이제 마의 5㎞가 남았어요. 성산갑문을 지날 때쯤 주저앉고 싶을 만큼 다리가 쑤셔 왔어요. 우도 가는 배를 기다리는 성산항을 지나 헤일리 언덕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詩碑) 앞 벤치에 또다시 털썩 주저앉았어요. 그제야 잉크빛 바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시처럼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보고,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 듯하더군요. ●레드의 말처럼 가장 소중한 건 희망 이곳에 사는 한 시인에게 안부 전화를 했어요. 아내가 아파 제주 시내 병원에 와 있다네요. 아쉬움을 뒤로했지만 결국 종점에서 그를 만났어요. 오정개 포구를 지나 유독 이곳에서만 해가 뜬다고 부산떠는 일출봉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4·3 터진목을 지나서였어요. 4·3 당시 이곳에서 학살당한 사람만 400명 된다는, 모래밭에 묻혀 버리거나 바닷물에 떠밀려 가 버렸다는, 그 4·3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해원의 문’을 지나서였어요. ‘여기 가을 햇살이/예순두 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핏덩이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 건/ 수수깡 같은 노파의 잔등 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거북이 등짝 같은 눈을 가진 무리들이 바라보네…’ 1코스 종점에서 만난 강중훈 시인의 ‘섬의 우수’ 시비였어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의 글과 함께 누워 있는 시비… 종점의 마침표 스탬프를 찍다가 또 다른 완주자의 밝은 표정을 보며 올레길이 지친 이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레드, 앤디가 말했듯 희망은 가장 소중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 빛을 통역하는 마음으로 받아 적은 시

    빛을 통역하는 마음으로 받아 적은 시

    조성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햇빛 반사 유희’는 전작 ‘천국어 사전’에서 보여준 정직한 슬픔의 세계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슬픔이 향하는 방향을 새롭게 틀어 놓는다. 전작에서 결핍과 죽음으로 점철된 자전적 경험을 묵직하고 과장 없는 어조로 풀어냈다면 이번 시집은 상실과 상처에 지치지 않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을 좇는다. 시인은 시 쓰기를 일종의 ‘통역’으로 여긴다. 마지막에 실은 에세이 ‘어느 경리의 어떤 경지에 대한 단상’에 시인의 일을 발견한 경험을 풀었다. 소개받아 일하러 간 공장에는 수술로 목소리를 잃은 노쇠한 사장이 있었다. 사장의 말은 바람 소리일 뿐, 시인이 느낀 건 뻐끔거리는 입 모양 정도였다. 사장이 “그토록 말하고 싶은” 것을 중년의 경리가 소리로 옮기고 의미를 전했다. 사장 입의 ‘대리자’가 된 경리에게서 말하고 싶은 간지러움을 풀어주는 시인을 투영했다. 그렇게 사물과 풍경에 어린 빛의 굴절·산란·반사를 통역하듯 시를 썼다. 시 43편 안에서 시인은 ‘나’를 끝없이 되묻고 스쳐 가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정서적 유대를 더듬으며 오래 머물렀던 반지하의 어둠에 작은 창을 내듯 삶을 모색한다. 시인에게 삶은 “적당히 비참하여/ 그다지 지루하지도 않”고(‘평화로운 저주’ 부분), “빛나는 것들이/ 빛 속에서/ 빛 속에 있음을 모르고// 그 모름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모두/ 평범함을 누리”도록(‘밤가시마을’ 부분) 한다. “공짜 같은/ 세상을 끝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무료’ 부분)에 사로잡히다가도 “오직 나만큼의 세상이/ 나를 정말로 좋아해서// 내 그림자로 졸졸 따라다”니는(‘불면’ 부분) 약간의 긍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좋은 통역에 겨우 몇 번 정도 성공한 것 같다”는 시인은 “시집에 실린 시들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솔직한 부끄러움이 있다”(143쪽)고 고백한다. 속 시원하고 해방감이 느껴지는 성공적인 통역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어떤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 듯한 부끄러움도 느낀다. 그럼에도 시인의 시선은 “보잘것없이/ 황홀하게/ 지상에 딱 하나 남아 있는 한 권”(‘교보문고’ 부분)으로서 ‘나’를 비추며 빛이자 위로가 된다.
  • 여름에 만나는 ‘겨울 나그네’…괴르네·선우예권 “외로운 시대를 위한 노래”

    여름에 만나는 ‘겨울 나그네’…괴르네·선우예권 “외로운 시대를 위한 노래”

    오는 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59)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7)이 프란츠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1827)를 연주한다. 실연의 아픔을 겪는 젊은이의 방황과 고독을 그린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24개 가곡으로 완성한 ‘겨울나그네’는 낭만주의 음악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18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만난 괴르네는 ‘겨울나그네’에 대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어떤 문화와 언어를 갖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청중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이야기를 담은 위대한 작품”이라고 칭송했다. “슈베르트와 뮐러는 인간 내면에서 지성과 영혼을 발견하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매우 혁명적”이라고 덧붙였다. 괴르네는 “독일 가곡의 선도적인 해석가”(시카고트리뷴), “어둡게 매혹적인 목소리”(뉴욕타임스)를 가진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성악가 중 한 명”(보스턴글로브)으로 평가받는다. 국제클래식음악상(ICMA), 디아파종 도르, 그라모폰상, 에디슨 클래식상 등을 수상했고 미국 음악상인 그래미상에도 여러 차례 후보에 올랐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마리스 얀손스, 파보 예르비 등 거장 지휘자들과 협업했다. 특히 ‘겨울나그네’로는 가히 독보적인 이력을 쌓고 있다. 영국 클래식 음반 레이블인 하이페리온이 오랜 기간 제작한 슈베르트 성악곡 전곡 앨범 ‘슈베르트 에디션’에 참여했고, 이 시리즈 중 ‘겨울나그네’는 1997년 타입지가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음반’에 꼽혔다. ‘백조의 노래’로 에디슨상을, ‘마왕’으로 국제클래식음악상을 품에 안았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참여한 ‘2026 여름에 듣는 겨울나그네’ 공연은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2024년부터 추진한 ‘한세 클래식 리트’(고전 가곡) 프로젝트로 선보이는 자리다. 2년 전 같은 형식 공연에서 바리톤 벤야민 아플과 피아니스트 사이먼 래퍼가 젊은 예술가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면 이번에는 노련함과 깊이를 더한다. 다섯 살 무력 처음 슈베르트 음악을 접했다는 괴르네는 “바흐 다음으로 중요한 장곡가”라며 “슈베르트가 없었다면 성악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 했다. 지금까지 250회 넘게 불러왔는데 오늘날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거대한 사회를 이루고 살지만 너무 많은 일과 부족한 소통 탓에 우리는 외롭습니다. 한 식탁에 앉은 가족이 저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더군요. 인공지능은 우리를 더 침묵하게 만들 겁니다.” 비록 작품은 겨울의 고독과 어둠을 그리지만 “악몽 같은 어둠”이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빛을 향해 걸어가는 어둠”이라고 했다.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는 방랑자가 연주하는 늙은 악사와 함께 떠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의 주인공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결말을 선택하는 것과 비교하며 “이 곡의 주인공은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 끝내 누군가를 만나리라 믿는다”고 희망 섞인 설명을 덧댔다. 그러면서 “37년간 이 노래를 불러왔지만 해석의 방향을 바꾼 적은 없다. 대신 세월과 경험의 층을 한 겹씩 더해갈 뿐”이라고 부연했다. 괴르네와 선우예권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 교류해오다 처음 한 무대에 서게 됐다. 올가을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미국 투어도 한다. 이날 동석한 선우예권은 “오래 존경해온 음악가의 섬세한 뉘앙스와 다이내믹을 바로 곁에서 듣는 일이 큰 축복”이라면서 “수십 년간 이 곡을 탐구해온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가곡에 대해 “시와 음악이 만나는 가장 친밀하고 내면적인 장르”라며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독주와 달리,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나누는 대화 같아 더 가슴에 와닿는다”고 덧붙였다. 괴르네가 “단발성 공연이 아니라 100살이 될 때까지 함께 공연하고 싶다”고 하자 선우예권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아끼는 곡으로 21번 ‘여인숙’을 꼽았다. 괴르네는 묘지를 떠올리게 하는 코랄 선율을 들어 “마침내 쉬려 하지만 자리가 없어 다시 길을 나서는 장면”이라 짚었고, 선우예권은 “화성의 진행과 반음계의 연결이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다. 괴르네는 좋은 협연의 비결로 ‘자유’를 꼽았다. “피아니스트가 찰나에 내 호흡을 읽어낼 때 큰 해방감을 느낀다”는 그는 “프로끼리는 음악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만들어갈 뿐이다”라고 협연에 대한 기대감을 설명했다. 선우예권도 “서로 유연성을 갖고 작업하기 때문에 늘 굉장히 다른 음악들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공연에도 어떤 노래와 음악이 흘러나올지 굉장히 기다려진다”고 거들었다. 24곡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100분간 이어진다. 지연 입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한국의 월드컵 진출, 첫 관문은 한일전이었다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한국의 월드컵 진출, 첫 관문은 한일전이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지난 12일(한국시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체코를 멋지게 이겼다. 이제 19일 오전 열리는 2차전에서 홍명보호가 멕시코를 상대로 어떤 멋진 경기를 보여 줄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이번까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아시아 최장 연속 진출 기록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일본이 1998년부터 8회 연속 본선 진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건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당시 월드컵 동아시아 예선에는 한국, 일본, 중국이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중국이 기권하면서 한일 두 나라의 대결 승자가 본선에 오를 예정이었다. 해방되고 10년이 되지 않아 일본에 지배받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예선이 단둘의 맞대결로 좁혀지자 일제 침략에 대한 설욕의 기회라며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한일전은 더이상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외교전이자 사상전”이요 “한민족 대 일본 민족 간의 총력전”이며 “무기 없는 전쟁”이었다. 그들의 눈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전쟁에 출정하는 군인이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월드컵 예선은 통상 각국 대표팀이 자국과 상대국에서 한 번씩 경기를 치른다. 그런데 1954년 3월 7일과 14일에 열린 동아시아 예선은 모두 일본 도쿄에서 치러졌다. 정부가 일본 선수들의 입국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삼일절인 1954년 3월 1일, 한국 선수단 24명을 태운 비행기는 부산 수영 비행장에서 환송객이 흔드는 태극기 물결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해방 후 첫 축구 한일전은 3월 7일 오후 2시, 도쿄 메이지 신궁 외원에 자리한 국립경기장에서 열렸다.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게양됐다. 빨간 유니폼의 한국 선수와 파란 유니폼의 일본 선수가 입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 땅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한국 선수들은 물론 관중석에 자리한 재일동포들까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함께 목놓아 애국가를 불렀다. 며칠 동안 눈비가 뒤섞여 내린 탓에 운동장 상태가 불량한 가운데 ‘한국군’은 ‘일본군’을 5-1로 격파했다. 경기가 끝나자 목놓아 응원하던 재일동포들은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대한해협 건너에서 라디오로 중계방송을 듣던 한국인들도 ‘식민 지배에 대한 설욕전’에서 승리한 기쁨을 누렸다. 당시 중계방송을 하던 아나운서는 승리가 확정되자 목이 멘 채 연거푸 태극기를 외쳤다고 한다. 일본이 아닌 한국 땅에서 월드컵 한일전이 처음 열린 건 1960년 11월 6일이었다. 1962년 칠레 대회 동아시아 예선전이었다. 해방 이후 15년 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최초의 한일전이었다. 애초 대한민국 정부는 이 경기를 불허했다. 식전 행사의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가 민심을 자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경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국무회의를 거쳐 결국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경기장 질서 유지를 위해 지정 좌석제를 운영하라는 조건이 붙자 대한축구협회는 급히 관중 좌석에 번호를 부착하는 공사에 착수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심판이었다. FIFA가 선임한 필리핀 심판 3명이 개최 결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한국까지 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며 불참을 통고했다. 결국 일본 축구팀이 3명 모두 한국 심판을 써도 좋다고 양해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를 둘러싼 갈등도 막판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한일전은 허가하되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는 허가할 수 없다고 버텼다. 여론은 국제관례를 무시한 ‘쇄국적’ 처사이자 ‘소아병적 기우’라며 반발했다. 결국 경기 당일 오전에야 일장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가 허용되었다. 11월 6일 오후 2시, 문을 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서울 효창운동장에는 구름처럼 관중이 몰려들었다. 전례 없이 비싼 입장료에도 1만 3000석이 꽉 찼다. 경기장 북쪽 언덕 위에도 1만명 넘는 관중이 빽빽하게 모였다. 경찰은 관중이 흥분하면 선수들의 신변이 위험하다며 기마경찰과 구호차, 거기다 헬리콥터까지 대기시켰다. 한국과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입장하고 마침내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며 일장기가 게양됐다. 식민 지배를 기억하는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 땅에 일장기가 게양되는 동안 정부가 우려한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정적과 긴장감이 운동장을 감쌌다. 경기는 한국의 2-1 승리로 끝났다. 남다른 벅찬 감회와 기쁨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축구 경기가 민족의 자존심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는 경험은 이번 월드컵이 열리는 멕시코에도 있다. 멕시코는 미국 원정에서는 질지언정 적어도 자국 안방에서는 75년간 미국에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멕시코시티의 아즈테카 스타디움은 멕시코인의 미국에 대한 설욕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 기록은 2012년 8월 15일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미국이 1-0으로 이기면서 깨졌다. 도쿄 국립경기장에 처음 울려 퍼진 애국가에 재일동포들이 흘린 눈물, 효창운동장 하늘에 일장기가 게양되던 1분 동안의 정적, 그리고 아즈테카 스타디움에서 절박하게 승리를 염원하던 멕시코인의 응원. 90분의 경기에서 치열하게 구르는 축구공에는 이렇게 민족의 기억과 자존심이 새겨져 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소리꾼·관객 함께 펼치는 판 열린다

    소리꾼·관객 함께 펼치는 판 열린다

    “매년 전통음악을 계승·발전하고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관객과 예술인이 함께 만드는 살아있는 판의 축제를 선보이겠습니다.” 올해 25회차를 맞는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소리의 숨결, 모아 판으로’를 키워드로 오는 8월 12~16일 전주를 중심으로 전북 곳곳에서 열린다. 16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최철 조직위원장은 ‘판의 축제’를 소개하며 “전통음악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현대성과 세계성을 함께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소리축제는 대표적인 기획공연부터 변화를 줬다. 완창 중심으로 꾸린 판소리를 ‘판놀음’ 형식으로 꾸몄다. 줄타기·사자놀이·기놀이 등 다채로운 연희로 시작해 소리꾼들의 깊이 있는 소리, 힘찬 판굿으로 이어지는 세 마당으로 구성했다. 장문희(춘향가)·송재영(심청가)·김차경(흥보가)·왕기석(적벽가)·김세미(수궁가) 등 명창들이 참여하고 연희는 예인협회 ‘인(In) 천지’가 맡는다. 국악계 거목인 박대성·박범훈의 ‘산조의 밤’, 블라인드로 선발한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 신진의 등용문 ‘소리 프론티어’ 등 세대가 어우러지는 판도 마련했다. 국내 초청 공연에선 정지아 원작을 무대화한 남원시립국악단 신작 창극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눈에 띈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소환하며 전통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여성 연희자를 재조명한 ‘여성농악-안녕 평안굿’, 고창농악, 강릉단오굿, 컨트리공방, 심수봉·어반자카파 무대(전북CBS 공동기획)도 펼쳐진다. 월드뮤직 부문에서는 2014년 초연작 ‘쇼팽&아리랑’을 비롯해 재니스 조 리 밴드와 송봉금, 인도 바이올리니스트 요츠나, 마지카·마달리초 밴드 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 자리에 함께한 김정수 집행위원장은 “판소리가 태어난 놀이판, 소리판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면서 “모든 프로그램이 도민뿐 아니라 소리축제를 찾는 관객들에게 힐링의 시간으로 다가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박명숙 경기도의원 ‘경기도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 조례’로 우수조례 의장상 수상

    박명숙 경기도의원 ‘경기도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 조례’로 우수조례 의장상 수상

    기후변화에 대응해 도시하천의 침수피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경기도의회의 입법 성과가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박명숙 의원(국민의힘, 양평1)이 체계적인 하천 침수 방지 대책을 마련한 공로로 「2025년도 경기도의회 우수조례(도의회 의장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도의회 우수조례 의장상’은 자치법규 제정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과 도민 복리 증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격려하고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고자 수여하는 상이다. 박 의원은 급속한 도시화와 상습적인 국지성 호우로 인해 도시하천 유역의 침수 위험이 갈수록 심화되는 현실에 주목해 왔다. 이에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자 「경기도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 조례」를 대표 발의했으며, 해당 조례의 완성도와 실행력을 높이 평가받아 상을 받게 됐다. 박 의원은 조례 발의 당시 “기후변화와 도시화로 인한 국지성 호우와 집중호우가 빈번해지면서 도시하천 유역에서의 침수피해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번 조례안을 통해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침수로 인한 피해를 체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제정 취지를 밝힌 바 있다. 본 조례는 2024년 6월 시행된 중앙정부의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을 근거로 삼아, 경기도 여건에 맞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요 골자는 △도지사의 도시침수 예방 책무 규정 △정부 기본계획에 연계한 경기도 시행계획 수립 △전문가 자문단 구성 및 운영 △침수방지시설 설치 비용 지원 △시·군 대상 인센티브 및 포상 제도 마련 등이다. 특히 이번 조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명문화함으로써, 하천 유역별 침수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아울러 일선 시·군이 침수 방지 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조항을 포함해 사업의 실효성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조례상을 수상한 박 의원은 “도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유기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며 “조례 제정을 계기로 체계적인 침수피해 예방과 관리가 이루어져 도민 피해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25주년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 “태어난 판으로 다시 돌아간다”

    25주년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 “태어난 판으로 다시 돌아간다”

    “매년 전통음악을 계승·발전하고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관객과 예술인이 함께 만드는 살아있는 판의 축제를 선보이겠습니다.” 올해 25회차를 맞는 전주세계소리축제(소리축제)가 ‘소리의 숨결, 모아 판으로’를 키워드로 오는 8월 12~16일 전주를 중심으로 전북 곳곳에서 열린다. 16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최철 조직위원장은 ‘판의 축제’를 소개하며 “전통음악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현대성과 세계성을 함께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소리의 숨결, 모아 판으로’를 주제로 삼은 소리축제는 개·폐막작을 세우는 전형을 벗어버리고 대표 기획공연도 변화를 줬다. ‘판소리 다섯바탕’은 완창 중심에서 벗어나 ‘판놀음’ 형식으로 새롭게 꾸민다. 첫째 마당은 줄타기·사자놀이·기놀이 등 다채로운 연희로 판을 열고, 둘째 마당은 소리꾼들의 깊이 있는 소리, 셋째 마당은 힘찬 판굿으로 소리꾼·연희자·관객이 어우러지는 대동의 판을 완성한다. 장문희(춘향가)·송재영(심청가)·김차경(흥보가)·왕기석(적벽가)·김세미(수궁가)가 참여하고, 예인협회 ‘인(In) 천지’가 연희를 맡는다. 국악계 거목인 박대성·박범훈의 ‘산조의 밤’, 블라인드로 선발된 ‘젊은 판소리 다섯바탕’, 신진 국악인의 등용문인 ‘소리 프론티어’로 세대 조화를 이룬다. 국내 초청 공연으로는 정지아 원작을 무대화한 남원시립국악단 신작 창극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오른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소환하며 전통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여성 연희자를 재조명한 ‘여성농악-안녕 평안굿’, 고창농악, 강릉단오굿, 컨트리공방, 심수봉·어반자카파 무대(전북CBS 공동기획)도 펼쳐진다. 월드뮤직 부문에서는 2014년 초연작 ‘쇼팽&아리랑’을 비롯해 재니스 조 리 밴드와 송봉금, 인도 바이올리니스트 요츠나, 마지카·마달리초 밴드 등이 무대에 오른다. 13개 시·군을 도는 ‘찾아가는 소리축제’, 전주문화재단과 협업한 ‘어린이 소리축제’, 전주 곳곳을 무대 삼은 ‘소리 프린지’, 사전 프로그램 ‘월드뮤직 렉처콘서트’, 신설한 ‘판소리X시네마’ 등 다양한 행사도 준비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김정수 집행위원장은 “판소리가 태어난 놀이판, 소리판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면서 “모든 프로그램들이 도민뿐 아니라 소리축제를 찾는 관객들에게 힐링의 시간으로 다가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한글 부러웠나”…한자 못 버린 일본의 씁쓸한 문자 현실 [핫이슈]

    “한글 부러웠나”…한자 못 버린 일본의 씁쓸한 문자 현실 [핫이슈]

    일본에서 한국의 한자 축소를 둘러싼 질문이 다시 나왔다. 한국은 한글 중심 문자생활로 전환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자를 놓지 못했다. 두 나라의 차이가 어디서 갈렸느냐는 의문이다. 일본은 현재 상용한자 2136자를 유지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 공문서, 신문, 방송 자막, 일상 표기에서 한자는 여전히 핵심 문자다. 반면 한국은 한글 중심 문자생활을 정착시켰다. 한자는 인명, 지명, 전문 용어, 역사 자료 등에 남아 있지만 일상 표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다. 미국의 일본 문화 전문 매체 ‘언신 재팬’은 14일(현지시간) 일본이 왜 한국처럼 한자 사용을 줄이지 못했는지를 다뤘다. 매체는 일본에서도 한자 폐지론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언어 구조와 표기 관습이 개혁을 가로막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한글이라는 강력한 대체 문자를 갖고 있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소리를 적는 표음문자로 글자를 익히는 진입 장벽이 낮다. 한자 없이도 대부분의 문장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 정체성과도 결합했다. 일본은 상황이 달랐다. 일본어는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섞여 발전했다. 한자는 뜻을 맡고 히라가나는 문법 요소를 표시하며 가타카나는 외래어나 강조 표현에 쓰인다. 세 문자 체계가 오랫동안 함께 굳어지면서 한자를 완전히 빼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한자 없애려 했지만…동음이의어가 발목 잡았다 한자 폐지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한자를 줄이거나 없애자는 주장이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문자 개혁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폐지론은 끝내 주류가 되지 못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동음이의어였다. 일본어에는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가 많다. 한자를 쓰면 뜻을 바로 구분할 수 있지만, 가나만 쓰면 문맥에 크게 의존해야 한다. 한자가 의미 구분 장치로 작동하는 셈이다. 일본어 문장에서 한자는 가독성에도 영향을 준다.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거의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자는 단어의 경계를 보여주는 시각적 표지 역할도 한다. 한자를 없애면 문장이 길어질수록 읽는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굳어진 교육·출판·행정 관습도 개혁을 막았다. 일본 사회는 한자를 기본 교양으로 받아들였다. 학교는 단계별로 한자를 가르쳤고 신문과 공문서는 상용한자를 기준으로 표기를 정리했다. 결국 일본은 한자를 없애기보다 ‘몇 자까지 쓸 것인가’를 정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은 한글로 전환…일본은 관습의 벽에 막혀 한국은 다른 길을 걸었다. 한글 전용 흐름은 해방 이후 더 강해졌다. 정부 문서와 교육 현장에서 한글 사용이 확대됐고 신문도 점차 한자 병기를 줄였다. 디지털 환경도 한글 중심 흐름을 키웠다. 한국의 전환은 문자 효율성과 정체성이 결합했기에 가능했다. 한글은 한국어 소리를 직접 적을 수 있다. 한자어도 대부분 한글로 표기하면 독자가 문맥 속에서 뜻을 파악할 수 있다. 문자 자체가 뜻을 반드시 품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일본어보다 작았다. 물론 한국이 한자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한문 과목을 통해 기초 한자를 가르친다. 법률, 역사, 철학, 의학, 인명, 지명에는 한자 지식이 여전히 도움이 된다. 다만 일상 문자생활의 중심은 확실히 한글로 옮겨갔다. 최근 한국에서도 문해력 저하 논란과 함께 한자 교육 필요성이 다시 거론된다. 일부는 한자어의 뜻을 이해하려면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쪽은 독서량, 어휘 교육, 문장 이해 훈련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일본이 한자를 끝내 놓지 못한 이유도 단순한 보수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일본어 구조 자체가 한자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출발했지만 두 나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 한국은 한글을 중심에 세웠고 일본은 한자와 가나를 함께 쓰는 길을 유지했다. 일본에서 나온 질문은 한국의 문자 선택을 다시 보게 만든다. 한국은 한글 덕분에 일상 문자생활에서 한자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일본은 여전히 2136자의 벽을 넘지 못했다. 두 나라의 문자 현실은 지금도 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 [열린세상] 멀어지는 남북의 통일 식탁

    [열린세상] 멀어지는 남북의 통일 식탁

    지난달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우승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북측’이라 부르자, 리유일 감독은 국호를 제대로 불러 달라고 항의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경기장의 열기는 회견장에서 순식간에 냉각됐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2016년의 한 끼를 떠올렸다. 나는 하나원 교육생 함경도 출신 여성 두 사람을 우리 집에 숙박하게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첫날, 나는 그들과 함께 오래된 평양냉면집에 갔다. 평양냉면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음식의 대표’로 여기는 바로 그 음식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좀처럼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밤새 고민한 끝에 이튿날 칡냉면을 내놓자, 비로소 “고향에서 먹던 냉면과 비슷하다”며 그릇을 비웠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남녘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의 절대다수는 중국과 국경을 맞댄 함경북도와 양강도 출신이다. 그들의 입맛에 새겨진 것은 메밀로 심심하게 뽑은 평양냉면이 아니라, 감자와 옥수수 녹말로 질기게 뽑은 농마국수였다. 칡냉면의 쫄깃함이 고향의 맛을 깨운 셈이다. 그럼에도 남한 사회는 오랫동안 ‘북한음식=평양냉면’이라는 등식을 의심하지 않았다.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 이후 평양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2018년 판문점 정상회담의 만찬에 옥류관 냉면이 오르자, 그 등식은 굳어졌다. 이후 남한의 유명 평양냉면집마다 수백 명이 줄을 서고, 언론은 ‘냉면 외교’를 앞다퉈 보도했다. 옥류관은 평양의 한 음식점일 뿐인데, 우리는 그 한 그릇을 북녘 전체의 식탁으로 확대해석했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 음식’은 그 나라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일본의 초밥도, 프랑스의 크루아상도 모든 지역과 계층의 식탁이 아니다. 분단 80여년 동안 남과 북 역시 서로 다른 국민 음식을 길러 왔다. 평양냉면과 옥류관은 북녘이 세계에 내민 얼굴이었을 뿐, 함경도와 양강도의 주방과는 다른 이야기다. 정작 탈북해 남녘에 정착한 ‘신월남민’은 자신의 식탁을 남한 사람들 앞에 드러내지 않았다. 화려한 남한의 외식 문화 앞에서 두부밥과 인조고기밥, 강냉이밥은 감추어졌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해 내려온 ‘구월남민’의 음식은 반세기를 거쳐 남한 식탁의 일부가 되었다. 피란 시절 부산에서 밀가루 냉면으로 태어난 밀면,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살아남은 가자미식해와 아바이순대, 그리고 평양냉면이 그렇다. 이 음식들이 정착하기까지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이 걸렸다. 반면 ‘신월남민’이 가져온 음식들은 아직 남녘 식탁의 언어가 되지 못했다. 독일을 떠올린다. 1990년 통일 이후 옛 동독 사람들은 ‘2등 시민’으로 주변화되었고, 그들의 음식과 상표는 서독 자본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오스탈기’(Ostalgie)라는 동독에 대한 향수가 일어났다. 영화 ‘굿바이 레닌’(2003)에서 주인공이 사라진 동독의 오이피클을 찾아 헤매던 장면은 그 정서의 압축판이다. 물론 동독이 서독 체제로 흡수된 독일과 분단이 지속되는 한반도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례가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하다. 식탁의 통합은 제도의 통일보다 훨씬 더디고, 또 그만큼 끈질기다. 음식의 통일은 가능할까. 5월 23일 회견장에서 등을 돌린 것은 감독 한 사람이 아니었다. 80여년 동안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식탁을 꾸려 온 두 사회가 서로를 마주한 순간의 냉랭함이었다. 평양냉면 한 그릇을 북녘 전체로 착각하는 한, 우리는 상대의 식탁을 모른 채 통일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쩌면 ‘하나의 식탁’이라는 꿈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국민 음식을 소비하는 두 국가의 식탁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멀어지는 두 식탁 사이의 거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 곧 통일의 식탁은 거기서부터 비로소 차려진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음식인문학자
  • 李대통령 “재외국민 투표 문제 신속 해결”…이탈리아 교민 간담회

    李대통령 “재외국민 투표 문제 신속 해결”…이탈리아 교민 간담회

    이재명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교민들을 만나 “재외국민 투표 문제도 최대한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이날 로마 시내 호텔에서 교민 오찬 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 주권자들인데 행정적인 문제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주권 행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이처럼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입양 동포의 가족 찾기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입양 동포 여러분과 그 자녀들이 모국과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서 쉽게 다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최대한 신속하게 강력하게 추진할 생각”이라며 관련 조치를 재외동포청장에게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한·이탈리아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 초에 멜로니 총리님 방한에 이어 이번엔 저의 국빈 방문까지 한 해 동안 6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씩이나 국빈 방문을 서로 하게 됐다”며 “이러한 양국의 신뢰와 협력은 그만큼 더 깊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과 이탈리아는 우주·항공, 차세대 반도체, 친환경 에너지 같은 미래 첨단 산업은 물론이고 문화·인적 교류까지 전 분야에 걸쳐 협력을 대폭 확대해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제는 어디를 가나 대한민국의 경제, 문화,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참으로 뛰어나다, 위대하다 그런 생각을 한다. 전 세계에서 식민지에서 해방돼 이 짧은 시간에 경제적 성취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이뤄내지 않았나”라고 했다. 이어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문화를, 대한민국 국력과 기술과 경제를, 강력한 방위산업을 포함한 국방력이나 국력을 매우 부러워하는 그런 상황에까지 왔다”며 “앞으로 잘 가꿔야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동포 오찬 간담회를 끝으로 이탈리아 국빈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은 곧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프랑스 휴양지 에비앙레뱅을 향해 출국할 예정이다.
  • [데스크 시각] 국민배당, 떠보기만 할 게 아니다

    [데스크 시각] 국민배당, 떠보기만 할 게 아니다

    인공지능(AI)이 고도화된 사회를 상상해 보자.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과 신체를 가진 피지컬 AI가 보급된 세상. 거기서 내 직업의 성쇠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 고도화된 AI 세상에서 직업 세계는 완전 재편되고 인간 일자리의 대부분은 AI로 대체될 것이다. AI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상상한다면 비자발적 실업자가 넘쳐나는 곳일 테고, 반대로 유토피아로 상상한다면 드디어 인간이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된 사회라 하겠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극소수일 것이다. 기대처럼 창의적인 분야도 성역은 아니다. AI는 이미 글을 쓰고, 선율을 만들고, 없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 사회에서 인간 생산 활동의 최후 방어선은 AI의 도움을 받아 의사결정을 내리고, AI를 통제·관리하는 일 정도일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 인간의 가치는 생산보다 소비, 노동보다 인생을 향유하는 데 있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문제는 인생을 향유할 비용이다. 일자리가 없어 근로소득이 사라지면 인생을 향유하기는커녕 최소한의 생활조차 힘들다. 아마존은 AI에 투자한다며 8개월간 직원 3만명을 잘랐다. 국내에서도 전조는 차고 넘친다. 대전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를 이제는 AI와 로봇이 만든다고 한다. 이런 ‘제조 AI 대전환’으로 균일한 품질의 튀김소보로는 계속 생산되겠지만 성심당에 입사하는 문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국민배당’을 제안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 일부를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야당은 “공산당 본색”이라고 직격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개인 의견”이라 선을 그었다. 김 실장이 외딴섬에 혼자 있다가 이런 주장을 했을 리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척후를 띄웠다가 전세가 여의치 않으니 후퇴한 것일 뿐. AI 사회에서 ‘고용 없는 성장’은 풀어야 할 난제가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전제다. 반도체든 튀김소보로든 제품은 계속 나오고 기업은 성장하겠지만 일자리는 말라간다.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국민이 소비를 지속하며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김 실장 개인이든 정부 차원에서든 국민배당 주장은 이런 고민의 과정에서 튀어나온 화두일 것이다. 세계 선진국은 AI 기술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소버린 AI 구축에 열을 올린다. 정부와 민간의 자원은 AI를 어떻게 발전시킬까에 집중된다. 반면 AI 시대를 살아갈 국민의 삶에 대해선 어느 나라도 본격적인 논의에 나서지 못했다. AI를 발전시키는 이유도 결국은 인간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일 텐데, 그 소박하고도 숭고한 목표가 빠져 있는 것이다. AI 패권을 쥐면 평범한 국민도 잘 살게 되는 게 확실한가. 이재명 정부는 AI에 진심이다. ‘세계 AI 3대 강국’은 정부의 대표 공약이고, 부산으로 간 하정우 전 AI미래기획수석뿐 아니라 구윤철·배경훈 두 부총리를 모두 AI 또는 관련 정책 전문가로 기용했다. AI를 국정 기획과 기술, 정책의 근간에 두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정부에서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AI 시대 국민의 삶을 보장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기술은 한발 늦었지만 앞으로 한국이 이 분야의 논의를 선도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의 모델을 제시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 문제는 여론만 떠보다가 미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제대로 의제를 던지고 정부와 기업, 학계, 시민사회 등이 함께 고민해 볼 사안이다. 일시적 현상, 일회성의 횡재가 아니라 산업과 사회 구조가 완전 바뀌는 판 아닌가. 우선 관련 용어의 쓰임부터 빠르게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초과세수, 초과이윤, 초과이익은 정부 내에서도 용법이 혼란스럽다. 초과세수는 초과세수대로, 초과이윤은 또 그것대로 활용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툭 던져보고 반발이 심하면 은근슬쩍 말을 바꾸는 식의 대처는 AI 3대 강국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강병철 정치부장
  • 앙리 루소, B급 화가가 거장이 된 이유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앙리 루소, B급 화가가 거장이 된 이유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취미로 그림 시작했던 세금 징수원“소묘도 못하는 삼류 화가” 조롱받아상상력·직관으로 현대적 예술가로사진기 등장에 회화의 ‘재현’ 빛 잃어초현실주의 내다본 위대한 개척자“원근법도 무시하고 소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삼류 화가.”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앙리 루소(1844~1910)에게 내린 평가는 냉혹했다. 당시 미술아카데미 기준에서 볼 때 루소의 그림은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루소는 취미로 그림을 시작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독학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눈을 감고 발로 그린 그림”이라며 비웃음을 당했던 루소의 작품이 뒤늦게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가 남긴 명언들을 따라가며 B급 화가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재평가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보겠다. 첫 번째 명언 “나는 미술학교나 거장의 화실에서 배운 적이 없다. 자연만이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이 말은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 화가 루소의 예술 철학을 보여 준다. 당시 파리에서 화가로 인정받으려면 아카데미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 등을 익혀야 했다. 루소는 남의 화법을 따르기보다 자연이 주는 영감과 직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루소의 발언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계기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71년 루소는 파리 외곽 통행료 징수소의 하급 세금 징수원이 되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세관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지만 실제 일과는 마차에 실린 화물의 무게를 정확히 재고 세금을 거두는 반복적인 업무의 연속이었다. 그는 삭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주말마다 붓을 들었다. 비록 여가시간에만 그림을 그리는 일요일의 화가였지만 마음속에는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류 미술계의 벽은 높았다. 루소는 1885년 공식 살롱전에 두 점의 작품을 출품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참가비 15프랑만 내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독립 예술가 전시회(살롱 데 앵데팡당)에 참여하며 화가로서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카니발의 밤’은 그의 나이브 아트(Naïve Art·소박파) 화풍을 보여 주는 초기 대표작이다. 소박파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들이 자신만의 순수한 직관과 본능으로 그린 회화 양식을 말한다. 화면에는 어둡고 신비로운 겨울 숲을 배경으로 카니발 복장을 한 남녀가 팔짱을 끼고 서 있다. 두 인물의 밝고 화려한 옷차림은 어둠에 잠긴 숲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낯설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던 루소는 인물의 해부학적 비례나 공간감보다 의상의 단추, 모자, 주름 같은 세부 장식에 집중했다. 기존 회화의 기준에서는 실력 부족으로 보였지만 제도권 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시선과 시적인 분위기가 살아 있다. 그는 배운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그렸던 것이다. 1886년 살롱 데 앵데팡당에 이 작품이 걸렸을 때 원근법의 무시와 인형처럼 뻣뻣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 표현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은 그의 독창적인 무기교의 미학이 드러난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명언 “내 마음이 너무 열려 있어서 나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발언은 루소가 왜 순진한 화가로 불렸고 소박파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고백은 그가 63세이던 1907년 은행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을 때 담당 판사에게 쓴 탄원서에 나온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루소는 자신이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인의 부탁을 도와주다가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루소의 변호인은 그가 사기를 계획할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루소의 그림들을 법정에 가져와 배심원단에게 보여 주었다. 변호인은 “이렇게 유치해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떻게 은행 사기 시스템을 이해하고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겠는가?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서 속은 것뿐”이라고 변론했다. 배심원들은 루소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천진난만함에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약점이 되었던 루소의 순수한 영혼은 예술에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강점이 되었다. 이를 한 편의 시처럼 보여 주는 작품이 ‘잠자는 집시’다. 한 집시 여인이 황량한 사막 위에서 만돌린과 물항아리를 곁에 둔 채 깊이 잠들어 있다. 차가운 보름달이 사막을 푸르게 물들이는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사자 한 마리가 조용히 여인에게 다가온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과 공포가 감돌아야 마땅한데 신기하게도 정적과 평온이 느껴진다. 사자는 먹잇감을 덮치는 맹수가 아니라 낯선 존재 앞에서 멈춰 선 신비로운 방문자처럼 보인다. ‘잠자는 집시’는 현실의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과 자연, 약자와 강자가 조화를 이루는 꿈같은 세계를 그려냈다.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 초대 관장 앨프리드 바는 이 작품을 “19세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그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세 번째 명언 “피카소, 우리는 당대 가장 위대한 두 명의 화가라네. 자네는 이집트 스타일의 거장이고 나는 현대 스타일의 거장이지.” 루소가 젊은 피카소에게 건넨 이 말은 노화가의 허세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본능적으로 꿰뚫어 본 통찰이며 그의 자존감을 보여 주는 명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말은 1908년 11월 피카소가 몽마르트르 작업실 바토 라부아르에서 루소를 위해 열어 준 전설적인 파티에서 나왔다. 피카소는 벼룩시장에서 단돈 5프랑에 팔리던 루소의 대형 여성 초상화를 발견하고 작품에서 원초적인 힘과 독창성을 보았다. 감동을 받은 피카소는 루소에 대한 존경과 장난기 어린 애정을 담아 그를 주빈으로 초대했다. 이 자리에는 파리 전위예술계를 이끌던 인물들이 함께했다. 파티가 무르익을 때 한껏 들뜬 루소는 피카소에게 자신들이 “당대 가장 위대한 두 명의 화가”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집트 스타일은 피카소가 몰두했던 초기 입체주의와 원시미술의 경향을 가리킨다. 고대 이집트 벽화가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조합했듯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통해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너뜨리고 여러 시점을 한 화면 안에 결합했다. 루소는 직관적으로 피카소의 실험이 낡은 회화 규범을 깨뜨리는 혁명임을 알아본 것이다. 한편 루소는 자신의 화풍을 현대 스타일이라고 확신했다. 피카소가 시점의 해방을 통해 현대미술의 문을 열었다면 그는 상상력의 해방을 통해 회화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까지 품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루소가 마흔여섯 살에 그린 ‘나 자신, 초상-풍경’은 그가 일찍부터 스스로를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세워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는 검은 정장과 예술가의 상징인 베레모 차림으로 한 손에는 붓을, 다른 손에는 팔레트를 들고 화면 한가운데 당당히 서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물의 크기다. 루소는 주변 풍경보다 훨씬 크게 자신을 그렸다.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한 표현이지만 루소는 거리에 따른 실제 크기보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대상을 크게 그렸다. 마음의 크기대로 그리기는 중세 종교화에서 예수나 성인들을 상징적으로 크게 그렸던 방식과도 닮아 있다. 그의 뒤편에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세워진 에펠탑과 하늘을 나는 열기구, 센강 위의 최신식 철교와 만국기로 장식된 증기선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19세기 말 파리가 맞이한 산업화와 기술문명의 상징물이다. 루소는 현대적 풍경 한가운데 자신을 거인처럼 세워 두었다. 세상이 그를 아마추어 화가라고 비웃던 시절에도 그는 자신을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현대적 예술가로 그리고 있었다. 19세기 중반 등장한 사진기는 대상을 똑같이 복사하는 회화의 오랜 재현 기능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 당대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회화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했고 회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루소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미술계의 고정관념이나 이론적 굴레에 갇히지 않은 가장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는 순수한 상상력과 직관만을 믿고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만들어 냈다. 그 정점이 그의 유작 ‘꿈’이다. 루소는 평생 정글에 가 본 적이 없었지만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을 자주 드나들며 이국적인 열대 식물들을 관찰했고 백과사전의 삽화와 상상력을 조합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야생의 정글을 창조했다. 붉은 소파, 잠든 여인, 사자와 코끼리, 피리 부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훗날 초현실주의자들이 주목하게 될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앞서 열어 보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10년 봄, ‘꿈’의 전시를 앞두고 평생 수많은 조롱과 냉대를 견뎌야 했던 노 화가는 이번만큼은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이해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절친한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편지를 보내 진심으로 부탁했다. “부디 자네의 빛나는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내가 평생 받았던 모든 모욕과 상처에 대한 멋진 복수를 해 줄 것이라고 믿네.” 아폴리네르는 루소의 요청에 뜨겁게 응답하며 1910년 전시회 평론에서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단언컨대 올해는 아무도 감히 비웃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전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10년 9월 2일, 루소는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미술계에는 기술이 뛰어난 화가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독보적인 개성과 생명력으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 낸 화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루소는 그 드문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미술사는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던 아카데미 화가들이 아니라 솔직함과 순수함으로 견고한 규칙을 깨부순 독학 화가의 손을 들어 주었다. B급 화가였던 루소는 오늘날 새로운 회화 언어를 창조해 낸 위대한 개척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꿈 찢은 ‘야생의 발톱’ 토슈즈, 그 발칙한 해방감

    꿈 찢은 ‘야생의 발톱’ 토슈즈, 그 발칙한 해방감

    셰익스피어 원작 서사와 선 그어집단 최면과 초현실 환각 쏟아져토슈즈, 에너지 내뿜고 권위 조롱 막이 오르기 전, 무대 왼쪽 침대에 곤히 잠든 한 남성이 있다. 그는 앞으로 전개될 세계를 단박에 시사한다. 11~14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에서 공연한 스웨덴 출신 천재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42)의 무용작 ‘한여름 밤의 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 서사와는 선을 긋되 ‘꿈’이라는 본질적 설정만큼은 직관적으로 소환한다. 막이 올라 무대 전체를 빽빽하게 뒤덮은 거친 건초 더미가 모습을 드러내면 클래식 발레의 문법을 파괴한, 스웨덴의 ‘하지 축제’를 빌려 억눌린 욕망을 폭발시키는 거대한 총체극이 시작된다. 안무와 라이브 보컬·연주,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역동적인 구성이 완벽하게 맞물린 연출은 마치 ‘태양의 서커스’가 선사하는 종합 예술적 쾌감처럼 무용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유쾌하게 허물어버린다. 무대 상단에 걸린 거대한 시계는 이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관통하는 가장 냉혹하고 탁월한 장치다. 시계는 메트로놈처럼 1분 1초를 무심하게 새기며 ‘문명’과 ‘유한함’을 가리킨다. 그 아래 무용수들의 시간은 술과 축제에 취한 맹렬한 짐승의 속도로 요동친다. 1막의 일사불란한 식탁 시퀀스 속 영화 같은 슬로 모션 기법은 우아한 만찬의 품위가 어떻게 집단적인 최면과 광기로 변모하는지 정교하게 포착한다. 시곗바늘이 밤을 향하는 2막에 이르면,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 기괴한 악몽으로 뒤틀리는 이른바 ‘린치언 미학’(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초현실주의적 세계관)이 펼쳐진다. 허공으로 떠오르는 침대, 어둠 속을 배회하는 머리 없는 양복 차림의 사내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거대한 물고기 등 부조리한 환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며 무대를 기묘한 환각 상태로 몰아넣는다.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클래식 발레의 가장 견고한 상징인 ‘토슈즈’를 다루는 방식에서 폭발한다. 토슈즈는 본래 중력을 거스르는 우아함의 도구다. 그러나 에크만은 이를 바닥을 긁고 할퀴는 ‘야생의 발톱’으로 전복한다. 셔츠 차림의 여성 군무는 토슈즈로 집단적 트랜스의 비트를 만들며 최고조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앞치마만 두른 알몸의 요리사가 토슈즈를 신고 무대를 가로지르며 클래식의 권위를 조롱하는 모습 또한 발칙하다. 문명의 통제를 비웃듯 남은 에너지를 모두 태워버린다. 규칙과 형식에 얽매였던 신체들이 완벽한 자유에 도달하는 마지막 해방감은 짜릿하다. 발레라는 언어로 총체극을 빚어내는 최고봉으로 모리스 베자르(1927~2007)를 꼽을 만하다. 2015년에 초연돼 10여년이 흘러도 ‘한여름 밤의 꿈’이 뿜어내는 전위적인 총체적 연출은 시대를 관통하며 그 위대한 거장의 계보를 당당히 잇는다. 장인주 무용평론가
  • “특혜도 배제도 없다… 320만 전남광주 통합·성장의 틀 다질 것” [민선 9기 광역단체장에게 듣는다]

    “특혜도 배제도 없다… 320만 전남광주 통합·성장의 틀 다질 것” [민선 9기 광역단체장에게 듣는다]

    오는 7월 1일이면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출범한다. 지난 40년간 갈라져 있던 전남과 광주가 다시 합치는 만큼 ‘320만 대도시 탄생’을 기뻐하기보다는 지역 내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오고 있다.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은 14일 나주혁신도시 전남광주대전환기획위원회에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4년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갈등’을 성공적인 통합으로 가는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도 배제도 없는 수평적 통합’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통합특별시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경제적 성장의 기반을 갖추는 것’을 꼽고, 앞으로 4년간 재정을 소모성 비용이 아닌 전략적 투자 비용으로 운용하겠다고 했다. ‘결정을 방치한다’는 지적을 받는 시민주권 정부에 대해서는 ‘시민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정부’를 의미한다며 “행정이 전문성으로 뒷받침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득표율 79.01%의 압도적 당선이다. “사실 기쁨보다 책임감이 앞선다. 전남광주는 해방 이후 80년 동안 서러운 역사를 보냈다. 사회적으로 차별당하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고 정치적으로 피를 흘렸다. 급기야 1986년 전두환 정권의 분할 통치로 억지로 갈라섰다. 이제 시민들께서 이 역사의 전환을 저에게 맡기셨다. 시민 여러분의 선택을 무겁게 받들겠다. 반드시 성과로 보답하겠다.” 치열한 경선 뚫고 압도적 당선경쟁했던 후보들 모두 소중한 자산시민추천제로 능력형 부시장 발탁지역주도 성장 위해 당정청과 소통-경선이 치열했다. 지역 정치권 통합, 인재를 모으기 위한 탕평책은 있는지. “서두르지 않겠다. 경선이 치열했던 만큼 각 후보와 지지자들 모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성급한 통합보다는 예의를 지키는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원팀을 만들어가겠다. 함께 경쟁한 후보들은 모두 전남광주의 소중한 자산이다. 인재를 모으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부시장 시민추천제처럼, 특정 진영이 아니라 능력과 지역에 대한 헌신을 기준으로 발탁할 생각이다.” -청와대, 정부, 국회와 소통이 중요할 것 같다. 국무회의 참석은. “이재명 대통령과 16년을 함께 걸어오며 신뢰를 쌓아왔다.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으로 국정의 작동 방식을 몸으로 익혔고 국회와 중앙부처를 잇는 실무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지역 주도 성장’의 뜻에 앞장서 호응하는 것이 전남광주가 할 역할이다. 특별법이 보장하는 권한과 재정 지원을 실질적인 지역 성장으로 연결시키겠다. 국무회의 참여 방식 등 제도적인 사안은 출범 준비 과정에서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다.” -통합특별시의 비전과 전략은. “전남광주는 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고 지역이 스스로 성장을 주도하는 선도 모델이 될 것이다. 시민이 결정하면 산업이 성장하고 그 이익은 다시 시민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겠다. 전략은 5가지 원칙 위에 세우겠다. 성장 통합, 균형 통합, 기본 사회, 녹색 도시, 시민주권이다. 최우선 목표는 성장이다. 전남광주가 가진 재생에너지, 인공지능(AI), 농생명, 해양 자원을 전략 산업으로 키워 대한민국 성장의 새로운 축을 만들겠다. 운영의 핵심 원리는 시민주권이다.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성과를 나누는 것도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동부·서부·중남·광주 4대 권역이 각자 특화 산업을 키우면서 고르게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겠다. 전남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들이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 그것이 제가 그리는 통합특별시의 모습이다.” -통합특별시 출범 1호 결재는 무엇일까. “1호 결재로 ‘통합 100일 긴급 실행 계획’에 서명하겠다. 지금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 동부권 석유화학·철강은 위기 상황이고 수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통합까지 겹쳐 행정과 지역사회가 동시에 거대한 전환을 맞게 됐다. 이 역사적 전환기에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긴급 실행 계획에는 네 가지를 담겠다. 취약 분야·계층을 집중 지원하는 민생 긴급 대응 체계, 인사권부터 시민 손에 돌려주는 시민주권정부 첫 실행, 통합 출범 직후 가장 먼저 불거질 수 있는 지역 내 갈등의 선제적 조정,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체계를 하나로 결합하는 행정 조직 개편 로드맵이다. 행정 역량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집중 투입해 통합 기반을 확실하게 다지겠다. 출범 초기 100일을 향후 통합특별시의 기반을 다지는 골든 타임으로 활용하겠다.” -주청사, 군 공항 이전, 전남 의대 등 현안이 첩첩산중이다. 앞으로 4년은 갈등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갈등은 변화를 향한 열정과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터져 나오는 갈등을 성공적인 통합으로 가는 동력으로 삼겠다. 해결 원칙은 하나다. 특혜도 배제도 없는 수평적 통합이다. 시장이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이 대표성과 숙의를 갖춰 의견을 모으면 행정이 그 결정을 집행하는 구조로 가겠다. 의사결정 과정을 전면 공개해 불신을 원천 차단하고 4개 권역 책임 부시장제로 현장 민원을 즉각 해소하며 균형발전기금으로 재원 배분 기준을 법제화하겠다. 주청사는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특별법이 명시한 분산형 청사 운영을 원칙으로, 순환 근무를 통해 시민 공론화로 결정하겠다. 군 공항 이전은 국가 안보 시설인 만큼 국가 주도 원칙을 견지하며 범정부 협의체를 통해 풀어나가겠다. 전남 의대는 대학 자율을 존중하되 정치권의 불필요한 개입 없이 대학 스스로 합의의 길을 찾도록 지원하겠다. 갈등 관리 역량이 곧 초대 통합특별시장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통합시정 비전과 전략은민생·시민주권·갈등조정·조직개편수평적 통합 다질 ‘100일 골든타임’산업 생태계 구축 위해 재정 쏟아야-시민주권, 의미가 크지만 시민에게 다 맡기면 정책이 산으로 가지 않을까. “오해가 있다. 시민주권정부는 결정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개발 사업이든 기업 유치든 무엇을 추진하든 시민의 기대와 열망에 호응하는 방향으로,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방향을 결정하면 행정이 전문성으로 뒷받침하는 구조라는 의미다. 저는 광주 광산구청장 시절 ‘수완동 동장 주민추천제’를 전국 최초로 시행했고 간부회의를 청내 방송으로 공개했다.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행정 품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민 참여가 오히려 행정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지역 발전·대전환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있는지. “전남광주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제적 성장의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기업 유치, 창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이 첫 번째 임무다. 핵심은 재정을 소모성 비용이 아닌 전략 투자로 쓰는 것이다. 전략 산업 투자, 인재 육성, 사회 안전망 세 방향으로 재정을 운용할 생각이다. 특히 ‘100원 전기’를 실현해 RE100 산단을 조성하고 글로벌 기업이 전남광주를 선택하도록 만들겠다. 새만금에 현대차가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것처럼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이어지도록 하겠다. 성장의 과실은 시민공유자본펀드를 통해 시민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 가겠다.” -대규모 사업 유치 과정에서 다른 광역자치단체와 갈등이 불가피할 것 같다. “경쟁은 당연하다. 갈등에 앞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전남광주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면 갈등 발생 여지도 줄어들 것이다. 전남광주가 가진 재생에너지·농생명·해양 자원은 다른 광역단체가 쉽게 갖추기 어려운 고유한 자산이다. 대기업 유치를 위한 성장 엔진 장착, 4대 권역 특화 산업 육성, 균형 성장 기반 구축 등을 통해 전남광주만이 제공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 다만 경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갈등이 생긴다면 광역자치단체 간 협의 채널과 중앙정부 조정을 통해 풀어갈 생각이다.” 4년 후 통합특별시 모습은RE100 산단으로 기업·청년 찾고지역 성장 과실 시민들이 누리게통합 성공모델로 성과 증명할 것-4년 후 통합특별시는 어떤 모습일지. “통합특별시민 대부분이 ‘통합하길 정말 잘했다’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 모습을 세 가지 장면으로 그려보고 싶다. 첫째, 기업과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다. 100원 전기를 기반으로 한 RE100 산단이 조성되고 글로벌 기업 유치가 가시화되면서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일자리와 기회를 찾을 수 있는 도시가 된다. 둘째, 시민이 성장의 성과를 함께 누리는 도시다. 성장의 혜택이 일부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의 삶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겠다. 기업과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이 돌며 시민들이 통합의 성과를 일상에서 체감하는 도시를 만들겠다. 셋째, 시민이 진짜 주인인 도시다.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행정이 시민과 함께 움직이는 시민주권정부를 확실히 뿌리내리겠다. 시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현장에서 답을 찾는 시정을 펼치겠다. 설계한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겠다. 반드시 결과로 증명하겠다.” -기초자치단체도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정치가 먼저 결론을 정할 사안이 아니다. 주민 의사와 생활권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 주민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생활권 통합의 이익이 분명할 때 주민 합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지금은 통합특별시를 안정적으로 출범시키고 성공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통합특별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정치 입문 이후 지금까지 제가 가진 지위와 역할이 개인의 것이라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시정의 주인은 시민이다. 시민의 뜻을 실현하는 충직한 일꾼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갈 수 있다.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첫 4년 역시 시민 여러분과 함께 가겠다. 시민 여러분께서 맡겨주신 책임을 무겁게 새기겠다. 통합의 성과가 시민의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켜봐 주시면 반드시 결과로 증명하겠다.”
  • ‘어벤져스’ 배우, 이스라엘 부동산 광고 찍었다가 ‘온라인 역풍’

    ‘어벤져스’ 배우, 이스라엘 부동산 광고 찍었다가 ‘온라인 역풍’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토니 스타크의 연인 페퍼 포츠 역을 맡았던 배우 기네스 팰트로(53)가 이스라엘의 부동산 광고 모델로 나섰다가 온라인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팰트로는 최근 이스라엘 텔아비브 북쪽 해안 도시 헤르츨리야에 건설 중인 51층짜리 부동산 프로젝트 ‘51 파크’ 홍보 영상에 출연했다. 뉴욕에서 촬영돼 지난주 공개된 이 광고 영상에서 팰트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건물들은 공원 옆에 있는 이유가 있다. 51 파크처럼 말이죠”라고 말했다. 그 건물이 뉴욕에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스라엘 헤르츨리야에 있다”고 답했다. 팰트로가 이 광고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소셜미디어(SNS) 이용자들은 팰트로의 최근 게시물로 몰려가 분노를 쏟아냈다. 일부 이용자는 이스라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이스라엘 부동산을 광고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국기 사진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는 글을 적은 댓글도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여러 인권 단체로부터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집단학살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며 군사 작전은 하마스를 격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CNN은 이번 역풍이 3년 동안의 가자지구 전쟁과 이란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연관되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선택인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36개국의 대다수 국민이 이스라엘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성인 응답자 중 67%가 이스라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고, 긍정적 견해를 가진 응답자는 25%에 그쳤다. 팰트로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가정에서 자랐다. 팰트로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고 하누카 등 유대교 명절을 공개적으로 기념해 왔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주도한 이스라엘 테러 공격 이후 팰트로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들을 석방해 달라’는 촉구 서한을 보낸 할리우드 스타 중 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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