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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 맑은 영혼’ 고 허승관씨 22년만 시신 발견

    ‘히말라야 맑은 영혼’ 고 허승관씨 22년만 시신 발견

    히말라야 브로드피크에서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조난당해 실종된 가운데 현지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1999년 실종된 고 허승관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고 허씨의 시신은 김 대장 수색 도중 발견된 것이 아니라 이달 초순쯤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한 외국인 등반대가 눈이 잠깐 녹은 사이에 찾아냈다. 외국인 등반대는 현지에서 눈이 녹은 사이 풍화된 시신을 발견했고, 시신과 함께 발견된 연세산악회 재킷과 깃발 등을 토대로 허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연세산악회 측은 “산악회원 1명이 브로드피크를 찾아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오늘 파키스탄으로 출발한다”고 밝혔다. 다만 현지에서 브로드피크(8047m) 베이스캠프(4950m) 를 가려면 이슬라마바드에서 스카르두로 이동한 뒤 다시 5일 가량 도보로 등반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달 초는 돼야 시신 수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로 시신을 운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 현지에서 화장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27살이었던 허씨는 1999년 7월 29일 연세산악회 등정대 소속으로 고 박영석 대장 등반대와 합동으로 브로드피크를 오르다가 해발 7300m 지점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오던 중 실종됐다.다른 대원들이 이후 허씨가 사라진 사실을 파악하고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결국 허씨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후 2005년 K2 등반을 위해 방문한 박영석 대장이 허씨를 포함해 이곳에서 숨진 산악인 2명을 추모하는 동판을 K2 베이스캠프에 있는 추모 바위에 부착하기도 했다. 박씨는 2005년 산악인 허승관씨와 박영도씨에 대한 추모의 글이 새겨진 동판을 K2메모리얼 바위에 부착했다. 지난 99년 허씨의 사망 원인은 추락사로, 박영도씨는 지난 2001년 K2에서 하산하다 골짜기로 추락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9년 9월 직지원정대 일원으로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을 오르다 연락이 끊긴 민준영·박종성 대원 시신이 10년 만인 2019년 7월 발견된 전례가 있다. 허씨를 추모했던 박영석 대장도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 사라졌으며 끝내 찾지 못했다. 김 대장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오후 4시 58분 파키스탄과 중국에 걸쳐 있는 브로드피크의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 사고를 당했다.김 대장은 조난 상태에서 다음날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된 뒤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가다가 중국 영토 쪽으로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장은 이번에 브로드피크 정상을 밟으면서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에 성공한 상태였다. 지난 며칠 동안 파키스탄군 헬기 등이 추락 추정 지점을 수색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이후 김 대장 가족의 요청에 따라 이날부터 수색은 중단됐다. 한편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 23일 김 대장에 대해 한국 측의 구조요청을 받은 뒤 바로 밤새 신장위구르 자치구 정부를 지도하고 조율해 구조작업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22일에는 구조 헬기 2대가 두 차례로 나눠 9명의 구조대원과 함께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수색 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군용 헬기가 중국 영공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중국 측이 제때 비행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 김홍빈 대장 수색 중 발견한 시신, 22년 전 실종된 한국인이었다(종합)

    김홍빈 대장 수색 중 발견한 시신, 22년 전 실종된 한국인이었다(종합)

    1999년 브로드피크 등반 중 사라진 허모씨 히말라야 브로드피크에서 실종된 김홍빈 대장을 찾는 과정에 22년 전 이곳에서 실종된 한국 산악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26일 외교부에 따르면 브로드피크에서 김 대장을 찾던 다른 나라 수색대가 다른 한국인 남성 허모씨의 시신을 찾았다. 히말라야의 험준한 환경에서 실종된 시신을 22년이라는 오랜 시간 뒤에 발견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당시 27세였던 허씨는 1999년 7월 29일 연세대 산악부 등정대 소속으로 브로드피크를 오르다가 해발 7300m 지점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오던 중 실종됐다. 허씨가 사라진 사실을 깨닫고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허씨의 것으로 보이는 의류 등 유류품 일부만 찾았다. 이후 2005년 K2 등반을 위해 방문한 박영석 대장이 허씨를 포함해 이곳에서 숨진 산악인 2명을 추모하는 동판을 K2 베이스캠프에 있는 추모 바위에 부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씨를 추모했던 박영석 대장도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 사라졌으며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가족 요청에 김홍빈 대장 수색 중단…장례 절차 착수 광주시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26일 광주시청에서 브리핑하고 김홍빈 대장 가족(배우자)의 의사를 존중해 수색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구조대 헬기 1대가 실종 추정 지점(7400m) 상공에서 수색했으나 김 대장을 찾지 못했다. 구조대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을 베이스캠프에서 판독한 결과, 김 대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가족은 사고 지점의 험준함과 전날 수색 결과를 고려, 현실적으로 생환이 어렵다고 판단해 추가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김 대장도 생전에 배우자에게 사고가 발생하면 수색 활동으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현지 구조대는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할 예정이다. 광주 산악인으로 꾸려진 지원단은 이날 밤 출국할 예정이다. 이들은 현지 대원의 귀국 지원, 행정사무 처리, 물품 정리 등을 맡는다. 대책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김 대장의 업적을 고려, 가장 영예로운 방법으로 장례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조인철 대책위 위원장은 “김홍빈 대장 구조와 관련해 파키스탄과 중국 정부가 최대한 지원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김 대장은 지난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 시각)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8074m)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 사고를 당했다. 김 대장은 조난 상태에서 다음날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된 후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가다가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 22년 전 브로드피크서 사라진 허승관씨 시신 찾아, 35년 만에 유해 찾기도

    22년 전 브로드피크서 사라진 허승관씨 시신 찾아, 35년 만에 유해 찾기도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 히말라야 브로드피크(해발 고도 8047m)에서 조난된 김홍빈(57) 대장에 대한 수색을 중단하고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로 한 26일 이 산의 베이스캠프(4950m)근처에서 22년 전 실종된 다른 한국 산악인의 시신이 발견됐던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당초 김 대장을 수색하는 과정에 다른 나라 수색대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이달 초순 다른 나라 등반대가 우연히 풍화된 시신을 찾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히말라야의 험준한 환경에서 실종된 시신을 22년이 걸려 찾아내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그보다 더 오래 걸려 유해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그것도 무산소로 해낸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홑트 메스너가 1970년 5월 동생 귄터와 함께 낭가 파르밧(8125m)의 루팔 벽을 오르다 귄터가 실종됐는데 35년 만에 유해로 돌아왔다.  26일 연세산악회에 따르면 1999년 7월 29일 연세대 산악부 소속으로 고(故) 박영석 대장의 등반대와 함께 이곳을 오르다가 해발 7300m 지점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오던 중 사라진 고(故) 허승관 씨의 시신이 이달 초순 발견됐다. 당시 그가 사라진 사실을 깨달은 동료들이 수색에 나섰지만, 허씨의 것으로 보이는 의류 등 유류품 일부만 찾아내는 데 그쳤는데 이달 초 연세대 산악부 마크가 선명한 재킷, 깃발 등과 함께 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연세산악회는 최대한 일정을 서둘러 다음달 초쯤 현지에서 시신을 인계받아 현지에서 화장하는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5년 브로드피크에서 9㎞ 밖에 떨어지지 않은 K2(8611m)를 등반한 박영석 대장이 허씨와 2001년 K2에서 하산하다 골짜기로 추락해 스러진 박영도 씨를 추모하는 동판을 K2 베이스캠프에 있는 추모 바위에 부착했다.  앞서 2009년 9월 직지원정대 일원으로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을 오르다 연락이 끊긴 민준영·박종성 대원 시신이 10년 만인 2019년 7월 발견된 전례가 있지만, 다수 실종자는 그대로 히말라야에 잠들어 있다. 박영석 대장도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 사라졌으며 지금껏 찾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이날 김 대장의 부인은 남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무리한 수색 활동을 계속하다 자칫 다른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수색을 중단해도 좋다고 결정했다. 전날 파키스탄군 헬리콥터를 이용해 김 대장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지만 찾지 못했고 흔적조차 확인하지 못해 애꿎은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렵고 힘든 결정이지만 합리적이며 용기있는 결정이라고 본다.  이런 부인의 결정은 김 대장이 평소 “내게 사고가 나면 수색 활동에 따른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는 피길연 광주시산악연맹회장의 전언과도 맥락이 닿아 보인다. 김 대장은 원정에 나서기 전 주변에 “지금까지 주위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죽어서까지 주위 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조난 당한 19일 그를 돕기 위해 유일하게 중국 쪽 벼랑 아래로 내려간 러시아 산악인 비탈리 라조가 부축해 함께 올라가자고 했을 때 열 손가락이 없는 김 대장이 괜찮다고, 제 힘으로 올라가겠다며 완등기(주마)를 사용했다는 점도 이런 맥락에 따른 행동으로 보인다. 완등기에 문제가 생겼고, 얼굴을 덮치는 바람에 그는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져 ‘히말라야의 별’이 되고 말았다. 그 별이 앞으로 이 봉우리와 K2, 낭가파르밧 등을 비쳐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보우해주길 바란다.
  • 가족 요청으로 김홍빈 대장 수색 중단…장례 절차 착수

    가족 요청으로 김홍빈 대장 수색 중단…장례 절차 착수

    전날 구조대 헬기 수색에서도 발견 못해생전에도 “수색으로 2차 사고 안돼” 당부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하산 중 실종된 김홍빈(57) 대장에 대한 수색 작업이 중단됐다. 광주시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26일 광주시청에서 김 대장 가족(배우자)의 의사를 존중해 수색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구조대 헬기 1대가 실종 추정 지점(7400m) 상공에서 수색했으나 김 대장을 찾지 못했다. 구조대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을 베이스캠프에서 판독한 결과, 김 대장을 확인할 수 없었다. ●“가족 의사 존중해 수색 중단 결정” 이에 가족은 사고 지점의 험준함과 전날 수색 결과를 고려, 현실적으로 생환이 어렵다고 판단해 추가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현지 원정·구조대원들도 가족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김 대장도 생전에 배우자에게 사고가 발생하면 수색 활동으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현지 구조대는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할 예정이다. 당초 현지 지원을 하러 가기로 한 광주 산악인으로 꾸려진 지원단은 이날 밤 출국할 예정이다. 이들은 현지 대원의 귀국 지원, 행정사무 처리, 물품 정리 등을 맡는다. 대책위는 한국을 대표하는 김 대장의 업적을 고려해 가장 영예로운 방법으로 장례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고미영(2009년) 대장의 대한산악연맹장, 박영석(2011년)·김창호(2018년) 대장의 산악인장의 사례를 참고, 대한산악연맹이 주관해 산악인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체육훈장 최고등급 ‘청룡장’ 건의 계획 김 대장의 공적 등을 감안, 체육훈장 최고등급(1등급)인 청룡장 추서를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대한산악연맹이 추천하면 정부 심사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게 된다. 조인철 대책위 위원장은 “김홍빈 대장 구조와 관련해 파키스탄과 중국 정부가 최대한 지원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김 대장은 지난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 시각)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8074m)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천900m 부근에서 조난 사고를 당했다. 김 대장은 조난 상태에서 다음날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된 뒤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가다가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 K2 눈사태에 스러진 英산악인, 김홍빈 조난된 브로드피크서 3년 전 구사일생

    K2 눈사태에 스러진 英산악인, 김홍빈 조난된 브로드피크서 3년 전 구사일생

    김홍빈(57) 대장의 흔적을 찾기 위한 첫 헬리콥터 수색에 성과가 없어 생환 가능성이 점점 엷어지는 가운데 김 대장이 조난된 브로드피크(해발 고도 8047m)에서 9㎞ 밖에 떨어지지 않은 K2(8611m)의 눈사태에 스코틀랜드 산악인이 스러졌다. 화를 당한 이는 릭 알렌(68)으로 저개발국을 돕는 자선재단의 모금 캠페인으로 K2의 남동쪽 사면에 새 루트를 열겠다는 목표로 빙벽에 달라붙었다가 눈사태를 만났다.파트너스 릴리프 앤드 디벨롭먼트(PRD) 재단은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영국 외교부도 이슬람바드 주재 대사관을 통해 사고를 인지했다고 밝혔다. 알렌은 두 산악인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스페인의 조르디 토사스와 오스트리아 산악인 스테판 켁, 둘 모두 큰 부상 없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전했다. 켁은 김 대장의 조난 상황에도 살짝 이름이 등장했는데 K2로 옮겨 등정을 이어가려다 목숨을 잃을 뻔했다. K2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며 가장 위험하고 거친 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알렌은 3년 전에도 브로드피크를 혼자 등정하다 빙벽에서 떨어져 실종된 일이 있었다. 천우신조로 베이스캠프의 한 요리사가 그의 배낭을 발견하는 바람에 드론을 띄워 위치를 파악해 무사히 구조됐다. 용하게 피했던 죽음의 신을 결국 3년 뒤 K2에서 만난 셈이다. PRD 재단은 성명을 발표해 “릭은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다 죽었고 일생 동안 용기와 확신을 갖고 살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 왔다. 재단 임원 모두가 유족의 슬픔에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 김홍빈 대장 구할 기회 여러 번, 적어도 15명의 산악인 ‘모르는 척’

    김홍빈 대장 구할 기회 여러 번, 적어도 15명의 산악인 ‘모르는 척’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 브로드피크(해발 고도 8047m) 등정에 성공한 뒤 다음날 조난 당한 김홍빈(57) 대장을 구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산악인이 조금씩만 힘을 보탰더라면 그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수 있었다는 진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유일하게 벼랑 아래로 내려가 물을 건네고 함께 벼랑 위로 올라오려 했던 러시아 산악인 비탈리 라조(48)는 이런 문제점을 지난 23일 자신의 등반대 데스존 프리라이드(DZF)의 인스타그램에 조금은 직설적으로, 공격적으로 털어놓았다. 이들은 러시아 사이트 ‘Risk.ru’에 김 대장의 조난과 구조 정황을 상세히 전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라조의 주장이며 의견일 뿐이다. 러시아 여성 산악인 아나스타샤 루노바와 18일 정상 공략에 나선 이들에게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라조가 고발한 대로 적어도 15명의 산악인이 김 대장을 도울 기회를 외면하거나 뿌리쳤고 심지어 베이스캠프에 구조 요청을 하지도 않았다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돌고 있다고 익스플로러스웹은 24일 전했다. 김 대장 수색에 성과가 없는 데다 라조의 문제 제기가 겹치면서다. 라조의 문제 제기는 산악인들이 산을 찾는 이유를 다시 묻게 한다. 해서 김 대장을 도우려 하지 않았던 산악인들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지적을 원문 중심으로 옮긴다.“SNS에서는 당신들이 8000m 고봉을 등정한 용감한 사람으로 보일테지만 난 그저 사람의 목숨을 경시한 미천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산악인들이 (조난 당한 김 대장을) 그냥 지나쳤으며 몇 시간이나 헤매는 산악인을 못 본 척하고 심지어 베이스캠프에 구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19일 새벽 2시쯤 1차 추락한 김 대장이 어떻게 (자신과 팀 동료 안톤 푸고프킨이 구조하려 한 오전 11시까지) 9시간 동안 혼자 내버려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상을 정복하려는 욕망 때문에 (산악인이 아니라) 숙련되지 않은 관광객들이 밤에도 험난한 지형을 넘어가곤 한다. 그들은 돌아서는 결단을 내린다는 원칙이 없다. 해서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로 문제를 떠넘긴다. 같은 벼랑 아래 떨어진 루노바는 김 대장의 파키스탄인 포터 리틀(작은) 후세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제 루트로 올라섰는데 정작 김 대장은 그 오랜 시간 혼자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15명의 산악인이 장애를 갖고 있는 김 대장을 지나쳤다. 좋아, 어두웠다고 하자. 하지만 그의 헤드램프는 분명히 눈에 띌 수 있었다. 리틀 후세인이 자신은 너무 힘이 빠져 김 대장을 구할 수 없으니 도와달라며 울먹였는데도 모든 ‘영웅적인 산악인들’이 힘이 빠졌다며 그냥 지나쳤다. (백보 양보해) 장애인인 김 대장을 구해낼 힘이 없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무전이나 인리치(InReach, 소형 위성전화)를 이용해 도움을 청할 수는 있지 않았느냐. 아나스타샤, 당신의 인리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신사분들, 당신들도 썼잖아! 인리치로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면 그 장치를 김 대장에게 남겨주고 떠났어야 했다. 도움을 기다리는 김 대장이 중국 쪽 벼랑에 있으니 구조해달라는 문자라도 보냈어야 했다. 나와 푸고프킨이 루노바를 먼저 구해 캠프3까지 데려다줬는데 그녀는 김 대장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멀쩡히 걸을 수 있었던 루노바를 데려다주지 않고 김 대장을 도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우리가 김 대장의 사고를 처음 들은 것은 새벽 4시쯤, 김 대장의 포터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을 때였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김 대장이 크레바스로 떨어진 것으로 오해했다. 해서 영국 산악인들(피터 브리틀튼 등)은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익스플로러스웹은 베이스캠프에 있던 한국인 기자 오모 씨에게 사고 당시 한국 대원들은 어디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등반대의 한국인 대원은 다섯인데 둘은 (KBS) 카메라 스태프였으며 아무도 정상 공략에 동행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아울러 국내와 베이스캠프의 한국인들 사이에 김 대장의 생존 가능성을 둘러싸고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 매체는 또 루노바가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한편 광주시 사고수습 대책위원회는 26일 김 대장에 대한 수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전날 파키스탄 군 헬기가 사고 현장인 브로드피크 7400m 지점을 여섯 차례 수색하고, 구조대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도 베이스캠프에서 판독했지만 김 대장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장의 부인 등 가족은 사고 지점의 험준함과 헬기 수색 결과 등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생환이 어렵다고 판단해 추가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며 “현지 구조대원들도 가족 의사를 존중해 따르겠다는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 와~ 12년간 3000회… 한국 속 한국 찾기 대장정

    와~ 12년간 3000회… 한국 속 한국 찾기 대장정

    숨겨진 비경을 찾아 전달해 온 EBS 1TV 다큐멘터리 ‘한국기행’이 26일로 3000회를 맞이했다. EBS 1TV는 12년의 대장정을 기념해 26일부터 30일까지 오후 9시 30분 각자의 방법으로 여름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린 여름을 살기로 했다’ 시리즈를 방영한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 전국 각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무더위를 이겨 내고 있는지 카메라에 담았다. ●‘우린 여름을 살기로 했다’ 26일 방송되는 1부 ‘다시 여름, 가거도’에서는 독일인 셰프 다리오 요셉 코니에츠니와 함께 2009년 8월 한국기행의 시작을 알린 대한민국 최서남단의 섬 가거도를 다시 찾는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찻길로 5시간, 다시 목포에서 뱃길로 5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가거도는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임권중·노애란 부부의 뱃길에 동행한 다리오는 어부로 변신해 뱃일을 돕는다. 민어회와 우럭회 등으로 푸짐하게 차린 밥상에 사는 재미를 깨닫는다. 2부 ‘슬기로운 여름 생활’(27일) 편에선 강원 평창군 해발 700m가 넘는 산골 마을에서 정겨운 촌집을 가꾸며 사는 조성빈씨를 만난다. 그의 여름휴가는 집에서 5분 거리의 계곡에서 시작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그가 초대한 곳은 옛날 주막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공간. 주모로 변신한 조씨가 내주는 버들치 수제비와 머위 달걀말이에 여름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가거도부터 정선 산기슭까지 이어지는 3부 ‘여름 보물섬, 만재도’(28일)에서는 가거도와 인접한 섬 만재도에서 한여름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해녀들을 집중 조명한다. 7월 한 달만 채취하는 돌미역을 캐기 위해 섬마을 전체가 들썩인다. 이번엔 셰프 다리오도 만재도 미역 작업에 뛰어든다. 열여섯 살 때부터 만재도 미역을 캐며 자랐다는 해녀들에게 여름 바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렇게 끓인 미역국 맛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4부 ‘산길 따라 물길 따라’(29일)에서는 화천군 파로호 비수구미에서 살아가는 최월용, 이순정 부부를 만난다. 도시에서 사업하던 월용씨는 은퇴 후 돌아가신 형님이 운영하던 비수구미의 민박집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찻길 드라이브 대신 뱃길 드라이브를 하고 난 뒤 그늘진 원두막에서 먹는 백숙은 여름 보양식이다. ‘우린 여름을 살기로 했다’ 시리즈는 5부 ‘이열치열 더위야 물렀거라’(30일)로 마무리된다. 제작진은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다는 정선의 산기슭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김정환씨를 만난다. 야외 냉장고에서 참외 하나 맛보고 계곡물로 등목까지 한 뒤 먹는 어탕국수는 화룡점정이다. 강릉에 사는 정일웅·신상희씨 부부의 여름 농막에서 함께 먹는 채소 샐러드와 시원한 콩국수에 더위도 함께 쓸려 내려간다.
  • EBS ‘한국기행’ 3000회 특집…‘우린 여름을 살기로 했다’

    EBS ‘한국기행’ 3000회 특집…‘우린 여름을 살기로 했다’

    숨겨진 비경을 찾아 전달해 온 EBS 1TV 다큐멘터리 ‘한국기행’이 26일로 3000회를 맞이했다. EBS 1TV는 12년의 대장정을 기념해 26일부터 30일까지 오후 9시 30분 각자의 방법으로 여름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린 여름을 살기로 했다’ 시리즈를 방영한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 전국 각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무더위를 이겨 내고 있는지 카메라에 담았다. 26일 방송되는 1부 ‘다시 여름, 가거도’에서는 독일인 셰프 다리오 요셉 코니에츠니와 함께 2009년 8월 한국기행의 시작을 알린 대한민국 최서남단의 섬 가거도를 다시 찾는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찻길로 5시간, 다시 목포에서 뱃길로 5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가거도는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임권중·노애란 부부의 뱃길에 동행한 다리오는 어부로 변신해 뱃일을 돕는다. 민어회와 우럭회 등으로 푸짐하게 차린 밥상에 사는 재미를 깨닫는다. 2부 ‘슬기로운 여름 생활’(27일) 편에선 강원 평창군 해발 700m가 넘는 산골 마을에서 정겨운 촌집을 가꾸며 사는 조성빈씨를 만난다. 그의 여름휴가는 집에서 5분 거리의 계곡에서 시작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그가 초대한 곳은 옛날 주막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공간. 주모로 변신한 조씨가 내주는 버들치 수제비와 머위 달걀말이에 여름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어지는 3부 ‘여름 보물섬, 만재도’(28일)에서는 가거도와 인접한 섬 만재도에서 한여름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해녀들을 집중 조명한다. 7월 한 달만 채취하는 돌미역을 캐기 위해 섬마을 전체가 들썩인다. 이번엔 셰프 다리오도 만재도 미역 작업에 뛰어든다. 열여섯 살 때부터 만재도 미역을 캐며 자랐다는 해녀들에게 여름 바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렇게 끓인 미역국 맛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4부 ‘산길 따라 물길 따라’(29일)에서는 화천군 파로호 비수구미에서 살아가는 최월용, 이순정 부부를 만난다. 도시에서 사업하던 월용씨는 은퇴 후 돌아가신 형님이 운영하던 비수구미의 민박집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찻길 드라이브 대신 뱃길 드라이브를 하고 난 뒤 그늘진 원두막에서 먹는 백숙은 여름 보양식이다. ‘우린 여름을 살기로 했다’ 시리즈는 5부 ‘이열치열 더위야 물렀거라’(30일)로 마무리된다. 제작진은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다는 정선의 산기슭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김정환씨를 만난다. 야외 냉장고에서 참외 하나 맛보고 계곡물로 등목까지 한 뒤 먹는 어탕국수는 화룡점정이다. 강릉에 사는 정일웅·신상희씨 부부의 여름 농막에서 함께 먹는 채소 샐러드와 시원한 콩국수에 더위도 함께 쓸려 내려간다.
  • 김홍빈 대장 운명의 10분 전 정말 멀쩡했다, 몇몇 놀라운 반전

    김홍빈 대장 운명의 10분 전 정말 멀쩡했다, 몇몇 놀라운 반전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 브로드피크(해발 고도 8047m)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하다 조난 당한 김홍빈(57) 대장이 7900m 지점에서 두 번째 추락하기 직전의 모습이 공개됐다. 익스플로러스웹은 김 대장이 지난 19일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구하러 내려가 물을 건네고 도우려 했던 러시아 산악인 비탈리 라조가 김 대장과 함께 찍은 셀피 사진을 제공받았다며 24일 홈페이지에 실었다. 라조는 사진을 찍은 시점이 김 대장이 두 번째로 추락해 80도 각도의 중국쪽 벼랑 아래로 떨어지기 10분 전이라고 했다. 김 대장의 조난 직전 모습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라조와 안톤 푸고프킨 등 러시아 등반대 데스존 프리라이드(DZF)는 ‘Risk.ru’란 사이트에 김 대장 구조 상황과 관련해 누가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기재한 보고서를 올렸는데 어느 정도 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몇 가지 놀라운 반전이 담겨 있다. 첫째 김 대장은 당초 크레바스(빙하 틈)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앞서 러시아 여성 아나스타샤 루노바가 실족해 대롱대롱 매달린 로프가 처진 것을 보고 정상 루트라 착각해 벼랑 아래로 라펠하듯 내려가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둘째로 루노바를 도와 그녀를 제 루트에 올라오게 만든 김 대장의 파키스탄인 고소(高所) 포터 ‘리틀(작은) 후세인’이 적어도 15명의 다른 산악인에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이들 중 누구도 도우려 하지 않고 심지어 구조 신호도 베이스캠프에 보내지 않아 김 대장이 9~11시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 대장의 헤드램프가 켜져 있어 누구나 조난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도 무시했다는 것이다. 셋째 루노바는 김 대장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아 라조 등은 오전 4시쯤에야 김 대장의 포터가 무전기에 대고 절규하는 것을 듣고서야 김 대장이 루노바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넷째 라조가 먼저 달려갔을 때 김 대장은 두 발로 굳건히 서 있었으며 정신도 멀쩡했다. 라조가 부축해 올라가겠다고 하자 김 대장은 등강기(주마)를 사용해 스스로 올라오겠다고 했다. 열 손가락이 없는 김 대장이 주마를 능숙하게 이용해 안심한 라조는 먼저 벼랑 위로 올라왔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어느 순간 완등기가 멈추자 김 대장이 얼음을 털어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로프를 바꾸려는 동작을 취하는 순간, 완등기가 얼굴을 덮쳤고 중심을 잃은 듯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 라조는 김 대장으로부터 5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라조는 끝으로 곤경에 빠진 장애인 산악인을 돕지 않은 산악인들의 행태, 특히 숙련되지 않은 관광객들이 ‘산악 영웅’인 양 무모한 도전을 해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특히 멀쩡히 걸어서 캠프3로 귀환할 수 있었던 루노바를 푸고프킨과 함께 데려다주는 바람에 그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날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라조의 증언 만으로 정황을 속단하는 일은 위험하겠다. 루노바나 다른 산악인들도 어떤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스플로러스웹도 그래서 루노바 등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 브로드피크 나흘 만에 맑은 날씨, 김 대장 찾는 헬리콥터 뜰 수 있을 듯

    브로드피크 나흘 만에 맑은 날씨, 김 대장 찾는 헬리콥터 뜰 수 있을 듯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 3위봉 브로드피크(해발 고도 8047m)를 등정함으로써 장애인 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뒤 조난된 김홍빈(57) 대장 수색이 24일에야 이뤄질 전망이다. 익스플로러스웹은 이날 아침 일찍 사흘 만에 날이 맑아져 브로드피크와 이곳에서 9㎞ 떨어진 K2(8611m) 등정을 노리는 산악인들이 일제히 캠프 4 등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실종 사실이 전해진 다음날인 지난 20일 이후 나흘 동안 대기했던 수색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산과 고봉의 날씨, 특히 김 대장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7800~7900m 일대는 순간적으로 날씨가 급변해 장담할 수는 없다. 한국 외교부와 파키스탄 주재 대사관은 중국 정부에 협조를 구해 파키스탄 육군 헬리콥터가 김 대장이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중국쪽 벼랑 아래를 수색할 수 있도록 양해를 받아놓은 상태다. 이 매체는 중국 군의 허락을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김 대장이 첫 번째 추락한 뒤 19일 오전 11시쯤 구조하려고 크레바스 아래까지 내려가 물을 건네는 등 도왔고 두 번째 추락한 지점 일대를 잘 아는 러시아 산악스키 등반대의 비탈리 라조가 헬리콥터에 동승해 정확한 추락 예상 지점을 짚어내게 된다. 김 대장은 크레바스 안에서 완등기를 이용해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오려다가 로프 또는 완등기에 문제가 생겨 80도 각도로 수직에 가까운 중국쪽 벼랑 아래로 추락해 아직도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라조는 두 번째 추락 직후 김 대장이 즉사했을 것으로 보고 하산해 베이스캠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베이스캠프에서는 추락 직후와 구조 당시와 달리 김 대장의 생존 확률을 1%로 조금 높여 눈길을 끌었다. 이 매체는 한국 기자 오영훈이 이날 중 첫 번째 수색 비행이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면서 내일은 더 많은 소식을 한국 측으로부터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보도했다.
  • “中, 영공 진입 신속 허가”…김홍빈 수색작업에 곧 헬기 투입

    “中, 영공 진입 신속 허가”…김홍빈 수색작업에 곧 헬기 투입

    히말라야 14좌 완등 뒤 하산 도중 실종된 김홍빈 대장을 찾기 위해 파키스탄군의 구조헬기가 조만간 투입될 전망이다. 23일 외교부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는 이날 중국 정부가 파키스탄 구조 헬기의 영공 진입을 허가했다고 한국 측에 알려왔다. 이에 따라 기상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구조 헬기를 활용한 김 대장의 수색·구조 작업이 개시될 것으로 외교부는 예상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측은 영공통과 신청을 받은 즉시 이례적으로 신속히 관련 절차를 취해 승인 허가가 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오늘은 기상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구조 활동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파키스탄 육군 항공구조대 헬기 2대는 김 대장 실종 인근 지역인 스카르두에서 출동 대기 중이다. 중국 측은 현장 인근에 지휘 본부를 설치하고 전문 등반대원과 의료진 등 10여 명으로 팀을 꾸려 구조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수색 당국에 따르면 파키스탄군은 K2 남동쪽 9㎞ 지점에서 김 대장이 갖고 있던 위성 전화의 신호를 확인했다. 그러나 악천후 등 현지 기상 악화로 그간 김 대장 수색·구조 작업이 여의치 않았다. 김홍빈 대장은 지난 18일 오후 4시58분쯤(현지시간) 브로드피크(8047m) 완등 소식을 전하고 하산하던 중 18일 자정쯤 해발 7900m 지점에서 조난당했다. 위성전화로 구조신호를 보낸 김 대장은 19일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돼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오다 다시 추락해 실종됐다.
  • 광주시, 청와대·중국 정부에 김홍빈 대장 수색 적극 협조 요청

    이용섭 광주시장이 23일 청와대와 중국 정부에 김홍빈 대장 수색에 적극적으로 협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시장은 이날 오전 접견실에서 김 대장의 아내를 만나 위로했다. 김 대장의 아내는 “한시라도 빨리 구조 헬기가 뜰 수 있도록 중국 측의 허가를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이 시장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통화해 신속하고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청와대와 외교부로부터 대통령 특별 지시사항으로 받아 전방위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시장은 장청강 주 광주 중국 총영사에게도 파키스탄 구조 헬기의 중국 월경 허가를 요청했다. 장청강 총영사는 “대한민국 특히 광주의 등반 영웅인 김홍빈 대장이 구조될 수 있도록 헬기 2대, 구조대원 5명을 급파했고 중국 신장웨이우얼(신강위구르) 자치구 외사판공실 국장이 현장에 활동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광주시는 밝혔다. 파키스탄 구조 헬기의 중국 영공 진입 문제는 중국 정부가 이를 허가했음을 파키스탄 정부가 주 파키스탄 한국대사관에 알려왔다. 이에 따라 현지 기상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헬기를 이용한 구조 작업이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장은 지난 18일 오전 4시 58분쯤 완등 소식을 전한 뒤 하산을 하던 중 19일 자정쯤 해발 7900m 지점에서 실종됐다. 조난지점에서 버틴 김 대장은 같은 날 오전 5시 55분쯤 위성 전화로 구조요청을 했으며 러시아 구조대가 발견하고 끌어올렸지만 끈이 끊어지면서 실패했다. 수색 당국에 따르면 파키스탄군은 K2 남동쪽 9㎞ 지점에서 김 대장이 갖고 있던 위성 전화의 신호를 확인했다. 이곳은 중국 영토로 구조 과정에서 김 대장이 중국 쪽 절벽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 김홍빈 아내 “숱한 난관 이긴 남편 돌아올 것”

    김홍빈 아내 “숱한 난관 이긴 남편 돌아올 것”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하산 중 실종된 김홍빈(57) 대장 수색을 돕기 위해 광주 산악인들이 히말라야로 향한다. 광주시 사고수습 대책위원회(대책위)는 22일 브리핑을 갖고 구조 활동과 현지 지원을 위해 산악인 3명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종된 김 대장이 오른 히말라야 브로드피크(해발 8047m) 등정과 조난 구조 경험이 있는 광주시산악연맹 소속 2명과 대한산악연맹 소속 1명이다. 이들은 외교부와 협의해 오는 26일 현지로 출발할 예정이다. 파키스탄 도착에만 2일이 소요되고 베이스캠프가 있는 콩고르디아까지는 5일이나 6일가량 걸려 다음달 초에나 현장에 도착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책위 관계자는 “러시아 구조단의 구출 당시 상황 설명을 토대로 조난된 지점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김홍빈 대장의 아내는 이날 오후 광주시장애인체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남편은 숱한 난관을 이겨 낸 강한 사람이라 빠른 조처를 한다면 반드시 귀환하리라 믿는다”며 울먹였다. 그는 “사고 지점이 중국 지역이라 승인 없이 못 간다. 외교부, 정부 관계자, 파키스탄 정부가 수색할 수 있도록 해 달라.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알자스의 맛, 리슬링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알자스의 맛, 리슬링

    세계적인 소설가 알퐁스 도네의 작품인 ‘마지막 수업’의 무대, 축구선수 서정원이 최초로 프랑스에 진출했을 때 둥지를 튼 도시인 스트라스부르. 아직 프랑스 알자스 지역을 여행해 보지 않은 한국인이라면 ‘알자스’를 떠올렸을 때 이 정도의 관련 정보에 익숙할 겁니다. 하지만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알자스’란 소리를 들었을 때 귀가 번쩍 트이고 반사적으로 혀에 고이는 침부터 삼키리라 장담합니다. 알자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이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이죠. 보르도·부르고뉴 지역의 레드와인이 프랑스 와인의 전부는 아니랍니다. 알자스 지역 주민들도 로컬 와인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요. 프랑스 북동쪽에 위치해 독일과 스위스에 인접한 알자스 지역은 해발 1200m의 보주 산맥이 습기를 포함한 바람을 차단해 강수량이 적고 바람도 적습니다. 또 건조한 편이라 화이트 품종의 포도를 생산하기에는 최적의 기후를 갖추고 있죠. 대표적인 화이트와인 품종은 리슬링·피노그리·게브츠트라미너·실바너 등 4개인데요. 피노그리와 실바너는 독특한 맛은 없지만 물처럼 들이켤 수 있는 음용성이, 게브츠트라미너는 향긋한 장미향과 스파이시함이 돋보입니다. 게브츠트라미너는 향신료가 가득 들어간 태국 음식과 환상의 마리아주(궁합)를 이루죠. 무엇보다 알자스 화이트와인의 백미는 리슬링입니다. 산미와 단맛의 조화,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깔끔함 등이 으뜸이어서 알자스의 리슬링은 특히 ‘화이트와인 중독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고 인기가 많답니다. ‘알자스 리슬링이 최고다’라는 얘기에 리슬링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웃 국가 독일이 자존심 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독일은 전 세계 리슬링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리슬링 대국’이기도 하죠. 하지만 두 지역에서 나오는 리슬링은 양조 방식이나 맛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알자스 리슬링이 더 산미가 강하고 드라이하며 독일 리슬링은 달콤한 편입니다. 또 알자스산이 알코올 도수가 2~3도 더 높은 편입니다. 이는 날씨와 관련이 있는데요. 독일은 알자스보다 전반적으로 서늘하고 추워 포도즙이 완전히 발효되지 않아 잔당이 많고 달콤한 맛을 내죠. 반면 알자스는 독일보다 따뜻해 발효가 더 잘되니 알코올 도수도 높고, 잔당이 비교적 없어 드라이하고 깔끔한 뒷맛을 낼 수 있답니다. 정리하면 알자스 리슬링이 독일 리슬링보다 달지 않고, 산미가 있으면서 알코올 도수가 높아 ‘술꾼’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슬링은 글로벌 와인 시장에선 샤르도네와 소비뇽블랑 못지않은 인기 화이트와인이지만 국내 시장에선 이 둘의 아성에 밀려 오랫동안 존재감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국내 와인 소비자들이 유독 레드와인을 선호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최근의 홈술 열풍으로 와인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화이트와인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 와인 수입사 관계자도 “리슬링 판매량이 전년 대비 두 배 늘었다”고 하네요. 새로운 화이트와인 품종에 도전하고 싶은 ‘와린이’(와인 초보자)라면 이번 주말 얼음 바스켓에 푹 담근 리슬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가롭게 ‘낮술’을 즐겨 보길 추천합니다. 라임, 레몬, 파인애플, 복숭아 등의 신선한 과일향과 기분 좋은 미네랄 뉘앙스가 코로나19와 폭염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 줄 겁니다.
  • “김홍빈 대장 로프는 새 것, 눈 처마 상태가 바뀌었는데 안전하다 착각”

    “김홍빈 대장 로프는 새 것, 눈 처마 상태가 바뀌었는데 안전하다 착각”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한 김홍빈(57) 대장이 하산하다 중국쪽 벼랑 아래로 추락해 실종된 지 나흘째가 밝았다. 익스플로러스웹은 김 대장의 구조를 시도했던 러시아 산악스키 등반대의 보고서와 함께 이번 시즌 최초로 브로드피크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오스왈드 로드리고 페레이라(폴란드)의 보고서와 소셜미디어 문답을 통해 김 대장 추락과 구조 시도가 실패한 정황 등이 조금씩 규명되고 있다고 22일 보도했다. 이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얘기된 로프가 부실해 크레바스로 추락한 것이 아니라, 로프는 새 것이었으며 앞서 추락한 러시아 여성과 마찬가지로 김 대장이 바위 대신 눈 처마를 택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며칠새 눈 상태가 달라져 보드라운 상태였는데 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여성이 회복해 증언하면 김 대장이 왜 추락했으며 오랜 시간 홀로 있으면서 어떤 상태였는지 등등 더 많은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페레이라의 보고서 원문을 충실하게 옮긴다. 괄호 안의 명조체는 페레이라가 단 것이며 고딕체는 기자가 단 것이란 점을 밝혀둔다. 러시아 등반대 데스존 프리라이드(DZF) 보고서 보러가기 휴고 아야비리와 닐스 제스퍼스, 그리고 난 (18일) 오후 3시 15분 정상에 섰다. 정상에서 20분쯤 보낸 뒤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던 중 (올라오는) 파키스탄인 로프 고정팀원 몇몇과 나스탸(아나스타샤) 루노바와 한국 등반대를 만났다. 오후 5시 14분에 나스탸가 해발 고도 8036m에서 보낸 메시지를 인리치(inReach)로 받았다. 자신을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난 7850m인 콜(정상 직전의 안부)에서 기다렸다. 두 시간쯤 뒤 후세인(한국 등반대의 파키스탄인)이 한 여성이 정상 부근 마지막 지점 근처에서 추락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난 배낭을 내려두고 달려 올라갔다. 나스탸가 콜 위 마지막 구역 근처 눈처마 아래로 추락했다. 난 그녀가 매달려 있던 로프를 붙잡고 두 시간쯤 있었다.(나중에 오스트리아 산악인 스테판 켁이 힘을 보탰다) 그 사이 후세인은 그녀를 도우려 시도했다. 그녀는 밤 10시쯤 결국 올라와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나스탸는 정신적으로도 괜찮았지만 손에 가벼운 동상을 입었다. 크램폰 한 짝과 완등기(주마)를 잃어버렸다. 우리(나스탸, 스테판 그리고 난)는 콜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물을 끓였다. 난 개스가 있었고, 나스탸는 MSR 리액터를 갖고 있었다. 밤 10시 25분이었다. 스테판이 먼저 하산을 시작했고 나스탸가 먼저, 나도 뒤를 따랐다. 출발한 지 얼마 안됐을 때 나스탸가 로프를 놓치며 헤드램프를 잃어버렸다. 내 백업 램프를 그녀에게 줬다. 7650m까지 내려오는 데 믿기 어려울 만큼 늦은 속도로 내려왔다. 이 지점에서 나스탸는 100m쯤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우리가 이틀 전에 힘들어 했던 크레바스를 그냥 지나쳤다. 스테판과 난 가급적 빨리 내려가 누워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의 컨디션은 좋았지만 충격에 빠져 있었다. 난 물을 더 끓였고 스테판은 우리 상황이 괜찮다고 판단해 하산을 계속했다. 내가 먼저 출발했고, 나스탸가 캐러비너를 로프에 걸고 다른 손으로 내 손이나 팔을 잡아 추락하지 않도록 했다. 10~15 걸음을 내걷고 한 번 쉬었다. 그래야 그녀가 숨을 가다듬고 통증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마지막 시간에는 나 자신도 로프에 매달렸는데 나도 두 차례나 미끄러졌기 때문이었다. 그 길에서 영국 산악인 피터(브리틀튼)를 만났다. 그를 만난 자체로 도움이 됐고, 그는 우리에게 따듯한 물과 초콜릿을 줬다. 그의 포터는 우리에게 무선 발신기를 줘 베이스캠프와 얘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상황을 설명했고 하산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피터는 한동안 우리와 함께 있었다. 우리의 고통스러운 하산(27시간이나 물 말고 딱딱한 것을 먹지 못했다)은 19일 오전 5시까지 이어졌다. 캠프3 위 100m에 이르렀을 때 DZF팀의 러시아인들을 만났다. 난 일분 동안 비탈리(라조)와 얘기를 나눈 뒤 하산을 계속했다. 안톤(푸고프킨)이 나스탸를 캠프3까지 데려갔다. 난 곧바로 텐트에 들어갔는데 오전 5시 10분이었다. 일어나니 벨기에와 러시아 사람들이 돕겠다고 자원했다. 나스탸는 DZF 팀으로부터 약품을 받았다. 러시아인들은 그녀에게 크램폰 한 짝도 줬다. 정오쯤 하산을 시작했다. 벨기에인 닐스와 볼리비아인 휴고가 나스탸를 캠프2까지 돌봤다. 닐스가 그녀의 배낭을 대신 졌다. 캠프2까지 계속 내려가며 눈을 마주쳐 빙하에 내려섰다.(안전한 곳에 이르렀다는 뜻인 것 같다.)추가 문답- 아슈를리 “바위가 훨씬 안전한 선택” 익스플로러스웹은 페레이라와 인리치를 통해 몇 가지 문자를 겨우 주고받았다. 몇몇 구체적인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루노바와 김 대장이 똑같은 장소에 추락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K2(이곳에서도 최근 사고가 있었던 것 같다)에서처럼, 로프 상태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지만 페레이라는 이것이 추락을 불렀다는 지적을 일축했다. 페레이라는 “특정한 구간에 대해 말한다면 훌륭했다. 새 로프들이었다”면서 “내 견해로는 문제는 며칠새 처마 위의 눈 상태가 달라졌다는 것이며 어쩌면 나스탸가 추락한 이유였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크램폰을 찍거나 몸무게를 실어 바위 쪽으로 가는 대신 주로 눈이 있는 쪽으로 하산했다. 김 대장도 나스탸가 추락한 그 지점으로 하산하는 바람에 래펠하듯 떨어졌다. 루트가 그쪽으로 깔려 있다고 생각(착각이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필 아슈를리는 그 지점에서는 바위가 훨씬 안전했다고 앞서 지적한 것을 참고하면 되겠다. 페레이라와 제스퍼스, 아야비리는 (18일) 정상에 가장 먼저 도달한 산악인들이었다. 매체는 다른 사람들을 정상에서 봤는지 물어봤다. 그는 “우리 뒤에 둘, 아마도 세 사람의 파키스탄 포터들이 정상에 이르렀다”면서 “나스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정상을 밟았다고 했다. 그녀 뒤가 한국 등반대였다. 그러나 난 그들이 메인 정상에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정상에 있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스테판 켁에 대해 묻자 페레이라는 올라가는 중에 콜에서 그를 만났으며 내려갈 때 7900m에서 본 것이 전부라며 “정상 근처에서는 어느 곳에서든 그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21일부터 브로드피크 정상이 메인 정상이 있고 남쪽 정상이 있는데 남쪽을 밟았다면 등정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 [씨줄날줄] 김홍빈과 ‘경기장 사람’/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김홍빈과 ‘경기장 사람’/임병선 논설위원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座)를 무산소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는 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는 노력과 의지력을 순수한 생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일을 알려고 열중하는 일, 수수께끼를 재미로만 풀어 보려는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장 소용이 된다든가 실제적인 일에만 사람들은 행동에 나서며 현실적 이득이 없는 순수한 사고와 노력, 지적 욕구 등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김홍빈(57) 대장의 참변에 차가운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 메스너의 지적대로 체험하지 않으려는 부류다. 김 대장은 30년 전 북미 최고봉 데날리(옛 이름 매킨리)를 오르다 동상에 열 손가락을 잃어 석 달이나 귀국하지 못했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일이 막막해 어머니를 뵐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에미가 해 주는 밥 한 번 먹어 달라”고 통사정해 귀국 비행기에 오르게 했다. 광주대 산악부 동료들이 손가락이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옷을 입혀 주고 밥을 떠 먹이고 볼일까지 거든 일은 유명하다. 어렵사리 산에 갈 뜻을 다시 세운 그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30년을 산에서 보내며 장애인 최초 7대륙 최고봉 완등에다 마침내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비운은 바로 그다음날 왔다. 파키스탄 세 번째 봉우리 브로드피크 정상 아래 해발 고도 7800m 지점에서 불운을 만났다. 산소량이 해수면의 30%밖에 되지 않아 희박한 공기가 머리를 짓이기는, 이른바 죽음의 지대(데스 존)다. 늘 그렇듯 등정하기 좋은 날씨는 일 년에 며칠 되지 않아 산악인들로 북적였다. 해가 지기 2시간 전에야 하산을 시작해 다급했다. 병목이 빚어진 루트를 우회하다 크레바스(빙하 틈)에 빠졌다. 함께 추락한 러시아 여성 산악인에게 양보해 그에게 주어진 로프는 부실했던 모양이다. 산에 오를 때는 손가락을 대신하는 장비를 끼지만 하산할 때는 하지 않았다. 팔로 로프를 감은 채 오르다 무게를 견디지 못해 끊긴 것으로 보인다. 수직에 가까운 중국 쪽 벼랑 아래로 추락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애석하게도 생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왜 그렇게 산에 가려고 안달복달하느냐고 타박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저 유명한 ‘경기장 사람’ 연설을 들려주면 도움이 될까? “중요한 사람은 비평가가 아니다. 지적하는 사람도 아니다. 경기장에서 실제로 싸우는 사람, 먼지와 땀과 피로 망가진 얼굴을 가진 바로 그 사람이 중요하다.” 김 대장이 먼지와 땀과 피로 망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 [속보]‘히말라야 실종’ 김홍빈 구조 위해 中구조팀도 합류

    [속보]‘히말라야 실종’ 김홍빈 구조 위해 中구조팀도 합류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끝내고 하산하다 조난 사고로 실종된 김홍빈(57) 대장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에 파키스탄 육군 항공구조대에 이어 중국 구조팀까지 합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21일 “전문 등산대원과 의료진 포함된 중국 연합 구조팀이 이날 사고 현장 인근 지역에 도착했다”라며 “기상 상황이 호전되는 대로 구조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장은 현지시간 18일 오후 4시 58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8047m)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부근 크레바스를 통과하다 조난을 당했다. 조난 상태에서 위성 전화로 구조신호를 보낸 김 대장은 다음날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된 후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가다 추락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 김홍빈 대장 구조 시도했던 두 러시아 산악인 “생존 확률은 1%”

    김홍빈 대장 구조 시도했던 두 러시아 산악인 “생존 확률은 1%”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브로드 피크(해발 고도 8047m)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홍빈(57) 대장이 다음날 하산하다 실종된 지 사흘째가 됐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이틀째 수색 및 구조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사실 익스플로러스웹과 돈(dawn) 닷컴 등은 김 대장이 사망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산악스키로 하산하려던 러시아 원정대 DZF(Death Zone Freerider)의 안톤 푸고프킨과 비탈리 라조는 17일 정상 공격 시작 시점부터 19일 밤 베이스캠프 귀환까지 자신들의 일정을 시간 단위로 소셜미디어에 밝혔다고 월간 산이 원문에 충실하게 옮겨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김 대장의 등강기가 고장난 것이 2차 추락의 원인일 것으로 보며, 이들은 80도의 수직 벽에서 추락해 김 대장이 살아 있을 확률은 1%라고 내다봤다. 17일 밤 11시 DZF 팀은 캠프3(해발 고도 7100m)에서 정상 공격을 시작했다. 김홍빈 등반대 등 다섯 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상 예보에 좋은 날씨는 딱 이틀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서두르고 있다. 18일 오후 4시 30분 DZF 팀 소속의 푸고프킨, 라조, 토마스 로네(노르웨이)는 정상 등정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1시간 30분만 더 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지만, 이대로라면 어둠 속에서 하산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하산을 결정한다. 18일 밤 8시 DZF 팀은 캠프 3로 하산해 일주일 후 다시 정상 등정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그 시점에 김홍빈 대장과 러시아 등반가 아나스타샤 루노바 등 정상을 등정한 그룹은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19일 0시 메시지가 수신됐다. 7900m 지점의 안부(col)에서 루노바가 추락했다는 소식이다. 김 대장도 위급 상황이란 소식도 거의 동시에 전달됐다. 19일 0시 15분 즉각 푸고프킨과 라조가 구조를 위해 출발했다. 캠프3에 있던 다른 등반가들은 추가 의약품과 산소통을 모았다. 루노바는 근처 고소(高所) 포터들에 의해 크레바스에서 벗어났다. 큰 부상 없이 복귀했다. 19일 새벽 4시 푸고프킨과 라조는 하산 중인 루고바를 만났다. 음료수와 고산병 치료제인 덱시메타손을 전달한 뒤 푸고프킨은 루고바를 캠프3로 인도하고, 라조는 무전기와 산소를 갖고 김 대장을 구조하러 떠났다. 루고바는 캠프3에서 휴식을 취한 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베이스캠프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19일 오후 1시 30분 (앞선 보고서에선 오전 11시에 라조가 김홍빈 대장을 찾아 구조 작업을 시작했고, 구조 당시 김홍빈 대장이 의식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이번 보고서에선 누락됐다) 루고바를 캠프3에 데려다준 푸고프킨이 라조가 구조 작업을 하는 현장에 도착했다. 라조는 크레바스 속으로 20m 가량 하강해 김홍빈 대장을 확보(anchor)했다. 그 뒤 김 대장은 스스로 등강기를 활용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김 대장의 등강기가 고장 났다. 그리고 김 대장이 등강기를 고치려고 움직이는 순간 김 대장이 80도 각도의 벽에서 추락했다. 덩달아 라조도 5m가량 추락했다. 김 대장은 99%의 확률로 그가 즉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일 오후 5시 20분 푸고프킨과 라조가 캠프3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눈보라가 다가오고 있어 스키도 종종 활용해 신속히 하산했다. 19일 밤 9시 16분 DZF 팀 모두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한편 기자가 이틀 넘게 영어 기사들을 검색했는데 돈(dawn) 닷컴의 20일 기사도 사고 경위를 나름 잘 정리하고 있어 원문에 충실하게 옮긴다. 김 대장 일행의 등반을 주선한 현지 여행사 사장 하지 굴람 아메드는 그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앞서 파견된 수색팀이 그를 중국 쪽 사면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를 찾길 정말 바란다.” 국내 언론이 보도했듯이 김 대장은 위성전화를 통해 광주시산악연맹 등에 “밤이 늦었다. 밤새 내내 낙담한 채로 있었다. 아주 춥다”고 말했다. 연락관(LO)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8시쯤 루노바가 하산하다 크레바스에 떨어졌다. “그녀의 몸이 로프에 매달려 있어 15명 이상 산악인들의 하산을 막았다. 캠프3에 내려온 사람들이 구조하러 올라갔다. 다음날 새벽 2시 45분 그녀는 무사히 크레바스를 빠져나왔다. 15분쯤 뒤 그녀는 캠프3에 당도했다. 김 대장은 이때 낙담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서 다른 구조대가 조직됐다.” 두 영국인 피터 브리틀튼과 폴 에서리지, 두 러시아인 푸고프킨과 비탈리 라조, 고소 포터 무함마드 후사인, 모함마드 유사프, 임티아스 사드파라가 김 대장을 찾아 나섰다. “오전 11시쯤 비탈리가 중국쪽 사면 위의 크레바스 아래 추락한 김 대장을 발견했다. 해발 고도 7800m 지역이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 대장은 로프에 매달려 있었지만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의식도 있었고 반응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구조하려고 하는데 김 대장은 언어 장벽 때문인지 제대로 따라주지 못했다. “구조하는 중 어느 순간, 김 대장은 구조 로프에서 떨어져 나갔다. 곧바로 추락해 가파른 중국쪽 사면 아래로 사라졌다. 비탈리와 구조팀은 사면의 위쪽을 찾았으나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이곳 사면에서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구조팀의 판단이었다.”
  • “김홍빈 대장 몇 시간 살아 있었다는 사실만 분명, 나머진 모두 흐릿”

    “김홍빈 대장 몇 시간 살아 있었다는 사실만 분명, 나머진 모두 흐릿”

    20일 오전에 익스플로러스웹 기사를 인용해 ‘제발 오보이길’이길 바란다며 기사 제목 ‘김홍빈 대장 사망’을 그대로 인용했다. 모두가 애타게 생환 소식을 기다리는데, 정부와 한국 대사관이 중국과 파키스탄 정부와 군에 헬리콥터를 파견해달라고 하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기자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는데 동료들은 고소증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일분이라도 빨리 하산하자고 매달렸다. 저녁과 아침까지 한 숟갈도 넘기지 못한 채 그랬다. 해발 고도 5300~5600m 지점인데도 그랬다. 김 대장이 크레바스(빙하 틈)에 빠진 지점은 대략 7900m 지대로 알려지고 있다. 그제 러시아 산악스키 등반대가 김 대장을 구조하려다 날이 어두워지는 데다 날씨 예보도 좋지 않아 더 이상 그를 구조할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하산을 결정한 것은 산 아래에서 보면 잔인한 얘기지만 산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기자가 아는 산악인들은 하나같이 그런 경험담을 들려줬다. 간절하게 김 대장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것과 별개로 파키스탄이든 네팔이든 인도든 히말라야 상황은 도시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고 무자비하다. 지금까지 국내 언론에 알려진 것은 김 대장 팀이 위성전화로 광주시산악연맹에 알린 내용들이다. 김 대장의 정상 등정에 한국방송(KBS) 제작진이 따라나섰는데도 김 대장의 실종과 구조 과정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지 이렇다 할 설명이 없는 점도 안타깝다. 여러 나라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익스플로러스웹은 비탈리 라조, 안톤 푸고프닉 등 러시아 산악스키 등반대원들에 많이 의존해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상황을 정리해 눈길을 끄는데 김 대장이 실종된 19일(현지시간) 원문에 충실하게 옮긴다. 많은 분들이 낙담할지 모르겠는데 이 매체는 김 대장이 사망했다고 다시 한번 명확히 기재했다. 두 사람이 베이스캠프에 돌아오면 “사망했다”고 판단한 이유 등 더 많은 것들이 명쾌하게 정리될 것이란 기대를 가질 따름이다.● 러시아 여성은 스스로 빠져나와, 김 대장은 낡은 로프 택해 그만 러시아 스키어들은 하산하던 두 산악인의 구조를 도왔다. 먼저 아나스타샤 루노바가 추락하며 크램폰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정상에서 너무 늦게 하산을 시작했다. 라조와 푸고프닉이 구조해 캠프3에서 치료해주고 있었다. 조금 이따 두 번째 구조 신호가 포착돼 러시아인들은 다시 움직여야 했다. 김 대장이 어딘가에서 추락해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라조는 산소통을 몇 개 챙겨 사고 장소로 급히 떠났다고 푸고프닉은 보고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결실을 거두지 못해 김 대장은 사망했다. 두 러시아인을 비롯해, 김 대장과 루노바와 함께 있었던 산악인들은 변을 당한 시간과 장소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푸고프닉이 러시아어로 올린 초기 보고는 김 대장이 크레바스에 떨어졌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피 레나어츠는 다른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몇 가지 구체적인 내용을 익스플로러스웹에 털어놓았다. 그녀는 “아나스타샤와 김 대장은 같은 장소에 떨어졌다. 이른바 정상 릿지의 안장 위 처마 아래“를 지목했는데 아제르바이잔 산악인 이스라필 아슐리도 똑같이 이곳을 짚었다. 루트가 노출돼 있어 소름끼칠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레나어츠는 “루노바는 괜찮아 스스로 곤경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매달려 있어 김 대장은 다른 로프를 선택했는데 상태가 좋지 않은 로프였다. 그는 추락해 렛지에 떨어졌다(일부 보도에 따르면 15m 아래라 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 때문에 그는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산을 오를 때는 손가락을 대신하는 장비를 사용하지만 하산할 때는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함께 간 KBS 제작진은 왜 따로, 구조에 어떤 도움 줬는지 알려지지 않아 리투아니아 산악인 솔리우스 다물레비시우스는 김 대장이 정상을 발 아래 둔 것이 오후 5시로 해가 지기 2시간 전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물레비시우스는 김 대장이 추락한 곳을 피해 갔는데 김 대장이 “중국 쪽 렛지에서 밤을 지샜으며 루노바도 거기 추락해 파키스탄인 가이드에 의해 구조됐다. 하지만 김 대장은 여러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가 밤새 그곳에 있었다는 것은 푸고프닉이 다음날 구조하려 했다고 보고한 점에 비춰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김 대장의 팀원들이 그와 함께 있었는지, 어떻게 도왔는지 알지 못한다. 추락한 산악인들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레나에츠는 자신이 부재했을 당시의 구조 활동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러시아인들의 짤막한 보고를 안나 피우노바가 전한 내용만 있을 뿐이다. 그녀에 따르면 라조가 오전 3시쯤 김 대장을 도우러 갔고 그가 렛지 위에 살아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사실 뿐이다. 라조는 밤새 김 대장과 함께 있으면서 그를 능선 위로 끌어올리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피우노바는 헬리콥터를 고려했는데 김 대장이 헬리콥터 구조 보험을 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푸고프닉은 사고 장소에서 라조와 만났다. 하지만 피우노바는 정오쯤 “한국인이 살아올 수 없었다. 그는 추락했다. 날씨가 안 좋아진다”는 글을 올렸다. 몇몇 사람은 사고 정황을 둘러싸고 토론하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현재로선 타임라인이 명확치 않다. 다만 사고 후 몇 시간 김 대장이 살아 있었던 것만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러시아인들의 판단이 잘못 됐길 간절히 바란다.
  • “불굴의 산악인, 꼭 살아 돌아오기를”…김홍빈 대장 무사귀환 염원 잇따라

    “불굴의 산악인, 꼭 살아 돌아오기를”…김홍빈 대장 무사귀환 염원 잇따라

    “제발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대합니다.” 지난 19일 매스컴을 통해 장애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홍빈(57) 대장의 실종 소식을 접한 지인 민모씨는 20일 “원정을 떠날 때 ‘꼭 완등에 성공해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는 “김 대장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강인한 사람”이라며 “차가운 얼음장 속이라도 꿋꿋이 버티며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칠 광주전남등산학교 이사장은 “김 대장이 조난 신고 후 러시아 구조팀이 발견하기까지 11시간가량 버틴 것도 그의 철인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다”며 “희망을 갖고 구조 소식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현지시간 19일 0시쯤 브로드피크(해발 8047m)를 등정한 뒤 내려오다 7700~7800m 부근에서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게 갈라진 틈)를 통과하다 조난됐다. 절벽 끝자락에서 6시간쯤 버틴 뒤 새벽 5시 55분쯤 위성전화로 국내의 후배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김 대장은 전화에서 “참 춥다. 무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베이스캠프에 알려졌고, 캠프4에 있던 러시아 등반대가 오전 11시쯤 현장에 도착해 구조 작업을 펼쳤다. 러시아 구조팀은 절벽 모서리에 걸려 있던 김 대장의 몸에 로프를 걸어 15m쯤 끌어올렸으나 로프가 끊기는 바람에 중국 국경 쪽(북쪽) 1000m 아래 절벽으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장은 당시 파키스탄 ‘고소포터’(현지 등산 안내인) 4명과 함께 등반했으나 이들이 먼저 내려오는 바람에 홀로 하산하다 조난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산악인은 “현지 포터들은 등반자(고용인)와 신뢰 관계가 없는 데다 몸을 함께 밧줄로 묶고 하산하다가 조난을 당할 경우 모두 위험에 빠질 수 있어 각각 행동한다”고 말했다.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은 더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온전한 몸으로 오르는 것과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자가 오르는 것은 다르다.” 이는 김 대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인연을 맺은 김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 단독 등반 중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온몸이 얼어붙고 골절되는 엄청난 부상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는 ‘다시 산을 오를 수 있겠느냐’는 편견을 극복하고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나섰다. 2009년 7대륙 최고봉을 13년 만에 완등했고 이번에 14좌를 정복했다. 장애인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참으로 황망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어제 저녁 김 대장의 완등 축하 메시지를 올렸었는데 하산 중에 연락이 두절됐다는 소식에 가슴을 졸이다 구조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기쁜 나머지 글을 올렸는데 다시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며 “간절한 마음으로 무사귀환 소식을 국민들과 함께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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