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에 휘말린 두 교수 죽음이냐 재기냐 / 극단 로뎀 창작극 ‘노랑꽃창포’
탤런트 김혜자의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고두심·김미숙 주연의 ‘나,여자예요’ 등 주로 섬세한 여성연극을 무대에 올려온 극단 로뎀(대표 하상길)이 창작극 ‘노랑꽃창포’를 선보인다.
●우리사회 병폐에 날카로운 ‘메스’
‘셜리 발렌타인’같은 전작들이 중년 여성의 내적 갈등과 자아 찾기에 깊은 시선을 주었다면,‘노랑꽃창포’는 우리 사회의 병폐들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사회고발극의 성격이 짙다.
언뜻 봐도 극의 내용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하다.‘클린보이’라는 애칭을 가진 환경운동가 윤우영 교수가 주인공.무분별한 신도시개발 계획에 맞서 1인 시위에 앞장서는 그를,젊은이들은 ‘행동하는 양심’의 표본이라며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어느날 동료 정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소문이 퍼지고,윤교수는 사건의 당사자가 과거 자신을 유혹했던 여학생 강나미임을 알게 된다.정교수의 진실을 밝히려면 먼저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야 하는 윤교수는 갈등에 빠지고,그러는 사이 정교수는 학생들의 퇴진 압력과 인터넷을 뒤덮은 비난여론에 시달리다 스스로의 진실을 입증하는 방편으로 자살을 택한다.
성폭행 사건에 휘말린 환경운동가,대학교수와 여제자간의 성추행 논란,마녀사냥식 여론에 휩쓸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교육자….최근 몇년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을 연상케하는 소재들이 하나의 줄거리로 얽혀 있어 마치 한편의 패러디 연극을 보는 듯하다.이런저런 오해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왜 이같은 내용을 택했을까.
작가 겸 연출가 하상길은 “개인의 목소리가 집단의 구호에 파묻혀 사라지는 안타까운 요즘 세태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진실의 실체를 알려하지 않은 채 군중이란 방패 뒤에 숨어 남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익명의 공간인 인터넷을 악용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자칫 실제 사건들의 주인공을 옹호하고,현실을 왜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서는 “줄거리만 보지 말고,그 안의 주제의식을 봐 달라.”고 주문했다.
●강태기·김순이 30년만에 한무대
다수의 폭력앞에 힘없이 소멸되는 개인의 존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씨줄이라면,부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소중함은 날줄에 해당한다.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됐던 정교수는 죽음을 택하지만,윤교수는 아내의 사랑과 신뢰에 힘입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노랑꽃창포’는 연못가에 주로 피어 물을 맑게 하고,악취를 없애는 식물이다.가정이야말로 이 오염된 세상을 버텨내게 하는 ‘노랑꽃창포’같은 존재란 설명이다.
윤교수 부부역의 강태기와 김순이는 70년대 중반 화제가 됐던 연극 ‘에쿠우스’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지 30년 만에 한무대에 서게 됐다.매년 1∼2편씩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강태기이지만,그에겐 아직도 ‘에쿠우스’의 ‘앨런’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당시 대학 1학년으로 ‘질’을 연기했던 김순이 역시 마찬가지.강태기는 “그때에 비해 서로 성숙한 상태에서 만나니 연기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감회를 밝혔다.
두 중견배우의 무르익은 연기 못지 않게 강나미를 연기하는 신인 이승민의 열연도 기대를 모은다.이밖에 공호석,하덕성,임해린,이소령,염보나 등이 출연한다.20일∼7월27일제일화재세실극장(02)736-7600.
글 이순녀기자 coral@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