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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 지지율 급상승/53% 확보… 돌 28% 불과

    【워싱턴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오는 11월 실시되는 미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두고 실시된 유권자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보브 돌 상원 원내총무를 25% 포인트나 앞서 있는 것으로 7일 밝혀졌다. 해리스 여론조사기관이 지금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가정하고 1천4명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결과 유권자중 53%가 클린턴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불과 28%만이 돌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나머지는 다른 후보를 선택하거나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사람들을 제외하고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64%가 클린턴 대통령을 지지한 반면 돌후보를 지지한 비율은 33%로 나타나 격차는 31%포인트로 더욱 벌어졌다.
  • 시각장애인도 영화감상 즐긴다

    ◎미 맹인화가,헤드폰 「시어터 비전」 개발/갖가지 장면 묘사… 귀로 듣고 명화 감상 시각장애자에게도 영화를 즐길 권리를 주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각장애자」 여류화가 헬렌 해리스여사(59)가 시각장애자를 대상으로 한 영화보급운동에 발벗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리스여사는 퇴행성 안질환인 레티나이티스 피그멘토사(일종의 망막염)를 앓고 있어 법률적으로 시각장애자이다.시각장애자에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고안해낸게 「시어터 비전」.시각장애자를 위한 영화 「시청」용 전자장치인 시어터 비전은 대사에 나오지 않는 영화장면을 상세히 묘사해주는 별도녹음을 한 뒤 영화관내에 설치된 헤드폰을 통해 시각장애자들이 듣도록 함으로써 정상인들이 눈으로 보는 것 못지않게 사각장애자들도 감동적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극장당 설치비가 5천∼6천달러(약 4백만원내외)정도 되는 이 장치를 설치하도록 극장주들에게 맹렬한 로비를 펼치는 한편 해당영화 출연 유명배우들에게 장면묘사 녹음을 섭외하고 있다. 해리스여사는 『시어터 비전을 이용해 영화를 보는 시각장애자들은 정상인과 같은 순간에 웃을 수 있고 눈에서 감동의 눈물이 나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내레이션은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오기 때문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가 수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달리는 환상적인 모습을 시각장애자들은 볼 수가 없다.단지 배경음악만 들을 뿐이다.조깅하는 사이에 그의 턱수염이 자라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를 따라서 뛰는 모습도 볼 수가 없다.이런 장면을 내레이터가 설명하면서 영화의 흐름과 색깔을 제공한다. 「쉰들러 리스트」 「포레스트 검프」 「포카혼타스」 등 3편의 영화를 대상으로 시어터 비전을 실험했을 때 정상인들도 헤드폰을 벗었다가는 내레이션이 그리워서 다시 착용하기도 했다.8월에는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리틀 우먼」에 출연했던 준 앨리슨,재닛 레이와 마가렛 오브리언의 내레이션을 녹음했고 멜 깁슨의 「브레이브 하트」도 곧 녹음할 예정이다.유명한 스포츠캐스터인 빈 스컬리와 영화귀재 스티븐 스필버그감독도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우선 이 장치가 너무 복잡하거나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점을 확신시켜줄 시어터 비전 시범극장을 로스앤젤레스에 확보하는게 급선무다.그 뒤에는 미국전역 주요 도시마다 최소한 한 극장에 시어터 비전을 설치하는게 그녀의 꿈이다.
  • 한·가 경협 아∼미주 번영 가교잇자/김 대통령(김 대통령 여로)

    ◎교민 1천명 환호·박수… 수차례 연설 중단/“한국인 부끄럽던 시대 갔다” 자신감 당부 캐나다를 국빈방문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1박2일동안의 토론토 방문에 이어 19일 상오(한국시간 19일 하오·이하 현지시간) 세번째 방문지인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 도착,로메오 르블랑 총독내외의 환영을 받으며 공식환영행사와 국빈오찬에 참석하는 등 오타와 일정을 시작했다. ▷국빈오찬◁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19일 낮 총독관저로 르블랑총독을 예방,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을 나눴다. 르블랑총독이 『오타와를 방문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김대통령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민주와 번영의 꽃이 만발한 캐나다를 방문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화답했다.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르블랑총독내외의 안내로 총독관저내 볼룸으로 자리를 옮겨 약 1시간20분동안 오찬을 함께 하며 우의를 다졌다. 르블랑총독은 환영사를 통해 『캐나다·한국 양국이 21세기 희망찬 아시아·태평양시대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양국간 실질적인 협력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한국과 캐나다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양국 국민간의 우정의 역사는 한세기이상 거슬러올라간다』면서 『두 나라는 6·25전쟁에서 혈맹이 되었으며 최근 아시아·태평양지역 협력이 본격화되면서 특별한 동반자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빈오찬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부장관을 비롯한 공식수행원과 최종현 전경련회장,조량호 한·캐나다경제협의회위원장등이 참석했다. ▷공식환영식◁ ○…이에 앞서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상오 총독관저에서 열린 국빈방문 공식환영식에 참석했다. 김대통령내외는 총독관저 입구에서 캐나다측이 제공한 의전마차에 옮겨 타 기마경찰대의 안내를 받으며 본관앞 광장에 마련된 행사장에 입장했다. 김대통령내외가 의전마차에서 내리자 르블랑총독내외가 반갑게 영접했으며 김대통령과 르블랑총독내외는 나란히 사열대에 올라섰다.21발의 예포발사와 국가연주가 끝나자 김대통령은 캐나다 의장대장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한 뒤 르블랑총독과함께 연설대로 이동했다. 김대통령은 르블랑총독의 환영사에 이은 답사에서 『캐나다와 한국 두 나라는 한세기에 걸쳐 쌓아온 두터운 우정의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두 나라간 긴밀한 협력은 양국의 공동번영은 물론 미주대륙과 아시아를 잇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타와 도착◁ ○…토론토 방문을 마친 김대통령은 19일 상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국제공항에 도착,3일간의 오타와 방문일정에 들어갔다. 신기● 주캐나다대사의 기상영접을 받고 특별기에서 내린 김대통령내외는 리더만 캐나다 의전장의 소개로 대기하고 있던 캐나다측 영접인사들과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교환했다.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들에게 『반갑습니다』라면서 일일이 악수을 나눴다.이날 공항에는 이현식 오타와한인회장내외등 교민대표와 해링턴 한·캐나다친선협회장등이 나와 김대통령의 오타와 도착을 영접했다. ▷토론토 출발◁ ○…김대통령은 17시간의 짧은 토론토 체류도중 교민리셉션,온타리오주 총리접견,만찬 등 바쁜 일정을 마치고 19일 상오 오타와로 떠났다. 숙소인 로열 요크호텔을 출발한 김대통령은 피어슨국제공항에 도착,미리 나와 있던 심경보토론토총영사의 영접을 받으며 서순경한인회장·양용진평통지역회장을 비롯,영사관 직원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어네스토 페 온타리오주 의전장 등 캐나다측 인사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전용기 트랩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 ▷주총리 주최 만찬◁ ○…김대통령은 18일 하오 숙소인 로열 요크호텔 토론토 룸에서 열린 마이클 해리스 온타리오주 총리 주최 만찬에 참석해 한국과의 우의를 강조했다. 해리스총리는 만찬사에서 『캐나다에 진출한 한국기업 대부분이 토론토를 중심으로 한 온타리오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캐나다에 대한 한국투자의 80%가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며 지속적인 우호협력증진을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해리스총리가 지난번 주총리선거에서 「상식혁명」을 주장한 사실을 들어 『상식혁명철학에 기초한 해리스총리의 개혁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온타리오가 더욱 역동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온타리오주의 번영을 기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캐나다 선교사인 제임스 게일이 바로 이곳 토론토 출신으로 그는 최초의 한·영사전과 한글판 성경,영문판 한국사를 편찬함으로써 서구세계에 「은둔의 왕국」 한국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면서 1백여년에 걸친 한국과 토론토의 깊은 인연을 강조했다. ▷토론토 교민 리셉션◁ ○…김대통령은 18일 하오 숙소인 로열 요크호텔 콘서트홀에서 열린 교민리셉션에 참석,『훌륭한 캐나다 국민이 되어달라』고 격려했다. 과거에는 반정부활동이 거센 탓에 역대대통령이 토론토를 찾지 않은 때문인지 이날 리셉션장에는 당초 예상인원보다 많은 1천명가량의 교민이 참석,계속 박수와 환호를 보내 연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으며 김대통령도 시종 상기된 모습. 김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과거 한국사람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제 세계의 누구에게도 떳떳이 한국사람임을 밝힐 수 있는 때가 됐다』고 교민들이 자신감을 가져줄 것을 강조했다. ○국교은사 부인 만나 이날 교민들 가운데는 김대통령의 거제 장목국민학교 재학시절 송차조 교장의 부인 김순애씨(80)가 딸 4명과 함께 참석,김대통령에게 인사했는데 김대통령은 설명을 듣다가 갑자기 『아이구,사모님』이라며 끌어안자 김씨는 아무말도 못한 채 눈물만 흘리기도. 김씨는 딸들과 함께 지난 80년 캐나다로 이주했는데 이날 김대통령에게 전할 편지를 들고 참석,『김대통령이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 그 양반(송교장)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고 회고.
  • “한­가 첨단산업 긴밀협력”

    ◎김 대통령,밴쿠버서 연설… 토론토 도착 【토론토=이목희 특파원】 캐나다를 방문중인 김영삼대통령은 19일 상오(이하 한국시간)밴쿠버를 출발해 두번째 기착지인 토론토에 도착,국빈방문 사흘째 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숙소인 로열요크호텔에서 열리는 교민리셉션에 이어 마이클 딘 해리스 온타리오주 총리의 예방을 받고 만찬을 함께 한뒤 한·캐나다간 경제협력 증진방안 등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18일 밴쿠버 무역협회와 캐나다 아·태재단이 공동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한국과 캐나다,한국과 밴쿠버지역의 경제협력 및 유대강화를 주제로 연설했다. 김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캐나다 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교역과 투자진출을 기대한다』며 『특히 최근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환경,우주항공,생명공학,컴퓨터산업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양국 기업간에 긴밀한 협력관계가 구축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캐나다의 풍부한 자원과 첨단기술,한국의 우수한 생산능력을 감안할 때 양국간 경제협력의 전망이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며 『두 나라간의 협력강화는 다양성과 현격한 발전 격차를 가진 아·태지역의 협력을 원활히 할 것이며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교량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보스니아 일부 지역선 총성/어제 휴전 발표

    ◎유엔 요원들 평화 이행 감시 【사라예보·런던 A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전역에 60일간의 한시적인 휴전이 공식 발효된 12일 일부지역에선 여전히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휴전이 준수되고 있다고 유엔 관계자들이 밝혔다. 크리스 버논 유엔 대변인은 이날 『일부 전선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그같은 적대행위는 종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현지상황을 전했다. 또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는 이날 휴전을 축하하는 포성이 울려퍼지는 등 축제분위기가 이어졌으며,유엔 평화유지요원들은 내전세력간의 휴전이행 감시에 들어갔다. 브뤼셀을 방문중인 해리스 실라지치 보스니아 총리는 이날 유럽연합(EU) 관계자들과 보스니아 전후복구계획을 논의한뒤,기자들에게 이번 휴전발효로 마침내 『평화정착에 접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북서부 지역에서는 회교 정부군과 크로아티아 연합군이 세르비아계와 영토 장악을 위해 11시간째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는 등 양측간의 적대행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니아 라디오 방송은 『세르비아계 탱크부대와 포병대가 보스니아 정부군이 포진한 전선과 회교 정부군이 장악한 지역등 도시지역에 포탄을 퍼부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내전 당사자 대표들은 이날 하오 사라예보 공항에서 휴전이행 방안을 협의하기위한 회의를 개최했다.이번 회의에서는 유엔군의 자유로운 통행이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42개월만에 총성 멎은 보스니아·「세」계 표정/사라예보 곳곳 “휴전 자축” 축포/「보」 시민 “또 한번의 휴전일뿐”… 평화정착 회의적/「세」계,모든 학교에 휴교령… 음식점도 철시 명령 ○…보스니아 정부와 세르비아계가 12일 새벽을 기해 60일간의 휴전에 들어감으로써 2차대전 후 유럽지역 최악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던 보스니아 내전이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예보 시민들을 들뜨게 하는 모습. 그러나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야간통행금지가 여전히 실시되고 있는 탓에 시내에는 보안군 병력들이 순찰을 도느라 오가는 것 외에는 대체로썰렁한 분위기. 목격자들은 그러나 통행금지 이후에도 시내 곳곳에서 휴전을 자축하는 총소리가 들리는 등 축하분위기가 계속됐다고 전언. ○…사라예보 시민들은 휴전을 크게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세르비아계가 완전한 평화조약에 서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으로 생각. 보리스 미지크라는 한 시민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세르비아계는 교활하다.지금은 그들이 휴전에 순순히 응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숨돌릴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휴전으로 전기공급이 재개돼 가로등이 켜진 거리를 산책하던 벨마 물라소마노비치라는 여인은 『이것이 끝은 아니며 또한번의 휴전일 뿐이다.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며 어두운 표정. 19세된 즐라탄 하산베고비치라는 소녀도 『지난 3년간은 지옥이었다.너무나도 고통스러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나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다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알 뿐』이라고 말했다. 티토 거리의 한 검문소를지키고 있는 경찰관도 휴전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깨를 들썩이며 『더 기다리고 지켜봐야 한다』고만 대답. ○…이날 양측이 휴전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휴전 개시 40분 전까지도 폭발음이 들리는 등 긴장이 계속되는 모습. 이에 대해 경찰은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는 아니고 전쟁 때문에 파손된 지하 가스관이 터지는 소리일 것』이라며 별 것 아니라는 반응. 그러나 정부군과 세르비아계가 휴전 개시에 앞서 한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격전을 벌였기 때문에 시민들은 혹시나 휴전 합의가 어그러진 것은 아닌가 하며 불안해 하는 모습이 역력. ○…휴전이 개시되자 반야루카와 프리예도르를 통치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당국은 각급 학교에 대해 휴교령을 내리고 주류판매 금지 및 몇몇 호텔의 음식점들을 제외한 모든 음식점들에게 문을 닫도록 명령. 이와 관련,프레드래그 라지크 반야루카 시장은 『세르비아계는 시내의 모든 건물과 거리를 통제 하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 보스니아 재건 지원 합의/중·남부 유럽 10국

    ◎실무그룹 설치… 유엔과 협력/「세」계,안전지대 포격… 10명 숨져 【바르샤바 AFP 연합】 중·남유럽 10개국은 7일 내전으로 피폐된 옛 유고의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재건을 위해 지원을 제공할 것을 다짐했다. 오스트리아와 보스니아,크로아티아,헝가리,이탈리아,마케도니아,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등 10개국 총리들은 이날 바르샤바에서 끝난 이틀간의 회의에서 이들 옛 유고지역의 재건을 지원하기 위한 상설 실무그룹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실무그룹은 전쟁피해지역 주민들의 정상생활 복귀방안을 강구하게 되는데 유엔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협력하게 된다. 한편 보스니아교전세력들과 서방 8개국및 러시아대표등은 6일 로마에서 국제회의를 열어 전후복구방안을 논의했다. 【사라예보 로이터 연합 특약】 10일의 휴전 발효를 이틀 앞두고 보스니아 회교정부군과 세르비아계간의 마지막 「땅뺏기」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보스니아 중북부의 유엔 안전지대 투즐라 인근 즈비니체에 있는 난민센터에세르비아계의 소행으로 보이는 포공격이 가해져 최소한 난민 10명이 숨지고 3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유엔 군사감시단이 8일 밝혔다. 그러나 이처럼 전투가 가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계가 사라예보에 대한 가스 공급 재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해리스 실라지치 보스니아 총리도 가스 공급 시기가 기술적으로 지연되더라도 휴전 발효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휴전 발효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된 서방측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실라지치 총리가 보스니아 전후 복구를 위해 요청한 1백20억달러 마련을 위해 조건이 허락하는 한 빠른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하는 등 평화정착 노력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편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날 페리 미국방장관이 미·러 국방장관회담에서 보스니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제평화군에 러시아도 참가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으나 미측 제안의 자세한 내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 무개 롤스로이스 첫 도입/의류사 “신혼부부 무료 탑승”

    3억4천만원짜리 최고급 승용차인 롤스로이스 코니시가 국내에 들어왔다. 패션 의류업체인 (주)마인이 이 차의 주인이다.지금까지 국내에 롤스로이스 세단형은 4대가 들어왔으나 이 차와 같은 지붕이 없는 컨버터블형은 처음이다.배기량은 6천7백50㏄. 마인은 웨딩드레스 및 예복을 구입한 고객에게 결혼식날 예식장에서 공항까지 무료로 태워주기 위해 값비싼 차를 들여왔다.고객의 결혼이 겹치면 먼저 신청한 쪽에 우선권을 준다.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영국대사관저에서는 해리스 주한영국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 차를 주인에게 넘겨주는 인도식을 가졌다.
  • 첨단 전자오락 심포지엄/미 업자 특별강연도 개최

    ◎6·7일 과학기술원서 컴퓨터 게임에서부터 가상현실,쌍방향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자 오락기술 관련 잔치인 「첨단 전자엔터테인먼트 심포지엄 ’95」가 6∼7일 대덕연구단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강당에서 열린다. 한국정보과학회 HCI 연구회,한국과학기술원 인공지능연구센터가 주최하는 이 행사에서는 미국 컴퓨터게임 개발자협회 어네스트 아담스회장의 「미국 컴퓨터 게임 개발기술의 어제,오늘,그리고 내일」,미국 어콜레이드사 롭 해리스부사장의 「컴퓨터게임 개발절차 분석」등 해외 연사 특강과 분야별 기술 발표,전시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행사일정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날인 6일 상오10시30분에는 해리스 부사장의 특강이 있고 하오 2시부터는 ▲인터넷 엑스포(전길남 KAIST 전산학과) ▲쌍방형 대화형 TV(이만재·숙대 정보방송학과) ▲온라인게임(허진호·아이네트) ▲케이블TV를 위한 타이틀 제작(박영민·디지털 임팩트) ▲디지털영화와 에니메이션(신경식·제로원 픽쳐스) 기술 관련 주제발표가 진행된다.
  • 비행 청소년 “새사람 만들기”/미 텍사스주 정신교육대(시그마)

    철저한 규율과 맹목적 복종,한치의 쉴 틈을 허용하지 않고 육체를 혹사시키는 훈련일정.해병대의 신병교육장을 연상케 하는 이 곳은 실제론 비행청소년들을 위한 사설정신교육대다.살인,마약거래,자동차절도 등 중죄를 저지른 다루기 힘든 비행청소년들을 순한 양으로 탈바꿈시키는 미 텍사스주에 있는 이 곳 「해리스 카운티 사설정신교육대」는 지난 91년 릭 로모프씨에 의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4천3백여명이 거쳐갔으며 지금도 5백52명(평균연령 19세)이 「새 탄생」을 위한 교육을 받고 있다.교육대는 그 대가로 연 8백만달러를 받는다.새벽 시15분 기상으로부터 밤9시 취침까지 빈틈없는 교육일정과 담배·커피가 금지되고 자신의 주관조차 버릴 것을 강요하는 인권실종지대로 악명높기도 하다.로모프씨는 『이 곳에 들어오는 비행청소년들은 대략 10년 전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아이들』이라고 말하고 『이들은 처음에는 엄한 교육과정에 차라리 교도소에서 실형을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6개월의 교육과정이 끝나면 대부분 새 사람으로 변해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그는 이 곳에서 교육받고 나간 아이들이 10년이내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처음 실형을 선고받은대로 다시 감옥에 가야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이 곳에 수용된 비행청소년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선한 일을 한 대가로 주어지는 1주일에 한번의 외부와의 통화기회및 교육 마지막달에 주어지는 가족들과의 면회.그러나 면회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뤄진다.이 곳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일부는 『「거리의 람보」들을 「군사적으로 잘 훈련된 진짜 람보」로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교육대의 폐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재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로봇」을 만들어내고 있을뿐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 미,보스니아 무기금수 지속/고어 부통령

    ◎“하원 해제결의안에 거부권 행산 시사 【워싱턴 로이터 연합】 앨 고어 미부통령은 9일 해리스 실라지치 보스니아 총리의 무기금수 해제요구와 관련,미행정부의 기존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가 당분간 유지될 것임을 시사했다. 고어 부통령은 이날 방미중인 실라지치 총리와 회담을 갖고 그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라지치 총리는 이 자리에서 대보스니아 무기금수조치가 『대량학살의 도구』가 됐다고 지적,무기금수의 해제를 강력히 촉구했다. 앞서 미하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인 지지로 대보스니아 무기금수 해제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대외원조 삭감수정안을 찬성 3백18,반대 99로 가결했으나 클린턴 대통령은 이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한 상태다.
  • AFKN채널 9월 회수/한·미,쟁점 타결… 5월부터 본격 인수작업

    주한미군방송 AFKN­TV의 채널변경을 위한 한·미간 협의가 최근 큰 진전을 이뤄 AFKN의 2번채널(VHF)이 빠르면 오는 9월경 회수될 전망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22일 서울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통신참모부 회의실에서 양측관계자회의를 열고 그동안 채널인수시험을 지연시켜온 쟁점사항을 대부분 타결,오는 5월부터 본격적인 인수작업에 들어간다고 27일 밝혔다. 미군측은 그동안 AFKN의 UHF채널(34번)전환에 대비,▲UHF송신기의 하자보증금(50만달러)예치 ▲90일간의 운용·인수시험 외에 60일간 별도운용시험 ▲30일간의 운용자교육 ▲스테레오방식의 변경등을 요구,양측간 협의가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그러나 이번에 양측은 하자보증금예치를 유보하되 하자발생시 하자보수계약업체(한국전자진흥)가 3회이상 보수에 늑장을 부릴 경우 업체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운용시험 및 인수시험에 대해서는 송신기공급업체인 영국의 해리스사 기술자를 참여시켜 송신기를 종합점검한 후 이상이 없을 경우 3자합의하에 즉시 실시키로 하고 60일간의 별도시험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정통부는 오는 4월말까지 해리스사와 송신기점검 및 운용자교육계약을 맺고 5월초부터 2주간 송신기점검을 한 뒤 5월 중순부터 송신기 2대(예비용 포함)의 운용시험 각 30일,자동절체시험 15일,인수시험 15일등 90일간의 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 아·아 정상 13명과 개발경험 환담(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저마다 면담 신청해와 만찬합석 낙착/국가위상 반영… 정상외교 새장 열어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WSSD)에 참석하기 위해 10일(이하 현지시간)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한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저녁 13개국 정상들을 초청,만찬을 베풀었다. 이는 김대통령의 코펜하겐 체재기간이 2박3일에 불과해 면담을 희망해 온 각국 정상을 개별적으로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김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가 다자간 회의에 참석한 다수의 정상을 한자리에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한차원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반영함과 함께 정상외교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기 넘친 2시간 ▷13개국 정상 초청만찬◁ ○…네팔의 아디카리 총리와 중앙아프리카의 파타세 대통령 등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정상들이 초청된 가운데 코펜하겐의 사스 스칸디나비아호텔에서 열린 이날 만찬은 하오 7시부터 9시까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 김대통령은 만찬 시작 10분전 호텔에 도착,접견장인 2층「아이슬란드 룸」입구에서 속속 도착하는 정상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한 뒤 접견장으로 안내. 특히 페루의 후지모리대통령과 보츠와나의 마시레대통령등 취임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정상들에게는 『또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인사. 김대통령은 이어 정상들과 칵테일을 들며 30분 남짓 국제정세등 상호관심사에 관해 환담을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고 옆방인 「덴마크 룸」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시작. 김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꼭 만나자고 하였으나 여건이 닿지 못했던 우방 지도자 여러분을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시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이어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한 대한민국은 곧 이어 전쟁의 참화를 겪었으며 이에 따른 극심한 빈곤과 실업을 경험했으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따뜻한 도움을 바탕으로 피땀어린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산업화와 사회개발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우리의 개발경험을 소개. 김대통령은 『오늘 이자리에 모인 정상들은 비록 여러면에서 서로 다른 여건에 처해 있지만 더불어 잘 사는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손잡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 만찬을 끝낸 김대통령은 다시 「아이슬란드 룸」으로 자리를 옮겨 정상들과 후식을 들며 잠시 환담을 나눈 뒤 작별인사를 나누며 일일이 배웅.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만찬에 대해 『다수의 정상을 한꺼번에 초청한 정상외교활동은 지금까지 미국등 강대국들만이 해온 것』이라고 상기시키고 『우리가 처음 시도했음에도 불구,1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층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 특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 한반도 주변 「4각 외교」의 틀을 넘어 새로운 외교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는 게 현지 외교가의 일반적 시각. ▷코펜하겐 도착◁ ○…김대통령은 2박3일동안의 영국방문을 마치고 이날 상오 특별기편으로 런던근교 히드로공항을 출발,코펜하겐의 카스트룹국제공항에 안착. ○유엔의전관이 영접 히드로공항에서 김대통령 내외는 왕실대표로 나온 트럼핑턴 남작(여)의 안내로 귀빈실로 이동,영국왕실및 정부대표들과 환담을 나누며 『방문기간동안 배려를 아끼지 않은 영국국민과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 김대통령 내외는 이어 노창희 주영대사의 안내로 한인회장 등 우리측 환송인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해리스 주한대사 등 영국측 환송인사들과 악수를 나눈 뒤 트랩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특별기에 탑승한 김대통령은 2시간만에 카스트룹 공항에 도착,덴마크 고위관리및 유엔의전관의 영접을 받으며 2박3일동안의 공식방문 일정을 시작. 한편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하오 코펜하겐의 탁아소를 방문. ▷영국총리만찬◁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9일 저녁(현지시간·한국시간 10일 상오) 메이저 영국총리가 총리관저에서 베푼 공식만찬에 참석한 것을 끝으로 영국 방문일정을 마감. ○관례따라 취재 불허 김 대통령은 만찬이 끝난 뒤 숙소에서 공식수행원들로부터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 대비한 보고를 받고 회의자료등을 검토. 김 대통령은 만찬에서 『한국전쟁 때 용맹한 영국 용사들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상기시키고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 대한 친밀감에 따라 우리 국민은 영국을 가장 중요한 우방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강조. 영국측은 이날 만찬에서 오랜 관례를 이유로 사진기자들의 촬영을 잠시 허용한 대신 취재는 사절. ○전통민화 1점 기증 ▷손여사 대영박물관관람◁ ○…대통령 부인 손여사는 9일 하오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관람. 손여사는 박물관측 관계자가 앞으로 설치될 한국관에 전시할 관음도 불경 병풍 고려청자 신라시대 귀걸이를 보여주며 개관계획을 설명하자 『두나라 관계가 더욱 발전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인사. 손여사는 대영박물관의 한국어안내책자를 살펴본 뒤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전통 민화 1점을 기증하고 기념촬영.
  • “시라크 압도적 승리”/불 대선 여론조사

    【파리 AFP 연합】 한편 루이 해리스사가 최근 실시해 이날 밝힌바에 따르면 만약 오는 5월7일의 결선투표에서 시라크와 발라뒤르가 대결할 경우 시라크가 60%,발라뒤르가 40%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가 한달전 실시했던 결과에 따르면 발라뒤르총리가 55대45로 시라크 후보를 누르고 승리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또 시라크가 결선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와 맞붙을 경우 56대44로 승리할 것으로 나타났으며 발라뒤르총리의 경우 조스팽 후보에 52대48로 이길 것으로 전망됐다.
  • 엘 여왕,버킹엄궁서 김 대통령 환영연(김 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독 공군기,런던행 대통령기 특별경호/영 의전관례 따라 교민 공항마중 못해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상오(현지시간) 베를린을 떠나 유럽순방 네번째 나라인 영국 런던의 히드로공항에 도착,2박3일의 공식방문일정에 들어갔다.김대통령은 이날 버킹검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한 뒤 엘리자베스여왕과 오찬을 나누었고 총리공관에서 존 메이저 총리와 한·영정상회담을 가졌다.김대통령은 이어 런던의 도체스터호텔에서 현지교민을 위해 리셉션을 베풀었고 저녁에는 메케이 클레시펀 상원의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한·영 정상회담◁ ○…김 대통령은 이날 하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에서 메이저 총리와 약 50분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실질적인 경제협력강화방안및 국제정세 전반에 대해 폭넓게 논의. ○정상회담 50분 김 대통령은 총리공관 현관에서 메이저 총리의 영접을 받은 뒤 1층 회담장으로 가기에 앞서 현관에서 간단하게 기념촬영. 김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영국을 재임기간에 직접 방문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히고 『우리에게 영국은 오랜 왕실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앞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모범적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고 피력. 메이저 총리는 한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점을 강조하고 김대통령의 영국방문을 환영. 이날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부장관·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노창희 주영국대사·한태규 외무부구주국장이,영국측에서는 허드 외무장관과 해리스 주한대사 등이 각각 배석. ▷여왕 주최 오찬◁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버킹검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및 엘리자베스여왕 주최 환영오찬에 참석. 런던의 숙소인 클라리지호텔을 출발,버킹검궁의 대정문과 남문을 통과해 환영식장에 도착한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식장 앞에서 기다리던 엘리자베스여왕과 부군 필립공의 영접을 받고 반갑게 인사를 교환. 김 대통령은 이어 필립공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국가연주를 들은 뒤 의장대를 사열했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손 여사는 나란히 서서 이를 참관. 사열을 끝낸 김 대통령은 필립공의 안내를 받아 버킹검궁 현관 앞에서 엘리자베스여왕과 합류한 뒤 궁안의 그랜드홀로 이동,대기하고 있던 공로명 외무부장관 등 우리측 공식수행원을 엘리자베스여왕에게 소개. 김 대통령은 이어 엘리자베스여왕의 안내로 화이트 드로잉룸으로 자리를 옮겨 영국측 오찬 배석자를 소개받고 칵테일을 들며 잠시 환담을 나눈 뒤 2층 뮤직룸에서 오찬을 나누며 두나라의 관계증진방안등 상호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 오찬을 끝낸 김 대통령은 다시 화이트 드로잉룸으로 자리를 옮겨 엘리자베스여왕과 선물을 교환한 뒤 버킹검궁 현관에서 여왕내외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버킹검궁을 출발. ▷런던 도착◁ ○…김 대통령은 베를린을 출발한 지 1시간40분만에 런던의 히드로국제공항에 도착,2박3일의 영국방문일정에 돌입. 김 대통령은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도 별로 피곤한 기색 없이 부인 손여사와 함께 특별기에서 내려 엘리자베스여왕의 대리인자격으로 나온 트럼핑턴 남작(여)의 소개로 영국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김 대통령은 이어 공항귀빈실에서 트럼핑턴 남작등 환영인사들과 잠시 환담을 나눈 뒤 방명록에 서명. 영국의 의전관례에 따라 이날 공항에는 교민환영단의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공항환영행사는 15분만에 종료. 김 대통령은 모터케이드의 호위속에 숙소인 클라리지호텔로 출발. ▷베를린 조깅◁ ○…김 대통령은 이날 새벽 1936년 제10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선수가 뛰었던 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조깅. 김 대통령은 운동장을 돌고난 뒤 메인스타디움 성화대 옆 벽에 조각된 베를린올림픽 기념기록 가운데 손기정 선수의 우승 글귀를 보고 『올림픽의 꽃 중의 꽃인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뛰었던 곳에서 달려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고 『손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피력. ▷베를린시장 만찬◁ ○…김 대통령 내외는 공식수행원들과 함께 7일 저녁(현지시간)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성에서 디이프겐 베를린시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 김대통령은 샤를로텐부르크성에 도착한 직후 디이프겐 시장내외의 안내로1층 「정원실」로 들어가 「골든북」으로 불리는 방명록에 서명. 서명에 앞서 디이프겐 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한국은 한 세대만에 개발국가에서 세계적인 경제국가로 성장했다』면서 『한국인의 꿈인 통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고 말하고 김대통령에게 서명을 요청.
  • 미 디스커버리호/우주 무중력 실험/승무원 2명 백㎏ 우주복 착용

    ◎영하 52도 흑한속 5시간 유영/오늘 귀환 【케이프커내버럴(미 플로리다주) AP UPI 연합】 지난 7일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와 우주 랑데부를 연출했던 미국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9일 저녁(이하 한국시간) 승무원 2명이 혹한의 무중력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역사적 실험을 시작했다. 우주비행사 버나드 해리스와 마이클 포울은 이날 저녁 9시 디스커버리호의 로봇팔에 올라탄 채 지구에서 약 3백84㎞ 떨어진 우주공간으로 나갔으며 10일 새벽 2시까지 태양광선을 가린 디스커버리의 그림자 속에서 우주유영을 계속할 예정이었으나 혹한으로 예정보다 30분 일찍 유영을 끝냈다. 이번 우주유영의 목적은 오는 97년 착공 예정인 미·러시아 등의 국제 우주기지 건설에 대비,1백10㎏의 우주복과 장갑의 열차단 성능을 알아보고 직사광선이 없는 우주공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견딜 수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한 것이다. 디스커버리호는 11일 상오6시51분(현지시간)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다.
  • 세계 유명 재즈연주자 잇달아 내한

    ◎피아노 클로드 볼링·가수 앨 재로/색소폰의 팻 매시니도 국내 콘서트/존루이스 등 거물급 피아니스트 10인 합동 공연 올해는 비중있는 재즈 연주자들의 내한공연이 줄을 이을 예정이어서 국내 재즈팬들을 설레이게 하고 있다. 벤조를 이용한 토속적 퓨전재즈로 미주와 캐나다 등지에서 각광받아온 재즈 트리오 「벨라플렉과 플렉턴스」가 지난달 19일 다녀간데 이어 이번달엔 클로드 볼링과 앨 재로가 국내무대에 선다.6월에는 거물급 재즈 피아니스트 10인의 합동공연이 열리고 하반기엔 「재즈 섹스폰의 대부」 팻 매시니의 국내 콘서트가 계획되고 있다. 80년대 연주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재즈피아노의 거장 클로드 볼링의 내한공연은 오는 15·16일 하오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감칠맛나는 크로스오버의 진수를 들려주는 볼링의 연주는 대중음악 뿐만아니라 클래식팬들로부터 광범위한 사랑을 받아왔다.이번 공연에선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과 협연,빌보드차트에 5백30주동안 올랐던 「플루트와 재즈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제1번」을 비롯,귀에 익은 재즈넘버들을 들려준다. 솜털처럼 푸근한 음색의 재즈가수 앨 재로는 26일 하얏트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한국팬들과 만난다.얼마전 TV로 방영된 외화 「블루문 특급」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던 그는 그래미상을 다섯번이나 수상한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일반팬들에게도 어렵지 않은 달콤한 곡들로 꾸며질 이번 무대는 재즈를 대중에게 한발짝 다가서게 하는 뜻깊은 계기가 될것. 6월 2일 열릴 재즈 피아니스트 10인 합동공연엔 존 루이스,레이 그란트,짐 해리스,행크 존스 등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이 참여한다.지난 3년간 매년 일본무대에서 열렬한 갈채를 받아왔던 이들은 이번 콘서트를 통해 재즈 연주의 진수라고 할 화려한 애드립을 선뵈며 관객을 사로잡을 작정. 재즈콘서트가 활발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재즈를 즐기는 저변인구가 두터워지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재즈클럽의 권명문총무는 『요즘은 대중음악 홍수시대라 어디를 가나 대중가요와 만나게 된다.대중음악을 듣는데 어느정도 이력이 나면재즈로 귀를 돌리게 되는 만큼 재즈팬의 증가는 이런 대중음악의 포화현상과 무관하지 않을것』이라고 분석했다.이밖에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곡이 달라지는 재즈음악의 속성자체가 라이브 공연의 현장감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것. 지난해 뜻하지 않은 흑인음악 열풍이 부는등 우리 가요에 대한 팬들의 입맛도 달라지고 있는 만큼 재즈계에서는 공연의 성과를 낙관하고 있다.
  • 미 군정체제 확립(새로 쓰는 한국현대사:5)

    ◎“일인활용 불가피”속 행정권 장악에 석달/서울 입성뒤 「북쪽 접수」 주력… 개성 첫 점령/북의 소군은 2개월 앞서 「도인민위」 설치/인천입항 미군 환영길 한국인 2명 일경에 피살 미군이 인천에 첫발을 디딘 1945년 9월8일은 미 군정 3년을 포함해 이후 반세기동안 유지돼 온 한미간 특수 역사관계의 출발점이었다.그러나 한국인과 미군의 첫 만남은 그 시대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듯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졌다.미군을 환영하러 부두로 몰린 한국인들이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두명이 숨지고 십여명이 부상한 것이다.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근대 해항지여서 일찍부터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고 그 세도 강한 항구도시였다.반면 부두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활발히 움직이는등 반일세력도 만만찮았다.따라서 해방이 되자 인천시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일본경찰은 재향군인 9천명을 급하게 모아 특별경찰대를 조직,각 파출소에 배치하는등 경비를 강화했으며 한국인들도 이에 맞서 치안유지회(보안대)를 결성해 대치하는 분위기였다. 「미군이 9월8일 인천항으로 상륙한다」는 소문이 며칠전부터 떠돌자 시민들은 「해방군」을 맞는다는 기쁨에 들떴다.이에 조선총독부는 9월5일 담화를 통해 『미군은 민중환영등 의례적인 행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이어 8일에는 인천경찰서가 의사·산파·우편배달부를 제외한 사람의 외출을 금지한다고 공시했다.그리고 『이것은 미군의 지시』라고 못박았다. 8일 아침이 되자 인천시내 곳곳에는 미군을 환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무리를 형성했다.미군 함정이 부두에 도착한 하오2시쯤에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인천항쪽으로 나아갔다.인파가 현재의 인천우체국 자리를 지나 산업은행 앞에 이르자 일본 특별경찰대의 99식 소총이 불을 뿜었다.이 발포로 행렬에 앞장선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 권평근(당시 45세)과 보안대원 이석우(20세 가량)등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권평근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사는등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해방된 우리땅에서 독립운동가가 일본경찰에게 공공연하게 피살된,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이 사건에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사전정보부족과 한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일본측 농간들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군은 진주에 앞서 한국주둔 일본군사령관 우에쓰키(상월양부)와 연락,그로부터 『무장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자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일본군의 치안유지권을 인정한다.이같은 미군의 입장은 권평근·이석우의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장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이 미군에 발포경찰관등을 고발,이에 대한 군사재판이 13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일본인인 인천경찰서장등은 『미군 지시로 환영·외출을 금지했는데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고 법정은 이들의 행위를 「합법」이라고 판정했다.재심청구를 했지만 곧 기각됐다. 이 사건은 미국 신문에 즉시 보도돼 미국내에서도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종군기자 리처드 E 라우터배크는 「뉴욕타임스」9월9일자 기사에서 『일본군이 환영군중에게 발포한 것은 미군사령부의 지시때문』이라고 공개했다.「뉴욕타임스」는 이어 11일자 사설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정책을 시행한 쓰레기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우리가 해방시킨 민중에게는 강경하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한국점령 임무를 맡은 미 제24군단 가운데 8일 인천을 통해 맨 먼저 들어온 부대는 7사단이었다.7사단은 인천에 17보병연대를 남겨놓고 9일 아침 서울로 향했다.당시 미국신문들은 거리풍경을 『흰옷을 입고 이상스런 검정모자(갓)를 쓴 한국인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서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USA Army Welcome」이라고 쓴 환영아치도 가끔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한국인들은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미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던 것이다. 이날 하오4시6분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현 국립중앙박물관)제1회의실에서 38선이남 일본군의 공식 항복행사가 열렸다.일본측 대표인 아베 노부유키(아부신행)조선총독,우에쓰키 주둔군사령관등이 먼저 들어왔고 이어 하지중장,킨케이드중장(제7함대사령관)등 미군대표가 자리를 잡았다.하지중장 뒤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X자로 세워져 있었다. 다음날부터 미군은 38선이남의 영토와 행정조직을 장악하는데 본격적으로 나선다.서울에 본부를 둔 7사단은 우선 북쪽지역에 주력해 12일 개성을 점령한 다음 소련과 연락할 전신장치를 설치했다.이어 그리고 미군정은 각 도에 군정지사를 보내 행정권을 장악했다.지사 발령날짜를 보면 ▲경기도 10월2일 ▲강원도 11월26일 ▲충북 11월8일 ▲충남 10월9일 ▲경남 9월28일 ▲경북 11월3일 ▲전북 11월20일 ▲전남 10월26일등이다.초대 군정지사들은 영관급 장교가 대부분이고 경남지사인 찰스 해리스가 유일하게 준장이었다. 미군이 지방에 분산 배치된 초기에는 군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군단위까지 확보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고 특히 훈련된 행정요원은 턱없이 모자랐다.그런가 하면 현지실정을 몰라 한동안 일본인 관리를 활용해야 했으며,일부 지역에선 「조선인민공화국」이 임명한 관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그러나 각 도에 군정지사를 파견해 자리잡음으로써 미군정은 1945년 11월 말쯤 전국적인행정체제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 진격속도가 빨랐던 북쪽의 소련군은 군정체제를 이루는데도 앞섰다.8월9일 참전한 소련군은 일부지역에서 일본군의 저항을 받긴 했지만 8월 말까지는 38선이북 지역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끝냈다.점령군은 제25군,그 사령관은 IM 치스차코프대장이었다. 치스차코프는 평양에서도 조만식이 주도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와 「공산당 평남도위원회」를 합쳐 「평남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케 했다.이 위원회는 비록 조만식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소군은 이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정치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을 엮은 인민위원회를 9월 말까지 각 도에 구성했다. 미군이 남쪽에서 직접통치의 형태를 갖췄다면 소군은 자치적으로 보이는 「인민위원회」구성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교활한 방식을 택한 셈이다. ◎해방된 내땅인데… 일경에 맞서다 피살/유족 최초 증언… 「권평근의 인천참사」/미군 의뢰 따른 일 통제에 강력 저항/20∼30년대 노조운동 통해 항일투쟁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날 일본경찰의 흉탄에 희생된 권평근(1900∼45년)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그는 1919년 「3·1운동」부터 45년 9월 숨질 때까지 독립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아직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지 못했다.그에 관한 기록이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어 미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본사 취재팀은 일본측 기록인 ▲삼전방부의 저서 「조선 종전□ 기록」(암남당서점)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인 「국외□어□□용응조선인명부」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에서 31년 9월 발행한 「사상월보」9월호들을 검토했다. 또 ▲서울경찰청이 1993년 6월9일 국가보훈처에 회신한 「권평근에 대한 지문조회」결과 ▲국가보훈처 소장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기록 ▲조선일보 1931년 7월24일자,8월27일자,9월4일자 ▲동아일보 1931년 8월27일자,10월27일자 등 각종 자료와 가족으로부터 단독입수한 권평근의 미공개사진,증언들을 종합해 국내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권평근의일생을 복원했다. 권평근은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배재학당에 다니던 그는 「3·1운동」때 고향에서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다가 3년동안 충청도로 피신한다.이어 26∼27년에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해외 반일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권평근의 경력은 30년대에 빛난다.인천으로 이사해 노동조합에 투신한 그는 31년 7월 「일본인습격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다.당시 만보산사건이 일어나자 국내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사이에 충돌이 잦았다.그러나 권평근 등은 일본이 한·중 양국을 이간질시키려고 사건내용을 과장한 것이라며 중국인을 공격하는 군중의 분노를 일본인에게로 돌렸다.이 사건으로 그해 10월26일 경성지법 형사제1부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는다.당시 재판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이해 5월1일,6월10일,7월5일 등 세차례에 걸쳐 반일시위를 벌이려고 구체적인 준비를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복역을 마친 권평근은 노동조합을 통해 더욱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당시에는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이었다.총격 현장에서도 그는 일본경찰에게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쏠테면 쏘라』며 가슴을 내밀었다고 한다.그의 장례식은 사회단체장(일부 기록은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딸 명숙씨(55·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742)는 아버지를 『6척 장신에 힘이 장사였다』고 기억했다.또 그리 어렵지 않은 살림인데도 자신은 하루 두끼만을 먹으며 어려운 이웃에게는 식량과 옷을 서슴없이 나눠줬다고 회상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김성호 〃 ▲김경운 〃
  • 미군의 한반도 진주(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

    ◎「소군 남진」에 당황 “38이남 접수” 명령/하지 24군단장에 “군정기구 창설” 임무/남한정보 부족속 오키나와서 「골격」 완성/선발대 B25 2대로 9월6일 김포공항에 전세계가 일본의 태평양전쟁 항복소식에 숨을 죽인 1945년8월15일.그 지루한 대전이 끝나던 여름날,오키나와에 있는 미 제24군단에 한통의 특별지시가 떨어졌다.필리핀 마닐라의 태평양사령부로부터 날아온 특별지시 제14호였다.미국의 한반도점령지가 북위 38도선 남쪽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이 문서는 24군단으로 하여금 작전에 필요한 계획을 세우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이날 저녁 오키나와에는 천황의 항복조칙이 발효되었음에도 폭탄을 실은 일본전투기가 날아들었다.또 다른 가미카제(신풍)들은 일본 본토주위를 순항중인 미 제3함대 순양함을 공격했다.그러나 미국은 그까짓 산발적 저항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었다.다만 신경을 써야 했던 지역은 오키나와에서 자그마치 1천6백9㎞나 떨어진 한반도였다.전쟁이 끝난 마당에 한반도를 더이상 「힘의 공백지대」로 방치해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련의 남진소식은 미국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소련이 인천을 점령한 데 이어 해군을 서울에 보냈고,8월15일에는 서울정부를 세운다는 보고가 들어온 터였으니까….하지만 소련군의 남진은 많은 부분 과장되었다는 것이 보편적 견해다.소련군은 8월25일이 지나서 38도선을 남쪽으로 약간 비켜선 개성까지 왔었다는 것이다.소수의 소련군이 서울까지 정찰했다는 설이 있기는 하다. 미 제24군단에 북위 38도선 이남을 대상으로 한 점령계획수립명령이 떨어졌을 때 소련군의 한반도작전을 살펴보자.소련군 작전은 극동전선 왼쪽을 맡은 제25군사령관 I·M 치스차코프대장 등이 쓴 회고록의 한 부분 「제25군 전투행로」에 잘 나타난다.이 회고록에 따르면 8월15일에 함북 나진항구와 시내를 완전장악하는 한편 청진항에도 일부병력이 상륙한 것으로 되어 있다.8월12일 새벽 제358해병대대의 상륙으로 시작된 나진전투는 2일동안 끌었다. 이에 앞서 소련군은 8월9일 대일전에 뛰어든 즉시 제10급강하폭격기사단등의 비행부대들이 웅기·나진·청진을 폭격한 바 있다.대일전에 참가했던 해군대장 S·E 자하로프는 뒷날 회고록 「조선해방을 위한 투쟁에서의 태평양함대」를 통해 10일까지 6백16회의 비행기록을 남겼다고 적었다.이 출격에서 일본 수송선 격침 11척,파괴 11척의 전과를 올렸다는 것이다. 이때의 프라우다는 「함정들이 웅기를 향하는 도중 관측자들의 눈에는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보였다.우리 비행사들의 폭격을 받아 타고 있는 군사목표물이었다」고 보도했다.어떻든 속도전으로 한반도 북단을 몰아붙인 소련군은 8월16일 웅기에서 열린 환영집회에 참석한 정도였다.한반도북단을 점령한 소련은 프라우다 등을 통해 전쟁영웅과 주민 사이에 얽힌 미담들을 만들어냈다.정치성 공작이 재빨리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제 오키나와로 다시 돌아올 차례가 되었다.미 제24군단이 제10군단으로부터 한국점령임무를 물려받은 것은 한반도 38도선이남 점령계획수립명령이 떨어지기 3일 전인 8월12일.그리고 군단장 J·R 하지중장에게 주한미군(USAFIK)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지휘권이 8월19일에 부여되었다.또 38도선 남쪽 일본 육·해·공군과 예비군 항복을 접수할 때 태평양사령부를 대신하는 임무도 통보받았다. 그러나 제24군단 참모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였다.1945년4월에 간행한 「제니스 75」라고 부른 한국에 대한 육·해군합동정보처의 보고서가 고작이었다.이 자료 역시 점령작전을 위한 전술공격용일 뿐 정치·경제·사회분야를 다룬 정보는 거의 없었다.심지어는 오키나와에서 붙잡힌 일본군 소속 한국인 포로를 통해 정보를 얻어내려 했으나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의 전력파악도 미진했다.그래서 한국은 자칫 위험하기 짝이 없는 특공대훈련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한국주둔 일본군 전투력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으로 평가한 기록도 여러군데에 나온다.일본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종전당시 남한의 일본군병력은 3백15개의 각급부대에 23만2백58명이 배속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이는 미 합동전쟁기획위원회(JWPC)가 밝힌 27만명에 비해 3만여명이 모자라는 숫자다. 미국으로서는 시간은 부족하고 정보는 더욱 모자랐다.하지장군은 미군에게 한국군정임무 부여에 따라 추진되었던 이른바 「블랙리스트」계획에 참여했던 10군단 소속의 장교들을 차출해 급히 불러들였다.10군단 행정처(G­1)의 프레스코대령과 에스테즈소령이 그들이다.이들에게 군정조직 완성임무를 주었는데,프레스코대령은 뒤에 미군정청(USIK,MG)의 민정장관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군정을 실시하지 않고,기존의 일본정부기구를 활용키로 한 태평양사령부는 8월29일 지령을 내렸다.이 지령은 한국에서 항복조건 실행을 위해서라면 일본정부(조선총독부)를 잡아두라는 내용이었다.미군정이 일본관리들을 많이 쓰게 된 빌미가 바로 이 지령이었다는 것이 전사가들의 비판이다.제24군단은 마침내 9월1일 초기 한국정책의 지침이 된 부속서류를「군단 야전명령 제55호」에 포함시켜 발표하기에 이른다. 한국을 통치할 미군정기구는 이보다 앞서 8월29일 한 부대가 어떤 편제에 의해 창설되듯 오키나와에서 골격을 갖추었다.이에 따라 24군단에게는 주한미군의 참모기능이 돌아간 가운데 군단사령부와 본부중대,제10군단 대공포대는 군정임무를 맡게 되었다.그리고 8월29일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조선총독부에게 특별명령을 하달한다.9월7일 미군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것과 일본군사령관은 8월31일 하오6시(토쿄시간)에 미 24군단과 무선접촉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24군단은 모든 무선부호를 동원,서울과의 통신을 시도한 끝에 9월1일 서울을 지칭하는 말 『여기는 경성(게이조)』이라는 응답을 받아냈다.24군단은 당시 경성방송국을 통해 한국주둔 일본군 제17지역 사령관 우에츠키(상월양부)와의 교신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우에츠키는 몇 차례의 통화에서 질서를 방해하는 독립운동가들과 급료인상을 요구하는 인천항 노동자들을 미군 상륙의 위협적 존재로 떠올렸다. 그래서 24군단은 두 가지 종류의 전단을 서둘러 준비했다.미군의 한국도착이 임박했으니 질서를 유지하라는 것과 미군이 한국의 정부수립을 위해 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첫번째 전단 15만부는 9월1일 제380폭격단 B­24폭격기가 실어다 부산·서울·인천에 뿌렸다.9월5일에는 두번째 전단이 같은 방법으로 살포되었다.한·소국경을 넘은 8월9일부터 소련군이 북한지역에 전단을 뿌린 사실을 상기하면 초보적 선무공작도 미군이 5주나 뒤졌다. 한국을 향한 8대의 B­25가 9월4일 오키나와를 이륙했다.C·S 해리스준장이 지휘하는 선발대가 탄 이들 비행기 가운데 2대가 이날 하오 김포에 내렸다.나머지 6대는 기상이 나빠 회황했다가 9월6일 김포에 닿았다.그리고 나서 구축함과 항공모함의 호위를 받은 다섯줄 밀집종대의 전함들이 남중국해 파도를 가르기 시작했다.첫 호위함이 인천항에 닻을 내린 것은 소련군의 한반도점령보다 한달이 늦은 9월8일 아침이었다. ◎“한국 문외한… 「군정사령관」 부적” 평가/하지 그는 누구인가/“정글전의 권위자”… 군인으로는 상당한 명성 태평양전쟁 마지막을 오키나와에서 보낸 미 제24군단장 J R 하지중장.그 이후 주한미군 사령관 자격으로 24군단을 이끌고 한국에 왔던 일리노이주 골콘다 출생(1893년6월12일)의 그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지금 썩 흔치 않을 것이다.그러나 한국현대사 속의 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육군사관학교 출신은 아니다.1917년 일리노이대학 재학중 보병예비대 소위로 임관했다.그해 같은 계급으로 육군에 정식편입되어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뮤즈 아르곤 전투 등 유럽전선에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육군대학,참모학교,보병학교,화학학교 등을 졸업한 그는 육군내에 몇 안되는 항공전술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제2차대전 중인 1942년11월 과다카날에서 일본군을 격퇴시켰을 때 제25사단 부사단장이었고,보겐빌작전에서는 아메리칸사단을 지휘했다. 그의 능력은 43사단에서 발휘되었다.부대를 전투단위로 조직,전투력을 향상시킨 야전 지휘관의 작전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이다.특히 솔로몬군도 전투에서 받은 전시공로훈장,훈공장 등은 빛나는 전공의 논공행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44년4월1일자로 24군단에 전입되었다.24군단은 일본이 장악한 태평양상의 여러 섬을 수륙양용으로 공격하기 위해 그 해에 창설한 부대.호전적 부대로 알려진 24군단은 팔리우섬에서 시작하여 필리핀의 레이테 침공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미 육군성 전사실 소장의 하지 중장의 기록철을 보면 「자신의 부대에 대한 접근 방법이 독특할 뿐 아니라 간결한 비방록으로 유명하다」고 적었다.그리고 「정글전의 권위자」로 평가해놓았다.그러나 1945년 가을에 작성한 「루스 메시지」의 한 파일은 「아시아문제에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하지를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비판기록을 남기고 있다. 1963년11월12일 70살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미 새 하원의장 깅그리치/52세 뉴트의 인생 이력서

    ◎고교때 꿈 이뤄냈다/의부밑에서 성장… 유아기 클린턴과 흡사/투병 아내와 이혼… 교수 출신 보수주의자 제1백4대 미의회가 개원한 4일(한국시간 5일)은 뉴트 깅그리치의 날이었다.40년만에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이 그를 하원의장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이날 낮 12시 기도로 시작된 개원식이전부터 미국의 모든 매체는 깅그리치의 인터뷰를 생중계했고 그의 취임사는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방불케할 정도로 국정의 대강을 제시했다. 올해 52세인 깅그리치는 미국동남부 조지아출신의 9선의원으로 어릴때부터 대통령보다 권력의 원천인 하원의장을 꿈꾸어왔다. 뉴트는 2차 대전때인 1943년 6월17일 펜실베이니아주의 해리스버그인근의 마을에서 아버지 뉴턴 맥퍼슨과 어머니 캐슬린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허쉬 초코릿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긴했지만 술고래에다 손찌검까지 잦아 뉴트가 3살 되던해 이혼을 했다.어머니 캐슬린은 해군중령인 로버트 깅그리치와 재혼했고 뉴트는 어머니를 따라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자신의 성도 생부의 성이아니라 양아버지아래 입적이 되어 깅그리치로 되었다. 뉴트의 이러한 유아기의 환경은 클린턴대통령과도 흡사하다.클린턴대통령은 생부가 결혼 3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숨져 유복자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의 성을 따라 클린턴이 된것이다. 뉴트가 컬럼버스의 베이커고교를 다닐때 그는 5년 연상의 여인인 기하선생님을 좋아했다.그가 조지아주의 에모리대학을 진학했을때인 19살 되던 해 이 여선생인 재키 배틀리와 결혼을 했다.뉴트의 어린 시절을 군인의 절도로 엄하게 키워온 양아버지는 그로부터 연상의 연인과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 결혼을 만류했으며 끝까지 결혼을 하겠다면 결혼식에 가족 어느누구도 참석하지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그러나 결혼은 이뤄졌고 뉴트부부는 4년사이에 두딸을 낳았다. 뉴트는 에모리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뒤 다시 툴레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0년에는 웨스트 조지아대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봉직했다.고교·대학시절부터 정치에로의 꿈을 키워오던 그는 두번에 걸쳐 근소한표차로 낙방의 고배를 마셔오다가 78년 조지아주 제6선거구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처음으로 워싱턴정가에 진출할 수 있었다. 첫 임기가 끝날 무렵이던 81년 당시 암에 걸려 투병중이던 재키와 이혼소송끝에 헤어졌다.5년이나 나이많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이혼을 하게되었지만 암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던 부인에게 이혼소송을 한것은 그의 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는 곧바로 지금의 마리아느 긴터여인과 재혼했다. 달변가이자 다혈질에다 논쟁을 불러일으킬수있는 독설과 주장을 서슴지않아 중후한 정치지도자로서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평도 받고있다.
  • 핵심기자재 컨버터 양산·전송망 준비차질/CATV 시험방송실시 난항

    ◎공보처,「특별팀」 구성 일제점검 나서 종합유선방송의 내년 1월 시험방송과 3월 본방송 개시를 앞두고 핵심기자재인 컨버터의 양산과 전송망설치 준비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어 유선방송사업자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컨버터는 유선방송국이 송출하는 프로그램을 가입자가 채널별로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장비.유선방송이 유료방송이므로 컨버터에 「도둑 시청」을 방지하는 기능을 장치해야하는 데 이를 위한 칩의 국내생산은 불가능하다.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이 칩을 미국의 BTI사와 해리스사에 생산을 의뢰했다. 문제는 당초 9월 예정과 달리 이 칩의 양산주문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유선방송협회가 조사한 컨버터의 예상수요량은 64만여대.한달에 생산가능한 컨버터는 2만∼3만여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11월부터 양산주문해도 미국에서의 운반기간등을 고려하면 시험방송에 맞추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술개발업체측에서는 시험방송에 맞춰 컨버터가 일시에 소요되는 것도 아니고 본격적인 수요는 본방송이후로 예상되는 만큼 일정이 늦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술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전자부품개발연구소는 지난 26일 해리스사와 BTI사 샘플에 대한 시연회를 가진 결과 일단 화질이 만족스럽다고 판단해 생산업체에 2차 테스트를 넘겼다.각 생산업체에서의 컨버터 장착 테스트 결과는 이달 말쯤 나온다.이 시험이 만족스러우면 11월7∼8일 쯤에 미국에 양산 주문을 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유선방송의 프로그램을 각 가정에 전송할 전송망의 경우도 아직 구체적인 일정과 사업자선정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유선방송사업자들의 불만이다.1백가구에 전송망을 설치하는 데 1주일이 걸리는 만큼 시일이 촉박한데도 불구하고 「너무 느긋하다」는 것. 따라서 유선방송협회(회장 김재기)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험방송을 3개월간 연기하는 방안등 6개항을 공보처에 건의하고 있다.한편 공보처는 이와관련해 「유선방송준비 상황 특별팀」을 구성,일제 점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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