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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타결 해역 위치… 실효성 없어

    미타결 해역 위치… 실효성 없어

    독도 인근에 대한 일본 해양보안청 탐사선의 탐사 방침으로 촉발된 한·일 분쟁에서 수로탐사·해저지명·측량선·조사선·탐사선 등 낯선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배타적경제수역(EEZ)과 중간수역에 대한 차이점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로 측량 바다 속의 높낮이, 다시 말해 해저의 지형을 음파로 측량하는 행위를 수로측량이라고 한다. 수로 측량은 해도 제작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조사이다. 이를 토대로 3차원의 해저모형과 해도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항만건설, 해양개발에도 이용한다. 먼거리를 항해하는 상선은 대부분 수심을 측량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다만 상선은 선박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수심을 확인하는 것이며, 해도를 만들고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측정하는 GPS 장비를 이용, 정확한 위치와 그 지점의 수심을 측량하는 보다 정밀한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수로 탐사’는 크게 ‘수로 측량’‘수로 조사’로 분류할 수 있다. 해양조사원에 따르면 단순히 바다 속 깊이를 측량할 경우 ‘수로 측량’, 해저지형과 해류 등을 조사하는 것을 ‘수로 조사’라고 한다. 여기에 해저의 중력과 지자기 해저의 퇴적층 등 천부지층을 포함하면 폭넓게 ‘해양조사’라 한다. 따라서 배의 명칭을 해양조사선이라고 한다.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항에 정박하고 있는 메이요(621t)호와 가이요(605t)호를 언론에서는 측량선 탐사선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해양조사원은 수로측량 및 해양관측 장비를 갖추고 있는 해양조사선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해양조사선은 7척이 있다. 해양2000호는 2500t급이고, 바다로 1호는 695t으로 수로측량 및 해양관측 탐사장비가 탑재돼 있다. ●해양 지명 해저는 만조시 물에 잠기는 부분으로 우리나라는 1996년과 1997년 독도 인근해역을 정밀 조사해 수심과 해저지형을 측량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해양지명위원회에서 18개 해양지명의 이름을 지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사부 해산’(해산은 해저에서 솟아난 산)도 이때 명명됐다. 정부는 이들 해저 지명의 국제지명위원회 등록 여부를 검토중에 있다. 일본은 이사부해산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이미 국제해저지명집에 ‘순요퇴’라는 일본명으로 등재돼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해저 지명집 이름등재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심과 지형 등 상세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내용이 빠져 있다. 또한 미타결된 해역이어서 실효성이 없다. 국제해저지명집에는 일본명 ‘순요퇴’는 일본 해도에서 인용했다고 적고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 해저 해산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배타적 경제수역에 위치해야 한다. 배타적 경제수역은 우리나라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은 배타적 경제수역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양국 연안까지의 거리가 400해리가 안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12해리 영해가 주권이 미치는 곳이라면 배타적경제수역은 해저의 광물자원 개발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조사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여기서 배타적경제수역과 한·일 중간수역(공동어로수역)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독도 중간수역은 양측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곳이다. 이에 따라 두 나라의 어선이 고기잡이를 위해 중간수역을 만들어 어업협정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는 독도 인근의 배타적경제수역을 독도와 일본의 오키제도 중간선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울릉도와 독도의 중간선을 배타적경제수역이라고 주장한다. 강동형기자 yunbin@seoul.co.kr
  • [지금 강원 동해안은] 海中林·요트시설 추진…한국의 나폴리 꿈꾼다

    [지금 강원 동해안은] 海中林·요트시설 추진…한국의 나폴리 꿈꾼다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 오염되지 않은 바다’ 국내 최고의 청정지역인 강원도 동해안이 사계절 관광지를 꿈꾸고 있다. 동해안에서는 처음 요트 마리나를 설치하고, 바다속에는 해중림(海中林)을 조성하는 등 대규모 해안관광 기반조성 사업이 추진된다. 또 마을마다 톡톡 튀는 체험관광과 특색이 있는 바다축제를 앞다퉈 운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바다 접근을 허용치 않는 군부대 철조망과 해안침식, 열악한 접근도로망, 국·도립공원과 경관보호구역 등의 규제가 체계적인 개발에 족쇄가 되고 있다. 아름다운 항구로 한국판 ‘나폴리’를 꿈꾸는 강원 동해안의 청사진과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 “횟집·해수욕장으론 더이상 희망없다” ‘한여름 반짝 특수로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지는 관광객을 잡아라.’ 강원도 동해안이 사계절 관광객을 유혹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고, 횟집과 해수욕장 운영 등 단조로운 옛날 방식의 답습만으로는 더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달부터 양양군 수산항에 요트 마리나 시설이 추진된다. 국내에서는 부산 광양만과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의 2곳이 민자로 마리나 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각 5억원씩 1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우선 요트 20여척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올 11월이면 시설이 완공돼 동해안의 새로운 명소가 될 전망이다. 정운신 강원도 환동해출장소 해양관광계장은 “2010년까지 200여억원을 더 들여 클럽하우스 등 다양한 마리나 연계시설을 마련, 품격 높은 동해안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삼척시 초곡·장호항 등 바다속이 아름다운 곳에는 해중림을 집중 조성해 수중 3대 미항으로 선정, 관광객들을 수중으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2010년까지 50억여원이 투입된다. 자치단체별 어촌마을마다 맨손 고기잡이, 바다래프팅 등 특색 있는 어업체험관광을 늘려 소득과 연계시키는 데도 힘쓰고 있다. 급기야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동해안 등대까지 새로운 테마 관광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은 동해시 묵호등대에 세계 각국의 유명 등대모형, 바다조망 데크, 동해어촌 풍경 장식벽, 돔 영상관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수산청 관계자는 “양양군 물치항에는 지난해 지역특산물인 송이버섯을 형상화한 송이모양 등대가 설치돼 항구를 찾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며 “등대가 이제는 관광명소, 청소년들의 체험장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철조망 대신 경관펜스·CCTV 큰 호응 그러나 동해안을 따라 사람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고 있는 군부대 철조망이 이같은 관광개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군부대가 자치단체의 접근조차 막고 있어 철조망 길이가 전체 얼마인지 확인조차 안 되고 있다. 강원지역 해안가에는 얼추 71㎞의 철조망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민들은 “서해와 남해안에는 없는 철조망을 왜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둘러 놓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더구나 자치단체들은 “속초·동해 등 일부지역에서는 경관펜스와 폐쇄회로TV로 교체하면서 반응이 좋은 데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아 다니는 세상에 그것조차 꺼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다. 동해안 주민들은 해마다 철조망을 놓고 군부대(합참본부)와 자치단체가 벌이는 줄다리기가 가장 큰 이슈가 되기도 한다. 올해는 5.1㎞의 철조망이 경관펜스로 바뀔 전망이다. 또한 백사장 침식도 걸림돌이다. 겨울철 파도와 너울성 파도, 해류 등에 쓸려 나가고 쌓이는 게릴라식 백사장 침식과 퇴적작용이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고 있다. 동해안 백사장은 최대 관광자원이자 생태유지, 자연정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해마다 그 침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실례로 동해안 최대 해수욕장인 강릉 경포해수욕장과 강문해수욕장은 지난 겨울 폭 10m, 길이 500m가량이 파여 인근 횟집촌의 해수인입관이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같은 현상은 강릉시 주문진과 사천진리, 양양군 현남면, 속초시 조양동 해안산책로 등 동해안 곳곳에서 발생해 골치를 썩이고 있다. # 체계적인 행정제도 개혁 절실 동해안 곳곳이 국립공원과 낙산·경포도립공원 등 각종 공원지역으로 지정된 점도 깔끔하고 체계적인 관광지 개발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공원구역지구로 묶어 난개발을 막고 천혜의 자연자원을 보호하는 역할에는 긍정적이긴 하다. 하지만 관광객의 욕구를 수용하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는 부적합한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강릉·양양 주민들은 “체계적인 개발을 하지 못하면서 수십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해 오히려 낙후되고 주변지역의 난개발만 불러오고 있다.”고 불만이 높다. 경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도 개발에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얼마전 강릉시는 심곡지구에 민자를 유치해 대단위 골프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우고 업체와 협의까지 끝냈다. 그러나 경관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무산됐다. 최근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십년이 넘도록 공사판으로 전락한 주요도로망과 이런저런 개발규제 속에 개발되지 않은 접근도로망의 부실도 아름다운 동해안 개발을 방해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지금 강원 동해안은] 海中林·요트시설 추진…한국의 나폴리 꿈꾼다

    [지금 강원 동해안은] 海中林·요트시설 추진…한국의 나폴리 꿈꾼다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 오염되지 않은 바다’ 국내 최고의 청정지역인 강원도 동해안이 사계절 관광지를 꿈꾸고 있다. 동해안에서는 처음 요트 마리나를 설치하고, 바다속에는 해중림(海中林)을 조성하는 등 대규모 해안관광 기반조성 사업이 추진된다. 또 마을마다 톡톡 튀는 체험관광과 특색이 있는 바다축제를 앞다퉈 운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바다 접근을 허용치 않는 군부대 철조망과 해안침식, 열악한 접근도로망, 국·도립공원과 경관보호구역 등의 규제가 체계적인 개발에 족쇄가 되고 있다. 아름다운 항구로 한국판 ‘나폴리’를 꿈꾸는 강원 동해안의 청사진과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 “횟집·해수욕장으론 더이상 희망없다” ‘한여름 반짝 특수로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지는 관광객을 잡아라.’ 강원도 동해안이 사계절 관광객을 유혹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고, 횟집과 해수욕장 운영 등 단조로운 옛날 방식의 답습만으로는 더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달부터 양양군 수산항에 요트 마리나 시설이 추진된다. 국내에서는 부산 광양만과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의 2곳이 민자로 마리나 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각 5억원씩 1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우선 요트 20여척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올 11월이면 시설이 완공돼 동해안의 새로운 명소가 될 전망이다. 정운신 강원도 환동해출장소 해양관광계장은 “2010년까지 200여억원을 더 들여 클럽하우스 등 다양한 마리나 연계시설을 마련, 품격 높은 동해안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삼척시 초곡·장호항 등 바다속이 아름다운 곳에는 해중림을 집중 조성해 수중 3대 미항으로 선정, 관광객들을 수중으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2010년까지 50억여원이 투입된다. 자치단체별 어촌마을마다 맨손 고기잡이, 바다래프팅 등 특색 있는 어업체험관광을 늘려 소득과 연계시키는 데도 힘쓰고 있다. 급기야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동해안 등대까지 새로운 테마 관광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은 동해시 묵호등대에 세계 각국의 유명 등대모형, 바다조망 데크, 동해어촌 풍경 장식벽, 돔 영상관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수산청 관계자는 “양양군 물치항에는 지난해 지역특산물인 송이버섯을 형상화한 송이모양 등대가 설치돼 항구를 찾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며 “등대가 이제는 관광명소, 청소년들의 체험장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철조망 대신 경관펜스·CCTV 큰 호응 그러나 동해안을 따라 사람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고 있는 군부대 철조망이 이같은 관광개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군부대가 자치단체의 접근조차 막고 있어 철조망 길이가 전체 얼마인지 확인조차 안 되고 있다. 강원지역 해안가에는 얼추 71㎞의 철조망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민들은 “서해와 남해안에는 없는 철조망을 왜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둘러 놓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더구나 자치단체들은 “속초·동해 등 일부지역에서는 경관펜스와 폐쇄회로TV로 교체하면서 반응이 좋은 데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아 다니는 세상에 그것조차 꺼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다. 동해안 주민들은 해마다 철조망을 놓고 군부대(합참본부)와 자치단체가 벌이는 줄다리기가 가장 큰 이슈가 되기도 한다. 올해는 5.1㎞의 철조망이 경관펜스로 바뀔 전망이다. 또한 백사장 침식도 걸림돌이다. 겨울철 파도와 너울성 파도, 해류 등에 쓸려 나가고 쌓이는 게릴라식 백사장 침식과 퇴적작용이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고 있다. 동해안 백사장은 최대 관광자원이자 생태유지, 자연정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해마다 그 침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실례로 동해안 최대 해수욕장인 강릉 경포해수욕장과 강문해수욕장은 지난 겨울 폭 10m, 길이 500m가량이 파여 인근 횟집촌의 해수인입관이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같은 현상은 강릉시 주문진과 사천진리, 양양군 현남면, 속초시 조양동 해안산책로 등 동해안 곳곳에서 발생해 골치를 썩이고 있다. # 체계적인 행정제도 개혁 절실 동해안 곳곳이 국립공원과 낙산·경포도립공원 등 각종 공원지역으로 지정된 점도 깔끔하고 체계적인 관광지 개발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공원구역지구로 묶어 난개발을 막고 천혜의 자연자원을 보호하는 역할에는 긍정적이긴 하다. 하지만 관광객의 욕구를 수용하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는 부적합한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강릉·양양 주민들은 “체계적인 개발을 하지 못하면서 수십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해 오히려 낙후되고 주변지역의 난개발만 불러오고 있다.”고 불만이 높다. 경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도 개발에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얼마전 강릉시는 심곡지구에 민자를 유치해 대단위 골프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우고 업체와 협의까지 끝냈다. 그러나 경관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무산됐다. 최근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십년이 넘도록 공사판으로 전락한 주요도로망과 이런저런 개발규제 속에 개발되지 않은 접근도로망의 부실도 아름다운 동해안 개발을 방해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올 여름은 서늘?

    올 여름은 서늘?

    올해는 유례가 없는 강력한 라니냐 현상이 찾아와 한반도에 이상 저온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5일(현지시간) “남미 서쪽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올해초부터 정상치보다 0.5∼1.0℃ 낮게 측정됐다.”면서 “광범위한 열대 태평양의 바다와 대기 조건을 종합할 때 라니냐 초기 단계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WMO는 언론에 배포한 보고서에서 “상당한 강도와 지속기간을 가진 라니냐가 이처럼 빨리 찾아온 적이 없다.”면서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라니냐는 9∼12개월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나 때에 따라 2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미국 해양대기국(NOAA) 관계자는 지적했다. 유럽우주국(ESA) 과학자들도 라니냐가 시작됐다는 징후를 포착했다. 최근 ESA의 인공위성 사진에 따르면 동태평양 해수면의 높이가 서태평양 해수면보다 60㎝가량 낮다고 우주항공 전문 사이트인 스페이스데일리가 보도했다. 해수면의 높이가 낮을수록 바닷물이 차갑다는 뜻이다. 라니냐가 오면 한반도와 일본, 아프리카 서부와 남동부에 이상 저온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호주 등지에서는 비가 평균보다 많이 오고 미국 남서부와 플로리다, 중남미 서부의 날씨는 건조해지는 것이 전형적이다. 남아시아의 경우 강우량이 늘어날 수도 있다. ‘라니냐’는 여자 아이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동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현상이다.1998∼2001년 맹위를 떨쳤던 엘니뇨의 반대 현상으로 해류를 타고 지구 곳곳에 기상 이변을 낳는다. 둘 다 자연발생적 순환 현상이지만 지구온난화로 과거보다 두드러지고 잦아졌다는 게 과학자들의 추측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신나는 과학이야기] 해안사구는 해안생태계 보호막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났다. 옛 사람들은 우수가 지나면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는다고 했다. 얼었던 강이 풀림과 동시에 물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이 녹아 흐르면 동면했던 동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생명의 새 기운이 천지에 뻗칠 것이다. 그 모든 생명과 자연의 중심에 ‘물’이 있다. SBS방송은 지난주 ‘물은 생명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신두리 사구(沙丘)의 골프장 건설 논란을 다뤘다. 신두리 사구는 우리나라 최대의 해안사구로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된 곳이다. 그런데 지난 2004년 이곳에서 80m 떨어진 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사업계획이 발표되면서 신두리 사구를 보존하자는 의견과 지역경제를 위해 개발돼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해안사구는 해류에 운반된 모래가 파도에 의해 해안으로 밀려 올려지고 그곳에서 바람의 작용을 받아 언덕 모양으로 쌓여서 형성되는 지형을 말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겨울철에 불어오는 매서운 북서풍의 영향으로 모래가 쌓여 이뤄진 모래 언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바람자국 등 사막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이 나타나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로 사구의 원형이 잘 보존돼있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해안사구는 육지와 바다 사이의 퇴적물 양을 조절하며 폭풍·해일로부터 해안을 보호하고, 내륙과 해안의 생태계를 이어주는 기능을 한다. 또 사구는 물 저장 능력이 탁월하다. 두꺼운 모래층이 해수와 담수를 밀도 차에 따라 분리하면서 모래에 의해 정화된 깨끗한 물을 지하수로 저장하는 능력이 있다. 실제로 갈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신두리 사구 곳곳에는 습지의 흔적인 젖은 모래들이 발견된다. 신두리 사구 안에 위치한 사구습지인 두웅습지는 희귀종들의 서식처가 돼주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상수원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안사구는 130여개. 이 가운데 보존이 잘된 곳은 19개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의 해안사구는 주변이 해수욕장으로 개발되면서 해안도로와 펜션 등이 들어서 거의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구는 자연 상태에서 이동을 통해 계속 성장하며 변화돼 가는 지형이므로 인공 구조물들은 자연스러운 지형 형성을 방해한다. 또한 서해안 사구 형성의 중요한 공급원인 모래 공급이 방조제 및 매립사업으로 급격히 줄어 사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사구가 훼손되면 주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자연방파제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무엇보다 깨끗한 지하수가 고갈되게 된다. 실제로 신두리 옆 마을인 정죽리의 경우 사구의 모래를 채취한 이후 지하수가 말라버렸고 남은 물은 해수가 섞여 농업용수로밖에 이용할 수 없게 됐다. 물 부족국가인 우리나라가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소중한 물의 자원을 오염으로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1만 5000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물 저장고 사구가 사라진 뒤 “우물이 마른 뒤에야 우리는 물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되새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문정 숙명여고 교사
  • ‘장어 고향’ 수수께끼 풀어

    ‘장어 고향’ 수수께끼 풀어

    |도쿄 이춘규특파원|70년 이상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장어의 산란지가 일본열도에서 3000㎞ 떨어진 괌 북서쪽 마리아나제도 서쪽 바다로 확인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도쿄대 해양연구소 연구진은 지난해 7월 괌에서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스루가해산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바다에서 부화된 지 이틀된 치어(雉魚) 400마리를 채집했다고 영국 과학지 네이처(23일자)를 통해 밝혔다. 장어의 치어는 보통 산란 뒤 이틀만에 부화하기 때문에 산란지는 채집 장소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수역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일본 장어는 성장하면서 북적도해류, 쿠로시오해류 등을 따라 한국과 일본, 타이완, 중국 등 동아시아 연안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8년간 담수에서 살다 산란기가 되면 바다로 돌아간다. 그러나 바다에서의 생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에는 16종류의 장어가 있다. 이중 산란장소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taein@seoul.co.kr
  • 2100년 ‘영원한 凍土’ 10%로

    |도쿄 이춘규특파원|지구 온난화가 지금의 속도로 진행되면 2100년에는 북극권역을 중심으로 한 영구동토(永久凍土)층 면적이 10분의 1정도로 감소, 생태계나 인간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6일 나왔다. 미국 대기연구센터(NCAR) 등의 그룹은 이러한 연구결과를 공개하면서 “동토층이 풀리면 흙안에 고정됐던 이산화탄소가 대기중에 방출되는 등 온난화를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부를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그룹은 기온변화에 의한 동토의 확장이나 축소, 지표의 적설량 등도 예측할 수 있는 기후모델을 개발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북극권역의 토양에 주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의 속도로 증가하면 현재 북미나 러시아 등에 걸쳐 있는 약 1100만㎢의 영구동토층이 2050년에는 거의 반으로 줄고,2100년에는 10분의 1에 해당되는 약 100만㎢가 된다. 아울러 동토층의 얼음이 녹아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담수의 양이 2100년에는 28% 증가, 각 지역의 해류 등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까지 있다고 도쿄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연구그룹에 따르면 동토층의 감소는 순록 등 북극권역의 생물의 생식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건물붕괴나 도로 함몰 등의 피해도 예상된다. 동토층에서 이산화탄소 등이 방출되거나 동토지대에 삼림이 발달, 지면이 흡수하는 열의 양이 증가하면 온난화를 가속시킬 가능성도 예측됐다. 영구동토는 고위도 지역이나 고산지대중에서 여름에도 온도가 섭씨 0도 이하로, 적어도 2년 이상 얼어 있는 땅을 말한다. 캐나다나 미국 알래스카주, 시베리아, 남극 등에 분포한다. 두께는 수∼수백m가 되는 곳도 있다. 지구상 육지면적의 20%정도다. 시베리아에서는 1525m 깊이까지 나타난다.taein@seoul.co.kr
  • 내셔널 지오 ‘거대건축 미학’ 페트로나스 등 28일부터 소개

    내셔널 지오 ‘거대건축 미학’ 페트로나스 등 28일부터 소개

    거대 건축물이 전달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이면에 담겨 있는 놀라운 기술들이 안방을 찾는다. 케이블·위성 다큐멘터리 전문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이 메가스트럭처를 소재로 테마기획 ‘거대함의 미학’을 준비했다.28일부터 5일 동안 매일 오후 10시 방영된다. NGC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제작된 건축 관련 다큐멘터리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5편을 엄선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세계적인 건축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댐, 빌딩, 방파제, 다리, 항구 등 다양한 구조물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루는 한편, 상상을 불허하는 기술적 진보를 살펴볼 수 있다. 또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해 건설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시청자들이 건축과 관련된 기술과 개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첫 날에는 쳐다만 봐도 아찔한 높이를 자랑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88층 쌍둥이 빌딩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452m)가 위용을 뽐낸다.‘452m! 페트로나스 타워의 비밀’ 시간이다. 약 5년 동안 악조건을 딛고 세계 최고가 건설되는 과정을 담았다. 29일에는 ‘세계 최대의 댐’이 방송된다. 전 세계 수력발전소 가운데 최대 발전 용량을 지닌 이타이푸 댐을 조명하는 것. 브라질과 파라과이가 양국 국경을 따라 흐르는 파라나강에 1975년부터 17년에 걸쳐 함께 만들었던 댐이다. 미국토목학회(ASCE)가 ‘20세기의 불가사의한 7대 구조물’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어 네덜란드의 자랑인 ‘북해 방파제’를 통해 국토의 25%가 해수면 보다 낮은, 재앙에 가까운 자연환경을 극복해가는 네덜란드의 건축 기술을 선보인다. 특히 물에 떠 있다가 신호가 감지되면 곧바로 닫히는 수상 구조물을 창조한 공학 기술의 발전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새달 1일에는 ‘세계 최대의 항구’로 전 세계 화물의 25%가 집중되고, 세계에 공급되는 오일의 절반가량이 거래되는 해상 수송의 중심지 싱가포르항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명물 금문교가 복원되는 과정을 다룬다.‘4조원의 금문교 복원’ 시간이다. 건설된 이후 70여 년 동안 자연 환경의 공격을 받아왔던 금문교는 현재 4억달러가 투입돼 보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진도 8.3 강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과 소용돌이 치는 해류, 철을 부식시키는 거친 강풍 등을 극복하기 위해 거듭나기를 하는 금문교에 초대된다. NGC 한승엽 편성팀 과장은 “이번 기획은 재해에 대비하는 유지보수 과정도 상세하게 소개하는 등 향후 국내 건축산업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바닷물이 싱거워진다 ?

    바닷물이 싱거워지고 있어 해류 변화와 그에 따른 기후·생태 변화가 우려된다고 MSNBC 인터넷판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 연구원 루스 커리와 노르웨이기상연구소 세실 모리츤은 최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실린 보고서에서 1965∼1995년 1만 9000㎦의 담수(민물)가 북극해에 흘러들어 염도를 떨어뜨렸다고 밝혔다.해마다 멕시코만에 유입되는 담수의 양은 약 500㎦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이 흘려 보내는 담수 양은 연간 5000㎦ 정도다.지구온난화로 빙산이 녹아 흘러드는 담수로 북극해는 1960년대 말부터 염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담수 유입량을 측정 하는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사이언스에 실린 보고서에서 “대양 해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상층부 1000m의 북극해 해수층에 지난 10년 간 담수가 점점 많이 축적되고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연합
  • 남해에 고양이 나라

    남해에 고양이 나라

    사육단지 마련된 욕지도(欲知島)에 신나는 경기(景氣) 한 마리에 5천원 호가 지금 식구 천 2백 마리 엊그제까지 고양이 한 마리에 3, 4백원 하던 것이 벌써 5천원에 호가되고 있다. 무인도 70여 개와 유인도 60여 개를 안고 있는 통영군이 섬 지방의 쥐잡이 방안으로 착수한 고양이 사육의 범위가 확대되어 독립된 섬 하나를 고양이 사육단지로 선정, 수출용과 식육용, 애완용으로 구분, 사육하여 해외에까지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10월 15일부터 작업을 착수한 욕지도는 벌써 1천 2백 마리를 외지로부터 수입, 기르고 있다. 이곳 2천 2백 세대의 섬 사람들은 한 달 안으로 집집마다 한 마리 이상 고양이 기르기로 자발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소한 1년에 3배 이상의 소득이 생기기 때문에-. 70년까지 10만 목표 연간 10배의 번식율 통영군은 이 사육단지에 올해 말까지 5천 마리 이상 기를 수 있도록 행정력을 뒷받침하고 오는 70년까지는 한산도(閑山島)와 사양도(蛇梁島)까지 사육단지를 확장, 10만 마리 이상 사육시켜 완전한 고양이의 나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남해안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에는 쥐 한 마리 구경할 수 없게 되고 전국 농가에까지 보급이 될 경우 쥐 소탕작전은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암코양이는 1년 이상만 자라면 새끼를 밸 수 있고, 1년에 세 번 새끼를 낳는데 한 번 분만에 3마리 내지 5마리를 낳기 때문에 연간 10배의 번식율을 갖고 있다는 것.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재일교포는 10월 25일 욕지면장 앞으로 계속 수출계약을 맺자고 편지를 해왔는데 일본의 고유 악기인 삼미선(三味線:사미센) 재료로 쓰기 위해서라는 것. 가죽은 삼미선(三味線:사미센)의 재료 주문 밀리나 일체 사양 젖 8개가 달린 고양이 가죽이 삼미선 악기 재료로서는 최고라는데 이 가죽을 구할 수 없어 고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전악기인 소고(小鼓)가죽도 고양이 가죽이 최고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일본 상선회사 등에서도 배마다 필수적으로 흑색 고양이를 키우는데 계속 공급을 절충 중에 있고, 국내 큰 중국음식점에서도 고양이 고기를 구할 수 없어 특유한 고양이 요리를 내놓지 못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모두들 키우고 있기 때문에 판로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 그러나 69년까지는 사육단지 확장을 위해 일체 외지 반출은 않기로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쥐 소탕의 행정 뒷받침 년 73만kg 양곡 절약도 고양이는 우선 전염병이나 각종 질병을 앓는 예가 거의 없고 바닷가의 생선 찌꺼기가 많아 자연사료가 풍부하여 섬 지방의 대량 사육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통영군수 김상조(金相朝)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김군수는 10월 20일 욕지도에 국한해서 쥐약판매금지령을 내렸다. 고양이가 약 먹고 죽은 쥐를 먹을 때는 같이 죽는다고 해서 취해진 조치. 김군수가 분석한 행정면으로서의 효과를 보면 내년 말까지 2만 마리의 고양이가 섬 지방에 분산되면 쥐 소탕으로 연간 73만 2천kg의 양곡이 절약되어 1,464만원의 이익이 생기고 지금까지 낭비되었던 쥐약대 138만 7천원(호당 250원 계산)이 절약되며 새끼 분만으로 생기는 소득이 6,606만원이나 된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이런 계산으로 국내 분양과 해외수출로 판로가 완전히 틔어 본격적인 상품화의 거래가 된다면 70년대부터는 통영군 단독으로 수억원의 소득을 보게 된다고 원대한 꿈을 펼쳤다. 기르는데 돈 한 푼 안들고 이름표만 달아 자연방목 더욱이 이 고양이 사육은 사육비가 필요없어 정부의 융자나 보조가 없어도 되고 사육에 필요한 우리나 기구가 없어도 되기 때문에 고양이 몸에 주인의 표시만 해놓고 섬 안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자랄 수 있는 것이 특색. 이래서 욕지도의 중심부락인 동항리, 서산리, 두미리 등지 사람들은 대부분 육지로 고양이 구하러 나가있고 부락별로 예쁜 고양이, 귀족 고양이 기르기 대항운동을 벌여 시상제도도 마련, 경남도지사의 우승「컵」까지 얻어 놓았다고 한다. 가장 값비싼 고양이는 3색 고양이로 현재 시가 6천원까지 올라 있고 전신을 통해 흰 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새까만 고양이는 외항선박이 값을 엄청나게 불러도 재수있는 동물이라고 사간다는 것. 현재 이 곳에서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고양이는 인도 지방의 야생 고양이로서 외항선박 선원들이 잡아다가 애완용으로 기르다 번식시킨 것인데 중국 등지에서는 식용으로 고급요리에 해당된다는 것. 가난의 상처 떨쳐 버리고 한 마리에 년 36불의 소득 이렇게 독특한「아이디어」에 새 터전을 마련한 신생 고양이 나라 욕지도는 삼천포항에서 일본 대마도쪽으로 20여「마일」떨어진 가난한 섬. 10여년 전만 해도 고등어 전갱이 주산지로 전국에서 가장 풍성한 어항으로 손꼽혔던 곳인데 해류 변동으로 고기떼도 사라지고 화려했던 옛날이 안겨준 가난의 상처만을 안고 있는 섬이었다. 이제 고양이 나라로 탈바꿈하면서 다시 한번 섬사람들은 풍성한 꿈을 안고 들떠있는 것이다. 한 지에 고양이 한 마리만 키워도 연간 36「달러」의 소득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 의욕은 크게 부풀어 있는 것이다. <공하종(孔河棕)·조기제(趙棋濟)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1/10 제1권 제8호 ]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행정구역명은 북제주군 추자면이다. 그런데 추자도에서 제주도 토박이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대개 호남 말씨다. 남도 사투리의 ‘징함’이 빠진 채 표준화되어 조금은 무미건조하다.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조금 달라 제주도 말투가 엿보인다. 자연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지대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전라남도 영암·완도군 등에 딸린 섬이었다.1946년 북제주군에 편입됐으니 불과 60여년 전이다. 재미있는 것은 1831년에 잠시 제주목에 이속됐다가 1891년에 완도군이 창설되면서 이곳으로 되넘어간 기록이 나온다. 좀 왔다갔다 했지만 그러나 추자도는 틀림없는 호남문화권이다. 뱃길은 여전히 목포로 열려져 있어 농산물 공급은 물론이고 상급학교도 대부분 이곳에서 다녔다. 덕분에 추자도 1세대들은 ‘전라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근래 2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이 덕분에 그들은 비교적 ‘제주도적’이다. 이곳 공무원들이 대개 제주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추자도 토박이로 제주도에서 교육받고, 집안에서는 전라도 말을 쓰는 사람의 경우, 그 문화적 정체성은 대단히 복잡하다. 제사나 장례, 세시풍속 등은 확실히 전라도적이다. 반면 제주도 출가 잠녀가 아니라 토박이 잠녀들이 물질하는 형태는 ‘제주도적’이며, 전복이나 소라맛 역시 ‘제주도적’이다. 그러나 묵리의 처녀당에서 해마다 올리는 당제의 명칭과 이때 걸궁이란 풍물굿을 동원하는 것은 ‘전라도적’이다. 풍물굿이 없던 제주도에 ‘걸궁’이 전파된 것이니, 추자도 걸궁은 본디 한반도 최남단의 풍물굿이 아니었던가 싶다.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추자도의 이런 중간자적 성격은 예로부터 육지와 제주도의 징검다리였다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지어졌다. 제주행 비행기에서는 망망한 바다 위에 떠있는 추자군도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다가 바람을 피해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추자도다. 지금도 상추자항의 봉줄리산 기슭에는 최영 장군 사당이 위엄있게 포구를 굽어보고 있다. 옛날에는 추자도를 징검다리 삼아 제주도로 향하였다. 예전에는 추자를 주자(舟子)로 불렀으니, 영암·무안·나주·진도 등 전라남도 남서해안으로 가는 뱃길이었다. 제주도는 애월이나 조천으로 드나들었다. 당연히 이름난 유배지였다. 유배객 중에는 해배 후 되돌아간 이도 있었으나 아예 섬사람이 된 이도 많았다. 정조 때 안조환은 유배 당시 천신만고의 생활상을 이렇게 노래했다.‘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천리 다 지내어 추저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하다.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아는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니 물소리라….” 상추자, 하추자로 위·아래 섬이 갈리는데 추자교로 이어져서 이제는 상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상추자항은 대서·영흥리, 하추자항은 신양리 소속이며, 그밖에 예초·묵리 같은 아름다운 포구들이 흩어져 있다. 단단한 바위밭에 해류가 거칠게 흘러 흐리멍텅한 고기들은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참돔이나 감성돔·우럭·농어 같은 고급 어종이 바위밭에서 물살과 씨름하면서 육질을 키우는 까닭에 그야말로 ‘바다낚시의 천국’이다. 도처에 보이느니 낚시꾼들이다. 추자도는 끊임없이 왜구에게 시달렸다. 왜구들은 제 집 드나들 듯 추자군도를 드나들었으며 심지어 20세기 초반까지도 수적(水賊)이란 이름의 바다도둑이 설쳐댔다. 일제시대, 이곳 수산자원에 눈독을 들인 일인들은 대서리에 진을 쳤다. 학교와 조합을 만들고 삼치어업에 매달렸다. 기선급 선박이 엄청난 양의 삼치를 잡아 그대로 상고선에 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른바 추자도 삼치파시는 이들 일본배들 때문에 이뤄졌다.1000여명이 넘는 ‘뱃동서’들이 일시에 포구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술집과 여관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일본 기생도 들어오고, 술꾼들은 취하여 쌈박질을 일삼아 이래저래 ‘난장’이었다. 당시의 여관 흔적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본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삼치어업은 이어졌다. 삼치는 예전 방식대로 잡는 즉시 일본으로 수출했으며, 덕분에 파시도 70년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시와다 그물사건’이라는 전설 같은 일제하 어민항쟁이 전해진다.1926년 5월14일, 추자면민들이 대거 운집해 면장과 추자어업조합에 대한 불편과 불만을 토로했다. 형세가 대단히 격렬해 목포와 제주에서 경찰이 들이닥치고, 주동자 21명이 검거,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어업조합과 면장 등이 공모, 은행 빚으로 어구를 사들인 뒤 2배나 비싸게 팔았는가 하면,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우뭇가사리를 강제 매입해 빚어진 사건이었다. 낌새를 알아 챈 조합장이 주재소와 결탁해 어민들을 억압하려 하자 예초리 남녀 700여명이 함께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본디 이곳 사람들은 외줄낚시로 필요한 만큼의 고기만 낚았으나 일본인들이 대형 그물로 싹쓸이하듯 고기를 잡아가자 이에 반발한 사건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곳 노인들은 “물반 고기반이었는데 왜놈들이 싹쓸이해 가 그걸 못 보겠어서 다들 일어선 게지.”라고 말한다. 일제의 수탈적 약탈어업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추자도에는 딸린 섬들이 42개나 된다. 돈대산에 올라서니 완도군 청산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청산도 삼치파시가 추자도 삼치파시와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구로시오 해류가 흐르는 청산도와 나로도, 추자도 남쪽에 삼치떼가 몰려든 것이다. 추자도 최남단에는 관탈도가 있다. 옛적 귀양객들이 이곳에 이르러 다왔다는 생각에 갓을 벗었다 해서 ‘관탈’이라는 지명이 붙었단다. 관탈도에서는 불과 30분이면 제주항에 닿는다. 그러니 완도-청산도-추자도-관탈도 등이 징검다리처럼 일렬로 늘어서 육지와 제주도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옛날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와 남해 바다를 만들 때 징검다리는 박아놓은 섬들은 아닐는지. 이곳 토박이인 황필운(38) 선장과의 약속에 맞춰 선착장으로 나갔다. 매일 아침 9시면 정확하게 행정선 추자호가 바다로 떠난다. 횡견도와 추포도를 들러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길게 누워 있는 횡견도의 바람막이 돌담이 이곳의 모진 삶을 웅변해 준다.13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여자들은 물질로 전복·소라 등을 잡고, 남자들은 톳·가사리·미역 등 해초를 뜯어 생활한다. 한때 횡견분교까지 있었으나 잡초만 무성하고, 보리농사로 자족자급이 가능했던 섬이 지금은 인적이 끊겨 한적하다. 추포도는 2가구가 등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1가구만 산다. 낚시꾼들 뒷바라지로 생계를 잇는다. 고도에서 사는 1가구, 결코 쉽지 않은 삶일 것이다. 정 다산이 ‘남도경영’을 부르짖으며 경세유표에서 ‘남도의 섬을 잘 다스려야 재물이 숲처럼 일어서리라.’라고 했건만, 이들 낙도는 오로지 낙도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파도 아래 잠들어 있을 뿐이다. 요트처럼 빠른 배라면 뭍에서 불과 1시간도 채 안돼 당도할 수 있는 이 ‘보물섬들’이 오로지 ‘떠나가는 섬’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우리 바다의 미래는 아득하다. 추자군도의 최대 문제는 역시 물이다. 횡견도 같은 섬에서는 아예 빗물을 받아 쓴다.‘물 쓰듯’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추자 본도에는 담수화공장이 있어 바닷물로 만든 비싼 물을 먹고 산다. 그래서 집집마다 거대한 물탱크 한두 개쯤은 갖추고 있다. 추자도는 아름다운 풍광에 비해 너무나 덜 알려진 섬이다. 강태석 면장은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천혜의 어족자원을 갖고 있어 21세기형 관광에 적합한 곳인데, 문제는 뱃길이지요.” 무인도를 이용한 청소년 자연생태체험학습장과 유료 유어장 등이 면에서 꿈꾸는 올 여름 사업들이다. 제주항에서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1일 관광도 가능하지만 배편이 하루에 편도 1회뿐이라 잠을 자고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추자의 돈대산을 오르자 눈 아래 신양항이 굽어보이고, 멀리 전라도 바닷가가 한눈에 잡힌다.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도 보인단다. 해양성 기후라 바람 심한 것을 빼면 아열대식물도 생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선지 곳곳에 동백이 유난히 많다. 추자도에 딸린 사수도는 상록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고, 여기에 흑비둘기와 슴새들이 번식해 1982년 천연기념물(333호)로 지정되었다. 전복, 소라, 미역, 톳, 천초가 지천인 곳이 이곳 말고 또 어딨겠는가. 아,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상식이 하나 있다. 추자도 특산품하면 대개 멸치젓을 꼽곤 한다. 지금도 멸젓이 팔리고는 있지만 오늘날 추자도의 최고 특산은 ‘추자굴비’다. “어획량은 최고지만 문제는 덜 알려졌다는 점”이라는 김금충 수협 상무의 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조기들이 동중국해에서 추자도 근해로 몰려오기 때문에 해마다 엄청난 양이 잡힌다. 예전에는 그대로 영광 등지에 생조기로 출하했으나 이제는 아예 굴비로 말리고 있다. 어족이란 참으로 묘한 것, 칠산바다를 떠돌던 조기들 간 곳 몰라 했더니 추자도에 운집했었나 보다. 지금 추세라면 법성포 굴비 못지 않아 ‘추자굴비’ 없으면 차례도 지내지 못할 날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실제로 추자군도에서 최대의 주력품으로 굴비를 키우고 있으니 곳곳에 조기잡이 안강망 어선들이 눈에 뜨인다. 조기를 잡지 않는 비수기에는 돔이나 고등어 낚시로 살아간다. 떠나 오면서, 추자도가 ‘오지’란 생각을 싹 잊어버렸다. 제주항에 1시간 만에 도착했고, 곧장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는 데 고작 1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횟감과 함께 넣어 온 얼음이 서울에 도착해서도 그대로이니 ‘멀고도 가깝다.’거나 ‘가깝고도 멀다.’는 야누스적 표현이 모두 맞는 곳이다.
  • [수도권플러스] 해양조사원 ‘해일 모니터망’ 구축

    국립해양조사원은 해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폭풍 해일 모니터링망을 구축한다. 해양조사원은 29일 올해 전남 여수 남방 30㎞ 지점 간여암 해역에 해양 기상관측 부이를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마산, 제주, 부산 등 전국 8개 지역에 해일 모니터링망을 구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육상에 설치되는 ‘극초단파 파고 관측시스템’, 해저에 설치되는 ‘실시간 파고 관측시스템’, 해수면에 고정되는 ‘해양기상 관측 부이시스템’, 해류에 따라 이동하는 ‘이동식 위성 뜰개시스템’ 등 4가지 시스템이다.
  • 73일만에 노 저어 태평양 횡단

    |히바오아(프랑스령 폴리네시아) AFP 연합|프랑스 여성 탐험가 모 퐁트노아(26)가 여성 최초로 혼자 노를 저어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퐁트노아는 지난 1월12일 페루의 칼라오 항구를 떠나 8000㎞의 횡단 항해에 나선 지 73일만에 26일 태평양 남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히바오아의 마르키즈섬 북쪽해안에 도착했다. 퐁트노아는 이날 오후 4시(현지시간) 경도 138.5도를 통과하면서 기나긴 고독의 여행을 끝냈다. 보트가 해안에 닿자 300여명의 환영객들이 퐁트노아를 따뜻이 맞았고 그는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의 인도 아래 해변으로 이동,‘타히아’(여왕)라는 칭호를 받았다. 퐁트노아는 “70일 이상을 혼자 있다가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기 때문에 즐거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번 횡단기록은 남미 대륙과 폴리아네시아 사이의 적도 해류의 도움으로 당초 계획보다 한달 앞당겨졌다. 지난 2003년 여성 탐험가 라파엘라 르 구벨로(프랑스)가 윈드서핑으로 태평양을 횡단했었으나 여성이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퐁트노아는 길이 7m의 보트와 위치정보시스템(GPS), 위성통신 장비에 의존한 채 지난 47년 노르웨이 탐험가 토 헤예르달이 5명의 선원과 101일동안 뗏목을 타고 이동했던 경로를 따라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탐험기간 식사는 냉동건조된 스페인식의 파엘랴와 낚시로 잡은 생선으로 충당했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아, 우리가 즐겨써 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 조차도 큐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지난 10일. 일본 시마네현의회 총무위원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대통령과 한국 외무부가 아무리 ‘내 마누라론’을 주장하고, 침묵으로 묵살하고, 소극으로 일관해도 일은 끝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흥분할 것도 없다. 사태는 예정된 수순을 따랐을 뿐이므로. 주한 일본대사의 당당한 영유권 주장, 아사히신문 경비행기의 독도 진입작전, 게다가 한승조·지만원을 비롯한 국내 극우인사들의 맞불작전까지, 돌이켜 보면 우연은 하나도 없다. 영토분쟁을 표면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9세기 에도막부, 홋카이도 식민화 ‘다케시마’ 주장은 망언이 아니며, 망언은 실제로 없으니 망언이란 말을 써서도 안된다. 체계적이며, 장기지속적인 심대한 해양정책에서 비롯된 국가의지의 또다른 표현일 뿐 결코 돌출발언은 아니다. 일본의 노골적인 행태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 수준이되, 관·민 합동으로 질서정연하게 치고 빠지면서 주연·조연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화려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 정부가 만류했다고 하나 전혀 믿을 게 못된다. 양동작전일 뿐이다.‘식민지근대화론’의 미몽에 취해 선전·선동을 일삼던 지식인들을 비롯, 차제에 지난 수백년간 일본이 아시아 바다에 남긴 족적을 단계적으로 살펴 감고계금(鑑古戒今)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에도(江戶) 막부는 ‘숲속의 사람들’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북해도, 즉 홋카이도를 식민화한다. 일단의 식민경영 세력이 ‘숲의 섬’을 치고 들어갔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보호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아이누들은 박제화되어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2만여명의 혼혈아로 잔존할 따름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이어 사할린으로 손길을 뻗친다.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사실 러시아도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차르 시절, 코사크 기병대를 앞세워 동진을 거듭해 사하·축치·에벤키·캄챠달 등이 살던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들 아닌가. 일본은 이어 남쪽의 류쿠(우리측 사료에는 유구로 기록됨)를 병합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붙인 이름이고 본래는 류쿠국이었다. 독립 왕국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과도 문물교류를 활발히 하며 조공·중계무역에 힘써 문화가 크게 번성한 나라였다. 무역선 활동 범주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등 서남아시아까지 뻗친 해상국가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 6년째 되던 1609년 규슈 남부의 번주인 사쓰마한(薩摩藩)은 3000군사로 류쿠를 점령한다. 단, 정략적 입장을 취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사탕수수 같은 경제적 수탈은 감행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방관·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류쿠는 일면 일본에 수탈당하면서도 중국에 조공의 예를 갖추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사스마한의 점령 이전에도 류쿠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 왔으니, 류쿠와 일본의 악연은 해묵은 것이다. 그러던 일본은 1879년 드디어 ‘류쿠 처분’을 단행한다. 이로써 독립왕국 류쿠는 오키나와현으로 강등되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해양식민화 정책은 전략적 포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집요하게 기다리며 정확히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日정부, 남양군도 침략행위 전면 부정 1874년 청·일전쟁의 전후 보상으로 타이완을 챙긴 것은 교과서에 나온 상식.‘대륙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긴 셈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길 자격이 있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타이완에는 푸젠(福建) 등 남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많았지만 이른바 타이완 원주민인 토착 타이완족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타이완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운명 역시 아이누처럼 박제화되고 만다. 타이완총독부에서 갈고 닦은 식민경영의 노하우가 이후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전수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해양식민화가 홋카이도, 사할린, 류쿠, 타이완 같은 섬 정도에 그친 것은 아니다.1919년 파리강화회의 결과 일본은 사이판, 괌 등이 속한 이른바 남양군도를 자치령으로 분배받는다. 세계열강의 태평양 분할정책에서 그 지분을 챙긴 것. 남양군도는 서태평양 적도 이북의 작은 섬인 미크로네시아의 동쪽 끝 카리바시와 서쪽의 괌을 제외한 엄청나게 드넓은 바다.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지배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본의 남양제도 위임통치령이 되었고,1947∼1986년에는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미국의 태평양 신탁통치제도가 되었으니, 태평양은 태평과는 무관한 격동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로 들어가 설탕, 술, 수산가공품 같은 사업을 펼쳤으며 한때 사이판의 일본인이 10만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 후 최초로 오는 6월 극우인사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대동하고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남양군도에 대한 침략행위의 전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왕이 선 격이다. 당연히 대표적 극우언론인 산케이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에 ‘감격해 하며’ 이를 전면에 도배하는 충성을 과시했다.‘위령의 여행’으로 묘사하면서 ‘남양군도’를 지배하던 향수를 노골적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팔라우의 수도인 코로(Koror) 외곽으로 빠지다 보면 코발트빛 바다 위에 ‘아이고 브리지’가 떠있다. 머나먼 팔라우까지 징용왔던 한국인들이 기아와 고통 속에 ‘아이고’를 연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아이고다리’로 명명되었겠는가. 정신대로 끌려온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명씩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피를 토하고 죽어간 남양군도로 ‘신의 아들’이 ‘위령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한 즉,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격을 높여 다시 대양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른바 태평양전쟁이라 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세계대전의 본질은 해양패권의 각축이다. 일본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사이판과 괌은 물론 필리핀, 팔라우, 티니안, 얍, 뉴기니 같은 섬, 그리고 서진을 거듭하여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식탐을 과시했다. 우리의 인식은 대륙 지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해양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영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덮치기… 집요한 日 해양정책 일본은 세계열강의 해양 재편성에 기초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국제해양법 신질서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기왕에 문제가 되어온 조어도, 일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해양분쟁을 일으킨지 오래다. 미래의 해양자원을 염두에 넣는다면 일본이 조어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너무도 확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손톱만 한 바위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로 명명하고 자기 영토에 포함시켰다. 해양과학자들까지 동원해 섬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침대만 한 섬 하나에 290억엔을 퍼부었다. 이로써 자신의 영토(38만㎢)보다도 넓은 40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된 것. 나아가서 태평양 복판에 떠있는 미나미도리까지 영토로 선포했다. 이렇듯 일본은 해양 영토에 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독도가 어찌 그들의 눈독에서 빠질 수 있었으랴. 이런 만행이 대중국 포위전략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 없이 가능할까. 미국 역시 ‘해양제국’이다. 일제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는 단서가 마련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섬 국가인 필리핀과 반도국가인 한반도를 ‘빅딜’하는 국제적 공모에 가담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태평양의 섬은 거의 없다. 태평양은 공해가 분명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행세를 하고 있다.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는 남양군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일본이 만들어낸 ‘바다 땅따먹기’의 야심작이 아니겠는가. 근래 일본 정부는 해양권 확보에 노골적이다. 경제산업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등이 주동이 된 연락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린다. 숨길 게 없다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까지 인정받는다면 일본은 전체적으로 405만㎢의 배타적 경제수역, 즉 일본 영토의 10배를 뛰어넘는 방대한 해양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일본군이 옥쇄를 대비해 만든 거미줄처럼 얽힌 가마오름땅굴이 있다. 버려졌던 이 땅굴은 한 개인의 희생적 노력으로 현재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곳 이영근 관장은 “현재 공개된 굴은 극히 일부로, 모두 바다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땅굴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 일본군 알트르비행장을 벗어난 송악산 해변에도 미군기를 겨냥했던 동굴들이 줄지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구체적인 해안진지가 한반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평화’라도 韓·日 인식 달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을 감행했던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란(指宿) 바닷가에도 같은 이름의 ‘평화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년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모정을 빙자한 최루성 역사 회고만 존재할 뿐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평화’를 거론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는 상상을 초월한다.‘제국의 바다’를 잊지 못하는 일본의 추억만들기가 계속되는 한 ‘현해탄’의 파고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아, 우리가 즐겨 써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조차도 규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해방 60주년, 일본은 20세기형 제국의 바다를 21세기에 다시 ‘신장개업’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청와대와 외무부의 공식 입장 및 향후 일정부터 듣고 싶다. 또 ‘내 마누라타령’으로 일관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다 끝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마당까지 끌려가 내 영토를 약취당하고 말 것인가.
  • 中·日 영토분쟁 ‘점입가경’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동중국해에 위치한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의 등대를 국유화한다고 밝혀 중국측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역시 중국과 섬이냐 암초냐를 놓고 논쟁 중인 오키노도리시마에 공무원 상주를 추진하는 등 양국간 영토분쟁에서 강수를 계속 두고 있다. NHK는 14일 일본 정부가 일본 최남단 오키노도리시마를 ‘암초’라고 하는 중국측 주장에 대항,‘섬’인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해상보안청이나 기상청 직원을 상주시키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오키노도리시마 주변의 해역을 어업자원과 지하자원에 주권이 미치는 ‘배타적 경제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면적은 두 개의 섬을 합해도 9㎡에 지나지 않아 중국측은 ‘암초’라면서 일본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해양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오키노도리시마가 ‘섬’인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올 여름을 목표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2006년도의 예산안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특히 이미 설치한 시설을 사용한 기상이나 해류의 관측을 더욱 충실하게 하고, 해상보안청이나 기상청의 직원을 상주시키는 것도 적극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오키노도리시마가 속한 도쿄도의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의 “주변 해역에서 어업활동을 하고 해수를 사용하는 발전장치를 설치하고 싶다.”는 제안도 정부측이 지원할 방침이어서 이를 둘러싼 중·일간 갈등도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taei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엄동설한(嚴冬雪寒), 그야말로 깊은 한겨울이다. 겨우살이 짐승들은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채 더 이상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한껏 몸피를 움츠릴 터이며, 벌거벗은 나목들도 더 이상 수액을 얼리지 않기 위하여 한껏 중심을 뿌리에 내릴 터이다. 모든 생명들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하여 안간힘으로 혹독한 추위에 맞서고 있을 때, 어디 사람이라고 다르랴. 더군다나 혹독한 추위가 비단 수은주만은 아닌, 사람살이의 여러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라면 더욱 몸피를 움츠리고 차라리 주검이듯 뿌리 밑바닥으로 잦아들 터이다. ●한겨울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여주 8경 추위며 사람살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혹독하다면, 그대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 소중한 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자.‘소풍농월(嘯風弄月)’이라는 멋스러운 말이 있다. 바람에 휘파람을 불고 달을 희롱하며 기꺼이 한 몸이 되는 경지를 이른다. 어떤가, 차라리 저 바람이며 달만은 아닌 엄동설한과도 어울려 기꺼이 한 몸이 되어 보는 것이.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인 여주에는 뜻밖에도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풍광들이 많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여주팔경’ 혹은 ‘금사팔경’이라 하여 여주의 빼어난 풍광 8가지로, 여주 일대의 남한강을 일컫는 여강에 내려앉는 기러기, 청심루에서 바라보는 달빛,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마을의 저녁연기,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 아래 떠있는 고깃배들의 등불, 영릉의 푸른 신록, 팔대수의 청청한 숲을 꼽았다. 과연 어느 곳에나 드맑게 고답한 기운이 서려 있어, 소풍농월의 그대를 금방이라도 감싸 안을 풍광이다. ‘여주팔경’ 중에서도 나로서는 신륵사 종소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가 없다.1980년대에 신륵사에는 원경(圓鏡)스님이 주지로 주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거의 사흘이 멀다 하고 신륵사를 찾았다. 물론 원경 스님을 찾아서이다. 모르기는 해도 나는 자신이 지닌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없는 혹독한 시절이었을 터이다. 어느 때는 스님을 따라 나 또한 머리를 깎고서 단식을 하거나 혹은 한 달 넘어 머물면서 새벽이나 저녁이면 예불 대신에 신륵사의 종을 치기도 하였는데, 아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여 마침내 온누리로 퍼져가던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이라니! 처음에는 속된 중생의 손에 의하여 울리는 종소리가 혹여 삼십삼천의 뭇생명들을 잘못 인도할까 두려워 심장마저 벌벌 떨려났으나, 차츰 내 손으로 울리는 서른세 번의 종소리가 뭇생명들을 깨우고 또한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원력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다 보면 또 알랴, 어느 날 새벽에 저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어떤 무지함에도 번쩍 눈뜨게 될지. 원경 스님을 처음 대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스님은 역시 여주에 있는 흥왕사라는 절에서 주재하고 있었는데, 신륵사와는 달리 달랑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는 참으로 빈한한 절이었다. 절 식구 또한 빈한한 절답게 원경 스님과 벌써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 이렇게 달랑 둘이었다. 당시 작가 송기숙, 작가 황석영, 시인 조태일, 작가 이문구, 시인 이시영 등의 여러 문인들이 어울려 원주의 김지하 시인 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여주를 지나는 어름에 황석영 선배가 갑자기 원경 스님 이야기를 꺼내어, 에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고 흥왕사를 찾은 것이었다. 이미 원주에서 술이 거나해진 일행은 흥왕사에 오를 때도 아랫마을에서 한 말들이 막걸리 두어 통을 들고 올라와 대웅전 앞마당에 대뜸 술판부터 차렸는데, 송기숙 선생이 원경 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신륵사 종소리 뭇생명 일깨우고… “어이, 원경, 저 부처가 내 동생인데, 그러면 자네하고 나는 촌수가 어떻게 되는 것이여?” 그러자 원경스님이 호쾌하게 껄껄, 웃어넘겼다. “부처님 촌수야 너무 어려우니까 따지지 말고, 까짓것 저하고도 그냥 형님 아우 합시다. 형님!” “좋아, 그러면 부처 대신 아우가 먼저 내 술 한 잔 받게.” “좋지요.” 원경 스님은 막걸리 사발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더니 다시 송기숙 선생에게 넘겼다. 그런 원경 스님을 대경으로 우러러보는 나에게 누군가가 귓속말로 ‘저 스님,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들이야.’라고 소곤거렸다.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 행여 이름 모를 새라도 근방에서 귓속말을 엿들을까 싶어서였다. 시절이 많이 좋아진 지금이야 하늘이며 땅에 대놓고 무슨 말인들 못하랴. 그러나 당시로서는 박헌영이니 공산당이니 하는 말은 무슨 비상(砒霜)보다도 더 무서운 독극물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훗날 알았지만,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은 바로 원경 스님의 어머니였다. 빈한한 절, 한 사람은 스님이 되고 또 한 사람은 그 스님의 옆에서 공양주보살 노릇을 하는 박헌영 남로당 당수의 살붙이들. 역시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도 흥왕사 시절의 원경 스님만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젖어온다. 벌거벗은 나목이듯 뿌리를 밑바닥에 깊이 내리고 숫제 주검처럼 살아온 모자에게는 사람살이가 사시사철 엄동설한이 아닌 때가 없었으리라. 소풍농월의 여주에 어찌 드맑게 고답한 맛이 뒤따르지 않으랴. 신륵사 입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로 5km쯤 달려 강천면 이호나루를 지나면 바로 목아불교박물관이라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박물관의 한 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수줍게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걸구쟁이네’(031-885-9875)가 있다. 그러나 걸구쟁이네에 가기에 앞서 반드시 박물관에 들러 먼저 눈을 맑게 할 일이다. ●오신채·육류·해물 없지만 진수성찬 목아불교박물관의 목아(木芽)는 박찬수 관장의 호인데, 목조각 부문의 무형문화재 제108호인 그이가 필생으로 빚어내거나 수집한 6000여 불교 관련 작품들을 2600여평의 드넓은 터에 전시해 놓은 곳이 목아불교박물관이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야외조각공원에는 연못이며 수목들 주변에 돌이며 청동 같은 재료로 정교하게 빚어낸 미륵삼존대불, 백의관음상, 비로자나불,3층석탑 등 4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삼존대불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미륵삼존대불은 제작기법이 종전의 여느 부처상과는 달리 몸체 자체의 선을 반추상 기법으로 과감하게 처리하여 현대적인 세련미를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인도의 석굴사원을 모방했다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건물인 전시관은 외양부터 아름답지만, 안에 있는 여러 전시품을 둘러보다 보면, 박물관장의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깊은 종교적 심성 또한 무슨 향기처럼 저절로 보는 이의 가슴에 드맑게 스며온다. 걸구쟁이네는 주인인 안은자씨가 태어나서 자란 ‘걸구쟁이’란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바로 인근에 있는 강촌면 걸구쟁이에서 나고 자라 마흔 나이에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주인의 순진한 인상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원래 사찰음식은 오신채라 불리는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멀리 하고, 육류며 해류 따위 고기를 일체 쓰지 않은 고답한 음식이다. 오신채며 고기 대신에 스님들의 수행 중에 부족한 기름기는 깨며 콩, 부각 등으로 보충하고, 계절마다 산야에서 나오는 냉이나물, 취나물, 유채나물, 곤드레, 씀바귀, 소루쟁이, 고사리, 도라지, 머위, 근대, 곰취 등 각종 싱그러운 나물들을 주로 한다. 오이며 고추, 무, 가죽나물, 깻잎, 콩잎, 더덕, 산초 같은 여러 장아찌류에 버섯구이, 호박꼬지, 박꼬지, 산초두부, 장떡, 도토리묵무침에 된장국이며 청국장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한상 떡 벌어진 진수성찬이다. 걸구쟁이네는 사찰정식(1만5000원) 이외에도 도토리 요리도 전문으로 해서, 도토리수제비(6000원), 도토리묵밥(5000원), 도토리총떡(5000원), 도토리묵(1만원)이 있고, 각각 8000원짜리인 곤드레돌솥밥, 취나물돌솥밥, 산나물돌솥밥에, 모듬버섯전이며 장떡도 있다. 어느 것이나 안주 삼아 곡차라고 부르는 동동주 몇 사발까지 거나하게 마실 수가 있다. ●12가지 한약재 사용한 별미 돼지고기 보쌈 만일 여러 이유로 목아불교박물관이며 사찰음식이 저어된다면, 역시 신륵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북내면으로 접어들 일이다. 거기에 넓은 벌을 앞마당 삼아 무슨 사대부 집안처럼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의 형태의 ‘예닮골(031-883-5979)’이 있다.‘예닮골’이란 그대로 옛날을 닮은 마을이란 뜻인데, 얼핏 둘러보아도 뜰 안의 대청마루며 물레방아에서 가옥 뒤편의 장독대며 심지어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든 주인 되는 이순옥씨의 섬세한 손길이며 마음씨가 쉽게 묻어난다. 예닮골의 맛은 무엇보다도 예닮정식(1만 2000원)이 우선이다. 무려 12가지 한약재를 사용하여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없앤 돼지보쌈에다가 묵은 김치에 시래기를 섞고, 두부며 당면, 고기를 사용하여 커다랗게 빚은 왕만두에, 뚝배기 위로 샛노란 연꽃처럼 예쁘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며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고등어조림, 동치미, 망초대, 시래기무침, 표고버섯볶음, 도토리묵, 잡채, 짜배기김치,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무장아찌, 멸치조림 등 25가지에 이르는 반찬이 커다란 상이 좁아라고 가득 펼쳐진다. 게다가 이천쌀에 못잖은 여주쌀의 기름진 쌀밥이 나오고, 끝머리에는 누룽지까지 기다리고 있다. 아니, 식사를 끝내기 전에 주인이 자랑하는 예닮주를 반드시 맛볼 일이다. 전통적인 비법에 따라 빚었다는 예닮주의 누룩냄새가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이며 입에 살갑게 감쳐드는 감칠맛은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았다. ■ 전통차 손수 끓여보세요 여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미진하다면 마지막으로 신륵사 앞에 있는 세계도자기엑스포의 토야도예공방에 들러보자. 내가 즐겨 찾던 80,90년대와는 달리 신륵사 앞 넓은 강변이며 들판은 어느 새 관광지가 되어 강에는 황포돛배가 떠있고, 강변에는 보트장이며, 퍼팅장, 야영장 같은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뜻한 외양의 식당이며 숙박시설들이 또한 뒤따르고 있어, 옛날의 황량한 강변이며 들판만 기억하고 있는 나의 눈을 차라리 설게 만든다. 그런 신륵사 일대에서도 먼저 돋보이는 것은 단연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건물들이다. 생활도자전시관을 비롯하여 토야도예공방 건물이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시원시원하게 들어서 있어서 보는 이의 발길을 저절로 이끈다. 토야도예공방은 이를테면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다. 직접 도자기를 빚어볼 수 있는 ‘흙체험’에서부터 도예작가가 될 수 있는 ‘도예교실’, 아이들을 위시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흙놀이’, 전통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토야다실’까지 모두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다. 이중에서 ‘토야다실’(031-884-8552)은 전통차를 다룰 줄 모르는 이에게도 본인이 손수 차를 즐기게끔 찻물을 끓이는 법부터 차를 마시고 난 후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고른 도자기 찻잔으로 차를 담아 입안에 오래 맴도는 드맑은 차향을 얼마든지 즐긴 끝에, 나중에는 도자기 찻잔도 집으로 가져갈 수가 있다. 차향을 즐기고 도자기 찻잔을 챙기는 값이 불과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이다. 토야도예공방의 휴무인 월요일만 제외하면 언제든지 토야다실을 이용할 수 있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악귀 내쫓는 처용은 해양문화의 소산 지금은 사라졌지만 연말이면 악귀를 쫓는 나례 풍습이 있었다. 붉은 탈을 썼으니 처용이 그 원조이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악귀를 내쫓았다. 이러한 유풍의 근원에 처용이 늘 버티고 서있다. 그 처용이 해양문화의 소산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처용을 만나려면 울산으로 가야 한다. 경주가 신라의 본향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또 하나의 본향인 울산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공해에 찌든 땅으로만 알고 있는 울산이야말로 경주 감포와 더불어 신라가 동해로, 세계로 나아가던 출구였다. 울산에는 동해를 굽어보던 유서깊은 절터가 남아 있다. 오늘날 울산항으로 엄청난 국제적 물동량이 오고감을 생각해볼 때, 신라 천년의 출구 역할이 지금껏 이어진다고나 할까. 호젓한 문수산(옛 영취산)을 오르다보면 망해사지(望海寺址)를 만난다. 글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 솔잎 냄새 풍기는 숲속에 부도 2기가 의연하게 서 있는데, 이 절이 세워진 내력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망해사지와 처용설화가 그것이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졸지에 길을 잃어버렸다. 왕이 괴상하게 여겨 측근에게 물으니 일관이 답하되,‘동해 용의 장난이니 좋은 일을 하여 풀어버려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왕이 명령하여 그 용을 위해 세죽나루 근처에 절을 세우라 하였더니 홀연히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동해 용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수레 앞에 나타나 춤과 노래를 연주하였다. 그의 아들 하나가 임금을 따라와 국정을 보좌하였는데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그를 미인에게 장가들게 하였는데 역병 귀신이 밤마다 그 집에 가서 몰래 처용의 아내를 품고 잤다. 어느날 처용이 동경 밝은 달밤에 이슥히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었다.‘둘은 내해었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는 것 어쩌리!’ ●처용의 아버지 ‘용’에 대한 해석 분분 용은 누구일까. 학자들마다 해석이 구구하다. 조금이라도 이 분야에 조예가 있는 학자들은 저마다 구구한 해석을 내놓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용이 해상 세력과 관련있음이 분명하다. 울주에서 조금만 북상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꿈꾸었던 동해구(東海口)가 나오고, 동해 용왕이 드나들던 감은사지가 지척이다. 혹자는 용을 외국인, 보다 정확하게는 아라비아 상인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개운포가 국제무역항이었음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나 증거는 없다. 혹자는 울산 바닷가에 기반을 잡고 있던 해상 호족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울산군 처용암 조에도 ‘고을 남쪽 37리 개운포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때 동해 용왕의 아들이 거기서 나왔으며, 모양이 기괴하고 가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처용옹이라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까지 전설처럼 처용암과 설화가 전승되었다. 고려시대에 학연대합설처용무 춤이 추어졌으니 역병을 쫓는 전통은 천년을 뛰어 넘어 이어진 셈이다. 설화 속의 역병도 단순한 전염병이 아닐 것이다. 당대의 ‘사회적인’ 역병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헌강왕조라면 신라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었던 때 아닌가. 처용은 역병을 물리치는 춤을 추고 있다. 처용의 춤은 흡사 무속의 악귀물림과도 같은 것이리라. 훗날 처용춤은 궁중정재로 편입되고, 민중 사이에서 제융의 역할을 도맡게 된다. 문헌기록상 무당으로 간주되는 신라 남해차차웅, 악귀를 쫓는 처용, 제액을 물리치는 제융 등은 한 가지를 뜻하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처용은 분명히 이두식으로 표현된 한자임에 틀림없다. ●공해 찌든 처용암에도 상록수는 우거져 망해사 바로 옆에는 늠름한 청송사 3층탑이 있다. 너무도 당당하고 의연하여 감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이 장중한 석탑이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문수사가 있으니 울산이나 부산 사람들이 영험하다 하여 쉬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삼국유사 전편을 통하여 영험한 문수보살은 노파로 변신해 기행을 일삼는다. 처용과 문수보살, 신라인이 창조한 인물군이 영취산을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청송사지와 문수사 가는 길은 지금이야 경관이 가려져서 바다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 신라인들은 국제항 개운포 풍경을 굽어보면서 이 산을 올랐으리라. 망해사지를 보았다면, 반드시 처용암을 찾아야 할 터인데, 아서라,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차마 찾아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황성동 세죽리 앞바다의 처용바위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고증하고 있건만 석유화학단지의 공해로 바다는 찌들고, 보상금을 받아 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제를 지내는 당집의 나무도 시들어 처용바위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다. 시비(詩碑)도 세워 두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매립이 되어 처용바위 자체가 사라질 판인 것을.“매립이 되더라도 처용암만큼은 반드시 보존하는 방향으로 지킬 것”이라는 김광오 울산시 공보관의 말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을 얻는다. 처용암이 있는 세죽나루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횟집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90년대 초반까지 동해의 온갖 횟감이 팔리던 횟집도 이제 서서히 문을 닫는 판국이다. 더 이상 지독한 냄새를 견디지 못해서다. 그러나 생명의 힘은 그토록 무서운 것일까. 처용암 위에 빽빽하게 들어선 팽나무 사철나무가 사철 상록의 잎그림자를 바다에 드리운다. 처용암 지척에는 상록수림으로 유명한 춘도도 있어 동백나무숲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다 경관이 무너졌음에도 나무들은 제 역할을 다하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처용암에서 울산의 문화축제인 처용문화제도 열린다. 처용제의를 비롯하여 처용콘서트, 처용합창제, 처용얼굴 그리기 등등 처용을 기리는 행사가 열려서 글 모르는 아이들도 울산에서만큼은 처용을 알고 있다. 공장으로 둘러싸인 개운포에 포로처럼 갇혀 있는 처용암을 보노라면 근대산업화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결단낸 그늘진 면을 보는 것 같아 무척 마음 아프다. ●박제상 그리다 돌이 된 치술령의 슬픈 전설 처용암에서 천년 전설의 현장이 무너졌음을 보상받고 싶거들랑 반드시 은을암(隱乙庵)으로 방향을 잡기 바란다. 왜국에 볼모로 잡힌 내물왕(柰勿王)의 미해왕자를 구출하고 대신 죽음을 당한 박제상을 그리다가 망부석이 된 전설이 전해지는 치술령 자락의 그 은을암이다. 공단의 매캐한 공해바람에 컥컥이다가 은을암으로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비로운 숲속에 들어서 있음을 알게 된다. 경주 남산으로 이어지는 치술령 능선에서 박제상의 아내는 세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배가 떠난 율포(栗浦)를 바라보면서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돌이 되었다. 넋은 새가 되어 은을암의 동굴로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그 동굴에 제각을 짓고 용왕당이라 이름하여 모시고 있다. 국제항 율포와 용왕당이란 이름에서 바다와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울산은 신라의 대외 창구로, 중국의 명주, 양주 등으로 곧장 도항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들 중국지역은 동남아에서 무역 주도권을 장악한 대식국(아라비아)상인들이 동진하여 붐비던 곳이었으니, 이들 아라비아인을 통하여 일찍이 신라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졌다. 이들이 울산지방을 통하여 입국했을 가능성이 높아 처용이 이슬람상인이라는 가정법이 등장한 것이다.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운위되어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등 ‘따라야 할 모범’으로 규정됐다. 당대 지방장관 정도의 높은 직위에 있었을 박제상이 왜국에까지 가서 볼모를 빼내와야 했던 기록은 끊임없이 왜구의 약탈을 받아야 했던 신라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없네” 일본의 규슈는 한반도에서 가까웠기에 그들은 뻔질나게 한반도 해안을 들이쳤다. 선진 문물에 목말라했던 왜인들은 신라에서 문화 약탈의 원정을 꿈꾸었던 것이다. 해류상으로 규슈의 북단인 하카다(博多)나 시모노세키(下關) 등지에서 배를 들이밀면 고스란히 울산쪽에 닿았다. 울산은 신라의 왕도인 경주를 침략하는 해상 루트였으며, 임진왜란때 왜군이 울산 학성에 왜성을 쌓고 버틴 것도 이런 역사문화적 배경을 지닌다. 오죽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자청했을까. 지배집단에서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시대의 사표로 선전되었으며, 치술신사에 배향되기도 했다. 신중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한때 울주에 벼슬살이 하러 내려왔던 김종직이 한역했다는 치술령가가 나온다. 당시 울주에서 들은 노래를 다소간 윤색했을 것이다.‘치술령 머리에서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 없네. 낭군이 가실 때에 다만 손만 흔들더니, 살았는가 죽었는가 소식이 끊어졌네. 길이 이별함이여, 죽은들 산들 어찌 서로 만날 때 있으랴.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다가 문득 무창의 돌로 화하니, 열녀의 기운이 천추에 푸른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렇지만 반드시 지배층의 의도대로만 박제상의 행적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부인은 치술신모가 되어 모권적인 무속신으로 재창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민중들에게 ‘치술령의 영험한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은을암에서 굽어보니 경주 남산까지 이어진 치술령 산자락 아래로 운무가 비끼고 어디선가 새가 날아들고 있다. 무심한 저 새의 혼에도 치술신모의 넋이 깃들어 있지 않을는가.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6)제주 모슬포 방어축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6)제주 모슬포 방어축제

    ●수십만 인파 모여들어… 제주도 최대 축제 해마다 12월이면 제주도 서남단 모슬포항에서는 방어축제가 한창이다. 구로시오난류를 따라서 올라온 방어들이 한달여 동안 엄청나게 잡히기 때문이다.5월부터 세력을 확장한 이 해류는 12월 정도에서 세력이 약해진다. 방어는 그 난류에 묻혀 들어왔다가 12월이 지나면 일본쪽으로 빠져서 태평양으로 나가버린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용수 박사는 “남해안은 물론이고 동해안으로도 구로시오난류가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동해 방어도 있지요. 모두 구로시오문화권입니다.”라고 한다. 사실 구로시오난류니 대마난류니 하는 학술용어들은 모두 일본이 국제학회에 보고하여 인정받은 명칭들이니 우리의 대응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그렇더라도 대마난류는 동한난류 정도로 고쳐쓸 일이다. 사실 방어는 1∼2월이 돼야 한결 기름지고 맛이 좋다. 그렇지만 그 무렵에는 방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따라서 어획이 잘 되는 12월에 방어축제가 열리는 것. 이 무렵 모슬포수협 관내인 대정읍 상모 하모 가파 동일 일과 무릉 신도 영낙리, 안덕면 대평 화순 사계리 사람들은 가건물을 대여받아 마을 단위로 방어횟집을 연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바다는 방어들의 열기로 끓어오르고 수십만 인파가 모여 성시를 이룬다. 가히 제주도 최대의 해산물 축제답다. 방어는 동해는 물론이고 남해안 추자도 관탈도 근해에서도 많이 잡힌다. 그러나 마라도 근역에서 잡히는 방어를 높게 친다. 시속 6㎞의 빠른 해류에 견디느라 운동량이 많아져 육질이 단단해서다. 마라도 가파도 같은 섬이 방파제 구실을 해 방어들이 잠시 쉴 만한 곳이기도 하다. 해역이 용암 암반층이어서 방어의 몸 단련에는 그만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이윤 연구관은 “마라도 가파도가 있는 주변 해역이 먹이사슬이 깨지지 않은 청정해역이라 방어들이 몰려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슬포 방어지만 실상 마라도나 가파도 방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장 형성이 주로 그곳에서 이뤄지기 때문. 게다가 가파도 사람들 절반 이상이 모슬포항으로 나와 살기 때문에 하나의 동네로 인정된다. ●도시민들 종종 ‘방어’와 ‘부시리’ 혼동 모슬포에서는 방어 부시리 멸치 참돔 벵에돔 벤자리 돌돔 고등어 삼치 가다랑어 등을 잡는다. 방어잡이는 11월부터 12월까지 약 두달간 계속된다. 소(小)방어는 30㎝ 미만, 중(中)방어는 60㎝ 정도에 2∼2.5㎏, 대(大)방어는 1m 이상 되는 크기다. 남방어류답게 부쩍부쩍 자라 2년생이면 중방어로 손색이 없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중방어가 맞춤하다. 도시민들은 종종 방어와 부시리를 혼동한다. 부시리 큰놈은 1m를 훌쩍 넘는데 살갗이 방어보다 희다. 강충범 서귀포 수중환경연합회장은 “제주도 사람은 사실 ‘히라스(잿방어)’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방어가 기름기 많고 물컹한 반면 잿방어는 담백하고 쫄깃하기 때문이다. 방어는 대중적인 횟감이다. 저렴한 가격에 등푸른 생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으니 성장기 어린이나 청소년은 물론이고 산모들의 건강를 위해서도 권할 만하다. 축제 기간 내내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와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준다. 방어횟집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은 방어를 먹으면서 싱싱하고 싼 가격에 그야말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비행기 삯을 빼고도 남겠다.”며 야단들이다. 모슬포에서 방어잡이를 하는 배는 모두 248척이며 대부분 3∼5t급이다. 축제부위원장을 맡고있는 나성무(54) 모슬포 어선주협회장은 “윗대 어른들부터 해오던 방식 그대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그 방어잡이의 핵심은 미끼다. 자리돔을 먹고 살기 때문에 출어 전에 자리들망으로 살아있는 자리돔을 잡아둬야 한다. 외줄낚시로 낚싯줄에 바늘을 1개만 매단다. 중층고기로 예전에 방어가 흔하던 시절에는 물 위에서도 방어떼가 보였다.“어군탐지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선장 역할이 중요했지요. 주로 선장의 노련한 감으로 잡았으니까요.” 이때 선장들은 물표가늠을 썼다. 먼 산과 가까운 산 등을 연결하여 자신의 위치를 삼각구도로 알아내 고기를 잡아올리곤 했다. 선장마다 자신의 기호도에 따라서 정하기 때문에 가늠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선장은 늘 두 사람 몫을 받았다. 배에는 보통 8∼13명이 타는데 잡은 고기는 여기에 7몫을 더하여 15∼20몫으로 분배한다. 가령 열명이 탔다면 17몫을 만들어 열명이 각각 1몫씩 가져가고, 나머지는 선장 2몫, 기관장 1.5몫, 나머지는 선주가 갖는 식이다. 선장은 아무나 못했다. 기상 여건 판단도 중요하고 어장 경험이 풍부해야 했다. 지금은 너나없이 어군탐지기를 사용해 이런 모습은 보기 어렵다.‘인간의 감’으로 잡는 어업에서 전자장비로 넘어왔으니 사실상 인간적인 어법은 종말을 고한 셈이다. 나 회장은 “짠 바닷물 맛이 세상사는 맛”이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이를 “객객헌 바닷물 맛이 세상사는 맛이랭.”이란 남제주 토속어로 들려주었다. ●형편없는 가격에 어민들 울상 아무리 싱싱한 미끼를 들이밀어도 방어는 기분이 좋아야 문다고 한다.“낚시를 넣는 대로 잡히면 고기 씨가 마르고 말지요.” 탐지기로 움직임이 낱낱이 포착되는 현실이지만 방어의 기분에 따라 어획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동전화에 빗댄다면 누군가 은밀한 사생활을 엿듣는 것에 비교될까. 문득 ‘물고기의 사생활’이란 용어가 떠오름은 웬일일까. 하여간, 우리들 시대는 너무 정보가 많고, 그래선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잡아들인다. 방어잡이배들은 보통 아침 5∼6시에 출항,17∼20시쯤 귀항한다. 힘들여 잡아와도 판로가 문제다. 그래서 4년여 전부터 모슬포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살리기 운동의 하나로 이 축제를 시작했다. 지금은 대정읍 개발협회가 주동이 되어 추진하고, 도와 시, 수협에서 지원금도 나온다. 올해만 1억 8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작년 기준 25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들었는데, 그 중 외지인이 20만명이 넘는다. 낮에는 한산하지만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관광 일정을 끝낸 인파가 몰려든다. 각 단위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가게마다 축제 기간에 통산 2000만∼3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문제는 형편없는 방어값.2∼3㎏ 정도 되는 1마리 값이 고작 2만원 선이다. 이전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방어의 60%가 모슬포산이었다. 그러나 싼 수입산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값이 폭락했다. 동해에서도 방어가 나기 때문에 제주도 방어의 판로가 문제가 되는 것. 그래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축제’로 열리게 됐다는 귀띔이다. 올해부터는 축제 기간도 3일에서 5일로 늘려잡았다. 방어는 얼음에 재워서 비행기로 운송한다. 문제는 이래 봐야 물류비도 안나오는 데 있다. 등푸른 생선 방어가 건강에 좋은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통통한 몸매에 품격있게 유영하며 푸른빛과 은빛을 조화시켜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일반인의 선호도가 높은 어종이다. 그러나 횟집에서 방어의 사촌격인 ‘히라스’로 초밥을 만들어 내도 일반인은 구분을 못한다. 생선에 관한 일반의 무지를 악이용해 대충 싸구려 수입어로 만든 초밥을 한마디로 ‘앵긴다.’는 설명이다.FTA협상이 타결되면 일본의 고품질 양식어류까지 밀려들 전망이다. 지금이야 관세율로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앞으로의 대책이 막연하다. 정부, 어민, 소비자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지난해 태풍 때, 모슬포 어민들은 배들이 좀 ‘깨져’ 없어지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배를 감축해야 하는데 인위적 감축이 어려우므로 차라리 자연의 힘으로 ‘왕창 깨버리면’ 남은 배들이나마 살게 될 것이란 서글픈 현실인식이다. 한마디로 한국 연안에 배가 너무 많다. 모든 배들이 어군탐지기를 매달아 바다밑을 샅샅이 훑고 있으니 종자가 남아 있기 어렵다. 무한정 배를 늘리고,‘싹쓸이’로 잡아들이게 한 정책이 빚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방어축제는 겨울 녹이는 ‘한 편의 드라마’ 방어회를 한 접시 시켰다. 살이 붉다. 히로시마대학에서 수산학을 전공한 국립수산과학원의 정달상 박사는 “흰살 생선을 선호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인은 붉은살 생선을 더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삼치와 방어가 일본인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높게 치는 흰살 생선 넙치는 일본인에겐 별로다. 민족 간에 생선 선호도가 이렇게 다르다. 때로는 뜨거운 물에 방어를 살짝 익혀 껍질을 먹기도 한다. 껍질이 질겨서 먹을 수 없으므로 약간 데친 뒤 먹는다.‘샤부샤부’로도 먹는데 맛이 그만이다. 방어구이 맛도 색다르다. 머리 부분을 먹어보니 ‘볼따구’ 주변이 한결 맛있다. 탕은 미역이나 무를 넣고 끓이는데 매운탕, 맑은탕 모두 시원하다. 방어조림은 고등어조림과 흡사하다. 음식점 메뉴로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생선가스’도 그만이다. 살집이 풍부한 고기답게 ‘생선가스’로도 이점이 많다. 아직도 우리 해산물요리는 개발의 여지가 많다는 증거 아닐까. 방어축제에서는 방어만 뜨는 것이 아니다.1000여명에 이르는(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250여명) 잠녀들의 물질 경주도 볼 만하다. 물질경기에 나선 잠녀들에게는 자전거가 한대씩 주어졌다. 모슬포 아줌마들의 응원이 매운 바닷바람을 녹이고 있었다. 이래저래 방어축제는 겨울을 녹이는 한편의 드라마 같다. 이재수항쟁을 비롯, 제주도의 한을 안고 흐르는 옛 대정현인 이곳 모슬포항에는 백만 대군의 행진처럼 푸른등의 갑옷을 입은 방어들이 질주하며 바다를 온통 들썩이게 한다. 지금 모슬포로 달려가 그 푸름에 취해보자.
  • [산하기관 탐방] 국립해양조사원

    [산하기관 탐방] 국립해양조사원

    바다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 현상으로 연간 1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충남 보령시 웅천면 무창포는 오는 12일 오전 8시16분부터 10시15분까지 바다가 갈라진다. 이 정보는 관광 등에 요긴하게 활용되지만 이것이 국립해양조사원의 조사 결과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인천시 중구 항동7가에 있는 국립해양조사원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는 일은 해양에 관한 거의 모든 연구와 조사를 포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막중하다.1949년 해군본부 작전국 수로과로 창설되었다가 지난 96년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으로 거듭난 이 기관은 조석, 조류, 해류 등 바다의 흐름을 파악해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 바다 수심, 암초 등 배 통과의 적정 여부를 조사해 항로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국 주요항만 31개소에 있는 검조소는 해수의 온도와 높이, 염분 등을 실시간으로 조사·분석한 뒤 기상청 등에 통보한다. 해수의 온도 등은 매우 중요한 기상관측 자료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면 연구도 이곳의 몫이다. 해도를 디지털화한 전자해도는 해양조사원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전자해도는 배 위치가 자동적으로 모미터상에 나타날 뿐 아니라 수중장애물, 수심, 항로표지, 해류 등 항해에 필요한 각종 정보가 표기돼 항로이탈 등 해난사고를 사전에 방지한다. 안개가 끼었을 때는 경보음이 울린다. 또 항공기 블랙박스와 같은 기능을 지녀 사고발생시 항해 궤적을 파악할 수 있다. 해양조사원이 2000년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개발했다. 해양조사원은 어민 소득증대와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조업활동시 필요한 어업 관련 규제선, 포획어종, 인공어초 위치, 해수의 특성 등을 담은 전자 어업정보도도 2007년까지 제작해 보급할 방침이다. 이 기관은 국가 자존심과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외국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국제지도가 우리나라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지금까지 10차례에 걸쳐 국내·외에서 ‘동해명칭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10차는 12개국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달 4∼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미국의 랜드맥널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세계적인 지도제작회사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 표기하기에 이르렀다. 해양조사원 김옥수 사무관은 “동해의 명칭은 일본과 분쟁을 겪고 있는 독도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명칭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1) 간월도와 웅도 어리굴젓 맛 대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1) 간월도와 웅도 어리굴젓 맛 대결

    지방자치단체마다 특산품 홍보에 잔뜩 열이 올라 있다.이런 마당에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인지도가 높은 고부가가치의 특산품이 있다면 오죽 좋으랴.충남 서산 어리굴젓이 바로 그런 대표적 사례 아닐까.오랜 역사와 전통을 밑천삼아 팔아먹을 수 있는 ‘해양지적소유권(海洋知的所有權)’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분다고 느끼는 순간,어리굴젓 생각이 간절해졌다.뜨끈뜨끈한 흰쌀밥에 맵짠 어리굴젓을 올려서 먹는 맛이란! 그런 충동 때문이었을까.뜬금없이 천수만 간월도로 향했다.홍성나들목에서 불과 15분 거리.천수만 간척지에 포함돼 더 이상 섬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촌에 돌아와 살면서 ‘해양벤처’를 주도하고 있는 유명근(섬마을어리굴젓 대표)씨는 “어리굴젓이 없었더라면 아마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을는지 모르지요.” 한다.우리에게 어리굴젓은 바로 이런 것,가히 ‘마력의 혼불’이 아니겠는가. 제조 과정을 물으니 대답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시범부터 한다.굴과 소금을 버무려 옹기에서 숙성시킨 강굴을 함지박에 쏟아 놓는다.태양초를 물에 개어 만든 고춧가루 범벅을 붓고 손으로 버무린다.손맛이 중요하다.이걸로 어리굴젓 만들기는 끝. 너무 단순해 재설명이 필요없다.의문이 풀린다.뒷맛이 개운한 것은 들어가는 재료가 소금과 고춧가루뿐이라는 데서 비롯된다.재료가 많으면 맛은 오묘할지 몰라도 뒷맛의 담백함은 놓치기 쉽다. ●간월도 굴은 알보다 털날개가 커 이곳의 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왜 어리굴젓 앞머리에 ‘간월도’가 붙어야 제격이라고 여기게 되는지 쉽게 이해된다.굴은 몸체인 알과 날개부분으로 이루어진다.그런데 간월도굴은 알보다도 털날개가 크기 때문에 고춧가루로 버무릴 때 양념이 스며드는 면적이 커서 한결 맛이 좋다.간월도 주변은 돌보다 개펄이 많은데 자잘한 돌에 붙어 살던 굴이 2년쯤되면 떨어져나가 펄 속에서 자란다.‘토굴’이니 ‘토화’니 하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으니 깊은 수심에서 크게 키운 양식굴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소금만큼은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소금이 맛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말이다.중국 소금을 쓰면 어김없이 쓴맛이 난다.이곳에서는 천수만 건너 태안군 곰섬의 소금을 들여다 쓰는데 최소한 1년 이상을 묵히며 간수를 뺀다.예전에는 소금을 뜸뿍 쳐서 아예 ‘짠젓’이라 불렀으나 냉장고 덕분에 한결 싱거워져 저염도를 요구하는 현대인의 입맛에도 맞다. 천수만이 방조제에 가로막히면서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몰려들던 ‘천혜의 만(灣)’이 이제는 새들이 몰려드는 ‘천혜의 들판’으로 변해 상전벽해를 실감하게 한다.예전에 조기떼가 몰려들어 우는 소리에 잠못이루던 천수만에 이제는 철새들이 몰려와 임무교대를 하였다.바닷물고기는 사라지고 하늘새가 공간을 대신 차지한 셈.천수만 민중의 삶도 급변해 대를 이어 고기잡이를 하던 어민들이 횟집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어로수입보다 관광수입이 훨씬 벌이가 좋다.어리굴젓만으로는 생계 유지도 어려워 근동 몇 집이 어울려 이를 상품화,내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간월도에서 건너보이는 창리 포구에는 지금도 ‘조기의 신’ 임경업 장군을 모신 영신당이 있어 해마다 정초면 북소리 드높이며 배치기 소리에 맞춰 영신제를 올린다.간월도 건너편의 안면도 황도에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황도붕기풍어놀이’가 전승되고 있으니,간척으로 고기는 줄었어도 오래 지속돼 온 천수만의 민속문화만은 잔존해 그 옛날의 영화를 웅변해 준다. ●생산 주체인 여성 주도의 삶 간월도는 수산의례가 남아 있는 곳이어서 관심이 배가된다.정월 대보름에 아낙들이 펼치는 ‘굴부르기 놀이’가 그것.이 의례는 생산 주체인 여성 주도의 문화유형이다.굴 채취는 물론이고 억척스럽게 머리에 이고 홍성 광천장까지 판로 개척에 나섰던 여성들의 힘이 굴부르기란 축제로 압축되어 유형화한 것이다.굴을 부르는 주술적 의례의 주도권을 여성들이 쥐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섬의 경제 행위에서도 여성의 역할과 권한이 막강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그래서 “간월도의 남자들은 여자들 덕에 놀고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어리굴젓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북쪽의 대산읍 웅도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까닭이 있다.웅도어리굴젓 또한 다른 독특한 맛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맛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웅도는 물때를 잘 맞춰서 가야 한다.경기도 화성의 제부도처럼 물때에 따라서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기 때문이다.웅도가 자리잡은 가로림만은 태안반도에서 그나마 오염되지 않은 곳.대호방조제,석문방조제,이원방조제 등으로 태안반도의 지도가 바뀌는 와중에도 가로림만은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남았다.간만조차가 심해 해남의 울돌목과 더불어 조력발전이 늘상 거론되는 곳이기도 하다. 웅도에도 ‘수산벤처인’이 있다.체험어장 등을 운영하는 김종희씨가 그 대표격이다.바닷물에 배추를 절이는 ‘해수김치’도 개발해 내고 웅도 어리굴젓의 명맥도 이어간다.간월도 어리굴젓이 ‘김장김치’라면,웅도 것은 ‘겉절이김치’쯤 될까.잘게 자른 쪽파와 생밤,고춧가루 등을 넣어서 즉석에서 먹거나 숙성시켜 먹는다.같은 서산 관내에서도 어리굴젓 제조법이 전혀 다른 것은 해양문화의 지역적 다양성이 매우 중층적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생굴을 바로 담근 것이라 맛이 신선하다.필자 같은 도시민은 대개 갓 담은 젓갈을,현지인들은 조금 발효된 젓갈을 선호한다.사람의 입맛 기준치도 문화적 다양성만큼이나 중층적이다. 간월도와 웅도의 젓갈 맛이 다름은 단지 제조법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광해군 11년(1619)에 서산지방의 풍물을 기록한 한여현의 호산록(湖山錄)을 보면,‘화변과 마산(지금의 간월도 근역)에는 석화가 가을과 겨울철에 여물고 2∼3월에 사라진다.대산과 지곡(지금의 웅도 근역)에는 3∼4월에 여물고 5월에 사라지니 가히 남북 갯벌이 같지 않다.’고 하였다.간월도와 웅도의 갯벌이 다르고 같은 굴이라도 생태적 환경조건에 따라 예전부터 변별성이 있었음을 이르는 말이다.그러한즉 앞으로는 두루뭉술하게 ‘서산 어리굴젓’으로만 부르지 말고 ‘간월도 어리굴젓’이라거나 ‘웅도 어리굴젓’으로 불러 양자의 개미(個味)와 특성을 인정해 줄 일이다. 사실 웅도의 명물은 어리굴젓만이 아니다.호산록에 “홑옷 입은 가난한 어민들이 얼음을 깨고 굴을 따며 눈을 쓸고 낙지를 잡는데,맨발로 언 갯벌에 들어가 천번 만번 죽을 고생하여 관청에 헌납하면 관리들은 인정도 없이 해산물을 더 배정한다.”고 했듯 예로부터 낙지 잡이가 성행했다.지금도 인근 중왕리와 더불어 낙지가 엄청 잡히는 곳으로 꼽힌다. 남도의 세발낙지와 달리 색깔이 붉고 선명하다.초여름부터 11월 무렵까지 잡히는데,맨손어업,혹은 주낙으로 잡는다.맨손으로는 한 사람이 한번에 40∼50마리는 거뜬하고,주낙이라면 한 물때에 200∼300마리까지 잡아 올린다.마리당 4000원쯤 받으니 하루 벌이가 10만∼20만원에서 운 좋은 날은 70만∼80만원까지 치솟을 때도 있다.그래선지 웅도는 인근의 알아주는 부촌이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면 어린 낙지가 스물스물 펄 밖으로 기어나온다.이때 잡은 낙지를 넣고 ‘밀국낙지’를 끓여냈다.아예 박속에 낙지를 넣어서 끓인 ‘박속낙지’도 있다.추억의 어촌음식인데 이제는 서울 등 대처의 대중음식점 메뉴로까지 변신했다.웅도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소달구지 전통도 이어오고 있다.‘물펄’이라 경운기 바퀴가 빠지는 것도 이유겠지만 전래의 소달구지를 이용해 저물 무렵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일명 ‘달구지마을’이란 웅도의 닉네임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보리 익을 무렵 ‘밀국낙지’ ‘박속낙지’ 별미 그러나 낙지가 지천인 천혜의 가로림만도 이상 징후를 보인 지 오래다.인근의 대규모 간척으로 만에 유입된 조류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는 탓에 펄이 사라지고 있다.펄이 사라지자 자갈밭이 드러나고,해변의 산이 파이고,경관 자체도 변했다.지천에 널렸던 갯지렁이도 거지반 사라지고 없다.갯지렁이가 사라졌다는 것은 가로림만의 생태환경에 적신호가 울렸다는 뜻이다.‘부풀’이나 ‘오리밥’으로 불리는 작은 조개류는 낙지의 먹을거리여서 일명 ‘낙지밥’으로도 불렸으나 15년쯤 전부터 이 조개가 사라지면서 낙지가 줄어 이제는 어과도 예전 같지 않다.미역,우뭇가사리,청각,톳 따위도 지천이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황금산을 오른다.태안반도를 굽이쳐 돌아가며 경기만으로 치고 올라가는 해류가 흐르는 황금곶(串).서산 남쪽의 천수만 창리에 영신당이 있다면,웅도 북쪽 방향 끄트머리인 독곶에는 임경업 장군의 신당을 모신 황금산이 있다.남쪽 천수만에 간월도가 있다면 북쪽 가로림만에 웅도가 있는 격이다.일망무제로 태안반도에 북쪽 바다가 펼쳐지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임해공단의 굴뚝과 대산항이 먼저 눈에 든다.미려한 사구가 펼쳐진 독곶은 공단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밥상머리에서 비벼 먹는 어리굴젓의 입맛 내림만 의연할 뿐,바다삶의 조건이 이처럼 곳곳에서 급변하고 있으니,이런 기록이나마 남겨두지 않으면 후세가 그 단절의 역사를 어찌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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