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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상/“원료수출 지양”제조업 육성 총력(세계의 개혁현장:34)

    ◎2차 산업 비중 연15%씩 지속성장 남반구의 호주는 우리와 반대로 지금 여름 길목이지만 공기는 오히려 더 차다.경제가 3년째 봄바람을 타지 못한 까닭이다. 상황이 차차 나아지고 있다는 말도 들리나 사람들은 못 미더운 표정을 짓고 시큰둥해들 한다.무엇보다 11%선을 오르내리는 실업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실제 1년전보다 0.5% 포인트 정도 감소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인 24개 선진국중 여전히 수위를 다툰다는 점이 못내 불안한 것이다.3년전만 해도 6.1%에 그쳤었는데 지금은 96만여명이 실업자 신세이다. 호주 노동당정부 역시 경제정책이 결집되는 예산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거두절미,「심각한」실업문제를 맨앞에 다루고 있다.그러나 OECD선진국들의 전체 평균 실업률이 올 상반기 현재 8.4%에 달한다는 사실을 은근히 강조한다.이어서 지난해 호주의 경제성장률 2.5%는 선진국 평균치(1.6%)를 상당 수준 웃돈 것이며 인플레율이 단 0.9%로 OECD내 최우량아였다는 점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여러해동안 재무장관을맡았던 폴 키팅 총리는 이처럼 물가상승률이 30년래 최저이며,3년전만해도 연18%였던 김이가 20년동안 제일 낮은 5.5%까지 떨어짐으로써 질좋은 경기회복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역설해 마지 않는다.그러나 존 도킨스 재무장관이 기탄없이 지적하듯 「호주경제는 쉽게 세계경제의 볼모가 되어버리고 마는 생래적 약점」이 있다.지난 83년부터 5기째 연속집권하고 있는 노동당정부는 이런 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개혁적 정책을 펼쳐왔다. 세계경제가 발전하면서 부존자원이 풍부한 「럭키 컨트리」라는 점이 오히려 호주의 발목을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광·농산물 수출만으로 외화가 잘 벌리다보니 2차산업이 취약해졌는데 요즘들어 원자재가격의 세계경기 예속도가 심화됐다.이에 호주는 선진국으론선 아주 늦은 80년대 중반 변동환율 채택,외환규제 철폐,외국은행 개방,기간산업 민영화 등 개방화 노선을 취해 국제경쟁력 강화에 나섰다.특히 중요한 것은 일반관세율 인하정책이다. ◎산별노조의 비효율성 혁파/직장단위 임금협상제 정착 외국상품에 대한 보호주의적 관세부과가 산업구조 개편과 제조업부문의 특화작업에 대한 장애물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8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한 관세인하 결과 수입품에 대한 평균관세율이 5.5%로 3년새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특히 최고세율 2백%의 고율부과로 유명했던 직물·의류·신발 제품도 50%로 감소했다. 재무성의 애덤 앨런슨 제조산업정책과장은 『보호관세 인하 반대론자들은 취약한 제조업의 규모가 한층 축소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말한다.호주의 전체 수출액 가운데 제조업부문의 비중이 지난 5년간 연15%씩 지속성장했다는 것이다.이 「OECD 평균 두배」의 증가결과 제조업은 호주 전 수출의 29%를 차지하게 됐다.10년새 비중이 50% 뛴 것이다. 대신 석탄 원모 금 철광석 쇠고기 알루미늄 밀 등 광·농산물의 1차산업 상품이 수출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77%에서 62%로 줄어들었다. 『원자재가격은 그 사이에 통틀어 4분의 3으로 인하됐는데 딴 나라들의 경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자재에 대한 수출의존은 더욱 축소될 전망』이라고 재무성 브렌던 컬렌 경기현황과장은 진단한다.양모의 경우 수출물량은 거의 비슷하지만 4년전에 45억달러였던 가득액이 25억달러까지 내려 앉았다는 것이다. 1차산업 의존도가 조금씩 개선되는 것 못지 않게 호주 경제와 산업계의 고질적 문제분야였던 노조및 노사관계에도 개혁의 손질이 가해졌다.영국식민지 시절에 튼튼한 기반을 다진 호주 노조는 1백여년이 지난 「현대」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전근대적인」 원칙과 특전을 품에 안고 있다. 전 근로자의 55%를 상회하는 노조가입률이 세계 최고인데다 노동당정부는 선거때마다 노조에 신세진 바가 많아 「생산성을 크게 해치는」 산업관행을 감히 손대지 못하리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보수적인 자유·국민당 정권에서도 입김이 셌던 호주 노조는 조직구성이 애초부터 직장단위가 아닌 산업부문별인 탓에 금세 전국적 스케일의 연대성을 과시할 수 있었다.임금협상 등을 할 때 사용자측은 관련산업 부문 노조와 일일이 따로따로 협상을 벌여야 한다.게다가 모든직장의 근로자 단체협약은 직장이나 근로자의 노조관련 여부와는 상관없이 관련산업 노조의 「허락」필증을 얻어야 법적 효력을 갖는다. 다름아닌 노동당 정부가 이같은 노조 제일의 산업관행에 제동을 건 결과 관련노조들이 통합해 협상을 벌이는 직장별 협상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올 임금협상때 조사한 바로는 호주 3백대기업중 무려 87%가 이 효율적인 직장단위별 근로협상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와함께 파업 등 노사분규로 인한 상실노동일수(1천명당)가 지난 70년대의 6백일에서 지난해에는 1백58일로 급감했다.노동당정부의 이 「직장혁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로리 브레르튼 노동장관은 『반세기 최저 노사분규』라며 과거와 다른 호주의 산업평화를 무기로 해외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키팅 총리와 브레르튼 장관은 올 봄 선거가 끝나자마자 노조의 허락이 첨부돼야 모든 근로협약이 유효해지는 관행을 「혁파」하겠다고 폭탄선언 했다.결국 이달초 의회에 제출된 법안에는 노조의 거대한 저지에 부딪혀 노조의 「협상독점권」무효화 조항이 삭제되긴 했지만 이를 본격 문제삼은 것만으로도 큰 변화임이 틀림없다.
  • 변모하는 이민형태… 최근의 흐름은

    ◎미 편중 탈피… 가·호·뉴질랜드 등 대상국 다양화/초창기의 연고·초청형식 줄고 「투자이민」 급증/문민정부 출범뒤 국내정세 안정… 「역이민」 늘어 그동안 미국지역에 편중됐던 이민이 점차 캐나다·호주·뉴질랜드등으로 대상지역이 다양해지고 있다. 또 최근 남미지역의 아르헨티나나 파라과이등이 새로운 잠재적 이민대상국으로 선호되고 있다. 외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62년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이후 지난 9월말 현재까지 해외이민자 수는 모두 77만4천8백30여명. 지난해 한해동안에는 모두 1만7천9백27명이 이민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목적지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1만1천4백73명으로 여전히 가장 많고 다음이 캐나다에 3천4백7명,호주와 뉴질랜드에 2천4백13명 순이다. 이밖에 80년대 중반 한때 1년에 4천명이상 이민갔던 아르헨티나등 남미지역과 유럽은 각각 5백94명과 11명이었다. 이처럼 과거 이민의 주요대상국이던 미국으로의 이민이 줄어들고 대신 캐나다·호주·뉴질랜드등의 이민숫자가 늘어난 것은 80년대 중반이후 이들국가에서 「투자이민」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면서부터다. 투자이민이 이렇게 증가한 것은 세계 경제가 장기적인 침체를 겪으면서 각국이 외국인의 자국내 취업이주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최근에는 어느 정도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이민을 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해외이주자들의 이주형태를 비교하면 잘 알수 있다. 과거에는 국제결혼이나 해외입양으로 외국에서 정착한 사람들이 다시 가족들을 초청하는 연고초청이민이 주종을 이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결혼·초청형식보다는 투자이주나 취업이주자가 크게 늘고있다. 지난해만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으로 투자이민 간 사람이 모두 4천5백7명에 이르며 의사·약사등 전문직을 이용,취업이민간 경우도 3천1백93명이나 된다. 이에 반해 연고자 초청을 통한 이민이 8천8백23명으로 여전히 절반정도를 차지했으나 해가 갈수록 그 수는 크게 줄고있는 실정이다. 올해들어서도 결혼이나 초청에 의한 이민이 각각 1천1백84명,4천8백56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20∼30%씩 줄어든 반면 투자및 취업이주는 50%이상 증가했다. 최근 들어 나타난 큰 특징중에 하나는 이민갔던 사람들이 국내로 되돌아오는 「역이민」이 크게 늘고있다는 점이다. 올해들어 10월말까지 역이민 형식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은 5천5백22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들어 국내 정치·사회가 안정되고 국내경기가 호조 기미를 보인데다 88년 해외여행자율화 이후 세계 각국의 실정을 직접 접하게 되면서 이민생활이 반드시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데 원인이 있다. 또 과거 이민을 떠났던 사람들이 노년이 되면서 향수병을 갖게된 것도 역이민이 늘어나게 된 이유중의 하나라고 볼수있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들어서는 투자이민과같은 경제성 이민이 크게 증가,과거와 같이 외국을 무조건 선호하는 양상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캐나다·호주·뉴질랜드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민을 제한하고 있으나 일정재산을 가지고가 사업등 활동을 전제로한 투자성 이민만은 환영하고 있어 국내 경제가 회복되면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투자이민이 시장개척 대상지로의 새로운 매력요인이 되고있다. 한국국제협력단 이주부의 유사선씨는 『최근의 이민은 과거처럼 결혼이나 초청에 의한 이민보다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취업이민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이민대상국가도 점차 호주·뉴질랜드·아르헨티나등 투자가치를 찾아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선박검사때 수뢰/해항청직원 구속

    【부산=이기철기자】 부산지검 특수부는 19일 부산지방해운항만청 해무과 검사관 오석환씨(37)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하고 선박 제조업체인 부산시 영도구 청학2동 (주)동진조선 대표 권동진씨(33)와 영도구 대교동 해동기업 대표 김동철씨(39) 등 2명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검찰은 또 이용씨(35) 등 부산지방해운항만청 해무과 소속 검사관 7명이 각종 선박검사와 관련,고정적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를 잡고 증거 확보에 나섰다. 오씨는 지난 91년 10월23일부터 지난해 12월28일까지 동진조선 대표 권씨로부터 동진조선에서 건조한 예인선 동화1호(1백50t급)의 선박제조검사 및 측도검사를 하면서 「선처」 명목으로 2백70만원을 받는 등 선박 10척을 검사하면서 모두 7백30만원을 받은 혐의다.
  • 대마도의 오사키항/박성수(일본속의 한국문화:9)

    ◎왜구 본거지… 고려이래 약탈 일삼아/우왕때는 연27회 침범… 논의 벼까지 베어가/진노한 세종은 배 2백20척 동원,정벌 나서 일기도의 가쓰모토(승본)항도 왜구의 소굴이었으나 그보다 더 우리를 괴롭힌 곳은 대마도의 오사키(미기)항이었다.오사키항은 대마도의 윗섬과 아래섬을 갈라 놓고 있는 바다,아사마(천모)만에 있는 아주 작은 어촌이었다.백제산성을 보고 나서 이 모사키마을을 잠깐 둘러보았으나 그 옛날 조선 세종때 우리 정벌군이 이 마을을 공격한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언제 그랬나 할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단 하나 남아 있다는 것이 이곳의 옛 호주 하야타(조전)가에 보존되어 왔다는 조선국고신이라는 문서 한장이었다. 「병조봉교피고이라 위승의부위」운운하는 우리나라 관이임명장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5백년전인 연산군때(1503년)것이다. ○벼슬 주어 달래고 왜구가 하도 심하니까 창무책의 하나도 대마도 왜인들에게 관직을 주어서 우리나라에 오면 쌀도 주고 장사도 할수 있게 해 준 것인데 이들을 가리켜 수직위인이라 했었다. 유명한 신숙주(1417∼1475)의 「해동제국기」를 보면 대마도의 지도를 그려놓고 모두 82개에 달하는 포구가 있었다고 적어 놓았다.신숙주의 지도에는 대마도가 마치 등을 구부린 송충이처럼 그려져 있는데 보기에도 징그럽다.이 송충이의 털구멍마다 왜구의 소굴이 박혀 있어서 제각기 마음 내키는대로 우리나라 남해안은 물론 동·서해안까지 왕래하면서 약탈하였으니 견딜수가 없는 일이었다.우리나라 연해안을 약탈한 왜구의 소굴은 대마도에만 있지 않았다.멀리 구주땅의 여러 포구에서도 왜구떼가 몰려왔으니 이들 송충이의 공격에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왜구는 고려말에 극성을 이뤄 그때문에 실제로 고려가 망하고 말았다.눈물의 왕 공민왕(1352∼1374)재위 23년동안에 크고 작은 왜구가 1백15회나 들락날락하였고 경상·전라도는 물론 경기·황해·강원·평안·함경도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심지어는 고려의 서울 개경근처까지 쳐들어와 수도 서울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다음 우왕(1375∼1388)때에 이르러서는더욱 심하여 재위 14년동안에 왜구가 3백78회나 쳐들어 와 연평균 27회라는 이분야의 신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이무렵 우리나라 연해안의 여러 고을들은 『황량하게 텅 비었다』고 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불상·범종 훔쳐가 왜구가 어떻게 우리나라 고을들은 습격하였는가 하면 왜구는 처음부터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낮에는 기분나쁘게 바닷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상륙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약탈하였다.말하자면 치고 달리기 작전을 폈던 것이다.마치 서양의 바이킹같은 강도행위를 자행한 것인데 이때문에 영국같은 나라에서도 왕조가 교체되는 정변을 겪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성계가 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특세하더니 끝내는 정변을 일으켜서 조선왕조를 개창하였다. 그러면 대마도 왜구들은 무엇을 약탈하여 갔는가.주로 곳간에서 먹을 양식을 퍼가거나 곳간에 식량이 없으면 논의 벼를 베어다가 배에 싣고 달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왜구는 식량만 가져가는 예절바른 도적이 아니라 부엌의 그릇은 물론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 제기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의 불상과 범종까지 들고 달아났다.대마도에 원통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서는 본존이 고려불이라고 버젓이 자랑하고 있다.부처님만 고려제가 아니라 대웅전앞에 걸어놓은 범종까지 우리나라 것이니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다. 훔쳐온 것을 훔쳐 왔다고 이실직고할 그들이 아니다.고려왕이 바쳤다느니 조선왕이 하사하였다느니 그럴듯하게 둘러대기 마련이니 도적질당한 놈만 억울할수 밖에 없다. 왜구들은 물건만 훔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납치하여 팔아 먹었다.이런 과거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 오사키 어부들은 우리를 낯선 이방인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누구의 후손들인지를 너무나 잘알고 있다.15세기말 성종때의 학자 성현(성현)이 쓴 유명한 「용재총화」에 보면 왜 세종 원년(1419)에 우리나라가 대마도정벌을 단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고려말에 특히 왜구가 잦았는데 우리나라 연해에 진(군사기지)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심했다.태조가등극한 이후에는 주요한 포구에 만호를 두어 수군을 상주하게 하였더니 잠시 잠잠해졌었다.그러나 그뒤 다시 왜구가 침노하여 와서 세종이 삼군에 명하여 대마도를 정벌하게 되었다. ○1만7천명 출정 이처럼 세종대왕의 대마도 정벌은 왜구의 발본색원을 노린 일대 영단이었다고 할수 있는데 병력은 총1만7천명,배는 2백20여척이었다.총사령관 이종무가 중군장을 겸임하고 좌우군장이 그를 보좌하였다.공격목표는 바로 이 오사키항이었는데 길잡이가 대마도 사람이었다.우리 함대는 마산포와 거제도를 출발하여 그날로 이곳 오사키에 도착하였는데 처음에는 선발대 10척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이곳 마을 사람들은 도적질 하러 떠난 자기네 배가 돌아오는줄로 알고 술과 떡을 들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탄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르고 헤어 스타일이 전혀 다른 것을 알고 놀랐다.잇따라 수백척의 배가 들어오니 모두 기겁을 하고 산으로 달아났다.바로 그 현장이 오사키항인데 향토사학자 영류씨는 웃으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여유를 보였다.그렇다.지금은 서로 웃으면서 그날을 회상할수 있으나 이곳에서 전사한 좌군장 박실을 생각하면 반드시 웃을 일만은 아니다.박실 장군은 우군장과 중군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총사령관 이종무의 큰 실수였다.만일 그가 박실의 좌군을 지원했더라면 대승을 거두어 왜구를 발본색원하였을 것인데 우유부단한 그의 성격때문에 그뒤에도 왜구는 끊이지 않다가 마침내는 임진왜란을 당하고 말았다.
  • 한국투자증권·대한화보 등 5사/1천억 유상증자 허용

    한국 상장회사 협의회는 16일 유상증자 조정위원회를 열고 한국투자증권,신흥증권 등 5개 금융기관이 내년 1월 납입 예정으로 신청한 유상증자 계획을 승인했다. 유상증자 규모는 한국투자증권 2백86억원,신흥증권 2백44억원,대한화재보험 2백25억원,해동화재보험 92억원,중앙투자금융 2백억원 등이다.
  • 주가 폭등한 증권·보험·단자사 대상/내부자거래 조사착수/증권거래소

    ◎증자허용 앞서 최고 14% 올라 증권거래소는 지난 10일의 금융기관 증자허용 방침 발표에 앞서 주가가 폭등한 일부 증권·보험·단자사를 대상으로 내부자거래 조사에 착수했다. 11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발표 나흘전인 지난 6일부터 발표일인 10일까지 증자가 허용된 모든 보험사가 상한가를 기록했다.신흥·한국투자·동아·삼성등 증권사와 중앙투금의 주가도 초강세를 나타냈다. 이 기간중 해동화재는 14.29%,고려화재는 13.5%,대한재보험은 13.3%가 폭등하는등 종합주가지수 상승률 1.1%를 크게 상회했다.한국투자증권은 10.2%,삼성증권은 8.43%,동아증권은 8.24%가 올라 증자허용 대상에서 제외된 기타 증권사가 이 기간중 1.1% 내린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중앙투자금융도 여타 단자사가 0.7%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6.2% 올랐다.
  • 13개 금융기관 공개·증자 허용/증권4·보험7·투금1·종금1사

    ◎2천5백억규모… 내년 1∼3월중 은행을 제외한 제 2금융권 13개 기관에 대해 내년 1∼3월중 총 2천5백억원의 증자 및 공개가 3년8개월만에 허용된다.재무부는 지난 90년 5·8 증시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억제해온 금융기관의 증자를 이같이 허용하기로 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증자 및 공개가 허용되는 금융기관은 5·8조치로 증자와 공개가 보류된 금융기관,업종전환 기관,경영악화 등으로 증자가 불가피한 기관들이다. 증자 및 공개물량은 납입금액 기준으로 4개 증권사가 1천억원,7개 보험사 1천억원,중앙투자금융 2백억원,한국종합금융 3백억원이다. 증자대상 증권사는 신흥증권·한국투자증권·동아증권·삼성증권이고 보험사는 대한화재·해동화재·고려화재·한국자동차보험·대한재보험·동양화재·제일화재이다.한국종금은 공개대상이다. 재무부는 공개로 인한 증시의 불안정을 막기 위해 증자금액의 50%를 주식매입 자금으로 쓰도록 했다.증권사는 증자금액의 25%를 증안기금에 출자하고 나머지 25%는 주식을 매입해야 하며 다른 기관은 50%를 투신사의주식형 수익증권을 사야 한다. 한편 은행의 증자는 내년 4월 이후의 증시상황을 봐가며 검토하되 상업은행의 경우 상업증권의 매각상황을 봐가며 내년 2월쯤 증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 서울대,해상관측기지 세운다/동해안 망상에 95년까지 건립

    ◎해수 실험실 끌어들여 오염실태 등 분석/해류­대기 등 포함 입체해양연구의 전기 러시아의 동해 핵폐기물 투기를 계기로 해양오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가 임해연구동 및 해상관측기지를 동해안 망상에 설치키로 결정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바다위에 세워질 해상관측기지는 해안오염이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해양학발전은 물론 해양오염과 해양생태계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는 지난 6월 제3차 캠퍼스시설검토 회의를 갖고 해양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서 해양학기초연구를 지원하고 학사 및 석·박사과정 학생들에 대한 실험실습 및 현장학습과 해양응용기술개발에 기여할수있는 연구기관인 임해연구동 설치를 확정짓고 부지확보등 교육부승인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서울대는 이 연구소를 내년 3월에 착공,오는 95년 완공키로하고 올해 시설사업 예산으로 2억6천만원,내년도에 4억5천만원등 모두 7억1천만원을 확보한상태다. 임해연구동은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1의6·7에 지하1층,지상3층 4백84평규모로 세워지며 2층짜리 숙소동 부지는 현재 물색중이다. 연구동에는 강의시설로 세미나실 및 회의실과 집회시설,그리고 옥상에 기상관측 타워 및 통신용 안테나,해양관측 인공위성 수신용 안테나등 보조시설이 설치된다. 또 해양관측기지에는 필요한 해수를 수시로 실험실로 끌여들여 해류(유향·유속)·조석·파랑(파향·파고)·기상(풍향·풍속·습도·기온·기압·오존·대기질)관측 및 인공위성에 의한 해면온도(SST)를 측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된다. 자동관측기지는 해안에서 0.5㎞정도 떨어진 수심 15m의 바다위에 가로8m 세로10m 규모로 설치되는데 해저케이블을 이용 연구동과 연결,임해동에서도 해류의 흐름등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해양대등 일부 대학에도 임해연구소가 있으나 해양관측기지가 설치되지 않아 해양오염실태조사를 위한 연속적인 해양관측 자료들의 축적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이에따라 환경처는 이 자동관측기지에 해양수질및 대기질 표준 모니터링 관측소를 설치하기위해 이미 28억원짜리 기자재 구입을 추진중에 있다. 서울대는 그동안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국내최초로 해양학과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인접한 임해연구시설이 없어 효율적인 현장학습을 해오지 못한 실정이었다. 임해연구동이 완공되면 물리·화학·미생물등 인접학문의 발전도 함께 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서울대는 특히 임해연구동을 온라인체계로 관악 캠퍼스 및 환경처,과기처등 정부기관뿐아니라 전국 해양관련 교육기관에도 제공하여 우라나라 해양학발전에 획기적인 성과를 기할 예정이다. 외국의 경우,일본 동경대 부설 해양연구소의 오츠치 임해연구센터는 해안에서 약 4백m정도 떨어진 섬에 자동관측기지를 설치,해상 기상 관측을 하고있다.
  • 불타는 단풍에 오욕을 태우고서(박갑천칼럼)

    꽃소식은 북상하는데 비해 단풍소식은 남하한다.그게 봄과 가을의 차이인가.지난여름의 저온현상으로 해서 여느해보다 일찍 시작된 단풍의 남행길이다.전국의 산과 들이 붉누런 때때옷을 걸쳐나간다. 『단풍은 연홍이요 황국은 순금이라/신도주 맛시 들고 금은어회 더 죠□라/아희야 거문고 □여라 자작자가 □리라』.요맘때의 정경을 읊은 노가재 김수장의 시조이다.자연에 묻혀 거기 동화하는 삶을 즐기는 가인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자작자가」아닌「대작대가」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가을의 단풍은 증자의 말(논어:태백편)을 떠올려보게 한다.그가 오랜병으로 누워있을 때 노나라의 세도가인 맹경자가 찾아오자 그에게 했던 말이다.『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착한말을 한다』(인지장사이 기언야선)고 한 그때의 말은 오늘에도 사람들 입입에 오르내린다. 그렇다.이윽고 땅위에질 이파리들이「착한말」과도 같이 들려주는「원색의 향연」이 단풍 아닌가.죽으려면서 펼쳐보이는 저녁노을의 화려함이다.얼마 남지않은 삶을 곱게 수놓는 자연에의귀의이다.그러기에 아름답다.고개 숙어진다.그 울긋불긋한 색상은 저 초나라의 지효노래자의 오색반란의를 연상해보게도 한다.나이 일흔에 어버이 기쁘게 해드릴양으로 입고서 어린애 재롱을 부렸다던 그옷 말이다.인생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어버이 기쁘게 했음은 자연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사람들 마음에 기쁨을 심는 것과 같다.인생위에 엮어지는 제상이 실상 그렇게 우습고 허무한 것 아니던가. 고려조의 문신 문진공 이장용의시「단풍」(홍수)에서도 그걸 느낀다.­『한이파리 바스락지는 밤소리(야성)에 깜짝놀라/천산의 숲들 문득 서리내린 갠아침에 상기됐네/가엾어라 푸른산기운 비춰 깨뜨림이여/알지못했네 흰머리카락 재촉할줄을/거친뜰 바라보는 가을회포는 씁쓸한데/먼산에 부딪쳐 타는 눈부신 석양이여/기억도 새로워라 지난해 바로오늘/그병풍 그림속을 거닐던 연연(외몽골에 있는 산이름)길이』(원문생략:손종섭역).나라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을 산「해동현인」의 착잡했던 심경이 단풍과 인생에 엇짜여 드러난다. 오늘내일 단풍구경 떠나는 이들이적지않을 것이다.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아름답게 감상할줄도 알아야겠다.마음속 오욕일랑 불타는 단풍에 태우고서 돌아올 일이다.
  • 경제 난맥상/작년 물가 20배 올라 파탄직면(러시아는 어디로:4)

    ◎보수파 유혈진압 이후의 정국전개/옐친 사유화 “충격 요법” 빈부차 확대/시장경제 토대 전무속 무리한 개혁/기업도산·실업자 급증 해결책 없어 고민 러시아의 권력대결을 흔히 서방에서 치부하듯 정치적 선악의 대결로만 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이 대결의 밑바탕에 정치적 이해타산외에 러시아의 경제회생책에 대한 첨예한 의견대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불행히도 지금 러시아의 경제는 대립중인 이들중 어느 한쪽에 의해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중병에 걸려 있다. 벤츠승용차를 타고 달러숍에만 다니며 입고 먹는 계층이 날로 느는가 하면 휴지나 다름없는 10루블짜리 한장을 구걸하는 사람이 지천에 깔린게 러시아의 현실이다.빈부격차,인플레,관료부패,의료·교육제도의 붕괴 등 개혁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들은 다수의 국민들을 극도의 절망속으로 몰아 넣었다.지난 한해동안 평균물가는 20배가 올랐다.이로 인해 월급생활자인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은 파탄직전에 이르렀다. 이 마당에 쇼크요법식 경제개혁을 추진해온 옐친대통령은 「선」이고 대신부작용들에 대해 보완책을 마련하며 점진적인 개혁을 하자는 의회보수세력은 「악」이라는 도식적 이해는 현실을 너무 도외시한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이번 유혈사태도 불만세력을 양산시킨 옐친대통령에게 원인제공의 근원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을 갖는다. 옐친개혁의 선봉장인 가이다르부총리가 추진하는 개혁의 요체인 사유화에 대해서도 일반의 지지는 저조하다.많은 국민들은 국가재산의 사유화는 주로 마피아인 신흥부자들과 결탁한 고위관료,공장책임자들의 주머니만 채워주었을뿐이라고 믿고 있다.이번 사태직전 러시아 여론조사들을 보면 조사 대상자의 3분의 2가 『사유화가 국가재산을 극소수 사람들의 수중에 모아주었다』고 답했다. 옐친대통령은 7,8일 연이어 부실기업에 대한 보조금철폐 기업파산법 등을 선포,쇼크요법식 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러시아기업의 70%는 종업원 1천명이상을 거느린 대기업들이다.참고로 미국에서 종업원 1천명이상의 기업비율은 26%에 불과하다.옐친대통령은 생산성은 낮고 고용원만 많은 이들 거대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기 전에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반면 보수파들은 오히려 이 공장들에 보조금을 주어 먼저 생산을 늘리고 실업자는 최소한으로 줄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옐친의 또다른 고민은 충격요법식 경제개혁을 소화해낼 시장경제의 하부구조가 전무하다는 점이다.70년의 중앙통제체제로 시장경제의 바탕은 모두 파괴됐고 게다가 모든 기업은 경쟁이 필요없는 독점체제이다.「실업자가 없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은 모든 공장·사업장들을 필요없는 인력들로 득실거리게 만들었다.여기서 생겨난 노동자들의 나태,무책임성은 지금도 바뀔 기미가 없다.시장경제의 주축이 돼야할 소규모 소비재,서비스업의 토대는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옐친개혁의 단기승패는 생산량하락과 인플레를 막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지난 1년간 GNP는 15% 하락,인플레는 지난 8월 한달 30%에 달했다.부실기업의 문을 닫게하고 국가보조금을 없애다보니 생산량이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 가이다르부총리는 긴축정책을 계속할 경우 95년말쯤 생산량이 바닥을 치고 그 다음부터는 상승곡선으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도 결국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러시아의 토양에는 맞지 않는 가설이라는 반박도 있다.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생겨날 대규모 기업도산,실업자문제에 대한 대책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 부작용들에 대비하다간 대규모 재정소요로 개혁구도 자체가 흔들릴게 뻔하고 반대로 이를 무시할 경우 또다시 엄청난 사회·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옐친개혁이 처한 딜레마는 깊다.양자중 한쪽을 택해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겠지만 위험부담은 결국 마찬가지인 셈이다.
  • 만송원 뒷산 종가 묘역(일본속의 한국문화:4)

    ◎32대 7백년 통치 대마도주 집안 묘지/향나무 숲속 자리… 아래부터 웃분모셔 특이/청수산성은 조선 침략군 전진·병참기지로 만송원 원당을 보고 나면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선다.수령 1천년을 자랑하는 향나무 사이로 이끼낀 돌계단이 놓여 있고 좌우에는 석등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공동묘지다.혼자 가라면 망설여지는 곳이기도 하다. ○애첩까지 함께 묻혀 바로 이곳이 고려시대 중기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7백여년에 걸쳐 대마도를 지배하면서 한·일 두 나라 사이를 오간 32대에 걸친 대마도주들의 공동묘소다.일본에서도 단 세곳밖에 없다는 종중묘지인데 묘역에는 역대 도주는 물론 그 정실부인과 애첩들,그리고 그 피붙이들까지 모두 한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알고 보면 고려때 우리나라에서 이 섬으로 건너간 송씨일족의 무덤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양식이 모두 왜식이라 우리에게는 전혀 생소한 느낌을 준다.가장 이색적인 사실은 아래위가 뒤바뀐 무덤의 서열이라 할 수 있다.이 공동묘지는 윗무덤(상어령실)과 가운뎃무덤(중어령실),그리고 아랫무덤(하어령실)으로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일 윗무덤에 19대 의지 이하 32대까지의 후손들이 자리잡고 그보다 아래에 자리한 가운뎃무덤에다 10대부터 18대까지의 선조들을 모셔놓았다.그리고 제일 아랫무덤에 이들 선조의 부인과 아이들을 묻어놓았으니 완전히 선후배가 꺼꾸로 자리한 꼴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마도 나름의 까닭이 있었던 것 같다.19대 종의지와 그의 아들 종의성은 임진왜란을 이용하여 대마도를 일신해놓은 중흥의 명주로 알려져 있다.이 두 사람이 나오기 이전의 대마도는 먹고 살기도 어려웠고 왜구들이 군웅할거하던 섬이었다.이런 대마도의 사정을 잘 알려주고 있는 기록이 송희경이 쓴 「일본행록」이다.송희경은 세종대왕이 대마도를 정벌한 이듬해인 세종2년(1420) 사신으로 일본 가는 길에 대마도에 들렀다. ○왜군의 길잡이 노릇 그때 대마도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배추빛(채색)으로 떠 있었다고 한다.배추빛이란 굶어서 얼굴이 누르스름하다는 이야기다.대마도뿐만 아니라 일본본토가 모두 가난하여 도처에 해적들이 우굴거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잡혀 죽을 정도였다.송희경보다 50년 뒤인 1470년(성종2년)에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를 읽어보더라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대마도로서는 일본을 믿고 의지할 데가 없었고 죽으나 사나 조선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6세기말 대마도는 갑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임진왜란 때문이었다.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하자 종의지는 재빨리 왜장을 찾아가서 전승을 축하하였고 그 자리에서 조선과의 교섭사명을 부여받았다.그러다 보니 결국 왜군의 선봉장으로 나서게 되었고 조선으로부터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이다. 종의지는 먼저 대마도를 조선침략군의 전진기지요 병참기지로 제공했다.바로 이곳 이즈하라의 진산인 청수산에 남아 있는 산성지가 그것인데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에 지은 것이다.북구주의 명호옥에서 일기도의 승본을 거쳐 대마도의 청수산성으로 이어지는 침략군 루트가 지금도 생생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인데일본에서는 임란사적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종의지가 다음에 한 일은 대마도민 2천8백명을 침략군 선봉에 나서게 하는 일이었다.2천8백명이었다면 임란때의 왜군 총병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마도군의 역할이 막중하였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침략 왜군은 크게 세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소서행장이 이끄는 제1번대와 악명 높은 가등청정이 이끄는 제2번대,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용장정이 이끄는 제3번대가 그것이었다.이중에서 대마도군은 소서행장의 제1번대,그것도 최선봉군으로 부산에 상륙하여 일로 서울로 북진해갔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가장 가깝고 서로 믿고 지낼 수 있던 대마도주 의지가 침략군의 앞잡이가 되어 다시 나타났으니 배신도 이만저만 배신이 아니었다.이때만 하더라도 일본 본토의 왜장들은 조선의 지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어떻게 나 있는지 아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아는 사람은 오로지 대마도인뿐.그들은 이미 고려때부터 조선을 내왕하여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상경로를 훤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만일 이 고려인의 후예 종가놈이 완강하게 길안내역을 거절하였거나 아니면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왜군은 삼천포로 빠져 남한일대에서 헤매었을지 모를 일이다.만일 그랬더라면 왜란은 조기에 종결되었거나 그 피해 또한 그토록 극심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임난후 쌀수출 중지 뿐만 아니다.임진왜란이 끝난 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가 대마도인의 접근을 금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부산에 있던 왜관이 폐쇄되고 대마도에의 곡물 수출을 일체 금지하게 되자 대마도경제는 일대 공황속에 빠지고 말았다.자업자득이었다고 할 수 있고 배신행위에 대한 당연한 응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대마도주로서는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는 원수」로까지 험악해진 조선과의 사이를 또 다시 교활한 속임수로 뚫고 나가기로 했다. 이것이 이른바 국서위조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기극인데 임란 이후의 한·일국교정상화는 불과 8년만에 이루어졌다.이를일제침략 종식후 20년만인 1965년에 성립된 한·일국교정상화에 비한다면 배나 더 조기에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그 배후에는 대마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때 일본의 실권자 덕천가강은 단 한푼 배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 한마디 사죄하지 않은 상태로 앉아서 통신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공로로 대마도주는 일본 상전에게 두둑한 상을 받게 되었으나 우리나라 조정에 대해서는 다시 배신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대마도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서 기울어졌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임란 전후였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 영주귀국 맹점(사할린 한인 망향의 한 50년:2)

    ◎또다른 이산 부르는 「독신자 제한」/80%가 가족 버리고 신분속여 입국/사할린 처자 그리워 재출국 사례도 지난해 9월29일 사할린한인사회는 엄청난 감격에 휩싸였다.강제징용으로 끌려온 1세 한인 77명이 영주귀국이란 이름으로 고향땅으로 돌아간 것이다.한인단체들이 합동으로 환송회를 열었고 러시아주정부 지도자들까지도 떠나는 노인들을 축하하며 환송했다.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소위 무의탁 독신노인을 선발해 모 교회가 운영하는 강원도 춘성군 소재 양로원 「사랑의 집」에 거처가 마련된 것이다.금년 3월20일 역시 1세 독신노인 42명이 2차로 이 「사랑의 집」에 합류했다. 주노인회에 따르면 이밖에 지난 89년부터 국내에 있는 친척들이 직접 초청해 들어간 영주귀국자수도 1백여명에 이른다.그리고 경북 고령에 있는 모 양로원으로 영주귀국해 들어가기 위해 80명이 현재 수속중에 있다. 영주귀국자들은 한동안 사할린에 남은 1세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서윤준 이산가족회장의 말을 빌리면 『영주귀국 신청자들로 붐벼 사할린 이산가족회와 노인회 사무실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대한적십자사가 영주귀국 대상자를 선발하는 기준은 「65세 이상,무의탁 독신노인」이다.그런데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에 처자식이 엄연히 있는 노인들이 무의탁 독신자라고 서류를 꾸며 영주귀국자로 신청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십년을 함께 산 부인들과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고 나선 노인들이 속출하고 자식들이 엄연히 있는 노인들이 무의탁자라고 신청서를 냈다.특히 부인이 러시아여자거나 재혼한 사람,혼인신고 없이 동거하던 노인들은 하나같이 「독신」서류를 만들어 영주귀국 대열에 선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처자식들이 노인회·이산가족회 사무실에 몰려와 『제발 못가게 말려달라』고 하소연하는 사례가 빈발했다.서회장은 『처자식들이 보내지 말라고 하도 애원을 해 몇사람을 대상에서 제외시켰더니 그 노인들이 사무실로 몰려와 「이놈아,네가 나한테 무슨 원수가 졌길래 내 고향길을 막느냐」며죽인다고 해 혼이 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서회장은 『지금까지 영주귀국한 1백19명중 실제 무의탁노인은 20%가 채 안된다』고 실토했다.이같은 사실은 주노인회 박해동회장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이산가족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사업으로 인해 새로운 이산가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주귀국자중에서 적응을 못해 다시 사할린으로 되돌아 오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지난 7월28일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사할린을 다시 찾은 영주귀국자 15명중 1명이 자살하고 나머지 4명은 지금 한국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중의 1명인 한상국(81)옹은 『고향땅에 묻히겠다는 일념에 영주귀국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사할린에 두고온 가족들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사할린에 42년을 함께 산 러시아부인과 자녀 4명이 있다.한옹은 또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집」에서 술과 담배를 못하게 하고 새벽기도를 올리게 한다고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게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노인회 박회장은 영주귀국자들의 처우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그는 『우리는 50년간 이역에서 고향을 그리며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그리고 70세 넘은 노인들을 새벽 3시 반에 깨우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이곳의 많은 인사들은 『영주귀국을 결정하기 전에 대상자들에게 모국방문의 기회를 여러번 주는 것도 이런 부작용들을 막는 한가지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 두번 고향땅을 보고 오면 망향의 사무침도 분명 조금씩 풀어질 것이고 무리한 영주귀국도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다.지금 한적이 추진하는 모국방문은 1인1회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예산부족 때문인지,인식부족 탓인지 아직 이런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사할린한인문제를 일선에서 다루는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의 T모 영사는 『영주귀국을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 일도 바쁜데 그런 사소한 일에 일일이 신경쓸 수 없다』고 말했다.
  • 문민정부 출범에 운동권 급격 위축/대학가 어떻게 달라졌나

    ◎이념모임 줄고 도서관은 항상 만원 새정부 출범이후 크게 달라진 대학의 분위기에 대해 서울의 어느대학 학생처장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 단언했다.한마디로 대학가의 학생운동이 과거의 정치적이거나 이념투쟁에서 「생활학생」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얘기다. 해방이후 좌·우익의 이데올로기대립으로부터 출발했던 학생운동의 「자주」「자유」「민주」등 이념적 구호가 사라지고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생으로서의 실질적 모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젊은이로서 목말라했던 이념적 욕구가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자연히 해소돼버린데 따른 것이다. 최근들어 통일을 대전제로 남북학생접촉을 운동권에서 최대의 이슈로 내걸었으나 대다수의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해 시들해졌고 그밖의 정치성 학생집회나 시위도 참여학생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명맥을 잇기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지난 몇해동안 대학생 시위는 87년 2천8백58회에서 88년 2천5백24회,89년 1천6백98회,90년 1천7백81회,91년 1천2백61회수준이었다가 지난해에는 7백50회,올들어서는 0백00회로 줄었다.그만큼 대학사회의 모습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문민정부아래서 대학생들의 주요 관심사항은 취업과 레저,문화생활 여행 취미활동 그리고 도서관에서의 자리확보등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것들이라고 한다.신입생들은 이념서클보다는 취미나 관심있는 부문을 접할수 있는 동호인서클을 찾고 있으며 대학가 서점에서도 이념적 서적보다는 전공이나 실질적인 문제를 다룬 책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 한마디로 공통적인 이슈가 사라지면서 개인적 관심들을 좇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과거 획일적이고 독재적인 상황에서 잃었던 자기를 찾고있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개혁바람으로 고액과외가 사라짐에 따라 대학가에 과거 흥청망청하던 풍조가 사라지고 이른바 3D직종도 마다하지않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지난 6개월동안 대학가의 큰 변화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 차번호인식시스템 등 1백11개품목/「KT」마크제 첫 획득

    범죄차량을 실시간으로 자동인식, 사고를 막고 검거를 도울 차량번호자동인식시스템등 국내기술진이 개발한 1백11개 제품및 신기술이 처음으로 국산신기술인정 KT마크를 획득했다. 과학기술처는 2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지난 6월19까지 기업체로부터 신청받은 3백98개 신기술을 심사,독창성과 우수성이 인정되는 이들 제품및 신기술에 과기처장관의 인정서및 국산신기술인정마크를 주었다. KT마크란 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을 정부가 조기에 발굴,우수성을 인정해줌으로써 제품의 신뢰성을 높이고 시장진출기반을 조성해주는 제도다.이번에 선정된 제품및 국산신기술은 ▲건아기전(주)의 차량번호자동인식시스템등 전기·전자분야 24건 ▲(주)메디슨의 진단용 초음파혈류측정기술등 기계분야 29건 ▲(주)에이스안테나 VHF및 UHF용 대역통과여과기등 정보통신분야 25건 ▲현대엔지니어링 고농도유기폐수의 처리방법및 장치등 화학·생물분야 25건 ▲덕산금속 인쇄회로기판용 전해동박제조기술등 금속·비금속분야 8건 등이다. 선정된 기업별로는 삼성이 12건으로가장 많고 금성사 10건,금성정보통신및 럭키 각각 8건,기아자동차 4건등이며 중소기업으로는 (주)에이스안테나가 3건으로 유일하게 2개이상의 국산신기술을 획득했다.
  • 태풍 동해로 빠져 소멸

    강한 비바람을 동반했던 제7호 태풍 「로빈」이 영남및 영동해안지방에 많은 비를 뿌려 적지않은 피해를 낸뒤 동해로 빠져나가 소멸됐다. 기상청은 10일 『A급태풍인 「로빈」이 이날 상오6시 부산남쪽 2백70㎞해상에서 중심기압 9백60hpa,최대풍속초속 40m의 B급으로 약화,매시 38㎞의 속도로 북북동진하면서 남해동부및 동해남부지방에 집중호우를 내린뒤 하오11시 울릉도 북동쪽 2백70㎞해상을 빠져나가 온대성저기압으로 약화됐다』고 밝혔다. 이날 하오 11시 현재 총강수량은 대관령 3백61㎜,강릉 2백29㎜,울산 2백14㎜,속초 2백2㎜,울진 2백2㎜,영덕 2백㎜,포항 1백90㎜,거제 1백80㎜,부산 1백4㎜,충무 1백3㎜ 등이다.
  • 남동해안 태풍 퍼시 비상/오늘새벽 부산앞바다 접근

    ◎강풍·폭우 동반… 큰 피해 우려 제6호 태풍 「퍼시」가 30일 상오 동해안으로 비켜갔다. 그러나 경남·북동해안지역과 강원도 영동지방은 태풍영향권안에 들면서 강풍과 함께 많은 비가 내려 피해가 잇따랐다. 기상청은 29일 『중심기압 9백75헥토파스칼(hpa),중심최대풍속이 초속 30m인 B급 중형태풍 「퍼시」가 이날 하오11시 현재 부산남쪽 3백20㎞ 해상에서 매시 40㎞의 빠른 속도로 북북동진,동해안으로 북상중』이라고 밝혔다. 기상청은 『이 태풍이 30일 새벽 4∼5시쯤 대마도 동쪽해상을 지나면서 남동해안지방이 직접 영향권에 들겠다』면서 『강한 비구름대와 장마전선을 동반한 이 태풍의 영향으로 이 지역에서는 최고 2백㎜이상의 많은 비가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기상청은 29일 하오11시를 기해 남해동부 먼바다에 태풍경보를,제주도및 영남해안·남해서부먼바다·남해동부앞바다·동해남부및 동해중부 전해상에 태풍주의보를,경남내륙에 호우경보,강원영동·경북내륙지방에 호우주의보를 각각 내렸다. 태풍 「퍼시」는 30일 상오11시쯤 울릉도남쪽 1백20㎞해상을 지나 하오5시쯤 울릉도 북동쪽 해상을 통해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9일밤부터 30일 하오 늦게까지 부산·영남지방에 1백40∼2백20㎜,경북·강원지방에는 30∼1백80㎜,서울·경기 10∼40㎜,호남·충청·영서지방에는 20∼60㎜의 비가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30일 0시 현재 지역별 강수량은 울산 1백62㎜,수원 1백56.3㎜,양평 1백35.5㎜,부산 1백23.5㎜,거제 1백8㎜,태백 1백7.5㎜,충무 92.8㎜,이천 90㎜,춘천 87.3㎜,인천 83.8㎜,서울 54.6㎜등이다.
  • 4호태풍 네이선 북방/오늘새벽 일 상륙/동·남해에 폭풍주의보

    제4호 태풍 「네이선」(NATHAN)이 25일 상오 일본에 상륙,우리나라 동·남해안지방에 간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4일 『중심기압이 9백80mb,중심부근최대풍속 초속 25m인 태풍 「네이선」이 자정 현재 일본 나고야 남쪽 약 3백50㎞해상에서 매시 50㎞의 속도로 북북서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이 태풍이 25일 새벽에는 나고야 부근 해안에 상륙하면서 약화될 것으로 보이나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 동해에는 초속 14∼20m의 강풍이 불고 3∼5m의 파고가 일겠다고 전망했다. 기상청은 이에따라 25일 상오3시를 기해 부산앞바다및 남해동부먼바다,동해 남부전해상,울릉도·독도및 동해중부 먼바다등에 폭풍주의보를 내렸다. 기상청은 이와함께 나고야쪽으로 일본에 상륙한 태풍이 얼마나 약화되고 어느쪽으로 갈지는 25일 새벽쯤에 알 수 있겠으니 주의를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 여행보험/국내 1억·해외 3억원까지 보상

    ◎계약기간/국내/2∼30일/해외/2일­1년/여행중 보험증권 지참해야 혜택받아/1억원·5일짜리 보험료 1만82만원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휴가를 위해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교통사고등의 사고를 당하거나 물건을 잃을 수가 있다.이 때를 대비한 보험이 여행보험이다.여행보험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여행을 하는 경우 들 수 있다.보험이란 원래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지만 특히 여행중에는 보통때보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보험을 한번쯤 고려해 봄직하다.관광이외에 출장·방문등 각종 여행을 할때 여행보험에 들면 국내여행의 경우 최대 1억원까지,해외(외국)여행의 경우는 최고 3억원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손해보험사가 취급하고 있는 여행보험을 소개한다. ▷국내여행보험◁ 해동화재를 제외한 럭키·동양·현대등 10개 손보사가 취급하고 있다.보험사마다 보험료와 보험금이 다소 차이가 있으며,보험(계약)기간은 2일에서 1개월까지다. 여행중 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쳐서 후유증이 있을 때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1천만∼1억원이다.사고로 몸을 다쳐 의사의 치료를 받을 경우 받을 수 있는 상해의료비는 50만∼5백만원이다. 여행중의 병으로 사망했을때는 1백만∼1천만원까지 받을 수 있으며,휴대품을 잃거나 파손됐을때는 1건당 20만원의 한도내에서 최고 1백만원까지 보험금을 탈수 있다.또 여행도중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을때의 보험금은 1백만∼1천만원이다. 보험료는 보험금이 최대 1억원일 때 5일짜리는 1만82원,보험금이 최대 5천만원일 때는 5천19원이다.배우자나 가족(본인의 미혼자녀와 본인 및 배우자의 부모)이 같이 들 수도 있다.이 때의 보험료는 본인보다는 적지만 보험금을 보상받을 수 있는 범위도 상해사망·후유장해·상해의료비로 제한된다.가령 배우자가 보험금이 5천만원일때 내는 보험료는 5일짜리가 3천1백70원이다(이상 럭키화재의 경우). 20명이상 1백명미만의 단체계약일 때는 보험료의 5%를 깎아주는등 단체 계약일 경우는 최대 20%까지 할인해준다. ▷해외여행보험◁ 11개 손해보험사가 모두 취급한다.보험기간은 2일에서 1년까지로 다양하며 회사마다 종류·보험금·보험료가 다소 다르다. 보험금액은 보통 2천만∼3억원이다.여행중의 사고로 사망했을 때는 보험가입 금액을 받게되며 사고로 인한 장해로 후유증이 있을때는 보험금액의 3∼1백%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여행중 병으로 사망하게 되면 5백만∼2천만원을 받게 된다.여행중의 우연한 사고로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끼쳤을때는 최고 2천만원까지 보상이 가능하다.항공기나 선박이 행방불명되거나 조난당했을때,병으로 14일 이상 입원했을 때는 구원자의 수색·구조비·항공운임등으로 최대 1천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보험료는 보험금 3억원일때 10일짜리는 4만2천8백10원,1억원일때는 2만3천3백66원이다(이상 현대화재의 경우).보험금은 국내는 물론 현지에서도 외국의 보험서비스 대행기관을 통해 현지통화로 받을 수 있다. ▷가입절차등과 유의할 점◁ 국내여행보험은 여행 떠나기 2∼3일전,해외여행보험은 1주일전에 가입하는 게 좋다.여행때는 보험증권을 갖고 다녀야 한다. 보험료는 한번에 내야하며 여행보험은 보험기간이 끝나면 낸 보험료를 돌려받을 수 없는 소멸성 보험이다.사고가 생기면 보험금청구서·사고증명서·진단서등 필요한 자료를 갖춰야 한다. 어떤 보험에 들때나 마찬가지지만 보험사의 약관을 잘 읽고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내용을 잘 들은뒤 계약을 해야한다.고의적인 사고등에는 물론 보상을 받을 수 없다.무면허 운전·음주운전도 마찬가지다.또 전쟁이나 외국의 무력행사·혁명·지진·해일등도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 이밖에 손해보험사마다 보험금과 보험료등이 조금은 차이가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 4세기 후반 요서·산동지방 진출(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8)

    ◎중국측 「송서」「양서」「북제서」등 사서에 기록/우리학자들 부정… 70년대에 교과서 수록 삼국 가운데 백제는 그 역사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게 인식되고 있다.고구려가 만주의 지배자로서 중국의 왕조와 패권을 다투었고,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데 비해 백제의 활약상은 두드러진 것이 없는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이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한 초기에 가장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벌인 나라는 백제였다는것이 정설이다. 백제는 4C 후반 근초고왕 때 북으로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했으며 남동쪽으로는 가야의 여러나라를 사실상 복속시켰다. 또 바다 건너 중국 남조의 국가들과 국교를 맺었으며,요서·산동지방과 일본 일부지역에 직접 진출했다.당시 백제의 대외진출을 대표하는 사실이「백제의 요서및 산동 경략」이다. 5C 후반 편찬된 중국의「송서」백제전에는『백제략유료서 백제소치위지 진평군진평현(백제는 요서를 공격하여 차지했다.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했다)』고 기록돼 있다.「양서」백제전에도『백제 또한 요서·진평 2군을 점거하고 백제현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두 사서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백제가 요서지방(또는 요서지방내 요서·진평등 2개 군)을 점령해 군현을 세웠다」는 큰 테두리에서는 일치한다. 이와함께「북재서」후주기에「571년 백제 위덕왕을 동청주(현재의 산동반도 동남부)자사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백제가 산동반도에서도 일정한 세력권을 형성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백제의 중국경략」이 기록상 명확한 데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19C 전반의 학자 한진서가「해동역사」에서 이를 부정한 이후 19 6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역사책은「백제의 중국경략」을 다루지 않고 무시했다. 부정론자들의 주장은「당시 백제가 바다건너 만리가 떨어진 요서에 군을 설치할만큼 강력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또 요서에 군현을 설치했다면,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던 중국 북조의 국가와 마찰을 빚었을텐데 북조측 사서에서는 그같은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따라서 남조측 사서인 송서의 내용은 믿기 어려우며 송서를 옮겨 적은 양서등 다른 역사서들도 역시 믿을게 못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 67년 서울대 김상기교수가 ▲백제가 당시 바다를 통해 중국의 동진과 국교를 맺고 일본에 진출한 점으로 미뤄 요서를 경략할만한 능력이 있었다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하자 백제가 이에 맞서 요서에 진출했다」는 송서의 기록이 당시의 정세와 맞아떨어진다고 밝힌 이후「요서경략론」은 김철준·방선주·신영식씨등에 의해 꾸준히 보강돼 왔다. 국사교과서에는 이 내용이 70년대 중반부터 실렸다.다만 백제의 진출시기,점령기간등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엇갈려 있다.
  • 꽃 한송이(외언내언)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창과 꿈결처럼 나부끼는 레이스 커튼,독일거리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길가로 향한 아파트 창문의 꽃장식이다. 흰색과 보라색의 피튜니아,핑크와 빨강의 제라늄,남쪽 슈바르츠발트의 바덴바덴거리는 도시가 온통 줄제라늄을 창가에 매달고 있다.그래서 거리전체가 활짝 웃고 있는 인상이다. 구릉이 많은 샌프란시스코는 아파트창가의 꽃들이 굽이굽이 물결치는듯 율동적이며 뉴욕의 그레이트존이나 소호뒷골목은 회색빛이 감도는 우중충한 분위기지만 창가에 놓인 몇개의 화분이 낡고 어두운 것을 화사하고 밝게 카무플라주해준다. 꽃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주무숙은 그의 애연설에서 「국화는 은둔자 모란은 부귀자 연꽃은 군자」라 했고 김수장의 「해동가요」도 「이화는 시객,홍도 벽도 삼색도는 풍류낭」등 꽃마다의 의미를 읊고 있다. 지난주 끝난 TV외화시리즈 「다이너스티」에선 석유회사 캘링턴회장이 여주인공에게 수천송이의 장미를 선물,남성의 정열과 사랑을 장미꽃으로 대신하여 뭇여성들을 압도시키기도 했다. 말없는 꽃이 지닌 꽃의 언어는 얼마든지 풍요롭고 향기롭고 정직하다.기쁜 일은 더욱 기쁘게 슬픈 일은 애도의 염과 위로를 준다.그러나 마음의 표시가 지나치다보면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전시효과의 과시에 그치기 십상일 수도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놓인 꽃한송이는 콧노래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한다.집에 돌아오면 거실이나 식탁에 놓인 꽃 한송이만으로 가정의 안락과 휴식을 맛볼수 있다.반드시 한아름의 꽃다발만이 기쁨의 분량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애경사 화환금지로 전국 1만1천2백여 화훼농민이 몸살을 앓게 되자 농림수산부는 가정·사무실에 「꽃한송이 놓기」운동을 전개하는 모양이다.받아서 기쁘고 주어서 흐뭇하고 보기만해도 행복해지는 꽃.꽃한송이로 농민들에겐 웃음을 주고 꽃한송이로 우리의 생활주변을 좀더 향기롭고 아름답게 가꿔 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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