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해녀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숙소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만선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철수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소치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02
  •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의자에 파묻혀 대본(臺本)을 읽다가 그걸 무릎위에 놓은 채 잠이 들었던 모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주 천천히 눈을 뜨고 나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만진다. 극단 실험극장(實驗劇場) 사무실 안. 연극 대본을 읽다가 잠이 든 한 여배우의 잠과 잠 뒤의 화장은 보는 사람의 마을을 「센티멘털」하게 만들려고 하는 구석이 있다. 극본은 오태석(吳泰錫)작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김혜자(金惠子·28)는 이 연극에서 「히로인」 변이순역을 맡게된다. 극단 실험극장의 제20회 무대인 이 작품은 6월20일부터 24일까지 「드라마·센터」에서 공연. 김혜자는 최지숙(崔芝淑)과 더불어 이 땅 연극계에 있어서의 청춘의 「심벌」이자 가장 사랑받는 25대여배우중의 하나(老役을 많이 맡는 여운계(呂運計)의 연기력을 포함해서). 백성희(白星姬) 나옥주(羅玉珠)의 계보로 이어지는 1급의 배우의 「바통」계승을 착실히 닦고 있다. 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안한다기 보다도 천성으로 할 줄을 모르고 성실한 여자라는 것이 연극계의 일반적인 평인데 예컨데 누가 남의 욕을 하면서 『같이 욕하자』는 표정으로 金양을 쳐다보면 『전 몰라요』라는 말 밖에는 못한단다. 그게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역시 천성. 金양이 처음 무대에 선 것은 23세 되던 62년 민중극장(民衆劇場) 창립공연으로 올린 『달걀』(페르시앙·마르소作). 경기여고 선배인 권영주(權寧珠)씨의 권유로 무대에 섰다. 『해보라고 해서 그냥 했는데 해보니까 참 좋아서 그냥 계속했어요』 그러니까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굉장, 단단한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또는 절로 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담담하기 짝이 없다 못해 시들해 보이기 까지 하는 어투. 「민중」에서 『국물 있사옵니다』 『토끼와 포수』 『도적들의 무도회』등에 출연했고 자유극장(自由劇場)으로 옮겨 『따라지의 향연』 『피크닉 작전』 『神의 대리인』 『해녀 뭍에 오르다』등에 출연. 실험극장에 오자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등에 출연하면서 그 재능을 평가 받았다. 그 동안 주역을 맡은 연극이 『피크닉 작전』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제일 애착이 가는 역은 『국물…』에서의 창부(현소희) 역인데 『왜 좋은지 모르지만』 역시 그냥 좋다. 『사할린스크…』의 「도시꼬」역도. 이번의 『유다여 닭이 울기전에』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서로 팔아 먹는 배신의 「드라마」이자 심층심리의 어떤 진실을 그린 것. 지금까지의 인습적인 연기「테크닉」과는 달리 가령「실망」같은 걸 대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발목의 관절이 딱 꺾인다거나 또는 뒤로 나가자빠지는 장면 등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낼지 걱정이라는 이야기. 어떻든 어색·딱딱이라는 때는 거의 완전히 벗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맑고 자유분방한 연기를 보는 사람을 삼키기 시작한 김혜자는 자기 자신의 「행동」과 「톤」을 보여주는 타고난 배우라는 느낌. 한편 KBS-TV 1기생으로 들어갔다가 TV출연을 4년간 쉬었고 다시 시작한 것이 재작년. 『무죄』 『탑』 『여고 동창생』 『2백50조』 『역류(逆流)』 『나는 참새올시다』 『잡았네요』 『아홉명이 찾는 여인』등에 출연. 현재는 『그림자』에 출연중이다. 김혜자는 부군 임종찬(林鍾璨·40)씨와의 사이에 1男을 둔 어머니. 『아빠는 밀어주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아요. 안하는 걸 속으로 바라고 있겠지만, 말해봤자 들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가만히 있겠죠 뭐. 집에서도 대본을 읽고 있으면 아이가 같이 놀자고 칭얼대요』 제2회 한국 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수상. 주량은 남들 말로는 맥주 1병이고 자신이 말한다면 1「컵」정도.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책꽂이]

    ●꽃신(김용익 지음, 돋을새김 펴냄)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소설가 김용익(1920∼1995)의 단편집.1956년 발표한 데뷔작 ‘꽃신’은 유명잡지 ‘하퍼스 바자’등 세계 각국의 유명 매체에 소개됐고,‘해녀’는 미국 중고등학교 영문학교과서에 실렸다. 이번 단편집은 두 작품외에 ‘종자돈´ `겨울의 사랑´ `동짓날 찾아온 사람’등 모두 6편을 묶었다.8000원.●해리포터와 혼혈왕자 1·2(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문학수첩 펴냄)발매 첫날 미국에서만 690만부가 팔린 ‘해리포터 시리즈’6탄이 번역돼 나왔다. 전편에 이어 음산하고 암울한 전쟁터를 배경으로 유머와 로맨스, 재기발랄한 대사로 짜릿한 모험의 세계를 펼친다. 늠름한 청소년이 된 해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애쓰는 존재론적 고민이 더해졌다. 각권 8500원.●쏘주 한 잔 합시다(유용주 지음, 큰나출판사 펴냄)중학교 중퇴후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우유배달 등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온 저자가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이후 5년 만에 낸 산문집. 부산에서 두바이까지 17일 간 항해여정을 기록한 ‘아름다운 것은 독한 벱이여’를 비롯해 고단한 현실의 속살을 헤집고 따뜻한 시선으로 건져올린 아름다운 이야기 16편을 실었다.9000원.●완벽한 하루(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문이당 펴냄)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오직 자살만을 꿈꾸는 한 남자의 24시간을 그린 소설. 프랑스 문단이 주목하는 신예작가인 저자는 스물다섯 살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실업과 고용불안,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재기발랄하게 풀어낸다.9500원.●피아노 소나타 1987(강유일 지음, 민음사 펴냄)독일의 통일 과정을 지켜 본 재독 작가 강유일이 KAL기 폭파사건을 소재로 한국의 분단현실을 재구성한 소설. 북한의 동유럽 스파이 한세류는 동유럽에 초청받은 남한의 피아니스트 안누항의 공연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민간여객기를 폭파한 한세류는 세월이 흐른 뒤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가 안누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1만 2000원.
  • ‘인빌쇼핑’ 클릭, 특산품 ‘와르르’

    ‘인빌쇼핑’ 클릭, 특산품 ‘와르르’

    충북 제천 출신인 개인사업가 신현대(39)씨는 올 추석에 ‘고향의 맛’을 선물하기로 했다. 충북 제천의 월악산 약초마을과 청풍 물태마을에서 수확한 더덕과 홍화씨, 생강 한과를 선물로 보낼 계획이다. 인터넷 쇼핑몰 덕에 클릭 한번으로 구입을 끝냈다. 신씨는 “어렸을 때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먹던 음식을 고마운 분들과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추억까지 공유하는 느낌”이라고 웃었다. 강원 철원이 고향인 회사원 박천길(42)씨는 거래처 직원에게 추석선물로 철원 토성민속마을에서 생산된 한우 세트를 받았다. 박씨는 “고향 음식이 집으로 배달되니까 기분 좋더라.”면서 “연세가 많아 고향을 자주 못 찾는 분들에게 지역 특산물을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농수산물 쇼핑몰로는 국내 최대 신씨가 이용한 인터넷 쇼핑몰은 정보화마을 인빌쇼핑(www.invil.com)으로 행정자치부가 지원하는 곳이다. 전국의 191개 정보화마을 주민들이 수확한 저렴하고 신선한 국산 농수산물을 한 곳에 모아, 소비자에게 산지 직거래 방식으로 판매한다.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사고, 농어촌 주민들은 높은 소득을 얻을 기회를 얻는다. 상품 종류는 2000여종으로 농수산물 쇼핑몰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매출이 2배 가까이 늘고 있다. ●‘민통선 청정 한우 고기’세트 눈길 추석을 맞아 71개 마을이 14일까지 ‘한가위 특별이벤트’를 열고 청과류, 건강식품, 정육 등 350여개 상품을 싸게 내놓았다. 배송료는 무료. 맘에 들지 않으면 7일 이내에 반송하면 된다. 인빌쇼핑이 추천한 지역별 대표 상품을 살펴보자. 강원 철원 토성민속마을에서는 민통선 인근 농가에서 키운 100% 한우만으로 생산한 ‘민통선 한우 정육혼합세트’(3.5㎏ 11만 5500원)‘민통선 한우 VIP세트’(4.3㎏ 21만 3000원) 등을 선보였다. 한우는 청정지역에서 자란 데다 일교차가 심한 기후의 영향으로 육질이 뛰어나다. 진익택(46)씨는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급속 냉각한다.”면서 “맛이 좋아 단골이 많다.”고 자랑했다.13일까지 15만원 이상 구입하면 추첨해 철원오대쌀(10㎏)을, 30만원 이상이면 VIP세트를 준다. 충남 금산 인삼약초마을은 국내 최대 인삼 생산지답게 수삼, 홍삼, 홍삼액, 도자기꿀 등을 시중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한다. 금산은 전국 인삼 유통의 80%를 책임지고 있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밭에서 바로 수확해 배송, 신선하다. 김준수(47)씨는 “금산 인삼은 수분이 적어 알차고 사포닌 성분이 풍부하다.”면서 “신선할수록 효능이 좋다.”고 설명했다. 홍삼액(100㎖×60) 6만∼6만 5000원, 금산수삼 10∼12뿌리(750g) 6만 2000원. 영광굴비도 추석에 빠질 수 없는 선물이다. 전남 영광 굴비마을은 크기별(22∼26㎝)로 10마리씩 묶은 선물세트를 5만 3000∼30만원에 판매한다. 봄철에 잡아 건조한 것으로 담백하고 쫄깃하다. 최종환(52)씨는 “가짜 영광굴비가 많은 터라 ‘믿을 수 있다.’며 찾는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조기는 12월이 지나면 산란기에 들어서면서 지방이 줄어 담백해진다. 봄이 다가올수록 알에 영양분이 몰려 살이 더욱 쫄깃하다. 그래서 12∼4월 조기가 최고급 상품. 맛깔난 상품평을 남기면 굴비세트를 보내준다. 제주 은갈치도 추석선물로 인기 높다.북제주군 김녕해녀마을은 13일까지 은갈치를 10% 저렴하게 판매한다.5㎏이 9만 9000∼12만 7000원. 진공간고등어는 선착순으로 하루 10개만 30% 할인,2만원(3㎏ 10마리)에 판다. 김수정(38)씨는 “아침에 배로 잡은 자연산 갈치를 오후에 배송, 다음 날 받아보기에 회로 먹을 만큼 싱싱하다.”고 말했다. 비바람 탓에 고깃배가 출항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시간 여유를 갖고 주문하는 게 낫다. ●서생 꿀배 등 과일값 낮춰 올 추석은 지난해보다 열흘 정도 빨라 차례상에 오를 과일이 비쌀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러나 가격 상승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기에 인빌쇼핑에선 걱정없다. 오히려 덜 숙성한 과일이라 농민들이 가격을 낮췄다. 경남 울주 민등마을에서 서생간절곶꿀배를 25년간 키우는 이동선(49)씨는 7.5㎏ 박스를 3만원에 내놓았다. 지난해 3만 5000원보다 저렴한 것. 이씨는 “당도가 낮고 추석 대목이라 싸게 판다.”면서 “소비자는 배송받은 뒤 서늘한 베란다에 내놓아 자연숙성시키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서생배는 바닷가 인근에서 자라 당도가 높고, 농약을 적게 사용해 친환경 품질인증을 받은 상품. 청송 주왕산사과마을은 주왕산 꿀사과를 4㎏(11∼15개)에 2만 8800원에 선보였다. 태풍에 사과 값이 올라도 쇼핑몰 가격은 그대로다. 과수원을 20년간 운영한 김문로(49)씨는 “수확량이 많은데 주문량은 적어 사과를 헐값에 파는 게 안타깝다.”면서 “직거래로 농민도, 소비자도 이득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빌쇼핑은 추석 판매액의 1%를 적립, 정보화에 소외된 농어촌 지역 어린이들에게 기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외로운 섬 하나 (2)해녀의 고향 우도

    외로운 섬 하나 (2)해녀의 고향 우도

    이 풍진(風塵) 세상, 먼지를 털어볼거나. 산다는 것이 싱겁거든 어디로 떠나볼거나. 그렇담, 섬에 가보자. 바로 그 섬, 뭔가 들려온다. 태초부터 켜켜이 쌓인 무수한 세월을 떠안고, 깊디깊은 바다 물길속에 돌아앉아 꽁꽁 굳어버린 해녀의 한(恨)이 들려온다. 우도 김문기자 km@seoul.co.kr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이없는 해녀들/비참한 세상살이 세상이 안다/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저 바다 저 물결에 시달리는 몸/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되면 돌아와/우는 아기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배움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왜놈들은 착취기관 설치해놓고/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간다’ 제주의 섬 우도(牛島)에 전해오는 민요 ‘해녀가’의 일부이다. 흥미로운 전설도 있다. 먼 옛날, 물 부족으로 고민하던 우도 주민들은 섬 남서쪽의 동천진동에 우물을 열심히 팠다. 그러나 기대하던 물은 나오지 않았다. 지관(地官)을 불러 연유를 물었다. 지관 왈,“여자없이 어떻게 자식(물)을 낳는가. 각시를 데려와라. 그것도 서쪽 어두운 곳의 색시여야 해.”라고 했다. 주민들은 수소문끝에 바다 건너 구좌읍 종달리 ‘서느렝이굴’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발견했다. 정성껏 제(祭)를 지내고 물을 항아리에 담고 새색시를 모셔오듯 가마에 실었다. 이어 섬으로 운반해온 생수를 우물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습기가 금방 차면서 물이 솟구쳐올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른 곳의 물보다 더 깨끗하고 벌레가 생기지 않았다. 우도는 제주의 동쪽 끝자락 바다 건너에 평화롭게 누워 있다. 비록 한 점 땅밖에 되지 않지만 여름철 한반도에 불어닥치는 태풍을 가장 먼저 온몸으로 막아내는 첨병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난 주말 성산포 선착장에서 우도행 도항선에 몸을 실었다.1박2일동안 머물기 위해서였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은 최고의 자연산 선풍기.10분 후쯤 되자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을 연상케 하는, 바람과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작은 해협을 만났다. 오랜 세월동안 우도를 지켜온 텃세이기도 하겠지만 곳곳의 손님을 마중하는 인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15분후,50여명의 승객을 태운 도항선은 우도 선착장에 닻을 내렸다. 우도 토박이인 여찬현 면장이 마중나왔다. 면장의 안내로 선착장에서 승용차로 10여분 정도 떨어진 한 콘도식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우도 여행 중 궁금하거나 도움을 얻으려면 ‘면장님’을 찾으면 친절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다.(064)783-0005. 현재 우도 주민은 724가구에 1700여명. 자동차 보유대수는 1.5가구당 1대꼴. 지난 한해동안 우도를 찾은 관광객이 42만 338명으로 전체 제주 관광객의 3분의 1에 해당한다고 면장은 설명했다. 우도는 제주 부속 도서 중 가장 면적이 넓다. 해안선 길이 17㎞, 최고봉은 해발 132m이다.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3.8㎞에 위치하며 부근에 비양도(飛揚島)와 난도(蘭島)라는 작은 무인도가 있다. 이같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성산 일출봉보다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어 최근 해돋이 관광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 역사적으로 1697년(숙종 23년) 국유 목장이 설치됐고 국마(國馬)를 관리·사육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844년(헌종 10년)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 정착했다. 원래는 구좌읍 연평리였으나 1986년 우도면으로 승격됐다. 섬의 형태가 소가 드러누워 머리를 내민 모습과 같다고 해서 우도라고 이름지었다. 우도는 해녀의 섬이라고 할 만큼 450여명의 해녀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30,40대의 젊은 해녀들만 해도 30여명이나 된다. 이들이 수확한 싱싱한 수산물은 어느 식당에서든 맛볼 수 있다. 부근 해역에서는 고등어 갈치 전복 등이 많이 잡힌다. 주요 볼거리로는 산호 해수욕장 등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우도 8경’이 있다. 가는 곳마다 ‘잠수소리’‘해녀가’ 등의 설화와 전래민요가 있어 관심갖기에 따라 여행의 재미를 더욱 느낄 수 있다. 동천진동 포구에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상인들의 착취에 대항한 우도 해녀들의 항일항쟁을 기념한 해녀노래비가 있어 당시를 되새기게 한다. 소머리오름에는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등대가 있다. 우선 성산포에서 몸만 이동후 우도에서 우도관광버스로 여행하는 방법이 있다.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인 5500원의 비용이 든다. 군립공원이 있어 이를 관람하는 우도 입장료와 1인 뱃삯을 포함한 금액이다. 관광버스 이용료는 1인당 5000원. 승용차를 배에 실을 경우 왕복 2만2000원과 군립공원 주차료 4000원이 소요된다.1박을 하지 않고 승용차로 우도를 여행할 경우 총 여행시간은 4시간정도. 관광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버스가 각 도착지마다 20∼30분정도 대기하기 때문에 약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우도 도항선은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3∼4척이 수시로 다닌다. 최근들어 1박2일 코스의 바다낚시 여행객이 늘고 있다. 어느 곳이든 민박집 주인에게 낚시를 원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우도와 연륙도로 연결된 비양도가 우도 제1의 낚시터. 그러나 우도 어디든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배를 타고 나갈 경우 1시간당 5만원정도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고기 종류는 ‘어랭이’로 불리는 잡어.1시간정도면 수십마리를 낚을 수 있어 임대료가 결코 아깝지 않다. 대표적인 곳으로 중앙낚시(064-783-9869)에 문의하면 된다. ‘검멀레해수욕장’의 검은색 모래로 찜질을 하면 성인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산호사해수욕장’은 마치 남국의 섬에 있는 느낌이 든다.‘수동해수욕장’은 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해변. 해와 달 그리고 섬(064-784-0941)=해녀가 직접 해산물을 캐서 공급하는 식당이어서 신선도가 그만이다. 성산포에서 승선하기 전 미리 연락을 하면 봉고차로 마중나와 섬 안내를 친절하게 해준다. 민박과 유람선 예약도 가능하며 바다풍경을 보면서 각종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다. 아울러 소라물회 성게미역국 보말된장찌개 생선구이와 조림요리가 일품이다. 낚시와 민박집도 있어 가족들이 함께 여장을 풀기에 좋다. 우도횟집(783-0508)우도에서 가장 큰 음식점으로 물회맛이 독특하다. 우도항 바로 앞에 위치해 오고갈 때 시장기를 달래주기에 안성맞춤이다. 성산포쪽 바다를 바라보며 낭만적인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우도는 지형이 평탄해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아볼 수 있다. 특히 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진 해변도로는 낭만적인 하이킹 코스다. 동천진항 왼편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가족끼리 해안선 17㎞를 따라 속보로 걷거나 달리는 것도 추억이 될 만하다. ■ 기타 숙박시설 해오름동산(0784-3331), 빨간머리앤의 집(784-2171), 우도드림빌리지(784-1880) ■ 배편 문의 우도해운(782-5671), 우림해운(784-2335) 자료제공 우도면
  • 여름바다 조스공포…난류타고 충남까지 북상

    여름바다 조스공포…난류타고 충남까지 북상

    지난달 해녀가 상어에 물린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앞바다는 한달이 지났지만 ‘조스 공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해녀들은 먼바다, 특히 사고가 났던 곳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공포감을 없애려고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자구책까지 마련해 작업에 나서고 있다. ●뾰족한 상어퇴치법 못찾아 지난달 13일 상어의 공격을 받은 이모(38·여)씨는 국내에서 상어 피해를 당했던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녀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노란색 물갈퀴(오리발)를 착용했기 때문이라고 해녀들은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안흥항 일대 해녀들은 대부분 오리발을 노란색으로 바꾸었다. 안흥항에서 만난 해녀 박정자(44)씨는 “상어가 해녀를 덥석 물었다 노란색을 본 뒤 겁을 먹고 놔줬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키조개 등을 잡는 잠수기 어민들이 사용하는 배나 산소공급 호스가 노란색인 것도 이런 믿음을 부추기고 있다고 태안해경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씨를 데리고 갔던 M수산은 사고 직후 해산물 채취작업을 중단했다. 사무실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별다른 뾰족한 대책이 없다 보니 해녀들은 사고 직후 섬 주변에서 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해녀 30년 경력의 안선월(47)씨는 “사고가 난 곳은 얼씬도 못하고 있다.”면서 “전복과 해삼이 얼마 없지만 섬 주변 얕은 곳에서 주로 물질을 한다.”고 전했다. 제주도에서 이곳까지 와 물질을 하다가 결혼, 낚시가게를 겸업하며 살고 있다는 40대 해녀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상어 타령이냐.”면서 “오죽하면 목숨을 걸고 나가겠느냐.”고 냅다 화를 냈지만 일부러 조스 공포를 잊기 위해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고발생 해역에서 가까운 가의도 수역에서 일하던 제주 해녀들은 사고 직후 물질을 중단, 제주도로 돌아갔다 1주일 전 작업을 재개했으나 먼 바다는 피하고 있다. ●상어 대처법 해녀들을 해친 상어는 영화 ‘조스’에 나오는 ‘백상아리’가 대부분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식인상어는 청상아리·뱀상어 등도 있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습성은 백상아리보다 좀 덜하다. 백상아리는 육식성이어서 상쾡이 등을 잡아먹는다. 서식 적정온도는 15∼23도. 열대나 아열대에서 살다가 따뜻한 난류를 타고 올라오다 한류와 만나면 더 이상 북상하지 못하고 전북과 충남 일대 서해안에 머문다. 이 때가 주로 5∼6월로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그물에 많이 걸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인상어는 남해나 서해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잠수어업이 덜해 사고가 한번도 나지 않았을 뿐 동해안에도 11월까지 머문다. 작은 식인상어는 수심이 1m가 안돼도 들어온다. 해수욕장처럼 사람이 많아도 가리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얕은 바다로 접근, 주의가 요구된다. 해경은 2명 이상씩 짝을 지어 물속에 들어가고, 피냄새가 상어를 유인하므로 몸에 상처가 있거나 생리 중일 때는 들어가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긴 띠를 준비했다 상어가 공격하면 이를 풀어 상어보다 몸이 크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전북 군산대 해양생명과학부 최윤 교수는 “상어는 자기보다 큰 물고기도 공격하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는 얘기”라며 “상어가 노란색을 싫어한다는 것도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밝혔다. 상어는 오히려 보색대비가 되거나 화려한 색깔을 좋아한다고 한다. 최 교수는 “빨간색이나 잠수복과 같은 검은색보다 노란색을 더 많이 공격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어는 날이 어둡거나 해질녘에 수면 가까이 올라오는 습성이 있다. 갑자기 깊어지는 곳도 수온이 낮아 상어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최 교수는 “채취작업 중 상어를 보면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고 공격하면 주둥이를 내리쳐야 한다.”며 “장마가 끝나고 수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면 상어가 깊은 바다 속 등으로 옮기는 데다 물이 얕은 해수욕장은 수온이 높아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여름바다 조스공포…난류타고 충남까지 북상

    여름바다 조스공포…난류타고 충남까지 북상

    지난달 해녀가 상어에 물린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앞바다는 한달이 지났지만 ‘조스 공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해녀들은 먼바다, 특히 사고가 났던 곳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공포감을 없애려고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자구책까지 마련해 작업에 나서고 있다. ●뾰족한 상어퇴치법 못찾아 지난달 13일 상어의 공격을 받은 이모(38·여)씨는 국내에서 상어 피해를 당했던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녀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노란색 물갈퀴(오리발)를 착용했기 때문이라고 해녀들은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안흥항 일대 해녀들은 대부분 오리발을 노란색으로 바꾸었다. 안흥항에서 만난 해녀 박정자(44)씨는 “상어가 해녀를 덥석 물었다 노란색을 본 뒤 겁을 먹고 놔줬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키조개 등을 잡는 잠수기 어민들이 사용하는 배나 산소공급 호스가 노란색인 것도 이런 믿음을 부추기고 있다고 태안해경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씨를 데리고 갔던 M수산은 사고 직후 해산물 채취작업을 중단했다. 사무실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별다른 뾰족한 대책이 없다 보니 해녀들은 사고 직후 섬 주변에서 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해녀 30년 경력의 안선월(47)씨는 “사고가 난 곳은 얼씬도 못하고 있다.”면서 “전복과 해삼이 얼마 없지만 섬 주변 얕은 곳에서 주로 물질을 한다.”고 전했다. 제주도에서 이곳까지 와 물질을 하다가 결혼, 낚시가게를 겸업하며 살고 있다는 40대 해녀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상어 타령이냐.”면서 “오죽하면 목숨을 걸고 나가겠느냐.”고 냅다 화를 냈지만 일부러 조스 공포를 잊기 위해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고발생 해역에서 가까운 가의도 수역에서 일하던 제주 해녀들은 사고 직후 물질을 중단, 제주도로 돌아갔다 1주일 전 작업을 재개했으나 먼 바다는 피하고 있다. ●상어 대처법 해녀들을 해친 상어는 영화 ‘조스’에 나오는 ‘백상아리’가 대부분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식인상어는 청상아리·뱀상어 등도 있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습성은 백상아리보다 좀 덜하다. 백상아리는 육식성이어서 상쾡이 등을 잡아먹는다. 서식 적정온도는 15∼23도. 열대나 아열대에서 살다가 따뜻한 난류를 타고 올라오다 한류와 만나면 더 이상 북상하지 못하고 전북과 충남 일대 서해안에 머문다. 이 때가 주로 5∼6월로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그물에 많이 걸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인상어는 남해나 서해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잠수어업이 덜해 사고가 한번도 나지 않았을 뿐 동해안에도 11월까지 머문다. 작은 식인상어는 수심이 1m가 안돼도 들어온다. 해수욕장처럼 사람이 많아도 가리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얕은 바다로 접근한다. 해경은 2명 이상씩 짝을 지어 물속에 들어가고, 피냄새가 상어를 유인하므로 몸에 상처가 있거나 생리 중일 때는 들어가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긴 띠를 준비했다 상어가 공격하면 이를 풀어 상어보다 몸이 크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전북 군산대 해양생명과학부 최윤 교수는 “상어는 자기보다 큰 물고기도 공격하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는 얘기”라며 “상어가 노란색을 싫어한다는 것도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밝혔다. 상어는 오히려 보색대비가 되거나 화려한 색깔을 좋아한다고 한다. 최 교수는 “빨간색이나 잠수복과 같은 검은색보다 노란색을 더 많이 공격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어는 날이 어둡거나 해질녘에 수면 가까이 올라오는 습성이 있다. 갑자기 깊어지는 곳도 수온이 낮아 상어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최 교수는 “채취작업 중 상어를 보면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고 공격하면 주둥이를 내리쳐야 한다.”며 “장마가 끝나고 수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면 상어가 깊은 바다 속 등으로 옮기는 데다 물이 얕은 해수욕장은 수온이 높아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우리는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 좌로, 우로 한(恨)도 많다. 그래서 목놓아 ‘저편의 너를’ 부르고 그리움으로 손을 뻗는다. 광복 60년이 됐지만 분단의 노래는 여전히 단장(斷腸)의 메아리다. ‘봉선화’(1919년) 이후 한국 가곡 86년사(史)에서 가장 애창된다.‘그리운 금강산.’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켜켜이 담아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소설보다 더 감동으로 승화시킨 악상(樂想)이다.‘통일 주제가’로 ‘민족 가곡’으로 사랑받는다. 들을수록 애틋하고 향수가 있고 경건하다. 옛날이었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중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닌다. 시인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다. 시인은 “이봐, 한 수 읊을 테니 적어봐.”라고 했다. 그러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라고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성질 급한 학생은 “다음은요?”라고 했다. 시인은 다시 술을 마시며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라고 했다. 학생은 또다시 “다음은요?”라고 보챘다. 시인은 또 목구멍으로 술을 꼴깍 넘기며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학생은 이튿날 가곡을 만들어 화답했다. 1954년 어느 날이었다.25살의 젊은 청년이 처녀가곡집을 냈다. 그러자 서울신문 문화면 전체에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 게재됐다.‘악보 출판치고는 사상 최악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장래를 정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의 시인은 2003년 작고한 조병화씨. 해방 직후 경복중학에 다니는 최영섭 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닐며 ‘추억’이라는 시를 발표했을 때의 상황이다. 두번째는 청년 최영섭이 가곡집을 내자 당시 작곡가 나운영씨가 주저없이 나서 역설적으로 호평했던 일화다. 최영섭(77)씨.‘한국의 슈베르트’라고 한다. 샘솟듯 넘쳐 흐르는 악상과 특유의 직감으로 무려 2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중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되는 ‘그리운 금강산’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민족의 송가(頌歌)로 널리 애창된다. 이 노래가 탄생된 지 올해로 45년째.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최씨를 만났다.“희수(喜壽)가 됐으면 다 평화로워야 하는데….”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지난 4월에 막내아들을 잃었다.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4년 동안 온 집안 식구가 백방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가슴에 못질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 최씨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 한 주택가에서 반지하 월세방을 얻어 혼자 쓸쓸히 지내고 있다. 원래 세 아들을 낳은 본처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참 동안 혼자 살다가 모 방송국 PD의 중매로 둘째 부인을 만나 살았지만 1997년 뜻하지 않은 이유로 헤어졌다. 평생 살려고 약속했던 부인에게 재산을 다 주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됐단다. 그룹 ‘들국화’ 멤버였던 큰아들이 경기도 과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원하지만 집에 쌓인 책이며 음악자료들이 정들어 아직은 혼자 지내기로 했다. “평생 가곡을 만들면서 살아왔어요. 올해가 광복 60년이고 분단 60년이 됩니다.‘그리운 금강산’을 만들 때는 곧 통일도 될 것 같았는데. 솔직히 더 이상 ‘그리운 금강산’이 불려져서는 안됩니다. 세월이 지난 뒤 ‘아, 옛날 그런 노래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면 족하지요.” ‘올해의 의미’에 대해 오는 11월11일이 제1회 가곡의 날로 선포된 점을 강조했다. 최씨 등 가곡인들의 오랜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월8일부터 매주 목요일 가곡 연주회를 갖는다. 아울러 전야제 행사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옛 중앙기상대 건물 바로 옆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에서 ‘봉선화의 집’이라는 현판식을 갖는다. 최씨는 “난파 선생이 돌아가시기 1∼2년 전 협박에 못이겨 일본군가를 편곡했는지는 모르지만 생전에 민족 가곡 100여개를 작곡할 만큼 우리들에게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냐.”고 강조했다.‘봉선화’를 작곡하는 등 평생의 95%는 우리 가곡과 동요에 헌신하고 독립을 간절히 원하며 살았는데 왜 그가 친일파로 매도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운 금강산’의 탄생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1961년 8월이었다.KBS(남산 시절)에서 ‘남산에 올라’‘한강의 노래’‘낙동강 칠백리’‘백두산은 솟아있다’ 등 정열적인 작곡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길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다루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하는 거요.”라고 불쑥 말했다. 아차, 무릎을 탁 친 최씨는 그 길로 시인 한상억(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숨가쁜 목소리로 “한 선생님, 여태껏 금강산이 없습니다.”고 했다. 한씨는 “허허, 나는 이미 다 써놓고 있었네. 안그래도 줄 참이었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벽 2시까지 ‘콩나물’과 씨름했다. 다른 곡 같으면 며칠이 걸렸을 법한데 ‘그리운 금강산’은 4∼5시간 만에 완성했던 것.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곧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인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6·25전쟁 발발 12주년 때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아름다운 내강산’이란 주제로 KBS교향악단·합창단 등의 협연으로 ‘최영섭 가곡특집’을 발표했다. 이때 받은 30만원(당시 집 한채 값)으로 둘째 아들의 병원비를 충당했다.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 50여명의 CD에 담겨 있다. 조수미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소프라노 홍혜경, 그리고 세계적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월드(My World)’에도 ‘그리운 금강산’이 포함돼 국내외에서 애창된다. 최씨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여섯살 때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3학년 때 호르겔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천부적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 재학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서울 경복중학으로 전학한 후 이화여대의 임동혁 교수한테 작곡수업을 받았다.49년 경복중학 6년(당시 6년제)때 첫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에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올해 김성태 선생한테 세배를 갔더니 세뱃돈 3만원을 주더군요. 그분은 96세의 나이에도 동요를 작곡하고 있어요.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아요.” 최씨는 지금까지 가곡 외에 편곡 1600여곡, 기악곡 40여곡을 만들었다. 미발표된 것도 수십곡에 이른다.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가득 쌓인 문학책과 음악자료들을 볼 때마다 남부럽지 않게 여긴다. 혼자 맥주 마시며 책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올 가을에 발표될 신곡 20곡을 기대해 달라며 식지 않은 창작열을 과시했다. 오래전부터 ‘고운산’이란 필명으로 작사도 한다. 건강유지 방법을 물으니 “지하철이 곧 헬스클럽이다. 음악이 있어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며 웃었다. 생활비는 저작권료로 받는 월 200만∼300만원으로 충당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강화 출생 ▲49년 경복고 졸업, 제1회 작곡 발표회,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54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재학시절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원 석사 ▲61년 ‘그리운 금강산’ 작곡 ▲62년 6·25 12주년때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최영섭 특집 가곡 발표회’ 개최. 이후 작곡발표회 5회. ▲76년 드라마 주제가 ‘아, 이조 오백년’ 작곡 ▲95년 광복50주년 기념교성곡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전 24장 발표. ▲가곡 ‘모란이 피기까지’‘추억’‘망향’ 등 200여곡 작곡. ▲인천여중고·인천여상고·이화여고·한양대·상명여대·세종대 등에 출강. ▲현재 작곡가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진흥회 회장. ■ 상훈 인천시문화상(59년), 경기도문화상(61년),MBC방송대상(87년), 대한민국 방송대상(92년),MBC가곡 공로대상(94년), 한국음악상(96년), 세종문화상(98년), 서울시문화상(2001년)
  • 올해도 ‘조스’ 공포

    13일 오후 3시 30분쯤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 남서쪽 해상 1㎞지점에 있는 단도 20m 앞 물속에서 해삼을 잡던 해녀 이모(38)씨가 상어에 물려 크게 다쳤다. 이씨는 왼쪽 허벅지와 다리 뼈가 드러날 정도로 물렸으나 살점만 떨어져나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씨는 서산의료원으로 옮겨졌다가 봉합수술을 받기 위해 인천 길병원으로 후송됐다. 이씨는 병원에서 “뭐에 어떻게 물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이씨와 함께 물질을 하던 해녀들은 수면 가까이 올라왔다가 물속으로 사라진 상어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해녀 10명과 함께 9.77t급 어선을 타고 단도로 들어가 오후 1시부터 섬 인근 바다에서 해삼 등을 잡고 있던 중이었다. 전북 군산대 해양생명과학부 최윤 교수는 “물린 곳이 옆으로 찢어지고 잇자국이 듬성듬성 난 점으로 미뤄 3m쯤 되는 백상아리에 물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서해안 일대에서 청상아리와 함께 자주 출몰하는 백상아리는 이가 삼각형으로 납작해 상처가 이같은 모양으로 난다.”고 밝혔다. 충남과 전북 일대 서해안에서는 1959년 7월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헤엄을 치던 대학생이 상어에 물려 숨진 후 96년까지 키조개를 잡던 해녀 등 6명이 상어에 물려 사망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인어공주’ 유바리영화제 대상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가 제16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시에서 열리고 있는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27일 재능있는 젊은 감독을 발굴하는 ‘영 판타스틱’부문 그랑프리로 ‘인어공주’를 선택했다.‘영 판타스틱’은 이 영화제의 유일한 경쟁 부문이다. 전도연이 1인2역을 맡아 화제가 된 ‘인어공주’는 20대 우체국 여직원이 어머니의 젊은 시절인 해녀로 돌아가 지금의 아버지인 집배원과 달콤한 사랑을 나눈다는 줄거리의 팬터지 멜로물로 지난해 5월 개봉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극사실주의 대가 이상원화백 러시아서 초대전

    극사실주의 대가 이상원화백 러시아서 초대전

    화단의 원로 이상원(70)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가다. 보풀 한 올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극도의 세밀한 붓터치는 ‘사진 그 이상’이란 평을 듣는다.‘하이퍼 리얼리즘의 거장’ 이상원 화백이 리얼리즘 회화의 본고장 러시아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트레차코프미술관 최초 한국인 작품전 개막일인 25일에는 발렌친 로디오노프 트레차코프미술관장, 김재섭 주 러시아대사, 현지 미술평론가 등 1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구 소련 시절 문화부 차관을 지낸 로디오노프 관장은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최근엔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 작가가 이 미술관에서 작품전을 여는 것은 처음”이라며 “이 화백의 사실적인 작품은 근대 이후 리얼리즘 전통이 강한 러시아에서도 호소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2월1일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에는 ‘시간과 공간’‘막(膜)’‘동해인’‘연(緣)’‘영원의 초상’ 시리즈 가운데 대표작 55점이 나와 있다. 특히 헝클어진 백발에 논두렁처럼 깊게 팬 주름살이 인상적인 노인의 표정을 담은 작품 ‘동해인’에는 유난히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다. 삶에 대한 은유로 가득한 이 작품에서 지나간 신산한 세월의 흔적을 읽어낸 것일까. 배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풍년’도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서구 리얼리즘 끝에 선 수묵의 날카로움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혹시 사진을 찍어 확대한 것 아니냐.”며 이 화백의 극사실주의적인 붓질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동양의 수묵과 서구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한 데 어우러져 그처럼 담백하고 강렬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화백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젊은 시절 영화간판과 인물 초상화를 그리다가 불혹의 나이에 순수미술의 길로 들어선 입지전적인 작가다. 그야말로 무사자통(無師自通)인 셈이지만 이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 동아미술제 등 공모전에 잇따라 입상하면서 순수화가로 인정받았다. ●산업사회 이후 전통에 대한 향수 표현해 이 화백의 작품세계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혹은 소외된 존재에 대한 애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땅속 깊이 팬 타이어 자국이나 바닷가의 폐그물, 온갖 폐수와 곰팡이로 뒤덮인 수막, 너덜너덜해진 마대, 평범한 촌로나 어부의 고단한 삶…. 이런 것들은 모두 작가의 심오한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과 찬가로 승화된다. 러시아 미술평론가 페트르 푸르도프스키는 “이상원은 어부나 해녀들의 이미지 묘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회화의 예술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있어 항상 고향의 전통에 충실해 왔다.”면서 “그의 그림은 산업사회 혹은 후기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밀려난 전통적인 세계에 대한 향수라는 주제를 가장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화백은 지난 30여년의 화업을 통해 1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네덜란드 화가 고흐가 소품까지 포함해 800여점의 작품을 그린 데 비하면 대작 위주의 작업을 하는 이 화백은 단연 다작(多作)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않았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고가에 작품을 사겠다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그동안 작품을 팔아왔다면 이같은 전시가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훗날 미술관을 지어 나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화백은 오는 4월쯤에는 자신의 작품활동 여정과 그림을 담은 자서전 ‘바람의 초상’(가제)도 펴낼 예정이다. 모스크바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레차코프미술관은 19세기 러시아의 부호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차코프 형제의 소장품으로부터 출발한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에르미타주미술관, 러시언미술관, 푸슈킨미술관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다.1856년에 설립된 트레차코프미술관은 1892년 모스크바 시의회에 기증된 뒤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립미술관(state gallery)으로 거듭났다. 트레차코프미술관의 소장품은 고대 러시아 성화에서부터 현대 미술까지 다종다양하다. 러시아 미술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있는 세계 미술의 보고다. 레핀, 말레비치, 칸딘스키, 샤갈 등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통의 작품과 아방가르드 작품 등 13만여점이 소장돼 있다.11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작품은 라브루쉰스키의 트레차코프미술관에,20세기 현대 미술은 주로 크림스키에 위치한 트레차코프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레핀의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이바노프의 ‘그리스도의 출현’, 페로프의 ‘도스토예프스키’, 수리코프의 ‘유형지로 끌려가는 마리조바 여인’ 등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 이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하나인 샤갈의 ‘유대인 극장-패널화’는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예술작품의 보존과 수복, 교육 등을 통해 명실공히 러시아 학문과 예술의 중심 역할을 다하고 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시대의 어머니상 탤런트 고두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시대의 어머니상 탤런트 고두심

    누가 18세를 낭랑(朗朗)이라고 했나. 한 여인이 그때 시집갔다. 꽃다운 나이였다. 결혼은 지독한 외로움에서 시작했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살았다. 산고의 울부짖음 속에 직접 탯줄을 끊고 목욕시키며 첫 아이를 출산했다. 그렇게 자식 열둘을 낳았다. 그중 다섯은 어머니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머지 자식들이 있으니 견딜 수밖에. 모진 세월, 그렇게 온몸으로 아픔을 이겨냈다. 일자무식이었지만 자식을 억척스럽게 꼭꼭 보듬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다가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거울이 되어 늘 곁에 있다. “엄마, 지금도 TV에 나오는 걸 보나? 나, 상 탔거든. 엄마가 그랬지, 편지가 따로 있냐,TV가 편지지라고. 난 엄마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을 한꺼풀 벗긴 해탈의 모습이었거든. 어머니…,50년 동안 묻어두고 못한 말을 이제야 합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닮고 싶은 거울이지요.” 인기 탤런트 고두심(54). 올해를 이렇게 시작했다.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준 거울을 부둥켜안고 5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고백을 했다. 또한 스스로 ‘이 시대의 어머니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어머니처럼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는 2004년 KBS·MBC 양 방송사에서 연기대상을 받았다.TV 시청자들은 고두심에게 어떤 이미지를 느낄까. 한 여론조사가 눈길을 끈다. 청와대 안주인 1순위,2002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여인…. ●질곡의 어머니·한많은 어머니 그는 연기생활 33년 동안 처녀 역할은 한번도 안해봤다. 천의 얼굴을 가진 탤런트라고 하지만 대부분 어머니 역이었다. 질곡의 어머니, 바보같은 어머니, 한많은 어머니. 목욕탕의 때밀이 등을 맡느라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고두심’ 하면 두개의 이미지, 즉 ‘어머니’와 ‘제주도’로 귀결된다. 지난 주 서울 여의도 MBC방송국 녹화장과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서울갤러리에서 연달아 만났다. 방송국에서는 밤을 샌 초췌한 얼굴이었고, 갤러리에선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방송국에서 만날 때였다. 전남 남원에서 올라왔다는 주부 김모(45)씨. 그는 고씨를 보자마자 달려오면서 “일부러 (사인받으려고)올라왔어요. 정말, 요즘의 어머니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시청자 김씨가 보는 눈에는 많은 함축이 담겨 있었다. 순간, 속으로 ‘아, 이 정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챘는지 고씨가 이렇게 얘기한다.“나 있잖아, 지나가다 보면 아기 업은 엄마들이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맙다는 얘기를 자주해. 어떻게 그렇게 잘 (어려운 어머니 역할을)대신해 주냐고.”. 수줍게 피식 웃는다.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는 표정이기도 했고, 요즘 ‘나 이렇게 살아.’하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TV 속의 어머니가 아니라 요즘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표준’이 생각났다. 고씨 또한 각박한 시대에 20대 아들과 딸을 둔 그런 어머니였다. 고씨는 지난 9일 제주 출향 인사들이 베푼 만찬에 참석했다. 장소는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 고교 때 은사였던 김원치 전 검사장을 비롯,50여명이 고씨를 위한 축하의 자리를 열었다. 그가 그저 인기 탤런트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제주를 무척 사랑하는, 인간적으로 친근함을 주는 사람임을 입증해 주는 상징적 자리이기도 했다. 고씨는 평소 자주 ‘제주는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어머니는 무엇일까. 불쑥 질문을 던지자 거침없이 말문을 연다.“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또 어머니가 사랑하는 제주, 어머니같은 제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나에 대해서만 말해왔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50대중반에 찾은 해답도 어머니 그는 불혹의 나이 때부터 심각하게 고민을 해왔다. 의혹투성이의 삶을 풀기 위해 자신의 뿌리, 태어나기 이전,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대, 그때를 알아야 실체를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해답을 찾았단다. 바로 ‘어머니’였다. 지난 연말 연기대상을 받았을 때 수상 소감으로 ‘어머니’라는 외침을 여섯번이나 했다. 식당에서 돈가스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그는 “IMF 이전에는 아버지였으나 이제는 어머니가 희망이 아니냐.’고 했다. 어머니는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또 변해도 ‘삶의 본질’ 자체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바다에 옥죄어 살아야 했지요. 한뙈기의 논도 없는 제주에서 가난으로 인한 박대도 많았지만 어머니들은 자식을 온몸으로 감싸안았습니다.” 고씨의 집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다. 앞마당에 어머니(홍정의·84살에 작고)는 앉아 있고 자신은 선 채로 대화하는 모습의 그런 동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결코 어머니를 보내지 않았다. 안방에 없으면 마당에 계시고 마당에 안 계시면 제주 오빠네 집에 가 계시다.”며 웃는다. 또 야외촬영을 갈 때 흐트러진 모습을 고치기 위해 어김없이 생전의 어머니가 남겨준 거울을 꺼내본다고 했다. ●다섯째로 태어나 23살때 연기자의 길 1938년 결혼 직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태평양 사이판 서남쪽 부근 ‘얍’이라는 미개척섬에서 인생의 보따리를 풀었다.10년의 세월 동안 일본과 얍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어머니는 해녀는 아니지만 제주 여인들이 누구나 그랬듯이 바다에서 자맥질을 자주했다. 해방후 삶의 무대를 제주로 옮겼다.1948년 4·3사태가 생기면서 삶이 어지러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었다. 고씨는 3년후 다섯째로, 어머니의 외모를 빼닮으면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고씨는 여객선 3등선에 의지해 육지로 나왔다. 서울에 사는 오빠에게 밥을 해줘야 한다는 ‘명분’으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서울에서 처음 한 일은 무역회사의 사무원.1년이 조금 안돼 MBC공채 5기에 뽑혀 탤런트가 됐다. 스물셋에 연기자가 됐지만 불행(?)하게도 처녀 역할은 한번도 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줌마나 어머니, 아니면 할머니역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무뚝뚝하지만 매력있는 부산 남자를 만나 뜨겁게 사랑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밤열차를 타고 그의 품에 안기는 낭만은 ‘그만’이었다. 꿈같은 신혼시절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년 결혼생활, 그는 어머니한테 ‘이혼’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를 보듬어 안았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지요. 어머니는 촬영장에 따라가시려고 주머니 속에 항상 양말을 숨겨 놓으셨지요. 전원일기 촬영장인 경기도 양수리를 가시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는 어머니란, 설명이 많을수록 감동이 없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대는 어머니가 희망’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씨는 현재 평창동에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과 딸 두 자녀는 미국에서 지낸다. 일요일이면 여섯시간이나 걸려 북한산을 종주할 만큼 체력을 관리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5월 제주 출생 ▲70년 제주여고 졸업 ▲72년 MBC 공채 5기 탤런트 ▲72년 드라마 ‘갈대’로 데뷔 ▲95년 극단 로뎀 단원,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위촉 ▲99년 축산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공동대표.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 명예홍보대사 ▲수상경력=1990년 KBS·MBC연기대상,91년 백상예술대상·MBC연기대상.97년 제주도문화상.2000년 SBS연기대상.2004년 KBS·MBC연기대상 ▲연극 ‘투우사의 왈츠’ 등 6편, 영화 ‘질투’ 등 8편, 드라마 ‘한강수타령’외 50여편 출연.
  • 루게릭병 투혼 김영갑 사진전

    루게릭병 투혼 김영갑 사진전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제주도로 내려가 20년 가까이 제주의 풍광을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47).6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해온 그가 투혼의 전시를 마련했다.10일부터 15일까지 서울 태평로 서울갤러리 전관에서 열리는 ‘내가 본 이어도,1 용눈이 오름’이 화제의 전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전시에서 김씨는 미발표작 70여점을 선보인다. 제주의 오름과 주변의 억새,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시적인 풍광을 담았다. 김씨는 근육이 마비돼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인 루게릭병으로 미라처럼 온몸이 바짝 마르고 전화조차 받기 어려운 상태. 다행히 그는 전시회에 부치는 글을 통해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데 중도에서 낙오했다고 모두 안타까워하지만 난 결코 멈추지 않으렵니다. 모두의 사랑과 채찍이 헛되지 않도록 삶의 열정을 잃지 않으렵니다.”라며 “이번 전시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믿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렵니다.”라고 말했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섬에 살아보지 않고서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무작정 제주에 정착해 한라산과 마라도,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등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동안 16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누구를 초대한 적은 없다. 사진을 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난은 그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 동굴 같은 곳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할 정도로 제주의 삶 역시 가난 그 자체였다. 이번 전시도 재력있는 지인이 강남의 한 화랑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지만 상업화랑이라는 전시공간과 자기 작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동안 김씨를 도와온 ‘김영갑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와 마주앉아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서 아무쪼록 이번 서울갤러리의 전시가 작가의 마지막 전시가 되지 않길 기원하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크루즈 타고 한라산 올라볼까

    크루즈 타고 한라산 올라볼까

    “인천에서 제주까지 배를 타고 간다고?” “아니,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가는데 왜 13시간씩 배를 타?” 인천~제주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이제 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한시간만에 비행기를 타고 휙 제주도에 도착한다면 바다와 파도, 여유가 있는 크루즈의 낭만을 어찌 알겠느냐고. 제주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떠나자, 크루즈여행 금요일 오후 7시 인천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서 제주행 오하마나호에 올랐다. 에스컬레이터까지 있는 오하마나호는 6322t으로 정원은 695명,50대의 승용차를 나를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여객선 규모다. 객실은 로열실과 1·2·3등실로 구분된다.1·2등실은 침대가 놓여 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마룻바닥에 이불이 제공되는 3등실에서 간단한 게임을 해도 좋겠다.13시간이나 배를 탄다는 말에 멀미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김동일(58) 선장은 “오하마나호는 필리핀의 전통 선박인 벙커처럼 수면 아래로 날개 같이 생긴 핀이 나와 4m 이하의 파도에는 꿈쩍도 않는다.”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금요일 저녁 출발인 만큼 저렴한 비용에 시간도 아껴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산악동호인들은 물론 직장단위의 등산객과 젊은층의 얼굴도 보였다. 세계일주 크루즈와 비교하면 소박하지만, 레스토랑, 커피숍, 영화관 등 오밀조밀한 재미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노래방 시설도 있다.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난 후 승객들은 끼리끼리 모여앉아 생맥주를 걸치며 여유로운 저녁을 보낸다. 방실이와 이름과 목소리만 같은 여가수의 낭창낭창한 노래를 안주삼아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비오는 한라산의 멋 다음날 제주도에 도착할 즈음. 선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들떠 이른 아침 눈을 떴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통에 일출구경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몰려든 갈매기떼에게 과자를 먹이는 것도 큰 재미”라던 선배 여행객의 말을 듣고 준비한 과자는 할 수 없이 내가 먹어야만 했다. 토요일 아침 8시에 제주에 도착하자 버스로 한라산 입구까지 이동했다. 한라산에는 영실, 어리목, 관음사, 성판악 등 4개의 등반 코스가 있다. 백록담 정상에 오르려면 총 8.7㎞로 5시간이 걸리는 관음사 코스나, 9.6㎞로 역시 5시간 정도 소요되는 성판악 코스를 택해야 한다. 두 등반코스 모두 겨울에도 이용할 수 있다. 관음사는 겨울 설경이 아름다우며, 성판악은 등산로가 길고 완만해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한라산은 비에 갇혀 있었다. 할 수 없이 백록담을 보리라던 계획을 접고 3.7㎞로 가장 짧은 영실 코스를 택했다.1시간30분 코스. 일행들의 섭섭함을 눈치챈 등반대장 박인철(57)씨는 “영실코스는 짧지만 오백나한상이라고도 불리는 기암절벽인 영실기암의 장관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라고 달래줬다. 해발 1700m의 윗새오름이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곳. 윗새오름 대피소 못미쳐 노루샘에서 맛본 시원한 물맛이 한라산의 청정함을 느끼게 했다. 윗새오름에서는 어리목 코스로 한라산을 내려갈 수 있다.4.7㎞로 하산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한라산은 그만의 운치가 있었다. 자욱한 안개로 시야가 막히는 아쉬움은 있지만 오히려 등산로는 고즈넉했다. 등산로 양쪽에 수북한 대나무 일종인 조릿대 잎새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심신에 잠긴 도시의 때를 벗겨준다. 초가을에 성판악 코스를 타고 백록담까지 올랐다는 최성회씨는 “정상에 이르는 동안 발아래 끝없이 뭉실뭉실 펼쳐진 구름바다 위를 한라산 초입에서 만난 큰 까마귀가 되어 날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며, 한라산에 푹 빠지면 주말마다 근질근질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겨울 비치곤 양이 많아 겉옷과 신발에 비가 스며들었다. 마침 영실 휴게소의 인심 넉넉한 주인장이 제공한 난로 앞에서 서로 김을 풍겨가며 양말과 바지를 말렸다. ●느껴봐, 제철 방어의 맛 올해 4회째인 최남단 모슬포항의 방어축제를 보기 위해선 서둘러야 했다. 축제의 압권은 맨손으로 방어잡기. 참가비 1만원만 내면 4평 남짓 대형수조에서 잡은 방어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 한마리 5000∼1만원 하는 방어가 잡히는 만큼 내것이라니. 마음만 앞선 탓인지 면장갑만을 껴서는 잡기가 쉽지 않다. 녀석들의 헤엄치는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주부들은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4∼6마리씩 방어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 떠가기도 했다. 제주도의 방어는 11월에서 이듬해 3월이 제철. 마라도의 거센 물살에서 자라난 방어회의 붉은살은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올해 최남단 모슬포 방어축제는 지난 5일 막을 내렸다. 청해진해운의 김형자 주임은 “내년 3월까지 오후 3∼6시에 모슬포항에 들르면 어선에서 갓잡은 제철만난 방어를 싼값에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13시간 항해의 여운 토요일 저녁 7시 오하마나호는 인천을 향해 출발했다. 제주항에서도 제주공항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면세점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매장규모는 작지만 담뱃값이 시중보다 보루당 5000원 가까이 저렴해 애연가들의 구미를 당겨 금연열풍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사려는 줄이 길었다. 선실의 창밖으로 잊을 만하면 하나씩 나타나는 서해안의 섬들을 구경하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일요일 아침 8시, 인천항에 도착했다.13시간의 항해는 그렇게 바다 위에서 미끄러지는 배처럼 흘러갔다. ■ 한라산 여행이 9만9000원 제주도 한라산 여행이 9만 9000원? 인천에서 오하마나호를 이용한다면 가능하다. 청해진해운(032-889-7800,www.cmcline.co.kr)에서 매주 월·수·금요일에 출발하는 2박3일 제주 크루즈 상품이 9만 9000원이다. ●주말에 즐기는 한라산 일정 첫째날 오후 7시 인천항에서 출발, 둘째날 오전 8시 제주에 도착한다. 한라산을 오른 뒤, 셋째날 오전 8시 다시 인천항에 도착하게 된다. 서해안의 낙조와 갈매기와의 데이트, 밤하늘의 은하수와 제주 일출을 선상에서 즐길 수 있다. 객실은 카펫이 깔린 마룻바닥에 담요와 베개가 제공되는 3등실이다.1인당 2만원을 추가하면 2등실을 이용할 수 있다. 2등 가족실은 2층 침대 2개가 구비돼 있어 4인 가족에 안성맞춤. 한편에는 작은 화장실과 소파, 탁자도 있다.1등실은 17만 3000원. 식사는 오하마나호 안 레스토랑(한식 한끼당 5000원)과 매점을 이용할 수 있다. 미리 음식을 준비해서 가족끼리 선실에서 식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라산을 오를 때 도시락은 무료로 제공한다. 한라산에 오르지 않을 경우 2만원을 추가해 제주도 일일관광으로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도깨비도로~성읍 민속마을~미천굴~섭지코지~해녀촌~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성탄절 전날인 24일과 새해 첫 일출을 선상에서 맞을 수 있는 31일에 출발하는 배편은 지난 3월부터 판매, 이미 매진됐다. 내년을 기약하려면 일찌감치 예약해야 한다.24,31일에는 특별히 선상에서 불꽃놀이 축제도 벌어진다. 음력 설연휴에는 윷놀이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한다. ●크루즈여행, 이것이 궁금해요 제주 크루즈 여행을 즐기기 위해 멀미약은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4m이하의 파도에서는 특별한 요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바다의 상태는 예측불가능하므로 여행 일정은 하루 정도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일요일에 돌아온다고 월요일 아침부터 중요한 일정을 잡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도록 한다. 등산 후 땀에 젖은 몸은 오하마나호 내에 작은 욕실을 이용해 씻을 수 있다. 휴대전화 통화는 출항후 1∼2시간은 가능하나 이후에는 배가 먼바다로 빠지면서 불가능하다. 애완견을 데리고 탈 수는 있지만 여객실에 함께 있을 수는 없고, 별도의 장소에 둬야 한다. 자전거는 별도 요금없이 가져갈 수 있다. 오토바이는 크기별로 1만 6000∼9만 8000원선, 자동차는 크기별로 11만 5000∼65만 4000원선의 운임을 내야 한다. 자동차를 싣고 가서 당일여행을 할 수도 있다.
  • 15일 국립민속박물관 ‘한반도와 바다’ 특별전

    바다를 무대로 한 우리 민족의 해상교류와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명하는 ‘한반도와 바다’ 특별전이 15일부터 내년 2월14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다. 민속박물관과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특별전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1부 ‘바다가 있다’에선 고지도와 회화자료, 해저 출토품, 전남 완도 청해진 유적 출토품을 비롯한 바다 관련 유물 100여 점이 출품된다. 고지도와 회화자료들은 우리 바다가 조상들에게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조선전기에 세계전도로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1402년, 모사도), 넘실대는 파도의 형상을 굵은 선으로 표현한 조선후기 화가 백은배 의 산수도(山水圖)가 특히 볼 만하다. 백은배의 또 다른 작품인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나 이인상의 신선도해도(神仙渡海圖) 등에 표현된 바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대상이자 선인들의 공간으로 상징화된다. 2부 ‘바닷길’에선 바다가 문화교류의 길이었음을 부각하기 위해 신안해저유물을 비롯해 서남해안 각지에서 발견된 바다 관련 유물을 한 코너에 모았다. 장보고와 그가 이룩한 문화의 흔적인 청해진 유적 출토 유물도 등장한다. 비녀, 바늘, 은제요대장식 등 청해진 출토 유물들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본거지로 9세기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좌지우지했던 흔적을 잘 보여준다. 3부 ‘바닷가 사람들의 삶과 믿음’에선 뻘배 혹은 낙지가래 등 오랜 기간 갯벌에서 사용되어온 채취어구를 통해 바닷가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본다. 소망과 액운을 바다에 실어보내는 위도띠배놀이를 재현하는 간접 체험의 장도 마련했다. 이밖에 4부에선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소리, 몽돌소리, 해녀들의 노래, 멸치잡이 노래, 동·서해안의 풍어제 등 바닷가 사람들의 땀과 노래를 소리로 느끼는 자리가 마련되며,5부에선 사진작가가 카메라로 담아낸 다양한 바다의 자태를 구경할 수 있다.(02)3704-3154.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문학이 머문 풍경]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玄基榮)의 자전적 장편소설인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현기영만의 문학세계를 있게 한 그의 유·소년기의 총체다. 작가의 성장과정에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상처깊은 곳을 서사구조로 엮은 이 책은 그가 4·3작가로, 저항작가로, 민족작가로 일컬어지게 된 것이 그의 유·소년기의 시대상황이나 성장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의 고향 척박한 땅, 화산도 제주는 아득한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오래전부터 귀양섬으로, 외세 강점기에 수탈의 섬으로 천대받아온 오지 변방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질곡마다에서 민초들이 억압과 수탈에 맞서 분연히 들고 일어나 ‘이재수의 난’,‘해녀항일운동’,‘4·3항쟁’의 섬이기도 했다. 1941년 1월생인 그는 이 섬에서 해방기부터 6·25때까지의 격동기 파란을 몸소 겪으며 유·소년기를 보냈다. 특히 2만 5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1947년 4·3당시는 일곱살 나이로 고향인 제주시 노형동 ‘함박이굴’에서 해변마을인 삼도2동 ‘무근성’ 외가댁으로 피란가야 했고 그가 직접 접한 봉화봉기, 가택수색, 토벌작전…, 그리고 ‘함박이굴’의 초토화와 살육 등이 그의 어린 눈에 여과없이 수렴되면서 후일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가는 소설 ‘지상‘에서 “고향마을의 초토화 장면은 검게 타버린 폐허를 배경으로 한 완벽한 구도의 목탄화로 내 의식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술회하면서 “인간의 경험, 상상력을 훨씬 능가해 버린 그 엄청난 살육과 방화를 놓고 어떻게 무자비하다, 잔인무도하다 하는 따위의 빈약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부연하고 있다. ●4·3작가, 저항작가로 그의 글쓰기는 70년대,80년대,90년대로 옮겨 오면서 유사하지만 각기 다른 고랑을 일군다.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버지’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는 얼마 동안 현대 도시인의 좌절감 등을 일반화한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이다 78년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중편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저항작가로의 옷을 갈아입는다. 이 소설로 제주도 민중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문제작가로 주목받아,‘필화’의 고통까지 겪었으나 결국 이 글은 1970년대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받으면서 향후 4·3작가로 자리매김하는 단초가 됐다. 그는 계속해서 ‘도령마루의 까마귀’‘해용 이야기’‘길’‘어떤 생애’ 등 4·3을 화두로 한 작품들을 잇달아 냈고 제주4·3연구소장과 제주사회문제협의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4·3과 관련한 사회활동도 왕성히 펼쳤다. 그의 제주 민중사에 대한 탐구정신은 80년대 들어서도 계속돼 ‘이재수의 난’을 다룬 장편 ‘변방에 우짓는 새’와 인간의 꿈이 역사의 힘 앞에 무참히 좌절되는 단편 ‘마지막 테우리’를 잇달아 발표했고 서사와 서정이 조화를 이룬 글 ‘지상에‘로 1989년 만해문학상,1994년 오영수문학상에 이어 1999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현기영은 80년대부터 민족문학작가회의에 관계해 오다 지난해 2월 지금의 제11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발탁됐다. ●개운치 않은 변화들 그래도 소설 ‘지상에‘는 휴전 이듬해 한라산 금족령이 풀릴 때까지 그가 여전히 해맑은 소년의 자리에 있었음을 그리고 있다. 밀기울범벅과 고구마를 식사 대용으로 삶아 먹는 궁핍 속에서도 오줌싸개였고,‘땜통’과 ‘똥깅이’라는 별명을 가진 개구쟁이였고, 신주머니를 곧잘 잃어버리는 철부지였고, 팽나무와 먹구슬나무를 사랑했던 순돌이였다. 이제 그의 생가가 있던 ‘함박이굴’은 4·3으로 불타 없어졌지만 고향 노형동은 제주 최고의 상권지로 우뚝 커졌고 그가 친구들과 벌거숭이로 물장구치던 병문천은 지금 말끔히 복개돼 왕복 5차선도로와 상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다이빙질을 하던 용연에서는 매년 음력 4월 보름 ‘용연야범 축제’가 열리고, 내년 2월까지는 동에서 서로 현수교식 구름다리도 놓아질 참이다. 친구들과 탄피 주우러 다녔던 도두봉까지의 현무암 해안길은 어느새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춘 해안도로로 단장돼 영화나 TV에 나올 정도로 세련된 카페촌으로 둔갑했다. 그러나 작가의 속내는 이런 치장들이 도저히 편하고 개운치 않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아름다운 풍광의 배후에 아직도 진혼되지 않은 수만 원혼들이 음산한 기운으로 깃들어 있고, 그 검은 현무암지대가 그 시절의 초토화 불길에 타버린 숯더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용두암 근처 현무암의 바닷가에서 부산스레 들락날락하는 호사한 관광객 무리를 밀어내고 거기에서 놀던 옛 아이들을 다시 등장시켜 놓아야 하겠다.”고 넋두리한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길섶에서] 들숨, 날숨/김경홍 논설위원

    삶의 본질은 호흡이다. 걸어다니는 것, 잠자는 것, 뛰는 것의 본질은 호흡이다.100m 달리기 선수는 10여초 동안 달리면서 호흡을 멈춘다. 수영선수가 물속과 물밖을 넘나드는 것은 들숨과 날숨 때문이다. 투수가 뿌리는 공도, 농구선수의 슈팅도 호흡이다. 해녀가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한번 잠수에 3분넘게 버티는 경우도 많다. 보통 인간이 호흡을 멈추는 한계는 1분여가 고작이다. 들숨은 삶이고, 날숨은 죽음이라는 명제가 있다면 인간은 하루에도 수만번씩 삶과 죽음을 왕복한다. 해녀의 경우에서 보듯 호흡도 조절이 가능하다. 설화에 가깝지만 임진왜란 후 왜국에 건너간 사명대사가 섬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호흡이다. 죽은 듯 들이쉬고, 산 듯 내뿜는 호흡으로 육체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것. 펄펄 끓는 방에서 콧구멍에는 고드름이 달렸다는…. 복식호흡도 있고, 단전호흡도 있듯 들숨과 날숨의 방법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등산길에 길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훈련을 해보니까 한순간 앞에 있던 풀숲이 눈 앞에 다가오고, 다른 순간에는 풀숲에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바로 들숨 날숨이 아닌가.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패류의 제왕’ 전복잡이 동승기

    ‘패류의 제왕’ 전복잡이 동승기

    진주 빛이 반짝거리는 타원형 껍데기에 감싸인 전복(全鰒).맛은 물론이고 영양도 풍부하고 가격도 비싸 ‘패류의 황제’ 반열에 올랐다.겉모습이 어찌보면 불경스럽고 외설적이기도 하다.이런 까닭으로 예부터 정력에도 좋은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중국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먹었다고 전해지며,우리의 궁중에서도 많이 사용된 식재료다. 맛은 상당히 희한하다.싱싱한 전복 회는 짭쪼름하면서 해조류와 비슷한 향미가 독특하다.오돌오돌하게 씹히는 질감도 그만이다.수축작용을 많이 하는 근육이 발달했기 때문.익힌 전복은 감칠맛이 풍부한 가운데 단맛도 살짝 느껴진다.야들야들하면서도 혀끝에 감긴다. 글 태안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강성남·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패류의 제왕’ 전복잡이 동승기 전복이 수년 전부터 남해안에서 양식되고 있다.양식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싸고 귀한 까닭에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급 일식당에선 조리사가 손님들에게 살짝 감질나게 내는 특별식이다.모처럼 맛보고 싶다고 해도 먹을 수 있는 곳이 마뜩찮다.가장 많이 알려진 전복음식은 죽이다.전복죽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체력회복을 위한 약에 더 가깝다. 고급 음식의 대명사격인 전복이 생활속으로 들어오고 있다.양식 성공으로 공급 물량이 는 데다 전복을 주 메뉴로 하는 전문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궁중 진상품으로 유명했던 충남 태안군 이원면 모항항에서 전복을 잡는 해녀들을 따라 나섰다. 안개가 짙은 지난 7일 오전 11시 모항해녀협회 김계녀(67) 회장 등 해녀 6명이 탄 작은 어선 승철호(6.67t·선장 정흥영)가 항구를 나섰다.스멀스멀한 듯 음산한 안개를 뚫고 1시간가량 남동진한 끝에 도달한 곳은 백사장항 근처.안면대교가 어렴풋이 보였다. 이날은 조금 다음날로 물살이 잔잔한 ‘무시’였다.갑판에 모여 간단하게 컵라면과 장어탕으로 점심을 때운 오후 1시.해녀들은 남면 신은리 앞바다에 도착하자 취재차 동승한 기자들을 배 뒤쪽으로 몰았다.그리곤 검은색 잠수복을 챙겨입는 등 손놀림이 바빴다.찰흙으로 귀를 막은 채 허리에 납덩이 벨트를 차고 수경을 썼다.오른손에 끌처럼 생긴 ‘비창’과 통발처럼 생긴 그물 바구니인 ‘덴바’를 들고 바다로 스스럼없이 뛰어들었다.수심은 6m,바다는 검푸르게 보였다.“하루라도 물질을 하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최고참 해녀인 김 회장 등 3명은 갈마도 동북쪽으로 헤엄쳐 갔다.수심이 얕고 암초가 많은 까닭에 배를 더 가까이 붙일 수가 없었다. 10여분 달려 갈마도 남동쪽으로 갔다.여기서도 박명림씨 등 해녀 3명이 입수했다.3명이 한조였다.이들이 헤엄쳐 가다가 ‘후’하고 숨을 크게 들이 쉰 다음 머리를 처박고 두 다리를 파닥거리며 잠수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한참 지난 다음 ‘푸우’하고 나왔다.선장 정씨는 “머구리(스쿠버)들은 거의 서서 다니지만 해녀들은 바닥에 붙어 다니는 까닭에 머구리가 놓치는 것을 해녀들은 잡아낸다.”고 말했다.물질 중간중간에 서로 불러 안전을 확인하며 잠수하기를 4시간.두팀이 섬 중간에서 만났다.오후 5시 배로 돌아왔다. 이들은 덴바를 올리고 갑판으로 올라왔다.덴바에는 전복·소라·해삼·간재미·광어·청각·돌게….한바구니씩 가득했다.잠수복 위에 껴입은 셔츠 사이로도 해산물이 수북하게 나왔다.6명이 잡은 전복은 6.2㎏.한명당 1㎏ 남짓했다.현순덕씨는 “한시간동안 물질을 해도 전복 한 마리 못 잡는 경우도 있다.”며 어획량에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갑판에 오르자마자 수확물을 분류했다.그러곤 재빨리 데운 물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배는 다시 모항항으로 출발했다.19살 때부터 48년 동안 물질을 했다는 김씨는 “바다가 해마다 달라.양식장에서 염산과 같은 약을 너무 많이 쳐서 돌멩이가 퍼석거리며 바다가 죽어가고 있어.”라며 한탄조로 말했다. 귀항하는 동안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전복·소라 등을 삶고 광어를 회쳤다.그리고 아가 손바다만한 전복을 비창으로 도려내 통째로 먹으라고 권했다.하나를 깨물어 보니 싱그러운 바다 내음과 함께 오돌오돌 씹혔다.맛에 박력이 넘쳤다. 한 동행인은 “먹어본 해산물 가운데 전복 회 맛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현씨는 “모항 전복은 보양과 원기 회복에 탁월해 임금님께 진상했던 바다의 보물”이라며 “전복은 깨끗한 바다에서 몸에 좋은 다시마와 미역 등 해조류를 먹고 자라 맛이 더욱 좋고 영양가가 많다.”고 자랑했다. 냄비에 소라와 함께 넣어 끓여 익힌 전복을 먹어봤다.오돌오돌한 생 전복과는 달리 부드럽다 못해 야들야들했다.4시간 동안의 물질 끝에 잡은 전복을 그냥 먹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해녀들의 인심이 느껴졌다. ■ 귀하신몸 전복 대중화 선언 전복 전문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전복 요리는 간단찮게 비싸다.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2∼3명이 먹을 수 있는 전복 일품요리는 현지에서도 10만원대다.하지만 1만∼2만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전복 요리 전문점도 생겨나 샐러리맨들도 찾을 수 있게 됐다. ☎ 041 해녀들이 딴 자연산 전복을 현지 시세로 살 수 있는 곳으로는 모항항의 승철수산(041-672-9386)이 대표적이다.자연산 전복은 ㎏당 12만∼15만원.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도 된다.송옥대 승철수산 사장은 “자연산 전복은 껍데기의 가장자리가 누르스름한데 양식은 푸른빛이 돈다.”고 귀띔했다. 모항항에서 전복을 먹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흙도회관(041-672-5353)이다.음식점 안에 들어서면 작은 포구인 모항항과 먼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와 시원하게 느껴진다.자연산 회가 전문이지만 승철수산에서 곧바로 공급받은 전복도 내놓는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복죽과 찜.이 집의 전복죽은 약간 뻑뻑하면서 누르스름한 빛깔이 강하다.주인 황귀영씨는 “게우(전복 내장)를 모두 넣고 끓여 색깔이 누렇게 나온다.”고 말했다.전복찜도 권할 만하다.산 전복을 가늘게 썰어 당근·고추·양파 등을 다져 올리고 참기름으로 양념을 해 익힌 것으로 야들야들한 맛이 그만이다.뒷맛도 깨끗해 자꾸 찾게 된다.전복 1㎏에 13만원인데 찜과 죽으로 3명이 먹을 수 있다. 인근의 순환회관(041-672-9311)은 직접 물질을 하는 이순옥씨가 지난해 문을 연 전복 전문점이다.다른 생선회는 취급하지 않는다.전복 찜·구이·회를 하는데 1㎏에 12만원이다.전복죽은 2∼3명 분량이 8만원,1인분은 팔지 않는 게 단점이다.이외에도 반도회관(672-7337),송도회관(672-1616)도 전복을 취급하지만 1㎏에 15만원 선으로 인근의 다른 집보다 다소 비싸다. ☎ 02 서울에서도 전복을 취급하는 집이 부쩍 많아졌다.미식가들은 서울의 가장 대표적인 전복 음식점으로 한남동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에서 200m가량 떨어진 해천(02-790-2464)을 꼽는다.전복의 달인이란 평을 받는 주인 채성태씨가 직접 개발한 요리 10여가지를 내놓고 있다.1층 홀과 계단 벽에는 유명인의 사인과 언론보도가 벽을 가득 메우고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탄 집이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해천탕(12만원).삼계탕을 응용한 음식으로 토종닭을 전복·한약재와 함께 넣고 푹 곤 것이다.해천의 소찬영(38) 조리장은 “전복은 닭과 궁합이 잘 맞는다.”며 “여름철 보양식으로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닭 국물의 고소한 맛과 한약재의 감칠맛이 풍성한 가운데 전복의 단맛이 은근히 숨쉬고 있다.반짝거리는 껍데기속에서 온전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전복은 살집이 단단하다.육질이 졸깃하다.해천탕의 육수가 자박하게 남으면 해초 죽을 끓여준다. 이 집의 전복죽(1만 5000원)은 졸깃한 전복이 제법 풍성하게 들어있다.전복 내장과 함께 해초를 갈아 넣어 푸른 빛이 돈다.향이 진하고 부드럽다.압구정동 현대백화점·용산전자상가 푸드코트에 죽 전문 분점을 냈다.전복회는 1인분에 9만원.소씨는 “요즘은 전복을 즐기는 여성들이 무척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울 오금동 송파경찰서옆 참전복마을(02-400-1230)은 전복 대중화에 앞장서는 집이다.점심 메뉴로는 전복영양솥밥(1만 2000원),전복참치회덮밥(8000원),전복대구지리(6000원),전복죽(1만원)을 내놓았다.저녁 메뉴는 다소 비싸다.전복회·구이·찜 등이 나오는 코스가 6만·8만원이다.전남 완도군 노화도의 전복으로 조리한다.메뉴는 배윤자 보건대 조리학과 교수와 서양화가 김세정씨가 개발했다. 서울 한성대역에서 성북동쪽으로 가는 길목의 섭지코지(3673-5600)도 제주산 자연 전복회 전문점이다.1㎏에 38만원.1㎏이면 제법 큰 전복 한마리 무게로,작은 것은 3마리 정도 된다.손님 앞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전복을 회로 떠준다.이어 해삼·소라·자리돔세꼬시·오분자기구이·갈치구이·튀김·식사 등이 나오는데 4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또 큰 전복에서 나오는 체액을 잔에 따라 주기도 한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해녀’가 아니라 ‘잠수(潛嫂)’다.단일 마을로는 이 잠수가 가장 많아 108명에 이르는 서귀포 법환리의 조계화(65) 잠수회장은 “어릴 적에도 해녀보다는 잠수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고 증언한다.더러 ‘잠녀’라는 말도 쓰지만 잠수가 본딧말.일본에서 건너온 ‘해녀’라는 용어가 지배하고 있으나,‘확실히’ 잠수가 맞다.왜 그런가. 문헌을 살피면 ‘나잠(裸潛)’이라는 말이 보인다.나잠은 남녀를 포함한다.여성 전업은 아니어서 남자들도 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가거도 같은 오지에도 남자 잠수가 많았으며,요마적에는 동해안에도 남자 잠수가 늘고 있다.이런 사정인데도 근래 ‘해녀’라는 말이 두루 쓰인다.하지만 역사적으로 해남(海男)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해녀가 모든 잠수의 대표 명칭은 될 수 없다.교과서부터 고칠 일이다. 천대받던 잠수가 ‘뜨고’ 있다.공민왕 시절 최영 장군이 몽골의 묵호들을 토벌한 마지막 격전지 법환리를 찾아드니 문화관광부에서 아예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했다는 입간판까지 서있다.지난 여름에는 이곳에서 잠수축제도 열렸다.그러나 잠수로 먹고 살려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어리석게도 ‘잠녀잡녀(潛女雜女)’라고 경멸했던 전근대적 풍조가 잔존하는 데다 같은 제주도에서도 반가(班家)를 표방하는 이들은 물일을 피했다.험한 물일을 하지만 잠수하는 이들도 여자다.늘상 소금물에 몸을 담그니 아무리 가꾼들 피부가 어찌 거칠지 않으랴.요즈음 젊은 여성에게 매일 소금물에 몸을 담그라면,아마 억만금을 줘도 못할 일이리라. ●우는 아기 구덕에 실어두고 바다로 조선 정종 때 신광수(申光洙)는 석북집(石北集)에서 이 잠수의 광경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일시에 긴 파람으로 숨을 토해내니,그 소리 비장하게 움직여서 수궁 깊이 스민다.”잠수의 한이 가히 용궁까지 미칠 듯하다.풍덩풍덩 물로 뛰어드는 모습이 마치 필사의 돌격대같다.숨쉬러 올라오면서 고요했던 바다는 갑자기 숨비소리로 충만해진다.매서운 엄동설한에도 우는 애기를 애기구덕에 실어두고 한숨 들이마신 뒤 뛰어드는 바다물질. 세종조 때 기건(奇虔) 목사가 눈보라가 하늬바람에 얹혀 매섭게 휘몰아치던 날,순력에 나섰다.그런데 엄동설한에 발가벗은 여인들이 무리지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목사는 질려버렸고,그로부터 염치지심(廉恥之心)이 용납하지 않아 그네들 손으로 잡아올리는 전복이나 소라 따위를 일절 먹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세월은 바뀌었지만,지금도 전복 따위를 먹을 때는 한번쯤 잠수들을 떠올려 볼 일이다. 법환리에서도 예전에는 16∼17세가 되면 물질에 나섰다.꼬마들은 연습삼아서 얕은 ‘갓’(물가)에서 보말을 잡거나 우뭇가사리를 뜯었다.같이 배운 물질이지만 능력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헤엄 잘치고,채취 잘하고,신체 건장한 여자를 ‘상군’이라고 하고 그 밑으로 ‘중군’과 ‘하군’이 층을 이루고 있다.상군과 하군의 격차는 생각보다 커서 ‘내려갈 땐 한빗,올라올 땐 천칭만칭 구만칭’이란 속담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범섬 주변은 배를 타고 나가 물질을 하고,‘갓’에서는 헤엄치면서 채취한다.주로 전복 소라 오분재기 보말 성게 해삼 톳 감태 갈래곰보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는데,역시나 해중 보물은 전복.봄이 오면 해경(解警),혹은 허채(許採)라 하여 금지했던 작업이 일제히 풀린다.미역은 2∼3월에 베어내며,봄철이 지나면 녹음이 짙어 뻣뻣해지므로 식용이 불가능하다.감태는 여름철에 종괴호미로 베어내 거름으로 쓰는데,이 거름을 한번 뿌리면 삼 년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땅이 걸어진다. ●백화현상으로 해초 사라져 환경이 변하면서 전복은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어렵다.소라도 수십 년을 살아 날카로운 돌기가 떨어져 나간 탓에 ‘둥구쟁이’라고 불리는 놈들은 찾아볼 수 없다.5년여 전부터 이 바다에도 백화현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해초들도 대거 사라지고 말았다.바다가 하얗게 변하는 이른바 ‘갯녹음’이 시작된 것이다. 잠수들은 한달에 10∼12일 정도 물질을 나간다.물질은 물때에 맞춰 시작되는데,법환리 속담에 ‘물싼때랑 나비잠자당 물들어사 돔바리 잡나’란 말이 있다.썰물때는 그럭저럭 지내다가 밀물에 바다에 뛰어들어 일을 한다는 뜻이다.특히나 물이 움직이지 않는 한조금날에는 물질을 피한다.여기에다 파도까지 치면 더욱 힘들다.보통 2m의 파도라도 이런 날에는 2배 즉,수심 4m까지 영향이 미친다.너울이 심하면 전복이 눈앞에 있어도 울렁거려서 잡을 수가 없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잠수병.머리가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뇌신이나 감기약 같은 것을 무턱대고 먹는다.잠수 복지정책이라며 이곳 종합병원에서 특수진료를 시작했지만 언감생심 완치는 꿈도 못꾼다.이들에게 연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천차만별이지요.수 천만원에서 수 백만원,지금도 상군 잠수가 일본에 나가서 석달만 뛰면 1000만원은 거뜬하지요.”라고 말한다.그야말로 ‘언더우먼’이다.가사노동에다 물질까지 해서 어렵사리 번 돈으로 밭도 사고 자녀들 대학까지 공부도 시킨다.이곳에서 자란 저명인사 중 잠수 어머니의 손길로 키워낸 사람들이 많다.김계담 서귀포문화원장이 농담삼아 거든다.“그 뿐인가.남편 술값도 보태지.” 70년대부터 잠수복 다운 잠수복이 나왔지 그 전에는 추운 겨울에도 반나체로 바다에 들었다.작가 현기영은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해촌의 포작진상은 수량이 월등히 많아 일년 열두달 바닷속 열명길을 들락날락 자멱질하여야 했다.노적가리만큼 큼직큼직한 진상꾸러미를 만들어 전복·미역·청각·우뭇가사리·산호·대모 외에 해중 귀물인 진주와 앵무조개 진상은 나중에 면제되었지만 그 대신 전복의 수량이 엄청 불어났으니 포작인의 고역은 말이 아니었다.남정네 근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마누라와 딸자식까지 벌거벗겨 물질을 시키건만….’이라며 옛적 잠수 수탈의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中·러·日로 원정 잠수도 이들의 행동반경이 제주 바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부산 울릉도 독도 흑산도 등지로 나가는 이가 많았고,심지어는 중국이나 러시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전역으로까지 ‘출가’하였다.봄이면 객지로 떠나 반년 여를 물질만 하다가 가을이면 돌아오는 원정잠수도 있었다.심지어 며칠씩 배를 저어 중국 칭다오(靑島)나 다롄(大連)까지 진출하기도 했다.현지에서는 이들에 대한 착취가 비일비재해 ‘부산 영도 일대에서 (제주 잠수가)짓밟혔다.’는 일제시대의 신문기사가 이를 잘 말해 준다.심지어 선금을 제대로 못갚으면 현지에서 볼모로 잡혀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한 끼 밥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좁쌀 따위의 양곡을 갖고 다녔으며,근검절약으로 돈을 모았다.아기엄마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면서 물질을 다녔다.우도의 신화적인 잠수였던 조완아는 황해도로 물질 나갔다가 뱃전에서 아기를 낳았다.배에서 낳은 배선이,항에서 낳은 축항동이,길에서 낳은 길동이 등 자녀들의 이름을 보면 만삭의 잠수들이 출산 직전까지 물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그 애환을 지금의 우리가 어찌 다 알 것인가.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 물질은 헤엄쳐 나가서 행하는 갓물질,15∼20명쯤이 함께 배를 타고 나가서 치르는 뱃물질이 있다.가까운 ‘앞바르’를 벗어나 외국까지 가서 오로지 배에서 먹고자면서 떠도는 ‘난바르’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이란 노래가 실감난다.용궁을 다녀온 우도 만행이할머니의 전설같은 실화는 죽음이 늘 이들 곁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례다.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아 살림을 키웠으니 ‘위대한 어머니,장한 딸’이 아닐 수 없다. 그녀들은 독립운동사에서도 혁혁한 기록을 남겼다.이야기는 일제시대로 올라간다.잠수들의 권익옹호라는 미명 아래 어업조합이 발족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조합장을 도사(島司)가 겸임한 탓에 제주도내에서 잠수의 권익은 애당초 고려되지 않았다.1931년,구좌면 일대 잠수들이 9개 조항의 진정서를 도사에게 제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이들의 불만은 1932년 1월24일 세화리 잠수사건으로 폭발하고 만다.하도리의 부춘화(夫春花·당시 22세)라는 여성의 지휘 하에 1000여명이 세화리 주재소 앞에 모여든다. 당시 인구로 볼 때 1000명은 보통 숫자가 아니다.마침 도사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에 양손에 비창,호미 등을 들고,머리에 흰 물수건을 동여맨 채 행진가를 높게 부르면서 거리에 운집하였다.도로를 가로막고 항의를 시작하였으나 도사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분노의 불길은 더욱 높아져 급기야 관용차를 대파했으며,결국 긴급 출동한 경찰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그 장거(壯擧)는 지금까지 잠수의 역사로 길이 남았거니와 당시에 불려지던 노래말을 들어 보자.‘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잠녀/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추운날 무더운날 비가 오는날/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아침 일찍 집을 떠나 어두우면 돌아와/어린 아기 젖멕이멍 저녁밥 진자/하루종일 해봤으나 번 것이 없어/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이룬다.’ 노령의 잠수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기억한다.제주 여성의 강인한 힘은 이같은 고통의 산물이리라.최대 20여m 이상의 물속을 헤집는 잠수들의 노역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니,오죽하면 미국무부에서 심해 공사와 해군력 증강을 위해 제주잠수들을 연구하기까지 했을까.잠수를 말하지 않고는 제주바다의 삶에 관한 논의는 애당초 불가능하다.제주민의 바다삶에서 잠수는 알파요,오메가이기 때문이다.
  • 14일 추석맞이 민속예술제

    14일 추석맞이 민속예술제

    서울 동작구(구청장 김우중)는 14일 오후 6시30분 상도2동 동작문화복지센터 4층 대강당에서 ‘제1회 추석맞이 전통 민속 예술제’를 개최한다. 동작문화원과 자매결연을 맺은 서귀포문화원과 함께 여는 이번 공연은 서울과 제주 두 지방의 전통무용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동작문화원 예술단은 태평무를 시작으로 강강술래,입춤(부채를 한 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추는 춤),장고춤,살풀이춤,삼고무 등 전통무용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제주도 서귀포예술단은 향토색 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해녀들이 바다에서 전복·소라 등을 따는 모습을 재현한 ‘해녀춤’,상수도가 없어 용천수를 물허벅에 담아 등짐으로 지고 운반하던 모습을 재현한 ‘물허벅춤’,제주 해안에 멸치떼가 몰려올 때 마을 사람들이 그물,조리,지게 등을 들고 멸치를 잡던 ‘멸치후리기’ 등이 공연돼 제주 전통문화의 정취를 경험할 수 있다.(02)822-8500.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들의 ‘하늘의 ★따는’ 연기

    ★들의 ‘하늘의 ★따는’ 연기

    ‘악,악!’ 어떤 영화든 배우들이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른 장면이 있다.6시간동안 옴짝달싹 못한 채 피아노줄에 묶여있거나(‘쓰리,몬스터’의 강혜정),꿈틀대는 갯지렁이를 입안 가득 물거나(‘분신사바’의 이유리),눈물을 쏙 뺄 정도로 비를 맞고 또 맞거나(‘알 포인트’의 감우성)….스크린 이면에 숨은,배우들의 고생담을 들어봤다. “배우에게는 고통을,투자자에게는 기쁨을.그게 저의 좌우명입니다.” 최근 기자시사회장에서 박찬욱 감독이 좌중을 웃기려고 뱉은 농담이다.하지만 촬영현장을 유심히 지켜보면 그의 말이 영 실없는 얘기만은 아니다.고통없는 열매가 어디 있으랴.화제를 모으는 작품일수록 배우들이 더 힘들어지는 건 정해진 이치.그래서 어떤 영화에나 꼭 있다,배우들이 ‘악,악’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른 장면들이! 박 감독의 말은 알고본즉 농담이 아니었다.20일 개봉하는 그의 공포영화 ‘쓰리,몬스터’에서 강혜정은 죽을 고생을 다했다.괴한이 묶은 피아노줄에 온몸이 동여매진 채 재갈을 물고 공중에 떠있다시피 하는 게 극중 캐릭터.강혜정의 몸을 동여맨 줄은 40여가닥.묶이는 작업만도 2시간이 넘었다.한번 묶이면 옴짝달싹 못한 채 그녀가 견뎌낸 시간은 최소 6시간.화장실을 갈 수 없으니 물이나 음료수는 언감생심 입에도 대지 못했고,스태프들이 먹여주는 빵과 김밥으로 간신히 허기만 달랬다.촬영하는 14일동안 그녀는 무려 28차례를 묶였다 풀려났다.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에서 여주인공 이유리도 실감연기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살아 꿈틀대는 갯지렁이를 입안 가득 머금었다.귀신이 된 이유리의 입에서 뭔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찍기 위해 감독은 산낙지라며 배우를 속였다.“눈주위의 짙은 분장 때문에 배우가 이를 끝까지 알아채지 못했다.”는 한 제작관계자는 “그 장면을 위해 이유리가 입에 털어넣은 지렁이는 10마리쯤 된다.”고 증언(?)했다. 비맞는 신(scene)은 촬영장에서 배우들을 괴롭히기로 소문난 대표적인 장면.개봉을 앞둔 베트남전 배경의 공포영화 ‘알 포인트’에서 주인공 감우성도 치떨리게 고생했기로 소문나 있다.캄보디아의 휴양지 복코산 꼭대기에 만들어진 공동묘지 세트에서 살수 트럭이 3대나 동원된 가운데 비맞는 신을 찍고 또 찍었다.‘내 남자의 로맨스’를 찍은 뒤 여주인공 김정은도 “테이크아웃 커피점 앞에서 비맞는 장면을 찍을 땐 너무 힘들어 울기도 했다.”고 말한 적 있다. 진저리치게 물에 시달리기는 ‘인어공주’의 전도연도 둘째가라면 서럽다.제주 해녀로 변신해 능수능란한 물질 솜씨를 선보여야 했던 것. 영화 한편에 몇억원씩의 출연료를 거머쥐는 배우들의 고생은,서민들의 눈엔 달콤한 투정으로 비칠 수도 있다.하지만 스크린 이면의 숨은 사연까지 넘겨짚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덤으로 챙기는 영화보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최근 크랭크업한 ‘꽃피는 봄이 오면’의 주인공 최민식은 또 얼마나 진땀을 뺐을까.극중 역할은 트럼펫 연주자이자 산골학교의 관악부를 이끄는 선생님.트럼펫을 만져본 적도 없던 그가 7개월여의 연습끝에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을 연주했단다.상상해보자.“입술이 갈라진 채 살았다.”는 홍보담당자의 말이 흰소리는 아닐 것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