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해남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5월 9일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실수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조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재기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46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2회)

    ■ 韓·日 연합왕국說 경성대학교는 1990년부터 김해 대성동에서 4∼5세기초 금관가야의 왕릉급무덤들을 발굴하였다.이 발굴을 통해 금동말안장 등 마구와 철제갑주,철제큰칼,방패에 붙였던 파형동기(巴形銅器),청동거울,그리고 많은 양의 철정(鐵鋌)등 유물을 발굴하였다.물론 근처인 동래의 복천동과 양동리에서도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됐다.이렇게 해서 삼국사 속에서 사라졌던 나라인 가야가복원되고 사국사(四國史)가 기술되게 되었다. 가야는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였다.중국기록에 일찍부터 등장하고,왜 등 주변국가들과 교역을 한 국제적인 나라였다.국력이 매우 강하여 전기에는 신라를 제압하기도 했으며,고구려의 광개토대왕군이 신라를 구원하고자 할 때 백제,왜와 연합해 대항하기도 했다.가야는 미약하나마 562년까지 실존한 나라였다.그럼에도 기록이 불실하고,실체가 불분명하여 해석이 분분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임나일본부설’이다. 4세기경 야마도정권이 신라를 정벌하고,가야지방을 정복한 뒤 약 200년간‘임나일본부’가 존속하였다는 것이다.이 설은 기록의 문제점과 당시 동아시아의 대세로 보아 한일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어 왔다.그중에는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주장한 ‘기마민족국가설’이 있다.부여 고구려지역에서 남진해온 기마집단이 4세기 초 가야지방에서 일본열도로 이동한 다음 규슈북부와 한반도 남부지역에 걸쳐서 연합왕국을 건설했다는 이론이다.이 설은 활동주체를 일본열도 쪽에 두는 한계가 있지만 그 사이에 바다를 둔 국가의 존재를 상정한 것은 타당성이 있다. 필자가 지면을 통해 꾸준히 주장하였듯이 동아지중해 해양문화는 매우 뛰어났고,특히 대한해협은 주민들이 활발하게 오가는 교통로였던 것이다.가장 손쉽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교통로는 김해지역과 규슈북부를 연결하는 항로이다. 일본 건국신화에는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도(瓊瓊杵尊)가 삼종신기를 갖고 다카마노하라(高天原)를 떠나 히우가(日向)의 다가치호노다게(高天穗峰)의 구시후루(환觸峰.久士布流多氣)에 도착한다.그의 후손인 짐무(神武)는 동쪽으로 정벌을 완료한 후 초대 천황이된다는 내용이 있다.이 신화는 김수로왕의 ‘천손강림신화’와 구조나 내용이 같고,등장하는 지명(구시후루는 구지봉(龜旨峰)과 음이 유사함)도 비슷하므로 가야계 집단이 일본열도에 도착,고대국가를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대마도나 규슈북부지역에는 가야계 지명이 매우 많다.특히 고대항로의 깃점인 당진(唐津)은 원래는 한진(韓津)이었으며,지금도 ‘가라의 항구’란 뜻인‘가라츠’라고 읽는다. 만을 굽어보는 산은 ‘가야산’이고, 근처에 ‘가라도마리’,‘게야’등 가야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특히 천손인 니니기노미코도를 모신 규슈 중부의 기리시마신궁(霧島神宮) 근처에는 가라쿠니다케(韓國岳)가 있다.그외에도 한국과 가야를 가리키는 말이 무수히 많다. 가야와의 관련성은 유물에서도 나타난다.일본신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청동거울이 양동리 대성동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가야는 변진의 전통을 이어받아 철기문화가 발달하였다.대성동 2호분에선 철도끼와 교역품이었던 대형철정 150점이 발견되었고,다른 곳에서도 철제칼 무기 등이 발견되었다.중요한 고분에서는 철제 갑옷과 투구,마구류,행엽,가죽방패 등이 나온다.기마문화가 발달하여 4세기 경에는 기마군단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그외에 파형동기,통형동기 등 일본적인 것으로 알려진 유물이 있는데,이는 오히려 일본보다 시대에서 앞서고,기술도 뛰어나 가야가 원류라는 주장도 나온다. 가야인들은 철제무기로 무장한 기마군단을 보유한채 함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를 정복한 것이다.물론 당시 조선수준으로는 대규모 군마를 운송할수 없었다.때문에 군사는 빠른 전선에 타고,군마는 뗏목(宮本常一 설)이나쌍동선(雙胴船:石井謙治 설)에 싣고 대선단을 이뤄 건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야인들은 이렇게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안을 동시에 지배한 해양제국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성동에서 발굴된 벽옥제 화살촉 등이 조공품이었다는 견해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가능한 일이다.가야는 점차 일본열도의 중심부를 향하여 진격하는 한편,남해무역을 독점해 국가의 부를 더욱 축적하였을 것이다.그러나 고대국가가 성장하고,해양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신라는 질좋은 철을 생산하고,동해남부 항로를 개척하면서 일본열도로 진출하였다.백제 또한 전라도 해안까지 진출한 뒤 대한해협을 본격적으로 건너갔다.고구려 역시 광개토대왕 이후에 동해를 건넜다.이렇게 사국의 해양력 경쟁체제가 성립되자 가야는 항로의 독점권을 빼앗기고,교역상의 이익이 사국으로 분산되면서 점차 위상이 약해져 갔다.해양폴리스들을 주축으로 한 소국연합체인 가야는 필연적으로 내부 통합력이 약했다.또 양안에 걸친 지배체제였을 경우 관리와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이런 한계를극복하지 못하고,해양제국인 가야는 점차로 사라져 갔다.하지만 그들은 대한해협의 정치와 상업을 장악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이었으며,우리는 그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 철원 3일간 753㎜ 내렸다

    강원도 철원에는 지난달 31일부터 2일 자정까지 무려 752.9㎜의 비가 내려3일간 강수량으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종전까지는 81년 전남 해남지방에 3일 동안 내린 659㎜가 최고기록이다. 지난 10년간 철원지방에 내린 연평균 강수량이 1,357.9㎜인 점을 감안하면연평균 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사흘 동안 쏟아진 셈이다. 또 지난달 31일 256.7㎜,1일 280.3㎜,2일 215.9㎜ 등 철원지방에 사흘 연속 2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것도 기상청 관측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동두천도 같은 기간 동안 721.3㎜의 비가 내려 동두천의 종전 최다 강수량기록을 갈아치웠다.무인관측장비(AWS)로 측정한 강수량에 따르면 경기 포천군 창수면(837㎜)과 일동면(793.5㎜),연천군 대광리(760.5㎜) 등이 ‘비공식’ 신기록으로 집계됐다. 태풍 ‘올가’가 몰고온 바람의 강도도 기록적이었다. 3일 오전 10시 마라도에는 순간 최대풍속 초당 43m의 ‘살인적인 강풍’이불었다.순간풍속이 40m 이상이면 작은 돌도 바람에 날린다. 태풍이 우리나라를 통과하면서 발생한 순간 최대풍속으로는 8번째 강한 바람이었다. 특별취재반
  • 강풍에 전선 끊겨 해남등 11만가구 단전

    3일 중부지방 집중호우가 나흘째 계속된 가운데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제7호 태풍‘올가’가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북상,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 새벽 제주를 덮친 태풍은 시속 30∼40㎞의 빠른 속도로 북진하면서 호남·충청·수도권지역을 차례로 강타했다. 강한 비바람으로 곳곳에서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고 건물 유리창과 각종 간판 등이 깨지고 떨어져 나갔으며 전신주와 전선 파손으로 정전사고도 잇달아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서해안 선박 운항이 전면 통제되고 항공기 운항도 중단돼 피서객들의 발이 묶였다. ■제주 순간 최대풍속 43m의 강풍과 함께 시간당 최고 64㎜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북제주군 한림체육관 지붕이 날아갔다.전신주와 전선 파손으로 서귀포시 중문·예례동 800여 가구 등 4만여 가구와 20여개 양식장이 정전 피해를 입었다.여객선과 여객기 운항 중단으로 피서객 1만여명의 발이 묶인 상태다. ■호남 이날 낮 전남 장흥군 안양면 방암리 고당마을 앞 진입로에서 전우익씨(34·대구시 달서구 감3동)가 강풍으로 부러진 나무에머리를 맞아 숨지는 등 3명이 사망·실종됐다.이날 오전 7시쯤 전남 강진군 대구면 고압전선이끊어지면서 완도·해남 전지역 2만5,000여 가구를 비롯,14개 지역 11만여가구의 전기 공급이 일시 중단됐으며 여수시 거문도 일대 통신이 두절됐다.해남 농협 신기창고와 강진군 영포창고 등 5개 창고의 지붕이 파손돼 정부 양곡 2만8,000여 가마가 침수됐다. ■충청 5명이 숨졌고 12가구 3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농경지 8,000여㏊가 침수됐다.태안군은 이날 폭우와 만조시간이 겹치면서 소원면 소원시장 내 주택 11가구가 침수돼 시장 내 60여가구 주민 200여명이 고지대로 긴급대피했다.충주시 앙성면 돈삼부락에서는 양계장이 침수되면서 안에 있던 1만4,000마리의 병아리가 폐사했다. ■수도권 경기북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연천 파주 포천 동두천지역에서주택 6,784동이 침수돼 5,585가구 1만7,52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이날 오전 9시 고양시 풍동천이 범람하면서 농경지 70㏊가 침수되는 등 농경지 1만7,313㏊와 1,122개 점포,98개 제조업체가 물에 잠겼다.동두천취수장 등 상·하수도 시설 12곳과 수리시설 56곳이 침수됐다.포천 파주 등 6개 시·군 농가에서 사육하던 한우 142마리,젖소 300마리,돼지 1만2,739마리,닭 53만3,400여마리 등 모두 62만0,939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인천지역은 서해 도서를 연결하는 뱃길이 4일째 통제됐다.수도권매립지도지난달 31일부터 4일째 쓰레기 반입을 전면 중단시켰다. 전국종합
  • 北 황해·평안도 수해 초비상

    수마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우리 중부지역이 물난리를 치르는 동안 북한지역도 극심한 수해를 겪고 있다. 2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까지 개성지역에서는 이틀 사이 610㎜ 이상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황해도 해주가 340㎜,사리원이 356㎜로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다.금강산을 끼고 있는 강원도의 통천에도 382㎜의 비가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 매체들도 피해상황을 시시각각으로 전하고 있다.북한 중앙방송은 황해남북도·강원도·평안남도 지역 등에 평균 150∼400㎜의 집중호우가 내렸다고 전했다.지난달 30일부터 1일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많은 논밭이 침수 매몰되고 도로 통신망 등에 심한 타격을 입혔다는 보도였다. 개성지방에 퍼부어진 폭우는 지금까지 관측된 24시간 최대 강우량보다 52㎜가 더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그러나 북한 방송들은 인명피해에 대해선 2일오전까지 언급하지 않았다. 구본영기자 kby7@
  • ‘전남도청 이전따른 목포권 발전전략’ 심포지엄

    목포를 무관세 ‘자유항지역’으로 지정,외국기업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이보장되는 신개방 거점이자 동북아 관문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토연구원 박양호(朴良浩) 국토계획연구실장은 30일 오후 새정치국민회의목포·신안갑지구당(위원장 金弘一)과 목포대 공동 주최로 전남 목포시 신안비치호텔 대회의실에서 열린 ‘신도청 이전에 따른 목포권 발전전략’ 심포지엄에서 ‘신도청 중심의 환황해경제권 중심기지화 전략’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박실장은 “과거의 수출촉진이나 수입자유화 차원의 개방에서 벗어나 전략적인 신개방 거점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목포권을 자유항으로 지정·육성해 물류,가공,수출입 등 자유로운 국제교역 활동을 무관세로 보장하고 소득·법인세 등 각종 세제혜택과 사회간접자본(SOC),첨단정보통신망 구비 등 기업하기 편리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포권은 환남해축과 환황해축이 만나는 차세대 도시권으로 개발해야 한다”면서 주요전략으로 국제자유도시 지정과 함께 ▲광주·목포 광역권의 중심지 ▲서해안·남해안 신산업지대망의 연계중심지 ▲주력산업군집의모델도시권 ▲신자원활용지역 및 환경도시 ▲한국힐리콘밸리의 거점 ▲국제관광의 중심지 ▲지역간 협력·제휴의 시범도시권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특히 목포·무안·해남·영암·진도·신안을 통합,공동발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놔 관심을 모았다. 목포대 지역개발과 이종화교수는 이날 ‘신도청 이전에 따른 지역발전틀 재편 구상’이란 주제발표에서 “목포권 주도로 한·중·일 공동자본과 투자에 의한 환황해 경제협력기구를 창설하고 이를 목포권에 유치해야 한다”면서“도청 신도시는 국제교류기능을 충실히 할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목포권 발전을 위한 개발개념은 ‘교류’,‘해양’,‘문화’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목포권이 유치할 산업업종도 목포권의 지역적 특성은 물론 일본 큐슈지역과 중국 상해지역내 업종과 수평적 분업과 협력이 가능한 업종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목포대 임해지역개발연구소장 박종철교수는 ‘신도청 도시개발 방향’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신도청 소재 신도시의 개발 목표는 ▲전남도청의 역할을수행하는 행정도시 ▲전남의 새로운 구심점 확보 ▲지역균형개발의 전기 마련 ▲해양개발의 거점 형성 ▲21세기 모델 신도시 등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교수는 “신도시는 20만명을 수용하는 복합다기능도시로 건설하는 것이타당하다”고 말하고 “도시기능은 행정기능,주거기능,국제교류기능의 일부를 담당해 24시간 움직이는 도시가 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주제발표에 이어 목포시,해남·영암·무안·진도·신안군 등 목포권 6개 시·군 자치단체장과 박재순(朴載淳) 전남도 자치행정국장 등이 참석해 목포권 발전전략을 놓고 토론했다. 이에 앞서 김홍일의원은 축사에서 “전남도청의 무안군 이전은 낙후된 전남 서남권 개발의 촉진제뿐 아니라 전남 전체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것”이라면서 도청 이전에 따른 갈등 치유를 촉구한 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목포권과관련된 기존 개발계획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새로운 관점에서의 지역발전 전략이 논의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한편 김의원은 이날 ‘광주∼목포광역권의 지식기반 지역발전 구상’이란정책자료집을 펴냈다. 목포 임송학기자 shlim@
  • 태풍 ‘닐’ 소멸…중부 오늘까지 비

    제5호 태풍 ‘닐’(NEIL)이 28일 오전 소멸됐다. 기상청은 “서해안을 따라 북상중인 태풍이 오전 9시쯤 태안반도 북서쪽 30㎞ 해상에서 열대저압부(TD)로 약화돼 태풍으로서의 위력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충청도와 서해남부 전해상,서해5도 등에 내려졌던 태풍주의보는모두 해제됐고 서해중부 전해상에 내려진 태풍주의보는 폭풍주의보로 대체됐다. 기상청은 그러나 “태풍은 소멸됐지만 열대저압부 중심에는 여전히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 비구름대가 형성돼 있어 중부지방에는 29일 오전까지 10∼50㎜의 비가 내릴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를 기해 서울·경기지방에는 호우주의보가 발효됐다. 닐은 지난 25일 오후 3시쯤 일본 오키나와섬 남쪽 330㎞ 해상에서 태풍으로발달, 북상하다가 27일 오후 전남 서해안 지방에 상륙, 전국에 강풍과 함께최고 150㎜의 비를 뿌렸다. 이지운기자 jj@
  • [해양한국 장보고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1회)

    ‘기원후 48년 7월,가야땅인 김해의 망산도에 한 척의 배가 닿았다.붉은 돛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서남쪽에서 다가온 배 안에서 여러 명의 신하들과함께 내려온 여인은 김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본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성은 허(許)씨요,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이렇게 해서 김수로왕과 바다를 건너온 출자(出自)가 불명인 공주는결혼했다.뱃사공들은 돌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가야의 국민이 되었다.‘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기록되어 있는 사화이다. 가야국은 육지의 이주세력과 해양세력이 결합해 출발한 나라이다.그러면 허황옥 집단은 어디에 기반을 둔 세력이며,어떤 항로를 거쳐 가야땅까지 왔을까? 그리고 해양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왕국이라는 설이 있다.허황옥과 관련한 문화적인 요소는 분명 남방적 분위기가 풍긴다.우리문화 전반에도 신화 신앙 장례 풍습 등 남방적인 요소가 많다. 인도에서 한국까지는 오늘날에도 너무나 먼 뱃길이다.하지만 자연조건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인도남부를 출발하여 말라카해협을 통과한다음에 남서풍을 이용하면 보르네오섬 북쪽을 지나 북상이 가능하다.더구나필리핀 북부부터는 쿠로시오(黑潮)가 북동진한다.따라서 이 해류와 봄철에부는 바람을 이용하면 동남아지역과 일본열도 혹은 한반도남부는 교섭이 가능하다. 한편 그들은 인도를 떠나 육로로 중국의 사천성을 경유한 다음 양자강 하구에서 황해남부 사단항로를 이용해 가야지역에 도착했다는 설도 있다(金秉模설).그 외에 요동에서 서해 연근해항해를 이용해 낙동강구를 찾아왔다는 설도 있다.가야는 이렇게 원양 항해능력을 갖춘 집단으로 출발했다.하지만 이미 건국할 당시부터 강력한 해군이 있었다.이주민인 석탈해가 김수로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자 주사(舟師) 오백척을 내어 쫓아버렸다. 동아지중해는 황해 뿐만 아니라 전역에 걸쳐 해양문화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고대국가들은 농사를 짓고,교역을 하며,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대부분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달하였다.특히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나 혹은 바다를 둘러싼 지중해지역에선 더욱 그러하다.‘삼국지’의 ‘한전’(三國志韓傳)에 의하면 한강 이남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 연맹체 아래 만여가에서 수백가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소국 79개가 있었다. 이 소국들의 상당한 숫자는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과 같은 큰강의 하류(津)나 바닷가포구(浦)에 있었다.유럽 지중해의 연안에 무수히 발달했던 ‘아테네’ ‘코린트’같은 일종의 해양폴리스같은 ‘나루국가’였던 것이다.이 소국들은 바다를 건너 중국지역은 물론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와도 활발히 교역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일본열도에도 기원을 전후하여 규슈를 중심으로 100여개의 나라가 있었다.이들 소국은 점차 큰 나라로 통합돼 기원 3세기 무렵에는 30여개의 나라가 되었다.물론 이 소국들의 주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문화의 주민들이었다. 좁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이들 수십개의 소국들은 선단을 보유한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그것은 교역권의 쟁탈전이었고,농사짓는 토지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뱃길,좋은 항구,우수한 선원을 확보하기 위한 해양력 경쟁이었다.소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의미있고 현실적으로 강한 나라가 바로 가야의 전신인 구야한국(狗邪韓國)이다. ‘삼국지 왜인전’에는 대방에서 일본열도의 야마대국까지 가는 항로와 항해거리,경유하게 되는 소국의 위치와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그런데 바로 한반도의 마지막 깃점이 김해지역으로 추정되는 구야한국이었다.이곳은 경상도 전역을 훑어내려온 낙동강의 물길이 모여서 대한해협과 만나는 나루터이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세력과 남해안을 따라 동진하는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 동남부의 끝단이다.전라도의 해안이나 제주도에서 해류를 타면 자연스럽게김해지역에 도착한다.대마도와 이끼섬을 중간에 두고 일본열도와 이어지는최단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대항해는 가능한 자기위치를 확인하면서 연근해 항해를 하고,되도록 짧은거리를 선호한다.때문에 당시 김해지역은 중국지역과 한반도,일본열도를 이어주는 동아지중해 최적의 중계지였고,교역선이나 사신선들이 반드시 경유할 수밖에 없는 국제항이었다.이곳에는 각지역의 사람들과 다양한 물건들이 매매되고,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1년∼92년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에서 동의대학교가 기원전 1세기부터 4세기에 걸치는 고분에 대한 발굴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엄청난 유물들이 발굴된 이 지역이 기록상의 구야한국으로 추정된다(林孝澤).특히 2세기말 수장급 묘로 추정되는 162호 토광목곽묘에서는 9개의 청동거울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2개는 중국제 한경(漢鏡)이고,나머지 7개는 중국경을 모방한 방제경(倣製鏡)이다. 일본열도에서 많이 발견됐던 이 방제경을 놓고 한일학자들은 그 원류와 만든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또 광형동모,옥,목걸이 등 두지역간 닮은 것들이 출토돼 해석이 분분하다.이와같은 현상은 경성대가 발굴한 근처 대성동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야가 중국물건들을 수입했으며,한일 양 지역간에는 해상교류가 활발했고,기록처럼 핵심거점이 이곳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변진(변한)은 철을 돈처럼 쓰기도 하고,왜 낙랑대방 예 등에 수출했다(삼국지 한전).또 유사한 물건들을 사용한 규슈의 소국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이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김해지역은 소위 환황해 연근해항로의중요한 깃점이자 교역망의 중계항이고 물류체계의 핵심거점이었다.해양소국에서 출발한 가야는 대한해협의 양안을 지배하는 해양제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 남대문은 그래도 안전?‘남대문 이상무’ 국립 문화재연구소의 남대문에 대한 안전 진단 결과이다.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그러나 그 주변으로 수많은 차량이 오가며 매연을 내뿜고 땅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등 대접이이만저만 소홀한 것이 아니었다.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차량 및 지하철 운행에 따른 진동 등으로 남대문이 훼손될 수도 있다며 안전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문화재연구소는 97년 12월 남대문 하층 귀기둥 부분에1000분의 1㎜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자동경사측정기 8대를 설치했다.24시간 상시 가동되는 자동경사측정기는 30분당 2분씩 5초간격으로 건물의 기울기를측정해 왔다.측정된 자료는 변환기를 거쳐 중앙제어장치에 저장되고 문화재연구소로도 보내진다. 문화재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일간,월간,계절간 변화를 비교,구조물의 거동특성을 분석하고 변위경향 분석을 통한 구조물의 안전도를 점검했다. 자료분석결과 측정 센서별 진폭은 1∼4㎜이내로 거의 없었으며 변형은 하루 및 연간 단위 주기로 파형 곡선의 증감을 보였다. 연구소측은 “측정값이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남대문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즉 나무로 된 이음새부분이 온도,습도 등의 영향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연구소측은 또 “기울기가 주기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계절 또는 주위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구조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남대문 보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내렸다. 그러나 문화재연구소 김봉건 미술공예연구실장은 “자동 경사측정기를 지난해 4월부터 본격 가동했기 때문에 계절별,연간 변화를 파악하려면 1년반 정도 더 운영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편 연구소측은 내년에는 동대문에도 자동경사측정기를 설치하기로 하고예산요청을 했다.동대문은 지하철 공사가 시행된 지난 83년과 84년에 측정했을 때 8㎜로 나타나 남대문보다 훨씬 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후약방문’보다는 문화재 밑으로 지하철을 굴착하는 도시개발행위가 중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태순기자 stslim@
  • 태풍 오늘새벽 서해로 빠져

    제5호 태풍 ‘닐’(NEIL)이 27일 제주도와 남해안에 상륙함에 따라 전국이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다.닐의 중심은 서해안을 따라 북북서진하다가 28일 새벽 서해로 빠져나갔다.우리나라는 28일 오후 늦게야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태풍의 상륙에 따라 전남·북 및 경남지방과 서해남부 모든 해상에는 27일정오를 기해 태풍경보가 내려졌다.다른 지방에는 태풍주의보가 내려졌다. 기상청은 “태풍의 중심이 27일 오후 4시 현재 전남 서부 남해안을 지나 시속 25㎞ 속도로 북북서진하고 있다”면서 “태풍경보 지역에는 초속 16∼25m의 강풍과 함께 4∼7m 높이의 파도가 일고 있다”고 밝혔다. 오후 4시 현재 지역별 강수량은 완도 121.7㎜,장흥 120.5㎜,고흥 120.5㎜,해남 114.5㎜,제주시 102㎜ 등이다. 28일 오전까지 전국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20∼60㎜(최고 80㎜ 이상)의 비가 더 내릴 전망이다. 한편 태풍 닐의 영향으로 경남에서 2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지운기자 jj@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0회)

    신라 8대 아달라왕(阿達羅王)때(158년)의 일이었다.연오랑(延烏郞)이라는바닷가에 사는 사내가 해초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여 일본땅으로데려갔다. 사람들은 놀랍고 신기해서 그를 데려다 왕으로 삼았다.남편을 찾아 바닷가를 헤매던 세오녀(細烏女)는 바위에 남편의 신발이 있는 것을 보고,그 위에 올라타자 다시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를 일본땅으로 데려갔고 그녀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그러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삼국유사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해와 달을 관장하는 종교집단이 배를 타고 일본열도에 진출해 소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표현한 설화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얘기가 일본서기에도 나온다.수인(垂仁) 3년에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배를 타고 왔는데 7가지 보물을 가지고 왔다고되어 있다.‘고사기’에는 역시 수인 2년에 임나국의 소나가시치가 귀국도중신라왕이 길을 막고 보물을 가로챘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천일창은 바로 시마네현의 이즈모지역에 정착한 세력이다.이즈모는 일본신화에서는 아마테라스신에 대항한 스사노오노미코도로 대표되는 강력한 집단의 근거지였다. 신라계인 그 신이 하강한 도리가미(鳥髮)의 땅은 이즈모 최대의 철산지였다.결국 연오랑 등의 신라계 진출자들은 발달된 제철기술을 갖고 이곳에 정착하여 문화를 발전시키고,질좋은 무기와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주위를 복속시켜 나갔다.고진다니(荒神谷)에서는 350여개의 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지금은 바닷가 부근 한적한 마을이 되어버린 옛 이즈모국 평원에는 방분(方墳)전방후원분 등이 많이 있다.그 고분들에서는 청동거울과 철촉 구슬 토기류등 우리문화와 관련있는 것들이 출토됐다. 그러면 신라인들이 건너다닌 일본항로는 어떠했을까? 연오랑 세오녀 부부처럼 영일만,박제상처럼 울산(栗浦),대왕암이 있는 감포를 출발하여 동해 남부를 횡단한 다음에 혼슈 남부인 돗토리현,시마네현,야마구치현,그리고 후쿠이현에 도착하였다. 이즈모지역은 울산이나 포항과 비슷한 위도(북위 35,5도)이므로 동해남부나남해에서 리만한류를 타다,북위 30도 부근에서 대한난류를 횡단하여 본류에타면오키제도를 경유해 도달할수 있다.계절풍을 활용한다면 항해는 크게 어렵지 않다. 필자는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려고 남부지방까지 내려왔을 때 고구려군이 일본열도로 진출했을 가능성을 주장한 바 있는데 당시 그들은 이 동해남부 횡단항로를 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학자와 몇몇 일본학자들은 이즈모지역에 고구려 영향이 강했다고 주장한다.후대에는 발해인들도 이곳에도착했다.이 항로는 가을과 겨울에 더 적합하다.모험심이 강했던 신라인들은 낮은 수온과 강한 북서풍이 일으키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항해했다.반대로이즈모에서 연안을 항해,규슈 가까이 내려간 다음 대마도로 항해하여 북동진하는 해류에 올라타면 신라의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신라땅과 일본열도를 오고 가며 생활한 놀랄만한 개척정신의 소유자들이 사용했던 항해도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신라왕자 천일창은 배(艇)을 타고 항해하면서 7가지(고사기에는 8가지)의 신령스런 보물을 가져왔다.구슬 2개,청동거울,천(布)등인데,이것들을 방위측정기,풍향,풍속측정기,조류측정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청동거울은 가장자리에 표시되어 있는 12지신을 지표로 삼아 방위를 측정하는 나침반 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茂在寅男 ‘고대인의 항해술’).필자는 뗏목항해를 할 때마다 이러한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이렇게 신라계 이주민들은 시마네,돗토리 등 지역에 정착한 다음 다시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였다.한 갈래는 척량산맥을 넘어 기히(吉備,오카야마지방)로 가 거대한 전방후원분을 축조하였다.오카야마시 근처에는 시라기(白石)마을이 있다.기히지방에는 산처럼 보이는 전장 350m의 쓰쿠리야마(造山)고분을 비롯해 약 4,000기의 고분이 분포돼 있다.특히 오쿠지역은 신라적인 요소가 강하다.츠키야마 고분에서는 말 재갈과 행엽 등 말의 장식품이 출토되었는데 경주의 출토품들과 유사하다.근처 구로야마 2호분에서도 초기 신라계 토기가 많이 나왔다. 다른 한 갈래는 연안항해를 하며 북상해 후쿠이현의 쓰루가 지역에 도착했다.쓰루가(敦賀)는 원래 츠누가(角鹿)라고 불렸는데,머리에 뿔이 난 사람들이 왔기 때문이라고한다.이들은 바로 투구를 쓴 가야인들이다.그러나 신라인도 많이 들어왔다.가장 큰 만(灣)인 와카사만에는 신라를 나타내는 시라기마을(白木浦)이 있고,시라기신사(白木神社)가 있다.지금은 4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예전에는 신라인과 가야인,고구려인들이 들어온 항구이다.특히 발해인들은 이곳을 주요한 도착 거점으로 몇 개월씩 머물면서 장사를 했다.쓰루가에는 이곳 말고도 ‘白石신사’‘白城신사’‘信露貴彦신사’등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시라기’인,신라의 조신(祖神)을 모신 신라신사들이 많다. 가야나 백제계 세력은 초대천황인 짐무(神武)의 동정(東征)설화처럼 규슈를 출발하여 좁고 물살빠른 세토내해에서 힘든 항해와 숱한 전투를 치러가면서 어렵게 오사카만에 도착했다.그 항해에 비하면 이즈모지역에 도착한 신라계는 연근해 항해를 하여 쓰루가에 거점을 확보한 후 다시 동으로 이동,비와(琵琶)호의 곁을 지나 단거리로 야마도지방(현재의 오사카,나라,아스카지역)에 도착할 수 있다. 동해남부를 항해하여 이즈모지역의 해안가에 소국을 건설했던 신라계 진출자들은 생각보다 일찍 야마도지역에 정착하여 일본의 고대국가가 형성되는데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죽은 천연기념물도 보호대상 죽은 천연기념물은 보호대상인가 아닌가. 결론은 당연히 보호대상이다. 지금까지 죽은 천연기념물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종전의 문화재보호법에 국가지정 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는 허가를 받도록 돼 있으나 생물만 보호대상으로 해석해왔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검찰에서도 종종 박제범 처벌을 놓고 문화재청에 문의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 이런 논쟁에 종지부가 찍어졌다.개정된 문화재법에서 보호대상으로 못박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개정 문화재법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죽은 천연기념물을 표본·박제하는 경우에도 문화재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는 죽은 천연기념물 조수류도 법상의 보호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 천연기념물의 밀렵행태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법 시행전에 보유하고 있는 박제나 표본은 오는 12월31일까지 관할 시·군·구에 신고하면 허가받은 것으로 경과규정을 뒀다. 신고해야 하는 것은 조류는 크낙새·따오기·고니·황조롱이·매·올빼미등 40종,포유류는 반달가슴곰·사향노루 등 6종,곤충은 장수하늘소 1종,어류는 무태장어·어름치 등 3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80년대 중반 자취를 감쳤던 세계적 천연기념물 크낙새가 신고되기를 기대했다. 한편 개정 법은 정식 허가를 받아 만든 천연기념물의 박제나 표본은 수출할수 있도록 했다. 원앙을 사육,수출하는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또 화석등 고생물자료와 천연동굴도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발굴하도록 했다. 처벌 규정도 대폭 강화됐다.허가없이 천연기념물을 박제 또는 표본으로 제작했거나 불법으로 손상한 것을 알고도 이를 취득·운반·알선했을 경우에는2년이상의 징역이나 2,000만원이상 1억5,000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또 신고없이 박제·표본 등을 갖고 있거나 화석 등 고생물자료와 천연동굴을 발견하고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50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北, 서해안 화력 대폭증강

    북한은 최근 황해남도 해주,사곶 등 서해안 주요 해군기지에 170㎜ 자주포및 240㎜ 방사포 등 장거리포를 새로 배치하는 등 서해안 일대에 화력을 집중 증강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알려졌다.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올 4월부터 240㎜ 방사포를 서해안 주요 해군기지에 배치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6월 서해교전 이후 170㎜ 자주포까지 배치하는 등 화력을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이 전했다. 북한이 이들 지역에 추가 배치시킨 240㎜ 방사포는 서해안 6개 지역에 설치된 사거리 83∼95㎞의 실크웜 미사일과 함께 새로운 위협요인으로 부각되고있다. 북한은 또 평양∼개성 고속도로 주변에 20여개의 전차 및 포병 중대를 신설배치했으며, 특히 포병중대의 주요 화기는 170㎜ 자주포와 고사포인 것으로확인되고 있다. 정보당국은 또한 북한은 황해북도 황주 등 주요 공군기지에 23㎜ 대공포를확대 설치하고 있고,휴전선 일대 모든 지상군기지에서도 23㎜ 대공포 설치공사를 대대적으로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구본영기자 kby7@
  • [대한매일 창간95] 김대중 대통령 특별회견(I)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한매일 창간 95년 기념 특별회견은 15일 청와대본관 소접견실에서 30여분 동안 진행됐다.특별회견에는 대한매일 차일석(車一錫)사장과 황병선(黃炳宣)편집국장,김재성(金在晟)정치팀장이 참석했다.정국현안은 황 국장이 준비한 메모를 보며 즉석에서 물었다.경제위기 극복 이후 정부의 정책목표로 설정한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한 생산적 복지와 사회정의 실현 부분은 미리 서면질문을 제출,답변서를 받았다.다음은 김 대통령과직접·서면질문에 의한 회견내용이다. ■최근 대통령께서는 청남대 구상을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국정운영 방향과 민심 수습을 위한 구체적인 구상과 청사진을 마련한 것으로 아는데,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개혁이 안된 부분이 정치입니다.여든 야든 국민의 신임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이제는 정치가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이를 타결해야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지못하면 결국 여당의 책임이자,대통령의 책임입니다.이번에 청남대에서 많은생각을했습니다.오는 8·15를 기해 종합적으로 국정 비전을 제시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 제분야의 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 정치면에서는 여야의 대화를 통해 정치를 복원시킬 생각입니다.내가 야당때 겪어봤기 때문에 정권을 잡았다고 야당을 괴롭히거나 탄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일부에서 사정문제가 대두하고 있으나 검찰수사 과정에서 나온 일입니다.야당은 과거 집권당으로, 연루된 사람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사정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대통령이 검찰이 법에 의해 하는 일을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간섭을 하더라도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여건 야건 권익을 보장합니다.야당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합니다. 국회운영 방법도 독재시대에서 민주시대로 들어선 만큼 민주시대에 맞는 국회운영이 되어야 합니다.충분히 토론해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표결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자연히 다수당에 의한 날치기나 소수당에 의한표결 저지도 없어질 것입니다.다수결 결과에 대해서는 여당이 책임을 지게 되고 만약 그 결과가 나쁘면 야당이 국민 지지를 얻은 뒤 다음 선거에서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의회정치의 정도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인권법과 부패방지법,의문사 및 민주열사 진상규명법,국민기초생활보호법등 제정되어야 할 법이 많습니다.인권과 복지신장을 위한 법이므로 여야를초월해 빨리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화를 통한 정치 복원을 강조하셨습니다.여야 총재회담이 조기에 이뤄질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국민회의의 새로운 지도체제가 등장했으므로 야당과 대화를 해서 준비되면언제든지 할 작정입니다. ■청남대 구상 이후 대통령께서는 큰 국정을 책임지고 국무총리는 내각을,당은 정치를 책임지는 역할분담론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됩니다.앞으로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입니까. 총리와 당이 더 많은 책임을 가지고 해주길 바랍니다.나혼자서 다 감당할수는 없습니다.정치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성자동차문제를 계기로 부산지역의민심이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부산지역 경제 침체는 신발사업의 사양화 등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측면이 강한데,현 정부가 추진중인 구조조정으로 나빠진 것처럼 비춰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떠들고 있으나 모두 다 알다시피 삼성자동차는전 정권의 결정에 따라 부산지역에 들어섰습니다.삼성자동차는 처음부터 적자로 출발,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전 정권이 안되는 일을 허가해남긴 유산을 우리가 맡아 정리하는데 허덕이고 있습니다.삼성자동차는 경제문제이니 경제논리로 처리해야 합니다.국민의 정부가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면서 은행문을 닫고 기업과 근로자들이 고통을 분담하니까 다시 경제가 살아나는 것입니다.경제논리로 하니까 경제가 살아나는 것입니다.경제논리를 적용하지 않고,정리해고를 허용하지 않고,쓰러져가는 중소기업의 부도를 막기위해 정부가 지원에 나섰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기업경쟁력이 더 없어졌을 것입니다.정부가 때로는 인기가 없다는 것을 각오하고 경제를 살려야합니다.그 성과는 중산층과 서민에 돌아가는 것입니다.그것은 일자리를 주는 것으로 현재 4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생산적 복지를 국정지표에 추가하셨으나 중산층과 서민층의 재건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 구상이나 비전이 아직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플랜이나 정책 비전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또 생산적 복지 구상을 실천하기 위한 경제구조가 마련되어 있다고 보시는지요. 생산적 복지정책은 결코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외환위기가 극복되었고 경제가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어 재정 여건도 좋아지고 있는 만큼 그동안 고통을 분담해온 국민에게 희망과 의욕을 갖게 하고,나아가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선진사회를 구현해 나가겠다는 장기적인 목표와 철학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생산적 복지실현을 위한 대강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고,그에 따라 정부 내에서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준비중에 있습니다.이러한 정책을 추진할만큼 우리 경제가 좋으냐 하는 우려도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생산적 복지는단순한 시혜적 차원의 복지정책이 아닙니다.공동체적 연대 속에서 국민에게일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제공해 생활을 보장하고,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이 기본 취지입니다.국가발전을 위한 장기적 안목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 이 정책을 시작하는 적기라고 봅니다. ■생산적 복지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구상은 무엇이며,생산적 복지를 국정운영 지표에 추가한 근본적인 목표에 대해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생산적 복지에 대한 구상은 저의 오랜 경제철학이자 소신입니다.그리고 이는 우리 당의 창당이념이자 핵심적인 정강정책이기도 합니다.다만 그동안 목전의 경제위기를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뤄왔던 것입니다.생산적 복지정책은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고 있습니다.첫째는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신장하는 것입니다.그동안 민주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국민의 정치적·경제적권리는 많이 신장되었지만 사회공동체 속에서의 국민의 권리와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취급돼 왔습니다.생산적 복지정책은 그러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국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다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산적 복지의 두번째 목표는 보다 장기적인 국가발전의 전략적 측면입니다.사회적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 개개인에게 스스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과 사회안정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내에‘삶의질 향상 기획단’이 구성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앞으로 중점적으로 맡게 될 역할은 무엇입니까. ‘삶의질 향상 기획단’은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국정운영 철학으로서의 생산적 복지정책 추진을 위해 복지·노동·환경 등 관련 정책을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들이 계획대로 실시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새로운 복지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과사회집단의 동의와 자발적 참여를 촉진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저소득자의 먹는 문제와 자녀교육,건강문제 등에 대한 국가 부담문제를 놓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이러한 국가 부담정책을 언제까지 추진하실 계획입니까.이와 관련해 대통령께서 새롭게 주창하고 있는 생산적 복지에 대해 정부가 부담할 한계와 책임의 수준을 밝혀 주십시오. 먹는 문제와 자녀교육,의료문제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입니다.따라서 국가가 이러한 문제에대해 책임을 가지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선진국가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무조건 재정만 높여 나간다고 복지사회가 구현되지는 않을 것입니다.선진국에 비해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었던 우리 실정을 감안하여 일정 수준의 재정 확대는 필요하지만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베풀어주는 식의 복지제도는 서구사회에서 보듯이 국민의 일할 의욕과 사회적 활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따라서 국가가 국민 스스로일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확대하는 데 역점을 두고 국민의 자활능력을 배양하며,궁극적으로 국민의 복지와 국가발전이 동시에 실현될 수 있도록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그것이 곧 생산적 복지의 기본원칙이라 하겠습니다. ■소득에 따라 세금을 내도록 과세행정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산층과 서민들 사이에서 높게 제기되고 있습니다.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그러나,이러한 과세형평은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를 의미해“평균 수준을 낮추자는 것 아니냐”며 가진 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게 표출되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보완책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세제개혁은 우리 사회의 오랜 과제였습니다.세부담의 형평성과 사회정의 차원에서 현행 조세제도와 세무행정은 개혁되어야 합니다.그 일환으로 정부는음성 탈루소득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거기서 징수된 재원으로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세를 경감하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습니다.정부는 이외에 앞으로도 자산소득과 근로소득간의 과세형평을 기하는 조세제도의 개혁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법과 조세의 공정한 집행은 국가운영의 핵심 과제입니다.국민의 정부는 이런 차원에서 조세개혁을 통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고 그 같은 세금이 공평하게 부과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정리 양승현기자
  • 전남도, 시·군 ‘稅收用 위장전입’ 급증

    전남도내 시·군의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탈법적인 인구 늘리기 캠페인에호응,대도시에 살면서 주민등록만 고향 시·군으로 옮겼던 출향인사들이 대거 주민등록지를 원대복귀시키고 있다. 정부가 인구를 기준으로 시·군의 지방 교부세를 결정하는 기한이 지난 6월30일로 마감됐기 때문이다. 운전면허증과 자동차 사용자는 전입 후 15일 이내에 주소지 변경을 신고해야 과태료를 물지 않는다. 지난 5월 469세대가 전입해왔던 완도읍사무소의 경우 이달 들어 현재까지 300여가구가 전출해갔고,영광읍사무소의 전출자도 이달 들어 55가구나 된다. 나주시와 장성·진도·해남군 등 시·군의 위장 전입자들도 광주로 이전을서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광주 등 대도시 일선 동사무소는 밀려드는 전입자를 처리하느라몸살을 앓고 있다. 북구 오치1동사무소는 지난달 시·군 전출이 252건이었으나 이들이 최근 한꺼번에 다시 전입신고를 해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서구 상무1동사무소도 지난 한달동안 622건의 전출신고가 접수된 후 이달초부터 거꾸로 전입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일부 시·군이 지방세 확보를 위해 직원들에게 친인척과 출향인사 등을 현지로 위장 전입시키도록 ‘할당량’을 주는 등 탈법을 부추겨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선 시·군은 주민세와 지방세 등 지방세수를 늘리고 정부로부터 지원되는 1인당 10만원 정도의 지방교부세를 확보하기 위해지난 몇달 동안 출향인사 등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전입을 유도했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9)신라전기의 對日교류·갈등

    ◆신라 전기의 對日교류와 갈등 비단으로 감싼 알을 넣은 궤짝 하나가 동해안 한 바닷가(阿津浦口)에 닿았다.이 궤는 먼저 낙동강 하구인 금관가야국에 닿았지만 받아주질 않자 이곳까지 온 것이다.한 할머니가 그 궤짝 안에 있던 아이를 품에 안고 나오자 까치 한 마리가 울며 쫓아왔다.바다를 건너 찾아온 아이는 신라의 4대왕이 된석탈해(昔脫解)였다. 삼국사기에는 그가 왜의 동북쪽 천여리에 있는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왔다 하였고,삼국유사는 용성국(龍城國)이라고 하였다.그러니까 석탈해는 바다건너서 궤짝으로 표현된 배를 타고 들어온 이주민인 셈이다.신라의 건국과정에서 일어난 일종의 항해사화이다. 신라는 4세기 늦게까지 내륙의 분지인 경주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국가로 이해한다.하지만 초기부터 국제성이 강한 나라였고,경주는 바다로 이어진 해항(海港)도시였다.그래서 초기부터 해외와 관련된 기록이 많았다. ‘삼국지’나 ‘삼국사기’ 등에는 진(秦)나라때 난리를 피한 사람들이 신라지역에 있었다고 한다.그들중에는 산동이나 요동등에 살고 있던 동이족들이 많았으며,이후에도 계속 황해를 건너왔다.진한은 당시 중요한 화폐대용이었던 철을 팔면서 남해를 넘나드는 해외무역을 했으니 신라는 당연히 교역망을 물려받았을 것이다.대장장이인 석탈해가 왕이 된 것은 철의 생산과 수출이 매우 중요했음을 알수 있다.세계적인 중국의 안산(鞍山)제철소가 고구려의 요동성 지역에 세워진 것처럼 포항제철과 울산공단이 석탈해의 터전에 세워지고 수출항이 된 것은 역사의 현재화를 웅변한다. 경주는 초기부터 해외로 진출하는 전진기지였고,사람들이 몰려드는 국제도시였다.박혁거세때에 호공(瓠公)은 왜국에서 표주박을 차고 바다를 건너온귀화인이지만 중요한 벼슬을 하였다. 왜인들은 초기부터 신라를 침입해왔고 2대 남해왕때는 병선 100여척에 타고 해안을 침범하였다.때로는 대규모로 침입하여 수도 경주를 위협하기도 했다.왜와 관련된 기사가 500년까지 50여회나 나올만큼 왜인들은 자주 신라를 침범했다. 그런가하면 아달라왕(阿達羅王) 20년(173년) 5월에는 왜국 여왕 비미호가사신을 보내 수교하는 등 우호관계도 유지했다.그래서 그들은 ‘한반도의 남부에 거주한 주민이다’ ‘남부와 대마도,규슈까지 연결하는 규슈 왜왕조의왜인들이다’ ‘단순한 해적집단이다’등 여러가지 설이 나타났다.심지어는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모두가 당시의 해양문화수준이 낮다는 인식에서 나온 설들이다. 그러나 그 시기 동아지중해의 전반적인 해양능력은 발달했다.기원전 3세기에 진시황은 인도네시아까지 선단을 파견하였다.한무제는 수만의 해군을 동원하여 남월(南越)을 정벌하고,위만조선과 수군을 동원한 대전쟁을 하였다.3세기에 위나라는 서해 연안항로를 이용하여 일본열도까지 교역은 물론,내정간섭까지 하였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미 7,000여년 전부터 교류가 있어왔다.물살은 거세지만 최단거리로 이으면 200km에도 못미치는 대한해협은 해양민들이 건너다니기에는 어려운 바다가 아니었다.일본의 초기역사를 다룬 ‘일본서기’의 초반부에는 신라관련 기록이 많이 나타난다.태양여신인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와 싸우다 실패한 스사노오노미코도는 그의 뿌리나라(根國)인신라로 돌아가고 후손들은 이즈모(出雲)지역에서 지배권을 확립한다. 또다른 기록엔 스사노오노미코도가 신라에 내려와 살다가 흙(埴土)으로 만든 배를 타고 이즈모지방의 도리가미노다케(鳥上峯)에 내려왔다고 한다.신라인들은 그 후 더욱 적극적으로 일본열도의 여러 지역으로 진출한다.그 시대에 사용된 선박의 규모는 알 수가 없다.무덤에서 나온 배모양의 토기는 단순한 형태의 부장품일 뿐이다. 신라왕은 응신천황에게 배만드는 장인을 보낼 정도였다.그런데 비슷한 시대에 위나라 사신과 상인들은 대방을 경유하여 김해와 대마도를 거쳐 일본 규슈까지 타고 다녔다.이미 100명 이상이 타는 큰 배들이 대한해협을 항해하고 있던 시대이었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면 왜인들이 신라에 오는 시기는 거의 봄철에 집중되고 있다.규슈나 대마도,이즈모 등 지역에서 남풍계열의 바람을 타면 자연스럽게 신라지역에 도착하기 때문이다.일본 선사시대 조오몽(繩文)토기들이 부산의 동삼동이나 울산 서생포에서 발견되는 것은 해류와 함께 이 남풍을 이용한 때문이다. 반대로 신라배들은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북풍계열의 바람을 이용하여 남진하였다.그러니 대한해협을 건너다니는 신라배나 왜의 배는 돛을 단 상당한수준의 범선이었다.그리고 초기부터 해군이 있었다.석탈해때는 가야와 황산진구(黃山津口)에서 싸웠다.조분왕(助賁王,233년)때는 해상에서 왜와 화공전까지 벌였으며,유례왕(儒禮王,289년)때는 왜국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병선을 수리했다. 그러면 그 당시 한일항로는 어떠 했을까? 신라의 위치나 동해남부와 일본열도 사이의 해양조건을 고려한다면 신라인들은 주로 경주 외항인 감포,눌지왕때 박제상이 출발한 울산(율포),아달라왕때 연오랑과 세오녀가 출발한 포항의 영일만 지역 등 항구에서 일본열도로 의욕에 찬 항해를 시작하였다.초기에는 좀더 안전하게 대마도를 경유하여 규슈 북부지역에 도착했지만,해양능력이 점차 향상되면서 혼슈 남단 시마네현,돗토리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반대로 왜인들은 대마도 규슈북부,혼슈 남부 등 여러지역에서 목적에 따라출발하였다. 그래서 삼국사기에는 이들을 왜인,왜국,왜병,적 등으로 구분해부른 것이다.해류와 조류 등 바람을 이용해서 왜인들이 가장 쉽게 도착한 곳이 신라해변이다.신라와 왜 사이에 벌어진 어쩔수 없는 갈등관계는 대한해협의 섭리였다.때문에 신라는 처음부터 수군을 키우며 해양능력을 강화시켜야만 했다. [윤명철 동국대 겸임교수]
  • 남부 폭우 2명 사망 1명 실종

    2일 오전까지 제주와 부산 경남 전남 등 남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으며 곳곳의 도로와 가옥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오전 7시20분쯤 부산시 북구 만덕동 그린코아아파트 뒤 계곡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50대 여자 1명이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같은 날 오전 7시10분쯤 경남 창녕군 계성면 법정사앞 계성천에서 하천을건너던 주민 김기선씨(55·여)와 이경숙씨(54·여)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김씨는 숨지고 이씨는 주민들에 의해 구조됐다. 또 이날 오전 6시25분쯤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석산리 삼양라면 기장공장뒤 언덕에서 4t 가량의 흙더미가 무너지면서 동해남부선 철로를 덮쳐 열차운행이 30분 가량 중단됐으며,거제시 옥포동 옥포개발앞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차량통행이 한때 통제됐다. 전남도 해안과 내륙지방에도 쏟아진 장대비로 농경지 5,080㏊가 침수됐으며,완도군 완도읍 대하리에선 산사태로 토사가 인근 양식장을 덮쳐 넙치 3,700마리가 폐사했다. 이에 앞서 1일 오후 7시55분쯤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내 롯데호텔신축공사장에서 작업중이던 롯데건설 토목과장 최정진씨(48)가 맨홀에 빨려들어 숨졌다. 전국종합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8)남부해상권 장악한 백제

    ◇ 남부해상권 장악한 전성기의 백제 백제는 정복군주인 근초고왕때에 고구려의 남부를 쳐서 경기만을 내해로 삼고 황해를 건너 동진(東晋)과 교역하면서 해외진출을 시작하였다.그리고 남으로는 전라도해안까지 영역을 넓혀 일본열도로 가는 출해구로 삼았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응신(應神)천황때에 백제등 삼국으로 부터 많은 선진문물이 들어와 문화성장에 활력소가 되었다.또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이유교문물을 전해주었고,‘한인지(韓人池)’라는 저수지도 파고, 수로를 만들고 제방을 쌓았다.백제인은 좋은 말을 데려다 사육을 했다.모두 배를 타고온 것들이다. 이와 같은 이주(移住)성격의 비조직적인 진출은 5세기 들어 조직적이 되었고,중국에서 일본에까지 이르는 국가적인 대 진출사업으로 확대되었다.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을 점령(475년)당하는 등 국난을 겪기도 했지만 수도를웅진(공주)으로 옮기고 나서 백제는 금강을 출해구로 삼아 황해로 진출하면서 국가재건을 도모하였다. 중흥군주인 동성왕은 외교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자강이남의 남제(南齊)와 교섭을 시도하였다.484년에는 사신선이 서해 한 가운데에서 고구려수군에게 저지당하였으나, 곧 해양력을 회복하고 황해 남부의 신항로를 개척,양(梁) 진(陳)에 이르기까지 외교 교역 문화교류 등을 활발히 하였다. 그래서 수서(隋書)에는 백제에 왜와 중국사람이 많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해양교류를 통해서 국제화가 되고, 수준높은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자치통감’에는 바로 이 시대에 북위가 백제를 쳤으나 패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남제서(南齊書)에는 490년에 위가 기병 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했다가 크게 패했으며,이에 동성왕은 큰 공을 세운 백제의장군들에게 북위지역의 왕이나 후(侯)등 관작을 줄 것을 남제에 요구한다.남제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오던 백제가 남제와 적대관계에 있던 북위를 물리친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이 전쟁에서도 수군끼리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특히 목간나(木干那)라는 백제의 장군은 성과 배를 부순 공이 있다고나오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대규모의 해전이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북위는 화북지방에 있었다.그렇다면 백제의 위치와 해양능력은 어떠했을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거기다가 일부 사서에는 백제가 ‘양자강 좌우에서 활동하였다(據江左右)’고 기록하고 있다.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백제는 당시에 해양을 무대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국가임이 분명하다.또498년에는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탐라국(제주도)을 정벌하러 남진하다가 영산강 지역에서 중지했다.백제의 해군력을 익히 아는 탐라가 겁을먹고 항복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황해와 남해,동중국해를 연결하는 해상네트워크의 접점으로 남중국 한반도 일본열도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중핵에 위치해 있다.백제는 이곳을 장악함으로써 광범위한 해양활동망을 구축했고,일본열도로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규슈의 서북쪽,아리아케해(有明海)에서 기쿠치(菊池) 천을 거슬러 올라가면후나야마(船山)고분이 있다. 120여년 전에 발굴되었고, 한참 후에 무엇이 나왔는지 발표되었다.집 모양의 돌관에서는 청동거울과 금동 관,금동 제관모,많은칼,금동 신발,말 재갈,갑옷,토기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금동관모는 전북 익산군 입점리에서 발굴된 것과 모양은 물론 뒷꼭지에 달린 방울장식도 똑 같았다.신발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입점리고분이나공주의 무령왕릉에서 나온, 바닥에 침이 박힌 스파이크형이었다. 청동거울과 금제 귀고리도 삼국의 유물과 유사하다.길이 85㎝의 대도(大刀)에는 국화무늬, 말의 은상감과 함께 서치대왕(瑞齒大王),그 칼을 제작한 장인의 이름까지 칼 제작에 관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그러나 중요한 글자들은 마모되었는데,현재는 5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백제 개로왕이 하사한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물론 백제인들의 거주지였던 현재의 오사카지역의고분에서도 300여개의 철제 칼들이 한 군데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동성왕에서,무령왕,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백제는 줄기차게 해양으로 진출하였다. 그렇다면 전성기의 백제인들은 어느 정도의 해양능력을 보유하였고,또 어떤 항로를거쳐 중국 남부와 일본열도로 진출했을까?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배와 신라의 배에 대한 기록이 꾸준히 나온다.응신천황때에는 길이 10장(丈,약 33m)의 배를 만들게 했다.그 후에도 우수한 배의상징으로 백제 선(船)이 등장하는데 645년에는 왕명으로 백제선을 만든다.일본고분에서는 당시에 사용했던 배를 표현한 유물들이 많이 나온다.후쿠이현의 대석(大石)유적에서 출토된 동탁(銅鐸)엔 마스트와 노가 18∼20정,길이가15m에 달하는 대형 배가 나온다. 특히 미야자키현의 니시도바루 고분에서는배 모양의 부장품이 발견됐는데 좌우에 6개의 노가 달려 있다.백제에는 이보다 우수한 먼거리 항해용 배를 가지고 동아지중해 남부를 항해하였다. 일본항로는 전라도 해남을 포함한 남해 서부,서해 남부를 출발해 규슈 서북부에 도착하는 것이다.제주도를 우측으로 바라보면서 고토(五島)열도에 도착한 다음 규슈 서쪽지방으로 상륙하였다.이어 아리아케해 근처로 들어와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사가현의 서부에 정착한 다음 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진입해들어갔다. 그래서 규슈 서부지역에 후나야마고분과 같은 백제계 유적들이 있는 것이다. 한편남중국항로는 고구려의 해상권 통제와 북위의 견제 때문에 난이도가높은 항로였다.금강하구와 영산강하구 해역 등에서 출발하여 먼 거리인 황해남부를 횡단하다가 회하(淮河)해역의 먼바다에서 남진하거나,아니면 바람을이용해 곧장 사단(斜斷)으로 남진한 다음 양자강 하구로 진입해 갔다. 이렇게 백제는 해양력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면서 다시 강국이 됐고,점점 더 일본의 고대국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한반도 공룡정체 밝혀질까/공룡박사 李隆濫씨

    - 전남등 공룡알 화석 발굴…한반도 공룡정체 밝혀질까 지난 달 전남 보성군 득량면 해안에서 1억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알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데 이어 화순군 북면에서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발자국 500여개가 발굴됐다.경기도 화성군 시화호 남측 간사지에서도 공룡의 집단산란지가 발견돼 최근 공개됐다.경상지층과 경기도 서부지역에서 잇따라 공룡 발자국 및 알 화석들이 대규모로 발견돼 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오래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한반도 공룡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중생대 백악기 지층을 이루는 경상도 및 전라도 지역의 경상계(경상지층)에서 많은 공룡의 흔적화석들이 발견됐다. 1억년전 한반도는 공룡의 천국 그중에서도 과거 호수를 끼고 있던 경남 고성군 덕명리와 전남 해남군 우항리,경북 의성군 금성면 등의 고생물화석들은 세계적으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공룡화석 대부분이 발자국으로 공룡의 몸크기나 속도까지는 추정할수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발자국의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 알수는 없다.발자국 외에도 알 껍질과 뼈 조각,이빨 조각 화석 등이 조금씩 발견됐지만 수수께끼를 푸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들을 근거로 할때 한반도에서는 초식공룡으로 분류되는 조각류와 용각류,육식공룡인 수각류에 속하는 10여종이 학계에 살았던 것으로 보고돼 있다. 대규모의 보행흔적 지난 82년 경남 고성군 덕명리 해안에서 발견된 공룡의 보행흔적(지방기념물 71호)에서는 초식공룡(조각류)과 육식공룡이 96대 4의 비율로 나타나 있다.6㎞에 걸친 해안에 3,000여개가 넘는 발자국 화석이 널려 있어 세계적으로 공룡발자국 화석의 3대 산지로 꼽힌다. 고성 덕명리와 함께 학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보행흔적이 전남 해남군 우항리 화석군이다.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형성된 우항리 해안,마치 책장을 펼친 듯 중간중간 드러나 지층의 수평면에서 다양한 공룡발자국 550점,익룡 발자국 450점,새발자국 수천점과 식물화석이 발굴됐다.우항리에서 96∼98년 수행된 발굴 및 종합학술연구 책임자였던 전남대허민(許民)교수에 따르면 3∼4종의 조각류 발자국 화석 가운데 두가지는 하드로사우루스(일명 오리주둥이 공룡)와 이구아노돈류이다.하드로사우루스는 캐나다 북미쪽에서 많이 나오는 종류로 발의 길이 60㎝,키 7∼10m 크기의 초식공룡이다.공룡의 진화 뿐 아니라 북미대륙과 아시아가 연결돼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이구아노돈은 4족 보행을 했던 목긴공룡(용각류)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초식공룡으로 2족보행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유일의 별모양 발자국 우항리에서 발견된 발자국 중 세계 고생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있다.길이가 1m나 되는 이 발자국은 그 안쪽에 별 모양이 새겨져 있는 독특한 모양으로 모두 110개에 이른다. 이 특이한 발자국의 주인공은 가로세로 비율이 같고 뭉툭한 것으로 미루어초식공룡임이 분명하다.발자국 크기로 미루어 몸통길이만 7m가 넘을 것으로보인다.하지만 이 공룡이 4발로 걸었는지,2발로 걸었는지 의견이 엇갈린다.2족 보행이라면 조각류일 것이고 4족보행이면 목이긴 용각류다. “처음에는 4족보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앞발과 뒷발의 모양이 거의 같은 것으로 미루어 외면적으로는 2족보행이다.하지만 다른 2족보행처럼 3지창모양이 아닌 기형적인 발모양을 가졌다.수영하는 4족보행 공룡의 발자국일수도있다.”허교수는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발굴과 함께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던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로클리교수는 2족으로 보고있다. 최근의 발굴작업들 최근 전남 보성군 득량면 선소해안에서 발견된 공룡알들은 공룡연구에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육안으로확인된 것만 수백개로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도 상당수이며 어떤 알껍질은보기 드물게 8겹을 이룬다. 발굴작업을 한 허민교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초식공룡 5∼6종의 집단산란지로 보인다”며 “본격 발굴·연구를 하면 공룡의 부화습성과 산란지 환경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것”이라고 말했다.전남대 공룡연구소는 9월 중해남과 보성 등지를 중심으로 캐나다와 공동 워크숍을 가질 계획이다. 시화호에서 발견된 알 화석들은 지금까지 화석이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만 발견된 것에 비해 처음으로 경기 서부에서 발견됐다는데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한국해양연구소 정갑식(鄭甲植)박사가 ‘희망을 주는 시화호만들기 화성·시흥·안산 시민연대회의’(위원장 崔鍾仁)와 함께 시화호의 생태계와 지질변화 기초조사를 하던 중 발견한 이 공룡알 화석들은 이곳이 1억년전 공룡의 집단 산란지였음을 추정하게 한다.특히 여러 퇴적층에서 최소한 2종의 공룡알 화석들이 2∼12개씩 모여 수많은 둥지를 이루고 있으며 다양한 식물화석이 함께 발견돼 공룡의 먹이와 산란지 환경을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 지역은 오는 7월7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가지정돼 집중적인 연구·발굴작업에 들어간다. 함혜리기자 - 국내유일 공룡박사 李隆濫씨 이융남(李隆濫·40)박사는 국내 유일의 공룡박사다. “한반도는 거대한 자연사박물관으로 집중적인 연구·발굴이 필요하다”는그는 공룡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아쉬워한다.이박사는 “한반도가 중생대 백악기에 공룡들의 천국이었다는 것은 우항리와 덕명리 등에서 발굴된 세계적인 규모의 발자국화석들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뼈 화석이 발견되면 보다 구체적인 과학적 자료로 학계의 인정을 받고 공룡의 생태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반도는 퇴적암이 많고 지층이 노출된 곳이 적기 때문에 화석탐사에 어려움이 많지만 집중투자를 해서 탐사만 하면 얼마든지 공룡의 골격화석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일본 후쿠이현에서는 현 정부의 어마어마한 투자를 통해 초식공룡인 조각류의 뼈 화석(후쿠이사우루스)을 발굴했습니다.작은 이빨 화석 하나에서 출발, 산을 모두 들어내는 노력 끝에 이뤄진 것입니다.” 후쿠이현에는 내년 7월쯤 세계 최대 규모의 공룡박물관이 들어선다. 이박사는 “후쿠이사우루스는 같은 호수를 끼고 살았던 한반도의 조각류와같은 종(種)일 확률이 높다”면서 “집중적인 탐사를 하면 우리나라에서도공룡 뼈 화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공룡사를 새로 써야 할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연세대 지질학과에서 고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미 텍사스주 댈러스의 서던메소디스트대학에서 공룡연구의 대가인 루이스 제이콥스 박사(척추고생물학회회장)의 지도를 받으며 척추고생물 연구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세계 최고의 자연사박물관인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객원연구원으로 일했으며 96년귀국한 뒤엔 국제공룡탐사대의 일원으로 고비사막에서 진행된 공룡탐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함혜리기자- 공룡 어떤 동물인가 공룡을 연구하는 유일한 자료는 화석이다.고생물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공룡의 이빨,뼈,알 등의 화석을 통해 공룡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살았는지를 연구한다.150년이 넘게 다양한 발굴과 연구가 진행됐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상상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언제,어디서 살았나? 공룡은 1억6,000만년이라는 기나긴 중생대 기간동안남극대륙을 포함한 지구 곳곳에서 번성했던 육상동물이다.특히 전세계에서한반도는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가장 공룡이 번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가장 오래된 공룡화석은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2억2,800만년전(중생대 트라이아이스기 후반)의 소형 육식공룡 에오랍토르다.이때부터 쥐라기와 백악기를거쳐 6,500만년전 중생대가 끝날 때까지 공룡은 지구촌 생태계를 지배했다. 공룡은 파충류? 초기 공룡 연구자들은 별다른 의심없이 공룡을 멍청하고느리며 차가운 냉혈 파충류로 생각했다.그러나 이후 계속된 연구에 따르며공룡은 파충류로 분류되지만 현존하는 파충류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음이 분명하다.포유류와 조류처럼 다리가 몸통 바로 밑에 있는 직립형으로 효율적으로 걸었으며 집단생활을 했고 체온이 일정하게 조절되는 항온동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무얼 먹고 살았나?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공룡도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이있었다.물론 잡식공룡도 있었을 것이다.체구가 작고 민첩했던 육식공룡은 살아있는 공룡을 잡아먹거나 죽은 공룡의 시체를 먹기도 했다. 왜 지구상에서 멸종했나? 공룡이 지금으로부터 6,500만년전 지구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가장 설득력있는 멸종설은 운석충돌설이다.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알바레즈와 그의아들 월터 알바레즈가 1980년 주창했다.이밖에 화산활동설,기온저하설,해수준 저하설,방사능설,지구자기 역전설,스트레스설 등 다양한 멸종설이 있다. 함혜리기자
  • 전남 지자체, 밀레니엄행사 취소·축소사태

    전남도내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준비중인 ‘새천년 맞이’(밀레리엄)행사가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산 확보와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행사가 벌써부터 취소된곳이 있는가 하면 행사내용도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고려하지 않아 자치단체간에 상당수 중복돼 있다. 18일 전남도에 따르면 22개 시·군 가운데 ‘밀레니엄 행사’를 준비하고있는 자치단체는 목포 여수 해남 구례 강진 등 9개 시·군에 이른다.하지만일부 시·군은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벌써부터 행사 일부를 취소하거나 취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시의 경우 밀레니엄 종 제작(7억원)과 세미나와 다짐대회 등을 여는 ‘2000년 맞이 행사’를 구상하고 지난달 말 의회에 사업비 7억6,000만원을 요청했으나 전액 삭감됐다. 의회측은 “밀레니엄 행사를 추진하는 집행부의 전담 부서 구별이 모호하고 총체적인 계획이 없다”며 “먼저 민간단체 참여를대폭 늘려 여론을 수렴할 것”을 주문했다. 여수시의 해양엑스포 개최기념 영상물제작과 상영,일출제 등을 계획하고 있는 ‘향일암 일출제’도 당초 사업비 4,000만원 가운데 현재 2,000만원만 확보돼 반쪽행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구례군도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리산 해돋이 관광’을 추진했으나 예산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해남군은 땅끝이라는 이점을 살린 ‘새천년 맞이 범국민 소망새기기사업’을 추진하면서 소요예산 123억원을 행사에 참여하는 관광객들의 참가비로 충당할 계획이었으나 국가계획사업으로 확정되지 않을 경우 단일 지자체로서는 수행하기 힘든 행사로 판단되고 있다. 또 행사 내용이 자치단체간에 중복되고 일부 시·군은 수천만원의 예산을들여 시계탑과 종각,통일탑,기념품을 제작하는 등 지역 특색에 걸맞지 않는이벤트를 추진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밀레니엄 행사가 예산과지역 문화와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새천년을 향한 지역민들의 정서에 맞는 내실있는 행사계획과 추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北경비정 南下않고 NLL대치

    서해 교전이 있은지 하루가 지난 16일 북한은 경비정들을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 대기시켰으나 남쪽으로 내려보내지는 않았다.그러나 국방부는북한의 재도발 가능성에 대비,다양한 작전을 마련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않고 있다. 미국은 하와이 주둔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여러 척을 남해에 배치하는등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대폭 증강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관계자에 따르면 공중조기경보기(AWACS)와 전자전기 EA-6,대잠초계기 P-3C 등도 이날 일본 오키나와와 요코스카,하와이,알래스카 등의 미군기지를 출발,17일부터 18일 사이에 한반도에 도착한다. 사정 450∼2,500㎞의 토마호크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급 순양함도 미군기지를 출발,수일 안에 한반도 주변해상에 포진할 예정이다. 코소보 사태로 걸프해역으로 이동했던 키티호크 항공모함도 한반도 긴장이고조됨에 따라 이날 페르시아만을 출발,오는 20일쯤 요코스카항에 도착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은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면 미국 본토의 전력을 추가로 동원하는 방안도 적극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태(趙成台)국방부장관는 이날 북한이 경비정을 NLL 남쪽으로 내려보내거나 서해안의 지상군 및 해·공군 전력을 투입해 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에대비해 대응방안을 수립하라고 전군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공군은 모든 비행단에 출격태세 상태를 유지토록 지시하는 한편초계비행을 하루 평균 40대에서 80대로 2배 늘렸으며 정보수집기 RF기의 비행을 평소 1대에서 2대로 늘렸다.육군은 중북부 방공포부대에 무장대기 명령을 내렸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 24척이 이날 오전 8시쯤부터 북방한계선 북쪽 4∼5㎞ 부근에 몰려와 조업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가운데 10여척은북방한계선상까지 내려왔다가 기상이 악화되자 북쪽으로 물러났다. 합참 관계자는 “오후 3시를 기해 남해서부 및 서해남부 해상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데 이어 오후 4시를 기해 백령도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중부 해상에도 폭풍주의보가 발효돼 소형함정의 출동을 자제하고 있다”면서 “북측도나쁜 기후조건 등으로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상이 좋아지면 또다시 남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인철 주병철 조현석기자 ickim@
  • 검사 263명 人事

    법무부는 14일 서울동부지청장에 김성호(金成浩·사시 16회) 창원지검 차장을 임명하는 등 재경지청장을 비롯,부부장급 이상 검찰 중간간부 263명에 대한 인사를 오는 17일자로 단행했다.전보 261명,신규 임용 2명이다. 서울남부지청장에 박태종(朴泰淙·사시 16회) 대전지검 차장,서울북부지청장에 윤종남(尹鍾南·〃) 서울서부지청 차장,서울서부지청장에 서영제(徐永濟·〃)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의정부지청장에 김재기(金在琪·〃) 대구지검2차장이 기용됐다. 서울지검 1차장에는 임승관(林承寬·사시 17회)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2차장에는 정상명(鄭相明·〃) 목포지청장,3차장에는 임양운(林梁云·〃) 강릉지청장이 발탁됐다. 대검 수사기획관에는 이종왕(李鍾旺·사시 17회) 제주지검 차장,서울고검형사부장에는 김상희(金相喜·사시 16회) 울산지검 차장,공판부장과 송무부장에는 이종백(李鍾伯·사시 17회) 청주지검 차장,김진관(金鎭寬·사시 16회) 성남지청 차장이 각각 임명됐다.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사시 14회와 15회 13명 가운데 사표를 낸 이경재(李炅在) 서울고검 검사와 김승년(金勝年) 서울동부지청 차장 등 2명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은 모두 고검 검사로 발령났다. 서울지검 부장검사는 전원 교체돼 사시 20∼22회가 주력군으로 포진했다.부장검사가 없는 해남지청 등 소규모 지청장 14자리도 모두 사시 25회에서 26회로 교체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北, 南전투선 침투 주장…국방부 “사실무근” 일축

    북한은 남한의 전투함선 3척이 5일 황해남도 강령군 부근의 북측 영해를 침투했다가 인민군 경비정의 추격을 받아 도주했다고 6일 주장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군사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하고 “조선반도의 정세를 인위적으로 긴장시켜 북남대결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기 위한 계획적인도발책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합동참모본부 상황실에서 관련 부대에 사실확인 요청을 한 결과 ‘그런 일은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안다”면서 남한 전투함선 도발 주장을 ‘사실무근’으로 일축했다. 구본영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