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해고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상임위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공개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파출소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099
  • [여기는 호주] ‘조지 플로이드 챌린지’한 명문 사립고 학생들 비난

    [여기는 호주] ‘조지 플로이드 챌린지’한 명문 사립고 학생들 비난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호주 브리즈번에 위치한 한 명문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순간을 재현하는 소위 '조지 플로이드 챌린지'를 한 사진이 공개되어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호주 채널7 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중 하나인 스냅챗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무릎으로 바닥에 놓인 다른 학생의 목을 누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해당 사진에는 "조지 플로이드의 명복을 빌며"라는 문구를 더해 이 사진이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순간을 재현한 사진임을 알리기도 했다. 눈썰미가 좋은 사용자들은 사진 속 학생들이 입은 교복이 퀸즈랜드 주 브리즈번에 위치한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세인트 조셉 컬리지 그레고리 테라스의 교복임을 알아챘다. 이 학교는 1875년에 개교해 145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일년 수업료만 1만 5700 호주달러 (약 1326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SNS 사용자들은 이 사진을 퍼나르며 "너무나 역겹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너무나 끔찍했고 혐오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한 사용자는 "이러한 인종차별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해당 사진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해당 학교 대변인은 "우리 학교 일부 학생들이 게시한 옳지 못한 게시물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으며, 이 사진과 관련하여 느낀 많은 분들의 실망감을 이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의 행동은 우리 학교의 교육 지침과 전혀 무관하며, 우리는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매우 심각하게 다룰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최근 SNS에는 미국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을 재현하는 사진을 올리며 희화화하는 '조지 플로이드 챌린지'라는 놀이 문화가 생겨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0대 청년 3명이 플로이드의 사망 당시 모습을 흉내 낸 사진을 스냅챗에 올렸다가 증오범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미국 워싱턴 주 베델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인 데이브 홀렌벡(44)은 무릎으로 목을 눌리는 자신의 모습을 연출하며 "이 기술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언론들이 경찰관을 물어뜯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이 사건이 인종과 관련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고 올렸다가 교육 방침과 비차별 정책 위반으로 해고당하기도 했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트럼프, 통합하는 척도 않는 대통령”… 전·현직 국방장관도 반기

    “트럼프, 통합하는 척도 않는 대통령”… 전·현직 국방장관도 반기

    매티스 “트럼프, 美 분열시켜” 이례적 비판‘세계의 경찰’ 미군을 이끄는 현직 국방장관도, 정치와는 철저히 거리를 뒀던 최고 엘리트 군 장성도 결국 반기를 들었다. 미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군 동원령까지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강경 행보에 전·현직 국방장관들이 잇달아 날 선 비판을 가하며 행정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3일(현지시간) 브리핑을 자처해 시위 대응에 군이 동원될 가능성에 대해 “법 집행에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며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나는 (군 동원을 위한) 폭동진압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직 국방장관의 공개 항명은 TV를 통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에스퍼 장관의 이날 브리핑은 그가 군 동원령에 얼마나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줬다. ‘예스맨’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기조에 적극 부응했던 그가 이날 작심 발언에 나선 것은 전·현직 장성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를 시사하듯 시위 현장을 ‘전장’이라고 불렀던 그는 “다른 표현을 썼어야 했다”며 사죄했다. 또한 이틀 전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킨 뒤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사진촬영’ 이벤트에 동참한 것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당장 그의 경질설이 불거졌다.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 전 장관의 발언은 더 셌다.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그는 시사매체 애틀랜틱에 쓴 기고문에서 “국민을 통합하려고 노력하지도, 심지어 그런 척도 하지 않는 대통령은 내 평생 처음”이라며 “트럼프는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 성숙한 리더십이 부재한 지난 3년의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민사회에 내재한 강점을 끌어내며 트럼프 대통령 없이도 단결할 수 있다”고 ‘대통령 없는 나라’까지 언급할 정도로 분노를 나타냈다. 대북 강경파로 ‘매드독’(미친개)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매티스 전 장관은 2018년 시리아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가 해임됐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나 뒷얘기 등 정치적 발언을 일절 하지 않으며 철저히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켜 왔던 그가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정규군 투입까지 거론한 트럼프 대통령의 초법적 발상에 심각한 우려를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매티스의 별명 ‘매드독’을 언급하며 “오바마와 나의 공통점은 세계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장군을 해고하는 영광을 누렸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공원에 흑인 여자가 편안히” 뉴욕 사교계 명사 경찰에 신고

    “공원에 흑인 여자가 편안히” 뉴욕 사교계 명사 경찰에 신고

    요즈음 미국에서는 공원에 흑인 여자가 편하게 앉아 있다는 이유로 백인 여성이 경찰에 전화로 신고를 한다. 지난주 글로벌 투자회사에 다니던 백인 여성이 반려견에 목줄을 채우라는 흑인 남성을 경찰에 신고한 일로 직장에서 해고됐다. 이번주는 무고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백인 경관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 살해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데도 뉴욕 사교계의 잘나가는 백인 여성은 공원에 흑인 여자가 앉아 있다는 이유 하나로 경찰에 전화를 여러 차례 걸어 신고했다. 문제의 백인 여성은 인스타그램에서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 엔터테이닝 전문가‘로 칭하는 스비틀라나 플롬이다. 뉴욕의 프랑스 레스토랑 매디슨 비비엔느를 공동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야후 블로그 스캐리 마미(Scarry Mommy)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흑인 여성 @브라운슈가베이비(brownsugarbaby)는 근처에 ‘편하게’ 앉아 햇볕을 즐긴다는 이유로 플롬이 자꾸 뭐라고 하자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며 동영상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었다. 플롬은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와 이것저것 참견을 하다가 오후 6시 15분부터 7시 31분까지 여러 차례 경찰에 전화를 걸어 브라운을 신고했다. 첫 번째 신고는 브라운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했던 것 같고, 세 번째 신고를 통해선 브라운이 자신과 아이를 위협한다고 했다. 한때는 브라운이 “검정 카드(신용카드 중 신용도가 가장 높은 카드)를 잡아당긴다”고 말했고, 어떤 때는 울먹이며 “이건 용납이 안된다”고 경찰에게 얘기했다. 플롬은 또 브라운이 인스타그램 동영상을 삭제하도록 경찰이 채근해야 한다며 이 일이야 말로 백인 경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신 있는 행동이라고까지 말했다. 동영상을 보면 임신한 것 같은 플롬은 911에도 연이어 신고 전화를 했다. 남편은 함께 있다가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이들도 자전거를 타면서 뒤쪽에서 놀고 있었다. 가장 이해가 안되는 장면은 플롬이 “나와 내 아이들을 위협하는” 브라운 바로 건너편에 평온히 앉아 경찰이 오길 기다리는 모습이었다고 브라운은 돌아봤다. 경찰이 도착했지만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할 것이 없었다. 플롬은 야후 블로그 페이지 식스에 문제의 흑인 여성이 “날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이게 만들려고 동영상에 자신의 얘기를 멋대로 끼워넣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운은 “그런 일들이야 말로 당신 스스로 한 모든 일”이라고 맞받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美 흑인 과잉진압 장면 조롱한 철없는 英 10대 청년 체포

    美 흑인 과잉진압 장면 조롱한 철없는 英 10대 청년 체포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이 미 전역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10대 청년들이 이를 조롱하는듯한 사진을 올려 논란이 일고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현지언론은 10대 영국 청년 3명이 플로이드의 사망 당시 모습을 흉내낸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스냅챗에 올렸다가 증오범죄 혐의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각각 18, 19세인 이들 3명은 최근 경찰관의 무릎으로 목을 눌리는 플로이드의 사망 당시 모습을 그대로 흉내낸 사진을 촬영해 SNS에 올렸다. 특히 이들은 충격적인 상황을 연출하며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어 논란을 더했다. 이 게시물은 곧바로 SNS를 통해 확산됐고 이들의 철없는 행동을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노섬브리아 경찰은 "이 게시물이 대중들의 커다란 분노를 일으켜 수사에 착수해 이들을 증오범죄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3명은 체포 이후 모두 보석으로 석방됐으나 신변의 위협을 받고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 워싱턴 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인 바 있다. 워싱턴 주 베델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인 데이브 홀렌벡(44)이 페이스북에 이같은 사진을 올린 것. 특히 홀렌벡은 무릎으로 목을 눌리는 자신의 모습을 연출하며 웃고 있으며 엄지손가락까지 들어올렸다.   홀렌벡은 “이 기술로는 사람이 죽지않는다”면서 “언론들이 경찰관을 물어뜯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적었다. 또한 그는 “이 사건이 인종과 관련있다고 생각치 않는다”면서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깨어나라 미국”이라고 덧붙였다. 이 게시물이 큰 논란이 일자 지역 교육구 측은 홀렌벡의 행동이 교육 방침과 비차별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곧바로 해고조치 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미 검시관 “조지 플로이드, 경찰 압박으로 사망”…‘살인’ 결론

    미 검시관 “조지 플로이드, 경찰 압박으로 사망”…‘살인’ 결론

    미국에서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도중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관들이 몸을 누르고 목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심장이 멎어 사망했다는 검시관의 부검 결과가 나왔다. 1일(현지시간) AP 통신과 CNN 방송에 따르면 미 미네소타주 헤너핀카운티 검시관은 이날 보고서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사인이 “경찰관의 제압과 억압, 목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심폐 기능의 정지”라며 그의 죽음을 ‘살인’으로 분류했다. 미국심장협회는 심폐 기능 정지를 갑작스러운 심장 기능의 상실로 규정하고 있다. 검시관실은 “조지 플로이드에게 동맥경화와 고혈압성 심장질환을 포함한 심장 질환의 징후가 있었으며, 진통제인 펜타닐 중독과 각성제인 메타암페타민을 최근 복용한 흔적이 있었다”면서도 이런 요인들을 사망 원인으로 들지는 않았다. 헤너핀카운티 검시관은 당초 외상에 의한 질식이나 교살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예비 부검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 검시관은 “당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제압된 상황, 기저질환, 그의 몸속에 혹시 있었을지 모를 알코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사망한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날 최종 검시 결과는 경찰관들이 플로이드의 목과 등을 무릎 등으로 찍어누른 행동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진단한 것. 플로이드의 유족들 역시 경찰관들이 플로이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독자적인 부검 결과를 이날 내놨다고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유족의 의뢰로 부검한 전 뉴욕시 검시관 마이클 베이든은 부검 결과 “기저질환은 플로이드의 죽음을 유발하지 않았고 지속적인 압박으로 인한 질식이 사망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플로이드가 이미 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 안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심장 충격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플로이드 유족 측 변호인인 벤저민 크럼프는 “플로이드에게는 구급차가 곧 영구차였다”며 “의심의 여지 없이 해고된 경찰관 데릭 쇼빈이 목에 가한 압박, 또 다른 경찰과 2명이 가한 압박이 없었더라면 오늘 플로이드는 살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플로이드는 지난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 4명의 가혹행위로 숨졌다. 이를 인종차별로 간주한 시민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나오면서 미 전역으로 시위가 번진 상태다. 이 사건에 개입한 경찰관 4명 중 1명만 3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나머지 3명에 대한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건전한 노사관계’ 강연 들은 삼성 사장단

    ‘건전한 노사관계’ 강연 들은 삼성 사장단

    김기남 부회장 등 20여명 강의 경청 문성현 위원장 “경영진이 먼저 변화” 이재용 ‘노동3권 보장’ 약속이행 속도“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더이상 삼성에서는 무조노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지난달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노사관계에 대한 전향적인 변화를 예고한 가운데 1일 삼성 계열사 사장단 20여명이 ‘건전한 노사관계’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내부의 변화 움직임을 강조했다. 삼성은 이날 오후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초청해 사장단을 대상으로 ‘미래지향적 노사관계 형성’에 대한 강연을 열었다고 밝혔다.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열린 강연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전영묵 삼성생명 사장 등 계열사 사장단 20여명이 참석했다. 삼성 사장단이 함께 모여 외부 강사의 강연을 들은 것은 2017년 2월 이후 3년 만이다. 그해 2월 말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이 부회장 재판 등에 따라 사장단 대상 단체 강연도 중단됐다. 이날 문 위원장은 사장단에 삼성 노사관계에 대한 외부의 시각,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위한 제언, 건전한 노사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방향 등을 강의하며 노사관계에 대한 삼성 경영진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특히 문 위원장은 “경영진이 직접 직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먼저 변화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 노사관계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이 부회장이 지난달 대국민 사과에서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에 귀를 기울이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이행하는 후속 조치로 마련됐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지난달 29일 355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던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와 전격 합의한 것도 약속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사례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할머니 영양실조로 병원 입원까지…나눔의 집,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할머니 영양실조로 병원 입원까지…나눔의 집,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매운 음식 못먹는다 말했지만 묵살 ‘식사시간 즐겁다’ 말한 할머니 없어 물 새고 장판 벗겨진 방에 방치 ‘학대’ 운영진이 할머니 찾아간 걸 본 적 없어 운영 문제점 제기했다가 해고 통보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5년간 일한 일본인이 “할머니들이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고 물이 새는 생활관에서 지냈다”고 밝혔다. 2006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무라야마 잇페이(40)는 1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치료와 돌봄에 소홀했던 일들을 털어놨다. 나눔의 집을 떠난 무라야마는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다. 무라야마는 “이옥선(93) 할머니가 2009년과 2010년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고, 다른 할머니들도 밥을 잘 못 드시는 일이 많았다”면서 “이 할머니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늘 말했지만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각 개인의 희망 사항을 반영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차 미국, 일본 등을 방문할 때 오히려 음식을 더 잘 드시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덧붙였다. 무라야마는 또 “나눔의 집은 노인 복지시설임에도 식단표가 없었다”면서 “조리사가 남은 반찬의 양을 보고 아침에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는 방식으로 식단이 결정됐다. ‘식사 시간이 즐겁다’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한 분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거 환경도 열악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2010년 10월 보일러 고장으로 생활관 내 할머니들 방에 물이 쏟아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수요집회’를 다녀온 박옥선(96)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장판이 벗겨진 방, 즉 콘크리트 바닥이 그대로 노출된 방에서 지냈다”며 “박 할머니는 당시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방 안에서 불안한 얼굴로 혼자 계셨다. 그런 방에 할머니를 지내게 하는 것이 학대로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생활관은 비가 오면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일이 빈번했다”면서 “그렇다 보니 배춘희(2014년 별세·91)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무섭다’며 계단(할머니들 방은 1층, 식당은 2층에 위치)으로 오르내리셨다”고 전했다. 무라야마는 시설 운영진이 평소 할머니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관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할머니가 직원들을 부를 때도 당시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은 계속 사무실에만 있었다”며 “운영진이 할머니 방으로 찾아가 이야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할머니들을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는 2010년쯤부터 시설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고, 운영진과의 갈등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2010년 12월 해고 통보를 받았고, 이듬해 3월 나눔의 집을 떠났다. 그동안 나눔의 집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무라야마는 “조계종(나눔의 집 법인 이사회) 스님들이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를 운영진한테만 맡겨 버리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미국의 심장’ 뒤덮은 최루탄…분노한 시위대, 백악관 집결

    ‘미국의 심장’ 뒤덮은 최루탄…분노한 시위대, 백악관 집결

    워싱턴DC 야간통행금지령에 시위 격화 백악관, 9·11 이후 최고 수위 ‘적색경보’방화와 최루탄 연기로 얼룩진 ‘미국의 심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워싱턴DC의 백악관 앞에서 31일(현지시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밤 12시를 넘어서까지 진행되며 미국 내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워싱턴DC에서는 밤늦게 1000여명의 인원이 백악관 ‘턱밑’까지 접근해 분노를 표출했다. 워싱턴DC는 앞서 이날 오후 11시부터 월요일 오전 6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발령하고 1700여명의 주방위군 인력 전원을 시위 대응에 투입했지만, 시위대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최대 수천명이 모이며 주말 사이 계속된 워싱턴DC의 시위는 흑인 사망에 대한 분노를 넘어 반(反)트럼프 여론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음을 의미했다. 시위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권위를 부정하듯 성조기를 불태웠고, 도시 건물 벽면에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낙서를 갈겨쓰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식에 앞서 방문하는 전통을 가져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세인트존스교회와 백악관 앞 라파예트광장, 워싱턴 기념비 등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장소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백악관은 신변 위협을 우려해 직원들에게 백악관 출입증을 숨기고 다니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CNN은 전했다. 지난달 25일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엿새째 계속된 시위는 주말 사이 140개 도시로 번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체포된 시위대는 4100여명으로 급증했고 사망자도 최소 5명으로 늘었다. 40여개 도시는 야간통행금지령을 발동했고 워싱턴DC와 캘리포니아주 등 15개 주는 방위군을 소집했다. 전국 시위 현장에 투입된 군 병력은 모두 5000명으로, 2000명이 추가로 배치될 수 있다고 방위군은 밝혔다. 대부분 도시에서는 당초 이날 낮까지만 해도 평화적으로 시위가 진행됐지만 당국이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리고 해산을 시도하자 오히려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수천명의 시민이 시내를 행진하며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보스턴의 시위에서는 밤 9시쯤부터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며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경찰들을 향해 벽돌과 유리병 등을 던졌고,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 등으로 대응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도 통행금지가 실시된 후 경찰이 시민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최루탄을 발사하며 도심이 아수라장이 됐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경찰관 두 명이 전날 전기충격기로 흑인 대학생들을 과잉 진압한 사실이 드러나 해고됐다.뉴욕에서도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 수천명이 모여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의 딸이 전날 시위에 동참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일부 경찰관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제스처인 한쪽 무릎꿇기로 시위대에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마음을 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시위는 확산일로를 거듭하고 있지만, 민심을 안정시킬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NYT는 지난달 29일 밤 시위대가 백악관으로 모여들자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아들 배런이 지하 벙커로 불리는 긴급상황실(EOC)로 1시간가량 피신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한 것으로, 시위 확산에 대해 백악관이 느낀 위기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는 말이 나왔다. 백악관은 시위대가 결집하자 적색경보를 발령했는데, 이는 9·11 테러 이후 백악관이 발령한 최고 수위 경보였다. 참모들 사이에서도 대국민 연설 등을 통해 민심을 다독여야 한다는 주장과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며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놓고 갈피를 못 잡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의 자극적 트윗은 불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미 대통령을 의미하는 ‘최고사령관’(commander in chief)을 풍자한 ‘최고분열자’(divider in chief)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하며 “(시위대에) 자제를 호소하지도 (국민에게) 단결을 호소하지도 않고, 흑인들의 분노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나눔의 집 운영진, 할머니들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나눔의 집 운영진, 할머니들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약 5년 동안 일한 일본인이 “할머니들이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고 물이 새는 생활관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2006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무라야마 잇페이(40)씨는 1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치료와 돌봄에 소홀했던 일들을 털어놨다. 나눔의 집을 떠난 무라야마씨는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다. 무라야마씨는 “이옥선(93) 할머니가 2009년과 2010년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고, 다른 할머니들도 밥을 잘 못 드시는 일이 많았다”면서 “이 할머니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늘 말을 했지만 나눔의 집 시설이 할머니 각 개인의 희망사항을 반영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차 미국, 일본 등을 방문할 때 오히려 음식을 더 잘 드시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덧붙였다. 무라야마씨는 또 “나눔의 집은 노인 복지시설임에도 식단표가 없었다”면서 “조리사가 남은 반찬의 양을 보고 아침에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는 방식으로 식단이 결정됐다. ‘식사 시간이 즐겁다’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한 분도 없었다”고 말했다.주거 환경도 열악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2010년 10월 보일러 고장으로 생활관 내 할머니들 방에 물이 쏟아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수요집회’를 다녀온 박옥선(96)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장판이 벗겨진 방, 즉 콘크리트 바닥이 그대로 노출된 방에서 지냈다”면서 “박 할머니는 당시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방 안에서 불안한 얼굴로 혼자 계셨다. 그런 방에 할머니를 지내게 하는 것이 학대로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생활관은 비가 오면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일이 빈번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배춘희 할머니(2014년 별세·91)는 다리가 아파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무섭다’며 계단(할머니들 방은 1층, 식당은 2층에 위치)으로 오르내리셨다”고 전했다. 무라야마씨는 시설 운영진이 평소 할머니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관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할머니가 직원들을 부를 때도 당시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은 계속 사무실에만 있었다”면서 “운영진들이 할머니 방을 찾아가 이야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할머니들을 관리 대상으로만 대했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씨는 2010년쯤부터 시설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고, 운영진과의 갈등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2010년 12월 해고 통보를 받았고, 이듬해 3월 나눔의 집을 떠났다. 그동안 나눔의 집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무라야마씨는 “조계종 스님들(나눔의 집 법인 이사회)이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를 운영진한테만 맡겨버리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흑인 숨지게 한 백인 경찰의 이혼 요구 부인은 라오스 난민 출신 

    흑인 숨지게 한 백인 경찰의 이혼 요구 부인은 라오스 난민 출신 

    미국 흑인 사망사건으로 수감된 백인경찰이 라오스 난민 출신 여성과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은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흑인 시민을 죽게 한 백인경찰 데릭 쇼빈과 관련해 가짜뉴스가 나돈다고 지적하면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백인경찰 데릭 쇼빈은 지난달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를 과잉진압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수감된 이후 아내 켈리 쇼빈은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맡은 아내 측 변호사는 “플로이드 사망으로 켈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라오스 몽족 난민 출신인 켈리가 이번 사건으로 근거 없는 소문과 억측,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 진압 당시 남편인 데릭 쇼빈과 현장에 있었던 몽족계 경찰 토우 타오가 켈리의 남자형제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켈리의 변호인은 “켈리의 남동생이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경찰인 것은 맞지만 이번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몽족계 경찰과 몽족계 아내를 둔 백인경찰이 흑인을 과잉진압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에 현지인들은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몽족은 베트남과 라오스, 중국 위난성 산악지대에서 2000년 넘게 터를 잡고 산 인구 400만~500만의 소수민족으로, 베트남 전쟁 때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공산권 남하를 막으려는 미국의 이용을 당하던 몽족은 종전 후 보복의 대상이 됐다. 베트남군과 라오스군 손에 목숨을 잃은 사람만 10만 명 이상며, 30만 명이 넘는 난민은 인근 태국 난민수용소로 이주했다. 미국의 외면 속에 비밀부대 출신 남성 등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몽족 난민이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는 80년 난민법이 제정될 때까지 10년이 더 걸렸다. 데릭 쇼빈의 아내 켈리 쇼빈도 이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1974년 라오스에서 태어난 켈리는 1977년 태국 난민수용소로 이주했다가 80년 난민법 제정 이후 미국 위스콘신주로 망명했다. 모두가 몽족 수용을 거부할 때 그나마 인구가 적은 위스콘신주와 미네소타주가 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몽족 때문에 일자리와 복지혜택이 줄었다는 현지인의 차별과 멸시를 견뎌야 했다. 2018년 몽족 여성 최초로 미인대회 ‘미세스 미네소타’ 우승자가 된 그녀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의 땅이라고들 했지만 나와 우리 가족은 늘 울타리에 갇혀 살았다.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상륙해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고 밝힌 바 있다.17살 첫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두명의 아이를 낳은 켈리는 10년 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미네소타로 이주해 데릭 쇼빈을 만났다. 데릭에 대해서는 “유니폼 아래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는 남자”라며 “정말 신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수민족 난민 출신의 아내를 둔 데릭은 흑인 용의자에게는 부드럽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조지 플로이드를 진압하면서 무릎으로 9분여간 목을 눌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숨을 못 쉬겠다”는 절규도 소용 없었다. 결국 플로이드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데릭은 3급 살인과 우발적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가 플로이드를 놓아주라는 시민들을 제지한 몽족계 경찰 토우 타오는 다른 경찰과 함께 해고됐다. 타오는 2017년 다른 흑인 시민을 과잉진압했다가 고소를 당한 이력도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당시 라마르 퍼거슨이라는 흑인 남성은 여자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다 타오와 다른 경찰들의 검문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폭행을 당해 소송을 제기했다. 타오와 동료 경찰들은 고소인에게 2만5000달러의 합의금을 주고 소송을 매듭지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쌍용자동차 마지막 복직 대상자 35명이 지난 4일 일터로 돌아갔다. 2009년 쌍용차가 2646명을 구조조정한 지 10년 11개월 만이다. 이들은 두 달 교육을 거쳐 7월 1일부터 현장에 배치된다. 길고 지난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복직 투쟁은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14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5월에 복직한 조문경(57), 김성국(52), 이민영(44)씨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복직자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현장에 적응하려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2년 쌍용차에 입사한 이씨는 “빨리 현장에 돌아가 차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차량 정비사로 일하다 1994년 입사한 조씨는 “처음 회사 들어갔을 때는 주어진 일을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항상 있었는데 현장을 11년 동안 떠나 있었으니, 작업 속도나 과정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좀 두렵다”고 말했다. 복직 노동자 교육을 맡은 강사가 이들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였다. 건설 현장 일용직이나 자영업으로 입에 풀칠하느라 바빴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11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씨는 “충남 천안, 경기 안성 등에서 노가다(막일) 현장도 뛰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도 했다”면서 “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할 때도 있었는데 잠을 재워 주고 4대보험도 나와서 좋았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일하느라 전국에서 제주 빼고는 다 가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낙인 탓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라는 타이틀은 주홍글씨처럼 이들을 따라다녔다.조씨는 “쌍용차에 다녔다는 이력을 알고 나면 그만두라고 하더라. 그러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출금을 갚기도 막막했다. 적금이나 애들 앞으로 들어 둔 얼마 안 되는 보험까지 모조리 해약했다”고 회상했다. 2009년 4월 8일 회사가 인력 감축을 발표할 때만 해도 해고는 실감나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전체 인원(7130명)의 36%인 2646명이 쫓겨날 것이라는 얘기가 돌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 아니면 내가 해고”될 판이었다. 어느 날 해고를 알리는 ‘노란 봉투’가 날아왔다. 조씨는 “사장이 주는 상도 받고 성실히 일했는데, 나까지 잘리진 않겠지 생각했었다”면서 “상 받은 사람들도 한꺼번에 잘렸다”고 말했다. 이씨도 해고 통지를 받자마자 “‘내가 왜 대상이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함께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의 동생은 “형 거야”라면서 노란 봉투를 건넸다. 그의 동생 역시 일자리를 잃었다.날벼락 같은, 납득할 수 없는 해고를 통보받은 1000여명의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에서 77일간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보다는 물리적인 충돌만 부각됐다”고 기억했다. 당시 시위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크레인을 타고 공장 옥상에 진입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렀고 수십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은 유독성 최루액과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와 헬기까지 동원하는 등 전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경찰이 쌍용차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50명의 ‘인터넷 대응팀’을 운영하고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의 반대에도 직접 청와대 고용노동 담당 비서관에게 전화해 공장 진입을 승인받은 사실 등은 2018년에야 밝혀진 사실이다.해고 노동자들은 경찰의 강제 진압이 남긴 트라우마와 싸워야 했다. 조씨는 경찰에 두들겨 맞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여러 번 봤다. 그는 “세어 보니까 27대를 맞았다. 원 없이 맞았다”면서 “뒤쪽으로 끌려가서 니킥으로 가슴을 맞기도 했다”고 했다. 이씨는 “첫날에는 정신이 없으니 아픈 줄 몰랐는데, 다음날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고 했다. 김씨는 위독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파업 현장에서 일찍 나왔지만, 헬기 진압 장면을 목격한 뒤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집에서 공장이 보이는데 헬기 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면서 “유서를 쓸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와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승섭 교수팀의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50.5%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걸프전에서 포로로 잡혔던 미군(48.0%)보다 높은 비율이다. 2018년 발표된 쌍용차 해고자 배우자 실태조사에서는 해고자 배우자(28명)의 절반인 12명(48.0%)가 ‘지난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과 사회적 지지의 단절 속에서 해고자는 모든 부담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감내했다”면서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 입안자의 책무이자 역할”이라고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정부 고용센터로부터 구직 과정에서 실질적 도움을 받은 경우는 9.1%에 불과했고, 60%는 친구나 지인,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경찰은 2019년 강제 진압과 관련해 노조에 사과했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새총으로 쏜 너트와 볼트에 기중기·헬기 등이 파손됐다며 해고 노동자와 노조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은 “폭력 진압에 대한 사과는 받았지만 지연 이자를 포함해 100억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같이 처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면서 “2016년 (경찰의 손을 들어 준) 2심 판결이 내려진 뒤에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만큼 대법에서 빠르게 파기 환송을 해 법리를 다퉈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70m 높이 굴뚝에서 89일간 머물고, 두 팔꿈치, 양 무릎, 이마까지 바닥에 대는 오체투지 행진도 했다. 노력 끝에 2016년 18명을 시작으로 2017년 19명, 2018년 79명이 복직했다. 2020년 복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47명까지 163명(12명 휴직)이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정년을 넘겨 회사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있다.복직을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김씨는 명예회복을 꼽았다. 201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차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9개월 뒤 ‘양승태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김씨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4, 5년쯤 지나니까 ‘그만하자’고 했다. 내가 옳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면서 “옛날처럼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면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회사를 사랑해서 마지막까지 좋은 차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더라”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일하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가족들과 평택에서 자리 잡고 지내고 싶었다”고 했다. 쌍용차의 존속은 안갯속이지만, 복직자들은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도로를 누비던 차를 떠올렸다. 김씨는 평생 무쏘의 거북등(차체)을 만들었다. 2002년 뉴렉스턴 조립 라인에서 일을 시작한 이씨는 차도 뉴렉스턴만 몰았다. 품질관리(QC)와 조립 라인에서 일했던 조씨는 동료들 이야기를 듣더니 쌍용차 대표 모델의 역사를 줄줄이 읊었다. “2001년 렉스턴이 처음 양산될 때는 대한민국 상위 1% 차였죠. 저는 뉴 훼미리를 팔 때쯤 입사했는데, 무쏘가 히트를 칠 때는 품질 관리에서 일했습니다. 그다음에 체어맨이 나왔는데….” 글 사진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美 흑인 과잉진압 장면 흉내낸 고교 레슬링 코치 논란

    美 흑인 과잉진압 장면 흉내낸 고교 레슬링 코치 논란

    비무장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사건으로 미국 내에서 큰 파문이 일고있는 가운데 한 교등학교 레슬링 코치가 이를 조롱하는듯한 사진을 올려 논란이 일고있다. 30일(현지시간) N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워싱턴 주 베델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인 데이브 홀렌벡(44)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문제로 해고됐다고 보도했다. 홀렌벡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된 사진에는 누군가의 무릎으로 목을 눌리는 본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홀렌벡은 이 상황에서 웃고있으며 엄지손가락까지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만 봐도 비난을 받을만한 부적절한 사진이지만 게시글 역시 논란이 됐다. 홀렌벡은 "이 기술로는 사람이 죽지않는다"면서 "언론들이 경찰관을 물어뜯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적었다. 또한 그는 "이 사건이 인종과 관련있다고 생각치 않는다"면서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깨어나라 미국"이라고 덧붙였다. 이 게시물은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됐고 곧바로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지역 교육구 대변인 더글라스 보일스는 "홀렌벡의 행동은 교육 방침과 비차별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곧바로 해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홀렌벡은 레슬링 경력 20년 차로 고등학교 1학년 코치로 활동해왔다. 그는 "단지 이 기술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려는 행동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미 전역을 폭력 사태로 몰아넣고 있는 이번 시위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사망하면서 촉발됐다. 지난 25일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비무장 상태였던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숨지게 했다. 이후 해당 백인 경찰은 3급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으나 시위는 미니애폴리스를 넘어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마이너리거 엇갈린 처우 빈부 격차 드러나는 MLB

    마이너리거 엇갈린 처우 빈부 격차 드러나는 MLB

    일부 구단들 마이너리거 주급 6월 연장 발표빈부격차 드러나 몇몇 구단은 중단·감축 지급일시적 양극화 미래 전력에도 영향 끼칠 수도코로나19로 구단 재정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빈부격차가 더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마이너리거 선수들이 대거 해고되는 가운데 몇몇 구단은 산하 마이너리거들에게 주급을 연장 지급하기로 한 반면 일부 구단은 마이너리거에게 주급을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미국 NBC스포츠는 29일(한국시간) LA 다저스가 구단 소속 마이너리거들에게 6월 말까지 주당 400달러의 급여를 계속 지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400달러는 스프링캠프 일당과 동일한 금액으로 각 구단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5월 31일까지 마이너리거들에게 매주 400달러를 주기로 약속했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최소 10개 구단이 마이너리거들에게 주급 지급을 연장한다고 보도했다. 샌드에이고 파드리스와 마이애미 말린스, 시애틀 매리너스는 아예 8월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이에 앞서 2000년대 초반 가난한 구단의 생존 전략을 펼친 ‘머니볼’의 오클랜드 어슬래틱스 구단은 6월부터는 마이너리거들에게 급여 지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도 6월까지는 지급할 계획이지만 액수 삭감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로 개막이 미뤄진 데다 단축 시즌이 불가피해지면서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입장 수입, 중계권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직원 감축에 나선 구단들도 있다. 마이너리그 팜은 구단의 미래와 직결돼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향후 구단들의 성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스몰마켓일팀일수록 선수 육성이 중요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미래에 대한 투자마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시적인 양극화가 메이저리그의 미래에도 양극화로 벌어질 수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삼성, 355일 만에 끝난 철탑농성 사과…“조속히 해결하지 못했다”

    삼성, 355일 만에 끝난 철탑농성 사과…“조속히 해결하지 못했다”

    삼성 “뒤늦게나마 해결된 것 다행” 삼성이 355일 만에 끝난 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의 철탑 고공농성에 대해 사과했다. 삼성은 29일 입장문을 내고 “김씨의 농성 문제가 양측 합의에 의해 지난 28일 최종 타결됐다”면서 “회사는 김씨에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김씨 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회사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인도적 차원에서 대화를 지속했다”면서 “뒤늦게나마 안타까운 상황이 해결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도움을 준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또 “김용희씨의 건강이 하루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 보다 겸허한 자세로 사회와 소통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도 “합의과정에 직접 관여하신 분들뿐 아니라 보이지않는 곳에서 합의 성사를 위해 애쓰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해고자고공농성공대위에 따르면 공대위와 삼성 측은 전날 오후 6시쯤 서울 모처에서 만나 공식적인 사과와 명예회복, 명예복직, 실질적 보상 등 요구안 전부에 대해 합의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지 355일 만에 시위를 중단하게 됐다. 1982년부터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사과와 명예복직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24년 넘게 투쟁을 이어오던 김씨는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정년을 맞았을 지난해 7월 10일을 한 달 앞두고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인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가 시위에 돌입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지형 삼성 준법위원장 “김용희씨 합의 성사 애쓰신 분들께 감사”

    김지형 삼성 준법위원장 “김용희씨 합의 성사 애쓰신 분들께 감사”

    삼성-김용희씨 전격 합의 높게 평가한 삼성 준법감시위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가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중단한다는 소식과 관련해 “합의과정에 직접 관여하신 분들뿐 아니라 보이지않는 곳에서 합의 성사를 위해 애쓰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강남역사거리 CC(폐쇄회로)TV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해온 김씨가 삼성과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같이 말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 대국민사과를 한 지 한달도 안 돼 김씨의 농성 문제가 해결되자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다. 대국민사과 당시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가 주요 의제로 꼽은 경영권 승계, 노조문제, 시민단체 소통, 준법 감시 등에 대에 ‘무노조 경영영을 종식하고 준법감시위의 독립적 활동 지속’을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도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답변 발표가 직접 이뤄지고 준법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에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면서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 가능한 경영 체계 수립, 노동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실질적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 방안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해고자고공농성공대위에 따르면 공대위와 삼성 측은 전날 오후 6시쯤 서울 모처에서 만나 공식적인 사과와 명예회복, 명예복직, 실질적 보상 등 요구안 전부에 대해 합의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지 355일 만에 시위를 중단하게 됐다. 1982년부터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사과와 명예복직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24년 넘게 투쟁을 이어오던 김씨는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정년을 맞았을 지난해 7월 10일을 한 달 앞두고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인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가 시위에 돌입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355일만에 철탑에서 내려온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355일만에 철탑에서 내려온다

    서울 강남역 철탑 위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355일째 농성 중인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가 고공농성을 중단하기로 ?다.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공대위 대표인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삼성과 합의문을 작성했고 오늘 오후 6시 강남역 2번 출구 철탑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며 “지지, 연대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1982년부터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사과와 명예복직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24년 넘게 투쟁을 이어오던 김씨는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정년을 맞았을 지난해 7월 10일을 한 달 앞두고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인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갔다. 그는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세 차례 단식 농성을 병행하기도 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靑 “문 대통령, 고용 유연성 강화 동의한 적 없어”

    靑 “문 대통령, 고용 유연성 강화 동의한 적 없어”

    “고용 유연성 강화는 해고 쉽게 하는 것”“주 원내대표 얘기만 들은 것…동의 안해”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수석은 이날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나와 “고용 유연성 강화는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것으로, 위기 극복과는 관련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브리핑에서 ‘고용유연성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에 문 대통령이 동의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윤 수석은 “문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의 얘기를 들은 것일 뿐 동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윤 수석은 “주 원내대표가 얘기할 때 문 대통령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 원내대표로서는 오해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주 원내대표는 전날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고용보험만 확장되고 고용 유연성이 확대되지 않으면 리쇼어링도 불가능하고 기업의 활성화도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윤도한 靑 소통수석 “윤미향 거취, 대통령이 관여할 부분 아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비리 의혹과 거취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수석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일부 언론은) 청와대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지만, 윤 당선인이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될 때 청와대가 개입한 바 없다“며 이같이 선을 그었다. 윤 수석은 “윤 당선인을 당시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할 때 청와대는 개입한 적이 없다. 민주당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발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정구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교체를 두고 ‘청와대로 불똥이 튀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보도한 데 대해서는 ”악의적 왜곡 보도“라며 “정정보도 청구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집중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전혀 관심없던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진짜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있어 보도하는 건지, 정부와 청와대,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 그런 보도를 하는 건지 독자나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윤 당선인 문제가 논의됐느냐는 물음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얘기만 오갔고 윤 당선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날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브리핑에서 ‘고용유연성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에 문 대통령이 동의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윤 수석은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의 얘기를 들은 것일 뿐 동의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윤 수석은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 역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유연성 강화는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것으로, 위기 극복과는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윤 수석은 “주 원내대표가 얘기할 때 문 대통령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 원내대표로서는 오해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주 원내대표가 제안한 정무장관 신설에 관해서는 “회동 이후 검토에 들어간 정도”라고 전했다.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함께 패키지로 갈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신설한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타다 운전기사는 근로자” 중앙노동위, 서울노동위 판정 뒤집어

    “타다 운전기사는 근로자” 중앙노동위, 서울노동위 판정 뒤집어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의 운전기사를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행정심판 결과가 나왔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앙노동위는 28일 타다 운전기사로 일한 A씨가 타다의 모회사 ‘쏘카’와 운영사 VCNC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인용했다. A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하고, 그의 일자리 상실을 부당해고로 본 것이다. A씨는 지난해 타다의 감차 조치로 일자리를 잃게 되자 자신이 사실상 근로자의 지위였다고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서울지방노동위는 지난해 말 A씨를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정했다. 중앙노동위가 이같은 판정을 이날 뒤집은 것이다. 그 동안 타다 운전기사는 개인 사업자인 프리랜서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못 받아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해고와 근로시간 제한, 각종 수당 지급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이에 따라 일부 타다 운전기사들은 타다 측으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근거로 자신들이 사실상 근로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중앙노동위 판정이 다른 타다 운전기사들에게 확대 적용되진 않는다. A씨 한 명에 대한 판정이고, 타다 운전기사들 사이에도 근로 조건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타다 운전기사의 근로자성은 최종적으로는 사법부 판단에 따라 결론이 날 전망이다. 타다 운전기사 20여명은 이달 초 쏘카와 VCNC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사법부의 결론은 타다 운전기사와 같이 스마트폰 앱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 전반의 근로자성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향방이 주목된다. 타다는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여객운수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핵심 서비스였던 ‘타다 베이직’을 지난달 중단했다. 이에 따라 약 1만 2000명의 타다 운전기사가 일자리를 잃게 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39년 전 고문 트라우마 극복… 민주주의 기념 공간 ‘문지기’ 꿈 이뤄”

    “39년 전 고문 트라우마 극복… 민주주의 기념 공간 ‘문지기’ 꿈 이뤄”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박록삼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1976년 지어진 치안본부(현 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졌던 공간이다.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의 죽음은 지독한 비극이었다. 그 비극으로 한국 현대사의 물꼬는 새로 트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1976년 작품이다. 김수근은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꼽히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보면 일제와 독재정권에 부역한 시인 서정주(1915~2000)나, 나치 당원으로 활동했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연상된다. 지난 26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남영역 바로 곁에 있어 전철을 타면 늘 무심히 지나치는 곳이다. 대공분실 건물 곳곳에서 실용적 목적과 예술적 감성이 접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육중한 철문을 지나면 무표정한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7층 건물(김수근 건축 당시에는 5층)이 나오고 그 뒤편에 부드러운 곡선을 활용해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 만든 뒷문이 있다. 거기에서 시작된 나선형 계단은 2~4층을 거치지 않은 채 5층만을 연결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 작품 층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이 규칙적으로 빙글빙글 돌며 오르게 했다. 중세의 원형 감옥을 떠올리게 한다. 유신 시절은 중세 못지않은 야만의 시대였다. 눈이 가려진 채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끌려온 이들에게 세상의 끝에 홀로 내몰린 듯한 극도의 공포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5층에 있는 15곳의 취조실(고문실) 역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지그재그로 만들어졌다. 5층의 창문 또한 나머지 층과 다르게 좁게 만들어졌다. 자살 방지 목적이었다. 취조실 문을 열어 놓아도 다른 방에서 고문받는 또 다른 동료와 눈빛조차 나눌 수 없도록 절묘히 만들어졌다. 또한 15개 모두 똑같은 고문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방들이지만 크기와 구조, 색깔을 각기 달리했다. 예술가로서 김수근은 개성 없음과 단조로움은 용납할 수 없었으리라. 그 실용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무고한 간첩’들이 만들어졌고, 누군가는 주검으로 실려 나가 의문사로 처리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수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나기 한 해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속죄의 기회도, 변명의 시간도 갖지 못했으니 영원한 논란의 대상으로만 남게 됐다.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진 공간. 그곳에서 많은 이들은 세상에 신이 없음을 원망하며 비명을 내질렀고, 살이 찢기고 뼈가 비틀리며 피범벅이 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한 채 짐승처럼 바닥을 기어야 했다.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정식 개관 유동우(71)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유씨는 이곳의 ‘보안관리소장’이다. 유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공간을 둘러봤다. 2018년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경찰청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와 건물을 넘겨받았고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민주인권기념관은 2022년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그냥 직함이 그렇고, 그냥 문지기입니다. 백범 선생이 독립된 정부의 문지기를 하고 싶다 하셨잖아요? 저는 한국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공간의 문지기가 됐으니 백범 선생의 꿈을 대신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는 1980년대 노동자 기록문학의 고전인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작가다. 노동운동, 학생운동 하는 이들의 필독서였고, 금서 목록에 들어 있었다. 또한 그는 1980년대 한국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핵심 활동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 현장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온몸으로 접하고 스스로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깨쳤다. 이른바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의 도움 없이 홀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을 공부했다. 이어 인천의 삼원섬유에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당연히 해고됐고 구속됐다. 1980년 5월 결성된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의 핵심 지도부인 중앙위원으로서 전국을 돌며 노동자를 교육하고 조직화시켰다. 그는 1981년 8월 예비군 훈련을 받다 남영동으로 끌려왔다. 전두환 신군부는 전민노련과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등 처음 전국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진행된 노학연대 조직에 용공을 덮어 씌워 와해하고자 했다. 이른바 ‘학림사건’이다. 유 소장은 자신이 끌려왔던 5층 10호실로 데리고 들어가 39년 전 처참했던 기억을 생생히, 하지만 덤덤히 떠올렸다. “벽과 천장 모두 짙은 붉은색으로 칠해진 방이었는데 팬티만 남기고 옷을 다 벗기더라고요. 그리고 풍채 좋고 잘생긴 사람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너 공산주의자지?’라고 묻고 ‘아니다’라고 했더니 다시 ‘그럼 사회주의자야?’라고 묻더라고요. 역시 ‘아니다’라고 하자마자 주먹과 발이 마구 날아왔습니다.” 조사관들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유 소장은 한참 뒤에야 그가 누군지 알게 됐다. 일제 고등계 형사로 ‘고문왕’이었던 노덕술의 부하였으며,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상사였고, 훗날 김근태 고문, 박종철 고문치사까지 모두 깊숙이 개입한 박처원 전 치안감이었다. 그때부터 유 소장에게 시작된 집단구타, 물고문 등은 꼬박 37일 동안 이어졌다. 광주의 피 위에서 집권한 신군부에게는 ‘용공 반국가단체 사건’이 필요했다. 갈비뼈 세 대와 치아 네 개가 부러졌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온통 피멍이 들고 퉁퉁 부었다. 경찰병원 응급실로 세 번이나 이송돼야 할 정도였다. 유 소장은 “자살하기 위해 창에 머리를 밀어넣어 봤지만 15㎝쯤 되는 좁은 창폭으로 몸이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욕조 옆 콘크리트에 머리를 두어 차례 찍어 피가 줄줄 흘렀지만 죽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꺼운 철문 밑을 가리키며 “빨갱이가 되길 원하면 빨갱이가 돼야 했고, 국가 전복 음모를 원하면 그렇게 돼야만 이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아니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용공 조작을 시인하면 무조건 사형당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아내와 당시 갓 한 돌 지난 딸,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며 굴복하지 않았죠. 저들의 의도대로 자백하는 건 동료들에게도 또한 못할 짓이라 판단했죠. 물론 끝내는 항복했지만요.” 고문 후유증은 컸다. 전민노련 사건 구속 이후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노동계 상임공동대표로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지만, 87년 13대 대선 때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구로구청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과 가슴속에 깊숙하게 새겨진 폭력의 트라우마는 곪고 곪아 결국 터지고 말았다. “집에 혼자 있으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일이 많아졌고, 자꾸 총 들고 누가 잡으러 올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 집을 나가야만 했습니다. 노숙도 하고, 구걸도 하다 뒤늦게 연락받은 가족들이 찾아와서 데려가는 생활이 10년 가까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2012년 재심 전민노련사건 무죄 판결 국가가 개인에 남긴 폭력은 깊고 뚜렷했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소장 이화영)의 도움을 받아 집단심리상담을 받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좀더 정확히 깨달았다. 허리, 머리, 다리 등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국가폭력의 흔적에 대한 치료는 물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공포의 정체 또한 분명히 알게 됐다. 2012년 재심을 통해 전민노련 사건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힘겨웠지만 고문 후유증 또한 극복해 냈다. 자신의 책 제목처럼 단단한 돌멩이처럼 옛 노동운동가로서의 정연한 논리와 기억력 또한 완전히 복원됐다. 당시 정치 조직 사이 운동 방향을 둘러싼 갈등 및 이론 논쟁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40여년 전 책이 이달 초 다시 복간됐다. 많이 팔릴 것 같으냐는 물음에 그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채 다시 책을 냈는데,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부끄럽기만 하다. 누가 보겠느냐”고 짐짓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 이후 활동을 통해 직접 겪고 느꼈던 부분을 다시 책으로 써내면 어떻겠냐고 묻자 이번에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저야 지금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지만, 당시 민주화운동 내부에서 있었던 미세하거나 분명한 차이가 지금도 현실 정치 등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한 걸음이나마 진전하도록 하기 위해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지만, 민주화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복판을 살아온 유 소장의 ‘또 다른 외침’이 기대된다. youngta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