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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경절 아닌 전승절 첫 열병식… ‘대국굴기’ 노린 시진핑 야심작

    국경절 아닌 전승절 첫 열병식… ‘대국굴기’ 노린 시진핑 야심작

    중국이 새달 3일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개최하는 ‘항일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 열병식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중 치러지는 가장 성대한 국가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열병식 블루(푸른 하늘)’를 연출하기 위해 20일부터 베이징시에서는 차량 홀짝제가 시작됐고, 오는 28일부터는 베이징 인근 7개 성에 있는 오염물질 배출 공장 1만 2255개가 가동을 멈춘다. 신중국 건국이 선포된 1949년 10월 1일 열린 개국 열병식 이후 이번 열병식 전까지 중국은 14차례에 걸쳐 국경절(10월 1일)에 열병식을 거행했다. 국경절이 아닌 전승절에 치러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을 물리친 중국이 마침내 세계 중심 국가로 우뚝 섰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시 주석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은 국내 행사에 머무른 기존 열병식과 달리 해외 각국 지도자와 군대까지 초청했다. 열병식에서는 시 주석이 강조해 온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섬)와 ‘군사굴기’의 위용이 유감없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중국이 야심 차게 개발해 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31B와 둥펑41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신형 전략폭격기 훙6와 젠10, 전투기 젠11B, 공중조기경보기 쿵징2000, 최신 헬기 즈11, 최신 장갑차 99A 등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장 직선도로인 장안대가(長安大街)를 행진하는 병력은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군인들도 행진에 참가한다. 열병식은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펼쳐진다. 시 주석은 성루에서 사열한 뒤 기념 연설을 한다. 전승기념일 특성을 살려 항일전쟁을 겪었던 노병들에게 기념 훈장을 수여한다. 낮 12시 30분부터는 광장 옆 인민대회당으로 자리를 옮겨 축하 사절단을 위한 리셉션을 진행한다. 이처럼 시간과 장소가 구분되다 보니 열병식 참석을 꺼리는 외국 정상들이 리셉션에만 참여해 시 주석과 회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열병식 준비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은 중국이 분리 참석을 흔쾌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열병식을 건너뛰고 리셉션에만 참여하는 것은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밥만 먹고 가는 것과 같아 중국 입장에선 외교적 결례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열병식은 중국의 국력과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자리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49년 개국 열병식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오늘 성립됐다”고 선언했다. 당시 전투기 17대가 광장 상공을 비행했는데, 국민당과의 내전이 막 끝난 터라 4대에는 실탄이 실려 있었다. 1950년 열병식에서는 1900필의 백마를 탄 기병부대가 광장을 통과해 세계에 큰 인상을 심어 줬다. 이 열병식 후 20여일 만에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했다. 1953년 열병식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사열에 참여했고, 중국군 총사령관인 주더(朱德)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1959년까지 매년 10월 1일 국경절에 치러진 열병식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24년 동안 중단됐다. 마오 사후 당내 투쟁을 거쳐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은 1984년에 열병식을 부활시켰다. ICBM이 이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장쩌민(江澤民)은 건국 50주년을 기념해 1999년 열병식을 치렀다. 건국 60주년이었던 2009년 열병식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사열을 맡았다. 시 주석은 건국 70주년인 2019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이란 명분을 내세워 집권 3년 만에 사열대에 올라선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날 오전 개최할 예정이던 전승절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했지만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中·日언론, 긴급뉴스 다루며 ‘묘한 대조’

    중국과 일본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3일 중국의 항일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배경 및 열병식 참석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묘한 대조를 보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0일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다른 나라 사이의 일로서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또 아베 신조 총리가 다음달 3일 전승절 행사 당일을 피해 전후로 중국 방문을 모색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의 진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박 대통령의 방중 소식을 속보로 전하면서 주요 뉴스로 다뤘다. 교도통신은 중국 지도부가 박 대통령의 행사 참석을 줄기차게 요구했다며 “한국은 경제나 안전보장 면에서 결속을 강화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참석을 결정했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정부가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 계획을 공표하기 전에 올해 10월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는 일정을 먼저 발표한 것에 주목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측이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박 대통령의 참석을 결정했고, 한국 정부에서는 박 대통령 외교의 최대 성과인 한·중 우호 관계 강화를 위해 열병식까지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중국 언론 역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긴급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이 같은 소식과 한국 독립군이 일본의 식민지배 기간 중국 애국자들과 함께 항일전쟁에서 투쟁했다는 과거 인연을 덧붙였다. 인민일보 인터넷판인 인민망도 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 양국 정상 간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열병식 참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 네티즌들은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환영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뉴스 분석] 동북아 다자회의 ‘선제적 외교’…美·中 사이 전략적 균형 시험대

    [뉴스 분석] 동북아 다자회의 ‘선제적 외교’…美·中 사이 전략적 균형 시험대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20일 청와대가 밝혔다.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여섯 번째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참석은 불투명하지만 행사를 즈음해 중·일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이 같은 일련의 양자 접촉은 연내 한·중·일 3국 회담으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10월 중순에는 한·미 간 정상회담이 개최되며 하반기에는 유엔 총회 등 각종 다자회의가 집중돼 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펼쳐질 동북아 외교전에 선제적,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중국의 전승절 행사 참석이라는 환경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집권 2기 시작과 함께하는 외교 각축에 많은 숙제가 놓여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우선 주변국들과 북한 및 북핵 문제를 다뤄야 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과 균형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 미국 등과의 양자 간 현안도 적지 않고 이에 더해 3자, 4자 간 이해가 얽힌 복잡한 방정식도 풀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행동’을 주문했던 일본과 북한이 주요한 장애물이나 변수로 작용할 개연성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 지뢰 도발에 이어 이날도 포격 도발을 감행한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직전인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전후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전략적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 전승절 행사 참여의 반대급부로 중국에는 대북 외교의 약한 고리이자 급소이기도 한 ‘행동지향적 협력 관계’를 요구해야 하고, 미국에는 동아시아 안정과 평화를 위한 구상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와 병행되는 열병식에 참석할 것인지에 대해 청와대는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다음달 4일 예정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한 뒤 귀국한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설] 中 전승절 참석, 힘든 결단 내린 만큼 결실 있어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식 참석은 단순한 방중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방중 효과가 극대화되면 국제정세의 흐름, 특히 격랑의 동북아 외교를 주도할 호기(好機)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 측에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 등의 해결에 나서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갖추는 셈이어서 한반도 안보 지형을 우리 쪽에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어려운 결단을 내린 만큼 외교안보팀은 이런 결실을 충실하게 수확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동북아 정세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은 지역 내에서 상대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극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한·일 관계, 중·일 관계는 과거사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며 여전히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손에 쥐고 위험한 불장난을 계속하고 있다. 그나마 지역 내에서 우리만이 원만한 한·미 관계, 한·중 관계를 유지하면서 균형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중요한 외교적 자산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외교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처음인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 결정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그만큼 중국에 주는 각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을 흔들 수 있다는 미국 측 반대 기류가 있긴 하다. 6·25전쟁 당시 국군에 총부리를 겨눴던 적국의 승전 행사에 참석해선 안 된다는 일각의 반대 논리 또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참석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길이다. 따라서 이제는 논란을 접고 국익 외교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중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그 자리에서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국의 역할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양국 간 경제교류를 더욱더 확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익을 챙겨야만 한다. 한·중·일 정상회담도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시 주석에게 제의했으면 한다. 동북아 평화는 곧 우리의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밝혔듯 미래로 나아가려면 한·중·일 3국 간 관계 개선과 협력 증대가 필수적이다.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10월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곧바로 한·중·일 정상회담까지 이어진다면 동북아에서 우리의 외교적 역량은 극대화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할지 여부도 방중 외교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결정하면 된다.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든 중국이 토를 달 일도 아니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취임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일년에 한 차례씩 중국을 방문하는 셈이다. 한·중 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내실을 다지면서 동북아 외교 주도권까지 가져올 수 있는 풍성한 방중 외교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 둔전병제로 항일 무장투쟁 선도한 김규흥 장군

    둔전병제로 항일 무장투쟁 선도한 김규흥 장군

    항일 무장투쟁을 선도했던 범재 김규흥(왼쪽)의 활약상이 최초로 소개된다. 20일 밤 11시 40분 방영되는 KBS 1TV ‘발굴 추적! 항일무장투쟁의 선구자, 김규흥’에서다. 김규흥은 김복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일제 기밀문서에 숱하게 등장하지만 우리 역사책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중국을 근대화로 이끌며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탄생을 알린 신해혁명에서 혁명군 수뇌부의 유일한 조선인 장군이었다. 김규흥은 조선 독립을 위해 중국 혁명 세력을 이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이런 놀라운 행보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자료가 부족했다. 제작진은 중국 초대 총통이자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과 김규흥의 교류를 확실히 증명할 자료를 발굴해 처음으로 공개한다. 김규흥의 독립운동 노선은 무장투쟁과 둔전병제였다. 강력한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는 둔전병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장소로 내몽골 포두진을 택했다. 김규흥은 원하는 둔전병제를 완성하진 못했지만 후에 도산 안창호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내몽골 포두진에서 둔전병제를 실시해 많은 조선인이 농사를 지으며 독립운동을 했다. 프로그램은 김규흥이 그토록 독립을 꿈꾸며 시행하고자 했던 내몽골 포두진 둔전병제, 역사 뒤편으로 사라진 과거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했던 외로움과 고난의 현장을 직접 찾아 그들의 후손을 만나 1920년대 둔전병제는 어떻게 실행됐는지 밀착 취재했다. 김규흥이 조선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중국 룽징(龍井)에서 펼친 활약상과 그가 박용만(오른쪽)과 파트너를 이뤄 베이징에서 진행한 무장투쟁의 발자취도 조명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이유 알고보니..‘열병식에도 참석 하나?’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이유 알고보니..‘열병식에도 참석 하나?’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오는 9월3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 행사에 참석한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오는 9월3일 목요일 베이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9월2∼4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 수석은 박 대통령의 열병식 행사 참석 여부와 관련해 “열병식 관련 상세 사항은 현재 검토 중에 있다”며 “제반 상황을 파악하면서 검토 중이고 앞으로 적당한 때에 알려드리도록 노력하겠다. 현재는 정해진 게 없다”고 전했다.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사진 = 서울신문DB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뉴스팀 seoulen@seoul.co.kr
  • 朴대통령, 中전승절 행사 참석…열병식도에도 모습 드러낼까?

    朴대통령, 中전승절 행사 참석…열병식도에도 모습 드러낼까?

    朴대통령, 中전승절 행사 참석…열병식도에도 모습 드러낼까?  ’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공식 발표했다. 주 수석은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다음 달 3일 목요일 베이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2∼4일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20일 밝혔다. 이어 주 수석은 “구체적 일정은 현재 중국 측과 협의 중에 있으며 적당한 시기에 설명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주 수석은 박 대통령의 열병식 행사 참석 여부와 관련, “열병식 관련 상세 사항은 현재 검토 중에 있다”면서 “현재는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과 한국 외교/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시론]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과 한국 외교/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것을 기념해 9월 3일 중국에서 열리는 제2차 대전 전승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다. 소극적인 견해는 주로 미국의 불편한 시선,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부정적 영향, 한·일 관계 악화, 중국군 열병식 참석에 따른 국내 보수 여론의 부담 등을 들고 있다. 주변국과 우리의 관계는 복잡하다. 10월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에 대해서도 중국과는 달리 ‘절제 있는 비판’을 했다. 한국전쟁 때 사망한 중국군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하면서 역사의 유산을 극복하기도 했다. 사실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도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사안별로 신중하게 접근하면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우리의 외교 목표와 국가이익을 고려해 결정하면 될 일이다. 우선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의 의의는 행사 그 자체에 있다. 중국은 상하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운동의 종심(縱深)이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의 팔로군, 신사군 등과 함께 중국 전역을 누비며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전사자 2700만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명이라는 엄청난 손실 속에 세계를 대립, 불신의 늪에 빠뜨렸다. 한반도도 이러한 냉전의 희생물이 돼 남북 분단의 비극을 강요당했다. 이런 점에서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이한 우리가 평화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째, 인류 보편적 가치와 평화를 발신하면서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전승을 기념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자리는 지역의 평화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결의하는 장이다. 이것은 역사를 선택적으로 해석하면서 수정주의의 길을 걷는 일본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면 자연스럽게 한·중 정상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교착상태인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분위기를 만들고 중·일 간 중재자적 역할을 통해 동아시아 협력을 촉진할 수도 있으며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협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한·중 관계의 내실화에 기여할 수 있다. 한·중 양국은 이미 양자 관계를 넘어 지역 문제와 국제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표현대로 한·중 관계는 공동 발전의 실현, 지역 평화에 대한 기여, 아시아 발전의 추진, 세계 번영의 촉진 동반자다. 그러나 한·중 정상의 깊은 신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안보 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등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 인문교류 확대에 이은 박 대통령의 전승기념식 참석은 양국 관계 내실화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초청을 받은 아베 총리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여는 방향으로 양국 간에 막바지 조율이 이뤄지고 있어 이번 행사는 한·중·일 정상이 동북아 화해 협력을 위한 주요한 계기를 마련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왕 박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결정한다면 문화축제, 분열식, 열병식을 포함해 일련의 행사에 ‘화끈하게’ 참여해 한·중 관계를 고도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참석 형식과 범위 등은 한·중 관계의 위상, 한국의 대중국 외교자산 그리고 국내 여론을 고려해 철저하게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도 중국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중 관계가 좋다고 해서 ‘유사 이래 최고의 관계’라는 메시지를 우리 스스로 발신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중 간 국가이익이 충돌할 경우 그 부담은 그대로 부메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중 관계가 고착화되기 전에 남북 관계 개선을 포함한 한국형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일이다.
  • 아베 새달 방중 조율… 열병식은 불참할 듯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다음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는 방안이 최종 조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베 총리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만나 쿠릴 4개 섬(북방영토) 영유권 문제 등 양국 현안을 두고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전승절 오전에 열리는 열병식에 참석하지 않고 그날 오후 중국을 방문,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중국이 수용하기로 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오후 환영행사의 내빈으로 참석할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정부는 중국 측이 아베 총리를 전승절 행사에 초청한 것과 관련, ‘군사적 내용이 중심’이라며 난색을 표해 왔다.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의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두 나라의 영유권 분쟁 해역인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문제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중국은 2차 대전 상대국의 정상인 아베 총리를 행사에 참석시킴으로써 전승절 행사가 평화의 축전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싶어 한다고 마이니치신문은 분석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역사 속 ‘영웅들’ 예술로 재조명

    역사 속 ‘영웅들’ 예술로 재조명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역사 속에 묻혔던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항일 무력 독립운동단체였던 의열단을 만든 약산 김원봉(1898~1958)이 대표적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그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남과 북 모두에서 잊혀진 존재이다. 남에선 공산주의자로서 해방 후 월북한 인물로, 북에선 숙청을 당하면서 독립운동사에서 허전한 공백으로 남아버린 인물로 최근 영화 ‘암살’에서 영화배우 조승우가 역할을 맡아 대중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역사의 지속성에 관심을 가져 왔던 작가 권순왕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대안공간 아터테인에서 여는 기획초대전 ‘약산 진달래’에서 김원봉의 역사적 의미, 의열단의 활동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인을 따라 우연히 참석했던 밀양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의 취임식 때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 활동과 연설 모습을 담은 기록필름을 보고 ‘찬란한 죽음’을 접한 듯 전율을 느꼈다는 권 작가는 “이념으로 잊혀진 인물의 명예를 시각 이미지로 회복시켜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역사의 그늘에 묻힌 그를 정서적으로 유연하게 불러내고 싶었고 민족주의자 김약산을 드러내고자 전시 제목엔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붙였다고 덧붙였다. “기록영화에서 독립군의 죽음을 보면서 죄의식 같은 것을 느꼈고 그들의 피눈물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기록영화의 일부 장면을 출력해 붓으로 덧칠한 뒤 칼로 상처를 내고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긁어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앞과 뒤에서 볼 수 있는 양면회화 작품으로 현상과 진실을 동시에 얘기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가려진 지속-약산’ 등 양면회화 작품 7점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는 25일까지. 실내와 실외, 사적인 영역과 공공의 영역, 평면과 입체를 종횡무진하는 설치작가 배수영은 전자 기기 안의 회로기판 등 소모되어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을 활용하는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종로구 북촌로 나무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배수영은 유구한 세월 동안 대한민국을 지키고 빛낸 위인과 영웅들에 대한 오마주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 ‘어벤저스’의 제목을 본떠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 ‘코벤저스’(Co-Vengers)는 화면 중앙에 8·15와 3·1, 그리고 태극문양을 놓고 이순신 장군, 안중근 열사, 논개, 류관순 열사, 김구 선생, 명성황후 등을 표현하고 있다. 높이 3m가 넘는 작품으로 화려한 색채조명과 어우러져 웅장함과 숭고미를 풍긴다. 일본에서 수학하고 일본에서 활동해 온 작가는 “광복 70년을 맞는 뜻깊은 시점에 역사적 아픔에 대한 치유와 두 나라의 긍정적 문화 교류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복 천을 길게 늘어뜨린 설치작품 ‘자궁성’, 회로기판과 LED를 활용한 ‘생+생+생(재생+소생+상생)’ 등이 소개된다. 전시는 9월 2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대만 “日, 역사 직시를”… 美·필리핀·인도네시아 “긍정적”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에 대해 각국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당한 구원(舊怨)이 여전한 국가들은 비난 수위를 높였고,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 형성이 중요한 국가들은 대체로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15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및 대만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에서 “아베 총리가 침략으로 고통받은 이웃국가들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담화를 발표했지만 전임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침략 주체가 일본이란 점을 빼고) 발언했다”고 평가한 뒤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보다 진정성을 갖추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대만 외교부는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과거 행동을 반성하기 바란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반면 아베 담화에서 거명된 동남아 2개국 정부는 담화에 호의적이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는 성명에서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관련 담화를 발표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아비가일 발테 필리핀 대통령궁 부대변인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담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네드 프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아베 총리가 일본이 가한 고통에 깊은 후회를 표현한 것을 환영하고,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일본의 의지를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정신력 승부’ 더 이상 안 통해… 日처럼 저변 확대만이 살길

    [새로운 50년을 열자] ‘정신력 승부’ 더 이상 안 통해… 日처럼 저변 확대만이 살길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1963년 9월 29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2차전, 한국이 1-0으로 앞선 8회 초 국가대표 4번 타자 김응용(당시 한일은행)이 타석에 들어섰다. 김응용은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몰린 상대 투수의 2구를 힘차게 받아쳤다. 홈런인지 안타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정신없이 1루를 향해 뛰었다. 2만 5000여 관중의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공은 담장을 향해 115m를 날아가고 있었다. 역사적인 투런포였다. 한국은 5-2로 승리한 1차전에 이어 숙적 일본을 또다시 3-0으로 누르고 국제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05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야구를 받아들인 지 58년 만이었다. 대회 우승의 주역 김응용(74)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일본과의 경기 전날, 감독님이 찾아와 일본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나가는데 선수단 분위기가 아주 엄숙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때 우리 목표는 무조건 타도 일본이었다”고 돌아봤다. 훗날 국가대표 감독이 된 김응용은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이란 명언을 남겼다. ●한·일전,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 일본과의 스포츠 대결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유상철(44) 울산대 감독은 “선수 시절 한·일전을 여러 번 치렀지만 매번 다른 경기와는 차원이 다른 중압감을 느꼈다”며 “한·일전만큼은 감독이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선수들 스스로 각오와 의지를 다진다”고 말했다. 인기종목인 야구,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맞붙으면 두 나라는 단순한 응원 열기 이상의 흥분에 빠져들곤 한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위안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과거사 문제는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 여론 싸움인 반면 스포츠 경기에서는 승리 아니면 패배란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깔려 있는 감정이 즉각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면서 “한·일전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식민지배를 통해 일방적으로 일본에 당한 민족적인 한과 복수심, 항일정신 같은 것이 투영돼 있다. 한·일전은 일종의 국민적인 감정의 분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70년간 한국인을 울리고 웃겼던 한·일전의 전설적인 순간을 되짚어봤다. ●극도의 긴장감 속 열린 첫 축구 한·일전 괴력이 빛을 발한 승부였다.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경기에 임했던 덕분일까. 한국 축구대표팀은 해방 이후 열린 첫 한·일전을 적진 일본에서 승리로 장식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한국은 일본과 대결하게 됐다. 원칙대로라면 두 나라가 한 차례씩 상대 국가를 방문해 경기를 치르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승자를 가려야 했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아직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았다. 반일 감정도 극에 달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놈들이 한국 땅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 간다 해도 패하면 나라 망신”이라며 경기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앞두고 이유형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23명은 반드시 일본을 꺾고 돌아오겠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했다. 한국 대표팀은 도쿄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5-1, 2차전에서 2-2로 1승1무를 기록해 사상 첫 한·일전 승리와 월드컵 본선 티켓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야구 한·일전은 8회부터… 악몽을 안기다 적어도 한·일전에서 야구는 ‘8회’부터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역대 한·일전 중 최고의 명승부로 1982년 서울 잠실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꼽았다. 야구팬들에게도 이 경기는 전설로 기억된다. 7회까지 0-2로 뒤지던 한국은 8회 말 김재박이 상대 투수 니시무라를 상대로 개구리 번트(스퀴즈번트)를 성공시키면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대화가 3점 홈런을 때려내 한국은 5-2 짜릿한 역전승으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뒤 한국 대표팀은 일본만 만나면 8회부터 대역전극을 펼치는 진풍경을 연출해냈다. 양국 간 첫 ‘드림팀’ 대결로 주목받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서는 8회 2아웃 상황에 터진 이승엽의 투런포로 0-0 팽팽한 투수전이 깨지면서 사상 첫 단체 구기 종목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8회의 기적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이어졌다. 결승전에서 일본과 맞붙은 한국은 2-2 동점 상황에서 8회 이승엽이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또 한번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은 사상 첫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금메달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경쟁의식, 양국의 스포츠를 발전시키다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하계·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롯한 주요 국제대회를 모두 개최한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은 경기력뿐만 아니라 자국 리그의 생성과 흥행을 이끌면서 스포츠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국가대표팀끼리의 전적 40승 12무 22패로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는 축구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영향을 더 받았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 축구는 한국에 형편없이 당했다”며 “1983년 한국에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돼 19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에 오르자 이를 의식한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만들었다. 그 뒤 일본 축구가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을 이기기 위해 홍명보, 유상철, 황선홍 같은 특급 선수를 고액 연봉으로 데려가 자국리그 흥행과 수준 향상에 부단히 신경 쓴 결과”라고 말했다. 야구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같은 국제대회에서 종종 승리를 거두었지만 일본의 야구 저변이 워낙 탄탄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응용 전 사장은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에 대해 “한국이 단일팀으로는 승부를 노려볼 만하지만 고교야구팀만 5000개에 달하는 일본을 장기적으로 상대하기에는 무리”라고 진단했다. 한·일전 덕분에 야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2006년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프로야구 관중이 급증했다”며 “야구 관중 800만명을 바라보게 된 데 한·일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문화 만들어야” 반면 전반적인 스포츠 인프라를 다져 온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엘리트 체육에만 매몰돼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희준 교수는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선수가 10만여명인 데 비해 일본은 핸드볼 선수만 8만명이 등록돼 있을 정도로 생활스포츠가 활성화돼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라이벌 관계를 통해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면 그건 일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문화와 환경을 구축해 온 일본이 무조건 이겨야 하고 금메달을 따야 인정해주는 한국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한국의 국가대표팀은 일본에 이길지 몰라도 스포츠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 라이벌 일본에 완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위안부로 끌고 가” 계급별 오락시간까지 적혀있어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위안부로 끌고 가” 계급별 오락시간까지 적혀있어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위안부로 끌고 가” 계급별 오락시간까지 적혀있어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여성 2천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밝혀졌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이밖에 문건은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지적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문건 내용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문건 내용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문건 내용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내용 자세히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내용 자세히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어떤 내용 적혔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어떤 내용 적혔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어떤 내용 적혔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여성 2천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이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이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이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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