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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치광장] 이택상주(麗澤相注)의 자세/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

    [자치광장] 이택상주(麗澤相注)의 자세/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

    지난 8월 4일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전체 가구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6200가구 공급 계획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갑자기 쏟아지는 주민 항의 문자로 알았다. 해당 지역의 단체장과 사전 논의 한 번 없었고, 지역의 중대한 사안을 일방적 통보로 알게 된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감출 수가 없었다. 민선 7기 마포구청장에 취임한 이후 1호 공약으로 마포구민 쌍방향 소통 플랫폼인 ‘마포1번가’를 구축하는 등 줄곧 ‘소통’을 최고의 가치로 강조해 왔던 터라 더욱 그랬다.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에 적극 공감한다는 기존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통 방식이다. 창조적 다양성이 경쟁력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집단지성에 따른 의사결정 방식이 필수적이다. 요즘같이 개인의 재산권과 관련된 민감한 사항일수록 중앙집권적 정책 추진은 주민 반발이라는 부작용이 필히 따라오게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8·4 대책 발표 후 주민들은 학교시설 부족이나 교통난 등 선결 과제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일방적인 대규모 주택 공급 통보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거리로 나섰다. 어수선한 민심을 챙기고,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소통하고자 구청 정문 앞 광장에 24시간 ‘현장 구청장실’을 운영했다. 8일 동안 ‘현장 구청장실’에서 집무를 보며 주민 한 분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고심했다. 이를 토대로 국토부, 서울시, 마포구,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4자 협의체’를 구성해 ‘소통’과 ‘협치’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성명서’를 지난 8월 17일 발표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관계 부처는 묵묵부답이다. 지난 21대 국회 개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과 ‘협치’를 수차례나 언급하며 당부했다. 이러한 뜻을 존중해 행정기관과 주민은 ‘소통’해야 하는 기본을 잊지 않고, 마포구와 지역 주민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진정성 있는 ‘협치’의 정신을 보여 주길 기대해 본다. ‘두 개의 연못이 맞닿아 서로 물을 대어주며 마르지 않는다’는 ‘이택상주’(麗澤相注)의 자세로 막힘 없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 음악이 항일 무기…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중국의 3대 악성’

    음악이 항일 무기…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중국의 3대 악성’

    정율성은 ‘중국인민해방군가’와 ‘옌안송’ 등 360여곡을 작곡한 작곡가로 중국인의 심금을 울린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항일운동가로서 정율성을 언급하기는 의열단장 김원봉처럼 조심스럽다.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귀국한 뒤 월북한 인물인데 남한 출신인 정율성은 광복 후 북한으로 들어갔고 6·25 전쟁 때는 중공군으로 참전했다. 그 때문에 정율성은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국내에서 그의 생애는 오래도록 조명받지 못했다. 2018년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이 광복절 기념식에 중국에 거주하는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鄭小提)를 초청했을 때 논란이 됐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율성은 1914년 8월 27일 광주광역시에서 정해업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중국에서의 공식 생일은 1918년 8월 13일로 돼 있다. 정율성이 생년을 4년이나 늦춰 적은 이력서를 당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율성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외적과의 싸움에서도 최후의 결전에는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승전고를 울린단다. 군대가 진군할 때 사기를 돋우는 데는 우렁찬 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군가가 없거든….” 온종일 만돌린만 켜고 노래를 부르는 정율성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군가가 없다’는 말은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앞날을 예견한 듯했다.●분열된 독립운동단체 대동단결 결의문 주도 정율성가(家)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맏형 정효룡(건국훈장 애족장)은 임시정부 서기로 일했고 국내에서 선전활동을 하다 옥살이를 했다. 둘째형 정인제는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국민혁명군으로 북벌에 참여했다. 셋째형 정의은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학생을 모집하고자 국내에 잠입했다. 큰외삼촌 최흥종은 평생을 나환자를 돌보는 데 바쳤으며 작은외삼촌 최영욱은 의학박사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고모부다. 매형 박건웅(독립장)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항일운동가다. 이런 가풍 속에서 자란 정율성이 중국행을 꿈꾼 것은 자연스러웠다. 마침 셋째형 정의은이 ‘조선혁명간부학교’ 2기생을 모집하러 국내에 들어와 입학을 권유했다. 항일의식이 투철했던 전북 전주 신흥중학을 중퇴한 정율성은 1933년 5월 8일 전남 목포항을 떠나 일본을 경유해 5월 13일 상하이 푸둥항에 도착했다. 함께 중국 땅을 밟은 이들은 모두 여섯이었는데 조카 정국훈도 있었고 1990년대에 광복회장을 지낸 김승곤도 있었다. 8개월 동안 그는 간부학교에서 군사학과 사회주의 이념을 배웠다. 매형 박건웅은 교관이었다. 1기 졸업생 중에는 시인 이육사와 석정 윤세주도 있었다.학교를 졸업한 정율성은 일본인들의 전화를 감청하며 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러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을 맞았는데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출신인 크리노와 교수를 소개받아 체계적인 성악 지도를 받은 것이다. 이름도 본명인 정부은에서 선율로 성공하겠다는 뜻을 담은 ‘율성’(律成)으로 바꾸며 음악에 몰두했다. 정율성은 상하이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특출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정율성에게 크리노와는 이탈리아 유학을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정율성은 항일운동을 포기할 수 없었다. 1937년 8월 정율성은 마오쩌둥이 홍군(紅軍)을 지휘하고 있던 산시성 옌안에 도착했다. 그에게 옌안은 공산당의 본거지이기에 앞서 항일투쟁의 사령부였다. 옌안행에는 먼저 그곳으로 간 ‘아리랑’(님 웨일스)의 주인공 김산과 독립운동가 김성숙의 부인 두쥔훼이가 큰 영향을 주었다. 1936년 6월 정율성은 난징에서 김산과 한 달 동안 함께 지냈다. 옌안에서 노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 들어가 음악 공부를 계속했다. 어느 날 노신학원 문학학부 동기생인 모예(莫耶)가 노랫말을 들고 왔다. 정율성은 곡을 붙여 만돌린으로 반주도 하며 청중 앞에서 불렀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오르고 연하강 물결 위에 달빛 흐르네…” 마오쩌둥도 함께한 청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노래가 바로 옌안 정신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극찬을 받고 지금도 중국에서 널리 불리는 ‘옌안송’이다. 옌안송은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동남아와 미국까지 퍼져 나갔다. ●당 결정 따라 北에… 조선인민군행진곡 작곡 1938년 8월 노신학원을 졸업한 정율성은 항일군정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틈날 때마다 작곡을 했다. 그 무렵 우리 독립운동 단체들은 사분오열돼 있었다. 정율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결의문’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듬해 7월 항일군정대학 군정단에 있던 궁무(公木)의 가사에 음을 붙여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현재 중국군의 공식 군가로 확정된 ‘중국인민해방군가’다. 그의 노래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명곡이 됐다. 정율성에게 일제와 싸운 무기는 음악이었다. 정율성은 노신예술학원 교수가 됐고 나중에 최초의 여성 중국 대사가 되며 저우언라이의 양녀로 알려진 딩쉐쑹(丁雪松)과 결혼, 가정도 꾸렸다.1942년 정율성은 조선의용군이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던 태항산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을 맡아 전투에 참여하고 후방 공작도 했다. 그러면서 광복을 맞았다. 정율성은 오랫동안 항일활동을 했고 부인의 조국인 중국에 남지 않고 당의 결정에 따라 조선의용군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조선인민군행진곡’도 작곡했다. 광주에 있던 어머니를 조카가 데려오자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어머니, 부인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 6·25 때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전선 위문활동을 했다. 정율성도 문화혁명을 피하지 못하고 고초를 겪었다. 자연에 묻혀 은둔하던 정율성은 든든한 후원자였던 저우언라이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76년 12월 7일 갑작스레 뇌일혈로 쓰러져 눈을 감았다. 중국의 국립묘지인 베이징 교외 팔보산혁명공묘에 묻혔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외동딸 정샤오티(1943년생)는 광주를 찾아 음악회 등 아버지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한중 우호활동에 힘쓰고 있다. 동요, 민요, 군가, 뮤지컬, 오페라, 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남긴 정율성의 업적은 현대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녜얼(耳·중국 국가 작곡가), 셴싱하이(星海)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가 창작한 동요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2000년대에 들어 한중 양국에서 정율성이라는 이름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순안공항에서 연주된 곡은 정율성의 ‘조선의용군행진곡’이었다. 2005년 중국 전승절 60주년에 신중국 건국 100인의 영웅 중 여섯 번째에 오른 이름은 정율성이었다. 중국 하얼빈에는 정율성기념관이 세워졌다. ●광주시, 생가 복원 등 추진… 하얼빈엔 기념관 우리도 그가 자란 광주 양림동에 정율성거리를 조성해 사진과 작품을 전시하고 생가도 단장했다. 기념사업회도 구성돼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찾아본 정율성거리는 훼손이 적지 않았고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직도 개인 소유인 생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정율성 음악제도 매년 열려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진행이 더뎌지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5월 생가 부지 매입과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양림동에는 기념관을 짓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본적지로 돼 있는 불로동에는 역사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선양사업만큼 중요한 향후 과제는 그의 이념과 행적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유관순 순국 100주년 추모제 고향 천안 아닌 공주에서 왜

    유관순 순국 100주년 추모제 고향 천안 아닌 공주에서 왜

    “유관순 열사(1902~1920)의 고향이 천안인데, 왜 공주에서 순국 100주년 행사를 하지?” 충남 공주시는 오는 28일 3·1중앙공원에서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를 연다고 24일 밝혔다. 25일 공주문예회관에서 연극 ‘공주에서 핀 독립의 꽃 유관순’, 다음달 8일 ‘유 열사와 공주항일독립운동 학술대회’와 함께 기념 책자 발간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공주시가 유 열사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그가 공주 영명학당을 다녔기 때문이다. 천안 병천면에서 태어난 유 열사는 13세 때인 1914년 미국 선교사 사애리시의 추천으로 영명학당에서 2년 공부하고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당시 공주는 충남도의 소재지로 명문학교가 많았다. 유 열사가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자 시신을 수습한 것도 영명학당 출신 김현경(1897~1986) 열사이다. 김 열사는 당시 22세의 경천소학교 교사로 유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과 공주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했고, 공주형무소에서 유 열사와 함께 있었다.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김 열사는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유 열사가 순국할 때까지 옥바라지도 했다. 공주시는 지난해 3월 3·1중앙공원에유관순 동상을 세우고 유 열사와 김 열사 두 명을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로 선정해 기렸다. 지난해는 유 열사의 서훈 등급이 3등급밖에 안 돼 논란이 일면서 1등급(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된 해다. 또 영명중·고로 바뀐 영명학당 앞에서 유 열사가 학창시절 다녔던 제일감리교회까지 1.5㎞ 도로를 ‘유관순 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김정섭 공주시장은 “유 열사와 김 열사 등 독립운동가를 계속 발굴하고 재조명해 자랑스러운 공주 역사를 다져가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를 공주에서 하는 까닭은?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를 공주에서 하는 까닭은?

    “유관순 열사(1902~1920)는 천안이 고향인데 왜 공주에서 순국 100주년 행사를 하지?” 충남 공주시는 오는 28일 3.1중앙공원에서 이같이 추모제를 연다고 24일 밝혔다. 25일 공주문예회관에서 연극 ‘공주에서 핀 독립의 꽃 유관순’, 다음달 8일 ‘유 열사와 공주항일독립운동 학술대회’와 함께 기념 책자 발간 등 유 열사 행사가 잇따른다.공주시가 유 열사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그가 공주 영명학당을 다녔기 때문이다. 천안 병천면에서 태어난 유 열사는 13세 때인 1914년 미국 선교사 사애리시의 추천으로 영명학당에서 2년 공부하고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당시 공주는 충남도청 소재지로 명문학교가 많았다. 유 열사가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자 시신을 수습한 것도 영명학당 출신 김현경(1897~1986) 열사이다. 김 열사는 당시 22세의 경천소학교 교사로 유 열사의 오빠 유우석 영명학당 학생 대표와 힘을 합쳐 공주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공주형무소에서 유 열사와 함께 생활했다.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김 열사는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유 열사가 순국할 때까지 옥바라지도 했다.공주시는 지난해 3월 3.1중앙공원에 유관순 동상을 세우고 유 열사와 김 열사 두 명을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로 선정해 기렸다. 지난해는 유 열사의 서훈 등급이 3등급 밖에 안돼 논란이 일면서 1등급(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된 해다. 시는 또 영명중·고로 바뀐 영명학당 앞에서 유 열사가 학창시절 다녔던 제일감리교회까지 1.5㎞ 도로를 ‘유관순 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김정섭 시장은 “유 열사와 김 열사 등 독립운동가를 계속 발굴하고 재조명해 자랑스런 공주 역사를 다져가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바닷물에 출렁이는 태극기 ‘눈길’

    바닷물에 출렁이는 태극기 ‘눈길’

    항일 운동의 섬인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 친환경 부표로 만든 태극기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태극기 규격은 가로 18m, 세로 12m의 그물(216㎡)에 2420여 개의 친환경 부표를 부착 제작했다. 소안항 주변 바닷물 담수호에 설치했다. 태극기 하얀 바탕색은 1630개의 부표를 설치했다. 태극 문양은 빨강 318개, 파랑 318개, 건·곤·감·리 괘는 158개의 검정색 부표를 하나하나 그물에 매달아 연출했다. 소안도는 2015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장소다. 군은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키고, 깨끗한 바다 가꾸기 운동을 전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태극기 조형물을 고안했다. 노준성(41) 소안면 청년회장은 “육지 처럼 바다에서도 태극기가 바닷물에 출렁입니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올 만큼 흥미롭고 인상적이다”며 “이곳을 지나다니면서 애국심을 다지게 된다”고 말했다.소안도는 모든 가정에 365일 태극기를 게양하는 섬으로도 유명하다.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더불어 우리나라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는 6000여 주민 중 800명이 ‘불령선인’(일제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조선인)으로 지목될 만큼 항일운동이 드세게 일어난 곳이다. 광복 후 건국훈장을 받은 20명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89명을 배출한 섬이다. 태극기 조형물이 설치된 바닷물 담수호는 소안항에서 1.2㎞의 거리에 있다. 진입로 주변에도 태극기가 게양돼 있어 누구나 나라사랑을 되새기며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태극기 길’이 조성돼 있다. 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정경두 “광복군, 국군의 정신적 뿌리… 본연 임무에 전념하겠다”

    정경두 “광복군, 국군의 정신적 뿌리… 본연 임무에 전념하겠다”

    “광복군, 위대한 정신 계승”광복군, 1940년 9월 中충칭서 창설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17일 “한국광복군은 1948년 창설된 우리 국군의 정신적 뿌리”라면서 “위대한 정신을 계승하고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더욱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창군 제80주년 기념식에서 서면으로 보낸 축사를 통해 “광복군은 조국의 광복에 크게 기여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장관은 “우리 군은 광복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광복군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하고, 6·25전쟁 당시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희생과 헌신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이었던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광복군은 국군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복군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중국 독립 전선에서 중국군과 협동해 항일전을 전개했다. 영국군과 연합해 인도·미얀마 작전에도 참여했다.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공동으로 특수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 작전도 추진했지만, 일제의 항복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에는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독립운동가 후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광복군 선언문 낭독,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의 기념사, 독립군가 합창,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우즈마저 울린 러프… 언더파도 기적이다

    우즈마저 울린 러프… 언더파도 기적이다

    윙드풋에서 ‘언더파 챔피언’은 희망사항일까.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는 제120회 US오픈 골프대회가 18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머매러넥의 윙드풋 골프클럽(파70)에서 막을 올린다. 코로나19 탓에 석 달이나 미뤄진 US오픈은 앞서 119차례 동안 ‘코스와의 싸움’이 전통처럼 이어졌다. 특히 역대 6번째로 US오픈을 유치한 윙드풋 골프클럽은 지금까지 치른 역대 51곳 대회 코스 중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이곳에서 치른 5차례 대회에서 언더파 우승자는 36년 전인 1984년 대회의 퍼지 졸러(미국) 단 1명뿐이었다. 언더파로 대회를 마감한 선수도 졸러를 포함해 연장전에서 승부를 펼친 그레그 노먼(호주·이상 4언더파) 등 2명 외엔 없었다.‘윙드풋의 대학살’로 불렸던 1974년 대회 해일 어윈(미국)의 우승 스코어는 무려 7오버파 287타였다. 마지막으로 열렸던 2006년 대회 우승자 제프 오길비(호주)의 타수 역시 5오버파로 언더파에서 한참 벗어났다. 당시 세 번째 우승에 도전했던 타이거 우즈(미국)는 2라운드까지 12오버파 152타로 메이저 출전 사상 처음으로 컷에서 탈락했다. 그렇다면 윙드풋은 왜 어려울까. 우선 페어웨이가 좁다. 업다운이 심하지 않아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개미허리처럼 폭이 좁은 데다 굽은 곳이 많다. 자칫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발목을 덮는 15㎝ 깊이의 두껍고 뻣뻣한 러프가 공을 삼킨다. 16일 연습라운드에 나선 우즈는 18번 홀(파4) 티샷이 페어웨이 왼쪽 러프에 떨어지자 곧바로 공을 손으로 집어들어 페어웨이로 빼낸 뒤 다음 샷을 했다. 긴 데다 질기기까지 한 러프에서 어설프게 샷을 하다간 자칫 손목을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세계 1위 더스틴 존슨(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이시카와 료(29)는 러프에 빠뜨린 공을 찾느라 10분 이상을 허비해야 했다. 우즈는 기자회견에서 “윙드풋은 내가 경험한 곳 중 가장 어려운 코스 중 하나”라면서 “난도 면에서 아마 이곳과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이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볼이 떨어질 만한 지점에 아가리를 벌린 벙커도 수두룩한 데다 ‘유리판 그린’에도 맞서야 한다. USGA는 올해 그린을 더 단단히 다지고 잔디를 짧게 깎아 유리판처럼 만들었다. 1m짜리 퍼트도 우습게 봤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윙드풋의 그린은 내가 겪어본 가장 어려운 그린”이라고 말했다. 장타와 정교함의 두 가지를 놓고 선택은 엇갈린다. 올해 체중을 20㎏이나 불려 괴력의 장타를 휘두르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공이 러프에 떨어진다 해도 난 드라이버를 힘껏 때리겠다”고 ‘닥공’을 선언했다. 반면 PGA 투어의 대표적인 장타자이자 이 대회 ‘빅4’ 중 한 명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러프에 떨어지는 350야드짜리 장타보다 페어웨이를 지키는 편이 낫다”고 공략법을 밝혔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나는 삼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대만서 떨친 23세 청년의 항일투쟁

    “나는 삼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대만서 떨친 23세 청년의 항일투쟁

    황해도서 태어나 공직생활 접고 일본행日서 차별·멸시 겪으며 항일 의지 다져1년 남짓 日 생활 이후 대만서 점원 취업 타이중 방문 日 육군대장에게 단도 던져일제, 사건 의미 축소 위해 보도 통제도속전속결식 재판 끝에 사형장에서 순국 “나는 삼한(三韓)의 원수를 갚았노라.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하리라.”(조명하 의사가 대만 타이베이의 일제 처형장에서 순국 직전 남긴 유언) 조명하. 이역만리 대만에서 일왕의 장인이자 육군대장을 척살(刺殺)하려 했던 독립운동가다. 그러나 생소한 이름이다. 평범한 청년이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단독 거사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사이토 조선 총독을 죽이려 했던 송학선 의사와 똑 닮았다. 당시 대만은 조선처럼 일제의 지배를 받았다.조 의사(義士)는 1905년 4월 4일 황해도 송화군 하리면 장천리 310에서 부친 조용우와 모친 배장년의 4남 1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인데 강직한 성품으로 때로는 고집불통이라는 평판을 듣는 가풍이었다고 한다. 8대조인 조형은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했지만 벼슬을 거부하다 인조반정 이후에야 장수가 돼 병자호란 때 수많은 적을 물리쳤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의사의 부친 조용우는 아들이 사형을 당하자 “사나이 대장부가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죽었다”며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친 “대장부가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죽었다” 이런 가문에서 자란 의사는 비록 가난했지만 성품이 강직하고 의협심이 강했다. 보통학교라도 아무나 다니기 어려웠던 시절에 송화보통학교에 들어가 1920년 졸업한 의사는 1924년 송화읍의 친척이 운영하는 한약방에서 한약 조제와 처방법을 익혔다. 여기서 나중에 척살에 사용하는 독극물 제조법을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독검 사용에는 논란이 있다). 1925년 의사는 오금전 여사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는데 유일한 핏줄인 조혁래다. 의사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자 황해도 신천군청 지방서기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의사가 공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순종의 승하와 6·10만세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외침이 온 나라를 뒤덮을 때였다.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의사는 6개월 만에 서기직을 버리고 갓 태어난 외아들과 아내는 남겨둔 채 일본이라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갔다. 의사의 일본행이 거사 계획을 염두에 둔 일이었는지는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인 오씨는 1987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계획도 말하지 않아 공연히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도 한 인간이었기에 부모에 대한 효성과 앞으로 태어날 자식에 대한 애착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의 굳은 뜻은 아무도 가로막지 못하였다. 결심의 그날은 자꾸만 가까웠다.” 1926년 9월 의사는 가족도 모르게 일본행 배에 올랐다. 의사는 오사카에 도착해 건전지 공장과 속옷 공장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야간에는 상공학교와 상공전수학교에 다니며 주경야독했다. 일본어에 능통했던 의사는 일본인 행세를 하는 게 취업과 학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명하풍웅(明河豊雄)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다. 일본으로 간 목적이 곧 독립운동의 준비가 아니라 단순히 견문을 넓히고 돈을 벌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서 민족 차별을 경험하고는 항일 활동의 의지를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의사가 집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바로 소각하라고 한 것은 행적을 일제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의사가 대만으로 간 것도 1년 남짓 일본에서 생활하며 겪은 차별과 멸시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 한쪽에서는 언젠가 일제를 응징하는 거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대만은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일제에 할양함으로써 우리보다 먼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우리 못지않게 항일투쟁이 격렬했다. 대만에도 한인들이 진출해 주로 어업과 상업,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한인들은 대만 노동자들에게도 탄압을 당하는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1927년 11월 대만에 도착한 의사는 부귀원이라는 일본인 차포(茶鋪)에 점원으로 취업했다. 이듬해 5월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일본 정계의 거물인 육군대장 구니노미야가 육군특명검열사 자격으로 타이중시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하고 응징할 것을 결심했다. 1928년 5월 14일 오전 주 청사 건물을 떠난 구니노미야의 차량 행렬은 타이중역으로 향했다. 9시 55분 의사는 타이중시 중구 자유로 2단 2호 앞의 나무 밑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차량이 커브를 돌자 10대 가운데 두 번째 차에 타고 있던 구니노미야에게 단도(독검)를 던졌다. 그러나 단도는 운전사의 왼쪽 어깨만 스치고 결과적으로 처단에는 실패했다.●조 의사 부친·형도 경찰서에 갇혀 ‘고초’ 의사는 경비병과 사복 경찰에게 붙잡혔다. 일제는 관련 인물들을 밝히려고 먼저 고국의 가족을 연행했다. 의거 사실을 전혀 몰랐던 부친은 한 달, 형은 석 달 동안 경찰서에 갇혀 악독한 심문을 받았다. 의사는 속전속결식 재판 끝에 거사 다섯 달 만인 1928년 10월 10일 오전 10시 사형장에서 순국했다. 의사의 나이 겨우 23세였다. 일제는 총리가 직접 나서 한 달간 보도를 통제할 정도로 큰 사건으로 취급했다. 재판부는 완전히 우발적이며 사상적 배경이 없고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비참함이 동기였다고 주장했다. 의사가 거사 직전 자살을 하려다가 우연히 구니노미야의 동선을 알게 돼 죽이려 했다고도 했다. 이는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한 일제의 의도임이 명백하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조 의사의 거사는 계획된 항일 의거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주장도 사료가 뒷받침돼야 한다. 의사가 ‘독검’(毒劍)을 던졌는지, 구니노미야가 맞았는지, 맞은 것이 원인이 돼 사망했는지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국가보훈처는 공훈록에 “구니노미야가 의사가 던진 단도에 목을 맞았고 중상을 입어 사망했다”고 싣고 있는데 근거가 부족하다. 구니노미야가 칼을 맞아 후유증으로 8개월 만에 사망했다는 주장도 검증이 필요하다. 구니노미야의 사망 원인은 단지 복막염이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비록 송학선 의사처럼 조 의사가 척살에 실패했더라도 거사의 의미는 퇴색될 수 없다. 정부는 1963년 의사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조 의사 선양사업은 대만 한인들이 먼저 시작해 1978년에 의거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타이베이 한국학교에 흉상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새 동상(입상)을 제막했다. 1985년에는 사단법인 조명하의사 기념사업회가 창립됐고 의거 60주년을 맞은 1988년에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도 동상을 건립했다. 외아들 조혁래 선생도 부친의 공적을 밝히는 데 힘을 보탰다.●대만서 선양사업…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조 의사의 유해는 순국 3년 만인 1931년에 환국,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혀 있다. 현재 기념사업회장은 이자욱(전 대일고 교장) 서경대 초빙교수가 맡고 있다. 조경환(조 의사의 장손)·장병원(세림기전 대표)·한사홍(정선명주 대표)씨가 이사로 돕고 있고 김준식(전 대일외고 국어교사)·유단희(전 홀트학교 근무)씨는 감사를 맡았다. 연구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대만에서도 연구회장인 김상호 교수 등이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해 최근에 거사 지점을 정확히 밝혔다. 단검 사진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대만 슈핑과기대에 재직 중인 김 교수는 “당시 하늘을 찌를 기세를 가진 구니노미야는 자신의 딸을 왕태자와 약혼시켰으나, 아들에게 색맹이 있음을 알게 된 왕실에서 파혼을 요구하자 파혼하면 ‘가족을 다 죽이고 가만 있지 않겠다’고 왕실을 향해 으름장을 놓을 정도의 인물이었다”면서 “의사의 척살 사건은 훗날 이봉창 의사 폭탄 의거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美 “中, 공자학원 통해 스파이 모집… 연내 75곳 모두 폐쇄”

    美 “中, 공자학원 통해 스파이 모집… 연내 75곳 모두 폐쇄”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대유행 책임 등 경제, 인권, 안보 분야에서 충돌해 대치 국면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미국 내 공자학원을 올해 안에 모두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관들이 대학을 방문하거나 관리를 만나려면 미 정부의 허락을 받게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 공산당에 포섭돼 있다며 올해 분담금도 내지 않기로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 인터뷰에서 “미 대학 캠퍼스에 있는 중국 공자학원이 올해 말까지 모두 퇴출되길 희망한다”며 “공자학원이 대학에서 첩자와 협력자를 모집한다. 이 위험을 다들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말까지 남아 있는 공자학원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미 대학 내 공자학원은 75곳 정도다.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가 세계 주요 대학과 교류하고 문화를 전파하고자 2004년 개설한 교육기관이다. 중국 정부가 운영비 일부를 지원한다. 초기에는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처럼 문화 홍보에 주력했지만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뒤로 각국에서 스파이 활동에 나선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이 화웨이 등 정보기술(IT) 기업을 통해 미국 기술을 도둑질한다”고 주장한 뒤로 공자학원을 향한 의구심도 커졌다. 그는 또 2일 성명을 통해 “중국 외교관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방문하거나 정부 관리를 만날 때 반드시 승인을 받게 하겠다”며 “이는 상호주의(두 나라가 동일한 수준의 외교적 대우를 하는 것)에 기반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에서 미 외교관들도 공무원 면담이나 대학 방문 시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맞불’을 놨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국무부는 별도 브리핑에서 “백악관은 WHO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WHO에 내야 하는 6200만 달러(약 740억원) 규모의 분담금을 지불하지 않기로 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7월 미국은 “감염병 사태에서 WHO가 지나치게 중국에 편향적”이라고 비난하며 탈퇴를 통보했다. 그러자 시 주석은 3일 중국 항일전쟁 승전 75주년을 맞아 베이징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 헌화 의식을 가졌다. 그가 행사에 참석한 것은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중일 영토 갈등이 극심했던 2014년 이후 6년 만이다. 미중 충돌 상황에서 일관되게 중국을 비난하는 일본에 적대감을 드러내 간접적이나마 미국을 공격하려는 의도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코로나 시대 미래는”… 文대통령 서재엔 이 책 꽂혔다

    “코로나 시대 미래는”… 文대통령 서재엔 이 책 꽂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는 가운데 올여름에 읽은 4권의 책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9월은 독서의 달이다. 해마다 여름휴가 때 읽은 책을 소개하곤 했는데 출판시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보람도 있었다”면서 “방역 협조를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독서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독서 리스트’로 엿본 최우선 관심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류의 미래였다. 최재천·장하준 등 6명의 석학이 코로나가 우리 삶과 세계에 가져올 변화와 기회를 심층진단한 ‘코로나 사피엔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이 제러미 리프킨, 원톄쥔 등과 인터뷰한 ‘오늘부터의 세계’를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개인이나 정부가 어떤 부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했다. 고교 시절 역사학자를 꿈꿨던 문 대통령은 김준혁 한신대 교수의 ‘리더라면 정조처럼’과 서울신문 주필을 지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홍범도 평전’도 일독을 권했다. 문 대통령은 “정조대왕이 금난전권을 혁파해 경제를 개혁한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고 설명했다. 또 “그(홍범도)의 생애와 함께 잘 몰랐던 초창기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여름휴가 때 읽은 책을 소개해 왔다. 그때마다 판매량이 급증해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 셀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2017년 ‘명견만리’, 2018년 김성동의 소설 ‘국수’(國手),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등을 읽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포스트코로나·정조·홍범도… 文대통령 사로잡은 4권의 책은?

    포스트코로나·정조·홍범도… 文대통령 사로잡은 4권의 책은?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국민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여름에 읽은 ‘독서리스트’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9월은 독서의 달이다. 해마다 여름휴가 때 읽은 책을 소개하곤 했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출판시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보람도 있었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금, 방역 협조를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모처럼 독서를 즐겨 보는 것도 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인류의 미래인 것으로 보인다.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최재천·장하준·최재붕·홍기빈·김누리·김경일 등 6명의 석학과 진행한 대담집 ‘코로나 사피엔스’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이 제러미 리프킨, 원톄쥔(溫鐵軍),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등과 인터뷰한 ‘오늘부터의 세계’를 우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인류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 다양한 분야의 대한민국 석학들과 세계 석학들에게 묻고 답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면서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개인이나 정부가 어떤 부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고,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했다. 고교 시절 역사학자를 꿈꿨을 만큼 역사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문 대통령은 정조 전문가인 김준혁 한신대 교수의 ‘리더라면 정조처럼’과 서울신문 주필을 지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홍범도 편전’도 일독을 권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정조대왕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고, 당대 역사를 보는 재미도 있다”면서 “저는 정조대왕이 금난전권을 혁파하여 경제를 개혁한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가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카자흐스탄에 묻혀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면서 “그의 생애와 함께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군들의 초창기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여름휴가 때 읽은 책을 소개해왔다. 그때마다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이른바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 셀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7년에는 ‘명견만리(明見萬里)’, 2018년에는 김성동의 소설 ‘국수(國手)’, 진천규 전 한겨레 기자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중국 우한서 풀파티, 맥주축제…베이징 국제영화제 열려

    중국 우한서 풀파티, 맥주축제…베이징 국제영화제 열려

    코로나19의 발상지인 중국 우한에서 대규모 수영장 파티, 맥주 축제 등 군집 행사를 잇따라 연 가운데 수도 베이징에서도 지난 22일 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세계적으로 국제 행사가 취소되는 것과 반대로 제10회 베이징국제영화제는 ‘꿈과 분투’를 주제로 지난 22일 베이징에서 막을 올렸다. 특히 이번 영화제는 온라인으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앉은 관객까지 있는 오프라인 영화제다. 두페이진 베이징 국제영화제 선전부장은 “이런 특수한 시기에 진행되는 이 영화제는 6개월간 중국 방역이 거둔 튼 성과를 증명하는 셈이자 영화 팬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국제영화제는 중국 영화와 더불어 300여편의 해외 작품을 베이징 내 영화관들을 통해 상영하게 된다.현재 중국은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서 8500개 이상의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어 항일 실화를 소재로 한 애국 전쟁 영화 ‘빠바이’(八佰)가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아울러 베이징시는 최근 들어 코로나 신규 확진이 거의 나오지 않자 1000만 위안(한화 17억 2000만원)어치 영화 쿠폰을 뿌려 영화 산업 지원에 나섰다. 특히 지난 21일 우한에서 열린 맥주 축제에서는 수천명이 참석해 마스크를 벗고 맥주를 마시거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기는 장면이 펼쳐져 외신들의 지적을 받았다. 우한이 성도로 있는 중국 후베이성에서는 지난 5월부터 해외유입이 아닌, 지역감염으로 인한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15일에는 우한의 한 수영장에서 대규모 파티가 열렸으며,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와 같은 군중 행사가 두달 넘는 기간 동안 봉쇄를 견딘 1100만 우한 주민에 대한 보상이라고 강변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서울 음식점·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방역수칙 1회만 어겨도 2주 영업정지

    서울 음식점·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방역수칙 1회만 어겨도 2주 영업정지

    학원·워터파크 등 5만 8353곳이 대상마스크 미착용 땐 구상권 청구하기로 서울시가 24일 0시부터 시 전역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음식점과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은 한 차례 방역 수칙 위반에 영업정지를 내리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방역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번 서울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에 따라 서울시민은 음식물 먹을 때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실내는 물론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23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이번 조치를 통해 마스크 착용이야말로 생활방역의 기본으로서, 한 명도 빠짐없이 실천하자는 경각심과 사회적 약속을 다시 한번 확립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직 마스크 착용 의무화 위반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 현재는 권고 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시는 위반자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를 할 예정이다. 마스크 미착용으로 인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청구한다는 의미다. 오는 10월 13일 마스크 의무화 조치 시 과태료 처분 규정이 반영된 감염병 예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시가 직접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에 따라 해당법 개정안상 규정된 최소 10만원의 과태료 부과도 13일 이후에 조치를 위반한 대상자에게 적용된다. 시 고위 관계자는 “오는 10월 12일까지는 과태료 부분은 안 되지만 구상권은 마스크 의무화 조치 시행 직후부터 가능하다고 판단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시는 현재 방역수칙 준수를 조건으로 집합제한 명령이 내려진 12종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실시한다고 밝혔다. 300인 미만 학원, 150㎡ 이상 일반음식점, 워터파크, 영화관, 공연장 등 다중이용시설 5만 8353곳이 대상이다. 시는 24일부터 자치구와 함께 현장 점검, 방역 수칙을 어긴 것으로 드러나면 한 차례 위반만으로도 곧바로 2주간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위반 행위의 심각성과 개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즉시 고발 조치와 300만원 이하 벌금 부과도 병행할 수 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구상권도 청구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성북구 ‘대한민국 만세! 마스크’ 독립유공자와 후손에게 기부

    성북구 ‘대한민국 만세! 마스크’ 독립유공자와 후손에게 기부

    서울 성북구와 성북구 봉제업체들이 제75회 광복절을 맞아 ‘대한민국 만세! 마스크’를 제작해 독립유공자와 후손과 보훈대상자에게 기부한다고 14일 밝혔다. 대한민국 만세! 마스크는 정부재난지원금 기부금으로 제작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 성북동 비둘기회, 김양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성북구협의회지회장, 윤재성 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위원장 협의회장, 황영선 성북구 통합방위협의회 위원, 황하연 새마을금고성북구협의회 회장이 기부 주인공이다.이들은 정부재난지원금을 지역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사용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사비를 보태 기부금 1000만원을 조성했다. 기부금을 논의 끝에 대한민국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분들과 후손들에게 전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여기에 성북구 봉제업체들도 힘을 보탰다. 성북구는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1600여 개의 중소 패션봉제업체가 밀집해있다. 이들 업체는 코로나19로 해외 판로가 막히는 등 극심한 위기를 맞았지만, 지난 3월 성북구가 마스크 수급 문제 해결과 봉제업체를 살리기 위해 추진한 ‘국민안심마스크’ 사업을 통해 기사회생한 바 있다. 성북구는 이날 지역 독립유공자와 후손 그리고 보훈관계자와 함께 성북구보훈회관에서 마스크 전달식을 진행했다. 해당 마스크는 성북구에 있는 9개 보훈단체로 전달돼 독립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후손 4500명에게 2매씩 배부할 예정이다.만해 한용운이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된 성북구는 이 정신을 이어받아 인촌로의 고려대로 도로명 변경, 지역 아동·청소년의 평화의소녀상 건립 해외도시 응원 운동, 일본제품 불매운동 챌린지 등 지역 구성원들의 지속적이며 다양한 역사바로세우기 노력을 이어왔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구에는 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거주하고 활동함으로써 이들의 정신이 오롯이 지역의 자산이 되어 면면히 흐르고 있다”며 “지역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마음을 모아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다음 세대와 함께하는 작업을 지속해서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경기도의회 민주당 “선조들 꿈꾼 자주독립 국가 위해 노력할 것”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대표의원 박근철, 의왕1)이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선조들이 꿈꾸었던 진정한 자주독립 국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의회 민주당 대변인단은 14일 논평을 내고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의 뜻을 되새긴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변인단은 “해방을 향한 험난한 길에는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홍범도, 유관순, 윤희순 등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이름 없는 민중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대변인단은 “1인당 국민소득은 2018년에 이미 3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10위권에 이르고 있다”면서 “방탄소년단으로 대변되는 한류는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고, 코로나19의 위기에 맞선 정부의 방역대책은 K방역으로 불리면 세계의 표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비판했다. 대변인단은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우리 민족에게 가했던 만행을 여전히 사죄하지 않고 있으며, 도리어 경제침략 등으로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깊게 똬리를 틀고 있고, 친일인사들이 버젓이 정치·경제·문화계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은 지난해 일본경제침략에 대항해 릴레이 1인 시위를 6월까지 지속했고, 일본경제침략대책비상대책단을 구성하여 일본으로부터 경제독립에 박차를 가했다”면서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경기도 곳곳에 자리 잡은 친일잔재들을 찾아내고, 일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독립운동가 교육활성화 조례’ 제정, ‘경기도 항일운동 유적 발굴 및 본조에 관한 조례’ 개정 등을 통해 선조들의 독립을 위한 헌신과 노력들을 청소년과 도민들이 잊기 않고 현재에 되새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변인단은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세계를 이끌고 있는 선도국가로 우뚝 서고 있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광복 75주년을 맞이해 선조들의 독립을 향한 희생과 헌신을 가슴에 새기고, 선조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복절을 보내는 아주 특별한 방법

    광복절을 보내는 아주 특별한 방법

    또다시 광복절이다. 빼앗긴 일상을 일제에게서 되찾아온 지 75년이 흘렀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삶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빼앗긴 들에 봄을 되돌려놓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일년 중 단 하루라도 당시의 기억을 환기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광복절일 것이다. 그러기에 딱 좋은 장소가 있다. 서울 중랑구의 망우리공원이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 많은 이들과 밀접 접촉을 하지 않고도 오롯이 선열을 추모하며 가족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여기에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으로 꼽히는 용마산, 먹거리 풍성한 우림시장 등이 매력을 더한다. ‘망우’(忘憂)는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애국지사들의 묘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온갖 걱정이 땀과 함께 사라지고 어느샌가 힐링이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호젓한 숲길 따라 애국지사의 삶과 만나는 공간 망우리공원이 처음 조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이다. 당시 망우리 고개에 70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공동묘지를 조성했고, 1973년까지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쓰였다. 일반인의 발걸음이 뜸했던 망우리는 2005년 망우리공원으로 새단장했고,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되며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망우리 고개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현재의 동구릉을 능지로 정하고 돌아오면서 “이제 근심(憂)을 잊게(忘) 됐다”고 말했다 해서 이름을 얻게 됐다고 전해진다. 먼훗날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잠들 것을 예상하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제대로 어울리는 작명을 한 셈이 됐다.망우리 공원에 잠들어 있는 애국지사 가운데 첫손꼽히는 이는 만해 한용운(1879~1944) 시인이다. 도산 안창호의 묘가 강남의 도산공원으로 이장되면서 현 망우리 공원의 최고훈격(대한민국장) 수여자가 됐다. 시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만해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다. 불교도들로 이뤄진 단체에서 항일 투쟁을 펼치다 안타깝게 광복을 1년 남겨놓고 별세해 망우리 공원에 안장됐다.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조봉암(1898~1959),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독립운동가 오세창(1864~1953), ‘어린이’ 단어를 처음 쓴 방정환(1899~1931), 문화운동 형태의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언론인 문일평(1888~1939), 도산의 비서로 의사(義士)이자 의사(醫師)였던 유상규(1897~1936) 등도 멀지 않은 곳에 잠들어 있다.□근·현대사와 만나는 다양한 탐방 코스 망우리 공원 탐방코스는 ‘역사문화코스’, 인문학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사잇길’ 등으로 나뉘어 있다. 두 코스 모두 길이 2.7㎞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을 천천히 산책하기 좋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놀이터와 인증샷 명소가 포함된 ‘역사문화코스’를 권한다. 13도 창의군 탑에서 시작해 박인환과 이중섭 묘를 지나 어린이 모험 놀이터를 통해 용마 테마공원으로 내려온 뒤 충익공 신경진 신도비에서 끝나는 코스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는 문구로 유명한 시 ‘세월이 가면’을 쓴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 등과 만날 수 있다.코스 중간의 ‘어린이 모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자연 친화적 소재로 만들어진 놀이기구가 많아 눈길을 끈다. 옛 놀이동산인 용마랜드는 인증샷 명소다. 폐업한 놀이공원으로 녹슨 채 멈춘 회전목마 등을 배경으로 레트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다만 입장료(1만원)을 내야한다.□서울의 화려한 야경과 만나는 용마산 핫 스팟 용마산은 서울 도심에 있으면서도 간혹 산양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다. 대도시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고의 풍경 전망대는 정상인 용마봉 아래에 있는 전망대다. 정상인 용마봉이 나무로 둘러싸여 시야가 제한적인 반면 전망대에선 북한산부터 남산, 한강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낮 풍경도 좋지만 황혼으로 물든 서울 도심과 별처럼 빛나는 도심의 밤 풍경도 빼어나다. 다만 길이 험한 만큼 꼭 등산화를 신고, 손전등을 챙겨 갈 것을 권한다. 용마정도 중랑구과 동대문 일대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가성비 좋은 우림시장-택배 서비스도 가능해요! 우림시장은 약 200여 개의 점포가 500m 거리에 밀집한 골목형 시장이다. 환경이 좋지 않은 재래시장이었으나 재정비 사업을 거쳐 깔끔한 시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림시장에는 값 싸고 맛 좋은 먹거리들이 많다. ‘정가네 홍두깨 손칼국수’는 우림시장을 대표하는 맛집 중 하나다. 홍두깨를 이용해 손으로 반죽한 면에 애호박 등을 곁들인 칼국수를 낸다. 어묵, 팥, 해물 등 취향에 따라 고를 수도 있다. 시원한 묵사발을 파는 ‘웰빙콩나물’, 곱창 전문점인 ‘서박사곱창’, 순대국으로 이름난 ‘우림 순대국’과 ‘소문난 순대국’, 능버섯 떡갈비를 파는 ‘떡갈비 1982’ 등도 단골이 많은 맛집이다.□어떻게 찾아갈까 망우리 공원은 1호선 청량리역 4번 출구의 청량리역환승센터에서 경기버스 65번, 167번, 51번을 타고 약 20분 이동한 뒤, 동부제일병원 정류장에서 하차해 15분 걸으면 나온다. 경의중앙선 망우역 1번 출구로 나와 용마공원 방향으로 걸어도 된다. 다만 20~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공원관리사업소 (02)2094-0114. 용마산은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 2번 출구로 나와 용마폭포공원까지 약 15분 가량 걸으면 중랑구 둘레길 진입로다. 정상인 용마봉까지는 등산으로 올라야 한다. 뻥튀기 공원에서도 오를 수 있다. 7호선 중곡역 1번 출구에서 뻥튀기공원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우림시장은 경의중앙선 망우역 1번출구로 나와 약 10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사진 서울관광재단
  • 다큐로, 콘서트로, 강연으로… TV서 항일의 역사를 만난다

    다큐로, 콘서트로, 강연으로… TV서 항일의 역사를 만난다

    EBS 봉오동·청산리 전투 다큐KBS, 박정현 등 참가 콘서트서3·1운동 100주년 기념곡 첫 공개JTBC도 비와이 ‘나의 땅’ 무대15일부터 광복 75주년을 기념하고, 항일운동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찾아간다. EBS 1TV는 광복절 당일 오후 5시부터 국방TV가 제작한 특집 다큐멘터리 ‘승리의 기억, 봉오동 전투’와 ‘독립군의 위대한 유산, 청산리 전투’를 연이어 편성했다. 다큐멘터리는 올해 두 전투 100주년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행적이 남아 있는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독립군 감시 문서가 있는 일본 외무성, 두 전투의 중심지였던 봉오동 골짜기와 청산리 일대를 훑는다. 1부에서는 독립군들이 스스로 ‘독립전쟁 제1회전’으로 칭하며 첫 승리를 거둔 봉오동 전투에 대해 살펴본다. 당시 의병 출신 홍범도 부대 등으로 이뤄진 독립군 연합부대는 1920년 6월 봉오동으로 집결, 유인작전으로 적을 가두고 허를 찌르는 기습 공격을 통해 일본군을 궤멸시킨다. 독립군의 전투력에 매우 놀란 일본군은 비밀문서에 “북간도 지역이 이제 곧 독립될 것 같다”고 적었다.2부에서는 독립군의 체계적인 군사교육과 무기 구매 과정을 살펴본다. 봉오동 전투 이후 일본의 대규모 토벌 작전에 맞선 독립군 부대들은 청산리 일대로 속속 모여든다. 청산리 전투 주역들은 1912년 우당 이회영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부터 1920년 북간도의 사관연성소까지 체계적 군사훈련을 받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은 독립군 정예장교를 양성하고 근대식 무기까지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10월 21일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3~4배 규모의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청산리 전투는 이후 항일 투쟁의 실질적 기반이 됐다. 방송은 당시 기록과 재현, 전문가 분석을 통해 6일간의 치열했던 전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KBS는 15일 오후 5시 30분 특집 콘서트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를 방송한다. 13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무관중 녹화로 진행된 공연으로 역사, 인물, 현대사 등 세 가지 테마를 통해 재일동포의 조국애를 돌아본다. 인순이, 포레스텔라, 김호중, 이봉근, 폴킴, 위키미키, 민영치 밴드 등이 무대에 오른다. 박정현은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작곡가 정재일과 만든 노래 ‘대한이 살았다’를 방송에서 처음 선보인다.JTBC ‘차이나는 클라스’는 오는 18일 오후 11시 ‘광복절에 읽는다, 육사와 동주’ 편을 꾸린다.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와 함께 190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을 대표하는 두 저항시인 이육사와 윤동주의 삶과 작품을 살펴보고, 래퍼 비와이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곡 ‘나의 땅’ 무대를 펼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다시 광복 펴다

    다시 광복 펴다

    일흔다섯 해를 맞은 광복절을 앞두고 잊힌 독립운동가를 기억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만화라면 좀더 다가가기 쉬울듯하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함께 일본의 만행을 잊지 말자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을 시로 풀어낸 재외 한국작가의 시집, 해방 후 혼란을 극복하지 못해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원자폭탄을 재건에 활용한 일본 등 주목할 만한 책을 다양한 장르로 추려 봤다.●잊힌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라 ‘의병장 희순’은 조선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다룬 만화다. 한양 선비 윤익상의 딸로 태어난 그는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으로 가문의 남성들이 의병에 참여하자 후방에서 식량 조달과 군자금 모집, 탄약 제조 등을 맡았다. 이어 여성 의병단인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노학당’을 운영하며 항일 전사를 양성했다. ‘조선독립단’을 조직해 무장투쟁에까지 나선 윤희순의 삶을 설득력 있게 그렸다. 민족의 암흑기에 이국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짧은 생애를 마친 김산(본명 장지락)은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린다. 신문기자인 님 웨일스가 1937년 중국에서 김산을 만나 불꽃같이 살았던 그의 삶을 기록했고, 1941년 미국에서 ‘아리랑의 노래’로 출간했다. 1984년 국내에 번역된 책을 박건웅 작가가 신간 만화 ‘아리랑’으로 다시 냈다. 의학을 공부하다 혁명을 위해 이국을 누비며 투쟁한 식민지 조선 청년의 고뇌와 투쟁이 깊은 울림을 준다. 잊힌 독립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이가 바로 약산 김원봉이다. 영화 ‘밀정’(2016)을 비롯해 다양한 각도로 그의 삶을 재조명하지만, 월북 행적 때문에 논란도 많다. 허영만 작가가 ‘독립혁명가 김원봉’으로 약산의 삶을 만화로 복원했다. ‘정의(正義)로운 일을 맹렬(猛烈)히 실행한다’는 뜻으로 붙인 의열단의 탄생과, 그들의 일제에 맞선 폭력투쟁, 광복 이후의 삶까지 생생히 담았다. ●여전히 생생한 피해자·가해자 증언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에밀리 정민 윤은 대학 시절 논문을 작성하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접하고 이를 시로 쓰기 시작했다. 그의 시 35편을 담은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은 남성성, 군국주의, 제국주의, 전쟁, 인종차별을 다룬다. 특히 7명 위안부의 증언을 시로 풀어낸 2장 ‘증언´에서 일제의 만행을 시로써 고발한다. 위안부로 시작한 그의 시는 현대에 벌어지는 성차별, 성폭력에 관한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닿는다. ‘악한 사람들’은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실험하고 죽인 731부대를 소환했다. 이제서야 “그때를 후회한다”고 하는 전범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악을 타자화하면 결국 타인을 악으로 만들게 된다”고 주장한 저자 제임스 도즈는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조직적, 구조적, 심리적 과정을 분석한다.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에 주목하다 ‘26일 동안의 광복’은 한국 현대사의 첫날인 1945년 8월 15일부터 조선총독부 청사에 성조기가 게양되는 9월 9일까지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일본 패망과 조선 해방을 직감한 여운형의 전화로 시작하는 해방 전야부터 송진우와의 좌우합작 시도까지 단 하루가 1부, 해방 이튿날부터 9월 9일까지 ‘분단’에 이르는 25일을 2부로 구성했다. 저자는 75년 전 가장 밝았던 광복, 그날 이후 25일간은 어둠이 빛을 삼켜 가는 시간이었다고 결론짓는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은 흔히 ‘잿더미’로 상징된다. 매년 3월에 열리는 도쿄대공습 추도식 전이나 8월 ‘종전의 날’이 다가올 때마다 미디어에서는 패전 당시에 촬영된 불탄 들판 사진 등 ‘잿더미’를 끌어온다. ‘‘잿더미’ 전후공간론’은 암시장으로 대표되는 당시 일본 사회와 각종 문학 작품을 통해 일본이 피해자 이미지를 부각하고, 동시에 ‘일본인은 이 비참함에서 다시 일어섰다’라는 서사를 생산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미화한 이미지가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의 현실을 가린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조국 품 안긴 독립유공자 후손들

    조국 품 안긴 독립유공자 후손들

    “중국에서 살 때도 할아버지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법무부장을 지낸 박찬익 선생의 외증손녀 송미령(31)씨가 ‘특별귀화’를 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송씨를 포함해 재외동포 독립유공자 후손 21명이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법무부는 1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을 열고 이들의 새 출발을 기념했다. 국적법에 따르면 정부의 훈장·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의 직계존속은 특별귀화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날 국적증서를 받은 독립유공자 후손은 송씨 외에 ▲중국 남만주에서 광복군총영 대장을 지낸 안홍 선생의 손녀 안병란(61)씨 ▲일제 밀정 이덕선을 처단한 강기운 선생의 증손자 강송철(53)씨 ▲쿠바에서 대한인국민회 구제원으로 활동한 이승준 선생의 증손자 프리에토리 아우렐리오(25)씨 ▲강원 양양군에서 농민조합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한 전창렬 선생의 증손자 리옌수(28)씨 등이 포함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수여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가교와 같다”면서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립유공자 후손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후손들이 한국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총 36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해 왔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은평, 일장기에 덧칠 ‘진관사 태극기’ 휘날리다

    은평, 일장기에 덧칠 ‘진관사 태극기’ 휘날리다

    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해체 및 보수공사 중 불단과 기둥 사이에 숨겨져 있던 태극기가 발견됐다. ‘진관사 태극기’가 다시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은평구는 제75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진관사 태극기(등록문화재 제458호)를 14일부터 15일까지 은평구 통일로 등 주요 간선도로에 게양한다고 12일 밝혔다. 진관사 태극기는 독립운동가인 백초월 스님이 사용한 태극기로, 발견 당시 독립운동자료들이 함께 발견돼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문화재다. 백초월 스님은 20년간 독립 자금을 모으고 일심회라는 비밀 항일 조직체를 만들었으며 일심교를 통해 전국에 독립정신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은평구는 백초월 스님 선양 사업의 하나로 2015년부터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에 진관사 태극기를 태극기와 함께 게양하고 있다. 또 2016년에 맺은 ‘백초월 스님 선양사업 공동추진 협약’에 따라 경남 고성군과 함양군이 함께 진관사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는 무엇보다도 일장기에 청색을 덧칠해서 만든 것으로 추정돼 일제의 탄압에 대한 강력한 저항 의식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불교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진관사를 비롯한 사찰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근거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진관사 태극기는 진관사와 불교계뿐만 아니라 한국 독립운동사의 실상과 그 의의를 새롭게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며 “은평구가 진관사 태극기를 품고 있다는 것에 주민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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