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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 통일 “포용적 자세로 검토”

    다음 달 2∼4일 열리는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 내외 등 남측 방북단이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는 방안을 정부가 적극 검토하고 있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의제 논란에 이어 정치권을 비롯한 국내 보수·진보 진영간 논란이 예상된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0일 정례브리핑을 갖고 노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관람에 대해 “남북관계 진전과 국민 의식 수준을 감안할 때 상호체제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 차원에서 좀 더 포용적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북측이 아리랑 공연 관람을 전체 일정 중 하나로 검토해줄 것을 현재 방북 중인 남북정상회담 준비 선발대측에 제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리랑 공연은 2002년 4월 고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행사로 시작돼 매년 개최되는 대규모 집단공연행사로, 학생과 근로자·예술인 등 총인원 6만여명이 동원돼 일제시대 항일투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카드섹션과 집단체조 등을 통해 펼쳐보인다. 이 장관은 “귀환 길에 노무현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문제를 북측과 현재 협의하고 있으며 아직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또 “공식수행원 숙소는 백화원초대소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특별수행원에는 김재현 한국토지공사 사장이 추가됐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영화 ‘자유부인’ 문화재 지정

    정숙한 가정주부의 일탈을 소재로 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자유부인’이 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1954년 서울신문 연재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와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현존 최고(最古) 영화 ‘미몽’(1936) 등 한국고전영화 7편이 문화재로 등록됐다고 17일 밝혔다. 광복과 항일을 소재로 한 멜로·액션영화 ‘자유만세’(1946), 국내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작 ‘시집가는 날’(1956)도 포함됐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서 활동하는 中 ‘반상의 철녀’ 루이내웨이 9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서 활동하는 中 ‘반상의 철녀’ 루이내웨이 9단

    장강삼협(長江三峽), 삼국지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도히 흐르는 장강(양자강)에 빼어난 경치의 서능협(72㎞), 무협(44㎞), 구당협(33㎞)을 말한다. 웅장함과 험준함, 오묘함이 극치를 이루는 대자연의 창조물이다. 위·촉·오 세나라가 삼협의 꼭짓점에 있었다는 것만 상상해도 어느 정도인지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1987년 여름, 장강의 삼협을 유영하는 선상(船上). 내로라하는 중국과 일본의 고수들이 참여한 바둑대항전이 벌어졌다. 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날 오후. 대표선수로 참가한 루이내웨이, 장쉬엔, 요다 노리모토, 이마무라 등이 숙소 근처에 산책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요다가 루이에게 속기바둑을 한번 두자고 불쑥 제안을 했다. 이어 둘은 흑백돌을 가리고 숙소 복도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요다 9단이 밝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해 속기바둑은 요다의 방에서 계속됐다. 가토 9단과 장주주 9단 등이 구경꾼으로 관전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루이를 찾는 전화였다. 중국 지도부에서 저녁회식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싼샤 사건´으로 日유학길 올랐다가 한국행 이튿날 바둑대항전은 모두 끝나고 중국팀이 합계성적에서 일본에 패했다. 그런데 루이는 중국 지도부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일본 기사의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훈령을 어겼다는 것이다. 앞서 중국 지도부에서는 “여류기사는 일본 남자 기사들의 방에 가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데다가 루이가 그걸 깜빡 잊고 요다의 방에서 바둑을 둔 것이 화근이었다. 동료 프로기사 장주주 9단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반성문까지 썼고 나중에는 국수전 등 주요 기전의 참가자격을 박탈당했다. 중·일 바둑계에서는 이를 샤(三峽)사건이라고 한다. 결국 견디다 못한 루이는 2년 뒤 장주주와 함께 중국 국가대표팀을 떠났다. 장주주는 미국으로, 루이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루이는 일본에서 살아 있는 전설 오청원(吳淸源) 9단의 제자가 돼 바둑공부를 더 할 수 있었으나 각종 기전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일본기원측이 루이가 일본 여류기전을 싹쓸이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6년을 그렇게 보내다 장주주와 결혼, 미국을 거쳐 1999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이듬해 조훈현 9단을 눌러 외국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수전 우승을 차지, 파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한국기원의 정식기사가 되면서 제2의 인생길을 걷게 됐다.“바둑 둘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집이다.”고 말하는 그는 자서전 ‘우리집은 어디인가’(마음산책)를 펴낼 정도로 비록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올해 44세의 루이내웨이(芮乃偉).18세에 중국 국가 대표선수가 됐고 35세에 9단으로 승단, 세계 바둑 역사상 여성으로는 최초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다. 그래서 세계 바둑계에서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의 여류기사”라는 찬사와 함께 ‘반상의 철녀’라고 부른다. 가을바람이 감미롭게 스치던 지난주, 서울 성동구 홍익동에 위치한 한국기원 프로기사 대국실에서 루이를 만났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라며 수줍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 도중 간간이 한자를 써가며 이해를 도와주려는 ‘친절한 철녀’였다. 한국생활이 어떠냐고 했더니 “(한국에 온 지)8년이 됐다. 프로기사 생활을 할 수 있는 한국이 좋고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이어 남편과 같은 방향의 바둑인생을 사는 게 즐겁다며 해맑게 웃었다. 자택도 한국기원 바로 옆에 마련했단다. 근황을 물었다. 대국이 없는 날에는 오전 10시쯤 기원 연구실에 나와 공부를 하거나 다른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지켜보고, 또 집에 돌아가서는 남편과 함께 복기(復碁)를 꼭 한다.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등과 기원에서 복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럴 때 점심식사를 기원 옆 작은 식당에서 하는데 하얀 쌀밥이 바둑돌로 보일 때가 많단다. 집에서는 바둑TV를 시청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기보를 검색한다. 남편과 바둑을 두면 누가 이기느냐고 했다.“남편은 내가 다음 돌을 어디에 둘지 아는 것 같고, 반대로 나는 그걸 잘 모른다. 그런 것으로 봤을 땐 내가 남편보다는 머리가 나쁜 것 같다.”며 웃는다. 알다시피 루이 부부는 세계 최강의 9단 커플이다. 한살 연상인 남편은 산시성(山西省)의 타이위안(太原) 출생으로 1978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1984년과 1985년에 벌어진 중·일 바둑대항전에서 일본의 고수들을 차례로 물리쳐 중국 국민들에게 ‘항일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세계최강 9단 커플… 한국기원 옆에 ‘둥지´ 루이와는 국가대표 시절 알게 됐고 싼샤사건으로 가까워지면서 결혼에 골인했다. 루이와 서울에 정착할 때까지 10년 넘게 외국을 돌아다녀 ‘바둑집시’라는 말도 듣는다. 루이는 “남편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 집에 DVD와 음향기기까지 설치해 영화감상을 자주한다.”면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함께 영화보는 재미가 그만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가대표를 떠난 10년 동안은 정말 무척 괴로웠지요. 특히 일본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노동으로 연명하며 견뎌야 했던 세월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에서는, 내몫이 아닌 것 같은 행복과 평화, 그리고 한국의 친구들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남편이 있고, 우리 집이 있고, 새로운 삶을 열어준 바둑친구들이 있어 아주 행복해요.” 한국의 바둑기사 중에서는 목진석 9단과 김승준 9단과 친하다. 특히 김성룡 9단, 박승철 5단, 김영삼 7단 등은 중국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기사실에 같이 있을 경우 한국말과 중국어를 섞어가며 열띤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기사 중에는 중국어를 비교적 잘하는 이지현 3단, 한해원 2단 등과 가깝게 지낸다. 루이 부부는 경희대 국제교육학원에 입학,2년여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한·중·일의 바둑수준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엇비슷하고 일본은 좀 어렵다.”면서 한국은 힘이 센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향의 가족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지난달 중국에서 양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했다.”면서 바둑은 어릴 적 아마초단인 아버지한테 배웠고 남동생이 아마5단의 실력이라고 귀띔했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루이는 평소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으로 집중과 인내력이 필요한 바둑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예 바둑선수가 되려고 체육중학에 진학했으며 1년반 만에 상하이 시대표에 발탁되면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남들은 전투형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어떻게 두는 것인지 잘 몰라 일단 싸움부터 걸다 보니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두터운 바둑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하얀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이 막힘없이 써내려갔다.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달팽이 뿔 위에 싸워서 무엇하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부싯돌 번쩍이듯 찰라에 기대 사는 몸.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부귀든 가난이든 그대로 즐길 일이니.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크게 웃지 않는 그가 어리석구나.-백거이(白居易)의 시 중에서.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3년 상하이 출생 ▲76년 상하이 체육중흥학교(바둑훈련반) 입학 ▲78년 상하이 시대표 ▲80년 중국 국가대표 ▲88년 여성최초로 9단승단 ▲90년 일본 유학 ▲99년 한국기원 객원기사 ▲2000년 제43기 국수전 우승 ▲01년 한국기원 정식기사
  • [서울광장] 정상회담, 꼭 ‘흥행대박’ 이어야 하나

    [서울광장] 정상회담, 꼭 ‘흥행대박’ 이어야 하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란 드라마의 개봉이 박두했다. 대선을 코 앞에 둔 10월초에 열리는 탓인지 벌써부터 극적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협연할 변주곡이 과연 대선 정국에 큰 파고를 몰고올 것인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이미 그 시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범여권 손학규 예비후보까지 “만에 하나 대선에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에서 정상회담을 하겠다면 노 생큐”라고 경계심을 표출했을 정도다. 노 대통령이 친노 후보를 위해 선거구도의 변화를 꾀할 것이란 추측일 게다. 흔히 선거는 구도와 바람에 좌우된다고 한다. 현 선거구도는 참여정부 경제실패론에다 열린우리당·민주당의 대통합 좌절로 인해 범여권에 불리해 보인다. 그래서 범여 주자들에겐 평양행 이벤트로 바람몰이에 나서고 싶은 유혹이 솔깃할 법하다. 일부 주자들이 앞다퉈 내놓는 대규모 대북 투자 공약이 그 증좌다. 이해찬 전 총리는 평양의 관문인 남포에 공단을 만들어 ‘대동강의 기적’을 견인하겠단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10개 정도 더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범여권의 움직임을 의식한 듯 이명박 후보도 어제 남북경제공동체협정 추진의사를 서둘러 발표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으로 인한 ‘쪽박 걱정’이나 ‘대박 예감’이 부질없기는 매한가지란 생각이다.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차 정상회담 성사를 발표한 직후 총선에서 여당은 참패했다. 거꾸로 2002년 2차 북핵 위기 속에 치러진 대선에선 야당의 이회창 후보가 무릎을 꿇었다. 정상회담이 야권에 불리하기 때문에 대선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난센스지만, 여권의 용들이 이를 승천의 디딤돌로 기대하는 것도 희망사항일 뿐일 듯싶다. 그렇다면 주연배우인 노 대통령부터 ‘흥행 대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남북은 평화와 공동번영, 그리고 통일을 이번 회담의 포괄적 의제로 이미 설정했다. 평화는 북핵과 군축, 평화체제 등이, 공동번영은 각론적 경협방안이 세부 의제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선 앞의 두가지 의제보다 통일 분야에서의 모종의 ‘화려한 합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임기말 대통령이 단번에 통일 방안에 합의하겠다는 것은 과욕이다.1972년의 7·4공동성명은 민족대단결에 대한 남북간 정반대 해석으로 효력을 상실하지 않았던가. 남북기본합의서는 완벽한 통일 로드맵이었으나,92년 발효되자마자 사문화됐다.2000년 정상회담에선 6·15공동선언 제2항을 통해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의 공통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북핵 실험 등 악재 속에 통일의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를 “자정이 지나면 좋든 싫든 찾아오는 새벽”에 비유했다.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북한의 개방을 촉진하는 이벤트를 이어가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통일은 남북 어느 한쪽이 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저절로 다가오진 않는다. 노 대통령이 정상간 잦은 만남으로 통일의 징검다리를 놓겠다는 실용적 자세로 임해야 할 이유다. 서독의 역대 총리들도 당적은 바뀌더라도 그런 취지의 ‘작은 발걸음 정책’을 이어가며 통독을 이뤘지 않았던가. 정상회담은 정치적 흥행 카드가 아니라, 통일을 향한 겸허한 발걸음이어야만 한다. kby7@seoul.co.kr
  • [일요영화] 붉은 수수밭

    [일요영화] 붉은 수수밭

    ●붉은 수수밭(MBC 일요영화특선 오후 12시30분) 중국의 5세대 감독인 장이머우가 1988년 만든 데뷔작 ‘붉은 수수밭’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기구한 생애를 살아가는 여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광활한 수수밭을 배경으로 중국 특유의 대륙 성향을 가열차게 뿜어내는 화면이 인상적이다. 가난이 죄.18세의 추알(공리)은 나귀 한마리의 몸값으로 나이 쉰이 넘은 양조장 주인 리씨에게 팔려간다. 남편 얼굴도 모르는 채 가마를 타고 신랑집으로 향하면서 추알은 즐겁지가 않다. 그저 가마 가리개 사이로 젊은 가마꾼들의 우람한 상체를 엿보는 재미로 시집가는 시름을 달랜다. 예식을 올린 후, 풍습대로 사흘째 되는 날 아버지와 동행해 다시 친정으로 떠난다. 앞서 가던 그녀는 수수밭에서 누군지 모를 사내에게 끌려가고, 그가 바로 남몰래 훔쳐보던 가마꾼 유이찬아오임을 알게 된다. 추알이 남편에게 되돌아왔을 때, 남편은 살해당해 있다. 과부가 된 추알은 혼자 힘으로 양조장을 꾸려간다. 유이찬아오는 그녀와 동침한 사실을 소문내고 새로 빚은 술독에 오줌을 누면서 말썽을 피운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이라며 추알이 머무는 안채로 들어간다. 유이찬아오가 오줌을 눈 고량주는 맛있는 술로 유명해져 ‘18리 홍고량’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9년 뒤. 추알과 유이찬아오의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일본군은 군용도로를 건설하겠다며 마을사람들에게 수수밭을 훼손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항일 게릴라에 가담했던 일꾼 라호안이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로 죽자, 마을 사람들은 분노가 폭발한다. 유이찬아오와 일꾼들은 수수밭에 폭파장치를 설치하고 고량주에 불을 붙이며 일본군에 맞선다. 이 와중에 추알이 일본군의 기관총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온통 불길에 휩싸이는 수수밭. 화염인지 핏물인지 모르게 수수밭이 점점 붉게 물들어간다. 인고의 세월을 살아간 한 여인의 삶을 그린 ‘붉은 수수밭’은 원색톤의 화면과 절제된 전통음악으로 주제를 잘 형상화한다.1988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몬트리올 영화제 특별상, 이탈리아 듀브린 영화제 최우수상, 중국 백화상 작품상, 중국 금계상 작품상, 프랑스 낭트 영화제 촬영상 등을 수상했다.90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4강전(2국)]강력한 우승후보끼리의 격돌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4강전(2국)]강력한 우승후보끼리의 격돌

    제1보(1∼18) 원성진 7단과 윤준상 6단의 준결승전 2국이다. 두 기사 모두 이번대회에서 손꼽히는 우승후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상대전적으로만 본다면 윤준상 6단이 5승3패로 약간 앞서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참고사항일 뿐 대국 당일의 컨디션이 승부를 결정할 것이다.윤준상 6단이 국수 위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중앙무대로 진출한 반면, 원성진 7단은 아직 타이틀을 따지 못했다. 원성진 7단의 출중한 실력을 잘 알고 있는 동료기사들은 원7단이 아직 무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불가사의한 일로 생각한다. 원성진 7단과 윤준상 6단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강펀치의 소유자들. 과거에는 약간 거친 승부호흡이 단점이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정교함까지 가미해 더욱 원숙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백6의 마늘모는 일본의 본인방 슈샤쿠가 흑번일 경우 즐겨 사용했다. 비록 발은 느리지만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그 장점이다. 그런데 과거 덤이 없던 시절에 유행하던 수법이,6집반의 큰 덤을 내는 현대바둑에서 그것도 백번일 경우에 종종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흑13으로 내려빠진 것이 정수. 실전과 같은 배석에서 (참고도1)의 정석을 택하는 것은 좌하귀 흑 한점이 약해지므로 좋지 않다. 백18이 강력한 절단.(참고도2)와 같이 둔다면 가장 무난하다. 결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두 기사의 기세가 초반부터 격돌하고 있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우리지역 명물] 우이동 ‘봉황각’

    [우리지역 명물] 우이동 ‘봉황각’

    우이동 산길을 오르다 보면 봉황각(鳳凰閣)’이라고 불리는 단아한 기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기와의 아름다운 선에 취하다 건물의 사연을 알게 되면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선열의 비장함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곳이다. 봉황각은 강북구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도선사 입구로 300m쯤 올라가다 길 왼쪽 양지바른 곳에 있다. 넓이 92.5㎡에 정면 5칸의 팔각 기와지붕 건물이다. 가운데에 시원한 대청이 있고 오른 편의 두 방은 돌기둥이 떠받쳐 방 안에서도 뜰이 잘 보이도록 했다. 소나무가 감싸고 있는 마당에서 ‘삼각산’을 바라보면 백운봉(백운대), 인수봉, 국망봉(만경대) 등 3개 봉우리가 뚜렷하게 보인다. 봉황각은 경술국치(庚戌國恥) 2년 뒤인 1912년 의암 손병희 선생이 “10년 안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당시 경기 고양군 수양면 우이동 땅에 세웠다. 산속 9만 2231.8㎡ 부지에 봉황각을 비롯한 13개동의 건물을 지었다. 이곳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젊은이 483명을 가르치고 수련시켰다.3·1운동 때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15명이 봉황각 출신이다. 최남선 선생은 봉황각에 한동안 머물며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애국지사들은 3·1운동 직전에 거사를 모의했다. 봉황각이라는 이름은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시에 나오는 ‘봉황’에서 따왔다. 봉황은 성인(聖人)의 탄생에 맞춰 세상에 나타나는 전설의 새로, 나라를 구할 인재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다. 현판은 중국 명필들의 필체를 빌려 수련생 출신 오세창 선생이 썼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봉황각만 두고 나머지 건물들을 모두 헐어 버렸다. 서울시는 봉황각을 선열의 뜻을 기려 유형문화재 2호로 등록했다. 강북구는 매년 3월1일 청소년 300여명이 솔밭공원에서 봉황각 입구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는 3·1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봉황각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도 한다. 봉황각에서 50m 떨어진 손병희 선생 묘소 앞에서는 주민을 위한 마당극, 택견 공연 등이 열린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中정부 조선족 인맥 끊어지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정부내 최고위 조선족인 이덕수(李德洙·64)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이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물러나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측근 인사로 교체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장관급인 이 주임이 정년으로 퇴진함에 따라 앞으로 당분간 중국에서 장관급 조선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현재 차관급으로는 지린성 당 부서기를 지내다 전국공상연합회 부주석으로 자리를 옮긴 전철수(全哲洙·55)씨와 지린(吉林)성의 김진길(金振吉·48) 부성장 등이 있다. 국장·부국장급으로는 중앙 정부에 8명 등 전국적으로 수십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과장급 이하 직급에선 조선족 공무원 수가 적어 갈수록 ‘고위직’ 조선족의 출현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 중앙민족대학의 황유복 교수는 “대학 졸업생들이 국가기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거 회사쪽으로 취직하고 있어 조선족의 관계(官界) 인맥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면서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80년대 즈음해 시작된 이같은 현상이 1992년 한·중수교로 더욱 본격화됐다.”고 전했다.●당, 관계진출 조선족 눈에 띄게 줄어 한국기업의 진출 및 한국인들과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적잖은 조선족들이 무역 및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공산당 및 관계진출 포기가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학 및 연구기관에 진출하는 연구직 조선족 수도 급감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과거에는 각 행정 부처마다 수십명씩의 과장급 이하 직원이 있었고 한두 명씩 국장급으로 승진하곤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행정분야에서 배출된 차관급 조선족은 20여명이나 된다. 특히 군에서는 9명의 ‘별’이 탄생, 행정분야에 비해 많은 공간을 확보해왔다. 은퇴한 조남기 전 후근부장은 가장 높은 계급인 별 3개의 상장에 올랐다. 조 전 부장은 중국 군부의 실세로서 그 뒤 부총리급인 정치협상회의 부주석까지 지냈다. 조선족 동포들 가운데 별 2개의 중장에 2명, 별 1개인 소장에 6명 등이 배출됐고 현재 소장에 2명이 재직 중이다. 지린성, 랴오닝성 등 동북지방에 집단 거주하고 있던 조선족들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군에서 더욱 고위급 인사를 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많이 희생됐거나 뒤에 북한군에 많이 편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9명의 장성 배출이 200만명 인구에서 이미 적은 숫자는 아니며 조선족들의 그간의 영향력을 상징한 것이라고 말했다.●과거와 같은 영화는 어려울 듯 베이징 조선족협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20대들은 60·70년대처럼 다시 학력과 공산당 입당 등을 중시하기 시작했지만 과거와 같이 조선족들이 당·정·군에서 비교적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덕수 주임의 후임에는 후 주석이 총애하는 양촨탕(楊傳堂·53)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이 승진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양 부주임은 후 주석이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서기를 맡던 1980년대 초반 지루(齊魯) 석유화학공장과 산둥(山東)성의 공청단 지도자를 함께 지냈다.jj@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김봉현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김봉현 선생 별세

    광복군에서 항일 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김봉현 선생이 16일 오후 별세했다.87세. 평북 용천 출신인 고인은 1942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이듬해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지하공작원으로 임명돼 초모(징집)공작 활동을 했다.63년 대통령표창,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 황갑여 여사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이화여대 동대문 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7시.(02)760-5595.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1) 해인사 홍제암 석장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1) 해인사 홍제암 석장비

    아무리 명품 청자나 백자라도 금이 가거나 수리한 흔적이 있으면 골동품시장에서 쳐주는 값은 크게 떨어지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온전했을 때보다 깨진 뒤 더욱 높은 값어치가 매겨지는 옛 사람의 자취도 없지는 않습니다. 경남 합천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비가 그렇습니다. 홍제암은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친 뒤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나타나지요. 예전에 해인사에서 홍제암에 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지만, 이제는 대형버스도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 닦였습니다. 홍제암은 임진왜란 당시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었던 나라를 구해낸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입적(入寂)한 곳입니다. 광해군은 대사에게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를, 영정을 모신 영자전에는 홍제암(弘濟庵)이라는 편액을 내렸습니다. 대사를 기리는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는 홍제암 오른쪽의 부도밭에 세워져 있지요. 그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종 모양의 소박한 부도는 홍제암 뒷동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612년(광해군 4년)에 세워진 석장비는 높이 3.15m의 당당한 모습이지만,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비석 한가운데가 열십자(十) 모양으로 쪼개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장비가 중요한 것은 사명대사의 일생을 어떤 기록보다 소상히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의 책방에 나와 있는 사명대사 전기는 대부분 이 비문에 나타난 삶의 궤적을 뼈대로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이 교산 허균(1569∼1618)이라는 것도 석장비의 가치를 높입니다. 한글 소설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조선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홍길동전’을 쓴 바로 그 사람이지요. 교산은 비문에서 “나는 비록 유가(儒家)에 속하는 무리이지만, 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누구보다 스님을 깊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산의 비문에는 당시 사명대사에 대한 뜻밖의 시선도 드러나 눈길을 끕니다.‘대사가 중생으로 하여금 혼돈의 세계인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일을 등한히 하고, 구구하게 나라를 위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살생을 금하는 불법의 수호자로 병장기를 잡아야 했던 사명대사의 고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을 것 같습니다. 석장비는 일제강점기인 1943년 합천경찰서장이었던 다케우라(竹浦)가 네동강냄으로써 역사적 가치는 오히려 극대화되었습니다. 일경은 이때 이고경 전 주지를 비롯해 해인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17명의 항일불교인사를 체포하는데, 이른바 ‘해인사사건’입니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에 귀중한 보물이 있느냐.”고 묻자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가장 귀한 보물로 알고 모두 노리고 있다.”고 일갈한 사명대사의 기개가 해인사에 ‘불온한’ 분위기를 조성한 주범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앞서 일경은 1942년 항일 불교청년운동 조직인 만당(卍黨)의 근거지이자, 독립운동자금의 조달창구였던 백산상회의 연락소였던 사천 다솔사를 급습했지요. 다케우라는 합천에 부임하기 직전 사천경찰서장이었다니 두 사건을 모두 일으킨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석장비는 1958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영원히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남았지만, 이 상처가 없었다면 석장비가 주는 감동은 조금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dcsuh@seoul.co.kr
  • [기고] 자주독립정신 되새기는 광복절 아침이기를/김정복 국가보훈처장

    광복 62주년을 맞는다.1945년 8월15일. 광복의 감격은 어느 수필가의 글처럼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았다.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우리 선열들은 50여년에 걸친 길고도 험난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의병의 활약,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3·1운동, 의열투쟁, 무장투쟁,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학생운동, 문화운동, 외교활동 등으로 광복을 맞는 그날까지 피어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미주와 유럽대륙, 심지어 일본 열도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항일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선열들은 이 나라의 어둠과 울분시대에 겨레의 한을 대신한 한줄기 의로운 빛이었다. 그 암흑 속에서도 선열들은 조국 광복의 일념으로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조국을 사랑한 마음과 앞날을 예언한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는다.”는 예언을 했고,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역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이끌어가고 또 계승해 가는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준 열사는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해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남겼으며, 이상설 선생은 “동지들을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늘 우리에게는 선열들의 이러한 나라사랑, 독립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조국의 자유, 인류의 평화가 모두 그 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 예우하는 ‘보훈’을 국민통합을 이루는 국가의 근본정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 전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정부대표로 방문한 네덜란드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헤이그에서는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과 헤이그특사 파견 100주년을 기리는 거리축제와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헤이그시는 7월14일을 ‘이준 평화의 날’로 선포하고 이준 문화유적지 지정 등 열사의 숭고한 뜻을 널리 알렸다. 이렇듯 네덜란드에서는 100년 전 온갖 수모를 당하며 자국의 독립을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한 타국의 특사라도 그 숭고한 정신에는 뜻을 함께하였던 것이다. 자유와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국경을 떠난 ‘보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올해는 민족혼의 산실인 독립기념관 개관 2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광복절을 기해 개관 20주년 기념행사와 더불어 제4관 ‘겨레의 함성’이 새롭게 단장하고 문을 연다. 앞으로 많은 국민이 달라진 독립기념관에서 8·15의 감격과 국난극복의 역사를 되새기고 통일과 선진조국의 꿈을 키웠으면 한다. 역사는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거울이다.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선열들이 보여 주었던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국민통합과 진정한 민족공동체정신이 필요한 이때 8·15 광복절을 맞아 선열들이 보여준 독립투쟁과 사상,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신명을 바쳤던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의 한 소절에 등장하는 무궁화는 이땅에서 일찍이 ‘나라꽃’이었다.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겨졌고,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이라 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실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진 근거는 법으로 명시된 바 없다. 국회의 인준기록도 없다. 그러나 예부터 한반도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꽃이 아름답고 꽃피는 기간이 길어서 우리 민족의 오랜 사랑을 받아 온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무궁화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일본인들에 의해 뽑히고 잘리는 등 큰 수난을 당했다. 이후 민족의 꽃, 나라의 꽃으로 누구나 믿게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궁화가 국화로서 부적합하다는 논란도 있다.38선 이남에 주로 피는 꽃이라는 지역적 한계성과 수명이 100일 정도로 짧다는 단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궁화는 국가기관의 문양 등에 사용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마케팅에도 여전히 자주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의 3권인 행정부와 사법기관인 법원, 그리고 입법기관인 국회는 무궁화 안에 약자를 넣어 문양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각종 훈장과 계급장에도 무궁화가 사용된다. 국가에서 수여하는 훈장 중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이 ‘무궁화대훈장’이다. 국화로서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7~8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선을 보이는 무궁화는 현재 한국에서만 200여종의 품종을 가지고 있다.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의 세 가지로 나뉘어 진다. 품종의 이름 또한 ‘새빛’ ‘눈보라’ ‘옥토끼’ ‘화랑’ ‘수줍어’ 등 한국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궁화는 현재도 농촌진흥청 산하 원예연구소 등에서 교배활동을 통한 품종개량이 꾸준히 진행 중이다. 식민지시대에 일제의 ‘문화정치’에 대항하여 여성의 민족해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항일단체인 ‘근우회’. 현재는 한복에 무궁화 수를 놓는 작업 등의 무궁화홍보와 함께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을 표방하며 여성의 지위 향상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희자 회장은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혼이며 바로 우리 민족의 모습 그 자체다.”라며 무궁화 예찬을 펼친다. 나라꽃은 민족의 정신적 상징이며, 혼이다. 선열들은 한 떨기 무궁화에서 나라를 찾기 위한 힘과 용기를 얻었다. 꽃속에 스며있는 겨레의 혼과 정신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대한 것이기에. 예순두돌 광복절을 맞아 국민 모두의 무궁화 사랑을 기대해 본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이자해선생등 독립운동가 290명 포상

    국가보훈처는 62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 강점기 내몽골 지역에서 의사 신분으로 광복군 활동에 참가한 이자해(1895∼1967) 선생 등 290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고 13일 밝혔다.훈·포장 대상자는 건국훈장 166명, 건국포장 35명, 대통령 표창 89명이며 생존자 2명과 여성 3명이 포함됐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게 되는 이자해 선생은 내몽골 지역 독립운동을 펼친 의료인으로 1926년 중국 난징에서 국민당 정부의 북벌군에 참여한 뒤 산시성, 내몽골 일대에서 국민당군 소속 군의관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내몽골 지역에서 항일독립 운동이 확인돼 훈장이 수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보훈처는 설명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독립유공자 후손 32명 한국국적 취득

    법무부는 14일 독립유공자 후손 32명에게 특별귀화증을 수여한다. 특별귀화를 허가받은 사람 가운데는 1919년 간도에서 철혈광복단을 조직한 최이붕 선생의 손자 최창만(67)씨, 의열단 활동을 펼친 정두희 선생의 손자 정민섭(57)씨, 대한독립단 단원 최일엽 선생의 손자 최창익(54)씨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중국 국적자가 31명, 일본 국적자가 1명이다. 일본국적자인 무라카미 후쇼(18)군은 1940년 부산에서 열린 경기대회에서 일본인 심판진의 편파 판정으로 일본 학교가 우승한 것에 항의해 ‘조선독립만세’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주도한 정두열 선생의 후손이다. 중국 길림성 서란시 출신인 최창익씨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일가족 18명이 한국에서 고생했다.”며 “소식을 접한 뒤 큰형과 팔달산에 올라가 종을 치며 ‘할아버지를 되찾았다.’고 소리질렀다. 항일투사이지만 대한독립을 위해 싸웠기에 중국에선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특별귀화 과정에선 다소 까다로운 심사절차에 귀화자들의 불평도 흘러나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여걸 3인’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키기 위해 만주벌판을 떠돌았던 것은 남성들만이 아니었다. 많은 여성들도 대륙을 떠돌면서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KBS 1TV ‘시사기획 쌈’은 광복 62주년을 맞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항일 투쟁을 조명한다.13일 오후 11시30분 ‘장강일기(長江日記) 임시정부 3인의 여걸’편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김구 선생이 ‘한국의 잔다르크’라 부르기도 했던 정정화 여사는 1921년 상하이로 망명한 뒤 임시정부가 옮겨 다닐 때마다 따라다니며 살림을 도맡았다.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하고 돈을 치마폭에 숨긴 채 압록강을 건넌 것도 무려 여섯 차례. 임정요원들 가운데는 정정화가 지은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에게 “최후까지 떳떳하게 죽음을 맞으라.”는 말을 전했다. 이에 안 의사는 상고를 거부한 채 처형당한다. 이후 조 마리아 여사는 러시아와 중국을 떠돌며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뒷바라지하며 독립운동계의 대모 역할을 했다. 박차정 여사는 1930년 베이징으로 망명한 뒤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을 맡아 활동했고 대장인 김원봉과 결혼까지 한 인물.1939년 강서성 곤륜상 전투에 참가해 부상당했고 이후 김원봉과 함께 임정에서 활동하던 중 부상 후유증으로 결국 34살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독립기념관 ‘세계 반침략 평화선언’ 채택

    독립기념관은 6일 “개관 20주년을 맞아 8∼9일 기념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세계 6개 평화기념관 대표들과 함께 ‘세계 반침략 평화선언’을 채택한다.”고 밝혔다. 평화선언엔 독립기념관 외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국가기념관, 인도 네루기념관, 러시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 중앙박물관, 중국 인민항일전쟁기념관, 중국 9·18역사박물관 등이 참여한다. 평화선언서는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을 갈망하는 전 인류의 이름으로 지구상에서 평화를 깨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전쟁과 테러, 폭력과 인권유린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삼웅 독립기념관 관장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 등 21세기 들어 새롭게 감돌고 있는 침략주의 기운에 대해 다시는 과거와 같은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계 평화기념관들의 뜻을 모은 것”이라고 선언의 의미를 설명했다. 각국 평화기념관 대표들은 또한 9일 독립기념관 ‘통일염원 동산’에서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염원의 종’을 23회(인질 23명 상징) 타종하고 풍선 4700개(4700만 국민 상징)를 띄우는 행사를 진행한다. 김 관장은 “9일까지 납치된 인질들이 풀려나지 않을 경우 6개 평화기념관 대표들이 모두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전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피살 심성민씨는 누구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피살 심성민씨는 누구

    “항상 말없이 따뜻하게 웃어 주셨는데…. 믿기지 않는다.” 아프간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살해당한 심성민(29)씨가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뇌성마비 장애인 김민지(27)씨와 조혜숙(37)씨는 31일 갑작스러운 비보에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선생님은 친구처럼 오빠처럼 웃음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며 울먹였다. 조씨도 “나이는 어리지만 좋은 선생님이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너무 놀라 밥도 먹지 못했다.”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심씨는 지난해부터 정신지체, 뇌성마비, 다운증후군 장애인들의 모임인 샘물교회 ‘사랑부’에서 자원봉사 교사로 활동했다. 방송 속보를 보고 이날 오전 4시40분 샘물교회에 나온 심씨의 어머니 김미옥(61)씨는 “살려주세요. 왜 죽여요. 빨리 살려주세요. 우린 못살아요.”라며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씨는 TV를 통해 언론 보도를 지켜보다 끝내 실신해 사무실 옆 휴게실로 옮겨져 링거를 맞기도 했다. 아버지 심진표(62·경남도의회 의원)씨는 이날 오후 “30년을 키운 아들이 어미·아비 옆을 떠난 것에 대해 부모로서 할 말이 없다.”고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2남1녀 중 장남인 심씨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진주고, 경상대를 졸업한 뒤 2003년 학생군사훈련단(ROTC) 중위로 예편하고 성남시에 있는 정보기술(IT)업체에서 구매 관련 일을 해왔다. 최근에는 농촌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농업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었다. 청송(靑松) 심(沈)씨 10대 종손인 그는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다. 그의 할아버지 심재인(1918∼1949)선생은 1938년 일본 나가사키(長崎縣) 소재 간조농학교 재학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체험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40년엔 나가사키 간조시에서 비밀결사 재일학생단을 조직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였다. 노태우 정부는 이런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심씨의 아버지는 25년간 새마을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KBS 기자 출신의 작은아버지도 훈장을 받았다. 심씨는 봉사활동을 떠나면서 동생 효민씨를 제외한 가족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에 따르면 심씨는 평소 교회에서 장애학생들을 돌보는 청년부 교사로 일하면서 해외봉사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이번 봉사활동은 지난해 8월 회사 동호회원들과 다녀온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 해외봉사활동이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李 “대세론 깨질라” 朴 “역전론 꺼질라”

    李 “대세론 깨질라” 朴 “역전론 꺼질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이명박·박근혜 후보측이 경선 막판 변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변수에 따라 ‘이명박 대세론’이나 ‘이명박 필패론’이 허망한 꿈이 될 수 있어서다. ●고령자들 朴, 40대는 李 한나라당 경선 선거인단 중 일반 국민 선거인단에 50대·60대 이상 고령층이 많이 포함된 것이 최대 변수다. 이 연령층이 인구 구성 분포(31.8%)의 2배 정도인 60.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은 40%에 달한다. 여론조사에서 ‘40대·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는 이 후보에 비해 ‘50대 이상·저학력층’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박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와 관련, 박 후보는 31일 여의도 캠프사무소에서 열린 선거대책회의에서 “국민참여경선단에서는 앞섰고, 당원에서도 앞서기 시작했다. 대의원에서도 곧 역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후보측은 “박 후보측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후보측 박형준 공동대변인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60대 이상에서도 이 후보가 이기는 걸로 나온다.”며 “역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합동유세, TV토론 3~4% 지지율 좌우 이 후보측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다. 후보의 메시지 전달력에 따라 당일 투표에 3∼4%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 후보측이 남은 합동유세와 TV토론회에 ‘올인’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박 후보측은 남은 합동유세에 지역별로 아이디어를 모아 현장에서 분위기를 몰아간다는 계산이다. 각종 재보선에서 그 위력을 확인했다는 ‘박풍(朴風)’을 이번에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이 후보측은 “이미 대세는 결정났다.”는 분위기다. 이 후보측의 한 관계자는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박 후보와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후보측은 합동연설회 안팎에서 상대 후보가 의도적으로 일으킬 ‘돌발사태’ 발생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 후보를 흑색 선전하기 위해 이 후보 반대세력들이 폭력 등 물리력을 동원하는 등 ‘깜짝 쇼’를 벌일 가능성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3차례 남은 TV토론회에 한두 차례 도입될 UCC 질의응답도 두 진영을 긴장시키는 대목이다. 비방성 질의가 후보 질문용으로 선택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동영상이 그대로 인터넷에 공개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이 예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수사는 양날의 칼?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가 박 후보 측근들을 상대로 한 고소를 취소했으나 검찰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가급적 8월19일 한나라당 경선 전에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두 후보진영은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특정 후보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사결과나 일방적 타격을 주는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적절히 수위를 조절하며 ‘경선 이후 카드’로 남겨둘 가능성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박헌영 부인 주세죽씨 ‘건국훈장 애족장’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정 박헌영(1900∼1956)의 첫번째 부인인 주세죽(1901∼1955)씨에게 한국 정부가 제62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키로 했다. 주러 한국대사관은 정부를 대신해 오는 8월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주씨를 대신해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 그녀의 딸 박 비비안나(79)씨에게 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주씨는 3·1운동에 참가했다 체포돼 1개월간 수감됐으며 허정숙, 박원희 등과 함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 조선여성해방동맹 등을 결성해 활동했다. 1921년 상하이(上海)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던 그녀는 박헌영을 만나 결혼하게 되며 상하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하게 된다. 주씨는 27년 최초 여성단체인 근우회를 결성, 일제강점기 항일구국운동과 함께 여성 지위향상 운동을 벌였다. 주씨는 모스크바에서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어머니의 훈장 수여 소식을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전해들은 박씨는 “한국 정부에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연합뉴스
  • [다시 보는 선데이서울] 깜짝 잠적소동 이경진

    [다시 보는 선데이서울] 깜짝 잠적소동 이경진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 표지모델편 ⑭] “마음을 정하니까 홀가분해요. 이 판국에 갈 곳이 어디 있겠어요? KBS-TV죠. MBC를 잊을 순 없어요.” 1978년 10월22일자 선데이서울 표지 기사에 등장한 이경진은 결국 KBS로 옮겨가기로 한 결심을 밝혔다. 데뷔 3년차의 햇병아리(75년 MBC 탤런트 7기)였던 그녀는 그해 9월 KBS-TV 일일연속극 <자매들>의 녹화를 펑크 내고 잠적하는 소동을 벌였다. <제3교실> <신부일기> <타국> <왜그러지> 등의 연속극에 출연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KBS-TV의 일일연속극 <자매들>에 출연하면서 MBC와 불화를 빚기 시작한다. 유망주로 손꼽혔음에도 불구하고 MBC에서 주인공은 커녕 성격에 맞는 역할 한번 얻어 보지 못했던 차에 <자매들>의 배역이 마음에 들어 덜컥 수락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자매들>에서 큰 인기를 끌어, KBS는 후속작인 <기러기>에도 출연을 요청했고, 이에 질세라 MBC 역시 새 드라마 <연지> 출연을 제의했다. 그런데 그녀가 <연지> 출연을 거절하고 <기러기>를 선택하면서 MBC와 KBS의 격렬한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그 때문에 속이 상한 그녀는 탤런트생활을 그만 둘 생각까지 하고 기도원에 들어갔었단다. 이틀 만에 다시 녹화장에 나와 문제가 해결되긴 했지만 햇병아리의 잠적은 두 방송사의 PD들을 모두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83년 백상예술대상 TV 여자최우수연기상을 받는 등 30년간 꾸준히 안방극장 시청자 곁을 지켰다. 82년 7월엔 프로야구 원년 올스타전의 시구(始球)를 해 야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던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25년 전 그 얼굴과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가 50대(1956년 10월 2일생)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골프다. 10여년 전 시작해 이제는 80∼85타를 칠 정도로 자타가 인정하는 수준급 실력이란다. 매일 오전 거르지 않고 골프 연습장에 나가고 대학도 골프학과를 다녔을 정도로 배움에도 열심이다. 연기생활 30여년. 그녀는 이제 은은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조연으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은 항일운동과 청춘 로맨스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으로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KBS 2TV 드라마 <경성스캔들>에 출연하고 있다. 여자 혼자 몸으로 바느질일을 하며 독립투사 나여경(한지민 분)을 키워낸 강한 어머니 최학희여사 역을 맡았다. 그녀는 결혼할 기회도 여러 번 있었으나 아직 진짜 인연을 만나지 못한 독신이다. 지금까지는 감칠맛 나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만 했으니, 앞으로 감칠 맛 나는 사내를 만나 행복꾸러미를 왕창 받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표지=통권 518호 (1978년 10월 22일) 박희석 전문위원 dr3930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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