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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7) 북한산성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7) 북한산성

    북한산은 북한산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북한산성이 북한산이라는 천연의 요새를 최대한 이용해 축조된 까닭이다. 백제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산성은 1711년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개축됐다. 당시 산성은 14개의 성문과 120칸의 행궁, 140칸의 군창 등이 있어 유사시 수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북한산성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우리 역사의 아픔과 북한산의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산길이다. 총 14개의 성문 중에서 능선에 있는 12개의 성문을 거치기 때문에 흔히 ‘12성문 종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겨울철에 산성 일주는 무리이고, 원효봉과 의상봉을 중심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산성계곡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북한산성 최고의 전망대 원효봉 구파발 인근의 효자리 마을회관 정류장에 내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펑퍼짐한 원효봉이 눈에 들어온다. 원효봉은 전체가 암봉이지만 생김새가 후덕해 정이 가는 봉우리다. 마을을 지나서 원효암 안내판을 만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붙으면 첫 번째 성문을 만난다. 산성 안의 시체가 나오는 문으로 알려진 시구문(서암문)이다. 시구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성길이 시작되고 15분쯤 가면 원효암에 닿는다. 근처에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원효대가 있다고 해서 원효암이란 이름이 붙었다. 원효암을 지나면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쇠 난간을 잡고 암봉에 올라서면 탄성이 터져나온다. 그동안 막혀 있던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 까닭이다. 돌불꽃으로 치솟은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836.5m)가 하늘을 불태울 기세고, 멀리 도봉산 오봉이 어른거린다. 암봉에서 내려서 솔숲을 통과하면 원효봉 정상이다. 이곳은 온통 암반이라 정상 자체의 품격도 뛰어나지만, 조망 또한 북한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백운대·만경대·노적봉이 어울려 눈부신 성채를 이루고, 그 오른쪽으로 대동문~문수봉~용출봉~의상봉까지 북한산성을 구성하는 주요 봉우리와 성문이 조망된다. 험준하기 짝이 없는 화강암 봉우리들을 연결한 산성은 가히 하늘이 내린 난공불락의 요새다. ●산성에 얽힌 뼈아픈 역사 1711년의 북한산성 증축은 사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었다. 병자호란의 뼈아픈 굴욕을 당한 후에 수도 한양에 가까운 철옹성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북한산성은 안타깝게도 실전에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못했다. 북한산성은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한 자들은 오히려 외세였다. 산성 내 축조되어 있던 시설물들을 철저하게 파괴한 자들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산성이 항일무장투쟁의 본거지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진압이 어려울지를 훤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효봉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북문에 닿는다. 북문은 지붕이 사라져 뼈대만 앙상하지만 홍예문의 무지개 곡선이 우아하다. 북문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면 상운사를 스쳐 대동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계곡을 건너 북장대 능선을 따르는 것이 이번 산길의 핵심이다. 10분 정도 오르면 적석고개에 닿고 하산하면서 노적봉이 기막히게 보이는 훈련도감터와 노적사를 차례대로 만난다. ●김시습이 시를 썼던 산영루 노적사에서 내려오면 산성계곡을 만난다. 행궁, 절, 군창 등 북한산성의 주요 시설물이 자리잡은 넓고 평탄한 계곡이다. 15분쯤 오르면 비석거리가 나온다. 비스듬히 누운 암반에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비석들은 당대 북한산성 총사령관들의 선정비가 대부분이다. 비석거리 앞 계곡에 정자 주춧돌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유명한 산영루다. 기록에 의하면 산영루는 산성계곡 최고의 절경인 향옥탄을 바라보고 있고, 김시습이 하루 종일 시를 써서 계곡물에 띄워 보냈다고 한다. 산길은 산영루 터에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면서 중성문을 지난다. 중성문은 북한산성 안의 내성(內城)으로 순한 계곡길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어 법용사에서 왼쪽 길을 택해 국녕사를 지나면 가사당암문이다. 의상능선에서 가장 험준한 나한봉, 증취봉, 용출봉을 건너뛴 것이다. 암문에서 지척인 의상봉에 오르면 넓은 암반이 펼쳐지고, 산성계곡이 손금처럼 훤히 보인다. 하산은 의상봉에서 급경사를 조심조심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대서문에 닿는다. 효자리~원효봉~북문~적석고개~비석거리~의상봉~대서문 약 7㎞, 3시간가량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704번 파란색 버스를 탄다. 북한산성 입구 다음 정류장인 효자동 마을회관에서 내린다. 하산 지점인 북한산성 산성마을에는 뒤풀이 장소가 넘쳐난다. 이곳 식당들은 대부분 양미리구이를 파는데,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한 접시 5000원.
  • [부고] 애국지사 성창환 선생 별세

    일본 유학시절 항일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성창환 선생이 20일 오후 10시30분 별세했다. 92세. 1917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본 야마구치 상업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39년 2월 같은 학교생 유재우, 민병구, 황계주 등과 조선인 학생 친목단체인 ‘여우회(麗友會)’를 항일결사 조직으로 개편했다. 선생은 이 조직을 중심으로 일제의 식민정책인 내선일체와 조선어 폐지, 일본식 성명 강요, 지원병 제도 등을 반대하고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선생은 독립정신 고취활동 등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발각돼 1940년 7월 체포됐으며, 1년여 구금상태로 조사받다가 1941년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성규영 인하대 겸임교수 등 2남 2녀.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3묘역. 발인 23일 오전 7시. 빈소 삼성서울병원. (02)3410-6917.
  • 홍준표 “개각 내주초나 2월이후 해야”

    홍준표 “개각 내주초나 2월이후 해야”

    개각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개각을 늦추려면 2월 임시국회 상황을 고려해 아예 2월 이후에 개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나라당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16일 “설 연휴 이후 개각을 한다면 2월 임시국회에서 장관 인사청문회를 해야 한다.”면서 “2월에는 쟁점법안 처리에 당력을 모아야 하는데 인사청문회와 얽히면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현 정부 인사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면 미디어관련법을 비롯한 쟁점법안 처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개각을 한다면 늦어도 내주초에 단행하든가, 아니면 아예 2월 이후에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이런 의견을 15일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여당 원내사령탑으로서 국회 일정과 여야 대치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여겨진다. 홍 원내대표는 장관 내정 후 20일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끝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지금 개각을 하면 2월 첫째주까지 인사청문회를 끝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무위원은 청문 대상에는 포함되지만, 국무총리와 달리 국회 인준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회가 여야간 이견으로 20일이 지나도 인사청문결과보고서를 송부하지 못하면 대통령은 결과보고서 없이 국무위원을 임명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10일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다시 요청할 수 있지만, 이는 대통령의 재량사항일 뿐이다. 2월 둘째주부터 대정부질문이 예정돼 있고, 본격적인 ‘2차 입법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야당의 공세가 예상되는 인사청문회까지 겹치면 여권으로서는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여권으로서는 향후 정치 일정상 쟁점법안을 반드시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입장이다. 3월에는 예정된 임시국회가 없고, 4월에는 국회의원 재·보선이 실시되기 때문에 사실상 2월 임시국회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에 따라 여권 일각에서는 “설 이후 꼭 필요한 부처를 대상으로 부분 개각을 하고, 대폭적인 개각은 6월쯤으로 미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모닝 브리핑] 北 ‘항일 빨치산’ 출신 김익현 차수 사망

    북한의 ‘항일 빨치산’세대 막내로 ‘혁명 1세대’로 분류된 김익현 차수가 사망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차수 김익현이 오랜 병환 끝에 15일 19시에 87살을 일기로 서거했다.”고 전했다. 김 차수는 황해북도에서 태어나 광복 전 김일성 주석과 항일운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때는 북한 인민군 제2사단 제1연대장을 맡았고, 1972년 인민군 중장으로 제4군단장을 역임했다. 1977년 인민무력부 부부장, 1991년 노동당 민방위 부장에 임명됐으며, 1994년 차수 계급을 받았다. 2003년부터는 최고사령부 검열관이라는 명예직만 지녀왔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기고] 좋은 물 확보가 4대강 살리기 관건/윤병만 명지대 토목환경공학 교수

    [기고] 좋은 물 확보가 4대강 살리기 관건/윤병만 명지대 토목환경공학 교수

    최근 정부의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본격 추진에 대한 보도 이후 이 사업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연관성,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란으로 세간이 시끄럽다.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전반적으로 판단해 볼 때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한반도 대운하와 연결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예를 들어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서는 주운을 위해 수심을 최소 6m 확보하도록 되어 있는데 4대강 정비 사업에서는 수심을 2m 정도만 확보하도록 계획돼 있을 뿐만 아니라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 건설이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다. 하천은 하천의 3대 기능인 이수, 치수, 환경의 세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하천 특히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소위 4대 하천은 위의 세 기능 중 일부 또는 모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이를 살리기 위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하천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하천정비 사업은 치수, 이수, 환경의 모든 측면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치수 측면에서는 그동안 치수사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최근 범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강우 패턴이 바뀌어 홍수피해가 가중되고 있어 연평균 홍수 피해액이 2조 7000억원에 달한다.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유역에 내린 비가 하류 하천으로 동시에 유출되지 않도록 홍수 저류공간을 확보하고, 토사가 퇴적된 구간을 정비해 홍수가 원활히 소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수 측면에서, ‘물부족 국가’인 우리나라는 2011년에 약 8억㎥의 물부족이 예상되나 다목적댐 건설 반대 등으로 가뭄 때마다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댐과 같이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환경 측면에서 보면, 하천수량 확보를 고려하지 않은 오염원 관리로 근본적인 하천 수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과거 홍수소통만을 고려한 하천 정비로 하천이 직강화되고 호안은 콘크리트로 덮여 하천 생태계에 악영향을 초래했다. 하천환경 문제는 수질개선 및 생태계 유지를 위한 유량 확보와 자연친화적 하도정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에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수량확보, 수질개선, 하도정비, 제방보강 등의 사업이 포함돼 있다. 이중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하천에 깨끗한 물이 풍부하게 흐르도록 하기 위해 신규 댐 건설, 기존 댐 기능 조정, 농업용 저수지 재개발 등으로 수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깨끗하고 풍부한 유량은 하천 정비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일 뿐 아니라 국민들이 사업효과를 빠르게 느끼게 하고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극심한 기후변화와 가뭄에 대비해 물 안보 차원의 물 이용 개선방안을 수립함으로써 장래 수자원대책이 단계별로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돼 풍부하고 질 좋은 물과 쾌적한 휴식 공간을 확보하고 하천 생태계를 회복시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정부에서 의도한 대로 일자리 창출과 침체된 경제 회복에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윤병만 명지대 토목환경공학 교수
  • 한국 근대서화 한눈에… 흥선대원군 묵란첩 등 전시

    한국 근대서화 한눈에… 흥선대원군 묵란첩 등 전시

    왕가의 ‘파락호’에서 대원군으로 신분을 뒤바꾼 이하응(1820~1898)이 친 난초는 당대 최고로 손꼽혔다. 수요를 댈 수가 없어 김흥원과 윤영기에게 대신 작품을 제작케 하고 낙관을 찍어 줬다는 얘기도 있다. 흥선대원군은 조선 후기 문인화의 대표격인 추사 김정희(1786~1856) 문하에서 난을 배워 추사계열로 분류되지만, 선생과 제자의 난은 기질이 완연히 다르다. 제주까지 유배를 떠났던 추사의 난은 까슬까슬하고 꺾이지 않는 선비의 절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면 외척의 멸시와 핍박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락호를 자청하며 왕가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애쓴 흥선대원군의 난은 끊어질 듯 유려하게 이어지며 거친 바람에 훗날리는 품새가 그의 인생역전을 보여 주는 듯하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10폭 화첩인 ‘묵란첩’(墨蘭帖)과 특이한 화분에 심은 화초를 그린 ‘병란도’(甁蘭圖)를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다. 이번 전시 작품은 학고재 우찬규 대표가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수집한 한국 근대서화 500여점 중 120여점을 추려낸 것으로 국내에서는 모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에서 직접 그렸거나, 일본에 선물용으로 보낸 작품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전시된 작품들은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의 근대 서화를 모은 것으로, 내용적으로 근대성은 없지만 파격적인 화면 구성과 개성미가 두드러진 게 하나의 특징”이라면서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일컫는 사군자 용어가 정립된 시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테면 황철(1864~1930)의 ‘묵죽도’는 화면의 농담을 활용한 구성이 신선하고, 전서체 ‘길금정석’은 현대적 회화미조차 느껴진다. 지운영(1852~1935)이 일본 여행 중 그린 ‘산수도’(山水圖)는 붓을 수직으로 반복해 찍어 인상파의 점묘법을 연상시킨다. 항일운동의 군자금을 댔다는 김진우(1882~1950)의 ‘묵죽도’(墨竹圖)는 간결한 맛이 있다. 이밖에 의친왕 이강, 김윤식, 김옥균, 박영효, 오세창, 조석진, 안중식, 허백련, 김은호, 이한복, 이완용 등 역사 속 인물들의 그림과 글씨를 볼 수 있다. 우 대표는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예술의 꽃은 피어났다.”면서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걸어 놓고 보면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 대표는 “이번 전시는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니고, 조건이 맞으면 작품 전체를 미술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밝혔다.(02)720-152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강익진 선생 별세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강익진 선생이 24일 오전 10시30분 별세했다.87세.1921년 함남 신흥에서 출생한 선생은 일본 릿쇼대학 지력과 3학년 때인 1944년 1월20일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돼 서울 용산에 있는 제23부대의 중지 파견군에 배속됐다.선생은 같은 해 5월18일 중국 창사(長沙)에서 탈출한 뒤 중국군 제4사령부에 입대,일본에 대한 정보수집 등 특수공작 임무를 수행하다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돼 활동했다.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대통령표창을,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유족은 형봉씨 등 2남3녀.발인은 26일 오전 6시.빈소는 경남 창원시 창원병원.(055)281-8711.
  • [부고] 애국지사 문수열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광복군에 입대해 민족독립운동을 고취했던 애국지사 문수열 선생이 23일 오전 7시30분 별세했다.85세. 192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작전참모반에 소속돼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또 기관지 ‘빛‘의 편집을 맡아 독립군의 정당성을 알리는 홍보활동에도 앞장섰다.정부는 고인에게 1963년 대통령 표창,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유족으로는 정점돌 여사와 재욱씨 등 2남2녀.발인은 25일 오전 8시.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02)3010-2000.
  • [학술플러스]

    ■ ‘한국민주화 운동 총정리’ 책으로 나와 ●대한민국 건국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사를 총정리한 ‘한국민주화운동사’(돌베개 펴냄)가 출간됐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를 비롯해 정해구(성공회대)·오유석(성공회대)·임대식(서울대) 교수 등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연구자들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했다.민주화운동사 정리 작업이 이처럼 공동연구 성격으로 총정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혔다.2010년까지 총 3권으로 완간된다. ■ 이해조 문학기념 특별강연회 ●동농 이해조 선생 기념사업회(상임대표 홍을표)는 15일 오후 4시 포천중문의과대 세미나실에서 홍정선 문학과지성사 공동대표를 초청해 이해조 문학기념 특별강연회를 연다.이해조(1869~1927)는 일제 침략기 신소설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소설가이자 항일민족지 제국신문에서 활동한 언론인이다. ■ 22일부터 일반인 등 대상 한문특강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은 겨울방학기간에 대학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문특강을 한다.22일부터 내년 2월12일까지 김낙철 연구원이 ‘논어’(화·목·토)를, 공근식 연구원이 ‘맹자’(월·수·금)를 주 3일씩 강의한다.수강료는 과목당 12만원이며,17일까지 7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02)391-5251 ■ ‘…로컬 민속의 글로벌화’ 학술대회 ●한국민속학회(회장 임돈희)는 12·13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동국대학교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글로벌 문화의 로컬화,로컬 민속의 글로벌화’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독일 훔볼트대학 볼프강 카슈바 교수가 ‘글로벌 과정 속의 유럽’이란 제목으로 유럽민족학의 새로운 연구 동향을 발표한다.
  • [부고] 한국 중문학 개척자 차주환 박사 별세

    항일 학생결사 조직에 가담해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이자 한국 중문학 개척자인 한당 차주환 박사가 2일 오후 10시7분 별세했다.88세.강원 영월에서 태어난 한당은 6·25 전쟁 와중인 1952년 서울대 문리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1954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봉직하다 1986년 정년퇴직했다.1997년에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장으로 취임해 최근 완성된 ‘한한(漢韓)대사전’ 편찬에 깊이 관여했다.이전까지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를 주석하고 번역해 냈으며,식민지시대 이능화 이후 맥이 끊기다시피한 한국도교사 연구를 집대성한 ‘한국도교사상연구’를 펴내기도 했다.수필 작가이기도 했던 그는 ‘허물없는 이와의 대화’(1984),‘세월을 다듬으며’(1994)와 같은 수필집을 남겼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시대 마지막 선비’ 항일업적 한눈에

    ‘이시대 마지막 선비’ 항일업적 한눈에

     일제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되레 “어찌 이렇게 야단스럽게 고문하느냐?”며 호통을 치고,모진 옥살이로 앉은뱅이가 됐음에도 항일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년) 선생을 아십니까? 서초구는 독립운동과 반독재 투쟁에 평생을 바쳤던 ‘마지막 유사(儒士)’ 심산 기념관(조감도) 조성에 나섰다.1일 오후 3시 광복회원·성균관회·유도회·유림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열고 내년 11월 개관할 예정이다.  심산기념관은 반포동 114의3 반포근린공원 내 지하 2층에 지상 3층으로 연면적 8438㎡ 규모로 만들어진다.  구가 기념관 조성에 나서게 된 것은 서초구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박성중 구청장의 소신에 힘 입은 것이다.심산은 단재 신채호,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대표적인 항일지사로 활동했었다.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심산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그의 곧은 선비정신을 기리고자 함이다. 구는 기념관 건립을 통해 항일독립운동과 조국 통일,반독재 투쟁,유학단체 개혁,민족사학 육성 등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심산을 민족 지도자로 알리는 한편 일제 침략사에 관한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기념관은 영남 유림 후손으로 태어나 1962년 84세 일기로 세상을 뜰 때까지 활동상을 보여주는 ‘심산기념홀’,심산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시실’,을사오적 처단 상소부터 임시정부에서의 활약,반 이승만 투쟁까지 심산의 일대기를 파노라마로 엮은 ‘영상교육관’ 등으로 꾸민다.  또 항일운동 외에 성균관대를 설립할 정도로 민족사학 육성에 관심이 많았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다양한 유학(儒學) 및 한문학 자료를 갖춘 ‘유학자료실’과 유아부터 일반인까지 한문·경전교육·인성교육도 함께 받을 수 있는 ‘한학 교육실’,유학자들이 입던 도복을 입고 제(祭)를 올리는 체험을 하는 ‘우리역사 체험장’ 등도 들어선다.  박성중 구청장은 “심산 기념관은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은 그의 삶을 곱씹어 보고 ‘선비정신’에 대한 다양한 체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가꾸겠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굿모닝 닥터]발기부전 치료제 부작용 조심해야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발기력의 증대,즉 오랜 시간 발기가 원하는 만큼 유지돼 자신의 정력을 성 상대자에게 과시하고픈 욕망은 대부분의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감정이다.하지만 이것은 단지 요구사항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건강한 남성은 그 나이에 맞는 건전하고 행복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  최근 50대의 건강한 남자가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다.환자는 평소 별 문제없이 부부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했다.하지만 어느 날 의학 잡지에서 발기 부전에 대한 기사를 보고 자신의 발기력을 더욱 강화시킬 욕심으로 발기부전치료제 중 ‘음경해면체 발기유발식 자가주사제’를 임의로 약국에서 구입해 주사했다고 한다.그 후 환자는 하루 동안 성기가 계속 발기된 상태로 유지돼 큰 고통에 시달렸다.주사제 부작용으로 인한 ‘음경 지속 발기증’이었다.  발기부전치료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마치 정력을 증강시키는 ‘만병통치약’으로 안다는 것이다.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실제 이런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적지 않게 보게 된다.  발기부전치료제는 원인과 상태에 따라 치료법이 각기 다르다.또 약제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예를 들어 내분비성 발기부전,즉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부족해 성욕도 감소하고 이로 인해 발기력도 감소되는 환자에게는 남성 호르몬제를 투여한다.이런 약제를 정상적인 사람이 발기력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투여하면 발기력의 증가는 고사하고 전립선암이 생길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음경해면체 발기유발식 자가주사제는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자신의 몸에 직접 주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사에게 적절한 진단과 충분한 교육을 받은 뒤 성관계 직전에 주사해야 한다.이 주사제를 사용한 환자의 70%가 효과를 보지만 증상의 정도와 신체 상태에 따라 주사 용량을 세밀하게 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음경 지속 발기증이 생기고,시간이 지나면 발기를 일으키는 음경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음경해면체 섬유화’로 이어진다.이는 의학적으로 응급상황이다.섬유화가 진행되면 다시는 정상적인 발기를 할 수 없고 인공음경을 삽입해야 할 수도 있다.다행히 필자를 찾아온 환자는 비교적 빨리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은 뒤 성기능을 회복했다.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이형래 동서신의학 병원 교수
  • “韓·佛 합의 통해 외규장각 의궤 반환됐으면”

     “문화재 반환은 민족의 상징성과 정체성을 찾는 데 중요합니다.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가 원래 소유국에 반환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입니다.”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유네스코 문화재 반환 촉진 정부간 위원회(ICPRCP) 30주년 기념 전문가회의’에 참석한 프랑수아즈 리비에르(58)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사무총장보는 문화재 반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리비에르 사무총장보는 1950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정치학교에서 고전문학과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1977년부터 유엔(국제연합) 업무를 시작한 그는 유네스코 사업평가 과장을 비롯한 요직을 두루 거친 뒤 2006년 5월부터 유네스코 사무총장보로 활동하고 있다.  리비에르 사무총장보는 “다만 방법적인 측면에서 명령이 아닌 국가간 조율과 합의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위원회의 역할은 중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신의 모국인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문제에 대해서는 “의궤 반환 문제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일 뿐 이와 관련해 양국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들은 적은 없다.”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양자간의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합의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이번 행사가 한국으로서는 문화재 반환 문제를 조명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엄밀하게 논의하며 이를 계기로 양국 정부간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과 같은 국제회의에서 한국 측 전문가가 나서서 한국의 입장을 전달,의궤 반환문제를 국제적 사안으로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번 회의의 가장 핵심적인 논의 사항으로 “문화재 반환에 대한 정부간 협력과 유네스코의 중재는 매우 중요하며 위원회의 역할을 더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는 이날 전문가 회의에 이어 27~28일 비공개로 정부간 회의가 열린다. 연합뉴스
  • [굿모닝 닥터] 건강보조식품으로 심장병 예방?

     해외 여행지에서 구입한 건강보조식품을 진료실에 가지고 와서 복용해도 되느냐고 필자에게 확인하는 환자가 종종 있다.지역별로 구입하는 제품들이 비슷해 이제는 물건만 봐도 여행지를 짐작할 수 있다.대개는 혈액순환 개선효과가 탁월해 각종 성인병을 예방한다는 상술에 순간적으로 현혹되어 비싸게 구입한 제품들이다.사탕수수 추출물,오메가지방산,각종 비타민 등 종류도 다양한데 한마디로 심장병 예방효과가 거의 없는 소위 ‘바가지’ 제품들이다.  최근 전문가들이 효과적인 심·뇌혈관질환 예방법으로 권유하는 것은 식생활습관 개선이다.식이·운동요법,체중조절 등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현대인들이 매일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운동이나 체중조절에도 신경쓰지 않고 담배를 피우면서 약이나 건강보조식품으로 간단히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아스피린’을 소량인 75~325㎎씩 매일 복용하면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위험요소가 있어 아무렇게나 먹어서는 안 된다.장기복용으로 인한 위장관 출혈이나 뇌출혈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다만 심·뇌혈관질환을 현재 앓고 있거나 심장병 발생 위험이 높은 환자가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심장병 위험인자가 없는 건강한 사람이나 단순 고혈압 환자는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없으며,여성은 남성보다 심장병 1차 예방 효과가 적다.  비타민의 항산화효과도 심장병 예방 효과와는 관련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오메가-3 지방산’은 제품마다 순도와 중금속 제거 기술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선택할 때 주의해야 한다.  반면 고지혈증치료제인 ‘스타틴’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동맥경화의 진행을 늦출 수 있어 장기 복용하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킨다.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지 않지만 혈관 염증 수치가 증가한 중장년이 스타틴을 복용하면 혈관 염증을 감소시키고 결국에는 심장병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올해 미국 심장학회에서 발표됐다.  이 연구 결과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심장병 예방 가능성은 지금까지 개발된 약 중에서 비교적 큰 것으로 보인다.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가장 기본적인 심장병 예방 수칙은 식생활 습관 개선이라는 사실이다.약은 반드시 안전성,유효성,경제성 등을 평가한 뒤 복용해야 한다. 백상홍 강남성모병원 교수
  • ‘미네르바 정체 암시’ 글 전문

     21일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네티즌의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새벽 2시쯤 포털사이트 다음의 논쟁 사이트인 아고라에 ‘read me’란 필명의 네티즌은 “‘미네르바’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인 K씨”라고 글을 올렸다.  ●다음은 read me가 다음 아고라에 남긴 글의 전문  오늘같은 밤,  겨울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은  런던의 워털루역 앞 길고 어둡고 지린내나는 지하보도의 벽에  낙서처럼 남겨진 이름 모를 시(詩)를 생각나게 한다.  I am not afraid as I descend,  step by step, leaving behind the salt wind  blowing up the corrugated river...  (우리는 저 암흑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두려워 않으리...) 사실 미네르바 개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글을 안 쓰려 했다.  그런데...  어떤 누구에게서 한밤중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K란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극비사항인데... K가 바로 아고라의 미네르바 라는군...    K... 01001011...    모교 동기 중에 그런 이름의 희미한 얼굴이 스쳐갔다.  삼십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의 추억이다.  내 자신 이십여년 넘게 외국생활을 했고,  K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일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아마 런던 시티 어디에선가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심 때면 외로운 이방인이 영란은행 앞 킹 윌리암 거리를 따라 내려와  캐논 거리 코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빨대로 마시며  진로 소주를 병 째 빨아대던 그 겁없던 시절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근처 다이와 보험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인 젊은 무리들을  동경 반 경멸 반 흘려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잊으려고  로이터 터미널에 빠져들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런던 브릿지 위에서  남쪽 강변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바라보며 미래를 꿈꿨는지도...  내가 워털루 다리 밑 사우드 뱅크의 노점에서 헌 책을 뒤적이고 있을때  K는 사우드와크 다리 양쪽 LIFFE와 FT에서  텔렉스와 컴퓨터와 마이크로필름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런던의 두 에트랑제가 아마 그 시간 테임즈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십 수년이 또 지나고...  나는 아직도 부(富)란 무엇이냐는 형이상학의 질문에서  수도원의 늙은 유폐자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K는 그동안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막대한 재력과 그에 걸맞는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그가 올라가 있다고 했다.  또 그는 훌륭한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받는 기업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러지도 않았다.  구태여 그래야 할 이유나 핑계도 없었다.  동창이란 것 외에 우리의 관심이나 특히 처지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옛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일부러 피하며 살았지만,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쫒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던 날들...  아고라에서 미네르바의 화신을 만난다.  십 수년 전...  테임즈 강변 사우드와크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떠올린다.  아테나의 파르테논을 연상시키기에는  너무나 소비에트적인 현대식 건물과 우중충한 거리.  의미도 모른 채 예쁜 이름이 참 안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마치 낡은 화력발전소 속에 숨어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처럼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갈등과 타협이 이해할 수 없이 얽혀진  그런 모순의, 그런 도시의, 그런 건축의, 그런 이름 이구나...  라는 느낌을 흘려 버리고 지나갔다.  그런 불가사이의 미네르바를 여기 아고라에서 다시 만난다.  좌절과 희망과 평화와 복수와 수학과 역사가 동시에, 모두,  엄청난 파괴력으로 폭발하는 그의 글을.    K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지혜와 용기의 수호신이었다.    삼십여년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써본다.  어린 시절 6년의 긴 시간을 같이 부대끼며 지냈겠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이른바 명문학교의 얼마 안되는 수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는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았던지,  좀 더 촌구석에 살았던지,  좀 더 생활이 어려웠던지 (당시는 모두 못살았지만), 아뭏든...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K를 미네르바의 암호에서 해독한다.  토끼처럼 유순했던 아이가 어느날 외로운 늑대가 되어 돌아왔다.  비밀의 가면 뒤에서 그러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현란한 검술을 뽐내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또는 고탐 시의 억만장자 흑기사 뱃트맨이 어울릴까.  무엇이 그를 정의의 분노에 불타게 했을까.  지금 그 나이와 그 명성에...  뭇 사람들이 선망과 질시를 함께 느껴야 할  지금 그처럼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그가 속한 하이 소사이어티의 남들은  탐욕의 절정에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힘을 가지기 위해  금력과 권력을 휘둘러 힘없는 자를 탄압하며 갈취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풍요와 안락의 유혹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저 아래 천민의 편에 서서 저 아래 천민을 위하여  자기가 그 정점에 앉아 있는 자기 발 아래의 피라미드를 부수고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열과 노력으로...  왜?  모든 것을 가져본 자의 한낱 변덕일까?  청년 시절 하지 못한 초로의 때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 슘페터가 말했듯이 -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의 극대점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의 이상치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체제 내적 모순의 변증법적 완성일까?  자기 자신을 불살라 없애는 생산적 에로스의 충동일까?  생명의 원죄를 드디어 깨달은 종교적 속죄 의식일까?  아니면... 저 멀리 아마존 숲 속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슈퍼 컴퓨터 미네르바의 프로그램에 삑. 삑.. 삑...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일까?    왜 K는 자기가 있는 이너서클의 고리를 스스로 끊으려 할까?    70년대 폭압과 혼돈의 대학시절,  민주와 자유의 선구적 외침 속에서 나는 K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의 이상주의는 철저한 현실주의 밑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나와 같이 영원히 무능한 회색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가 된 이제, K는 미네르바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중학입시를 경험한 세대이다.    나는 국민학생의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 어린 나이에  밤 12시까지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시달리는 내 또래 소녀의 어두운 포토 리포르타쥬를, 어른들이 보는 신동아에서 읽은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비틀즈와 월남전과 두브체크와 꽁방디를 거쳐 오일쇼크와 검은구월단과 아라파트와 바더 마인호프와 그리고 딥퍼플과 마리화나가 대변하는 해방의 시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식민주의 사회의 이른바 자유경쟁은 우리를 능력 껏 뛰게 해주는 자유가 아니라 발을 얽맨 노예의 사슬이었고 시험은 우리에게서 상상과 비판을 박탈하는 강제노동이었다.  차라리 군사교육 교련은 운동장에 나와 공기를 마시고 동무들과 장난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옥은 오히려 자유에의 투지를 키우는 장소이며 전체주의는 내일에의 희망을 지울 수 없다.  우리들의 작은 꿈,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나라 만들거야...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전쟁도 없고 독재도 없는 나라,  미군 트럭 뒤를 쫒아 뛰며 지아이에게 기브 미 껌,  쵸콜렛 냠냠 손 내밀지 않는 나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 속의 이윤복 같은 어린이가 없는 나라,  언젠가 우리는 그런 나라 만들어 행복하게 살거야 라고.    우리 세대가 지난 삼십여년간 이룬 것은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나라가 아니었다.  더 살벌한 경쟁과 더 잔인한 교육과, 더 오만하고 더 탐욕스런 부자들과,  더 가난하고 더 불쌍해진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파트라 불리우는 콩크리트와 플라스틱의 쓰레기 속에서 생존의 무자비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변태의 사회.  정치인들은 더 추해졌으며, 공직자들은 더 썩었으며,그 부정과 부패를 교활히 감추기 위해 온갖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법과 규제와 관습과 편견이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얽어맨 그런 세상.  어느날 삼십년간 잊어왔던 내 모습을 봤을 때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비겁하고 무식한 돼지였다.    누구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나...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남겨주겠다는 거짓 희망과 거짓 지식으로 우리 자신을 속여왔다.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힘을 휘두르는 자에게 아부하고 높은 자에게 가까이 붙기 위해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권위와 폭정을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노예사회에 종속시킴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나라 사랑이요 나라 발전에 이바지함이며 장차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이라 믿으려 해왔다.  그러나 나의 애국은 나의 가장 탐욕스런 이기일 뿐이었다.  나라의 성장은 내 신분상승과 재산형성의 핑계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들었노라고 자랑스러이 보이고 싶어한 이 사회는 결국 거대한 분뇨 덩어리였다.    불행하게도 개인의 부의 총합은 국가의 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부란 더해질 수 있는 어떤 스칼라 량(量)이 아니며, 그것을 더하려는 행위 자체가 궤변이다.  -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케네 -    미네르바는 오늘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거울 앞에 서있는 모습은 미네르바이다.  나는 삼십년전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K...  넌 2반이었지, 이과반.  담임이 오래 전 돌아가신 수학 선생님...  난 문과반이었지만 제일 좋아하던 분이었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넌 기억나니, 그 시절이?  * * *  이것이 내가 아는 미네르바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비밀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다.  미네르바가 노란 토끼의 미래를 이곳에 예언해야 했듯이  나는 미네르바의 과거를 이곳에 증언한다.  왜?  미네르바의 현재는 판도라의 상자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일 미네르바의 신분이 이 정권에 의해 폭로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 강만수와 그 수하 한나라당이 내세워왔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데올로기가 그 순간 몰락하며,이 정권 자체가 파멸의 헤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왜?  K는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이기 때문이다.  극상위층의 대표적인 인물 K가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일부 상위층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수탈주의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완전한 개.사기이며 날.강도질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이데올로기의 정강 위에 세워진 한나라당 세력의 정치적 존재 자체는 허구일 뿐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에 대한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절대왕조와 중금주의의 야합에 불과한 소위 공급주의 친기업정책,  무한경쟁 약탈경제를 내세운 시대착오적 신자유주의,  교육의 상업화와 룸펜 부르조아지들의 천박한 귀족화,  복지와 후생과 군비의 감소,  그에 따른 국론의 분열과 국력과 국방의 쇠퇴,  실용주의를 빙자한 맹목적이고 고립적인 사대주의,  게다가 오만한 독재와 언론의 독점...  이 모든 것은 국가 파괴를 구성하는 죄목일 뿐이다.    소망교회 장로정권이 절대 충성과 복종을 맹세했던 돈의 신(神)들 중에서도  가장 풍요하고 가장 지혜로운 신 미네르바가 나를 향한 너희의 거짓 예배는 신성모독일 뿐이라며 분노한다.  너희의 주인인 0.1% 부자는 너희들 아랫 것 0.9% 졸부들의 패악한 정치를 부정한다.  너희가 경제를 빙자하여 국민에게서 강탈한 장물들을 나에게 뇌물로 바치려들지 말라. 그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며, 기업가를 위함도 노동자를 위함도 국부를 위함도 국민을 위함도 아니며, 다만 국가를 욕되게 함이라.    기회주의 기득권자들이 국민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서 그들이 영구독점하는 시장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내세울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며 이상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얼굴 K,  일류학교 일류직장 일류기업의 일류코스를 모두 밟은 초글로벌 리더 최고선진 CEO의 얼굴인 K는 이제 기생충 계급의 일류선진국 데마고지가 숨기고 있는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얼굴 없는 미네르바로 돌아왔다.  이 정권이 미네르바의 가면을 벗기려 함은 이 정권 스스로의 손으로 아포칼립스 제7의 봉인을 뜯어 한 때 마리 앙뜨와네트의 가증스런 무식을 단두했던 그 시퍼런 날이 정권의 목 위에 떨어지도록 자초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이 정권이 택할 길은 오직 하나...  미네르바와 국민들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만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것이다.  오만과 아집이 과연 목숨보다도 소중하지는 않겠지.  국민의 안녕과 따라서 정권의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면  이명박과 강만수는 국가의 부도를 맞기 전에 정권의 부도를 자백해야 한다.  숙주(宿主)가 죽는다면 기생충도 따라 죽어야 된다는 상식 쯤은 물론 알고 있겠지.  이 정권의 추종자들이 자기 생존의 본능까지 버릴 정도로 최소한의 이성 마저 잃고, 감히 미네르바와 국민들에게 대항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망교회 이명박 강만수 광신장로들이 성서의 억지해석을 바탕으로 패륜목사들의 꾐에 혹하여 운명을 그르칠까봐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악하고 탐욕한 장로정권의 자멸에의 충동을 구태여 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A Dieu!    출처 - 다음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96246&hisBbsId=best&pageIndex=7&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항일 독립군 무덤 4기 中서 발견

    일제식민지 당시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 독립운동을 벌이다 순국한 독립군의 무덤 4기가 중국 랴오닝(遼寧)성 지안(集安)에서 발견됐다.1925년 2월25일 벌어진 고마령 전투의 희생자로 추측된다. 고마령(古馬嶺) 전투는 일본의 평북 초산경찰서 경찰대가 압록강을 건너 고마령에서 독립군 참의부 2중대 본부를 급습해 벌어진 유혈 충돌이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독립군 측 간부 20여명이 희생된 ‘참극’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전투에서 순국한 주만참의부 참의장 백순(白淳), 최석순(崔碩淳) 선생은 2005년 국가보훈처에 의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된 바 있다. 지금까지 희생자들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덤을 발견한 사람은 남만주 일대 독립군 항일무장투쟁을 주제로 소설을 집필 중인 작가 최범산(필명·56)씨. 최씨는 지난 9월부터 고마령전투가 벌어진 지안시 고마령촌 일대를 3차례나 답사해 무덤 4개를 발견했다. 최씨는 “독립운동사료와 현지 주민의 증언, 제석이 놓인 무덤 형식으로 미뤄 고마령전투에서 희생된 참의부 독립군들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가족이 없었던 무연고 전사자들의 시신은 동네 주민들이 시신을 거둬 주변 야산에 매장했다는 85세 노인의 증언도 확보했다.”고 말했다.최씨는 “아직까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남만주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정부 또는 학술연구 차원의 체계적 조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이경원기자·연합뉴스 leekw@seoul.co.kr
  • 애국지사 김소 선생 별세

    중국에서 광복군을 도와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김소 선생이 8일 오전 4시25분 별세했다.91세. 1917년 평북 선천에서 출생한 선생은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중국의 황푸군관학교 분교에 입학, 졸업 후 중국군에서 복무했다.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광복군 제3지대장과 연결되어 제3지대로 가는 광복군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적지에서 광복군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활동을 펼쳤다. 광복 후 고향으로 귀환했다가 북한 정권의 숙청을 피해 월남했다. 육사 5기생으로 임관한 뒤 6·25전쟁에도 참전해 을지훈장과 화랑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공을 인정받아 1977년 대통령표창을,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유족으로는 김영기 여사와 아들 김동열(사업가) 씨가 있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 빈소 서울보훈병원 장례식장 11호.(02)483-3320.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희화 선생 별세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투쟁을 했던 애국지사 이희화 선생이 5일 오전 별세했다.88세. 1920년 경기도 개풍(현 개성시)에서 출생한 선생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중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일본군에 강제 징용됐다. 함흥 주둔 일본군 창(槍)부대에 배속됐다가 부대가 중국 저장(浙江)성 동양현으로 옮겨가면서 함께 이동한 뒤 동지 5명과 함께 탈출해 중국 제3전구 충의구국군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강남분대에 입대, 초모(징집) 홍보활동을 위해 중국 각지를 돌며 일본군의 내막과 자신들의 탈출, 광복군 입대 경위 등을 설명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대통령표창을,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박영자 여사와 2남1녀가 있다. 발인 7일 오전 9시, 빈소 강화장례식장 장지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032)932-8762.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부고] 北 ‘혁명 1세대’ 박성철 정치국 위원 사망

    북한의 박성철 정치국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28일 ‘오랜 병환’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96세. 경북 경주 출신인 박성철은 ‘혁명 1세대’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하다 광복 후 북한에 들어가 인민군 15사단장, 노동당 국제부장, 외무상, 정무원 총리, 국가 부주석 등을 지냈다. 김 주석의 유일사상체계 및 노동당 유일지도체계 구축에 기여한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성사의 주역으로 참여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에 이어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서울을 방문, 이 부장과 회담했다. 특히 7·4공동성명에 따라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인 김 부장 대신 같은 해 12월 서울을 다시 비공개로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 1994년 7월 김 주석이 사망했을 때 국가장의위원회 서열 5위, 이듬해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사망 때는 서열 4위에 오를 정도로 최고위직을 역임했다.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사실상 은퇴했다.‘공화국 영웅’(1992년) 칭호와 ‘김일성 훈장’(1993년)을 받았다. 19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이제는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힘을 써야 할 때”라며 행사 개최에 불만을 표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북한은 박성철의 장례를 30일 국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김 위원장이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해방공간의 아나키스트’ 펴낸 이문창옹

    ‘해방공간의 아나키스트’ 펴낸 이문창옹

    1945년 8·15해방의 기쁨도 잠시, 그해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의 신탁통치 결정은 열여덟 청년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좌와 우로 나뉘어 날 선 대립을 벌이는 정치 현실에 절망한 청년은 순수한 혁명적 민족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3의 노선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접한 ‘무명회’는 청년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총집결체인 ‘자유사회건설자연맹’과 민족진영 사이의 연락창구 노릇을 하던 ‘무명회’를 통해 청년은 아나키즘에 눈뜨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당시 서울 종로구 예관동 24번지 유정렬 선생의 집에 머물며 이을규, 이정규, 김지강 등 선배 아나키스트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열혈 청년은 어느덧 팔순 노인이 됐다. 한국 2세대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주자인 이문창(81) 국민문화연구소 명예회장이다. 그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해방 이후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현장을 조명한 저서 ‘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이학사)를 펴냈다.1970년대 출간된 ‘한국아나키즘운동사’는 해방 전의 활동까지만 소개돼 있어 해방 후의 아나키즘에 대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기록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2세대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주자 “3·1운동을 전후해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선생 같은 아나키스트들이 1세대라면, 해방 후 조선민족공동체의 운명을 고민했던 아나키스트들은 2세대에 해당합니다. 그때 혁명을 함께 고민했던 선배와 동료들은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나고, 이제 나만 남게 됐는데 더 늦기 전에 역사를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책에는 1947년 임정봉대운동과 혁명거사를 계획했던 한국혁명위원회의 활동과 6·25 당시 북한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벌인 레지스탕스 운동 등 아나키스트들의 무력투쟁이 흥미롭게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내용은 아나키스트들이 ‘국민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사회교양운동, 농촌운동, 자유공동체운동에 매진했다는 사실이다. 국민문화연구소는 혁명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직접 민주와 자주 협동의 공동체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선 민중의 생산현장에 파고들어 공동생활 훈련을 통한 사회구조개혁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이후 아나키즘운동의 중심이 됐다. 이 회장은 1947년 설립 초기부터 연구소 활동에 참여해 지금까지 60년간 이 일에 매진해왔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욕망 실현 한평생 아나키스트로서로 살아온 그에게 아나키즘의 요체는 무엇일까.“아나키즘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 중요한 건 남의 욕망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내 자유가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즉 공동의 자유를 향유하는 공동체가 아나키즘의 본질입니다.” 한때 ‘돈 없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꿈꿨던 80대 노혁명가는 여전히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21세기 인류의 삶이 선진화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지만 실상은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됨으로써 진정한 자유 없이 허덕이며 살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에서 비롯됐다고 여기는 그는 19세기 프랑스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이 주창한 무상신용사회가 해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문화연구소 명예회장직과 더불어 박열의사 기념사업회 이사, 자유공동체연구회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며,2006년부터 매년 ‘자유공동체운동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한·일 공동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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