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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애국지사 이주헌 선생

    [부고] 애국지사 이주헌 선생

    일제 강점기 말기 경북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독립회복연구단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한 애국지사 이주헌(李主憲) 선생이 30일 별세했다. 87세. 1923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선생은 1943년 8월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의 단원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폈다. 일제시대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대구 동촌비행장 확장공사에 동원됐는데 학생들이 공사 현장에서 항일결사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을 조직했다. 선생은 이 단체의 의료책임자로 활동했다. 선생은 또 194 5년 3월 10일 일본육군기념일에 총궐기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거사를 추진하다 발각돼 전원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경순(85) 여사와 2남4녀가 있다. 발인은 1월 3일 오전 9시 30분, 장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 빈소는 경북 안동시 안동성소병원 영안실 6호. (053)853-7482
  • ‘일몰 일번지’ 경남 사천 비토섬

    ‘일몰 일번지’ 경남 사천 비토섬

    오래전 남해안 어딘가 ‘별주부전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섬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귓전으로 기껏해야 섬 몇 곳에 이런저런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려니 여기며 들었습니다. 경남 사천의 비토섬입니다. 토끼가 나는 형상의 섬이라지요. 1992년에 연륙교가 놓였으니 뭍과 다름없이 된 게 제법 오래지만, 풍경과 습속은 여전히 섬 그대로입니다. 꼭 새해가 토끼해여서 발걸음하시라 권하는 건 아닙니다. 비토섬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지만, 자체로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비토섬 오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솔사 들어가는 솔숲길과 야생 차밭, 그리고 비봉내마을 대나무산림욕장에서 늘 푸른 기상과 마주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게다가 사천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다리는 ‘교량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개성 넘치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요. 해마다 해넘이, 해맞이 행사가 벌어질 만큼 풍경도 빼어납니다. 이만하면 일출일몰 여행지로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겠습니다. ●사천의 숨은 보석 비토(飛兎)섬에 가기 위해서는 ‘삼천포로 빠져야’ 한다. 한때 삼천포시였으나 1995년 사천군과 통합, 사천시가 됐다. 사천시 끝자락의 비토섬은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한글소설인 ‘별주부전’의 무대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를 두고 충남 태안의 원청리 해변과 ‘원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천시 측은 2003년 진주 한국국제대에 비토섬 전설에 대한 용역을 의뢰해 비토섬 일대가 별주부전의 배경과 일치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2013년까지 이 일대를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사천만을 가로지르는 사천대교를 지나면 곧 서포면이다. 비토섬은 서포면 선전리와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비토섬의 관문인 비토교는 아치형의 작은 다리. 하지만 마주하는 풍경만큼은 참으로 크다. 바닷물이 물돌이동처럼 비토섬을 돌아나가고, 썰물 때면 거대한 갯벌이 펼쳐진다. 이 풍요로운 갯벌에서 주민들은 한창 푸른 빛이 오른 감태와 자연산 굴(석화) 등 갯것들을 수확하며 한겨울을 보낸다. 비토교를 건너면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비토섬이 자랑하는 해안도로다. 점점이 떠 있는 섬과 김 양식장, 그리고 고즈넉한 섬마을이 어우러지는 빼어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비토섬 동쪽 끝에 서면 월등도와 거북섬이 보인다. 썰물 때는 길이 열려, 차로 오갈 수 있다. 그 뒤편에는 토끼섬과 목섬이 있다. 토끼와 자라,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별주부전이야 삼척동자도 알 내용이다. 간을 구해 오라는 용왕의 명을 받은 별주부(자라)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간다. 삶과 죽음이 백척간두에 선 순간,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기상천외한 묘계를 내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얘기. 비토섬의 전설은 그 이후와 연관이 깊다. 내용상으로는 ‘포스트 별주부전’쯤 되겠으나, ‘원작’과 달리 해피 엔딩이 아니다. 자라의 등을 타고 육지로 돌아오던 토끼는 월등도(돌당섬) 부근에 이르러 바다에 비친 섬을 고향으로 착각하고, 급한 마음에 서둘러 뛰어내렸다가 물에 빠져 죽어 토끼섬이 되었다. 토끼를 놓친 자라 또한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이 되었으니, 토끼섬 옆의 거북섬이다. 남편을 용궁으로 떠나 보낸 아내 토끼는 바다를 바라보며 목이 빠지게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 끝에서 떨어져 목섬이 되었다나. 한자 이름 날 비(飛), 토끼 토(兎)자에 담긴 사연이다. 비토섬은 썰물 때 찾아야 한다. 연륙교가 놓인 비토섬은 아무때고 찾을 수 있지만, 이어진 월등도와 토끼섬, 거북섬 등은 썰물 때라야 비로소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월등도에 놓여진 나무데크를 따라 섬 주변을 자박자박 걷는 맛이 제법 각별하다. 해넘이 풍경은 비토섬 어디서 봐도 근사하지만, 굳이 최고의 낙조 감상포인트를 꼽자면 비토교를 지나 선전리 서포사랑골횟집 앞마당이다. 비토섬을 굽돌아가는 바다와 선전리 선착장, 그리고 너른 갯벌이 온통 붉게 물드는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서포사랑골횟집 853(4)-3737. ●다향, 솔향 그윽한 절집 다솔사는 야생차로 이름난 절집이다. 비토섬에서 차로 20분쯤 걸린다. 지난 2001년 대양루 큰북에 전설 속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해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솔사 야생차밭은 적멸보궁 뒤편에 있다. 200~300년 묵었다는 차나무들이 곧추 선 편백나무 아래 오종종 모여 있다. 전남 보성의 차밭처럼 나란한 모습은 기대하지 말길. 제멋대로 자란 야생 차나무와 1960년대 다솔사 주지 효당 스님이 새로 심은 차나무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다향 그윽한 절집이었던 덕에 내나라 안에서 ‘차 좀 마셔 봤다.’는 사람들이 순례 삼아 다솔사에 들르곤 한다. 절집을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다. 만해 한용운은 1930년대 이곳에 은거하며 항일비밀결사 ‘만당’을 조직했다. 만해는 효당 스님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가 머문 곳은 ‘안심료’(安心寮)란 요사채. 건물 앞에 세 그루의 측백나무가 서 있는데, 회갑을 맞은 만해가 지인들과 함께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소설가 김동리도 요사채에 머물며 ‘황토기’ ‘역마’ 등의 소설을 썼다. 당시 문학청년이었던 김동리는 1934년 효당 스님이 다솔사 아랫마을에 ‘광명학원’이란 야학을 세우자 야학교사로 부임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만해로부터 중국의 한 살인자가 속죄를 위해 분신 공양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20년 뒤 그 이야기를 대표작 ‘등신불’에 담아 세상에 선물했다. 풍경으로만 보자면 절집 초입의 솔숲길을 가장 앞세울 만하다. 사찰 입구 다솔휴게소에서부터 시작된 솔숲이 절집 앞마당까지 이어져 있다. 높다랗게 자란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향과 고즈넉한 주변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있다. ●늘 푸른 세상과 만나다 한겨울 추위에도 대나무숲은 푸르다. 하늘 향해 곧추 선 대숲의 수직 세상에 들면 한 TV 광고에서처럼 휴대전화를 꺼두고 싶은 생각이 불연듯 든다. 다솔사에서 5분 거리인 비봉내마을은 요즘 전국 각지에서 부쩍 늘고 있는 체험마을 중 하나다. ‘대나무 산림욕장’이 주요 테마. 마을 뒤편에 1만여 평에 달하는 대숲이 펼쳐져 있다. 숲 사이로 난 산책길은 1.2㎞에 이른다. 비봉내 대숲의 주종은 맹종죽이다. 다른 수종에 견줘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편. 1965년에 세 그루를 심었는데,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벌써 5만여 그루가 됐다. 이밖에도 검은 오죽,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긴 구갑죽 등 숲이 거의 대나무로만 이뤄졌다. 숲해설가와 함께하는 대나무숲 산책 프로그램이 유독 눈에 띈다. 대숲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거닐며 대나무와 관련된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비닐하우스 딸기 수확 체험, 굴 구워먹기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체험일정은 당일부터 2박 3일까지 다양하다. 글 사진 사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 곤양 나들목으로 나와 곤명면(다솔사) 방향으로 1㎞ 가면 왼쪽에 비봉내마을(beebong.co.kr) 체험장 간판이 나온다. 852-7055. 다솔사는 비봉내마을에서 곤명면 방향으로 5분 거리다. 853-0283. 비토섬은 다솔사에서 되짚어 나와 서포면 방향으로 20여분쯤 가면 나온다. ▲둘러볼 곳 곤양면 흥사리 흥곡마을 묵곡천변에 고려 말에 세운 매향비가 있다. 왜구와 관료들의 학정에 시달리던 민초들이 미륵을 기다리며 갯벌에 향나무를 묻고 의식을 치렀던 곳이다. 곤명면 은사리에는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태실은 왕가 자손의 태를 봉안한 뒤 표석을 세운 곳이다. 낙조로 유명한 실안해안도로와 남일대 해수욕장의 코끼리바위는 사천의 대표 테마. 사천 대방과 남해 창선을 연결하는 5개 연륙교도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일출, 일몰, 야경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풍경을 내어준다. ▲맛집 싸고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려면 삼천포어시장과 선진횟집단지를 찾는 게 좋다. 쥐치로 포를 뜬 ‘쥐포’도 삼천포 특산물. 여러 마리를 붙여 만든 여느 쥐치포와 달리 ‘한 마리 한 장’이 특징이다. 800g 10마리에 1만 7000~2만원. 비토섬은 전국 최대 자연산 굴(石花) 생산지다. 비토초등학교 앞에 비토 갯벌에서 갓잡은 굴을 파는 할머니들이 몰려 있다. 1접시 1만 5000~2만원. ▲잘 곳 삼천포해상관광호텔(832-3004)은 삼천포대교 아래에 있어 ‘실안낙조’를 만끽할 수 있다. 삼천포항 인근 노산공원 쪽의 팔포매립지에 모텔들이 바다를 끼고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4만~5만원.
  • ‘헤이그특사의’ 학술강연회

    사단법인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재정)는 15일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항일독립운동의 선구자인 보재(溥齋) 이상설 선생의 탄생 140주년을 맞아 ‘국치 100년, 헤이그특사의 의미와 오늘 우리의 과제’라는 주제로 학술강연회를 개최했다.
  • [길섶에서] 청춘극장/노주석 논설위원

    김래성의 소설 ‘청춘극장’은 학창시절 로망이었다. 피 끓는 청춘남녀의 순수사랑과 항일 독립운동가의 가시밭길에 몸을 떨었다. 김진규, 김지미, 최무룡, 윤정희, 장동휘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인기를 끌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친구들은 따돌림감이었다. 냉천동에 있는 단골 식당을 가던 길에 ‘청춘극장’이라는 극장 간판과 맞닥뜨렸다. 극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서울시내 유일의 단관 극장으로 남았던 미근동 화양극장이 어르신 전용 실버극장으로 바뀐 것이다. “누가 작명을 했는지 참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보(悲報). 지난 10월에 문을 연 극장이 곧 헐리고 그 자리에 24층짜리 호텔이 들어선단다. 단돈 2000원에 흘러간 영화도 보고, 친구도 사귀던 어르신들의 휴식처는 재개발에 밀려 사라질 운명이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어째 한심하다. 서울시는 불과 몇달 후 재개발추진 사실을 알면서도 리모델링 비용 7억 5000만원을 공중에 뿌린 셈이 아닌가. 괜스레 화가 치민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장지연 등 독립유공자 19명 서훈 취소

    국가보훈처는 10일 친일행위가 확인된 장지연 황성신문 주필, 윤치영 초대 내무부장관 등 독립유공자 19명의 서훈 취소를 결정하고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훈 취소 대상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독립유공자 20명 가운데 유족들이 행정소송을 낸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를 제외한 19명이다. 보훈처는 “근·현대사 전공 학자, 생존 애국지사 등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취소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면밀히 검토한 결과 19명의 서훈 취소를 의결했다.”면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심사 대상자의 유족에게 소명 기회를 제공했고 유족들이 제출한 소명서 및 소명자료, 관련 문헌 등을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시일야 방성대곡’을 쓰는 등 항일 언론활동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언론인 장지연은 1918년부터 4년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일제의 식민정책을 미화, 장려하는 글을 다수 게재했다는 이유로 서훈 취소가 결정됐다. 윤 전 장관은 1940년 ‘청년’지에 전쟁 찬양글을 기고하고 전쟁협력 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맡은 사실이 확인됐다. 또 장로교 목사 김응순은 일제의 태평양전쟁 징병을 선전·선동하고 일본기독교장로교단 총무국장을 맡으며 비행기 헌납자금을 모금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이 밖에도 친일행적이 드러난 강영석·김우현·김홍량·남천우·박성행·박영희·유재기·윤익선·이동락·이종욱·이항발·임용길·차상명·최준모·최지화·허영호 등도 서훈취소가 결정됐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4명), 애국장(3명), 애족장(11명), 건국포장(1명) 등을 받은 바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통해 이들의 친일행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면서 “최종 결정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올해 안에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부고] ‘中·美 관계정상화 주역’ 황화 전 中부총리 사망

    중국의 1세대 외교관으로 1970년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교섭 당시 주역으로 나섰던 황화(黃華) 전 중국 부총리가 지난 24일 노환으로 숨졌다. 97세. 허베이성 츠(磁)현 출신인 황 전 부총리는 1936년 중국공산당에 입당, 항일 및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을 서방세계에 소개한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인 미국인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가 마오와 회견했을 때 통역을 맡았었다. 건국 뒤에는 외교전선에 뛰어들어 각종 국제회의에서 중국 대표 또는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초대 유엔대사도 지냈다. 1978년 미국과의 수교 교섭과 일본과의 평화우호조약 체결 때 외교부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무위원, 국무원 부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청계천·영등포 화공약품상 집중단속

    환경부는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화공약품상 밀집 지역인 서울 청계천, 영등포 일대 화공약품상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고 9일 밝혔다. 이는 사제폭탄 제조가능 물질을 판매하는 화공약품상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이번 단속에서는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지방자치단체와 합동단속반을 구성해 화학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보안순찰과 불법유통에 대한 계도 활동도 함께 벌이게 된다. 특히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오는 12일까지 인터넷을 대상으로 사제폭탄 제조법 등 폭발물 관련 정보 게시·공유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선다. 경찰은 범죄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미한 사항일지라도 해당 게시물의 위험성이 높거나 학습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인정되면 포털 사이트에 이를 신고해 삭제하고, 정보를 올린 네티즌를 주의조치할 방침이다. 또 불법 폭발물·총기류 관련 정보 게재는 앞으로도 중점적으로 단속해 나가기로 했다. 환경부는 지난달 질산암모늄 등 사제폭탄 제조가능 물질 13종을 ‘사고 대비물질’로 추가 지정했다. 이와 함께 사고대비 물질 불법유통을 막고 구매·취급자에 대한 신원확인을 위해 판매업소의 인적사항 기록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도 발표했다. 판매상에 대한 규제기능을 명시한 개정안은 국무회의에 상정된 상태다. 국회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빨라야 내년 상반기부터나 적용될 전망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 시행 때까지 공백이 없도록 전국 화공약품상(2110곳)과 법적 관리 제외 대상인 소규모 업체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계도·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유진상·백민경기자 jsr@seoul.co.kr
  • 안중근의사 새 동상 완성

    안중근의사 새 동상 완성

    서울시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새로 제작, 하얼빈 의거 101주년 기념일인 26일에 맞추어 제막식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새 동상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당당하게 태극기를 꺼내 든 모습을 형상화했고, 높이는 동상만 4.5m, 기단부를 포함하면 7.35m에 달한다. 동상 위치는 남산 분수대 광장에 다시 짓는 ‘안중근 기념관’ 옆으로, 기존 동상이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남산공원에 있던 기존의 동상이 처음 세운 지 40년 이상 지나 부식된 데다 균열이 생겨 위인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시가 6억원을 들여 동상을 재건립했다. 시는 올해 초부터 ‘안중근 의사 동상위원회’를 구성, 초청 작가 선정위원회를 열어 서울대 이용덕 교수에게 제작을 의뢰해 4개월간에 걸친 제작기간 끝에 이번에 완성했다. 시 관계자는 “일제 식민 통치의 상징물인 조선신궁이 건립되었던 곳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우고 동상을 재건립하는 것은 항일 운동 역사에서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최해수선생

    국내에서 청년동지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최해수 선생이 20일 오전 10시 30분 별세했다. 85세. 1925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한 선생은 1941년 4월 배재중학교 재학 중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이해직·신철호 등과 함께 비밀결사 민족주의민족전선에 가입해 활동했다. 선생은 1943년 3월 배재중을 졸업, 귀향한 뒤 단파방송을 듣고 독립에 대비해 청년들을 규합하기로 결심하고 이은우·박형관 등과 함께 ‘청년동지회’를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45년 일경에 체포됐다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권태희씨와 2남 3녀. 발인 22일 오전 6시, 장지 대전현충원, 빈소 서울보훈병원. 010-8739-7716.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커지는 도서관’… 사서교사가 없다

    ‘커지는 도서관’… 사서교사가 없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세계테마여행 도서전시회’ ‘독후감상화 그리기 대회’…. 이달에 서울공업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열리는 행사다. 도서관에서 단순히 책을 대여하는 기능을 넘어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학교 사서교사는 매달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산업기사’ ‘PC정비사’ 등등 구입하는 도서목록도 제각각이다. 장기 계획에 따라 학생들이 필요한 도서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교과와 협동으로 공동수업도 진행한다. 지난달 발생한 도서관 개인정보유출과 같은 사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서교사가 직접 도서를 분류하고 주제어를 뽑기 때문에 유지관리업체에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보여줘야 할 이유가 없다. 이 학교 사서교사인 송기호(45)씨는 “사서교사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학부모 자원봉사자나 아르바이트생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면서 “이를 토대로 교육과정에 참여해 더 효율적인 학습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선 초·중·고교에서 사서교사의 수는 크게 부족하다. 전체 학교 도서관 중에 고작 6.5%만이 사서교사를 두고 있다. 게다가 신규 사서교사 임용은 수년 새 급감해 내년에는 한 명도 뽑지 않는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으로 독서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이를 위해 교육당국이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올해 말까지 전국 학교로 확대하겠다는 방침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현상이다. 20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 도서관 1만 1060곳 에 배치된 사서 교사의 수는 724곳(전체의 6.5%)에 불과하다. 게다가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2011년도 사서교사직 임용계획은 아예 없다. 수는 적지만 채용이 예정된 보건(101명)·영양(45명)·상담(12명) 교사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사서교사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으나 수요가 많지 않다.”면서 “저출산 등으로 학생 수가 줄어 교과 교원도 줄여야 하는 마당에 (사서교사) 채용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사서교사 운영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사서교사는 다른 비교과 교사직과 달리 의무배치를 하지 않아도 돼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현행 ‘학교도서관진흥법’에는 학교 도서관에 ‘사서직원’을 둘 수 있도록 규정 하고 있으나 권장사항일 뿐이어서 ‘학부모 자원봉사자’나 ‘도서부원’이 사서교사를 대신하는 곳도 있다. 전문가들은 교원자격증이 없는 직원이 사서교사를 대신할 경우 도서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올 7월 현재 전국 초·중·고 도서관에 배치된 사서직원 4426명 가운데 4391명은 비정규직이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정식 사서교사가 있어야 학생들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지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열린세상]선수가 심판까지 맡을 때/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열린세상]선수가 심판까지 맡을 때/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다른 사람과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기할 때에는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규칙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은 중립성과 객관성 있게 판단해야 합니다. 심판은 중립과 객관성을 의심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맡을 수 없는 게 원칙입니다. 그 심판을 선수 가운데 하나가 맡으면 어떻게 될까요? 일반법률관계에 관한 분쟁이 생기면 심판은 대개 법원이 맡습니다. 이런 분쟁이 생길 때 법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전관예우와 같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법원이 일반적으로 중립 자리에서 판단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에 따라서는 배당 받은 판사가 당사자의 이해에 관련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심판을 맡으면 공정성에 의심을 받기 때문에 민사소송법에는 판사가 그런 재판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판사 스스로 맡지 않도록 하고, 그래도 간여한다면 당사자가 판사를 거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흔히 일어나는 사건에서는 제척, 회피, 기피함으로써 이해 충돌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분쟁내용이 변호사와 관련된 사항일 때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판사도 언젠가는 변호사로 활동하리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사건에서는 이해관계가 걸립니다. 변호사와 관련된 다툼도 법원으로 가야 하고, 법원에는 판사가 버티고 있습니다. 물론 헌법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례를 봐온 국민은 변호사와 다툼을 벌일 때 공정하게 처리될지 참 불안합니다. 변호사법에는 모든 법률사무는 변호사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길 때는 7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도 같이 때릴 수 있을 정도로 무겁습니다. 사회에는 각 분야에 다양한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 전문가에게는 전문분야의 법률이 있고, 그 전문가가 자기 분야의 법률에 대해서 자문하거나 ‘법률’이란 단어만 써도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당해 보이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나선다고 생각해 보죠. 개정 법안을 내야 하는데, 정부가 주도하여 법안을 내려 하면 법무부가 문을 지키고 있어 부처 협의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가까스로 법무부를 지나가도 마지막에는 법제처가 지키고 있습니다. 의원입법으로 법안을 내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 출신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상임위원회는 없겠죠. 국회 회의속기록을 보면 말을 시작 할 때에는 ‘존경하는 어느 의원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의원끼리 서로 많이 존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의원이 찬성해도 존경하는 의원님 한두 분만 적극 반대해도 상임위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어렵사리 상임위를 통과해도 다음 관문은 법사위입니다. 법령의 체계와 자구를 심사한다는 빌미로 모든 법령은 법사위를 거쳐야 합니다. 법사위의 구성원은 변호사 출신이 가장 많습니다. 변호사 영역을 건드리는 법이 법사위를 무사히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변호사 영역과 관련되는 법안, 분쟁, 권한 다툼에서는 정부의 해당 부서, 법원, 국회 등은 이해관계자입니다. 이해관계자가 정책을 결정하고, 재판에 참여하고, 법안을 심사하는 것은 이른바 선수가 심판을 같이 맡는 모습이어서 모양새가 이상합니다. 이때 심판이 정말 공정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이해관계가 있거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심판하도록 내버려 둘 일이 아닙니다. 일반 사건에서 같이 선수이면서 심판인 사람이 심판하는 자리에 있다면 곤란합니다. 변리사법에는 처음부터 특허에 관한 소송대리권이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법원이 실무상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이를 법원과 다투고 있습니다. 세무사·법무사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소송대리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서 정부·법원·국회는 선수이자 심판입니다. 선수이면서 심판을 맡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수준을 나타내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 美·日동맹에 中·러연대 ‘맞불’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3일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방문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국 측과 에너지 등 10여개 분야의 협력협정에 서명하는 등 중·러 양국간 연대를 과시할 예정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방중은 천안함 사태 이후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 역학구도와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강화 움직임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슈퍼파워 그룹간의 ‘신냉전’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방중 일정도 양국간 우호협력을 강조하는 행사들로 짜여져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방중 첫날 랴오닝성 다롄(大連)으로 달려가 뤼순(旅順)의 옛 소련 항일열사묘를 참배했다. 27일에는 베이징에서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2차대전 승리 65주년을 자축하고,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각종 협정에도 서명할 예정이다. 냉전시기 사회주의권의 앙숙이었던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은 에너지 협력이 촉매가 됐다. 시베리아 원유를 중국으로 수송하는 송유관 건설이 이미 끝나 메드베데프 대통령 방중 기간 준공식이 열린다. 두 나라는 지난해 중국이 250억달러 규모의 석유차관을 제공하고, 향후 20년간 매년 1500만t의 원유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군사협력도 미·일동맹 못지않다. 양국은 2005년 랴오둥반도 해역에서 전쟁상황을 방불하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거의 매년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합동군사훈련에도 양국은 각각 1000여명의 병력과 각종 첨단무기를 보내 손발을 맞췄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광복군 창설 70주년 기념식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황의선)는 17일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광복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광복을 향한 외길, 세계로 떨친 큰 뜻’이라는 주제로 기념식을 거행했다. 행사에서 광복군동지회는 무대 좌우측에 “단군의 자손은 끝내 고국에 돌아가고야 말 것이다”, “초나라가 비록 세집 남았어도 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라는 당시 구호를 설치했다. 또 대학생 60여명이 광복군 복장을 하고 한국문화영상고등학교 관악대, 국방부 의장대와 함께 ‘광복군 행진’을 하며 창설 당시 모습을 재연했다. 광복군은 1940년 9월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중국 사천성 충칭에서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을 거행했으며 4개 지대로 편성돼 1944년 3월 ‘임팔 전투’를 비롯해 1945년 7월까지 미얀마의 팀플, 티팀, 비센플 등에서 항일작전을 수행했다. 기념식에는 김양 국가보훈처장, 김을동 미래희망연대 의원, 백선엽 예비역 대장, 광복군동지회 회원, 시민 및 학생 등 1500여명이 참석해 광복군 창설의 의미를 되새겼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베트남에 두번째 롯데스쿨 건립중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베트남에 두번째 롯데스쿨 건립중

    롯데백화점은 학교 건립뿐만 아니라 역사 바로알기, 어린이 후원 사업 등을 후원하며 다양한 글로벌 공헌 활동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는 베트남 어린이들을 위해 지난해 9월 광아이 주(州)에 학교와 기숙사를 함께 갖춘 ‘롯데스쿨’을 열었다. 국내 유통업계가 베트남에 학교를 건립한 것은 롯데백화점이 처음이다. 베트남의 경우 학교와 가정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우기(9~10월)에는 통학이 쉽지 않아 학교에 기숙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롯데백화점 측은 전했다. 롯데백화점은 롯데스쿨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2008년 김중만 사진작가의 ‘에비뉴엘 고객 사진전’을 시작으로 여러 자선행사를 통해 모은 수익금 전액을 비영리 단체인 ‘플랜코리아’에 기증해왔다. 롯데백화점은 현재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 박장 주 탐디마을에 두 번째 롯데스쿨을 건립 중이다. 이곳의 초등학교는 20여년 전 지어진 건물이어서 교실이 턱없이 부족하고 시설이 낡아 정상적인 학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롯데백화점은 학교 건물 옆 부지에 2층 건물을 새로 짓고, 운동장과 울타리를 정비하는 등 시설과 기자재를 지원해 내년 1월 문을 열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은 올해를 ‘올바른 역사인식의 해’로 지정해 역사 바로알기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기념해 전국 31개 대학교에서 선발한 대학생 31명의 항일 독립 투쟁지 탐방을 지원했다. 지난 8일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동상 앞 발대식을 시작으로 8박9일 일정으로 중국, 러시아 등 안 의사가 활동했던 항일 유적지를 방문했다. 롯데백화점은 또 안중근 숭모회와 함께 ‘안중근 의사 일대기 도록’ 발간도 추진하고 있다. 1000부를 제작해 전국 초·중·고·대학 도서관과 백화점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도록에는 안 의사의 생애와 업적,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희귀 자료들도 포함할 예정이다. 이달 중 한국전쟁 당시 서울수복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는 NGO인 굿네이버스와 협력해 해외 빈곤 어린이들과 직원 간 ‘1대1 결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저개발국가 어린이들과 1대1로 결연을 맺어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원국은 방글라데시, 케냐 같은 극빈국과 몽골, 캄보디아 등 환경재해국 등이다. 베트남, 인도에도 후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직원들이 어린이에게 매월 1만 5000원을 기부하면 회사도 동일한 금액을 기부해 총 3만원의 지원금이 어린이에게 전달된다. 현재 400여명의 직원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활동 중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윤주연 선생

    국내에서 항일 학생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한 애국지사 윤주연 선생이 6일 오전 6시40분 별세했다. 94세. 1916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한 선생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39년 12월 학교 동문인 김상흠·서영원·민영로 등과 함께 항일단체인 ‘조선학생동지회’를 조직했다. 이 단체는 3·1독립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독립투쟁을 하기로 결의하고 42년 3월1일을 거사일로 정했다. 외부 연락책을 맡은 선생은 41년 7월 이 단체 산하인 원산상업학교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돼 그해 9월 체포되고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일경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43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77년 대통령표창을,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나윤자(83)씨와 윤문하(한국코아텍 사장)씨 등 3남2녀가 있다. 발인 8일 오전 7시, 장지 국립대전묘지 애국지사 제4묘역, 빈소 서울보훈병원. (02)483-3320.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애국지사 윤주연 선생, 향년 94세로 별세...8일 7시 발인

    일제강점기 항일 학생단체를 조직, 활동한 애국지사 윤주연 선생이 6일 오전 6시40분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1916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 재학중인 1939년 12월 김상흠, 서영원, 민영로 등과 함께 ‘조선학생동지회’를 조직, 항일만세운동을 벌이려다 사전 발각돼 체포돼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나윤자(83) 여사와 윤문하(한국코아텍 사장) 씨 등 3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발인은 8일 오전 7시다.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한국전쟁 속 만주 조선인

    한국전쟁은 북한의 인민군과 남한의 국군이 각각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벌인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 뛰어든 또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사라진 만주 조선인이 그들이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염인호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사의 일부가 된 만주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옌볜, 지린, 무단장시 등 현지에서 발행된 한글신문들, 중국 당국의 문서 자료 등을 통해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만주 조선인들은 일제 시기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강한 조국애와 민족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 전 중국 관내 지방과 소련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군·동북항일련군 출신의 조선인 지도자들은 해방과 함께 만주로 들어와 조선인사회를 이끌었다. 이들은 만주를 조국통일 역량의 산실로 키우자며 만주 기지론을 주창했다. 국공내전을 통해 청년들을 단련시켰고, 북한과 옌볜 각지에 정치군사학교를 설립해 혁명간부를 양성했다. 이렇게 단련된 만주 조선인부대는 1949년 7월부터 순차적으로 입북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남진한 북한 인민군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는 만주 조선인 부대였다. 이들의 입북을 중공의 파병으로 간주해온 기존 견해와 달리 저자는 조선인의 귀환이라고 주장한다. 전쟁 초반 북한 인민군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역전되고, 이어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하면서 만주 조선인사회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국공내전을 지원한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았던 만주 조선인의 위치가 흔들리면서 중국 내 여타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 일반 사회에 흡수됐다. 한편 재중 한국독립당의 우익세력도 만주 조선인에 대해 북한과 비슷한 맥락의 통일전략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과 합작해 민주세력을 마련해놓고 남한과 호응해 북한의 공산세력을 몰아낸다는 전략이었다. 만주의 국민당 점령지역 곳곳에서 한독당은 조선인 사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그러나 1947년 공산당의 하계 공세 이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결정적인 수세에 몰리자 한독당의 활동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고립된 채 중공군에게 포위된 선양시 인근 국민당 지구 조선인들은 대탈출을 감행했다. 1만여명의 탈출자들은 톈진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귀국했고, 남겨진 민주자위군 대원들은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3만 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6자회담 즉시 재개 힘들 것…후계구도 정당성 확보한 셈”

    “6자회담 즉시 재개 힘들 것…후계구도 정당성 확보한 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6~30일 비공식 중국 방문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중 친선의 바통을 후대 이양과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경제협력 강화 등에 합의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중국 신화통신이 30일 밝혀 북한의 후계구도와 6자회담 재개 여부가 주목된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셋째아들 김정은의 후계구도 강화를 위해서는 탄력을 받겠지만,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조건이 사실상 대북제재의 철회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6자회담이 조속한 시일내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3대세습 이달 오픈 어려울 것” 김용현 동국대교수는 “후계구도와 관련해 탄력을 받았다.”면서도 “김정은 방중에 대해 중국이 애매한 표현을 한 것처럼 3차 당대회에서 그대로 오픈된다고 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장성택 부장을 중심으로 한 중간 디딤돌, 징검다리를 통해 역할이 부여된 후 공식적으로 지위가 나타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도 “(김정은의 방중이)확인되지 않았지만 김일성의 항일투쟁 현장 등을 답사한 것은 3대 세습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이번 방중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후계구도와 연결된 것”이라면서 “(후계구도를 위해)대외 협력, 화해무드를 보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6자재개 화두는 이벤트적 성격” 동 전문위원은 “대외적인 국면에서 화해국면을 유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유형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순 없다.”면서 “분위기를 역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6자회담이 즉시 이뤄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내의 중간선거 국면과 보수화되는 분위기, 미 행정부가 중동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측면에서 북측의 언급을 직접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수개월간 이런 국면이 진행될 것이고 김 위원장의 발언과 이를 보도한 내용은 결국 화두를 던졌다는 이벤트적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쪽에서는 경제협력을 발표했고, 중국쪽에서 6자회담에 대한 것을 얘기했는데 이 같은 내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 성명이 나온 후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면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 평화협정 등이 조건으로 전제된 포석”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교수는 “북한과 중국이 6자회담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향후 6자 회담에 대한 논의가 자주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시기적으로 더 지켜봐야 하며 (대북제재의 주체인) 미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는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北·中경협 큰 틀선 변화 없어” 동 전문위원은 “중국을 통해 경제성장을 얻기 위한 것은 오래전부터 이뤄진 것으로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수해를 입어 민심이 흉흉했던 만큼 중국 방문을 통해 대규모 경제지원이 가능해 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위기 타개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다급한 상황속에서 방중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수해가 겹치자 9월 당대회를 축제로 이끌 수 없는 부분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방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도 북한 상황을 급박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면서 “후 주석이 김 위원장을 파격적으로 맞은 점으로 볼 때 (북한이) 실리를 추구하고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길상사는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었다”

    “길상사는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었다”

    서울 성북2동 길상사는 익히 알려졌듯 ‘아름다운 사연’이 깃든 불교 사찰이다. 길상사는 원래 요정 대원각이었다. 한데 대원각 주인 자야(본명 김영한·1916~99)가 법정 스님의 에세이집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은 뒤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는 약 2만 4000㎡(약 7000평) 규모의 대원각을 선뜻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월북 시인 백석에 대한 자야의 순애보가 알려지면서 대원각 스토리는 세간에 무던히도 오르내렸다. 여기에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간’ 박헌영(1900~55) 사연까지 더해진다. 박헌영은 ‘조선의 레닌’으로 불렸던,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남쪽에서는 남로당을 이끌고 월북한 공산주의 수괴로 낙인 찍혔고, 북쪽에서는 ‘종파주의자’ ‘미제 간첩’ 등의 혐의로 내몰리다가 끝내 처형당했다. 자야와 백석, 그리고 법정, 여기에 박헌영까지 얹고 나선 이는 다름아닌 박헌영의 남한 내 유일한 혈육인 원경(70) 스님이다. 경기 평택 만기사 주지인 원경 스님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백석 흠모한 자야 모종의 거래 요정 대원각은 원래 박헌영의 비자금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모 인사가 항일독립운동에 써달라며 박헌영에게 거액을 기부했고, 박은 이 돈으로 대원각을 지었다. 자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원각을 되돌려주겠다고 원경 스님에게 누차 약속했다.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기 전인 1989년쯤에도 원경 스님에게 이 같은 뜻을 두어 차례 밝혔다. 스님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주변 지인들에게 “대원각을 돌려받으면 사찰을 세워 한국전쟁 때 희생당한 혼령들을 달래고, 한 쪽에는 시민학교를 세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야는 1997년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덜컥 시주해버렸다. 한사코 거절하던 법정 스님은 결국 시주를 받아들이면서 일정액, 정확히는 50억원을 떼 자야가 평생 흠모한 백석의 기념사업에 내놓기로 했다. 원경 스님이 더러 사석에서 대원각이 자신의 아버지(박헌영) 소유라는 말은 종종 했지만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어졌다.”며 구체적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과연 원경 스님의 ‘충격 증언’은 사실일까. 비자금의 특성상 기록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일단 추적해보기로 했다. 첫 힌트는 1915년 박헌영의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입학 학적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박헌영의 신원보증인으로 ‘조용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양반’이며 ‘관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용구는 가난하고 집안도 변변치 않은 충남 예산 시골 출신 박헌영이 경성고보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후 내내 정치적 후원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전쟁 뒤 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힌트는 길상사 등기부 등본이었다. 등기부에 따르면 자야가 길상사 땅을 취득하기 전 소유주는 ‘조봉희’라는 사람이었다. 원경 스님은 “조봉희가 바로 (박헌영의 후원자였던) 조용구 집안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자야가 대원각 땅을 취득한 시기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으로 몹시 혼란스러울 때였다. 당시 그녀는 정계 실력자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이 모든 정황을 감안하면 박헌영이 자기 사람(조봉희)을 가짜 명의로 내세워 대원각을 지은 뒤 자야를 비자금 세탁창구로 이용했다는 원경 스님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법정스님 입적후 미궁속으로 하지만 진실의 한 끝자락을 쥐고 있을지 모를 법정 스님이 지난 5월 입적하면서 대원각 미스터리는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자의반타의반 어린 시절 출가(出家)한 원경 스님은 “그 땅(대원각)을 운용하지 못한 것도 인연이자 업보”라면서 “나의 작은 그릇에 담기 어려운 큰 내용이 오려고 하자 인연이 일부러 뒤틀린 것 같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어찌됐든 대원각을 둘러싼 그간의 미담과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에 개운치않은 뒷맛이 남게 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정일 하얼빈 방문… 곡창지대 농장 시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 나흘째인 29일 전격적으로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지난 28일 밤 9시15분(현지시간)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 전용열차가 창춘(長春)을 출발할 때만 해도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전용열차는 첫 방문지였던 지린(吉林)을 거쳐 이날 새벽 2시쯤 하얼빈에 도착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김 위원장이 하얼빈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얼빈의 한 소식통도 “김 위원장이 이날 오후 헤이룽장성 고위 간부들과 하얼빈 인근의 베이다황(北大荒)그룹 산하 농장을 찾은 것으로 안다.”며 “농장 관계자로부터 북한에 보낼 쌀을 열차에 실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베이다황은 1950년대부터 조성된 헤이룽장성의 대규모 농작물 생산기지다. 특히 하얼빈역은 30일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 역을 통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김 위원장 일행의 출발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얼빈에 도착한 김 위원장 일행은 쑹화(松花)강 내 타이양다오(太陽島)에 위치한 영빈관에 여장을 푼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하얼빈에서 베이다황그룹 본사와 농기계박람회장, 항공기 부품공장 등을 시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동북항일열사기념탑 및 아버지인 고 김일성 주석의 혁명유적지도 참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3남 김정은과 함께 김 주석의 모교인 위원중학을 방문했다.”고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날 보도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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