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항의 시위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사장 임명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46
  • 의원님 들어주세요, 간절한 외침을…

    의원님 들어주세요, 간절한 외침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초동에서 열렸던 대규모 집회는 코로나19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서울시의 10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대규모 집회나 시위는 더욱 줄었다. 그러나 민원인들은 청와대 앞,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 열린 공간뿐만 아니라 정부종합청사, 법원, 검찰청, 경찰청 등 관공서 앞에서도 1인 시위, 기자회견, 차량시위 그리고 몇 개월째 지속되는 노숙투쟁 등 소규모의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분출하고 있다.국회 앞은 1962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만들어진 이후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잇따른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2018년 11월 27일 처음으로 사전 신고한 집회가 열렸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말에 걸맞게 국회 앞에는 각종 요구 사항을 표출하는 집회시위가 봇물을 이룬다. 단체나 개인의 주장을 담은 현수막과 손팻말이 이곳저곳에 걸려 있다. 심지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도 요구 사항의 관철을 위해 경내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땡볕 아래에서 태아생명살리기 소속인 40대의 한 어머니는 낙태 반대 손팻말을 들고 1년째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첫째 아이 때 병원에서 낙태를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죽일 수는 없었다” 면서 출산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며 경험을 바탕으로 낙태에 반대하는 입장을 설명했다.주유춘씨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부당해고와 불법 폐쇄를 막기 위해 4개월째 상경 시위를 하고 있다. 주씨는 “법원에서 부당해고라는 최종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업주가 355명이나 되는 전 직원을 해고했고, 사업장을 폐쇄하고 해외로 이전한다”고 했다. 국회 앞 안전지대에 각종 깃발과 현수막으로 무장한 대형버스가 1년째 억울함을 알리는 방송을 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지방에서 중소기업을 하던 김용태씨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알리기 위해 버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14년째 맞서 싸우고 있다는 김씨는 형사소송에서는 대법원까지 승소했으나, 민사소송에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 1년 전부터 온 가족이 시위를 하고 있다. 버스 안에 간이 탁자와 텐트까지 설치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선망직종이었던 비행기 조종사들도 지난해 9월부터 회사 측의 부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텐트노숙을 하고 있다.사회의 갈등이 용광로처럼 녹아들어야 할 국회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국회 앞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하며 요구 사항과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글 사진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사설] 네이버·카카오 ‘벤처기업’에 가려진 인권침해 사라져야

    대표적 벤처 1세대 기업인 네이버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IT 기업의 직원이 목숨을 끊은 이유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라는 소식에는 할 말을 잊는다. 해당 직원은 담당 임원으로부터 부당한 업무 지시와 모욕적인 언행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인권침해에 대한 내부의 문제 제기에 묵인과 방조로 일관했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전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T 업체의 성공신화가 구성원의 희생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신생 벤처기업도 노동 관련 법을 따라야 하는 시대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IT 공룡에 여전히 수직적 조직 문화에 따른 ‘구시대적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니 놀랍다. 특정 기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벤처기업이란 이름으로 미래지향적 사고로 무장한 듯 포장했던 IT 업계가 후진적 인권침해의 온상이란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국민의 자괴감은 적지 않다. IT 업계는 직급에 관계없이 ‘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수평적 조직 문화를 선도하는 이미지를 만들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리더 그룹의 의식 변화 없는 말뿐인 제스처로는 되는 일이 없음을 네이버 사태는 증명하고 있다. 노조가 지목한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는 “님은 나한테 죽어요”라는 표현도 썼다고 한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밤 10시가 넘은 시간은 물론 휴일에도 해결 불가능에 가까운 업무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살인 갑질’을 일삼은 당사자와 방관한 회사에 강력한 형사처벌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낡아 빠진 ‘갑질’은 안타깝게도 우리 IT 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다. 카카오는 임신부에 대한 시간 외 근무 지시를 포함해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게임업체 넥슨의 직원들은 부당한 대기 발령과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니 신생 벤처기업의 실상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라는 21세기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한국에서 1970년대 산업 현장의 “살려 달라”는 외침이 여전히 들린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 [속보] “머스크 트윗 중단하라” 미 테슬라 공장 앞 항의시위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잇따른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 개입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테슬라 공장 앞에서 열렸다. 머스크와의 전쟁을 선포한 ‘스톱 일론’ 단체는 지난 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공장 앞에서 머스크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고 7일 미국 경제전문 매체 벤징가가 보도했다. 이 단체는 머스크가 암호화폐 시장에서 너무 많은 힘을 발휘한다면서 “우리는 머스크가 지긋지긋하다”, “트윗을 중단하라”, “암호화폐 시장 조작을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힌 푯말을 들었다. 앞서 머스크는 지난달 테슬라의 비트코인 결제 중단을 돌연 선언한 뒤 비트코인을 깎아내리고 다른 암호화폐인 도지코인을 띄우는 트윗을 잇달아 날리며 암호화폐 시장을 출렁거리게 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관광보다 환경” 베네치아 시민 보트, 크루즈 막아섰다

    “관광보다 환경” 베네치아 시민 보트, 크루즈 막아섰다

    팬데믹 이후 17개월 만에 크루즈선 입항주민·환경단체 “큰 배는 안 돼” 반대 시위“오버투어리즘으로 자연환경 망가뜨려”지속 가능한 관광산업 위한 논의 커져“우리는 주민을 몰아내고, 지구와 도시를 파괴하고, 오염을 일으키는 관광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교사 마르타 소토리바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베네치아에서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17개월 만에 대형 크루즈선이 운항을 재개하자 관광산업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크루즈선 반대운동’에도 불이 붙었다. 수년간 ‘오버투어리즘’으로 파괴된 자연환경이 코로나 봉쇄 조치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일부 회복됐는데 최근 국경이 다시 개방되며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이날 베네치아 주데카 운하에서 9만 2000t급 크루즈선 MSC 오케스트라호가 승객 650여명을 태우고 운항을 시작하자 지상에 있는 주민들과 환경운동가 수백명은 거센 항의 시위를 벌였다. 소운하의 골목을 메운 작은 보트에 탄 시민들은 오케스트라호 주위를 맴돌며 “큰 배는 안 돼”(No Big Boats)라고 쓰인 깃발을 흔들고 당장 운항을 중지하라고 외쳤다. 오버투어리즘, 즉 유명 관광지에서 과도한 관광객으로 인한 자연환경과 원주민의 터전 파괴는 오랫동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봉쇄 조치를 내리자 방문객의 발길이 끊겨 환경오염이 줄어들었다는 점은 ‘코로나의 역설’로 불리며 불행 속 한 줄기 희망으로 꼽히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관광 명소가 재개장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기쁘지는 않다”며 “여행자가 돌아오며 과밀과 오염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와이 하나우마 베이의 경우 원래 연간 100만명 이상이 방문했는데, 이들의 몸에서 바다로 묻어나오는 자외선 차단제는 하루에만 약 187㎏에 달했다. 산호초 파괴나 야생동물 밀렵 문제 역시 심각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도 지난해 관광객이 급감하자 운하가 맑아지며 작은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모습이 관측됐는데, 대형 선박이 다시 운항을 시작하면 이런 모습을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현지 환경 운동가들은 연간 2000만명 이상이 찾는 베네치아에서 대형 크루즈선은 취약한 지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대기오염까지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가수 믹 재거, 배우 틸다 스윈턴 등 문화계 인사들은 대형선박 관광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지속 가능한 관광 산업에 대한 논의도 커진다. 뉴질랜드에선 제트 보트에 쓰이는 연료가 환경을 오염시킨다며 전기 보트 시범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기업도 환경에 유해한 과잉 관광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며 “항공사, 호텔 등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폐기물 관리에 앞장서는 등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물과 기름의 8개 정당 ‘무지개 연정’… 네타냐후 시대 끝냈다

    물과 기름의 8개 정당 ‘무지개 연정’… 네타냐후 시대 끝냈다

    ‘네타냐후만 아니면 된다. 이번엔 끝내자.’ 1996년부터 3년, 이어서 2009년 3월 31일 재집권 이후 12년 2개월 동안 이스라엘 총리였던 베냐민 네타냐후(71) 총리가 실각했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정당인 ‘리쿠드’보다 몇 단계 더 우클릭한 극우 성향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49) 대표가 구성 시한인 1일(현지시간) 밤 12시를 한 시간 앞두고 연정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이스라엘 의석 과반 기준인 60석에 못 미치는 57석을 확보했던 중도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57)의 구애에 화답한 베네트는 연정이 집권할 4년 중 전반기 2년을 책임질 총리로 지명됐다. 극우·유대 민족주의 성향의 총리가 중도·세속주의 정당이 주도해서 구성한 연정을 대표하게 됐다. 좀더 들여다보면 연정을 구성한 8개 정당(62석)은 정치성향, 민족, 종교, 팔레스타인 대응 정책 측면에서 물과 기름처럼 판이하게 다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무지개 연정’을 구성할 수 있었던 동력은 더이상 네타냐후여서는 안 된다는 의지, ‘반(反)네타냐후’ 정서에 있었다. 너무 다양해서 도무지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스라엘 새 연정의 특성은 차기 총리인 베네트의 경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지금은 ‘네타냐후 반대’를 외치는 베네트이지만, 그는 정치 경력 대부분을 네타냐후와의 관계 속에서 쌓았다. 팔레스타인 분리 정책 등을 보자면 네타냐후보다 더한 강경파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1967년 3차 중동전쟁 직후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로 이주한 미국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베네트는 이스라엘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9년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인 사이오타를 설립한 그는 2005년에 이 회사를 1억 4500만 달러에 매각해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이후 이스라엘로 돌아와 2006년 레바논 전쟁에 예비군으로 참전한 뒤 당시 야당 대표였던 네타냐후의 수석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스라엘 의원이 된 그는 네타냐후 주도 행정부에서 경제, 종교, 디아스포라(재외동포) 담당 장관을 맡았다. 2015년 총선에서 재선한 뒤엔 교육부 장관과 예루살렘 담당 장관을 지냈다. 2018년 국방부 장관을 원했던 베네트는 네타냐후가 이를 거절하자, 리쿠드당을 탈당했다. 이후 유대 민족주의·우파 성향 정당을 거쳐 ‘야미나’의 대표가 됐다. 자신이 구성한 연정에서 초반 2년 동안 외교장관을 지낸 뒤 후반기 2년 동안 총리가 될 라피드의 정치 행보는 베네트와 크게 다르다. 이스라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의 아버지는 언론인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어머니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였다. 텔아비브와 영국 런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라피드는 군 복무 중 헬기가 일으킨 먼지바람 때문에 천식을 앓은 뒤 전투병에서 군 주간지 기자로 전환했다. 라피드는 2011년 ‘이스라엘 텐트시위’를 계기로 정계 입문 기회를 잡았다. ‘텐트시위’는 높은 물가와 집값을 야기시킨 이스라엘 재벌에 항의하며 이스라엘 인구 10%가 참여한 시위다. 시위 이듬해 중도·세속주의 정당인 ‘예시 아티드’를 창당한 라피드는 2013년 총선에서 19석을 얻었고, 이후에도 종교·민족 성향이 짙은 다른 정당과의 차별화를 무기로 원내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무지개 연정’은 출범하자마자 회의론에 직면했다. 네타냐후가 연정에 가담한 우파 정당을 상대로 의원 빼오기를 진행 중인 데다, 연정 내 내부 분열이 일어날 여지도 크다는 관측이 많다. 그럼에도 집권 12년 동안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팔레스타인인에게 뒤집어씌우며 분열을 조장하는 등 이스라엘 정세에 관한 인식을 2차 세계대전 당시로 퇴보시킨 네타냐후의 행보가 일단 멈춘 것 자체에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홍희경·김진아 기자 saloo@seoul.co.kr
  • 사라진 ‘표현의 자유’… 홍콩 언론은 빙하기

    사라진 ‘표현의 자유’… 홍콩 언론은 빙하기

    지난해 5월 28일 중국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지 1년이 지났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표현의 자유’를 누리던 홍콩은 이제 주요 매체들이 편집권을 박탈당하고 폐간 위기에 몰리는 등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29일(현지시간) BBC방송은 “100년 가까이 ‘성역 없는 보도’로 언론계 찬사를 받던 홍콩라디오텔레비전(RTHK)이 보안법 가결 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소개했다. RTHK는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던 1928년 설립됐다. 그간 홍콩 정부는 운영자금을 대고 고위 경영진을 임명했지만, 편집권은 손대지 않았다. 덕분에 이 회사는 ‘홍콩의 BBC’로 불리며 서구식 언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3월 정부 관료 출신인 패트릭 리가 방송국장에 임명되자 상황이 돌변했다. 리 국장이 모두의 반대에도 친중 성향 보도 기조를 고수하자 6명의 간부가 이에 항의해 퇴사했다. 홍콩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을 맹비난한 현장 기자도 해직됐다. 익명을 요구한 RTHK 기자는 “우리 회사의 뉴스룸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세상이 달라졌다”며 “리 국장 등 낙하산들이 모든 기사를 통제하고 (보도 여부를) 결정한다. 반대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자 지미 라이가 세운 빈과일보도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 경찰 총수인 크리스 탕 경무처장이 연일 ‘증오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는 보안법 위반’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반중 성향 빈과일보를 강제 폐간하고자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렁춘잉 전 행정장관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빈과일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정치 조직이다. 진짜 언론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거들었다. 친중 매체 대공보는 한술 더 떠 “빈과일보 발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홍콩의 안보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빈과일보는 대만에서도 발행되는데, 이미 대만에서는 지난 18일부터 지면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 체제로 전환했다. 베이징의 눈치를 살피는 기업들이 광고 게재를 중단해 회사 경영이 극도로 나빠진 탓이다. 여기에 홍콩 정부는 불법집회 참여 혐의로 징역 14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라이 창업자의 자산을 전면 동결했다. 빈과일보에 대한 추가 출자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매체를 고사시키려는 의도다. 친중 기업들이 홍콩 언론사를 대거 인수해 언론 지형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명보는 “지난달 홍콩 최대 위성방송 봉황TV를 사들인 바우히니아문화홍콩집단유한공사가 곧바로 본토 출신 이사 세 명을 언론사에 파견했다.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며 “홍콩에 (중국의 뜻대로 움직이는) 문화 콘텐츠 기업을 만들려는 베이징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에는 광둥성 선전의 부동산 기업 카이사가 홍콩 성도신문집단을 인수했다. SCMP는 “중국 재계 거물이나 중국 대기업이 홍콩 언론을 사들여 (친중 성향으로) 길들이는 사례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당국은 6·4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집회와 추모 행진에 참여하면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홍콩프리프레스(HKFP)가 전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홍콩보안법 가결 1년…얼어붙은 ‘표현의 자유’

    홍콩보안법 가결 1년…얼어붙은 ‘표현의 자유’

    지난해 5월 28일 중국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지 1년이 지났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표현의 자유’를 누리던 홍콩의 매체들은 이제 편집권을 박탈당하고 폐간 위기에 몰리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29일(현지시간) BBC방송은 “100년 가까이 ‘성역없는 보도’로 언론계 찬사를 받던 홍콩라디오텔레비전(RTHK)이 보안법 가결 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소개했다. RTHK는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던 1928년 설립됐다. 그간 홍콩 정부는 운영자금을 대고 고위 경영진을 임명했지만, 편집권은 손대지 않았다. 덕분에 이 회사는 ‘홍콩의 BBC’로 불리며 서구식 언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3월 정부 관료 출신인 패트릭 리가 방송국장에 임명되자 상황이 돌변했다. 리 국장이 모두의 반대에도 친중 성향 보도 기조를 고수하자 6명의 간부가 이에 항의해 퇴사했다. 홍콩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을 맹비난한 현장 기자도 해직됐다. 익명을 요구한 RTHK 기자는 “우리 회사의 뉴스룸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세상이 달라졌다”며 “리 국장 등 낙하산들이 모든 기사를 통제하고 (보도 여부를) 결정한다. 반대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자 지미 라이가 세운 빈과일보도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 경찰 총수인 크리스 탕 경무처장이 연일 ‘증오와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는 보안법 위반’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반중 성향 빈과일보를 강제 폐간하고자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렁춘잉 전 행정장관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빈과일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정치 조직이다. 진짜 언론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거들었다. 친중매체 대공보는 한술 더 떠 “빈과일보 발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홍콩의 안보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빈과일보는 대만에서도 발행되는데, 이미 대만에서는 지난 18일부터 지면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 체제로 전환했다. 베이징의 눈치를 살피는 기업들이 광고 게재를 중단해 회사 경영이 극도로 나빠진 탓이다. 여기에 홍콩 정부는 불법집회 참여 혐의로 징역 14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라이 창업자의 자산도 전면 동결했다. 빈과일보에 대한 추가 출자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매체를 고사시키려는 의도다. 이런 상황에서 친중 기업들이 홍콩 언론사를 대거 인수해 홍콩의 언론 지형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명보는 “지난달 홍콩 최대 위성방송 봉황TV를 사들인 바우히니아문화홍콩집단유한공사가 곧바로 본토 출신 이사 세 명을 언론사에 파견했다.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홍콩에 (중국의 뜻대로 움직이는) 문화 콘텐츠 기업을 만들려는 베이징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에는 광둥성 선전의 부동산 기업 카이사가 홍콩 성도신문집단을 인수했다. SCMP는 “중국 재계 거물이나 중국 대기업이 홍콩 언론을 매입해 (친중 성향으로) 길들이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됐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당국은 6·4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집회와 추모 행진에 참여하면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홍콩프리프레스(HKFP)가 전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서울포토]‘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에 항의했다고 벌금형?’ 1인시위 돌입 기자회견

    [서울포토]‘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에 항의했다고 벌금형?’ 1인시위 돌입 기자회견

    24일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회원들과 연세대 졸업생들이 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범죄에 항의해 벌금형을 받은 당사자들의 입장 발표및 1인시위 돌입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 5. 24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막나가는 벨라루스, 전투기까지 동원해 다른 나라 여객기 강제착륙시킨 이유

    막나가는 벨라루스, 전투기까지 동원해 다른 나라 여객기 강제착륙시킨 이유

    지난해 대선 부정으로 인한 정치 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 정부가 야당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다른 나라 항공기를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로 긴급 착륙시켰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간) 폴란드에 머무르며 반정부 활동을 하던 언론인 로만 프라타세비치(26)을 검거한다면서 그가 타고 있던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 에어 여객기 FR4978편을 착륙시키기 위해 전투기까지 띄워 착륙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격추시키겠다고 겁박했다. 여객기는 그리스 아테네를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향하던 중이었다. 오후 2시쯤 민스크 공항에 비상착륙했던 여객기는 저녁 8시 50분쯤 다시 이륙해 오후 9시 25분쯤 빌뉴스에 도착했다. 원래 도착 예정시간보다 7시간 늦어졌다. 영국 BBC는 민스크 공항에서 만난 두 탑승객 반응을 전하고 있다. 한 승객은 프로타세비치가 “몹시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동자를 가만 들여다봤는데 아주 슬퍼 보였다”고 말했다. 모니카 심클레네란 다른 승객은 AFP 통신에 “그는 막 국민들에게 돌아갔다”면서 그가 사형을 언도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초 여객기에는 리투아니아를 포함해 12개국 승객 약 17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고 리투아니아 측은 밝혔다. 벨라루스 문화장관을 지낸 야권 인사 파벨 라투슈코는 승객 가운데 러시아인 4명과 벨라루스인 2명 등 6명은 민스크 공항을 다시 떠나지 못했다고 전했다. 라투슈코 전 장관은 “민스크 관제센터가 (비상착륙을 요구하며) 여객기를 격추하겠다고 위협했으며,이를 위해 MiG-29기를 출격시켰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타세비치는 벨라루스에서 인기가 높은 야권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NEXTA)의 편집장을 지냈는데 넥스타도 그가 민스크 공항에서 보안당국에 체포됐다고 넥스타 측이 밝혔다. 벨라루스 당국은 기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며 기장이 가장 가까운 민스크 공항에 비상착륙을 결정했다고 변명했다. 넥스타 측은 “여객기 점검 결과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든 승객은 보안 검색을 받았다”면서 “프라타셰비치는 체포됐다”고 전했다. 라이언에어 측은 벨라루스 관제센터로부터 여객기를 착륙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친정부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풀 페르보보’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직접 여객기 비상착륙을 지시했으며, 여객기 호송을 위해 미그(MiG)-29 전투기 출격 명령까지 내렸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벨라루스에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해당 여객기가 곧바로 벨라루스를 떠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에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모든 승객은 빌뉴스로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도 트위터에 “우리는 벨라루스 정부에 모든 승객과 해당 여객기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라고 경고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도 트위터에 “이는 심각하고 위험한 사건”이라면서 “국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프라타세비치가 거주하는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번 사건을 “국가 테러리즘 행위”라고 비판하며 24일 EU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벨라루스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에 대해 논의할 것을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모두 EU와 나토 회원국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에 패배한 뒤 신변에 위협을 느껴 리투아니아로 망명해 있는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도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하기 위해 (벨라루스) 보안기관이 여객기를 납치하는 작전을 편 것이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2019년 말 벨라루스 정부의 탄압을 피해 폴란드로 도피한 프라타세비치는 지난해 벨라루스에서의 대선 부정 항의 시위를 부추기고 반정부 선동을 주도한 혐의로 벨라루스 당국의 ‘테러활동 가담자’ 목록에 올라있다. 넥스타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됐다. 벨라루스 검찰은 지난해 11월 폴란드 법무부에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해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벨라루스에선 지난해 8월 대선에서 30년 가까이 집권한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한 것으로 나타나자 정권의 투표 부정과 개표 조작 등에 항의하는 야권의 시위가 몇 개월 이어졌다. 올해 들어 상당히 수그러들었지만 완전히 멈추진 않았다. 야권은 루카셴코 대통령 사퇴와 새로운 총선 및 대선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루카셴코 대통령은 자국 군부와 권력기관의 충성,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여섯 번째 임기를 유지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집값 때문에 촛불 든 게 아니다” 왜 김부선은 ‘분노선’이 되었나

    “집값 때문에 촛불 든 게 아니다” 왜 김부선은 ‘분노선’이 되었나

    “광역철도라는 이름에 걸맞는 김포∼부천 노선이 아닌 서울의 강남으로 직결돼야 하고, 정부는 아침과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경기 서부권 주민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경기 김포와 부천, 인천 청라지역의 주민들은 서부권광역급행철도(GTX)-D노선이 김포에서 인천과 부천을 거쳐 서울 강남까지 연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공개된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 시안에 김포 장기에서 시작해 부천종합운동장까지만 이어지는 노선으로 반영됐다. 그래서 ‘김포와 부천을 연결하는 노선’이라는 뜻의 ‘김부선’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고, 김포와 청라를 중심으로 강남까지 노선 연장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당초 경기도가 제안한 GTX-D노선은 김포~검단~부천~서울 남부~강동~하남을 잇는 동서 방향 노선이다. 경기도는 이 노선을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할 것을 건의했고 사업비가 약 5조 8097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인천시도 그동안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D노선과 관련해 경기 하남에서 서울 남부를 거쳐 부천으로 연결하는 노선이 청라 인천국제공항 방면과 검단 김포 방면 두 갈래로 나뉘는 이른바 Y자 노선을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할 것을 주장해 왔다.이에 따라 인천 검단·청라·계양·영종 및 경기 김포·부천·하남, 서울 강동구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자체안대로 건설할 경우 공항철도, 지하철 9호선과 노선이 중첩돼 비효율적이라고 배경을 설명했지만, 서울 출퇴근에 큰 고통을 겪으면서 GTX-D노선에만 희망을 걸고 있던 수도권 서부지역 주민들은 배신감을 크게 느꼈다. ●“기대감이 물거품으로… 이러니 강남 집값 오르는 것” 23일 인천 영종·청라 시민들로 구성된 ‘GTX-D 인천시민추진단’은 Y자 노선으로 변경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에 나섰다. 김포와 인천 검단 주민들로 구성된 시민단체는 지난 15일 밤 ‘GTX-D노선 서울 직결 확정’을 요구하는 세 번째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모일 정도로 분위기가 뜨거웠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촛불집회뿐만 아니라 국토부 앞 집회, 차량 시위,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18원 후원금 입금’ 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항의를 이어 가고 있다. 김포한강신도시에서 서울 강남 삼성동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는 정용(54)씨는 “지하철 이용은 엄두도 못 내고 승용차를 타고 올림픽대로 출퇴근을 하는데 새벽 밥을 먹고 오전 6시 전에 집을 나서야 제시간에 갈 수 있고, 퇴근 땐 도로가 막혀서 2시간 이상 걸린다”고 푸념을 했다. 이어 정씨는 “몇 년만 고생하면 GTX가 생긴다고 기대를 했었는데 물거품이 됐다”며 “이러니 서울 강남 집값만 계속 오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김천기 김포 한강신도시총연합회장은 “2019년 개통한 2량짜리 김포 경전철은 수도권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지옥철로 불리고 있다. 출퇴근 시간대의 혼잡률은 285%에 달한다”며 “출근시간에 장기역~고촌역에서 탑승하는 시민들은 이미 만석인 지하철을 바라보면서 한숨부터 쉰다. 3~4회 지하철을 보내고 출근시간에 맞춰 겨우 탑승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김포 지역에서 서울을 이어 주는 도로도 올림픽대로 하나뿐이며 출퇴근 시간마다 가양대교~김포 구간은 거대한 주차장이다.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또 내년 대선 등을 앞두고 각 지역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GTX-D노선의 서울 직결을 촉구하고 있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지역 주민의 요구에 편승하며 GTX-D노선 변경 요구에 적극적이다. 경기 김포·부천·하남·서울 강동구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난 20일 공동으로 GTX-D노선의 강남 직결을 정부에 촉구했다. 정하영 김포시장, 장덕천 부천시장, 김상호 하남시장, 이정훈 강동구청장과 시민단체 회원 등 10여명은 이날 부천종합운동장역 1번 출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GTX-D노선 강남 직결을 촉구하는 공동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수도권 서부권인 김포·부천과 동부권인 강동구·하남 주민들은 광역교통시설의 절대 부족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며 “하지만 국토부는 수도권과 지방의 투자 균형 등의 이유로 GTX-D노선을 김포∼부천으로 대폭 축소해 발표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현재 추진 중인 GTX A·B·C 노선은 모두 수도권 남북과 (동서) 대각선을 잇는 노선으로 계획됐다”며 “D노선이 동서를 직선으로 잇는 구간으로 추진돼야만 수도권 전체가 차별 없이 서울 접근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정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국토부의 GTX-D노선 발표에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국토부는 D노선이 김포∼부천∼강동∼강남∼하남으로 연결되도록 6월 확정 고시 이전에 적극적으로 행동해 달라”고 촉구했다. 내년 3월 대선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잠룡’들도 김포와 부천, 청라 지역주민의 표심 잡기에 적극적이다. 이는 대선을 불과 10여개월 앞둔 시점에서 지역의 민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17일 아침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도시철도에 직접 탑승한 뒤 플랫폼에서 노형욱 국토부 장관에게 전화해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고, 송영길 대표도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과 신임 당 지도부의 첫 회동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등 대통령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여당 지도부는 비상이 걸렸다. 지역 주민과 정치권의 집중포화에 정부도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국토부 관계자는 GTX-B노선과 선로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GTX-D노선의 일부 차량이 서울 여의도나 용산역까지 운행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선로를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도 GTX-D노선 승객이 환승 없이 서울까지 갈 수 있게 된다. 또 국토부는 GTX-D노선과 다른 노선이 만나는 환승역에는 플랫폼을 이동하지 않고 내린 자리에서 바로 갈아탈 수 있는 ‘평면환승’을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부동산 시장도 싸늘… “검단신도시 호가 1억 떨어져” 정부의 김부선 발표에 지역 부동산 시장의 열기도 싸늘해졌다. 오는 6월 입주하는 인천 검단 신도시 지역 부동산 시장에서 분양권을 찾는 사람이 확 줄었다. GTX-D노선과 서울 강남권의 직접 연결이 무산되자 기대심리가 떨어진 탓이다. 인천 검단신도시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그 이후 인천 검단신도시의 분양권 프리미엄이 꺾였다고 입을 모았다. 검단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 A씨 “GTX-D노선 계획이 나온 이후 분양권값이 내렸다”면서 “호반써밋1차 전용면적 84㎡의 경우 호가가 1억원 정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세시장도 매물은 나오는데 문의 전화는 끊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민들의 GTX 노선에 대한 불만은 단지 아파트 가격 때문이 아니라 늘어난 신도시 인구에 비해 정체해 있는 교통 인프라로 인한 불편함과 소외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포 한강신도시 지역의 공인중개사 B씨는 “물론 GTX가 생기면 기대심리 때문에 그동안 집값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주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집값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김포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전쟁을 치른다. 지하철이 아니라 지옥철이다. 교통망은 생각지도 않고 신도시만 개발한 정부의 부실 행정에 반발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GTX-D노선이 부천까지만 잇는 걸로 나와 이해가 안 됐고, D노선을 B노선과 공유해 용산까지 잇는 게 장기적인 교통망 관점에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수도권 동과 서를 연결하는 광역철도는 분명히 필요하며 상황에 따른 땜질식 교통대책으로는 수도권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文 “저는 디모테오, 뵈니 꿈만 같다”… 추기경 “한국교회 상황, 굉장한 자부심”

    文 “저는 디모테오, 뵈니 꿈만 같다”… 추기경 “한국교회 상황, 굉장한 자부심”

    “한국은 가톨릭 신자 비율이 12~13% 정도일 것 같습니다. 지식인층이 특히 가톨릭 신앙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인권이라든지, 아픈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요즘에는 남북통일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정신적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주도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한국 교회 상황을 설명해 주셨는데, 저에게는 매우 자부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한국 천주교가 사회 정의라든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왔다는 말씀이 큰 자부심입니다. 평화에서 앞서 왔다는 점도 굉장히 자부심으로 느껴집니다(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미국을 공식 실무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순방 마지막 날인 22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DC 대교구 대주교를 만나 한반도 평화와 인종 화합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지난해 10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추기경에 임명됐으며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확산했을 때 종교시설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전날 개최된 코로나19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할 것을 강조하는 기도를 봉헌했고,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 왔다. 문 대통령은 “주교님을 뵈니 꿈만 같다. 저는 가톨릭 신자로 본명이 디모테오라고 한다”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님에 이어서 두 번째 가톨릭 신자”라며 “한국 대통령으로서, 가신자로서 주교님을 뵙게 돼서 정말 영광”이라고 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저 역시도 뵙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2004년 아시아 지역 주교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는데 굉장히 인상 깊은 여정이었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그레고리 추기경의 인종 갈등 봉합을 위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잇따르는 증오범죄와 인종 갈등 범죄에 한국민도 함께 슬퍼했다”면서 “증오방지법이 의회를 통과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해서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이 어려운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하고, 갈등도 어려운 사람 사이에서 많이 생긴다”며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고 1주기가 화합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끔찍한 폭력이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문 대통령은 또한 “2018년 10월 로마를 방문해 교황님을 뵈었는데, 한반도 통일을 축원하는 특별미사를 봉헌해 주시는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다”며 “여건이 되면 북한을 방문해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싱턴과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5만명의 교민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15년간 애틀랜타 대주교로 활동했는데, 한국인들의 친절과 배려, 화합에 대한 열망을 잘 안다”면서 “한국 사람들은 존중과 사랑을 받으면 보답하는 정신이 있다. 늘 함께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면담이 끝난 뒤 한국에서 가져온 ‘구르마(손수레) 십자가’를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수십 년 전 동대문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끌고 다니며 일하던 나무 손수레를 사용하지 않게 되자 십자가로 만들었다”면서 “노동자의 땀이 밴 신성한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성스러운 상징이라며 십자가에 입을 맞췄다. 아울러 문 대통령에게 한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축복 기도를 했다. 워싱턴 공동취재단·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여기는 남미] “내 딸 어디로”…사산한 영아 대신 ‘죽은 쥐 사체’ 내준 병원

    [여기는 남미] “내 딸 어디로”…사산한 영아 대신 ‘죽은 쥐 사체’ 내준 병원

    남미 콜롬비아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영아 사체 바꿔치기 사건이 발생, 사회가 공분하고 있다. 병원에서 태어난 건 분명 딸이었지만 부부가 받은 사체는 끔찍하게도 죽은 쥐였다. 병원은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콜롬비아 남서부 바예델카우카주(州)의 셀리안에 있는 한 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남편 알레한드로 하라밀로는 지난 13일 산통이 온 부인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 병원에선 다시 큰 병원으로 부부를 보냈다. 태아의 상태가 이상해 출산이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부는 연거푸 이런 말을 듣고 두 번이나 병원을 옮긴 끝에야 간신히 진료를 받았지만, 병원 의료진은 부부에게 "아기의 심장이 뛰지 않고 있다"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말을 전했다.  태아가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 의사는 분만을 앞당겨야 한다면서 부인에게 알약을 주었다. 이때가 13일 오후 6시쯤이었다. 같은 날 밤 10시쯤 병원은 입원한 부인에게 또 1개의 알약을 주었다. 이번에도 출산을 앞당기기 위한 약이라고 했다. 두 번이나 약을 먹었지만 부인이 아기를 출산한 건 15일이었다. 예상대로 사산이었다. 부인은 "죽어 태어난 아기를 주지 않아 품에 안아보지도 못했지만 누운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의 몸을 반쯤 보았다"고 말했다. 끔찍하고 황당한 사건은 16일 남편 하라밀로가 딸의 시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면서 벌어졌다. 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상조회 직원을 대동하고 병원을 찾아간 그에게 시신보관소 측은 작은 관을 내줬다. 아기의 사체가 누워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그는 울어보지도 못하고 숨진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관 뚜껑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관에 누워 있는 건 영아가 아니라 커다란 쥐였다. 쥐 옆에는 라텍스장갑이 던져져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하라밀로는 강력히 항의했지만 시신보관소 측은 영문을 모르겠다면서 어깨만 들어 보일 뿐이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병원은 17일 성명을 내고 부부에게 사과하는 한편 진상규명을 위해 내사에 착수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영아의 사체는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라밀로는 딸의 시신을 찾아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네티즌들은 "사람이 쥐를 낳았다는 말인가"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라 성의만 있다면 바로 경위를 알아낼 수 있는데 병원이 무책임하다"는 등 공분하고 있다. 사진=세마나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사드 기지에 한 달 새 4번 물자 반입… 주민들 “文 방미 맞춰 병참화 의도”

    사드 기지에 한 달 새 4번 물자 반입… 주민들 “文 방미 맞춰 병참화 의도”

    성주군 소성리 기지에 차량 30대 들어가경찰, 새벽 진입로 막은 시위대 강제 해산주민 “2018년처럼 몰래 새 공사할 수도”국방부 “정상회담과 무관… 장병 생필품”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최근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대한 공사 자재 등의 반입을 크게 늘리면서 그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 등은 20일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물품 등을 실은 차량 30여대를 반입했다. 각종 물품을 싣고 기지로 들어간 차들은 오후 5시쯤 모두 밖으로 빠져나왔고, 경비를 위해 투입됐던 경찰 1100여명도 현장에서 모두 철수했다. 국방부는 한미 장병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생필품과 각종 장비를 실은 차량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올해만 여섯 번째, 근 한 달 만에 네 번째 물자 반입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1월 22일, 2월 25일, 4월 28일, 5월 들어선 14일, 18일에도 물자 반입이 있었다. 올해 한미 양국 장병들의 급식과 생필품, 공사자재 등의 반입에 동원된 차량은 100여대에 이른다. 사드 기지의 물자 반입 때마다 경찰과 사드 반대 단체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이날도 오전 5시 40분부터 주민, 종교단체, 사드 반대 활동가 등 30여명은 사드 기지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막고 항의 농성에 나섰다. 경찰은 1000여명을 투입해 기지 입구 쪽 도로 등을 점거했던 사드 반대 단체 관계자와 주민 등 50여명을 강제 해산시키고 진입로를 확보했다. 일각에서 국방부 등이 사드 기지 내에서 새로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성주 주민들은 “최근 사드 기지 내 자재 등의 반입이 전례 없이 부쩍 늘었다”면서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기지 내에서 새로운 공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강현욱(원불교 교무) 사드철회 소성리 종합상황실 대변인은 “국방부는 2018년 사드 기지 내 자재 반입 당시에 미국 숙소 및 식당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뒤늦게 유류탱크 매설 작업을 암암리에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번에도 기지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문재인 대통령 방미에 맞춰 사드 기지를 병참화하려는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공사 계획이 애초에 잡혀 있었으며,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부인했다. 성주 소성리 주민과 사드 반대 단체 관계자들은 21일 청와대 앞에서 정부와 미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성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축구잘하던 아이가 공습으로…친구 무덤 찾은 팔레스타인 소년들

    축구잘하던 아이가 공습으로…친구 무덤 찾은 팔레스타인 소년들

    “무덤을 열면 친구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팔레스타인 소년은 19일 천진난만한 얼굴로 현지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년은 “친구가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다른 소년은 “부나트가 정말 이 무덤 안에 있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슬람 와엘 부나트(16)는 18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과 팔레스타인인 퇴거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군이 맞붙은 이날 시위에서는 부나트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3명이 목숨을 잃었다.시위에 참가한 압둘라 자이드(14)는 “총알이 빗발쳤다.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부나트가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부나트를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부나트는 곧 사망선고를 받았다. 부나트는 여느 또래와 다름없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자이드는 “명랑한 친구였다. 항상 우리를 웃기고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는 부나트가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기억한다”고 말을 이었다.특히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동네를 주름잡았다.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주고 함께 공놀이를 즐기는 골목대장이었다. 죽기 전날 부나트와 축구 시합을 했다는 누르신(11)은 “시위 전날 같이 놀았다. 경기 중에 다툼이 있었고 화가 나 집으로 갔다. 지금은 형을 용서한다. 다시는 형한테 화내지 않을 테니 돌아와 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유가족의 비통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부나트의 할머니는 “시위가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손자가 잘못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정한 아이였다. 손자의 부재를 견뎌낼 수 있을지, 손자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오열했다.동생 모하마드(10)는 “시위 당일 형이 먹을 것을 주고 갔다. 형이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버지 어머니가 혼자 울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도 죽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거다. 다치거나 체포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이 놀고 싸우던 형은 이제 여기 없다. 이스라엘군이 형을 죽였다”고 슬퍼했다. 18일 시위는 같은 날 이스라엘 전역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총파업과 궤를 같이한다.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땅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자국민 정착촌을 세우는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 차원이다.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 독립 및 국가건설 선포에 따른 1차 중동전쟁으로 영토의 80%를 빼앗겼다. 이스라엘의 토지 몰수 및 원주민 축출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 80만 명이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이스라엘 외 여러 중동 지역으로 피난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 정책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5년 사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정착한 이스라엔인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달 초에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동예루살렘 셰이크자라 지역에 쳐들어가 팔레스타인 축출을 요구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라마단 기간이었던 10일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모스크를 습격해 최루가스와 섬광탄, 고무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300여 명이 다쳤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즉각 로켓포로 반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보복성 폭격을 퍼부으면서 양측 갈등은 교전으로 번지게 됐다. 열흘 넘게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교전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27명에 이르렀다. 이 중 64명은 어린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애플, 中에 사전 검열 협조… 고객 정보·디지털 키 권한 넘겼다”

    “애플, 中에 사전 검열 협조… 고객 정보·디지털 키 권한 넘겼다”

    뉴욕타임스(NYT)가 애플·중국 정부 간의 ‘거래’를 폭로했다. 고객 정보를 넘겨 사전 검열에 협조했다는 내용이다. 전·현직 직원 17명, 보안전문가 4명을 인터뷰하고 애플 내부 문서, 재판 자료 등을 검토해 내린 결론이라고 17일(현지시간)자로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애플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다른 나라에는 거절해 온 많은 일들을 중국 정부에는 적극 협조했다. 애플은 다음달 완공 예정인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양의 데이터센터와 내몽골의 또 다른 데이터센터에서 대부분의 통제권을 중국 정부 당국에 양도했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저장된 고객 이메일, 사진, 연락처, 일정, 위치정보 등 각종 민감한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구이양 데이터센터는 데이터의 법적 소유권을 성 지방정부 산하 ‘구이저우 클라우드 빅데이터’(GCBD)라는 회사로 이전했는데, GCBD는 서버의 물리적 제어 권한도 갖고 있다. 당국은 애플이 아닌 GCBD에 고객 데이터를 요구하면 된다. NYT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요구를 수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중국은 사이버안보법을 제정하고 2017년 6월부터 중국 내에서 수집된 중요 데이터를 중국에 보관하도록 의무화했다. 애플은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국 사용자들의 민감한 정보는 대부분 중국 밖에 위치한 서버에 저장해 왔다. 중국은 사이버안보법을 따르지 않으면 중국에서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를 폐쇄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이는 현지 법인을 통해 본사 경영진에 전달됐다. 애플은 암호화된 고객 데이터를 풀 수 있는 ‘디지털 키’만큼은 미국에 두려고 했으나, 중국 당국은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초기 이 협상에 관여한 최소 2명의 전직 임원은 고객 데이터를 위험하게 만드는 애플의 조치에 매우 놀랐다고 했다. 애플은 미국으로 도피한 중국 반체제 재벌 궈원구이가 공산당의 부패 의혹을 폭로하는 데 사용한 애플리케이션(앱)도 제거했다. 2018년 2월 궈원구이의 앱을 차단하라는 중국 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애플 임원들로 구성된 검토위원회는 앱스토어에서 제거해야 할 내부 명단에 그의 이름을 추가했다. 6개월 뒤에는 궈원구이가 다시 등록 신청한 앱을 승인한 담당자를 해고했다. ‘이 앱은 어떠한 사내 정책도 위반하지 않았다’는 항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NYT가 앱 데이터 회사와 함께 분석한 결과 2017년 이후 애플의 중국 앱스토어에서 5만 5000개의 앱이 사라졌다. 톈안먼광장·파룬궁·달라이 라마·티베트 독립·민주화 시위 등을 비롯해 외국 언론사나 암호화 메시지, 동성애 데이트와 관련 있는 것들이 대상이었다. 애플은 2018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년간 중국 정부의 삭제 요청을 91% 수용했다. 같은 기간 다른 나라 정부의 요구는 절반 정도만 받아들였다. 애플이 아이폰 뒷면에 새기던 ‘애플이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했다’는 문구도 중국 직원들의 항의로 빠졌다. 올해 1분기 애플 글로벌 매출의 20%가 중국 시장에서 나왔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파워부통령’ 해리스 별도 면담, SK 배터리 공장 정치적 방문

    ‘파워부통령’ 해리스 별도 면담, SK 배터리 공장 정치적 방문

    문재인 대통령의 19~22일 미국 순방은 ‘공식 실무방문’임에도 ‘바이든 시대’ 들어 첫 번째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정상회담 외에 동맹의 밀도를 다지기 위한 일정들로 촘촘하게 채워졌다. 20일(현지시간)에는 지난 1월 하원의장에 네 번째 선출된 권력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난다. 펠로시 의장 등 하원 지도부를 만나는 건 2017년 6월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에 이어 4년 만이다. 21일에는 유리천장을 뚫고 미국 최초의 흑인·아시아계, 여성 부통령에 오른 카멀라 해리스를 만난다. 미국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 시 승계 서열 1위이자 상원의장을 겸한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부통령이란 평가와 함께 최고령 대통령인 조 바이든의 뒤를 이을 차기주자로 꼽힌다. 22일에는 미국 최초 흑인 추기경인 윌턴 그레고리 워싱턴DC 대주교를 만난다. 그레고리 대주교는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확산됐을 때 종교시설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같은 날 조지아주로 이동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방문을 추진하는 데는 정치·경제적 함의가 담겨 있다. 앞서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2년간 ‘배터리 분쟁’을 벌였는데, 지난 2월 국제무역위원회(ITC)는 SK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며 ‘SK 리튬이온 배터리 제품의 수입을 10년간 금지해 달라’는 LG 요구를 들어 줬다. 이후 SK는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미국 내 배터리 사업 철수까지 검토하겠다며 배수진을 쳤고, 파국 직전 백악관과 청와대의 물밑 중재로 양사는 극적 합의를 이뤘다. 한국전쟁 기념공원 내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21일) 참석은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미군 3만 6000여명 등 한국전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질 추모의 벽 건설비용의 상당 부분을 한국 정부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하얼빈 日영사관 습격… 잊혀진 사회주의 계열 ‘백마 탄 여장군’

    하얼빈 日영사관 습격… 잊혀진 사회주의 계열 ‘백마 탄 여장군’

    경남 마산(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생가가 있던 곳은 문화광장으로 바뀌었고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시민들이 묘소를 찾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언니와 여동생의 후손들이 경기 이천과 경북 상주에 살고 있음이 최근 확인됐다. 김명시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 계열, 즉 좌익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수차례 거부했다. 친인척들은 숨어 지내다시피 했다. 취업과 해외여행에도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김명시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공산당과 조선의용군에서 활약했고 광복 후에는 부녀운동에 앞장섰다. 마산에서 김명시를 기리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김명시의 생가에서 그가 다녔던 성호초등학교로 가는 오동동 골목길을 벽화로 단장한 것도 그 일환이다. 김명시와 관련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정도밖에 없다.조용한 아침에 찾은 오동동 골목은 도심인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그라피티 작가가 그렸다는 벽화에서 김명시는 경찰복을 입고 진돗개를 붙들고 있어 엉뚱하고 생경하게 느껴졌다. ‘백마 탄 여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명시의 모습을 재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화의 뜻이 백마 대신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시민들을 지켜 준다는 것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생가가 있었다는 오동동 문화광장(실제로는 동성동)에는 표지판만이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시멘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어 버린 광장에서 김명시가 나고 자란 곳임을 느낄 수는 없었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는 중국 대륙에서 대일 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오빠·남동생도 좌익 항일투사로 옥살이 김명시는 1907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189번지에서 다섯 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봉권은 일찍이 사망했고 어머니 김인석이 자식들을 키웠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했지만, 마산 3·1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붙잡혀 고문을 당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강했다. 오빠 김형선과 남동생 김형윤도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사로 모두 옥살이를 했다. 김형선은 1924년 마산 지역에 공산당 지부를 세웠고, 김형윤은 1930년대에 부산과 진해에서 적색노동조합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3월 김명시는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세상에서 견문을 넓히고자 서울로 갔다. 배화고등보통여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비가 없어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김명시를 사회주의의 길로 이끈 건 오빠 김형선이었다. 조선공산당이 결성되기 한 해 전 마산에서 공산당을 조직한 김형선은 사회주의 혁명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김명시는 이듬해 7월 김형선이 활동하던 고려공산청년회(고려공청)에 들어가 마산 제1야체이카(사회주의의 세포 조직)에 배속됐다. 더 공부할 기회가 찾아왔다. 고려공청의 모스크바 유학생으로 뽑힌 것이다. 그해 10월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공산주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이었다. 유학 동기생은 모두 21명이었는데 조봉암의 부인인 김조이, 조봉암의 동생 조용암,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 중의 1명인 고명자가 있었다. ● 친인척들 숨어 지내고 취업·해외여행 제약 1927년 6월 김명시는 공산대학을 중퇴하고 중국 상하이로 갔다. 중국공산청년단 상하이한인지부 결성이라는 지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하이 거리는 장제스의 쿠데타로 공산주의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김명시는 조봉암과 홍남표를 도우며 지부를 만들었다. 김명시는 항일투쟁도 병행했다. 1928년 6월 각국 식민지 민족과 중국인 운동가 300여명과 피압박민족반제동맹을 조직했다. 이듬해 10월에는 홍남표와 만주의 길림성 아성현으로 가서 한인 당원들을 중국공산당에 가입시켰다. 반일동맹을 조직하고 기관지 ‘반일전선’을 제작하는 것도 김명시의 몫이었다. ●일제 만주 침략하자 한인반제동맹 조직 1930년 5월 30일 밤 12시. 김명시가 이끄는 300여명의 한인 무장대가 하얼빈 일본영사관과 경찰서 등을 습격했다. 독립운동가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영사관이었다. 김명시는 일제의 추적을 뿌리치고 홍남표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흑룡강을 넘고 치치하얼과 톈진을 거쳐 상하이로 귀환, 활동을 이어 갔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한인반제동맹을 조직하기도 했다. 무대는 국내로 옮겨졌다. 국내 노동 현장 잠입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김명시는 1932년 3월 중국공산당 본부의 지령을 받아 여성 노동자 조직 결성을 위해 인천으로 숨어들었다. 전단을 비밀리에 배포하고 여성노동자들을 교육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일제의 감시망에 걸려들고 말았다. 고명자에게서 40원을 얻어 밤낮을 걸어 신의주로 탈출했지만 그곳에서 체포됐다. 동지의 배신 때문이었다.김명시는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 주모자로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기소돼 미결 기간까지 합쳐 7년의 옥살이를 한 뒤 1939년 출옥했다. 스물다섯에서 서른두 살까지 꽃다운 나이를 옥중에서 보냈다. 조선공산당 재건 총책이었던 오빠 김형선은 1933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체포돼 징역 8년을 선고받아 광복이 돼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출옥 후에도 일제의 사상범 감시는 엄중했다. 이를 뚫고 김명시는 수만 리 길을 헤쳐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찾았다. 부녀복무대의 지휘관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활동을 펼치고 톈진과 베이징 등 일본 점령 지구에 파견돼 항일투쟁을 벌였다. 이때 김명시는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다. 진짜 백마를 탔다기보다는 김명시를 흠모했던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을 것이다. 어느 신문은 김명시를 ‘조선의 잔다르크’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광복 후 무정과 종로 거리 개선행렬 광복이 되자 김명시는 북으로 가지 않고 오빠 김형선과 박헌영, 홍남표 등 ‘화요계’가 활동하고 있는 서울로 왔다. 조선의용군 총사령 무정과 함께 1945년 11월 조선국군준비대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하며 이름을 알렸다. 종로 거리 개선 행렬에서 김명시가 무정의 뒤를 따라 말을 타고 지나갈 때 시민들이 “김명시 장군 만세”라고 외쳤다고 한다. 1946년 11월 21일자 독립신보에 실린 김명시 인터뷰 기사 서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 야무지고 끝을 매섭게 맺는 말씨, 항시 무엇을 주시하는 눈매, 온몸이 혁명에 젖고 혁명 그것인 듯 대담해 보였다.”김명시의 국내 활동도 활발했다. 12월 22일 개최된 조선부녀총동맹 결성대회에 참가하고 조선부녀총동맹의 선전부 위원으로 선출됐다. 1947년 6월 전라도에서 발생한 우익테러사건과 관련해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조사단원 일원으로 활동했고 민주여성동맹 대표로 미군정청을 방문,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반탁시위 항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명시는 1949년 9월 16일 서울 경찰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한 달도 안 된 10월 11일자 신문에 ‘북로당 정치위원 김명시, 부평서 유치장서 자살’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0월 10일 오전 5시 50분쯤 자기의 겉저고리를 찢어 유치장 안에 있는 약 3척 높이의 수도관에 목을 매고 죽었다”는 게 당국의 발표였다. 하지만 고문치사인지 자살인지, 사인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이는 겨우 42살이었다. 외롭고도 비극적인 최후였다. 오빠 김형선은 건국준비위원회 교통부 위원, 남로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했고 1950년 9월 북으로 올라가다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누구는 아들 주검 보이고 싶었겠소… 그래도 이 참혹한 5·18 알려야 했소”

    “누구는 아들 주검 보이고 싶었겠소… 그래도 이 참혹한 5·18 알려야 했소”

    “누군 참혹한 아들의 죽음을 공개하고 싶것어. 그래도 여러 사람이 알아야 해서 마음을 비웠어.”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쓰러진 아들 문재학(당시 광주상고 1년)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한 어머니 김길자(81)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엄마, 나 그냥 여기서 끝까지 남기로 했어’란 생전 마지막 말이 41년 동안 가슴을 후볐다”면서 “그래도 41년 만에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니 이제는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작가 한강이 5·18 민주화운동의 당시 상황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문군의 마지막 모습이 지난 6일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공개한 외신기자의 사진 속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1980년 5월 27일 ‘시민군’으로 끝까지 전남도청에 남았다가 계엄군의 최후 진압 작전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그는 효심이 깊고 꿈 많은 소년이었다. 다섯 식구가 어렵게 살던 형편 때문에 문군은 대학 진학보다 상고를 택했다. 고등학교 입학 3개월 뒤인 5월 21일, 시내는 계엄군의 첫 집단 발포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김씨는 “집에서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단단히 타일렀으나 아들은 24일 점심 이후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김씨는 다음날부터 25~26일 전남도청으로 찾아가 아들을 만났으나 “곧 집으로 간다”는 말만 믿고 되돌아서야 했다. 26일 오후 7시가 넘어 아들은 전화에서 “차가 끊겨 못 갈 것 같아. (계엄 상황이라 저녁 7시 통금) 계엄군이 쳐들어오더라도 학생들은 풀려나니까 나 여기 남기로 했어”라고 말했다. 이어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작전이 시작된 27일 오전 2시 30분~3시쯤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도심에 울려 퍼졌다. 한숨도 못 자고 발을 동동 구르던 김씨는 “어제 억지로라도 끌고 데려오는 겐데…” 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도 살아만 있어 다오’라는 어머니 김씨의 바람과 달리 며칠 뒤 아들은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계엄군이 사망자를 광목으로 둘둘 감싼 뒤 묘역에 가매장한 상태였다. 김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으로 몸져누웠다. 김씨가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해 가을쯤부터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된 이후 각종 항의 시위와 집회에 찾아다녔다. 아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주부로서의 일상은 사라지고, 투사로 변신했다. ‘단 한 번도 아들을 가슴속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보고 싶다’는 그는 밤이면 문을 잠그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재학이가 찾아왔다가 문이 잠겨 되돌아가 버릴까 봐서다. 김씨는 “5·18 민주화운동이 41주년을 맞았지만, 나의 가슴에 든 멍은 그대로”라면서 “우리 재학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발포명령자 처벌 등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美민주 “팔레스타인 목숨도 소중하다”… 바이든은 응답할까

    美민주 “팔레스타인 목숨도 소중하다”… 바이든은 응답할까

    100년간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다시 중동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주 처음 로켓포를 발사한 데 이어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의 충돌이 본격 전면전 양상으로 커지면서 피해가 잇따른다. 이 같은 규모는 하마스와의 마지막 대규모 충돌 이후 7년 만인데, 비교적 잠잠하던 이 지역에 다시 피바람이 불어닥치며 국제사회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유대인 국가 지지” 영국의 밸푸어 선언 시초 익히 알려졌듯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1917년 유대인의 민족국가 수립을 지지한 영국의 밸푸어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언하며 서예루살렘을 차지하고 팔레스타인 원주민은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등으로 밀려났는데, 1967년 6일간의 3차 중동전쟁 끝에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하며 갈등이 커졌다. 언제든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화약고 같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이 최근에 와서 갑자기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된 배경은 따로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4월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며 “가자지구에서 첫 로켓이 발사되기 약 한 달 전, 이스라엘 경찰관들이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에 들어가 기도문이 방송되던 스피커의 케이블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이 현충일을 맞아 인근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사원의 기도 소리에 묻힐까 봐 케이블을 끊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날이 이슬람교의 신성한 달인 라마단 기간 첫날이었다는 점이다. 이슬람력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 기간에 ‘난입’한 이스라엘에 대해 무슬림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다 최근 셰이크 자라 지역을 둘러싼 유대인의 퇴거 소송이 불을 붙였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셰이크 자라에선 이스라엘 정착촌 유대인들이 부동산을 갖기 위해 수십년간 팔레스타인인과 법적 분쟁을 벌여 왔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유엔에 의해 중재된 팔레스타인 정착민 지역이다. 2016년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도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은 법적 타당성이 없다”고 명시했으며,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이스라엘 민간인의 점령지 이양이 국제인도법에 의해 금지돼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법원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추방하라고 판결하며 반발이 커졌다. 지난 10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가족이 항의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인근 국가 아랍인들이 가세하며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CNN은 “셰이크 자라의 집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누가 도시와 성지, 그리고 역사를 지배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며 “복잡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다”고 했다. 올해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중요한 기념일이 겹친 것도 한몫했다. 라마단 기간 중 가장 신성한 날인 ‘라일라트 알 카드르’(무슬림 권력의 밤)가 8일이었고, 이스라엘군이 구시가지를 점령한 날을 기념하는 유대교 ‘예루살렘의 날’이 9~10일이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라마단 기간 계속 이스라엘 당국과 충돌했다. 이스라엘이 신앙생활을 탄압하고 정착촌에서 주민들을 내쫓으려 한다는 이유였다. 여기다 라마단 기간 매일 저녁 금식을 끝낸 이슬람교도들이 식사하거나 여가를 보내는 다마스쿠스 광장이 폐쇄되며 결국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세계 시온주의 기구(WZO) 전 의장인 아브라함 부르그는 “이번 사태는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와 제한, 이스라엘 내 아랍인에 대한 차별의 결과”라며 “모든 것이 폭발 직전이었고, 방아쇠가 필요했다. 그 한 방이 알아크사 모스크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양측이 “끝까지 가겠다”고 결사항전을 다짐하면서 도심은 불길에 휩싸였다.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던 전쟁은 팔레스타인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가자지구로 옮겨붙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만 180여명이 사망하고 최소 10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 싸움과 갈등이 벌어졌다. BBC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예루살렘을 공유해야 하는지,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로 건립돼야 하는지 등 양측이 합의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있다”며 “평화 회담이 25년 넘게 오갔지만 아직도 갈등은 그대로”라고 전했다.●‘친이스라엘’ 미국의 변화 아픈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이 분쟁에 주목하고 있지만, 현재 이 사태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동 정책을 시험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기조를 강조하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다. 2018년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팔레스타인과 인근 아랍인들의 반발을 샀고, 임기 말에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과의 관계 정상화 협정을 중재하며 ‘평화 정부’라고 자찬했다. 반면 바이든은 중동 외교에 거리를 뒀다. 트럼프식 접근을 수용하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주요 목표로 삼지 않았다. CNN은 “바이든은 중동에서 벗어나 중국, 러시아, 그리고 사이버 공간 등 더 현대적인 위협에 대응하려고 했다”며 “몇 년 만에 최악의 폭력사태가 발생하며 이 오래된 전투는 바이든을 다시 미묘한 정치적 균형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봤다. 특히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스라엘 대응방식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 내 이견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앞서 이스라엘의 방어권 등을 주장하자 민주당 내에서도 “명백한 인권 탄압을 묵인한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 것이다. 민주당 크리스 밴홀런 상원의원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 축출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정부의 인권 개선 의지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정책의 핵심에 법과 인권을 둔다면 지금은 미온적인 성명을 발표할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이자 유대계 출신이기도 한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NYT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더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위해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며 “모든 나라가 자위권이 있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왜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는 묻지 않느냐. 팔레스타인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이처럼 민주당 내에서도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여론이 커진 이유로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 역사를 반성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시위가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을 꼽았다. CNN은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진보주의자들은 이 개념이 외교 정책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향한 이스라엘의 대응에서 인종차별주의를 읽어 낸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외교 정책 기조를 바꿔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데 국제사회에 동참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꿈많던 17세 소년 재학 어미의 오월은...서러움 그 자체

    꿈많던 17세 소년 재학 어미의 오월은...서러움 그 자체

    “여러 사람이 알아야 해서 아들 시신 사진 공개를 허락했습니다” 1980년 5·18때 아들 문재학(당시 광주상고 1년)을 잃은 어머니 김길자(81)씨는 최근 ‘옛 도청복원 추진단’이 공개한 외신기자의 사진 속에서 처음으로 교련복을 입은 채 도청 복도에서 숨져있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했다. 김씨는 “웬만하면 잊어불것도 같은데 그럴수록 더 힘들다”며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엄마,나 그냥 여기서 끝까지 남기로 했어’란 생전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빈다. 1980년 5월 27일 ‘시민군’으로 끝까지 전남도청에 남았다가 계엄군의 최후 진압 작전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문재학은 효심이 깊고 꿈 많은 소년이었다. “엄나, 나 상고 갈래요” 어머니 김씨는 당시 남편의 사업 실패로 광주 북구 중흥동에 셋집을 마련해 다섯식구가 어렵게살던 터라 고교 졸업후 “취직하겠다”는 아들을 만류할 수 없었다, 고교 입학후 3개월도 안돼서 이런 일이 닥쳐올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그해 5월 21일, 시내는 계엄군의 첫 집단 발포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그날 이후 재학이는 시내에 나갔다가 밤늦게 귀가하곤 했는데 목소리가 쇠서 말을 못할 정도였다. 김씨는 “집에서 절대 나가면 안된다”고 단단히 타일렀으나 24일 점심 이후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샌 김씨는 다음날인 25~26일 전남도청으로 찾아가 아들을 만났으나 “곧 집으로 간다”는 말만 믿고 되돌아서야 했다. 그날 오후 7시가 넘어 아들은 전화를 통해 “차가 끊겨 못간다.(계엄상황이라 저녁 7시 통금)계엄군이 쳐들어 오더라도 학생들은 풀려나난다. 나 여기 남기로했어”라고 말했다. 이어 계엄군의 도청 진압 작전이 시작된 27일 새벽 2시30~3시쯤 콩볶듯한 총소리가 도심에 울려퍼졌다. 한숨도 못자고 발을 동동 구르던 김씨는 “어제 억지로라도 끌고 데려오는 겐데...”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도 살아만 있어다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머지 않아서 였다. 같은해 6월초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역 신문에 사망자 명단에 재학이 이름이 들어있어요” 김씨는 곧바로 선생님과 북구 망월동 묘역(구 묘역)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선생님의 교무수첩 속 재학의 사진과 시신을 검안한 검사가 찍은 사망자 사진이 똑같았다. 김씨는 그자리에서 기절하고 말했다. 계엄군이 사망자를 광목으로 둘둘 감싼 뒤 묘역에 가매장한 상태였다. 김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으로 몸져 누웠다. 겨우 물만 먹으면서도 3개월을 버텼다. “저러다 재학이 엄마도 제정신으로 살긴 힘들거야”란 이웃의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그해 가을쯤 부터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된 이후 각종 항의 시위와 집회에 찾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항의하다가 팔목뼈가 탈골됐고, 머리 등을 경찰이 휘두른 무전기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아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주부로서 일상은 사라지고, 투사로 변신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그렇게 살았다. “단 한번도 아들을 가슴속에서 내려 놓은 적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보고 싶다”는 그는 밤이면 문을 잠그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재학이가 찾아왔다가 문이 잠겨 되돌아가 버릴까 봐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