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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진 라돈침대 해체 강행방침에 시민단체 등 당진 전역 반발로 확대

    당진 라돈침대 해체 강행방침에 시민단체 등 당진 전역 반발로 확대

    충남 당진에 쌓여 있는 라돈침대 매트리스 1만 6900여개와 관련해 대진침대가 현장해체 강행 입장을 밝히자 지역 시민단체 등이 연대해 반발하면서 라돈침대 반대 활동이 당진시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라돈 매트리스 당진시민대책위원회는 2일 당진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 몰래 매트리스를 반입한 것도 모자라 주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현장해체 강행에 나서고 있다”며 “충남도청과 당진시청을 항의방문하고 주민대책위와 연대해 현장해체 강행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환경운동연합, 참여자치시민연대, 농민회, 상록·유곡초 학부모 등 14개 시민단체 및 학부모회로 꾸려졌다.이들은 또 “주민 몰래 라돈침대를 반입한 대진침대와 정부가 마치 인근 주민들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충남도와 당진시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외면하지 말고 이행합의서가 지켜질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대진침대, 인근 주민들은 지난 6월 22일 ‘7월 15일까지 모두 반출한다’고 이행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7월 16일 매트리스 야적장 인접 당진시 송악읍 안섬(고대1리) 주민들이 현장 해체를 전격 수용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진1·2리와 고대2리 등 다른 인근 3개 마을 주민은 “안섬과 같이 반대하고 시위를 한 우리 마을 주민은 무시하고 우롱해도 되는 것이냐”고 반발하며 야적장 앞 집단시위를 벌여왔다. 결국 당진 라돈 매트리스는 지난 6월 15일 반입 후 100일 넘게 꼼짝 못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대진침대는 지난 1일부터 현장해체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직원 10여명을 야적장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전침대 천안 본사 매트리스 2만여개는 주민들이 반대에서 동의로 입장을 바꾸면서 지난 8월 2일 현장해체에 들어가 현재 1000여개만 남은 상태다. 글-사진 당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서경덕·알베르토·다니엘, ‘유관순 열사 순국일 실검 프로젝트’

    서경덕·알베르토·다니엘, ‘유관순 열사 순국일 실검 프로젝트’

    “9월 28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한국 홍보 전문가로 알려진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와 다니엘 린데만이 ‘유관순 열사 순국일’인 28일 ‘대한민국 역사, 실검(실시간 검색) 프로젝트’에 나섰다.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에 맞춰 그날의 정확한 한국사 지식을 이해하기 쉬운 카드뉴스로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 퍼트리는 대국민 역사교육 캠페인이다. 서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 캠페인은 팔로워 스가 많은 셀럽들과 함께 펼쳐 나가는데 이번 9월에는 방송인 알베르토와 다니엘이 함께 동참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몇 달 뒤면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게 된다”며 “이를 기념해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에 관한 일문, 사건 등의 다국어 영상 제작 및 SNS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지난 17일에도 방송인 안현모와 래퍼 라이버 부부와 함께 ‘한국광복군 창설일’을 기억하는 실검 프로젝트에 나선 바 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천안 병천면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을 다니던 중 고향에 내려와 1919년 4월 1일 갈전면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다. 열사는 1916년 이화학당을 교비 장학생으로 입학해 고등과 1학년 3학기 때인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을 맞이했다. 3월 5일 남대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열사는 조선총독부의 강제 명령에 의해 이화학당이 휴교하자 독립선언서를 갖고 귀향했다. 열사는 인근의 교회와 청신학교 등을 돌아다니며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의 교회와 학교를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을 협의했다. 또 기독교 전도사인 조인원, 김구응 등과 만나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4월 1일 아침 일찍부터 아우내 장터에는 천원군(옛 천안 지역에 있었던 행정구역) 일대뿐 아니라 청주와 진천 방면에서도 장꾼과 시위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전 9시, 3000여 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이자 조인원이 긴 장대에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높이 달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곧이어 아우내 장터는 삽시간에 만세소리로 진동했다. 열사는 미리 만들어 온 태극기를 나눠주며 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했다. 독립만세운동이 절정에 달한 오후 1시쯤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대열의 선두에 있던 한 사람이 칼에 찔려 쓰러졌다. 열사는 군중과 함께 최초의 희생자를 둘러메고 헌병 파견소로 몰려갔다. 이들은 무참하게 살해된 동지의 시체를 파견소 앞마당에 내려놓고 일제의 만행을 성토했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일본 헌병들은 파견소 내로 숨어버렸다. 시위 군중은 조인원의 설득으로 충돌 없이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오후 2시쯤, 지원 요청을 받은 헌병 분견대원과 수비대원 30여 명이 트럭을 타고 도착하자 총검을 휘두르고 무차별 사격이 감행됐다. 시위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일본 헌병들은 이들을 추격하면서 총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일제의 만행으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후 4시쯤, 열사는 좌복부와 머리를 칼에 찔려 숨진 아버지의 시신을 업고 유중무 조인원, 김병호, 김용이 등 40여 명과 함께 파견소로 몰려가 소장을 비롯한 일본 헌병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열사는 일본 헌병에게 부모를 잃었을 뿐 아니라 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돼 공주 검사국으로 송치됐다. 열사는 이곳에서 공주 영명학교 학생 대표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된 오빠 유우석을 만났다. 유관순 열사의 가족은 모두 독립만세운동에 나섰다 일제의 탄압을 받는 애국투사가 됐다.열사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열사는 이에 불복해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했으나 7년형이 확정돼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됐다. 열사는 옥중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치다 모진 고문으로 18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열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전 11시 천안 병천면 소재 유관순열사추모각에서 천안시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순국 제98주기 유관순 열사 추모제’를 열었다. 추모제에는 심덕섭 보훈처 차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기념사업회원, 시민, 학생 등 1000여 명이 참석했고, 문재인 대통령 명의 추모화환이 증정됐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성추행’ 캐버노 편들었다가 식당서 쫓겨난 크루즈 의원

    ‘성추행’ 캐버노 편들었다가 식당서 쫓겨난 크루즈 의원

    미국 공화당 중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부인과 함께 지난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사당 인근의 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거센 항의를 받고 쫓겨나는 굴욕을 당했다.크루즈 의원은 앞서 20년 지기인 캐버노 지명자의 성폭행 미수 의혹이 불거지기 전 “(캐버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연방법원 판사 중 한 명”이라며 적극 지지를 강조했다. 크루즈 의원은 상원 법사위원회에 소속된 21명 중 한 명이다. 25일 CNN 등에 따르면 크루즈 의원 부부는 전날 저녁 미리 예약을 해둔 이탈리아 식당에 갔다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크루즈 의원 부부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한 여성 시위대원은 자신을 지역구민이라고 밝힌 후 상원의원에게 “당신은 캐버노와 가까운 친구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투표할 거냐. 당신은 성폭행 피해자들의 주장을 믿느냐”고 질문했다. 그 사이 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캐버노 지명자의 인준 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크루즈 의원 부부를 향해 ‘우리는 피해자들을 믿는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부부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스매시 레이시즘 DC’(워싱턴DC 인종차별을 박살 내자)라는 단체는 트위터 계정에 당시 현장 상황이 담긴 동영상을 게재했다. 지난 23일 데버라 라미레스라는 여성이 예일대 재학 시절 캐버노 지명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추가 폭로를 제기한 가운데 캐버노 지명자는 24일 방송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아내 애슐리와 함께 출연해 “나는 누구도 성폭행한 적 없다”고 전면 부인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27일 열릴 상원 청문회에는 고교 시절 캐버노 지명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고 주장해 온 미 캘리포니아 팰로앨토대 크리스틴 포드 교수가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공화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다음날 캐버노 지명자에 대한 인준 표결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사법 불신’이 더 키우는 性갈등

    “심증만 있는 성추행에 대한 잘못된 판결 바로잡아 주세요.” “판결을 믿을 수 없습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성범죄 판결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강제추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남성 A씨의 사연에 대해 20일까지 30만명 이상이 동조한 데 이어 “배우 조덕제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글들이 꾸준히 게시되고 있다. 단순히 판결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원금 모금 및 집회 등 집단행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더해진 남녀 갈등이 더욱 폭발하는 모양새다. A씨 사건이 알려지면서 지난 8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카페에는 이날까지 4200여명이 가입했다. 이들은 다음달 27일 집회를 갖고 실형 선고 사건을 중심으로 사법부 판단에 대해 항의할 계획이다. 성추행 의혹으로 법정 다툼을 벌였다가 승소한 박진성 시인 등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촬영 중 상대 배우를 추행한 혐의로 지난 13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조씨 또한 영화 촬영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하급심이 아닌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이 같은 강한 불복은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네티즌들은 두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의 이름과 경력, 과거 판결들을 찾으며 공개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가 굉장히 부족한 가운데 피해자의 일관성 있는 진술을 주요 증거로 삼아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남성들이 성범죄 판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 같다”면서 “법리를 떠나서 석연치 않다는 의혹을 품기가 쉽고, 갈수록 과격한 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남성 입장에서 일종의 위기의식이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씨와 조씨에 대한 판결이 여성들의 혜화역 시위, 워마드 사건 등에 맞서 남성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사법농단 관련 의혹들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사법부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고위 법관 출신 법조인은 “그동안은 다양한 사회 갈등이 법원의 결정으로 매듭이 지어진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무너진 것 같다”면서도 “‘최후의 보루’와도 같았던 법원을 믿지 못하고 기댈 수 없는 것은 결국 국민들에게 불행한 일 같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경찰청장 압박’ 1인 시위 나선 지구대 경감

    ‘경찰청장 압박’ 1인 시위 나선 지구대 경감

    “세월호 집회 관련 손배소 포기 설명해야” 일선 경찰관, 지휘부에 이례적 문제 제기현직 경찰관이 13일 경찰청 앞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세월호 추모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를 상대로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금전 배상 없이 상호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종결짓기로 한 데 대한 항의성 시위였다. 현직 경찰관이 지휘부의 결정에 반발하며 시위를 벌인 것은 이례적이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 소속 홍성환(경찰대 28기) 경감은 이날 오전 6시 30분쯤 정복을 입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정문에 나타났다. 홍 경감의 손에는 ‘불법과 타협한 경찰청 NO, 조직원들의 원성에는 귀를 닫고 폭력시위에는 열려 있는 경찰 고위층’이라는 글과 과격 시위 현장에서 부서진 경찰버스의 모습이 담긴 피켓이 들려 있었다. 홍 경감은 세월호 추모집회 측에 대한 국가의 손배소와 관련해 “해당 소송은 경찰버스가 불타고 경찰관들이 피를 봐야 했던 불법 시위와 관련된 것”이라면서 “이 피해를 사과로 갈음한다면 국민 세금으로 또 메우겠다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홍 경감의 1인 시위는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앞서 홍 경감은 지난 8일 경찰 내부게시판을 통해 “민 청장은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해 아이스 버킷 행사까지 할 정도로 소통에 적극적이지만, 정작 이런 중요한 문제는 함구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홍 팀장의 1인 시위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1인 시위는 집회 신고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별도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경찰청장 압박 1인 시위 나선 현직 경찰

    경찰청장 압박 1인 시위 나선 현직 경찰

    ‘불법과 타협한 경찰청 NO!’ 최근 경찰청이 세월호 추모집회 관련 국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금전 배상 없이 상호 유감 표명을 하는 선에서 종결짓기로 한 결정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 간부급 경찰관이 항의성 1인 시위에 나섰다. 일선 경찰관이 경찰 지휘부의 결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경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서울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의 홍성환 팀장(경감·경찰대 28기)은 13일 오전 6시 30분쯤부터 3시간 넘게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정문 앞에서 근무복을 입고 ‘조직원들의 원성에는 귀를 닫고 폭력 시위에는 열려 있는 경찰 고위층’이란 글귀가 새겨진 피켓을 한 손에 든 채 1인 시위를 했다. 제복을 입은 현직 경찰관이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흔치 않은 탓에 이날 출근하는 경찰청 직원들도 이따금 홍 팀장에게 눈길을 돌렸다. 홍 팀장은 입장문을 통해 “해당 소송(세월호 추모집회 관련 국가 손배소)은 기동 버스가 불타고 경찰 장비와 개인 용품이 약탈당했으며 경찰관들이 피를 봐야 했던 불법 시위와 관련된 것”이라면서 “이 피해를 사과로 갈음한다면 국민 세금으로 또 메우겠다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찰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을 위해 갖은 욕을 먹더라도 법대로 하는, 고독하지만 명예로운 조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1인 시위를 한 배경에 대해서는 “세월호 추모집회 관련 손배소를 포기했다는 소식에 ‘이건 아니다’ 싶어 내부 게시판에도 경찰청 입장을 밝혀달라는 글을 썼지만, 공직 입장을 내놓지 않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홍 팀장은 저녁까지 시위를 벌일 생각으로 나왔지만 3시간여 만에 자리를 떠났다. 앞서 그는 세월호 집회 관련 손배소에 대한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 대해 경찰이 이의제기하지 않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지난 3일 “경찰의 결정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한다”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린 데 이어 5일 뒤인 8일에 또다시 경찰청 입장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 그는 지난 8일 올린 글에서는 민갑룡 경찰청장을 향해 “청장님은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아이스버킷 행사까지 하실 정도로 소통에 적극적이시면서 정작 이런 중요한 문제는 함구하고 계시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해도 안 가네요”라면서 “소통하기 쉬운 주제로만 소통하시면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설명 없이 끝내는 겁니까. 애초에 이런 사안을 청장님이 모르셨을 리가 없잖아요”라며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청장님이 지시하신 거면 청장님이 책임지고 설명해주셔야죠. 다음 주 금요일까지 관련 공지사항이 없다면 본청 앞에서 1인 시위라고 하겠습니다”라며 이날 시위에 대한 예고성 글도 남겼다. 경찰 지휘부를 겨냥해 현장 경찰관이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며 1인 시위를 한 데 대해 경찰청은 “1인 시위는 집회 신고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홍 팀장과 대화를 하는 것조차 당사자에게는 외압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10일 내부 게시판을 통해 세월호 집회 관련 법원의 강제조정에 대한 경찰청 입장을 이미 밝혔다”면서 “세월호 뿐 아니라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2009년 쌍용차 파업 사태 관련 국가 손배소 취하 권고에 대해서도 경찰청 입장을 묻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야 하는 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즉각 답변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트럼프 무색하게 한 나이키의 선전

    트럼프 무색하게 한 나이키의 선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협과 막말 그리고 불매 운동 속에서도 나이키가 선전하고 있다. 나이키의 온라인 판매는 지난 2~4일 노동절 연휴 기간동안 31% 증가했다고 BBC가 11일 전했다. BBC는 디지털 상거래 연구기관인 에디슨 트렌스를 인용해 온라인 판매가 17% 증가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실적이 더 좋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실적은 나이키의 광고 계획이 알려지면서 이를 문제삼아 일부 반대 측에서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거나 양말 등을 찢는 동영상과 사진을 올리며 나이키 불매운동에 나서기 시작한 기간에 나온 것이다. 나이키가 최근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 30주년을 맞아 지난 3일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쿼터백이었던 콜린 캐퍼닉(31)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나이키는 무엇을 생각하나”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고, 지난 5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NFL처럼, 나이키는 (소비자들의) 분노와 불매운동으로 완전히 죽어가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NFL 선수들의 ‘무릎꿇기’를 비판해 왔다. 에디슨 트렌스는 나이키의 이 같은 광고 캠페인이 매출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밝혔다. 최소한 현재로서는 매출에 관련 광고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나이키가 백인 중년층 소비자를 잃을 수는 있지만, 젊은층들의 호감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캐퍼닉은 2016년 8월 경기 직전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미국 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표시로 일어서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후 다른 종목 선수들까지 이런 행동에 동참하면서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캐퍼닉은 광고 중간 부분에서 한 건물의 벽면에 비친 대형 성조기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카메라 쪽을 응시하며 등장한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믿어라. 비록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의미일지라도“라고 말한다. 나이키의 광고는 성별·인종·신체적 장애 등을 극복하고 경기장에서 노력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캐퍼닉은 ”만약 사람들이 당신의 꿈을 미쳤다고 말해도 그 길을 계속 가라. 그건 모욕이 아니고 찬사“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앞서 나이키는 캐퍼닉과의 광고 계약을 발표하면서, “이 세대에서 가장 영감을 주는 선수 중 한 명”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또 동조자들은 캐퍼닉의 광고가 감동적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한편 6일 NFL 시즌이 개막되면서 일부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고 사회정의를 촉구하기 위한 ‘무릎 꿇기’ 시위를 벌이는 등 캐퍼닉의 퍼포먼스를 따라 하고 있다. NFL 마이애미 돌핀스 소속 케니 스틸스와 앨버트 윌슨은 지난 8일 홈에서 열린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개막전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을 꿇었다. 같은 팀의 로버트 퀸은 주먹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항의의 뜻을 표시하면서 캐퍼닉에 대한 동조를 보였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NFL 3시즌째 ‘무릎 꿇기’

    NFL 3시즌째 ‘무릎 꿇기’

    미국 프로풋볼(NFL) 선수들이 시즌 개막 전부터 인종차별에 항의하고 사회정의를 촉구하기 위한 ‘무릎 꿇기’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NFL 마이애미 돌핀스 소속 케니 스틸스(왼쪽)와 앨버트 윌슨(오른쪽)은 지난 8일(현지시간) 홈에서 열린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개막전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을 꿇었다. 같은 팀의 로버트 퀸은 주먹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항의의 뜻을 표시하기도 다.이 같은 항의 시위는 2016년 8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시작한 이래 3시즌째 이어지고 있다. 캐퍼닉은 당시 흑인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자 무릎 꿇기 시위에 나섰다. 두 시즌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캐퍼닉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동료들의 동참을 환영했다. 캐퍼닉은 “내 형제들인 @kstills(스틸스)와 @ithinkisee12(윌슨)이 억압당하는 자들을 위한 싸움을 통해 흔들림 없는 용기를 계속 보여 줬다”고 치켜세웠다. ‘공격과 협박’의 타깃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발했다. 1년 전 무릎 꿇기 시위자를 “개××”라고 공격한 그는 이날도 트위터에 “와우, NFL 첫 게임 시청률이 형편없었던 작년과 비교해서도 훨씬 더 떨어졌다”며 “시청자 수가 13% 하락해 지난 10년 동안 가장 낮았다”는 글을 올렸다. 한편 캐퍼닉은 최근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 캠페인 30주년 광고 모델로 나서 화제를 모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형준의 정치 비평] 민심 이반의 법칙에서 벗어나려면

    [김형준의 정치 비평] 민심 이반의 법칙에서 벗어나려면

    민심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6월 둘째 주(14일) 갤럽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79%였고,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12%였다. 9월 첫째 주(4~6일) 조사에선 긍정은 49%로 떨어졌고, 부정은 42%로 올라갔다.추락 속도와 폭이 위험 수위다. 약 석 달간 지지율이 무려 30% 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대선 때 유권자가 4247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약 1200만명이 등을 돌린 것이다.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전례 없는 압승을 거뒀는데, 왜 대통령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추락하는가. 민생 경제 악화 때문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 이후 대통령 직무 부정 평가 이유에서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 비중이 줄곧 40% 안팎을 차지하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정책’, ‘일자리 문제·고용 부족’ 등의 요인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영업자층에서 대통령 지지도가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부정 평가(59%)가 긍정 평가(32%)의 두 배에 달했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가 보호하겠다던 소득 하위층에서조차 부정(43%)이 긍정(39%)을 앞섰다. 결국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정부는 지지율 하락 원인이 먹고사는 경제 때문이라는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가 추락하면 통상 야당이 반사 이익을 얻는데 왜 자유 한국당의 지지율은 10%대에서 정체되고 있나? 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았고, 당을 혁신하겠다는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국당 초·재선 의원이 중심이 된 ‘통합과 전진’ 모임에서 김 비대위원장을 만나 “비대위가 비대위답지 않다”고 토로했겠는가. 최근 갤럽 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25%로 나타났다. 그런데 보수의 핵심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과 60대 이상에서 그 비율이 33%였다. 보수조차 한국당을 대안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날 선 비판만 하지 말고 “고용 있는 성장”과 같은 자신들만의 성장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 지지율 반등을 가져올 것인가?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와 항구적 한반도 평화 정책과 관련해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목표를 달성한다면 민심이 일시적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경기 회복과 일자리에 대해 국민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한 채 북한 퍼주기식 경협에만 매달리면 40%대 지지율도 무너질 수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된 민심 이반의 법칙이 있다. 새 정부가 출범 1년 6개월 동안 민생과 관련된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민심은 기대를 접고 빠르게 이반한다. 정부가 지지율 반등을 위해 무리하게 새로운 어젠다를 내세우지만 정권 도덕성과 관련된 비리가 터져 나오고 당청 갈등이 심화되면 지지율은 회복 불능으로 추락한다. 결국 국정 운영의 동력은 상실된다. 가령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개성공단 폐쇄’ ‘역사 교과서 개정’ 등을 제기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포용국가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고 남북 관계로 지지율 상승을 기대할지 모른다. 참여정부 때는 출범 1년 9개월 만에 경영난에 시달리던 음식점 업주들이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 모여 솥단지 400여개를 내던지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조어까지 등장했었다. 새 정부에서도 출범 1년 4개월 만에 소상공인·자영업자 2만여명이 “못 살겠다”면서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었다. 단언컨대 ‘고용참사, 소득 양극화 심화, 투자 부진’이라는 경제 3대 쇼크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면 지지율 반등은 요원하다. 성과 없는 정책은 공허하다. 천하의 인재를 다시 모아 경제를 살려야 한다. 경제는 이념이 아니라 실력으로 풀어야 한다.
  • “닭의 발버둥이 예술작품? 학대는 예술 아냐”

    “닭의 발버둥이 예술작품? 학대는 예술 아냐”

    동물권 활동가들이 지난 8일 갤러리현대를 찾아 이강소 화백의 ‘소멸’ 전시에 대해 항의한 기습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동물권 단체 MOVE는 “이강소 화백의 퍼포먼스 ‘무제-75031’을 재현하기 위해 전시장에 닭을 장시간 묶어두고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이 갤러리현대 측에 전시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아 시위를 계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강소 화백의 ‘무제-75031’은 발목을 끈으로 묶은 닭을 석고가루가 뿌려진 전시장에 풀어놓고 자유롭게 돌아다닌 흔적을 남긴다. 앞서 갤러리현대는 이강소 화백의 닭 퍼포먼스를 재현하겠다고 밝힌 뒤, 동물권 단체와 네티즌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시위에 참여한 한 활동가는 “닭이 묶여 있어야 했던 환경은 석고가루 범벅이 되었으며, 깨끗한 물과 먹이를 받지 못한 듯 보였다. 닭의 생태적인 조건을 배려하지 않은 동물 학대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동물권 단체 MOVE는 “이강소 작가의 닭 퍼포먼스에 대해 지속적인 동물학대 논란이 있었음에도 전시를 추진한 현대 갤러리의 생명윤리 의식 수준이 실망스럽다”며 “시대착오적이고 후진적인 전시”라고 비판했다. 한편 MOVE는 오는 12일 오후 1시 갤러리 현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 만든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는 조선에서 신문 이상의 위상을 누렸다. 국채보상운동(1907~1908)을 주도했고 항일단체 신민회(1907~1911)의 산파도 맡는 등 독립운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국제 여론에 민감했던 일본은 자신들이 벌이던 만행이 신보와 KDN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되는 사실이 매우 불편했다. 결국 베델을 조선에서 내쫓기로 하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베델, 英·日 모두에 ‘눈엣가시’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의 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에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전후해 일본이 그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잘 묘사돼 있다. 일본이 조선에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1904년)하고 화폐개혁을 강제(1905년)할 때 베델은 신보와 KDN을 통해 음모를 폭로한다. 이때마다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1850~1924)나 탁지부(재정을 담당하는 중앙관청)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는 베델의 기사에 화를 내고 괴로워한다. 아래는 베델이 실제로 1907년 9~10월 신보와 KDN에 게재한 항일 관련 기사의 일부다. “서울 용산에서 한 조선인이 어린아이를 업은 부인을 데리고 일본군 병영을 지나갔다. 이때 한 일본 군인이 장난삼아 이들에게 총을 쐈다. 탄환이 여인의 옆구리를 관통해 아이 엄마가 즉사했다. 아이의 한쪽 손도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 아빠가 일본군군 병영에 뛰어 들어가 장교에게 항의했지만 되레 길거리로 쫒겨났다.”(KDN 9월 3일자) “수원에서 10여㎞ 떨어진 곳에서 일본군과 조선 의병 간 전투가 벌어졌다. 30명의 의병이 일본 군대에 포위돼 대부분 잔인하게 사살됐다. 일본군 장교는 분이 덜 풀린 듯 생포한 이들을 모두 끌어내 목을 베었다.”(KDN 9월 26일자) “한국 국민들이여! 독립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 않은가? 미국과 그리스, 이탈리아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라. 지금 이들 세대가 누리는 행복은 바로 조상들의 피로 얻은 것이다.”(신보 10월 1일자)일본은 베델이 신보와 KDN을 창간할 때부터 진의를 의심했다. 그가 반일 논조를 고수하는 이유가 신문 창간 자금이 고종에게서 나왔기 때문일 것으로 봤다. 쉽게 말해서 그가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종과 러시아가 재정지원에 나서기 좋을 만한 신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학계에는 베델이 러시아 스파이였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베델 연구 1인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일본은 베델과 러시아 간 연관성을 찾고자 전방위적으로 나섰지만 어떤 증거도 잡아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日, 본격적인 베델 추방 공작 추진 1906년 12월 영국 ‘트리뷴’지에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고종의 칙서가 게재됐다. 영국기자 더글러스 스토리가 목숨을 걸고 문서를 공개한 것이다. 그러자 베델도 이듬해 1월 신보와 KDN에 이 기사를 전재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렸다. “조선이 일본에 자발적으로 외교권을 넘겼다”고 주장해 온 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베델은 일본뿐 아니라 고향인 영국에서도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1902년에 맺은 영일동맹(영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이권을 함께 나눠 갖고자 체결한 조약)으로 두 나라가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때여서 그의 행보는 영국 입장에서도 ‘눈엣가시’였다. 일본은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면 그를 조선에서 추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공작을 시작했다.일본은 1898년 태국에서 ‘태국자유신문’이라는 영자지를 발행하다가 추방된 J J 릴리라는 영국인 사례를 베델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폈다. 릴리가 영국 정부의 동의하에 추방됐기 때문에 베델도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릴리 추방 당시 영국 하원이 이를 정쟁화했던 경험이 있어 영국 정부로서는 선뜻 베델의 추방을 묵인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영국 외무부는 베델을 굳이 추방까지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신보와 KDN이 재정난으로 휴간과 복간을 반복해 가만 내버려두면 곧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영국의 불확실한 입장 등을 감안해 베델을 직접 추방하려던 계획을 접고 영국 사법당국에 그를 고소해 처벌받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국 외무부는 “가능한 한 일본의 희망을 충족시켜 주겠지만 영국인이 조선에서 누리는 치외법권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뒤 재판에 나섰다.●첫 번째 재판 ‘치안 방해’ 혐의 6개월 근신형 베델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은 1907년 10월 14일 서울 정동 주한 영국총영사관에 설치된 법정에서 열렸다. 한국인과 영국인, 일본인이 참석한 동북아 최초의 국제재판이었다. 일본은 “베델이 신보를 통해 조선인들의 폭동을 선동한다”면서 “신보의 논설이 그대로 의병대의 창의문으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주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1871~1938)이 판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베델에게 적용된 혐의는 ‘치안 방해’였다. 코번은 베델의 행동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본국의 제국주의 논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재판은 오전 11시에 시작돼 오후 4시 30분에 마무리됐다. 다음날 아침 코번은 베델에게 6개월 근신형을 명하고 보증금 300파운드를 납부하게 했다. 통감부 일간지 서울프레스는 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하고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베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첫 재판 판결 뒤 베델은 항일 논조를 더욱 강경하게 이어 갔다. 1908년 3월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1851~1908) 암살 사건 등을 대서특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영국에 “베델을 추방해 달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영국은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그를 다시 한 번 재판정에 세웠다. 이번에는 기존 ‘치안 방해’ 혐의에다가 ‘공금 횡령’을 추가했다. 그가 국채보상운동 과정에서 모은 의연금을 마음대로 썼다는 죄목이었다.●‘공금횡령’ 혐의 추가 두 번째 재판선 실형 두 번째 재판은 1908년 6월 15일부터 3일간 서울 주재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렸다. 이 재판은 미국 AP통신이 직접 참관하며 취재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이 컸다. 이번에도 영국총영사 코번이 판사로 나섰다. 재판 마지막 날인 18일 코번은 베델에게 3주간 금고형(6개월 근신 포함)을 판결했다. 첫 실형이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시설이 없었다. 결국 영국은 베델을 중국 상하이에 있던 영사관에 마련된 감옥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틀 뒤인 20일 베델은 서울역에서 기차로 인천에 이송됐다. 판결 이후 장기간 서울에 있으면 군중이 몰려와 반대 시위에 나설 것을 우려해서였다. 당시 인천과 상하이 간 정기배편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 군함 ‘클리오’호가 단 한 사람을 데리러 인천에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첫 번째 재판 때만 해도 별 반응이 없던 서울프레스는 이번에는 부록까지 발행하며 판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상징적이나마 베델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났던 것 같다. 서울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상하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덴마크서 ‘부르카’ 쓰고 경찰서 들어간 여성, 벌금 처벌

    덴마크서 ‘부르카’ 쓰고 경찰서 들어간 여성, 벌금 처벌

    덴마크 정부가 지난 5월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부르카 등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한 뒤, 또 다시 벌금 부과 사례가 등장했다. 로이터 등 해외 언론의 5일 보도에 따르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터키 국적의 48세 여성은 지난 4일(현지시간)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동부에 있는 오르후스 주(州)의 한 경찰서에 들어갔다가 벌금 처벌을 받았다. 당시 여성은 자신의 비자 갱신을 위한 절차를 문의하기 위해 경찰서에 ‘제 발로’ 들어갔으며,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이 경찰서 내로 들어오는 것을 본 경찰이 현장에서 벌금 부과 명령을 내렸다. 이 여성은 덴마크 내에서 부르카 착용 금지와 관련한 법률이 새로 제정된 것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경찰의 설명을 들은 뒤 현장에서 바로 부르카를 벗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녀는 1000크로네(한화 약 17만 5000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고서야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한편 덴마크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 금지 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지난 8월 이후,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르카를 착용했던 한 20대 여성에게 최초로 1000크로네의 벌금이 부과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부르카로 얼굴을 가린 수 백명이 관련법 제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이어가는 등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트럼프의 반격? 나이키의 수난?

    트럼프의 반격? 나이키의 수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이키에 대해 반격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국민의례 거부 논란을 일으켰던 미식축구 선수를 광고에 출면시킨 나이키를 향해 “끔찍한 메시지를 보내서는 안된다”며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보수 인터넷 매체 ‘데일리 콜러’와의 인터뷰에서 “(나이키가) 콜린 캐퍼닉을 선정해서는 안됐다”며 “유명 스포츠 의류 업체가 캐퍼닉을 기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나이키는 이로 인해 수난을 겪고 있다. 앞서 나이키는 지난 3일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무릎꿇기 시위를 벌여 파문을 일으킨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을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 30주년 기념 모델 중 한명으로 발탁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지지자들은 나이키 불매 운동을 펼치며 반발 중이다. 트위터에는 ‘나이키보이콧’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나이키 신발과 옷을 태우는 동영상이 게시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4일(현지시간) 나이키 주가는 3.2% 하락한 82.2달러로 마감했다. 나이키 투자자들도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글로벌데이터리테일의 닐 손더스 매니저는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며, 이번 나이키는 편파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손더스는 이 광고가 궁극적으로 고객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캐퍼닉은 2016년 8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쿼터백 선수로 활동하던 당시 경기 직전 미국 국가가 나올 때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차별에 항의해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캐퍼닉을 향해 애국심이 없다고 비난하며 갈등을 빚었다. 캐퍼닉은 지난해 3월 팀과 재계약에 실패한 이후 줄곧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또 “나이키는 내 임대인”이라며 “그들은 많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CNN에 따르면 나이키 플래그십 스토어는 미국 뉴욕 주의 트럼프 타워 옆의 건물에 입점해 있었으나 문을 닫았다. 나이키는 2018년 하반기 뉴욕의 번화가인 5번가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쓴다고?” 나이키 제품 불태우기 확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쓴다고?” 나이키 제품 불태우기 확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고? 그러면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자.’ 나이키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미국프로풋볼(NFL)에서 맨처음 무릎꿇기 시위를 한 콜린 캐퍼닉(31)을 슬로건 ‘저스트 두 잇’의 30주년 광고 시리즈에 기용하자 미국 전역에서 나이키 운동화와 셔츠를 불태우는 후폭풍이 급격하게 번지고 있다. 캐퍼닉의 광고에 분노한 이들은 트위터에 해시태그 #JustBurnIt과 #BoycottNike를 달고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동영상과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소셜미디어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스프레드패스트(Spredfast)에 따르면 4일 아침(이하 현지시간) 현재 #JustBurnIt를 단 트위터 글만 800건이 넘는다. 켄터키주에 있는 이색 도시 콜 런(Coal Run)의 앤드루 스콧 시장은 나이키와 NFL과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끝났다”며 나이키 운동화들을 불태우는 여러 동영상을 보여줬다. 컨트리 가수 존 리치는 트위터에 나이키 양말에서 저유명한 스우시(swoosh) 로고를 잘라낸 사진을 게재했다. 하지만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대신 필요한 사람들, 특히 현역병이나 참전용사, 그 가족들에게 기증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글을 올리는 트위터리언도 있었다. 물론 캐퍼닉의 시위 취지를 적극 옹호하고 NFL과 소송을 벌이는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이들도 많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트위터에 “캐퍼닉은 미국에 만연된 인종에 관한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다”며 “그는 우리 국기에 대한 불경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완벽한 동맹을 결성하기 위해’란 우리 헌법 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잘했어. 콜린, 잘했어”라고 적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무릎꿇기 시위의 원조 캐퍼닉, 나이키 저스트두잇 30주년 광고에

    무릎꿇기 시위의 원조 캐퍼닉, 나이키 저스트두잇 30주년 광고에

    북미프로풋볼(NFL)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무릎 꿇기 시위의 원조 격인 콜린 캐퍼닉(30)이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 30주년 광고 캠페인에 얼굴을 내민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으로 6년 동안 활약한 캐퍼닉은 2016년 백인 경찰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폭력을 행사한 데 대한 항의로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으며 항의해 다른 동료 선수들의 시위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물론 이 시위 때문에 미국 사회가 양분됐다는 비판도 대두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조기에 대한 예를 표하지 않는 NFL 선수들을 겨냥해 “개XX들”이라고 거친 표현을 동원하며 이들을 모두 해고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키 광고는 캐퍼닉의 얼굴을 비치면서 “뭔가를 믿어라. 설사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하더라도”라고 자막을 내보낸다. 캐퍼닉 뿐만아니라 NFL 동료였던 오델 베컴 주니어와 샤킴 그리핀,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가 시리즈 광고에 얼굴을 비춘다. 캐퍼닉은 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광고 사진을 올리고 자막만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일절 다른 멘트를 적지 않았다. 지노 피사노티 나이키 북미 브랜드 부회장은 미국 ESPN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콜린이 스포츠의 파워를 지렛대 삼아 세계를 앞으로 진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 우리 세대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영감을 안기는 선수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캐퍼닉은 2011년 나이키와 후원 계약을 맺어 무릎꿇기 논쟁의 와중에도 계속 후원을 받고 있다. 지난해 포티나이너스와 계약이 끝난 그는 그 뒤 어떤 팀과도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위 때문에 리그에서 쫓겨난 것은 부당하다며 NFL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NFL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을 꿇는 선수들은 새로운 규정에 따라 벌금을 물리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예를 표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라커룸 등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국기와 국가에 대한 예를 표하지 않거나 기립하지 않는 리그 종사자들 역시 합당한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1일 런던 상공에 ‘시장님 비키니’ 풍선이 떠다니게 된 사연

    1일 런던 상공에 ‘시장님 비키니’ 풍선이 떠다니게 된 사연

    9월 1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상공에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이 비키니를 걸친 채 나타난다. 당연히 시장이 비키니를 입은 것처럼 그림을 그려넣은 풍선이다. 지난달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항의의 뜻으로 ‘기저귀를 찬 트럼프’ 풍선을 띄웠던 시민단체들이 다시 뜻을 모아 칸 시장을 풍자하는 풍선을 띄우겠다고 허락을 구했고, 화통한 런던 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종일은 아니고 아침 9시 30분부터 2시간 만이다. 시민단체들은 5만 8182 파운드(약 8427만원)를 모금해 8.8m 길이의 ‘베이비 칸’ 풍선을 제작해 팔리아먼트 광장에서 띄울 계획이다. 칸 시장은 “사람들이 토요일에 노란 비키니를 걸친 날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해드리겠다”며 “그렇긴 해도 노란색은 내 컬러가 진짜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유쾌하게 받아넘겼다. 왜 비키니 차림일까? 다 사연이 있다. 2016년 칸 시장은 ‘해변에서의 몸이 준비됐나요?’ 광고가 시의회와 경찰, 영국 항공관제센터(NATS)를 통과했는데도 이를 막았던 전력이 있는데 이를 비웃는 것이 이번 시위의 목적이다. 풍선 기금 모금 홈페이지에는 “‘베이비 트럼프’ 풍선이 런던 상공에 떠있게 허용한 만큼, ‘베이비 칸’도 만들어 이 나라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지 확인해보자”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그 뒤에는 “칸 재임 기간 우리는 범죄율이 전례없이 치솟는 것을 봐왔다. 런던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끼지도 못하고 안전하지도 못하다. 칸은 물러나라”고 이어졌다. 또 기금이 더 모이면 칸 축출 캠페인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쓰겠노라고 약속했다. 시장 대변인은 “늘 그렇듯 시청은 경시청 등 다른 주요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해 시위가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NATS 대변인은 “철저한 평가를 통해 우리는 풍선이 일상적인 항공 관제 업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경시청도 풍선 비행을 허용해 이에 따라 항공 시위를 승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총기 규제” 시위 와중에…美 게임대회서 또 난사

    “총기 규제” 시위 와중에…美 게임대회서 또 난사

    잭슨빌서 20대 백인 패배 분풀이로 난사 온라인 생중계 중 ‘탕탕’…조준사격도 2명 사망·10여명 부상…용의자도 자살 같은 날 17명 사망 고교 참사 생존자들 총기 제조社서 항의… 규제 논란 커질 듯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비디오게임 대회에서 패배한 참가자가 26일(현지시간) 대회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살해하고 1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때마침 지난 2월 같은 주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참사 생존자들이 같은 날 유명 총기 제조사 앞에 모여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총기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4분 플로리다주 북부 잭슨빌의 복합쇼핑몰 ‘더 잭슨빌 랜딩’에 있는 GLHF 게임바에서 비디오게임 ‘매든19’ 토너먼트 지역 대회 도중 참가자인 백인 남성 데이비드 카츠(24)가 권총을 발사해 최소 14명의 사상자(용의자 포함)가 발생했다. 수사 당국은 카츠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출신이며 매든19 대회 참석을 위해 잭슨빌로 왔지만 이날 경기에서 패했다고 전했다. 게임 제조사인 ‘일렉트로닉 아츠’(EA)는 카츠가 지난해 대회 우승자라고 밝혔다. 마이크 윌리엄스 잭슨빌카운티 경찰국장은 “현장에서 3명의 시신을 발견했고, 그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용의자”라고 전했다. 이 밖에 9명이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총성에 놀란 시민들이 도망가는 와중에 2명이 더 부상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목격자들은 이날 카츠가 최소 2명에게 조준 사격을 가해 살해했고 최소 5명에게 총을 쐈으며 이후 스스로 자신을 쏴 숨졌다고 전했다. 이 대회는 온라인에서 생중계되고 있었다. 영상을 보면 총격 당시 한 참가자의 가슴에서 레이저 포인터로 보이는 빨간 점이 포착됐고 총성이 여러 차례 울린 뒤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한 종업원은 ABC에 “용의자가 다른 게이머와 다툼을 벌인 뒤 무대 뒤쪽으로 갔다가 몇 분 뒤 나타나 총을 난사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우승자는 오는 10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결승에 참가하게 된다. 경찰은 카츠가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뒤 분풀이로 다른 참가자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지난 2월 14일 남부의 파크랜드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고교에서 총기 참사가 발생해 17명이 사망했다. 이 고교 생존자들과 총기 규제 활동가 100여명은 지난 4일간 50마일(약 80㎞)을 행진한 끝에 이날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유명 총기 제조업체 스미스앤드웨슨(S&W) 본사에 도착, “총기 폭력을 끝내자”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플로리다주에서 이날 또다시 총기 참사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시위대는 더욱 소리 높여 “총기 제조를 금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매사추세츠주 출신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서 “이번 시위에 참가한 학생 대부분이 1999년 콜럼바인고교 총격 사건 이후 태어났다. 변화는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남성과 동일한 권리’ 주장하던 1세대 노동·민주화운동하며 70년대 새 국면 80년대에 성차별·성폭력 등 철폐 외쳐 성폭력특별법·호주제 폐지 등 큰 성과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복 매장 여자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여기서 유출된 비디오테이프가 동남아 섹스숍에서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백화점을 이용해 온 여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성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백화점은 공식사과했다. 어제의 몰카 범죄 뉴스가 아니다. 1997년 당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된 3㎜ 크기의 특수렌즈를 통해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이 화장실 안을 지켜봤다. 불법 촬영의 수법, 대상, 장소 등이 요즘 범죄와 판박이다. ●각자 피켓 들고 참여… 美 급진주의와 닮아 2018년 한국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은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다. 1997년 백화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기존 여성단체였다. 올여름 혜화역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항의 시위’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 참가한 40대 김모씨는 “집회에 시민 단체나 정당의 깃발이 없어 어색했다”고 했다. 20대 초반 여성은 “여성 집회에 운동권 깃발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각자 만든 피켓과 붉은 드레스코드만이 동질성의 징표였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고 익숙한 구호 대신 온라인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뒤집어 남성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 단어가 터져나왔다.20년간 못 봤던 여성들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놀라고 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고정된 조직도 없이 여성집회를 끌어 온 이들. 일각에서는 이들을 급진적 여성주의자(Radical Feminist)라 부른다. 1960년대 미국 급진주의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미국, 유럽, 남미까지 전쟁,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19세기 제1세대 페미니즘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 개선에 노력했다면 제2세대 페미니즘인 이들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낙태 결정권, 포르노 반대 등을 이슈화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1968년에는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브래지어처럼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 페이스북 사옥 앞 상의 탈의시위, 탈코르셋 유행, 1999년 시작된 한국에서의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페미니즘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인 차이와 평등을 함축한다. 페미니즘 역사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는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이성적 인간”이라며 평등의 언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몸의 경험, 개인의 일로 치부됐던 성폭력, 가정폭력이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자매애는 강하다”는 유명한 구호도 등장했다. ●1987년 21개 단체 모여 ‘여성단체연합’ 결성 서구의 반권위주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탄압받던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과 뒤이은 민주화 운동 속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드러났고, 동일방직, YH무역 등 젊은 여성 노동자가 밀집된 제조업에서 노조 설립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운동은 성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성운동은 1980년대 전면에 등장했다. 19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다. 이들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깼다. 1983년 6월 여성평우회 창립을 계기로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 등이 여성 의제를 이끌었다. 결혼 퇴직, 임금 차별 등 노동현장의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철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 부천서 성고문대책위 등을 함께한 21개 여성단체는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9년엔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가족법 개정을 추진한 지 약 50년 만이었다.●LGBT 등 소수자 주체… 영 페미니스트 나와 이전 30년간 여성계가 굵직한 제도 성과를 거뒀다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주제들이 빛을 봤다. 성소수자(LGBT),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 주체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인 ‘영(young) 페미니스트’ 도 등장했다. 이들은 몸, 섹슈얼리티, 환경 등 새로운 문제를 꺼내고 월경페스티벌 등 축제를 통해 일상 속 주제를 풀어냈다. 201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페미니즘은 대중과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 단절을 끝낸 여성들은 20대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들이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베 등 여성 혐오를 학습한 남성들과 공존한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안전 문제에 눈을 떴다. 이전 세대보다 미러링에 익숙하고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급진·상호교차 등 그룹 다양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각에선 이들을 4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서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 몰카나 여성 대상 범죄 등 안전 이슈에 적극 나선다는 차별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급진주의, 상호교차 페미니즘 등 여러 정신이 공존하며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의 이합집산도 유동적이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이나 난민 혐오에 대해 기존 여성계는 반대 의사를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몰카 편파 수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비판에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영영 페미니스트도 단일한 집단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난 18일 여성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20대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에서만 보던 다양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것이 페미니즘을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을 달군 페미니즘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의 몰카 범죄가 반복되듯 성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여성들을 또 광장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불법 촬영 수사 등 현안도 뜨겁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지 광장으로 시선이 쏠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4세대 페미니스트 기로는 세월호…몰카 등 ‘안전 이슈’에 눈뜨다

    4세대 페미니스트 기로는 세월호…몰카 등 ‘안전 이슈’에 눈뜨다

    ‘남성과 동일한 권리’ 주장하던 1세대 노동·민주화운동하며 70년대 새 국면 80년대에 성차별·성폭력 등 철폐 외쳐 성폭력특별법·호주제 폐지 등 큰 성과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복 매장 여자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여기서 유출된 비디오테이프가 동남아 섹스숍에서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백화점을 이용해 온 여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성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백화점은 공식사과했다. 어제의 몰카 범죄 뉴스가 아니다. 1997년 당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된 3㎜ 크기의 특수렌즈를 통해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이 화장실 안을 지켜봤다. 불법 촬영의 수법, 대상, 장소 등이 요즘 범죄와 판박이다. ●각자 피켓 들고 참여… 美 급진주의와 닮아 2018년 한국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은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다. 1997년 백화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기존 여성단체였다. 올여름 혜화역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항의 시위’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 참가한 40대 김모씨는 “집회에 시민 단체나 정당의 깃발이 없어 어색했다”고 했다. 20대 초반 여성은 “여성 집회에 운동권 깃발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각자 만든 피켓과 붉은 드레스코드만이 동질성의 징표였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고 익숙한 구호 대신 온라인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뒤집어 남성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 단어가 터져나왔다.20년간 못 봤던 여성들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놀라고 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고정된 조직도 없이 여성집회를 끌어 온 이들. 일각에서는 이들을 급진적 여성주의자(Radical Feminist)라 부른다. 1960년대 미국 급진주의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미국, 유럽, 남미까지 전쟁,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19세기 제1세대 페미니즘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 개선에 노력했다면 제2세대 페미니즘인 이들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낙태 결정권, 포르노 반대 등을 이슈화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1968년에는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브래지어처럼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 페이스북 사옥 앞 상의 탈의시위, 탈코르셋 유행, 1999년 시작된 한국에서의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페미니즘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인 차이와 평등을 함축한다. 페미니즘 역사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는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이성적 인간”이라며 평등의 언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몸의 경험, 개인의 일로 치부됐던 성폭력, 가정폭력이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자매애는 강하다”는 유명한 구호도 등장했다.●1987년 21개 단체 모여 ‘여성단체연합’ 결성 서구의 반권위주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탄압받던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과 뒤이은 민주화 운동 속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드러났고, 동일방직, YH무역 등 젊은 여성 노동자가 밀집된 제조업에서 노조 설립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운동은 성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성운동은 1980년대 전면에 등장했다. 19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다. 이들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깼다. 1983년 6월 여성평우회 창립을 계기로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 등이 여성 의제를 이끌었다. 결혼 퇴직, 임금 차별 등 노동현장의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철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 부천서 성고문대책위 등을 함께한 21개 여성단체는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9년엔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가족법 개정을 추진한 지 약 50년 만이었다. ●LGBT 등 소수자 주체… 영 페미니스트 나와 이전 30년간 여성계가 굵직한 제도 성과를 거뒀다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주제들이 빛을 봤다. 성소수자(LGBT),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 주체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인 ‘영(young) 페미니스트’ 도 등장했다. 이들은 몸, 섹슈얼리티, 환경 등 새로운 문제를 꺼내고 월경페스티벌 등 축제를 통해 일상 속 주제를 풀어냈다. 201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페미니즘은 대중과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 단절을 끝낸 여성들은 20대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들이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베 등 여성 혐오를 학습한 남성들과 공존한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안전 문제에 눈을 떴다. 이전 세대보다 미러링에 익숙하고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급진·상호교차 등 그룹 다양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각에선 이들을 4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서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 몰카나 여성 대상 범죄 등 안전 이슈에 적극 나선다는 차별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급진주의, 상호교차 페미니즘 등 여러 정신이 공존하며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의 이합집산도 유동적이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이나 난민 혐오에 대해 기존 여성계는 반대 의사를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몰카 편파 수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비판에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영영 페미니스트도 단일한 집단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난 18일 여성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20대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에서만 보던 다양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것이 페미니즘을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을 달군 페미니즘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의 몰카 범죄가 반복되듯 성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여성들을 또 광장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불법 촬영 수사 등 현안도 뜨겁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지 광장으로 시선이 쏠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죽창을 든 조선의 노비, 폭압에 맞선 분투의 기록

    죽창을 든 조선의 노비, 폭압에 맞선 분투의 기록

    조선에 반하다/조윤민 지음/글항아리/400쪽/1만 7000원숙종 26년인 1700년 겨울, 얼마 전 천민 신분을 벗어난 이명과 이가음이(李加音伊) 형제는 경북 상주 읍내의 한 기와집에 잠입했다. 이날만 기다리며 13년간 절치부심하던 형제는 사랑채에 머물고 있던 한 양반을 살해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노비 출신 아버지의 옛 상전이었다. 철종 11년인 1860년에는 경희궁과 인근 관청에서 보수 작업을 하던 목수들이 포도청에 난입해 닥치는 대로 시설을 때려 부수고 관원과 하졸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그 다음해인 1861년에는 30대 중반의 조만준이라는 남자가 왕실 사당에 행차하는 임금의 가마에 주먹만 한 돌멩이를 느닷없이 던져 가마 꼭대기의 황금 봉황 장식을 부러뜨렸다.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밖으로 뛰쳐나온 하층민들이 감행한 이 같은 행위를 보면 절로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괜히 꿈틀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힘없고 보잘것없는 미물이라도 극심한 횡포 앞에서는 절로 분노하게 되는 법이다. 신간 ‘조선에 반하다’는 조선시대 주류 흐름과 지배 세력에서 벗어나 있었던 ‘외부자’ ‘이탈자’ ‘탈락자’들이 싸우고 분투한 기록이다. 책은 도대체 왜 이들이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반역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저자에 따르면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순응하던 백성을 시위와 난동의 주역인 난민(亂民)으로 만들었다”. 미천한 신분인 아버지를 채찍으로 매질해 죽인 양반 상전에 복수하기 위해서, 관청에 차출돼 일하면서 품삯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데 푼돈마저 포졸에게 탈취당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관료의 부정부패가 횡행해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지만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군주에게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 백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난동을 주도한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권세를 앞세운 폭압을 중단하고 행정과 법을 빙자한 수탈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다.파편처럼 곳곳에서 일어났던 개인들의 저항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배층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거듭난다. 17세기 미륵과 생불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승려와 무당의 통솔 아래 정치변란을 일으키고, 조선 왕조의 몰락을 희구하며 ‘정감록’ 같은 예언서에 기댄 반란을 모의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진주민란, 홍경래의 난 등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농민들을 규합한 대규모 항쟁 바람이 전국 곳곳에서 불었다. 반란을 주동했던 사람 중 홍경래(1771~1812)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평안도 지역의 세도 정치를 비판하면서 농민 반란을 일으킨 그의 봉기 의지는 반란의 후예들에게 두고두고 이어졌다. 오죽하면 그가 죽고 난 후인 1817년 전북 장수에 ‘홍경래 생존설’이 퍼졌고, 그로부터 9년 뒤인 1826년 청주에 걸린 괘서에도 홍경래가 거병을 도울 것이라는 내용이 등장했다. ‘홍경래 불사설’이 끈질기게 이어진 것은 그만큼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길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이 간절했다는 방증일 터다. 저자는 “명징과 미혹이 교차하고 진전과 좌절이 함께하는 역사의 난장판에서 제대로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외칠 자리 하나를 마련하려 한다. 압제의 대상에서 저항의 주체로 거듭난 이들의 몸짓을 헤아리면서 조선 지배층이 구축한 억압과 착취의 사회구조 한 자락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때로 격렬하고 폭력적이었던 시위들이 단순히 지배 세력에 대한 저항의 발로였다고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반항은 한순간 한순간마다 세계를 재고할 대상으로 문제 삼는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분노와 투쟁의 기록을 살피는 일은 자못 중요하다. 부당함에 순응하지 않았던 인간의 의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지금 이 시대의 이면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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