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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제는 무엇인가(서울신문 50돌 특집)

    ◎“협력과 양보가 자치길 넓힌다” 지방화에 대한 평점은 일단 합격점이다.그러나 돌출된 부작용이 커지거나 문제의 불씨가 잠복되어 있기 때문에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94년 내무부 장관으로 현행 자치제의 기본틀을 마련했던 최형우 의원,행정경험이 있는 이대순 호남대 총장,그리고 박양호 국토개발원 선임 연구원의 「진단과 처방」을 소개한다. ◎분쟁조정위한 제도정비 필요/책임의식과 자율성을 가지고 주민들의 참여 이끌어 내야/최형우 국회의원·전 내무부 장관 지방화 시대의 정착을 위해서는 인내와 화합이 필요하다.지방화의 미래적 의미가 분권화라는 민주주의의 성숙에 있다고 하더라도 21세기 신문명)의 도래로 인해 국가생존 전략의 의미는 더욱 커졌다. 국내외의 경험을 볼 때 지방화는 시행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세심하게 관찰하고 꾸준히 개선하려는 의지를 지녀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 출범 5개월을 맞는 지방시대는 몇가지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우선 민주주의의 성숙,국가 생존전략이라는 지방화가 정치세력에 의해 볼모로잡혀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지방화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내용이자 전략이다. 따라서 정치적 이해를 바탕으로 지방화에 접근할 경우 그것은 특정한 정치세력의 거점이 되기 쉽다.망국적인 지역분할 구조가 고착된 현실에서 볼 때 지방화가 현실정치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도 있다.대표적인 것이 지방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문제이다.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관권선거는 불가능해졌지만 특정 정당이 지역의 정치적 대표성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지방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심각하게 훼손될 가능성이 생겼다. 지난 6·27 선거에서도 부분적으로 공무원들이 이른바 「줄서기」에 나서고,정치세력들이 음성적으로 회유하는 모습들이 확인되었다.최근 서울 노원구가 선거에서의 협력여부를 평가해 「살생부」를 만들었다는 것도 하나의 사례이다. 지역 이기주의도 지방화의 암초이다.지역 이기주의란 단순히 혐오시설을 자기 지역에 설치하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합리적인 근거와 토론에 의하지 않고,국가적 개발구상이나 경제논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자기 지역을 개발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정치적 공세 아니면 지역 패권주의이다.따라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는 국가 전체적 개발구상과 지역의 개발전략을 조정하고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분쟁조정을 위한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내무부 장관 시절 나름대로 준비했었지만 이제 확고한 제도정비 및 관행의 창출을 통해 무분별한 인기영합 정책이나 지역개발 정책의 추진을 막고 국토의 균형적 개발을 도모해야 한다. 지방행정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열린 행정」이 되어야 한다.직선 단체장의 선출이 정치 단체장의 선출로 끝나서는 안 된다.책임의식과 자율성을 가지고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책임행정이 바로 직선 단체장의 진면목이다. 행정계층의 축소 또한 민생개혁의 핵심 사안이다.일제시대 식민통지를 위해 만들어놓은 현행 3단계 행정계층 구조는 국민생활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이를 2단계로 축소하면 연간 수조원이 절약된다.비록 출발은 3단계로 했더라도,결코 이 문제의 해결을 미뤄서는 안된다. 지방화의 과제는 국민통합과 사회평화 그리고 국제경쟁력 강화,민생개혁의 차원에서 차분히 풀어나가야 한다. ◎중앙의 입김 강하면 본질훼손/특정 정당서 「장」·의회 독점땐 상호 견제기능 상실우려/이대순 호남대 총장 일단 「지방호」의 출범은 성공적이다.그러나 출항전의 정비소홀과 준비미비,그리고 항로예측의 부정확으로 인해 몇가지 어려움과 장애가 감지되고 있다. 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 의원후보를 정당이 공천한 결과 「행정의 공권화」에 반해 「정치의 집권화」현상이 나타났다.지방선거가 지방정치에 크게 좌우됐고 중앙당의 지방행정 개입 징후가 자치행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 특히 특정 정당이 단체장과 의회를 독점하면서 상호견제기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주민의 감시와 언론의 비판기능이 활성화돼야 하며 주민참여의 폭을 넓혀나가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간의 적절한 권한 배분과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정립하는 문제도 과제이다.국가의 위임사무가 지나치게 많고 비용부담 또한 과중해 진정한 자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자치단체의 기능·재정·인사·기구·감독에 이르기까지 분권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중앙정부도 통제와 감독의 구습에서 벗어나 정보를 제공하며 협의하고 조정하는 새로운 행정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집단이기주의와 인기위주의 지역행정도 장애요인이다.집단이기주의는 자치단체간은 물론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출신지역과 관련해 자치단체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치단체간의 갈등은 상급기관의 조정에 앞서 그들 스스로 횡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해결하는게 바람직하다. 혐오시설 설치반대나 선호시설 유치경쟁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지방자치단체간의 협력체제구축과 주민의 협의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63.5% 밖에 안되는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의 내실을 갖추는데 큰 장애요인이다.경제를 활성화하고 재정수입을 늘리려는 단체장의 경영마인드 확산이 기대된다. 국세와 지방세의 조세구조를 개편해서 국세가운데 지방세의 요건을 갖춘 세목은과감하게 지방으로 넘겨야 한다.이 경우 지역간 불균형을 막기 위해 지역간 차등을 두는 공동세원 이용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지방재정조정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지방교부세의 규모를 내국세의 13.27%에서 15%이상으로 높여야 하고 지방양여금의 규모도 늘려야 한다. 이밖에 국토의 종합발전계획과 조화를 이루는 장기적인 지역발전계획을 세워 인기에 좌우되지 않는 「지역계획체계」도 확립해야 한다. 지방자치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대책도 시급하다.세계 경제질서의 변화에 따른 자치단체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국제화·정보화·다양화되는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태세를 새롭게 갖추는 문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제의 극복은 국민의 자각과 함께 공동체의식의 확립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는 말처럼 우리 「지방호」가 목적 항구에 성공적으로 도착할 것을 기대한다. ◎지나친 개발정책 부작용 우려/공약 지키려는 무리한 사업 안돼/박양호 국토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민선 단체장이 등장한 이후 각자치단체의 잘 살아 보려는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지방화의 긍정적인 성과인 셈이다.반면 당초 우려한대로 부작용과 시행착오도 나타나고 있다. 자치문화가 거의 없는 처지에서 출범한 민선 단체장 체제는 「비협력」 현상을 낳았다.지역개발·혐오시설·수자원 확보 등에서 중앙정부와 광역 단체,광역단체와 기초단체,기초단체 사이의 갈등이나 분열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관선시대에 결정된 사업을 「백지화」하는 현상도 생기고 있다.민선 시대에서는 과거 관선 단체장이 결정한 일은 무조건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이는 예산의 낭비는 물론 정책 불신을 유발한다. 지역 개발의 남발도 문제이다.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선거에서 남발한 수많은 공약들은 대부분 예산 사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다.또 중앙정부가 결정해야 할 사항들도 많다.그럼에도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에 무리하게 추진하려 하고 있어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책임부재」 현상도 지나칠 수 없다.지자체는 중앙정부에 대해 권한의 이양을 요구하고 있고 실제 여러 분야의 많은 권한들이 지방으로 넘겨지고 있다.그러나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특히 개발사업의 비용을 자자체에서 분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분권화와 함께 나타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이는 중앙과 지방간의 행정기능 및 투자분담에 관한 원칙이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단 것은 삼키고 쓴 것은 내뱉는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다. 특히 국책사업마다 「우리도 반드시 끼어야 한다」는 요구는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저해하고 있다.특정 지역에 어떤 국책사업을 시행하기로 하면 우리 지역에도 그 사업이 필요하니 투자해 달라는 압력을 중앙정부에 가하고 있다. 저마다 고속철도 역이 필요하고,국제공항도 있어야 하며,국제항만이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국가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업에 지자체의 미시적인 요구가 무리를 강요하는 셈이다. 환경훼손도 심해지고 있다.투표로 뽑힌 단체장이 주민의 압력에 무기력하게 엎드리는 징후이다.그린벨트·상수원보호구역·산림지역의 위법행위가 민선 단체장 이전보다 5배 이상 늘었다. 본격 지방자치 이후 나타나는 이같은 부작용은 대부분 지역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지역분열과 지역갈등으로 이어지고 끝내는 국가발전과 지역발전 모두를 해칠 것이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정책 조정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새로운 자치모델이 제시되어야 한다.「협력형 지방자치의 모델」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자치단체 상호간에 고도의 협력과 협약에 근거한 새로운 자치행정 문화가 확립돼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간의 행정권한과 책임을 규정한 자치강령이 만들어져야 한다.국가와 자치단체의 동의 아래 법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서울신문에 미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Ⅱ(서울신문50돌 특집)

    ◎70년대/「보릿고개」 넘기자 미니스커트 상륙/비상계엄 후유증 「카더라 통신」 난무 70년대 70년대는 유신체제라는 스펙트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잣대로 작용했다. 유신체제는 우선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국민들의 새벽단잠을 깨우며 다가왔다. 전국 농·어촌에 새마을기가 나부끼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등 해외에서도 새마을 붐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신문도 71년부터 정부의 본격적인 사업전개에 앞서 새마을가꾸기 선두부락을 소개하는 기획물 「번영을 가꾸는 희망가족 시리즈­의욕의 현지,북돋는 자립,땀흘린 보람의 합창」이란 고정컷으로 본지 최초의 새마을운동 기획물을 72년초까지 50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이 운동의 확산에 큰 몫을 담당했다. 72년 3월24일자 사설에선 이 운동을 「농민들이 스스로 잘살기 위해 자조·자립·협동하는 정신의 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70년 7월7일 경부·호남고속도로 개통에다 71년 3월31일 서울·부산 자동전화 개통은 「일일생활권」이라는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정부의 이러한 불도저식 경제 최우선 정책으로 국민들의 배고픔도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해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다. 환해진 모습은 먼저 옷차림에서 띠였다.67년 가수 윤복희씨가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73년에는 무릎위 17㎝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그 길이가 짧아져 경찰이 경범죄처벌대상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포함시켜 자를 들고 다니며 이를 단속하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남자들의 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청바지를 즐겨 입고 통기타와 생맥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청통맥문화」를 만끽했다.「사랑해」「왜불러」등의 포크송이 거리를 메웠으며 「아침이슬」「고래사냥」등 금지곡도 양산됐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을 염원해 온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소용돌이쳤다. 이날자 본지는 「피맺힌 4반세기…이제 전쟁은 사라지는가! 3천리에 벼락환성」「대화있는 남·북대결의 시대 열리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실감있게 전하고 있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시장 교복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은 이러한 고도성장 드라이브 정책이 필연적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종착점을 예고한 사건과 다름 없었다. 72년 10월 17일에는 비상계엄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대학이 문을 닫고 신문·통신마저 사전검열을 받으면서 국민들은 「카더라 방송」「유비통신」으로 불리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유신국회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거수기」로 변한 것이나 비상계엄 아래서도 반체제 인사들의 저항과 민주회복운동,양심선언 등이 계속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사건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신정권은 「그때 그사람」이라는 노랫가락 속에 울린 몇발의 총성과 함께 79년 10월26일 막을 내렸다. 10·26사태 뒤엔 「한다면 합니다」란 말과 5·17후의 떡고물 얘기가 유행했다.부정축재자로 지목된 L씨가 자신은 떡(정치자금)은만졌으나 고물(부스러기돈)만 떨어졌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70년대 종반은 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이어 80년 5·17일 쿠데타로 또 다른 군사정권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80년대/“금융사기” 장영자에 “큰손” 조롱/테러범 김현희에 구혼 줄잇고/“탁치니 억하고 죽었다”엔 분노 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뒤로 하고 80년대를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비로소 「서울의 봄」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탈취를 노린 신군부는 압제와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대로 80년대를 열고 있었다. 80년 5월17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8일 군부독재 연장기도에 맞서 광주에서 발생한 항의시위를 공수부대 특전단을 동원해 총검으로 유혈진압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결국 신군부는 그해 9월1일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다.그리고 이날부터 TV에는 「땡전뉴스」가 등장하게 된다.9시 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됐던것이다. 80년 11월12일에는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등이 제정돼 기자들은 강제해직을 면치못했고 언론은 통폐합 됐다. 이같은 압제는 학생운동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학생운동은 광주항쟁에서의 좌절을 계기로 반미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표출됐고 급기야 82년3월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했다.이는 85년 서울·광주 미문화원 점거로 이어졌다. 82년 5월에는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6천억원대에 달하는 건국후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이때부터 사람들은 씀씀이가 큰 사람을 「큰손」이라 일컫기도 했다. 분단의 아픔은 80년 대에도 지워지지 않았다.83년 9월1일에는 사할린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보잉007기를 소련의 전투기가 공격,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고 그해 10월9일에는 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관리 13명이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북한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에 절명,분노를 자아냈다. 그같은 분노는 87년 6월 테러범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에 폭탄을 설치,1백51명의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로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압송돼온 김현희의 미모에 반해 결혼하고 싶다는 남성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남겼다. 87년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도 시대의 아픔을 공유케 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표는 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6·29선언을 낳게 했다.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나온 이 선언은 후에 「죽이구」선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였지만 변화의 물결도 뚜렷했다.80년 컬러TV 시대가 개막됐고 82년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됐다.또 비디오문화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외설문화의 범람을 초래하기도 했다. 80년에는 또 대입본고사 폐지,대학정원의 졸업정원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교육개혁조치와 함께 과외 전면금지가 단행 됐다.이에 따라 숨어서하는 과외가 성행,수백만원대의 과외풍조가 생겨났으며 「쪽집게과외」 등 돈으로 교육을 사는 세태를 낳기도 했다. 82년 중·고생 두발자율화,83년 교복자유화 등의 조치는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출입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기도 했으며 유니섹스모드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90년대/3D기피 현상속 세계화 바람타고 외국어 수강 “붑” 93년 2월25일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5·16 이후 30여년만에 민간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90년대는 사회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안으로는 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사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사이 49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등 안팎으로 많은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90년대를 특징짓는 함축적인 표현은 이른바 「X세대 문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성장가도를 달려온 부모·선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과실을 향유하는 신세대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개성적인 새대라는 의식이 공존 한다.알아들을 수 없는 「랩」을 흥얼거리며 록카페를 드나드는 「오렌지족」인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배낭하나 덜렁 메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찾아나서 모험을 즐기기도 하는 세대들인 것이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수 없지만 정보화시대를 앞당기며 국제화와 세계화를 이끌 첨병도 바로 그들이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간성 상실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대중문화의 병폐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컴퓨터나 외국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30∼50대 「컴맹세대」가 느끼는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수대교 붕괴사고,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삼풍백화점 붕괴 등 90년대 들어 빈발하고 있는 대형사고들은 선배세대들의 부정적 부산물일 뿐이며 그점에서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신세대로서의 그들은 3D 기피현상이라는 어두운 한 단면을 90년대에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고학력 구직난,저학력 구인난」현상과 외국인근로자의 양산도 바로 그들의 시대를 특정짓는 모습들이다.
  • 파랑도를 만들자(서울신문 50돌 특집)

    ◎건축공학적 측면/「콘크리트 중력식」으로 건설 바람직/용도따라 다양한 건설공법 활용/경제성 인정된 「재킷」식도 한방법/제환규 삼성중공업 이사 해상에 건설되는 인공섬은 그 기능에 따라 구조물의 하부가 해저면에 고정된 고정식 해양구조물과 해상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동식 해양구조물로 대별할 수 있다.또 용도에 따라 석유·천연가스 등의 자원을 생산하는 생산용 구조물과 해양·기상·지구환경 관측,항로안전,해난수색·구조 등을 위한 종합해양과학기지용 구조물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동식 해양구조물은 구조물 자체가 이동할 수 있고 재사용가능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주로 해저자원개발에 사용되고 있는 구조물이므로 파랑도에 건설하기 위한 인공섬의 용도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고정식 해양구조물에는 매립식·콘크리트중력식,재킷구조물 등이 있는데 각각의 구조형식 및 특성은 다음과 같다.먼저 매립식 인공섬은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 육상 혹은 해저의 토사를 채집하여 매립한 후 해면주위에 침식방지용 시설을 하고 외곽방파제를 설치하는 것이다.그러나 파랑도주위는 빠른 조류로 인해 매립토를 부설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적용이 곤란하다 하겠다.지금은 백지화된 부산 인공섬이 이 방법으로 구상됐고 일본 간사이공항이 이 방법으로 건설됐다. 다음 콘크리트중력식은 매립식 인공섬의 수심이 1백50m정도로 깊어짐에 따라 제작설치비가 상승하고 공기가 장기화되는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콘크리트구조물을 자체의 하중으로 해저면에 밀착시켜 고정위치를 확보하고 구조물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다.짧은 시간 안에 빠른 조류에도 설치할 수 있고 재질이 콘크리트이기 때문에 해수에 부식되지 않는 장점이 있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재킷구조물은 해양자원개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해양구조물로서 석유생산 혹은 시추장비,관측용 장비,거주구 등을 설치한 갑판구조물,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재킷과 구조물 전체를 견고히 해저에 고착시키는 기둥으로 구성돼 있으며 수심 1백m이내의 해역에서 주로 설치된다.석유생산을 포함한 해상작업용과 수심 20∼30m정도의 항내하역 접안시설용 등으로 가장 많이 설치된다.이 방법은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인공섬 건설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방법이 결정돼야 한다.단순히 종합해양과학기지용 구조물의 형태로 사용할 경우 기술적·경제적으로 그 타당성이 입증된 재킷형식의 고정식 플랫폼 건설이 바람직하고,종합해양과학기지용 구조물을 포함한 규모가 큰 주거시설 및 어업전지기지 등의 형태로 사용할 경우 콘크리트중력식이 바람직하다.특히 이 형식은 향후 인공섬의 확장이 필요할 경우 기술적·경제적으로 매우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국제법적 측면/“국내 대륙붕 일부”… 법적지위 선점/해양관할권 분쟁 사전방지의 효과/권무상 해양연구소 정책부장 이용가능한 자원의 감소와 계속적인 인구증가로 세계각국은 식량,자원의 획득 및 영토확대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해양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해양구조물의 설치가 용이한 해저산 등이 존재하는 해역은 그 공간적 이용의 잠재력이 매우 큰 곳으로,우리나라 서남해에 위치한 이어도가 바로 그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어도는 해양법협약의 규정상 도서가 아니며,지질학적으로 해저산으로 분류된다.해양법 협약에서는 항시 수면위에 둘러싸여 있는,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을 도서로서 규정하고 있다.이러한 해저산은 그 존재를 이유로 해 어떠한 해양관할권의 주장도 가능하지 않지만 해양과학조사연구와 자원개발,해운,어업,통신,기상관측 및 군사적 목적으로의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어도는 국내법적으로는 1952년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을 선언한 평화선 선포구역 내에 있으며,1970년에 제정된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상의 해저광구 중 제4광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대륙붕의 일부이기도 하다.한편 한일어업협정에 따르면 이 수역은 공동자원조사수역에 속한다.향후 중간선원칙에 따라 주변국들과 해양경계선을 획정한다면 이어도는 한국측 해양관할권 깊숙이 위치하게 돼 중국 일본 등의 해양관할권 주장으로 인한 국제분쟁의 발생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 국제법상 논점은 앞서 언급한 평화선,해저광물자원개발법 등의 일방적인 국내법적 조치와 대외적 효력의 문제이다.평화선 선포이래 한일어업협정의 체결과 중일어업협정의 체결,그리고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의 제정 및 한국의 해저광구 설정에 대한 중국의 강력한 항의 등으로 평화선과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의 실질적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선의 효력을 부인하는 경우도 이어도의 상부 수역은 공해로서,그리고 하층토는 대륙붕으로서의 법적지위를 갖게 된다.따라서 대륙붕의 탐사와 개발에 관련된 해양구조물을 이어도에 설치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속적인 권리에 속하게 되며,타국이 이러한 목적의 해양구조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동의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 밖에 대륙붕의 탐사와 개발 이외의 목적의 해양구조물 설치는 공해자유의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는 물론 어떠한 국가라도 타국의 적절한 해양이용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가능한 것이다.우리나라가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향후 해양관할권이 확정되는 시점 이전에 이어도수역을 선점해 동북아 해역에서의 해양연구 활동을 선도하며,또한 미래의 우리 해양 영토에 외국의 해양구조물의 존재로 인한 분쟁발생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된다.
  • 유럽 여행 미 기업인 랩탑 “수난”

    ◎돈지갑 아닌 첨단 산업기밀 빼내기 극성/호텔에 FBI·KGB 출신 산업스파이 상주/1건당 1만달러에 거래… 미 기업들 대책 부심 최근들어 모스크바는 물론 유럽의 주요 호텔에서는 특이한 도난 사고가 잦다.도난 품목은 단순히 돈지갑이 아니라 미국 유수 기업인들의 컴퓨터 랩탑이나 디스켓들이 대부분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다음 자신의 방에 올라가보면 다른 물건들은 그대로 있는데 고급정보가 담긴 컴퓨터가 도난당하기도 하고 랩탑이나 파일을 복사한 흔적이 있어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또 라이벌 기업이 호텔 복도에 고성능 소형 도청기를 설치,「비즈니스 전략」을 눈치채고 상대방의 제품판매망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미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정보 빼내기 경쟁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림이 주요 산업자원인 북유럽의 스톡홀름·헬싱키등에 출장을 온 미국 제지회사 간부들이 도청을 당하는 것은 흔히 겪는 일이며 파리행 비행기 좌석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기밀이 누출되기도 한다.캐나다당국은 프랑스 정보기관원이나 산업첩자들이 기내에서 도청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올해초 미국의 유수한 생명공학회사의 한 간부는 호주 시드니 공항로비에서 자신의 여행가방속에 들어있던 컴퓨터 랩탑과 디스켓들만 도난당했다. 이처럼 주로 미국 기업인들이 첩보전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미국의 첨단산업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발 앞서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영국·프랑스·독일·일본등은 국경을 넘나들며 첩보전을 벌일 뿐아니라 국내 경쟁업체들간의 정보쟁탈전도 치열하다. 기업의 고급기밀을 빼내는 산업정보 요원들은 대부분 냉전체제 붕괴이후 실직한 국가기간원출신이다.이들은 첨단장비를 휴대하고 있어 돈만 주면 얼마든지 일을 성사시킨다.일부 유럽기업체들은 세계 5백대 기업에 속하는 경쟁기업체 간부들의 랩탑을 훔치거나 파일을 복사해오는 산업첩자에게 1만달러상당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보안관계자들은 특히 모스크바의 고급호텔인 메트로폴에서 팩시밀리를 사용하지 말라고 강조한다.도청장치의 45%가량이 팩시밀리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이 호텔에는 전직 미국 FBI나 소련 KGB출신들이 상주하며 투숙 기업인들의 정보를 빼내 세계 각국의 주요 기업체들에 팔아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기업보안협회(ASIS)에 의하면 지난 2년동안 해외에 누출된 미국산업체의 고급정보는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관계당국에 접수된 고급정보만 해도 지난 92년 한달평균 9.9건에서 올해에는 32건으로 증가했다. 이때문에 많은 미국기업에서는 요즘 정보보안 전문가들을 초빙,사업관계로 외국에 출장갈 때의 컴퓨터관리 및 서류보관 요령등에 대한 세미나를 갖고 있다.보안관계자들은 호텔1층 객실을 피하고 프런트 직원이 객실 번호를 큰 소리로 말하면 조용히 다른 객실로 옮겨달라고 강조한다.또한 극비사항을 유지하고 싶으면 회사이름으로 호텔예약을 하지말며 고급기밀을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크게 떠벌이지 말라고 지적하고 있다.
  • 노씨 구속­육사서 구치소까지

    ◎「2인자 처신」 성공후 「탐욕의 추락」/9사단장때 「12·12」 가담… 권력 전면에/올림픽 조직위장→민정대표→대통령으로 팔공산 기슭.꿈많던 피리부는 소년 노태우는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그러나 그가 평생 이루었던 꿈은 이제 한낫 물거품이 됐다. 현재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차디찬 감방.만인지상으로 일국을 호령했던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되는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또 온 국민들의 가슴속에 참담한 상처를 남기게 됐다. 꿈많던 소년시절,명예를 존중했던 육사시절,화려했던 군생활,세계에 올림픽개막을 선언하던 당당한 대통령의 모습은 이제 과거사가 됐다.가난한 시골 면서기의 아들에서 대통령으로,또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죄인으로까지 그는 전락했다.노씨가 예순넷 평생을 걸어온 길은 한 인간이 얼마만큼 화려하게 변신할수 있는가,또 얼마만큼 비참해 질수 있는까 하는 점을 극한적으로 보여준다. ○51년 육사11기 입학 그는 1932년12월4일 팔공산 기슭인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룡리(현재 대구시 동구 신룡동)에서 태어났다.7살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뒤 삼촌의 도움으로 공산국민학교를 거쳐 대구공업중학교에 입학했다.대구공업중학교 4학년때 경북중학에 편입해 졸업한뒤인 51년 육사 11기로 입학하면서 무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육사는 그의 인생항로를 크게 뒤바꿔놓았다.노씨는 육사에서 동기생인 전두환전대통령,김복동자민련부총재 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전전대통령과는 군요직과 대통령직을 주고받는 동지로,후계자로 인연을 맺게 된다.김씨와는 59년 김씨의 여동생 옥숙씨와 결혼해 처남 매부지간이 됐다. 노씨는 대위로 서울대사대 ROTC교관으로 지내던 중 5·16을 맞았으며 전두환대위와 함께 하나회를 이끌며 박정희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계기를 마련한다.이후 67년에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68년에는 대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고 70년에는 대령진급을 했다.74년 장군에 진급해서는 전씨의 뒤를 이어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지냈다.78년 소장으로 진급해 9사단장을 맡았다.그는 9사단장 시절 자신의 병력을 12·12군사쿠데타에 동원함으로써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이미 그때부터 그의 영광과 오욕의 운명이 예고되었을지도 모른다. 노씨는 12·12거사의 주모자였던 전두환보안사령관과 함께 하극상에 성공함으로써 권력의 길을 걷는다.12·12 다음 날인 79년 12월13일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옮겼고 다음해 국보위 상임위원으로 기용되면서 중장으로 진급했다.또 그해 8월 보안사령관으로 취임하는등 권력의 핵심인 신군부의 2인자로 부상했다.마침내 81년 7월 대장계급을 달고 29년 6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전국구로 국회 진출 그는 정무장관,초대 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을 거쳐 올림픽조직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을 맡는 등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85년 2·12총선에서는 민정당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초선이며 전국구인 그는 전대통령의 후광으로 민정당대표위원에 올라 본격적인 차기대권수업에 나섰다.이때 그는 최고권력자에게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는 2인자의 처신을 완벽하게 해냄으로써 전전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잃지 않았다.친구였던 전씨에게 사석에서도 반말은 커녕 다리를 꼬고 앉지도 않았다.마침내 그는 87년 6월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전씨로부터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았다. 그는 87년 12월 대선에서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세우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와 대결해 유신이후 16년만에 직선제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됐다.이에 앞서 그는 재집권 시나리오의 하나인 직선제 개헌수용등을 「6·29선언」으로 묶어 자신의 것으로 발표함으로써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이는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평가된다. 그는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88년 4월26일 13대총선은 여소야대로 나타나 정국운영에는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다.과거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급기야는 자신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전씨를 국회증언대에 세우고 백담사에 유배시키는 등 평생동지의 관계가 돌이킬수 없는 원한관계로 돌아섰다.전씨의 형과 동생,처남 등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전씨측 사람들은 이를두고 노씨를 배은망덕하다느니,배신자라는 소리가 나왔으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비난에 묻혀버렸다. ○외교치적 긍정 평가 노씨는 재임시 「물태우」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다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과도기에 무난한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특히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과 중국등 구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를 하면서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넓혔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또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여세를 몰아 모두 8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이나 남북유엔동시가입을 성취해 내는등 외교적인 치적에는 상당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93년 2월 퇴임후 밝은 얼굴로 연희동 사저로 돌아갔다.그는 한때 보통사람으로 돌아가 이웃의 환영을 받은 전직대통령이었다.전씨와 화해를 한 것도 사저로 돌아간 뒤였다.그러나 퇴임후 불과 얼마 안돼 과거정권의 비리설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측근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 6공시절 장관들이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그에게도 거액의 정치자금 은닉설이 공공연히 떠돌았고 급기야 금융실명제의 위세는 그를 더 이상 보통사람으로 남겨놓지 않았다. ○「역사적 책임」 망각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역사적 책임을 망각했다.국책사업과 관련한 이권개입,수천억원대에 이르는 비자금 착복은 그가 역사를 의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의 불행은 대한민국 역사의 불행이라는 점을 그는 몰랐던 것일까. 그는 지금 무얼 생각할까.그는 대통령후보가 됐을 때 『정상적인 사람이 사는 길이라면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나는 대장이 되고자하는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지만 우연히 대장이 됐고,장관을 꿈꾸지 않았는 데도 3부장관을 지냈고,민자당대표나 대권후보를 목표로 하지 않았는데도 오늘에 이른 것을 보면 내 운명은 기구하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도 「영광은 사라지고 오욕만 남은」지금의 처지에 까지 이를 정도로 기구한 운명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 뿌리내린 교류·협력의 현주소(한·중 새 시대:6·끝)

    ◎「전방위 교류」 최적의 파트너로/경협 물꼬로 정치·외교·군사 동반관계/“황금시장 급부상” 합작은행 설립/지자체 결연러시에 국제결혼 급증 북경과 중국은 한국의 주요인사들의 빠질수 없는 방문 장소가 됐다.수교전까지 적성국으로 분류,모 기관에서 교육받고 홍콩을 거쳐 비행기를 갈아타 돌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1시간40여분만에 황해를 바로 건너 갈 수 있는 지척간의 가깝고 중요한 곳이 됐다. 특히 봄·가을이면 정·관계 인사는 물론,기업총수와 각계 저명인사들이 앞다투어 찾아오는 「저명인사 러시」로 대사관과 관계기관은 곤혹을 치른다. 지난10월과 11월초만해도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주요 인물들이 비슷한 시간에 북경에 밀어닥쳤다.세계반부패대회 참석을 위한 이시윤감사원장,APEC 과학기술장관 회의에 온 정근모 장관,외교학회 초청으로 온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김명윤 평통부의장,한승주 전외무장관,이성호 복지부장관…. ○인적·물적교류 봇물 수교 3년동안 김영삼 대통령 등 우리의 두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방문했고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들도 모두 중국을 다녀갔다.중국도 지난해 10월 국가서열 2위인 이붕총리,올4월 서열3위 교석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방한한데 이어 이번 강택민 주석의 방한으로 한·중교류는 정점에 이른듯한 느낌마저주고 있다. 이러한 고위지도자들의 상호방문은 두나라 관계가 단순한 경제교류에서 정치외교부문의 밀접한 협조관계로까지 발돋움하고 있다는것을 설명한다.우리는 북한의 핵문제와 평화협정체결 시도등과 관련,중국은 국제연합에서의 서방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인권공세,APEC등에서의 대만대표권 문제 등 국제무대에서 서로의 도움을 받으면서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또 김영삼 대통령의 미국순방동안 악화일로로 걷고 있던 중·미관계에 대한 조정역할 시도는 중국지도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올 새학기(9월)부터 두나라가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 주관으로 장학생을 선발,교환하기 시작한것도 중국의 북한과의 교육교류사업을 이해할때 놀라운 일로 여겨진다. ○서울­북경 협정조인 한·중 교류에서 지자체의 활발한 활동도 두드러진 모습이다.지난달 3일에는 조순서울시장이 북경시를 방문,위건행당서기,이기염 북경시장 등을 만나 내년도 두 도시사이의 우호교류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협정에 조인했다. 때맞추어 서울시는 「서울문화 무역관」을 개관하고 상주 연락관을 파견했다.도시간 교류협력 활성화 및 정보수집,서울에 연고를 둔 중소기업및 관련 상품 홍보를 위해 상주연락관의 파견및 무역관의 개관이 필요했다고 서울시의 신동호 북경무역관장은 말한다. 10월말에도 이의근경북지사가 시장개척단을 이끌고 북경과 하남성등을 다녀갔다.당시 이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경북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위한 시장조사와 지방정부와의 관계마련이 방문목적』이라며 『1억인구의 하남성과 자매도시조인이 소득』이었다고 말했다.이들은 『지자체도 나름대로 해외거점과 시장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며 중국은 보완적인 경제구조나 지역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동반자』란 설명이다. 주중대사관의 조우현 건설관은 『경상남도는 산동성과 지난93년 체결한 우호협정아래 건설중인 위해와 청도의경남 전용공단의 분양률제고및 활성화를 위한 박차를 가하고 있고 경기도는 지난8월 착공된 요령성 심양의 전용공단에 중소기업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시장으로서뿐아니라 생산기지로서 투자자와 수요자로서 관계를 정립해 가고 있는것이다.한국과 중국이 하나의 경제권을 향해 착실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현상이라고 대외경제 정책연구원 조현준연구원은 지적했다. 경제협력발전에 따라 한·중 합작은행도 탄생했다.지난9월26일 북경의 차이나월드 호텔에선 이철수 제일은행장과 중국최대의 상업은행인 공상은행의 짱시아오 은행장이 「청도국제은행」을 설립하는 체결 서명식을 가짐으로써 두나라 첫 합작은행 시대를 맞게 됐다.이밖에도 학술 체육 문화예술 언론 지방정부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각기 상대편 짝을 찾아 교류와 협력의 틀을 다져가고 있다.물건과 사람과 돈이 함께 흐르는,대통령에서 보따리장수까지 한·중 관계는 전방위 교류시대의 문턱에 서있는 셈이다. ○올 벌써 36만명 왕래 올해들어 9월말까지 한·중두나라를 왕래한 사람은 36만여명.31만명의 한국인이 중국땅을 밟았고 5만6천여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았다.지난해말서울­북경등 몇곳에 항공직항로가 개설된데 힘입어 교류인파는 더욱 급증,한국인의 중국방문자수는 지난해에 비해 72%나 뛰어올랐고 한국방문 중국인수도 30%나 늘었다.이에따라 한·중간의 국제결혼도 치솟고 있다.대부분이 조선족과의 결혼이긴 하지만 주중한국대사관 영사처가 공증을 시작한 지난8월부터 하루평균 40∼30여건씩 결혼신청이 밀려들고 있다는 석동연총영사의 설명이다.이가운데는 물론 한국열기를 편승하려는 위장결혼이 적지않은것도 사실이란다. 아직 두나라 대통령이 상대방 군기지를 방문하고 군함에 오르는 군사교류까지 이르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근 북경등 대도시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토지를 매입,자체 건물을 짓기시작한것에서도 한·중 교류의 미래를 읽을수 있다.
  • 나무 그루터기·뿌리로 종이 생산(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최근 심각한 종이난을 해소하기 위해 나무 그루터기와 뿌리를 이용해 종이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사로청기관지 노동청년 최근호에서 그루터기와 뿌리는 나무에서 약20%를 차지한다면서 나무 그루터기와 뿌리를 종이생산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나무를 절약하고 원료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일부 국가의 경우 기본펄프에 나무 그루터기와 뿌리로 만든 펄프를 10∼20% 섞어 쓰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렇게 생산한 종이의 강도 또한 종전의 기본펄프만을 쓸때에 못지 않다고 주장했다. ◎「북침 전쟁」 구실삼아 군사력 강화 【내외】 북한은 9일 한·미측의 「북침전쟁」을 구실삼아 군사력을 일층 강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대한 미군의 주둔과 새전쟁 도발책동으로 우리 인민은 항시적인 침략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그에 대처하여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취할수록 미국 자체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또 『교전관계에 있는 미국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조금도 겁나거나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체 학생들 우상화물 보수 동원 【내외】 북한은 최근들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청소년들의 충성심 제고를 위해 이른바 혁명사적지와 사적물들에 대한 보수와 주변환경미화 등에 학생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북한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북한의 지방방송인 원산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전체학생들을 대상으로 교내는 물론 해당지역내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부자 우상화물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이른바 「정성사업」을 생활화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한국 영해법 개정추진 강력반발 【내외】 북한은 최근 한국정부가 대한해협의 영해폭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영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국제법상 허용될 수 없는 문제로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한 논평에서 한국정부가 영해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선박들의 항해를 통제방해하기 위한 음흉한 책동이라고 밖에 달리 볼 수 없다』면서 그같이 주장했다. 이 신문은 특히 한국정부가 영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에는 『우리 공화국 선박들의 항로대 통과를 막아보려는 불순한 기도가 숨어 있다』면서 『우리는 조선해협 영해폭 확대책동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금속 백화점” 노릴스크(시베리아 대탐방:48)

    ◎구리·코발트·백금 세계 최대의 생산지/공장 종업원 15만 넘고 금속 비즈니스 성행/환경투자 전무… 서서히 죽음의 도시로 변모/주거생활 여건 최악… 이주 주민 크게 늘어 세계최대 금속광산 노릴스크 환경투자전무,서시히 죽음의 도시로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북쪽으로 세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가면 북극전초기지인 노릴스크가 나온다.북위 70도에 위치한 이 도시는 「금속백화점」이라고도 불린다.지구상에서 쓰이는 금속이라면 이곳에서 나오지 않는 금속이 없기 때문이다.특히 니켈·코발트·구리·백금·라듐·이리듐은 이곳이 세계최대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구리는 전세계 생산량의 70%,러시아 생산량의 90%를 이곳에서 생산한다.니켈은 전세계 생산량의 5분의 1,러시아 총생산량의 90%를,그밖에 코발트·백금등도 전세계의 50%를 이곳에서 만든다.때문에 이곳은 금속비즈니스가 성행하고 있다.인구 20여만명의 소도시에 모스크바·유럽과의 직항로가 개설돼 있는 것도 「금속비즈니스」가 활발하기 때문이다.이곳 주민들도 스스로 『금속을 캐며 살다가 금속더미에 묻힌다』는 말을 자주 한다. ○거리엔 온통 금속찌꺼기 노릴스크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자동차로 40분쯤 걸린다.도중에는 바로 「러시아금속주식회사」의 각급 금속공장들이 줄지어 서 있다.노릴스크 시내로 향하기 위해 공항에서 출발한 취재팀은 내내 『노릴스크시 중심가를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했다.도시전체는 「쓰레기 더미」였고 각종금속조각과 휘어진 철골더미,목재찌꺼기등이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기 때문이다.10여년전에 폐쇄해버린 폐공장·아파트가 여러곳에 흉물스럽게 널부러져 있었다.금속을 생산하고 남은 슬러지도 아스팔트위를 더럽히고 있었고 도로·주택단지·강가 할 것 없이 이런 종류의 쓰레기로 「포장」돼 있었다.여기에 취재팀이 참기 힘들었던 것은 공장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이었다.이 매연은 공장 수십㎞에서도 코를 찌를정도였다.창밖으로 멀리 펼쳐져있는 구름 같은 것은 바로 스모그였다.눈도 아려오기 시작했다.섭씨35도 정도의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자동차의 문을 꼭꼭 닫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노릴스크시내의 러시아금속회사 본사.회사측의 얘기와 노릴스크시를 취재한 결과를 보면 이 회사는 옛소련의 대표적인 주민착취기관이었다.노릴스크에서 만난 비판적인 한 시관리는 『스탈린시대이후 60년동안 주민들을 한 도시에 가둬놓고 오직 값진 금속생산에만 전념한 곳이 바로 노릴스크』라면서 『많은 주민들은 열악한 복지·환경·건강시설속에서 말없이 죽어갔다』고 한탄했다. 어쨌든 이곳은 세계최대의 금속제조공장이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러시아금속주식회사­이곳은 종업원 15만5천명에 3개의 큰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노릴스크에는 본사빌딩을 비롯해 나젤진스키 니켈공장,노릴스크구리공장,노릴스크 코발트·황공장등 3개의 공장이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자체금속연구소가,무르만스크에는 기계·시설공장이,크라스노야르스크에는 금생산공장등이 있는 러시아의 몇안되는 재벌기업이 이곳이다.지난해 매출액은 12억달러.세금등을 뺀 순이익이 3억달러에 이르고 있다.가장 먼저 들어선 나젤진스키공장은 1937년 스탈린시대에 들어섰다고 한다.「나젤진스키」란 이름은 바로 당시 노릴스크 외각지역에서 지질탐사활동을 벌이던 나젤즈다란 20대 부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그녀는 이 일대에서 지질탐사중 산기를 느꼈고 당시 조종사였던 남편이 그녀를 싣고 노릴스크시내로 오는 도중 아이를 낳아버리자 이곳 한 벌판에 그대로 착륙해버렸다고 한다.이 벌판에 지금의 「나젤진스키 니켈공장」이 들어서 있다. ○지하 1천m서 원석 캐내 이 회사의 홍보담당 발레리씨는 『금속의 원석은 이곳에서 40㎞떨어진 탈라흐라는 도시에서 파 온다』고 말했다.그는 『10여년전만해도 원석은 노릴스크 어디서나 땅만 파면 나왔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수십㎞를 더 벗어나야 원석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그만큼 금속원석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탈라흐는 시자체가 거대한 금속광산이었다.이곳은 지하 1천4백m까지 들어가 원석을 캐고 있었다. 트럭이 실어온 원석은 전문가에 의해 재분류된다.구리가 많으면 구리가공공장으로 보내진다.원석을 용광로에서 용해시키고비중과 전기분해를 이용해 니켈을 만든다.찌꺼기에는 금과 백금이 많이 섞여 있어 백금은 이웃 부설공장에서 빼내고 금은 크라스노야르스크로 찌꺼기를 보내 생산한다.보통 찌꺼기를 8차례정도 가공하면 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공장관계자들의 얘기였다. 발레리씨는 현재 생산되는 모든 금속을 런던의 금속경매장에 보내고 있으나 곧 해외지사망을 통해 직접 본격적인 세일즈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취재팀이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것을 의식,『니켈·구리등을 사가려면 6·7·8월이 가장 좋으며 북극바다를 이용해 아시아까지 쉽게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 때는 주요수송로인 예니세이강이 녹아있는 상태여서 수송·가격 조건이 아주좋다는 것이었다.현재 완제품들은 노릴스크에서 50㎞떨어진 두진카항구까지 기차로 실어낸다.여기서는 다시 무르만스크를 거쳐 유럽의 최대시장인 런던과 암스테르담으로 보내진다.발레리씨는 『앞으로 동아시아의 시장 잠재력이 큰 만큼 본사에서는 서울·도쿄·홍콩 가운데 한 도시에 지사를 설치할 계획』이라면서『곧 노릴스크­베링해­오호츠크해의 해상루트를 개설해 일본·동남아국가 등으로 금속들을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니켈가격은 런던 국제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데 가장 비쌀 때가 t당 1만7천달러정도였다.90년도 페레스트로이카가 본격화되면서 이 가격은 한때 t당 4천달러로 폭락했다.생산은 계속됐는데 사가는 나라가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현재는 t당 8천∼9천달러로 비교적 안정상태에 있다고 한다. ○전세계 니켈 20% 생산 전세계 니켈생산량의 20%를 이곳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이곳의 생산량이 국제시세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지난해 겨울 이곳 수력발전소가 일시 가동을 중단,니켈공급이 일시 중단되자 하루에 국제시세가 t당 5백달러씩 올라 폭등조짐까지 일어난적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금속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80년 노릴스크에 강제 정착한 빅토르 샤포발씨(39·야금공장 노동자)는『노릴스크의 금속원석은 1백년동안 계속 캘 수 있을 정도로 아직 풍부하다』고 말하면서『당국이 환경시설에 적극 투자하지 않을 경우 주민들은 최악의 주거생활 때문에 이곳을 한사람 두사람 떠나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부산∼나진 직항로 어제 개통식

    【내외】 남북분단이후 처음으로 부산과 북한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의 나진항을 잇는 정기 직항로의 개통식이 10일 나진항에서 진행됐다. 이와관련,북한관영 중앙통신은 이날 『나진항과 중국 길림성 연변항운공사간의 나진­부산 정기 선박운행 개통식이 10일 나진항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 중국을 생각한다(박화진 칼럼)

    인구는 우리보다 30배나 많은 12억명에 영토는 96배나 되는 9백60㎦의 개발도상 사회주의 대국이다.동서의 자연적 시차는 5시간이나 국가적 통합상 같은 시간대를 쓰며 기후는 아한대에서 아열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에서 돼지를 가장 많이 기르는 나라로 유명하며 주산업은 아직도 농축산이지만 지하자원은 종류와 규모 공히 풍부하다.철광석 추정매장량 1천억t으로 세계3위에 석탄은 1조5천억t으로 2위이며 석유도 많아 매장량이 50억∼70억t 심지어는 3백억t이나 된다는 설도 있다.그리고 개방과 개혁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연 두자리수의 급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가주석겸 공산당총서기의 역사적인 방한이 13일 마침내 이루어지는 우리이웃 중국의 간략한 초상화다.그 중국은 또 조선족이라는 이름의 한인동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나라이기도 하다.흑룡강·요령·길림등 동북 3성에만 2백만이다.우리가 북간도로 알고있는 한만접경의 연변은 전체인구 2백만의 40%가 넘는 80만이 한인이며 한국말과 중국말그리고 한자와 한글이 공용어요 문자인 해외유일의 한인자치주다.한국돈이 중국화폐와 함께 사실상 그대로 통용되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면 중국의 수도 북경은 1시간50분 거리로 중국과의 수교전 가장 가까운 외국수도였던 2시간10분대의 일본 동경보다 20분이나 가깝다.북경외에 우리여객기의 직항로가 열려있는 상해·청도·청진·대련·심양등도 모두 1시간50분 안팎의 가까운 거리다.시간적으로 중국은 우리의 서울에서 대전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92년8월24일 수교후 한국인들의 중국 내왕은 문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수교해인 92년 8만8천명이던 것이 작년엔 30만명 그리고 금년엔 7월까지 25만5천명에 연말까진 60만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내년엔 1백만을 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교역규모도 수교 3년째인 금년들어 지난 9월말 현재 1백13억달러를 돌파,연말까진 1백60억달러를 기록함으로써 미·일 다음가는 우리의 3번째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한다.투자규모도 7월말 현재허가기준 24억9천만달러로 중국은 우리가 해외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있는 외국이기도 하다. 92년초 우리의 조기수교 요구에 대해 중국의 이붕총리는 「수도거성」이란 말로 답변을 대신했었다.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긴다는 뜻이다.인적 물적 교류를 계속해나가면 수교는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란 암시였다.그 수교는 암시대로 그해에 이루어졌고 그로인해 교류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으며 마침내 13일 서울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 중국국가주석겸 공산당서기장의 방한도 결국은 그러한 교류의 폭발적 증대가 낳은 빛나는 성과요 결과라 할수 있다.교류의 확대에 따른 양국관계의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발전인 것이다.중국국가원수의 이번 방한은 앞으로의 양국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될것이 틀림없다.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발전과 성과를 가져오게 될지 궁금해진다. 동시에 강택민 중국국가원수의 방한은 또 우리에게 있어 중국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도 생각해 보게한다.21세기는 지리적국경이 무의미한 보더레스(Borderless)의 경향이 확산되는 시대가 될것이다.그리고 그때의 우리는 통일한국이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국경을 접한 중국은 지정·경학및 역사·문화·전통적으로 우리와 동일한 생활권이다.하기에 따라서는 중국은 우리의 북방진출 및 활동과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동시에 잉태한 광활한 무대요 바탕이 될수있는 나라요 대륙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 헬기 악천후에도 운항/새 항법장치 개발

    육군은 8일 인공위성과 컴퓨터를 활용,헬기의 운항로가 예정항로와 다름없는지를 확인해 항로이탈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헬기 정밀통합 항법장치」를 독자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된 장치는 인공위성 자동위치 정보시스템(GPS)을 이용,헬기의 속도와 고도·운항지역 3㎞범위의 지형단면도등 헬기조종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컴퓨터상에 표시해줌으로써 헬기의 전천후 운항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현재 사용하는 헬기는 항법장치의 기능이 미흡해 악천후등에는 사실상 운항이 중지되고 있다. 이 장치는 97년부터 실용화될 전망이며 가격은 현재 운용중인 미국 도플러장비의 값 5만달러의 10분1선인 대당 4백만원대이다.
  • 전국 강풍피해 잇따라/목포 해안에 해일… 주택 8개동 침수

    ◎제주 여객선­항공기 운항 전면 중단 한파와 함께 강풍이 몰아친 7일 전국에서는 해일에 주택이 침수되고 3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강원 산간지방에는 폭설이 내려 차량 통행에 큰 불편을 겪었고 때마침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져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오 2시55분쯤 돌풍으로 목포일대 해안에 해일이 일면서 목포시 해안도로 및 북항도로 일대와 영해동,만호동 등 저지대 8개동 1백여가구가 물에 잠겼다.또 산정3동 광산마을 방조제 윗부분 1백여m가 유실됐다. 하오 3시10분쯤 무안군 운남면 남촌리에서도 선창 방조제 1백20여m,현경면 송정방조제 70m 등 6곳에서 방조제가 유실돼 수백㏊의 농경지가 침수됐다. 목포∼제주간 카페리호 남해안의 27개 항로 30여척의 여객선과 여수∼거문도 등 6개 항로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이날 하오에는 제주에 순간 최대 풍속 28m의 강풍이 계속돼 여객선은 물론 항공기 운항도 전면 중단돼 신혼부부 등 2천5백여명의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 비엔나·브뤼셀 항로/아시아나 새달 개설

    아시아나 항공은 30일 취항 7주년을 맞아 다음달 1일부터 서울∼빈∼브뤼셀의 유럽 정기항로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취항일은 수·토요일 주 2회다.
  • 우성호와 북한의 억지주장(사설)

    북한당국이 제86우성호와 선원들의 송환을 거부한 것은 그들의 반민족적이며 비인도적인 속성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다.북한당국은 지난 21일 노동신문을 통해 우성호의 영해침범이 우리 해군함정과 해경의 무선지휘에 의해 저질러진 고의적인 도발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우성호선원들을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꽃게잡이 보조어선인 우성호가 나침반 고장으로 항로를 잘못잡아 북방 한계선을 넘은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북한당국도 이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그래서 당초에는 「우발적인 영해침범」으로 규정했었다.그래놓고도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은 그들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은 파렴치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월 북경에서 열린 제2차 남북쌀회담에서 북한대표는 우성호의 조기송환을 약속했으나 이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김영삼 대통령은 최근 외지들과의 회견에서 북한당국의 약속위반에 분노를 표시하면서 지금은 남북대화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못박았다.북한 당국이 우성호의 송환을 거부한것은 김대통령의 이같은 입장표명에 대한 도발적인 대응으로 보이지만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인도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문제나 핵문제와 연계시키지 않고 어떤 남북현안보다도 이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때문에 우리 정부는 순수한 동포애 차원에서 북한에 쌀 15만t을 보냈다.그런데도 북한당국이 우리에게 보낸 것은 무장공비와 우성호 송환거부 뿐이다.이를 지켜본 우리로서는 분노와 허탈감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무장공비침투를 솔직히 시인·사과하고 우성호와 선원을 즉각 송환해야 한다.그렇게하는 것이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김영삼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공은 이제 북한코트에 넘어가 있다.북한당국의 슬기로운 결단을 거듭 촉구한다.
  • 대일 컨테이너항로 개설 활발/올들어 9곳 총28개…연내2곳 추가

    우리나라와 일본간 정기 컨테이너 항로 개설이 활발하다. 21일 해운항만청에 따르면 올들어 새로 생긴 한·일간 항로 수는 모두 9개로 지금까지 총 28개의 한·일항로가 개설,운항되고 있으며 연말까지는 부산­아키타간,부산­하카타간등 2개 항로가 추가로 개설돼 3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일항로 개설이 활발한 것은 일본의 종합상사와 수출업체들이 국내 육상운송비용의 상승에 따른 물류비 절감을 위해 수출입화물의 거점항을 자국내 요코하마·고베 등지에서 우리나라의 부산항으로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항청 관계자는 『이토추·미쓰비시 등 종합상사들과 기계 화학제품 생산업체들이 일본 국내 해상이나 육로를 이용해 일본 5대 거점항만으로 운송하는 것보다 지방항만에서 부산항을 활용하는 것이 물류비 측면에서 20∼40% 절감돼 일본 지방항과 부산항을 잇는 항로의 이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남북한 연결 항로 개설될까/북한의 미국 항공사 영공개방 안팎

    ◎정부 “정치적 노림수 없다면 통과협상 임할 것” 북한이 최근 미국국적항공사인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항공사에 영공통과 허용,남북한 영공을 함께 경유하는 항로 개설의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북한의 항공정책의 변화로 어느때보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다.북한은 지난해 12월 세계항공기구(ICAO)회의에서 영공을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뒤 올들어 지난 2월8일 국제항공업무 통과협정에 가입했었다. 이 협정은 회원국은 다른 회원국에게 자신들의 영공을 통과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기체이상 등에 의한 비운수목적의 착륙도 허용한다는게 골자다.이어 서울로 운항하는 미국 항공사들에게 영공 통과를 허용했다. 그러나 미국의 항공사들에게만 허용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북한이 핵문제등 모든 문제를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하고 있으며 대남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는대목이다.우리정부가 미국 항공사측의 항로계획변경 승인요청을 일단 보류한 것도 이같은 점을 고려,북한의 정치적이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순수한 의도로 북한이 영공통과를 허가한것이 확실하다면 관제 협정등을 통해 상호 영공통과 협상에 임할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제민항기구의 기본정신인 우리나라 국적기를 포함한 모든 민항기의 차별없는 적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호혜평등 원칙만을 선행조건으로 제시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때 남북한의 협상 여지는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 북,미국기 영공 통과 허용/정부 “남북 관제협정 체결돼야 허가”

    북한이 최근 미국국적 항공기들의 영공 통과를 허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10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미국 델타항공 관계자가 북한측으로부터 평양비행정보구역(FIR)을 경유하는 시험비행허가를 받아내 지난 5일 항로변경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문의해 왔다. 역시 미국 국적기인 노스웨스트항공도 북한측으로부터 영공통과 허가를 받아내고 우리측에 노선계획 변경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건교부는 남북간을 경유하는 항로를 개설하려면 동해안 영공을 관제하는 대구항로관제소와 평양항로관제소간에 관제직통 통신망이 개설되고 양 관제소간에 관제이양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간에 관제협정이 체결돼야 할 뿐만 아니라 미국 국적기만이 아닌 우리나라 국적기를 포함한 모든 민항기가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미항공사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 남북 직항로 첫 취항/부산∼나진/화물선 연룡 4호 어제 출항

    【부산=이기철 기자】 부산항과 북한의 나진항을 연결하는 남북 직항로 컨테이너선 연룡4호(1천6백t)가 6일 하오 8시30분 첫 출항했다. 이 배는 당초 지난 4일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통일원의 승인을 받지 못해 부산 남외항에서 대기하다 이날 하오 5시 통일원의 승인을 받았다. 20피트짜리 컨테이너 30개를 적재할 수 있는 연룡4호는 (주)선경과 갑을방적 등 중국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이 현지공장에 보내는 원부자재와 생필품 등이 든 컨테이너 11개를 싣고 떠났다. 이 배는 앞으로 매주 1회씩 부산과 나진항을 오가게 되는데 남북간 교역량이 많지 않은 만큼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물동량과 제3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환적화물을 주로 실어나를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우성호 선원송환 문제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어 통일원이 남북 정기항로 개설 승인을 보류하고 있어 출항때마다 북한기항 승인을 얻어야 한다.
  • 내무위 “해양치안 부재” 집중 추궁(국감초점)

    ◎기름오염·우성호 피랍·해상시위 등 질책 5일 해양경찰청을 상대로 한 국회 내무위의 국정감사는 해양치안「부재」에 초점이 모아졌다. 우성호 납북사건을 위시해 멸치어선 시위사건,선상폭력,해상밀무역 등 현안이 단골메뉴로 등장해 유상식 해양경찰청장을 곤혹스럽게 했다.물론 여야의원은 씨 프린스호·제1유일호 좌초사건등으로 인한 해상오염의 심각함도 빠뜨리지 않고 짚었다.하지만 이 문제는 몇차례 다뤄져 신선도가 떨어지는 탓인지 「수박겉핥기」수준에 머물렀다. 먼저 우성호 납북사건을 놓고 해경측의 항로유도가 잘못됐다는 의원들의 따가운 질책이 잇따랐다.민자당 남평우,국민회의 장영달,국민회의측 김옥두(민주·전국구) 의원 등은 지난 5월30일 상오4시부터 낮12시30분까지 무려 7시간30분동안 해경과 교신을 하던 우성호가 전격납북된 것에 의혹을 제기했다. 남평우 의원은 『이런 사건은 발생할 수 없었던 것으로 해경측의 직무유기가 아니냐』고 개탄했다.장영달 의원은 『해경의 항로유도에 따라 처음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항해,북한해역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니냐』면서 책임을 추궁했다.김옥두 의원은 『해경의 단 한순간의 실수가 남북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돼 남북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해경측이 교신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질타했다. 남해안 멸치잡이어선단의 시위사건을 놓고 국민회의 이원형 의원은 『경남어선단이 지도선을 납치하고 공무원 등을 폭행했는데도 방치한 이유는 뭐냐』고 물었다.국민회의 김충조 의원은 『해경은 해상방위능력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냐,아니면 대통령 친인척 때문에 인지하고도 방치한 것이냐』고 따졌다.특히 국민회의 정균환 의원은 『해적선을 보호하는 해양경찰청이냐』고 매섭게 질책했다. 민자당 황윤기 의원은 관점을 달리해 『육상처럼 집단시위를 규제하되 신고·허가된 정당한 집회시위는 보호토록 해상시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때가 됐다』고 필요성을 제기했다. 늘어나는 각종 해상범죄에 대한 대책추궁도 이어졌다.남평우 의원은 『중국과의 국교수립후 밀무역이 성행하고 있고,8월말 현재 중국교포등의해상밀입국사례가 12건에 1백53명이 검거됐다』고 대책을 물었다.민주당 김종완 의원은 『지난해 중국어선의 우리수역 침범건수는 2천7백6건이고,올 상반기만 해도 이에 육박하고 있다』고 심각함을 지적했다.민주당 이장희 의원은 『선박충돌사고중 뺑소니가 93년 20건,94년 36건,올 8월말 현재 30건으로 급증했다』고 걱정했다.민자당 김형오 의원은 『이러한 각종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양관리행정을 해경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 해경청장은 『일함다중임무 체제로 함정활동의 능률을 높여 해상경비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 해양오염대책 체계적으로(사설)

    8월중순부터 시작된 적조현상은 2개월이 다돼가는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중첩된 유조선 기름유출사고 역시 그 사후처리는 아직도 막연하다.연안해역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대책은 선명치 않다.4일 정부의 종합대책이 알려졌다.5대정유사가 출자하는 민간해양오염방제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유조선 전용항로를 만들자는 것이 요지이다.그런가 하면 5일 대검은 내년 3월까지 해양오염 특별단속기간을 정하고 폐유·분뇨 방류 등 적조현상을 유발하는 모든 오염행위를 구속수사하여 법정최고형을 내릴 것을 지시했다. 우리는 이 정도가 현재 당면한 극단적 해양오염사태에 대응하는 바른 대책이 아니라고 본다.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고 대책에 있어서도 실질적 효과를 얻을수 있는 과학적방안을 찾아야 한다. 오염단속만 해도 제도가 없어서 단속이 안됐던 것이 아니다.선박·해양시설 감시대상만도 8만2천여개나 명시돼 있다.이중 올해 8월까지 단속실적은 3백80여건에 불과하다.단속의 의지와 단속인력의 문제도 있는 것이다.바다로 들어가는 육지폐수의 문제는 더 난처하다.공공기관들마저 오염방제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예컨대 이번 국감에 제출된 금강환경관리청 자료를 보자.금강수계에서만 22곳의 지방자치단체가 오염허용기준을 묵살하고 폐수처리시설을 운영하다 적발되었음이 나타나 있다.이런 관행에서 민간차원방제기구가 실효를 얻을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연안해역오염에 있어 우리는 이제 환경적유예를 멈춰야 한다.그리고 보다 포괄적으로 체계적인 해양재생계획을 세워야 한다.법에 규정된 방류수허용기준도 강화해야 하고 하수종말처리장도 더 세워야 하며 공장만이 아니라 양식장들도 오염부담금을 확실히 부담시켜서 바다살리기에 나서야 한다.우리는 삼면이 바다인 해양국가이다.죽은 바다를 가지고 세계화에 나설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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