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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군,미 유조선원 20명 체포/쿠웨이트 슈와이크항서

    ◎이란선박 2척도 나포/EC,이라크 원유수입 전면 중단/미 선 중동주변 해역 해군력 증강 【마나마(바레인) AP 연합】 걸프의 해운 소식통들은 4일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시의 주요항구인 슈와이크항에 정박해 있던 한 유조선에서 미국인 승무원 20명을 배에서 끌어내어 억류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들은 시울프(Seawolf) 유조선에서 체포된 20명의 미국인들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이밖에 호르무즈호와 사피르호등 2척의 이란 선박도 이라크군에 의해 나포됐다고 덧붙였다. 【로마 로이터 연합】 EC(유럽공동체) 12개 회원국들은 4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기 위해 이라크산 원유의 수입을 전면 중단하고 이라크에 대한 무기판매도 금지했다고 EC 외교소식통들이 말했다. 이 소식통들은 EC 회원국 고위 외무관리들은 이날 로마에서 5시간반 동안에 걸친 회담에서 이같은 대이라크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제재조치는 즉각 효력을 발생할 것이라고 말하고 EC 각료회의 의장국인 이탈리아는 이같은 결정을 곧 공식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AP 연합】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전운이 확산되고 있는 페르시아만지역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다음주에 항공모함 1척과 1만5천명의 해군력을 증파,중동주변 해역에 3척의 항모를 배치시키기로 하는등 중동에서 본격적인 군사력 시위에 들어갔다.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항모 사라토가호가 15척의 함선대및 1개 해병부대를 이끌고 6일과 7일 미 동부해안 기지를 떠나 지중해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라크경제 봉쇄”… 미,고심의 선택/중동사태… 워싱턴대응의 배경

    ◎전면전 우려,군사개입에 신중/해역좁아 항모출동 곤란… 자국민 안전 고려/서방에 통상중지등 동참 요청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일 이라크에 대해 쿠웨이트 침공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부시대통령은 이라크의 행위를 「노골적인 침략」이라고 비난하고 『쿠웨이트 지도부가 정당한 장소에 복원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아침 워싱턴에서 미국내 이라크 재산을 동결하고 이라크로부터 원유를 포함한 모든 상품의 수입을 봉쇄시키는 명령에 서명한 후 콜로라도의 아스펜에서 방미중인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가진 공동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워싱턴 주재 쿠웨이트 대사가 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한 데 대한 질문에 『우리는 어떠한(군사개입) 방안도 결정하지 않았으나 어떠한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은 수시간적 워싱턴에서 있었던 그의 발언,즉 『군사력 사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와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미국은 이라크의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기에 유용한 군사적 대응 방안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갖고 있는 실질적인 군사력은 전투기 80대를 탑재한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 뿐이다. 전투함 6척이 호위하는 인디펜던스호는 지금 대이라크 공격권 밖인 인도양에서 페르시아만으로 항진중이다. 페르시아만 같은 좁은 수역에서 항모는 너무 큰 표적이 되기 때문에 펜타곤은 지금까지 항모를 페르시아만내로 진입시킨 적이 없다. 미국의 이 정책은 이번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펜타곤 관계자들은 말했다. 미국은 페르시아만에 중동 기동타격대로 알려진 8척의 전함을 파견하고 있을 뿐 지상군은 갖고 있지 않다. 가장 가까이 있는 미 지상군은 지중해의 해병상륙부대로서,이 부대는 병력이 2천명에 불과하다. 쿠웨이트 점령에 14개 사단 10여명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는 지상군 1백만명과 탱크 5천5백대를 보유하고 있다. 바꿔말해 미국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축출하기 위해 신속히 파병할 수 있는 군대를 인근에 가지고 있지 않다.필요한 규모의 군대를 집결시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 펜타곤의 얘기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공중 공격도 시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이 항모 탑재기 80대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이라크는 5백대이상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나 쿠웨이트 침공 이라크군에 대해 공중공격을 가할 경우 이라크와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쿠웨이트는 미국의 오랜 우방이긴 하지만 미국과 쿠웨이트간에는 방위조약이 없다. 그렇다면 섣불리 개입해서 분쟁에 휘말려들기 보다 다른 방법에 의한 사태 해결을 미국으로선 생각할 법하다. 쿠웨이트내 미국인 3천8백명의 안전문제도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사정때문에 미국은 쿠웨이트의 애타는 무력개입 호소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자세로 이번 사태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우선 대이라크 경제제재와 국제적 압력을 통해 사태 해결을 시도중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고 이라크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이라크 정부가 이번 사태를 쿠웨이트내 임시정부의 요청에 의한 내정문제라고 주장하자 국무부는 이를 「완전한 날조」라고 반박,이라크의 침공 정당화에 쐐기를 박았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아랍권 국가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이라크를 비난하고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을 비롯한 아랍지도자들과 전화회담을 가진 후 아랍의 자체 해결 노력에 고무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소련이 이라크에 대한 무기공급을 중단했음을 상기시켰다.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몽고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급거 귀국중 모스크바에 들러 소련과의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라크는 미국에 6번째로 큰 원유 공급국이다. 지난해 미국은 수입원유의 6%를 이라크에서 들여왔으며 올 상반기에 이 수치는 8%로 늘어났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서구가 이에 동참할 경우 그 효과가 증폭될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나토회원국들에게 미국의뒤를 따라 이라크 재산을 동결하고 이라크와의 통상관계를 전면 중단하도록 촉구하고 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 미,90년대 중반까지 50만 감군/주한군 1개사만 유지

    ◎부시,국방관계 연설 【워싱턴=김호준특파원】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일 국방관계 연설을 통해 앞으로 5년내 미군의 25% 감축을 제의했으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세계가 여전히 위험한 곳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미군이 계속 강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지도 미국방성이 작성한 「90년대 미국 군사전략」 청사진에 따라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도 대폭 감축,주한미군은 1개사단 규모만 유지하고 유사시에는 하와이와 알래스카 배치병력을 동원지원하고 전술공군력으로 한국 등을 방어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미군의 감축은 소련 및 동유럽의 변화와 미국방예산의 계속 삭감 등 새로운 정세전개를 감안하여 계획된 전략이며 태평양 주둔 미군사력은 해상전략을 근간으로 전술공군력이 한국과 일본 및 여타 아시아맹방들을 방어키로 되어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태평양전략은 ▲육군의 경우 한국에 1개사단만 두고 유사시에 하와이나 알래스카에 배치된 병력을 보강지원하며 ▲공군력은 태평양기지에 3∼4개 전술전투비행단을 유지시키고 ▲해군력은 6개 항공모함을 포진,그중 1개는 일본에 배치시키며 ▲해병대는 4개여단을 일본과 하와이에 각 1개,미국 본토에 2개를 배치시킨다는 내용이다.
  • 「힘의 공백」틈탄 패권주의/임춘웅 국제부장(데스트 메모)

    냉전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을때 세계는 온통 핑크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냉전체제는 군사적 대결체제였고 경직된 이념적 대결체제였으며 두 초강대국간의 패권주의에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의 사려깊은 학자들은 냉전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을때 국제경찰이 없는 세계를 우려했었다. 반세기 동안이나 질서를 유지해온 거대한 힘이 사라진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력충돌 가능성 상존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무력 침공은 이들의 우려가 얼마나 현실적이며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라크의 군사적 폭력은 냉전체제가 채 와해되기도 전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아직은 모색되고 관망돼야할 시점에서도 폭력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완전 장악하는데는 불과 5시간여가 소요됐을 뿐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일 아침 이라크의 폭력행위를 비난하고 이라크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 이시간 유엔결의안에 따라 이라크군이 즉각 철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해당사자인 쿠웨이트가 가입돼 있는 GCC(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는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엄연한 안보기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CC가 이라크의 무력침공앞에 어떤 군사적 행동을 취했다는 증거가 없다. 중동의 대국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UAE) 오만 카타르 등 6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GCC는 이번 사태에 성명하나 발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어떤 실질적 역할을 할 것 같지 않다. 1주여전 이라크가 군사행동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을때 지중해의 6함대를 동원,UAE와 예정에도 없던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이라크 무력시위를 주도했던 미국은 막상 일이 터지자 속수무책이었다.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가 페르시아만으로 항진 중이고 군사적 제재가능성이 전혀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군사개입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어떻게 보면 미국은군사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 돼 있다는 것이 불개입 논거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전쟁은 이미 끝나 버렸고 1백만이나 되는 막강한 이라크군과 정면 대결을 벌일 수단을 미국은 현실적으로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성급한 이상론은 금물 부시 미국 대통령은 2일 『현재로서는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스스로 떠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공동의 노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공동의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합당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내 이라크자산의 동결,이라크와의 통상거래 중단 정도가 고작이다. 현재로서는 소련의 역할에나 기대해 보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듯싶다. 다행히도 소련은 정부 대변인을 통해 『소련 정부는 이라크군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철수가 페르시아만의 긴장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확신한다』는 성명을 내놓고 있다. 이라크에 무기지원을 해온 소련은 군사적 리버레이지를 갖고 있는 나라다. 「역사의 종언」을 썼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미국 RAND연구소 선임연구원)는 마르크스­레니니즘이 완전한 패배로 끝난 역사는 지루하고 평화로운 문화적 사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모든 인류가 행복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새로운 과학,새로운 경제적 필요가 인류를 평화롭게 지낼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예언은 아나톨 프랑스의 작가다운 감상이었다. 동서화해시대가 열리며 한껏 부풀었던 후쿠야마의 「문화사회」,아나톨 프랑스의 「신천지」는 과연 도래할 것인가. 이라크사태는 불행히도 핑크빛 미래사회가 결코 가까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념이 소멸해도 인간의 갈등은 영원히 남으리라는 것은 이념의 대결이 없었던 먼먼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벌써부터 또다른 파시즘이 운위되고 새로운 권위주의의 대두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담 후세인 같은 엉뚱한 「시저」가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화려한 미래사회는 그 기반을도덕과 윤리에 두고 있다는 데 취약점이 있다. 도덕과 윤리는 역사를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지만 파괴자가 나타나면 언제나 무너지고 마는 약점이 있다. ○멀고먼 세계평화의 길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야할 미래사회의 안정된 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야할 필요성을 이번 사태를 통해 절감한다. 그것은 어려운 작업일테지만 대단히 화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다른 쿠웨이트가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도 역사를 냉전시대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렇게 되지도 않기 때문에 새 질서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될 작업이다.
  • 이라크군,쿠웨이트 점령/침공 5시간 만에 수도·왕궁 장악

    ◎안보리,즉각 철수 요구… 미 항모 발진/쿠웨이트,미등에 파병 요청… 국왕은 사우디 피신 【쿠웨이트 로이터 AP 연합】 이라크군이 2일 새벽 2시(한국시간 상오 8시)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했으며 이어 4∼5시간 만에 탱크를 앞세운 이라크군 병력에 의해 수도 쿠웨이트시의 정부청사가 점령됐다고 쿠웨이트 정부관리들이 밝혔다. 쿠웨이트의 한 관리는 『이라크군이 국영 라디오·TV방송국이 있는 공보부 건물을 포함,쿠웨이트의 모든 정부청사들을 점령했다』고 말하면서 『이라크는 쿠웨이트 전지역을 점령했다』고 외쳤다.〈관련기사3·4·7·19면〉 이 관리는 이라크군들이 자비르 알 아마드 알 사바국왕(수장)이 집무하고 있는 왕궁을 점령했으며 영공도 봉쇄됐다고 밝혔다. 한편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이끄는 혁명평의회는 성명을 통해 쿠웨이트정부는 전복됐으며 『이라크의 쿠웨이트 진공은 자유 쿠웨이트 임시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혁명평의회 성명은 이어 이라크군은 사태 정상화 여부에 따라 수일 또는 수주내에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정부는 이와 아울러 이라크 전역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규모 동원령을 내렸다. 외교관들은 약 3백50여대에 달하는 이라크군 탱크가 쿠웨이트시내에 진입했으며 주민들은 집안에서 바깥상황을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리야드·유엔 AFP 연합】 자비르 아마드 알사바 쿠웨이트국왕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을 신청했다고 리야드의 믿을 만한 소식통들이 2일 말했다. 이 소식통들은 그러나 다른 왕족들이 알사바국왕과 동행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언급치 않았다. 목격자들은 알사바국왕이 이라크의 침공이 시작된 지 얼마후 헬기편으로 궁전에서 탈출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AFP 연합 특약】 미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가 인도양에서 페르시아만으로 발진했다고 미국의 CNN방송이 2일 보도했다. 【쿠웨이트 로이터 연합 특약】 이라크의 지원을 받는 쿠웨이트내의 한 그룹은 2일 자신들이 자비르 알아마드 알사바 쿠웨이트국왕을 축출하고 쿠웨이트의회를 해산시켰다고 밝혔다. 【유엔 AP AFP 로이터 연합】 유엔 안보리는 2일 아침 이라크의 대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신랄히 비난하면서 이라크군의 즉각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지 수시간 만에 미국과 쿠웨이트에 의해 긴급 소집된 안보리는 이날 이라크의 대쿠웨이트 침공사태를 논의한 끝에 14대0으로 이같은 결의안을 채택하고 아울러 양국간의 긴급협상을 촉구했다.
  • “탈냉전”… 변화하는 미 안보전략:상

    ◎「소 팽창 봉쇄」서 「지역안정 확보」로 전환/테러등 저강도전 대비,세계 경찰역은 계속/핵의존 탈피,기동력 갖춘 항모ㆍ경보병 역점 미국은 탈냉전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들의 군사전략은 새로운 평화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서울신문 국제부 최두삼기자는 미국정부 초청으로 지난 6월중순부터 1개월간에 걸쳐 미국내 정부관리ㆍ학자ㆍ군부 및 의회지도자들을 두루 만나 변모하는 미국의 안보전략을 취재할 기회를 가졌다. 「변화하는 미국의 대외군사전략 목표」와 「동북아주둔 미국의 역할변화」로 나누어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소련의 의식전환과 갑작스런 동구공산블록의 몰락이란 역사적 대변혁기를 맞아 미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것이라는게 미국땅을 밟기 전까지 가졌던 기자의 선입견이었다. 워싱턴DC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의회는 국방비 삭감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일부 학자들은 군비축소로 생겨난 여유자금을 평화기부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궁리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탈냉전시대를 맞으면서 이제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막을 내렸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미국의 군부지도자 학자 관리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지난 40여년간 미국의 군사전략 목표는 「소련세의 팽창을 봉쇄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제3세계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처에서 일하고 있는 불안정 요인을 제어하는 「지역안정 확보」로 바뀌어야 하고 또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여전히 맡아야할 군사적 역할이 남아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제3세계가 주목표 이같은 군사전략 목표의 변화에 대해서는 미국내에서도 대표적인 진보주의 성향을 보여온 마이클 클레어교수(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평화 및 세계안보연구소장)까지도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클레어교수는 『냉전으로 인한 위기위식이 지난 40년간이나 지속됐으며 불과 몇달전에야 그같은 공포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증강되기 시작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력은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었음에도 오래 가다보니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미국이 상당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군부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대에서 항공우주학을 강의하고 있는 로드 밀레교수(현역공군장교)를 비롯한 국방부 관리들은 지금까지 소련이나 바르샤바조약국들이 주요 위협상대였으나 앞으로는 게릴라 테러 국경분쟁내전 마약전쟁 등 저강도의 분쟁이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미소군의 갑작스런 축소는 지역헤게모니쟁탈전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며 대폭적인 군축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점에서 클레어교수는 미국의 군사전략목표가 소련권으로부터 제3세계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군부지도자들은 앞으로 전개될 전쟁양상으로 ▲미군의 파나마침공에서 보여준바와 같이 사상자도 많지 않고 단기간에 끝나는 저급강도의 전쟁과 ▲이란­이라크전과 같은 중급강도의 전쟁을 들고 이들 저ㆍ중급전투를 위한 준비태세를 갖춰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투태세는 기동력을 수반하는 항공모함이나 경보병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재래무기 소폭 감축 이렇게 되면 현재의 유럽주둔 미군 유지비에 비해 규모가 축소되긴 하겠지만 역시 적잖은 비용이 들게 분명하다. 아마도 전략핵전력의 경우 급격한 감축이 예상되지만 재래식 병력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다는 얘기다. 탈냉전시대에 들어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핵전력의 감축이라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듯 했다. 이제 핵무기를 통한 헤게모니장악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이용한 위협은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군수품의 지원ㆍ수출 등을 통한 헤게모니장악도 옛날얘기가 되고 있는듯 했다. 지금까지는 미소가 각기 자기네 블록내의 종속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 무기를 공여,수출했으나 앞으로는 종속관계에서 동등한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미소가 공동으로 중급국가들을 상대로 헤게모니장악을 노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어느 한쪽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게 바뀌고 있다. ○중급국가 역할 커져 탈냉전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과거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해오던 일부 중급국가들이 앞으로는 종전처럼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3세계국가들에게 다른 무기들을 수출한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국가들로는 남북한이 꼽히고 있다. 이란­이라크전때 보여줬듯이 미소뿐 아니라 많은 중급국가들의 무기가 전쟁지역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이곳 군사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들 중급국가들의 역할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쨋든 미국은 탈냉전시대를 맞아 의회를 중심으로 군비축소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의회나 행정부는 장기적으로 미군의 25% 감축을 논의하고 있지만 제대로 실현될지는 의심스러워 보인다. 소련의 위협은 사라졌으나 국지적인 분쟁은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며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게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믿는 학자나 관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주리대(세인트루이스)의 국제정치학자 조웰 글라스만박사는 『물론 소련은 변했지만 미국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그는 『과거에 미국은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소련과 그 동맹국들의 팽창정책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니카라과 이라크 등 아직도 국지적인 불안요인이 많아서 미대외정책의 가장 큰 관심사가 지역안정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중동으로부터의 석유수송로 보호작전개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중동수송로 비중 커 미국은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77%를 차지하고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30%를 공급하는 페르시아만일대 산유국들의 석유수송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방해로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가정을 해왔다. 특히 연간 2만1천대의 선박이 지나는 수에즈운하와 그에 못지않은 바브엘만데브해협,그리고 호르무즈해협 등에 친소정권이 많이 등장함에 따라 보다 큰 경계를 해온게 사실이었다. ○평화배당금 적을듯 이제 이들 수송로에 더 이상 공산세력의 위협은 사라지게 됐다. 그렇다고 서방세계의 젖줄이라 할수 있는 이곳 해상수송로 보호작전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게 미국정부의 분명한 입장인듯 했다. 중동의해상수송로 작전을 맡고 있는 플로리다주 탐파의 미중앙사령부는 휘하에 40만대군을 동원할 수 있으며 연간 15억달러를 들여 수송로 보호작전을 펴고 있다. 냉전이후시대(POST Cold War Era)에도 이곳의 지역적 불안정때문에 미군의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미국조야의 대응태세로 보아 군축에 따른 평화배당금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거나 아예 기대하기조차 어렵겠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 합동군제/전군 통합지휘…「즉응방위체제」 구축

    ◎유럽 3개국의 운영실태 점검/2차대전후 도입… 각군 균형발전에 크게 도움 영/4군작전권 보유ㆍ임기 2∼5년… 대통령이 임명 불/전략방위개념 수립ㆍ정부의 군사조언자 역할 독 현재 각 군참모총장이 행사하고 있는 군정ㆍ군령권중 작전등 군령권을 합동참모본부의장에게 넘기는 것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는 국군조직법개정안이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또다시 정치권의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ㆍ여당은 합동참모본부제가 3군을 통합지휘함으로써 전투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야당측은 군지휘권을 한곳에 집중시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문민통제를 어렵게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현재 세계각국의 군사지휘체제는 그나라의 전략적인 환경,국경의 형태,위협의 성격 및 가상적군의 규모,무기체제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해양국가가 많은 서양문화권은 대체로 지휘관 한 사람에게 권한을 집중시키지 않는 합동군제인 국방참모총장제로 발전하는 추세인 반면 대륙국가의 동양문화권은 작전의 효율성과 능률을 중시하는 통합군제인 단일참모총장제를 채택하고 있다. 육ㆍ해ㆍ공군 3군 본부를 운영하면서 작전ㆍ정보ㆍ인사ㆍ운영ㆍ예산 등의 군령권은 국방참모총장을 통해 행사하고 있으며 우리군 구조개편의 모델이 되고 있는 영국ㆍ프랑스ㆍ서독의 군사지휘체제를 살펴본다. ○국방성은 민간위주 ▷영국◁ 1923년 육군과 해군의 균형발전과 작전의 효율성을 위해 세계 최초로 합동참모본부를 창설한 영국은 2차대전이 끝나고 공군이 독립하자 국방참모본부로 개편,3군의 작전을 통괄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63년에는 각군의 정책ㆍ행정 및 재정 등 군정상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3군 국방위원회를 발족시키고 64년에는 각군성을 폐지하고 국방부로 통폐합 하는 한편 현역의 최고위직인 국방참모총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국방장관은 군의 규모ㆍ조직편성 및 전개에 대한 권한을 갖고 국방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각군에 대한 자원의 분배와 군의 운용 및 관리를 하는 한편 소장급이상 장군의 진급 및 상벌에 대한 책임을 진다. 현재 공군원수인 국방참모총장은 군의 최선임 장교로 국방장관의참모이며 긴급시에는 수상에 직접 보고할 수 있다. 국방참모총장은 국내와 해외주둔군의 작전부대를 지휘할 뿐만 아니라 핵정책을 포함한 국방정책을 수립하고 기본군사작전 명령을 작성,하달한다. 각군 참모총장은 4성장군으로 국방참모총장의 위임하에 평시작전권을 행사하며 전투의 효율ㆍ관리ㆍ자군의 육성 및 편성을 유지하는 군정권을 행사한다. 2차대전 기간동안 모두 5백60만명의 장병을 동원했던 영국은 현재 병력이 31만8천7백명이며 그중 9만1천명은 서독 등 해외에 배치되어 있고 국내에는 22만8천명이 있다. 육군 15만8천명과 해군 6만6천5백명,공군 9만3천5백명의 현역으로 편성된 영국군은 항공모함ㆍ잠수함 등에 전략핵을 보유하고 있어 NATO를 중심으로 미국과 대서양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인 위주의 국방성에는 1만9천여명의 관리와 3천여명의 현역이 근무하고 있으며 현역 지휘관 중심의 국방참모본부에는 원수 1명,대장 1명,중장 3명,소장 11명 등 1천여명의 현역이 일하고 있다. 영국군의 모든 작전지휘는 국방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국방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다. ○감찰기능 대폭강화 ▷프랑스◁ 1953년 국방참모부를 창설한 프랑스는 58년 군 총사령부,61년에는 통합군사령부로 개칭했다가 62년부터 지금까지 국방참모부로 전군을 운영,지휘하고 있다. 육군 29만8천2백명,해군 6만6천2백명,공군 9만5천5백명,헌병군 8만6천7백명,병기본부 4천4백명,군무원 14만2백명 기타 등 70만2백명의 군사력을 갖고 있는 프랑스군은 육ㆍ해ㆍ공군ㆍ해병대ㆍ전략핵군 등 4개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전ㆍ평시를 막론하고 전군의 작전권은 국방참모총장이 행사한다. 독자적인 핵군을 유지하면서 NATO의 군사위원회에서는 탈퇴했으나 군사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서독에 1개군단과 3개 기갑사단 4만9천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는 프랑스는 국방참모총장을 중심으로 전군을 단일지휘체제안에 두고 있다. 국방참모총장은 전 군사력의 조직과 운용의 책임을 지며 위기발생시 총사령관으로 전군의 작전지휘권을 행사,즉시 방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평시에도 해외주둔군을 직접지휘하는 국방참모총장은 국방에 관한 중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장성급 장교의 임명 및 보직에 대해 장관을 보좌하면서 권리를 행사하고 육ㆍ해ㆍ공군에 대한 감찰권까지 갖고 있다. 각군 참모총장은 위기시 총사령관의 작전보좌관으로 평시에는 전투준비태세유지와 장성의 임명보직에 대해 장관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보좌기능을 하고 있다. 국방참모총장과 각군 참모총장 병기본부장등이 참석하는 합동참모회의는 국방부장관이 주재하며 국방참모본부에서 작성된 군사력운영계획을 논의한다. 국방참모총장은 국방장관이 대상자를 선정,수상의 재가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임기는 2∼5년이며 지금까지 육군 11명,공군 4명이 국방참모총장을 지냈다. 해외보안방첩국(안기부)과 군보안국(보안사)은 장관 직속으로 편성되어 있고 국방참모본부는 정보활용본부를 직할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감찰기능이 강화되어 육ㆍ해ㆍ공군ㆍ헌병군ㆍ의무군에 대장급 감찰감실이 있으며 핵 작전은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국방참모총장이 공군전략사령관을 통해 수행한다. ○지휘계통 갈등없어 ▷서독◁ 2차대전 패전국인 서독은 육군 34만5천명,해군 3만9천명,공군 11만1천명등 49만5천명의 군사력을 갖고 있으나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벨기에 등 NATO 7개국의 외국군 40만1천7백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서독의 국방조직은 국방장관밑에 사무차관과 정무차관이 인사ㆍ행정ㆍ예산ㆍ시설ㆍ복지 등 일반업무를 수행하며 군의 작전지휘는 대장인 국방참모총장이 각군 참모총장회의 의장자격으로 행사한다. 연방군참모총장이라고도 불리는 국방참모총장은 독일의 군사방위개념을 수립하고 연방정부에 대한 군사조언자로 연방군의 기획과 작전업무와 참모총장회의를 주재한다. 각군참모총장은 군특성에 맞는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교육훈련ㆍ군수 등 군정권을 행사하며 작전ㆍ기획업무는 국방참모총장의 통제를 받는다. 국방부는 민간인 3천7백명과 현역 1천7백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방군본부는 5백30명,각군본부는 3백50명으로 편성되어 있다. 연방군본부와 각군본부는 모두 인사ㆍ정보ㆍ작전ㆍ조직ㆍ군수ㆍ기획ㆍ군비 등 7개국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같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국방 참모총장의 임기는 3∼5년이며 군별 순환보직규정은 없으나 역대 9명은 육군이 6명,해군 2명,공군이 1명이었다. 본부의 편성은 육군3 공군2 해군1의 비율로 되어 있다. 연방군본부는 정보본부ㆍ보안사ㆍ통신정보사ㆍ군사지리청물자사령부ㆍ연구 및 연습총국ㆍ군사연구소ㆍ연방국대학ㆍ지휘참모대학ㆍ정신전력ㆍ심리전ㆍ군수ㆍ정보ㆍ체육학교 등 14개 직할부대를 두고 있다. 평시 방공부문을 제외하고 모든 작전권은 연방군본부의 국방참모총장이 행사하고 전시에는 야전군은 나토사령관이 책임지며 연방군은 후방지역 방어책임을 맡고 있다. 정부수집은 각 군본부에서 하지만 연방군정보본부에서 종합분석판단하며 국방참모총장이 국방정보ㆍ기획ㆍ작전의 책임을 진다. 국방참모총장의 계급은 대장이며 각군총장의 계급은 중장이어서 지휘계통상의 갈등은 없다.
  • 미 미드웨이호에 두차례 폭발사고/1명 실종 16명 부상

    【도쿄 AP 연합 특약】 미해군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서 20일 두차례의 폭발사고가 발생,1명이 실종되고 1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미해군당국이 밝혔다. 미드웨이호는 이날 2천8백여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일본 요코스카 미해군기지 동북방 2백㎞ 해상에서 통상 작전임무를 수행중이었는데 미해군 대변인은 첫번째 폭발사고와 이로 인한 화재가 이날 하오 12시23분(한국시간)에 발생했으며 두번째 사고는 13시23분경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 미 군부,해군력 감축제안/항모 2척ㆍ핵잠함 3척등 대상

    ◎대륙간 미사일 계획도 연기 【워싱턴 AP 연합】 미군부는 2척의 항공모함과 3척의 신형 탄도미사일탑재 잠수함을 감축하고 이동식 지상발사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계획을 연기하도록 제안했다고 뉴욕 타임스지와 워싱턴 포스트지가 12일 보도했다. 이들 양대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이같은 제안은 리처드 체니 미국방장관이 미군부에 90년대중 추가로 군비를 축소할 수 있는 분야를 조사,금년 여름 검토할 수 있도록 제출하라는 지시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체니장관에 제출된 비밀비망록에 포함되어 있다. 이 비망록은 92∼97회계연도 기간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B­2스텔스 폭격기를 당초의 1백32대에서 75대로 감축하려는 체니장관의 계획과 오는 97년까지 육군 병력을 78만1천명에서 58만명으로 감축하려는 육군당국의 계획과 같은 주요 결정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이 비망록에서 해군은 12척의 항공모함 배치를 요구하고 있으나 미군부는 14척을 원하고 있다고 포스트지는 밝혔으며 이와 관련,로렌스 가레트 3세 해군장관은 체니장관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오는 90년대에 우리의 지속적인 임무를 신뢰있게 수행하는데 가장 적합한 전투력은 14척의 항공모함전투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신문들은 또 해군이 현 5백49척의 군함을 4백88척으로 감축할 것을 요구,처음으로 군함숫자에 대한 이견을 해소했다고 밝히고 트라이던트 미사일탑재잠수함의 경우 21척에서 18척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군은 다수 의회의원들이 지지하고 있는 군축전략에 호응,다탄두미사일의 단계적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 국군조직법 개정안 세미나… 이석복준장 주제발표

    ◎“현대전 수행위해 군제개선 불가피”/3군 통합전력 향상… 국방자원 관리에 효율적 국방부는 10일 하오 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여야정치인ㆍ언론인ㆍ학자 그리고 현역 및 예비역 장성 등 관련 인사 6백여명을 초청,「한반도 안보환경 전망 및 국군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상우교수(서강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차영구박사(국방연구원)는 『90년대 안보환경변화와 군구조개선』,이석복준장(국방부)이 『군구조개선의 필요성과 주요내용』 유재갑박사(국방대학원)가 『국군조직법 개정과 문민통제』,이승우교수(경원대)와 강경근교수(숭실대)가 『국군조직법개정과 합헌론』등의 주제로 발표를 했다. 합참 전략기획국 이석복준장의 주제발표내용을 요약한다. 국방부가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의 연구에 착수,한국의 장기적인 안보환경을 분석하고 우리환경에 맞는 군구조개편작업에 착수한 것은 88년 8월18일부터이다. 국방부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라는 대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전이 요구하고 있는 지휘반응의즉시성과 육ㆍ해ㆍ공군의 통합전력발휘를 보장하고 2천년대 태평양시대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통일위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른바 「8ㆍ18계획」을 입안하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각국의 군구조는 대략 자문형합참의장제ㆍ통제형합참의장제ㆍ합동군제ㆍ통합군제ㆍ단일군제 등 5개의 대표적 유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국의 군제는 문화적ㆍ정치적ㆍ역사적 배경과 전략환경ㆍ가상적군ㆍ국경의 형태ㆍ무기체계에 따라 해양국형과 대륙국형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서양문화권은 한 지휘관에게 권한을 집중시키지 않는 합동군제로 발전하고 동양문화권은 능률성을 추구하는 통합군제를 채택해 왔다. 현재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자문형 합참의장제는 1924년 영국에서 수상을 자문하기 위한 제도로 미국은 2차대전이 끝난 47년 채택했다가 58년 통제형 합참의장제로 개선하고 영국은 64년 육ㆍ해ㆍ공군 합동문제인 국방참모총장제로 발전시켰다. 공군이 독립하고 항공모함전단이 구성된 40년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밖에 없으며 대부분의 공산국가와 이스라엘ㆍ터키ㆍ대만 등의 나라에서는 지휘관 한 사람에게 군정ㆍ군령권이 모두 주어진 강력한 국방참모총장제도나 단일 참모총장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군장성과 학자ㆍ교수 등 40여명의 「8ㆍ18」 연구위원들은 전세계의 군구조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조사 연구한 결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반도국가인 우리의 현실에 맞는 군제로 육ㆍ해ㆍ공군 3군본부는 그대로 둔 통제형 합참의장제와 합동군제가 타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모델로서 이스라엘 서독 영국 미국 군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한국적 여건에 맞는 군제를 마련했다. 첫째,북한의 군사전력인 기습전과 우리의 짧은 전장을 고려할 때 전ㆍ평등체제를 별도로 유지했을때 전환기의 혼란은 전쟁의 승패와 직결됨으로 이스라엘과 미국과 같은 전ㆍ평시단일체제를 선택하고,둘째 국방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영국ㆍ서독과 같이 합참주도의 군사력 건설소요제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자원이 없는 우리현실에 유리하다고 보고,셋째 작전의 즉응성과 권력집중방지를 위해서는 미국처럼 3군의 작전부대를 합참에서 직접 지휘하되 군정권은 각 군총장이 행사케 함으로써 상호균형과 조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종 완성된 군제를 개괄해 보면 대통령과 국회에 책임을 지고 있는 국방장관이 군정ㆍ군령을 통괄하되 군정은 각군 총장을 통하여 행사하고 군령은 장관에게 군령분야를 보좌하는 합참의장을 통하여 행사하는 체제이다. 군구조가 개선되면 현대전이 요구하는 육ㆍ해ㆍ공군 통합전력이 발휘되며 국방자원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이룰 수 있는 요체가 된다. 1차대전까지의 전쟁양상은 지상군이 비교적 단순한 전력으로 승리하면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해상전도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항공기의 출현과 유도탄개발ㆍ전자수단의 무기화,원폭ㆍ수폭 등 무기체계의 발달로 육ㆍ해ㆍ공군 3군이 병립하고 각군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한편 전시에는 상호의존적ㆍ간섭적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현대전에서는지상군ㆍ해군ㆍ공군은 단일작전지휘관의 강력한 지휘통솔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연구는 국력의 신장과 함께 안보환경변화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2천년대 태평양시대 중심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민족사적 위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하는 데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재 새로운 군제도의 정착 소요기간을 4∼5년으로 고려할 때 한ㆍ미연합사령부 지휘체제안에 안정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국방자원관리의 효율화와 3군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 소,새 항모 태평양에 곧 배치/초대형… SU25등 최신예기 탑재

    ◎일 교도통신 보도 【도쿄 연합】 소련 해군이 본격적으로 건조중인 최초의 대형 항공모함중 적어도 한척이 90년대 후반기쯤 소련대평양 함대에 배치될 것이라고 교도(공동)통신이 일본방위청과 해상자위대 소식통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미해군의 의회보고서 등에 의하면 소련이 건조중인 본격파 항공모함 3척중 흑해연안의 니코라이에프 조선소에서 진수를 기다리고 있는 리가호는 92년말 해상 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며 현재 개발에 급 피치를 올리고 있는 SU25ㆍ27ㆍ29등 최신예기를 탑재하게 될 것으로 보여 유럽의 긴장완화 추세와는 달리 해상 군축관리의 구체화에 시간이 걸리는 태평양지역의 현 정세와 관련,주목된다고 교도통신이 밝혔다.
  • 「연안해군」탈피,대양방위에 첫발/환태평양 합동훈련 참가의 의미

    ◎선진 전술경험 축적,연합작전 능력 강화/유사시 태평양 주요해로 확보를 목표 우리해군이 창군이래 처음으로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우방국가의 해군들과 함께 1만 마일의 환 태평양훈련(RIMPAC)에 참가함으로써 본격적인 태평양해군의 일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국해군은 80년대 초부터 한국형 구축함을 자체생산,실전배치 함으로써 질과 양적으로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왔으나 전함이나 잠수함 순양함 한척 없어 9백마일의 연안을 지키는 연안해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10대 무역국의 하나인 한국은 하루에 소모되는 57만5천 배럴의 원유공급을 모두 해상수송에 의존할 뿐만아니라 1년에 약30만척의 각종 선박이 출입하며 무역량의 99%가 해상을 통해 운송되고 있어 한국의 상선대를 보호할 수 있는 막강한 함대가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6ㆍ25동란 발생시 연인원 1백만명이 넘는 참전16개국의 증원병력과 수억t에 달하는 탄약 장비 원조물자 등의 99%가 해상수송로를 통해 부산과 인천항으로 입항했으며 한국에서 전쟁이 재발한다면 증원되는미국의 병력과 장비가 대부분 해상수송로를 통해 한국으로 오게되어있어 태평양의 해상교통로 완전확보야말로 우리에게는 사활이달린 지상의 과제라 할 수 있다. 환태평양 해군훈련은 유사시 태평양상 중요해상교통로의 완전 확보를 위해 미3함대와 7함대가 주축이 되어 71년부터 캐나다 호주 등이 참가해서 약 2개월에 걸쳐 실시돼 오고있다. 격년제로 실시되고 있는 환태평양훈련을 통해 미국은 태평양 연안국간에 연합작전능력을 향상시키고 상호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전술작전과 전략방향을 발전ㆍ평가해왔다. 80년도에는 일본이,86년도에는 영국이 참가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88년도에 제독2명을 포함한 참관단을 파견했으며 올해 최초로 소규모함대를 파견,당당한 훈련국의 일원으로 참가 하게됐다. 지난해 미국 서부해안에서 하와이ㆍ필리핀ㆍ괌 등의 훈련 해역에서 대규모 항공모함전단과 전함ㆍ순양함ㆍ구축함ㆍ잠수함ㆍ지휘통신함 등 30여척의최신함정의 기동훈련을 참관하고 돌아온 해군의 한 관계자는 우리해군의 시야가 연못의 올챙이 정도밖에되지않는다며 해군력 건설을 역설하기도 했다. 한국해군은 이번 림팩훈련 참가를 통해 영해에서는 실시하지 못한 대함ㆍ대잠수함ㆍ대공전 및 상륙작전을 포함한 기동훈련을 실시함으로써 하늘과 바다ㆍ수중ㆍ해안작전의 경험을 얻게 된다. 해군관계자들은 이번 훈련참가로 첫째 미국ㆍ캐나다ㆍ호주ㆍ일본 등 태평양연안국가들의 해군과 상호협력관계를 통해 선진해군의 작전ㆍ전술능력을 습득할수 있는 계기가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정치ㆍ외교ㆍ군사적인 차원에서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함께 국내에서는 실시할 수 없는 해상 실탄사격훈련과 첨단장비의 정밀성능검사를 통해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할 수 있을것도 큰 성과중의 하나로 보고있다. 그러나 림팩훈련의 한국 참가는 이제 막 시작된 북방정책에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이 훈련을 놓고 소련과 중국은 공산권국가들의 태평양 진출을 막으려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해상 봉쇄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은 한국이 일본해군과 함께 해양작전을편다는 것이 국민감정에 좋지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어 국방당국자들은 한동안 고심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해상교통로를 확보하고 상선대를 보호하기 위한 함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국민감정이나 북방외교의 추진에는 다소 장애가 되더라도 『협상과 힘의 확보는 별개의 문제』라는 실리적인 입장에서 훈련 참가를 결정하게 됐다. 한국은 이번 훈련 참가를 통해 미ㆍ일ㆍ캐나다ㆍ호주 등과의 군사협력관계를 마련하고 동북아시아의 교통요충지로서의 역할 증대를 꾀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축소 팀스피리트 3월14∼28일 실시/2만명선 감축

    한미 두 나라 정부는 10일 올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90이 오는 3월14일부터 28일까지 약 2주일 동안 실시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훈련에는 한국군 및 주한미군과 미 태평양 사령부 예하부대,미 본토에서 수송되는 미군등 약 18만명이 참가하며 1개 항공모함 전투단도 포함될 것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지난 76년부터 시작된 팀스피리트훈련에는 84년부터 한미 양국군 20만명 이상이 참가했으나 올해는 지난해 9월의 한미 양국정부의 합의와 미국의 일반군사비 삭감에 따라 규모가 축소됐다. 국방부는 『한미 양국의 육군ㆍ해군ㆍ공군ㆍ해병대의 축소규모가 1만7천∼2만명 수준』이라고 밝히고 『기동 및 화력장비도 같은 수준으로 감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주요 훈련부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예년처럼 실시될 것』이라면서 『한국정부는 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 군사당국자를 초청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유엔군 사령부에 통보했으며 유엔사는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스위스ㆍ스웨덴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 등 4국에 대해서도이번 연습에 참관해주도록 초청했다』고 밝혔다. 유엔사령부측은 『북한과 중국ㆍ중립국감시위에 참관 요청을 한 것은 상호 신뢰회복과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 90 팀스피리트 훈련규모 축소의 함축

    ◎남북긴장 완화ㆍ군비 절감 “이중 효과”/북측의 대화거부 구실 실질적 제거 한/동구권 변화ㆍ국방비 삭감등 고려 미 올해 팀스피리트훈련의 규모가 예년보다 축소되는 것은 남북한 긴장완화 및 미국의 군사비절감 등 여러가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미군측의 입장에서 보면 일반군사훈련비가 4억5백만달러에서 3억7천5백만달러로 3천만달러나 삭감된 것과 의회에서 일고있는 주한군의 철수주장 및 한미간 작전권 이양문제 등에 따른 한미연합사령부의 위상변화 등이 훈련축소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측으로서는 이 훈련을 구실삼아 툭하면 남북대화를 거부해온 북한측을 자극하는 일을 경계하고 그들이 대화의 마당에 계속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배려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할수있다. 지난 76년부터 실시돼 온 팀스피리트훈련은 처음 주한미군의 철수에 대비하여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증원 투입되는 미육ㆍ해ㆍ공군ㆍ해병대의 전투부대를 신속히 수송,전개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79년부터 미국본토에서 이동되는병력이 3만1천5백50명으로 늘어나고 주한미군과 해외주둔병력 2만4천4백50명 등 미군이 5만6천명,한국군이 11만1천9백명 등으로 훈련참가병력이 16만7천9백명으로 자유진영 최대규모의 군사훈련이 되어왔다. 훈련기간도 80년부터 70∼90일동안 장기간에 걸쳐 실시되었을 뿐아니라 참가장비도 B52전략폭격기,미드웨이ㆍ엔터프라이즈 등 2척의 항공모함이 등장하고 해병대의 상륙작전까지 곁들여져 육ㆍ해ㆍ공군ㆍ해병대의 연합기동훈련이라는 성격이 두드러졌다. 80년대까지만해도 팀스피리트훈련에 사용되는 훈련비는 참가하는 미군의 훈련비로 충당해왔으나 89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연합사령부의 군수참모가 한국군 소장에 보임됨으로써 한국군도 미군의 군수지원에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미국은 레이건행정부 후기부터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인한 국방예산삭감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하면서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의 증액을 요구해오면서도 팀스피리트 훈련만은 참가병력을 계속 6만여명으로 유지하면서 장비나 훈련규모를 축소하지않았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을 북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한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에 따른 것이긴하나 한국의 이익만을 위해 주둔하는 것은 아니며 해양국가인 미국이 소련과 중국을 의식,세계전략의 한 포석으로 배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팀스피리트 훈련같은 종합훈련은 미국의 항시전력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다. 실제로 미군은 이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전시 동원체제를 점검하고 수송ㆍ병참ㆍ보급ㆍ정찰ㆍ통신 등 군의 기본기능을 훈련하며 신무기와 장비의 전술적운영을 점검하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군도 병력을 이동하기에 가장 어려운 2,3월에 우방국 장병들과 어울려 야외기동ㆍ도하ㆍ상륙ㆍ비상이착륙ㆍ유격훈련을 함으로써 현대전의 전술 전략을 익혀왔다. 이에 따라 해마다 참가병력과 장비가 늘어나던 팀스피리트훈련이 90년대 첫해들어 축소되는 현상은 앞으로 한반도의 안보상황과 군사력 대치구조도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국방비 삭감,동유럽의 개혁과 변화에 따른 데탕트기류와 한국안에서의 반미감정 등을 고려해야 하며 한국으로서는 북방정책과 남북대화 등의 진행상황에 따라 보다 신축성있게 대처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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