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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화범 징역 4년 6개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에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된 40대에게 법원이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황영수 부장판사)는 25일 문화재 보호법 위반, 공용건조물 방화,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백모(48)씨에게 이같이 판결했다. 이번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돼 배심원 7명 전원이 유죄 판단했다. 백씨는 지난해 12월 1일 오후 3시 11분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 내 추모관에 들어가 불을 질러 영정을 포함한 내부를 태워 소방서 추산 337만원의 재산 피해를 입혔다. 그는 주거지인 경기 수원에서 미리 시너 1ℓ를 등산용 플라스틱 물병에 담아 구미로 이동한 뒤 버스로 생가에 도착해 박정희 전 대통령 영정에 시너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이 밖에 백씨는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1시 17분쯤 방화를 목적으로 경남 합천군 율곡면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에 침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실제 불을 지르지는 않았다. 그는 피고인 진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지른 행위는 불의에 항거한 것으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배심원과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인도 동북부 비하르주의 보드가야로 가려면 13㎞ 남짓 떨어진 거점도시 가야를 경유하기 마련이다. 가야에는 정각(正覺) 이후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한 브라마주니 언덕이 있으니 보드가야에 버금가는 성지(聖地)다. 주변에는 팔리어(語)로 가야시사라는 산이 있어 부처 당시 초대형 사원이 지어졌다. 꼭대기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고 중국에서는 가야시사를 상두산(象頭山)으로 의역(意譯)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석가모니 부처를 상징한다.가야산(伽倻山)이라면 경남 합천의 해인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충남 내포(內浦)의 가야산 역시 합천의 가야산을 뛰어넘는 한국 불교 역사의 중심지였다. 합천 가야산 정상은 해발 1430m 상왕봉(象王峯)이다. 내포 가야산 줄기 북쪽에도 해발 310m의 상왕산(象王山)이 있다. 조선시대 사찰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왕산 개심사는 가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합천 가야산과 내포 가야산의 작명 원리는 다르지 않다. 인도의 가야와 보드가야, 가야시사는 부처의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설법이 이루어진 곳이다. 인도에서 실크로드, 중국을 거쳐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 조상들도 같은 상징성을 가진 성지를 갖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10개 남짓한 살기 좋은 고을을 가리킨다. 삽교천을 따라 바닷길이 깊숙하게 내륙으로 들어왔다는 지형적 특징이 고유명사가 됐다. 가야산 서쪽 서산시 운산면에는 개심사와 함께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마애불과 백제 사찰 보원사의 옛터가 있다. 가야산 동쪽 예산군 덕산면에도 백제 거찰(巨刹)로 알려진 가야사가 있었다. 이름으로만 보면 가야사는 과거 보원사를 뛰어넘어 내포 가야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을 수도 있다. 가야사 옛터에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올 길지(吉地)’라는 지관의 말에 헌종 10년(1844)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무덤을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는 흥선대원군의 아들과 손자가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에 오른 이후 퍼진 말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황제가 불과 2대에 그치고 나라가 망했으니 흥선대원군이 ‘2대천자지지’를 제대로 해석했어야 했다는 씁쓸한 우스개도 있다. 어쨌든 남연군 무덤에 서면 풍수지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과연 명당이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 무덤을 썼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대원군은 훗날 아들 명복이 보위에 오르자 건너편 산기슭에 새 절을 짓고 부처의 은덕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보덕사(報德寺)라 이름 지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하지만 가야사는 이미 폐사(廢寺) 상태였던 듯하다. 다만 남아 있던 석탑과 석등 같은 석물의 일부 훼손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말의 개화파 문인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도 ‘남연군묘를 가야사의 빈터에 썼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대원군은 단순히 불교에 호의를 가진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 후원한 인물이었다. 집권 이전에도 영종도 용궁사를 원찰로 삼은 것은 물론 쇠퇴한 흥천사, 화계사, 보광사를 중창했다. 대원군은 ‘불교를 즐겨 좇았다’거나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우리라’는 글귀가 새겨진 인장을 즐겨 썼다고 한다. 조선 후기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친(親)불교적 인사가 유서 깊은 대찰(大刹)에 불을 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대원군이 불교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는 것은 보덕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구니 수도도량이어서 일반인 출입을 막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개방한다. 보덕사는 한마디로 남연군 무덤의 원찰이다. 대원군이 아버지의 극락왕생과 후손의 발복(發福)을 빌고자 지은 절이다. 이름처럼 자식을 왕으로 만들어 준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뜻이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부수적이었을 것이다. 큰법당은 무덤의 원찰이니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다. 큰법당 앞에 바짝 붙여 지은 디귿자 모양의 대방(大房)은 충청도에서는 이례적이다. 폐쇄적인 구조의 대방은 내부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두고 있다. 왕실 여인들의 출입을 전제로 한 공간이다. 대방은 서울 근교의 왕실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에 주로 지어졌다. 보덕사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껏 지었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비구니 사찰답게 아주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어 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절의 들머리에는 가야사 터에서 가지고 왔다는 화사석(火舍石)으로 다시 세운 석등이 있다. 가야사는 백제시대 겸익이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유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쏟아져 나왔다. 머리 부분이 없는 소조 불상도 10점 남짓 출토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 건물 유구도 찾아냈다고 한다. 가야사 역사의 본격 재구성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에서는 절의 흔적뿐 아니라 남연군묘의 제각(祭閣)이었던 명덕사(明德祠)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었다.특히 ‘가량갑’(加良岬)이라고 새겨진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눈길을 끌었다. ‘가량’과 ‘가야’(伽倻)는 과거에는 같은 발음이었던 듯하다. 가야국과 관련된 역사 기록에서도 ‘가량’과 ‘가야’를 혼용한 사례가 보인다. 가야사라는 이름은 ‘고려사’에 처음 나온다. 창건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사이 어느 시점에 가야사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가야사와 ‘가야갑사’(加倻岬祠)의 기록이 함께 보인다. 그런데 발굴조사에서는 일정한 두께로 깎은 돌로 조성한 유구가 확인됐다. 절의 시설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명산(名山)에 제사 지내던 흔적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계룡산 산신에 제사 지내던 중악단(中岳壇) 역시 사찰인 신원사 곁에 두었다. 잘 알려진 대로 남연군 무덤은 대원군에게 통상을 요구하고자 오페르트가 저지른 도굴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1868년 행담도에 1000t급 차이나호를 정박시킨 뒤 작은 배로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에 상륙한다. 일당은 덕산 관아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뒤 가야산으로 향했지만 남연군이 안장돼 있는 무덤의 회곽은 단단하기만 했고, 결국 간조 시간에 쫓겨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국사 교과서에도 서술돼 있으니 역사적 의미는 각자 새기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연군 무덤을 방문한 길이라면 오페르트 일행이 상륙한 예산 고덕면의 구만포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삽교호 방조제에 물길이 가로막혀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삽교천 중류의 구만포는 내포의 중심 포구의 하나였다. 남연군 무덤에서는 자동차로도 20분 이상이 걸린다. 이 길을 걸어서 오갔을 오페르트 일당은 매우 조급했을 것이다. 구만포는 지금 한때 포구였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황량하다. 그래도 내포의 역사를 더듬기에 구만포만 한 곳이 없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우리나라 인구 女가 男보다 4만 7000명 많다

    우리나라 인구 女가 男보다 4만 7000명 많다

    7개 지자체 여초, 서울 가장 심해 경기는 성비 101.1 男이 더 많아 평균연령 41.2세 9년새 4.2세↑2015년 대한민국은 ‘남초 국가’에서 ‘여초 국가’로 바뀌었지만 모든 지역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것은 아니다. 행정자치부는 20일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밝혔는데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여성이 4만 7000여명 더 많은 ‘여초 국가’다. 하지만 17개 시·도 가운데 여초 지방자치단체는 7곳에 불과한데 세종시, 광주, 대구, 전북, 대전, 부산, 서울 등이다. 특히 서울은 성비가 95.2(여성을 100으로 했을 때 남성의 수)에 달해 여초 현상이 가장 심했다. 여성이 18만명이나 더 많았다. 반면 경기는 성비가 101.1로 남성이 여성보다 7만 5000여명 더 많았다. 우리나라 평균 성비는 99.8이며 세계 평균 성비는 101이다. 한편 주민등록 인구의 평균연령은 41.2세로 주민등록 인구통계 시스템으로 최초 집계한 2008년의 37.0세에 비해 4.2세 늘었다.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지역은 세종으로 36.8세, 가장 높은 지역은 전남 44.7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연령보다 낮은 지역은 세종(36.8세), 울산(39.1세), 광주(39.2세), 경기(39.4세), 대전(39.6세), 인천(40.1세), 제주(40.6세) 7개 시·도이다. 시·군·구 가운데 평균연령이 가장 젊은 곳은 광주 광산구(36.0세)이고, 경기 화성(36.1세), 오산(36.2세) 등의 순으로 75개 지역은 전국 평균연령보다 낮았다.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늙은 지자체’는 경북 의성(55.1세)이며, 군위(54.7세), 전남 고흥(54.0세), 경남 합천(53.7세) 등 151개 지역은 평균연령보다 높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한국당 ‘SNS 소통왕’은 누구?

    한국당 ‘SNS 소통왕’은 누구?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19일 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광역의원 등을 대상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소통왕’을 선정했다. 당과 대선 후보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SNS, 특히 페이스북 상에서 많이 공유하고, 댓글을 많이 달고, ‘좋아요’를 많이 누른 의원 순으로 등위를 매겼으며, ‘공유 2점, 댓글 1점, 좋아요 1점’으로 평가했다. 국회의원 중에선 곽상도(대구 중·남구) 의원이 1위를 차지했다. 2위에는 김선동(서울 도봉을) 의원, 3위에는 추경호(대구 달성) 의원이 올랐다. 김기선(강원 원주갑) 의원과 김정재(포항 북구) 의원이 공동 4위를 기록했다. 비례대표 중에는 유민봉 의원이 가장 높은 순위인 6위에 올랐다. 7위 김상훈(대구 서구) 의원, 8위 최연혜(비례대표) 의원, 9위 이양수(강원 속초·고성·양양) 의원, 10위 함진규(경기 시흥갑) 의원까지 상위 10걸에 포함됐다. 11위는 강석진(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의원이 차지했다. 공동 12위로 김정훈(부산 남갑). 민경욱(인천 연수을) 의원이 선정됐다. 14위에 이철우(경북 김천) 의원, 15위에 정우택(충북 청주 상당) 의원, 16위에 김승희(비례대표) 의원이 각각 올랐다. 장석춘(경북 구미을), 김종석(비례대표) 의원이 공동 17위, 이주영(경남 창원 마산합포) 의원이 19위, 백승주(경북 구미갑) 의원이 20위, 경대수(충북 증평·진천·음성) 의원이 21위에 랭크됐다. 정종섭(대구 동갑), 정태옥(대구 북갑), 염동열(강원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성일종(충남 서산·태안), 최교일(경북 영주·문경·예천) 의원이 공동 22위를 차지했다. 27위에 이헌승(부산 진을) 의원, 공동 28위에 김도읍(부산 북·강서을)·이채익(울산 남갑) 의원, 공동 30위에 윤한홍(경남 창원 마산회원)·김성원(경기 동두천·연천) 의원, 공동 32위에 김성찬(경남 창원 진해)·신보라(비례대표)·한선교(경기 용인병) 의원, 공동 35위에 김성태(비례대표)·윤종필(비례대표) 의원이 각각 올랐다. 당협위원장 중에는 나성린(부산 진갑), 박종희(경기 수원갑), 강기윤(경남 창원 성산) 전 의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봄의 끝자락 새로 시작되는 선홍빛 꽃의 향연, 군포 철쭉축제 오는 28일 개막

    봄의 끝자락 새로 시작되는 선홍빛 꽃의 향연, 군포 철쭉축제 오는 28일 개막

     절정으로 칫닫던 벚꽃 기세기 꺽이고 4월말 봄의 끝자락에 선홍빛 철쭉의 향연이 새로 시작된다. 경기 군포시는 철쭉동산 일원에서 오는 28일부터 3일간 ‘다시 꽃피는 사랑의 설렘’을 주제로 철쭉제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빼곡히 고개를 내민 철쭉의 꽃봉오리가 화려한 만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수리산 끝자락에 자리한 철쭉동산(2만 2000㎡)에 20만 그루의 산철쭉과 자산홍이 일제히 피어나면 도심 가득 선홍빛 꽃물결이 넘실댄다. 점점 녹음이 짙어갈 무려 피어난 철쭉은 연녹색 수리산과 어울려 더욱 선연한 빛을 발한다. 초록의 산야를 진분홍의 빛으로 물들인 풍경이 아름다워 철쭉동산은 군포 8경중 6경으로 불린다. 경기도에 인천 강화군의 고려산과 부천 춘의산의 진달래축제가 있지만 철쭉축제는 군포 수리산 자락의 철쭉동산이 유일하다. 진달래와 유사한 철쭉의 명칭은 중국 이름 척촉(躑躅)에서 유래됐다. 철쭉은 독성이 있어 개꽃으로, 진달래는 참꽃으로 불린다. ‘개’는 먹지 못하는 식물을 의미한다.  현재 군포시에는 철쭉동산 20만그루 외에 당동 당정 대야토지구획정리 지구내 공원 36곳에 14만여 그루, 산본나들목등 11곳에 2만 4000그루가 식재돼 있다. 또 지난해 개장한 초막골생태공원과 새로 조성한 철쭉공원, 쌈지공원에 10만그루, 군포역 앞 환단 등 12곳에 4만 5000천 그루 등 모두 100그루의 철쭉이 조성돼 있다. 4월말 100만그루의 철쭉이 일시에 활짝피면 온 도심이 물든 대장관을 볼 수 있다.  축제의 주 무대인 철쭉동산 앞으로 안산선이 지나 수도권 어디서든 접근이 용이하다. 수리산역, 산본역에서 내려 도보로 20여분이면 충분하다. 경남 합천 황매산, 충북 단양의 소백산 등 전국에 유명한 철쭉제가 있지만 오랜 시간 멀리 이동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없이 산에 힘들게 오르지 않고도 마지막 봄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철쭉동산에서 이어지는 초막골 생태공원과 둘레길인 수릿길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철쭉동산 정상에서 산길로 느린 걸음을 걷다보면 수리산 슬기봉이 눈앞에 들어오고 이어 생태공원에 이른다. 56만㎡ 크기의 골짜기에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공원으로 수리산, 철쭉공원과 연결돼 군포시의 생태녹지축을 이룬다. 지난해 7월 개장한 군포의 새로운 명소로 생태·역사·문화 스토리를 함께 담아냈다. 다랭이논, 맹꽁이습지원, 반디뜨락, 연꽃원 등 생태공원에 걸맞는 시설을 갖춰 볼거리가 쏠쏠하다.   새싹이 돋고 곳곳에 산철쭉이 피어 있는 풍경소리길, 갈치호수길을 걸으며 자연과 만나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도 좋다. 수리산과 접해있어 자연과 교감하며 걷기에 좋은 군포 수릿길은 ‘수리산 둘레길’, ‘수리산 임도길’, ‘자연마을 길’, ‘도심테마길’ 4개의 주제 14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축체 기간 철쭉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주요행사로 철쭉 꽃피는콘서트, 철쭉 설레임콘서트가 펼쳐지며 철쭉 만발콘서트, 철쭉 가족인형극, 수리수리 마술쇼 등의 상설테마공연도 열린다. 이외에도 철쭉과 관련된 향초, 머그컵, 꽃향나는 커피 만들기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철쭉동산앞 차 없는 거리에는 이색 먹거리가 풍성해 축제의 맛과 흥을 더 할 예정이다.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화물차 차고지 허위 등록알선 브로커 등 적발.

    논밭 등을 대형 화물차 차고지로 등록하고 운송사업 허가를 받은 화물차 차주와 이를 알선한 브로커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 교통과는 11일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브로커 김모(44)씨와 화물차 차주, 땅주인등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최근 3년간 박모(66)씨 등 화물차 차주 622명으로부터 1인당 17만∼20만여원, 모두 3억 7000만원을 받고 가짜 화물차 차고지 설치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경남 산청군·합천군·밀양시 등에 있는 산이나 논, 밭 등 주차가 불가능한 곳을 화물차 차고지로 등록해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경찰은 또 현장 확인을 하지 않고 차고지 설치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직무유기 등)로 김모(46)씨 등 경남 산청군·합천군·밀양시의 전·현직 공무원 8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부산과 경남의 25개 기초단체에서 허위로 차고지 등록이 이뤄진 사실을 추가로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화물차 차고지 허위 등록은 도심 화물차 불법 주차와 이에 따른 대형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성역 없는 수사로 ‘모래시계 검사’ 별칭…보궐선거로 재기 성공한 ‘정치 승부사’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인생은 ‘마이 웨이’ 그 자체다. 정의롭지 않은 일에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였고, 정치적 코너에 몰릴 때마다 오뚝이처럼 기사회생한 ‘정치 승부사’였다. 그 고집 센 ‘검사의 전설’이 마침내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 자리에 올랐다. 홍 후보는 지독한 가난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합천에서 초등학교, 대구에서 중·고교를 다녔다. 고려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로 진학했으나 사법시험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자 군에 입대했다. 전북 부안에서 14개월간 단기 병사로 복무한 뒤 일병으로 전역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홍 후보는 사법연수원을 거쳐 1984년 청주지검 검사시보로 부임했다. 홍 후보는 청주지법 판사였던 한국당 이주영 의원의 권고로 ‘홍판표’라는 이름을 ‘홍준표’로 개명했다. 홍 후보는 검사 부임 초기 연 200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수완을 보였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외조카를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는 등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3년에는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화국’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의원 등 권력의 실세들을 여럿 구속기소했다. 아울러 검찰과 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에게까지 칼날을 들이대는 등 성역 없는 수사로 유명세를 탔다. 이어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하는 ‘강우석 검사’의 모델로 알려지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도 생겼다. 홍 후보는 1995년 10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서울 송파갑에서 출마해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서울 동대문을에서 3선을 더했다. 그가 늘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 경선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패했다. 2007년 7월 전당대회에선 안상수 창원시장에게 석패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4위에 머물렀다. 홍 후보는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대표에 모두 올랐다. 그러나 2011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사태로 지도부가 붕괴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도 낙선했다. 그러나 홍 후보는 2012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경남지사 취임 후 진주의료원 폐업을 추진하고, 전교조와 대립각을 세우는 등 노조 세력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이어 국고의 무분별한 지출을 막겠다며 무상급식 사업 지원을 중단해 경남도 교육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홍 후보는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이름이 적혀 1억원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검찰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역대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되나

    검찰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역대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되나

    검찰이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역대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될지가 관심사다. 박 전 대통령에 앞서 구속 수감된 역대 대통령으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다. 1995년 10월 2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계동(65) 당시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 해 11월 1일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던 노씨는 재임 기간에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로부터 200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같은 해 11월 16일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같은 해인 1995년에 출범한 검찰 ‘12·12 사건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전두환·노태우를 앞세운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및 학살’의 주범인, 노씨와 전 전 대통령을 그 해 12월 21일에 기소했다. 두 사람에게는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앞서 검찰은 1995년 12월 2일 전씨에게 피의자 소환 조사를 받을 것을 통보했다. 하지만 전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종결된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 재개는 진상규명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므로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에 검찰은 전씨에 대해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음날인 1995년 12월 3일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전씨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노씨는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추징금 2688억원 납부를 명령받았다. 전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추징금 2205억원 납부를 명령받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같은 해 12월 김영삼 정부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에게 경호 및 경비 지원 혜택만을 제공한다. 재직 중 탄핵결정으로 퇴임한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이 3주 넘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후 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 前대통령 소환조사] 노태우 “죄송” 전두환 “협조않겠다” 故 노무현 “면목 없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앞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이 조사에 임하는 태도는 각자의 성격만큼이나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기업체 등으로부터 260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1995년 11월 1일 헌정 사상 처음 검찰에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별다른 저항 없이 조사에 응했다. 그는 그날 오전 9시 45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도착한 뒤 취재진의 거듭된 요청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조사실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조사가 시작되자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며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조사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6시간가량 이어졌다. 식사는 ‘연희동’ 측에서 준비해온 일식 도시락으로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후 2주 뒤인 15일 재소환돼 2차 조사를 받았고, 법원은 이틑날 오전 7시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서울구치소로 떠나기 전 대검 앞에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길 간절히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반란수괴 혐의로 1995년 12월 2일 검찰 조사가 예정됐지만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의 소환 및 어떤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한 뒤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향했다. 검찰은 곧바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이튿날 새벽 전 전 대통령을 강제로 압송한 뒤 안양교도소에 수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가 건강이 나빠져 경찰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오후 1시 20분 대검찰청에 도착해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초 검찰은 자택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대검찰청까지 360㎞나 떨어져 있어 헬기로 이동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고 리무진 버스를 타고 5시간 17분 걸려 조사를 받으러 왔다. 그는 청사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멈춰선 뒤 “면목 없는 일이죠”라는 말을 남긴 채 바로 조사실로 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담배 한 개비를 피운 뒤 조사에 임했고,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공수해온 1만 3000원짜리 특 곰탕으로 해결했다. 검찰은 뇌물공여자로 지목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조사를 요청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10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 3시간 남짓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하고 이튿날 새벽 2시 10분쯤 서명 날인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서동철 칼럼] ‘승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남았다

    [서동철 칼럼] ‘승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남았다

    쓰시마서 훔쳐온 부석사 불상 돌려줄 필요 없다는 1심 판결 논란 속 항소심 재판 개시 일본의 문화재 파괴·약탈을 낱낱이 드러내는 계기로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은 이집트 유물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BC 4세기에서 AD 4세기에 이르는 5만점 남짓한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루브르의 이집트 유물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질(質)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물의 다채로움에서는 아무래도 이집트의 카이로국립박물관에 못 미치겠지만 학술적 가치는 오히려 뛰어날 수도 있다. 루브르의 이집트 유물은 대부분 약탈했거나 약탈에 준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런데 루브르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스핑크스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루브르는 이집트 유물을 20개 전시관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집트 사람들이라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인류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로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울 수도 있다. 제국주의의 문화재 약탈은 경제적 수탈보다 악질적이다. 빼앗긴 부(富)는 다시 쌓을 수 있지만 한 번 훼손된 정신세계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루브르의 이집트 유물처럼 의미를 부여해 관람객들에게 내보이고 있다면 빼앗긴 나라 사람들도 그나마 덜 속상할지도 모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지난해 현재 16만 7968점에 이른다. 42.52%를 차지하는 7만 1422점은 일본에 있다. 이 숫자는 물론 허구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외국에 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외국에 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문화재’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10분의1이 아니라 10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깊숙이 숨어 존재를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박물관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안타까움은 덜할 것이다. 이것들이 모두 약탈품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문화재 약탈보다 훨씬 악질적인 범죄는 문화재 파괴다. 합천 해인사의 산내 암자인 홍제암의 비림(碑林)에는 열 십(十) 자로 쪼개져 네 동강 난 비석이 서 있다. 사명대사 유정을 기리는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다. 만화책에도 등장했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유정이라면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이끌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고승이다. 태평양전쟁도 막바지에 접어든 1943년 당시 합천경찰서의 일본인 서장 다케우라가 해머로 내리치고 조각을 땅속에 파묻었다. 지난주 찾았던 금산 칠백의총의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는 더욱 참혹했다. 1940년 금산경찰서장 이시카와 미치오는 아예 다이너마이트로 순의비를 산산조각 냈다. 일제가 왜 비석만 골라 파괴했는지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1943년 남원의 황산대첩비를 철거 대상으로 명시해 경무국장에게 보낸 한 장의 공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성계에게 왜구가 패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비문(碑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파괴한 우리 석조 문화재는 20개 남짓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200개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 어떤 문화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파괴됐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동안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현황 파악은 없었던 듯하다.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일제 조사를 벌여 백서라도 발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화재 약탈과 파괴에 얽힌 이야기를 길게 앞세운 것은 도둑이 일본에서 훔쳐온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상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왜구가 약탈한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한 서산 부석사는 1심 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런데 21일부터 항소심 재판이 열린다고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의 해결을 손쉽게 법원에 맡기는 것이 마땅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1심 판결 자체도 그리 흔쾌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에 온 국민이 승복해야 하듯 2심 판결도 누구나 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더불어 그들이 이 땅의 문화재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확인하는 노력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진실’이 제대로 알려졌을 때 일본도 “선의의 표시로 받은 선물”과 같은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 전직 대통령 검찰 수사와 그 결과는

    전직 대통령 검찰 수사와 그 결과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역대 4번째 전직 대통령 소환조사가 임박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면 그는 노태우·전두환·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서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순조롭게 검찰조사에 응한다면 소환 당일 청와대 경호처의 경호 아래 삼성동 사저에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이동한다. 검찰 청사 현관에 도착해 포토라인에 잠시 선 후 7층 형사 8부 영상녹화실(705호실)에서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0월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처음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은 곳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나 노승권 1차장 검사가 직접 조사 장소에 가 박 전 대통령과 인사나 면담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직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조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 된다. 19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4000억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2009년 4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에서 조사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검찰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고향인 합천에 내려가 끝까지 버티다가 구속돼 구치소에서 검찰의 ‘출장 조사’를 받았다.검찰 수사 이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檢, ‘피의자 박근혜’ 수사 시기·방식·수위 고심

    檢, ‘피의자 박근혜’ 수사 시기·방식·수위 고심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앞두고 숙고를 거듭하는 모양새다. 조사 시기와 방식, 수위 등에 대해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관계자는 13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아직 소환을 통보하지 않았다.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며 강제수사 여부에 대해선 “이론적으로야 가능하지만 정해진 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특수본은 지난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넘겨받은 수사기록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한편 박 전 대통령 조사 방식에 따른 예상 시나리오와 전직 대통령 수사 사례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발(發) 검찰 개혁 등을 고려해 발 빠른 강제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두 달 뒤 치러질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본격적인 수사는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수사 시기 등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김수남 검찰총장도 법조 원로 등의 의견을 청취하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를 안 할 수는 없는 게 지금 상황”이라면서도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강하게 수사해서 나름의 결론을 내놓으면 얼마나 승복하겠느냐. 수사를 하면 특정 후보에 악용됐다고, 안 하면 수사 의지가 없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 박 전 대통령 측과 소환 일정 조율에 들어갈 방침이다. 다만 소환 통보가 곧바로 조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반 피의자들도 2~3차례 소환에 응하지 않을 때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조사 절차에 들어간다. 상대가 전직 대통령이라면 수사 개시에 앞서 고려해야 할 변수는 더더욱 늘어난다. 일단 박 전 대통령이 검찰·특검 수사에서 그랬듯 이번 조사에도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 조만간 대선 일정이 확정돼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는 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체포영장 집행 등 강제수사를 강하게 막고 나설 수 있다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 과거 조사 사례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소환 조사 시기를 놓고 검찰과 수주일 동안 물밑 협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대통령 사례는 아니지만 2010년 검찰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두 차례 소환 통보가 무산되자 조사 없이 불구속 기소했다. 반면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검찰은 소환 통보를 받은 전 전 대통령이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자 체포조를 급파해 체포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박 전 대통령이 도주할 것도 아니고, 그간 수사에서 이미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다. 또 특검처럼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므로 여유를 가지고 수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지역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혐의의 법정형을 보면 긴급체포 사유에 해당한다. 검찰이 법과 원칙을 저버리고 정치권 눈치를 보면서 수사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도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도 법치주의지만, 피의자를 조사실에 앉히는 것도 법치주의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그 원칙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경남 김해에 파리장서비 건립, 2일 제막

    경남 김해에 파리장서비 건립, 2일 제막

    일제강점기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서한을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린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한 경남 김해 출신 유림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파리장서비가 건립됐다. 김해문화원은 2일 김해시 내동 연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지역인사와 유림 후손,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제막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한국 유림대표 곽종석·김복한 등 137명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편지인 장서(長書)를 쓰고, 김창숙 등 10명은 중국 상하이에서 편지를 3개 국어로 번역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평화회의장으로 보낸 독립운동을 말한다. 이 장문의 편지에는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담아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세계 곳곳에 알렸다. 당시 김해에서는 노상직, 류진옥, 안효진, 허평 선생 등이 참여했다. 파리장서비는 1972년 10월 서울 장충단공원에 처음 세워졌다. 이어 1977년 경남 거창, 1997년 대구, 2006년 충남 홍성, 2007년 경남 합천, 2014년 경북 봉화 등의 지역에도 건립됐다.김해에서는 김해문화원을 중심으로 지난해 6월 7일 파리장서 김해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장서비 건립을 추진했다. 기념비 건립에는 도비 1억원과 시비 5000만원이 들었다. 김해에 건립된 파리장서비는 가야를 상징하는 기마인물형토기와 철기 검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모습으로 높이 4.6m다. 비에는 파리장서비 건립 취지문과 파리장서 원문, 파리장서 서명명단 등을 새겼다. 이양재 김해문화원장은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지역 유림들의 애국정신의 기리는 파리장서운동기념비가 후손들에게 나라 사랑 마음을 심어주는 소중한 역사 교육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일제 수탈흔적 소나무 ‘산림자산’으로

    일제 수탈흔적 소나무 ‘산림자산’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이 전쟁 물자인 송탄유(松炭油)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한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소나무를 ‘산림문화유산’으로 등록, 관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국립산림과학원은 28일 산림청과 함께 송진 채취 흔적이 남아 있는 소나무 서식지를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하고 역사적 가치를 기록문화로 남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의 전국 분포도도 제작기로 했다. 일본은 송탄유를 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했는데 소나무에 ‘V’자형 상처를 내 나온 송진을 받아 끓여 만들었다. 송진 채취와 소나무 피해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상처다. 송진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전통지식으로 약재와 등불의 원료로 사용했지만 일제시대와 같이 대규모 수탈은 없었다. 60년 이상 시간이 흘려 상당수 나무가 고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산림과학원 연구팀과 국민 제보를 통해 전국 13개 지역의 서식지가 확인됐다. 이 중 충남 안면도 등 8개 지역 121그루의 피해목을 조사한 결과 생존목들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V자 흔적이 최대 1.2m 높이까지 남아 있어 경관적으로 좋지 못하다. 상처의 높이는 크게 변하지 않는데 지역적으로 남원과 제천 지역의 높이가 가장 높았다. 피해목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안면도와 합천 해인사 홍유동 계곡, 제천 박달재 등이었다. 이창재 산림과학원장은 “일제강점기 후반 지역별로 송탄유 공급을 할당하면서 대규모, 무작위로 수탈이 이뤄졌다”면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산림자원을 산림문화자산으로 발굴해 미래 세대에 남기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스포츠&스토리] 자신감 잡은 열여덟 영재, 이길 일만 남았다

    [스포츠&스토리] 자신감 잡은 열여덟 영재, 이길 일만 남았다

    “자신감 빼면 시체죠.”패기에 넘치는 ‘신세대 기사’ 설현준(18·충암고) 3단 얘기다. 나이 열넷에 프로기사 타이틀을 딴 그는 대국 전에 상대 선수의 기보를 읽지 않는다. 맞수의 기풍을 확인하고 대응책을 고민하는 게 보통이지 않느냐고 물으니 “딱 한 번 대국 당일 상대 선수 기보를 인터넷으로 찾아서 쭉 훑어본 적이 있는데 별로 도움을 받지 못했지 뭐예요. 그냥 내 바둑을 두는 게 좋겠다 생각했죠”라고 어기차게 대답한다. 영재입단으로 프로기사에 오른 10대들은 한국기원이 중국에 빼앗긴 세계 바둑 1위 명성을 되찾기 위해 내놓은 승부수다. 한국 바둑랭킹 2위에 올라 있는 신진서(17) 6단이 바로 2012년 제1회를 통해 등장한 ‘새별’이자 ‘샛별’이다. 2013년 제2회 영재입단대회에서 입단한 설현준 역시 한국 바둑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기사로 평가받는다. 지난 21일 제5기 합천군 초청 하찬석 국수배 영재바둑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그런 기대를 더욱 크게 하는 이정표처럼 느껴진다. 설현준이 바둑을 처음 배운 건 여섯 살 때였다. “누나가 바둑학원을 다녔는데 부모님이 누나 따라가서 같이 배우라고 해서 처음 바둑을 접했죠. 누나도 프로 진출을 고민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바둑을 접었고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프로기사를 목표로 본격적으로 바둑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기력이 아마 5단 정도였어요.” 스스로 평가하는 기풍을 묻자 “두텁게 둬서 전투하는 걸 좋아한다”고 표현했다. 가장 닮고 싶은 프로기사는 이세돌(34) 9단을 꼽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 장면을 꼽아 달라고 물었을 때 뭔가 짜릿한 승리의 순간을 얘기할 줄 알았다. 돌아온 대답은 다소 뜻밖에도 패배를 부른 ‘패착’이었다. 설현준은 지난 1월 2일 이민배 8강에서 미위팅(23·중국) 9단에게 한집반으로 패했다. 설현준은 “미위팅이 지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우변에서 꼼수로 찝었는데(흑 203수), 그만 이어버렸다. 그랬더니 대뜸 한 칸 뛰어서 패를 만들었다. 그걸로 5집가량 손해를 봤다”며 머리를 긁었다. 이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바둑기사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세상 일에는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모른 채 그저 하루 종일 바둑판만 들여다보는, 머리는 뛰어나지만 사회성은 떨어질 것 같다. 설현준을 보면 말 그대로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금방 느끼게 된다. 설현준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바둑기사 말고는 다른 장래희망을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바둑에 일생을 건 프로기사이지만 다양한 신체활동을 통해 체력과 균형감을 키우려 애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한국기원으로 출근해 바둑 공부를 하는 일과를 마치고 나면 친한 프로기사들과 함께 노래방도 들른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임창정이 부른 ‘내가 저지른 사랑’이다. 충암도장에서 바둑을 배울 당시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설현준은 이제는 개인 라켓까지 갖고 탁구를 즐긴다. “당시 사범님이 탁구 같은 운동을 하는 게 바둑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강제로 탁구를 배우게 했거든요.” 주말이면 동료 바둑기사들과 볼링장도 자주 찾는다. 바둑계에선 설현준이 영재바둑대회에서 입단 후 첫 타이틀을 획득한 게 세계적인 프로기사로 성장하는 데 디딤돌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3월 14일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한·중·일 영재바둑대결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중국의 쉬자양 3단, 일본의 히로세 유이치 초단과 대결한다. 또한 4월 경남 합천군에서 열리는 ‘영재 vs 정상’ 대결에서 국내 랭킹 1위 박정환(24) 9단과 기념 대국을 펼치는 기회도 얻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이정미 후임 지명 누가 될까…강형주·이종석 등 물망

    이정미 후임 지명 누가 될까…강형주·이종석 등 물망

    대법원이 3월 13일 퇴임하는 이정미(55·사법연수원 16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후임 지명절차를 조만간 진행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후임 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대법원 안팎에 따르면 차기 재판관으로 물망에 오르는 인물들은 주로 고위직 법관들로, 이 권한대행의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점에서 여성 법관의 이름도 심심찮게 들린다.가장 유력한 우보로 언급되는 인물은 강형주(58·연수원 13기)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다. 전남 함평 출신으로 광주제일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강 원장은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임관해 법원행정처 법무담당관·기획담당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형사합의부장·민사수석부장에 이어 법원행정처 차장 등 재판 업무와 사법행정의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쳤다. 이종석(56·15기) 수원지방법원장도 유력 후보 중 하나다.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 원장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형사합의부장·파산수석부장에 이어 서울고법 수석부장을 거쳤다. 법원행정처 통일사법정책연구반장으로 남북관계법 연구를 이끌기도 했으며, 지난해 대법관 제청 후보 4인에 포함됐다. 안철상(60·15기) 대전지방법원장 역시 중량감 있게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다. 안 원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대구고·건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행정법원 부장·수석부장, 대법원장 비서실장, 서울고법 부장, 법원도서관장을 역임했다.여성 후보군에서는 이은애(51·19기)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리가 꼽힌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 사레지오여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1990년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해 2002년 헌재 헌법연구관 파견 근무를 제외하곤 법정을 떠나지 않은 정통 법관이다. 지난해 대법관 제청 후보 4인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여미숙(51·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역시 이름이 오르내린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 성화여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했으며 1992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정책총괄심의관 등을 역임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선고 전 하야하면… “탄핵심판 중단” vs “계속 진행” 법조계 이견

    선고 전 하야하면… “탄핵심판 중단” vs “계속 진행” 법조계 이견

    “국회 탄핵소추 뒤 하야 불가능” “대통령은 국회법 적용 안 받아” 대선 레이스에 수사 차질 예상 靑 “검토한 바 없다” 거듭 부인박근혜 대통령 하야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23일 청와대가 거듭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했으나 박 대통령 자진 퇴진 여부는 다음달 초·중순으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 등에도 직접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당장 박 대통령이 하야하면 헌재의 탄핵심판이 어떻게 되는지부터가 관심 사항이다. 헌법재판소법(53조 2항)은 피청구인이 결정 선고 전에 ‘파면’되면 헌재는 심판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하야를 ‘파면’과 동일한 것으로 볼 것인지 여부다. 법조계 의견은 갈린다. “직에서 물러난 만큼 심판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과 “법적 절차에 따른 ‘파면’과 스스로 직에서 물러나는 ‘하야’는 성격이 달라 탄핵심판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부닥친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 헌법소원 심판 등에 비춰 헌재 재판관들이 관련 법령 해석을 포함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데 과거 헌법소원 등의 사례를 보면 이 판례 역시 사안에 따라 갈린다. 지난해 4월 헌재는 20대 총선 예비후보들이 ‘선거구 미획정 등으로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다’며 국회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각하 결정을 했다. 심판 도중 국회가 선거구를 획정해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반면 경찰이 2009년 5월 서울광장에 설치한 차벽이 시민 통행권을 침해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은 반대 사례다. 경찰이 차벽을 철수해 기본권 침해가 해소됐지만, 헌재는 2011년 6월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인용(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박 대통령의 하야가 가능한지도 쟁점이다. 국회법(134조 2항)은 탄핵소추 의결서가 헌재에 송달된 이후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서를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임명권자가 없으니 하야가 가능하다”는 의견과 “파면을 피하려는 꼼수를 막으려는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하야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박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검찰 수사도 관전 포인트다. 법적으론 즉각 수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선 정국이라는 변수로 인해 본격적인 수사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직 대통령 수사 자체가 대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설령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도 박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거부하고 삼성동 자택이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 칩거한다면 이후 상황 또한 예측하기 어렵다. 1995년 ‘골목 성명’을 낸 뒤 고향 경남 합천으로 내려간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때처럼 신병 확보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물리력으로 체포영장을 집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탄핵이 인용되거나 하야가 이뤄지면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겠지만, 현실적으로 수사가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97@gmail.com
  •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 330만㎡ 규모 산업단지 올해 착공

    경남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일원에 330만㎡ 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올해 시작된다. 합천군은 23일 경남개발공사와 BNK경남은행, 부산강서산업단지㈜ 등 4개 기관이 삼가면에 경남 서부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려고 이날 군 소회의실에서 특수목적법인(SPC)인 ‘경남 서부일반산업단지 주식회사’ 설립 주주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합천군과 경남개발공사, BNK경남은행이 각 1억원, 부산강서산업단지 7억원 등 모두 10억원의 자본금으로 경남 서부일반산업단지㈜를 설립하기로 했다. 오는 3월 창립총회와 대표이사 선임, 설립 등기 등을 마치고 상반기 안에 실시설계를 완료하고서 10월 산업단지계획 승인을 거쳐 연말 사업을 착공할 예정이다. 합천군은 국·도비 확보와 인허가 업무 등을 지원하고 경남개발공사는 보상업무, BNK경남은행은 금융관련 업무, 부산강서산업단지는 사업비 조달 및 실수요자 기업유치 등의 업무를 맡아 한다. 서부일반산업단지는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일원에 330만㎡ 규모로 조성된다. 1단계로 1233억원을 들여 99만 2000㎥를 2020년 함양~울산 고속도로 개통에 맞추어 완공할 예정이다. 합천군을 비롯한 SPC참여 기관은 서부일반산업단지 입지가 남부내륙철도, 울산~함양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광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등과 가까운 교통 중심지로 여건이 좋아 희주 희망 기업이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남도와 합천군은 산업단지가 조성되면 한해 직접생산효과 4103억원, 직접소득효과 760억원, 직접 고용창출효과 3264명 등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하창환 합천군수는 “경남 서부일반산업단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부경남지역 발전을 앞당기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규일 경남도 서부부지사는 “서부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 금속가공, 기계장비, 제조업 등 친환경제품 생산기업은 물론, 김해 신공항 건설과 연계해 항공화물을 이용하는 첨단산업 등을 적극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 거처가 서울? 아니면 대구?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 거처가 서울? 아니면 대구?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 이후 어디에서 거처하게 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쳐 1년 뒤인 내년 2월에 퇴임하거나 한창 진행중인 탄핵심판 절차에 따라 또는 자의로 임기 도중 사퇴하거나 그의 거처가 어디가 될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을 3월 초에 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만약에 탄핵이 인용된다면 청와대의 이삿짐 차량이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지도 당장의 관심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사짐을 실은 트럭이 청와대 입성 이전 거처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갈 확률이 다분하다. 정상적인 퇴임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30년간 살았던 삼성동 사저로 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경비가 삼엄하고 접근로가 곳곳에 차단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바로 주위에 악몽의 최순실 타운이 있는 점도 심리적으로 불편하다. 게다가 그의 퇴임이 불명예스럽고 국민의 지탄을 받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에 머무를 것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2013년 2월 25일 청와대로 입성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돗개 두마리를 선물했던 삼성동 주민들이 이번에는 환대하기는커녕 차가운 시선을 던질 가능성도 커다.박근혜 대통령이 거처를 정하는데는 검찰 수사도 변수로 떠오른다. 박영수 특검팀이 28일까지 대면조사를 못하면 기소중지 처분을 내려 다음 바통을 이어받을 검찰에 ‘확실히’ 수사를 넘기겠다는 의지를 23일 보였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검찰 수사를 앞두고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간데서 보듯 박근혜 대통령도 ‘정치적 고향’인 대구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998년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 달성군으로 주소를 옮겼다. 이와 관련해 “최근 소재가 불분명했던 안봉근(51)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과거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거나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정치인들과 만났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한 기사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 측이 검찰과 특검 수사 및 헌재 탄핵결정과정에서 보인 행보로 미뤄 짐작하면 대구에서 검찰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고 ‘농성’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검찰이 한창 수사할 때쯤이면 ‘벚꽃 대선’의 열기도 뜨거울 듯하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유승민 “요새 별명이 유지진입니다” 말에 빵 터진 손석희

    유승민 “요새 별명이 유지진입니다” 말에 빵 터진 손석희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인 유승민 의원이 16일 JTBC ‘뉴스룸’의 인터뷰에 출연해 “제가 별명이 요새 유지진입니다”라고 말해 손석희 앵커의 웃음을 자아냈다. 손 앵커는 이날 유 의원에게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과 스스로 생각하는 대선 후보서의 경쟁력, 앞으로의 국정 전망에 대한 생각을 묻기 전에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손 앵커는 “(유 의원의 출연에) 스태프들이 모두 긴장을 합니다. 왜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유 의원은 웃으면서 “지진 때문에”라고 답했다. ‘지진’과 얽힌 두 사람의 사연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9월 12일 손 앵커는 뉴스룸에 출연 예정인 유 의원(당시 새누리당)에게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도 5.8 규모의 지진이 경주에서 발생하자 뉴스룸은 특보 체제로 전환됐고, 결국 유 의원과의 인터뷰는 무산됐다. 이후 일주일 뒤인 지난해 9월 19일 뉴스룸은 경주에서 진도 4.5 규모의 여진이 발생하자 또 특보 방송 체제로 바꿔 지진 관련 소식을 전했다. 이날 유 의원과의 인터뷰는 성사된 상태였지만 원래 다루고자 했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는 다뤄보지도 못했다. 대신 지진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활성 단층 연구에 국가 예산 책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유 의원의 답변을 듣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당시 유 의원은 지진 발생 지역 인근의 원전(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며 “지난 6월(당시 기준·지난해 6월) 원안위(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신설) 허가를 해 준 신고리 5호, 6호와 앞으로 계획 중인 6기 합쳐서 8기 정도는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손 앵커는 머쓱해하면서 “이런 예는 없었습니다만, 나중에 다시 한 번 모셔야 되는 상황이···”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재출연 의사를 우회적으로 물었다. 이에 유 의원은 “다음 기회에 얘기를 하도록 하죠”라고 답했다. 그런 뒤에 약 5개월의 시간이 흘러 유 의원과 손 앵커가 ‘뉴스룸’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유 의원은 “오늘도 살짝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또 못 하나 싶어서 그랬는데 다행입니다”라면서 “오늘 또 합천에서 2.3 규모로, 약하지만 지진이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손 앵커는 “걱정스럽기는 합니다. 두 번째 나오셨을 때는 지진 전문가처럼 저하고 인터뷰를 하셨는데”라고 말했다. 이에 유 의원은 “그렇죠. 제가 별명이 요새 유지진입니다”라고 말해 손 앵커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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