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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5 서울판화 미술제」 예술의 전당서 새달5일까지 열려

    ◎한국 고 근대판화 발전사 한눈에/고려 불화판화서 60년대 작품까지 3백여점 출품/외국 8개공방도 참가… 회화적 관점서 새롭게 조망 우리나라 판화미술의 발전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한국 고·근대 판화전」이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속에 열리고 있다. 한국판화미술진흥회 주최 「95 서울판화미술제」(4월 5일까지·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특별전 성격을 띤 이 전시회는 고려시대부터 1960년까지의 판화작품 3백10점을 전시,고·근대 판화를 회화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해 본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고·근대판화는 서지학이나 출판·인쇄사적 측면에서 다루어졌을 뿐 판화만의 전시는 거의 없었다. 우리의 전통판화를 계승·발전시킨다는 목적 아래 기획된 이번 전시는 우리의 전통판화를 고려불화판화,조선시대 유교판화,조선시대 말엽의 생활판화 그리고 근대판화로 구성한다. 불교판화는 모두 1백30점 정도가 전시된다.이중에는 국보급인 금강반야바라밀경(1311년·개인소장),보물 877호로 지정된 금강반야바라밀경(1357년·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이 포함돼 있으며 국보 206호 화엄경변상도(개인소장) 80점이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화엄경변상도는 대방광불화엄경(보통 화엄경으로 지칭)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화엄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3개본(40권본,60권본,80권본)이 모두 전해지고 있으며 변상도 판목의 경우 80권본만이 완전하게 보존돼 있다. 유교관계 판화는 물고기와 이무기가 용으로 변하는 형상을 담고 있는 「기원도」(14 00년대) 등 50여점이 전시된다.조선 개국과 더불어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상이 변해가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전개하고 있다. 생활관계 판화로는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포함해 조선후기 목판화 1백여점이 전시된다.이밖에 30점의 근대판화에는 19 05년 해강 김규진이 자신의 작품을 석판화로 제작한 것,일제시대 천재화가로 알려졌던 이인성씨의 목판화 작품도 처음 공개된다. 한편 서울판화미술제 주최측은젊은 판화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신예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40세 이하 판화작가 54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선정작가전」도 특별전으로 마련했다.「선정작가전」에는 강준 김미향 문경원 서소영 오경영 이시은 정환선 하의수 등이 출품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판화전문 아트페어로 관심을 끌고 있는 이번 서울판화미술제에는 국내 51개 업체(화랑 36개,공방 8개,관련업체 7개)와 8개 외국 공방및 출판업체 등 모두 59개 업체가 참가한다.출품작가는 미술제 선정작가 54명을 포함해 총 3백44명이며 1천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된다. 또 판화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마련된 미술제답게 판화전시 외에 판화제작및 한지제작 실연,판화 상품전,세미나(4월3일·예술의 전당 서예관)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 출마 꿈꾸는 현직시도지사 거취놓고 “갈등”

    ◎조 대구시장 등 5명 곧 사퇴 사실/일부선 공천 확신못해 “눈치보기” 민선 시·도지사를 꿈꾸는 현직 시·도지사들의 마음이 급하다.선거에 나가려면 오는 29일까지는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민자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질 생각이지만 아직 거취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민자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나,민자당 쪽으로부터 확실한 보장이 아직 없는 탓이다.현단계에서 출마를 위해 명예 퇴직을 신청한 사람은 염홍철 대전시장 뿐이다.대부분 열심히 상황을 저울질하면서 남은 며칠동안 거취를 결정하려는 자세다. 15개 시·도지사 가운데 출마대상에서 일단 제외되는 인사들은 4명이다.이영래 인천시장은 강원도 강릉출신으로 연고가 없어 출마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이해재 경기·허태열 충북·심우영 경북지사 등은 민자당쪽 후보가 많아 원래 임기인 6월말까지 그대로 갈 것으로 여겨진다. 민자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대상은 나머지 11명이다.최병렬 서울·김기재 부산·조해령 대구·염홍철 대전·강운태광주시장과 이상용 강원·박중배 충남·조남조 전북·조규하 전남·김혁규 경남·신구범 제주지사 등이다.이 가운데 출마를 위해 곧 사퇴할 것이 확실한 인사는 조해령 대구·염홍철 대전시장과 이상용 강원·박중배충남·신구범 제주지사 등 5명이다. 최병렬 서울시장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계속 버티고 있다.그러나 민자당쪽은 1백% 물을 건너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출마의사를 밝힌 이명박 의원을 내세우거나 제3의 인물을 영입하는 방안이 탐탁지 않으면 아직도 최시장을 마지막 「카드」로 쓸 수 있다는 계산이다.결국 최시장의 선택은 민자당이 어느 정도의 확실한 담보를 제공하느냐 하는 의지의 강도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기재 부산시장은 한때 청와대쪽에서 강력히 밀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경선후보에 나서려고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었다.그러나 청와대쪽에서도 문정수의원에게 부산시장 후보를 양보할 뜻을 비춘 것으로 얘기가 나돌면서 다소 주춤해진 상황이다.강운태 광주시장은 민자당에서 경선없이 바로 후보로 내정해주겠다는뜻을 전달했으나 본인이 고사하고 있어 유동적이다.강시장은 이의근청와대행정수석이 경북지사 후보를 위해 사퇴하게 된다면 그 후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이다. 조남조 전북지사와 조규하 전남지사는 당선가능성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조 전북지사는 민자당에서 떠밀어 준다면 나갈 수도 있다는 정도이고,조 전남지사는 좀 더 적극적이지만 확실한 거취를 아직 표명하지 않고 있다. 김혁규 경남지사는 김봉조의원 때문에 진로를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청와대쪽과 민자당쪽은 김의원을 경남지사에 내세우고,김 지사는 경남 합천에 지역구 국회의원을 맡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김 의원이 바라지 않고 있다.김 지사가 자리를 유지할 분위기도 내비치고 있으나 김의원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으면 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이 석공사장 등 6명/재산내역 어제 공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박영식)는 20일 이상윤 대한석탄공사사장등 신규 재산공개대상자 6명의 재산을 관보를 통해 공개했다. 이사장은 경남 합천군 삼가면 하판리와 충남 당진군 고대면 장항리의 임야 3필지,부산 동래구 연산동의 대지등을 포함,모두 23억5천4백8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장재용 주미공사는 경북 상주군 외서면 대전리의 논과 충북 음성군 대소면 소속리·수태리의 밭 및 임야등 11억4천8백20만9천원을 신고했다. 다른 신규 대상자들의 재산공개내역은 다음과 같다. ▲번순렬 비상기획위원회기획통제실장=1억2천1백만원 ▲김정원 외무부본부대사=4억1천1백20만원 ▲이영래 농림수산부기획관리실장=9억4천3백59만3천원 ▲김상남 노동부노사정책실장=2억6천7백78만4천원
  • 신임 법원장 5명 프로필

    ◎김성일 서울고등법원장/재판업무 한글전용화 첫 시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신망을 받고 있는 선비형 법관.91년 법원행정처 차장 재직시 법관인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법관인사제도개선방안을 마련했다.재판업무개선을 위해 한글전용화를 꾀하는 등 판결문간이화를 처음으로 시도했다.취미는 등산.남문자(53)여사와 사이에 딸하나를 두고 있다. ▲서울(60세) ▲경동고·서울법대 ▲고시 14회 ▲광주·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북부지원장 ▲제주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전고등법원장 ◎한대현 대전고등법원장/이회창 전총리 처남… 법률 해박 사건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력과 해박한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균형감각이 돋보인다는 인물평.고 한승수대법원판사의 장남이면서 이회창전총리의 처남인 전형적 법조가족.취미는 주말산행과 음악감상.서명희(50)여사와 사이에 2남. ▲경남 산청(54) ▲경기고·서울법대 ▲고시 15회 ▲광주·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동부지원장 ▲인천지법원장 ▲서울형사지법원장 ◎안상돈 부산고법원장/부산·대구서만 지낸 「향토법관」 대부분의 법관생활을 대구와 부산지역에서 보낸 향토법관.훤칠한 외모에 독특한 화술로 좌중을 이끌어가는 보스형기질의 소유자이면서도 재판업무에 관한 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자세.취미는 등산.하홍자(52)여사와 사이에 1남2녀. ▲경남 합천(55) ▲경북고·서울법대 ▲고시 16회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부산고법 부장판사 ▲부산동부지원장 ▲부산지법원장 ◎지홍원 광주고등법원장/민사소송 이론·실무 밝은 「생불」 준수한 용모와 깨끗한 매너로 호감을 준다.재판업무에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내는 일이 없어 「생불」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민사소송법이론과 실무에 밝다.그림솜씨는 고교재학시절 국전에 입상할 정도로 수준급이다.취미는 등산과 테니스.김청자(김청자·53)여사와 사이에 2남3녀. ▲경북 청도(56) ▲경북고·서울법대 ▲고시 14회 ▲서울민·형사지법 부장판사 ▲대구·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북부지원장 ▲창원지법원장 ▲가정법원장 ◎정지형 서울지방법원장/민·형사법원 통합때 능력 발휘 강직한 성품과 치밀한 재판기록검토로 후배법관 사이에 이름이 높다.특히 서울민·형사지방법원의 통합에 대비,탁월한 행정능력을 발휘한 점이 발탁의 배경.서울민사지법 수석부장 재직시 법원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던 회사정리절차기준을 통일하는 데 기여했다.윤순자(52)여사와 사이에 2남1녀. ▲대전(56) ▲경기고·서울법대 ▲고시 16회 ▲법원행정처 송무·법정국장 ▲대구·서울고법 부장판사 ▲창원지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서울민사지법원장
  • “목타는 영남”/11년만에 바닥드러낸 칠서 취수장

    ◎낙동강 수계/“질·양 모두 빨간불”/물금·칠서 수질악화… 기준 5∼6배 초과/안동 등 4개댐 방류량 초당 30만t 줄어 경남 함안군 칠서취수장.마산과 창원일대에 식수등 용수를 공급하는 곳이다. 9일 이 취수장 바닥에 있는 바위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지난 84년 취수장이 문을 연 뒤 처음있는 일이다. 예년 같은 기간 2.9m를 유지하던 수위가 절반이하인 1.4m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북·경남·부산등 낙동강 일대에 몰아닥치고 있는 물 비상사태의 한 단면이다. 낙동강수계의 물사정을 보면 수질은 이미 한계상황에 이르렀고 농업·공업용수의 수량도 위험수위에 한발짝씩 다가서고 있다.수질과 수량면에서 모두 적신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수질을 살펴보자. 고령의 암모니아성 질소 오염도는 지난달 23일 6.86ppm.지난해 1월 낙동강 연쇄취수 중단사태를 빚었을 때의 1.5∼3ppm에 비해 2∼4배를 넘는 것이다. 하류지역의 물금과 칠서는 지난 5일 현재 각각 2.88과 2.9ppm을 기록하고 있다.두달전인 지난해 12월 5일 각각 0.32,0.55ppm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4배에서 9배이상 높아진 것이며 음용수 기준치 0.5ppm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원수의 수질이 나빠지면 정수과정에서 침전시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리고 약품을 많이 탈 수밖에 없다.낙동강 수계주민들이 수돗물을 외면하는 이유다.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도 물금이 3급수인 6㎛,칠서는 5㎛.지난해 1월의 2.6,2.5㎛에 비해 2배이상 높아졌다. 낙동강물은 식수등 생활용수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농업·공업용수로도 이용된다. 이 일대에서 필요한 물은 낙동강수계의 4개 다목적댐에서 가둬 놓은 물로 안정적으로 공급된다. 안동·임하·합천·남강등 4개 다목적댐에서는 현재 초당 48만5천t을 방류하고 있다.지난해 같은 기간 78만t의 물을 흘러보낸 것과 비교하면 30만t이 적은 양이다.때문에 수질이 악화되고 농업·공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고있다. 이들 댐의 현재 수위는 안동 1백32.3,임하 1백39.4,합천 1백43.54,남강 34.71m로 발전이 가능한 수위에서 모두 2∼3m를 간신히 웃돌고 있을 뿐이다.특히 안동·임하·합천등 3개댐의 저수율은 22.3에서 24.5%로 예년 평균저수율 35.9∼47.4%에 비해 절반가량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댐에는 또 초당 14.4t의 물이 유입되고 있어 수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조만간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게 되면 농업용수의 수요는 더욱 늘어난다. 그러나 장기간의 가뭄으로 저수지의 물은 바닥이 드러났고 지하수도 식수개발로 이곳 저곳에서 고갈상태를 빚고 있다. 경남도의 경우 모판과 모이양에 모두 2억1천여만t의 물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현재 확보된 양은 1억1천여만t으로 1억여t이 부족하다. 부산지방기상청은 이 난국을 해결하려면 당장 4백㎜가량의 비가 와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예년 평균강수량 20∼50㎜를 8∼20배 넘는 양이다. 9일 경남 창원지방은 해가 쨍쨍 비쳤으나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다.
  • 가야 기마인물상 토기(한국인의 얼굴:16)

    ◎전쟁터로 떠나는 가야군 우두머리/투구·갑옷 차려입고 방패까지 갖춰/말에도 비늘갑옷… 용맹스러움 표현 우리는 가야 여러국가를 삼국시대라는 역사형식의 틀에 얽매여 오랫동안 작은 세력집단으로 여겨왔다.이는 「삼국사기」가 고대사를 삼국 위주로 기술하면서 단지 가야를 신라의 정복전쟁 과정에 나타난 피동적 존재로 떠올린데 그 까닭이 있다. 그러나 가야는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신라·백제와 거의 같은 시기에 국가체제를 갖춘 가야는 6세기께까지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다.최근 들어 가야지역 옛 땅에서 활발히 이루어진 고고학 발굴조사 성과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그래서 기존의 문헌사료들이 빠뜨린 가야사의 공백을 어느 정도 문화적으로 복원할수 있게 되었다. 경남 김해군 대동면 덕산리 출토품으로 전해지는 기마인물상토기도 이러한 가야의 유물이다.가야시대 유물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 인물상은 토기에 붙은 장식용 흙인형.토기 생김새는 굽다리(각대),갑옷을 입힌 말,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인물을 차례로 포개어 놓은모양이다.인물상 뒤에다는 짐승의 뿔 한 쌍을 거꾸로 세운듯 배치했다.그러니까 뿔잔(각배)형식도 가미한 토기인 것이다. 말을 탄 인물은 갑옷과 투구(갑주)로 몸을 감쌌다.목가리개(경갑)까지 달린 갑옷을 입었으니,이만저만한 무장을 한 것이 아니다.거기다 방패까지 갖추었다.창끝이나 화살촉 하나가 비집고 들어올 틈새가 안보인다.말도 주인처럼 몸뚱이를 온통 비늘 갑옷으로 가렸다.말갑옷(마갑)을 입히고 머리가리개(마면주)는 씌우지 않았다.말머리를 정교하게 조각한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가리개를 생략했을 것이다. 지금 막 기마전을 치르러 전장으로 나가는 인물상은 한 가야연맹의 우두머리라는 인상을 안겨준다.얼굴을 방패 뒤로 살짝 감추었지만 눈은 전장을 바라보고 있다.아마 쪽으로 차츰 치켜 올라간 눈썹에서는 용맹이 우러나온다.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숱한 전쟁을 치렀을 가야의 우두머리(수장).그가 탄 말은 자그마한 과하마가 아니고 호마인듯 키가 훤칠하다. 이와 같은 기마인물상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여러 가야유적에서 출토되었다.이 기마인물상 토기가 나온 곳으로 전해지는 바로 이웃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목가리개가 달린 갑옷과 투구가 그것이다.이와 비슷한 갑옷은 고령군 지산동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이밖에 함양군 상백리,부산 연상동·복천동,김해 대성동,합천군 성산리 고분 등 갑옷이 출토된 유적은 많다. 그리고 말머리가리개를 포함한 말갑옷 역시 가야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 국내에서 말갑옷이 나온 13군데의 유적 모두가 옛 가야의 땅인 것이다.이들 갑옷과 투구,말갑옷,또 다른 여러가지 철제무기류의 출토는 가야에 기병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농경과 철기가 일찍 보급된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가야는 AD2세기쯤 적 1만병력과 대항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을 것으로 본 학자도 있다. 어쨌든 기마인물상토기에는 아직 출토되지 않은 방패가 보여 가야시대 무기연구나 기병전술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 수리 선박 불… 19명 사망/부산 한진중 조선소

    ◎컨테이너선 한진 부산호/기관실서 용접하다 불티 인화 【부산=김세기·김정한·이기철 기자】 조선소에서 수리작업중이던 컨테이너선에서 불이 나 인부 19명이 한꺼번에 불에 타거나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지고 7명이 부상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7일 상오 10시30분쯤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5가 (주)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4번 독크에서 수리중이던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 운반선 한진부산호(1만7천t)기관실에서 용접작업중 불이 나 외주업체 인부 정기주씨(28·경남 합천군 누하리 356)등 19명이 숨지고 김진학씨(41)등 7명이 중화상을 입어 인근 해동병원에 입원,치료중이다. 불이 나자 소방차 24대와 소방정등 이 긴급출동했으나 기름찌꺼기·배선 등 인화성이 강한 물질이 많은데다 유독가스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어 하오 2시40분쯤 불길을 잡았다. 경찰은 이날 불이 기관실안 파이프를 교체하기 위해 배관절단 작업을 하던 평화제관·세웅선박 등 5개 외주업체 직원 63명이 용접작업을 하던중 불티가 기름찌꺼기에 옮겨붙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중이다. 사고가 난 한진부산호는 길이 2백.6m,폭 23.8m,높이 22·6m 규모의 컨테이너 운반선으로 지난 92년 한진해운이 건조했다. 사망자명단은 다음과 같다. ▲정기주 ▲임원태분(52·경남 마산시 석전동 258) ▲박거창(36·부산시 명장2동 321) ▲김문호(36·〃 영도구 봉래동 2가 1845) ▲정우석(57·〃 영도구 신선 3가 101) ▲이만철(49·〃 영도구 청학1동 397) ▲최임주(35·〃 영도구 청학1동 13) ▲박태용(45·〃 영도구 청학1동 389) ▲최조호(56·〃 영도구 연산2동 827) ▲문범석(33·〃 영도구 봉래동 삼신아파트) ▲김병엽(18·〃 영도구 청학동 13)▲김진용(27·〃 영도구 동삼2동 888)▲천종환(20·〃 남구 망미1동 802) ▲고영경(27·〃 영도구 동삼1동 331) ▲고성민 ▲김점용 ▲김영표 ▲오영철 ▲정종열.
  • 낙동강 4개댐 발전중단 위기/저수율 24%로 떨어져

    ◎비 안오면 3월말이 고비 【창원=강원식 기자】 낙동강 수계로 방류되는 4대 다목적댐의 발전용수가 계속되는 겨울가뭄으로 한계치에 도달,오는 3월말부터 사실상 발전 중단사태를 빚을 전망이다. 5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현재 낙동강으로 방류하는 안동·합천·임하·남강댐등 4대댐의 평균 저수율이 24%에 불과,지난달 평균 저수율인 28%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있다. 4대댐 가운데 비교적 수량이 많은 남강댐도 현재 댐수위가 34m로 댐 최저 취수수위인 31m를 불과 3m가량 남겨두고 있고 합천댐의 저수율도 24%로 지난 85년이후 최저 수준이며 안동·임하댐의 평균 저수율도 23%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수자원공사측은 오는 3월중순까지 현재의 수량으로 발전용수를 공급하고 발전가능 한계수위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3월말부터는 평소에는 보낼 수 없는 물인 댐수문 아래의 물을 비상용수관로로 공급할 계획이다.
  • 다목적댐 지하수로 연결 추진/건교부/3개권역 나눠 대형파이프 매설

    전국의 다목적댐을 지하수로로 연결하는 광역대수로망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정부는 지금처럼 지역별로 편중된 수자원관리체계로는 이상가뭄에 대처할 방안이 없다고 보고 수자원의 장기기본계획을 전면수정하기로 했다. 이의 일환으로 기존의 댐건설계획 이외에 전국의 댐을 지하로 연결,광역수로망을 건설한 뒤 2단계로 지역별 수로망을 건설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건설교통부는 6일 가뭄이 영·호남에 이어 중부지방으로 확대되자 지역별로 편중된 용수공급체계를 전국으로 묶는 지하대수로건설용역을 국토개발연구원에 맡겼다고 밝혔다. 총2조∼3조원을 들여 소양강댐∼충주댐∼대청댐∼섬진강댐∼주암댐을 잇는 중·서부권수로망과 충주댐∼안동댐∼임하댐∼합천댐∼남강댐을 연계하는 동부수로망을 남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이어 대청∼합천댐,섬진강∼남강댐 등 동서수로망을 건설,전국 9개 다목적댐을 일괄관리하는 수자원종합관리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1단계로 지름 2.5m의 상자형 파이프를 지하로 매설한 뒤 2단계로 거점 다목적댐과 용수전문댐을 잇는 지역수로망을 건설한다. 건교부의 관계자는 『영·호남에 새로 다목적댐을 건설하는 것은 유수량이나 지리적 여건상 불가능하지만,기존의 다목적댐과 수로로 연결하면 댐건설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수로건설은 2∼3년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포항의 용수중 일부는 임하댐에서 지하수로로 끌어다 쓰고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로키산맥에서 샌프란시스코 등까지 9백60㎞의 수로를 건설,용수 및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한편 건교부는 2011년까지 전남 강진·무안·신안군과 경북 영천군 등 10여곳에 용수전문댐을 추가로 건설할 방침이다.
  • 통합대상 37곳·분구 26곳/여권의 「선거구 조정안」내용

    ◎총10곳 늘어나 전국구의원 축소 불가피/인구10만미만 많은 강원은 5개구 줄어 여권이 내년의 15대 국회의원 선거구에 대한 기준을 마련함에 따라 선거구 조정작업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여야가 곧 협상에 착수,오는 4월말까지 선거구를 최종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무장관실이 내놓은 기준은 위헌소지를 없애기 위해 지역간 인구편차를 3.5대 1이하로 낮춘 것이다.인구 10만명을 하한선으로 하되 분구기준을 대도시는 35만명,중소도시 및 농촌지역은 20만명으로 정했다. 이에 따르면 현행 선거구는 2백37곳에서 10곳이 늘어난 2백47곳이 된다.여야는 2백99명인 지금의 국회의원 정수를 유지할 방침이어서 전국구의원이 10명 줄게 된다.또 인구가 10만명이 안돼 통합대상이 되는 곳은 모두 37곳에 이른다.이 가운데 16곳은 이웃지역과 합쳐지더라도 20만명을 넘지 못해 분구가 되지 않는다.반면 인구가 기준보다 많거나 새로운 구의 신설,시·군통합 등으로 분구대상이 되는 곳은 26곳이다. 지역별로 보면 현행 44개 지역구인 서울은 광진구(성동구) 북구(도봉구) 구로구의 신설 및 분구 등으로 3개 지역구가 늘어나게 됐다.또 갑·을로 나뉘어진 송파구는 68만9천명으로 선거구가 하나 더 늘어날 전망이다. 부산은 중구와 강서구가 기준에 미달돼 통합대상이 되나 연제구 수영구 사상구의 신설과 사하구의 인구과밀로 선거구가 하나씩 더 생겨 16곳에서 18곳으로 증가하게 됐다.11곳인 대구는 북구의 분구로 12곳으로,7곳인 인천은 문학구와 계양구의 신설로 9곳이 된다.광주와 대전은 인구가 35만명을 넘어선 북구와 서구가 분구하게 돼 각각 7곳과 6곳으로 늘어난다. 경기도에서는 분당 고양 안산·옹진이 마찬가지로 분구돼 3개 늘어난 34곳이 된다.강원도에서는 동해 태백 양양 홍천 양구·인제 정선 횡성 철원·화천등 모두 8곳이 인구가 10만명을 넘지 못해 이웃 선거구와 통합대상이다.이에 따라 동해는 삼척과,태백은 정선과,홍천은 횡성과,양구·인제는 철원·화천과 합쳐질 수 밖에 없으며 양양은 속초에 통합돼 모두 5곳이나 줄어든 9개 선거구가 남게 됐다. 충북은 괴산과 제천·단양이 통합대상이지만 각각 진천·음성과 충주와 합쳐지면 인구가 20만명을 넘게되므로 분구가 가능,전체적인 지역구 숫자는 지금대로 9곳이 유지된다.충남은 금산 연기 서천이 인구가 모두 10만명이 안되는데 금산은 논산과,서천은 보령과,연기는 공주와 합치면 분구가 된다.또 서산 천안이 인구가 20만명이 넘어 지역구는 14개에서 16곳으로 늘어난다. 전북은 완주 임실·순창 고창 무안 옥구가 이웃지역과 통합되어야 하는데 이 가운데 옥구는 익산과 합치더라도 선거구는 나눌수가 없다.여기서 1개 선거구가 줄지만 전주 완산과 군산 이리가 인구 20만명을 넘어 분구돼 전체적으로는 2곳이 늘어난 16곳이 된다.전남은 곡성·구례 장흥 신안 무안 보성 화순 영암 등 7곳이 10만명이 되지 않는다.이 가운데 보성은 화순과 합치고 영암은 나주에 통합되어도 선거구가 늘지 않는다.그러나 인구 20만명이 넘는 순천은 분구가 될 수 있어 지금의 19개 선거구에서 1곳이 줄게 됐다. 21곳인 경북은 군위 울릉 영양·봉화 울진 예천 의성이 인구가 10만명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영양·봉화와 울진예천 의성은 통합돼도 분구가 불가능해 18개로 줄어들게 된다.경남은 고성 창녕 거창 합천이 대상이나 거창과 합천은 함양·산청및 의령·함안과 합쳐도 분구되지 못한다.대신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구가 늘어난 울산 진주와 양산은 분구돼 전체적인 숫자는 23개에서 변함이 없다.제주는 제주시가 24만3천명으로 분구되면 모두 4곳으로 늘어난다.
  • 5단계 절수대책 강력 추진/정부 가뭄대책회의

    ◎식수감량·조업중단 등 대응/영호남에 관용 1천4백개 개발 정부는 20일 계속되는 겨울가뭄으로 날로 악화되고 있는 영호남 일부지역의 식수난및 상수원오염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5월말까지 정수장처리시설을 특별점검하고 공장폐수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관련공무에게 지역별 책임제를 실시,해당지역의 식수공급및 상수원을 책임지고 관리토록 했다. 정부는 또 지하수원으로 관정의 추가개발과 더불어 지역별로 식수의 감량공급에서 운반급수에 이르는 5단계절수대책을 마련,시행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김중위 환경부장관 주재로 지방환경청장·수자원공사·시도보사환경국장등 관련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95갈수기물관리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장단기물공급대책을 확정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환경부본부와 식수난지역의 지방자치단체별로 「물관리비상대책본부」를 설치,앞으로 지역사정에 따라 ▲식수의 10% 감량공급 ▲30% 감량공급 ▲50% 감량공급 ▲공장조업중단 ▲인근 시·도에서의 운반수급등의 단계별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30% 감량공급때는 시간제급수와 더불어 수영장·세차장등의 영업시간을 단축토록 하고 50% 감량공급때는 격일제식수공급,수영장·세차장 임시휴업,농업·공업용수원의 상수원전환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상황이 더 악화되면 최소한의 생활용수만 공급하고 공장조업중단은 물론 군차량및 소방차를 동원,인근시·도에서 물을 공급받도록 했다. 정부는 또 지하수개발을 위해 3월까 영호남지역에 1천4백여개의 추가관정을 개발하기 위한 긴급예산을 편성하는 한편 설날연휴를 전후로 상수원부근의 공장에 대한 폐속방류단속을 강화한다. 이와 함께 국민과 기업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절수운동과 더불어 상수원의 부족으로 수질이 크게 나빠질 것에 대비,암모니아성 질소등의 정수처리를 강화키로 했다. 정부는 장기대책으로 97년까지 합천댐하류의 황경유역에 광역상수원을 개발,마산·부산지역의 식수부족을 완전해소키로 했다.또 영산강본류에서 취수하는 목포 몽탄저수장에 광역상수도를 올 10월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 “긴급예산편성…관정1천여곳개발”환경부상하수도국장 곽결호씨(인터뷰)

    ◎가뭄 4∼5월까지… 장기대책 강구/자치단체별로 격일제급수 등 시행/다목적댐 더 지어 용수난해결 노력 『관정개발과 하천바닥의 굴착을 통한 물의 보충등으로 식수난을 겪고 있는 일부 영호남지역의 식수공급을 늘리면서 언제 또다시 닥칠지 모르는 가뭄에 대비하기위해 전국적인 장기 대책을 강구중 입니다』 환경부 곽결호 상하수도국장은 19일 남부지방의 심각한 겨울가뭄과 관련,『오는 4,5월까지는 해갈될 정도의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만큼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의 경우 인근댐의 물을 「지원」받도록 하는 등의 조치와 더불어 긴급예산을 편성,1천4백여개의 관정을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식수 부족 지역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인데. ▲19일 현재 포항시,의성군,창녕,남해,고흥,무안군 등 11개 시군이 제한급수의 불편을 겪고 있으며 5월까지는 제한급수지역이 확대돼 영호남의 28개 시군의 제한 급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중부권 이북지역 한강수계도 물이 충분한 상황은 아니지만 식수공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식수난지역에 대한 식수공급대책은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전남북과 경남북지역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5백23개의 관정을 개발,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2월말까지 3백개 정도가 추가 개발된다.그러나 이것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1천4백여개의 관정을 더 개발하고 하천바닥을 파내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긴급예산을 편성중이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감량공급,공급시간 제한,격일제 공급등의 비상급수대책을 마련,시행중이다.전남지역의 경우 일주일에 한번씩 하오 1시부터 4시까지 제한급수를 시행하는등 절수운동을 펼쳐 좋은 성과를 보고 있다. ­지난해 가뭄 초기에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했더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지난해 영호남지역의 가뭄은 수십년만에 닥친 최악의 상황이다.연평균 강우량이 예년 평균인 1천3백㎜의 60% 수준인 7백80㎜정도에 그쳤다.따라서 합천댐,임하댐,안동댐등의 수위는 기준수위의 20%대에 머물고 있고 영천댐과 섬진강댐의 경우는 저수율은 각각 1.7%와 5.6%에 불과한 실정이다.중부권이북의 다목적댐도 예년 평균 저수율 54%에 크게 못미치는 30%대에 머물고 있다. ­언제 되풀이 될지 모르는 식수난에 대해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보는데. ▲물 저장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에서는 올해안에 다목적댐 추가 건설계획을 확정,추진할 것으로 안다.또 이에 맞춰 시군별로 장기적인 수돗물 확대공급계획도 추진중이다.앞으로 지역별 지하수 분포상황에 대한 조사도 종합적으로 실시,지하수개발에 활용토록 관련부처와 협의중이다. ­국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용수는 모든 국민의 귀중한 자원이다.국민들도 절수운동에 적극 참여해 주었으면 한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광복 50/청산되지 않은 양국관계 6가지 과제

    ◎역사왜곡… 망언… 한·일 「감정의 골」 깊기만/재일교포 법적차별·냉대 곳곳 상존/사할린한인 영주귀국협상 작년에야 시작/정신대보상 대신 “위로금” 어물쩍 광복후 5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채 우리를 아프게 하는 일제의 상처들이 많다.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정신대의 한이 여전히 시퍼렇고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염원 또한 채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재일교포에 대한 일본의 차별대우 역시 시정되지 않고 있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그 2∼3세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일본의 뿌리 깊은 역사왜곡은 지금도 일본 각급학교 교과서에 남아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며 수백만점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우리 문화재 반환 전망은 어둡다.한국과 일본 두나라가 일제의 망령을 떨치고 진정한 선린우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정신대 보상,사할린동포 귀환,원폭피해자 치료,재일교포 법적지위,문화재 반환,역사왜곡 문제의 현황을 살펴 본다. ▷침략사 왜곡◁ 일본의 한국사 왜곡은 뿌리깊다.19세기 중반 일본에서 「정한론」이 등장한 뒤 일본의 관계·학계는 한국침략의 당위성을 강조하느라 「임나일본부 설」따위를 조작해 퍼뜨리는등 왜곡된 한국사를 만들어 나갔다.「황국사관」이라는 이 군국주의적 역사관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일본의 각급학교 교과서에 남아 있다. 광복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정부에 역사왜곡을 고치라고 꾸준하게 요구해 왔으나 흐지부지되다 82년 7월 「마쓰노망언」이 터졌다.당시 일본 국토청장관 마쓰노 유키야스(송야행태)는 『한국이 일본 교과서 내용을 시비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에 이어 『한일합방은 침략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이때 우리 국사편찬위원회는 일본 교과서 16종을 검토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모두 24개 항목,1백67곳의 서술 잘못을 가려냈다. 「마쓰노 망언」파동은 일본정부가 넉달만에 「왜곡 시정」담화를 내는 것으로 일단 가라앉았지만 그 뒤로도 매년 일본이 교과서 검정을 하는 시기가 되면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시비」가 연례행사처럼 불거져 나온다.왜곡의정도가 점차 줄어들긴 하지만 그 틀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이 교과서를 미리 검열하는 「검정제도」를 통해 역사서술을 조목조목 통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 왜곡이 사라지지 않는 책임은 분명히 일본 정부에 있다.지난해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마쓰노식 망언은 계속됐다. 국민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고 일제침략 행위를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계속 있는한 일본의 역사왜곡은 한일간의 현안문제로 계속 남을 것이다. ▷정신대 보상◁ 「인류역사의 치부」로 불릴 만큼 비인도적인 범죄로 낙인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우리민족의 역사에 남겨진 크나 큰 상처다. 90년 발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공동대표 이효재·윤정옥·김희원)등 민간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 50년간 묻혀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모가 상당부분 밝혀진 상태.그동안 씻지못할 고통속에 살다 많은 피해자들이 죽어갔고 현재 신고된 피해자 1백70명이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일본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총리가 강제성을 시인한 이후 가해당사자인 일본 정부의 입장은 개인보상은 해주되 국가책임차원이 아닌 민간주도의 보상인 「민간기금」을 마련,위로금 명목으로 보상비를 지급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미야자와 전총리의 발표후 우리 정부는 더 이상의 외교적 사안으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이 국제법상의 국가책임에 근거해 피해자 개인 보상및 정확한 전모공개,진실된 사죄를 해야 한다고 정대협등 민간단체와 재야법조계 등은 주장한다.이는 대체적인 국민정서이기도 하고 국제법조인회(ICJ)와 국제노동기구(ILO)유엔인권소위 등 국제 인권단체들이 일본에 대해 요구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효재 정대협대표등은 『65년의 한­일청구권 협정은 전후 두나라의 금전적 이해관계를 처리하기 의한 보상청구권협정으로,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비인도적 전쟁범죄에 대한 손해배상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한­일협정으로 모든 과거가 씻어졌다는 일본 주장을 반박하고 현재 일본이 희망하고 있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입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또 명실상부한 양국의 동반자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일본국가차원의 피해자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폭자 보상◁ 광복 50년이 되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의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폭 투하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 가운데 귀국한 사람은 2만3천여명.이 가운데 2천4백여명만이 생존해 있고 이들이 낳은 2세가 6천여명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의 평균 생활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일본에서 한푼도 받지 못하고 귀국한데다 귀국 후에도 후유증으로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생계조차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또 즉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피해자들도 언제 각종 암이라든가 백혈병이 발병할 지 모를 일이었다. 이들은 현재 상병의 정도에 따라 10만원 안팎의 진료 보조비를 받고 있다.이는 지난 93년 일본 정부가 위로금 명목으로 건넨 40억엔 가운데 일부에서 지급되는 것이다.또 이 돈으로 현재 경남 합천에 8백평 규모의 원폭 피해자를 위한 복지관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 정부가 일본 거주 원폭 피해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조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예컨대 일본의 피해자들은 건강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적게는 3만∼4만엔에서부터 많게는 13만∼14만엔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또 일본 거주 피해자들의 병원비는 완전 무료다. 한국 원폭 피해자들도 의료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항목은 무료 진료의 혜택을 받고 있다.그러나 컴퓨터 단층 촬영 등을 비롯,의료 보험 급여에서 제외되는 항목은 원폭 피해자들이 스스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원폭 피해자는 『조금 형편이 나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2세와 3세의 혼사를 위해서도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대부분의 원폭 피해자 1세들은 물론 2세,3세들까지 빈곤의 질곡에 빠져 정신적·신체적으로 고달프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현주소를 전했다. ▷재일교포 차별◁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법적 지위는 한일 두 나라간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어려운 외교 현안이다.재일한국인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정책으로 인식되어오던 지문날인제도가 지난 93년 가족사항등록으로 바뀌었지만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가 적절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개최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와 처우개선에 대한 한일 아주국장회의」에서 『가족사항등록이 외국인등록법 이외의 목적으로 남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를 일본측에 표명했다.또 외국인등록증을 상시휴대하지 않을 때 내려지는 형사처벌도 행정처벌로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이에 대해 일본측은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보니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위반자의 적발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면서 『앞으로도 상식적으로 유연히 운영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공무원과 국·공립 교원채용,원호법상의 국적조항 철폐도 재일한국인에게는 중요한 현안이다.우리정부는 재일한국인의 지위개선을 위한 포괄적 조치로서 국적과 관계없이 지방공무원과 정규교사에 임용될 수 있도록 일본 중앙부처가 지도하도록 요청하고 있다.특히 「전쟁피해 보상은 일본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94년 7월의 구일본 상이군속 석성기씨등에 대한 재판결과를 들어 재일한국인 전상자에 대한 원호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이에 대해 일본측은 여전히 「노력」과 「검토」라는 표현으로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밖에 민족학급의 설치,무연금 장애자·고령자의 구제,지방자치 참정권등이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및 처우개선과 관련,한일간에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억류자 송환◁ 지난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일본 정부의 송환거부와 일방적 국적박탈로 사할린에 잔류하고 있는 한국인은 약 3만6천명에 달한다.종전 당시 소련측에서도 노동자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억류했기 때문에 이들은 귀국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사할린 동포들의 귀환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후한 시기이다.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소련의 관계가 개선돼 지금까지 6천8백여명의 사할린 한인이 모국을 방문했으며 2백46명이 영주 귀국했다.현재 사할린 한인사회에서는 원인제공자인 일본정부가 책임을 지고 희망자 전원에 대해 영주귀국을 실현시키고,사할린 잔류자에 대해서는 1인당 1천만엔씩을 보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당사국인 일본과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사할린 한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일본과는 지난 93년 9월 외무장관 회담에서 사할린 한인문제의 포괄적이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양국간 실무협의를 개최하기로 합의 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7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일본이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아파트형 집단주택과 요양원 건설등 사할린 거주 한인 1세의 귀국과 정착을 위한 시범사업에 착수하기로 했다.정부는 사할린 잔류자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모국방문 기회부여등 영주귀국자와 유사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일본측에 요청했으며 러시아 정부와는 사할린 한인의 신분확인,영주귀국자의 출국과 국적처리 문제,재산반출,계속적인 연금수혜등을 협의하고 있다.러시아 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협조하겠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문화재 반환◁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6만4천7백28점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집계하고 있다.이 가운데 일본에 있는 것으로 확인 된 것은 2만9천6백37점이다.그러나 이 숫자가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문화재는 일제 36년 동안 일본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약탈과 민간 수장가나 골동품 중개상에 의해 끊임없이 반출됐다.따라서 현재 일본에 나가있는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은 수십만점도 아닌 수백만 단위에 이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우리 정부의 집계는 일본의 몇몇 박물관이 공개한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지난 65년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른 1천3백26점 등 지금까지 불과 2천7백50점만을 반환하고는 『더 이상 돌려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국제교류재단은 지난 91∼93년 실시한 조사 결과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일회담 당시 일본이 제시한 우리 문화재목록에 들어있지 않은 1천여점을 추가로 확인하기도 했다.공공박물관도 우리 문화재에 관한 한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숫자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약탈문화재」로 분류해 놓고 있는 것은 7백46점에 불과하다.이처럼 강제로 반출된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원소유국에 돌려주도록 한 유네스코의 협약이 있기는 하다.그러나 일본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우리 문화재 반환은 순전히 일본의 「선의」에 맡겨진 상태다.
  • 합천 희복양돈장 안희복씨부부의 을해년 소망

    ◎“경쟁시대 으뜸가는 양돈농 될래요”/시설 곧 자동화… 올 3천5백두로 늘려/값폭락 좌절 딛고 부창부수 오뚝이 삶 『일년내내 돼지꿈을 꾸며 돼지처럼 풍만하게 양돈업을 살찌우고 싶습니다』 새해 아침 불혹의 나이를 맞은 동갑내기 안희복·유윤분씨 부부는 삶의 터전인 경남 합천군 초계면 각곡리 714 희복양돈장에서 이제 막 태어난 아기돼지들과 함께 새해 아침을 맞았다. 8백평 규모의 돈사에 꽉 들어찬 1천5백마리의 돼지들은 낯익은 주인에게 세배를 하듯 고개를 끄덕인다.을해년 돼지띠해에 이들과 함께 시작하는 안씨부부의 새해 소망은 옹골차다. 1백여마리로 양돈을 시작한지 24년만에 안씨는 대규모 자동화시설을 갖춘 부농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71년 양돈을 시작했던 안씨의 「돼지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2남8녀의 장남으로 72년 정미소에서 다리를 다친 부친을 대신해 가장역할을 해야했던 안씨는 79년 제대한뒤 대구·부산등에서 야채행상도 하고 각 부락에 돼지사료도 팔았다. 3년만에안씨는 5백마리의 돼지로 다시 양돈업을 시작할 수 있었으나 84년 돼지값 폭락으로 7천여만원의 부채를 안고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에 양돈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안씨는 그러나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된다』는 부인의 끈질긴 설득으로 86년 다시 돈사를 세웠으나 2천5백여마리가 원인모를 병으로 쓰러져 여러차례 폐사위기를 맞았다. 잇따른 역경속에서도 안씨부부는 꿋꿋이 4전5기의 오뚝이신화를 연출해냈다.안씨는 우선 선진 양돈기법을 배우기 위해 88년과 92년 정부 지원으로 독일의 양돈 박람회장과 일본·네덜란드·덴마크·영국의 농촌을 둘러봤다. 안씨는 밤잠을 설치며 하루 20시간씩 시설 자동화와 기술개발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지난해 갓 태어난 새끼가 어미에게 깔리는 것을 막기위해 쇠파이프로 어미와 새끼의 방을 따로 만든 분만틀을 개발했다. 양돈기술 영문 책자를 읽기 위해 91년 초계종합고에 입학한 안씨는 지난해 3월 아들또래의 동창생들과 나란히 졸업장을 받기도했다. 『과감한 투자없이는 우루과이 라운드 파고를 헤치고 부농의 꿈을 이룰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안씨는 저축과 정부지원금 등을 포함해 3억5천만원을 투자,올해말 완공예정으로 돈사 3개동 8백여평을 7개동 1천8백여평으로 늘리고 시설도 완전자동화하는 작업에 한시도 눈돌릴 틈이 없다. 이미 자동화된 3개동은 바닥이 철망으로 돼있어 분뇨가 저절로 지하에 묻힌 관을 통해 1백m 떨어진 정화조로 흘러가고 이 과정에서 자동산화된 분뇨는 울타리로 심은 2천여그루의 단감나무에 뿌려진다.환경오염과 비료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푸념 한마디 없이 때묻고 냄새밴 안씨의 작업복을 하루에 두세차례씩 세탁해온 부인 유씨는 『시설자동화가 마무리되는 올해말 돼지수를 현재 1천5백마리에서 3천5백두로 늘릴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안씨부부는 올해 수입을 3억원까지 끌어올려 수입개방시대를 당당히 이겨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가운 한겨울의 계곡바람도 잊고 있다.
  • 부산·경남에 황강물 공급/식수공급대책/87㎞송수관 매설 내년 착공

    낙동강 하류의 물에 의존하고 있는 부산·경남권에 상류의 맑은 물을 공급할 86.8㎞에 이르는 광역상수도 공사가 내년초 착공,98년 완공된다. 정부는 21일 식수원을 오염이 안된 상류지역으로 옮기고 강물을 간접취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부산·경남지역의 안전한 식수공급대책」을 환경처·건설부 합동으로 최종 확정,내년부터 3천3백75억원을 들여 광역상수도를 건설키로 했다. 이 광역상수도는 낙동강과 지류인 황강의 합류지점에서 9㎞ 상류(합천댐 하류 40㎞지점)에 있는 경남 합천군 쌍책면 황강 취수지점에서 부산시의 매리·물금 정수장까지 황강 및 낙동강변을 따라 매설되며 하루 취수량은 1백만t이다. 이 상수도가 완공되면 낙동강 물을 원수로 쓰고 있는 마산·창원·진해·김해 등 경남도 4개시에는 맑은 황강 물 50만t이 전량 대체공급되고 부산시에는 전체 공급원수의 25%인 50만t의 황강물을 공급,최악의 오염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용수를 공급받게 된다. 정부는 이같은 1단계 중기사업에 이어 장기사업으로 낙동강 하류권의 용수수요를 충당하고 부산시의 원수를 전량 1급수로 공급키 위해 다목적댐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 도시가스 계속 새 현장검증 연기/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참사 현장

    ◎“한지붕서 2명이나” 가족들 오열/“혼인 앞둔 딸 혼수품 다탔다” 한숨 도시가스폭발사고로 폐허가 된 마포구 아현동일대 사고현장주변에는 사고후 하루가 지난 8일 하오까지도 생존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실종자의 가족들이 구조작업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봤으며 사고대책본부는 사후수습에 나서는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이날 하오 실시할 예정이던 현장감식은 사고현장의 잔류가스가 계속 새어나오는데다 수사대책회의가 길어져 결국 하루 더 늦추기로 결정. 그러나 일부주민이 이에 대해 『초동수사부터 늑장수사가 아니냐』며 비난하자 검·경은 『수사대책회의가 하오 늦게까지 계속돼 밤늦게 현장검증을 할 수 없어 현장검증을 하루 늦추기로 했다』고 설명. ○…이번사고로 숨진 한국가스공사 기전과 홍성호씨(32·서울 구로구 독산동)등 희생자 가족들은 전날부터 사고현장의 인근여관에 묵으면서 사체발굴작업을 초조하게 기다렸으며 일부 실종자부모는 실종소식을 듣고 집에 몸져누워 현장으로 나오지도 못했다고 가족들이 전언. ○…4명의 사체가 안치된 서대문구 홍은동 세림간호병원에는 신원이 확인된 2명 가운데 조수옥씨(38·식당업·마포구 아현동 604)와 같은 건물지하에 세들어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윤경한씨(38)가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져 평소 알고 지내던 두 가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 숨진 윤씨는 경남 합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상경,재단사자격증을 따 그동안 봉제일을 해오다 어렵사리 조그마한 공장을 차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소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왔다』며 이웃주민들이 애석해 했다. 가족들은 윤씨의 은이빨을 보고 신원을 확인했다. ○…사고현장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이군자씨(52·여)는 자신의 두 딸과 함께 이날 상오7시30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져내린 채 잿더미가 돼버린 자신의 집을 보고 망연자실. 이씨는 특히 내년 2월로 예정된 둘째딸(22·회사원)의 결혼을 위해 지난 8월말부터 마련해온 비디오세트·전기청소기·그릇세트·전기밥통 등 혼수품이 모두 못쓰게 된데다첫째딸(24·회사원)이 받아온 보너스 40만원 등 80만원이 들어 있는 지갑도 타버려 딸들에게 면목이 없다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폭발사고 당일 근처 친척집에 놀러왔던 20대주부가 아들과 함께 행방불명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가 하면 한 40대 아주머니는 「실종 21시간」만에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등 실종자 가족들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고 직전인 7일 하오 2시쯤 두살바기 아들 윤상호군을 데리고 도로공원에서 10여m 떨어진 언니집에 놀러왔던 김인향씨(27·송파구 거여동 545의1)는 마침 언니가 문을 잠그고 외출한 상태여서 평소 안면이 있던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언니를 기다렸다. 그러나 잠시후 상호군이 자꾸 나가자고 칭얼대자 가게앞에 있던 공원으로 들어간뒤 이후 가족들과 전혀 연락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김씨의 남편 윤영수씨(30)와 언니 중경씨는 사고가 난뒤 김씨가 가있을만한 곳에 모든 연락을 취하고 밤새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뒤져보았으나행방을 찾지못해 망연자실한 상태이다. 한편 사고가 나기직전 『잠시 외출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간뒤 연락이 닿지않아 실종자로 처리됐던 백복순씨(47)는 행방불명된지 21시간만에 귀가해 가족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경남 삼천포에서 친정어머니와 사는 백씨는 외지에 사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지난달 중순쯤 서울에 올라와 아현동 도로공원 옆 자식들의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다 이날 하오 2시쯤 큰 딸 (25)에게 잠깐 나갔다오겠다며 외출한 뒤 행방불명됐었다.백씨는 『평소 몸이 안 좋아 한약을 달여먹고 있는데 이날도 잠실에 있는 친구집에 한약을 먹으러 갔었다』며 『약을 먹고 바로 잠이 들어 사고가 난 것을 오늘 아침까지 전혀 알지못했었다』고 말했다.
  • 10년만에 개인전/승려화가 김원학스님(인터뷰)

    ◎“그림에의 몰두는 수행정진의 또다른 길” 승려화가 세석 김원학스님이 10년만에 세상구경을 나왔다.불교신문 지령1500호기념 초대전(15∼25일 ·서울 공평아트홀)에 내놓을 역작의 서화 31점을 들고 바깥 출입을 한 것이다.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번뇌가 없겠습니다.그럴때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는 그림에 몰두했지요.그림이 곧 수행이 되었다고나 할까요.또 달리 생각하면 수행의 결과가 그림으로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두리봉 아래 한적대로 떠올라서 매화봉으로 지는 달보기가 천하일품이라는 관월암이 그림의 산실.지난 84년 개인전 이후 단 한점의 그림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으니까 10년만에 갖는 개인전이다.그런 탓에 그림속에는 한가닥의 속기도 어리지 않았다. 『부처님 모셔놓아 끼니 굶는 일 없고,그림 계속 그려서 좋습니다.오른팔을 잃을뻔한 고비를 넘기고 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지요.그 보은은 수행정진하고 그림 그리는 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승랍 29년.교통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못쓰는 수난의 세월도 살았다.해인승가대를 거쳐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스님은 우계 오우선으로 부터 한국화를,청남 오제봉으로부터는 글씨를 사사했다.이어 한국전통남종화(남종화)의 산실인 해남 대흥사에서 수련을 쌓았다.그래서 화풍은 남종선이 추구한 이상,문득 깨치는 돈오의 경지처럼 맑고 시원한 산천경계로 살아났다.
  • 모친 유해앞에 무릎꿇고 오열/박태준씨 귀국… 공항­상가 이모저모

    ◎최형우 내무·문정수총장 등 조문/초췌한 표정… 부인과 말없는 입국 박태준씨가 1년7개월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9일 귀국했다.포항제철회장과 민자당최고위원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제와 정치 두 무대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다 사라졌던 박씨의 귀국은 최근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여전히 세인의 눈길을 끌긴 했지만 오랜 방랑 끝에 돌아온 그의 초췌한 모습은 정치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박씨는 이날 부인 장옥자여사및 비서 김용기씨와 함께 홍콩에서 일본 후쿠오카를 경유,2시53분 대한항공753편으로 김해공항을 통해 돌아왔다.박씨는 모친의 갑작스런 임종에 충격을 받은듯 조금은 헝클어진 모습이었으며 공항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의 답변을 회피하고 마중나온 황경로 전포철회장,조용경 전보좌역등과 함께 곧바로 양산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집에 도착한 박씨는 입관은 했지만 큰아들을 기다리느라고 관뚜껑도 덮지 않은 모친 김소순씨의 유해 앞에 무릎을 꿇고 한동안 오열했다.동생 태화씨는 『어머님이 형님을 무척 보고싶어 하셨다』고전하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는 잠에서 깨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저기 큰아범이 오니 나가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이날 상가에는 민정계 의원들의 방문은 거의 없었던데 비해 정치적으로 반대 위치에 섰던 민주계 실세인 최형우 내무부장관과 문정수 민자당사무총장이 조문해 눈길을 끌었다.최장관은 박씨가 도착한 잠시 뒤 일행 7명과 함께 와 조문하고 박씨를 위로했다. 상오11시30분쯤 상가에 도착한 문총장은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박씨에게 불유쾌한 감정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구(부산)에 내려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왔다』면서 『당을 대표해서 온 것은 아니고 청와대등과 사전에 협의를 거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문총장은 정부가 박씨를 선처할 것이라고 알려진데 대해서는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고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선문답을 한 뒤 『사법당국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했다. 이날 상가에는 민자당의 권오태·김정례 고문과 박준병·안찬희·박재홍·박범진·이해구 의원,민주당의 유준상의원,서석재·이진우 전의원이 조문했으며 김만제 포철회장,전두환 전대통령의 민정기 비서관과 이원홍 전문공부장관,이상하 프레스센터이사장등도 다녀갔다.민정기 비서관은 『합천으로 내려가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조문하도록 당부했다』면서 『전전대통령은 대구등의 일정이 바빠 직접 오지는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이밖에 김수환 추기경과 월하종정,나카소네 야스히로·다케시타 노보루 전일본수상등이 조화를 보냈으며 포철팀 축구선수였던 최순호씨도 방문해 눈길.노태우 전대통령도 10일 상오 정해창 전비서실장과 함께 문상할 예정.상가측에서는 김씨가 별세한 7일이후 상가를 다녀간 조문객이 모두 7백여명으로 대부분 포철의 전현직 임직원이었다고 밝혔다.
  • 멸망의 원인(백제를 다시본다:30·끝)

    ◎한강유역 뺏긴뒤 서남부에 고립/의자왕,초기 전승에 자만 실정 거듭/대당외교 실패… 많은 충신 귀향보내/18만 나당연합군 침공때 동원가능 병력은 5천명 부소산성에 올라 금강을 굽어보노라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마냥 평화롭게만 느껴진다.1천3백년 전 이곳에서 망국의 통한을 품은 3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서기 660년 당의 침략군이 신라와의 사전협약에 따라 서해로부터 금강 하구에 소리없이 진입하여 상륙작전을 개시한 뒤 사비도성을 유린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백제는 왜 멸망했는가.이 수수께끼를 속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란 없다.백제 멸망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역사적 인과관계에서 볼 때 우리들은 많은 멸망원인을 열거할 수 있으나 이를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삼국항쟁이 격화된 6세기 후반 이래 백제는 경쟁국가인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그 입지랄까 행동반경이랄까가 매우 좁았다.즉 한강유역을 송두리째 신라에 빼앗긴 뒤로부터 백제는 줄곧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백제가 기대를 건 잠재적인 동맹세력은 고구려였으나,양국은 다만 해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을 뿐 이었다.그런 까닭으로 백제는 자신을 ㄱ자 모양으로 포위하고 있는 신라와의 군사경계선을 돌파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것은 한 때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하지만 백제는 결코 신라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처럼 백제가 신라와의 국경전쟁에서 헛되이 국력을 소모하는 동안 내부사정은 차츰 악화되어 갔다.의자왕이 641년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만 해도,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그는 인간적으로 나무랄데 없는 성품이었고,국가중흥의 열망에 불타 있었다.왕태자 시절 지극한 효성으로 해동의 증자라는 평까지 듣던 의자왕이었다. ○신라 포위 못벗어 그가 왕위에 오른 직후에 결행한 신라 침공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마침 642년 평양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군국의 대권을 장악했는데,의자왕은 그와 손잡고 신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다.백제군은 중국으로 통하는 신라의 서해 관문인 당항성(경기도 화성군)의 목을 죄는 한편 신라의 낙동간 방면 전선사령부가 위치한 대야성(경북 합천군)을 함락하여 경주를 가까이서 위협했다.이같은 전과는 의자왕의 경탄할 만한 기민성과 결단력에 힙입은 바 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의자왕의 인간적인 약점이 노출되었다.전투에 잇따라 승리한 의자왕은 어느 덧 자만심에 빠져 만기를 독재하는 통치스타일로 기울어졌다.사태를 더욱 악화시긴 것은 왕비 은고의 지나친 권력욕이었다.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부여 정림사탑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했는데,거기에는 멸망 당시 백제의 정치상황을 설명하여 『의자왕이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아낙네(왕비)를 너무 믿어 형벌이 오로지 충양한 사람에게 미쳤다』고 했다.양심적인 재상인 성충이 옥사하고 흥수가 귀양을 간 것도 이같은 난정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또한 해방 직후 부여에서 우연히 탑비가 발견됨으로 해서 그 실재가 확인된 대좌평 사택지적의 정계은퇴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충신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신라의 간첩망에 포섭된 임자 같은 인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왕비 권력욕 지나쳐 무엇보다도 의자왕이 범한 큰 과오는 백제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다.당은 신라측의 끈질긴 한반도 개입 요청을 받아들여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와 화평관계를 꾀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의자왕은 이같은 권고를 거듭 묵살했다.652년 이후 백제는 더 이상 사신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다.백제를 치기로 한 신라와 당 양국간의 비밀협상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절박한 때에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외교적 실책이었다.바야흐로 백제 상공에는 잔뜩 먹구름이 닥쳐오고 있었으나,의자왕은 전혀 그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서기 660년 여름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은 백제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백일하의 날벼락이었다.김유신이 이끄는 신라의 5만 대군이 국경선 깊숙이 나타났을 때 백제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결사대 5천명이 고작이었다.이 결사대는 사흘동안 황산벌(충남 연산)에서 신라군과 처절하게 싸운 끝에 전원 옥쇄했다.한편 13만명에 달하는 당나라 군대는 금강 동쪽 기슭에 상륙,7월 11일 신라군과 합세했다. 드디어 12일에는 나당연합군이 사비도성 공격에 나섰다.연합군은 도성 동쪽 20여리쯤 떨어진 곳에서 백제군의 소규모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단숨에 격파하고 염창리에서 능산리로 이어지는 나성을 통과,순식간에 도성 안으로 진입했다.적군의 강습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북쪽 웅진성(공주)으로 달아났다.이에 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권을 대행했으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윽고 연합군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부소산성을 포위하자 절망에 빠진 지배층과 백성들이 떼지어 성에서 내려와 항복했다.그리하여 부소산성 정상에는 나당 연합군 깃발이 나부끼게 되었다. ○부흥운동 무위로 그러나 백제는 그 뒤 3년간 더 살아 꿈틀거렸다.국왕의 항복결정을 거부한 지방주둔 병력이 왕족 복신의 지휘 아래 총집결하여 조직적인 부흥운동을 벌인 것이다.이들은 한때 사비도성을 포위한 일까지 있었다.주류성(서천 한산 혹은 부안으로 짐작됨)과 임존성(예산 대흥)이 당시 부흥운동군의 일대 거점이었다. 663년 가을 백제와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이 부흥운동군을 돕기 위해 3만대군을 보냈다.그러나 왜군은 백강하구에서 신라·당 연합군에 포착되어 네차례의 접전 끝에 섬멸되고 말았다.당시 불에 탄 왜선 4백척에서 뿜어대는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붉게 하고 바닷물도 빨갛게 물들었다고 한·중 양국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왜군 격파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일제 공격으로 주류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백제부흥운동은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는 가고 말았으나 그들이 창조한 문화의 가지는 신라와 일본 등지에 이식되어 그뒤 오랜 세월 생명력을 유지했다.지난해말 세상에 공개된 금동향로는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정화로,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망국의 군주/의자왕 중국 북망산에 묻힌듯/패망후 당나라에 끌려가 병사 우리가 고대사에서 만날 수 있는 큰 비극을 꼽자면백제패망을 다룬 AD660년의 기사가 그 하나일 것이다.궁녀들이 꽃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 옛 이야기와 더불어 아련히 들려오는 사비도성의 황급스러운 말발굽소리는 백제사가 간직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때에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했던 의자왕도 결국 나·당연합군에 붙잡혀 2만여 백제유민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이 망국의 군주는 생몰연대도 전해지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당에서 병사한 것으로만 되어있다.이는 의자왕과 휩쓸려 포로가 된 왕자 부여릉(AD615∼682년)이 당에서 남긴 비교적 소상한 활동기록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자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이 물음에 해답을 던져줄 가능성은 있다.의자왕의 신하로,또 왕자 부여릉과 백제부흥운동을 통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흑치상지(AD630∼689년)와 그의 아들 흑치준의 묘지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중국 하남성 낙양의 북망산에서 1929년에 발굴된 이 묘지명은 현재 남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흑치상지의 묘지명은 왕자 부여융이 주군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을 표현했다.또 묘지명은 AD677년 부여융이 당으로부터 「웅진도독 대방왕」에 임명되었을 때 흑치상지는 속관의 직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다만 41줄 1천6백4글자나 되는 묘지명 새김글씨에 의자왕 기록이 전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사학계는 당나라 왕후장상들의 묘역 북망산을 계속 주시하는 입장이다.북망산에서는 백제유민 흑치상지 부자의 묘지명 말고도 연개소문의 아들이자 고구려유민인 천생의 묘지명이 출토되었다.이로 미루어 의자왕의 무덤도 북망산 묘역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백제 최후의 군주 의자왕의 무덤을 찾는 일은 한·중학계의 협력에 따라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학계는 북망산 한쪽에 묻혀있을 의자왕 묘지명을 찾아야할 큰 역사숙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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