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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C 합의이혼, 조인성-김민희 열애설 증권가 루머에..‘김C 아내 화났나?’

    김C 합의이혼, 조인성-김민희 열애설 증권가 루머에..‘김C 아내 화났나?’

    ‘김C 합의이혼’ 4일 한 매체는 가수 김C(43 본명 김대원) 측근의 말을 빌어 “김C가 지난해 별거설이 불거진 이후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김C 소속사 디컴퍼니 관계자 역시 “법적인 정리를 모두 끝낸 게 맞다. 지난해 이미 모든 정리가 다 끝났고 정확한 이혼 시점을 잘 모른다”며 “워낙에 김C가 사생활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밝히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양육권이나 재산분할 등에 이견이 없어 원만하게 합의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C는 2000년 전 아내 유 모씨와 결혼식을 올렸고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두 아이는 아내 유 씨가 키우기로 합의했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3월 한차례 별거설에 휩싸인 바 있다. 특히 ‘조인성 김민희 커플’이 공개됐을 때 김C가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준 ‘사랑의 전도사’라고 평가해 세간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조인성과 베프로 알려진 김C는 김민희의 스타일리스트 A씨와 인연이 있었다. A씨가 김민희를, 김C가 조인성을 대동하면서 지난 1월부터 넷의 만남이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조인성과 김민희 커플이 탄생한 것. 때문에 네티즌들은 ‘조인성-김민희’ 커플보다는 김C와 스타일리스트A가 어떤 관계인지에 더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김C가 직장 동료를 만나고 있으며 아내와 별거 중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지난 2월에는 여성지 우먼센스가 ‘김C, 아내와 3년째 별거 이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단독 보도해 김C가 결혼 13년 만에 파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김C 합의이혼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김C 합의이혼..언제 이혼했지?”, “김C 합의이혼..설마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김C 합의이혼 아이들은 엄마가 키우는가보네” “김C 합의이혼..안타깝네” “김C 합의이혼..13년 만에 파경 안타까워”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김C는 1997년 베이시스트 고범준과 뜨거운 감자를 결성, 2000년 정규 1집 ‘나비’를 발표했다. KBS2 ‘해피선데이-1박 2일’ ‘천하무적 토요일-천하무적 야구단’ 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KBS 2FM 라디오 ‘김C의 뮤직쇼’를 진행 중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C 합의이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C 아내 이혼 보도 하루 만에 열애설.. 스타일리스트 언제부터 만났나 ‘묵묵부답’

    김C 아내 이혼 보도 하루 만에 열애설.. 스타일리스트 언제부터 만났나 ‘묵묵부답’

    ‘김C 아내 이혼, 김C 스타일리스트’ 가수 김C(43)가 아내와의 이혼이 알려지자마자 열애설에 휩싸였다. 5일 오전 한 매체는 김C가 유명 스타일리스트 박 모 씨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며 최근 언약식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김C가 아내 유 모 씨와 합의이혼을 한 사실이 알려진지 하루만의 일이다. 김C는 지난해 합의이혼에 관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했지만 이미 2010년부터 파경을 맞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C는 2011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처와 별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이 시기에 만남을 가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김C 소속사 측은 스타일리스트와의 열애설에 대해 “아티스트의 사생활”이라며 말을 아꼈다. 결혼 13년 만에 파경을 맞은 김C는 아내 유 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이들은 아내가 키우기로 했다. 현재 김C는 KBS 2FM ‘김C의 뮤직쇼’ DJ를 맡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C 열애 인정, 여자친구 누구?

    김C 열애 인정, 여자친구 누구?

    5일 오전 한 매체는 김C가 유명 스타일리스트 박 모 씨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며 최근 언약식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김C가 아내 유 모 씨와 합의이혼을 한 사실이 알려진지 하루만의 일이다. 김C는 지난해 합의 이혼에 관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했지만 이미 2010년부터 파경을 맞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C는 2011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후 전처와 별거를 시작했다. 김C 소속사 측은 공식입장을 통해 “김C가 열애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혼을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황이므로 기사화된 것처럼 현재 결혼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다. 상대가 일반인이므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부디 고려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C 합의이혼, 지난해 부인과 합의 이혼 뒤늦게 알려져

    김C 합의이혼, 지난해 부인과 합의 이혼 뒤늦게 알려져

    ‘김C 이혼’ 4일 한 매체는 가수 김C(43 본명 김대원) 측근의 말을 빌어 “김C가 지난해 별거설이 불거진 이후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양육권이나 재산분할 등에 이견이 없어 원만하게 합의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C는 2000년 전 아내 유 모씨와 결혼식을 올렸고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두 아이는 아내 유 씨가 키우기로 합의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C, 합의이혼 ‘두 아이는 누가?’

    김C, 합의이혼 ‘두 아이는 누가?’

    가수 김C(43)가 지난해 합의 이혼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C의 소속사 디컴퍼니 관계자는 4일 “김C가 합의 이혼을 했다”며 “정확한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소속사 측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2000년 결혼한 김C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아이들은 엄마가 키우기로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C 합의이혼, 김씨 부인과 무슨 일이..

    김C 합의이혼, 김씨 부인과 무슨 일이..

    가수 김C(43 본명 김대원)가 지난해 합의 이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4일 한 매체는 김C 측근의 말을 빌어 “김C가 지난해 별거설이 불거진 이후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김C 소속사 디컴퍼니 관계자 역시 “법적인 정리를 모두 끝낸 게 맞다. 지난해 이미 모든 정리가 다 끝났고 정확한 이혼 시점을 잘 모른다”며 “워낙에 김C가 사생활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밝히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C 합의이혼, 법적인 정리 모두 끝냈다

    김C 합의이혼, 법적인 정리 모두 끝냈다

    ‘김C 이혼’ 4일 한 매체는 가수 김C(43 본명 김대원) 측근의 말을 빌어 “김C가 지난해 별거설이 불거진 이후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김C 소속사 디컴퍼니 관계자 역시 “법적인 정리를 모두 끝낸 게 맞다. 지난해 이미 모든 정리가 다 끝났고 정확한 이혼 시점을 잘 모른다”며 “워낙에 김C가 사생활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밝히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C 합의이혼, 별거설 이후..

    김C 합의이혼, 별거설 이후..

    ‘김C 합의이혼’ 4일 한 매체는 가수 김C(43 본명 김대원) 측근의 말을 빌어 “김C가 지난해 별거설이 불거진 이후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김C 소속사 디컴퍼니 관계자 역시 “법적인 정리를 모두 끝낸 게 맞다. 지난해 이미 모든 정리가 다 끝났고 정확한 이혼 시점을 잘 모른다”며 “워낙에 김C가 사생활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밝히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양육권이나 재산분할 등에 이견이 없어 원만하게 합의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고승덕, 이혼하며 썼던 각서 내용 보니…

    고승덕, 이혼하며 썼던 각서 내용 보니…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뒤늦게 6·4 지방선거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고승덕 후보의 딸 희경(27)씨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고 올린 글이 주말 내내 인터넷을 달궜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하던 고 후보는 급기야 거리 유세를 중단하는 등 칩거에 들어갔고 선거 판세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고 후보 측 관계자는 2일 “고 후보가 종합편성채널과 라디오의 생방송 전화 인터뷰만 응하기로 했다”면서 “3일 일정 역시 예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딸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해명하고 문용린 후보 측의 공작정치 의혹을 제기했지만, 역풍을 맞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 후보는 한 종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딸이 교육감 선거 3일을 남겨두고 왜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딸의 글이 올라오기 전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성빈씨가 문 후보 측에 전화를 했었다는 보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 후보의 전 부인 박유아(53)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더는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고 싶지 않다. 구구절절 이야기할 게 있겠냐”면서 “이틀째 잠 한숨 못 잘 만큼 지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딸에게도 앞으로 어떤 대응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면서 “(우리를 둘러싼)이야기가 길어지면 본질에서 어긋나는 내용만 나오게 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고 후보와 합의이혼 당시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밖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한다’는 각서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에서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박씨는 지난해 9월 국내에서 개인전(‘오르골이 있는 풍경’)을 열기도 했다. 당시 ‘미스터 앤드 미세스 고’라는 그림에 이목구비가 지워진 부부의 얼굴을 묘사해 결혼생활이 평탄치 않았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2004년 고 후보와 재혼한 부인 이무경(47)씨는 페이스북에 남편의 심경을 대변하는 글을 올렸다. 이씨는 신혼 초 남편의 책상 위에 있던 남매의 물건을 치운 자신에게 “도로 갖다 놓으라”며 화를 냈던 남편의 일화를 들려주며 ‘따님이 이 글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 가지만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이의 어렸을 적 물건들을 옆에 두고 보면서 잊지 않고 늘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요’라고 적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안내상 동생, 진짜 안내상 동생이 쓴 글? ‘내용 봤더니 경악’

    안내상 동생, 진짜 안내상 동생이 쓴 글? ‘내용 봤더니 경악’

    안내상 동생이 화제다. 송윤아가 악플러들을 고소해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설경구의 전 아내의 친언니를 자청한 한 네티즌의 글이 공개되면서 다시금 설경구의 이혼원인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불거지고 있다. 24일 송윤아의 법적 대리인 법무법인 세종 측은 “송윤아가 블로그 및 각종 온라인상에서 송윤아와 설경구에 대해 근거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들의 증거를 채집해 지난 21일 강남경찰서 측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과거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설경구가 이전의 이혼에 대해 해명한 내용이 재조명 되고 있다. 설경구는 인터뷰에서 “전 부인과 결혼 파탄의 원인은 결코 송윤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혼 전 동거설’에 대해서도 “2006년부터 동거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당시 송윤아 씨는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라고 해명해 그간의 루머에 대해 억울해 했다. 한편, 안내상 동생인 설경구 전 부인의 친언니를 자청하는 한 네티즌의 글이 다시금 화제가 됐다. 이 글에서 이 네티즌은 “실제 별거는 4년이 아니다. 이혼을 2년 동안 줄기차게 갖은 방법을 요구했다. 동생은 갑자기 닥친 그 세월이 지옥이었다. 합의이혼이 아니라 설경구의 가출이었고, 이혼을 얘기하려고만 집에 왔다. 아이도 안중에는 없었다” 고 주장했다. 또 “자식 때문에 이혼만은 막으려 했었던 동생인데 정작 본인이 이혼만은 막으려 했다는 언론 플레이를 보고 환멸을 느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안내상 동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혼’ 女배우, 前남편 열애설에…

    ‘이혼’ 女배우, 前남편 열애설에…

    중국의 톱 여배우 장백지가 전 남편인 사정봉과 배우 저우쉰(주신)과 열애설을 질투한 나머지 최근 외국으로 나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홍콩 HK채널는 30일 장백지가 전 남편 사정봉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긴 것을 알고 질투한 나머지 두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났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정봉은 지난해 말 저우쉰과 교제를 시작했다. 앞서 사정봉과 장백지는 결혼 5년만인 지난 2011년 합의이혼 했다. 장백지는 이혼 후 두 아들 루카스와 퀸터스를 혼자 키웠다. 매체는 홍콩으로 거처를 옮긴 저우쉰이 사정봉과 같은 맨션으로 이사해 연애를 즐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열애 사실을 지인들은 알고 있었지만 사정봉과 재결합을 원하는 장백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봉과 저우쉰은 지난 2005년 부부의 연을 맺은 왕페이(왕비), 리야펑(이아붕)과 과거 각각 열애설에 휩싸였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류 드라마 주인공처럼” 남편에게 흉내 요구, 결국 이혼

    “한류 드라마 주인공처럼” 남편에게 흉내 요구, 결국 이혼

    한류드라마에 빠진 중국 아내가 남편에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기를 강요, 20년 부부 생활에 파국을 맞았다. 3일(현지시간) 중국 현지 언론 중안자이센(中安在線)은 안후이(安徽)성 벙부(蚌埠)시에 사는 한 가정주부가 남편에게 한류 스타처럼 행동할 것을 강요하다 이혼당했다고 보도했다.  약 20년 동안 큰 문제 없이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이들 부부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한류드라마에 빠지며 불운이 시작됐다. 아내는 한류드라마에 푹 빠져 드라마 속 배우들이 하는 달콤한 대사와 행동에 매혹 당했다. 급기야 그녀는 남편에게 이것처럼 따라 하도록 강요했다. 처음에는 남편도 아내의 요구에 응했다. 하지만 점점 그 강도가 심해지며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됐다. 결국,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정불화가 심해지자 남편은 이혼신고서를 법원에 제출, 부부는 합의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KBS 드라마 사랑비 캡처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상)

    [명사가 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상)

    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반드시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 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 “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인간이 존재의 시작을 찾아나섰다. 자신의 시작이 된 어머니, 그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며 거슬러 가보니, 태초에 흑인 여성이 있더라. 같은 맥락으로, 음악을 실마리 삼아 시스터즈의 기원을 찾아보니, 숙자매와 펄시스터즈, 코리아키튼즈를 거쳐 김시스터즈에 다다르더라. 손녀뻘인 미미시스터즈가 시스터즈의 계보도를 그려 음악극으로 만들었으니, 이름하야 ‘시스터즈를 찾아서’라더라.’ 하늘거리는 빨간색 원피스에 빨간 빵모자와 검은 망사 장갑을 매치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표정은 무덤덤하게.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미미시스터즈(이하 미미들)는 익숙한 그 모습으로, 자신들이 쓴 음악극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동경한 ‘시스터즈의 낭만과 유머’를 찾아가는 거죠.” 가슴 크기로 호칭을 정했다는 미미들 중 ‘작은’ 미미의 말이다. 미미들은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로 데뷔했다. 복고풍 의상과 덤덤한 표정, 요상한 춤으로 관심을 끈 ‘얼굴들’이었다. 잘 활동하는가 싶더니 2011년 초 별안간 독립하고 1집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거야’를 내놓았다. 그들은 이를 두고 ‘합의이혼’이라고 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그저 재미있게 놀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관심을 무척 많이 가지시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하게 됐죠.” 데뷔부터 1집까지 과정을 묻자 미미들은 한몸인 양 주거니 받거니 대답을 완성해 나갔다. “사람들이 미미들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선글라스에 가려진 채로 잊힐까 봐” 두렵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음악을 해보자”는 의지로 독립했다. 그런데 음반 반응이 엇갈렸다. 쟁쟁한 음악인들과 작업했더니, 미미들이 피처링해 준 느낌이라는 말도 들렸다. 덜 익은 채로 대중 앞에 나선 미미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의 이유’였다. 그즈음 만난 기획전에서 답을 찾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작곡가 김해송과 가수 이난영, 애자·숙자·민자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를 조명한 ‘가문의 영광’전이다. “김시스터즈는 미국 슈프림스보다 먼저 데뷔한 걸그룹이에요. 부모에게 철저히 음악교육을 받아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세 분이 합쳐 스무 개가 넘는 재능 집합체죠. 시스터즈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 그런데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큰 미미) 선배 ‘시스터즈’를 연구하고, “뒷조사를 하듯”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펄시스터즈의 배인순, 코리아키튼즈의 윤복희와 전화 연결이 됐다. 유명을 달리하거나 해외에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는 때도 있었다. 큰 미미가 한 모임에서 만난 남인우 연출이 취지에 ‘대공감’하면서 의기투합했다. 미미들이 일기처럼 쓴 글들을 극으로 다듬고, 키보드 연주자 고경천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음악극 형식이 됐다. 우리나라 여가수들의 역사를 따라가는 시간여행으로 확장했다. 두산아트센터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 ‘두산아트랩’에 선정돼, 새달 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올리게 됐다. 1시간 남짓한 공연에서 미미들은 자작곡 3곡을 부르고, ‘커피 한 잔’, ‘거짓말이야’, ‘첫사랑’ 등을 노래한다. “관객에게는 시대를 풍미한 시스터즈를 돌아보는 계기를 주는 것,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게 공연의 의미죠.”(작은 미미) “공연을 준비하면서 진짜 미미들을 찾았으니, 자신있게 2집을 내려고요. 1집에서는 뭣 모르고 호기롭게 전설이라고 했는데, 이젠 달라졌다는 뜻에서 2집은 ‘정신차렸어, 본격 1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큰 미미) 이번 공연은 미미들이 목적지로 가는 과정의 하나다. 최종 종착점은 ‘시스터즈 다큐멘터리’ 제작이다. “시스터즈들은 굉장히 매력적인 역사를 만들어냈죠. 이시스터즈는 멤버들이 출산을 번갈아가며 10년 동안 활동했고요. 이쁜 게 잘못인가, 누가 뭐 사랑해 달랬나(펄시스터즈의 ‘아저씨가 좋아요’)라고 당당하게 노래하기도 하죠.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시스터즈 전설을 맛보게 될 겁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여친 폭행한 ‘쿨’ 김성수, 결국 검찰에서…

    여친 폭행한 ‘쿨’ 김성수, 결국 검찰에서…

    서울 강남경찰서는 20대 여성을 폭행한 혐의(폭행치상)로 피소된 인기 댄스그룹 ‘쿨’ 출신의 방송인 김성수(43)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이에 따라 김씨는 검찰 추가 조사를 통해 사법처리의 수위가 판가름나게 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6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신의 자택에서 여자친구 A(29)씨를 폭행해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전날 밤 전화로 다툰 뒤 화해하기 위해 김씨 집을 찾았다가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가 ‘당장 나가라’며 골프채로 때리려고 위협하고 왼쪽 팔을 꺾었다. 이어 집을 나오다 현관에서 넘어지자 발로 허리를 밟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은 없었고 실수가 있었다.”며 일부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피소 이후 A씨와 합의했으나 폭행치상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씨는 서울 논현동에서 열린 SBS플러스 ‘컴백쇼 톱10’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보도되고 있는 점과 달리 폭행은 전혀 없었다.”면서 “A씨와 서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합의를 했다. 금전적, 물질적 합의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배려한 마음의 합의였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1994년 ‘쿨’로 데뷔했으며 2004년 결혼했으나 6년 만인 지난해 합의이혼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에서 왠 대변검사(?)…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다른 피를 타고난다? 혈흔 속 성염색체가 지목한 ‘악마’’의 정체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시던 A씨, 갑자기 사망한 이유 알고보니… 생명을 잃을 수 있게 만드는 ‘죽음의 물’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 사연 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백골로 발견된 여성 시신, 단서는 성형수술 자국? 백골의 한 풀어준 광대뼈 축소술 15) 무참하게 살해 당한 20대女…6년만에 연쇄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 CCTV가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자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8) 완전 범죄 될 뻔한 헤어드라이어 살인…범인 잡은 것은 바로…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전류반’은 못 숨겼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에서 발견된 2구의 여성 시신…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한밤중 돌연 사망하는 젊은 남자들…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의 비밀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9) 살인자의 화장품 향기…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 여자 살인사건
  •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소송] ‘2006년 vs 2009년’ 이혼시점이 핵심쟁점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소송] ‘2006년 vs 2009년’ 이혼시점이 핵심쟁점

    톱스타 서태지(본명 정현철)와 배우 이지아(본면 김지아) 간의 55억원짜리 소송의 핵심 쟁점은 이혼시기와 재산형성의 기여도, 이혼의 책임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이혼할 때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하는 것과 달리, 이지아는 이혼 후 몇년이 지나서야 이 같은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21일 서울가정법원 등에 따르면 이지아는 2009년 서태지와 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위자료 5억원과 재산분할 명목으로 50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서태지 측은 가정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2006년 미국에서 합의이혼했고, 당시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다해줬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혼이면 해소시점 애매모호 이들의 이혼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민법상 이혼 후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은 2년이기 때문이다. 위자료는 3년이다. 이 같은 제척기간으로 인해 이혼 후 2년이 지나면 청구권리가 소멸된다. 법무법인 가온 대표 신환복 변호사는 “이들의 소송으로 미뤄볼 때 법률혼이 아니라 사실혼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률혼이면 이혼시기에 관한 자료가 명확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이혼신고가 들어간 날짜가 중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들이 외국에서 동거했던 ‘사실혼’이라면 사실혼의 해소(이혼)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이들이 동거와 별거를 반복했다면 사실혼 해소 시점이 애매모호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이들이 다투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혼이라도 서태지의 주장대로 당시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해줬다는 증거와 자료가 있으면 소송이 쉽게 정리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 자료가 없다면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했다는 입증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은 재산형성의 기여도를 따져 판단한다. 서태지가 음악활동으로 일군 막대한 재산에서 이지아가 자신이 기여한 정도를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같은 이유로 서태지가 이지아에 대해 사기 등으로 맞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원 관계자는 “서태지 쪽이 이지아를 사기로 고소하는 등 형사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면서 초유의 소송으로 번질 수 있을 내비쳤다. 반면 서태지와 이지아 양쪽이 널리 알려진 연예인인 점을 감안,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전격적으로 합의할 공산도 있다. ●새달 23일 3차공판 촉각 한편 이지아 측은 지난 1월 19일 가정법원에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미 2차례의 변론준비를 거쳐 다음 달 23일 세 번째 변론준비기일이 잡혀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소송… 팬들은 감쪽같이 속았다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소송… 팬들은 감쪽같이 속았다

    톱스타 서태지(39·본명 정현철·왼쪽)와 배우 이지아(33·본명 김지아)가 법적 부부였으며 현재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지아는 지난 1월 19일 서태지를 상대로 위자료 5억원, 재산분할 50억원을 각각 요구하는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법정 대리인을 통해 3월 14일과 4월 18일 두 차례 공판을 마친 상태다. 이에 따라 다음 달 23일인 변론준비기일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서태지는 가정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 “2006년 미국에서 합의이혼했다. 당시 이지아가 요구하는 대로 위자료 재산분할을 다 해 줬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소송] ‘2006년 vs 2009년’ 이혼시점이 핵심쟁점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소송] ‘2006년 vs 2009년’ 이혼시점이 핵심쟁점

    톱스타 서태지(본명 정현철)와 배우 이지아(본면 김지아) 간의 55억원짜리 소송의 핵심 쟁점은 이혼시기와 재산형성의 기여도, 이혼의 책임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이혼할 때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하는 것과 달리, 이지아는 이혼 후 몇년이 지나서야 이 같은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21일 서울가정법원 등에 따르면 이지아는 2009년 서태지와 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위자료 5억원과 재산분할 명목으로 50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서태지 측은 가정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2006년 미국에서 합의이혼했고, 당시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다해줬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혼이면 해소시점 애매모호 이들의 이혼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민법상 이혼 후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은 2년이기 때문이다. 위자료는 3년이다. 이 같은 제척기간으로 인해 이혼 후 2년이 지나면 청구권리가 소멸된다. 법무법인 가온 대표 신환복 변호사는 “이들의 소송으로 미뤄볼 때 법률혼이 아니라 사실혼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률혼이면 이혼시기에 관한 자료가 명확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이혼신고가 들어간 날짜가 중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들이 외국에서 동거했던 ‘사실혼’이라면 사실혼의 해소(이혼)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이들이 동거와 별거를 반복했다면 사실혼 해소 시점이 애매모호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이들이 다투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혼이라도 서태지의 주장대로 당시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해줬다는 증거와 자료가 있으면 소송이 쉽게 정리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 자료가 없다면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했다는 입증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은 재산형성의 기여도를 따져 판단한다. 서태지가 음악활동으로 일군 막대한 재산에서 이지아가 자신이 기여한 정도를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같은 이유로 서태지가 이지아에 대해 사기 등으로 맞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원 관계자는 “서태지 쪽이 이지아를 사기로 고소하는 등 형사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면서 초유의 소송으로 번질 수 있을 내비쳤다. 반면 서태지와 이지아 양쪽이 널리 알려진 연예인인 점을 감안,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전격적으로 합의할 공산도 있다. ●새달 23일 3차공판 촉각 한편 이지아 측은 지난 1월 19일 가정법원에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미 2차례의 변론준비를 거쳐 다음 달 23일 세 번째 변론준비기일이 잡혀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교수부인 14일째 실종…별거상태 이혼소송중 연락 끊겨

    교수부인 14일째 실종…별거상태 이혼소송중 연락 끊겨

    대학교수인 남편과 이혼소송 중으로 별거상태에 있는 50대가 외출한 뒤 14일째 행방불명돼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섰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15일 박현숙(50)씨가 지난 2일 오후 10시 4분쯤 북구 화명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나간 뒤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는 가족들의 신고에 따라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박씨는 외출 당시 콜택시를 타고 해운대로 가 오후 10시 46분쯤 해운대 해수욕장 모 콘도 앞에서 내린 뒤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해운대 일대와 헬기까지 동원해 박씨 주거지 인근 낙동강변 등을 수색하고 동선에 따른 폐쇄회로(CC)TV 영상자료, 휴대전화 통신내역 등을 분석하고 있으나 아직 행방이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15일부터 공개수사에 나서 박씨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담긴 전단지 1만 6000여장을 만들어 배포하고 전국 경찰에 공조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3월 경남지역 모 대학 교수인 남편과 재혼한 뒤 경제적인 문제와 성격차이 등으로 같은 해 9월 합의이혼을 신청하고 11월부터 별거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자기야’ 출연 양원경-박현정 부부 결국 합의이혼

    ‘자기야’ 출연 양원경-박현정 부부 결국 합의이혼

    개그맨 양원경과 탤런트 박현정 부부가 결혼 12년만에 합의 이혼했다.  양원경·박현정 부부는 지난해 12월 서울가정법원에 협의이혼서류를 제출, 지난달 8일까지 이혼숙려기간을 가졌지만 끝내 헤어지게 됐다.  이들은 올초 협의 이혼 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원만한 해결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양원경·박형정 부부는 11살, 8살의 두 딸이 있으며 딸들에 대한 양육권과 재산은 박현정이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출연해 부부생활에 대해 털어놓으며 관심을 모았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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