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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테러수사] 지씨 범행전 친구에게 “일 치르러간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을 수사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2일 박 대표를 습격한 지충호(50)씨뿐 아니라, 습격 직후 연단에 뛰어올라 소란을 피운 박모(52)씨에 대해서도 구속수사 방침을 정했다. 지씨에게 적용된 혐의도 상해가 아닌 살인미수다. 수사본부에 대한 한나라당의 보이콧 움직임이 감지되는 가운데 합수부가 초강수를 둔 셈이다. 합수부는 이번 사건이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정치테러인지 아니면 개인의 우발적 돌출행동인지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경찰 수사 내용과 주변 정황을 바탕으로 지씨의 범행동기와 지씨·박씨간 공모 여부, 배후세력 존재 여부 등을 규명하는 게 과제로 남았다. 지씨는 경·검 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유세장에는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며 박 대표를 처음부터 지목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말했다. 하지만 지씨는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사건 당일인 20일 오전 살고 있던 인천의 친구 정모씨 집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 을지로 오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들러 유세일정을 확인한 뒤 정씨의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오후 4시쯤 신촌 유세장으로 왔다. 인천집을 떠나며 지씨는 정씨에게 “일을 치르러 간다.”고 언질을 줬다고 합수부 관계자는 전했다.지씨와 박씨 관계도 규명할 부분이다. 지씨 등은 유세일 전에 서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화내역 조회 등 증거조사에서도 아직 두명의 공모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다. 합수부도 일단 단독범행인 재물손괴죄를 적용,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씨의 범행이 끝나자마자 박씨가 난동을 피웠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둘의 공모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는 합수부는 주거지와 사무실 압수수색을 통해 이 부분을 밝힐 계획이다. 지씨에게 제3의 배후세력이 있는지도 수사대상이다. 생활보호대상자인 지씨가 소지한 고가 휴대전화 가격인 70만원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유세 당일 지씨가 4차례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4개를 왜 샀는지 등의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 수사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지씨는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진술하고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억울함만 주장하는 등 극히 ‘불량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합수본부장인 이승구 서울 서부지검장에게도 “왜 반말을 하느냐.”며 따졌다고 한다.검찰 관계자는 “지씨가 전과가 많다 보니 조사에 익숙해 애를 먹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선거가 1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 수사는 검찰의 단호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씨의 입만 바라다본 채 지지부진하게 흘러 의혹만 키울 공산이 크다.홍희경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은행강도·총기탈취 동일범

    지난 9일 서울 상봉동 H은행에 침입한 3인조 무장 강도는 지난달 25일 수방사의 총기를 탈취한 범인과 동일범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군·경 합동수사본부는 10일 사건 당시 은행의 폐쇄회로TV와 목격자 증언을 분석한 결과 수방사 총기 탈취범의 범행일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수사 중이다. 합수본부는 강도들이 사용한 소총이 수방사 초소에서 빼앗긴 것과 같은 종류인 K-2소총이며,3인조 가운데 한사람이 수방사 초소를 습격한 용의자중 1명과 같이 왼손잡이라고 밝혔다. 또 이들이 키 175㎝ 안팎에 감색 특수부대 복장을 차려입어 수방사 사건 당시 용의자의 인상 착의와 비슷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이들이 은행에 남긴 발자국도 수방사 총기탈취 사건 때 범인들이 남긴 것과 비슷했다. 군·경은 범인들이 군대 말투를 사용했고 총기를 능숙하게 다뤘으며,몸놀림이 날렵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이들이 특수훈련을 받은 군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또 이들이 도로망이 복잡한 이 지역 사정을 잘 안 것으로 봐 근거지가 중랑구나 경기도 구리·남양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범행 하루전 이들은 구리시와 연결되는 망우로 주변 LP 가스충전소에 들른 사실도 밝혀졌다. 앞서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범인 2명은 지난 9일 오전8시8분쯤 중랑구 상봉동 H은행 중랑교지점에 K-2 소총 2정을 들고 침입했다.공범 1명은 은행 밖 자동차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들은 은행 뒷문을 통해 들어간 뒤 직원 8명의 손을 끈으로 묶고 금고 열쇠를 관리하는 직원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출근하던 임모(40) 과장이 현장을목격하고 달아나자 다급해진 범인들은 현금 70여만원과 신용카드만 빼앗아 밖에 있던 자동차를 타고 달아났다. 이영표기자 tomcat@
  • 「12·12」­「5·18」 선고/피고인별 양형 이유

    ◎전두환 피고/12·12­5·17­5·18 반란 수괴/2인자역·수천억 수뢰­노태우 피고/12·12 적극 가담… 군인사 문란케해­유학성·황영시·차규헌 피고/무장병력 동원·정 총장 연행 담당­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으로서 12·12사건과 5·17,5·18사건(이하 12·12 등)의 수괴로서 군병력을 동원,군 내부질서를 파괴했으며,헌법질서를 문란케 해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했고 우리 헌정사를 크게 주름지게 한 점,군병력 동원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점,피해자 및 유족들이 지금도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군병력을 동원해 결국 대통령이 됨으로써 국민들에게 법 질서가 파괴되고 무시돼도 막강한 무력이나 권력 앞에서는 수수방관하고 결과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갖게 한 점,대통령이 된 후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일부 기업주에게 구체적인 이익을 허용하여 준 점 등,피고인이 범한 범죄 중 2종류는 법정형이 사형 뿐이고 7종류는 법정최고형이 사형이며,나머지 1종류는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형인 죄로서 우리 형법이나 군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가장 중한 죄들인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한다.집권 과정에 정당성이 결여돼 있는 마당에 대통령 재직중 경제적 안정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례를 남겼고 퇴직 후 백담사에서 상당기간 외부출입을 하지 못한채 생활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다해도 자신이 범한 죄의 법정최고형을 피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노태우◁ 12·12 등에서 모의 초기부터 깊이 개입하고 군병력을 동원하는 등 사건 2인자로서 적극 관여한 점,대통령이 된 후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고 때에 따라서 기업주들에게 구체적인 이익을 허용해줬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무력감 등을 갖게 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준 점 등,피고인이 범한 죄 중 1종류는 법정형이 사형 뿐이고,7종류는 법정최고형이 사형이며,나머지 1종류는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형인 죄로서 중형을 면키 어려우나,12·12 등에 2인자로서 관여했고 직선 대통령으로 당선돼 재임중 북방외교,유엔가입 등 상당한 업적을 남긴점 등의 정상을 고려한다. ▷유학성·황영시·차규헌◁ 12·12에 적극 가담했고,5·17의 논의부터 결정까지 깊이 관여돼 있는 점,군 인사를 문란케 한 점에서 중형을 피할 수 없다.황영시는 12·12에서 자신의 병력을 동원했고 5·17에서 강경진압 입장을 고수한 점,차규헌은 12·12 등에서 병력동원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한다. ▷최세창◁ 12·12에서 공수부대를 출동시키고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게 한 점,그 과정에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을 사망케 하는 등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장세동◁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제30경비단의 단장실을 12·12지휘부로 제공했고 직속상관인 수경사령관을 상대로 30경비단에 포탄을 장전케 하는 등,대응체제를 갖춰 저항함으로써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허화평·허삼수·이학봉◁ 12·12 등에 초기부터 깊이 관여한 점,특히 이학봉은 정승화 육참총장 및 재야인사 수사를 총지휘했고 허화평은 중요연락을 맡았으며 허삼수는 무장병력을 동원해 정총장을 연행하고 공직자 숙정을 담당한 점을 고려한다. ▷이희성·주영복◁ 사건 초기 모의에 배제됐고 당시 직분으로 인해 다소 수동적으로 가담한 점 등을 고려한다. ▷신윤희·박종규◁ 상관에게 총격을 가한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으나,직속상관의 명령을 존중하고 따르는 군 내부 질서를 고려한다. ▷정호용◁ 5·17의 초기부터 깊이 개입해 있고 특전사령관으로서 광주에 자신의 부대를 동원시키면서 5·17,5·18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 「12·12」 「5·18」 결심공판/재판부 신문내용

    5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7차 공판에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김영일 재판장은 검찰의 구형에 앞서 마지막으로 피고인을 직접 신문했다. 재판부는 전두환 피고인이 신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함에 따라 허화평 피고인부터 신문했다. 피고인 별 신문내용을 간추린다. ▷허화평 피고◁ ▲김 부장판사=보안사가 수집한 정보는 분석내용 및 대응책을 함께 묶어 상부에 보고하는게 상례 아닙니까.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대응책 등이 자동적으로 수반돼 보고됩니다. ▲김 부장판사=12·12 당시 신군부병력이 출동해 국방부까지 장악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허 피고인=저로선 잘 모르는 일입니다. ▲김 부장판사=노재현 국방장관의 결재는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까. ▲허 피고인=답변하기 곤란한 사안입니다만, 참고적으로 국방장관으로서는 12·12사건 자체가 합수본부장과 직접 관계된 일이고 따라서 사안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합수본부장과 접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제로 결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 부장판사=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하는 건 이례적인 일 아닙니까. ▲허 피고인=통상에 비춰 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5·16때 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했었나요. ▲허 피고인=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부장판사=10·26 이후 중앙정보부가 퇴락한 후 보안사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죠.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전두환 피고인이 10·26 이후 12·12까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승화 총장의 눈치를 살필 정도라고 진술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허 피고인=…. ▲김 부장판사=「K­공작계획」이라는 게 그 당시 있었죠. ▲허 피고인=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김 부장판사=80년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서리가 됨에 따라 정부조직법상 국방부장관이나 계엄사령관 등 보다 서열이 높아진 것 아닌가요. ▲허 피고인=서열은 잘 모르지만 영향력은 매우 컸던 것으로 압니다. ▷이학봉 피고◁ ▲김 부장판사=육참총장이 10·26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총장의 계엄업무 수행과정에가시적으로 큰 장애요인이 된다고 간주했습니까. ▲이 피고인=업무수행에 큰 영향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태우 피고◁ ▲김영일 부장판사=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면 12·12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줄 몰랐습니까. ▲노 피고인=내란방조 혐의가 있는 정총장을 연행하는 것은 적법하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영복 피고◁ ▲김 부장판사=당시 계엄사 산하 합수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서리까지 맡게된 후 국방부장관인 증인과의 관계가 힘들게 됐죠. ▲주 피고인=중정부장서리가 된 후에는 전 보안사령관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임무수행에 곤란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희성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사태 때 광주시민에게 몇차례 선무전단을 살포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령관 이름으로 3∼4차례 살포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선무전단은 계엄사에서 만들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 참모가 만들었는지, 다른 기관에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호용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에서 상황보고를 받기 위해서나 지휘참고 등을 위해 특전사 여단장들을 만난 적 있습니까. ▲정 피고인=제가 정식지휘 계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단장들이 저를 만나면 대충의 상황에 대해서는 얘기 했으나 지휘혼란을 막기 위해 지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그렇다면 왜 여러차례 광주에 내려갔습니까. ▲정 피고인=예하 부대가 파견돼 있는 저로서는 내려가 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서울에서 광주를 오르내린 것은 시위진압에 대한 기밀사항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까. ▲정 피고인=검찰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으나, 기밀사항을 가지고 갔다면 어딘가에 전달을 했어야 하는데 검찰조사 과정에서도 그런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광주에 갔다 오면 계엄사령관 보다 보안사령관을 먼저 찾아갔다는데 사실입니까. ▲정 피고인=사실이 아닙니다.서울에서 광주에 오르내릴 때마다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했습니다.〈박은호·김상연 기자〉 ◎검찰의 피고인별 구형 이유/전씨­최고책임자에 법정 최고형/노씨­「2인자」 고려 전씨와 차등 검찰은 5일 전두환 피고인 등 16명의 피고인에 대해 법정 최저형량 10년을 기준으로 차등해 사형까지를 구형했다고 밝혔다.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김원치 본부장(서울지검 1차장)은 피고인들에 대해 작량감경(범죄의 정상을 참작해 형을 낮추는 것) 없이 구형했지만 노태우 피고인은 상관살해 미수죄의 「미수」 부분을 고려해 법률에 따라 감경했다고 설명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은 검찰이 재량으로 감경했으며 형법에 따라 사안의 경중과 가담경위, 기여도, 사후 태도, 개인정황 등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피고인별로 차등구형 했다고 강조했다. 개인별 구형 이유를 간추린다. ◇전두환 피고인=반란 및 내란의 모든 과정에서 최고책임자로서 수괴에 해당된다. 거액의 뇌물수수를 고려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다. ◇노태우 피고인=거액의 뇌물을 수수했으나 반란 및 내란과정에서 2인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를 고려해 전 피고인과 달리 무기징역을 차등 구형한다. ◇황영시·정호용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과정에서 강경진압을 주도했다. 내란목적 살인죄의 최저형인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한다. 황씨는 12·12에도 관여했고, 정씨는 뇌물 3백억원을 수수한 사실도 감안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에 소극적으로 간여했다. 그 가담경위와 (다른 피고인과 달리 변호인이 사퇴하지 않은) 재판태도 등을 감안, 각각 징역 15년으로 작량감경했다.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12·12 및 5·18사건의 주요 계획에 대한 입안과 실행을 주도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유학성·차규헌 피고인=군 선배로서 신군부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범행에 가담했다. 차 피고인의 경우 검찰 조사에서 시인한 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한 사실을 참작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세창 피고인=3공수여단을 직접 동원해 특전사령부를 공격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했다. 하극상을 주도한 패륜적 범죄를 저질러 대표적으로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장세동피고인=30경비단을 지휘부로 제공했으나 직접 범죄의 실행에 가담한 정도가 적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신윤희·박종규 피고인=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패륜적 범죄에 속하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 점을 감안해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박준병 피고인=법정태도와 범행의 가담경위, 피동적인 가담사실을 감안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박선화 기자〉
  • 우국일씨,옛 상관 전씨에 깍듯이 인사/18차공판 이모저모

    ◎우씨,“신촌모임은 장성들 유인·격리한것”/이기창 변호사 일부신문 회견내용 부인 ○…12·12사건 당일 하오7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줄곧 함께 있었던 신현확 전 총리는 신군부측의 정승화 총장연행 재가요청과 관련,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최 전 대통령의 발언을 생생하게 진술. 최전대통령은 재가를 거절하면서 『이 친구들이(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 인사들을 지칭)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 『앞뒤가 바뀌었다.법을 무시하고 일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등 강하게 질책했다는 것. ○…이양우 변호사 등은 1시간여동안 계속된 신전총리에 대한 신문에서 『연행재가 과정에 압력과 강압은 없었다』는 등 피고인측에 유리한 진술을 이끌어낸 것을 상당한 성과로 평가. 신전총리는 『5·17비상계엄확대가 반드시 내란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총장의 연행재가는 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끝에 결정한 것』 『대통령이 연행조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며 다만 일종의 보류의사를 표명했다』고 진술하는 등 변호인의 신문에 긍정적으로 답변. 그러나 검찰신문에서는 『대통령은 불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진술,신군부측의 행위가 위법임을 분명히 했다. ○…신전총리는 윤성민 전 육참차장,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등 신군부측에 대항한 육군본부측 인사들의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답변. 윤 전 육참차장이 전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연행을 통보받고 총리공관에 있던 신전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진술한 대목에 대해 신전총리는 『그런 전화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뒤집었다.또 『육본의 지휘계통이 수경사로 옮긴 것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다』 『정총장의 연행뒤 육본측의 「진도개 하나」 발령도 통보받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등 신군부측에 유리하게 진술. ○…증인으로 출석할지 여부로 관심을 끌고 있는 최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기창 변호사가 모언론사와의 회견에서 『최전대통령이 12·12당시 정총장의 재가와 5·17계엄확대,그리고 하야때 신군부로부터 강압을 받지는 않았지만 신군부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주목. 이변호사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 모두 이변호사에게 진위를 파악하느라 한때 부산. 그러나 최전대통령으로부터 『내가 언제 신군부에게 속았다고 했느냐』고 질책을 받은 이변호사는 『「개인적으로 …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마치 최전대통령의 진술처럼 보도됐다』며 반론권을 통해 보도내용 대부분을 부인. ○…최광수 비서실장은 『최전대통령이 노태우 수경사령관을 불러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불가방침을 전했다』는 검찰진술과 관련,변호인측의 잇단 사실확인 질문을 받고 『최대통령이 노피고인을 직접 불러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고 단언해 변호인측을 무색케 했다. 노피고인은 지난 공판에서 『비상기구설치와 관련해 최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었다. ○…우국일 전 보안사 참모장은 증인석에 앉기 전 옛 상관인 전피고인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예의를갖추었으나 정작 신문이 시작되자 가장 불리한 발언을 해 눈길. 그는 12·12당시 「신촌모임」을 가진 이유는 육본측 장성들을 유인,격리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전피고인이 합수본부장을 겸임하게 되자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강압적으로 받는 등 월권행위를 했다고 진술. ○…우참모장은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자신의 일기장 두권과 메모지 등에 나타난 기록과 검찰진술이 서로 다르다는 변호인단의 지적을 받고 『검찰진술이 맞다』고 해 한동안 변호인단과 설전.신촌모임이 시작된 시각이 기록에서는 하오7시로 돼 있으나 검찰에서는 이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고 진술했던 것. 그는 『신촌모임의 시각기록은 분명히 틀리지만 다른 사안의 시각을 기록한 메모는 정확하다』고 주장해 『신빙성을 어떻게 믿느냐』며 변호인단으로부터 세찬 공박을 받기도.
  • 신·최씨가 밝힌 정 총장 연행 재가과정

    ◎“최 대통령 전씨측 재가건의 완강 거부”/전씨에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나” 질책/불가피 했다는 점 남기려 시간도 명시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1일 법정 증언에서 12·12 당시 신군부가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한 것은 직속상관에 대한 하극상이라고 진술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정총장 연행을 재가할 때 신군부측의 협박이나 강압 분위기는 없었다고 밝혔다.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를 시인했다. 신씨는 12월12일 하오 7시쯤 개각을 협의하기 위해 총리공관으로 갔다.최대통령으로부터 『조금 전에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다녀갔는데 10·26사건 관련 혐의로 정총장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며 재가를 요청해 국방부장관의 결재 없이는 재가할 수 없으니 절차를 밟아오라고 했다』고 말했다는 것.신총리는 『잘 하셨다』고 답변한 뒤 30분쯤 뒤 비서실 관계자로부터 『정총장이 연행됐다』는 보고를 들었다. 최대통령은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며 전씨에게 화를 내며 질책했다.최대통령은 즉시 경위를 알아보라고 지시,총격전 사실을 알게됐다. 하오 9시30분쯤 전두환·유학성피고인 등이 2차로 재가를 요구했다. 최대통령은 『재가를 받기 전에 행동한 것은 위법이다.국방부 장관을 데려오라』고 재가를 재차 보류했다.신총리는 『집단적인 재가요청 행위는 있을 수 없고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전씨 등이 돌아간 뒤 최대통령은 『이 친구들이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법을 무시하고 일을 처리하면 나라가 안된다고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한편 최비서실장은 『2차 재가 요청시 장성들로부터 공관을 방문하겠다는 사전연락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신총리는 13일 상오 2시30분쯤 노재현 국방장관과 통화,『총리공관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지시한 뒤 상오 3시30분쯤 노국방부장관을 데리러 국방부로 갔다.국방부 건물은 유리창이 깨지는 등 총격전의 흔적이 역력했다.노 국방장관이 한참후 정총장 연행보고서(보안사가 작성한 것)를 들고 최대통령을 찾아왔다.그는 『더 큰 혼란을 예방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각하께서 재가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건의했다.숙의 후 최대통령은 재가를 하며 「05:10 AM」이라고 명시하고 서명했다. 신씨는 재가 당시 최대통령과 함께 육본의 정식지휘계통이 와해된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신씨는 5·17과 관련,『최대통령은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결정한 건의사항 중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해산 문제를 사실상 거부했다』고 말했다. 최실장은 『최대통령이 5월18일 계엄군의 투입과 27일 광주재진입작전시 사전에 승인했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현지 지휘관이 판단할 일』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80년 7월30일 하오 6시부터 5시간 동안 청와대 본관 1층에서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작고)이 최대통령와 요담했으나 하야를 설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진술했다.〈박선화 기자〉
  • 「12·12」 「5·18」 17차공판­지상중계·이모저모

    ◎정 총장 연행 관련 대통령과 통화 못해­윤성민/신 총리엔 보고… “슬기롭게 수습하라” 지시받아­윤성민/유혈사태 우려… 장태완씨 병력출동 요청 거절­이건영/정승화·장태완씨 “전씨 불법행위 낱낱이 밝히겠다” 12·12 및 5·18사건 17차공판이 27일 상오10시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려 당시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노재현 국방부장관,장태완 수경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 12·12 관련증인 5명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측의 신문이 진행됐다. ▷윤성민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2일 하오 8시30분쯤 육본 B­2벙커에서 참모들의 보고를 통해 합수부 소속 허삼수,우경윤대령 등이 정승화 총장을 10·26사건과 관련하여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나요. ▲윤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 검사=전두환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연행에 대하여 사전이든 사후이든 보고를 받은 적 있습니까. ▲윤증인=없습니다. ▲김부장 검사=증인은 이 사실을 알고 최규하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나요. ▲윤증인=수차례시도했지만 대통령과는 통화를 못했고 최광수비서실장이 연결됐는데 최실장이 대통령과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화를 끊어 신현확 총리에게 정총장 연행사실을 보고하니 신총리가 알고 있다며 슬기롭게 수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양우 변호사=증인은 검찰측 신문과정에서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에 대해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모월간지의 「12·12 현장 육성녹음테이프」에는 증인이 이건영 3군사령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전사령관으로부터 정총장을 안전하게 모시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얘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 입니까. ▲윤증인=녹음테이프가 맞습니다. ▲이변호사=10·26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합수부가 이 사건과 관련된 정총장을 연행했으니 적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윤증인=계엄중에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려면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하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변호사=최광수 비서실장과 신현확 총리는 12·12 이후 증인과 통화한사실이 없다는데요. ▲윤증인=확실히 통화했습니다. ▲이변호사=30경비단에 있던 황영시 장군과 전화통화에서 정총장 연행에 대해 대통령재가를 받는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나요. ▲윤증인=못들었습니다. ▲정주교 변호사=정총장 연행사실을 알고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했을 때 신총리가 증인에게 말한 내용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윤증인=최대한 피해없이 지혜롭게 사태를 수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변호사=당시 통화중에 전보안사령관으로부터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를 드리고 재가를 받으려 한다는 해명이 없었습니까. ▲윤증인=전혀 없었습니다. ▲정변호사=증인이 12일 하오8시50분쯤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정총장이 잘 보호돼있으니 진도개 비상발령을 취소하라』고 말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윤증인=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잠깐 주춤하다가 결국 발령을 내렸습니다. ▲정변호사=진도개 비상발령을 내린 이유는 계엄사령관이 연행됐기 때문입니까,아니면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윤증인=정총장 연행으로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당시 증인은 박준병·백운택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구체적인 체포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반란에 가담했다는 첩보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12·12당일 변규수 육본 보안부대장을 체포한 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당시 변규수가 사건의 진행 상황을 신군부측에 보고하고 있다는 것이 첩보로 접수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체포를 건의해옴에 따라 육본 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하는 도중에 체포해 영창으로 입창시켰습니다. ▲이양우 변호사=『10·26사건에 관해 조사할 것이 있어 정총장을 연행 했다』는 전두환 사령관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이건영 3군사령관 말고 장태완 수경사령관등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했습니까. ▲윤증인=참모들에게 전달했고 장사령관에게는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김재판장=전피고인으로부터 전화로 정총장 연행사실을 들었다고 했는데 혹시 전전피고인의 지시로 합수부측 다른 사람이 전화한 것을 전피고인이 직접 전화한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윤증인=테이프에 기록된 내용처럼 전사령관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이건영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3일 상오1시50분쯤 장태완수경사령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 수기사와 26사단의 병력출동을 건의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국방부장관의 지시와 병력이 출동되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증인의 판단 때문이었습니까. ▲이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12월13일 상오6시쯤 김용휴 국방차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해서 노장관이 국방부로 들어 오라고 한다고 해서 8시쯤 들어갔다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합수부측 수사관에 의해 연행됐습니까. ▲이증인=장관이 『제들이 물어볼께 있다고 하니 가서 답변좀 해주라』고 해서 장관실에서 나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갔습니다. ▲전상석 변호사=12·12 이후 국방부장관이 한·미연합사에서 육본으로,육본에서 국방부로,다시 국방부에서 육본으로 위치를 자주 옮겼는데 그때마다 국방부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나요. ▲이증인=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김재판장=12·12 당시 합수부측에서 정총장 연행등 12·12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증인=없습니다. ▷공판 스케치◁ 12·12사건에 대한 첫 증인신문이 열린 27일 증인으로 나온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장태완수경사령관,윤성민육참차장 등 육본측 장성들은 사건발생 17년여만에 무대를 법정으로 옮겨 신군부측 피고인들과 「총성 없는」 싸움을 했다. ○…윤육참차장은 검찰신문에서 『5공 때 국방부장관까지 지냈는데도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돼 인간적으로 몹시 괴롭지만 역사앞에 진실을 밝힌다는 심정』이라고 소회를 피력. 이어 『정승화 총장 연행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재가를 얻지 못했으므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한 뒤 『언젠가는 역사적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79년 12월23일 법무부 군사감실에서 80분짜리 녹음테이프를 만들어뒀다』고 설명. ○…이양우·전상석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증인들과 막역한 사이라서 신문하는 것이 괴롭다』,『증인들이 초급장교이던 50년대초에 법무관으로 군에 있었다』는 등의 유화적인 표현으로 신문을 시작. 그러나 정작 신문에 들어가서는 5공 때 국방부장관 등의 요직을 거친 증인들의 전력을 거론하며 『기회주의자』,『정치여건에 따라 변신했다』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맹렬히 공박. 재판부는 『우격다짐식으로 증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신문은 자제해달라』고 제동. ○…정승화·장태완씨는 공판이 열리기전 기자실에 들러 『정치군인의 불법행위를 낱낱이 증언하겠다』는 「출정의 변」으로 기세를 올리기도. 정씨는 『당시 육참총장으로서 12·12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나 10·26사건을 빌미로 신군부측이 나를 제거하려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장씨도 당시 수경사령관의 임무 등을 설명하며 『변호인단이 군교범·예규 등 군사적인 지식도 없이 맹목적으로 피고인들을 변호하고 있다』고 비난. ○…재판 시작 전인 상오 9시쯤 법원 1층 로비에서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신군부측 멤버였던 김진영 당시 수경사 33경비단장에게 『이놈아,옛 상관에게인사도 안하느냐』고 호통. 장씨는 오랜만에 만난 김씨에게 먼저 눈웃음으로 인사했으나 김씨가 그냥 지나치자 소리를 지른 것. ○…재판진행을 둘러싼 변호인단의 끊임없는 불만토로가 급기야 재판부와 변호인단 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 전상석변호사가 형사소송법 규정을 들어 『지난 공판때 피고인의 신문조서 등을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결정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꼬집자 김영일재판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 안된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김재판장은 변호인단과 몇번 더 설전을 벌이다 『재판장이 열을 낸 것은 피고인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뒤 서둘러 폐정을 선언. 한편 전변호사는 공판 직후 『편파적인 재판진행을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내일은 (전두환 피고인이 수감된) 안양교도소로 가서 변론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으나 진의 여부는 불분명. ○…변호인단은 검찰이 권정달 전 보안사 정보처장과 일부 피고인들을 서울시내 호텔 등 은밀한 장소에서 대질신문해진술조서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변호인은 『5·18특별법이 제정된 후 검찰이 권씨를 비롯한 서너명을 하얏트 호텔 등지로 불러 대질신문,조서를 작성했다』며 『이를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처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
  • 정총장이 최대통령 조사 지시”/검찰,「12·12」당시 전말 공개

    ◎“김재규가 범인” 알고도 아무런 조치없어/군검찰·전씨 총리공관서 진술서 받아 지난 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내란방조 의혹에 따라 착수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조사와 관련,15일 검찰이 당시 조사를 지시한 주체와 조사 착수경위 등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지금까지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 등 신군부측이 12·12 「거사」에 앞서 최전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조사를 감행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최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김재규에게 『10월27일 새벽 4시에 비상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주는 등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전대통령은 그러나 사건발생 17년여가 지나도록 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사는 79년 12월3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2시간여동안 이뤄졌다.당시 수사기록에는 조사날짜가 12월1일로 돼 있으나 이는 날짜가 소급돼서 기재된것이다.실제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내란사건에 대한 첫 공판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조사는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정총장은 12월3일 하오 7시쯤 김재규의 공소장을 검토한 뒤 군검찰에 『최대통령이 시해사건에 대해 김계원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받은 것으로 공소장에 기록돼 있다』며 『국민들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최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술서를 받아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 전창렬 육본 검찰부장(중령)은 합수부에 수사협조를 요청,전합수본부장과 함께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을 방문해 2시간여동안 최대통령을 조사했다.이 진술서는 앞뒤쪽의 표지를 빼면 3쪽의 간략한 분량이다. 『각하께서 위독하십니다.거지철과 김재규가 언쟁끝에 총격전을 하다가 그만…』,『방안을 보니 거지철이 쓰러져 있었고 그 위에 각하가 쓰러져 계셨습니다』는 내용을 김계원으로부터 보고받았다는 진술이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공판에서 『정총장이 나를 직접 불러 「최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진술,조사착수 경위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을 폈다.〈박은호 기자〉
  • “김재규 6개월전 거사계획”/이학봉피고인/「12·12」10차공판

    ◎“정 총장 「10·26」 협조… 병력 출동령” 12·12 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제출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문서는 전씨의 지시에 따라 12월11일 이학봉 합수부 수사국장이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기사 19·20·21면〉 2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10차 공판에서 이학봉피고인은 이같이 진술하고 『정총장이 10·26 당일 김재규와 함께 육본으로 온 뒤 김재규의 요청에 따라 1,3군에 비상을 발령하고 20사단과 9공수여단에 출동명령을 내리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재규는 10·26을 79년 4월에 모의했으며,거사가 성공할 경우 계엄사령부를 「혁명위원회」로 바꿔 자신이 의장,최규하 총리를 부의장,노재현 국방장관이나 정승화 육참총장을 위원장에 앉히려 했다』고 진술했다. 유학성·황영시피고인은 『12·12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육본측이 선제공격을 기도하는 등 반란행위를 주도함에 따라 정당한 대응조치로 신군부측 병력을 출동시켰다』고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이날 공판에서는 유학성·황영시·거규헌·이학봉·박준병·최세창피고인 등 6명에 대한 반대신문이 진행됐다.전두환·노태우피고인은 9차 공판에서 반대신문을 마쳤다. 나머지 장세동·허화평·허삼수·박종규·신윤희피고인 등에 대한 11차 공판은 다음달 3일 상오 10시에 열린다.〈박선화 기자〉
  • “정총장 내란방조 4가지 혐의”/합수부「연행 재가서」내용 밝혀져

    ◎「시해 현장」 대기·총성파악 미흡 등 적시/「유신비판론」 등 관련 주변향도 담아 12·12 당시 합수부가 작성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문서의 실체가 27일 10차 공판에서 밝혀졌다. 당시 합수부 수사국장이던 이학봉 피고인은 이날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자신이 이를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이피고인은 지난 79년 12월6일 전두환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재가문서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앞서 10월28일과 11월8일,이피고인은 전본부장에게 정총장의 내란방조 혐의에 대한 수사내용을 보고했다.『정총장의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건의도 곁들였다. 문서는 12월11일 작성했다.형식은 A4 용지 크기에 「정총장 연행의 필요성에 관한 보고서」라는 제목을 붙였다.밑에는 「합동수사본부」라고 적고,표지 오른쪽 상단에 대통령의 결재란을 만들었다.보고서는 12∼13쪽 분량으로 글씨를 크게 써 보고시간이 15분 정도 걸리도록 했다. 목차는 ▲정총장의 내란방조 혐의점 ▲군 내부의 동향 ▲김재규사건 공판 관련 동향 ▲합수부의 의견 순이었다. 내란방조의 주요 내용은 정총장의 박정희대통령 시해현장 대기,총성파악 미흡,불법 병력동원,김재규 구속수사시 미온적 행동 등이다. 정총장의 유신비판 발언과 3김씨 비토론에 대한 군부내 동향,외신이 본 군부내 쿠데타 동조세력 가능성,세간의 정총장 의혹에 대한 반향도 담았다. 결론적으로 정총장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는 의견을 붙였다. 12일 하오 6시30분 전본부장이 이를 최대통령에게 보고했다.전본부장이 내용을 하나 하나 설명하면 최대통령이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고 이피고인은 진술했다.〈박선화 기자〉
  • “지도자 우유부단이 무력충돌야기”/황영시씨,최전대통령 정면 비판

    ◎정씨 연행 가·부 “어정쩡”… 화 불러 황영시 피고인이 27일 공판에서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비판했다.10차례 공판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최전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하기는 처음이다. 황피고인은 이날 정영일변호사가 반대신문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진술을 했다. 비난의 초점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데 대해 최대통령이 재가를 늦춘데 맞춰졌다. 황피고인은 먼저 최대통령이 합동수사본부의 정총장 연행이 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면,당일 하오 7시40분쯤 전두환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연행사실을 보고받은 즉시 「석방하라」고 명령했으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을 것이라고 진술했다.사후 재가도 적법했다는 논리의 연장이다. 반대로 정총장의 연행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소재불명인 노재현 국방부장관만을 찾을게 아니라,대신 김용휴 국방부차관을 불러 배석시켜 재가하면 됐을 일이라고 주장했다.당시 김차관은 국방부에서 자리를 지켰지만 노장관은 단국대·한미연합사 등에 은신했다고 비난했다. 비판의 저변에는 군통수권자인 최대통령이 제대로 했다면 당시 「불법적인」 정총장 연행과 군 지휘체계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는 불만이 깔려있다.최대통령이 재가를 미룸으로써 합수부측과 정총장 계열의 군부가 무력으로 충돌하도록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황피고인은 12·12를 지켜보며 국가 위기시 지도자의 결단력과 위기 대처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절감했다고 덧붙였다.〈박선화 기자〉
  • 5공 전사서 드러난 12·12사건 전모

    ◎전씨,정 총장 연행 11월부터 준비 지시/최 전 대통령 국방부·육본 점령후도 재가 거부/12월14일 전씨·글라이스틴 미 대사 극비회담 제5공화국 집권초기 보안사령부 주관으로 편찬돼 20년간 공개가 금지됐던 「제5공화국 전사」중 12·12사건편이 19일 처음 공개됐다.정승화 육참총장 연행계획수립시점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내용을 요약한다. ▲12·12사건 준비=전두환 합수본부장은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위해 한달 전인 11월 중순부터 준비를 지시했다.전합수본부장은 보안사 소속 측근인 허화평·허삼수·이학봉씨 등과 정총장 연행계획을 세우면서 비밀리에 참가요원을 한사람씩 불러 임무를 부여하며 준비를 시켰다. 12월8일 보안사를 방문한 백운택 소장(당시 71훈련단장)에게 『지금은 안보적 차원에서 비장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인데 정총장이 오히려 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해 자신의 경질설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정총장 연행과정=총장 부관인 이재천 소령이 국방장관공관의 전화번호 5056중 50까지 돌리는 순간 등 뒤에서합수부요원이 쏜 총을 맞았다.최규하 대통령은 12월13일 새벽 신군부측 병력에 의해 국방부와 육본이 점령된 뒤에도 『국방장관의 재가 없이는 정총장의 연행을 재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경사상황실장 김진선 중령(93년 대장예편)의 12·12 당시 행적=김중령은 합수부측의 병력동원상황을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에게 과장보고해 진압작전을 수행하는 데 판단을 흐리게 했다. ▲26사단 보안부대장 김현 중령의 주공작전=육본측이 배정도 제26사단장에게 병력동원을 요청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김현 중령이 밖에서 사단장실로 통하는 전화선을 끊고 사단장에게 양주를 먹여 잠재웠다. ▲전두환과 글라이스틴 미대사의 극비회담(79년 12월14일·미대사관)=전 합수본부장은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개입됐을지 모른다는 세간의 소문을 전하며 글라이스틴대사를 심리적으로 압박했다.글라이스틴대사는 『이 사건이 전례가 돼 군의 규율을 저해할까 우려된다』며 12·12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전합수본부장은 『10·26 직전 김재규가대사를 만났다는 설이 있어 미국의 개입설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나에게 작용해서 10·26사태 처리를 엄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있기 때문에 정총장에 대한 조사를 분명히 해 흑백을 가려야만 미국에 대한 의혹도 풀릴 것』이라며 12·12를 정당한 수사절차로 수용하라고 은근히 압박했다.〈정리=함혜리 기자〉
  • 「12·12」 3차공판­직접신문 현장중계

    ◎장세동씨 “이희성씨에 육본 병력동원 저지 부탁”/「경복궁 모임」 영광으로 알고 장소제공­장세동씨/12·12때 병력출동 거부… 후에 전씨가 따져­박준병씨/합수본부장 지시에 따라 직속상관 체포­최세창씨/허삼수씨 “12월9일 전씨 총장연행계획 수립 지시”/9일 저녁 총장공판 상황 보려 사전답사­허삼수씨/재가받으러 간뒤 30분만에 연행 명령 하달­이학봉씨/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전씨 등 4명 사살지시­신윤희씨 ◆DB편집자주:본문생략 KHM­960326­06­01∼03 참조
  • 12·12­율곡비리수사 이모저모

    ◎경복궁 모임/최광수·김정렬씨도 참석 예정/이희성 “광주 병력투입은 정당” 강변/천변호사 “김전수석 큰일할 빼짱 없다” 12·12및 5·18수사는 조사가 거듭될수록 거사의 산실이었던 「경복궁모임」의 성격이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율곡비리수사도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 조사가 진전을 보이면서 활기를 더하고 있다. ▷12·12수사◁ ○…11일 상오 10시15분 검찰에 출두했던 5·18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가 35시간여의 조사를 마치고 12일 하오 9시40분 귀가. 이씨는 조사내용을 묻는 보도진들의 질문에 『5·18관련 군명령계통과 병력출동 상황등을 조사받았다』고 말해 검찰이 5·18사건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했다는 분석을 입증. 이씨는 조사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다가 「 5·18 관련 조사를 받았느냐」고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그렇다』며 시인. 그러나 이씨는 『광주지역에 병력을 투입한 것은 정당한 조치였으며 5·17비상계업 확대조치는 당시 대통령이 대답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 ○…이어 하오 9시50분 쯤에는 정승화 전육참총장이 소환된지 4시간여만에 귀가. 정씨는 「최규하 전대통령이 검찰측의 방문조사를 거절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번 사건은 전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사건인 만큼 「대통령으로서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겠다」던 대통령 취임선서문의 정신을 존중,진실을 증언했으면 한다』고 주문. 정씨는 또 「신군부측 인사와 대질신문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어느 누가 감히나와 대질신문을 할 수 있단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이에앞서 장세동 전안기부장은 이날 상오 9시50분쯤 검찰청사에 출두,미리 준비한 발표문을 꺼내 낭독. 장씨는 발표문에서 『정승화 전육참총장은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 와 함께한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자신은 물론 군의 명예를 저버렸다』고 주장.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2일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12·12사건 당시 신군부의 지휘부였던 「경복궁모임」에는 전 합수본부장,노태우 9사단장 등 지금까지 알려진 군인사들 외에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김정렬 전국방장관(87년 국무총리 역임)도 참석할 예정이었던 사실을 확인.그러나 최전실장과 김전장관은 사정상 불참한 것으로 밝혀졌다. ▷율곡비리수사◁ ○…검찰은 11일 밤과 12일 새벽 사이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과 김용호 GD사 한국지사장 및 김송웅 신한시스템사장 등 3명의 자택과 사무실등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 ○…검찰은 김전수석이 자진해서 귀국한 것과 관련,김전수석과 검찰사이에 경미한 사법처리 약속을 포함한 모종의 「묵계」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크게 불쾌감을 표명. 안강민 중수부장은 『검찰이 장사를 하는 곳도 아니고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는 기관인데 어떻게 피의자와 흥정을 할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못믿겠으면 김전수석의 변호인인 천기흥 변호사를 통해 확인해보라』며 「묵계설」을 강력히 부인. ○…김전수석의 자수서를 대신 제출한천기흥변호사는 이날 김씨의 신병처리 방향등과 관련,『검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실망할 것』이라고 언급. 천변호사는 또 『김수석은 그렇게 큰일을 벌일 베짱이 안된다』면서 『김씨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은행 개인금고에서 인출해간 것은 비밀문서가 아닌 자녀들 명의의 저금통장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해명.◎안양교도소 표정/단식 10일 맞은 전씨 모습 초췌/측근에 백담사 간 부인안부 물어 ○…단식 열흘째를 맞은 전두환전대통령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5공의 정통성을 지켜야 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게 측근들의 설명.따라서 단식을 그만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담담한 표정에 오히려 백담사에 가 있는 부인 이순자 여사의 안부를 물었다고 소개. 이날 안양구치소에서 전씨를 면회한 이양우 변호사는 『그분의 용태가 눈에 띄게 초췌해 졌다』고 전했다.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기력이 쇠잔해 접견시간도 1∼2시간에서 30∼40분으로 줄었다고 전했다.이변호사는 전씨가 쓰러지는 상황을 각오하고 있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 최 전대통령 「권총위협 목격」 논란

    「수경사출신 최병수씨 김광해씨 진술 반박/“당시 청와대 경비… 사건현장과는 거리”­최씨/“최씨 목격사실 부인할것” 미묘한 여운­전씨 12·12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에 대한 연행재가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권총으로 협박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최병수 당시 수경사 대위(현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건설관)는 12일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에서 『터무니없는 사실무근』이라며 목격사실을 전면부인했다. 반면 최씨의 「권총협박목격담」을 전해 들었다고 지난주 검찰에서 진술한 김광해씨(당시 하소곤 육본작전참모 보좌관)는 이날 이와 관련,『최씨에게는 전화연락이 되더라도 목격사실 자체를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부터 장담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다음은 최씨와의 일문일답. ­전씨가 최전대통령을 권총으로 협박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12·12당시 총리공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따라서 그같은 장면을 보지도,듣지도 못했다. ­사건당시 어디에 있었나. ▲수경사 소속으로 청와대외곽경비를 서기 위해 파견나가 있었던 것같다.청와대경비를 서면서 총리공관쪽으로 근무지를 이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다시 말하지만 사건현장과는 분명히 동떨어져 있었다. ­「권총협박」사실을 공표한 김광해씨는 아는 인물인가.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봤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81년 예편하기 전에 동해경비사령부에 근무했는데 김씨도 이때 함께 근무하면서 내 이름을 익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검찰로부터 연락이 있었나.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었다.만약 김씨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됐다면 귀국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겠나.
  • 검찰수사 「5·18」로 확대 안팎

    ◎「12·12 군사반란」 규명 마무리 정면/피의자 대부분 조사… 「상당한 진척」 관측/두 사건 연계… 핵심 주모자 구속 불가피 12·12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든 느낌이다.검찰은 11일부터 5·18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소환했다.12·12사건의 수사를 5·18로 확대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 3일 전두환씨를 구속하면서 지금까지 소환조사한 12·12사건 관련자는 전두환·노태우씨를 포함해 모두 37명이다. 이 가운데 20명은 12·12사건과 관련한 피고소·고발인이며 2명은 5·18사건의 피의자다.나머지 15명은 참고인이다. 12·12사건의 남은 조사 대상자인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은 12일 소환될 예정이다.당시 공수여단장으로 국외 체류중인 박희도·장기오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최세창씨의 출두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수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않을 전망이다. 또 아직 출두하지 않는 최규하 전대통령도 5·18사건과 병합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당분간 절충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검찰은12·12사건의 16년째이자 전씨의 첫번째 구속만기일인 12일까지 12·12사건 관련자를 대부분 소환·조사한 셈이다. 이러한 수사진척에 따라 검찰은 5·18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소환조사의 결과를 분류·분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피의자들을 어떻게 사법처리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다. 검찰의 당초 의지대로라면 피의자들은 대부분 반란죄 이외에도 내란죄의 적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12·12사건과 5·18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방향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사의 강도로 미루어볼 때 12·12사건의 핵심 주모자인 「경복궁 모임」 참가자와 「보안사팀」은 반란죄와 내란죄의 각 죄목을 적용받아 구속될 것이 불가피해보인다. 또 총장공관 점거,직속 상관 체포등을 주도한 피의자들도 구속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관련자 모두를 구속할 지 선별처리할 지 등의 사법처리 수위를 예상하는 것은 쉽지않다.아직 5·18수사와 관련지어 최종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두 사건이 동일한 사안이라면 구속자수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이는 정치적 조율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논란이 없는 전씨에 대해서는 구속만기일인 22일쯤 반란·내란죄를 적용해 기소한다는 방침이다.노씨도 이때 같은 죄목으로 추가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전씨 측근들이 법정에서 대결한다는 계획아래 검찰의 소환에 의외로 순순히 응하고 있어 22일쯤까지는 내란죄가 핵심사안인 5·18수사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대로라면 전씨를 기소할 때 핵심주모자들도 함께 구속기소될 가능성도 많다. ◎12·12 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 총장 연행계획 수립 주도­이학봉씨/「비상계엄 확대」 군회의 주재­정영복씨/총리공관 경호대 무장해제­정동호씨/5·18때 광주에 군출동 지시­이희성씨 12·12 및 5·18사건과 관련,11일 검찰에 소환된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2과장 겸 합수부 수사1국장 등 6명은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거나 「거사」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5공 때 출세가도를 달렸던 인물들이다. 이씨는 12·12사건 당일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명령을 받아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과 함께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연행계획 수립을 주도,군사반란을 성공으로 이끈 1등 공신이다.그는 80년 5·17 당시에도 정치인·재야인사·학생 등 소요 배후조종 혐의자와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의 검거대상 선정 및 검거까지 담당,신군부세력의 「집권 시나리오」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5공 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안기부 2차장 등을 역임하고 13대 민정당 공천으로 당선됐으나 89년 5공청산 때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정동호 당시 청와대경호실장 직무대리는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집무실인 총리공관을 경비하던 육군 특별경호대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고 청와대경호실병력으로 대체,최대통령과 군수뇌부와의 접촉을 차단시킴으로써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그는 86년 육군 참모차장 때 「국회 국방위 회식사건」으로 예편한 뒤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에 진출했으나 지난 93년 공직자 재산공개 때 부동산 투기혐의 등으로 민자당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 주영복 전국방장관은 12·12가 신군부측의 승리로 끝난 직후인 12월15일 공군참모총장에서 예편한 지 8개월만에 국방장관에 기용됐다.그는 5·17당시 소집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통과시킨 후 이의 재가를 최전대통령에게 건의했다.내무장관·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신군부측에 회유돼 12·12직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다.그는 5·17비상계엄 확대조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당시 병력출동 지시를 내렸다.교통부장관·주택공사이사장 등을 지냈다.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은 13일 새벽 신군부에 의해 군수뇌부들과 함께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곧바로 신군부측으로 전향했다.합참의장·국방장관·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윤호 당시 육군보병학교장은 12일 밤 신군부측의 연락을 받고 급거 상경,신군부 대변인자격으로 13일 상오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등 미국 관리들과 접촉하고 다음 날 전합수본부장과 글라이스틴대사와의 회동을 주선했다.그는 12·12 직후 1군단장을 거쳐 1군사령관·합참의장·석탄공사 이사장·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 「12·12 핵심부분」 접근하는 검찰

    ◎「반란」 매듭단계… 「내란」 입증에 박차/「보안사팀」 곧 소환… 「사전계획」유무 규명/「대통령에 협박」 최규하씨 증언에 승부 검찰이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출두통보와 함께 12·12사건 재수사가 점차 핵심부인 내란죄 입증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검찰은 유학성씨 등에 이어 8일에도 차규헌·김진영씨등 경복궁모임의 핵심대상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다음주부터는 내란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전대통령과 이른바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검찰의 이번 12·12 및 5·18 재수사가 신군부측의 반란죄에 그친 지난해 수사와는 달리 내란죄까지 규명하는 데 최종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검찰의 재수사가 핵심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은 반란죄에 이어 내란죄를 입증할 핵심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도 의미한다. 반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는 이미 소환되고 있는 「경복궁모임」 참가자들이고 내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란 대통령 재가시 협박여부를 증언해줄 최전대통령과 정권창출을 위한 장기계획의 실존여부를 확인해줄 이른바 「보안사팀」이다.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경복궁모임」에 대한 핵심인물인 유학성·차규헌·김진영씨등에 이어 조만간 장세동·박희도씨등 나머지 핵심인물에 대한 조사를 끝내면 「경복궁모임」을 중심으로 한 반란행위 수사는 일단락된다. 검찰은 반란죄→내란죄라는 수사순서에 따라 내주부터는 내란죄을 입증할 핵심인물인 최전대통령과 「보안사팀」에 대한 직접조사에 들어간다. 반란죄 조사에서 전두환씨에 대한 조사가 먼저였듯이 이번에도 7일 전씨에 대한 2차조사가 내란죄 수사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보안사팀」은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보안사 인사처장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허삼수,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이학봉,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세간에는 이들이 12·12사건은 물론 5공화국을 탄생시키는 장기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조사에서 장기계획여부를 확인하고 최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강압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면 내란죄을입증할 수 있다. 참모총장에 대한 강제연행과 무단병력동원이 군의 명령계통을 전면부인한 반란죄라면 대통령에 대한 강압은 국정을 무시한 내란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에는 별다른 기대를 걸 수 없는 형편이다. 조사대상자 가운데 허화평·허삼수씨는 소환조사가 쉽지 않은 현역 국회의원신분인데다 소환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장기계획여부에 관해 부인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수사기법에만 국한시킨다면 이번 검찰수사의 최대승부처는 최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다. 대통령에 대한 강압여부를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정확하게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이 바로 최전대통령 자신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최전대통령측은 『일방적인 과거부정의 상황에서는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조사를 계속 회피하고 있어 검찰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12·12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총장연행 재가」 강요­차규헌씨/육본 수뇌부 무장해제­신윤희씨/「경복궁 모임」 참여 핵심­김진영씨/병력 출동… 중앙청 점거­구창회씨 12·12사건과 관련,8일 검찰에 소환된 5명의 참고인 가운데 차규헌 당시 수도군단장은 거사를 모의한 「경복궁모임」의 핵심 멤버.사건 당일인 12일 하오 9시30분 최규하 전대통령이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해 재가를 거부하자 전두환 합수본부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 등과 함께 대통령관저인 총리공관을 찾아가 최전대통령에게 재가를 강요했다.그는 최전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하자 경복궁의 30경비단으로 돌아와 병력을 동원,육군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차씨는 거사가 성공한 뒤 군사령관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했다.국보위 위원과 교통부장관(86∼88년)을 지냈으나 골프장 내인가관련 뇌물수수로 89년 구속됐다가 91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은 장세동 30경비단장과 함께 대령급으로 경복궁모임에 참여한 전씨의 핵심측근.5·6공 때 정치군인의 대표격으로 꼽혔으며 수방사령관·교육사령관·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 참모총장에 올랐다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93년 3월 하나회 숙정 「1호」로 전역조치됐다. 신윤희 당시 수경사 헌병단부단장은 지난 4일 소환,조사를 받은 조홍 당시 헌병단장과 함께 「거사」다음날인 13일 상오 3시40분 수경사 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시킨 뒤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했다.신씨는 수방사 헌병단장을 거쳐 헌병감에 올랐다가 4년전 예편했다. 구창회 9사단 참모장은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의 지시로 13일 상오 1시30분 전방에 주둔하던 9사단 29연대 병력을 출동시켜 중앙청을 점거하고 신군부 반대진영의 병력동원을 저지했다.노씨의 군맥인 「9·9인맥」의 핵심인 구씨는 6공 때 수방사령관과 보안사령관을 역임했다. 이날 소환된 5명 가운데 이건영 당시 3군사령관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전두환씨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에 대항해 병력을 동원,저지하려다 80년 강제예편된 피해자측인물이다.그는 한국마사회장을 거쳐 14대 총선 때 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했다가 신한국당으로 옮겼다.
  • 최규하씨 직접 조사 배경과 내용

    ◎신군부 「군사반란·내란」 혐의 확증잡기/「정 총장연행 재가」 강압여부에 초점/「사전반란모의」 인지·묵인 등도 규명 검찰이 12·12와 5·18사건에서의 권부동향과 사태추이를 가장 잘 파악했을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를 이번주 안에 벌이기로 결정했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7일 『최전대통령측에서 검찰의 조사요청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면서 『우선 이번주 안으로 일방적으로라도 통보를 한 뒤 수사팀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이처럼 최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전두환 전대통령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과 내란혐의를 밝혀내는 데 가장 결정적인 증언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미 전전대통령을 구속하는 성과를 이루고도 최전대통령을 직접조사하지 않을 경우 군사반란 등의 혐의를 입증하거나 공소유지에 지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재수사에 대한 의미희석,불충분한 수사라는 국민과 야권 등의 비난공세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번 12·12와 5·18사건 수사와 같이 전직대통령의 예우를 고려,서면조사라는 미온적인 조사방법을 택해 답변을 듣지 못한 만큼 이번에는 방문조사라는 「정공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최전대통령의 직접 진술을 통하지 않고서는 12·12사건에 대한 반란혐의을 확증하고 12·12와 5·18사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내란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 검찰의 현상황이다. 따라서 검찰의 최전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초점은 우선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 재가과정에서 신군부측으로부터 강압을 받았느냐는 데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6일 소환조사를 받은 하소곤 육본작전참모부장의 보좌관이었던 김광해씨(중령예편)가 『합수부측 중대장 최모대위로부터 「전보안사령관이 재가를 받을 당시 최전대통령의 면전에서 권총을 휘두르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을 중시하고 있다. 고소·고발인들은 고소장에 『재가 당시 총리공관에서 전합수본부장 등이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지난해 12·12사건 발표 때 『전합수본부장 등 신군부측이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강제로 연행,정계엄사령관의 연행을 승인받은 뒤 최전대통령으로부터 사후재가를 받으면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사실만을 인정하고 총기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못했다. 따라서 검찰은 신군부측의 내란혐의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김씨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최전대통령의 진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검찰은 이밖에 최전대통령을 상대로 신군부측의 사전반란모의를 파악하고도 묵인했는지,5·17 비상계엄전국확대 재가경위와 8·16 하야 때 강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한편 검찰은 최전대통령이 지난번처럼 『재임중 공적행위에 대해 조사를 받고 해명하는 것은 후임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사를 거부할 경우 별다른 방안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 12·12당시 박준병·고명승씨 역할

    ◎박주병­노국방에 「정총장 연행」 결재 강요/고명승씨는 총리공관 경호대 무장해제/하나회 주요멤버·대예편 등 공통점 박준병 자민련의원(62)과 고명승씨(60)는 검찰이 12·12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한 뒤 처음으로 소환한 하나회의 핵심 회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준병씨는 79년 12월 12·12사건 당시 수도권인 성남 육군 종합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의 사단장이었다. 육사 12기 가운데 선두주자였던 박의원은 당시 육사 선배이자 하나회 선배였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연락을 받고 경복궁내 수경사 30경비단 모임에 참가했다. 박의원은 이어 신군부측과 육군본부측의 무력충돌이 일어나자 자신이 지휘하는 20사단 참모장에게 전화로 자신의 육성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시하였다. 그가 지휘하던 20사단 61연대 병력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이후 서울 장충동으로 출동했었다. 박의원은 보안사에서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정승화총장 연행문서에 결재하라고 강요한 인사 가운데 한사람이기도 하다. 박의원은 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될 때 주요 군 지휘관회의에서 지지발언을 한뒤 5월21일 20사단 병력을 이끌고 광주로 출동해 진압 작전을 지휘,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박의원은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반란모의 참여 및 주요임무종사·불법진퇴·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 미수·초병살해등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박의원은 81년 7월∼84년 7월까지 국군보안사령관을 역임하고 84년 대장으로 예편,고향인 충북 옥천 영동 보은 지구에서 12·13·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지난 10월 민자당을 탈당해 자민련으로 옮겼다. 육사 15기인 고명승씨는 12·12사건 당시 대령으로 청와대 경호실 작전담당관 겸 상황실장이었다. 고씨는 12·12사건 당일 신군부측이 정총장 연행에 대한 대통령 결재를 받는 동안 외부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는 당시 경복궁에 주둔하고 있던 경호실 55경비대대 3개제대,101경비단 1개소대 병력을 무단 출동시켜 총리공관을 경비하고 있던 구정길 총리공관 특별경비대장과 특별경호대 헌병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시키고 총리공관을 장악하였다. 이때문에 지난해 검찰의 12·12사건 수사에서 반란 주요임무 종사죄에 대해 집중조사를 받았다. 고씨는 이후 80년 청와대 경호실차장,83년 백마사단장,85년 수도방위사령관,86년 국군보안사령관 등 군요직을 두루거친 뒤 89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병석의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쓴「휠체어에 사랑을 싣고」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2년부터 민자당 전북 부안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시 작점참모부장 보좌관 김광해씨 문답/“「권총위협」 작전참가 대가 들려줘”/총리공관 점령뒤 창문통해 현장 목격 12·12당시 반란군측의 총격으로 부상을 당한 하소곤 당시 육본작전참모부장의 보좌관이었던 김광해씨(52·「12·12쿠데타진상규명위원회」간사)는 6일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뒤 『합수부측이 총리공관을 장악했을 때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이 권총을 휘두르며 최규하전대통령을 협박하는 장면을 목격한 증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목격자의 신원은. ▲당시 총리공관 접수작전에참가했던 육사출신의 최모대위다.소속은 30경비단인지,101경비단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당시 중대장이었다. ­최대위로부터 당시 상황을 전해듣게 된 경위는. ▲동해경비사령부 정훈참모로 근무하던 80년말∼81년초 이 부대로 전입한 최대위가 찾아와 「참모님도 12·12의 피해자라고 들었다.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목격담을 들려줬다. ­당시 최대위가 말한 내용은. ▲총리공관을 점령한 뒤 창문을 통해 전씨가 최전대통령을 협박하는 장면을 보았다며 이처럼 군의 명예가 실추된 상황에서 더이상 군생활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전씨가 어떻게 협박했다고 했나. ▲심하게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고 들었다.자세한 것은 검찰조사에서 진술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총을 사용했나. ▲군인이 협박하려면 뭘로 하겠나.최대위 말로는 전씨가 대통령 면전에서 권총을 꺼내 휘둘렀으며 대통령은 꼼짝도 못하더라고 했다. ­최대위는 지금 어디있나. ▲81년 제대해 사무관으로 임용됐다.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으나 밝히기는 곤란하다.
  • “최 대통령에 정총장 연행 재가 강요 전씨,권총위협 했다”

    ◎“합수부 중대장이 목격”/당시 육본참모부장 김광해 보좌관 진술/“검찰 사실일땐 내란 입증 결정적 증거” 12·12사건 당시 전두환합수본부장 등 신군부측이 정승화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해 최규하전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과정에서 최전대통령을 권총으로 위협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같은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12·12가 명백한 내란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6일 「12·12 쿠데타 진상규명위원회」 간사이자 당시 하소곤육본작전참모부장의 보좌관이었던 김광해씨(52·중령 예편)에 대한 소환 조사에서 이같은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80년말∼81년초 동해경비사령부 정훈참모로 근무할 때 전입해 온 최모대위로부터 「합수부측 중대장으로 총리공관을 장악했을 때 창문을 통해 전합수본부장이 최전대통령의 면전에서 권총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김씨는 또 『최모대위는 81년 제대,사무관으로 임용됐으며 지금이라도 찾을 수는 있으나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김씨의 진술에 대한 진위를 가리기 위해 빠른 시일안에 최전대위의 신병을 확보,조사할 방침』이라면서 『김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12·12사건은 군사반란이면서 정권찬탈을 목적으로 한 내란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번 12·12사건 수사 때 「신군부측이 정계엄사령관에 대한 연행재가를 받을 때 권총을 차고 있었다」는 고소·고발인들의 주장에 대해 총기소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으며 강압적인 분위기였다는 사실만 확인했다고 밝혔었다. 한편 수사본부는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관련,『최전대통령이 지병을 앓고 있는 점을 감안해 소환조사 보다는 조만간 수사팀을 최전대통령의 자택에 보내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이와 함께 이날 「경복궁 모임」의 핵심인물인 당시 20사단장이었던 자민련의 박준병의원과 대통령경호실 작전담당관 고명승씨,총리공관 특별경호대장 구정길씨 등 3명을 소환,조사했다. 수사본부는 박의원을 상대로 경복궁모임에 참석하게 된 경위와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정계엄사령관의 연행에 대한 승인을 받고 최전대통령에게 재가를 받는 과정에서 총기를 휴대했거나 강요했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당시 주동세력에 합류,총리공관의 출입을 통제했던 고씨와 총리공관의 경호를 맡았던 구씨에게는 최전대통령에게 신군부측이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는지를 신문했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규하 전대통령의 직접조사와 관련,『이번주안에 최전대통령측에 통보,수사팀을 보내 방문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최전대통령으로부터 특별히 조사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단 통보를 한 뒤 조사가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수사팀을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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