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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침몰] 해경 둘러싼 10가지 의혹

    [세월호 침몰] 해경 둘러싼 10가지 의혹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수색 작업을 총괄하는 해양경찰이 사고 초기부터 총체적인 부실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해경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이른바 ‘골든타임’이 허비됐고, 민간잠수업체 언딘을 먼저 투입하기 위해 해군의 잠수를 막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을 유치장이 아닌 경찰 집에서 재운 사실도 드러났다. 많은 해경들이 구조·수색을 위해 17일째 거친 바다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해경의 미심쩍은 행태들이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연일 쏟아지고 있는 각종 의혹들은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풀어야 할 대목이다. 해경을 둘러싼 10가지 의혹에 대해 짚어봤다. 1. 하나마나 관제… 사고 신고접수 때까지 해역 진입 몰라 세월호 침몰 당시 ‘골든타임’(재난 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효시간)을 허비한 배경에는 기본적인 관제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은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자리 잡고 있다. 사고 신고가 119와 제주VTS, 해경 상황실 등을 거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으로, 해경의 교신 절차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달 16일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8시 48분. 하지만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진도VTS가 신고를 정식으로 접수한 것은 9시 6분이었다. 여객선은 특정 해역에 들어설 때 관할 VTS에 보고하고 관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합동수사본부가 공개한 진도VTS 교신 녹취록에는 세월호가 진도 해역 진입을 보고했다는 내용이 없다. 당시 세월호가 목적지 관할인 제주VTS에 교신 채널을 맞춰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무원의 첫 신고도 제주VTS로 접수됐다. 정작 진도VTS는 신고가 접수될 때까지 세월호가 관할 해역에 들어왔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관제사 자격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항만청VTS 관제사는 5급 이상 항해사 자격에 1년 이상 항해 경력이 있어야 하고 퇴직할 때까지 관제 업무만 맡는다. 반면 해경VTS 관제사는 2~3년마다 순환 보직을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 민간업체 언딘 우선 투입… 해군·민간잠수사 접근 막아 세월호 실종자 수색 구조작업에 민간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가 참여하는 과정에도 해경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국방부가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침몰 사고 이튿날인 지난 17일 오전 해군 특수요원들이 사고 해역에 대기했지만 해경이 ‘언딘이 우선 잠수해야 한다’며 현장 접근을 통제했다”고 밝혀 특혜 논란이 증폭됐다. 국방부는 파문이 커지자 “국회 제출 자료가 잘못 작성됐다”면서 “해경이 잠수 효율성을 위해 잠수부들의 경험 등을 고려해 민·관·군 잠수부들의 잠수 순서를 결정했을 뿐 해군 요원의 잠수를 막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앞서 민간 잠수부들도 “해경이 우리의 입수는 통제하면서 언딘과 수색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또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언딘과 구난 계약을 맺는 과정에도 해경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청해진해운 측은 애초 10년간 거래한 인천의 H 구난업체에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오후 전화해 “세월호 침몰 현장에 구조요원과 장비를 급파해 달라”고 구두 요청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언딘과 계약을 했다”며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해경이 언딘을 청해진해운에 소개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3. 당직함 출동에 22분 허비… 해상사고 매뉴얼 있긴 있나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해상 사고에서 출동하는 데만 22분이 걸린 해경은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달 16일 사고 당시 목포 해경 당직함은 출동 준비에만 22분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오전 8시 58분에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목포항 삼학도 해경 전용 부두에 정박 중인 당직함(513)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당직함은 출동 명령을 받고도 신고가 접수된 시간으로부터 22분이 지난 9시 20분에야 출동했다. 해경은 “항해 장비를 가동하는 시간과 계류색(배와 배를 묶는 줄)을 걷는 시간, 케이블을 해체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20분이 결코 오래 걸린 것은 아니다”라는 군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해경의 보고 체계와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도 부실 그 자체로 밝혀졌다. 해상사고가 발생하면 해경청장이 중앙구조본부장을 맡고, 공석 땐 경비안전국장이 맡도록 돼 있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해경 종합상황실은 해도와 해상도 등 각종 상황판을 갖추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그러나 상황실을 지휘해야 하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헬기를 타고 목포를 향하는 도중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해경 지휘부가 해상 수색·구조 경험이 없는 해양대와 경찰대, 고시 출신들로 이뤄져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 구조동영상 13일만에 공개 “부실 초동대처 숨기려 했나”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 당시 초기 구조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해경이 사고 당시 이준석(69) 선장 등 선원들의 탈출 장면 등을 촬영해 놓고도 사고발생 13일 만인 지난달 28일에야 공개했기 때문이다. 동영상은 현장에 출동한 해경 경비함 123정의 한 직원이 개인 휴대전화 카메라로 지난 16일 오전 9시 28분부터 11시 18분까지의 장면을 찍은 총 49컷, 9분 45초 분량이다. 동영상에는 기울어진 선체 모습, 선원 탈출과 해경 구조장면 등 당시 모습이 담겼다. 동영상을 공개한 날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해경의 초동대처 부실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전남 목포해경 상황실을 압수수색한 날로 일각에서는 “해경이 이 선장을 감싸려고 한 것 아니냐”, “초동 대처에 있어 불리한 장면을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일었다. 함께 공개된 사진 7장 중 4장이 동영상에 없는 내용이어서 해경이 불리한 내용을 편집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해경은 동영상을 늦게 공개한 이유에 대해 해당 함정이 연일 해상 수색을 했고, 자체 자료전송시스템이 없어 보관 중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또 다른 동영상이 있는지와 동영상 편집 의혹 등은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풀어야 할 대목이다. 5. 안전관리 산하단체 뒤 봐주고 간부들은 재취업 기회로 검찰 수사 결과 일부 해경 간부들이 산하단체로부터 명절 떡값 등 ‘관리’를 꾸준히 받아온 정황도 포착됐다. 인천지검 해운 비리 특별수사팀은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작성한 내부 문건 중 ‘명절 선물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조합과 함께 여객선 안전관리를 맡는 인천해양경찰서 등의 간부에게 10만~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나 선물을 돌릴 계획이 담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이 조선사와 해운사, 민간 구난업체 등이 속한 한국해양구조협회를 과도하게 지원하고 간부들의 재취업 창구로 활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1월 협회 출범 당시 소속 경찰관에게 회원 가입을 권고했다. 수천명에 이르는 해양경찰관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연회비 3만원은 개인 봉급에서 공제된다. 본청 간부 상당수는 연회비 30만원인 평생회원으로 가입했다. 해경이 직원 월급을 떼어 매년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억대의 예산을 지원하는 셈이다. 협회는 해경 퇴직 간부의 재취업 공간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과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부총재직을 맡고 있고, 경감급 6명도 재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딘마린인더스트리의 김윤상 대표도 부총재를 맡고 있다. 6. 석연찮은 선장 수사… 사고 초기 해경 직원 자택에 재워 해경이 세월호 사고 수사 초기 선장 이준석(69)씨를 조사한 뒤 직원의 자택에 재운 것으로 드러나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특히 300여명의 승객을 내버려둔 채 먼저 탈출한 이씨를 일반 수사 대상자와 달리 ‘칙사대접’한 사실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고 첫날인 지난달 16일 오후부터 17일 새벽 전남 목포해경에 소환돼 10여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해경은 이후 이씨를 한 직원의 아파트로 데려가 잠을 재웠다. 2차 조사를 벌인 17일엔 이미 피의자 신분으로 바뀐 터였다. 수사 관계자는 “이씨가 갈 데도 마땅찮고 기자들이 많아 유치장 대신 개인 집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이후 아파트에 있던 한 기관사가 자살 소동을 벌이는 등 선원의 신병에 대한 밀착 감시와 보호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더라도 수사 관계자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씨를 집으로 데려가 잠을 재운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따라서 윗선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청해진해운의 계열사 출신 한 간부가 한때 해경 본청의 수사라인에 배치된 점도 이런 의혹을 키웠다. 한 변호사는 “피의자를 집에서 재운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적절한 처사여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7. 자체 청해진 수사 했나… 檢 압수수색 전 선사 드나들어 세월호가 침몰 중이던 지난달 16일 오후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 2층 ㈜청해진해운에 해경 관계자들이 진을 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다부진 체격에 사복 차림의 남성 3~4명이 수시로 외부와 연락하며 머물러 있었다. 더러는 “지인의 부인이 그 배에 탔다. 생존자 명단에 있는지 확인해 달라”며 누군가와 통화하기도 했다. 이들은 당일 오후 5시쯤 청해진해운 측 요구로 취재진이 1층 여객터미널 복도로 나간 뒤에도 계속 사무실에 머물렀다. 이튿날 오전 9시쯤에는 정장 차림의 50대 중후반 간부급 경찰관이 일행 1명과 청해진해운의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새벽 청해진해운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결국 세월호가 침몰하기도 전에 해경이 청해진해운 본사에 대해 자체 수사를 벌인 것으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구조 과정이 담긴 화면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날 만큼 느려 터진 해경이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한 조치엔 가장 빨랐던 셈”이라며 “그 시간 청해진해운 사무실에서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해경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당시 청해진해운에 누가, 왜 나갔는지 모르겠다. 답변할 위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8. 세월호 문서 삭제 의혹… 외부 감사·자료요구 대비했나 해양경찰청이 외부기관의 감사나 자료 요구에 대비해 ‘세월호’ 관련 문서들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해경청은 역시 부인했다. 2일 제보자에 따르면 해경청은 지난주 초 전국의 일선 해양경찰서에 내부 전산망 문서 제목에서 ‘세월호’라는 글자를 지우라는 구두 지시를 내렸다. 다시 말해 세월호에 관한 검색이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세월호 안전관리와 지도감독 등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기에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해경의 내부 문서 검색은 제목에 있는 단어를 통해 이뤄져 세월호라는 세 글자만 지우면 해당 문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아울러 해경이 일부 문서를 담당자만 열람할 수 있는 보안문서로 분류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감사원은 지난 1일부터 해경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했고 국회는 다음주 현안보고를 앞두고 다량의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따라서 해경 측이 세월호에 대한 감독 소홀 등이 문제될 것을 우려한 끝에 문서 삭제를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해경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마라’는 자세로 임해야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9. 이해못할 인사 패턴… 이용욱 ‘조함직→ 수사총괄’ 의문 해경에 기술직으로 입문한 이용욱(53·국제협력관) 경무관이 당초 정보수사국장에 임명된 것은 일반적인 인사 패턴과 다르다. 정보 및 해상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정보수사국장은 대개 행정직이 맡았다. 해경의 직별은 항해, 기관, 행정, 잠수, 조함(造艦)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전 국장은 ‘조함’ 직별 경정으로 특채됐다. 현재 해경의 경무관 이상 간부 14명 가운데 7명이 행정 직별이다. 조함 직별은 이 전 국장이 유일하다. 이 전 국장은 특채 이후 자신의 직별에 맞는 조함기획계장을 잠시 거쳤을 뿐 이후로는 조함직과 관련 없는 업무를 담당해 왔다. 해경 측은 총경(서장급) 이상이 되면 직별 구분이 무의미해져 직별과 상관없는 보직을 맡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 전 국장은 2004년 총경이 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직별과 관련 없는 해경발전기획단을 거쳤다. 총경 승진 이후에는 전북 군산·전남 여수 해경서장, 동해해양경찰청장을 거쳐 2012년 7월 국장 중에서도 노른자위로 알려진 정보수사국장에 올랐다. 보직 관리가 아주 잘 된 편이다. 때문에 외부 지원설마저 제기되지만, 해경은 본인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0. 구조예산 부족 타령 헛말… 골프장 건설에 145억 사용 해양경찰청이 예산 부족을 들어 구조장비 도입과 해양사고 대비 훈련일수까지 줄이면서도 골프장 건설에는 145억원을 써 비난을 샀다. 해경은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의 함포사격장 부지 40만㎡를 용도변경한 뒤 145억원을 들여 해경 전용 골프장을 세웠다. 때문에 함포사격장은 165㎡의 게임방 규모에 불과한 지하 시뮬레이션 훈련장으로 대체되는 아이러니를 빚었다. 대신 골프장이 버젓이 들어섰다. 지난달 18일로 잡았던 골프장 준공식은 세월호 참사로 열리지 못했다. 해경은 2010년부터 경비함 운항에 필요한 유류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이듬해로 이월한 뒤 지불해 왔다. 유류비가 부족하자 해경은 지난해 해상종합훈련을 4일에서 2일로 줄였으며 중·대형 함정 운항률을 축소하는 등 ‘유류절약 매뉴얼’까지 시행했다. 전국 241개 해경 출장소 가운데 순찰정·고속보트 등 연안 구조장비를 갖추지 못한 곳이 95개(39%)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수품출장소와 서거차출장소는 연안 구조장비는 물론 순찰차량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진후(정의당) 의원은 “늘 예산 부족을 탓해온 해경이 뒤로는 골프장 짓기에 여념이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해양경찰, 기름 방제비로 순찰차 구입… 감사원, 예산 전용·낭비 148건 적발

    해양경찰청이 기름 유출 사고에 대비할 방제장비 구입 예산을 순찰차 구입에 사용하는 등 예산을 낭비하거나 남용한 사례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 38개 중앙부처와 46개 소속 기관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 재정 집행 실태를 감사한 결과 해경의 사례를 포함해 총 148건의 예산 낭비 및 비효율 집행 사례를 적발했다고 24일 밝혔다. 해경은 기름 유출 사고 때 사용할 방제장비가 보유 기준보다 부족한데도 지난해 장비 구입 예산 12억 9000만원 중 2억 9000만원을 임의로 집행해 계획에도 없던 순찰차 21대를 구입하는 데 썼다. 이 때문에 해경에는 고압세척기 20대, 저압세척기 23대, 기름 이송용 펌프 4대 등이 부족하게 돼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해양오염을 막을 능력이 저하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해경은 또 2012년에 탄약 구입비로 9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도 이를 내버려 둔 채 노후 함정 교체 및 대형 함정 건조 사업의 낙찰 차액으로 들어온 돈 9억원을 40㎜ 함포용 탄약 구입에 사용했다. 낙찰 차액이란 정부가 사업을 발주하면서 최종 선정한 업체의 낙찰가가 애초 배정된 예산보다 적어 생기는 차액이다. 이 과정에서 해경은 ‘사업비 낙찰 차액의 용도를 변경하려면 기획재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예산 집행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642억원을 출자해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사업’을 하면서 면밀한 검토도 하지 않고 예산부터 사용해 나랏돈 587억원이 쓰이지도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감사원은 농식품부가 시장 조사에 이미 55억원을 쏟아붓고도 현지에서 인수할 기업을 찾지 못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적발된 사례들에 대해 개선책 마련이나 주의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자고 있어야 할 하사가… 아덴만 청해부대원 실종

    자고 있어야 할 하사가… 아덴만 청해부대원 실종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서 해적 퇴치와 선박 보호 임무를 맡고 있는 청해부대 소속 사병 1명이 배에서 실종돼 군 당국이 수색에 나섰다. 청해부대에서의 인명 사고는 2009년 3월 파병 이후 처음이다. 합동참모본부는 15일 “현지시간으로 오늘 새벽 청해부대 강감찬함 통신담당관 하모(22) 하사가 예멘 무칼라항 서남쪽 약 180㎞ 해상에서 실종됐다”면서 “함정 내부와 외부, 인근해역에 대한 수색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 지부티에 있는 연합해군사령부는 사고 해역 인근 각국 함정에 청해부대의 수색 작전을 지원할 것을 지시했다. 합참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25분 당직 근무 교대를 위해 하 하사를 깨우러 들어간 동료가 침실에서 자고 있어야 할 하 하사가 사라진 것을 최초로 발견했다. 동료들이 마지막으로 침실에서 하 하사를 목격한 시간은 이날 오전 1시로 알려졌다. 올해 2월 10일부터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된 강감찬함에는 300여명의 해군 장병들이 탑승해 있으며, 하 하사 실종 당시 강감찬함은 싱가포르 선적 등 3척의 상선 호송 임무를 맡고 있었다. 2012년 7월 입대한 하 하사는 지난해 11월 강감찬호에 배치됐다. 합참 관계자는 “실종 당시 기상은 파고 1.5m, 시정 약 9㎞(5해상마일)로 양호했다”면서 “여러 가능성을 놓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하 하사의 실종이 심각한 신변상의 이상인지를 놓고 여러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군 당국은 섣부른 예단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군 관계자는 “구체적 실종 경위는 확인되지 않은 만큼 하 하사의 신병이 어떤 상태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가족들의 심경을 헤아려 억측을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08년 결의안 1816호와 1838호를 통해 각국에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 퇴치를 위한 함정과 항공기 파견을 요청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2009년 3월부터 청해부대를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역 일대에 파견해 왔다. 청해부대 최영함은 2011년 1월 21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해운 소속 선박 삼호 주얼리호 선원 21명을 구출하기도 했다. 청해부대 장병들은 희망자 위주로 선발하며 한 달에 200여만원의 해외 파병 수당을 받는 등 정예 요원으로 자부심이 크다. 강감찬함은 2007년 배치된 4500t급 구축함으로 길이 149.5m에 폭 17.4m로 최고 속력이 30노트다. 127㎜ 함포와 어뢰, 대공미사일로 무장한 우리 해군의 주 전력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설] 北 무인기 위협 속 군 기강해이 방치 말라

    북한 무인기에 영공 뚫린 우리 군이 연일 갈지자 걸음을 걷고 있다. 추상같은 군기를 갖추고 있어야 할 군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것이다. 총체적 기강해이라고 할 만하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비롯해 각종 도발을 공언하고 있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그들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을지 국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북한 무인기 침투 이후 육군 선임병들의 사병 폭행 사망사건, 해군 함정의 함포 오발사건에 이어 육군사관학교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의혹까지 군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할 군에서는 있어선 안 될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국민들을 경악시킬지 하루하루가 걱정스러울 정도다. 북한 무인기에 맥없이 영공을 뚫린 것은 너무도 치명적이긴 하지만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군은 그제 ‘송골매’와 ‘리모아이006’ 등 우리 군의 무인기 운용 실태와 작전능력 등을 속속들이 까발렸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 복귀한 뒤 수거해야 하는 북한 소형 무인기와 실시간 전송 기능을 갖춘 우리 무인기의 성능을 비교하는 등 호들갑을 떨기까지 했다. 마치 장난감 자랑을 하는 친구에게 “나도 갖고 있다”며 우쭐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방공망이 뚫렸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우리 군의 무인기 작전 능력을 서둘러 공개한 것이겠지만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군사기밀인 무인기 정보까지 공개할 정도로 우리 군의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방부 장관의 북한 무인기 평가를 대변인이 뒤집는 등 국민 판단에 혼선을 주는 행태도 문제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더 발전하면 자폭 기능까지 갖출 수 있다”며 북한 무인기의 잠재적 위협을 강조했지만 사흘 만에 김민석 대변인은 “큰 유해는 끼칠 수 없다”며 평가절하했다. 무슨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개재된 건지는 모르나 국민을 헷갈리게 해선 곤란하다. 국방 분야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원 보이스’가 필요한 곳이다. 여하한 위기 상황에서도 잘 조율된 목소리로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지난 4일 발생한 해군 함정의 함포 오발사고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남 목포의 해군 제3함대 사령부 기지에서 정비 중이던 1800t급 호위함 서울함의 함포가 옆에 정박돼 있던 충남함 방향으로 발사돼 충남함 함미를 스쳐 근처 산에 떨어졌는데 이는 ‘군기 사고’로 볼 수밖에 없다. 포탄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 정비한 것도 모자라 발사장치까지 건드렸다는 점에서 기강이 제대로 잡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 하물며 개인 화기를 정비할 때도 탄알 유무를 확인하는 건 군인의 기본 아닌가. 나이 어린 네티즌들조차 “나사 풀린 군”이라며 조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예 간부들을 양성하는 육사 교수들까지 비리 대열에 합류한 것도 볼썽사납다. 위탁과제 연구비 수천 만원을 착복했다는 의혹이 수사 결과 확인되면 육사의 연이은 추문 시리즈에 또 하나의 오점이 더해지는 셈이다. 군의 기강해이는 안보 불안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조기에 바로잡아야 한다. 군 내부적으로 ‘신상필벌’, ‘일벌백계’의 강력한 원칙을 적용해 기강해이의 근원을 잘라내야 한다. 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도 인적쇄신을 포함해 군 기강확립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길 바란다. 위기는 방심하는 사람만을 겨냥한다는 말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 해군마저… 호위함 사격훈련 뒤 검사 미비해 다른 함정에 ‘황당 오발탄’

    해군 호위함에서 사격훈련을 마친 뒤 함포를 정비하는 도중 남은 포탄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 정박해 있던 우리 군 함정을 향해 오발탄을 발사하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8일 해군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2시45분 함포 사격훈련을 마치고 전남 목포의 해군 제3함대사령부로 귀환한 1800t급 호위함 서울함의 함미에 설치된 30㎜ 함포에서 포탄 1발이 발사됐다. 포탄은 바로 옆에 정박해 있던 같은 급 호위함 충남함의 함미를 스치고 지나간 뒤 부근 야산에 떨어졌다. 이 사고로 충남함에 설치된 나무 받침대가 부서져 파편이 튀었고 승선 중이던 부사관 1명이 파편에 맞아 엄지와 검지에 찰과상을 입었다. 해군은 “함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포신을 높여둔 상태였기 때문에 함선이 크게 부서지거나 대량 인명사고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군 관계자는 “전날 사격훈련을 마치고 함포를 정비하기 전 약실에 실탄이 남아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로 보인다”면서 “명확한 잘못이 확인된 만큼 사고 관계자와 장비를 정확히 조사해 경위를 파악한 뒤 규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살아 있었구나”… 납북선원, 40년 만에 동생 안고 오열

    “살아 있었구나”… 납북선원, 40년 만에 동생 안고 오열

    “형님아….” 20일 오후 3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50대 중년 남성 두 명이 서로 얼굴을 만져 보고 뺨을 비벼보다 울음을 터트렸다.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친형을 눈앞에서 본 순간 하얗게 사라졌다. 42년 전 납북된 친형 박양수(58)씨를 만난 박양곤(52)씨는 ‘형님’, ‘형님’을 되뇌다 다시 말을 잇지 못하고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는 납북 선원 2명이 포함돼 양곤씨 등 남측 가족과 상봉했다. 양수씨는 1972년 12월 28일 서해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당시 그를 비롯한 25명의 어부는 쌍끌이 어선인 오대양 61, 62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이었다. 지난해 9월 함께 납북됐던 선원 전욱표(69)씨가 탈북하며 ‘오대양호 납북 사건’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양수씨는 1972년 초등학교만 막 졸업하고 “고기잡이해서 돈을 벌어 가정을 돕겠다”며 나간 뒤 바다 밑으로 사라지듯이 북으로 납치돼 ‘생이별’했다. 양곤씨는 “무엇보다 (형님이) 건강하시니까 감사하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형의 납북 이후 가족들이 출국을 금지당하는 등의 설움이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이날 아들 박종원(17)군과 동행한 양곤씨는 형과 형수 리순녀(53)씨를 함께 만났다. 양곤씨는 형에게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형의 묘소 사진, 고향 마을 풍경 사진을 보여 줬고 내복 등 의류와 생활필수품을 선물했다. 양수씨는 북쪽의 부인을 소개하며 “내가 당의 배려를 받고 이렇게 잘산다”고 준비해 온 봉투에서 꺼낸 가족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최선득(71)씨 가족과 상봉한 동생 최영철(61)씨는 1974년 2월 15일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북측의 함포 사격을 받은 뒤 납북됐다. 당시 동생 최씨가 타고 있던 수원 33호는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함께 조업하던 수원 32호와 선원 14명이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이후 동생의 행방은 2008년 납북자가족모임이 공개한 ‘납북 선원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형 선득씨는 “이제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 있는 것을 알았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상봉한 전후 납북자는 박근혜 정부와 북한 김정은 체제 아래 처음으로 남쪽의 가족과 만난 사례다. 이번 상봉을 포함해 상봉 행사에서 남측 가족을 만난 납북자는 모두 18명에 불과하다. 납북자는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부터 국군포로와 함께 특수이산가족 형태로 2∼3명씩 참여해 왔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씨줄날줄] 홍시욱함(艦)/서동철 논설위원

    홍시욱 이등병조는 해군 첩보부대의 특수공작요원이었다. 그는 1950년 8월 24일 16명의 전우와 북한 치하의 인천 영흥도로 잠입했다. 이후 인천과 서울, 수원의 적진을 뚫고 적의 병력배치 상황과 화력 등 정보를 수집했다. 연합군에 전달된 이들의 정보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상륙작전 하루 전인 9월 14일 적인 북한군의 영흥도 공격에 일부 공작대 요원이 포위되고 말았다. 홍 이등병조는 소총으로 6명의 적을 사살했다. 마지막 한 발이 남자 그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는 불과 스물 둘의 나이에 자결했다. 생포될 경우 기밀 유지가 어려울 것을 우려한 결단이었다. 이등병조는 현재의 중사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6·25전쟁의 영웅이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홍시욱 이등병조가 해군의 최신예 유도탄 고속함(PKG)의 이름으로 되살아났다는 소식이다. 방위사업청이 어제 유도탄 고속함의 11번째 함정인 ‘홍시욱’함을 해군에 인도했다는 것이다. 홍시욱함은 해군의 노후한 고속정을 대체하는 450t급 고속함이다. 함대함유도탄과 76㎜ 함포를 비롯한 최신 무기체계를 갖추고 최대 40노트(74㎞/h)로 연근해 초계임무를 수행하는 함정으로 알려진다. 함정의 이름은 그동안 철저하게 역사적 위인의 몫이었다. 3900t급 구축함은 광개토대왕함, 을지문덕함, 양만춘함이다. 고구려 영웅들이다. 4400t급 구축함은 이순신함과 문무대왕함, 대조영함으로 지어졌다. 7600t급 한국형 이지스함에는 세종대왕, 이이, 류성룡의 이름이 붙여졌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임진왜란 당시 성웅 이순신(李舜臣) 휘하의 또 다른 이순신(李純信), 나대용, 이억기 장군의 이름을 땄다. 함정 이름은 2008년 유도탄 고속함 1호가 윤영하함으로 명명되면서 역사적 인물에서 탈피하기 시작한다. 윤영하함의 작명은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명의 용사를 기리는 뜻에서 이루어졌다. 윤영하 소령은 당시 격전을 벌인 참수리호 정장이었다. 홍시욱함과 동시에 진수된 유도탄 고속함인 임병래함과 홍대선함도 전쟁 승리에 공헌한 이름 없는 군인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갖는다. 임병래 중위는 해군 특공대 조장으로 홍시욱 이등병조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홍대선 삼등병조는 1952년 1월 4일 옹진반도 순위도 주민의 철수작전 도중 피란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북한군에 돌진해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왕후장상이 아닌 잊힌 작은 영웅들을 현실에 재진입시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해군의 진일보한 의식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차기 상륙함 ‘천왕봉함’ 진수

    차기 상륙함 ‘천왕봉함’ 진수

    해군의 첫 번째 차기상륙함(LSTⅡ)인 천왕봉함이 11일 부산 한진중공업 독에서 진수됐다. 천왕봉함은 4500t급으로 유사시 상륙작전에 투입된다. 길이 126m, 폭 19m에 최대 속력은 23노트(시속 40㎞)이다. 완전무장한 1개 대대급 상륙 병력 300여명과 상륙정(LCM), 전차, 상륙돌격장갑차 등을 동시에 탑재할 수 있다. 상륙헬기 2대도 배 뒤편에 탑재된다. 평시에도 병력과 장비, 물자 수송, 신속대응전력 수송,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등을 지원한다. 기존 상륙함보다 속력이 5노트 이상 빠르고, 병력도 100여명 더 많이 태울 수 있다. 또 상륙 작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상륙작전지휘소가 신설됐고, 방탄설계적용구역과 방화 격벽이 강화돼 함정 생존력이 한층 높아졌다. 레이더와 함포 등 주요 장비의 국산화율은 96%에 이른다. 인수시험평가를 거쳐 내년 하반기 해군에 인도되며, 전력화 과정을 마친 후 2015년쯤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진수식에서 “천왕봉함은 입체상륙작전의 주요 전력으로서 기존 상륙함보다 기동성과 탑재능력 등 기본 성능이 월등히 향상돼 우리 군의 단독 상륙작전 능력이 한 층 더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한국형 ‘상륙기동 헬기’ 개발 본격 착수

    한국형 ‘상륙기동 헬기’ 개발 본격 착수

    방위사업청은 1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상륙기동헬기 체계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상륙기동헬기는 해병대의 상륙작전시 적을 타격하는 것은 물론, 공중 돌격 부대의 병력·장비·물자를 수송하는 데 이용된다. 이전까지 해군 함정의 함포 사격 뒤 상륙함을 통한 해병대의 상륙작전이 주를 이뤘지만, 기동헬기 대대가 가세하면 입체적인 상륙기동작전이 가능해진다. 방사청은 “우리 군의 독자적인 상륙작전 능력과 작전 반경, 기동력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청은 지난 4월 제66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상륙기동헬기 체계 개발 사업의 우선협상대상 업체로 KAI를 선정했다. KAI는 국내에서 개발된 한국형기동헬기(KUH) ‘수리온’을 해상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개조·개발할 예정이다. 상륙기동헬기는 함정에서 주로 운용되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야 하며 염분 등 오염물질이 많은 함정 및 해상 환경의 특성에 맞게 외부 코팅·도색도 달라진다. 해상 비행 중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윈드실드 세척액 분사장치, 장거리 임무 지원을 위한 보조연료탱크 등이 부착된다. KAI는 7900여억원을 투입, 2015년 말까지 개발을 완료한 뒤 2017년부터 40여대를 해병대에 인도할 계획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6·25 대한해협 전투 승리 ‘…바다의 전우들’ 펴낸 백두산함 갑판사관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김문이 만난 사람] 6·25 대한해협 전투 승리 ‘…바다의 전우들’ 펴낸 백두산함 갑판사관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때는 1950년 6월 25일 정오. 진해항에 정박 중인 국내 최초의 군함 백두산함 갑판에는 외출·외박을 나갔던 장병들이 급히 모였다. 최용남 함장은 비장한 모습으로 말했다. “적 인민군대가 오늘 새벽 동해안 옥계, 임원해안으로 쳐들어왔다. 우리는 지금 동해로 출동한다. 적 상륙군을 격멸해야 한다. 각자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자.”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승조원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가 전투준비를 한 뒤 오후 3시 진해항을 출항했다. 여기서 잠깐, 백두산함에 대해 잠시 살펴본다. 초창기 해군의 염원은 함포가 장착된 군함을 갖는 것이었으나 빈약한 국가재정으로 군함 구입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해군은 자체적으로 군함 구입자금을 모으기 위해 장병들의 월급에서 5~10%씩 갹출하고 부인회에서 삯바느질, 의복세탁, 수선, 뜨개질로 1만 5000달러를 모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청원했다. 이 대통령은 해군의 뜻을 높이 사 4만 5000달러를 보태 군함 구입을 주선했다. 결국 1949년 12월 뉴욕 맨해튼 섬 부두에서 정박 중인 고물 함정(2차대전 직후 퇴역)에 태극기를 높이 올리고 마이애미와 파나마 운하를 지나 1950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입항했다. 3인치 포를 장착하는 등 무기정비를 마친 3월 20일 하와이를 떠나 25일 콰잘린 섬에 기항해 연료를 공급받고 괌 섬 아프라 항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형편에 맞춰 3인치 포탄 100발만 장착하고 4월 10일 진해항에 입항했다. 이후 심하게 녹이 슨 배를 진해항에서 한 달 동안 정비했다. 모든 승조원들이 달려들어 시뻘겋게 녹슨 선체를 해머로 털어내고 방부 페인트를 칠한 후 깨끗하게 단장해서 탄생된 것이 백두산함이다. 그렇게 해서 진해항을 떠난 백두산함이 부산항과 울산 앞 방어진 동쪽 3마일 해상에 도착한 것은 1950년 6월 25일 밤 9시 10분쯤이었다. 이때 우현에서 근무 중인 승조원이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견시보고, 우현 45도 수평선 검은 연기 보임.” 항해 당직사관 최영섭 소위는 쌍안경으로 동쪽 수평선을 봤다. 수평선에 검은 연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夏至) 때라 해는 넘어갔으나 시정(視程)은 좋았다. 해상은 흐리고 너울이 일고 있었다. 최 소위는 함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즉각 보고했다. “함장님, 저기 수평선에 검은 연기가 흐르는 것이 보이지요. 그쪽으로 가서 확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함장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백두산함은 당초 목적지인 옥계 방향을 바꿔 15노트 속력으로 수평선을 향해 달렸다. 밤 9시 30분쯤 연기를 뿜으며 남하하는 배가 가까이 들어왔다. 백두산함과 비슷한 형태의 괴선박은 백두산함이 접근하자 항로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계속 남하했다. 최 소위는 부하들에게 국제통신부를 통해 국적, 출항지, 목적지를 문의하는 신호 부호를 찾도록 했다. 이어 발광신호를 보내게 했다. 최 함장은 괴선박의 예사롭지 않은 행태를 보고 적 인민군 함정이 아닌가 의심했다. 최 소위는 괴선박의 발견과 추적, 여러 동태 등을 해군본부에 타전했다. 이어 최 소위는 신호사에게 “정지하라,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라는 국제부호를 찾아놓으라고 지시한 뒤 공격적 탐색기동을 개시했다. 그러자 장교들 사이에 “무장한 군대가 갑판에 가득 깔려 있습니다. 아, 함수 갑판에 대포가 있습니다. 양현에 기관포도 있습니다”라는 외침이 잇따랐다. 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 괴선박과 거리를 좁히자 장교들은 다시 “주갑판, 후갑판, 중갑판에 있는 병력만 500명은 돼 보입니다. 선실과 선창에 타고 있는 군대는 보이지 않지만 모두 합치면 700~800명쯤 되겠습니다. 적함이 틀림없습니다. 공격합시다”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하던 최 함장도 “저 배는 대포와 기관포로 무장하고 1000명 가까운 무장 육전대(해병대)를 태우고 있다. 저 배의 항로로 보아 부산을 점령하려고 내려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전투에 돌입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라고 명령했다. 이어 함장은 다시 한번 장교들의 얼굴을 보면서 냉수로 건배를 했다. “살아서 마지막 마시는 대한민국 물이다”고 결의를 다졌다. 최 소위는 건배를 마치고 곧바로 함수 사병 침실로 가서 포술갑판 부대를 집합시킨 뒤 전투에 임할 것을 지시했다. 26일 밤 12시 30분, 함장의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3인치 포탄 첫 발이 포성을 울리며 적함으로 날아갔다. 최 소위의 조마조마하던 가슴이 일시에 풀렸다. 백두산함은 인수 후 포탄이 아까워 모의탄으로만 훈련했지 실탄사격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함도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응사해 왔다. 백두산함은 18노트 최고 속력으로 기동하며 주포와 기관총으로 공격했다. 적함도 주포와 기관포로 맹렬히 반격해 왔다. 치열한 포격전이 20여분간 계속됐다. 백두산함은 최고 속력으로 적함을 향해 돌진하면서 포탄을 계속 쐈다. 이윽고 적 함교에 포탄이 명중했다. 백두산함에는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 함은 검붉은 연기에 휩싸여 좌현으로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때 적 포탄 한 발이 백두산함 조타실 외판을 때렸다. 조타사 김창학 등이 복부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또 적 포탄 한 발이 주포 갑판에 떨어져 파편이 튀었다. 장전수 전병익 등이 가슴에 파편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주포 전화수 김춘배 등이 다리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부상병을 후갑판 아래 사병식당으로 이송해 응급처치하고 3인치 포 수리에 착수했다. 이때가 6월 26일 오전 1시 20분쯤이었다. 백두산함은 약 4시간에 걸친 적함 잔해물 수색을 끝내고 아침 6시쯤 부상자 치료를 위해 포항기지로 향했다. 이상은 한국전쟁 당시 벌어졌던 ‘대한해협전투’에 대한 내용이다. 이 해상 전투는 전사(戰史)에는 기록돼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한국전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3·8선 돌파하고 육상으로 남침한 것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에 의하면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육상은 물론 남한의 부산과 진해항을 점령해 유엔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치밀한 계획을 짰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문서기록보관청에도 이러한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대한해협 전투에서 백두산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백두산함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였던 최영섭씨를 지난 13일 경기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위 내용을 상세하게 밝히기 위해 ‘6·25 바다의 전우들’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책을 펴냈다. 당시 부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대한해협전투’는 물론 서해 봉쇄작전, 인천상륙작전, 함경도 동해진격작전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다의 전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적함을 침몰시키고 포항으로 항진할 때 함미 사병식당에 있는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군의관 김인현 중위는 심한 배멀미로 목에 깡통을 달고 구역질을 하면서도 출혈이 심한 전병익, 김창학에게 응급수술을 했습니다. 두 중상자는 그 와중에도 ‘적함이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격침했다. 살아야 해’라고 했더니 두 중상자의 눈빛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그러더니 ‘대한민국 만세’라면서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지요.” 그는 한국전쟁을 회고하면서 “육지에서 불이 붙었으나 바다에서 진화해 갔다. 6·25 그날 대한해협 전투 승첩으로 부산항을 지켜냈고 대한민국을 돕는 유엔군과 무기, 탄약, 장비 등 병참 물자가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전쟁과 미국 해군’이라는 책자에도 ‘전쟁의 가장 중요한 해상 첫 전투로, 백두산함이 1000t급 북한의 무장 수송선을 수장시켜 부산항을 통해 증원 병력과 물자가 도착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도 1961년 4월 ‘대한해협 해전 승전’이라고 공표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그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최씨는 해군사관학교 3기 출신으로 나중에 백두산함 함장, 최초의 구축함인 충무함 함장, 51전대 사령관 등을 거쳐 1968년 해군 대령으로 전역했다. 최씨는 매년 6월 25일 당시 대한해협전투를 겪은 전우들(당시 70명이었으나 현재 생존한 15명)과 같이 부산에서 만나 그날을 되새기고 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은 일본에서 공부할 당시 조국의 군복을 입고 바다를 지키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됐다. 이번에 펴낸 ‘6·25 바다의 전우들’을 쓰기 위해 26개월 동안 자료수집을 다시 했고 1년 동안 연필로 직접 썼다. 그는 자칭 ‘통합군사령관’이라고 한다. 왜냐 하면 첫째 아들은 해군장교, 둘째와 넷째는 육군장교, 셋째는 공군장교, 손자는 해병대 장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을 맡고 있다. 올해 85세의 고령인데도 열심히 강의를 다니면서 “육지 자원은 더 이상 없다. 우리나라는 이제 바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하늘로 돌아간 전우들이여, 그리고 머지않아 사라져 갈 전우들이여, 조국과 6·25의 바다는 그대들의 피끓는 조국애를 길이길이 기억하리라”고 말한다. 노병의 눈가가 잠시 적셔진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은 1928년 강원도 평강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시립 제2중학교(우에노)를 졸업했다. 광복 이후 남한으로 와 해군사관학교 3기로 1950년 졸업했다. 또 단국대학교 법정학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육군대학, 미국 국방산업대학원 등을 나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위 계급장을 달고 백두산함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로 해상전투에 참전했다. 주요 참전 경력은 6월 25일 대한해협전투를 비롯해 인천 철수작전, 여수 철수작전, 진동리 정찰작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군산 양동작전, 인천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 원산·함흥·성진 동해진격작전, 제2차 인천상륙작전 등이다. 해상 근무 시에는 백두산함 함장, 충무함 함장, 51전대 사령관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충무공 이순신의 업적을 기록한 ‘고하도’ 등 3권이 있다. 슬하에 아들 넷을 두었으며 모두 육·해·공군 장교를 지냈다. 현재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으로 있다. 백두산함에 3인치 포를 설치하는 모습.
  • 분쟁지서 勢과시하는 中

    분쟁지서 勢과시하는 中

    남중국해 등 분쟁해역에서 중국 군의 공개활동이 부쩍 늘었다. 주권 수호 선서식을 갖는가 하면 섬 탈환 훈련 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공개 관행도 깨졌다. 이런 활동들은 군 기관지인 해방군보 등을 통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31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의 권력 이양이 마무리된 이후 중국 해군의 분쟁해역에서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이 자국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이웃 국가들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는 것이다. 실제 중국 해군은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남해함대 주도로 연합기동함대를 구성해 지난 19일부터 남중국해와 서태평양에서 해양순시 및 원양 기동훈련을 벌이고 있다. 함대는 2만t급의 상륙함인 징강산(井岡山)호를 필두로 미사일 구축함 란저우(蘭州)호, 미사일 호위함 위린(玉林)호·헝수이(衡水)호, 헬리콥터, 육상 전투병력 등으로 구성됐다. 함대는 지난 26일 남중국해 최남단 암초 쩡무안사(曾母暗沙·제임스 사주)에 도착해 선상에서 남중국해 수호 선서식을 가져 주변국들을 긴장시켰다. 쩡무안사는 중국, 말레이시아, 타이완 등이 각기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이다. 이어 시사(西沙·파라셀)군도로 이동한 함대는 자국 어업관리선과 인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 단속을 협의했다. 앞서 지난 20일 시사군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베트남 어선에 중국 해군이 총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양국 간 외교공방이 벌어진 바 있다. 남중국해 활동을 마친 함대는 31일 서태평양으로 이동해 공해상에서 함포 실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 해군의 서태평양에서의 훈련은 최근 들어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며 다분히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훈련으로 풀이된다. 중국 해군은 함대의 독자적 활동 이외에도 공군 등과 잇따라 남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전개해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 해군이 은밀했던 이전과는 달리 공개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시 주석의 뜻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니러슝(倪樂雄) 상하이정법대 교수는 “시 주석은 영토분쟁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전임자들과는 차별된 모습을 보여 주려 한다”면서 “특히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의 자제그룹) 출신이어서 영토분쟁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실전 같은 대잠 폭뢰 → 격침 “영해 빈틈은 없다”

    실전 같은 대잠 폭뢰 → 격침 “영해 빈틈은 없다”

    “총원 대잠 전투배치, 전투배치!” 천안함 사건 3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오후 2시 30분,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87㎞ 떨어진 서해 울도 인근 해상. 가상의 적 잠수함을 발견한 1200t급 초계함 ‘진해함’ 갑판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방탄 구명복을 착용한 대원 100여명은 “전투배치”를 외치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시속 25㎞로 서행하던 진해함은 속도를 시속 60㎞로 높였다. “폭뢰 투하!” 함장의 명령과 함께 함미에서 잠수함용 폭뢰가 투하됐다. “6…5…4…3…2…1” 대원들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지 6.8초 후 15m 아래 수중에서는 수류탄 1000개를 압축해 던진 것과 같은 충격이 발생했고, 폭음과 함께 20m의 물기둥이 치솟았다. 해군은 천안함 3주기를 맞아 이날부터 대규모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했다. 가상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 경비정 침범과 잠수함 공격상황을 가정한 훈련이다. 이날 훈련에는 3200t급 구축함인 양만춘함(DDH1)을 선두로 1500t급 호위함(FF) 전남함, 1200t급 초계함(PCC)인 진해함·영주함·공주함 등 10여척이 참여했다. 앞서 오후 1시 30분쯤에는 진해함이 가상의 적 경비정을 향해 76㎜ 함포와 40㎜ 함포를 발사했다. 진해함은 3년 전 피격당한 천안함과 크기와 구조가 비슷하다. 해군은 천안함 사건 이후 함정의 생존력을 키우기 위해 무장을 보강했다. 특히 어뢰음향대항체계(TACM)를 설치해 고래 소리 등 수중의 온갖 잡음 속에서 적 잠수함 소리를 식별하고 유사시 어뢰 기만기를 발사한다. 어뢰 기만기는 강한 소음을 일으켜 적 어뢰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한다. 진해함 함장인 김준철(42) 중령은 “우리 함정은 각종 레이더 등 감시장비와 76㎜ 함포 2문, 하푼 대함미사일, 단거리 대공미사일 등으로 무장했다”면서 “함장은 싸워 이기는 것은 물론 부하를 한 명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전투함의 함장석은 대통령이 와도 함부로 앉을 수 없는 자리”라고 책임감을 강조했다. 하지만 해군은 대잠수함 작전이 여전히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잠수함을 탐지하는 데 이용하는 음파의 경우 물속에서 굴절하거나 소실돼 이를 100% 탐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해역에서는 음파가 탐지할 수 없는 음영구역(사각지대)이 많이 생기고 통항 선박의 소음도 음파 전달을 방해한다. 윤정상(51) 해군본부 전력처장(준장)은 “입체적으로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함정과 항공기 전력 증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공동취재단·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日 아베총리, 독도문제 진두 지휘

    日 아베총리, 독도문제 진두 지휘

    일본과 중국의 최고 수장들이 영토 문제를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더욱 첨예화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직속 기관으로 설치하기로 한 영토문제 전담 부서에서 독도 문제까지 포괄할 계획이어서 우리 측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NHK는 5일 일본 정부가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를 다룰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을 내각관방에 신설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말 내각관방에 설치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 대책 준비팀’을 강화한 조직이다. 쿠릴 4개 섬 문제를 다루는 내각부의 ‘북방대책본부’를 합치고, 외무성이 맡고 있는 센카쿠 대책 기능을 흡수해 재편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일본 국내외를 상대로 독도와 쿠릴 4개 섬, 센카쿠열도가 모두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일본 정부 내 정책을 조정하고 전략을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야마모토 이치타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은 “일본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체제를 강화하겠다”고 새 조직 설치 의도를 설명했다. 내각관방은 총리를 직접 지원·보좌하는 부처로, 총리 관저의 일부로 분류된다. 특히 이 기구가 독도 문제를 다루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매우 유감스러운 행동”이라며 “우리 정부는 이에 강력히 항의하며 시대 역행적인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중국도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영토분쟁을 직접 챙기고 있다.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조치 직후인 지난해 9월 14일 ‘중앙해양권익 유지공작 소조’를 만들어 시 총서기가 조장으로서 일본과의 센카쿠열도 분쟁의 대응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해양 당국 등 각 부문이 유기적인 대응을 못하고 혼선을 빚은 데 따른 것이다. 시 총서기가 기존의 외교안보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외사영도소조’ 외에 추가로 영토 문제까지 챙긴다는 점이 주목된다. 앞서 지난달 일부 중화권 언론들은 중국이 시 총서기를 단장으로 하는 ‘댜오위다오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군, 정보, 외교, 해양감시 등 각 부문이 참여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한편 중국 군함이 사격 시 사용하는 레이더를 일본 구축함에 조준했다고 일본 측이 항의하는 등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프리깃함이 지난달 30일 일본 구축함을 상대로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지난달 19일에도 중국 함선 주변에 떠 있던 일본 헬리콥터에서 사격통제 레이더를 감지했을 때 작동하는 경보가 울렸다”고 말했다. 사격통제 레이더는 항해 시 사용하는 탐색용 레이더와 달리 함포나 미사일을 쏘기 전에 목표물까지 거리와 발사각도 등을 산출하기 위해 비추는 레이더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서 “매우 위험한 사태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방위성은 이날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측에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j@seoul.co.kr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6·25 전쟁의 영웅들 유도탄고속함으로 부활

    6·25 전쟁의 영웅들 유도탄고속함으로 부활

    6·25 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해군 영웅들이 유도탄고속함(PKG)으로 부활했다. 해군은 20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최첨단 유도탄고속함 10~12번함 진수식을 거행하고 함명을 각각 임병래함, 홍시욱함, 홍대선함으로 명명했다. 해군 관계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하고자 함명으로 제정했다.”고 말했다. 10번함과 11번함의 주인공인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이등병조(현 계급으로 중사)는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이다. 당시 28세와 23세의 청년이던 이들은 인천상륙작전 개시 한 달 전인 1950년 8월 13일 상륙작전에 앞서 사전 첩보작전을 위해 영흥도에 투입됐다. 이들은 적의 해안포 위치와 북한군 군사기밀 탐지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9월 14일 철수하던 중 북한군과 교전을 벌였고 나머지 대원들을 먼저 탈출시킨 후 포로로 잡혀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해 자결했다. 12번함 함명의 주인공 홍대선 삼등병조(현 계급으로 하사)는 1952년 1월 서해안 옹진반도 앞 순위도 주민 840명을 피란시키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당시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진 옹진반도에서 적들의 주의를 돌리고자 단정을 타고 적진으로 돌진해 23세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이날 진수된 유도탄 고속함은 승조원 40명이 탑승하며 최대속력이 40노트(시속 74㎞)에 이른다. 이 밖에 사거리 150㎞의 국산 대함유도탄, 76㎜함포, 46㎜함포를 장착해 기존 참수리급 고속정과 비교해 대함전·대공전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씨줄날줄] 대구의 귀환/노주석 논설위원

    대구는 입이 커서 대구(大口)라고 부른다. 차갑고 깊은 바다에 사는 어종으로 북대서양과 북태평양이 주서식지이다. 큰 놈은 길이 2m에 무게가 90㎏까지 나가는데 뼈가 작고 살이 많다. 살맛이 비리지 않고 담백하며 지방 함량이 낮으면서 비타민A와 D가 풍부하다. 알은 알젓을 담고, 창자는 창난젓, 간은 간유의 원료로 쓰이니 어디 하나 버릴 게 없다. 우리나라에는 동해대구와 황해대구가 나는데 동해산은 최대 1m까지 자라고, 황해산은 40㎝로 작은 편이다. 조선시대에는 부산 근해 ‘가덕대구’를 진상품으로 올렸다. 서구의 역사에서 대구는 평범한 먹거리가 아니다. 인간의 역사를 바꾼 ‘생선의 제왕’이라고 칭해진다. 1997년에 출간된 미국작가 마크 쿨란스키의 ‘세계역사를 바꾼 물고기-대구이야기’를 보면 8세기 바이킹의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가 세계사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알 수 있다. 바이킹은 대구어장을 찾아나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500년 전에 북미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장기 항해가 불가피한 신대륙과 신항로 개척의 배경에는 ‘말린 대구’와 ‘염장 대구’라는 상하지 않는 비축식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대구가 아메리카대륙의 발견을 있게 했고, 미국 독립전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에 벌어진 3차례의 ‘대구전쟁’을 계기로 근대 해양법의 바탕이 정해졌다. 대구의 황금어장인 근해 어장을 유럽각국의 남획으로부터 지키고자 아이슬란드는 1958년부터 1976년까지 영해를 12해리, 50해리, 200해리로 점차 확대했고, 이를 불인정한 영국과 상호 함포 사격은 물론 선체 충돌 등 전면전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연출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상에서 진행되는 남북한 어선 간 ‘꽃게전쟁’의 확대판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약소국인 아이슬란드의 ‘3전 3승’은 오늘날 국제 해양법에서 200해리 경제수역의 일반화를 가져왔다. 대구 철이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말이 있듯이 첫눈이 내리고 나면 대구가 맛있어진다고 한다. 한때 ‘겨울철 국민 생선’이라고 불리던 명태를 누르고 대구가 대표 생선으로 등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해수온도 상승으로 10여년 전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고, 이를 대체하던 일본 홋카이도산 생태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처지가 되면서 서해안에서 잡히는 대구가 겨울철 식탁의 진객이 됐다. 토종대구의 귀환이 입맛을 돋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中, 사할린 해역 ‘막장조업’… 러 함포 저지

    中, 사할린 해역 ‘막장조업’… 러 함포 저지

    중국 어선 2척이 이번엔 동해를 거쳐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까지 침범해 불법 조업을 벌이다 러시아 당국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선원 1명이 바다에 빠져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시에서 출항한 중국 어선 2척이 각각 지난 15일과 16일 러시아 사할린섬 서남쪽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러시아 경비함에 나포됐다고 인민일보 계열의 인민망 등이 18일 보도했다. 어선에는 각각 19명과 17명의 어민이 타고 있었다. 16일 나포된 어선은 러시아 경비함의 정선 명령과 공포탄 발사를 무시하고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3시간가량 추격전이 벌어졌고 러시아 경비함이 함포 사격을 가한 뒤에야 비로소 나포됐다. 나포 직전 경비함이 어선과 충돌했고 경비대원들이 배에 올라가 저항하는 어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총을 쏴 중국 선원 1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고 홍콩피닉스TV가 모스크바타임스 등 러시아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하바롭프스크 주재 중국 총영사관 쑨리제(孫立杰) 총영사는 불법조업 선원 모두 무사하다며 실종설을 부인했다고 인민망이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어민이 러시아 영해를 침범해 조업하다 나포되는 사건은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면서 “(러시아 당국에 의해 나포된 중국 어민들은)보통 인도주의적 처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쑨 총영사는 이어 “영사관 측은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러시아 당국과 소통해 벌금 등 경제적·법적 경로를 밟아 해결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이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서 불법조업으로 나포된 중국 어민은 2011년 75명, 2010년 53명으로 집계됐다고 환구시보는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NLL 지켜낸 승전… 패전 폄하 참을 수 없어”

    “NLL 지켜낸 승전… 패전 폄하 참을 수 없어”

    “평소 기름을 많이 싣지 않는 북한 경비정이 전속력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죠. 하지만 현장에서 바로 사격할 권한이 없던 저희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의 급습을 받은 참수리 357호의 부정장이었던 이희완(36·해사 54기) 소령은 제2연평해전 10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당시 전투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패전했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北 경비정 교전 전날 예행연습” 당시 중위였던 이 소령은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의 급습에 전사한 윤영하 정장 대신 25분간 치열한 교전을 지휘했다. 북한의 37㎜ 포에 오른쪽 다리를 맞아 종아리 아랫부분을 모두 잃었다. 왼쪽 다리도 총탄이 뚫고 지나갔다. 후송된 후 아홉 차례의 수술 끝에 왼쪽 다리는 살려 냈지만 오른쪽 다리는 평생 의족을 하게 됐다. 해상 근무가 더 이상 어려워진 이 소령은 현재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교육사령부 기술행정학교 교육운영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소령은 “북한 경비정이 전날인 28일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교전 당일과 동일한 노선으로 움직였다.”며 “일종의 예행연습을 한 셈으로, 계획된 도발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기름이 많이 부족한 적 함정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작정한 것임을 직감했다.”며 “해상에 고속정 두 척이 있었는데도 우리 참수리 357호만 공격했고 함포와 함교, 조종실과 통신실 등 함정의 주요 부분을 집중 타격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2연평해전이 우발적 충돌이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정확한 근거를 갖고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영하 정장 전사하자 25분간 전투 지휘 이 소령은 정장인 윤영하 소령이 전사했던 긴박한 순간도 회상했다. “당일 10시 30분쯤 적의 선제 공격이 있고 나서 외부 함교에서 지휘하던 정장님이 뒤로 쓰러지셨다. 나도 그 사이 다리에 포탄을 맞아 곁에 가서 보살펴 드리지 못한 게 아쉽다.”면서 “당시 피를 많이 흘려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옆에서 인공호흡을 하라고 지시했으나 끝내 운명하셨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첫 발로 조종실 함교를 격파하는 바람에 배의 손실이 컸다.”며 “머리가 깨지고 손가락이 날아가고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릴 상황이었어도 대원들은 꿋꿋이 잘 싸워 냈다.”고 자평했다. 연평해전 유가족들과 1년에 두 차례 이상 정기 모임을 갖는다는 이 소령은 “제2연평해전은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냄으로써 악조건 속에 승리한 싸움”이라며 “당시 참수리호가 가라앉았다는 이유로 패전이라고 폄하하는 것이 가장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는 2008년부터 ‘서해교전’이라는 종전의 명칭을 승전 개념인 ‘제2연평해전’으로 바꾸고 추모식을 해군 자체 행사에서 정부 주관으로 격상한 바 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제2연평해전 10년… 서해 안보는

    29일은 제2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10년 동안 서해를 지키는 우리 해군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해상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는 주 전력을 148t급 참수리 고속정에서 570t급 유도탄고속함(PKG)으로 바꾼 것이다. 해군은 지난 2003년부터 당시 전사자의 이름을 딴 윤영하함, 한상국함 등 6척을 포함한 9척의 유도탄고속함을 건조하기 시작해 실전배치했다. 해군은 2014년까지 건설되는 백령도 해군기지에 이를 전진배치할 예정이다. 이 함은 물 분사방식 워터제트 추진기가 장착돼 얕은 바다에서도 작전을 펼 수 있다. 3차원 레이더와 대함유도탄, 분당 600발을 발사하는 40㎜ 함포 등을 갖췄으며 선체에 스텔스 기법을 적용해 북한의 레이더탐지를 피할 수 있다. 해군 관계자는 “유도탄고속함에서는 지휘 및 기관 통제시스템을 분리해 함장이 밖의 함교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면서 “다수의 적함을 상대할 최강의 연안 전투함정으로 예전같이 전사자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또한 북한이 최근 사거리 300m 이상의 대전차로켓 및 유도탄을 경비정에 탑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작전과 화력을 대폭 보강했다. 기존 참수리 고속정 선체를 방탄 능력이 있는 강철판으로 바꾸고 한번에 2척씩 출동하던 편조를 3척으로 늘렸다. 이는 1척의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을 저지하기 위한 기동에 나서면 나머지 2척은 기습공격에 대비해 격파사격을 준비하도록 전술적 변화를 준 것이다. 기존에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로 이뤄지던 교전수칙은 ‘경고방송→경고사격→ 격파사격’의 3단계로 축소했다. 북한 경비정에 근접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타격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군은 교전이 발생하면 북한 지역 육지에 배치된 지대함 미사일과 해안포까지 포격한다는 방침이다. 해군 관계자는 “최근 합참에서 발표한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은 물론 핵심세력까지 단호히 응징한다는 방침이 적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해상의 질적인 전력지수는 높아졌으나 노후된 참수리 고속정의 퇴역에 따른 함정 수의 감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NLL자체가 방대한 수역인데 질적으로 우세한 유도탄고속함 전력을 늘린다고 해서 기존 함정 수를 줄이는 것은 문제”라면서 “전면전 상황이면 몰라도 불시의 기습도발에서는 함정의 수량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산화한 6용사 군함으로 부활… 침투한 적함에 함포 불 뿜어

    산화한 6용사 군함으로 부활… 침투한 적함에 함포 불 뿜어

    “너무 좋아서… 우리 아들 아무 미련 없이 하늘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4일 낮 12시 30분 평택 서방 117㎞ 해상의 문무대왕함 함상. 10년 전 제2연평해전에서 아들 한상국 중사를 잃은 문화순(64·여)씨는 바다에 화환을 던지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이름을 딴 해군 유도탄 고속함(PKG)이 바다를 가르며 전속력으로 전진하는 모습에 마치 아들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올 것만 같았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4강의 열기가 뜨거웠던 오전,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서쪽 25㎞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과 맞서다 산화한 해군 장병 6명은 10년 후 6척의 군함으로 부활해 서해 바다를 누비고 있다. 해군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서해 해상에서 ‘불굴의 6용사 귀환’이라는 이름의 합동기동훈련을 했다. 훈련에 참가한 유도탄 고속함 6척은 각각 당시 전사한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이름을 땄다. 오후 1시 30분. 4400t급 구축함 문무대왕함에 탄 유족들이 보는 가운데 오른쪽에서 구축함 을지문덕함을 비롯한 해상 사열 단대가 파도를 가르며 행진했다. 이윽고 호위함인 청주함과 1000t급 부천함, 성남함이 연이어 전속력으로 항진했다. 이윽고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6용사들의 이름을 이어받은 570t급 유도탄고속함 6척이 물살을 갈랐기 때문. 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의 정장으로 마지막까지 지휘봉을 놓치 않았던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윤영하함’이 눈에 보이자 문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윤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70)씨는 “우리 아들들의 배가 한 척 한 척 나올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는데 이렇게 모아놓고 기동훈련을 하니 기쁘다.”며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우리 아들들이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오후 1시 45분. 2함대 사령부로부터 적 경비정이 경고통신을 무시하고 NLL을 침범해 남하하고 있는 상황이 전파됐다. “총원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지자 6척의 유도탄고속함 수병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우리 공군 KF16 전투기 2대가 먼저 접근해 기관총을 쏘아댔다. 이에 굴하지 않고 적함이 남하를 계속하자 윤영하함을 필두로 6척의 76㎜ 함포가 불을 뿜었다. 멀리 물기둥이 솟아올랐고 해상에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가득했다. 긴장이 채 가시기도 전인 오후 1시 50분. 다시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아군에게 위치를 발각당한 적 잠수정이 전속력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호위함인 청주함과 부천함이 함미에서 폭뢰를 투하했다. 10여초 후 “쾅!” 하고 수중 15m에서 폭뢰가 폭발하자 10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함대는 32노트(시속 59㎞)의 빠른 속도로 해역을 벗어났다. 이날 훈련을 같이 참관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이번 훈련은 유도탄고속함에 여섯 용사의 이름을 붙여 이들이 다시 살아 돌아왔음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라며 “지난 1990년 이후 북한의 크고 작은 도발 511회 중 399회가 서해 해상에서 이루어진 만큼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北해군 “남조선 해군 겁쟁이” 교육받더니…

    北해군 “남조선 해군 겁쟁이” 교육받더니…

    지난 2002년 6월 29일은 한·일 월드컵 3·4위전인 한국과 터키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해군간의 전투가 벌어져 쌍방 모두 큰 피해를 본 날이기도 하다. 3년 전 제1연평해전에서 대패를 한 북한해군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1999년 6월 15일 벌어졌던 제1연평해전 당시 북한해군은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420t급 경비정이 대파되었으며, 소형경비정 4척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고 20여명의 사망자와 3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에 우리 측의 피해는 7명 부상에 불과할 정도로 양측의 승패는 극명하게 갈렸던 것이다. 당시의 패배를 화력과 정확도의 열세였던 것으로 파악하고 북한군은 고속정에다가 85mm 전차포를 떼어 붙인 경비정(PCF-684)를 투입하여 NLL을 넘었다. 당시의 교전규칙에 의해 차단기동을 실시하던 우리해군의 참수리-357 고속정에게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기관실쪽에 명중탄을 날렸다. 이때부터 참수리-357은 모든 장병들이 용감하게 싸우며 우리 측 초계함의 지원과 함께 선제공격했던 북한의 경비정(PCF-684)를 대파시키고 퇴각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전투에서 참수리-357은 6명의 전사자와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큰 피해를 보았고 북한도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양측 모두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기관실 쪽에 20cm의 구멍이 뚫린 참수리-357은 결국 전투 후 1시간 만에 침몰하였고, 이를 53일 만에 인양하여 현재 평택의 해군 2함대에 보관 중이다. 이 전투에서 참수리-357 승조원들이 보여준 용감한 모습은 “남조선 해군은 장비만 좋지 겁쟁이들이다.”라고 교육받아 왔던 북한군들에게는 충격이었다고 탈북민들을 비롯한 여러 정보루트를 통해 후일담이 들려올 정도였다. 해군은 이 제2연평해전에서 참수리-357이 침몰하는 전투상황에서 교훈삼아 좀 더 크고 정확도와 위력이 강한 무장을 한 고속함을 건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고속함들의 1번~6번함에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이름을 붙여서 영원히 우리바다의 수호신으로 삼고자했다. 현재 1·3·5번 함은 서해의 해군2함대에, 2·4·6번함은 동해의 해군1함대에 배치되어 있다. 생전에 이들은 서해를 지키는 용사들이었지만, 이제 최첨단 유도미사일고속함(PKG)으로 부활하여 서해 뿐만 아니라 동해까지 수호하는 우리 NLL의 수호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구분1번함2번함3번함4번함5번함6번함함명윤영하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박동혁함번PKG-711PKG-712PKG-713PKG-715PKG-716PKG-717전력화09.5.3011.11.1611.12.512.1.1311.11.2811.11.28배치2함대1함대2함대1함대2함대1함대▲전사자 함명 PKG 현황 최강무기가 40mm 단장포에 불과했던 참수리고속정의 화력부족을 교훈으로 PKG(Patrol Killer Guided missile)는 유효사거리 13km의 76mm 함포와 유효사거리 6.5km의 40mm 쌍열포를 장착하여 포격전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포격전 이전에 아예 함대함미사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국산함대함미사일인 ‘해성’을 4발 장착하는 등 공격력과 정확도 등 종합전투력에서 두배 정도 크기인 초계함들에 필적할 정도의 성능을 갖췄다. ▼유도탄고속함 제원 구 분제 원크 기전장x전폭x높이x흘수(m) : 63.0x9.1x18.4x2.5(m)속 력최대 45노트 / 경제 15노트무 게경하 440톤 / 만재 570톤승조원정원 40여명 ▼유도탄고속함 무장 구 분문 수최대사거리 / 유효사거리발사속도함대함미사일4150km76mm 함포1대함전 17.6km/13km 대공전6,500야드분당 85발40mm 함포1대함전 13km/6.5km 대공전4,400야드분당 300발 또 서해에 많이 있는 그물 등에도 스크류가 걸리는 일이 없도록 워터젯 방식의 추진을 하여 최고속도 45노트에 이르는 속력을 내도록 하였다. 하지만 국산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였는데 대표적으로 고속주행시 진동문제와 갈지자 주행문제 등이다. 그러나 해군은 이 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하여 현재는 43~45노트 정도의 고속주행도 무리 없이 잘 수행한다고 한다. 현재 9척의 PKG가 생산되어 동·서해에서 NLL 사수 임무에 투입되고 있는데, 애초 해군은 24척의 PKG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예산상의 이유로 계속 변동이 생기고 있는데, 이 PKG는 통일 후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함에 있어서도 작은 덩치에 레이더 피탐면적이 적으며 4발의 함대함미사일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한 전력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계획대로 생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군은 제2연평해전 10주기를 맞아 서해에서 ‘불굴의 6용사 귀환’이라는 이름의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동·서해에 분산 배치되어 있던 이 6용사 PKG들이 처음이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6척만의 합동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6용사의 유족들도 참관하셨는데, 훈련 전 해상헌화를 하며 6용사에 대한 추모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후 아들이 환생한 PKG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사열을 하고 위력적인 모습의 기동사격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제 이 ‘불굴의 6용사’는 연안전투함으로서는 최강급의 전투력을 가진 군함으로 환생하여 우리 바다를 최전방에서 지켜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글·사진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www.kdnnews.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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