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협상의 새 변수 「일정 조정안」
◎여권의 “연기ㆍ일괄” 시사에 야권 반발/“줄줄이 선거에 경제적 폐해 심화”/평민선 정당공천을 등원의 지렛대 삼을 듯/대권구도 얽혀 접점찾기 어려워
노태우 대통령이 9일 지방자치제 실시일정 연기를 시사한데 이어 여권이 이와 관련,구체적인 일정조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막바지 여야 절충작업중인 지자제 실시일정이 어떻게 정리될지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영광ㆍ함평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평민당은 국회 등원의 명분을 찾기에 고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을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전략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여권의 지자제 실시연기 시사가 등원협상의 악재로 돌출되는 듯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민자당의 정순덕 사무총장은 지자제 시기조정 등과 관련,『매년 선거를 실시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지자제선거 등 각종선거를 통합하거나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실시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당정간에 이미 선거일정 조정문제가 「논의」 단계를 넘어 구체적인 입안단계로 들어섰음을 시사했다.
또 김윤환 원내총무도『지방의회선거ㆍ단체장선거ㆍ14대총선ㆍ14대 대통령선거 등이 내년 상반기부터 2년동안 차례로 실시될 경우 야기될 경제ㆍ사회적인 어려움과 혼란 등을 감안,4개 선거를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권과 재계에서 벌써부터 제기된바 있다』고 밝혀 각종 선거의 「조합」이 불가피 함을 강조했다.
여권이 현재 4개 선거의 실시시기와 관련,조정중인 방안으로는 ▲91년 상반기 지방의회,92년 2월쯤 총선 및 자치단체장 동시선거 ▲92년 2월쯤 총선과 지방의회선거 그리고 자치단체장선거를 대선 이후로 연기 ▲92년 2월쯤 지방의회 및 총선,그후 6개월 뒤 자치단체장선거,92년 12월초 대선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권이 그동안 여야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91년 상반기 지방의회선거 ▲1년후 단체장선거 일정의 내용을 사실상 전면 재조정 할 뜻을 비친데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대통령이 직접 나선데서 알수 있듯 여야협상의 차원을 넘어 각종 선거가 잇따라 계속될 경우 선거과열 등으로 야기될 정치ㆍ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혼란 등을 감안,국가적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하자는 대국민호소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 일부 여권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특히 내각제개헌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현재 여야간 합의일정대로 지방의회 및 단체장 선거가 치러질 경우 여야 모두 대권을 염두에둔 전면전을 치르지 않을 수 없는만큼 선거를 통해 정국혼란 등을 정치권 모두가 심사숙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가 일각에서는 평민당의 국회등원 시기가 임박한 것을 역이용한 여권의 지자제협상 막판전략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여야간에 지자제협상의 마지막 걸림돌로 남은 정당공천 문제와 관련,기초의회 및 단체는 절대로 정당공천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여야 협상에도 불구,이 문제로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미 합의된 실시시기 등도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엄포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권의 고위관계자가 『지자제 실시문제는 여야간의 완전한 합의에 의해추진돼야 하며 조금이라도 의견차이가 있을 경우 지자제실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평민당측은 만약 여권의 마지노선을 끝까지 수용하지 않을 경우 내년 지자제실시 무산의 책임을 민자당과 나눠야 하는 부담을 안고 협상테이블에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여야협상의 기로에서 야권을 궁지에 몰아놓는데는 여권의 장기대권 구도전략 수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평민당측이 14대 총선 이전에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행정선거 방지를 통해 의석수를 확대한 뒤 14대 대통령선거 이전에 대도시 단체장 선거 등에서 승리,장기적으로 대권고지를 노린다는 속셈을 간파하고 있는 여권으로서는 적어도 단체장 선거는 14대 대통령선거 이후로 일정을 조정하겠다는 복안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여권이 등원의 시기선택에 고심하고 있는 평민의 입장을 십분 이해 하면서도 이같은 지자제 일정 조정문제를 들고 나온데는 지자제 조기실시가 물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여야간의교감 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그동안 실시시기 문제만 여야간 협상을 통해 적당히 「포장」했으나 정당공천 여부ㆍ선거법 개정ㆍ선거구 조정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된 바 없어 어차피 내년 상반기 의회선거는 어렵다는 계산이 여야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야간에 극적인 합의점을 도출하더라도 내년 2,3월중에 지방의회선거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내년봄부터 14대 총선체제로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도 지자제협상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여권의 입장에서는 지자제실시 등 각종 선거실시 시기조정이라는 애드벌룬을 통해 야권의 「의중」을 최종확인하는 방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야권이 여권의 마지막 협상카드를 수용할 경우 일단 내년에 지방의회만을 구성한 뒤 지방의회의 판세 등을 토대로 단체장선거 등에 대한 전략과 향후 대권구도와 관련한 마스터플랜을 완성할 것으로 점쳐진다.
평민당측은 현재 표면상으로는 정당공천제에 대한 완전한 양보가 없이는 국회에등원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여야협상이 결렬될 경우 우여곡절 끝에 얻어놓은 실시시기 등의 내용도 대국민 입발림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돼 있어 평민당측으로서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는게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