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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5가지 증거 제시/ “北 NLL 인정 했었다”

    6·29서해교전 사태로 다시 논란을 빚고 있는 북방한계선(NLL)을 북한 스스로 인정했던 증거가 있다. 국방부는 북한이 1959년 발간한 조선중앙연감의 지도 등 북측의 NLL 불인정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 다섯가지를 담은 ‘한반도 군비통제’ 보고서를 4일 공개했다. ◇조선중앙연감에 NLL 표시 =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가 1959년 11월10일 인쇄하고 같은 달 30일 발행한 연감의 국내편 지도를 보면 현재의 NLL을 점선으로 표시했다.즉 강화 교동도 북쪽과 북한 연백평야 남쪽 사이를 지나는 군사분계선은 굵은 선으로 표시했고,우도 북쪽 해안부터 이어지는 NLL은 연평도 북쪽을 감싸고 돌은 뒤 서쪽의 백령도도 우리측 관할로 표시했다.지도는 황해도와 서해의 축척을 120만분의1로 줄였는데도 시·도·군 소재지와 도로및 철도,명승지 등을 세밀하게 그렸다.특히 북한은 지도에 대한 설명에서 NLL에 대해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NLL 이북에 있던 선박에 대한 공격은 부당 주장 = 1963년 5월 연평도 인근해상으로 북측의 간첩선이 내려오다 우리 해군에 발각돼 공격받고 도주하는사건이 발생했다.당시 북측은 판문점에서 열린 제168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서해상의 지도를 제시하며 “문제의 선박이 NLL 이북 해역에 있었는데 남측이 공격했다.”며 도리어 항의했다. ◇NLL 선에서 수해물자 전달 = 84년 9월29일∼10월5일 북한 적십자사는 우리측에 수해 구호물자를 전달하면서 전달 지점을 북한 비압도 앞 NLL 선상으로 정했다.당시 북측은 정전협정 및 국제법상의 서해 관할권 문제를 들어 군함이 포함된 호송선단이 NLL을 서로 넘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NLL을 중심으로 국제비행정보구역 설정 = 지난 93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한반도의 비행정보구역을 재설정하면서 변경안을 항공항행계획(ANP) 문서로 공고하고 해당국가의 이견을 물었다.ICAO는 북한과 남한의 비행정보구역을 구분하는 경계를 대체로 휴전선보다 북쪽인 북위 38도 38분으로 정했다.이 직선은 연평도 북쪽 9㎞쯤을 지나는데 현재의 NLL과 거의 일치한다.그러나 북측은 아무런 불만도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고지금도 이 비행정보구역은 유효하다. ◇99년 교전 이후에도 NLL 월선을 경고하면 순순히 후퇴 = 북측은 99년 서해교전이나 지난달 29일 교전이 끝난 뒤에 무장 함정을 NLL 북방으로 후퇴시켰다.현재 우리 해군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NLL로부터 8.1㎞ 떨어진 어로저지선(적색선) 부근에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연평도 조기를 기억하십니까?”/’원조 특산물’ 波市 초등교과서 실려

    “연평도 조기를 기억하십니까.” 최근 서해교전으로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옹진군 연평도.잇따른남북 함정간의 대결은 꽃게가 촉매가 된 데다 연평도가 전국 꽃게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해 ‘연평도=꽃게’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하지만 연평도의 원조(?) 특산물은 조기다. 연평도 조기 파시(波市)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68년까지 조기는 연평도 부(富)의 상징이었다. 연평도 해상에서 조기가 잡히는 4,5월이면 전국에서 3000여척의 어선이 몰려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물동이를 이고 급수시설이 없는 어선에 물을 파는 아낙네들의 행렬로 동네 우물이 마를 정도였다.조기뿐 아니라 어구·쌀·생필품 등을 거래하는 파시가 열리면 조그만 섬에 100여개 상점이 순식간에 생겨 3만여명이 북적거렸다.객고에 지친 선원들을 유혹하는 ‘술집 색시’들의 노랫소리도 밤새 그칠줄 몰랐다. 집집마다 조기를 엮은 두름이 지천을 이뤘고 아이들이 조기 한마리를 들고 빵집에 가면 찐빵 한개를 주던 시절이었다. “농촌은 보릿고개지만 연평도는 개대가리까지 이밥(쌀밥)이 올라간다.”,“연평도 주민들은 두달 벌어 1년을 먹고 산다.”는 말까지 생길 만큼 풍요로웠다. 그러나 69년부터 조기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조류 변화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하지만 이후에도 김 양식,해파리 잡이 등으로 그런대로 번성기가 이어졌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뜻밖의 꽃게가 ‘효자 노릇’을 하며 주민들의 호주머니를 부풀렸다.이 섬이 보유한 어선 56척은 꽃게잡이로만 연간 200억원의 소득을 올린다. 최근 연평도의 꽃게 어획량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하지만 어민들은 또다른 ‘효자’가 섬의 풍요를 이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감추지 않는다.연평도는 축복받은 땅이기 때문이란다. 연평도 김학준기자 kimhj@
  • 꼬이는 南·北·美관계/강수 두는 워싱턴-정부 입장-北 유화손짓

    6·29서해교전 이후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꼬여가고 있다.가뜩이나 북한정권을 신뢰하지 못하는 미국 부시 행정부는 다시 강경쪽으로 선회하고 있다.우리 정부는 한반도 안정을 위해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그나마 북한이 유연한 태도로 나오는 것이 한반도 긴장상태를 다소나마 누그러뜨리고 있다.남북한,미국 등 3자의 입장을 살펴본다. ■강수 두는 워싱턴/ 對北 유화책 거두는 美 “햇볕 조율”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3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피력했다.서해교전의 진상파악이 우선이고 다음에 동맹국인 한국과의 대화가 필요하며 이후 평상심을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각 단계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 수 없으나 북·미간 냉각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해교전의 진상파악에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들이 주도하고 있다.월드컵 행사동안 한반도 상공에서 24시간 활동하던 미U-2 정찰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첩보위성 등으로부터 입수된 각종 위성사진과 통신,감청자료 등을 총체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워싱턴의 군사 소식통은 “북한 함정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치밀하게 주도한 무력도발이라는 데 미 국방부내에서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공격명령 등 군사상 지휘계통을 추적하느라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 소식통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렸는지를 찾으려 한다면 분석작업은 수개월이 걸리고 이때부터는 한국과의 대화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다만 이 과정에서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는 ‘햇볕정책’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과의 대화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한국 정부로서는‘햇볕정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부시 행정부가 다시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평상심은 북한의 대응에 달렸다.파월 장관은 다음 ‘기회의 창구’를 보겠지만 모든 상황에 확신이 서야 한다는 전제를달았다.이는 북한의 정확한 해명과 재발방지 다짐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31일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북·일,북·미간 대화재개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실제 한국과 일본은 백남순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북·미대화도 주선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파월 장관은 북한 대표단과 만날 가능성은 있으나 북·미간 고위급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때문에 북·미간 대화재개는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와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의 입지 및 미국의 대화의지에 전적으로 달렸다고 볼 수 있다.셋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특사파견은 고사하고 대화재개의 움직임조차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mip@ ■정부 입장 변하나/ 무조건 대화 촉구했던 南 강경 ‘동조' ? 서해교전 및 미국의 대북특사 방북 철회로 드러난 한·미 이견해소와 한반도 긴장조성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1단계 해법은 우선 ‘한·미 공조 회복’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미측의 대화는 거절하면서도,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성명으로 발표한 대남(對南)유화 제스처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기대해온 ‘북·미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희망 그래프를 그 반대로 돌려보겠다는 얘기다.정부는 그러나 미국과 공동으로 진행중인 서해교전의 성격 규명작업 결과 북한의 의도적 도발로 명확히 판명날 경우,대북정책의 전략적 수정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공조로 = 정부는 특사파견 철회를 계기로 표면에 드러난 한·미 이견과 관련,“현실로 존재하는 시각차”라면서 “한·미간 서해교전 진상규명을 한 뒤 대북정책 재조율에 본격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여러번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현재로선 미측에 북한을 믿어달라고 설득할 명분이 없어졌다.”고 말해 당분간 북한과 대화 테이블을 펴지 않겠다는 미측 입장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출 것임을 시사했다. 대미 특사 파견도 서해교전 원인이 규명된 뒤 특사의 급과 시기를 본격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미 관계 경색이 장기화할 경우자칫 2003년도 위기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과 미국·일본의 외무장관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이달 말의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내 자성론 = 정부내에선 서해교전의 성격 규명이 안된 상태에서 미측에 무조건 대북 대화를 촉구하고,민간교류 지속 방침을 밝힌 데 대한 비판론도 일고 있다.정부 당국자는 “국민들의 정서와 거리가 먼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는 것이며 2보전진을 위한 1보 후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해교전 성격이 북측의 명백한 도발로 규명된다면 대북 정책에 대한 일부수정도 고려되고 있다는 시사로 풀이된다. 김수정기자 crystal@ ■北 유화손짓 배경/ 교전·특사파문 확산 불원 ‘제스처' 북한이 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과 비망록,노동신문 등을 통해 내놓은 내용들은 적극적 대남 유화 메시지로 가득하다.‘대화와 협력관계지속’‘6·15공동선언 정신’을 뚜렷이 부각했다.서해교전이라는 불씨가 있음에도 남한을 비난하는 내용은찾아볼 수가 없다.북·미 대화가 어긋난 지금 남북관계 타개에 나설 뜻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 당국의 비망록과 조평통 성명은 모두 7ㆍ4남북공동성명 3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대부분의 성명에서 북한은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남북간 신뢰구축이 필요하다.’‘전쟁과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등 전향적 입장을 피력했다.북·미 대화를 위한 미국의 특사 파견 철회나 서해교전 등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대북 시각의 확산을 막고 긴장 국면을조속히 일단락짓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북한의 대남 유화 메시지는 서해교전 사태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다.서해교전 직후 이광근 북한 축구협회장은 남한의 월드컵 4강 선전을 축하하는 서신을 보내온 바 있다.또한 2002 민족통일대축전을 준비중인 남측 인사들의 9∼13일 평양 방문에 동의했다.또 대북 경수로 북측 핵안전규제요원 25명을 남한에 보냈다.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민간부문의 교류와 경제협력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내비쳐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항상 북·미관계가 안될 때 남북관계에 나서는 등 북·미와 남북이라는 두축을 한꺼번에 돌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현재로선 남북대화에 응하고 싶다는 긍정적 제스처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 당국간 대화가 조기에 이뤄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한·미 양측의 서해교전 진상규명 결과가 곧 나올 것이고 현 분위기에선 북한이 책임에서 배제되는 결론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남북한간 상당기간 냉각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같은 상황과 별도로 “이날 내놓은 성명 가운데 북측의 적극성을 시사한 대목이 두드러지게 많아 북측이 가까운 시일내 대화를 제의해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서해교전때 北사곶항서 미사일 레이더 가동했다”국방부 대변인 밝혀

    서해교전 당시 북한 유도탄정에 장착된 함대함 스틱스(STYX) 미사일의 레이더가 가동,추가 공격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우리 초계함들이 강경대응했을 경우 확전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황의돈(黃義敦) 국방부 대변인은 4일 이와 관련,“교전 직후 우리 해군 초계함 2척이 현장에 접근하자 북한 해군기지인 사곶에 정박해 있던 유도탄정에 장착된 스틱스 미사일의 레이더가 가동됐다.”며 “평소에는 이 미사일의 레이더는 가동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등산곶에 위치한 사거리 95㎞의 지대함 실크웜 미사일의 레이더가 가동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황 대변인은 덧붙였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유도탄정에서 스틱스가 발사됐다면 우리 초계함에서도 더욱 강력한 함대함 미사일 하푼이 발사됐을 것”이라면서 “이 경우 (더 큰) 군사적 충돌로 확전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진해함과 제천함 등 초계함들은 전투대응 규칙에 따라 스틱스 미사일의 레이더파를 교란시켜 피격을 모면하기 위한 ‘채프’(은박 금속편)를 함정 주변에 뿌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북한 유도탄정 미사일의 발사체는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공격의사보다는 경계상태였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이에 따라 강화 기지에 있던 우리 미사일도 레이더 작동은 물론 발사체도 움직여 적극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북한 서해안에는 사곶 해군 기지에 경비정,어뢰정,유도탄 지원정 등 70여척이,장산곶과 해주 일대에 사거리 20∼27㎞ 해안포 수십문이 배치돼 있다.또 사거리 95㎞의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포진돼있다. 따라서 정치권 등 우리측 일각의 주장대로 해군 초계함들이 도주하던 북 경비정을 신속히 추격해 격침시키려고 했을 경우 북한이 유도탄정의 스틱스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확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러나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99년 6월의 서해교전을 예로 들며 “이를 확전 가능성으로 바로 연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스틱스 미사일-사정거리가 46㎞의 구 소련제 함대함 미사일로,북한이 보유중인 40여척의 유도탄정에 각각 2∼4기씩 장착돼 있다. 3년전 서해 교전 때에도 지대함 미사일 실크웜과 함께 이 미사일 발사체가 움직여 긴장감을 준 바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침몰된 고속정 인양작업 태풍 지나간뒤 8월 시작

    지난달 29일 북측 경비정의 선제 기습공격으로 침몰된 해군 고속정(PKM) 참수리 357호의 인양작업이 태풍 때문에 8월부터 시작된다. 해군은 4일 “정확한 당시 상황파악을 위해 인양작업을 서두르기로 했으나 태풍 ‘라마순’이 북상,인양을 연기했다.”면서 “함정 인양은 잠수부들의수중 작업과 크레인을 동원한 세밀한 작업이기 때문에 부득이 태풍이 지나간 뒤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8월부터 2개월 동안 진행될 인양작업에는 구조함,탐색함,해상 크레인,바지선이 동원되고 해군 해난구조대원(SSU) 60여명이 참가한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해교전/ 근본원인-南 북방한계선·北 경계선 해석 차이 해상 무력충돌의 ‘씨앗’

    남북한 사이에 실질적인 군사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과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의 차이가 서해에서 무력 충돌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방송들이 6·29 서해교전 직후 “남조선이 해상경계선을 넘어 먼저 도발했다.”고 억측 보도한 데에는 그들 나름의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우리 어선들이 연평도 주변 NLL을 넘어 이번 사태가 비롯됐다는 일부의 관측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으나,정부 차원에서 무력충돌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NLL과 해상경계선=연평도 북단 3㎞ 지점에 어업통제선이 지나간다.어민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 통제선 바깥쪽 어장에서 조업할 수 없다.어업통제선북쪽 2.7㎞에 월선(越線)을 경고하는 어로저지선(적색선)이 있다.저지선 북쪽 8.1㎞ 지점을 지나는 선이 지난 53년 유엔군사령부가 정한 NLL이다. 반면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은 우도를 중심으로 서남쪽 45도로 이어지는 직선이다.이번에 교전이 발생한 곳은 적색선을 3㎞ 가까이지난 연평도 서북쪽 지점이다.해군 2함대 소속 고속정과 북측의 경비정은 NLL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으나,북측은 NLL 우리측 안쪽까지 관할 해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적색선 주변에서 우리 어선들이 불법조업을 하면 가끔씩 북측 경비정이 출몰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연평도 주민의 어로 실태=최근들어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 56척 가운데 상당수가 통제선 안쪽 어장을 벗어나 적색선 주변에서 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연평도 해안경찰대가 파악한 바로는 교전이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과 28일에 각각 30여척씩 이곳에서 불법조업을 했다는 것이다.그 곳에는 해군 고속정의 순찰을 방해하기 위한 버려진 어망이 수없이 떠다닌다. 이례적으로 이틀에 걸쳐 북한 경비정이 그 해역에 출몰한 것이 이때다.그러나 27일 새벽 조업통제권을 지닌 해병 6여단이 주민들의 요구에 못이겨 적색선 주변의 조업을 허락했다는 어민들의 증언은 해군측의 해명과 다른 만큼 3일 현지에 파견된 합참전비태세검열단의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민들은 이른바 ‘손때가 덜 묻은 어장’을 찾아 자꾸 북쪽으로 진출하고 해군 고속정은 이를 막느라 자주 숨바꼭질을 하는 처지다.따라서 저지선과 NLL 사이 8.1㎞ 해역은 북한 경비정,남한 고속정과 함께 우리 어선들이 가끔 뒤엉키는 곳이다.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정=정부가 서해 5개도 해역의 문제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보다 남북한간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한국해양대 김영구(金榮球) 교수는 “공동어로구역 설정과 주요 해로 공동지정 문제가 비교적 쉬운 문제해결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는 “북측은 장관급회담에서 동해 원산항 주변 해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할 것을 먼저 제안한 일도 있는 만큼 합리적인 평화유지 방안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측 북의 도발증거 확보 리언 라포트 유엔군사령관은 지난 1일 국방부를 방문,“대북 감시·정찰 활동을 크게 강화했다.”고 밝혔다. 합참과 해군은 미군이 한반도 상공을 맴도는 첨보위성과 U-2 정찰기의 첩보 수집을통해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 장면이나 피해규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및 영상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보고 정보제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측은 99년 서해교전 당시에는 북측 함정들이 피해 규모를 해군기지와 평양 등에 보고하는 내용을 감청하는 데 성공,사상자 수를 정확히 파악한 바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美 특사철회와 서해교전 분석 안팎/ 韓美·北美관게 ‘1년전으로’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 국방부는 서해교전을 북한의 무력도발로 규정하고 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공언했다.이 증거의 존재가 앞으로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한 관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와 함께 미 국무부도 특사파견을 철회하게 된 주 책임을 북한의 무성의에 돌렸다.미국의 대북 시각이 다시 1년 전 수준으로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북한 도발 증거=미 국방부는 1일 오후부터 위성촬영 사진과 한반도 상공에서 활동 중인 정찰기로부터 수집된 각종 정보 등을 토대로 정밀 분석작업에 들어갔다.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2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NLL)보다 남쪽에 있었고 선제공격을 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분석의 결과로 보여진다. 아직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으나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를 대표하는 국방부가 북한의 무력도발을 입증하는 증거를 머지않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워싱턴 고위관계자는 전했다.이 관계자는 누가 공격지시를내렸는지는 가려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전 준비를 거쳐 의도적인 공격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이번 분석결과를 토대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모종의 조치를 준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워싱턴의 군사전문가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불신감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못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은 서해교전에 대한 분석작업이 끝나는 대로 결과를 한국에 통보할 예정이며,한국과 함께 누가 지시를 내리고 작전을 지휘했는지 여부도 가려낼 것으로 전해졌다. ◇철회 배경은=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일 서해교전이 대화를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특사파견 철회의 주된 이유는 북한의 답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10일 평양행 비행기를 띄우려면 대표단 구성 등 준비상황이 필요했고 최소한 독립기념일인 4일 이전에 북한의 답신이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주어진 시간이 이례적으로 짧았던 점을 감안하면 답신 운운은 옹색한 주장에 불과하다.그보다는 서해교전이 철회의 직집적인 계기가 됐고 그 이면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북·미 대화 재개를 마뜩해하지 않는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정부가 서해교전 이후에도 특사를 파견하라고 요청했지만 미 행정부는 이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북·미 관계뿐 아니라 한·미관계도 사실상 1년 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mip@
  • 이병형 前합참본부장이 회고하는 秘史/ 北 73년 “NLL 불인정”…해상 무력시위

    지난 6월29일 발생한 서해교전은 북방한계선(NLL)으로 빚어졌다.북한은 지난73년 ‘NLL은 무효이며 서해5도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북한당국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처음 주장,NLL논쟁의 불을 지폈다.이때부터 20년동안 NLL을 둘러싼 남북간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73년 당시 이병형 합참본부장을 만나 NLL과 관련된 비화를 들어봤다. 1973년 11월초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장 바로 옆 작전회의실에는 예정에 없던 긴급 비상회의가 소집됐다. 한신(韓信·육사2기·작고) 합참의장을 비롯,이병형(李秉衡·76·육사4기)합참본부장,그리고 배옥광(裵玉洸·74·해사4기) 작전국차장 등 합참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여 북한의 일방적 북방한계선(NLL) 파기선언에 따른 대응책을 긴밀히 논의했다. 이보다 1시간 전.평양방송은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내용을 전격 발표하면서 우리 군당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서해5도가 북한군 통제하의 해역에 있으므로 앞으로 우리 영해에 있는 5개도서 출입시 사전 승인과 임검을 마땅히 받아야 하며,위반시에는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남조선 당국에 엄중히 알린다….” 53년 정전협정 이후 그동안 묵시적으로 인정해왔던 북한이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이나 다름없는 NLL은 무효이며,앞으로는 자신들이 주장한 새로운 해상분계선에 의해 서해질서가 재편돼야 한다는 실로 엄청난 내용이었다. “당시 평양방송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하나는 NLL을 파기하자는 것이었고,다른 하나는 한강하구에서 서해상으로 향하는 일직선이 새로운 분계선이라는 것이었지요.이는 휴전 이후 잠잠했던 서해바다에 전쟁선포를 하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이병형 전 본부장은 당시 상황을 ‘서해사태’라고 줄곧 표현했다. 이날 비상회의를 끝낸 이 본부장은 곧바로 유재흥(劉載興) 국방장관에게 올라갔다. “장관님,저들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서해5도를 당장 요새화해야 합니다.저들의 속셈은 서해5도를 고립화시켜 결국에는 자기네 영토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맞아,나도 그렇게 생각하네.어쩌면 좋겠나.” “제가 지금 당장 서해5도를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73년 11월27일 배옥광 합참작전국차장과 김영찬(金泳燦·74·육사5기)국방부동원국장 등과 함께 해군의 고속수송함(APD) 2300t급 ‘81함’을 타고 백령도,대청도,연평도 등 서해5도 순시에 나섰다. 아,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전혀 예상치 못한 위급 상황이 벌어졌다.이 본부장 일행을 태운 APD함이 연평도에 잠시 들른 뒤 이날 저녁 백령도로 막 향하는 순간이었다.연평도 서쪽 약 6마일 해상쯤이었다. APD 함상 곳곳에 설치된 비상벨이 갑자기 울리더니 “전원 전투배치부터.”라는 함장(정현경 대령)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하달됐다. 저녁식사 후 함장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이 본부장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이때 함장이 뛰어들어왔다. “본부장님,위급상황이 벌어졌습니다.CIC룸(레이더실)으로 지금 빨리 가줘야 하겠습니다.” “함장,도대체 무슨 일인가?” “적함 출현입니다.포문을 우리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본부장은 함장의 안내로 서둘러 레이더실로 올라갔다.동행했던 배 제독과 김 장군 등 합참 고위장성 10여명도 이미 도착해 전방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레이더 화면에는 NLL을 표시하는 선이 가운데에 그어져 있고 그옆에 APD함의 예정항로가 표시돼 있었다.그런데 APD함 예정항로 양쪽 옆에적 함정 6척씩,모두 12척의 북한 군함이 배치돼 있었다. “틀림없는 북한 군함들인가?” “예 그렇습니다,본부장님.” 아니 이럴 수가.저들이 어떻게 알고….위기일발이었다.북한군 함정이 이미 우리측 영해로 깊숙이 내려와 있는 데다 이 본부장 등 합참의 수뇌부들이 승선한 APD함을 완전히 포위한 것이 아닌가. “함장,이런 경우가 있었나?” “아닙니다.처음입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일단 인천쪽으로 항로를 돌린 뒤 백령도로 돌아가는 우회항로를 택하겠습니다.” “알았네.함장인 자네 의견에 따르겠네.” 이 본부장은 다시 함장실로 돌아왔다.제발 무슨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조바심으로 몸을 뒤척이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얼마쯤 지났을까.다시 비상벨소리가 들리고 “전원 전투배치부터.”라는 함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함장이 또다시 헐레벌떡 달려왔다. “본부장님,백령도 항구 앞쪽에 적함 두 척이 나타났습니다.” 우회항로를 통해 연평도 해상의 적함 12척은 따돌렸지만 백령도에 가까워지자 다시 새로운 적함들과 조우했다는 것이었다. 이 본부장은 다시 레이더실로 올라가 상황을 주시했다.함장의 말대로 북한군함 2척이 항로를 가로막고 있었다.불과 1마일도 안된 해상에서 기동시위를 벌이며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함장,비상조치는?” “우선,우리 구축함 1척을 백령도 근처에 출동시켰습니다.” “어떻게 할 셈인가?” “저들의 함포가 우리쪽으로 향해 있습니다.이대로 가면 전쟁으로 이어질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비상용 항구가 있습니다.지금 저들이 가로막고 있는 항구는 용기포항입니다.남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장촌부두가 있습니다.함선을 남쪽으로 향하는 척하다가 장촌 부두쪽으로 돌리겠습니다.” 이 본부장은 함장의 조치내용을 옆에서 들으며 가만히 밖을 응시했다.뇌리에 번개 같이 뭔가 스쳤다.‘세상에 이게 웬일인가.저들이 NLL파기선언을 일방적으로 하더니 이제 와서 우리를 어쩔 셈인가.납치?전쟁? 우리 일행의 서해5도 방문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나중에 밝혀진 일이었지만 이 본부장일행이 서해5도 지역을 방문할 때 관련 도서부대에 암호화하지 않은 평문으로 무전을 타전,북한 군당국에 도청당했다.) 잠시 후 새벽이 밝아오면서 어슴프레 함교 좌측 전방쪽에 큰 물체가 시야에 들어왔다.한국군 구축함 91함(충무함)이었다. 당시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APD함의 비상 지원요청을 받고 공해상에 있던 구축함 한 척을 급파했다.”고 말했다. 당시 APD함에 동승했던 배옥광(전 동서울컨트리클럽사장) 제독은 “세월이 지나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북한 경비정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우리 측 구축함도 출동,서로 교전 상황까지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전도봉(全道奉) 전 해병대사령관은 당시 백령도 해병부대 정보정찰 장교로 근무중이었다.그는 마침 이날 새벽 백령도 관측소(OP)에서 북한군 경비정이 우리측 APD함을 가로막고 시위기동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고 있었다.이와 관련,전 전 사령관의 회고. “그날 새벽녘에 81함이 잠시 시야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대신 북한군 고속정 4∼5척이 갑자기 나타나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백령도 앞바다를 고속 선회 항해했다.당시 백령도와 대청도 일대에는 즉각 비상이 걸렸으며 백령도에 설치된 각종 포문도 모두 열렸다.” 결국 APD함은 이날 아침 우회항로를 통해 장춘항에 도착했다.백령부대장 김치현(사망·해군간부 8기) 대령이 이 본부장 일행을 맞이했다. “본부장님,휴전 이후 이곳에 첫 공습경보가 내려져 있습니다.” “부대장,그게 무슨 말이오?” “적기 4∼5대가 백령도 상공에 출현했습니다.1,2초 간격으로 선회비행하다가 돌아가곤 합니다.” 해상의 적들을 피해 겨우 왔는데 이번에는 공중에서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이 본부장은 레이더기지에 직접 가서 이를 확인했다.부대장의 말대로 백령도 상공 고공에 적기 3대가 떠 있었다.결국 우리측 공군기의 추가 발진으로 적기들이 돌아가면서 상황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와 관련,해군 기록에 보면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기술하고있다. “73년 11월27일부터 29일까지 이병형 합참본부장외 장성 10명이 서해 도서지역을 시찰하다가 북한 경비정 수척과 조우했다.81함은 2130t이며 정현경(전 해군참모차장) 대령이 함장이었다.81함은 2000년 12월 패함됐다….” 서울로 돌아온 이병형 본부장은 이튿날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임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했다.이 자리에서 이 본부장은 서해5도의 요새화 필요성을 강조했다.그러자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이 “만약 서해5도가 요새화한다는 것이 저들에게 알려지면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나섰다.결국 장시간 회의 끝에 이 본부장의 주장대로 서해5도의 요새화 계획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하고 일단락지었다. 이튿날 박 대통령은 이 본부장과 마주한 자리에서 ‘서해5도의 요새화는 NLL을 굳건히 유지시키는 것과 다름 아니다.’는 요지의 보고를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경제기획원장관을 불러 예산 40억원을 즉시 지원해주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탄생된 것이 ‘81프로젝트’였다.81함에서 입안됐다고 해서 이렇게 명명됐다.그런데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주한미군측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 본부장이 청와대에 다녀온 몇 시간 뒤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찾아와“백령도를 굳이 요새화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이에 이 본부장은 “만약에 러시아가 하와이를 위협하면 가만히 있겠느냐.”는 논리로 맞섰다. 이 무렵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서해의 NLL을 인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서해 5개도서는 북한의 영토”라고 주장하곤 했다.그러던 차에 북한 군부는 한국군 고위 장성인 합참본부장 일행의 백령도 방문 사실을 미리 알고 기습적으로 고속정을 발진시켜 서해 5도가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김문기자 km@
  • 美, 北선제공격 위성촬영

    (워싱턴 백문일특파원·김수정기자) 미 국방부는 2일(현지시간)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한국 해군에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every reason)’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한국이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 함정이 이미 남쪽으로 상당히 넘어왔고 먼저 공격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증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북한측의 공격이 의도적이었는지,아니면 우발적이었는지 말할 입장이 아니지만 유엔군과 한·미 연합군에 영향을 미칠 ‘정전협정 위반’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의 고위관계자는 “미 국방부가 1일 오후부터 위성촬영 판독 등을 통해 서해교전의 정밀분석 작업에 들어갔다.”며 “북한이 한국 해군을 공격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친 것으로 결론지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국무부는 서해교전으로 대화의 분위기가 불가능하고,북한이 시의적절한 답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당초 10일로 예정됐던 대북특사 파견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성명을 통해 “1일 밤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에 특사 파견을 더 이상 계획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며 “한국과 일본에도 이같은 방침을 전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서해교전 사태에도 불구,미국측에 대북 특사를 예정대로 파견해줄 것을 요청한 데 대해 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특사 파견계획을 취소함에 따라 한·미간 대북 정책을 놓고 갈등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바우처 대변인은 10일로 예정된 특사(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 파견을 준비하기 위한 북한의 ‘시의적절한(timely)’답신이 없었으며,서해 무력충돌로 대화를 수행하기에 맞지 않은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철회배경을 설명했다.그는 현 시점에서 방북 일정과 관련한 재조정은 없으며,사태가 진전되는 것에 따라 나중에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9월 의회가 개회될 때까지 북·미 대화 재개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미국 특사 제의 철회가 완전무산이 아닌 지연으로 보고 북·미 대화의 재개를 위한 중재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정부는 한·미간 협의를 위해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4일) 이후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mip@
  • [사설] 장외에서 떠드는 ‘식물국회’

    서해교전 후속대책을 정치권이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국회에 부여된 책무일 것이다.그러나 우리 정치권의 모습은 영 딴판이다.한나라당은 군 수뇌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 검토에다 대통령의 사과와 북한 책임자 처벌 및 배상을 요구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반면 민주당은 사태의 파장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가에 골몰하고 있다.여기에 ‘우리 어선이 어로한계선을 넘어 조업하는 바람에 문제가 야기됐다.’는 남한 책임론까지 가세하면서 정치권의 공방은 월드컵 이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미국이 제임스 켈리 대북특사 파견을 철회하고,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북한 함정이 월경해 도발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공개리에 밝히는 등 한·미간에도 대북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자칫 한·미 공조와는 별개로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될 수도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처지에 국회가 총무간 합의대로 오는 8일까지는 무조건 ‘식물국회’로 방치된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서해 교전이 터진 지난달 29일 오후 전반기 국회 국방위원들의 간담회가 열렸으나,이미 임기를 다해 의결권이 없는 처지였다.정부에 호통을 칠 자격조차 있는지 의심스러운 의원들의 공허한 목소리였다.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대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순직 장병들의 영결식장에 국가 지도자들이 ‘참석했네,안 했네’를 놓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만이 정치권이 해야 할 책무가 아니다.개정된 교전수칙이 자칫 전쟁을 불러올 소지는 없는 것인지 점검해보는 것도 더이상 늦출 일이 아니다.또 서해 교전 속에서도 월드컵 3,4위전을 완벽하게 치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장렬한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렇다면 국회를 정상적으로 열어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도 의원들의 중요한 직무일 것이다.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후반기 국회 구성을 앞당겨야 한다.더 이상 정당간 감투 배분 때문에 꼴사나운 ‘식물국회’가 연장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南北 공동어로구역 검토

    정부는 지난달 29일 발생한 서해교전 사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 가운데 서해상 3∼4곳에 ‘남북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3일 “이번 서해교전 사태가 지난 99년 6월 교전사태와 같은 이유에서 발생한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사태 해결의 첫 단추는 남북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이 관계자는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검토 문제는 북측이 요구하는 사항으로,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만큼 현재 진행 중인 한국과 미국간의 관련 협의가 끝나면 그것을 토대로 남북간의 접촉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공동어장은 NLL을 중심으로 우도 서쪽과 연평도를 감싸는 해역,소청도 서쪽과 북한의 옹도 주변 해역,백령도 동쪽과 북한 옹진반도 서쪽 해역,백령도 남쪽 해역 등이다.주로 현재 NLL과 북측이 자신들의 해역이라고 주장하는 해상경계선 사이다. 이와 함께 서해상에서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남북간 관련협약체결 및 주요 해로지정 방안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국방부는 지난 1일부터 주한 유엔군사령부와 NLL을 둘러싼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한·미 군 당국이 검토 중인 내용은 ▲NLL 이남 해역의 공동대응태세 지침 마련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따른 군사협조 등으로 전해졌다.특히 국방부는 서해상에 대한 함정기동정보 공유 등도 미국측에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군사령부(사령관 리언 라포트 육군 대장)는 6·29 서해교전 사태 해결을 위한 장성급 회담을 열자고 북측에 다시 제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오후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으로부터 북한의 서해도발 사태와 관련한 종합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동일한 사태가 발생할 때에는 규정에 의해 엄격히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김 대통령은 또 “군은 완벽한 대비태세를 갖춰 이런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거듭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운기자 kkwoon@
  • [기고] 서해교전 냉정한 분석과 대처를

    남북한 관계의 이중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실감나는 요즈음이다.‘평화통일’이라는 7000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다방면에 걸친 대화와 회담을 진행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155마일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첨예한 대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지난달 전 세계적 ‘꿈의 축제’라 일컬어지는 월드컵대회에서 터키와 3-4위를 겨루는,바로 그날(6월29일) 북측은 동족인 우리의 쾌거를 성원하기는커녕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이런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유감없이 재현(?)시키고 있다. 이 사태로 27명의 무고한 대한민국 군인들이 살상되고 고속경비정인 ‘참수리 357호’가 침몰돼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크게 흔들리는가 하면,북녘동포들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 온 우리 국민 대다수의 마음을 안타깝고 비통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異常)사회’라고는 하지만,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같은 군사적 살상행위를 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더욱이 북측은해군사령부 및 외무성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KCNA)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이 “남조선 군사당국이 반북대결의식을 고취시키고 공화국의 국제적 권위를 훼손시키기 위해 저지른 조작극”이라고 왜곡하고 있으니,적반하장(賊反荷杖)이 극에 달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우리사회 일각에서 “우리 군(軍)의 대응태세에 문제가 있어 패전(敗戰)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까지 대두돼 함정장병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예단은 위험하다.자칫 사태의 본말을 전도시킴으로써 국가를 위해 싸운 해군장병은 물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제2의 군사적도발’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전체 국군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이번 교전은 일각의 판단처럼 우리만이 엄청난 피해를 본 일방적 ‘패전’이 아니라 오히려 북측의 기습도발로 ‘조타실’을 비롯한 함정의 치명적인 부분이 피격받았음에도 자동포 등 모든 화기들을 총동원해 결사항전한 전투로 볼 수 있다.기습공격을 감행한 북측의 경비정 1척이 파손되고 30여명으로 추정되는 인민군들이 사상한 것으로 알려져 ‘일방적 패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 일각에서는 우리 군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고 안이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엄청난 후과(後果)를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확전을 불사하고라도 북측경비정을 격침시켜야 했었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자를 엄중처벌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이런 견해나 주장은 대부분 한반도의 분단현실,다시 말하면 ‘이중적 특수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왜냐하면 정전협정 및 남북기본합의서의 관련규정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북한군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면전 위험을 무릅쓰고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국제평화유지’를 기본사명으로 하는 것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이 경고에서 사격에 이르기까지 5단계에 걸친 교전규칙을 준용한 것은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였으며,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고 본다.관련자에 대한 처벌문제 역시 관련정보를 충분히 분석·평가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그보다 먼저 고귀한 생명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부상당한 장병들의 쾌유에 힘을 쏟아야 한다.지난해 9·11테러때 미국국민이 정부를 책망하기보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통감하며 여론을 결집,이들을 위한 후속조치 마련에 전력을 기울였던 점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한 북측이 어떤 의도에서 이런 도발을 저질렀는지 그 저의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아울러 이를 계기로 국론을 결집하고,북측에 대해 공식사과 및 책임자 처벌,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강석승/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 연평도 나흘째 출어금지

    덕적도 서쪽 서해해역에 대한 조업 재개 방침에 따라 덕적도와 대청도,강화지역 꽃게잡이 어선들이 2일 새벽부터 일제히 출어에 나섰다. 그러나 연평도 어민들은 나흘째 출어가 금지됐다. 덕적도 어선통제소는 “덕적 서방 서해해역에 대해 2일은 일몰시간까지,3일에는 북방 37도20분 이남까지의 조업이 허용되는 등 서해특정구역(북방 37도25분 이남)까지 단계적으로 허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양경찰청은 우리측 어선의 안전을 위해 덕적도 해상과 강화 만도리 어장등에 4척의 경비 함정을 근접 배치했다. 연평도 김학준기자
  • 퇴각 안하면 바로 경고사격, 대응절차 3단계로 단순화

    앞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는 북 경비정에 대해서 우리 함정은 안전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시위기동을 하되,퇴각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경고사격에 이어,격파사격을 실시하게 된다. 이는 이번 서해교전의 경우 NLL을 넘은 북 경비정에 대해 근접거리에서 경고방송과 차단기동(밀어내기)을 함으로써 전사 4명을 포함해 사상자 24명,고속정 1척 침몰 등 막대한 피해를 입은 점을 감안,경고방송과 차단기동을 안하겠다는 것이다. 합참은 2일 이같은 내용의 ‘작전 지침’을 해군의 모든 작전부대에 시달했다고 안기석(安基石) 합참 작전차장이 밝혔다. 이에 따라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돼 있는 5단계 대응절차는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단순화된다. 안 작전차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새 작전지침은 우리 함정의 기동 및 함포운영에 유리한 공간을 확보한 상태에서 시위기동을 하면서 적 함정을 퇴각시키되,이에 불응할 경우 경고사격에 이어 격파사격에 들어간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은 ‘합동대비전력'과 관련,“앞으로는 북 함정의 NLL 침범징후만 포착되어도 해군뿐 아니라 공군전력,백령도·연평도에 위치한 지상군 전력이 합동으로 대비한다는 것”이라며 “이 때 공군전투기의 초계비행 범위가 NLL 부근쪽으로 전진배치된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해교전 당일 우리어선 조업경계선 이탈 “불법어로 통제중 피습” 논란

    서해교전 당일 우리 어선 일부가 북방한계선(NLL)까지는 아니지만 조업경계선을 넘어 불법 어로행위를 하는 바람에 우리 해군 경비정이 어선들을 통제하느라 분주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조업경계선 북쪽 1.5마일,NLL 남쪽 4.5마일 해상에 위치한 적색선(어로 저지선)에 우리 어선 상당수가 불법으로 그물을 쳐놓았고 군은 그물 철거를 위한 조업구역 이탈을 한때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연평도 어민 등에 따르면 교전 당일 조업허가를 받은 어선 56척 가운데 10여척이 꽃게잡이에 열중한 나머지 해군 함정 6척의 통제를 벗어나 정해진 작업구역을 이탈한 것으로 전해졌다.우리 해군은 어선들을 급히 남쪽으로 유도했으나 어선 1∼2척이 통제를 무시한 채 달아나 우리 고속정과 어선간의 추격전마저 벌어진 와중에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NLL을 침범,선제사격을 했다는 것이다. 어민 최모(39)씨는 “꽃게 흉년에 금어기마저 앞둔 시점이어서 서해교전 직전인 29일에도 어선들이 조업경계선을 이탈,어로작업을 하다 북한 경비정이 나타나 강제철수했다.”고 말했다.지난달 27·28일에도 10∼30척 정도가 조업구역을 이탈,적색선 구역에서 조업하다 해군의 조치에 따라 강제철수를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민들은 “지난달 27일 새벽 6시 출어 전 해군 경비정이 연평도 당섬에 정박해 있던 어선들에 ‘27∼30일 적색선에 쳐놓은 그물 철거를 위한 조업이 가능하다.’는 방송을 했고 해군 2함대와 해병대 연평부대가 어민회에 허가공문까지 보냈다.”고 주장했다. 주민 이모(39)씨는 “올들어서만 우리 어선이 12차례나 조업경계선을 벗어났다.”면서 “꽃게 욕심을 참지 못한 어민과 사실상 조업구역 이탈을 묵인한 군당국에도 이번 교전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어선 1척이 어로 한계선과 한계선 밖 0.5∼1 마일 사이를 드나들었을 뿐이고,이탈 어선을 교전·피격 함정과는 다른 고속정 328호가 통제했으며,조류에 밀려 조업구역 밖으로 나간 그물 철거는 꽃게잡이가 끝나는 6월말 이후 허용해온 관례에 따라 이번에도 7월 초에 허용할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북한은 연평도 인근에서 잡은 꽃게 대부분을 중국으로 수출,주요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한다. 연평도 김학준기자 kimhj@
  • 서해교전/ 최초 피해보고 늦고 부정확

    ‘6·29 서해교전’당시 우리측 피해 규모가 최초로 보고된 것은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는 시점이었고,그 내용도 부정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관계자는 2일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피해 보고가 2함대 사령부에 접수된 것은 29일 오전 10시50분쯤이었으며,그것도 ‘4∼5명이 다친 것 같다.’는 수준의 부정확한 보고였다.”고 밝혔다.첫 피해보고는 피격된 357호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던 고속정 358호가 했다.예인선이 도착한 뒤 357호의 승조원 27명 가운데 24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확인됐다. 해군 관계자는 “357호는 첫 포격이 조타실에 명중,통신이 두절된 데다 결사항전을 하느라 보고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358호도 교전중이라 더 일찍 보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전 사실과 남북한 함정들의 기동상황은 교전 직후인 오전 10시30분쯤 고성능 레이더를 갖춘 해군 KNTDS(첨단 지휘통제 장비)를 통해 2함대사령부와 합참 지휘통제실 등에 동시에 보고됐다. 따라서 북한 경비정을 뒤쫓던 초계함 2척이 조준사격으로 격침시키지 않은 것은 그 당시까지 우리측의 피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확전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김경운기자 kkwoon@
  • “北 재도발땐 강력 응징”

    6·29서해교전과 관련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자민련의 시각차가 뚜렷해 관련자 문책 및 햇볕정책 지속여부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김동신(金東信)국방장관 등 관련자의 즉각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으나 청와대 관계자는 정확한 진상조사 전에는 문책인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2일 일본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에서 귀국보고를 통해 “북한이 또 다시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려 한다면 그때는 북한도 아주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그럴 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북한 함정이 우리 함정을 기습공격해 우리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우리는 북한에 대해서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면서 “정부는 북한에 대해 사과와 책임자처벌,재발방지를 단호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어 “전쟁을 하지 않는 한,한반도에서 평화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해 대북 포용정책의 지속의사를 밝혔다.이에 대해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에 대한 상황인식도 없고,진심 어린 대(對)국민사과도 없는 실패작”이라며 비판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김동신 국방장관과 이남신(李南信) 합참의장 등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서 인책문제가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당장 해임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서해 무력도발 진상조사특위’를 본격 가동해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책임규명 및 대(對)국민사과촉구 등을 추진키로 했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정략적 이유로 안보에 대한 불안을 조성하거나 정부와 국민 사이에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이라면서 김 대통령의 귀국보고 내용을 지지했다.민주당은 고위당직자회의를 열고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지속적 추진과 안보태세 확립 등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으나 군 수뇌부 인책여부는 진상조사 뒤 결정키로 했다.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김 국방장관과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의 해임을 요구했다. 오풍연 조승진기자 poongynn@
  • 서해교전/ 작전지침 개정 안팎

    합참이 2일 갑작스럽게 새로운 작전지침을 예하부대에 시달한 것은 군의 ‘대응미숙’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합참은 도발에 대한 강경대응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교전규칙과 합참예규를 수정·보완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작업에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여론무마를 위해 당장 손댈 수 있는 ‘작전지침’을 수정한 것으로 여겨진다.이는 물론 불시에 다시 교전 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작전지침보다 상위 개념인 교전규칙의 수정·보완작업은 합참이 유엔사와 함께 면밀히 검토해야 하고,이를 토대로 합참예규를 변경해야 하는 등 과정이 복잡하다. 변경된 작전지침의 핵심은 피아(彼我) 함정간 ‘안전거리 확보’에 있다.기존의 5단계 지침에서 ‘경고방송’과 ‘차단기동’2단계를 건너뜀으로써 적의 사격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안기석(安基石) 합참 작전차장은 이날 “그간 북 경비정에 경고방송과 차단기동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근접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지침을 준수하다보니 적의 사거리 안으로 다가서야 했고,그러다보니 선제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안전거리 확보는 적극적인 공격과도 직결된다.경고방송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안전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적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우리 함정의 위치를 선택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합참은 이는 ‘선제 사격’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번 교전에서 북한 경비정이 했던 것처럼 아무 경고없이 불시에 타격을 가하는 게 아니라 경고사격후 격파사격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북 함정의 퇴거를 요구하는 시위기동을 하다,북한 함정이 이에 불응하면 경고사격을 하고,그래도 퇴각하지 않으면 격파사격에 들어가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처럼 새 작전지침에 드러난 ‘적극 공세’ 방침은 향후 해군뿐 아니라 공군·지상군 등 합동전력의 대비태세도 적용될 전망이다.합참은 “적 함정의 NLL 침범 징후만 포착돼도 육·해·공군 합동전력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군에서는 사거리가 더 긴 함포들을 함정에 장착하고,해군 함정의 재편성·재배치도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그간 NLL 부근에서 교전이 벌어진 뒤에야 전투기의 초계비행을 지시했던 공군도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예상된다. 이지운기자 jj@
  • 서해 조업 부분재개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29일 서해 교전 이후 중단된 덕적 서방 서해 해역(북위 37도 북방 37도20분 남방) 조업을 2일부터 부분 재개한다고 1일 밝혔다.해양부는 우리측 어선들의 안전을 위해 일출 시간부터 일몰 시간까지만 조업을 허용하고 조업시간 동안 해양경찰청의 경비함정과 어업지도선을 근접 배치할 방침이다.해양부는 조업의 완전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동향을 주시하면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주병철기자 bcjoo@
  • 80년 포항 간첩선전투 예비역 하사 김병국씨

    “20여년전 제 전우가 당했던 일을 후배들이 똑같이 겪어야 하다니,정말 안타깝습니다.” 예비역 해군 하사 김병국(45·사진·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지난 달 29일 서해 교전 소식을 듣고 한동안 숨이 멎는 듯했다. 지난 80년 포항 앞바다에서 근무하다 간첩선과 맞닥뜨려 전투를 벌였던 때와 상황이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1일 기자와 만나 “당시에도 아군 배가 북한군에 옆구리를 보이는 바람에 전우 한명이 적의 사격에 노출돼 사망했다.”면서 “이번에도 북한경비정에 배의 왼쪽을 그대로 내보인 고속정이 침몰당해 피해가 컸다.”고 아쉬워했다.북측의 경비정을 앞쪽에 두고 아군 고속정이 좌우 삼각형 모양으로 접근해 들어갔어야 한쪽이 공격당하더라도 반격도 쉽고 피해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때문에 2척의 아군 고속정을 북측 경비정 전방 지점에서 옆면을 드러낸 채 일렬로 배치한 현장 지휘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80년 포항 앞바다 교전 이후 적 함정을 앞에 둔 상태에서는 반드시 삼각형 형태로 접근하도록 교전수칙이 바뀐 것으로 안다.”면서 “왜 교전규칙대로 움직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씨는 “동물도 싸울 때는 상대에게 옆구리를 보여주지 않는 법”이라며 젊은 후배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그는 이번 서해교전을 계기로 북측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면 위협사격이라도 가하는 등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씨는 “바다에서는 씻는 물도 나눠쓰는 것이 동기요,전우인데 남은 이들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영표 황장석기자 sur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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