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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침몰 이후] “함수라도 로프로 끌고 왔어야…”

    해군 함정 ‘천안함’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된 지 5일째인 30일 백령도 주민들의 관심은 온통 이번 사고에 집중돼 있다.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보도진이 긴장을 부추긴다.”며 덤덤해하는 주민들이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삼삼오오 모여 이번 사태를 걱정하는가 하면 답답한 심정에 바닷가로 달려가 수색현장을 지켜보는 이들도 있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장병 46명이 아직 바다 밑에 갇혀 있는 데다 구조작업이 더딘 것에 이구동성으로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모(54·여·진촌1리)씨는 이날 “실종된 장병 부모들은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왜 이렇게 구조작업이 진전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상사고의 특성을 아는 어민들을 중심으로 실종자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일기도 한다. 진촌어촌계 어민 이모(53)씨는 “안타깝지만 바다에서 선박 침몰사고가 일어났을 때 바로 구조되지 못하면 사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고 초기 대응이 잘못됐다고 탓하는 주민들도 있다. 우모(55·북포리)씨는 “사고 직후 침몰한 배 뒷부분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2시간 후에 완전히 침몰한 앞부분은 구조에 나선 함정들이 로프를 걸어 끌고 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어부 경력 20년인 우씨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긴박했던 구조 동영상 공개

    [천안함 침몰 이후] 긴박했던 구조 동영상 공개

    26일 밤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56명의 실종자를 구조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501경비함(함장 고영재)이 찍은 동영상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비함이 오후 9시35분 출동, 사고 지점에 도착한 때는 10시15분. 이때 천안함은 이미 침수되고 반 이상 가라앉은 상태였다. 해군 고속함정 4척이 먼저 출동해 있었지만 조명만 비춰주고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영재 함장은 “고속정 승조원들이 구명벌 등의 장비를 들고 갑판에 나와 접근을 시도했으나 파도가 3m가량 높게 일고 있었고 천안함이 90도로 기울어져 있어 계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승조원을 구조해 옮겼던 경비함 고속단정이 심하게 요동치는 모습으로 당시 파고를 짐작할 수 있다. 승조원들은 함수 쪽에 모여 있었고, 어둠 속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승조원들이 동요하거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안함 밖으로 뛰어내리는 승조원도 없었다. 고 함장은 “승조원들이 군인이어서 그런지 침착하게 질서를 지켰다.”고 말했다. 구조는 경비함 소형 구명보트(리브보트)를 이용했다. 이 보트는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단속하거나 조난자 구출에 주로 사용되는 10, 12인승 고무보트다. 칠흑 같은 바다를 가로질러 고속단정 1척이 먼저 경광등을 반짝이며 함수 부분만 남아 있는 천안함에 바짝 붙었다. 고속단정 2호도 크레인에 매달린 채 수면 위에 내려보내졌다. 고속단정은 우선 생존자 12명을 구조했다. 첫 구조자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경비함으로 올라왔다. 오후 11시35분 구명뗏목을 타고 표류 중인 12명까지 모두 56명을 구조해 해군 고속정으로 인계했다. 해경 구조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천안함 선수 부분에 적힌 고유번호 ‘772’ 숫자도 물속으로 잠겼다. 고 함장은 구조활동 막바지에 한 승조원으로부터 “제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듣고 구조활동을 중단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천안함 함장이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해군과 함께 다음날 오전 2시30분까지 수색을 계속했다.”고 전했다. 천안함 최원일 함장이 구조된 후 501경비함 내에서 생존 장병 전원을 불러 놓고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승조원들은 식당에, 함장과 부장장교는 사관실로 격리했기 때문에 서로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사설] 軍 대응 아쉽지만 차분히 지켜보자

    천안함 참사 닷새째인 어제도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찾기 위한 구조작업이 계속됐다. 군은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해 실종 승조원들이 갇힌 것으로 추정되는 함미(艦尾) 내부에 다가가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민·군 잠수 요원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40m 바닷속 개펄에서 세계에서 세번째로 빠른 조류와 싸우며 사투를 이어갔다. 구조작업 중 UDT 요원이 숨지는 일까지 빚어졌다. 그러나 생존 한계 시한이라는 69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원망이 군에 쏟아지는 형국으로 바뀌고 있다. 이미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가족이나 국민들의 심정은 이해 못할 바 아니나 지금은 군을 믿고 맡길 때다. 군의 초기 대응부터 살펴보면 걱정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해저 탐지 능력을 갖춘 기뢰함은 10시간 후에 출발했고, 구조함은 늑장 출동했다. 사고 지점에서 50m도 채 안 되는 곳에 침몰한 함미 부분을 찾아낸 것도 군함이 아니라 어선이었다. 해군 함정 4척이 먼저 도착했지만 58명을 구조한 것은 해경 함정이었다. 군은 장비 투입이 늦어지고, 엉뚱한 곳에서 수색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했다. 마지막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가 산소를 모두 소진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승조원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늑장 구조와는 반비례해서 갖가지 의혹은 줄을 잇고 있다. 군이 오락가락하는 분석을 내놓고, 보안에 급급한 듯한 인상을 주면서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앞으로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사고 원인을 규명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대응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무엇인지, 사고 재발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검토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책임질 부분이 있는지, 있다면 누가 져야 하는지도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도 빠뜨려선 안 되지만 나중에 따질 일이다. 군은 인내심을 갖고 생존자를 찾아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지금은 대응이 미흡하다고 군에 책임을 추궁할 때도, 군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엉뚱한 데 힘을 허비할 때도 아니다. 잠수요원들이 선체 부분을 망치로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이르다. 69시간이 지나도 생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 [데스크 시각] 뼈를 깎는 고통이란/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뼈를 깎는 고통이란/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먼저 천안함의 실종 군인 가족과 부상 장병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멀쩡한 1200t급 함정이 원인도 모른 채 두 동강 나면서 순식간에 가라앉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침몰 중’이라는 짧은 속보를 처음 접했을 때 “전투를 치른 것도 아닌데 설마….”하며 쉽게 믿기 어려웠다. 설마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진짜 위기다.”라며 경영 일선에 복귀한 것을 놓고 일부에서는 “잘나가는 삼성이 설마… 무슨 꿍꿍이셈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시나리오대로 경영권을 다시 장악하려는 것인데 괜한 위기론을 들고 나온다는 의심이 드는 모양이다. 엉뚱한 상상은 집어치우고 현실을 똑바로 보자.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부문 중에 어느 것 하나 전망이 밝은 게 없다. 세계 반도체업계는 지난해부터 사상 초유의 수요감소를 겪으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업체인 실리콘 래버러토리스의 최고경영자(CEO) 네십 세이너는 “세계 반도체 기업 중에 올해 매출이 2008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곳은 하나도 없다.”라고 단언했다. 애플이 2007년 6월 아이폰을 출시한 뒤 3년 만에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4.4%로 성장하기까지, 최고라는 삼성은 3.7%에 불과했다. 국내 통신시장의 문을 걸어 잠그고 ‘물러난 하드웨어 시대’와 ‘들이닥친 소프트웨어 시대’를 인정하지 않은 탓이다. 내심 기대를 걸고 있는 3D TV 시장도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이 일찌감치 한 걸음 앞서 가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신경영을 주문한 바 있다. 당시 삼성은 소비자들로부터 “국산도 제법 쓸 만하다.”라는 말을 들으며 국내 가전을 어느 정도 평정했다. 그러나 “참 잘 만들었다.”라는 칭찬을 들으려면 다 바꿔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제 “과연 명품이구나.”라는 극찬을 원한다면 뼈를 깎아야 한다. 볼품없는 탄소 덩이인 연필심이 화려한 다이아몬드로 변신하려면 10억년 이상을 지하 140㎞ 맨틀에 묻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섭씨 2000도 이상의 고온과 1㎠의 면적에 1200t의 무게가 짓누르는 압력을 견디면서 말이다. 이때 운 좋게 머리 위에서 화산이 터지면 용암을 따라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다이아몬드이다. 지구의 생물들은 5차례 대량 멸종 사태를 겪었다. 그때마다 극히 일부가 슬기롭게 살아남아 오늘날 인류로 이어졌다. 원시 어류는 대형 전갈 등을 피해 살기 좋은 바다를 포기하며 민물로 흘러들었다. 민물에 부족한 칼슘을 제때 공급하려고 몸에 조금씩 축적한 것이 등뼈를 만들었다. 산소가 부족해지자 아가미를 버리고 모세혈관에 산소를 많이 저장할 수 있는 폐를 만들었다. 거대 파충류와 용암 분출 등을 피해 땅속에 숨어 지내던 포유류의 조상은 함부로 알을 낳지 않고 자궁을 만들어 새끼를 보호했다. 영장류가 두 발로 선 것은 밀림이 초원으로 변하자 부족한 먹을 것을 찾고자 불편을 참으며 몸을 일으킨 것이다. 허리를 곧추세우며 인류는 척추에 대한 압력 때문에 디스크 질환의 위험을, 탈장(脫腸)을 막으려 좁아진 골반 때문에 출산의 고통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뼈마디가 시린 고통이지만 직립은 분명히 인류 문명의 출발이었다. 인류 문명은 혁신적 진화의 결과인 셈이다. 도요타 리콜 사태를 부른 원인 중에는 역설적으로 ‘가이젠(改善)’이라는 기업문화도 있었다고 한다. 내부의 문제점을 찾아 고쳐 나가는 도요타의 힘이 어느 순간 변질되면서 ‘문제점을 알면서도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으면 보고하지 못하고 덮어두는 분위기’를 말한다.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지금 필요한 것은 섣부른 개선이 아니라 10년 먹거리를 반드시 찾기 위한 대혁신이다. kkwoon@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해군·해경 공조 강화해야

    해경이 지난 26일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해군 함정 ‘천안함’ 장병 56명을 구조했다고 발표한 것은 28일 오후. 사고가 발행한 지 이틀 만이다. 해경 측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접경지역에서의 해군과 해경 간의 역할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주도권은 해군이 행사한다. 군사적 행동과 관련된 모든 작전권은 해군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경은 주로 NLL에서 10∼20마일 떨어진 어로한계선에서 작업하는 어선 보호 및 불법조업 단속 업무를 수행한다. 무엇보다 해군과 해경 간의 공조체제 문제가 제기될 때는 NLL에서 북한과 연관된 긴박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다. 비상시에도 해군 함정은 어로한계선 북쪽에서, 해경 경비정은 어로한계선 남쪽에서 경계업무를 편다. 해경은 같은 경계를 펴지만 정보 부족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어차피 유사시에는 해군과 해경이 합동작전을 펼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보다 확고한 공조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반총장 “신속한 수색·구조 기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9일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 실종자 수색과 구조가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위로 전문에서 “한국 서해에서 발생한 해군 함정 사고 소식을 접하고 깊은 충격과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면서 “특히 한국 국토를 지키던 젊은 장병들에게 이런 사고가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현재 진행 중인 수색·구조 작업이 신속하게 잘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대통령님을 통하여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김국방 “함장, 휴대전화 첫 보고 뒤 통신기로 보고”

    [천안함 침몰 이후] 김국방 “함장, 휴대전화 첫 보고 뒤 통신기로 보고”

    29일 긴급 소집된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된 군 당국의 미흡한 대응에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사고당시 보고체계 정상가동됐나 3군 사령관 출신인 민주당 서종표 의원은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군통신이 아닌 휴대전화로 침몰 상황을 보고한 것을 초동대응이 잘됐다고 볼 수 있느냐.”고 따졌다. 김 장관은 “배가 급속도로 기우는 상황에서 함장실에서 탈출한 함장이 휴대전화로 최초보고를 하고, 이후 정전시 가동 가능한 축전지를 이용한 통신기로 정상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함 명령 전달에 대해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의원이 “통신장비를 들고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을 텐데 함미 쪽 장병들에게 어떻게 배를 떠나라고 명령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김 장관은 “내부통신망이 있다.”고 답했다. ●해군 고속정은 왜 구조 못했나 김 장관은 사고 초기에 해군 고속정이 4대나 출동했으면서도, 늦게 도착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한 데 대해 “해경은 립(RIB·구조용 고무보트)을 갖고 있었지만, 해군 고속정에는 립이 없었다. 고속정이 접근하면 파고가 높아져 오히려 더 빠른 침몰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해경이 먼저 바다에 립을 띄워 구조를 기다리던 장병들의 수송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물 샜다.” 주장 근거 있나 일부 실종자 가족이 천안함에서 물이 새고, 수리 중에 출항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김 장관은 “천안함은 1988년 제작된 것으로 노후하지 않았고, 6개월 정도 주기로 계속 정비한다.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함정은 바다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천안함 침몰지점이 통상적인 작전지역이 아니었다는 지적에는 “침몰지역은 박스로 표시한 작전지역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천안함이 이전에도 15차례 이상 지나간 지역”이라면서 “기상이 나쁘니 해안에 붙여 운항하라는 함대 지시가 있었고, 수심이 20m가 넘어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함미를 왜 민간어선이 발견했나 사고 당시 서해상에서 실시된 한·미 독수리훈련 과정에서 오폭이 있었을 수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미국 이지스함은 천안함과 100마일 이상 떨어져 있었고, 천안함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을 수호하는 훈련중이었기 때문에 별개 지역에서 별개 목적으로 기동한 것이며, 연관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일부 의원은 천안함 인근에 있던 속초함이 새떼를 적으로 오인해 76㎜ 포를 발사했다는 군의 해명에 의혹을 제기했지만, 김 장관은 “밤에도 새떼가 이동한다.”고 지적했다. 반잠수정이나 인간에 의한 어뢰 공격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김 장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함장이 목격한 지역 50m 반경 이내에서 함미를 찾을 수 있었는데 왜 직접 수습하지 못하고 어선이 발견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장관은 “어선이 고기떼를 탐지하는 장비로 뭔가 있다고 알려줘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이라면서 “기뢰 탐색함이 처음부터 있었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함미가 발견된 위치에 대해서는 “함미가 침몰한 위치는 첫날부터 알고 있었고 최초 생각한 그 지점이라 판단하고 찾으려 노력했지만, 강한 조류로 먼 거리까지 흘러가 있어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지혜 허백윤기자 wisepen@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2200t급 민간 해상크레인 급파

    ‘천안함’을 인양하는 군·민 합동작전이 시작됐다. 천안함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민간이 보유한 해상크레인을 동원하는 것밖에 없다. 해군은 수몰된 병사들에 대한 구조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함선 인양에 나서기로 하고, 민간업체와 인양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해상크레인 전문 임대업체인 삼호I&D는 29일 천안함 침몰사고 해역에 2200t급 해상크레인 ‘삼아 2200호’를 급파했다. 삼아 2200호는 중량 8500t, 길이 85m, 너비 42m 규모이며, 최대 2200t급 무게를 인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난해 완성된 이 크레인은 주로 해상 건설현장에서 사용됐다. 삼호I&D 관계자는 “해군으로부터 해상크레인의 지원 요청을 받은 뒤 이날 거제 성포항에서 출발했다.”면서 “구체적인 인양 방법 등은 해군과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삼호I&D 김상철 대표는 이날 해군의 인양작업 회의에도 참석, 인양에 따른 의견 등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호I&D는 인천대교 교량 공사에 참여해 상판 철구조물을 해상크레인으로 옮긴 작업 경험을 갖고 있다. 해상크레인이 백령도 서남쪽 1.8㎞ 해상 사고 지점까지 이동하는 데에는 5일 정도 걸린다. 해상크레인이 사고 지점에 도착하면 침몰한 천안함의 정확한 무게를 추산한 뒤 본격적인 인양 작업을 준비한다. 바닷속에 잠겨 있어 천안함의 무게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함정의 배수량과 무기체계 등의 무게는 뻔하지만 내부에 물이 얼마만큼 찼는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침몰된 상태에 따라 인양에 필요한 준비가 달라진다. 여기에 물의 속도인 유속과 수심 등을 종합분석해야 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해상크레인 작업을 위해서는 선박 인양에 따른 ‘저항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고 조언했다. 해군은 우선 삼호I&D를 주무 인양작업 회사로 정한 뒤 장비와 인력 등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경우 다른 조선업체 등에도 도움을 요청할 방침이다. 한편 천안함을 인양할 수 있는 해상크레인을 보유한 국내 업체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삼호I&D 등 4곳. 삼성중공업은 3000t과 3600t급 2기, 대우조선은 3600t급 2기, 한진중공업은 3000t급 1기, 삼호I&D는 2200t과 3000t급 2기를 보유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팀 정치부 김상연차장 오이석기자 사회부 김효섭 정현용 안석 최재헌 이민영 김양진 윤샘이나기자 사회2부 김병철부장급 김학준차장 사진부 이호정차장 정연호기자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옷도 채 입지 못하고…천안함 구조 동영상 공개

    옷도 채 입지 못하고…천안함 구조 동영상 공개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지난 26일 밤 백령도 앞바다에서 승조원들이 구조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다.  인천 해양경찰청 소속 501호 경비함정이 촬영한 이 동영상에는 함수 부분에서 구조되던 승조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약 2시간 분량에 4편으로 나눠진 동영상에는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501호 함정에서 붉은색 구조단정을 내리는 모습, 옷을 채 갖춰입지 못한 장병들이 구조돼 경비함으로 옮겨 타는 모습이 담겨있다. 또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여러 대의 함정이 승조원들을 구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구조된 승조원 58명 대부분은 배 앞부분에 위치한 조타실과 포탑위에 모여 있었다. 일부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작업복이나 근무복을 입은 경우도 많았다.  해경은 이날 오후 9시30분께 해군의 구조요청을 받고 오후 10시15분 현장에 도착했다. 해경은 104명의 승조원 중 56명의 장병을 구조했고, 민간 어선 역시 2명을 구조해 총 58명이 구조됐다.  501경비함의 고영재(55) 함장은 30일 기자회견에서 “1차 구조를 시작한 지 30분 만에 함수 부분에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가라 앉았을 만큼 상황이 긴박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허술한 수색… 엉뚱한 곳에서 금쪽같은 시간 허비

    [천안함 침몰 이후] 허술한 수색… 엉뚱한 곳에서 금쪽같은 시간 허비

    침몰된 천안함의 함미가 침몰한 지 만 이틀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최초 사고 지점에서 불과 50여m 떨어진 곳이었다. 실종 승조원의 최대 생존기간이 69시간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해군이 아까운 시간 대부분을 엉뚱한 곳에 허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군 당국은 사고해역의 빠른 조류와 펄 등으로 시야( 視野)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해안은 간만의 차가 커 유속이 빠르다. 여기에다 사고 해역이 백령도와 대청도 중간에 위치해 조류가 더 빠르게 흐르는데, 이곳도 평균 유속이 3노트에 이른다. 3노트는 시속으로 환산하면 약 5㎞에 해당된다. 통상 다이버들은 유속이 1노트 이상이면 작업하기 힘들다. 여기에 펄 등으로 인해 시야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탁한 것도 함미 발견을 어렵게 한 원인이다. 해군과 실종자 가족의 요청으로 천안함 침몰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민간인 잠수부 홍웅(27)씨도 “바닷속은 흙탕물 때문에 앞이 거의 안 보였으며, 함께 들어간 파트너도 안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악조건을 감안하더라도 군의 어설픈 대응 때문에 함미 발견이 늦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작 함미 부분을 처음 발견한 것은 군이 아닌 어선이었다. 군의 함미 수색작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군은 함미와 함수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자 28일에야 기뢰제거함(소해함)을 투입했다. 하지만 함정의 운항 속도가 느려 이날 저녁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소해함이 도착한 직후 민간 어선이 함미를 찾아내 군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사고 발생 뒤 바로 기뢰제거함이 투입됐더라면 보다 빨리 함미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기뢰제거함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현장의 구축함 등이 음파탐지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물론 기뢰제거함의 음파탐지기는 일반 구축함에 비해 월등하지만 구축함의 음파탐지기로도 함미 같은 큰 물체의 대략적인 위치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군은 음파탐지기 대신 위치도 모른 채 무턱대고 해난구조대(SSU)를 투입했다.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 헤맨 것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옴부즈맨 칼럼] 천안함 침몰사건 보도의 과제/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옴부즈맨 칼럼] 천안함 침몰사건 보도의 과제/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지난 26일 저녁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으로 우리 해군의 초계정 천안함이 침몰한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침몰사건이 발생한 장소도 장소려니와 천안함에 승선한 104명의 해군 장병 중에서 46명이 실종되어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승선 장병 가족들의 절박함과 온 국민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에서 폭발음이 발생한 시간은 금요일 저녁 9시30분경이었고 천안함이 침몰한 것은 그로부터 3시간30여분이 지난 토요일 새벽 1시경이었다고 한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토요일 자 신문의 편집이 1차로 마감되어 인쇄에 들어갈 시점에 발생하였다. 신문제작의 관점에서 보면 사건이 돌발적으로 발생하여 취재와 기사작성, 편집과 조판의 시간적 여유가 매우 촉박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새벽에 배달된 서울신문은 금요일 늦은 저녁에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을 신속하게 다루어 1면 머리기사와 2·3면의 상세보도로 사건의 중대함에 걸맞은 보도를 하였다. 1200t이나 되는 해군 함정이 원인불명의 폭발음을 낸 후 침몰하였다는 사건 자체의 성격이나 사건이 발생한 시간과 장소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장 상황이나 사건의 정황을 군 당국과 정부의 발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초동 보도의 제약요인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자 서울신문의 보도는 적절하였다고 본다. 토요일 자 신문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3컷의 사진을 선택하여 배치한 것도 적절하였다. 자료사진의 원본 크기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해상도가 다소 떨어지는 흠은 있었지만 천안함 사진을 1면에 실은 것이나, 사건 발생 이후 대통령이 긴급하게 소집한 안보장관회의의 사진과 합동참모본부의 기자회견 장면 사진을 배치한 것은 사건의 중대함과 현장의 긴박감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었다. 토요일 자 초동보도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그래픽의 선택과 편집이었다. 우선 천안함이 침몰한 장소가 군사적으로 민감한 백령도 부근 해역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확하게 어느 지점에서 사건이 발생하였는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서울신문은 토요일 자 1면에 침몰지점을 표시한 사진을 배치하기는 하였지만 지도의 크기가 작은 편이어서 침몰장소가 백령도 남서쪽 1.8㎞라는 구체적인 사건현장을 표기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또 다른 문제는 3면에 실린 ‘북한 서해안 배치 미사일 해안포 제원’에 관한 그래픽이다. 기사 본문의 어디에도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해안포와 연관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오히려 3면의 머리기사는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최소한 북으로부터 미사일이나 포 공격은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의 내용과 그래픽의 선택이 어긋났지만, 최종판(21판)에서 바로잡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주말에 인터넷과 방송매체는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과 아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추측성 보도로 봇물을 이루었다. 천안함이 침몰한 정확한 원인은 선체를 인양하여 정밀 감식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확실하게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는 앞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신문매체는 하루 1회 발행이라는 매체 주기 때문에 속보성과 현장감에서 인터넷이나 방송매체에 비해 불리한 점도 있지만 정확하고 깊이 있는 보도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둘러싸고 인터넷 등의 공간이나 다른 매체에서 추측성 보도나 감정에 치우친 보도를 하는 경향이 있더라도 서울신문만큼은 차분하고 치밀하게 취재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여야 한다는 소명을 다하기 바란다.
  • [천안함 침몰 이후] “한계시간 다가온다” 살인조류 뚫고 함미 로프 연결

    [천안함 침몰 이후] “한계시간 다가온다” 살인조류 뚫고 함미 로프 연결

    군은 29일 하루 종일 천안함의 함미(艦尾·배꼬리)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들을 찾아내는 데 힘을 쏟았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요원을 비롯한 160여명 구조대원들과 한국군·미군의 구조함들은 빠른 유속에서도 쉴 새 없이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구조대원들은 28일 밤 10시31분쯤 음파탐지기를 통해 함미의 위치를 확보했지만 침몰한 함미 부분이 어떤 모습으로 가라앉아 있는지를 최종 확인해야 했다. 가라앉은 함미의 형태를 확인해야 구조작업에 대한 작전을 세울 수 있고 그에 따라 최대한 효과적인 구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군은 이날 0시20분 무인카메라를 함미가 잠겨 있는 해저로 내려보냈지만 강한 조류와 부유물로 촬영이 불가능했다. 무인카메라 촬영이 수포로 돌아가자 SSU 요원들은 다시 선체에 접근해 수중카메라로 촬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물속의 시계 확보가 어려워 결국 실패했다. 구조대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일단 어떻게든 구조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오전 9시 구조대는 본격적인 실종자 인명구조 및 선체 탐색작업을 위해 해저에 박혀 있는 함미 갑판 부위에 로프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물살이 느려지는 시간대가 아니었음에도 작업을 강행한 것이다. 이날 물살이 느려지는 ‘정조’ 시간은 오후 2시와 8시였다. 군은 수중 조류가 약해진 오후 2시 SSU 요원들을 집중 투입해 선체의 실종자 생존 여부를 집중적으로 탐색했다. 함미에 공기가 남아 있다 해도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원들은 침몰 함정 안의 생존자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판단, 정조 시간대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또다시 잠수를 시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백령도 근해의 조류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시간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29일 오전까지만 해도 지난 사흘보다 높지 않은 1m의 높이의 파도가 쳤으나 물속 조류 속도는 전날보다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구조작업을 늦추지는 않았다. 실종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함미 쪽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되는 함수(艦首·뱃머리) 쪽에 대한 탐색활동도 함께 진행했다. 함미 쪽보다 적은 수의 구조대원이 투입됐지만 전날 오후 7시23분 침몰 위치를 확인하고 부표를 설치한 데 이어 이날 오전 구조대원들은 다시 잠수를 시도했다. 오전 8시13분 잠수에서 구조대는 혹시 모를 생존자와 선체 외벽을 망치로 두드려 통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구조대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점점 더 떨어지는 수온을 이겨내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구조활동에는 우리 군의 광양함과 미군의 살보함 등 구조함과 우리 군의 탐색함인 옹진함 등 모두 15척의 군함이 지원에 나섰다. 또 사고 당시 생존자 구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해경 함정 6척도 투입됐다. 독도함도 이날 구조활동에 동참했다. 해난구조대원의 목숨을 건 구조작업을 돕기 위해 육군 특전사 요원 30여명도 합류해 탐색구조활동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30여명의 민간 잠수사들도 함미가 침몰한 인근 지역에서 혹시라도 있을 또 다른 실종자를 찾기 위해 쉼 없이 탐색작업을 벌였다. 국적을 넘고 민·군을 넘어 46명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수색활동이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씨줄날줄] 무선인식 구명조끼/육철수 논설위원

    구명조끼의 착용은 인간이 수영을 시작한 시기와 비슷하다. 3000~4000년 전 고대 아시리아 제국에서는 병사들에게 산양 가죽에 공기를 넣은 주머니를 지급했다고 전한다. ‘무스크스’라고 불리는 이 바람주머니는 바다에서 수영을 돕고 조난 당했을 때 생명을 구하는 도구였다고 하니 오늘날 구명조끼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첨단시대인 지금도 일반 여객기나 여객선은 무스크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구명조끼를 사용하고 있다. 안전성이 크게 높아지긴 했으나 신체를 물에 뜨게 하는 단순기능 측면에서 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구조대가 조난자를 찾아내 구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원시적인 방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난에 노출되기 쉬운 특수직종이나 군대, 경찰 등에서 최첨단 구명조끼를 사용하고 있다. 조난자의 위치를 전파나 빛으로 발신하고 저체온을 방지하기 위한 발열장치까지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6년 물과 반응하는 발열물질을 내장한 구명조끼가 발명특허를 받았다. 그 이듬해엔 조난신호를 불빛으로 보낼 수 있는 제품이, 2008년에는 위치정보시스템(GPS) 부착 구명조끼를 발명하는 등 다양한 제품이 상용화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무선인식(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구명조끼다. 반경 12㎞ 이내에 있는 조난자가 구명조끼에 부착된 개인용 조난신호 발신기로 구조요청을 보내면 함정의 수신 화면에 조난자의 위치는 물론이고 인적사항까지 표시된다. 악천후나 야간에도 조난자의 위치만 확인하면 신속한 구조가 가능하고 구조확률도 상당히 높아진다. 문제는 돈이다. 한 벌 가격이 15만원 정도란다. 하지만 유사시 조난자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여긴다면 별로 비싼 가격은 아니다. 천안함 침몰로 46명의 해군 장병들이 실종됐다. 구조활동은 닷새째 답보상태다. 이들에게 무선인식 구명조끼만 지급했어도 구조는 용이했을 것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해군이 2년 전 이 조끼의 성능을 시험했으며, 지난 1월엔 본격 도입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산문제로 도입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를 당하고 보니 후회막급이다. 함정 승조원 1만명에게 지급해도 15억원이면 충분했을 터이다. 미군은 대부분 이 구명조끼를 착용한다는데, 이것이 국군과 미군의 인식 차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정예강군은 장병의 생명을 최우선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또 후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모닝 브리핑] 안철수硏 “천안함 뉴스 위장 악성코드 주의”

    안철수연구소는 천안함 관련 뉴스로 위장해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사례가 발견됐다고 29일 밝혔다. 안철수연구소는 “지난 26일 침몰한 천안함에 대한 뉴스로 위장,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이메일이 지난 27일부터 해외에서 유포되고 있다.”면서 “메일은 ‘Dozens missing after ship sinks near North Korea’(북한 근처에서 함정이 침몰하면서 장병 수십명이 실종됐다)라는 제목으로 발송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안철수연구소는 사용자들에게 악성코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인터넷 익스플로러 버전 8로 업그레이드할 것을 권고했다. 자세한 내용은 안철수연구소 보안대응센터 블로그(blog.ahnlab.com/asec/284)를 참조하면 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美 “北 연루증거 알지못해” 中·日 정부 공식반응 없어

    │워싱턴 김균미·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특파원│미국과 중국, 일본 정부는 서해안의 한국 해군 초계함 침몰사고와 관련,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자제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6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서해안 사고와 관련해 함정 승무원들의 안전을 우려하고 있으며, 좀 더 자세한 상황은 한국 정부당국으로부터 들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진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로부터 추가적인 진전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을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크롤리 차관보는 북한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 “현 단계에서 결론을 예단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러한 영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지난 26일 사고 발생 이후 구조현황과 유족들의 반응 등을 시시각각 속보로 전했다. AP통신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태평양포럼의 한국군사관계 전문가 칼 베이커의 말을 인용, “배에서 일어난 단순 사고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북한의 관련 가능성을 낮게 봤다. 중국 정부는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사고의 조사결과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 언론들은 관련 내용을 매우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매 시각 주요 뉴스로 다루는 가하면 신화통신, 공산당기관지인 인민일보 등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청와대와 국방부의 움직임 및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 등을 빠짐없이 전했다. 군사전문가인 량융춘(梁永春)은 27일 중국인민라디오방송에서 “사고해역은 개방된 곳이기 때문에 기뢰 등에 부딪혀 폭발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밤 상황인데다 북한과의 충돌이 빈번한 해역이라는 점에서 장병들이 긴장해 오작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이날 이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통해 “삼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생존자가 구조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사고 발생 3일째인 28일에도 비중있게 보도했다. 일본 신문들은 28일자 조간 종합면과 국제면에 사고 원인 규명작업을 벌이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특히 북한군의 도발 가능성은 낮다는 사실을 전한 한국 정부와 군 관계자의 발언에 주목했다. kmkim@seoul.co.kr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 [천안함 침몰 이후] 폭발 정체는…생존자 “내부 아니다” 靑·美軍 “北 가능성 낮다”

    [천안함 침몰 이후] 폭발 정체는…생존자 “내부 아니다” 靑·美軍 “北 가능성 낮다”

    해군 천안함(1200t급)이 침몰한 지 28일로 사흘째가 됐지만 사고 원인과 경위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으면서 의문점들이 증폭되고 있다. 가장 큰 궁금증은 과연 정부가 어느정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느냐다. 최원일 함장을 비롯해 구조된 장병이 58명이고 군이 평소 첨단 통신정보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상당부분 진상을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생존한 천안함 장병들은 “암초 충돌이나 내부폭발은 아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부 공격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인데, 청와대는 사고 당일부터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위기였다. 주한미군 역시 북한군의 개입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진상규명이 늦어지면 정부 또는 군 둘 중의 어느 한쪽이 뭔가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질 수도 있다. 46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배를 탈출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실종된 점도 의문이다. 사병들의 방이 배끝 부분에 있기 때문에 갑작스런 폭발로 물이 들이닥치면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정도다. 천안함 함장도 “꽝하는 폭발음 이후 함장실에서 나와보니 선체 후미 부분이 안 보였다.”고 말했다. 미처 손 쓸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배 전체가 가라앉기까지는 총 3시간이나 걸렸다는 전언도 있어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해군이 평소 작전훈련에만 주력하고 탈출훈련은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해군 전역자는 “함정 탈출 훈련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된 말로 재수없다고 여겨 잘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장교들은 모두 생존한 점도 한때 의문으로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장교들의 방은 배 앞 부분에 있어 폭발이 일어난 배끝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져나올 여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시간을 놓고도 논란이 있다. 당초 합참은 26일 “오후 9시45분에 사고가 났다.”는 발표를 했으나 천안함 함장은 27일 “9시25분 내일의 작전계획을 구상하는 중 ‘꽝’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장이 휴대전화로 사고상황을 보고한 것도 이례적이다. 천안함처럼 큰 배는 무선통신체계를 항시 열어두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함장은 사고 직후 정전으로 통신체계가 불통돼 부득이 휴대전화를 이용했다고 해명했다. 사고 직후 인근 해역에 있던 속초함이 5분여간 경고사격을 한 점도 개운치 않다. 군 당국은 “레이더에 뭔가 걸려서 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날아가던 새떼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그때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가 공교롭다. 때문에 북한 잠수정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한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천안함이 수심이 24m밖에 안되는 얕은 지점까지 근접한 것을 놓고도 잠수정을 쫓다가 사고를 당한 것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천안함처럼 큰 배는 섬이나 육지에 그렇게 근접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국내외 역대 해군 참사

    ■ 역대 해군 참사 지난 26일밤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침몰, 46명의 승조원이 실종된 것은 해군 참사로는 지난 1974년 이후 최악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대형 전투함이 폭발로 침몰한 것은 처음이다. 1974년 2월22일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해군 수송정(YTL)이 돌풍으로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해군과 해경 훈련병 316명 가운데 무려 159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천안함 침몰은 1967년 1월19일 경비함 당포함(PCE-56) 침몰 사고 이후 5번째다. 당시 당포함은 동해 명태잡이 어로 보호 임무를 수행 중 북한 해안(수원단) 동굴 포대의 공격을 받고 침몰, 39명이 전사했다. 제1 연평해전(1999년 6월15일)에서 참패한 북한 해군이 2002년 6월29일(제2 연평해전) 참수리 357정을 기습 공격, 정장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장병이 전사했다. 제1 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이뤄진 남북 함정 간 교전이었다. 2004년 10월 12일에는 동해상에서 심야 훈련을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던 해군 특수목적용 반잠수정이 높은 파도에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 러 사례로 본 침몰사고 지난 2000년 8월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훈련중이던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가 폭발음과 함께 해저 108m 아래로 침몰했다. 승무원 118명 전원이 사망했지만 당시 수습한 시신은 12구에 불과했다. 사고 당시 러시아 정부는 숨기기에 급급했다. 서방 언론이 처음 사고를 보도한 지 이틀 지나서야 인정했을 정도다. 인접국의 구조 제안도 거부했다.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러시아 해군이 아니라 노르웨이 구조대였다. 사고 직후부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정찰활동을 하던 미군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2002년 7월 쿠르스크호의 한 어뢰에서 연료가 누출되면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사고가 나고 1년 11개월이 걸린 셈이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잠수함 속에서 얼마나 살아있었는지는 지금껏 논란거리다. 러시아 정부는 낮은 수온과 깊은 수심 탓에 매우 빨리 사망했을 것으로 봤다. 반면 일각에선 생존을 위한 산소가 충분했기 때문에 며칠간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쿠르스크호에 탑승했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중위는 어둠과 추위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깜깜한 속에서 느낌으로 글을 쓴다.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 이 글을 읽어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마지막 메모를 남겼다. 러시아 정부는 인양한 시신을 모두 러시아에 안장했지만 심하게 탄 3구에 대해서는 끝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승무원 전원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함교서 피흘리는 하사 등 배로 후송”

    [천안함 침몰 이후] “함교서 피흘리는 하사 등 배로 후송”

    민간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천안함 침몰 현장에 달려가 구조작업을 펼친 옹진군 어업지도선 227호(45t급) 김정석(56) 선장이 전하는 당시 상황은 영화 ‘타이타닉’을 연상시킨다. 김씨는 사고 당일 대청도선착장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오후 10시쯤 옹진군청으로부터 사고소식을 듣고 곧바로 출동했다. 20분 뒤 대청도에서 6㎞가량 떨어진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천안함은 이미 선체가 90도가량 기울어진 채 침몰 중이었다. “군인 10여명이 함교 옆 벽 위에 서 있었습니다. 배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벽이 마치 평지처럼 된 것이지요.” 다른 어업지도선 2척과 대청면 행정선도 잇따라 도착했지만 배의 높이가 맞지 않아 사고함정에 접근하지 못했는데 227호만 접근할 수 있었다. 절반 이상 침몰된 함정의 함교와 227호의 해수면 높이가 대략 2m로 비슷했던 것이다. 함교에 있던 하사 한 명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자 김씨는 담요를 들것처럼 이용해 하사를 어업지도선으로 옮겼다. “나머지 군인들은 구명정으로 탈출을 시도했는데 구명정이 잘 설치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상사 한 명이 구명정 쪽으로 헤엄쳐 가자 김씨는 로프를 던져 구명정에 묶어 끌고 올 수 있도록 지원했다. “다른 군인들은 구명정을 타고 탈출했습니다. 그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도 군인들이 민간 선박보다 구명정에 의존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김씨는 구명정 설치작업으로 탈진한 상사와 부상당한 하사를 백령도 용기포선착장으로 이송한 뒤 사고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사고 함정은 앞 바닥만 수면 위에 남긴 채 침몰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전문가가 보는 두동강 침몰 이유 “폭발로 기둥·보 손상 가능성”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으로 알려지자 전문가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200t에 이르는 거대한 군함이라면 내부 또는 외부의 엄청난 폭발이 동반되거나 배 중간 부분에 심각한 충격을 줘야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군본부 고위 장교도 분리된 뱃머리 부분이 사고현장에서 4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점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혀 의혹이 커지고 있다. 28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성남함’을 타고 백령도 사고 현장을 찾은 엄모 해군본부 정책실장(준장)은 “천안함 함장이 ‘순식간에 함이 두동강 났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털어놨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전문가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선박 침몰사고가 날 경우라도 선체가 동강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선박을 바닷속에서 끌어올려 확실한 원인 규명을 할 때까지는 섣불리 이유를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인식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교수는 “배의 맨 뒤쪽이라면 큰 충격이라도 두 동강 나기 쉽지 않다.”면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우선, 배의 중간 부분을 지지하는 보(beam)가 원인 미상의 폭발로 인해 대부분 손상됐을 경우다. 배 갑판과 바닥 사이에는 배를 수직으로 지지하는 ‘기둥’과 함께 ‘보’ 역할을 하는 철제 프레임이 설치돼 있다. 노 교수는 “이 프레임이 심각하게 파손되면 외부 압력으로 인한 굽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활처럼 휘어지거나 꺾이면서 두 동강 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함정의 끝 부분이 아닌 3분의 1지점에서 폭발이 있었을 경우다. 노 교수는 “엔진이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배의 뒤쪽 끝부분이 아니라면 자체 무게 때문에 부러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영섭 조선대 선박해양공학과 교수는 “1970년대에는 배가 두동강 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면서 “대부분 선체에 가해지는 ‘피로하중’이 수 년간 쌓여서 일어나는 사고”라고 말했다. 이어 “군함은 다른 배에 비해 특별히 더 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지지만 모든 극한 상황을 커버할 수는 없다.”면서 “중량과 부력의 차이가 크면 배가 반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의 박제웅 교수도 “배가 빨리 침몰된 것은 강한 충격으로 선체가 두 동강이 났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배 뒷부분이 아닌 어딘가에 다른 충격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예측을 내놨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연평해전 용사’ 박경수 중사 이번엔 지각 결혼식 앞두고…

    [천안함 침몰 이후] ‘연평해전 용사’ 박경수 중사 이번엔 지각 결혼식 앞두고…

    천안함 실종자 가운데 제2 연평해전 용사인 박경수(30) 중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박 중사는 2002년 6월29일 제2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정 보수장으로 탑승, 북한 함정과 마주보고 있던 좌현의 사수가 총탄에 쓰러지자 대신 기관총을 잡고 싸운 ‘진짜 해군’이었다. 그는 치열한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부상을 입었지만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전투에 임했던 용사였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박 중사는 제2 연평해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6년 가까이 항해에 나서지 못하다 공포심을 떨쳐내기 위해 천안함에 승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천안함은 제1 연평해전에 참전한 초계함이었다. 박 중사는 천안함이 26일 밤 서해상에서 침몰하기 전까지 천안함에서 1년 정도 근무하면서 함정의 보수와 정비를 담당했다. 제2 연평해전 당시 갑판장이었던 이해영(59) 원사는 “연평해전 이후에 전역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계속 함정을 탔다.”고 말했다. 박 중사는 부인 박모씨와 슬하에 6살 난 딸을 뒀다. 박 중사는 이번 훈련에서 돌아오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는 2004년 혼인신고를 한 뒤 딸까지 낳았지만, 바다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 미처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온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실종되자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부친 박종규(62)씨는 27일 해군 제2함대 사령부를 찾아 “전함의 함장이라면 부하를 구출하고 난 뒤 맨 마지막에 배를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함장이 혼자 살겠다고 미리 탈출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오열했다. 박 중사의 장모는 “무섭고 떨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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