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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하이퍼튜브 유치 성공은 도지사 ‘깜짝쇼’ 효과?

    전북 하이퍼튜브 유치 성공은 도지사 ‘깜짝쇼’ 효과?

    미래형 차세대 초고속 이동교통수단인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를 전북 새만금으로 유치하게 된 배경에 김관영 도지사의 ‘깜짝쇼’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국토부는 지난 4일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 부지로 새만금 농생명용지 1~3공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김 지사는 취임 한달여만에 초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는 기염을 토했다.앞서 김 지사는 국토부에서 열린 심사위원회에 직접 발표자로 나서 심사위원들은 물론 타 시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전북도는 도지사가 발표자라는 사실을 직전까지 대외비로 했다. ‘고시 3관왕’ 출신이자 달변가인 김 지사의 등장은 성공적이었다. 전북도 관계자는 “최만림 행정부지사가 나선 경남, 홍순광 건설교통국장이 발표자인 충남과 일단 체급에서 차별화를 시도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신뢰감을 얻었다”고 자평했다. 특히, 김 지사는 특유의 설득력 있는 화법으로 새만금지구의 최대 단점인 연약지반을 오히려 강점으로 내세우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그는 “갯벌을 매립한 새만금지구는 연약지반 보강을 위한 공사비가 더 들어가지만 민원이 없어 추진기간을 단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용을 절감도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설득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김 지사의 결단이 빛을 본 것이다. 국토부 하이퍼튜브 시험센터 공모에는 전북 새만금을 비롯해 충남 예산, 경남 함안 등 3개 지자체가 참여해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다. 심사 결과는 공교롭게도 발표자들의 직급 순과 일치했다. 도지사가 나선 전북이 1위, 부지사가 발표한 경남은 2위, 국장급이 설명한 충남은 3위를 차지했다.
  • 차세대 초고속 이동수단 하이퍼튜브 새만금 유치

    차세대 초고속 이동수단 하이퍼튜브 새만금 유치

    미래형 차세대 초고속 이동교통수단인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 부지가 전북 새만금으로 결정됐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새만금 농생명용지 1~3공구에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를 유치했다”고 4일 밝혔다. 국토부 하이퍼튜브 시험센터 공모에는 전북을 비롯해 충남 예산, 경남 함안 등 3개 지자체가 참여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다. 국토부는 하이퍼튜브 시험선로 및 종합시험센터 부지가 새만금으로 확정됨에 따라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여 예비타당성조사 등 연구개발사업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예타 통과 이후에는 2027년까지 연구개발 및 설계를 진행하고 2028년부터 2030년까지 시험선로 및 종합시험센터 등 인프라를 구축한 뒤 2031년부터 시험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이곳에는 2024년부터 2032년까지 9046억원이 투입돼 12㎞의 시험선로와 연구동, 차량기지 등 종합시험센터가 건설된다. 초고속 추진동력, 부상시스템, 아진공차량 및 무선시스템, 아진공 튜브 인프라, 하이퍼튜브 시스템 통합·운영 기술을 개발한다. 연구개발사업 종료 이후에도 하이퍼튜브 차량, 용품, 안전 등 관련 기술 시험·검증·인증을 위한 종합시험센터로 운영될 예정이다. 전북도는 종합시험센터 유치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와 먹거리 창출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새만금개발청, 군산시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시험선로 및 종합시험센터 부지제공, 법적·행정적 지원 등에 나선다. 또 첨단융복합소재, 철도차량 제작, 전기자동차, 에너지 관련 선도기업과 기술지원 연계를 통해 하이퍼튜브 핵심기술 연구와 실증사업 등을 확대할 계획이다. 종합시험센터 유치 효과는 관련 기업 유치를 감안할 경우 앞으로 20년간 9조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관영 지사는 “전북이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를 유치해 미래 성장의 중요한 모멘텀을 마련했다”며 “이를 계기로 새만금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이퍼튜브는 항공기의 속도와 열차의 도심 접근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차세대 교통수단으로서 공기저항이 거의 없는 아진공 상태의 튜브 안에서 최고 시속 1200㎞까지 주행 가능한 차세대 교통수단이다. 서울~부산간을 20분에 주파할 수 있다. 자기력으로 차량을 추진·부상시키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 초록 물감 풀어놓은 듯…녹조 점령한 낙동강 수질 ‘최악’

    초록 물감 풀어놓은 듯…녹조 점령한 낙동강 수질 ‘최악’

    “녹색 물감 풀어놓은 것 같네.” 뙤약볕에 등허리까지 땀이 줄줄 흐르는 4일 낙동강 창녕함안보. 한눈에 봐도 초록빛을 띠는 강변에 접근하자 더위에 찡그린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물비린내와 강 가장자리를 점령한 벌레떼, 짙은 녹조에 절로 탄식이 터졌다. 짙다 못해 탁한 녹조는 강물을 꽉 붙잡은 것처럼 끈적하게 일렁였다. 조류 발생을 막기 위해 가동 중인 수면 교란 장치마저도 녹조에 둘러싸여 있었다. 폭염과 가뭄 속에 낙동강 수질은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낙동강 물금·매리 지점은 지난 7월 4차례 연속 유해 남조류 세포 수(개/㎖) 10만 개를 넘겼다. 짙은 녹조에 남조류에 의해 생성되는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에 대한 우려도 심화했다. 앞으로 많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녹조 발생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천 유량과 댐 저수율이 낮은 수준에서 수질 오염사고나 녹조 급증 등으로 취수가 중단되는 비상 상황도 우려된다. 환경부는 먹는 물 안전을 위해 각 정수장 활성탄 교체 주기를 단축하고 고도정수시설 운영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1인가정·독거노인에 유기견 분양...외로움 달래고 동물복지 실현

    1인가정·독거노인에 유기견 분양...외로움 달래고 동물복지 실현

    경남 함안군은 유기견에게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주고 1인 가구 주민 등이 반려견과 지내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도록 유기견 무료분양을 한다고 2일 밝혔다.유기견 무료 분양은 올해 ‘함안군 군민제안 공모’에 접수된 제안을 군정에 반영해 시행하는 사업이다. 유기견 무료 분양은 독거노인이나 저소득 계층 주민, 한부모 가족, 1인 가구 가정 등이 우선 분양 대상이다. 유기견을 분양 받은 뒤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육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함안군은 이달 분양 희망 가구 신청을 받아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는 유기견 가운데 40마리를 분양할 계획이다. 품성이 온순하고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는 생후 6개월이 지난 건강한 유기견을 골라 기본건강검진, 중성화수술, 동물등록 등을 한 뒤 분양한다. 분양받은 유기견을 다시 유기하거나 방치하는 사례,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임의로 처분하는 등 결격사유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분양 전에 반려견 관리에 대한 기본 교육을 한다. 분양한 이후에도 부적격 분양자가 생기지 않도록 3년간 관리를 한다. 유기견을 분양받은 저소득 계층 주민은 도비 사업으로 시행하는 ‘저소득층 반려동물 진료비 지원사업’과 연계해 진료비용을 지원받아 반려견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함안군은 유기견 무료 분양 사업이 독거노인과 1인 가구 주민들이 집에서 혼자 지내는데 따른 외로움을 달래고 유기견 복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함안군 유기동물보호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모두 254마리 유기견이 보호소로 인계된 것으로 집계됐다. 함안군 유기동물보호소는 유기동물보호소에 보호·관리하고 있는 유기견 가운데 질병 등으로 올해 70여마리가 자연사 했으며 26마리는 질병이 심각해 어쩔 수 없이 안락사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현재 150여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 충무공 전승 도운 척후장… 왜군 포로 됐다가 탈출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무공 전승 도운 척후장… 왜군 포로 됐다가 탈출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소속의 5개 수군진 가운데 사도진과 방답진은 종3품의 첨절제사가 지휘하는 거진(巨鎭), 곧 핵심 수군기지였다. 오늘날의 여수 돌산도에 있었던 방답진이 좌수영을 방어하는 역할이라면 사도진은 여도진·발포진·녹도진을 거느리고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흥반도를 지켰다. 사도첨사 김완은 조선수군의 첫 번째 승전인 옥포해전부터 척후장으로 출전해 왜적의 위치와 선단의 규모를 기선(旗船)에 알리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이순신 수군이 전승을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완은 훗날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의 포로가 돼 일본에 끌려갔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사도진의 옛터는 이제 한적한 시골 어항(漁港)이 됐다.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사도마을이다. 전선(戰船) 정박지였을 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만 한가롭다. 전라좌수영의 대표적 수군기지로 제법 큰 규모의 진성(鎭城)도 있었다지만 자취는 간데없다. 마을 보건지소 앞에 있는 첨절제사 선정비가 유일한 흔적인데 이것조차 비바람에 깎여 주인공을 알 수가 없다. 다만 금사리(錦蛇里)라는 마을 이름이 사도진(蛇渡鎭)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최근 ‘사도진해안길’이라는 길 이름이 붙여지면서 사도진 터를 찾아가기가 쉬워졌고 역사도 조금은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전라좌수영 대표 기지·진성 흔적 없어 그런 만큼 옛 사도진의 복원 작업에 시동이 걸린다면 새로운 역사관광 자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리호 발사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가깝고, 총길이 3462m에 이르는 해창만방조제는 바로 금사리에서 시작한다. 방조제 둑에는 오토캠핑장, 야외 공연장, 산책로로 이루어진 해창만간척지공원이 조성됐으니 나로우주센터와 짝을 이루는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간척지 둑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바다, 뒤로는 담수호가 펼쳐져 있어 낚시인들도 즐겨 찾는다. 사도첨사 김완(金浣·1546~1607)은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1554~1611)과 품계는 같고 나이는 8살이나 많았다. 그럼에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사도첨사 김완이 아닌 방답첨사 이순신에게 좌수영 5개 수군진의 선임을 맡겼다. 충무공이 좌수사에 부임하고 전란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사도첨사 김완을 그리 미덥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은 ‘난중일기’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임진년 2월 충무공의 관내 순시는 휘하 지휘관의 전쟁 준비 태세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충무공은 25일자 ‘난중일기’에 ‘여러 가지 전쟁 준비와 관련해 (사도진에) 결함이 많이 보여 군관과 관리들에게 벌을 주었고, 첨사는 잡아들이고 교수는 내보냈다’고 적었다. 교수(敎授)는 향교에서 생도를 가르치는 지방관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사도진의 방비가 다섯 포구 중 가장 못하건만 관찰사가 표창하는 공문서를 올렸기에 죄상을 검사하지 못하니 참으로 기가 막혀 웃을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3월 20일자 일기에도 김완에 대한 불신은 이어졌다. 충무공은 관내를 돌아보라는 명령을 제 기한에 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순천부 책임자들을 벌주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사도첨사 김완은 혼자서 수색했다면서 반나절 동안 나로도 안팎과 대평도 및 소평도를 모두 수색하고 그날로 포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엉뚱한 거짓말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흥양현감과 사도첨사에게 문의하는 공문서를 보냈다’고 적었다. 그리고 ‘몸이 몹시 안 좋아 일찍 들어왔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이광(1541~1607)이다. 왜란 개전 이후 4만의 전라도 군사를 근왕병으로 이끌고 북상하다가 경기도 용인에서 소수 왜적의 기습을 받고 패퇴한 인물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1589년 전라도관찰사에 한번 올랐다가 파직되고 1591년 다시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됐다. 1589년이라면 김완이 사도진첨절제사에 임명된 시기이기도 하다. 김완과 이광 사이에는 기록에 남지 않은 무언가 끈끈한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제 할 일을 태만히 하는 부하를 가장 싫어하는 충무공이다. 게다가 태만의 배경에 상급자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사도첨사와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김완 쪽에서 봐도 충무공은 적극적으로 모시기에는 떨떠름한 상관이 아닐 수 없었다. 김완이 종3품 사도첨사에 제수된 그해 이순신은 종6품 정읍현감이었다. 충무공은 일찌감치 1580~1582년 전라좌수영에서 18개월 동안 종4품 발포만호를 지냈으니 10년 가까이 지난 이후 전라좌수사에 오른 것을 ‘벼락출세’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김완이 느꼈을 갈등은 오늘날에도 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충무공은 ‘난중일기’ 앞쪽에서는 좀처럼 김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년 9월 이후가 되면 권준이나 어영담, 방답첨사 이순신에 버금가게 김완과 활을 쏘거나 술을 마셨다는 언급이 잦아진다. 1594년(갑인년) 어느 날 일기에는 ‘경수(景受·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이순신, 순천부사 권준, 발포만호 황정록, 사도첨사 김완과 함께 사인암에 올라 하루 종일 취해서 이야기하다 돌아왔다’는 내용도 보인다. 충무공과 깊이 교감하는 참모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이다.●1595년 충무공 장계, 조방장으로 승진 김완은 전쟁 준비 기간 신뢰를 받지 못했던 자신의 이미지를 전장(戰場)에서 바꿀 수 있었다. 충무공과의 관계 개선도 급속히 이루어졌다. 이순신이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뒤 조정에 올린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에 이런 대목이 있다. ‘5월 7일 새벽 출정해 천성, 가덕으로 가다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니,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이 신기전을 쏘아 사변이 났음을 보고하므로, 여러 장수들에게 “덤벙대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라”고 엄하게 명령하고는 대열을 갖추어 일제히 나아갔습니다.’ 이어 충무공은 휘하 장수들의 공로를 나열하면서 ‘사도첨사 김완은 왜대선 1척을, 여도권관 김인영은 왜중선 1척을 각각 당파했다’고 했다. 김완이 척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적선을 공격해 작지 않은 전공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당파(撞破)는 포격을 가해 적선을 분쇄한 것을 뜻한다. 김완은 이어진 한산도대첩과 부산포해전을 비롯해 이순신의 주요 해전에서 척후장으로 활약했고 1595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장계로 조방장(助防將)으로 승진했다. 조방장이란 통제사나 절도사를 보좌해 적의 침입을 막아 내는 역할을 하는 장수다.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1597년에는 겸직으로 거제도 복병도장(伏兵都將)을 맡아 도장포와 다대포의 왜적을 격파하기도 했다. 복병도장은 적이 지나는 길목에 포진하고 있다가 기습하는 해상 게릴라부대 총대장을 뜻하는 듯하다. 거제도와 북쪽 칠천도 사이에서 벌어진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15일에 벌어졌다. 선조실록은 ‘원균을 비롯해 패주한 장수들의 처벌 문제를 논의하다’라는 기사에서 ‘칠천량해전의 수군 장수들은 힘을 겨루며 싸우다가 패멸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나 죽은 자나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던 사람들’이라면서 ‘중론을 참고해 보니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사한 자는 조방장 김완뿐’이라는 도체찰사 이원익의 발언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김완이 분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완은 왜적과 싸우며 수세에 몰리자 자결하고자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포로가 됐다. 김완은 전후의 이야기를 ‘용사일록’(龍蛇日錄)이라는 일기체 회고담에 담았는데, 대마도(對馬島)와 일기도(日岐島), 낭고야(浪古也)를 거쳐 곡고라(曲高羅)의 감시인 집에 감금됐다고 했다. 낭고야와 곡고라는 나고야(名護屋)와 고쿠라(小倉)의 음차 표기다. 그는 1598년 1월 일본에서 탈출한 뒤 4월 18일 다대포에 이르렀고, 4월 29일 양산에 도착해 군수 박응창이 순찰사에게 보고하니 선조에게 상세한 내용의 장계가 올라갔다. 선조는 ‘동방의 소무’라는 뜻으로 ‘해동소무’(海東蘇武)라 쓴 어필과 함안군수 벼슬을 내렸다. 소무(蘇武)는 중국 전한시대 흉노에 붙잡혀 복속을 강요당했으나 굴하지 않아 바이칼호 주변에 19년 동안 유폐됐다 돌아온 인물이라고 한다. ‘용사일록’의 내용은 김완의 후손들이 1918년 간행한 ‘해소실기’(海蘇實紀)에도 담겼다. 무덤은 고향인 경북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 있다.
  • 칠천량해전 홀로 분전, 포로되어 끌려간 일본에서 탈출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칠천량해전 홀로 분전, 포로되어 끌려간 일본에서 탈출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소속의 5개 수군진 가운데 사도진과 방답진은 종3품의 첨절제사가 지휘하는 거진(巨鎭), 곧 핵심 수군기지였다. 오늘날의 여수 돌산도에 있었던 방답진이 좌수영을 방어하는 역할이라면 사도진은 여도진·발포진·녹도진을 거느리고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흥반도를 지켰다. 사도첨사 김완은 조선수군이 첫번째 승전인 옥포해전부터 척후장으로 출전해 왜적의 위치와 선단의 규모를 기선(旗船)에 알리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이순신 수군이 전승을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완은 훗날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사도진의 옛터는 이제 한적한 시골 어항(漁港)이 됐다.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사도마을이다. 전선(戰船) 정박지였을 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만 한가롭다. 전라좌수영의 대표적 수군기지로 제법 큰 규모의 진성(鎭城)도 있었다지만 자취는 간데 없다. 마을 보건지소 앞에 있는 첨절제사 선정비가 유일한 흔적인데 이것조차 비바람에 깎여 주인공을 알 수가 없다. 다만 금사리(錦蛇里)라는 마을이름이 사도진(蛇渡鎭)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최근 ‘사도진해안길’이라는 길이름이 붙여지면서 사도진 터를 찾아가기가 쉬워졌고 역사도 조금은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만큼 옛 사도진의 복원 작업에 시동이 걸린다면 새로운 역사관광 자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리호 발사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가깝고, 총길이 3462m에 이르는 해창만방조제는 바로 금사리에서 시작한다. 방조제 둑에는 오토캠핑장, 야외 공연장, 산책로로 이루어진 해창만간척지공원이 조성됐으니 나로우주센터와 짝을 이루는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간척지 둑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바다, 뒤로는 담수호가 펼쳐져 있어 낚시인들도 즐겨 찾는다.  사도첨사 김완(金浣·1546~1607)은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1554~1611)과 품계는 같고 나이는 8살이나 많았다. 그럼에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사도첨사 김완이 아닌 방답첨사 이순신에게 좌수영 5개 수군진의 선임을 맡겼다. 충무공이 좌수사에 부임하고 전란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사도첨사 김완을 그리 미덥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은 ‘난중일기’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임진년 2월 충무공의 관내 순시는 휘하 지휘관의 전쟁 준비 태세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충무공은 25일자 ‘난중일기’에 ‘여러가지 전쟁 준비와 관련해 (사도진에) 결함이 많이 보여 군관과 관리들에게 벌을 주었고, 첨사는 잡아들이고 교수는 내보냈다’고 적었다. 교수(敎授)는 향교에서 생도를 가르치는 지방관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사도진의 방비가 다섯 포구 중 가장 못하건만 관찰사가 표창하는 공문서를 올렸기에 죄상을 검사하지 못하니 참으로 기가 막혀 웃을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3월 20일자 일기에도 김완에 대한 불신은 이어졌다. 충무공은 관내를 돌아보라는 명령을 제 기한에 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순천부 책임자들을 벌주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사도첨사 김완은 혼자서 수색했다면서 반나절동안 나로도 안팎과 대평도 및 소평도를 모두 수색하고 그날로 포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엉뚱한 거짓말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흥양현감과 사도첨사에게 문의하는 공문서를 보냈다’고 적었다. 그리고는 ‘몸이 몹시 안좋아 일찍 들어왔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이광(1541~1607)이다. 왜란 개전 이후 4만의 전라도 군사를 근왕병으로 이끌고 북상하다가 경기도 용인에서 소수 왜적의 기습을 받고 패퇴한 인물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1589년 전라도관찰사에 한번 올랐다가 파직되고 1591년 다시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됐다. 1589년이라면 김완이 사도진첨절제사에 임명된 시기이기도 하다. 김완과 이광 사이에는 기록에 남지 않은 무언가 끈끈한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제 할 일을 태만히 하는 부하를 가장 싫어하는 충무공이다. 게다가 태만의 배경에 상급자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사도첨사와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김완 쪽에서 봐도 충무공은 적극적으로 모시기에는 떨떠름한 상관이 아닐 수 없었다. 김완이 종3품 사도첨사에 제수된 그해 이순신은 종6품 정읍현감이었다. 충무공은 일찌감치 1580~1582년 전라좌수영에서 18개월동안 종4품 발포만호를 지냈으니 10년 가까이 지난 이후 전라좌수사에 오른 것을 ‘벼락출세’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김완이 느꼈을 갈등은 오늘날에도 흔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충무공은 ‘난중일기’ 앞쪽에서는 좀처럼 김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년 9월 이후가 되면 권준이나 어영담, 방답첨사 이순신에 버금가게 김완과 활을 쏘거니 술을 마셨다는 언급이 잦아진다. 1594년(갑인년) 어느 날 일기에는 ‘경수(景受·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이순신, 순천부사 권준, 발포만호 황정록, 사도첨사 김완과 함께 사인암에 올라 하루 종일 취해서 이야기하다 돌아왔다’는 내용도 보인다. 충무공과 깊이 교감하는 참모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완은 전쟁 준비기간 신뢰를 받지 못했던 자신의 이미지를 전장(戰場)에서 바꿀 수 있었다. 충무공과 관계 개선도 급속히 이루어졌다. 이순신이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뒤 조정에 올린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에 이런 대목이 있다. ‘5월 7일 새벽 출정해 천성, 가덕으로 가다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니,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이 신기전을 쏘아 사변이 났음을 보고하므로, 여러 장수들에게, “덤벙대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라”하고 엄하게 명령하고는 대열을 갖추어 일제히 나아갔습니다.’ 이어 충무공은 휘하 장수들의 공로를 나열하면서 ‘사도첨사 김완은 왜대선 1척을, 여도권관 김인영은 왜중선 1척을 각각 당파했다’고 했다. 김완이 척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적선을 공격해 작지 않은 전공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당파(撞破)는 포격을 가해 적선을 분쇄한 것을 뜻한다. 김완은 이어진 한산도 대첩과 부산포 해전을 비롯해 이순신의 주요 해전에서 척후장으로 활약했고, 1595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장계로 조방장으로 승진했다. 조방장(助防將)이란 통제사나 절도사를 보좌해 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장수다.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1597년에는 겸직으로 거제도 복병도장을 맡아 도장포와 다대포의 왜적을 격파하기도 했다. 복병도장(伏兵都將)은 적이 지나는 길목에 포진하고 있다가 기습하는 해상 게릴라부대 총대장을 뜻하는 듯하다.  거제도와 북쪽 칠천도 사이에서 벌어진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15일에 벌어졌다. 선조실록은 ‘원균을 비롯해 패주한 장수들의 처벌 문제를 논의하다’는 기사에서 ‘칠천량패전의 수군 장수들은 힘을 겨루며 싸우다가 패멸된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나 죽은 자나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던 사람들’이라면서 ‘중론을 참고해 보니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사한 자는 조방장 김완 뿐’이라는 도체찰사 이원익의 발언 내용이 실려있다. 당시 김완이 분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완은 왜적과 싸우며 수세에 몰리자 자결하고자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포로가 됐다. 김완은 전후의 이야기를 ‘용사일록’(龍蛇日錄)이라는 일기체 회고담에 담았는데, 대마도(對馬島)와 일기도(日岐島), 낭고야(浪古也)를 거쳐 곡고라(曲高羅)의 감시인 집에 감금됐다고 했다. 낭고야와 곡고라는 나고야(名護屋)와 고쿠라(小倉)의 음차 표기다. 그는 1598년 1월 일본에서 탈출한 뒤 4월 18일 다대포에 이르렀고, 4월 29일 양산에 도착해 군수 박응창이 순찰사에게 보고하니 선조에게 상세한 내용의 장계가 올라갔다. 선조는 ‘동방의 소무’라는 뜻으로 ‘해동소무’(海東蘇武)라 쓴 어필과 함안군수 벼슬을 내렸다. 소무(蘇武)는 중국 전한시대 흉노에 붙잡혀 복속을 강요당했으나 굴하지 않아 바이칼호 주변에 19년동안 유폐됐다 돌아온 인물이라고 한다. ‘용사일록’의 내용은 김완의 후손들이 1918년 간행한 해소실기(海蘇實紀)에도 담겼다. 무덤은 고향인 경북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 있다.
  • “천연가스·원전은 녹색기술”… EU ‘택소노미’ 포함 결정

    “천연가스·원전은 녹색기술”… EU ‘택소노미’ 포함 결정

    유럽연합(EU) 의회가 6일(현지시간)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투자 기준인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날 유럽의회 표결에 참석한 의원 639명 중 328명이 찬성표를 던지고, 278명이 반대, 33명이 기권해 지난 2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천연가스와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안이 가결됐다고 AP통신, 블룸버그 등은 보도했다. 택소노미는 27개 회원국의 EU각료이사회를 거쳐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경우 천연가스와 원전에 대한 투자가 녹색(친환경)으로 분류되고, 공공자금 지원 대상에도 적용될 수 있다. EU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의 범위를 정한 분류 체계로 2020년 6월 처음 발표됐다. 당시 천연가스와 원전은 각각 메탄 배출과 방사능폐기물 문제가 대두돼 택소노미에서 제외됐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EU가 지난해 12월 택소노미 초안에 두 에너지원을 포함시켰고, EU 집행위도 밀어붙였다.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비판에도 더 더러운 연료인 석탄 의존도를 줄여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도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명분이 컸다. 이 같은 기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바뀌었다. 앞서 지난달 15일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위원회가 천연가스와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 반대 결의안에 대해 찬성 76표, 반대 62표, 기권 4표로 집행위 결정을 뒤집는 등 진통도 거듭했다. 이날 투표를 앞두고 유럽의회에 대한 안건 부결 압력도 거셌다. 택소노미에 천연가스가 포함되면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확대돼 대러 제재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환경변호사인 스비틀라나 로만코는 “천연가스의 (택소노미) 포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EU 집행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최종 지지 입장을 밝혔다고 공개했다. 우리나라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30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에서 원전을 제외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조건부로 포함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오는 8월까지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한다는 입장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날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하며 향후 유럽사법재판소 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 일선 경찰들, ‘경찰국 신설 철회’ 촉구 삭발 시위

    일선 경찰들, ‘경찰국 신설 철회’ 촉구 삭발 시위

    일선 경찰관들이 행정안전부의 이른바 ‘경찰국’ 신설안에 반대하며 릴레이 삭발 시위에 나섰다. 차기 경찰청장 지명이 금명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행안부의 경찰 통제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반발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차기 경찰 지휘부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4일 오전에는 전국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관계자들이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행안부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삭발 시위에 나섰다. 민관기 충북청주흥덕경찰서 직협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호소문을 낭독하면서 “경찰은 고위직 비율이 낮고 퇴직 후 변호사로 진출이 가능한 검사와도 처지가 다르기에 인사에 매우 취약하다”며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경찰은 자연스럽게 정권 눈치를 보게 되고, 개별 수사에도 정권 입김이 미칠 우려가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유희열 경기 고양경찰서 직협회장, 주동희 경남 양산경찰서 직협회장, 한왕귀 전북 군산경찰서 직협회장 등도 삭발식에 동참했다. 직협 측은 또 성명서를 통해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 자치경찰제 이원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주장했다. 아울러 민 회장은 5일 세종시 행안부 청사 앞에서 단식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예고했다. 또 5일부터 행안부 앞에서 전국 단위 경찰서 직협회장 등이 매일 3명씩 릴레이로 삭발식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5일에는 인천 감산경찰서, 충북 상당경찰서, 경남 김해중부경찰서에서, 6일에는 경남 함안경찰서, 전남 담양경찰서, 충북 청원경찰서에서 삭발식에 동참한다.
  • [포토] 경남 폭염…쿨링포그 작동

    [포토] 경남 폭염…쿨링포그 작동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버스 정류장에 폭염 대비 쿨링포그(Cooling Fog)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해당 시설은 28도 이상, 습도 70% 미만일 때 운영된다. 기상청은 30일 오전 11시를 기해 창원 등 경남 8곳에 폭염주의보를 발효한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은 창원·김해·밀양·함안·창녕·거창·함양·의령이다. 폭염주의보는 최고 체감온도 33도를 웃도는 상태가 이틀 이상 계속되거나 더위로 큰 피해가 예상될 때 내려진다.
  • 이순신의 연승 이끈 ‘싸움 길잡이’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이순신의 연승 이끈 ‘싸움 길잡이’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1532~1594)은 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미 환갑 나이였다. 종6품 현감(縣監)은 조선시대 지방수령으로서는 품계가 가장 낮은 외관직이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방목(榜目)에 따르면 그는 1564년(명종 19) 갑자 식년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급제 이전에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 여도의 종4품의 만호를 이미 지냈다. 어영담은 30년 안팎이나 서·남해안 일대에서 수군 지휘관과 고을 수령 자리를 이어 간 것이다. 어영담이 광양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인 1591년 3월이다. 60세에 왜적의 대규모 침략이 기정사실이었던 시기 군사와 행정을 겸해야 하는 남해안 최전선 고을 수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오랜 수군 경력으로 남해안 물길을 훤히 알고 있었던 전라좌수영의 맏형 어영담은 왜수군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길잡이이자 선봉장이었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을 두고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을 지내며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호남이 보전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사람이 한몫을 했다’고 적었다. 어영담을 다룬 역사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광양문화원에서 ‘광양 어영담 현감 사료조사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영담의 일생’은 완전히 재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방목에 거주지가 함안으로 돼 있는 만큼 고향은 같을 것으로 보지만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영담 스토리’를 제법 길게 소개한 조경남(1570~1641)의 ‘난중잡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출신의 조경남은 13세 때인 1582년 12월 난리를 예견하고 매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인조시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됐다. 그럼에도 이 기록의 기본적 속성은 야사(野史)다. 전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남원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게 변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대 보통사람들의 시각이 투영된 사료라는 뜻이다.‘난중잡록’은 어영담을 1592년 5월 20일자에 다루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경상도 해역으로 처음 출정해 왜수군을 궤멸시킨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은 물론 5월 29일~6월 5일 사천·당포·당항포의 대승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경남이 기록을 그날그날 정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중잡록’은 다른 기록들과 달리 경상좌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에도 출정을 주저하던 이순신의 결심을 이끌어 낸 인물로 어영담을 지목한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팔뚝을 걷어올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소리치기를, “영남은 왕의 땅이 아닌가. 이 왜놈은 나라의 적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관망이나 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말을 듣고도 걱정 않고, 왜적이 온 것을 보고도 마음이 태연한 채 앉아 영남 바다의 군사를 오늘 다 없어지게 만든다면, 내일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남의 위급한 것을 구해 주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왜적을 기다린다면 겁 많고 나약한 게 아니오. 장군께서 헤아려 하시오”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하기 직전 전라좌수영 참모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5월 1일자에는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들이니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義士)들이라 할 만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뢰한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들이 한결같이 울분을 곱씹으며 사령관에게 출정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역시 결심이 확고했다는 사실은 이튿날 일기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오정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출정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목을 베겠다는 뜻이다. 낙안군수 신호는 하지만 첫 출전에서부터 전라좌수군의 좌부장으로 나서 이순신이 승리를 알리는 장계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릴 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난중일기’는 5월 3일 정운의 진언이 출정 명령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출정 결정을 이끈 최대 공로자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어영담도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 왜적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참모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팩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당시 사람들에게 어영담은 매우 영웅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난중잡록’은 수군의 연승을 두고 ‘어영담의 귀신 같은 지도(指導)를 얻어 전후의 전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어영담을 ‘물길 귀신’으로 부르는 근거가 됐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 이후 영남 바다 여러 진의 막하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바다의 얕고 깊음과 섬 지역의 험하고 수월함, 나무하고 물 긷는 편의와 주둔할 장소 등을 빠짐없이 가슴속에 그려 두어 수군 함대가 영남 바다를 드나들며 수색하거나 토벌할 때면 집안 뜰을 밟고 다니듯 궁박하고 급한 경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3년 12월 19일 선조가 비변사 및 삼사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류성룡은 ‘어영담은 수로(水路)에 익숙한 사람이니 일을 위임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영담은 공인된 ‘물길 전문가’였다. 그에 대한 ‘난중잡록’의 서술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군의 전공은 어영담이 가장 높았는데도 당상관에 올랐을 뿐, 선무공신이 되지 못해 남쪽 사람들은 다들 애석히 여겼다’ 마지막까지 애정이 담겨 있다. 이순신의 모든 해전에서 공을 세운 어영담이지만 1593년 10월 광양현감에서 파직된다. 명나라 주둔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광양현에서 장부보다 600석 많은 양곡을 보관하고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어영담은 독운어사가 양곡을 임검할 때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문제는 현감 업무를 대신한 유위장(留衛將)에 있다. 또 약간의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적 위기에 의로움을 떨치고 있는 장수를 잃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파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라좌수영은 5개의 수군진과 5개의 연해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답 첨사진, 사도 첨사진, 녹도 만호진, 발포 만호진, 여도 만호진과 순천도호부, 보성군, 낙안군, 흥양현, 광양현 등이다. 연해 고을을 수군에 편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력 충원과 군량미 보급, 전선(戰船) 건조 때문이다. 그러니 연해 고을 수령은 수군진 지휘관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수군 소속 고을 수령이 전투에 나설 수군의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직분이 아닐 수 없다. ‘난중일기’에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휘하 군사나 관원을 군율로 처단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이순신이 어영담을 감싼 것은 개인적 비리가 아니었다는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발영은 임발영대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 군영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니 광양현의 ‘장부외(外) 양곡’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어영담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잇따른 상소로 1594년 2월 전라도 주사조방장으로 복귀한다. 주사(舟師)는 수군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용어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2차 당항포해전은 어영담의 마지막 싸움이 됐다. 수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영담의 병세가 악화했고 결국 4월 9일 눈을 감았다. 이순신은 이 날짜 ‘난중일기’에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1532~1594)은 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미 환갑 나이였다. 종6품 현감(縣監)은 조선시대 지방수령으로서는 품계가 가장 낮은 외관직이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방목(榜目)에 따르면 그는 1564년(명종 19) 갑자 식년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급제 이전에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 여도의 종4품의 만호를 이미 지냈다. 어영담은 30년 안팎이나 서·남해안 일대에서 수군 지휘관과 고을 수령 자리를 이어간 것이다. 어영담이 광양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인 1591년 3월이다. 60세에 왜적의 대규모 침략이 기정사실이었던 시기 군사와 행정을 겸해야 하는 남해안 최전선 고을 수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전라좌수영의 맏형이자 오랜 수군 경력으로 남해안 물길을 훤히 알고 있었던 어영담은 왜수군과 싸움에서 언제나 길잡이자 선봉장이었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을 두고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을 지내며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호남이 보전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사람이 한몫을 했다’고 적었다.  어영담을 다룬 역사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광양문화원에서 ‘광양 어영담 현감 사료조사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영담의 일생’은 완전히 재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방목에 거주지가 함안으로 되어 있는 만큼 고향은 같을 것으로 보지만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영담 스토리’를 제법 길게 소개한 조경남(1570~1641)의 ‘난중잡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출신의 조경남은 13세 때인 1582년 12월 난리를 예견하고 매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인조시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됐다. 그럼에도 이 기록의 기본적 속성은 야사(野史)다. 전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남원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게 변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대 보통사람들의 시각이 투영된 사료라는 뜻이다.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1592년 5월 20일자에 다루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경상도 해역으로 처음 출정해 왜수군을 궤멸시킨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은 물론 5월 29~6월 5일 사천·당포 ·당항포의 대승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경남이 기록을 그날그날 정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중잡록’은 다른 기록들과 달리 경상좌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에도 출정을 주저하던 이순신의 결심을 이끌어 낸 인물로 어영담을 지목한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팔뚝을 걷어올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소리치기를, “영남은 왕의 땅이 아닌가. 이 왜놈은 나라의 적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관망이나 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말을 듣고도 걱정 않고, 왜적이 온 것을 보고도 마음이 태연한 채 앉아 영남 바다의 군사를 오늘 다 없어지게 만든다면, 내일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남의 위급한 것을 구해주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왜적을 기다린다면 겁 많고 나약한 게 아니오. 장군께서 헤아려 하시오.”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상도해역으로 출정하기 직전 전라좌수영 참모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5월 1일자에는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 들이니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義士)들이라 할 만 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뢰한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들이 한곁같이 울분을 곱씹으며 사령관에게 출정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역시 결심이 확고했다는 사실은 이튿날 일기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오정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출정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목을 베겠다는 뜻이다. 낙안군수 신호는 하지만 첫 출전에서부터 전라좌수군의 좌부장으로 나서 이순신이 승리를 알리는 장계에 이름을 첫번째로 올릴 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난중일기’는 5월 3일 정운의 진언이 출정 명령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출정 결정을 이끈 최대 공로자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어영담도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 왜적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참모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팩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당시 사람들에게 어영담은 매우 영웅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난중잡록’은 수군의 연승을 두고 ‘어영담의 귀신 같은 지도(指導)를 얻어 전후의 전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어영담을 ‘물길 귀신’으로 부르는 근거가 됐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 이후 영남 바다 여러 진의 막하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바다의 얕고 깊음과 섬 지역의 험하고 수월함, 나무하고 물 긷는 편의와 주둔할 장소 등을 빠짐없이 가슴 속에 그려 두어 수군 함대가 영남 바다를 드나들며 수색하거나 토벌할 때면 집안 뜰을 밟고 다니듯 궁박하고 급한 경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3년 12월 19일 선조가 비변사 및 삼사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류성룡은 ‘어영담은 수로(水路)에 익숙한 사람이니 일을 위임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영담은 공인된 ‘물길 전문가’였다. 그에 대한 ‘난중잡록’의 서술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군의 전공은 어영담이 가장 높았는데도 당상관에 올랐을 뿐, 선무공신이 되지 못해 남쪽 사람들은 다들 애석히 여겼다’ 마지막까지 애정이 담겨있다.  이순신의 모든 해전에서 공을 세운 어영담이지만 1593년 10월 광양현감에서 파직된다. 명나라 주둔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광양현이 장부보다 600석 많은 양곡을 보관하고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어영담은 독운어사가 양곡을 임검할 때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문제는 현감 업무를 대신한 유위장(留衛將)에 있다. 또 약간의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적 위기에 의로움을 떨치고 있는 장수를 잃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파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라좌수영은 5개의 수군진과 5개의 연해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답 첨사진, 사도 첨사진, 녹도 만호진, 발포 만호진, 여도 만호진과 순천도호부, 보성군, 낙안군, 흥양현, 광양현이다. 연해 고을을 수군에 편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력 충원과 군량미 보급, 전선(戰船) 건조 때문이다. 그러니 연해 고을 수령은 수군진 지휘관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수군 소속 고을 수령이 전투에 나설 수군의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직분이 아닐 수 없다.  ‘난중일기’에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휘하 군사나 관원을 군율로 처단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이순신이 어영담을 감싼 것은 개인적 비리가 아니었다는 반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발영은 임발영대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 군영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니 광양현의 ‘장부외(外) 양곡’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어영담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잇따른 상소로 1594년 2월 전라도 주사조방장으로 복귀한다. 주사(舟師)는 수군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용어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2차 당항포해전은 어영담의 마지막 싸움이 됐다. 수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영담의 병세가 악화했고 결국 4월 9일 눈을 감았다. 이순신은 이 날짜 ‘난중일기’에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 [속보] 경남 405명 신규 확진…사흘 연속 500명 밑

    [속보] 경남 405명 신규 확진…사흘 연속 500명 밑

    경남도는 24일 하루 도내에서 코로나19에 405명이 확진됐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전날 400명보다 5명 늘어난 것이다. 사흘 연속 500명 아래이자 25일 연속 1000명 이하 확진자 수를 유지했다. 시·군별로 창원 121명, 김해 79명, 양산 58명, 진주 41명, 사천 16명, 거제 14명, 밀양·함안 각 13명, 거창 12명, 남해 8명, 통영·창녕 각 6명, 고성 5명, 하동·합천·함양 각 3명, 의령·산청 각 2명이다. 위중증 환자는 1명으로 치료 중인 환자의 0.04%다. 도내 누적 확진자는 110만1368명(입원 18명, 재택치료 2686명, 퇴원 109만7429명, 사망 1235명)으로 늘어났다.
  • 함안 안곡산성 경남도 문화재로

    경남 함안군은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성곽유적인 함안 안곡산성이 경남도 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됐다고 16일 밝혔다. 함안 안곡산성은 칠서면과 대산면 경계에 걸쳐 있는 해발 343m 안국산 정상을 따라 축조된 좁고 긴 형태의 테뫼식 산성이다. 내성(둘레 821m)과 외성(410m)이 있는 복곽성으로 전체 둘레는 1231m다. 안곡산성은 낙동강과 창녕 지역까지 보이는 곳에 있어 신라 등 주변 세력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산성으로 알려졌다. 함안군은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사업의 하나로 2017~2018년 안곡산성을 처음 발굴 조사했다. 이어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경남도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에 선정돼 내성 구간을 발굴했다. 현재 성곽의 정확한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측량과 시굴 조사를 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안곡산성은 아라가야 전성기인 5세기 후반 흙과 돌로 함께 쌓아 올린 토석혼축 산성으로 밝혀졌다. 토석혼축 공법은 아라가야 최고 지배층의 묘역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대형 봉토분에서도 확인되는 공법으로,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견고한 구조물을 세우기 위한 아라가야 특유의 토목 기술이다. 도는 안곡산성이 고분 축조 기술을 성곽 축조에 접목한 특별한 사례로서 고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해 도 문화재로 지정했다.
  • 아라가야 특유 토목기술로 쌓은 ‘함안 안곡산성’ 경남도 문화재 지정...토석혼축 공법

    아라가야 특유 토목기술로 쌓은 ‘함안 안곡산성’ 경남도 문화재 지정...토석혼축 공법

    경남 함안군은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성곽유적인 함안 안곡산성(咸安 安谷山城)이 경남도 문화재(기념물)로 지정 됐다고 16일 밝혔다.함안 안곡산성은 함안군 칠서면과 대산면 경계에 걸쳐 있는 해발 343m 안국산 정상을 따라 축조된 좁고 긴 형태의 테뫼식(鉢卷式) 산성이다. 내성(둘레 821m)과 외성(둘레 410m)이 있는 복곽성(複郭城)으로 전체 둘레는 1231m이다. 안곡산성은 낙동강과 창녕지역까지 가시권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아라가야가 신라 등 주변세력의 침입에 대비해 군사적 요충지에 쌓은 산성으로 알려졌다. 함안군은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사업의 하나로 2017~2018년 군 자체사업으로 안곡산성에 대한 첫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경상남도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에 선정돼 내성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했다. 성곽의 정확한 범위를 확인하기 위한 측량과 시굴조사가 현재 진행중이다.발굴조사결과 안곡산성은 아라가야 전성기인 5세기 후반 흙과 돌로 함께 쌓아 올린 토석혼축(土石混築) 산성으로 밝혀졌다. 특히 성벽 내부에서는 많은 돌과 점토를 사용해 접착력을 높이고 나무기둥과 석축을 함께 활용해 상부의 수직압력을 분산함으로써 붕괴를 방지하는 토목공법도 확인됐다. 안곡산성의 토석혼축 공법은 아라가야 최고 지배층의 묘역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대형봉토분에서도 확인되는 공법으로, 지형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견고한 구조물을 세우기 위한 아라가야 특유의 토목기술이다. 경남도와 함안군은 안곡산성은 고분 축조기술을 성곽 축조에 접목한 특별한 사례로 고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게 평가돼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함안군 관계자는 “안곡산성의 경남도 기념물 지정으로 입체적인 아라가야사 복원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며 “추가 조사와 결과를 바탕으로 성곽 체계적인 보존과 정비계획을 마련해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세계유산위 러시아 개최 무한 연기…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어쩌나

    세계유산위 러시아 개최 무한 연기…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어쩌나

    다음달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이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무기한 연기돼 올해 가야고분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18일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에 따르면 다음달 19∼30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기약 없이 미뤄졌다. 21개 위원국으로 이뤄진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위원회 무기 연기는 2022~2023년 의장국인 러시아가 이탈리아 등 위원국에 이 같은 제안을 담은 서한을 보내고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아 확정됐다. 앞서 국제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역사적 건축물을 훼손한 러시아에서 세계유산위원회를 개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때문에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기회도 무기한 지연될 전망이다. 가야문화권인 전북·경북·경남 등 3개 도는 2013년부터 공동으로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 선정, 등재신청서 완성도 검토 등의 절차를 모두 통과했고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결정만 남겨 놨다.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는 가야고분은 경남 5곳, 경북 1곳, 전북 1곳이다. 대표적인 가야고분군 35곳을 전문가들이 검토해서 7곳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이들 7곳은 가야 정치체의 각 중심지에 있고, 가야문명의 사회구조를 반영한 묘제와 부장유물을 갖춰 가야문명을 잘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등재 추진 고분군은 ▲가야의 시작과 왕묘의 출현을 나타내는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순장 제도를 보여 주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서역 교류를 증명하는 합천 옥전 고분군 ▲봉분 하나에 여러 기를 순차적으로 조성한 고성 송학동 고분군 ▲화려한 장식마구와 금동관 등이 출토된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가야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중국계·백제계 유물이 출토된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이다. 가야고분군이 등재되면 해인사 장경판전 등에 이어 국내 열여섯 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 ‘민주는 미달, 국힘은 넘쳐 잡음’...경남 기초단체장 선거 주요 출마후보 대진표 확정

    ‘민주는 미달, 국힘은 넘쳐 잡음’...경남 기초단체장 선거 주요 출마후보 대진표 확정

    6·1지방선거 경남 18곳 기초단체장에 출마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주요 후보자 대진표가 확정됐다.더불어민주당은 현역 시장·군수 7명 전원을 공천하는 등 13곳 후보자를 결정했다. 밀양시와 의령·함양·산청·거창·합천군 등 6개 지역은 공천 신청자가 없어 후보자를 찾고 있다. 국민의힘은 9곳 현역 단체장 가운데 6명을 공천하는 등 18곳 모두 후보를 결정했다. 현역 단체장 중에 1명은 출마하지 않고, 2명은 경선에서 배제되거나 떨어졌다. 경선에서 배제된 일부 후보는 불공정을 주장하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등 경선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 최대 도시인 창원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허성무(59) 시장과 국민의힘 홍남표(62) 전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이 맞붙는다. 진주 지역은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을 지낸 민주당 한경호(59) 후보와 재선에 도전하는 국민의힘 조규일(56) 시장이 대결한다. 통영은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 강석주(58) 시장과 도의원 출신인 국민의힘 천영기(60) 도당 대변인, 무소속 서필언(67) 전 행정안전부 차관의 3파전이 예상된다. 전임 시장의 시장직 상실로 현역 시장이 없는 사천에서는 민주당 황인성(69) 전 청와대 비서관과 국민의힘 박동식(64) 전 도의회의장, 무소속 차상돈 전 사천경찰서장이 겨룬다. 고 노무현 대통령 고향 김해에서는 민주당 허성곤(67) 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 국민의힘은 2016·2020년 김해갑 총선에 출마했던 홍태용(57) 경남도당 수석부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웠다. 밀양은 국민의힘 박일호(60) 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 김병태(63) 전 밀양시 행정국장이 무소속으로 나섰다. 민주당은 후보를 찾고 있다. 거제는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 변광용(56) 시장에 맞서 국민의힘은 박종우(51) 거제축협조합장을 공천했다. 국민의힘 공천을 신청했던 김한표(68) 전 국회의원이 경선배제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뒤 거주하는 양산에서는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 김일권 (71) 시장과 국민의힘 나동연(67) 전 시장이 네번째 맞붙는다. 2018년 선거에서 김 시장에게 패한 나 전 시장이 설욕을 벼른다. 의령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국민의힘 오태완(56) 군수와 무소속 손호현(61) 전 군의회 의장이 대결한다. 민주당은 후보자를 찾고 있다. 함안 지역은 민주당 장종하(37) 전 도의원과 재선에 노리는 국민의힘 조근제(69) 군수가 맞붙는다. 창녕은 민주당 김태완(42) 지역위원장과 국민의힘 김부영 (56)전 도의원이 각각 공천을 받아 출전한다. 한정우(66) 현 군수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배제된데 반발해 농성을 벌이며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는 등 경선 잡음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고성에서는 민주당 백두현(56) 군수와 국민의힘 이상근(69) 전 군의원, 무소속 빈철구(64) 경북과학대특임교수가 나섰다. 남해지역은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장충남(60) 군수와 설욕을 벼르는 국민의힘 박영일(67) 전 군수가 2018년에 이어 두번째 대결한다. 하동은 민주당 강기태(38) 전 경남선대위 대변인과 국민의힘 이정훈( (52)전 도의원이 맞붙는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윤상기(68) 군수가 탈락하고 하승철(58) 전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이 배제되는 과정에 지역국회의원의 공천개입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하 전 청장은 경선 불공정을 주장하며 무소속으로 나섰다. 산청지역은 국민의힘 현 군수가 출마하지 않고, 공천신청자가 모두 경선을 해 이승화(66) 전 군의회 의장이 후보로 결정됐다. 무소속 출마자가 없어 민주당이 마땅한 후보자를 찾지 못하면 국민의힘 후보 1명만 출마하게 된다. 함양은 국민의힘 서춘수(72) 군수와 무소속 진병영(57) 전 도의원이 대결한다. 진 전 도의원은 국민의힘 경선에서 배제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거창에서도 국민의힘 구인모(63) 군수와 경선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홍기(64)전 군수가 대결한다. 합천은 전임 군수의 정치자금법 위반에 따른 군수직 상실로 비어있는 군수자리를 놓고 국민의힘 김윤철(58) 전 경남도의원와 무소속 배몽희(54), 박경호(62) 후보가 뛰고 있다.
  • 51~70세 여성농업인 올해 첫 특수건강검진

    51~70세 여성농업인 올해 첫 특수건강검진

    올해부터 만 51~70세 여성농업인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이 실시된다.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26일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시범사업에 참여할 11개 시·군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대상지역은 경기(김포), 강원(홍천), 충북(진천), 충남(공주), 전북(익산·김제), 전남(해남), 경북(포항), 경남(김해·함안), 제주(서귀포) 등이다.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여성농업인이 비농업인 또는 남성농업인에 비해 유병률과 의료비용이 높은 특성을 고려해 도입됐다. 2015년 조사에서 근골격계 유병율이 여성농업인은 70.7%로 남성농업인(55.1%), 비농업인(52.2%)보다 높았고, 의료비용 역시 여성농업인 125만 5000원으로 남성농업인(92만 8000원), 비농업인(30만 4000원)과 격차가 컸다. 이에 따라 정부가 농작업 질환 관련 특수건강검진 비용의 90%를 지원해 근골격계, 심혈관계, 골절·손상위험도, 폐활량, 농약중독 총 5개 영역, 10개 항목에 대한 검진을 실시한다. 특수검진대상자로 선정된 여성농업인은 원진직업병관리재단에서 지정한 특수건강검진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일반건강검진 대상자인 짝수 연도에 태어난 사람은 일반건강검진과 특수건강검진을 함께 진행하고, 홀수 연도에 태어난 사람은 특수건강검진만 받는다. 검진을 희망하는 여성농업인은 지자체 담당 부서에 참여를 문의할 수 있다. 지역의 병원이 특수건강검진 실시 의료기관으로 참여를 원하면 원진직업병관리재단에 신청 가능하다. 오미란 농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장은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오랜 준비 끝에 올해 처음 시행되는 사업”이라며 “내실있는 사업으로 여성농업인의 농작업 질환 예방과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경남 전국버스노조 파업대비 비상수송대책 준비

    경남 전국버스노조 파업대비 비상수송대책 준비

    경남도는 13개 시외버스회사 노조와 창원, 의령, 함안, 남해, 함양, 거창, 합천 등 7개 시·군 12개 시내·농어촌 버스회사 노조가 26일 첫차부터 파업을 예고함에 따라 비상수송대책을 준비하는 등 도민불편을 최소화하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고 25일 밝혔다.이번 경남지역 시외·시내·농어촌 버스 노조의 집단 운행거부 사태는 지난 19일 실시된 전국버스노조 집단운행거부 찬반투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파업에 참여하는 경남지역 시외버스는 전체 19개 회사 1396대 가운데 13개 회사 878대이다. 창원시내버스는 전체 9개 회사 727대 가운데 7개 회사 542대가 참여할 예정이다. 창원시내버스 노조는 임금 11.3% 인상과 체력단련비 3만 9000원 인상, 무사고 수당 2만원 인상, 식권제 도입 등을 요구한다. 경남 시외버스 노조는 임금 6.5% 인상안을 제시했다. 전국버스노조는 코로나19로 경영악화를 겪고 있는 버스업체에 정부가 재정지원과 요금인상 등 대책을 직접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경남도는 지난 21일 오전 시·군 교통과장 영상회의를 열어 비상수송 대책을 점검하고 허동식 경남도 도시교통국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비상수송대책본부’를 설치해 운영한다. 경남도는 버스 파업으로 도민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각도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상수송대책본부’는 총괄반, 수송반, 홍보반, 현장지원반 등 4개 반으로 구성해 비상상황 총괄, 유관기관과 협조체계 유지, 비상수송차량 운행상황 관리, 파업에 따른 각종 민원 접수처리 등을 담당한다. 시·군에서도 시내·농어촌 버스 파업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비상수송대책본부를 구성해 운영한다. 경남도는 파업에 들어가면 전세버스 등 213대와 관용차량 18대를 투입할 예정이다. 파업대상 시·군의 교통수요를 판단해 유관기관과 교육청 등에 택시부제 해제(2800여대), 시차출근제, 등하교 시간 조정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주요 터미널에 경찰과 담당공무원을 비상수송 안내요원으로 배치해 터미널 내 차량운행 방해 행위 등에 강력 대처할 방침이다. 허동식 경남도 도시교통국장은 “대중교통인 버스가 운행중단에 이르지 않도록 끝까지 적극적으로 노사 설득을 할 계획이지만, 전국적인 파업이어서 정상운행을 속단할수 없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수송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민의힘 창녕군수 ‘컷오프‘ 반발 단식중 탈진 병원 이송

    국민의힘 창녕군수 ‘컷오프‘ 반발 단식중 탈진 병원 이송

    6·1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배제되자 경선 참여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던 국민의힘 한정우(66) 경남 창녕군수가 단식 3일 만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25일 한 군수측에 따르면 한 군수는 이날 오후 2시쯤 창녕읍 국민의힘 조해진 국회의원(밀양·의령·함안·창녕) 사무실 앞 단식농성장에서 탈진해 실신했다. 119 구급대에 의해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한 군수는 의식을 회복했다. 한 군수는 지난 21일 군수선거 경선에서 배제(컷오프)되자 다음날 국민의힘 경남도당 앞에서 사유 공개와 재심을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컷오프 사유 공개와 경선 참여를 요구하며 지난 23일 오후부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한 군수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통해 “지역에 나돌던 특정 후보가 공천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현실이 됐다”며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하는 현직 군수를 배제하는 당의 심사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경남도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21일 창녕군수 선거 경선 후보로 한 군수를 탈락시키고 권유관 전 도의원과 김부영 전 도의원, 김춘석 창녕군의원 등 3명이 경선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 굽이굽이… 너만의 이야기가 돋았다

    굽이굽이… 너만의 이야기가 돋았다

    경남 창녕에 아름다운 옛길이 있다. 꽃가람을 따라 걷는 ‘남지개비리길’이다. 명색이 국가 문화재(명승)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길에 깃든 옛이야기를 곱씹으며 걷는 맛이 제법 웅숭깊다. 봄의 낙동강은 예쁘다. 남지개비리길 입구까지 5㎞ 남짓, 10리가 넘는 강변이 죄다 벚꽃이다. 둑방길 아래 둔치에선 노란 유채꽃이 화사하게 제 자태를 드러내는 중이다. 꽃이 있는 강을 두고 선조들은 ‘꽃가람’이라 표현했다지. 이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장면이다.●산 절벽 강가 벼랑에 난 ‘꽃가람’길 남지개비리길은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의 마분산(馬墳山·180m) 바위 절벽에 난 벼랑길을 일컫는다. 용산리 용산마을에서 신전리 영아지마을까지 편도 약 3㎞ 거리다. 원점 회귀하지 않고 마분산 등산로로 우회해 돌아올 경우 왕복 6.4㎞ 정도 된다. 이름은 ‘강가(개) 벼랑(비리)에 난 길’이라는 뜻이다. 현지 사투리를 그대로 썼다. ‘개가 다닌 벼랑’이라는 견해도 있다. 모성 가득한 어미 개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오가던 벼랑이라는 내용인데, 개연성은 다소 떨어져 보인다. 오래전엔 소금과 젓갈을 등에 진 등짐장수가 이 길을 오갔고, 주민들이 장을 보러 갈 때나 남지읍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등굣길로 쓰기도 했다. 대동여지도 등 조선시대 고지도와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옛길 경로가 기록됐을 만큼 유서가 깊다. 지난해 말 명승으로 공식 지정됐다. ●임진왜란 승전지·6·25 최후의 전선 들머리인 남지수변 억새전망대 앞은 남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이 구간만 따로 ‘강이 갈라진다’는 뜻의 기음강(岐音江) 혹은 기강(岐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음강은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병들이 왜선을 격파하며 첫 승을 거뒀던 곳이다. 6·25전쟁 때는 국군이 낙동강 최후 저지선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들머리에서 용산양수장까지 1㎞ 정도는 평탄한 길이다. 낙동강을 눈높이에서 보며 걸을 수 있다. 길 양옆으로 수양벚꽃이 늘어서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그만이다. 다만 이 구간에 사유지가 몇 곳 있어 차량이 오가는 것이 흠이다. 실질적인 개비리길은 용산양수장을 지나 곽재우 장군의 고사가 전하는 ‘홍의장군 붉은 돌 신발’ 어름에서 시작된다. ●곽재우 애마의 이야기 깃든 마분산 개비리길은 산과 강을 거스르지 않고 난 길이다. 강물이 산을 안으면 같이 돌고, 휘어지면 같이 물러나 걷는다. 강 너머 마루금을 좁힌 산들과 너른 낙동강의 품도 시원하다. 벼랑 위의 마분산은 ‘말 무덤’을 뜻한다. 곽재우 장군이 자신의 애마에 벌통을 달아 적진에 뛰어들게 한 뒤 왜적이 놀라 허둥댈 때 기습해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 와중에 말이 죽고 말았다. 의병의 시신과 말을 수습해 산 정상에 묻은 이후 마분산으로 불리게 됐다. 마분산에는 줄기가 여럿인 소나무가 많다. 이를 마분송이라고 부른다. 곽재우 장군은 마분송에 옷을 입혀 의병 수를 많아 보이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길 곳곳에 옛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벼슬아치의 탕건에 장식된 ‘옥관자 바위’, ‘벼슬길에 오른 층층나무’,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여양진씨 감나무 시집보내기’, ‘영험한 팽나무 연리목’ 등 하나하나 읽으며 걷는 맛이 일품이다. 이 길이 문화재 반열에 오르는 데엔 이런 풍성한 역사 자료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풍성한 역사 이야기로 명승 반열 남지개비리길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진입로 주변의 강변길 전체가 벚꽃이다. 제방 아래 둔치에는 남지유채꽃 단지가 조성됐다. 무려 110만㎡(약 34만평)가 노란 유채꽃이다. 한반도 튤립정원, 태극기 정원 등 다양한 포토존도 갖췄다. 코로나19 탓에 올해도 유채꽃 축제는 취소됐지만 꽃밭 진입을 막지는 않는다. 낙동강을 가로질러 놓인 남지철교는 등록문화재다. 1933년 완공된 근대식 교량으로 형태가 매우 유려하다. 6·25전쟁 때 중앙 부분 25m가 폭파됐다가 1953년 복구된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현재는 도보와 자전거로만 오갈 수 있다. 다리를 넘으면 함안 땅이다.●고분부터 석탑까지 ‘작은 경주’ 창녕 창녕읍내엔 ‘작은 경주’라 불릴 만큼 역사 유적이 많다. 벚꽃이 만개한 요즘 가 볼 만한 곳은 만옥정공원이다. 신라 진흥왕 때 세운 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가 늙은 벚꽃들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 있다. 창녕객사, 퇴천삼층석탑 등도 볼거리다. 공원 아래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석탑으로 국보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필수 방문 코스다. 5~7세기에 걸쳐 형성된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군으로 알려졌다. 봉긋한 무덤의 유려한 선을 타고 흐르는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고분군 맞은편은 창녕박물관이다. 송현동 15호 고분에서 나온 뼈를 토대로 복원한 소녀 ‘송현이’ 등이 전시돼 있다. 1500여년 전 열여섯 나이로 순장됐다가 첨단과학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가야 소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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