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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맑은 얼굴 맑은 눈/ 비 온 뒤라면 무지개 걸려/ 그러나 독재나 어떤 잔재 따위에는/ 진흙탕 싸움을 사양할 수 없다/ 그 아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앞에서/ 지(知)와 신앙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도시의 신부다(고은 시인의 ‘만인보’ 중 ‘함세웅’ 편의 일부)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1970~1980년대 불끈 쥔 주먹으로 독재에 맞서면서도 늘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를 고은은 ‘도시의 신부’라고 불렀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 정국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1974년)을 만들어 박종철군 고문 사망(1987년), 삼성 비자금 조성(2007년) 등 묻혀 있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며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그였지만 이름 앞에 ‘명사’(名士)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했다. 겸허함을 지켜야 할 사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북하다고도 했다. 나이 일흔이 넘도록 흔한 회고록 한 권 내지 않은 이유다. 함 신부는 지난해 8월 사제 생활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인권의학연구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국미사에 참석하는 등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함 신부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인권의학연구소에서 만났다. 함 신부는 광복을 3년 앞둔 1942년 6월 서울의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유교적 가풍 때문에 가족 중에 가톨릭 신자는 없었지만 집 근처에 천주학당(현 성심여고)이 있어 가톨릭과 서양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다. 여덟 살 되던 1950년 6·25가 터졌다. 소년 함세웅은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신앙에 눈을 떴다. “어느날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쾅 하는 굉음이 나는 거예요. 한낮인데 하늘이 시커매. 나중에 들었는데 B29 폭격기들이 한강 임시다리를 폭파하는 소리였대요. 너무 놀라 친구들과 어디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거기가 성모병원이었어요.” 병원은 아비규환이었다. 피 칠갑을 한 환자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수녀들이 그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 빚은 전쟁, 그 속에서 생사의 경계에 섰던 사람들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첫 종교적 체험이었다. 그때부터 가톨릭 신자가 됐다. “평범한 신자였던 제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성당에서 복사(천주교 미사 때 신부를 돕는 신자)로 활동했는데 그해 11월 2일 위령의 날 신부님과 함께 서울 잠원동, 논현동 일대의 공동묘지를 찾게 됐지요. 너른 터에 빼곡히 들어선 묘지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 누구나 다 이렇게 묘소에서 끝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6·25와 공동묘지의 체험이 겹쳐 결국 사제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셈이지요.” ‘천국에 온 것 같았다’는 회고처럼 신학교 생활은 그에게 더없이 잘 맞았다. 4·19 혁명이 전국을 휩쓴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을 마치고 육군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헌병으로 차출됐어요. 이야, 이제부터 폼나게 군대생활 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배치된 곳이 부산과 광주(경기)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였어요. 그곳에서 군생활을 꼬박 2년간 했지요.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체험한 첫번째 모순의 사회였어요. 불합리한 일상을 겪으면서도 낙오하지 않으려면 숨죽인 채 순종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박정희 독재를 겪으며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군에서 모순의 사회를 배우고 길들여졌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아팠지요.” 신학 교수의 꿈을 품은 함 신부는 1965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는 4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독재와 탄압을 본격화하던 때였다. 햇수로 9년을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나라 밖에 있다 보니 3선 개헌, 유신체제 선포, 학생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투옥과 고문 등 뉴스를 외려 국내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접할 수 있었어요. 마음 아프고 부끄러웠어요.” 1973년 귀국해 마주친 조국의 첫인상은 낯설었다. 마포대교 등에는 헌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고 서울역에서는 중·고등학생을 동원한 반공 궐기대회가 수시로 열렸다. 그야말로 병영사회였다. 서울 연희동 성당에서 보좌사제로 있던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결정적 사건이 1973년과 1974년 잇달아 터졌다. 김대중(1924~2009) 납치사건과 지학순(1921~1993) 주교의 구속이었다. 특히 1974년 7월 지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과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으로 15년형을 받자 성난 사제들이 성당 밖으로 뛰쳐나왔다. 함 신부는 이 과정에서 젊은 신부들을 중심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했다. 당시 사제단에 참여했던 문정현(73) 신부는 함 신부에 대해 “타고난 조율가이자 소통가”라고 평가했다. 문 신부는 “대표가 없는데도 사제단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박학하고 판단이 빠른 함 신부 덕이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지 주교의 구속에 대해 “돌이켜보니 은총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제들이 사회 참여를 시작하면서 유신체제의 모순에 대해 눈 떴다는 얘기다. 유신독재 타파를 외치며 정권에 맞서던 그는 1976년 3·1 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구속됐다. 첫 투옥은 시련이자 기회였다. 서대문 구치소 등에서 1년여 옥고를 치른 그는 “제2의 신학교 생활 같았다”고 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자신의 인간 본성을 엿본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밤늦게 구치소에 갔는데 교도관이 제 방이라며 안내했어요. 근데 완전히 쓰레기통이야. 그래도 내가 살 방이니 의지를 갖고 아침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근데 다 치워놓으니까 교도관이 ‘방 배치를 다시 해야 하니 나오라’는 거예요. 좀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싫다. 살 준비 다했으니 내 방이다’라고 하니까 교도관이 ‘교도소에 내방 네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해요. 근데 옮겨 보니 새 방이 너무 깨끗한 거예요. 청소 좀 했다고 교도소 방 옮기기 싫어한 제 모습이 참…. 덧없는 소유욕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었어요.” 함 신부는 교도소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박 1년간 재판을 받으며 기도와 독서로 마음을 달랬다. 함 신부가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던 유신독재의 종말을 목격한 곳도 교도소였다. 1979년 미사를 집전하면서 농민 오원춘이 정보기관에 납치·감금당한 일에 대해 강론하다가 경찰에 연행돼 영등포 교도소로 끌려갔다. 두번째 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암살됐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박정희 피살 소식을 접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집트 노예 해방의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김재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신독재의 핵심을 제거한 일은 높이 평가해야 해요. 그는 1979년 부마항쟁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수습할 정책을 써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과 나눈 대화에서 ‘그까짓것 100만~200만명쯤 죽여도 문제 없어. 3·15 부정선거 때 경무대 경호책임자인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린 죄로 처형당했는데 내가 발포 명령을 한다면 나를 어떻게 할 거야’라고 했다지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10·26 의거를 결행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했죠.” 그는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기적과도 같은 민초들의 힘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제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 받을 때 피로를 못이겨 눈 감고 있었더니 혼자서 저를 감시하고 있던 중정 요원이 ‘신부님, 정신 차리세요. 소신껏 답변하셔야 해요’라며 응원하더군요. 힘이 불끈 솟았지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때 옥중에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의 쪽지를 전달한 사람도 이름 없는 양심적인 교도관이었어요. 사도행전을 보면 감옥에서 천사들이 감옥 문을 열어 사도들을 내보내 줬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그런 기적을 현실에서 체험한 거죠.” 1970년대 함 신부와 함께 군부독재 권력과 싸웠던 이들 중 지금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 이를테면 김지하 시인이나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시기별로 구별해서 봐야 해요. 인간은 원래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예컨대 김지하 시인도 1970년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던 청년 김지하와 1990년대 이후 현실과 야합한 장년 김지하로 나눠 볼 수 있겠죠. 윤리신학적으로 봐도 사실 선과 악, 천사성과 악마성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거든요. 어느 쪽이 마음속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죠. 일제시대 때 최남선, 이광수 같은 분도 일면으로는 얼마나 훌륭했나요. 변절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한 그들의 한계죠.” 함 신부는 잘못된 사회·정치 제도를 바로잡는 데 교회(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왜 하필 교회일까. 그는 “불의 없는 사회를 만들어 사람들이 양심껏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적 인간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에 종교가 사회 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꽤 오래 전의 일화 하나를 끄집어냈다. “1970년대 어느 부활절 때였어요.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 국영기업에 다닌다는 한 40대 신도가 성당에 왔어요. 술에 취했는데 고해성사를 보겠대요. 그러면서 ‘신부님, 어차피 오늘 반성해도 내일 저는 똑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냥 저와 술 한잔 하시고 용서해주세요’하는 거예요. 또 ‘신부님은 세상을 모릅니다. 부정과 타협 안 하면 살 수가 없어요. 집에 노모까지 5명이 사는데 회사 월급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뇌물받아 아래, 위와 나눠 가져야 해요’라고 하더군요. 양심적으로 살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그러면 당장 식구들이 굶어 죽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함 신부는 당시 30대의 젊은 사제였다. 그 신자에게 ‘그래도 천주교 신자로서 양심껏 사세요’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그 사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들이 양심껏 살도록 도우려면 결국 옳지 못한 사회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교(政敎) 분리는 사실 폭압자들의 논리예요. 종교의 이름으로 불의에 항거하면 ‘예배당, 불당에 가서 기도나 하세요’하는 식이죠. 성경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잖아요. 그러려면 세상 한복판에서 세상을 껴안아야 해요.” (하편에서 계속)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민족문제硏 이사장 함세웅씨

    민족문제연구소는 제4대 이사장으로 함세웅(71) 신부를 10일 선출했다. 김병상 전 이사장은 건강 문제로 지난해 말 사임서를 제출해 명예이사장으로 물러났다. 함 신부는 천주교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사제로서 직접 거리로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을 창설해 초대 사장을 지냈다.
  • 범야권 단일화 협상 촉구

    “시간이 없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을 조속히 개시해야 한다는 범야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는 10일 대선 공약집 발간 이후 단일화를 논의하겠다는 안 후보 측의 방침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근 목사, 함세웅 신부 등 재야 원로들로 구성된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는 1일 “정치 혁신 방안에 대한 양측의 소통과 대화가 조속히 진행되어야 한다.”며 “이제 대화에 나설 때”라고 밝혔다. 원탁회의는 “무엇보다 대화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양측 모두 대의와 총론에는 공감대가 크지만 각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두 후보 진영의 소통과 토론이 활성화되고 진지한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 혁신을 위한 소통을 단일화 압박으로 예단하거나 수단으로 삼는 건 삼가야 한다고 경계했다. 민주당 내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 계열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안 두 후보가 대통합의 정신으로 단일화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한다.”며 “양 후보 간 합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일 안에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규성·인재근·유은혜·설훈 등 민평련 소속 의원들은 “시간이 없다.”며 “야권 단일화는 역사적 책무로, 실패하면 더 무서운 보수 수구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문화·학계인사 102명 “단일화는 시대정신” 성명

    문화·학계인사 102명 “단일화는 시대정신” 성명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범야권 진영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두 후보 간의 단일화 논의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자칫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3자 대결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야권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강하다. ●인터넷 카페 등서 서명운동 진행 문화계·영화계·미술계·종교계·학계 등 각계 인사 102명은 22일 “정치개혁과 단일화가 곧 민주주의이자 시대정신”이라며 문·안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소설가 황석영·정도상씨와 화가 임옥상씨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정권을 바꾸는 일로 우리는 두 후보를 모두 지지한다.”면서 “두 후보가 내놓는 정치개혁의 출발은 마땅히 단일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 후보에게는 ‘민주당의 개혁’을, 안 후보에게는 ‘정치개혁의 구체적 청사진 제시’를 요구하면서 “후보 단일화 실패로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발전 수준을 심각하게 후퇴시켰던 1987년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성명에는 소설가 황지우·김연수씨, 영화감독 정지영·송해성씨, 영화배우 박중훈·안석환씨, 명진 스님, 서일웅 목사, 홍창진 신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앞으로 인터넷 카페를 통한 서명운동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소설가 이외수씨와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번 명단에는 빠졌지만 성명서 취지에는 동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원로 모임인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는 이르면 이번 주 내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원탁회의는 지난 18일 비공개 회의를 연 뒤 각계 의견을 수렴 중에 있다. 원탁회의 멤버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세웅 신부 등은 두 후보와 모두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탁회의’ 이르면 주내 입장 표명 이와 함께 ‘내가 꿈꾸는 나라’ 등 시민단체는 이날 ‘우리는 유권자다’라는 주제로 시민콘서트를 열면서 야권 단일화를 위한 분위기 만들기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행사에는 조국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최종길교수 죽음은 중정 고문 때문”

    “최종길교수 죽음은 중정 고문 때문”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1973년 10월 19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최종길(사진 오른쪽) 서울대 법학과 교수. 그의 죽음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자살’로 조작된지 1년이 지난 74년 10월 9일 미 워싱턴포스트에는 ‘한국의 우울한 1주년’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최 교수가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고, 이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대한 전기가 됐다. 칼럼이 실린 뒤 함세웅 신부는 국내에서도 최 교수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급기야 그해 12월 10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명동성당에서 “최 교수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고문치사됐다. 인권유린의 수부(首府)인 중앙정보부 등은 해체되어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유신체제로 얼어붙어 있던 한국에 ‘의문사 1호’ 최 교수의 억울한 죽음을 알림으로써 민주화의 불씨를 댕긴 이 칼럼을 쓴 사람은 하버드대 법대 교수였던 제롬 코언이었다. 그는 앞서 1973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때에는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 활동을 펼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19일 최 교수 사망 39주기를 맞아 현재 뉴욕대 법학과에 재직 중인 한국 민주화의 숨은 공로자 코언(사진 왼쪽·82)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최종길 교수를 죽인 것은 중앙정보부의 고문이었습니다. 한국사회가 늦게나마 과거사 바로잡기에 나선 것은 기쁜 일이지만 사과의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입니다.” ●“최교수 죽음 ‘유신살인’ 중 하나” 코언 교수는 1970년 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초빙된 최 교수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최 교수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최 교수는 죽기 전 유신헌법에 반대시위를 벌이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되자 이에 항의할 것을 제안 했다가 중앙정보부에 간첩 혐의로 연행됐다. 최 교수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뒤 당시 김치열 중앙정보부 차장은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7층에서 투신했다.”고 밝혔다. 2002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중정의 고문과 협박 등 각종 불법수사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는 강요된 간첩 자백을 하지 않았다.”며 그를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했다. 코언 교수는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지적이며 사려 깊고 유머와 겸손함을 함께 갖췄던 최 교수의 모습이 내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 교수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해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면서 “박정희 정권에서 자행된 수많은 살인 중 하나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동아시아 국가의 법과 인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코언 교수는 한국과 중국 등을 오가며 활발한 연구 활동과 인권 운동을 벌였다. 그는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을 자주 찾았던 학자로서 박정희 정권의 잔혹성과 그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면서 “최 교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 정부를 세우기 위해 투쟁했던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을 법학자로 살아온 그는 올해 40년을 맞은 유신헌법에 대해 “장점도 많았지만 선포 즉시 독재정권에 의해 오용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74년 처음으로 시행된 긴급조치를 예로 들며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벌어진 독재는 북한에서 벌어지던 독재와 다를 바 없었다.”면서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끔찍한 수준의 부패도 만연했다.”고 했다. 코언 교수는 1972년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 학자였다. ●“독재는 좌·우파 모두 인정 못해” 코언 교수는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은 25년간 민주적 발전을 이어왔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사례는 ‘유교와 불교가 기반인 동아시아에서는 민주적인 정체(政體)를 세울 수 없다’고 주장했던 독재자들의 논리를 반박한 훌륭한 증거”라면서 “이러한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서만 민주주의 근간인 법과 시민권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국가는 구성원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사회가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선 데 대해 반색을 표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과거사 사과에 대해 “내가 박 후보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 국민들이 대선 과정에서 박 후보의 진정성을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되 미래를 바라보며 민주주의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그는 “그 길이 최 교수처럼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독재는 좌파의 것도, 우파의 것도 인정할 수 없다.” 그는 1974년에 쓴 칼럼을 이렇게 끝맺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文측 “安의 단일화 생각, 갈피를 못 잡겠다”

    文측 “安의 단일화 생각, 갈피를 못 잡겠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티격태격하자 범야권에서 속도조절론과 단일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16일에도 문 후보 측은 단일화를 압박하고, 안 후보 측은 이에 반박하며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쳤다. 단일화 신경전에 국민들은 짜증을 내는 듯하다. 안 후보 독자 출마 가능성도 거론되며 단일화론의 피로감은 깊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한 듯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율은 오르고, 문·안 후보의 지지율은 정체되거나 빠지고 있다. 문 후보 선대위 진성준 대변인은 16일 “후보 단일화에 대한 안 후보 측 생각이 뭔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전날 안 후보 측 조용경 국민소통자문단장의 “꼭 단일화를 해야 하느냐.”는 말이나 “단일화가 아니라 더 정확한 표현은 연대이거나 연합”이라는 김성식 공동선대본부장의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문 후보도 전날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단일화를 못할 이유가 없고 따로 가는 것이 국민이 볼 때 더 이상하다.”며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론으로 재압박했다. 문 후보 측의 단일화 압박은 안 후보가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계속 강세를 보이는 데 따른 초조감을 드러낸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이날 문 후보 측의 정치혁신위 공동구성 및 경제민주화 2자 회동 수용 압박에 대해 “여야 협의를 거쳐 합의할 수 있는 법안과 정책들은 대선 이전에 통과시키는 진전이 있다면 환영할 일”이라며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키는 약속을 하는 범주의 일은 3자가 만나는 것이 정확하고 분명하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는 공동정치혁신위 구성 제안에 대해서도 “3자가 합의해 국민께 말씀드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단일화의 연장선에서 말하는 것이라면 이미 충분히 답변했다.”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김성식 본부장은 “정치하는 분들이 (단일화에 대해) 너무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감동을 주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 측의 단일화 압박에 대한 반발에 문 후보 측 진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너무 얘기하면 압박한다고 그러니까 자제해야 할 것 같다.”면서 “계속 거부하면 정치혁신위를 독자적으로 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안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김효석 전 의원은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현재 단일화 논의는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속도조절론을 제기하며 “(문·안 두 후보의) 단일화 논의는 통합 논의로 전환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야권 제3지대에서는 단일화 훈수가 본격화되고 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등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 소속 범야권 재야 원로들은 문·안 후보 간 단일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다음 주초 회의를 열어 단일화 방식 등을 논의한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하루만에 ‘우향우’… 12월 진보 교육감땐 또 뒤집기?

    하루만에 ‘우향우’… 12월 진보 교육감땐 또 뒤집기?

    이대영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의 속전속결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곽노현 전 교육감 시절, 부교육감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해 온 그의 ‘우향우 행보’에 보수진영은 “학교현장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12월 19일 서울 교육감 재선거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당선될 경우, 서울의 초중등 교육은 또다시 한바탕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진보와 보수진영간 갈등으로 학생, 학부모만 우왕좌왕할 형국이다. 이 권한대행은 27일 곽 교육감 확정판결 직후만 하더라도 서울교육정책 궤도수정에 대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28일은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12월 19일 재선거 이전까지 혼란스러운 학교 현장을 ‘정상화’한다는 기조로 대행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교사 출신인 그는 교과부 대변인을 맡고 있던 지난해 10월 임승빈 전 부교육감 후임으로 3개월간 교육감 권한대행을 맡은 바 있다. 당시에도 학생인권조례의 재의를 시의회에 요구하는 등 친정부적인 정책을 펼쳤다. 학생인권 조례 폐기에 이어 교육청 조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 권한대행은 곽 전 교육감이 대법원 판결 이전에 교과부에 승인 요청한 조직개선안에 대해 “추진 과정에서 반대가 많았던 부분들이 있는 만큼 추진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권한대행의 학교 정상화 조치에 대한 평가는 12월 19일 재선거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 권한대행은 보수진영의 교육감 후보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진보진영 후보가 서울 교육수장이 될 경우, 또다시 교육정책은 180도 뒤바뀔 수 있다. 한편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돼 교육감직을 상실한 곽 전 교육감은 이날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곽 전 교육감은 구치소로 향하기 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은 공교육 혁신의 물결을 거스르는 무의미하고 측은한 역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법재판소가 (사후매수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이 사태를 극적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는 함세웅 신부, 청와스님, 김상곤 경기교육감,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등과 지지자 50여명이 함께했다. 윤샘이나·박성국기자 sam@seoul.co.kr
  • 안철수 이번엔 홍성서 소통행보… 민주 단일화·신당 창당 ‘說說說’

    안철수 이번엔 홍성서 소통행보… 민주 단일화·신당 창당 ‘說說說’

    안철수(얼굴)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결심 임박설이 범상치 않다. 지난해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세력을 키워 온 안풍(安風)은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고 있다. ●친환경 마을 방문… 주민과 농업현안 간담회 안 원장은 31일 현재 출마 결심을 밝히지 않은 채 국민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출마 임박설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난 30일에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 친환경 마을을 방문해 주민 간담회를 갖고 생태 환경 관련 운동가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안 원장은 이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면서 “식량 자급률 하락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고 유민영 대변인이 전했다. 이어 경기 수원의 서울대 융기대학원에서 인천 용현여중 학생 6명을 만나 목표 달성보다 목표 설정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추석 전후 출마선언 할듯… 정치권 기정사실화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추석 전후 출마 선언을 한 뒤 10월쯤 여론조사 혹은 협상을 통해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단일화는 법정 대선 후보 등록일인 11월 25~26일 이전에 마쳐야 한다. 민주당은 안 원장이 단일화 전후에 입당하길 원한다. 제3신당 창당론도 나온다. 안 원장을 중심으로 민주당 내 민평련 소속 의원들과 새누리당 내 쇄신파 등 중도적 인물들이 신당을 창당한다는 것이다. 이후 민주당을 흡수 통합하게 되면 152억원의 국고보조금까지 챙길 수 있다. ●전국 3500개 읍·면·동까지 대선조직 구축설도 안 원장 출마를 앞두고 전직 의원을 중심으로 전국 3500개 읍·면·동까지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안철수 펀드’ 조성을 통한 선거 자금 모금 과정에서 시민 후보로 추대한다는 것이다. 가설 정당론도 있지만 구태로 인식되고 있다. 안 원장 출마 선언이 인터넷을 통한 영상 공개 등 과거에 없었던 파격적인 형식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안 원장은 조만간 국민과의 소통 행보에 대한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질 것으로 알려져 출마 선언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유 대변인은 ‘대선 조직 구축설’에 대해 “조직은 없다.”고 일축한다. 또한 “9월 전후 대선 출마 선언설이나 신당 창당설도 추측일 뿐”이라며 “지금도 결정된 것이 없다. 현 단계에서 예측하기 어렵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진보진영 원로 함세웅 신부는 이날 “안 원장의 대선 출마는 시대적 요청이기 때문에 의무”라며 출마를 촉구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민주화 사제’ 함세웅 신부의 마지막 미사

    ‘민주화 사제’ 함세웅 신부의 마지막 미사

    민주·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창립을 주도한 함세웅(70) 신부가 26일 은퇴했다. 함 신부는 오전 11시 서울 신당6동 청구성당에서 44년의 사제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다. 700명 이상의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함 신부는 “남북 겨레를 기억하며 제주 강정마을을 비롯해 한반도의 정의·평화를 실현해 주소서.”라며 미사를 시작했다. 마지막 강론은 마태오복음 11장 28절이었다. 그는 “사제생활 동안 ‘예수님은 누구인가’란 본질적 질문에 답을 구하려 했다.”면서 “예수님은 33세 때 타살당한 고통받는 존재였고 청년예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내 삶의 주제어이자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잘못된 사회·정치제도는 교회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1970년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을 이끌었다. 1976년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투옥됐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인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문정현 신부와 함께 또 구속됐었다. 함 신부는 “서울대교구 사제 인사발령에 내 이름이 제일 위에 올랐다.”면서 “이제 나는 노땅”이라며 미사를 마무리했다. 교회법상 신부의 은퇴연령은 만 75세지만 함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이 물러나면 퇴임하겠다는 약속대로 지난해 4월 정 추기경이 은퇴하자 일찍 미사전에서 내려왔다. 함 신부는 은퇴 후 원로 사목자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현재 맡고 있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재규장군명예회복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등은 계속할 전망이다. 함 신부는 정치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에 대해 “예수님 정신으로 한결같이 선후배 동지들과 함께 길을 걸어갈 뿐이지 정치적으로 나설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野 “정보협정 3적, 총리·외교·국방장관 파면하라”

    민주통합당은 5일 국회에서 한·일 정보보호협정 완전 폐기를 위한 원탁회의를 열어 이날 밀실 처리 논란으로 사퇴한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뿐 아니라 김황식 국무총리,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관진 국방장관을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3적(賊)으로 규정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와 함께 이들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와 독립지사 후손 국회의원이 주축이 된 원탁회의는 “한·일 정보협정은 광복 이후 일본과 맺는 최초의 군사 관계로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키고,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국민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추진하려다 이명박 정부가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한·일 군수지원협정은 차후에 하고 정보보호협정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신냉전 체제를 가져올 수 있는 외교적 참사”라고 비판했다.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친손자인 이종걸 의원은 “김태효 기획관이 엄청난 파문만 일으키고 사퇴했다.”며 “대한민국 안보라는 이름으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허용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이 대통령의 안보 불감증이 재확인됐다.”고 말했다. 원탁회의에는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장, 김원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이우재 매헌윤봉길 월진회장, 민성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씨줄날줄] 소도(蘇塗)/곽태헌 논설위원

    소도(蘇塗)는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에 마한·진한·변한이 있던 삼한(三韓)시대의 특수한 신성지역, 곧 성지이다. 이곳에 제단을 만들고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통전(通典) 등에 소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에 가장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한전에는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는 내용이 있다. 소도는 신성한 곳이어서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그리스·로마의 아실리(Asillie)나 아실럼(Asylum)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소도란 ‘솟대’, ‘솔대’, ‘소줏대’ 등에서 온 말이다. 소도는 고간(高竿)의 몽골어 발음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암울하던 1970~1980년대 서울 명동성당은 사실상의 소도로, 민주화의 성지로 통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부에 맞서 종교인, 정치인, 지식인, 학생 등이 민주화투쟁을 벌이던 때 경찰은 명동성당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1975년 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및 국민투표 거부운동’도 명동성당에서 이뤄졌고, 1976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세웅·김승훈 신부 등이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한 곳도 명당성당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1987년의 6월 항쟁도 명당성당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민주화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7년 한해에만 명동성당에서 127차례 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소도로서의 명동성당은 암울했던 시절 민주화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소도라고 해서 좋은 점,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삼한시대 죄인이 소도로 도망쳐 들어오면 그를 돌려보내거나 잡아갈 수 없어 도둑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실세 이석기(비례대표 2번) 당선자가 지난주 자신의 당적을 서울시 서초구에서 경기도 성남시로 옮겼다. 구당권파가 장악한 경기도는 이석기 당선자에게는 소도와 다를 게 없는 곳이다. 그래서 경기도로 당적을 옮긴 것을 놓고 신당권파가 추진하는 출당 등의 징계조치를 막기 위한 ‘꼼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법이나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는 걸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不通의 진보 솎아내고 안철수 더하고… 범야권 판 다시 짜나

    19대 총선 비례대표 부정 선거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통합진보당이 12월 대선 체제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11 총선에서 야권연대의 한 축을 이룬 민주통합당 내부에서조차 진보당과의 대선 연대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는 기류다. 진보 진영의 ‘단일대오’ 형성이 절실하지만 국민의 뜻과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 있는 진보당과 손을 잡는 게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진보당 사태를 관망해 온 재야 원로들의 입에서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지지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진보 세력 재구성론’이 본격 등장했다. 재야 원로 모임인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는 9일 성명을 내고 “경선 과정의 문제점에 더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의 폐습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누가 얼마나 억울한가를 따지기 전에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고 진보당에 촉구했다. 범야권 원로들은 진보당 사태에 대한 인식을 ‘참담’하다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원탁회의는 “(통합진보당이) 당내 분란을 조속히 수습하고 재창당 수준으로 갱신함으로써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줄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며 “국민이 하나를 내려놓는 반성을 요구할 때 진보당 스스로 둘, 셋을 내던지는 희생을 감내하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탁회의가 지난해 7월 출범 후 총선 야권연대 구도를 압박하고 정치적 고비마다 타개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날 원로들이 권고한 ‘재창당 수준의 갱신’은 진보세력 재구성론의 전제 조건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국민적 비난을 받고 있는 현 진보당 당권파가 연대 파트너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진보당 스스로 재창당 수준의 강도 높은 쇄신책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헤쳐모여’식의 세력 재편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또 향후 야권연대 방향에 대해 “12월 대선 연대는 아직 정당 구조에 포섭되지 않은 안철수 지지세력도 끌어안는 연대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선 정국에서 진보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중론인 만큼 안철수 세력이 범야권에는 새로운 대안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기저에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의 속앓이도 깊다. 진보당이 총선 한 달 만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난 가운데 민주당도 동반 하락하는 타격을 입고 있다. 리얼미터의 지난 8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45.9%로 꾸준히 상승하는 반면 민주당은 30.8%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마디로 착잡하고 난감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당선자는 “진보당과 연대를 하다가는 중도층의 지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야권연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거나 수위를 낮추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의 본격적인 재구성 과정에서 진보당 사태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2월 대선 체제 정비를 위한 진보세력 재구성 화두를 던진 원탁회의는 지난해 7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 등 친야 인사 21명으로 구성된 단체다. 2012년 야권의 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 교체를 존립 목표로 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안철수와 손잡고 진보 새판 짜라”

    통합진보당의 내분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범야권 원로들이 9일 ‘진보개혁세력의 재구성’을 촉구하고 나서 야권의 대선 구도에 변형을 예고했다. 이들은 특별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지지세력과의 연대를 제안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세웅 신부 등 진보 성향 재야원로들이 주축이 된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4·11 총선을 전후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보여 준 행태를 비판하면서 이같이 촉구했다. 원탁회의는 특히 “진보당은 더욱 참담하다. 당내 경선 과정의 문제점도 그렇지만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폐습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재창당 수준의 갱신’을 주문했다. 이 모임을 통해 원탁회의는 대선을 앞두고 정당 내부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데에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져 영향력 행사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진보당의 분당까지 내다본 야권 대통합 설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인사도 “야권연대에 대해서는 총선을 거치면서 이미 새로운 형태의 연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다.”면서 민주당의 전략 수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원탁회의는 “12월 대선에서의 연대는 기존 정당들뿐 아니라 아직 정당구조에 포섭되지 않은 이른바 안철수 지지세력까지 끌어안는 연대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10일 2차 전국운영위원회를 여는 통합진보당은 또 한 차례 격렬한 충돌이 예상된다. 비당권파는 현 지도부를 대신할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의 상정을 준비 중이며 당권파는 이에 맞서 ‘비례대표 후보자 총사퇴 당원총투표’와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폐기안’ 등의 의결을 추진하고 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이날도 기자회견을 통해 상대 측의 주장을 공개 반박하는 등 대결 양상을 보였다. 비당권파로서 비례대표 경선 진상조사위원장인 조준호 공동대표는 “경선이 총체적 관리부실 부정선거라는 입장에는 추호의 변함이 없다. 우리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선동 의원 등 당권파도 맞불 회견을 열고 “조사위의 조사 결과는 폐기돼야 할 허위·왜곡 자료”라고 맞받았다. 한편 4·11 총선에 도전장을 던진 통합진보당 일부 후보들이 여론조사로 실시된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규전화를 사전에 대량으로 설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당 인천지역 간부 A씨는 “통합진보당 후보들은 일반 및 단기 전화 500∼1000대씩을 설치해 후보단일화를 위한 전화 여론조사에 대비했다.”면서 중앙선관위에 이런 내용의 조사의뢰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지운·강주리기자 jj@seoul.co.kr
  •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화 동지 곁에 잠들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화 동지 곁에 잠들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일 유족과 시민들의 애도 속에서 영면했다. 김 고문의 영결미사와 영결식은 오전 8시 30분쯤 서울 중구 명동성당 본당에서 함세웅 신부의 집전으로 엄수됐다. 유족과 각계각층 인사, 시민 등 1000여명이 김 고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앞서 오전 7시 빈소가 차려진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유족과 장례위원들의 마지막 조문과 발인 예식이 거행됐다. 8시쯤 김 고문의 관이 검은색 리무진에 실려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장례버스 정면에는 ‘근조 민주주의자 김근태’, 옆면에는 ‘참여하는 사람만이 권력을 바꿀 수 있고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 고문이 지난해 10월 블로그에 올린 마지막 글의 내용이다. ●영결식 후 전태일 열사 동상 앞에서 노제 김 고문을 실은 차량은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5분가량 정차했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이곳은 김 고문이 민주화운동 당시 정권의 탄압을 피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함 신부는 영결미사에서 “김근태 형제는 불치의 병마와 투쟁하면서도 블로그에서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며 참여하라고 당부했다.”면서 “이제 99%의 참여로 평화, 민주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을 하며 이 미사를 봉헌한다.”고 말했다. 1시간쯤 진행된 영결미사 막바지에 김 고문이 애창하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다같이 합창했고, 일부 참석자들은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이어 장영달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고인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지선 스님,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이 조사를 낭독했다. ●조영래 변호사·문익환 목사 등 잠든 곳 영결식이 끝난 뒤 장례위원회와 조문객들은 청계천 전태일다리 옆 전태일 열사 동상 앞으로 자리를 옮겨 노제를 치렀다. 추모의 글 낭독과 묵념이 이뤄지는 가운데 김 고문의 부인 인재근씨는 딸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오전 11시 30분쯤 운구행렬이 김 고문이 생전에 사용했던 도봉구 쌍문동 사무실에 도착하자 지역주민 500여명이 맞이했다. 이어 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거행된 하관례 및 헌화를 끝으로 김 고문은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헤쳐 왔던 삶을 뒤로하고 친구인 조영래 변호사, 문익환 목사 등 민주열사 동지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민주화 대부’ 김근태 1947~2011] 정치권·시민사회 애도 물결

    민주화운동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비보가 날아든 30일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일제히 애도의 물결을 이뤘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부터 유신반대 운동, 민주화 운동에 온몸으로 고문을 이겨내고 민주정치를 일궈낸 그의 불꽃같은 인생의 마침표에 여야 모두 숙연히 애도했다. 시민들도 김 고문의 인생 역정을 회고하며 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이른 시간부터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김 고문과는 당시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면서 울먹였다. 권양숙 여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함께 빈소를 찾았다. 검정색 코트에 회색 머플러 차림의 권 여사는 “정말 중요한 시기에 하실 일이 많은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도 조의를 표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확립에 한 획을 그은 분의 안타까운 소식에 조의를 표한다.”고 애도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이렇게 보내기에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다.”라고 추모했다. 김 고문의 관 위에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직접 ‘민주주의자 김근태 구(軀)’라고 쓴 천이 덮일 예정이다. 빈소 앞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희호·권양숙 여사,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등 정치권 인사의 조화가 빽빽이 들어찼다. 이날 김 고문의 유족들은 오전 11시 10분쯤 빈소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를 거절했으나 다시 입장을 선회해 조화를 고인의 영정 왼쪽에 배치했다. 장례 의전담당인 우원식 전 민주당 의원은 “김 고문은 생전에 이 정부를 민주 독재정부로 규정했다. 조화를 다시 가져가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나 “유족과 상의 끝에 이 대통령의 조화를 받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시민들은 김 고문의 별세에 대한 슬픔과 함께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한 김 고문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72)씨에 대한 비난과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김 고문의 장례는 5일간의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게 됐으며 김상근 목사와 지선스님, 함세웅 신부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장례위원회는 장지를 마석의 모란공원으로 정하고 1월 2일 저녁 추모 문화제를 연 뒤 3일 오전 영결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이재연·윤샘이나·김진아기자 sam@seoul.co.kr
  • 진보성향 사회원로 20명 “조중동 취재·출연 등 거부”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대표 등 진보성향 사회원로 20명이 15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계열의 신문과 방송(종합편성채널)에 대해 취재·인터뷰·기고·출연을 거부한다.”고 선언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이들은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더 이상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 유린, 역사 왜곡이 저질러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이라면서 “특정 매체에 대한 거부 선언이 정상적인 민주사회라면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지만 그러한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일 개국한 뒤 수구 기득권 세력들만을 위한 편파 보도를 하고 대부분 프로그램이 함량 미달이었다.”고 성토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정희 기념사업 논란 확산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과 동상이 잇따라 완공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한층 확산되고 있다. 근대화의 공적을 들어 찬성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친일 행적 및 독재를 거론하며 역사왜곡이라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박정희기념사업회는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박정희기념도서관’이 완공됐다고 밝혔다. 사업회 측은 “현재 건물은 완공된 상태”라면서 “준공 절차와 전시물 설치 등 작업을 거쳐 12월에 개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념도서관은 3층에 연면적 5290㎡(약 1600평) 규모다. ●기념사업회측 “산업화 공로 커” 경북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는 이날 박근혜(한나라) 의원 등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박동진 구미시 새마을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다시금 일깨워 더 큰 번영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됐다.”고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해 역사 관련 단체들은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학술단체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422개 시민사회단체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발족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친일·독재 인사에 대한 기념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회견에는 함세웅 전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사회 원로들도 대거 참석했다. ●역사·시민단체 “역사왜곡” 반발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친일·독재 전력이 있는 인사들의 기념사업을 제지하는 한편 관련 조형물 철거운동도 펴나갈 계획이다. 이 전 위원장은 “최근 역사교과서 개정과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의 재평가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진행되는 일”이라면서 “친일·독재 전력이 있는 인사의 기념사업은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정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떤 인물이든 평가는 엇갈리게 마련”이라면서 “산업화라는 공로도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진했던 사업인 만큼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구미시 관계자도 “기념사업에 대한 주민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지역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외부 단체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구미 김상화·서울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孫·鄭 2R… 이번엔 한진重 충돌

    孫·鄭 2R… 이번엔 한진重 충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안방 리그’가 달아오르고 있다. 1차전 주자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이다. 최근 ‘종북주의’ 논쟁에 이어 이번에는 한진중공업 문제로 충돌했다. 정 최고위원은 21일 “한진중공업 고공 투쟁 200일째인 오는 24일 시민사회, 학계, 4대 종단 대표자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현지에서 여는 시국회의에 참여하자.”면서 당 소속 의원실에 제안서를 돌렸다. 제안서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배우 문성근씨, 함세웅 신부 등 각계 인사들이 서명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불참하기로 했다. 수권 정당의 위상을 세우려면 절제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손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강하지만 절제된 투쟁, 선명하지만 균형감을 잃지 않는 투쟁을 해야 한다.”면서 당내 비주류가 주도하는 선명성 논쟁에 선을 그었다. 비교 우위만 놓고 보면 손 대표는 본선 경쟁력, 정 최고위원은 이슈 주도력이 강하다. 손 대표가 균형을 강조하는 것은 중도 계층을 장악하려는 차원이다. 중원 전략은 본선 경쟁력과 직결된다. 한나라당의 17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본선 경쟁력(이명박 후보)이 당내 조직세(박근혜 후보)를 앞섰던 학습 효과도 있다. 손 대표가 최근 측근 의원과 학자 등 ‘5인 모임’을 구성한 것도 안정적인 대선 가도를 위한 복안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여기저기 조직이 흩어져 있는 데다 일정이나 메시지 관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면서 모임 결성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정체성 논란을 잠재우려면 대선주자가 아닌 당 대표의 위상이 먼저라는 견해도 있다. 내년 대선의 전략지가 될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한 시국회의에 가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정 최고위원은 이미 대선 후보를 지냈다. 인지도는 높은 반면 지지율이 낮다. 복지와 노동 문제에 주력하며 선도 높은 행보를 하는 것은 나름의 승부수다. 정체성을 고리로 ‘진보 진영 대표 선수’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지지층의 결집력은 높지만 확장력은 장담할 수 없다. 중도 배제 전략에 대한 반론이다.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민주주의에 바친 청춘” ‘부미방’ 김은숙씨 위한 음악회

    “은숙이는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을 잃었지만, 그 청춘은 아름다웠습니다.” 5일 오후 7시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1층 로비는 작은 공연장으로 변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주동자로 이 병원에 입원한 김은숙(52)씨를 위한 음악회가 열린 것. 김씨는 지난해 8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김씨는 미문화원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감형돼 5년 8개월 만에 출소했다. 거동이 쉽지 않은 김씨가 음악회가 끝날 무렵에야 휠체어를 타고 로비로 내려오자 행사에 참석한 함세웅 신부, 고은 시인 등 시민사회계 인사 150여명은 긴 박수를 보냈다. 소설가 유시춘씨는 “(김씨는) 광주항쟁에 대해 아무 말을 못 할 때 처음으로 ‘불의가 여기 있다’고 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족한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이 모여 격려해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정추기경 4대강 발언 책임 서울대교구장직 사퇴 촉구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개발 관련 발언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천주교 젊은 사제들에 이어 원로 사제들까지 가세해 정 추기경이 겸임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함세웅, 김병상 몬시뇰, 문정현 신부 등 천주교 원로 사제 25명은 13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 추기경의 말씀에 부끄럽고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구체적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교회 분열을 일으킨 것은 분명히 책임져야 할 문제인 만큼 추기경은 용퇴의 결단으로 그 진정을 보여 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생명과 평화라는 보편 가치에 위배되는 발언이며 주교회의 결정을 왜곡했다.”고 추기경의 발언을 반박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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