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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19일 ‘연평해전 10년’을 앞두고 당시 해전에 참전했던 북한 해병의 증언을 소개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가 2002년 6월 29일 해전 직후 취재했던 내용을 옮긴 것이다. 평양음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장 대표는 2004년 탈북할 때까지 5년 넘게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로 일했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 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호 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 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뢴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파편 흔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 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 조끼입니다. 방탄 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 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 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 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 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 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 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 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 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 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루요?” “전번 1차 때 충돌 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 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 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분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조 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 조타란 기본 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 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 조타 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 조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러나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보게” 국장의 질문에 군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 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 지도원이 정치 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 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 우세나 함선 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 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 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 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 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 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 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보위 지도원은 국기 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 훈장 2~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컬러 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을 담은 연극 ‘세 파편’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南전투함 화력 세 시간 끌면 밀려…방탄조끼 부럽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참전한 북한 해군 수병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공개됐다.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는 19일 제2연평해전 10주기를 앞두고 당시 북한의 대남선전기관인 통일전선부 소속이던 탈북자 장진성(41) 뉴포커스 대표가 교전 직후 이들을 취재했던 내용을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북한 해군 병사들이 당시 우리 해군 전력을 두려워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매체에 따르면 장 대표는 자신을 비롯한 3명의 요원이 부상병들을 만난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는 서약을 한 뒤 평양시 조선인민군 11호병원에서 참전 수병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몸에 파편 230개를 맞았다는 북한 수병에게 교전 소감을 묻자 “전투준비를 외치면 우리는 갑판 위로 올라가지만 남한 해군들은 갑판 밑으로 사라진다.”며 “그런 상황에서 파열탄이 터지면 전투능력이 상실된다.”고 증언했다. 자신을 상사라고 소개한 수병은 기자들에게 “남조선군의 방탄조끼가 가장 부럽다.”며 “목화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부하들의 피해가 컸다.”고 증언했다. 북한 수병들은 남한 전투함에 대한 열세를 시인하기도 했다. 한 수병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손실이 더 컸다.”면서도 “작전이 길어지면 화력이나 함선에서 밀리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빠르게 귀환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19일 ‘연평해전 10년’을 앞두고 당시 해전에 참전했던 북한 해병의 증언을 소개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가 2002년 6월 29일 해전 직후 취재했던 내용을 옮긴 것이다. 평양음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장 대표는 2004년 탈북할 때까지 5년 넘게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로 일했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 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호 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 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뢴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파편 흔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 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 조끼입니다. 방탄 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 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 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 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 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 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 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 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 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 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루요?” “전번 1차 때 충돌 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 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 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분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조 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 조타란 기본 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 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 조타 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 조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러나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보게” 국장의 질문에 군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 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 지도원이 정치 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 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 우세나 함선 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 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 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 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 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 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 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보위 지도원은 국기 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 훈장 2~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컬러 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을 담은 연극 ‘세 파편’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한·일 군사협정 국민 공감대 형성이 먼저다

    정부가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양국이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논의 중이라는 것이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핵 실험 정보 등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또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유사시 인도적 재난, 구조활동 등 물자 및 장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두 나라는 지난해 1월 서울에서 열렸던 국방장관 회담 당시부터 협정 체결 문제를 논의해 왔다고 한다. 그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을 명분으로 자위대 비행기나 함선 파견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북한 정세가 매우 유동적인 상황에 비춰 보면 양국 간 정보 교류 같은 것이 기술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 일본은 최첨단 레이더 시스템을 갖춘 이지스함 6대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0여대를 보유해 대북 정찰 능력 등에서 강점이 있다. 그러나 과연 현 시점에서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서두르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 일본은 최근 들어 과거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에 대한 도발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이 일본과의 군사협정에 선뜻 찬성할까. 한·일 간의 군사협정은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숙고할 여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등 해양세력과 중국, 러시아 등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기우는 것은 국익을 해칠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가 일본과도 군사협정을 맺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한·미·일 세 나라를 공동의 위협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한·일 군사협정은 국민 정서 면에서, 그리고 전략 면에서 좀 더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 韓·中·日 ‘대륙붕 논쟁’ 재점화

    韓·中·日 ‘대륙붕 논쟁’ 재점화

    유엔이 중국과 일본이 대륙붕 마찰을 빚고 있는 오키노토리시마를 암초가 아닌 ‘섬’으로 인정함에 따라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간에 해저 권익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유엔 대륙붕 한계위원회는 지난 27일 주변 4개 해역에 대한 일본의 대륙붕 확장 요구에 대해 일본 국토 면적의 약 82%에 해당하는 31만㎢를 인정했다. 특히 오키노토리시마를 섬으로 보고 북방 해역 17만㎢를 일본의 대륙붕으로 인정했다. 오키노토리시마가 ‘암초’로 인정됐을 경우 일본은 12해리(약 22.2㎞) 이내의 영해 설정만이 가능하다. 12해리 밖의 해역은 공해로서 ‘인류 공통의 자원’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라도 자원 탐사 활동 및 개발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유엔이 일본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대륙붕으로 인정받은 해역에 대해서는 배타적경제수역(EEZ:해안으로부터 200해리) 밖이라 해도 해저자원의 개발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은 유엔으로부터 인정받은 대륙붕에 대한 해저 조사와 개발을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주변 해역에는 상당한 양의 메탄 하이드레이트와 희토류를 포함하고 있는 광물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일본은 2008년 11월 오키노토리시마 해역을 비롯한 주변 7개 해역의 약 74만㎢를 대륙붕으로 인정해 달라고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신청했다. 하지만 중국은 오키노토리시마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경제활동도 이뤄지지 않는 바위(암초)로, 대륙붕으로 인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영토인 ‘섬’이 아닌 산호초이기 때문에 역내 개발권이 부여되는 대륙붕이나 EEZ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대륙붕 논쟁에는 군사적인 문제도 관련돼 있다. 오키노토리시마가 오키나와와 미국령 괌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어 일본의 권익이 확보될 경우 중국은 이 해역에서 자국 함선이 활동하는 데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한국과 이 지역에 대한 개발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펼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내다보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제작비 2260억원 ‘배틀쉽’ 대해부

    제작비 2260억원 ‘배틀쉽’ 대해부

    2억 달러(약 2260억원)가 투입된 공상과학(SF) 액션영화 ‘배틀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개봉한 블록버스터 중 가장 비싼 영화다. 유럽과 일본보다 하루 빠른 11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서 개봉한다. 미국에서는 전몰장병기념일(5월 마지막 월요일) 연휴보다 한 주 앞선 새달 18일 개봉한다. 제작사는 전몰장병기념일 연휴에만 1억 달러 이상 벌어들인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2007) ‘인디애나 존스: 크리스털 해골 왕국’(2008)의 뒤를 잇기를 소망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다국적 해군 합동훈련 ‘림팩’ 첫날, 우주에서 정체불명 물체가 태평양에 떨어진다. 수색팀 리더인 미 해군의 하퍼 대위가 괴물체에 손을 댄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배틀쉽’의 장·단점을 짚어 봤다. [UP] 실제 같고 실감 나고 “바깥세상 어딘가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 지구에서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혹은 지구의 존재를 알려 주려고 다른 행성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그렇지만 끔찍한 생각이다. 다른 행성의 존재가 지구에 왔을 때 우호적일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호를 보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다큐멘터리 ‘스티븐 호킹의 우주’에서 호킹 박사가 한 얘기다. ‘배틀쉽’의 첫 번째 미덕은 현란한 특수효과와 물량 공세로만 승부를 보려는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최소한의 개연성은 깔아 뒀다는 점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인류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외계 행성에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멀지 않아 치명적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또 다른 장점은 완구회사 해즈브로의 동명 전투 보드게임을 모티브로 삼은 데서 비롯한다. 해즈브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산실이다. ‘트랜스포머’ ‘지.아이.조’ 역시 이 회사의 피규어(관절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사람·로봇·동물 모양 장난감)를 영화화한 것. 1930년대부터 인기를 끈 보드게임 ‘배틀쉽’은 상대 정체를 파악하고, 숨겨 둔 배를 찾아내 포격하는 쪽이 승리한다. “고요하게 시작해서 서서히 긴장이 높아지다가 폭력적인 전투가 일어나는 구조가 영화의 좋은 모티브가 될 것”이라는 게 피터 버그 감독의 설명이다. ‘인디펜던스데이’ ‘우주전쟁’ ‘월드인베이전’ 등 외계 침공 소재 영화에 비해 ‘배틀쉽’이 전투신의 리얼리티를 확보한 것도 이 지점이다. 미래지향적 외계 우주선에 인류가 전투기와 탱크 따위로 맞서는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연출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할리우드에서도 제작비 문제로 보기 힘들어진 ‘해전’(海戰)의 전략적·시각적 쾌감을 오롯이 살려냈다. 물론 외계 문명과의 정면충돌이 아니라 선발대 격으로 온 함선과의 교전이라는 설정도 현실성이 있는 척(?)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DOWN] 뻔한 얘기 황당 결론 ‘배틀쉽’은 한마디로 해상판 ‘트랜스포머’다. 동시에 2억 달러짜리 팝콘 무비다. 하지만 거액을 들인 제작비에 비해 허술한 구성은 보는 이를 허탈하게 만든다. 아무리 때리고 부수는 오락 영화라고 해도 기본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은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배틀쉽’은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게다가 배경만 바다로 바뀌었을 뿐,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에서 반복된 해묵은 소재 아닌가. 영화는 다소 올드한 이야기를 볼거리로 메우려는 듯 쉬지 않고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 동명의 전투 보드 게임을 원작으로 한 만큼 오락하는 듯한 화면 구성이 이어진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CG)의 효과가 다소 거칠고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공허한 금속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피로감은 쌓여만 간다. 중반까지 그럭저럭 흘러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가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튄다. 외계인의 파상 공세에 모든 배를 잃고 위기에 닥치자, 마지막 해결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조인식이 열린 뒤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된 미주리호를 바다에 띄운 것. 각종 로봇과 외계인을 앞세운 최첨단 SF 영화에 갑자기 퇴역한 군인들이 몰려나와 미주리호를 진격시키는 모습은 작위적일뿐더러 미 해군 헌정 드라마를 보는 듯한 씁쓸함을 남긴다. 아시아 국가의 흥행을 염두에 둔 듯 일본인 함장으로 아사노 다다노부를 캐스팅하고 다국적 연합군함의 전면전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지만, 영화 곳곳에 흐르는 미국의 패권주의는 숨길 수 없다. 한국 관객에게 다소 생소한 얼굴인 주인공 테일러 키치와 브루클린 데커가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미지수다.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팝스타 리하나의 연기도 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아직은 부자연스럽다. 임일영·이은주기자 arg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삼성애플 특허전의 결론은/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삼성애플 특허전의 결론은/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스마트 기술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전이 점입가경이다. 팽팽한 줄다리기 중에 얼마 전 애플이 특허료를 조금 깎아줄 수 있다며 슬쩍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삼성이 매몰차게 거절했다. 무안을 당한 애플은 미국에서 재판 진행과 관련된 별도의 소송을 제기했고, 한국계 변호사 73명을 무더기로 고용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에 맞서 삼성은 아이패드가 애플의 독점적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미국인 증인을 확보, 재빨리 현지 채용했다고 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두 거대 기업의 물고 물리는 소송전은 독일, 호주, 일본 등 9개국에서 31건이 진행되고 있다. 마치 격투 끝에 한쪽이 주저앉아 주둥이를 땅에 처박아야 끝나는 닭싸움 꼴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결국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며 정산에 들어가는 ‘크로스 라이선스’로 출구 전략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는 이미 삼성과 애플이 세계 곳곳에서 초미의 특허전을 통해 기업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만큼 누렸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한다. 또 스마트 기술에 관해 두 기업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 제3의 기업은 거의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분쟁보다는 원만한 협력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암묵적인 밀약이 깔린 ‘빅딜’이라면 전 세계 소비자를 맥없는 구경꾼으로 전락시킨 두 거인이 얄미울 수밖에 없다. 아울러 거액의 소송비용은 당연히 제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고, 소비자들만 원하지도 않았던 관람료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15세기 말 포르투갈은 유럽의 동쪽인 인도 등지로부터 들어오는 향신료 무역로가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막히자, 서쪽의 대서양 항로를 개척하기로 했다. 신중한 성격의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남하하면서 희망봉을 돌아 마침내 인내심이 필요한 긴 항로를 뚫었다. 그 대가는 막대한 무역흑자로 돌아왔다. 비로소 나라를 통일한 스페인인들은 아프리카 우회로마저 선점당하자, 활달한 성격에 걸맞게 거친 대서양을 아예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항로를 개척했다. 이는 향신료 무역이 아니라 아예 금과 은을 약탈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두 해양강국은 대서양 항로를 놓고 마찰을 빚자 황당하게도 세계지도의 위에서 아래로 줄을 그어 대서양과 신대륙을 나눠 갖는 빅딜을 한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유일한 신대륙 식민지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영국 등 유럽 각국은 난리를 쳤지만, 아직 힘없는 볼멘소리일 뿐이었다. 이때 북유럽에서 청어잡이나 하던 네덜란드가 태생적으로 익힌 수로 운항술과 효율적인 조선 기술을 앞세워 스페인이 신대륙에서 빼앗아 온 원자재를 유럽 각지에 배송하고 운임을 챙기며 경험을 쌓았다. 이후 직접 아시아 무역에 나서며, 그 밑천을 마련하려고 최초의 주식시장과 은행을 개설했다. 오만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뒤통수를 맞은 채 해상무역의 패권을 네덜란드에 넘겨주고 만다. 특허권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스페인 함선을 공격해 금을 가로챈 해적을, 여왕이 직접 칭찬하던 수준의 영국은 이후 이 금으로 해군력을 키우고 산업혁명을 일으킨다. 영국은 최초의 특허법을 만들어 신기술을 보호했다. 증기기관의 주인공 제임스 와트(1736~1819)는 자신의 발명품을 제작, 판매해 많은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라이선스의 대가(로열티)로 평생 갑부로 살았다. 삼성과 애플은 특허권 보호만큼 소비자 권리의 보호에도 숭고함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 달라는 말이다. 만약 지금이 빅딜의 4막5장이라면, 애플의 새 얼굴 티머시 쿡(52)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44) 삼성전자 사장이 한무대에 나란히 서서 ‘인류공영을 위한 페어플레이’를 외치며 폐막 인사를 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을 듯하다. 몸집이 커질수록 ‘꼼수’보다 ‘신독’(愼獨·혼자일 때 더 언행을 조심한다)을 경계로 삼아야 하겠다. kkwoon@seoul.co.kr
  • 19세기 초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 소유는 누가?

    19세기 초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의 소유는 스페인 정부일까 아니면 이 보물선을 바다에서 찾아낸 업체일까?  지난 1804년 무려 5억 달러(약 5600억원) 상당의 보물을 싣고 가다 침몰한 스페인 군함을 놓고 벌인 스페인 정부와 해저수색전문 업체의 소송에서 결국 스페인 정부가 이겼다. 미국 플로리다 연방법원은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오디세이 마린 엑스플러네이션’(이하 오디세이)은 스페인 군함에서 발견된 은화 등 모두 주화를 스페인 정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오디세이는 해저수색전문 업체로 지난 2007년 대서양 공해 바닥에서 이 스페인 보물선을 발견, 소위 대박을 건져내는데 성공했다. 당시 이 배에서 무려 59만 4000개의 주화가 발견돼 업체 측은 축포를 터뜨렸으나 스페인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스페인 정부는 “함선에서 발견된 보물 대부분이 스페인의 것”이라며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소유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그레그 스템 오디세이 대표는 “찾는 사람이 임자”라며 “공해에서 발견된 보물인 만큼 소유권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이후 보물의 소유를 둘러싸고 업체와 스페인 정부와의 길고 긴 법정다툼이 이어졌으며 지난 2009년 법원은 스페인 정부의 손을 들어줘 업체 측은 상소했었다. 이번 판결로 오디세이는 오는 24일까지 모든 주화를 스페인 정부에 인도해야 한다.   한편 미국 플로리다 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오디세이는 지난해에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북대서양에서 격침돼 2400m 아래로 침몰한 영국의 화물선을 발견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화물선에는 현재 시세로 1900만 파운드(한화 약 345억 5860만원)상당의 은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앞선 것을 뒤따르며 극복하는 지혜/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앞선 것을 뒤따르며 극복하는 지혜/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기원전 3세기 신흥국 로마는 북아프리카의 해상강국 카르타고와 기어코 맞붙고 만다. 지중해 무역로의 패권을 둘러싼 포에니 전쟁의 서막이다. 로마군은 막강한 함대를 지닌 카르타고군의 최신형 5단 갤리선을 본떠 ‘짝퉁’ 갤리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르타고군처럼 빠르게 돌진해 뱃머리 하단의 쇠뭉치로 적함의 옆구리를 들이박는 전법을 구사하려면 함선뿐만 아니라 잘 훈련된 수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까마귀 부리처럼 생긴 쇠갈고리가 달린 길이 12m의 나무다리를 만들어 짝퉁 갤리선에 탑재했다. 적함에 다가서면 재빨리 다리를 내려 쇠갈고리를 박은 뒤 병사들이 상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상전에서는 맥을 못 추지만, 육상 근접전에선 강한 자신들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새 전법이었다. 16세기 후반 임진왜란을 맞은 이순신 장군도 승산 없는 해상전에 나섰다. 일본군은 배 밑바닥이 ‘V자형’인 신형 함선으로 빠르게 접근, 조선군의 느린 ‘U자형’ 판옥선 갑판에 뛰어들어 능숙하게 칼을 휘두르는 버거운 상대였다. 이순신 장군은 고민 끝에 구형 판옥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짜냈다. 둔하지만 튼튼한 판옥선에 대포를 탑재하고, 물 위의 판옥선이 거의 제자리에서 90도 회전할 수 있도록 노잡이 수병들을 훈련시켰다. 이는 일본군이 낡은 배라고 비웃던 평저선이었기에 도리어 가능했다. 판옥선은 적함을 유인해 ‘ㅡ형’으로 꽁무니를 빼다가 일제히 ‘∩형’으로 뱃머리를 돌린 뒤 적함을 향해 함포를 퍼부었다. 해상 함포전이라는 새 역사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삼성전자가 2년 연속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영업 실적을 거두었다. 두 해 전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진짜 위기론’을 거론했을 때 일부 언론 등에서는 괜한 ‘꿍꿍이셈’이라며 꼬집었던 기억이 난다. 이에 대해 당시 본 칼럼에서는 ‘엉뚱한 의심 말고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지적했으며, 삼성에는 ‘뼈를 깎는 노력’을 주문했다. 삼성은 애플의 아이폰이 엄청난 돌풍을 불러일으키며 찬사를 한몸에 받을 때, 짝퉁이나 만든다는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그때 국내 기업들의 수준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삼성은 스스로 소프트웨어 시대를 열지 못하자, 장점인 하드웨어에 더욱 매진했기에 오늘의 성과를 냈다. 선두를 바싹 뒤따르는 ‘패스트팔로어’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 요즘 경영인들이 좋아하는 성장 DNA, 즉 ‘삼성의 DNA’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렇게 따라가며 틈틈이 여력을 모아 새 디지털 시대를 준비할 것으로 믿는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려면 앞선 남의 것에다 나만의 것을 하나 보태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볼품 없는 내 것에서 결국 남의 것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탄생하지 않을까. 이 회장은 지난해 1월 9일 70세 생일 때 “앞선 회사도 퇴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국이 정신 안 차리면 또 한 걸음 뒤처질 수 있다.”고 특유의 위기론을 거듭 언급했었다. 애플의 독주를 일단 꺾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동점골로 간신히 연장전에 들어갔고, 이제 골든골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어릴 적 농촌에서 ‘올게쌀’을 먹어본 사람들은 커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곤 한다. ‘가을 들녘의 싱그러운 향기가 입안 가득히 구수하게 감도는’ 맛이다. 올게쌀은 볕이 덜 드는 땅에서 자란 설익은 벼를 찧은 뒤 쪄서 정성스럽게 말린 ‘찐쌀’의 남도 사투리이다. 어느 해 추석이 빨리 와 조상의 차례 상에 햇밥이 오르지 못할 처지가 되자, 위기에서 탄생한 지혜의 쌀이다. 햅쌀이 없으면 묵은 쌀을 올리거나 더 훌륭한 것으로 대체하면 될 테지만, 우리 조상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더 나은 명품을 낳은 것이다. kkwoon@seoul.co.kr
  • KOCHI-일본이 사랑한 세 남자의 고향 료마전의 고치

    KOCHI-일본이 사랑한 세 남자의 고향 료마전의 고치

    JAPAN KOCHI 일본이 사랑한 세 남자의 고향 료마전의 고치 인천공항, 나리타공항이 그러하듯 한국과 일본의 공항 이름도 대체로 지명을 내세운다. 그러나 뉴욕 JFK공항이나 파리의 샤를드골공항과 같이 간혹 위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고치현은 료마공항을 가지고 있다. 료마는 고치가 그리고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인물이다. 마침, 국내 케이블TV 채널J에서도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그린 NHK대하드라마 <료마전>을 11월 중순까지 방영한다. 글·사진 이지혜 기자 취재협조 일본 고치현 1 평야지대에 위치한 고치성은 텐슈가쿠天守閣와 오테몬大手門을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초기 번주 야마우치 가츠토요가 도사번으로 오기 전에 자신의 성이었던 가케가와성을 모방해 지었다. 원래의 건물이 잘 보존돼 있고, 다른 일본 성과 달리 텐슈가쿠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2 NHK대하드라마 <료마전>. 오른쪽이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분한 사카모토 료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Man of Kochi I 사카모토 료마 사카모토 료마, 한국에선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일본인들에겐 근대화와 부국강병의 선구자로 존경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2000년을 맞이하면서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일본 1,000년의 정치 지도자’ 앙케이트에서는 사카모토 료마가, 2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3위 오다 노부나가를 제치고 1위에 꼽혔다. NHK는 지난해 사카모토 료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료마전>을 연중 기획으로 방영했고, 현재 일본방송 전문 케이블TV 채널J에서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NHK는 매년 연중 기획으로 대하드라마를 방영해 왔다. 인기가 높기도 하지만 NHK대하드라마가 가지는 문화적 사회적 코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물을 선정하는 데 현재의 시대 상황이 우선 고려되며, 우리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듯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 현실의 인물과 일부 겹쳐지곤 한다. NHK대하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예능 프로그램과 시사만화, 광고 등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디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매회 드라마가 끝날 무렵 역사적인 배경이 되는 장소와 여행정보를 소개하는 코너를 삽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카모토 료마의 탄생과 유년 시절을 그린 회에서는 그의 고향과 생가터가 어디 있는지, 현재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NHK드라마는 인기 테마여행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여행상품으로 출시돼 있기도 하다. 우리가 달구벌, 한밭 등과 같은 옛 지명을 일부 사용하듯 일본에서도 옛 지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시코쿠섬 남부에 위치한 고치현의 옛 이름은 도사다. 야마우치 가문을 번주로 하는 도사번을 이뤘던 곳이다. 료마는 바로 이 도사번의 가미마찌에서 1835년 11월15일(공교롭게도 그가 죽은 날과 같다)에 카시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도사번주가 거주하는 도사성은 오늘날 고치성이라고 부르며, 고치현과 고치시청이 인접해 있는 등 고치 시내 중심에 위치한다. 고치성을 중심으로 봤을 때 동쪽에 JR고치역이, 서쪽에 가미마찌가 각각 위치한다. 과거 번의 취락은 성을 중심으로 상위 계급인 죠시가 가까이에 거주했고, 그 바깥으로 하위계급인 카시가, 그리고 더 바깥으로 일반 백성들이 살았다. 하위 계급은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상위계급이 거주하는 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료마가 태어난 마을은 오늘날에도 가미마찌라고 부르며, 료마의 옛집은 보존돼 있지 않다. 료마의 탄생지임을 알리는 이정표에 서면 고치성이 손바닥만해 보인다. 성에 가까이 갈 일이 거의 없었던 만큼 아마도 평생 료마의 눈에 비친 성의 모습이었을 그러했을 터이다. 가미마찌에는 시립 료마박물관이 있다. 작은 규모이지만 료마의 일생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고, 시내 중심에 위치해 방문하기 쉽다. 또 료마 생가 부지에는 료마우체국과 난스이호텔이 있다. 난스이호텔은 1층의 료마 기념숍을 비롯해 료마를 특화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구경삼아 방문할 수 있다. 고치시에서 태평양 바다까지는 차량으로 30여 분 가량 거리다. 해변 가츠라하마는 현립 사카모토료마기념관과 가츠라하마 수족관 등이 있는 관광 포인트다. 고치의 바다는 태평양이다. 고치시내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일본내해와 다른 망망대해의 빛깔과 웅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가츠라하마에는 지금도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료마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무려 13.5m다. 매년 료마의 생일인 11월15일을 전후로 약 한 달여간 단을 만들고 료마와 같은 눈높이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갖고 있다.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은 시내에 있는 박물관과 달리 배를 형상화한 외관이 태평양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기념관에는 료마가 암살당했을 당시 피가 튀었던 병풍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품과 료마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태평양을 향한 면은 전면 통유리로 돼 있어, 마치 크루즈 선미에 서서 바다를 조망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NHK대하드라마 <료마전> 지난해 일본 NHK가 연중기획으로 방영했던 대하드라마 <료마전>이 국내 케이블TV 채널J에서 오는 11월 중순까지 방영된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일 1회분이 방영되며, 토요일에는 5회를 연속 방영한다. 평일의 경우 아침 9시, 오후 5시, 밤 11시에 같은 회차가 여러 차례 방송되며, 토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5회분을 연속 방영한다. 올해 초에도 채널J에서 방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료마전>의 주인공 료마역으로는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등으로도 친숙한 배우이자 가수인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료마가 사랑한 네 여인으로 히로스에 료코, 아오이 유우, 마키 요코, 칸지야 시호리가 출연하고 있다. <료마전>은 사카모토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사극이지만 일본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일본 및 해외에서 <대장금> 등 국내 드라마가 인기를 끌듯이, 현대적인 해석과 개성 있는 인물 묘사 등을 통해 재미를 더했다. 1 현립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함선을 형상화 한 외관이 인상적 2 료마 탄생지 유적. 신분에 따라 거주지 가 엄격히 제한되던 시절이기에, 료마가 실제로 봤던 고치성의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3 오토메와 료마 남매, 여장부 오토메는 <료마전>의 인기 캐릭터로 드라마에 출연한 테라지마 시노부의 모습을 따라 제작했다 4 료마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들려주는 해설사. 일본어 가이드북에도 출연해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Man of Kochi II 이와사키 료타로 드라마 <료마전>은 미츠비시 창업주인 이와사키 료타로의 내레이션을 통해 료마의 삶과 당시 일본을 조명하고 있다. 이와사키 료타로는 카시보다 더 하위 계급인 낭인 출신으로 집이 무척 가난했다. 의사가문 출신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꾸준히 뒷바라지 한 덕에 훗날 큰 기업의 창업주가 될 만큼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와사키 료타로의 고향은 고치시 동부에 위치한 아키시다. 고치에서 약 1시간 거리이며, 이와사키 생가는 아키역에서 자전거로 약 10여 분 거리다. 방문객을 위해 자전거와 지도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 길이 단순한 편이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시골전원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이와사키 생가 앞에 카페가 운영되고 있는데 고치의 특산물인 유자차를 꼭 마셔 볼 것을 추천한다.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또 이 가게는 유제품으로 유명한 이와테현의 치즈공방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제품을 판매한다. 주인이 직접 엄선한 아이템을 모아 셀렉트숍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사진, 미술, 공예품 등 갤러리에서 취급할 법한 소품이 눈길을 끈다. 이와사키 생가 가까이에는 노라시계탑이 있다. 과거에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지금도 집주인 하루코 할머니의 아들이 정기적으로 손을 보고 있다. 아들은 고치시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는데, 전자방식이 아니라 수동 시계라 사람이 직접 만져줘야 작동한다. 노라시계탑 옆에는 치리멘동 전문점이 있는데, 고치 내에서도 유명한 맛집이다. 치리멘은 작은 바늘 크기의 잔멸치로, 인근 바다에서 잔뜩 잡힌다. 솥에 쪄낸 것을 유즈폰즈 등을 섞어 간이 밴 밥에 얹어 함께 먹는다. T crip. 메이지유신과 사무라이 신분제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1868년부터 1889년까지 진행된 일련의 정치·사회 개혁을 일컫는다. 메이지 일왕은 1867년에 즉위했으며, 사카모토 료마는 이 해 11월15일에 암살당한다. 이전까지의 일본은 도쿠가와 가문을 중심으로 한 에도 막부 체제를 유지해 왔다. 메이지유신 기간 동안 서양의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도쿠가와 쇼군에게서 권력을 박탈하는 한편 번 제도를 폐지하고 지금의 현 제도로 개편한다. 또 사농공상 등의 기존 신분제도도 이때 폐지됐다. 메이지 유신이 가능했던 것은 사카모토 료마가 사츠마번(가고시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쵸슈번(야마구치현)의 기도 다카요시의 삿초동맹을 성사시키고, 고메이 일왕을 지지토록 만들어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무라이는 쇼군에게 충성하는 무사 계급이다. 이 사무라이 내에도 계급이 3가지가 있다. 죠시上士는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번주를 보필하는 주요 직책을 맡는 최상위다. 카시下士는 평소에는 실무를 담당하는 하위 계층이고, 낭인은 가난하거나 직책이 없이 사무라이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도사번의 경우, 본래 시즈오카현 출신이었던 야마우치 번주가 데려온 사무라이들이 죠시를 대대로 세습했고, 도사 토착민 가운데 부와 능력이 있던 소수에게 카시의 신분이 주어졌다. <료마전>에 보면 죠시가 카시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죽여도 처벌을 받지 않는 등 지나친 차별의 모습이 보여진다. 유럽의 근대화에 있어 시민계급이 활약했다면, 일본의 근대화에는 카시의 활동이 눈부시다. 카시였던 료마는 메이지유신을 가능케 해 스스로 신분제 폐지를 이뤄냈다. 1 새로 지어진 마키노식물원의 온실 2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야광식물 3, 4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의 평생의 연구와 업적을 전시해 놓은 상설 전시관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Man of Kochi III 마키노 토미타로우 ‘와사비아 와사비 (시에브) 마키노Wasabia Wasabi (Sieb) MAKINO’. 우리가 흔히 아는 바로 그 와사비의 정식 이름이다. 앞에 있는 와사비아가 학명이고, 그 다음 와사비가 통칭이며,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유사종이 등록돼 있는 경우에 표시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것이 발견 및 연구하고 등록한 사람의 이름이다. 와사비를 비롯해 많은 일본의 식물에는 마키노라는 이름이 끝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식물학자다. 현재까지 보고된 약 6,000여 종의 식물 가운데 절반 가량이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에 의해 등록됐다. 고치시 고다이산에는 마키노 식물원이 있다.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는 고치현 출신으로 많은 연구를 고치에서 진행했다. 또 이와 같이 자신의 연구에 근간이 된 고치에 식물원이 설립되길 바랬다. 식물을 연구하는 곳은 여럿 있지만, 마키노 식물원은 일반인들도 관람하고 접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식물원은 본관, 전시관, 정원, 온실 등 4개의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전시관에는 상설·기획전시 외에 마키노 박사의 일생과 업적이 전시돼 있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남긴 식물 화보다. 요즘처럼 놀라운 접사 기능의 카메라가 없던 시절, 식물을 연구·보고하기 위해서는 4계절의 표본과 그에 대한 그림을 자료로 제출해야 했다. 바로크 시대 곤충화가 메리안의 일생을 그린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에서처럼 화가가 그리는 아름다운 꽃그림도 많지만 마키노의 식물 그림은 이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세밀하다. 목조 건축물의 특성을 잘 살린 설계와 디자인은 식물원의 성격과도 맞는데다 미술작품과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온실은 새로 건립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각 식물을 위, 아래, 또 옆 등 다양한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온실에 들어서는 순간 입구에 가득 심어져 있는 바닐라가 행복한 기운을 선사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길가에 위치한 작은 비석이다. 마키노 박사의 필체로 “나를 지탱해 주고 가정을 잘 지켜 줘서 고마워요”라고 쓰여져 있고, 그 앞에는 작고 소박한 난초들이 심어져 있다. 이 난초의 이름은 ‘사사엘라 스에코아나 마키노Sasaella Suekoana MAKINO’다. 부인인 스에코 여사가 죽을 무렵에 발견한 난초에 부인의 이름을 붙였다.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이지만 그의 업적은 사실 국가나 연구소 등의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는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빚까지 져가며 몇 번이고 도망을 다니면서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로 스에코 부인은 집에 빚쟁이가 찾아온 날은 밖에 빨간 이불을 내걸어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을 정도였다고. 감동적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서글픈 이야기다. 마키노 식물원은 시내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의 고다이산 기슭에 위치한다. 사람에 따라 식물원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시큰둥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물원과 다른 이색적인 매력이 있는 곳으로 다른 관광지에 비해 다소 접근성이 떨어져도 꼭 강추하고 싶다. 고다이산은 또한 전망대가 있어 고치시의 모습을 조망하기에 좋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인기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Travel to Kochi ▶고치현은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이기도 한 고치현은 메이지유신 전까지 도사국土佐國으로 불렸다. 시코쿠四國라는 지명은 섬 내에 도사국, 사누키국, 아와국, 이요국 4개의 국이 존재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도사국과 관련해 친숙한 대명사로 도사견이 있다. 투견과 경호견으로 유명한 바로 그 품종으로 투견 경기는 고치현의 이색적인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남쪽으로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으며 난류가 흘러서 같은 위도의 지역보다 따뜻한 편이다. 한신타이거스의 2군 경기장 및 스프링캠프가 이곳에 있으며, SK와이번스 역시 지난 4년여간 이곳을 다녀갔다. ▶가는 방법 고치는 일본 시코쿠섬 남부에 위치한다.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다카마츠(화·목·일요일)와 마츠야마(화·금·일요일)를 각각 주 3회씩 운항한다. 고치시까지는 차량으로 약 2시간 가량 소요된다. 시코쿠는 아니지만 인천에서 세토나이 대교가 연결돼 있는 혼슈의 오카야마를 대한항공이 매일 연결한다. 차량으로 약 2시간30여 분이 걸린다. 고치의 료마공항으로 ANA의 에코패스와 일본항공의 재팬세이버 등의 국내선 연계 요금도 이용할 수 있다. ▶Must Have @고치현 자유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좋아하는 곳을 꼽자면 시장이다. 여기에 부담없이 이것저것 사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과 선술집이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고치시에는 히로메시장과 일요시장이라는 두 개의 상설시장이 있는데, 고치시민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어서 그 흥과 왁자지껄함에 이방인도 동참할 수 있어 좋다. 히로메시장은 다양한 종류의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푸드코트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백화점이나 마트에 있는 푸드코트와는 좀 다르다. 식사를 해도 좋고, 가볍게 술을 즐기기에도 좋다. 고치현의 대표적인 별미인 가츠오타타키는 물론이고, 야스베 교자 체인점, 소금이나 유자폰즈 등을 뿌려먹는 게 더 잘 어울리는 타코야키, 쇠고기초밥, 고등어초밥, 어묵, 라멘 등을 즐길 수 있다. 실내이고, 두 개의 큰 공간 한가운데 등받이 없는 통나무식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자리를 잡고 마음에 드는 음식을 사와서 같이 놓고 먹으면 된다.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타이밍을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한 테이블에 둘셋이 앉아 있는 곳을 공략해 보자.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오히려 옆에 앉아 있던 일본인들이 먼저 말을 걸어 온다. 고치시 사람들은 대체로 정이 많아 금세 어울릴 수 있다. 일요일에는 고치성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차도에 자판과 노점상 행렬이 이어진다. 일요일에 열리기에 일요시장이라고 불리우며 수백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술을 받으면 다 마시기 전엔 내려놓을 수 없는 일본 스타일의 술잔, 또 갖가지 아기자기한 공예품, 옛 물건 등 다양한 시장 풍물을 만날 수 있다. 날씨가 좋은 일요일 아침에 산책하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간다. 시장 음식을 먹는 재미도 있다. 꼬치구이, 튀김, 과자, 오코노미야키 등 여러 가지를 먹다 보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 고치는 유자, 고구마, 가지 등이 유명한데, 특히 고구마 튀김이 독특하면서도 맛이 있다. 1 고다이산에서 바라본 고치시 전경 2 시코쿠의 별미 ‘가츠오타타키’. 가츠오를 짚불에 그을려 특유의 풍미를 더했다. 문득문득 먹고 싶어지는 인상적인 맛을 가졌다 3, 4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히로메시장 음식들 5 잔멸치 치리멘과 유즈폰즈를 버무려 먹는 치리멘동. 아키의 별미 6 가츠라하마 해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사카모토 료마 동상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英 국방부는 군수품 세일중

    英 국방부는 군수품 세일중

    영국 사회에 드리운 긴축정책의 ‘그늘’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국가 재정난 탓에 허리띠를 졸라매기에 여념이 없는 영국 정부는 일각의 비판을 무릅쓰고 국방부 창고 안의 전투기와 헬기, 군용 오토바이까지 내다 팔기 시작했다. 또 예산 줄이기에 직격탄을 맞은 영국 과학계는 “과학 예산이 줄면 영국 연구자들의 대탈출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국방부는 최근 긴축정책으로 국방예산이 대폭 삭감되자 재원 마련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각종 구형 장비와 시계, 보석류 등을 매각하기로 했다고 15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은 앞으로 10년간 360억 파운드(약 63조 3000억원)의 국방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최근 통보했다. 국방부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매물 수천개 가운데는 수직이착륙 해리어 전투기와 수십대의 헬리콥터, 재규어 장갑 승용차, 군용 오토바이 등이 포함됐다. 또 사막에서 주로 사용하는 정수 장비와 콘크리트 절삭기 등도 눈에 띈다. 가장 덩치가 큰 물품은 퇴역한 항공모함인 ‘HMS 아크 로열’로 가격이 350만 파운드(약 61억 5000만원)인데 이 함선을 중국에 팔 것인지를 두고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방부는 또 명품시계 등을 매물로 내놓았다. 매각 명단에 담긴 한 시계에 대해서는 ‘긁히지 않도록 제작됐으며 사파이어 유리를 사용해 만든, 사용하지 않은 새 제품’이라고 웹사이트에 소개했다. 또 다이아몬드가 48개나 박힌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크리스털 시계나 스위스 명품시계인 레이먼드 바일 탱고 등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국방부의 물품 매각 방침을 마뜩잖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보병 지휘관을 지낸 보수당의 패트릭 메르서 의원은 “구입할 때 엄청난 비용이 든 장비를 헐값에 팔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세계적 과학자 100여명은 영국 정부가 화학 연구분야에 대한 예산 감축안을 발표한 데 대해 우려를 표하는 편지를 캐머런 총리에게 보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보물선서 찾은 ‘5400억 보물’ 누가 갖나?

    보물선서 찾은 ‘5400억 보물’ 누가 갖나?

    대서양 심해에 가라앉은 스페인 함선에서 발견된 보물을 두고 스페인 정부와 이를 찾아낸 미국의 보물탐사회사 사이에 소유권분쟁이 또 불거졌다. 2007년 5월 ‘오디세이 마린 엑스플러네이션’은 대서양 공해 바닥에서 은화·동괴·예술품 등이 17t이나 실린 선박을 발견했다. 이는 1804년 영국군에 의해 격침된 스페인 무역선 갤리언선(船)으로, 보물의 가치만 5억 달러(약 5400억원)상당이었다. 보물탐사회사가 엄청난 소득을 기대하며 축포를 터뜨리던 가운데 스페인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스페인 정부는 ‘함선에서 발견된 은화 대부분이 스페인 것’이란 사실을 증거로 제시하며 미연방지방법원에 보물에 대한 소유권 소송을 제기한 것. 2009년 6월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탐사회사가 아닌 스페인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던 이 사건은 최근 ‘오디세이’ 측이 보물에 대한 반환권 소송을 미연방순회항소법정(US federal appeals court)에 제기하면서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11차 배심원단 질의에서 그레그 스템 오디세이 대표는 “찾는 사람이 임자”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스페인 정부가 원 소유권을 입증한다 하더라도 해양법에 따라서 공해에서 발견된 보물인 만큼 소유권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 측 변호인단도 “미국 법원이 국제조약과 국제해상법에 따라서 이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어서 법원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분쟁의 중심에 선 난파선 ‘라 누에스트라 세노라 데 라스 메르세데스’(La Nuestra Senora de las Mercedes)는 남아메리카를 떠나 스페인으로 향하던 중 가라앉았으며, 당시 선원 등 200명이 타고 있었던 걸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어뢰 아닌 좌초” 北, 천안함 ‘진상공개장’ 발표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우리 측 민·군합동조사단의 최종보고서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북한은 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방위원회 검열단 진상공개장’을 내놓았다. 북한 국방위가 지난 5월 28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측의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에 대해 반박하긴 했지만, 검열단 명의로 ‘진상공개장’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상공개장’에는 어뢰추진체의 ‘1번’ 글씨, 물기둥 형성, 알루미늄 흡착물, 좌초 가능성,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 등에 대한 반론이 담겨졌다. 천안함 침몰 원인도 ‘어뢰 공격’이 아닌 ‘좌초’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그러면서 우리 측 조사결과를 “황당무계한 날조극”이라고 비판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북한은 어뢰의 재질부터 걸고넘어졌다.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 피격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어뢰추진체를 ‘알루미니움합금쪼각’이라고 부르면서 이는 북한의 어뢰가 아님을 인정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반박했다. 북한은 “우리 해군이 보유한 어뢰는 알루미늄 합금이 아닌 강철합금재료로 만든 ‘주체어뢰’”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군이 보유한 주체어뢰의 어뢰강철합금편을 남측에 직접 넘겨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어뢰추진체에 쓰인 ‘1번’ 글씨도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북한 군수공업부문에선 어떤 부속품이나 기재를 만들 때 필요한 숫자를 펜으로 쓰지 않고 새기고 있으며 ‘번’이 아닌 ‘호’를 붙인다는 것이다. 강한 폭발에도 어뢰추진체에 쓰인 ‘1번’ 잉크가 증발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합조단의 주장대로 함선 공격에 250㎏ 정도의 폭약량이 사용됐다면 어뢰추진체 후부의 온도는 낮게는 325℃, 높게는 1000℃ 이상 올라갈 수 있고 이 정도 온도면 잉크가 완전히 타버린다고 했다. 천안함 선체에서 HMX, RDX, TNT 등 폭약성분이 발견됐지만 어뢰추진체에선 폭약성분이 나오지 않은 점도 ‘조작’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는 암초가 많은데 천안함 관련 자료들이 좌초가 침몰 원인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 역적패당이 천안호 사건을 떠들어대면서 반공화국 대결소동에 광분하면 할수록 우리는 2차, 3차로 날조극의 정체를 까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방부는 “어뢰추진체 프로펠러는 기본적으로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기 때문에 알루미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나머지 북한의 주장은 남한에서 제기된 의혹을 반복한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北, 전방 GP에 2발 총격

    北, 전방 GP에 2발 총격

    북한군이 29일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우리 군 최전방 경계초소(GP)에 2발의 총격을 가해와 우리 군이 즉각 대응 사격을 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단순 오발사고일 수도 있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대화에 조건을 걸고 있는 남한 당국의 자세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 총격이거나,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한 위협성 도발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합참은 이날 저녁 브리핑을 통해 “29일 오후 5시26분쯤 북한군 GP에서 우리 GP로 14.5㎜ 기관총으로 추정되는 2발의 총격을 해와 교전규칙에 따라 즉각 3발을 응사했다.”면서 “우리 측 피격지점은 GP 하단으로 추정되며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북한의 총격 이후 즉시 K-6(12.7㎜)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한 뒤 “귀측의 총격 도발로 인해 아군의 자위권을 발동하여 대응사격을 했다. 귀측의 정전협정 위반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경고 방송을 2차례 실시했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북한군 GP와 우리 군 GP 사이의 거리는 1.3㎞로 조준사격이 가능하다. 북한군의 조준사격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우리 군은 교전규칙에 따라 사격이 시작된 지점을 향해 조준사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과 청와대는 북한군이 총격 이후 추가적인 징후를 보이지 않은 점을 들어 의도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의도성이 있는 총격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 “민감한 상황이긴 하지만 2발의 사격과 대응사격만 놓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엔사에서 30일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특별조사팀을 현장에 파견할 예정”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G20 정상회의를 앞둔 도발로 보긴 어렵다.”면서 “우리 군의 응사에 대한 북한의 추가 반응이 없었다는 점에서 일회성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하노이의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상황 발생 직후 참모진을 통해 보고했다.”고 했다. 이날 총격 사건이 일어나기 두어 시간 전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10월 22일 군사실무회담을 갖자고 남측에 제의했지만 남측은 함선(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를 운운하며 회담 자체를 거부했다.”면서 “대화 거절로 초래되는 북남 관계의 파국적 후과(결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통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이 대변인은 “쌍방 합의이행을 공공연히 회피하는 남측의 무모한 도발 행위에 대해 우리 군대는 무자비한 물리적 대응으로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도 경고, 이날 총격의 의도성을 짙게 했다. 이에 앞서 국방부는 이날 입장 발표자료를 통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입장과 태도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실무회담 개최는 의미가 없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지난 28일 북측에 보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총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3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노이 김성수 기자·서울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월드이슈] 상상초월 규모의 정화함대

    환관 정화를 사령관으로 하는 명나라 함대는 28년 동안 7차례 대항해에 나섰다. 매번 2만 7000여명의 인력과 대형 함선인 보선(寶船) 60여척 및 100척 정도의 소형 함선으로 이뤄진 대함대였다. 승무원 150명에 한 명꼴로 배치된 의사만 해도 180명에 이르렀고 승무원들이 소비하는 하루 식량만 70t가량이었다. 정화 함대가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라는 것은 유럽사에서 ‘대항해 시대’를 연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과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1492년 콜럼버스와 함께 출항한 인원은 함선 3척에 승무원 120명이었다. 바스코 다가마 함대는 함선 4척에 승무원 170명이었다. 마젤란도 함선 5척과 승무원 265명을 이끌었을 정도이다. 왜 이렇게 필요 이상의 대규모 함대여야 했을까. 어마어마한 규모는 정화 함대가 실용적인 목적 못지않게 중국의 위용을 과시하고 ‘조공’이라는 중국식 국제 정치·경제제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과시용 성격이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구축한 해상교역로를 복구함으로써 국제질서를 재구축하려는 ‘대형 국책사업’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란에 있는 호르무즈 왕이나 아프리카의 술탄들도 중국에 조공하라는 정화의 요청에 대해 사자·기린 등 헌상품과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정화를 발탁했던 명나라 황제 영락제는 반란을 일으켜 조카 건문제의 왕위를 찬탈한 중국판 수양대군이었다. 이 때문에 ‘남해 원정’에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계산도 담겨 있었다. 일부에서는 반란을 피해 도망간 건문제를 찾기 위해 정화를 파견했다는 ‘야사’도 전해지고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남중국해/노주석 논설위원

    한국국방연구원이 운영하는 세계분쟁 데이터베이스 WOWW에 따르면 1989년 이후 2004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각종 분쟁은 모두 99건이었다. 아시아지역의 분쟁건수는 16건으로 아프리카의 34건에 이어 두번째를 차지했다. 유럽 15건, 중동 13건보다 많았다. 남북한 대립, 아프가니스탄 내전, 중국·인도 국경분쟁, 중국·타이완 대립, 중국·러시아 국경분쟁 등 세계를 요동치게 한 굵직굵직한 분쟁이 특징이다. 남중국해의 패권을 둘러싼 남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와 서사군도 (파라셀 군도) 분쟁도 그 중 하나이다. 금기시됐던 남중국해 분쟁이 지난 24일 폐막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처음으로 국제이슈화됐다. 미국이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에 이해관계가 있는 아세안국가의 편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의 상당부분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해당하며, 남중국해는 타이완, 티베트와 함께 중국의 주권·영토보존과 관련된 핵심사안이라는 중국정부의 입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중국 또한 미국에 대해 남중국해 문제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 일촉즉발의 국면이다. 남중국해상에 존재하는 140여개 섬 중 상당수가 영토분쟁 지역이다. 남사군도는 중국, 타이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등 6개국이 섬 100여개를 분리 점령한 채 무장대치 중이다. 여러 차례 군사적 유혈충돌을 빚었다. 서사군도는 40여개 섬에 대해 중국과 타이완, 베트남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하이난섬에서 남쪽으로 330㎞ 떨어진 서사군도를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으며 관광지로 개발 중이다. 중국은 15세기 명나라시대의 환관 정화의 남해원정을 근거로 남중국해 영유권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1405년 함선 62척에 승무원 2만 7800명을 태우고 원정길에 오른 정화는 이후 29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중국~베트남~수마트라~말라카~스리랑카~인도~페르시아~아프리카를 돌아오는 대항해를 통해 남해항로를 개척했다. 많은 나라들이 조공을 바쳤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에게 남중국해는 양보할 수 없는 생명줄이다. 에너지 수입물량의 85%가 통과하는 해상교통 및 군사상 요충이다.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며, 원유 2000억배럴이 묻혀 있는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세계 제3차 대전은 자원전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남중국해에서 G2(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매장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일지도 모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사설] 군 편법관광 말고 부사관 사기진작 제대로 해야

    다국적 해군 연합기동훈련 림팩(RIMPAC) 에 참가하기 위해 하와이에 파견된 해군 간부들이 가족동반 관광에 나서 눈총을 받고 있다. 현지에 머물던 세종대왕함 승선 간부 200여명 중 절반인 30명이 함선을 떠나 현지서 합류한 가족들과 쇼핑과 해양스포츠를 즐겼다고 한다. 부사관 등 장병들에 대한 사기진작 측면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천안함 폭침 후 안보 불안감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벌어진 군의 일탈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천안함 사태의 당사자인 해군이 아닌가. 우리 군의 기강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는 우려가 괜한 게 아님을 보여준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후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이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하기는 건군 이래 처음이다. 우리 군의 해이해진 기강과 안보태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해군도 천안함 사태 이후 ‘필승 50일 작전’을 천명해 최고의 경계태세 유지와 자숙의 시간을 갖는 지금이다.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군의 기강잡기가 한창인 때 훈련 중인 해군 간부들의 안이한 가족동반 관광을 납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제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는 북한 공작원에게 극비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현역 장성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군 수뇌부까지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 섬뜩하다. 기강잡기와 안보태세 강화를 거듭 외치고 있는 군 당국의 요란한 구호가 헛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군의 기강과 사기는 서로 분리될 사안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해군 간부들의 하와이 관광을 놓고 해군 측은 파견기간이 길어져 사기 차원에서 외출을 허용했다지만 변명이 궁색하다. 군의 사기를 높이려면 이렇게 편의적으로 할 게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한다.
  • “MB 대북강경책 변화 불가피”

    │워싱턴 김균미·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특파원│“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벽에 부딪혔다.” 외신들은 한국의 6·2 지방선거에 천안함 사태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선거결과를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분석하면서 이 대통령의 대북강경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3일 뉴욕타임스는 서울발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사건 대응에 대한 사실상의 국민투표였던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예상을 깨고 고전했다.”면서 선거에서 승리한 야당인 민주당이 대통령의 대결적인 대북정책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천안함 사건이 미국에 우호적인 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지방선거 결과가 천안함 사건 대응 등 대북정책에 미칠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산케이신문은 서울발 기사에서 투표율이 54.5%로 높게 나타났다고 전한 뒤 “북한에 연민을 느끼는 젊은층의 부동표가 현 정권의 대북강경책에 반발해 민주당으로 흘러갔다.”고 야당 선전 원인을 분석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정병국 사무총장 등이 사퇴했다.”고 전했다. 인민일보는 “높은 투표율로 집권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이번 선거를 통해 반영됐다.”면서 “이번 선거가 다음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3일 ‘6·2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 “남조선의 민주세력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극우보수적인 한나라당은 대참패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천안함 사태를 “선거를 앞둔 모략적인 괴뢰군 함선 침몰사건 조작”으로, 한나라당의 참패를 “남조선 인민의 단호한 징벌, 준엄한 철추”라고 주장했다. kmkim@seoul.co.kr
  • [對北제재조치 이후] 北 서해상 도발 위협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27일 우리 정부의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대북 제재 조치 발표에 맞서 7개항의 강경 대응책을 발표했다. 특히 북측이 남북간 군사적 보장 조치 전면 철회 및 개성공단 육로통행 전면 차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현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의 운명이 기로에 섰다. ● ‘마지막 보루 ’개성공단 운명 기로에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인민군 총참모부는 중대통고문 발표를 통해 지난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사태 관련 대국민 담화발표를 ‘6·15 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 선언에 대한 전면 파기 행위이자 북남관계를 전쟁상태로 몰아넣는 특대형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총참모부는 대응책으로 실제적인 중대조치 시행 의사를 밝히며 ▲남북 협력교류 관련 모든 군사적 보장 조치 전면 철회 및 동·서해지구 군 통신 연락소 폐쇄, 개성공단 등 남북 육로통행 전면 차단 검토 착수 ▲남한 군의 심리 방송 재개 등 반공화국 심리전 책동에 대해선 경고한 대로 무자비 대응 ▲서해상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체결한 남북간 합의 완전 무효화 및 관련 모든 통신선 즉시 단절 ▲북측 해상분계선에 대한 침범행위 즉시 물리적 타격 ▲북측 영해·영공·영토를 통한 남측의 함선, 비행기 등 통과 전면 불허 ▲남한 당국자 및 당 관계자들 북한 출입 금지 ▲국방위 검열단 거부시 날조극, 모략극 정체 끝까지 밝힐 것 등의 7가지 입장을 발표했다. ● 軍 “통신선 유지… 당장 단절 않을듯” 한편 총참모부의 중대통고문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날 개성공단의 출·입경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은 오전 7시55분쯤 서해지구 경의선 군사통신망을 이용해 남측 인원의 출입동의서를 보내왔다. 이에 따라 입주기업 관계자 505명이 개성공단에 들어갔고 638명이 내려왔다. 또 북한이 즉시 단절 및 폐쇄검토를 선언한 군통신선도 이날 저녁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통신선로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면서 “폐쇄 검토 착수 등의 문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당장 단절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박재범 칼럼] 상식으로 뜯어보는 천안함 폭침 사태

    [박재범 칼럼] 상식으로 뜯어보는 천안함 폭침 사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두 달 전 천안함 폭침 사태에 따른 것이다. 서울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라는 합조단의 발표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73.3%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과학과 상상을 버무린 각종 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식의 눈으로 사실을 통해 진실을 파악하는 일이 본령인 언론도 제각각이다. 현재 제기되는 각종 주장이나 의혹은 크게 서너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는 6·2지방선거를 앞두고 노풍을 잠재우기 위한 북풍이라는 주장이다. 복잡한 현상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는 방법은 팩트만 연결시켜 보는 일이다. 천안함 사태의 팩트는 단순하다. 천안함이 침몰했고, 이후 방중(訪中)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과 무관하다고 밝혔고, 국제전문가들이 참가한 조사에서 북한 공격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발표 시점이 지방선거 운동 시작날인 20일이라는 점에서 북풍설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발표일이 설령 작위적이라고 하더라도 사건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없다는 점에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둘째는 경계실패론이다. 단적으로 말해 천안함 사태는 작전의 문제이다. 인천공원에 설치된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하려던 세력이 ‘작전의 실패는 용서받아도, 경계의 실패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맥아더의 언급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천안함 사태의 본질이 작전인 이유는 영해 내의 군함이 공격을 받았다는 점 때문이다. 군함은 주권의 연장이다. 천안함의 배치 이유와 임무를 보면 경계실패론의 허구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천안함은 과거 서해에서 세 차례 벌어진 정규전이 재발할 것을 염려해 배치됐다. 비대칭전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천안함이 백령도 뒤편에서 기동한 것도 북방한계선(NLL)을 넘는 북한 군함을 막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당연한 작전이다. 천안함이 수심 30~40m의 천해(淺海)에서 경계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면 경계실패론이 타당하다. 천해에서는 사이드스캔소나라는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천안함은 비대칭전을 위한 함선이 아니기에 이런 장비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해군 사이에는 이런 말이 나돈다. ‘집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몰래 숨어든 불량배에게 두들겨 맞자, 아이를 타박하는 격’이라는. 어떤 말로 상황을 흐리든 간에 천안함 사태의 본질은 작전 문제이다. 셋째 문책론이다. 핵심은 국방장관이다. 정치권에서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어불성설이다. 국방장관은 군정과 군령을 동시행사하지만 군령은 합참의장을 통해 대리행사한다. 장관이 민간복장을 입고, 합참의장이 군복을 입는 까닭이다. 작전은 장관과 무관하다. 군사력 운용의 대원칙이다. 이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조만간 있을지 모르는 개각에서 국방장관을 교체하는 것은 분위기 쇄신이라는 측면에서 가능할 것이나, 문책이라는 굴레를 씌워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사실 이런 일들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김정일의 의도를 정확히 읽는 것이다. 현재 정책 등을 살펴보면 김정일은 건강이 악화돼 있고, 방중은 경제난 극복과 3대 세습을 위한 목적이고, 천안함 사태는 세 차례 해전의 보복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반대로 김정일은 건강이 회복돼 자신감에 충만해 있고, 따라서 평생의 대업을 이루려는 욕구에 가득 차 있어 경제난 극복이나 세습에는 무관심하다고 볼 수는 없을까. 이 경우 전략가 김정일의 저의는 파국 일보 직전까지 한반도의 긴장을 최고조로 높이다, 돌연 민족을 위해 ‘통 크게’ 대화하자고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한국 내부에 대란을 촉발시켜 한국의 정권을 취약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감정이 합리성을 휩쓸어가는 그때 정부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북한이 앞으로 끄집어낼 다양한 수단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단호한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다. jaebu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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