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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흥민 46일 만에 득점포, 로치데일과의 FA컵 두 골이나

    손흥민 46일 만에 득점포, 로치데일과의 FA컵 두 골이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이 46일 만에 다시 득점 행진을 이어가며 해트트릭을 수립할 뻔했다. 손흥민은 28일(현지시간)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불러 들인 리그 1(3부 리그) 로치데일과의 잉글랜드 FA컵 16강 재경기에서 전반 23분 선제 골과 후반 20분 추가 골을 뽑아 6-1 승리에 힘을 보탰다. 2-2로 비겨 이날 재경기를 벌인 토트넘은 오는 17일 기성용이 뛰고 있는 스완지시티와 8강전을 벌인다. 2선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에릭 라멜라의 패스를 받아 수비수를 제친 후 골대 중앙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시켜 로치데일의 골망을 흔들었다. 지난 1월 14일 에버턴전에서 11호 골을 터뜨린 후 46일 만에 나온 시즌 12호 골이다. 그는 8분 뒤 페널티킥도 성공시켰으나 비디오 판독(VAR) 판독 결과 슈팅 직전에 멈칫해 골키퍼를 속이려 했다는 이유로 득점이 무효가 되고 경고까지 받았다.전반 31분 로치데일 스티븐 험프리스에 실점해 1-1 동점이 됐으나 페르난도 요렌테의 해트트릭으로 4-1로 달아났다. 손흥민은 후반 18분 요렌테의 해트트릭 완성에 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2분 뒤 이날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루카스 모우라의 패스를 받은 에릭 라멜라가 왼쪽에서 찔러준 패스를 텅 빈 골문 앞에서 툭 차넣어 시즌 13호 골을 기록했다. 페널티킥 골이 무효만 되지 않았더라면 해트트릭을 달성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 됐다. 3분 뒤 델리 알리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토트넘은 후반 막판 교체 투입된 카일 워커가 추가시간 4분 쐐기 골을 뽑아 주전 선수들을 대거 투입한 덕으로 6-1 대승으로 경기를 끝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효리네 민박2’ 이효리♥이상순, 함박눈 맞으며 커플 댄스 ‘싱글벙글’

    ‘효리네 민박2’ 이효리♥이상순, 함박눈 맞으며 커플 댄스 ‘싱글벙글’

    ‘효리네 민박2’ 이효리, 이상순의 모습이 담긴 예고편이 공개됐다.24일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2’ 측은 “눈 덮인 제주 속 두 번째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는 이효리, 이상순 부부의 모습이 담겼다. 여전히 다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편, 오는 2월 4일 첫 방송되는 JTBC ‘효리네 민박2’는 겨울 제주의 풍경을 담을 예정이다. ‘소녀시대’ 윤아와 배우 박보검이 새 직원과 단기 알바생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사진=네이버TV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장인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장인수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장인수 하얗게 함박눈이 내리는 마당은 잠실(蠶室), 누에방이다 누에방에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눈에 뽕잎을 먹을 때 내는 소리는 콩밭에 가랑비 내리는 소리 굵은 빗방울이 연잎에 듣는 소리 포목점에서 비단 찢는 소리 녹두알만한 누에똥이 후두기는 소리는 댓잎파리에 싸락눈 뿌리는 소리 섶에 올라 제 입의 명주실을 뽑아 하얀 고치의 적멸보궁을 짓는 소리는 끝없는 정적으로 들어가는 소리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 함박눈 내리는 날 세상은 적멸의 고요에 감싸인다. 놀라워라, 그 고요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세상은 작은 소리로 가득 차 시끄럽다. 그 소리를 귀로 듣는 게 아니 눈[目]으로 듣는데, 누에가 뽕잎을 갉을 때 내는 소리와 닮았다. 시인은 함박눈 내리는 마당을 누에방이라고 한다. 수천 마리 누에가 뽕잎을 갉고 누에똥을 누며 자라서 마침내 섶에 올라 누에고치를 짓는다. 아, 함박눈 내리는 날은 종일 일손을 놓은 채 눈곱재기창으로 마당을 내다보며 눈 쌓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장석주 시인
  • 폭설에 갇힌 고양외고 스쿨버스 ‘7시간 악몽’

    천식 앓던 여학생은 탈진하기도 고양시 제설작업 안 해 시민 분통 경기 고양외고 1, 2학년생 36명에게 함박눈이 내린 지난 20일 밤은 사춘기의 설레는 추억이 아니라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었다. 적설량이 10㎝도 안 됐지만, 제설이 전혀 안 돼 왕복 4차로 오르막길에서 길게는 7시간 동안이나 통학버스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21일 고양외고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6시 학교를 출발한 대화동 방향 통학버스 2호차는 2.5㎞ 거리인 벽제초교 앞까지는 15분 만에 도착했다. 그러나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를 버스는 오르지 못했다. 뒤로 차량들이 묶여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2시간쯤 지나자 학생들은 지치고 불안해졌다. 참다 못한 일부 남학생이 5~6㎞ 떨어진 원당역으로 걸어가 전철을 타겠다며 “버스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기사 노석태(57)씨는 휴대전화로 부모들의 승낙을 받은 뒤 내려줬다. 2시간쯤 뒤 그 학생들이 “원당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를 해왔다. 그러자 나머지 남학생과 일부 여학생들도 “같은 방법으로 귀가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국 여학생들은 어둠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 안 돼 버스로 되돌아왔다. 그러던 중 평소 천식을 앓던 여학생 한 명이 탈진했다. 119에 전화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자정이 돼서야 학교에서 교사 3명이 비상약과 간식 등을 들고 걸어서 왔다. 구급차는 그로부터 20분 뒤에야 도착했다. 뒤에 있던 승용차들이 언덕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노씨는 버스를 돌려 엉금엉금 학교로 되돌아왔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교내 생활관(기숙사)으로 데리고 갔을 때 시계는 21일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날 버스가 멈춰 선 고양시 덕양구 일대에는 오후 3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9.8㎝의 눈이 내렸다. 고양시 측은 오후 4시 40분 대설주의보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시민들에게 보내고 제설작업도 했다고 밝혔지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시민은 찾을 수 없었다. 한 고양시민은 “눈이 많이 내려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통일로 갓길을 몇 시간씩 걸었고 사람과 차량이 서로 부딪쳐 넘어지는 전쟁 같은 상황도 벌어졌지만 제설차나 경찰관은 볼 수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단독]고양외고생, 폭설로 통학버스에서 7시간 고립…무슨 일이

    [단독]고양외고생, 폭설로 통학버스에서 7시간 고립…무슨 일이

    경기 고양외고 1, 2학년생 36명에게 함박눈이 내린 지난 20일 밤은 사춘기의 설레는 추억이 아니라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었다. 적설량이 10㎝도 안 됐지만, 제설이 전혀 안 돼 왕복 4차로 오르막길에서 길게는 7시간 동안이나 통학버스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21일 고양외고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6시 학교를 출발한 대화동 방향 통학버스 2호차는 2.5㎞ 거리인 벽제초교 앞까지는 15분 만에 도착했다. 그러나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를 버스는 오르지 못했다. 뒤로 차량들이 묶여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2시간쯤 지나자 학생들은 지치고 불안해졌다. 참다 못한 일부 남학생이 5~6㎞ 떨어진 원당역으로 걸어가 전철을 타겠다며 “버스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기사 노석태(57)씨는 휴대전화로 부모들의 승낙을 받은 뒤 내려줬다. 2시간쯤 뒤 그 학생들이 “원당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를 해왔다. 그러자 나머지 남학생과 일부 여학생들도 “같은 방법으로 귀가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화를 받은 부모들은 혼란스러웠다. A(45·여)씨는 “세월호 사건 때도 이랬을까. 막상 일이 닥치니 버스에서 내리라고 해야 할지, 그대로 있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고 했다. 결국 여학생들은 어둠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 안 돼 버스로 되돌아왔다. 그러던 중 평소 천식을 앓던 여학생 한 명이 탈진했다. 119에 전화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자정이 돼서야 학교에서 교사 3명이 비상약과 간식 등을 들고 걸어서 왔다. 구급차는 그로부터 20분 뒤에야 도착했다. 뒤에 있던 승용차들이 언덕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노씨는 버스를 돌려 엉금엉금 학교로 되돌아왔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교내 생활관(기숙사)으로 데리고 갔을 때 시계는 21일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학생은 “감사하게도 선생님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 주셨지만 세면도구와 갈아 입을 옷이 없어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날 버스가 멈춰 선 고양시 덕양구 일대에는 오후 3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9.8㎝의 눈이 내렸다. 고양시 측은 오후 4시 40분 대설주의보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시민들에게 보내고 제설작업도 했다고 밝혔지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시민은 찾을 수 없었다. 한 고양시민은 “눈이 많이 내려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통일로 갓길을 몇 시간씩 걸었고 사람과 차량이 서로 부딪쳐 넘어지는 전쟁 같은 상황도 벌어졌지만 제설차나 경찰관은 볼 수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단독]폭설로 7시간 고립된 고교생들

    경기 고양외고 1, 2학년생 36명에게 함박눈이 내린 지난 20일 밤은 사춘기의 설레는 추억이 아니라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었다. 적설량이 10㎝도 안 됐지만, 제설이 전혀 안 돼 왕복 4차로 오르막길에서 길게는 7시간 동안이나 통학버스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21일 고양외고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6시 학교를 출발한 대화동 방향 통학버스 2호차는 2.5㎞ 거리인 벽제초교 앞까지는 15분 만에 도착했다. 그러나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를 버스는 오르지 못했다. 뒤로 차량들이 묶여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2시간쯤 지나자 학생들은 지치고 불안해졌다. 참다 못한 일부 남학생이 5~6㎞ 떨어진 원당역으로 걸어가 전철을 타겠다며 “버스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기사 노석태(57)씨는 휴대전화로 부모들의 승낙을 받은 뒤 내려줬다. 2시간쯤 뒤 그 학생들이 “원당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를 해왔다. 그러자 나머지 남학생과 일부 여학생들도 “같은 방법으로 귀가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화를 받은 부모들은 혼란스러웠다. A(45·여)씨는 “세월호 사건 때도 이랬을까. 막상 일이 닥치니 버스에서 내리라고 해야 할지, 그대로 있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고 했다. 결국 여학생들은 어둠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 안 돼 버스로 되돌아왔다. 그러던 중 평소 천식을 앓던 여학생 한 명이 탈진했다. 119에 전화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자정이 돼서야 학교에서 교사 3명이 비상약과 간식 등을 들고 걸어서 왔다. 구급차는 그로부터 20분 뒤에야 도착했다. 뒤에 있던 승용차들이 언덕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노씨는 버스를 돌려 엉금엉금 학교로 되돌아왔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교내 생활관(기숙사)으로 데리고 갔을 때 시계는 21일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학생은 “감사하게도 선생님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 주셨지만 세면도구와 갈아 입을 옷이 없어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날 버스가 멈춰 선 고양시 덕양구 일대에는 오후 3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9.8㎝의 눈이 내렸다. 고양시 측은 오후 4시 40분 대설주의보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시민들에게 보내고 제설작업도 했다고 밝혔지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시민은 찾을 수 없었다. 한 고양시민은 “눈이 많이 내려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통일로 갓길을 몇 시간씩 걸었고 사람과 차량이 서로 부딪쳐 넘어지는 전쟁 같은 상황도 벌어졌지만 제설차나 경찰관은 볼 수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20일 밤 전국에 눈...중부지방은 함박눈

    20일 밤 전국에 눈...중부지방은 함박눈

    20일 밤 중부지방에는 또 다시 함박눈이 내릴 것으로 전망됐다. 이번 추위는 21일까지 계속되다가 22일부터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풀릴 것으로 보인다.이 때문에 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꿈 속에서’나 기대해야 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기상청은 “20일은 중국 중부지방에 위치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다가 북서쪽에서 다가오는 저기압의 영향을 받고 추운 날씨를 보일 것”이라고 19일 예보했다. 강추위와 함께 20일 밤에는 전국에 눈이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기상청은 19일 밤 10시를 기준으로 충북 제천, 단양, 음성, 충주, 괴산, 강원 북부산지 및 중부산지, 양구평지, 평창평지, 인제평지, 횡성, 화천, 철원, 경기 가평과 파주, 양주, 포천, 연천 등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된다. 20일은 낮은 기온과 함께 바람까지 더해져 강추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오후부터 21일 새벽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울과 경기, 충남, 전북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3~10㎝ 정도의 많은 눈이 내리겠다. 강원 영서 북부와 서해5도, 제주산지에는 2∼5㎝, 강원 영서 남부와 충북에는 3∼10㎝, 전남에는 1∼3㎝의 적설량을 보이겠다. 이에 따라 기상청은 20일 밤 인천(옹진), 충북 제천, 음성, 진천, 충주, 충남 당진, 홍성, 서산, 태안, 예산, 아산, 천안, 강원 평창평지, 횡성,경기 여주, 안산, 화성, 군포, 안성, 이천, 용인, 의왕, 평택, 오산, 수원, 시흥에 대설 예비특보를 내렸다.기상청 관계자는 “20일까지는 추운 날씨를 보이다가 21일부터는 비교적 따뜻한 남서풍이 유입되면서 기온이 올라 차차 평년기온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닷새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올해도 화이트크리스마스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기상청 중기예보에 따르면 24일 오전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 뒤 오후들어 갤 것으로 예보됐으며 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는 맑게 갠 날씨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신동욱 “종현, 기성세대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신동욱 “종현, 기성세대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샤이니 종현을 애도했다.신 총재는 1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故 샤이니 종현 군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별중의 별 하나가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생전 고인이 남긴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죽을 용기로 살아 라고 하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안 좋은 위로 법’이란 말에 많은 생각을 떠올립니다. 기성세대로 부끄럽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종현은 18일 오후 6시쯤 서울 청담동 한 레지던스(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시설)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종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유족의 뜻에 따라 부검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날 공개된 종현의 유서는 “속에서부터 고장났다”는 글로 시작됐다. 종현은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날 미워했다” “난 오롯이 혼자였다” “도망치고 싶었다” “통증은 통증일 뿐이다” 등의 말을 털어놨다. 종현은 “이만하면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줘.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줘. 수고했어. 정말 고생했어. 안녕”이라는 말로 글을 마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눈이 와요”...윤상현, 딸과 함박눈 데이트 ‘붕어빵 부녀’

    “눈이 와요”...윤상현, 딸과 함박눈 데이트 ‘붕어빵 부녀’

    배우 윤상현이 딸과의 행복한 일상을 공개했다.18일 윤상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러분 눈이와요..(딸) 신 난 당!”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윤상현이 딸 나겸 양과 함께 눈을 맞으며 산책하는 모습이 담겼다. 흰색 외투를 입은 부녀의 다정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카메라를 향해 귀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윤상현 딸의 모습은 귀여운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한편, 지난 2015년 2월 작사가 메이비와 결혼한 윤상현은 같은해 12월 딸 나겸 양을 얻은 데 이어 지난 5월 둘째를 얻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조심조심 넘어질라” 눈밭 출근길…차량·행인 ‘거북이’ 행렬

    “조심조심 넘어질라” 눈밭 출근길…차량·행인 ‘거북이’ 행렬

    18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에 함박눈이 쏟아지면서 출근길 도심 거리를 뒤덮었다. 서울에는 올해 들어 첫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기상청은 당초 서울에 당초 1~3cm가량의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지만 본격적인 출근 시간대인 오전 8시를 앞두고 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일대 혼란이 커졌다. 눈은 밤까지 7cm가량 쌓일 것으로 이날 수정 예보됐다. 패딩점퍼와 머플러에 장갑까지 중무장한 직장인들은 우산을 든 채 뒤뚱거리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빙판으로 변한 길 위에서는 “엄마야!”, “으악!”하며 휘청하는 모습들도 포착됐다. 특히 경사진 골목길 등에선 주변 난간이나 건물을 부여잡고 천천히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역 부근에서 만난 한 김모(39) 씨는 “업무차 서울에 왔는데 눈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며 “아름답긴 한데 길이 많이 막힐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역 주변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설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일정이 늦어질까봐 사진 찍는 관광객의 발길을 재촉하는 관광 가이드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역 앞 에스컬레이터는 함박눈 때문에 가동이 중단됐고 쌓인 출입구 쪽 눈을 치우느라 역사 직원들이 분주히 삽을 퍼날랐다.인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출근한 직장인 오모(30) 씨는 “눈 때문인지 지난주보다 그렇게 춥지는 않은데 행여 열차에 문제가 생겨 지각할까봐 걱정스러웠다”며 “구두가 눈에 미끄러질까 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눈이 다 치워지지 않은 주택가 이면도로나 골목길 일부는 쌓인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됐다. 제설작업이 이뤄진 대로도 노면이 젖어있어 정체가 빚어졌다. 서울 성북구에서 광화문으로 버스로 출근하는 직장인 장모(37) 씨는 “눈이 많이 내려서 평소보다 차가 많이 막혔다”며 “버스를 세워주는 종각 쪽 인도에는 제설 작업이 돼있지 않아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광화문까지 걸어오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평소 승용차로 출근하던 직장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은 평소보다 많이 붐볐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으로 출근한 강모(43) 씨는 “평소 월요일보다 유난히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며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데도 눈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어서 도착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고 전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눈길 드러누운 아들 걷어차는 아빠…누리꾼 공분

    눈길 드러누운 아들 걷어차는 아빠…누리꾼 공분

    눈길에 드러누운 어린 아들을 걷어차는 아빠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개돼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메트로 등에 따르면, 영상은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의 한 건물에서 촬영됐다. 카메라에는 함박눈이 쌓인 도로 위로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 잡혔다. 아이는 눈길에 넘어진 듯 다시 일어나려고 아등바등했지만 아빠는 한발치서 그저 바라만 봤다. 아이가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드러눕자 아빠는 아이를 세게 걷어찼다. 그리고는 아이를 짐짝 다루듯 질질 끌어 일으켜세웠다. 영상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논란이 됐고, 영상 속 남성의 신상도 밝혀졌다. 남성은 현재 아동학대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사진·영상=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별·꽃 모양만 6000개 ‘눈 결정체’ 기온·습도 따라 변신

    별·꽃 모양만 6000개 ‘눈 결정체’ 기온·습도 따라 변신

    “눈(雪)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덴마크의 소설가 페테르 회가 1992년에 내놓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독특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가장 철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인공인 스밀라는 유클리드가 쓴 ‘기하학 원론’을 소설처럼 읽는 과학자이면서 얼음과 눈의 미세한 변화나 차이에 대해서도 금세 알아차리는 놀라운 감각을 갖고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끝이 하얗게 됐다”로 시작하는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설국’은 물론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까지 ‘눈’은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상현상 중 하나로 꼽힌다. 기상청은 지난달 말 ‘3개월(12~2월) 기상 전망’을 발표하면서 12월과 내년 2월은 평년보다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해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구름 속 수분이 얼어 하얗게 떨어지는 기상현상인 ‘눈’은 단순해 보이지만 다양한 과학이 숨겨져 있다. 눈은 일반적으로 상층 기온은 영하권이고 지상 온도는 2도 이하일 때 내린다. 눈의 종류는 크게 ▲함박눈 ▲싸락눈 ▲가루눈 ▲진눈깨비 4가지로 나눌 수 있다.함박눈은 여러 개의 눈 결정이 붙어 눈송이를 만들어 내리는 것으로 1.5㎞ 상공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일 때 만들어진다. 비교적 따뜻하고 습기 많은 공기에서 생긴다. 싸락눈은 흰색의 작은 얼음 알갱이가 떨어지는 현상으로 1.5㎞ 상공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의 찬 공기에서 만들어진다. 가루눈은 밀가루처럼 잘 뭉쳐지지 않는 눈으로 습도와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많이 내린다. 이 때문에 싸락눈과 가루눈이 내리는 날은 함박눈이 내릴 때보다 훨씬 춥다. 진눈깨비는 상공의 기온이 높아서 눈이 내리다 녹아 비와 섞여 내리는 현상이다. 땅에 쌓여 있는 눈이 바람 때문에 날려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도 있는데 ‘날린 눈’이라고 부른다. 눈의 종류는 이처럼 4가지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눈의 결정 모양은 6000여개가 넘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눈 결정 모양은 눈송이 하나에 6개의 가지가 달려 있는 육각형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바늘 모양, 기둥 모양, 장구 모양, 둥근 모양, 불규칙한 입체 모양 등 다양하다. 마치 사람의 지문이 모두 다른 것처럼 똑같은 종류의 눈이라도 눈이 만들어 내는 결정은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별 모양의 눈 결정은 상공 1.5㎞의 기온이 영하 10~20도 사이일 때 만들어진다. 이보다 낮은 기온일 때는 기둥형태나 판상형 결정이 만들어지고 영하 10도보다 높을 때는 바늘이나 육각기둥 모양의 결정이 만들어지게 된다. 눈이 결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사람은 마법으로 알려진 연금술을 과학의 수준까지 높여 ‘닥터 우니베르사리스’(백과전서적 박사)라고 부르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다. 마그누스는 1260년쯤 자신의 책에 ‘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독특한 모양의 결정을 갖고 있다’고 기록했다. 눈송이가 육각형 계통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1611년 ‘육각형 눈송이에 대해’라는 책을 쓴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다. 케플러는 눈송이가 육각형 형태라는 것을 밝혀내기는 했지만 대칭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1665년 현미경을 만들어 세포를 처음으로 관찰한 로버트 훅이 ‘별 모양의 눈 결정에서는 큰 가지에 뻗어 나온 작은 가지는 인접한 큰 가지와 평행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 이후 1820년 영국의 포경업자 W 스코레스비가 96개의 눈꽃 결정을 찾아내고 1855년 영국의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가 151개의 눈 결정을 발견했다.그러나 눈 결정이 지문만큼 다양하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미국의 농부이자 아마추어 눈 사진가 윌슨 벤틀리다. 벤틀리는 현미경을 사진기와 결합한 장치를 만들어 1931년 사망할 때까지 6000여종의 눈 결정을 찾아내 사진으로 남겼다. 이 중 3000종의 눈꽃 사진을 골라 ‘눈 결정’이라는 책을 펴내 아직까지 기상학의 교과서처럼 쓰이고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차량 충격, 네트워크 통해 감지…상담원과 스피커로 즉시 연결

    차량 충격, 네트워크 통해 감지…상담원과 스피커로 즉시 연결

    차량앱 위치·보안·정비 등 확인 요즘 자동차 회사들이 집중하는 첨단기술의 화두를 하나 꼽자면 단연 ‘커넥티드카’다. 커넥티드카의 핵심 가치는 운전자와 차량, 서비스센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차를 만든 데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가능할까. 메르세데스-벤츠가 현재 제공하고 있는 ‘메르세데스 미 커넥트’(Mercedes me connect) 서비스를 통해 현실에 구현된 커넥티드카 기술들을 살펴봤다.# 장면 1. ‘쿵!’ 사고는 순간이었다. 맞벌이 부부인 이 사장은 아내와 벤츠 S클래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 결빙 구간에서 추돌사고를 당했다. 놀란 가슴을 채 쓸어내리기도 전에 차량 스피커에서 벤츠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고객님 차에서 충격이 감지돼 연락드렸습니다. 운전자와 조수석 동승자 모두 괜찮으신지요.” 차체 충격이 감지된 찰나의 순간, 고객센터로 차의 위치와 탑승자 숫자가 자동으로 전달됐다. 이 사장은 응급차가 필요한지를 묻는 상담원에게 “사고가 크지 않아 괜찮다”고 말한 뒤 사고처리를 위해 차 밖으로 나갔다. # 장면2. 얼마 전 생애 첫 수입차로 벤츠 C클래스를 구입한 김 대리는 주차를 할 때마다 여자친구를 밖에서 재우는 기분이다. 해외출장차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길에 함박눈이 내리는 걸 보고 아파트 야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것이 생각났다. 곧바로 태블릿PC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선루프와 창문 등이 꼼꼼히 닫혀 있는지를 살폈다. 김 대리는 이어 동생에게 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동생 역시 스마트폰 앱을 열자 차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된다. 동생은 어렵지 않게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옮길 수 있었다. #장면 3. 벤츠 스포츠유틸리티차를 구입한 이 부장은 자녀를 태우고 스키장으로 향하는 길에 앱을 통해 타이어 공기압이 너무 낮다는 경고 알람을 받았다. 룸미러 옆에 있는 ‘i콜’ 버튼을 눌러 상담 서비스가 연결됐다. 상담원은 낮은 기온 때문에 일시적으로 타이어 공기압이 낮게 나타날 수 있긴 하지만 스키장 주변에 비포장도로가 있는 만큼 되도록 공기압을 높일 것을 권했다. 상담원은 공기 주입이 가능한 타이어 센터 정보를 건넸다. 벤츠코리아는 차량에 탑재된 무선 시스템을 통해 인터넷으로 운전자와 차량, 서비스 센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휴대전화 앱 등을 통해 수시로 브레이크패드 상태, 연료효율(연비)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유지보수가 필요한 경우 차에서 서비스센터로 해당 정보를 자동으로 전달함으로써 안전한 주행환경 관리가 가능하다. 차량 내 버튼 조작만으로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컨시어지 서비스 ‘i콜’, 고장이 났을 때 상담 및 긴급 출동을 요청하는 ‘b콜’, 사고가 났을 때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는 ‘e콜’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서비스는 사고가 없어도 이용하는 i콜이다. i콜은 상담원이 호텔이나 유명 식당을 대신 예약해 주고 차량 내비게이션을 통해 호텔이나 식당까지 안내해 주기도 한다. 이의경 벤츠 코리아 차장은 “스마트폰을 검색해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고 예약하고 식당 위치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해야 하는 등의 번거로운 일을 차와 회사가 대행해 주는 셈”이라면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추가 제공해 미래 서비스의 상용화를 최대한 앞당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12월의 즐거움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12월의 즐거움

    마침내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아, 12월! 토요일은 어김없이 약속이 잡혀 있고, 송년회니 뭐니 이런 일 저런 일, 당최 한가한 날이 없구나. 12월은 다만 며칠이라도 길었으면 좋겠다. 가령 한 해의 끝이 12월 40일이라면 다소 느긋하게 세밑을 보내고 침착한 활기로 새해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한 해의 첫달인 1월과 본디 짧은 2월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달에서 하루씩 빼서 12월에 몰아주면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12월생이 아주 많아지겠지. 내가 12월생이어서 잘 아는데, 생일이 12월에 있으면 왠지 친구들이 잘 기억해서 선물을 많이 받는다. 아마 12월이 선물의 달이기 때문에도 그러하리라.‘12월과 선물’ 하면 내가 그리 앙심이 깊은 인간이 아니건만 근 50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생일이라고 아버지가 500원을 주셨는데 옆에 있던 언니가 낚아챘다. 자기가 선물을 사서 주겠다는 것이다. 못마땅했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장녀인 언니의 카리스마에 눌려서도 그랬고, 욕심 없고 순하다는 당시의 내 이미지 때문에도 그랬다. 그날 저녁 언니가 사와서 안겨준 선물은 플라스틱 장난감 전화기였다. 내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아마 창백하게 굳었을 내 얼굴을 못 본 체하며 언니가 방을 나간 뒤, 어찌나 분하던지 나는 장난감을 벽에다 힘껏 팽개쳐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언니한테 미안하고 웃음이 난다. 정해진 용돈은 적고 씀씀이 헤픈 여중생이 돈에 관심 없다고 생각되는 동생 것좀 중간에서 챙겼기로서니. 더욱이 12월이면 돈 쓸 일이 좀 많은가.12월이 선물의 달인 건 흔히 선물을 주고받는 크리스마스 영향이기도 할 테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고마운 사람, 미안한 사람, 외로운 사람, 삶이 고달픈 사람을 새삼 떠올리게 되어서이리라. 아파트 경비원과 택배원이나 우편 집배원에게 작은 성의를 보이고, 이웃의 독거 노인을 한 번쯤 살펴 챙기는 달. 동네를 지나는 버스의 운전기사나 마침 타게 된 택시기사 양반에게 느닷없이 선물을 건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흥청거리는 12월! 머지않아 ‘저 놈의 눈, 지겨워 죽겠어!’ 하고 투덜거리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겨울의 초입이어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 반갑기만 해서 깃털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리라. 12월의 즐거움 중 하나는 11월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11월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1월, 그 황량함을 나는 힘겨워하지만 또한 얼마나 사랑하는지. 11월은 씁쓸쌉쌀하고 12월은 달콤하다. 시간이 꽉 찬 숫자로서도 흥성한 12월. 12월이면 시간에 쫓기는 것은 만남도 흥성해서다. 초대하거나 초대받는 일이 많은데, 그 장소가 카페나 식당일 때도 있지만 집에 손님을 들이기도 하고 남의 집에 가게 되기도 한다. 언젠가 한 친구를 김치찌개 하나 끓여 놓고 밥 먹으러 오라고 해서 그가 어이없어하며 실망을 숨기지 못한 적이 있다. 사람 함부로 부르는 거 아니구나 하고 반성했다. 그는 집에 손님을 맞을 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인 것이다. 꽃병에 싱싱한 꽃을 꽂고, 맛깔스레 음식을 장만한다. 그라면 결코 그런 무성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테다. 친구야, 다음부터는 고루 익히려다가 번번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버리는 ‘계란 프라이’라도 곁들일게. 지난달에 한 친구가 자기 동네 주민센터에서 ‘손님 접대’라는 강좌를 수강 신청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데다 12월을 앞둔 터라 친구들을 초대할 날들을 대비했나 보다. 50대 초반 남성인 그가 ‘손님 접대’를 배우려는 것이 기특하다. 그의 초대가 기대된다. 나도 그 강좌를 들어야 될까 보다. 어제 남산도서관에 갔다가 주차장에서 나무들을 한참 올려다봤다. 이맘때 나무들은 잎 진 뒤의 고스란한 몸매가 하늘빛 아래서 서늘하니 아름답다. 사람 손이 닿지 않게 높다란 우듬지도 자연의 정원사 손길로 깔끔하고. 그나저나 올겨울이 너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대지방의 특성이라는 한겨울의 삼한사온 날씨도 언제부턴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몹시 추운 날이 계속돼도 사흘만 지나면 날이 풀리리라는 생각으로 견뎠는데, 그것이 사온이었던가. 다음날부터 더 추워지는 지긋지긋함이라니. 다들 따뜻한 겨울 보내시라.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전국의 문화 버무린 서울… 이젠 고유의 맛 물려줄 때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전국의 문화 버무린 서울… 이젠 고유의 맛 물려줄 때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5회차 ‘서울의 멋과 맛’ 편이 지난 25일 서울 인사동과 을지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올해 마지막 탐사였다. 지난 5월부터 장장 25주 동안 매주 토요일 오전에 계속된 미래투어를 통해 시민들의 뜨거운 서울 사랑을 확인했다. 6개월간 회당 평균 35명씩 모두 875명이 서울미래유산의 가치에 공감하고, 그 향기를 공유했다. 이날 일행이 인사동 목인박물관 옥상에 올라가 단체사진을 찍을 즈음 함박눈이 내려 행사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해 주는 듯했다. 보신각에서 시작된 탐사는 청계천 마전교 위에서 3시간 만에 완료됐다. 해설과 진행을 담당한 서울미래유산팀 이소영·전혜경·박정아·황미선·김은선·최서향 지도사와 일반 참가자들이 어울려 방산시장 안 은주정에서 삼겹살과 김치찌개로 조촐한 쫑파티를 가졌다. 해설은 노주석 서울미래유산 지도사가 맡았다.현대는 지구도시화(Gluurbanism)의 시대이다. 국가보다 도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가 되었다. 도시는 미래의 질서이며, 도시문화는 미래사회 최고의 가치로 떠올랐다. 서울은 명실공히 한민족이 창조한 최고의 도시이다. 서울은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 일본의 도쿄와 교토,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를 합쳐놓은 국내 위상을 갖고 있다. 산과 강, 바다를 동시에 끼고 있는 천혜의 도시는 서울밖에 없다. 서울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이 곧 서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논하기 어렵다. 도시문화란 도시의 정체성이다. 도시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이며 정치적 미래를 결정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서울문화란 다른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서울만의 독톡한 색깔과 향기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서울의 고유성, 서울의 특성을 나타내는 서울문화의 원형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됐을까. 서울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지만 불행하게도 스스로 빛나지는 않는다. 서울의 중앙집중력은 강력하나 지역적 특성은 허약한 탓이다. 서울문화는 서울이 낳은 자체적 고유문화라기보다는 전국적 문화콘텐츠의 종합 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문화의 비빔밥 격이다. 서울의 고민은 지나친 중앙 집중성으로 말미암아 지역 고유성을 상실한 데 있다. 서울이 고유한 지역적 특성을 갖추지 못한 까닭은 서울의 생성과 진화가 외부의 힘에 의해 비롯됐기 때문이다. 서울의 기원을 이루는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수도 위례는 고구려의 유민이 일궜고, 조선의 수도 한양의 상층부는 고려 개성에서 옮겨 온 개성주민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주도권은 현해탄을 건너온 일본인에게 넘어갔다. 서울의 터줏대감들은 계속해서 외곽으로 밀려났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이북 피란민들과 전국에서 상경한 지역민들이 서울의 주인 행세를 했다.왕의 도시라는 점도 한계이다. 서울은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덕수궁 등 5대 궁과 종묘·사직으로 이뤄진 궁궐과 제례의 도시이다. 1개의 도성 안에 5개의 궁궐을 가진 세계 유일의 역사도시이다. 왕과 관직을 독점하는 극소수 경화사족(京華士族)이 움직이는 행정도시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서울인구 20만명 중 1만명이 과거와 관련된 유동인구일 정도로 교육이 지배하는 도시였다. 또 전국의 상권과 유통망을 장악한 시전상인들, 잡역을 도맡은 아전과 노비들이 뒤를 받쳤다. 서울은 자체 생산력은 없는 철저한 소비도시였다. 서울은 왕과 종친, 경화사족, 양반이 10% 이내의 지배층을 구성했고,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거주하는 군인과 아전·서리 같은 중인계층, 시전상인 등 장사꾼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하인과 노비였다. 서울문화 자체가 궁중문화와 중인문화로 양분됐다. 서울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낡은 세대의 여인네 같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사람이 인구의 절반인 500만명에 육박하지만 여전히 서울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만인의 타향’이다. 수도, 중앙, 특별시에 현혹돼 서울 본연의 가치와 서울 고유의 전통을 창조하는 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민 대부분이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도시 고유의 문화정체성을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서울 본연의 색깔을 되찾고, 서울 고유의 향기를 만들어서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더이상 이주민들의 도시가 아니라 뉴요커, 파리지앵처럼 자부심을 가진 원주민의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궁궐의 도시, 성곽의 도시 같은 도시 이미지를 단박에 나타내는 정체성과 자신을 서울토박이, 서울내기라고 당당하게 나타내는 도시멤버십의 정립이 필요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더욱 알찬 프로그램과 코스로 찾아뵙겠습니다. 기사와 자료는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과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목숨으로 일제 항거한 영혼…눈비에도 새벽 열었던 민초…그 역사가 ‘다시 세운’ 도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목숨으로 일제 항거한 영혼…눈비에도 새벽 열었던 민초…그 역사가 ‘다시 세운’ 도시

    눈 오는 인사동을 걸으려고 일부러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서울 미래 유산 투어의 마지막 일정이 있던 날, 인사동에 함박눈이 쏟아졌다. 곧 얼음 눈과 비로 변하긴 했으나, 특별한(?) 정취를 느꼈다.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터에서 나라를 걱정한 조선관리를 보았다. 태화관(태화복지재단)에는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상상 속의 독립선언문 낭독은 민족대표가 군중 앞에서 엄중하게 독립을 선언하고 뒤이어 우렁차게 만세를 외치는 모습인데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답사 내내 따라다녔다.천도교 중앙대교당에 다다랐을 때 눈 맞고 비 맞아 손이 무척 시렸는데, 관계자의 배려 덕분에 교당 안으로 들어가서 마음과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종묘 쪽으로 좀더 걸으니 용성 스님이 계셨던 대각사가 나왔다. 만해 한용운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민족대표에 참여하신 스님이라고 한다. 대각사 일주문 꼭대기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옥살이하는 스님, 그 앞을 지키는 순경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공원을 지나 세운상가에 다다랐다. ‘다시세운’이라는 카피가 눈에 들어왔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첫 주상복합 건물이라고 한다.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건물이었다. 2014년 도시재생사업으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운상가에서 대림상가까지 이어져 있는 공중보행도로를 걸으니 청계천을 따라 공중 부양해서 걷는 기분이었다. 1960년대엔 세간의 부러움이었고,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다 90년대 이후 쇠락해서 2000년대엔 잊히다가 다시 돌아온 세운상가에 시간을 내어 또 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광장시장과 방산시장은 여전히 북적였다.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활기와 젊음이 느껴졌다. 다시 세운 나라는 자결로 망국의 부당함을 고발한 관리, 독립을 자신의 안위보다 우선순위에 둔 각계의 리더들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을 열었던 민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세운 나라의 흔적을 기억하고, 발로 밟고,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서울미래유산 답사단을 통해 소중한 역사가 미래로 전승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눈비도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갰다.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임시로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 1명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심선택 소위, 신봉순 대위)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권유상 인터뷰 ●일시 1998년 1월 19일 ●장소 인천 부평외국어고등학교 교장실 ●대담 권유상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아들)[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회]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서울대 사범대학 2학년생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2년: 인천송림국민학교 5회 졸업 1948년: 인천공업중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입학 1950년 9월 20일: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취임 1950년 12월 18일: 경남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를 향해 남하 1951년 1월 10일: 국민방위군 사건을 듣고 최종목적지를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서 부산의 육군 제2 훈련소로 변경 1951년 1월 15일: 23살의 서울대학교 2학년 학생이어서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중학생들과 같이 사병으로 자원입대 1956년 2월 25일: 5년 1개월을 복무하고 만기 제대 #나와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147번지에서 태어난 나(권유상)는 인천송림국민학교와 인천공업중학교(현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때 6·25 사변이 일어났다. 9·15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지역은 북한 인민군치하에서 학정에 시달리던 우익학생들이 모여서 인천학도의용대를 만들어 활동 중이었고 그 본부는 용동에 있었다. 1950년 9월 20일쯤 인천학도의용대에서 나를 3대대장으로 임명하여 나는 인천주안국민학교를 대대본부로 정하였다. 우리 3대대 구역은 남구, 남동구, 연수구였고 대원은 약 1000명이었다. 우리 3대대의 대대부관은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조태휘였고 1중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6학년 권용훈, 2중대장은 인천중학교 6학년 이용구, 3중대장은 고려대학교 2학년 최수보였다.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 통영을 향해서 남하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전 대원 3000여명이 인천축현국민학교에 모두 모여서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에서 파견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의 인도에 따라 경상남도 통영의 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목표로 남하 행진을 시작했다. 그 날은 함박눈이 왔고 국도를 따라서 수원, 대전, 대구,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쳐 통영의 충렬국민학교를 향하여 매일 25㎞(동인천역에서 영등포역 거리 정도)씩 20일간 500㎞ 거리를 인천지역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 약 3000명이 대학생 형들을 따라 도보로 남하했다. #“우리는 인천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 인천학도의용대는 걸어서 내려가다가 밤이 되면 농업조합(당시 농민을 위한 기관)을 찾아가 “우리는 인천에서 남하하는 학도의용대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히면 밥을 해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줬다. 우리는 인천을 떠난 지 20일 만에 최종 목적지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 가까운 마산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가는 걸 주저한 채 마산에 있으면서 인천학도의용대(대장 이계송) 본부에 보고했다. #국민방위군과 국민방위군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해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군대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국민방위군 약 9만명이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관련 장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고향 인천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 1951년 1월 초 우리 3대대 부관 조태휘가 나에게 마산의 해병대 6기 모집에 관하여 보고했다. 대부분의 우리 3대대 대원들이 해병대에 지원했고 해병 신체검사가 끝난 후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6기 해병대원은 대부분 인천 지역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다. 나는 우리 3대대의 합격자들에게 “해병대에 가더라도 인천학도의용대의 긍지를 잊지 마라. 그리고 다시 고향 인천에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라”는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해병6기는 거의 인천출신 중학교 4~6학년 학생 그때 해병 6기 모집에 합격한 대원은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고 탈락한 대원들은 2·3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때 나도 해병대로 자원입대할까도 생각했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작아서 탈락한 대원들 때문에 도저히 해병대에 입대할 수 없었다. 탈락한 어린 대원들이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아우성에 나는 “너희들과 같이 행동 할 테니 우리 다 같이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기자”며 어린 중학생들을 달랬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갑자기 군인으로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향하던 인천학도의용대는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로 입소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고 우리들은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약 8시간 걸려 부산항에 도착하여 육군 제2 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 날 입소했다. 부산진국민학교에 있었던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한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란 존재는 사라졌고 갑자기 중학생에서 군인이 되었다. 그 후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로 가라 해서 많은 인천지역 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나를 포함하여 통신병 교육을 받고 통신병이 되었다. #인천 여학생들의 은인, 신봉순 대위님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내려왔던 많은 여학생 대원들은 오갈 데가 없어서 매우 어려웠었다.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의 신봉순 대위님은 여학생들을 통신학교 행정보조 업무를 하게 하며 보살폈고 4개월 뒤 여학생들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통신병으로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으로 있었는데 많은 인천학생들을 통신학교로 입교시켰다. 신 대위님은 지휘관 옆에 있는 통신병이 좀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어린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이끌어 주셨다. #“우리 대대장님 누룽지 드세요” 어느 날, 여학생 몇 명이 누룽지를 가져와서 ‘대대장님 드세요’라고 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서로를 감싸주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육군 중위 장교임관을 거절하고 사병으로 입대 1951년 1월 10일 나는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1956년 2월 만기 제대하였다. 국가위난의 6·25때 나라를 지키겠다고 뭉친 인천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은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 입대 후 참전하여 청춘을 채 펴 보지도 못하고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전선에서 보냈다. #“내가 이끌었던 3대대 대원들도 많이 전사”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으로서 어린 중학생들을 인천에서 부산까지 내 나름대로 판단하여 한 점 부끄럼 없이 이끌었지만 너무나 큰 국가 위기로 인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힘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3대대 1000명 중에서 100명 정도 전사했다는데 시국이 너무 급박하여 형으로서, 대대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직까지도 한(恨)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아무쪼록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발굴 작업이 성공하기를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2회 계속 참전기 1회를 마치며… ●이경종 위원이 전하는 말 권유상 옹은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23살에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5년 후 28살에 만기 제대한 인천지역 어린 중학생들의 훌륭한 형이었다. ●이규원 위원장이 전하는 말 살아 계시다면 올해 90살이 되신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1·4 후퇴 때 인천에 남아있었으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거나, 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가서 굶거나 얼어 죽을 운명의 인천학생들을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서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지만 208명이 전사하여 제대 후 고향 인천에서 전사 학생 부모님들로부터 “우리 아들 전쟁터 데려가서 죽었다”라는 비탄의 말을 들었고, 일평생 동안 동생 같았던 전사 학생들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참전 대학생 형들이 인천에 있었다.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저의 아버지(이경종)를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주신 권유상 3대대장님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덕유산 폭설… 떠나기 싫은 추위

    덕유산 폭설… 떠나기 싫은 추위

    27일 전북 무주군 덕유산 향적봉대피소에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오전 덕유산 지역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지면서 오후까지 봄을 시샘하는 폭설이 내렸다. 무주 연합뉴스
  • [新전원일기] 칡 봤다 心 봤다 돈 봤다

    [新전원일기] 칡 봤다 心 봤다 돈 봤다

    강원 홍천의 산과 산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한참 동안 숲길을 달렸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광은 당장이라도 자리잡고 앉아 신선놀음이라도 하라고 말하는 듯 자태를 뽐냈다. 함박눈이라도 흠뻑 내려 모든 나무에 옷이라도 입혔다면 경치에 홀려 아마도 그 자리에 멈춰 섰으리라. 유독 흐린 날씨 덕에 산등성이를 따라 둘러진 안개가 운치를 더하는 데 한몫 톡톡히 했다. 홍천군 북방면 산자락에 위치한 ‘파머대디’ 농장은 밖에서 바라본 풍경보다 그 속살이 훨씬 더 고즈넉하며 낭만적이었다. 이정호(36) 대표가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도 그런 자연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30만평 규모의 농장은 해발 350m부터 800m를 아우른다. 그 둘레길만 해도 8㎞가 넘어 걸어서 둘러보려면 족히 다섯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5㎞나 되는 ‘메타세쿼이아 길’은 로맨스 영화라도 한편 찍고 싶을 만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나를 가장 매료시킨 것은 20년 묵은 야생 칡이었다. 못해도 10㎏은 족히 나가 보이는 굵직한 칡을 캐낸 이 대표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칡 봤다!” 한창 채취철인 요즘, 굵고 큼직하고 싱싱한 칡을 캐내는 일만큼 그를 신명 나게 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칡즙부터 한잔 시원하게 드셔보세요. 정신이 맑아질 겁니다. 100% 칡즙이거든요.” 나는 꽁꽁 언 손을 녹일 새도 없이 이 대표가 건네준 칡즙을 단숨에 들이켰다. 오롯이 칡만 짜낸 즙이라 향과 맛이 코와 입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꽤 오래도록 머물렀다. 정말 자연 그대로의 맛이었다. 농장의 맑은 공기 덕에 폐부까지 정화된 듯했는데 칡즙까지 마시니 한층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말의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서른넷의 나이에 도시를 떠나 귀농한 지 3년차에 접어든 젊은 농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꽤 잘나가는 한정식 음식점을 하던 그가 모든 것을 접고 이 첩첩산중으로 들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귀농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었어요. 복잡한 도시를 떠나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자연에서 땀을 흘리면 그 노력한 만큼 결과를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때마침 오래전부터 귀농을 준비했던 가족이 땅을 매입하자, 그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흙이라고는 만져본 적도 없던 그가 처음 시작한 농사는 ‘맷돌호박’(늙은호박·한식에서 사용하는 늙어서 겉이 굳고 씨가 잘 여문 호박)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1만평 넘게 심었지만 첫해 매출이 총 700만원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수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고작 150만원이었다. 게다가 농약을 치지 않아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호박이 대다수여서 결국 맷돌호박 1t을 50만원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1㎏에 겨우 500원을 받았던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가지, 고추, 옥수수, 표고 농사 등 해보지 않은 게 없을 만큼 여러 작물에 도전해 봤지만 지형적 난관 때문에 모두 포기해야 했다. 농장 자체가 비탈진 산이다 보니 포클레인과 트랙터가 뒤집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기계를 못 쓰면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데 그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모든 농사를 접고 산 곳곳에 묻혀 있는 칡을 직접 캐기 시작했다. 30만평이 모두 산이니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칡을 캐서 즙으로 내려봤더니 주변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사서 먹고 싶다는 거죠. 그때 건강즙을 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어요.” # “하루 1t 채취… 첫 2년간은 산에 텐트 치고 살아” 그는 홍천기술센터와 강원도의 청년 지원 자금을 받아서 가공공장을 지었다. 그가 ‘파파건강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건 올 1월이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매출이 2억원을 웃돈다. 잣 생산까지 포함하면 올해 전체 4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칡을 채취하는 철에는 주문량이 많아 소비자가 일주일씩 기다려야 될 정도다. “젊은 농부가 산속에서 직접 캐서 즙으로 만드는 걸 내가 직접 봤다, 이건 진짜다,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나면서 인기가 좋아졌어요. 심지어 약도 안 치고 야생 상태로 키운 칡이라고 해서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 거예요. 그게 큰 힘이 됐죠.” 그는 하루에 1t 정도의 칡을 캔다. 만만치 않은 양이다. 지금이야 주문량이 많아서 여러 명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처음에는 인건비 때문에 직접 캐러 산을 누비고 다녔다. 게다가 2년 동안은 산 중턱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일이 많아 남양주에 있는 집까지 오고 가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저는 지문이 없어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다 지워졌죠. 그래서 인감을 떼야 할 때도 지문이 없어서 못 해요. 일을 계속 하니까 다시 지문이 생길 겨를이 없는 거예요. 한번 보세요.” 농사꾼의 손이 그러하듯 그의 손에는 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의 그러한 성실함과 진심을 아는 사람들은 파파건강즙의 단골이 된 지 오래다. 좋은 재료로 만든 먹을거리를 소비자들은 분명 알아보기 마련이니까. 그의 건강즙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는 것도 보존료를 전혀 쓰지 않고 수확하자마자 바로 100% 착즙하거나 다려내는 신선도 때문이다. “사실 보존 재료가 들어가야 유통 과정에서 좀더 안전하긴 하지만 저는 절대로 넣지 않습니다. 바로 캐서 첨가제 없이 바로 가공하는 것, 이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제 원칙이에요.”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소비자와 오래도록 연결될 수 있는 최고의 힘이라고 했다. 고객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들겠다는 신념이 그가 가공뿐만 아니라 유통 전문기관을 쫓아다니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다. # “판로 99%인 온라인 판매는 키워드가 가장 중요” 파머대디 농장의 대표 건강즙은 단연 칡즙이다. 양배추사과즙도 인기가 많다. 양배추브로콜리사과즙과 도라지배즙도 매출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칡 이외에 이 대표가 직접 재배하는 작물은 돼지감자와 호박이다. 나머지 양배추, 브로콜리, 사과, 배는 가까운 농가와 계약을 맺어 재배하고 있다. 사실 이 대표가 처음 귀농할 때만 해도 건강즙을 만들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험 삼아 해본 일이 직업이 되고 매출을 올리는 효자 사업이 된 셈이다. 처음에는 부푼 꿈을 안고 가공공장을 지었지만 정작 판로가 문제였다. 홍보와 마케팅 부재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곧바로 쇼핑몰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인터넷 마케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농업하는 사람은 인터넷을 몰라도 된다는 건 구시대적 사고 방식입니다. 가장 잘 알아야 하고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해요.” 그는 온라인에서는 ‘키워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키워드’를 파악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앞에서 칡즙을 팔면 소용없어요. 떡볶이를 팔아야죠. 또 목욕탕 앞에서 양말과 수건을 팔면 장사가 된단 말이에요. 그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온라인도 마찬가지거든요. 내 상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만 잘 매칭시키면 돼요.” 가령 칡즙이 갱년기에 좋다고 하니 ‘갱년기에 좋은 음식’을 치면 연관어로 뜰 수 있게 끊임없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해 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 결과 이 대표는 제품 판로의 99%를 인터넷 쇼핑몰로 해결하고 있다. 이제는 바야흐로 농민들도 마케팅을 알아야 하는 시대다. 그저 농사만 잘 지어서는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자신의 제품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일이리라. “만약 귀농을 준비하는 분이 계시다면 무조건 온라인 마케팅을 배워야 해요. 무언가 만들어 팔 생각이라면 더욱 농사만 공부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의 진심어린 조언이다. # “돈보단 사람들이 쉬어 갈 수목원 만들고 싶어요” 한참 이야기를 쏟아내던 이 대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우리를 잡아끌었다. 차를 타고도 한참 올라가서야 그는 차를 세웠다. 더이상 차로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수백년 된 밤나무, 벌나무, 헛개나무, 엄나무, 자두나무, 벚나무, 잣나무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15만평에 자리잡은 잣나무는 연 매출 2억원을 만들어 주는 효자 중의 효자다. 뿐만 아니라 능선을 따라서 5만평 정도의 산양삼도 심어 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더 지나 이 대표가 정성껏 어루만진 후에는 5㎞나 되는 메타세쿼이아 길과 3㎞ 정도의 벚꽃나무길이 일등공신이 되어 주지 않을까. 그렇다.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농장의 모습은 경관이 아름다우면서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가 농장의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꽃이 피면 경관이 되는 체험의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함이다. “누구든 편안하게 와서 즐기다 갈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돈을 벌기 위한 것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수목원, 휴식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드는 게 제가 제 자신에게 주는 비전입니다.” 이 대표는 ‘홍천 네이처파크’라고 이름도 지어 놓았다. 한국말로 풀면 그야말로 ‘자연농원’이다. 풍성한 나무와 꽃이 만발하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와 돼지감자도 캐고 칡도 캐보며 “심봤다”를 외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글쓴이 방송작가 한정원 ‘6시 내고향’, ‘생방송 투데이’, ‘주주클럽’, ‘TV내무반 신고합니다’, ‘기분 좋은 날’, ‘여유만만’ 등 다수의 TV 프로그램 참여. ‘지식인의 서재’, ‘CEO의 서재’, ‘명사들의 문장강화’, ‘명인명촌’ 등 출간.
  • [新전원일기] 부부 인생에 구구절절 핀 구절초… 삶이 꽃같네

    [新전원일기] 부부 인생에 구구절절 핀 구절초… 삶이 꽃같네

    계절이 깊어 간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들판은 황금빛 물결이다. 산야의 가을꽃들이 만개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간다. 가을꽃으로는 단연 노랗고 하얀 국화가 으뜸이다. 전국에서 국화꽃 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외래종에 밀려 우리의 토종 야생화들은 언제부터인가 보기 드물어졌는데, 일부러 옮겨 심어 가꾼 야생화 축제 소식도 반갑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코스모스에 자리를 내주었던 우리 꽃 구절초도 산에서 내려와 길가까지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의 푸른 산자락을 병풍처럼 두르고 조성된 6000여평의 ‘구절초 피는 마을 하립골’에도 밤새 함박눈이 내려 쌓인 듯 하얀 구절초 꽃이 만개해 뒤덮였다. ‘꽃차 연구소’ 건물 뒤편에 자리한 야생화 정원의 꽃들도 선비정, 삿갓정 등 양끝으로 단아하게 서 있는 정자를 사이에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록달록 피어난다. 정자에 올라앉아 달콤한 한과를 한입 깨물어 먹고 향긋하게 우린 차를 마시며,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구절초 밭을 내려다보고 산자락에 걸린 구름을 올려다본다. 꽃길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따스하고, 부는 바람마다 꽃 내음이 실려 있다. 잠시 나를 잊고 세상 시름도 잊고, 먼 곳의 국도를 달리는 차들의 행렬이 가엾다. 저리 바삐 어디로들 달려가는 것일까. # 처음엔 한 귀퉁이에 심어… 틈틈이 야생화 공부 ‘구절초 피는 마을 하립골’의 용금옥(57·여) 대표와 신용성(59)씨 부부가 처음 이 터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의 일이었다. 당시 부부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이었고, 인근 마을의 주민인 이모의 권유로 44번 국도에서 바로 보이는 삿갓봉 아래의 땅 1500평을 구입했다. 길도 없는 맹지였지만 살던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꼭 갖고 싶은 땅이었다. 어쩐지 놓치면 안 될 것만 같았던 그 간절한 바람. “그런데, 팔았던 아파트가 1년 만에 두 배로 뛰더라고요.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이 땅이 너무 좋았거든요.” 태어나서 자란 고장의 흙냄새와 풍광이 그리웠던 것이리라. 용 대표의 고향 역시 이곳 홍천이었다. 땅을 사 놓고 밭을 일구기 위해 주말마다 오르내렸다. 고된 직장 생활의 와중이었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몇 년 뒤 바로 옆의 땅을 더 구입해 한 귀퉁이에 그 무렵부터 알아 가기 시작한 각종 야생화를 심었다. 2002년에는 지금 집터가 있는 땅을 구입하고, 2004년에 자그마한 농가 주택을 한 채 지었다. 길가에 있는 밭을 조금씩 구입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인근 땅의 주인들을 찾아다니며 허락을 받아 길을 냈다. 그 길을 내는 과정만으로도 소설책으로 한 권이란다. 그때마다 비용은 적금을 찾기도 하고 대출을 받기도 하여 충당했다. # 퇴직 후 건국대 꽃차 소믈리에 과정 수료·자격증 처음에는 관상용으로만 심었던 구절초 군락이 점차 넓어지며 일대를 뒤덮었다. 보고만 말기에는 아까워 찾아보니 예로부터 약재로도 쓰이던 것이었다. 양이 두 번 겹친다는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에 그 꽃이 만개해 아홉 번 꺾는다는 구절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어 위장병을 비롯해 월경 불순, 자궁 냉증 등의 부인병 약재로 널리 쓰여 왔다. 중금속이나 니코틴 등 몸의 독소를 배출시키고, 혈관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씻어내 면역력을 높이고, 살균 작용도 해 기관지염과 감기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용 대표는 틈틈이 야생화 공부를 하며 꽃을 따서 차로 만들어 먹고, 비누로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써보니 좋아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더러 팔라는 사람들이 있어 약간의 비용만 받고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른 퇴직 후 본격적으로 꽃차 연구를 시작해 2012년 건국대에 꽃차 소믈리에 과정이 생겼을 때에는 1기로 수료하고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직접 가꾸는 야생화만 해도 30여종이 되었고, 뒷산에는 각종 야생화와 야생초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 딸·아들 이름서 한 자씩 따서 지은 ‘하립골’ ‘하립골’이라는 이름은 딸 제하씨와 아들 경립씨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2012년 상표 등록을 하고 제조 허가를 받았다. 농협에서 30여년간 근무한 남편 신씨가 정년 퇴임하며, 용 대표가 혼자 하던 꽃차 연구소의 일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이곳에 내려와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게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작은 농가 주택이었던 것을 꽃차 공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리모델링해 넓히고, 꽃차 체험 오시는 분들을 위해 묵을 방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 한쪽에 미니 이층으로 별채를 짓게 되었는데, 이층을 서재로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혹해서는 그만….” 신씨는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다. 2015년 작품집 ‘거인의 내력’을 출간한 바 있다. 전업 작가로서 퇴직 이후의 삶을 나름 설계하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사실, 퇴직 후의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안정적으로 작품을 쓰기 위해서라도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였죠. 그런데 새로 집을 짓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정원을 꾸미고 하는 일들이 매일 시행착오였습니다. 농사고 집 짓는 일이고, 뭐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구절초 밭도 야생화라고는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그냥 다 풀밭이 되거든요. 매일 풀과의 전쟁이죠. 또 꽃을 수확해서 쪄서 말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깨끗이 씻어서 감초 우린 증기에 찌고, 먼지 앉지 말라고, 저기 보이는 저 대형 비닐하우스 안에서 하나하나 일일이 베 보자기에 펴서 말리고, 이 포장 디자인이며 아내가 직접 다 한 거랍니다. 일체의 공정이 다 수작업이에요. 아내에게 미안해 책상 앞에만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돕다 보니… 사실, 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 2013년 매출 2500만원… 작년엔 6000만원 ‘껑충’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 가득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이야기가 있는 마을, 구절초가 있는 마을 하립골을 지방의 작은 문학 공간으로도 꿈꾸는 그의 바람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너른 잔디 마당에서 음악이 있는 문학제를 개최하고, 달빛 아래 낭독회도 꿈꾼다. 작가들을 초청해 독자와의 만남도 갖고, 작은 독서 모임도 꾸릴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꽃길 하나, 물길 하나, 물레방아 놓을 자리, 야생화 정원의 침목 하나, 주차장의 자갈 하나에도 그의 고민과 손길이 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손의 흙을 털고 춘천으로 향한다. 현재 강원대에서 문예창작학으로 박사과정을 공부 중이기 때문이다. 현관 입구 쪽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낯선 차가 저 아래 꽃길 사이의 언덕을 올라온다. 지나다가 예쁜 정경에 반해 들어오게 됐다며 구경해도 좋으냐고 묻는다. 부부는 반갑게 일어나 맞으며 얼마든지 둘러보시라고 말한다. 사진기를 꺼내 든 일행이 저 아래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하얀 꽃길로 앞다투어 사라진다. 지난해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시행하는 공모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가 채택돼 보조금 2500만원을 받았다. 대출금이 아니라 순수 지원금이었다. 건물 뒤편의 야산을 정리해 야생화 정원을 조성하고 정자를 세웠다. 홍천 농업기술센터에서도 포장재 등의 비용에 대한 보조금이 지원됐다. 지인들과 꽃차 협회 회원 등이 주로 방문해 체험하던 공방이 블러그(http://blog.naver.com/ssp154)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며 논산, 영월, 제주도 등지에서 단체로 벤치마킹을 왔다. 전국 각지의 박람회에서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올봄에는 미시령 꽃길 조성을 위해 속초시에서 구절초 싹을 대량으로 구매해 갔다. 경남 삼랑진에서도 강둑길 조성을 위해 구매해 가고, 마을 단위로 몇 십 박스씩 주문이 들어왔다. 가을이면 생화 판매가 급증한다. 겨울이면 대궁을 잘라 즙을 짜서 포장하고, 먹기 좋게 환으로 만들어 판다. 2013년 2500만원 정도 하던 매출이 2년 만인 지난해는 600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박람회를 다녀 봐도 그렇고, 오시는 분들 말씀을 들어 봐도 그렇고, 여기 꽃이 유난히 품질이 좋더라고요. 선별해 채취를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토양과 환경이 특별하기 때문인 듯해요. 워낙 청정 지역인데다, 보시다시피 하루 종일 햇빛이 너무 잘 들잖아요.” 농장 규모로는 얼마든지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 그러나 용 대표는 철저하게 수작업만을 고집한다. 신선한 최고의 품질로 본인이 직접 만드는 꽃차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하고,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인 꽃차 시장에 대한 일종의 차별화 전력이기도 하다. “지금도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건강에 대한 관심들도 커지고, 현재 커피 시장은 포화 상태잖아요. 그래서 커피 전문점 등에서 특히나 많이 들어오는데, 더욱 전문화되고 대중화되어갈 거라고 보고 있어요.” 거기에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며 봄이면 새싹 분양 문의가 폭주한다. 튼튼한 모체에서 생산된 싹이 어느 토양에나 잘 적응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2일에는 하립골 잔디 마당에서 딸 제하씨의 결혼식이 있었다. 사돈들이 중국에서 건너오고, 전국 각지의 친지들이 꽃놀이 삼아 하객으로 참석했다. 하얀 구절초 밭을 배경으로 전통 혼례를 올리고 피로연까지 모두 이곳에서 열었다. “10여 년 전부터 이곳을 가꿔 가며 꾼 꿈이 있었어요. 첫째는 하립골을 세상에 알리는 것, 둘째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야외결혼식을 하는 것, 셋째는 손녀, 손자들이 하얀 구절초 밭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 이미 두 가지를 이뤘네요.” 꽃과 문학과 자연과 함께 하는 인생의 제2막. 이 부부가 20여년 전 살던 아파트를 줄여 삿갓봉 아래 처음 이 터전을 마련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온 세월에 대한 결실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한 아름 꺾어 온 가을의 향기가 차 안 가득 석양을 맞는다. ■글쓴이 -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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