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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TV 하이라이트]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수색작전을 마친 전라좌수군은 당포에 결진해 경상우수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원균은 당포의 결진이 후퇴를 의미한다면서 경상우수군은 적진포로 진격하겠다고 일전의 약속을 파기하는 뜻을 전해온다. 이에 권준은 원균을 찾아가 당포가 아니면 연합함대는 없다고 통고한다. ●토지(SBS 오후 8시45분) 길상은 김두수가 진주로 갔다는 말에 결국 자신으로 인해 서희가 곤경에 빠지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한다. 서희는 서희 대로 길상이 걱정이지만 다행히 조선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자 안심한다. 한복은 어머니 무덤을 찾을 거라고 예상하고 기다렸다가 두수를 만난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9시20분) 당나라 최고의 상업도시이자 문화 중심지로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을 배출했던 역사의 도시 양주. 수려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수서호, 부의 상징이었던 개인정원 등의 아름다운 자연과 2000년 전통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운하, 한·중교류의 흔적이 묻어 있는 최치원 사료관 등을 소개한다. ●문화사시리즈-지금도 마로니에는(EBS 오후 10시50분) 단식투쟁이 한창인 가운데, 학생들의 운동이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김중태가 자수를 결심하고 문리대에 나타난다. 이에 단식투쟁을 하던 학생들의 기세는 더욱 의기양양해진다. 드디어 6월3일 김중태는 자수하고, 단식투쟁을 하던 학생들은 길거리로 뛰쳐나간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MBC 오후 7시) 드라마 ‘원더풀 라이프’의 네 남녀 주인공 김재원, 유진, 한은정, 이지훈이 출연한다. 팔등신 미녀 한은정이 알려주는 요가의 동작을 따라하던 MC 유재석이 갑자기 ‘메뚜기’로 돌변했다는 에피소드도 곁들인다. 또 김재원·이지훈이 ‘남자의 의리’에 대해 말한다. ●용서(KBS2 오전 9시)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던 수민은 이번엔 한밤중에 거실로 나와 소주병을 찾다가 희만과 재훈을 놀라게 한다. 희만은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한편, 인영은 미국에서 온 식구들과 장례를 치른 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호텔방에서 생각에 잠긴다.
  • 합참의장 이상희씨등 군수뇌부 7명 인사

    정부는 22일 국무회의를 열어 합동참모회의 의장에 이상희(육사 26기) 3군 사령관, 육군 참모총장에 김장수(육사 27기)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해군 참모총장에 남해일(해사 26기) 교육사령관을 임명하는 군 대장급 인사안을 의결했다. 육군 1군 사령관에는 김병관(육사 28기) 7군단장,2군 사령관에는 권영기(갑종 222기) 국방대학교 총장,3군사령관에는 김관진(육사 28기)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는 이희원(육사 27기)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이 각각 보임됐다. 군내 8명의 대장 가운데 7명에 대한 이번 인사를 계기로 군 수뇌부가 일단 젊어졌다. 이번 인사에서 빠진 공군 참모총장은 임기가 완료되는 오는 10월에 인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이상희 합참의장 야전의 주요 지휘관과 정책부서 작전·전략·정책 등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전략통. 부하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 힘들게 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발휘해 애정을 표시한다는 평. 부인 김순영씨와 1남1녀.▲강원 원주(59) ▲경기고 ▲육사 26기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합참 작전본부장 ▲3군사령관 ●김장수 육군참모총장 온화하고 합리적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고 빈틈없는 스타일. 이라크 추가 파병과 주한미군 재배치로 인한 한국군 임무전환 등 굵직한 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 부인 박효숙씨와 1남1녀.▲광주(57) ▲광주일고 ▲육사 27기 ▲수방사 작전처장 ▲육사 생도대장 ▲합참 작전부장 ▲7군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남해일 해군참모총장 해상 작전 분야에 해박하고, 원리원칙에 충실한 군인. 해군 제독 가운데 작전은 물론 인사·교육·복지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부인 박임숙씨와 1남1녀.▲경북 울진(58) ▲경북 후포고 ▲해사 26기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장 ▲연합사 인사참모부장 ▲2함대사령관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해군 교육사령관 ●김병관 1군사령관 전력발전 분야에 다년간 근무하면서 미래 국방 전투력 증강 분야에 식견을 쌓았다. 전사에 해박하고 전술에도 능하다는 평이다. 육사 졸업 때부터 선두를 달려왔다. 짬날 때마다 책을 잡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부인 배정희씨와 2남.▲경남 김해(57) ▲경기고 ▲육사28기 ▲2사단장 ▲합참 전략기획부장 ▲7군단장 ●권영기 2군사령관 야전 주요 지휘관과 참모를 두루 거쳤다. 교육훈련 분야에 경험이 많다. 부하들에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여건을 제공하는 등 업무의 효율성을 중시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부인 김청세씨와 2남.▲경남 합천(58) ▲진주고 ▲갑종 222기 ▲1군사령부 참모장 ▲3군단장 ▲국방대 총장 ●김관진 3군사령관 야전 주요 지휘관과 작전·전략·정책·전력증강 분야 등을 두루 겪어 문무를 겸비했다는 평. 자상하면서도 자신에겐 엄격한 외유내강형.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의사교환을 중시하는 편이다. 부인 김연수(51)씨와 3녀.▲전북 전주(56) ▲서울고 ▲육사 28기 ▲35사단장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 ▲2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2004년) ●이희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줄곧 순수 야전에서 뼈가 굵은 작전통. 공사 구분이 엄격하고 청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합리적이고 사려깊은 성품으로 많은 부하들이 따르는 덕장이라는 평. 독서와 테니스, 음악감상을 즐긴다. 가족은 부인 한여옥(54)씨와 2녀.▲경북 상주(57) ▲부산고 ▲육사 27기 ▲51사단장 ▲3군사령부 참모장 ▲수도군단장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 [동북아 긴장 파고] 日 영토분쟁 노골화…‘국가주의’ 확산

    [동북아 긴장 파고] 日 영토분쟁 노골화…‘국가주의’ 확산

    동북아의 긴장 파고(波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심각한 대립과 중국의 반국가분열법 통과에 따른 미·일, 타이완과 중국간의 갈등이 1차적인 원인이다. 여기에다 이 지역의 주요 현안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중·일, 러·일간 영토분쟁도 긴장 국면을 고조시킬 조짐이다. 특히 동북아 긴장의 한복판에는 패전 60주년을 맞은 일본의 국가주의 개념 확산이 자리잡고 있다. ■ 패전 60주년 심상찮은 日행보 |도쿄 이춘규특파원|올해로 패전 60주년을 맞은 일본이 “60년이나 참아 왔다.”는 인상을 주면서 패전국에서 ‘보통국가’로 가겠다는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 망설이거나 눈치를 보던 이전과는 완연히 다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다시 ‘동북아시아의 갈등 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국과는 독도문제를 놓고, 중국·타이완과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을 둘러싸고 영토 분쟁을 노골화하고 있다. 시마네현 의회가 예정대로 16일 본회의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안을 가결하는 것이나 대중국 경계태세 강화를 위해 센카쿠열도에서 가까운 이시가키지마나 미야코지마에 중대(200명) 규모의 자위대 병력을 주둔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미타 노부요시(澄田信義) 시마네현 지사는 15일 “귀속 100주년을 맞아 매우 의의있는 일로 찬성의 뜻을 표명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조례안 찬성의 뜻을 밝혔다. 북한과는 납치피해자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계속 빚고 있으며 2차대전 승전국으로 그동안 일본을 무장해제시키고, 전쟁을 포기하는 평화헌법을 보유케 했던 미국과도 쇠고기수입 재개 문제를 놓고 양보없는 일전을 벌이는 등 기세가 등등하다.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 두고 도쿄 외교소식통은 “19세기 말 홋카이도·오키나와 등을 복속시키고 버려져 있던 섬들에 대해 영유권 선언을 잇달아 하던 해양팽창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할 정도다. 일본의 이같은 공세적 외교정책은 지금까지 일본을 중국과 러시아 견제 카드로 활용한 미국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중국의 반국가분열법에 미국과 함께 우려를 표시하고, 영토분쟁도 미국의 묵인과 방조로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본내 일각에서는 “미국과도 시시비비를 가릴 때가 됐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어 미국과의 쇠고기 분쟁이 향후 일본의 대미 외교에서 중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워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노력을 집중하는 등 공세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오는 25일 개막될 아이치 만국박람회를 ‘만박 외교를 통한 상임이사국 진출 분위기 조성’의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taein@seoul.co.kr ■ 美 “6자회담 北 빼버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차츰 높여가고 있다. 북한이 지난달 10일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이후 미국은 눈에 띄게 북한을 고립화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 정부와 워싱턴의 싱크탱크 일각에서 제안했던 북한을 제외한 ‘6-1’, 즉 5자회담을 점차 가시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워싱턴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 한국과 일본의 학자, 러시아의 국제기구 파견관이 참석한 5개국의 ‘6자회담 토론회’가 열렸다. 이어 16일부터 상하이에서는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민·관 인사들이 참석하는 한반도 관련 합동 세미나가 개최된다. 특히 상하이 5자회의에는 미국의 조지프 디트러니 국무부 대북담당특사, 중국의 닝푸쿠이(寧賦魁) 외교부 한반도 문제 담당대사, 일본의 6자회담 참가 멤버인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 한국의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조태용 외교통상부 북핵외교기획단장 등이 참가해 사실상 정부 차원의 5자회담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미국의 향후 북핵 관련 정책은 14일부터 시작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이 끝나면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을 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악관은 14일에도 북한이 핵 야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더 나은 관계를 가지라고 촉구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가 (지난 6자회담에서) 내놓은 제안은 만일 북한이 핵 야망을 포기하고 핵무기를 종식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국제사회와 더 나은 관계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중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해 하는 노력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중국은 노력을 계속해 왔다.”고 평가하면서 “중국이 북한을 대화로 복귀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중국측의 ‘분발’을 거듭 촉구했다. dawn@seoul.co.kr ■ 中·타이완 긴장 고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반국가분열법 통과를 계기로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조국 통일을 위해선 전쟁도 불사한다.’는 강경 분위기가 중국 군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총후근부 부부장인 왕타이펑(王大風) 중장은 전인대 회기 중에 열린 군대표 분임 토의에서 “타이완 분리주의자들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선 군의 현대화를 통한 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쏘았다. 회의에 참석한 총후근부 부부장인 쑤수옌(蘇書巖) 중장이나 북해함대 정치위원 위창치(於常啓) 소장 등도 ‘분리독립 세력’을 향한 투쟁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 군부는 갈수록 압박해 오는 미·일 군사동맹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을 돌파하고 타이완 독립저지를 쟁취하기 위해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다. 당·정·군을 장악한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최근 “국가주권과 영토 보전은 국가발전보다 우위의 개념”이라며 군사투쟁 준비를 독려하고 나섰다. 타이완도 이에 맞서 군사훈련 강화 등 정·경·군이 일체가 된 총력 대응체제에 나서고 있다. 오는 4월 미국, 일본, 싱가포르 군사고문 100여명이 참석하는 ‘한광(漢光) 21’ 군사훈련을 준비하고 있어 반국가분열법을 둘러싼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인민해방군의 국방 목표도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방어전략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을 거쳐 후진타오 시대로 넘어오면서 부국강병 정책으로 전환 중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 주변국들은 중국이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패권주의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군부 내에서 눈에 띄게 ‘군 혁명화’가 강조되고 일반주민들에게 중화사상(中華思想) 고취를 촉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자체 개발한 핵무기를 비롯, 유럽권을 사정거리로 둔 80∼100기의 미사일과 3400대의 전투기, 잠수함 63척, 탱크 1만 4000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 문회보는 최근 중국의 군비강화와 관련,“중국은 ‘2단계 3도약 전략’을 통해 2050년까지 최강의 군대로 변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1단계로 2020년까지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토대로 ‘군 기계화’를 완성하고 2단계인 2050년까지 첨단 군사장비를 갖춘 ‘군 정보화’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oilman@seoul.co.kr ■ 美·日 “中 반분열법 반대” 러·파키스탄 “中내부 문제” 중국의 타이완 무력 개입을 명문화한 반국가분열법 통과에 대해 국제사회는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미국과 유럽은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러시아와 파키스탄 등은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일본은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간) “반국가분열법 통과는 불행한 일”이라면서 “우리는 평화적이 아닌 방식으로 타이완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취임 이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0∼21일 마지막 순방국인 중국을 방문, 북한 핵 문제와 아울러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인 반대 입장을 밝혔다.EU는 14일 “양측간 어떠한 무력 사용도 반대한다.”면서 “대화에 기반한 접근 방안만이 타이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는 외무부를 통해 “타이완 문제는 중국 내부의 문제이며 새 법(반국가분열법)은 중국이 (타이완과의)통일을 위해 평화적인 접근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며 중국을 지지했다. 파키스탄과 벨로루시도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호주는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과, 미국과의 군사 동맹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은 14일 전쟁이 날 경우 미국을 지원해 개입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전쟁은 아직까지 가정일 뿐이며 개입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단테효과’ SBS 첫 12연승

    [Anycall프로농구] ‘단테효과’ SBS 첫 12연승

    ‘3·1절 대회전’에서 TG삼보는 정규리그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SBS는 최다연승의 신기원을 이뤘다. TG는 1일 창원에서 열린 프로농구 04∼05시즌 경기에서 LG에 80-92로 패했지만,2위 KTF 역시 SBS에 덜미를 잡혀 2년 연속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SBS는 안양에서 ‘숙적’ KTF를 93-88로 누르고 한국프로농구 사상 최다인 12연승의 위업을 일궈냈다. 이전까지는 97∼98시즌 현대(현 KCC),01∼02시즌 SK가 기록한 11연승이 최다였다. TG는 남은 4경기를 모두 져도 35승19패로 KTF가 4경기를 다 이길 경우 동률이 되지만 상대 전적에서 4승1패로 앞서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LG는 안방에서 TG가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만큼은 막겠다는 듯 초반부터 식스맨을 총동원하는 ‘올인’ 전략으로 몰아붙였다.LG는 3쿼터 데스몬드 페니가와 제럴드 허니컷이 번갈아 가며 3점슛과 슬램덩크슛을 꽂으며 승기를 잡았고,4쿼터 초반 페니가의 3점슛 3개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LG는 1시간 앞서 끝난 안양 경기 결과로 TG의 우승에 변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사르고, 우승 축하연을 적극 도와주는 미덕을 보여줬다. TG는 시즌 내내 단 3일 동안만 2위로 내려앉았을 뿐 줄곧 1위를 지키며 ‘무적함대’의 위용을 뽐냈다.TG의 우승 원동력은 ‘짠물 수비’. 경기당 74.9점만을 내주며 2년 연속 최소실점 1위를 기록한 TG는 ‘좋은 수비가 곧 승리’라는 농구의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트윈 타워’ 김주성과 자밀 왓킨스는 가공할 블록슛으로 상대의 포스트 공격을 제압했고, 슈터 양경민까지 뛰어난 수비력으로 상대 주포를 꽁꽁 묶었다. 최고의 전성기를 보이는 포인트가드 신기성은 공수에서 팀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한편 파죽지세의 SBS는 이날 돌풍의 주인공 단테 존스(29점 20리바운드)의 덩크슛과 김성철(22점)의 3점포로 초반부터 KTF 수비를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4쿼터에서 손규완에게 3점포 3방을 허용해 4분여를 남기고 75-73까지 쫓겨 연승행진의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상대 주포 게이브 미나케가 5반칙 퇴장당하면서 승부의 추는 SBS로 기울었다.KTF 추일승 감독까지 테크니컬 파울을 당했고, 야금야금 자유투를 넣은 SBS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완성했다. 창원 이창구·안양 임일영기자 window2@seoul.co.kr
  • [KT&G 프로배구] ‘무적함대’ 삼성 울었다

    마침내 ‘하얀 태양’이 네트 위로 튀어올랐다.20일 프로배구 원년 V-리그 개막전이 벌어진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7000석 가까운 관중석을 꽉 메운 배구팬들은 프로의 옷으로 말끔히 갈아입은 백구의 열기로 올 겨울 마지막 추위를 녹였다. 선수들이 어깨를 휘두를 때마다, 공이 코트에 꽂힐 때마다 환호와 한숨을 뒤섞어가며 향연을 만끽했다. 대전 삼성블루팡스와 천안 현대스카이워커스의 라이벌전으로 벌어진 이날 개막전에서는 김호철 감독이 이끄는 현대가 풀세트 혈전 끝에 ‘무적함대’ 삼성을 3-2로 침몰시키고 원년 첫 승리의 감격을 안았다. 실업 시절이던 지난 시즌 11차례 맞대결에서 단 한번 승리에 그친 현대는 프로배구 첫 경기에서 대역전승을 나꿔채 올시즌 프로배구의 지각변동을 예감케 했다. 현대는 초반 두 세트를 내리 빼앗겨 패색이 짙었지만 높이를 바탕으로 한 끈질긴 승부욕을 발휘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반면 김 감독과 ‘40년지기’ 신치용 감독의 삼성은 김세진과 석진욱의 부상으로 전력이 약화된 데다 후반 체력의 열세와 현대의 투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쓴 잔을 들었다. 첫 세트부터 양 팀의 대결은 각본없는 드라마였다. 현대는 한 점 주고 한 점 얻는 랠리가 삼성 장병철의 속사포에 멈추고 세터 권영민의 토스가 덩달아 무뎌지면서 1세트를 내줬다. 2세트 현대는 장영기와 후인정이 왼쪽과 오른쪽에서 분전했지만 최고 득점(25점)을 올린 장병철이 펄펄 난 삼성의 무차별 공격에 발마저 느려져 개막전 승리의 꿈은 날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3세트 들어 높이로 승부를 건 현대는 5개의 블로킹을 앞세워 한 세트를 만회한 뒤 4세트에서도 장영기의 왼쪽 공격과 군에서 돌아온 센터 신경수의 중앙 속공으로 체력에 열세를 보이기 시작한 삼성과 균형을 맞췄다. 마지막 세트까지 예측할 수 없던 승부는 송인석의 손에서 갈렸다. 송인석은 3-3으로 팽팽하던 고비에서 천금 같은 ‘다이렉트 킬’로 대세를 바꾼 뒤 막판에는 대포알 같은 대각선 오픈공격으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편 삼성화재의 노장 센터 김상우는 1세트 후인정의 손을 스치는 번개 같은 속공으로 프로배구 첫 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윤봉우(현대)는 신진식의 강력한 오픈공격을 차단하는 첫 블로킹을, 장병철(삼성)은 첫 서브에이스를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여자부 첫 경기에서도 명승부는 이어졌다. 장소연 강혜미가 은퇴, 전력 약화가 예상되던 현대건설은 도로공사에 초반 두 세트를 먼저 내주고도 정대영 윤혜숙을 앞세워 동률을 이룬 뒤 마지막 세트에서 네 차례의 듀스 끝에 귀중한 첫 승을 낚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스페인·브라질 ‘골세례’

    지난 9일과 10일엔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등 전세계에서 독일월드컵 지역 예선과 평가전이 치러진 가운데 강호들이 대부분 선전을 펼쳤다. ‘무적 함대’ 스페인은 10일 유럽 예선 7조 경기에서 호아킨, 라울 등이 골 폭죽을 터뜨리며 산마리노에 5-0 대승을 거뒀다.2승2무(승점 8)의 스페인은 리투아니아와 함께 공동 2위를 형성, 선두 세르비아-몬테네그로(승점 10)를 바짝 추격했다.51개팀이 8개조로 나뉘어 경쟁을 벌이는 유럽 예선에서는 각조 1위와 2위팀 가운데 상위 두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나머지 2위들은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한다. 2조 우크라이나는 이날 알바니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승리,4승2무(승점 14)로 선두를 질주했다. 같은 조의 그리스도 덴마크를 2-1로 제압하고 선두와 승점 6차의 2위에 올랐다. 아프리카 예선에서는 모로코가 케냐를 5-1로 꺾고 5조 1위를 달렸고, 북중미카리브의 미국은 트리니다드토바고를 2-1로 제치고 서전을 장식했다. 한편 세계 랭킹 1위 브라질은 9일 134위 홍콩과의 친선 경기에서 히카르두 올리베이라가 2골, 루시우·호나우디뉴·호베르투 카를루스·호비뉴·알렉스가 1골씩을 보태 7-1로 완승했다. 유럽과 남미의 한판 승부로 관심을 모은 10일 독일-아르헨티나전은 2-2 무승부. 토르스텐 프링스(독일)와 에르난 크레스포(아르헨티나)가 페널티킥 골을 하나씩 교환한 뒤 전반 종료 직전 케빈 쿠라니의 득점포로 독일이 승리를 가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돌아온 골잡이’ 크레스포가 경기 종료 9분을 앞두고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지난 4일 한국을 꺾은 이집트는 벨기에를 4-0으로 대파해 상승세를 이어갔고,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자존심 대결은 0-0, 프랑스와 스웨덴의 경기는 1-1로 마무리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진인왕, 한국판 전륜성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진인왕, 한국판 전륜성왕?

    요즘은 ‘우담발라’가 꽤 자주 피는 것 같다. 연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최근에도 충북 단양군청과 충남 논산 성불사에 우담발라가 피었다고 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법화경’에 보면 우담발라는 부처나 전륜성왕(轉輪聖王) 같은 성인이 출현할 때만 핀다고 한다.3000년에 겨우 한 번 필까 말까 한다는데 생물학자들은 그것이 실상 풀잠자리알 또는 곰팡이에 불과하단다. 어쨌든 우담발라가 피어 있는 성불사의 금륜 스님은 상서로운 징조라며 “을유년에는 평화와 번영, 남북통일을 기원하고 싶다.”고 했다. 우담발라. 작디 작은 몇십 송이 꽃인가, 곰팡이에 스님은 참 크고 묵직한 기원을 매달았다. 그런데 나는 우담발라가 피면 등장한다는 전륜성왕과 ‘정감록’의 진인왕 사이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전륜성왕은 부처의 세속적 모습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불경을 결집한 아소카 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불심이 깊고 태평성대를 실현할 왕이 바로 전륜성왕인데 민중은 진인왕에게 바로 그런 역할을 기대했다. 정감록의 진인은 무엇보다 현실의 고난을 헤쳐 간 민중의 꿈을 형상화시킬 의무를 졌다. 진인왕은 조선왕조의 기득권층인 양반을 벌주고 신분구조를 뒤엎으며, 서구열강과 그들의 종교를 물리치고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할 민중의 구세주였다. ●진인은 못된 양반을 생지옥으로 1785년 정조 9년 또 한 차례 정감록 사건이 터졌다. 주모자들은 나라가 셋으로 쪼개진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유씨, 장씨, 김씨가 삼국의 왕이 된다고 했다. 그 뒤 나라를 통일할 진인(眞人)은 제주 700개 섬 가운데 어딘가 숨어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사건의 주모자들은 그 진인이 마음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하면서 이미 서씨와 정씨 두 사람이 진인의 명에 따라 사람들의 허물을 낱낱이 기록한 일종의 ‘선악적(善惡籍)’을 작성중이라고 했다. 18세기말 민중이 진인의 출현에 걸었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되는 게 그 ‘선악적’이란 장부다. 딱히 양반의 허물만 기록한다고 명기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평민을 못살게 구는 양반들의 악행을 기록하는 데 그 중점이 있다고들 여겼을 것이다. 진인은 민중의 구세주였기 때문이다. 나라가 바뀌어도 무식한 아랫사람들로서야 당장 무슨 벼슬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저 양반놈들 망하는 꼴 좀 보자.’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었다. 현실은 물론 정반대였다. 여러 지방에서 양반들은 동약(洞約)이나 향약을 실시해 장부를 비치해두고 말 안 듣는 하층민들을 기록해 뒀다가 벌을 줬다. 윗사람을 몰라본다, 불효한다, 형제간에 불화한다는 등의 죄명이 양반들의 ‘선악적’에 기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인이 민중의 편에서 선악 장부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은 진인의 인기를 더욱 높였을 법하다. 통상적으론 양반 편에서 작성하는 것인데, 양반을 벌줄 수 있는 선악적이라니 얼마나 통쾌하랴. 진인의 상벌은 현세에서 시행된다는 점도 민중으로선 무척 달가운 일이었다. 자기들은 별다른 죄도 없이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약자들을 괴롭히며 놀고먹는 양반, 놀부 같은 그들이 밉고 싫었을 것이다. 민중은 자기들 눈앞에서 그런 못된 양반들이 생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민중들은 지옥이란 말을 꺼낼 때마다 자연스레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옥(범어 나라카·Naraka)은 사후세계란 뜻인데 그 참혹한 광경은 ‘목련경’에 자세하다. 석가모니의 큰 제자 목련존자의 지옥방문 이야기는 민간에 널리 알려졌다. 문맹인 사람들도 지옥도란 종교화를 통해서 지옥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불교의 지옥은 종류도 많아서 각기 8대 열지옥(뜨거운 지옥)과 한지옥(추운 지옥)이 있고, 그 아래 또 32개 소지옥이 있다고 한다. 진인은 선악 장부에 기록된 악인을 문자 그대로 생지옥에 보낼 것이 분명했다. ●푸른 옷(靑衣)은 천주교 신부요, 서구열강이다 진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또 있었다. 어찌 보면 좀 뜬금없는 소리 같기도 한데, 진인은 서양 종교인 천주교도 퇴치해야만 했고 서구열강도 물리쳐야 했다. 물론 이런 기대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말까지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북경에 파견된 조선의 사신일행이 거기 와 있던 예수회 신부를 알게 된 것은 이미 17세기부터였으나 천주교가 국내에 유입되어 본격적인 신앙운동이 벌어진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조정은 잔뜩 긴장하여 천주교를 엄금하였지만 그 세력은 제법 급속하게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층민들의 일부는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천주교를 이단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조정의 ‘계몽’도 한몫했지만 천주교에서 조상의 제사를 금지한다는 게 그들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천주교에 대한 민중의 반발과 두려움은 정감록에도 감지된다.1923년판 정감록의 일부인 ‘무학비결(無學秘訣)’에서 푸른 옷이 남쪽에서 쳐들어오는데 ‘스님 같되 스님은 아니라’고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여태 한반도엔 없었던 새로운 부류의 성직자 즉, 신부들이 침략자란 것이다.‘푸른 옷’은 본래 좀더 먼저 쓰인 ‘도선비결(道詵秘訣)’에서만 하더라도 미지의 외부인으로 해석될 뿐이었다.‘푸른 옷을 입고 남쪽에서 오니 오랑캐도 아니요, 왜적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필 왜 푸른 옷인지를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가 천주교의 국내 활동이 심각성을 띠게 되자 푸른 옷은 어느덧 서양신부로 비화됐다. 19세기 초에는 서양 함대의 파병을 요청하는 천주교 신자 황사영의 편지가 발각되어 여론이 비등했다. 연달아 천주교박해사건이 터졌으며 국내에 잠입한 프랑스 신부도 처형되었다.19세기 중반에는 그 여파로 프랑스 함대가 공격했고 설상가상 통상문제로 미국함대도 쳐들어 왔다. 그러자 이제는 서구열강 자체가 침략의 장본인으로 부상했다. 이런 변화를 기록한 것이 역시 정감록의 일부인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이다.‘푸른 옷과 흰 옷이 서쪽, 남쪽에서 동시에 침략한다. 이때 정씨가 바다 섬에서 군사를 이끌고 나온다.’ 역사란 아이러니요, 거기서 나는 또 정감록이 갖는 현실 적응력을 본다. 서양선박의 출몰을 계기로 17세기 후반에 해도진인설이 등장했었는데(연재3호 참고),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세기 말엔 거꾸로 해도진인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서양함대요, 서양신부였으니 말이다. ●동학의 최제우 새 세상 구현할 진인으로 1859년 최제우는 서학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동학’이란 이름의 새 종교를 만들었다. 그 뒤 1894년 동학은 서양과 일본을 물리치고 탐관오리를 내쫓아 백성을 구하겠다며 갑오동학농민운동을 벌였다. 한 마디로 동학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내부의 지배층만이 아니라 외세란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 바탕 위에 동학은 새 세상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그것이 이른바 ‘후천개벽’이다. 최제우의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에게서 진인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그들에게 최제우란 존재는 새 세상을 구현할 초인이었다. 진인은 서양세력의 위협에서 민중을 구해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새 질서를 가져다줄 구세주였다. 그러나 모든 일을 진인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방씨, 두씨 및 곽씨 성을 가진 3장군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각각의 성씨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들의 활약상이 ‘토정가장결’에 나와 있다. “곽장군이 요동의 군사를 이끌고 방씨, 두씨 장수와 함께 왜적과 서남 오랑캐를 무찌른다.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돕는다. 정씨를 돕고 이씨를 공격한다. 그러면 이씨는 제주로 들어갈 것이나 4∼5년간의 운수에 지나지 않는다.” ●진인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한다 두어 줄밖에 안 되지만 숨가쁜 격변, 그것도 국제적인 변화를 예언한다. 하층민중이 국제정세에 민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그들 나름의 생각이 없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다. 특히 주목되는 구절은 일본과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조선의 이씨왕조를 무너뜨린다고 한 점이다. 먼저 외부에서 제기된 문제를 극복하고 그런 다음 비로소 내부문제에 착수한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다. 다 아는 대로 일·청 두 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한국을 괴롭힌 장본인으로 수백 년이 지난 뒤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했다. 더욱이 두 나라는 19세기말 한국에 진출, 내정을 간섭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런 까닭에 대다수 민중은 진인이 나타나 그들 두 나라도 없애버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특히 일본의 멸망에 대한 기대가 커, 일본 정벌론까지 등장하게 된다. 정감록의 한 파트인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藏訣)’엔 호랑이해부터 뱀해 사이 진인이 일본을 쳐서 항복을 받는다고 했다. 호랑이는 섬나라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의 왕이며 뱀은 용과 더불어 성인, 또는 왕을 상징한다. 구한말 한반도 지도를 그릴 때도 한국 사람들은 이를 호랑이로 인식했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 포항과 장기 앞바다에 등대를 설치한 것에 원한을 품기도 했다. 그곳은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데 등대가 세워지면 호랑이 꼬리에 불을 지른 셈이라는 것이다. 호랑이를 죽이려는 계략이라며 등대를 당장 허물라고 했다. 웃고 넘어갈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막강한 일본을 이기려면 그런 주술에라도 호소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예언서에 언급된 일본정복설은 허망한 소망에 불과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은 해가 갈수록 더 많은 한국산 미곡을 수입했고, 값싼 면직물을 한국으로 대량 수출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민중은 전례 없는 쌀 부족에 시달렸다. 값싸고 품질 좋은 수입산 면직물을 당해낼 길 없어 일반 농가의 면포(綿布) 생산은 위축돼 갔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른 뒤 한국을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예언서에는 그런 역사적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했던 민중의 열망이 표현돼 있다. ●진인왕과 보양법, 밀교 그야말로 초인적인 업적을 이룰 진인왕에 관해 정감록의 일부인 ‘동차결’은 이렇게 점치고 있다.‘태조의 성은 정(鄭), 이름은 홍도(紅桃), 자는 정문(正文), 무오생이다. 섬 가운데 평실에서 나와 계룡산에 건국한다.’ 정진인의 이름 ‘홍도’(붉은 복숭아)는 도교적이다. 복숭아는 수명과 성적 능력을 상징한다. 특히 그 빛이 붉다면 복숭아 중에서도 일품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름은 ‘정문’, 문(文)을 바로잡는다고 돼 있다. 통치 질서와 윤리도덕을 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진인은 유교적 덕성을 겸비한 존재다. 무오생이라 함도 의미가 있다.10간의 5번째인 ‘무(戊)’와 12지의 7번째인 ‘오(午)’는 각기 중간의 홀수, 즉 중양(重陽)이다. 진시황의 생일도 단오 또는 중양이었다. 이런 남성은 불세출의 영웅이라 한다. 진인왕은 도교적 성격이 강한 만큼 도교서적에 나오는 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도교에선 양기, 성적 능력을 극대화시키면 절로 진인이 된다고 본다. 그것이 양생법이다. 불교의 분파인 밀교에도 거의 똑같은 가르침이 있다. 당나라 때 도사 손사막이 지은 ‘방중보익(房中補益)’을 보면, 정액을 잃지 않고 93명의 여성과 성교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했다. 몸에 내재한 이성성(二性性)을 살리게 돼 진인이 된다는 말이다. 허무맹랑한 얘기 같지만 밀교는 물론 힌두교에서도 다 그렇게 봤다. 정액을 몸 밖으로 쏟아내지 않고 변화시켜 뇌로 보낼 수만 있다면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유사종교의 지도자들은 이를 빙자해 간음 사건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들로서는 진인 될 수행을 했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1937년엔 백백교 사건이 발생했는데 교주 전해룡은 간음과 범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무려 350명의 남녀신도를 살해했다고 한다. ●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 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의 특징을 ‘동차결’은 이렇게 적어놓았다.‘여러 대를 두고 내려오던 양반은 상사람이 되며, 상사람은 오히려 양반이 된다. 부처를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서 인재를 뽑아 쓴다.’ 짧은 내용이지만 정감록을 믿던 민중에겐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진인왕이 평등사회를 실현한다고 볼 순 없지만, 조선사회의 신분질서를 뒤엎고자 한 민중의 의지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상사람이 양반되고 양반이 상사람 된다고 하였으니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진인왕은 유불선 삼교합일의 바탕 위에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불교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재를 불교에서 구할 리가 없지 않은가. 또한 여기서 나는 조선후기 민중이 성리학적 지배 이념에 반발해 불교에서 대안을 찾고 있었음을 본다. 조선말의 혁명가 김옥균도 불교신자였으며, 이동인과 같은 개화승려도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융성시킬 진인왕은 전륜성왕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경전에 보이는 전륜성왕은 모두 4명이다. 공교롭게도 예언서에서 진인왕에게 왕업을 도울 세 아들이 있다고 한 것과 맞아떨어진다. 신라의 진평왕도 아들의 이름을 동륜, 금륜 등으로 불렀다. 그 역시 스스로를 전륜성왕으로 봤다는 증거다. 전륜성왕 가운데 첫 왕은 철륜왕인데 진인왕이 그에 해당한다. 그 뒤를 이어 동륜왕·은륜왕·금륜왕이 차례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신자로서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은 진인왕의 협력자인 세 아들에게도 당연히 그런 역할을 기대한다. 전륜성왕이 출현할 때 우담발라가 핀다고 했다. 서두에서 말했듯 이미 우담바라는 피었다. 과연 전륜성왕은 오는 것일까. 전륜성왕이 가진 7개의 보물 중 하나인 거사보(居士寶)는 고아, 노인, 병자 등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을 모두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더러 전륜성왕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예언서 속의 진인왕은 서양열강, 중국, 일본을 평정하고 동아시아에 새 질서를 구축한다고 했다. 정감록은 당대 민중의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할 대안이었다. 그 예언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느냐는 별개 문제다. 대안이란 점에서 정감록은 예언서로서 생명력을 오래도록 유지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중고품 만물상 강동재활용센터

    중고품 만물상 강동재활용센터

    지난 17일 강동구 상일동에 위치한 ‘강동 재활용센터’를 찾은 김민수(52·가명·강동구 상일동)씨는 거실에 놓을 만한 탁자를 찾으러 갔다가 뜻밖의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김씨가 고른 물건은 무료로 기증받은 것이어서 ‘공짜’로 가져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강동 재활용센터’는 강동 지역 알뜰족들에겐 이미 유명한 곳이다.10여년 전부터 440여평의 공간에 TV·청소기·냉장고 등의 가전류와 소파·장롱·장식장 등의 가구류, 의류·책 등의 생활용품까지 다양하고 저렴한 중고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기 때문. 물건의 상태에 따라 값이 다르지만, 시중가에 비해 평균 30∼70% 정도 저렴하다. 특히 기증된 물건들은 돈을 내지 않고도 가져갈 수 있어 잘만 고르면 김씨와 같은 ‘땡’을 잡을 수 있다. 재활용품 판매업체인 ‘리사이클 시티’가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강동구뿐만 아니라 경기도 하남시·구리시에서 수집된 재활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수리가 필요한 물품은 색을 입히거나 고쳐서 판매하고 있으며, 물건에 이상이 있는 경우 교환 및 수리도 가능하다. 가전제품의 경우 6개월까지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재활용센터를 정기적으로 찾는다는 이재용(42)씨는 “새것같이 깨끗한 상품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중고품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들러볼만 하다.”고 이용소감을 밝혔다. 함대섭 지점장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매장에 있는 모든 상품의 수량과 가격정보가 올라와 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미리 확인해볼 수 있다.”며 “홈페이지를 통해 중고품 직거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지만, 품질 보증은 매장을 통해 거래되는 물품에 한정하므로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 정도령은 누구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 정도령은 누구인가

    ●정도령과 진인 ‘정감록’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계룡산 밑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된다는 ‘정도령’이다. 달리 ‘진인(眞人)’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빤히 아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만 따져들면 실체가 애매한 것이 바로 그 진인이고 정도령이다. 실체를 잘 모르면서도 사람들은 정도령에게 제법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여러 해 전 일이었다. 대기업 총수 정모씨가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는데 당시 칠순 노인이던 그를 가리켜 ‘정도령이 나왔다.’며 사람들이 수군댔다. 도령치곤 참 늙은 도령이었다. 맨손으로 일어나 굴지의 대기업을 키운 사람이었던 만큼 그 뚝심이면 못 할 일이 없다고들 봤던 것일까. 하여간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고 그 뒤에도 정도령 감은 몇 명 더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정도령이란 칭호는 ‘정감록’에 안 보인다. 고작 ‘정성(鄭姓)’ 또는 ‘진인(眞人)’이 언급되는 정도다. 때론 그 정씨와 진인이 같은 인물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내가 조사해 보니 민중들이 쉬쉬하며 진인의 출현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먼저 조성됐고, 한참 뒤 그 진인이 정씨라는 예언이 등장했다.18세기 후반 들어 ‘왕조실록’에 ‘정성진인’이란 단어가 보인다. 물론 체통 있는 양반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정감록’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에 섞인 단어다. 그런데 정진인이 난데없이 웬 도령인가? 알다시피 도령은 양반집 사내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도령은 정진인에 대한 일종의 애칭이다. 도령이란 호칭을 달리 풀이할 수도 있다. 진인이 초능력자라 해도 정식으로 민중 앞에 나서기 전엔 아직 검증이 안 된 인물이다. 시쳇말로 딱지를 못 뗀 일종의 미성년이다. 진인으로 검증을 받을 때까진 정도령, 검증이 끝난 한참 뒤에는 성스러운 임금이다. 진인이 정씨라는 수사의 논리는 무엇인가? 정감록에 그 답이 있다. 이 예언서는 이성계의 조상인 이심, 이연 형제와 정몽주의 선조 정감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돼 있으나 3인이 두 집안의 실제 조상은 아니었다. 상상속의 인물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민중은 유독 정감을 더 사랑했다. 엄밀한 의미에선 책 제목을 3인의 대담집이라 해야 옳을 테고 실제로 ‘정이문답(鄭李問答)’이라 한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문 경우고 대개는 ‘정감의 기록’이란 뜻에서 ‘정감록’이라 불렀다. 그 제목엔 역사의 승리자는 조선왕조의 적대자들, 즉 정씨 성을 가진 진인과 그의 추종자들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다. 그런데 새 왕은 왜 하필 정씨여야 하는가? 정씨는 ‘정감록’의 맥락에서 볼 때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다. 조선왕조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정씨로 대표된다는 뜻이다. 이 주장의 배후엔 민중들의 집단적 기억이 배경에 깔려 있다. 민중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즉위를 반대하다 죽은 정몽주 이야기를 잊지 못했다. 조선왕조 건설의 주역이었으나 태종에게 제거된 정도전, 선조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정여립, 영조 때 일어난 반란 사건에 연루된 정희량의 이름을 들먹이기도 했다. 정씨는 조선왕조와 상극(相剋)이므로, 새 나라는 반드시 정씨가 왕이 돼야 한다는 민중의 주장이었다. 따지고 보면 김씨, 이씨, 박씨 등 다른 성씨 중에도 역모에 휘말려 죽은 사람은 수두룩했다. 그런 점에서 정씨 자손이 다음 세상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논법은 너무 순박하다. 진인이 반드시 정씨 집안에서 출생해야 될 이유는 없었다.20세기 전반 어느 종교 운동가는 ‘정(鄭)도령’은 ‘정(正)도령’이라고 했다. 정씨 진인설의 핵심을 찔렀다고 본다. 정도령은 성씨가 무엇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민중이 믿고 따를 만큼 도덕적인 사람인가가 최고 검증요건이었다. ●진인이란? 조선시대엔 성리학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였고, 그에 따르면 ‘도덕군자’가 제일이었다. 그 군자를 제쳐 두고 갑자기 왜 진인이란 생소한 존재가 나타나 왕조를 뒤엎는가? 그 이유를 나는 민중의 숨은 뜻에서 찾는다. 새 시대는 군자 되기를 외치는 사람들이 큰소리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민중의 노여움이 느껴진다. 성리학을 아주 폐기처분하지는 못할망정, 민중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뜻을 그렇게 밝힌 것이다. 진인(眞人)의 사전적 정의는 참된 도(道)를 깨달은 사람, 또는 진리를 체득한 사람이다. 진인이란 표현은 본래 도교 용어다. 영어로 된 도교전문 서적을 뒤적여 봤더니 ‘완벽한 인간 존재(perfect human-being)’라고 한다. 인간적 한계를 초월한, 신선과 비슷한 존재가 도교의 진인이다. 불교 쪽은 어떤가 싶어서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현대의 임제선에선 진인을 핵심개념으로 삼고 있다. 몇 해 전 어느 신문 기자가 서옹 스님(전남 장성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에게 진인의 개념을 물었다. 그때 서옹의 답은 이러했다. “거짓말 없는 사람이 ‘참사람’이지. 거짓이 없으면 양심에 부끄러울 게 없고, 양심이 깨끗하면 절대 자유로울 수 있는 거야. 정치인, 경제인, 관리들 정말 거짓말 너무 많이 하더군.” 서옹 덕분에 현대 불교의 진인 개념이 명료해졌다. 진인은 절대자유인이라 불릴 만한 참사람, 수행의 최고단계에 오른 사람이다. 조선후기 민중은 그런 진인이 나와서 세상을 확 뒤집어 놓기를 바랐다. 정감록에 함께 실린 예언서 ‘동차결(東車訣)’에는 진인왕이 건국한 뒤엔 불교신자가 대접받는다고도 되어 있다. 불교적 진인관이 맥맥이 흐르고 있다. 이 글을 쓰다 말고 잠시 나는 호남지방에 퍼져 있는 진묵 대사 설화를 떠올렸다. 진묵은 석가모니의 현신이었다는 전설도 있긴 한데, 그는 발달된 기계기술 문명을 가져다 백성들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잠시 서역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육신은 절간에 두고 진묵의 영혼만 잠시 떠났던 것인데, 속된 유학자 김봉국이 그 육신을 불태우는 바람에 그만 개화의 꿈이 허망하게 무너졌다고 한다. 사실 진묵은 17세기 인물이었고 문명개화와는 무관하였다. 그럼에도 일부 민중은 유교가 못 이룬 개화의 꿈을 진묵이라면 이룰 수 있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민중이 기다리던 진인은 도덕적으로 특출한 인물이어야 했다. 그런데 도덕성을 통치자의 필수요건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민중의 생각은 양반들의 정치관을 닮았다. 유교의 성현(聖賢)이 진인으로 대체되고 만 느낌이다. 민중은 기존질서에서 벗어나고자 애썼지만, 제도가 아니라 인물을 최우선으로 삼는 유교적 사유의 틀에 갇혀 버렸다. 그런 한계를 인정해도 민중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대안을 궁리하였다는 사실은 무척 중요하다. 민중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진인은 구원자라는 점에서 미륵불 또는 기독교의 재림 예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에 앞서 벌어질 아마게돈에서의 선악의 일대결전이나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진인의 출현과 무관하다. 진인이 세상에 나올 때 전쟁과 환난이 예정되어 있긴 해도 그것으로 역사가 완결되지는 않는다. 예수는 죽은 사람의 영혼까지도 불러다 영생을 준다지만 진인은 산 사람들을 좀더 살기 좋은 사회로 이끌 따름이다. 진인은 미륵불처럼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성불시키지도 못한다. 진인의 문제해결은 한시적이고, 부분적이다. 진인은 예수나 미륵불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때가 이르면 환상의 섬에서 나올 진인 현대의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조선후기 민중은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고 보았다. 깊은 산골짜기의 신비한 동굴도, 오랜 암자도 아니었다. 바다 한가운데 이상향으로 상정된 섬이 있고, 거기서 때가 되면 진인이 출현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상향을 말하다 보니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로 시작되는 제주의 이어도 타령이 생각난다. 그 노래에는 이어도에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어도는 파랑도라고도 하는데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馬羅島)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수중섬(水中島)이다. 엄밀히 말하면 암초(暗礁)다. 해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어 파도가 몹시 심할 때만 모습이 잠깐 보인다. 그런 이유로 이어도는 예부터 이상향으로 자리매김돼 왔다. 서양에서도 미지의 섬을 이상향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1478∼1535)는 1516년 정치 공상소설 ‘유토피아(아무 데도 없는 나라란 뜻)’를 발표했다. 모어는 히스로디라는 뱃사람에게 어떤 신기한 섬나라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유토피아’인데 실제로는 당시 영국사회를 호되게 비판하고 저자가 동경하던 이상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 섬은 공화국이고, 모든 시민은 하루 6시간만 노동하면 된다고 했다. 거기선 남녀 모두 교육 혜택을 받아 교양이 풍부하다. 전쟁이나 다툼도 전혀 없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평등하다. 누구나 이상향에 가보고 싶겠지만 그곳을 찾아가긴 불가능하다. 토머스 모어는 자기가 속한 세상을 이상향으로 만들자고 했다. 조선시대 민중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민중이 세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선왕조의 정치적·사상적 통제력은 그 시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강했다. 그래서였을 테지만 민중은 이상향에서 구원자를 불러오고자 했다. 모어의 유토피아엔 법과 제도가 구원을 보장해 주었다. 그곳엔 구원자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조선 민중의 이상향은 그 반대였다. 사람이 문제를 푸는 열쇠였다. 민중은 진인이란 구원자를 통해 현실 문제를 풀려 했다.17세기 후반부터 역사기록에 나타난 해도진인(海島眞人)이 그것이다. 섬에 희망을 걸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나? 바다는 신화시대로부터 생명이 숨쉬는 희망의 요람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민중은 대부분 뭍에 살며 농사에 종사했다. 그런 판국인데 진인이 낯선 섬에서 나온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이 문제로 씨름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이런 짐작을 해봤다. 진인을 하필 섬에서 찾는 이유는 민중을 괴롭혀온 조정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력의 공백 지대는 음모와 꿈이 무르익을 수 있다. 게다가 17세기부터 먼 바다에서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낯선 서양 선박(황당선, 이양선)이 출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외의 사건소식을 접한 민중은 바다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일도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이 해도진인설로 굳어졌다고 본다. 서양 선박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 보자. 그때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의 나가사키를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들은 조선 배보다 수백 배나 큰 거함을 타고 대서양·인도양을 가로질러, 대만을 지나 제주 남쪽 해상을 통과하여 일본을 오갔다.18세기 후반이 되면 그 큰 서양 선박들이 가끔 서남해에 나타났다. 그 소식을 듣고 실학자 박제가도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배 안에는 생김새, 언어, 습관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서양 선박은 조선 해안에 표류하기도 했다. 박연, 하멜 등이 그들인데 훗날 하멜은 도망에 성공,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 그는 ‘하멜표류기’를 통해 유럽각국에 한국을 알리기도 했다. 조선후기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서양 사람은 외계인이었다. 얼마나 먼지 거리조차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곳에서 큰 대포를 장착한, 초대형 선박을 타고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서양 선박의 출현은 민중의 공포심과 신비감을 동시에 자극했다. 그러나 19세기 전반까지 아직 서양 함대가 조선을 침략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 못지않게 신비스러움이 컸다. 이양선이 출몰하는 서남해는 경이로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바다에 서양 선박이 나타난 것이 전혀 뜻밖이었듯, 언제 또 새로운 존재가 등장할지 호기심 많은 민중으로선 귀추가 주목되었다. 동해나 서해에도 이상향이 있다는 소문이 가끔 떠돌았지만 남해설은 좀더 유력했다. 어느덧 서남해는 진인의 고향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 물론 서양배의 출현만 가지고 해도진인설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조선후기엔 무인도가 이주지로 각광을 받게 됐다는 점도 언급돼야 한다. 당시는 육지의 개발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가난한 민중은 삶의 터전을 섬에서 일구기 시작했다. 한번 민중의 눈길이 바다 쪽으로 쏠리자 수십의 무인도가 유인도로 바뀌었고, 율도·무석국 등 상상의 섬들이 인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 사회적 맥락을 염두에 둘 때 ‘진인(眞人)이 남해에서 계룡(산)으로 나오면 (새 왕조의) 창업을 알 수 있다.’는 예언의 의미가 충분히 살아난다. 서남해에 서양 선박이 출몰하고, 무인도가 개척되는 가운데 민중은 해도진인의 출현을 동경했던 것이다. 육지로 나온 진인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진인의 정체를 밝히려는 나의 탐구는 다음 호로 이어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새해 가장 바빠지는 사람들은 점술인이다. 개명한 세상에 누가 미신 따위에 솔깃하랴 싶지만, 일간지조차 새해를 맞아 국운이 어떠할지를 점친다. 옛날부터 이 땅에는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뿌리도 제법 깊어서 삼국통일 이전까지 소급된다.‘고려비기(高麗秘記)’,‘고경참(古鏡讖)’이 고대의 예언서라면,‘삼한회토기’ ‘삼각산명당기’는 중세의 예언서였다. 근세의 예언서로는 ‘도선비기’를 비롯해 수십종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다. 18세기부터 민중의 사랑을 받던 ‘정감록’은 국가의 탄압으로 간행되지 못한 채 다종다양한 필사본만 유행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감록’은 1923년 드디어 활자화되었고 그것이 사실상 정본 취급을 받고 있다. ‘정감록’의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이 멸망하는데, 그 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계룡산에 세워질 새 왕조는 언제 나타나는지로 압축된다. 아무 해에 무슨 사단이 터진다는 식의 짤막한 예언이 대부분인데, 한국의 예언서가 대개 그렇듯 60갑자로 햇수가 적혀 있어 세월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다. ●예언서에 보이는 민중의 공포 ‘정감록’의 비교적 앞쪽엔 이런 오싹한 대목이 있다. 원숭이해 봄 삼월과 성스러운 임금이 다스리는 가을 팔월, 인천과 부평에는 밤중에 배 1000척이 들어오고, 안성과 죽산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다. 여주와 광주에는 인적이 영영 끊어져버리고, 수원과 남양에는 피가 흘러 냇물을 이루리라. 한강 이남 100리에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끊어지고, 인적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전쟁영화의 섬뜩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예언은 수도권 전체가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작년 2004년도 원숭이해였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먹고 살기 참 힘든 한 해였고 북한의 핵문제로 전쟁 걱정도 컸었다. 북핵문제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경책이 화근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땅에 그런 참극은 없었다.‘정감록’의 예언이 틀린 셈이다. 그래도 여운은 남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구절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다들 그렇단다. 과연 ‘정감록’에는 민심을 휘어잡는 묘한 힘이 있나 보다. 서울로 통하는 관문 인천 앞바다에 적을 태운 배가 1000척씩이나 들이닥친다고 했다. 그런 변고가 없다.1592년의 임진왜란, 그보다 5년 뒤의 정유재란도 이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참혹한 예언은 뜬금없이 나오는 예가 없다.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파괴했다. 바그다드 상공에 쏟아진 폭탄이 불꽃놀이 같았고, 명분 없는 전쟁에 죽은 사람만도 10만을 헤아렸다. 훗날 이라크에 예언서가 작성될 경우 미군의 무차별 폭격이 남긴 상흔은 집단적 기억이 되어 남을 것이다.‘정감록’에 담긴 이 대목도 민중의 전쟁공포증으로 헤아려봐야 한다. 우선 인명의 대량 살상을 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안성 등의 지명이 등장하는 것도 대수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정감록’의 예언은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만 같다. 1894년 7월 하순 일본군함은 인천 앞바다에 정박하다가 아산(牙山)·풍도(豊島)로 내려가 청의 해군과 한바탕 싸웠다.‘정감록’에 나오는 인천 앞바다 운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격전지 아산과 풍도는 바로 예언서에 언급된 남양의 코앞이다. 그 뒤 일본군대는 천안 부근의 성환(成歡)에서, 같은 해 9월에는 평양에서 청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정감록’에 나오는 안성, 죽산 등도 실제의 전쟁터 성환에서 멀지 않다. 근대식 무기가 동원된 청·일 양국간의 살벌한 전투 장면을 지켜보면서 민중은 공포에 떨었고 이것이 다소 과장된 형태로 ‘정감록’에 아로새겨졌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도 있다.19세기 후반부터 한국에는 ‘서양오랑캐’의 침략을 두려워하는 위기의식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1840년 여름, 영국은 4000명의 병력으로 중국의 다구·톈진(天津)을 위협하였고, 이듬해에 다시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물밀 듯 난징(南京)으로 쳐들어갔다. 아편전쟁의 놀라운 소식은 연달아 한국에 알려져 조정은 물론 민심마저 발칵 뒤집혔다. 외침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1866년 프랑스 함대가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불과 5년 뒤인 1871년에는 미국함대가 쳐들어와서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다. 흥선대원군은 당황한 나머지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워 외국과 교섭을 전면 금지했지만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 속에서 각종 소문과 예언이 유행했다. 갑자기 1000척의 배가 쳐들어와서 수도권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예언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일 것이다. 거기에 청·일전쟁의 집단기억이 덧칠되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겠다. ●‘정감록’에 숨겨진 비밀을 읽는 법 10년쯤 전이었다. 역사에 나타난 한국인의 이상세계를 탐구하던 내 눈길이 예언서 ‘정감록’에 닿았다. 한국역사상 대표적인 예언서라면 다들 ‘정감록’을 첫손가락에 꼽았기에 그 책을 끌어당겼던 것인데 실망이 컸다. 거기에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없었고,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같은 것도 안 보였다.‘정감록’에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서술은 없고 대신 알쏭달쏭한 표현만 단편적으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거듭 읽을수록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정감록’이 지닌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정감록’에는 비밀스러운 문화의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정감록’의 한 줄 한 줄은 수천년 동안 생성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였다. 민중은 공포와 절망에 떨면서도 예언 가운데 희망의 빛을 감춰두었던 것이다. ‘정감록’의 문화적 코드는 예언서를 예언서로서 바라보는 편협한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자구의 해석에 매달릴 경우 ‘정감록’은 그저 단편적이고 무질서할 수밖에 없다.‘정감록’을 읽는 옳은 방법은 그게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의 앞뒤를 재고 정치와 문화를 하나로 뚫어서 읽을 때, 그 비밀스러운 코드는 비로소 풀릴 것이다. ‘정감록’의 밑바탕에는 풍수지리설과 선천후천 교대설(옛 세상이 끝나고 이제 곧 천지가 개벽한다는 주장)이 있다. 맥맥이 흐르는 미륵신앙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감록’은 한국문화의 젖줄이다. 따지고 보면 동학, 증산도, 원불교와 같은 근현대 한국의 신종교도 ‘정감록’으로부터 생명수를 제공받은 셈이었다. ●‘정감록’과 김지하 ‘정감록’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대 한국의 지식인 몇몇도 오래 전부터 ‘정감록’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인 김지하다.‘오적’이란 시를 비롯, 군사독재에 목숨 걸고 맞서 싸운 그의 투쟁담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김지하는 사상적으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생명이니 살림이니 하는 토종의 생각으로 서양의 다양한 철학과 주의 주장을 아우르고 싶어했다. 그런 김지하가 ‘정감록’을 즐겨 인용하였다면? 김지하는 사실 ‘정감록’을 본떴으며,‘정감록’의 정수를 꿰뚫어 보았다. 이 말이 쉽게 믿기지 않을 사람도 있을 테니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다. 김지하의 책 ‘말뚝이 이빨은 팔만사천개’의 ‘오행’이란 시가 앞서 살핀 ‘정감록’의 예언과 매우 비슷하다. 그 해 여름 복중 큰 눈이 내리고, 큰물이 지고, 큰 흉(凶)이 들고 안성과 죽산(安竹)과 수성과 당성 사이(隨唐間)에 굶어죽은 송장이 산처럼 쌓이고 비석이 땀을 흘리고 우물에 피가 솟고 대꽃이 피고 운운. 여기서 김지하는 전쟁의 참혹상을 흉년의 비극으로 바꿔놓았지만 지명도 그대로 두었고 얼개도 ‘정감록’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앵적가’의 경우는 더 심하다. 안성과 죽산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며 하는 식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김지하의 패러디는 계속된다.‘이 가문 날에 비구름’에서는 아예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정감록’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이 작품은 동학의 역사를 한 편의 유장한 시로 풀어낸 것인데,‘정감록’을 빌려다가 최제우가 동학을 개창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왜 김지하는 ‘정감록’을 자꾸 빌려다 썼을까. 단순히 그 예언서의 몇 대목에 관심을 둔 것일까, 아니면 ‘정감록’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일까. ●‘정감록’이란 민중의 밥그릇 ‘정감록’을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정경모란 이름도 생각난다. 그는 80년대 중반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찢겨진 산하’의 저자로, 남북통일에 관한 이론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씨알의 힘’에는 ‘삼선각 운상 경륜문답’(‘찢겨진 산하’의 저본)이 실려 있다. 정경모는 그 글에서 민족지도자 김구, 여운형 그리고 장준하 세 사람이 천상에서 만나 민족의 미래를 논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마치 ‘정감록’에서 정감, 이심 및 이연이 금강산 비로봉에 앉아서 나라의 운명을 논의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정경모와 김지하가 ‘정감록’의 형식과 내용을 빌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들은 민중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 사상가 또는 운동가였고, 그 점이 ‘정감록’을 대한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다. 그들로서는 ‘정감록’에 담긴 예언의 내용 못지않게 지난 수백년 동안 민중이 사용해온 비밀스러운 화법을 터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언서가 그렇듯 민중은 겉으로 절망을 말하면서도 희망의 씨앗을 남몰래 감춰두고 싶어했다. 김지하 등은 그 점을 간파하였다고 할까. 그런 그들에게 ‘정감록’은 일종의 교과서였을 것이다. 민중의 편에 선 지식인들은 실의에 빠진 민중을 고무하고 싶었고 따라서 민중의 혀로 말하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고, 그렇게 믿어진다. 조선 후기부터 오랜 왕조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던 민중은 ‘정감록’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잊을 만하면 ‘정감록’을 매개로 한 역모 사건이 터졌다. 그 때마다 수십 또는 수백명의 연루자가 붙잡혀 가 매를 맞고 더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양반들의 조선이 영영 망하고 말 것이다. 천지개벽하면 시쳇말로 개똥쇠에 불과한 이 몸도 운대가 풀릴 것이다.” 민중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움켜잡는 심정으로 예언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으리라. 집권층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불온서적이었다. 그래서 금서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정감록’은 합법적으로 출판되지 못한, 그러나 전대미문의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일제시대까지도 그 인기는 여전해 ‘정감록’이 점지한 길한 땅을 찾아 수만명이 정든 고향을 버렸다. 일제시대 계룡산자락에는 불과 수년새 작은 읍 하나가 들어설 정도였다. 무수한 민중이 한 글자씩 ‘정감록’의 예언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난세에 살아갈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김지하가 ‘정감록’을 방불케 하는 담시를 연달아 지은 것도 민중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틔울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정감록’은 예나 지금이나 기댈 곳이라곤 전혀 없는 민중의 희망을 퍼 담는 밥사발이다. ● 정감록이란 조선후기부터 유행한 대표적인 예언서이다. 정도전, 정여립 등이 저자란 설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영조 때 실록에 처음 등장한 뒤 조정의 금령으로 출판, 소지 및 독서가 일체 금지되었다. 지배층에게는 혹세무민의 황당한 책, 민중들 입장에선 위로와 희망의 터전이었다. 곧 조선왕조가 망한다, 살아남으려거든 복된 피난처로 가라, 정씨(鄭氏) 진인(眞人)이 와서 새 왕조를 연다는 것이 예언의 골자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수많은 역모사건과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 수십곳에 정감록촌이 들어섰고, 수천의 신(新)종교단체가 등장했다. 겉보기엔 정감(鄭鑑), 이심(李沁), 이연(李淵) 3인의 엉성한 대담집인데, 풍수지리설·해도진인설·미륵신앙 등이 저변을 흐른다. 그들의 대화엔 은어(隱語)가 많아 해석이 안 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제목은 달라도 내용이 엇비슷한 온갖 예언서를 ‘정감록’이라 부르기도 한다. ■ 백승종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現 푸른역사硏 소장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독일 괴팅겐 막스·플랑크 역사硏 초빙교수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진단학회 총무이사 ●저서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2003년)‘그 나라의 역사와 말’(궁리,2002년)‘아버지 난 누구에요’(궁리,2001년)등 다수.
  • [지진 해일 대재앙] 고사리손 ‘희망’ 훔치는 부패관리

    [지진 해일 대재앙] 고사리손 ‘희망’ 훔치는 부패관리

    아시아 남부를 강타한 지진해일 발생 9일째인 3일 유엔 주도의 구호활동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생존자 수색작업과는 별개로 이번 지진해일로 발생한 500만여명의 이재민들에게 식수와 비상식량 등을 군용 헬기와 비행기 등을 동원해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 오지의 피해자들에게까지 구호의 손질이 닿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전망이다. ●구호품 오지 피해지역 전달 시작 유엔 얀 에겔란트 인도지원담당 사무차장은 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 등 오지 피해지역에 군용 헬기 등을 이용해 구호품을 전달, 구호활동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으며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겔란트 사무차장은 스리랑카의 경우 이재민 70만여명에게 3일 이내에 긴급 식량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100만여명에게 식량이 도착하기 위해서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식량보다 더 시급한 것은 식수와 위생장비이며,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는 헬기와 비행기, 트럭 등 중장비 지원이라고 말했다. 현재 피해지역에 군대나 군용 및 민간용 비행기 등을 파견한 나라는 미국과 호주, 영국, 독일, 인도, 파키스탄, 싱가포르 등이다. ●美, 피해지역에 대규모 병력 파견 베트남전 이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을 펴고 있는 미군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오는 9일 1500명의 해병대원과 헬기 20대,C-130 수송기 2대를 실은 태평양함대 소속 함정들이 스리랑카에 도착, 구호활동을 지원하게 된다고 밝혔다. 초기 구호체계 미비로 비난을 받았던 유엔은 현재 로마와 자카르타, 수마트라에 구호품을 집결·배분하는 물류센터를, 태국의 공군기지에 군용 비행기 등에 대한 종합통제센터를 운영하면서 국제구호체계의 틀을 갖춰가고 있다. 한편 인도정부는 스리랑카가 사전 통보도 없이 구호활동을 위해 미국 해병대원 1500명을 입국시킨 것에 대해 분노했다고 스리랑카 일간지 ‘수다르 올리’가 3일 보도했다. 또 인도는 스리랑카가 외부 세력을 자국 텃밭인 서남아에 끌어들임으로써 분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스리랑카에 이의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고사리손 ‘희망’ 훔치는 부패관리 세계 각지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에서는 초등학생 5명이 성탄절때 부모님으로 받은 선물을 팔아 275파운드의 성금을 마련하는 등 민간 기업과 개인들의 성금이 총 6000만파운드로 정부의 구호자금 5000만파운드를 앞섰다. 스웨덴 역시 민간인들의 성금이 2일 현재 4430만유로를 기록중이며, 노르웨이도 민간인들이 모두 2400만유로를 성금으로 내놓았다. 피해현장에선 파렴치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일부 관리들이 구호품을 빼돌리고 있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구호품 배급의 장애가 되고 있다고 자카르타 포스트가 3일 보도했다. 아체주 전역의 피해자들이 배고픔과 의약품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신문은 강도높게 비판했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 홍콩지부는 3일 옥스팜 명의로 성금을 요청하는 가짜 이메일이 나돌고 있다며 수사당국에 조사를 요청했다. 영국 런던경찰은 스카이뉴스 웹사이트에 실종된 가족·친지들에 대한 사연을 올린 사람들에게 영국 정부 명의로 가짜 ‘사망 사실’을 통보한 40대 남자를 체포했다. 김균미기자 외신 kmkim@seoul.co.kr
  • [역사속의 을유년] 60년전 한반도엔 ‘희망의 물결’

    [역사속의 을유년] 60년전 한반도엔 ‘희망의 물결’

    을유년(乙酉年)은 ‘희망의 해’다.60년 전 35년간의 일제 강점을 털어내고 광복을 맞은 것이 서력(西曆) 이후 서른두번째의 을유년이었고, 오늘 맞은 새해는 바로 서른세번째 을유년이다.60년 전 을유년에 온 나라 구석구석 넘실댔던 기쁨과 희망의 물결만 생각해도 새해 아침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전에 지나간 서른한번의 을유년을 돌이켜보건대, 우리 선조들도 비교적 평화로운 한해를 보냈던 것으로 보아 새해는 커다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시작해봄직하다. 세계적으로도 2차대전 종결 및 니케아종교회의 등 희망적인 해가 많았다. 을유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주요 사건을 시대별로 살펴본다. ●325년 로마제국 니케아종교회의 기독교는 로마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출발했다. 예수는 스스로 ‘하느님의 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온 메시아를 자처하며 세력을 키웠으나 초기의 은 생애동안 성공했을 뿐 곧 혁명가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후 예수의 추종자들은 갖은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의 몇몇 도시들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신앙관용령(밀라노칙령)을 선포한 데 이어,325년 니케아에서 모든 교회 대표자들이 모인 최초의 전 기독교 회의를 열어 모든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로마제국 전역에 교회조직이 발달했다. ●1225년 최우, 정방 설치 고려 무신정권 수장이었던 최우가 고려 고종때 자신의 집에 ‘정방’이란 관청을 설치했다. 무신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았지만 국가의 행정실무를 무신만으로 처리할 수 없어 정방을 두고 젊은 문사들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 이곳에선 문무백관의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는데, 인사 명부와 함께 고과를 매겨 왕에게 올리면 왕은 그것을 결재할 뿐이었다. 이를 통해 최씨 정권은 문무백관을 실제로 장악할 수 있었다. 최씨 정권 몰락후 정방은 궁중으로 옮겨져 국가기관이 되었다. ●1285년 일연, 삼국유사 완성 충렬왕 11년,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일연은 1277년 이후 청도 운문사에 머물 때 삼국유사를 편찬하기 시작해 5권2책으로 완성했다. 삼국유사는 왕명으로 편찬한 기전체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달리 자유로운 형식으로 단군신화에서 후삼국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삼국사기에 실려 있지 않은 귀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일연은 나름대로 철저히 사실을 고증해 책을 편찬했다고 한다. ●1645년 소현세자 죽음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병자호란때 볼모로 청에 끌려갔다. 청에 9년간 머물며 청과 조선 외교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귀국할 때 천문·수학·천주교 서적 등을 갖고 왔다. 귀국하자 반청파들은 그를 친청적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가져온 서양서적도 불태워버렸다. 인조 23년 4월 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만에 ‘오랑캐의 것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화가 난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앓다가 나흘만에 죽었다. 이때 시신이 검게 변해 있었고, 피를 쏟고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독살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후 소현세자 빈도 인조를 저주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듬해 사약을 받았으며, 세 아들도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막내만 살아남았다. ●1885년 거문도사건 발생 갑신정변(1884년) 이후 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조선에선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여 청·일 양 세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러시아도 겨울에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조선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의 남방 진출을 막는다는 구실로 그해 3월 선제공격을 감행, 거문도를 점령했다.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를 잇는 바닷길의 중간에 있어서 러시아 동양함대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결국 조선을 제외한 러시아·청·영 3국이 교섭을 벌여 러시아는 조선의 어떠한 영토도 점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1887년 2월 영국함대는 철수했다. 그해 8월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최초의 근대식 중고등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했으며, 한성전보국이 개국(서울∼인천간 전신 개통)했고 대원군이 청에서 귀국했다. ●1885년 인도국민회의 결성 영국에 의한 식민정부에 의해 교육받은 인도인들이 구성했다. 후일 간디의 지도아래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영국과 전국적으로 싸우며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5년 일본 항복, 한국 광복 8월15일 일본 왕의 항복선언과 함께 2차대전이 종결되고 한민족도 광복을 맞았다. 이에 앞서 5월2일엔 베를린이 연합군에 점령당했고,5월8일 독일이 항복했다. 9월2일 맥아더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책을 발표했으며,9월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선언됐다.9월7일엔 미 극동사령부가 군정을 선포하고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결성됐다.11월10일 미군정이 인민공화국을 비난했다는 것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매일신보’가 정간됐다가 11월25일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속간되었다. 조선일보(11.23), 동아일보(12.21)도 복간됐다.12월30일 송진우가 피살되고,31일부터 신탁통치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지난 풍진(風塵)세상의 먼지를 털고 새 옷을 입어 보자. 어디로 갈까. 산사(山寺), 바다, 아니면?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몹시 부는 곳이면 어떨까. 처음 시작되는 이름이 ‘마(麻)’에서 ‘마(馬)’로 바뀐 곳, 최남단이 좋겠다. 맞다, 그 섬이구나.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제주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20년 동안 제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김영갑씨의 ‘그섬에 내가 있었네’가 문득 생각난다. 또다름의 풍진세계가 다가온다. 올해는 아픈 역사를 되새길 일도 유난히 많다.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 굵직한 화두다. 어이해야 하나. 생각의 나침반을 우선 저 멀리 돌려 보자. 국토의 한 점밖에 안되는 낮은 그 곳으로. 마라도는 우리 땅의 막내이자 맨끝.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줄을 잘못 서서 홀대를 받아왔다. ●90년째 국토 시작의 불 밝힌 마라도 등대 마라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반도의 허리가 삭둑 잘린 상황에서, 마라도는 반도 시작의 불을 밝히는 곳이다. 그렇다, 마라도의 등대. 온갖 선박의 항로를 밝혀주는 생명의 길잡이가 있는 곳이다. 거친 파도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90년째 묵묵히 걸어왔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지금은 세계 각국의 해도(海圖)에 어김없이 표기될 정도로 창대해졌다. 마라도 등대는 을사조약 체결 10년 뒤인 1915년 3월 첫불을 밝혔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을 염두에 두고 주위 작은 섬들과 교신하기 위해 군사통신기지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말.50여명을 태운 마라도행 유람선이 제주 남제주군 송악산 선착장을 막 출발했다. 겨울바다여서 그런지 파도가 꽤 높았다. 유람선 오른편 창가너머로 얼굴을 돌렸다. 바다와 맞닿은 송악산 절벽자락에 뻥 뚫린 동굴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들어왔다. 유람선 안내원이 선내 방송을 통해 “보다시피 송악산 해안가에는 모두 25개의 인조동굴이 있다.”면서 “저 동굴은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가 인근을 지날 때 어뢰공격이나 가미카제식 공격을 하기 위해 어선을 숨겨 놓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일제는 10m 간격으로 해안을 돌며 동굴을 파놨으며 공사에는 인근 주민들이 강제 동원됐다.”고 덧붙였다. 20여분후 저 멀리 마라도 등대가 보였다. 마라도의 전체 둘레는 4.2㎞,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0m. 그 위에 마라도 등대탑이 16m 올라가 있었다. 한폭의 풍경화 같았다.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홀대받아온 막내의 ‘몽니’일까. 배가 마라도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잠시후 배는 가까스로 접안했고 관광객들은 ‘와’하는 탄성을 지르며 발을 내디뎠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풍진의 먼지를 털어내려는 듯 사방팔방에서 바람이 세차게 몸을 감았다. ●등대 대표로 보신각 ‘화합의 종’ 울려 등대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제주지방해양수산청 마라도항로표지관리소’라는 문패가 있었다. 좌우로 살폈다. 아무리 둘러봐도 발 아래에는 망망대해뿐. 뒤로는 한라산, 동으로 대마도와 일본열도 구나카이현, 서쪽으로는 중국 남쪽 상하이와 마주하는 북태평양이 펼쳐진다. 아, 이곳이 시작이구나. 누가 국토의 끝이라 했던가. “마라도 등대는 올해부터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최근 이곳에 해양문화공간을 완공했거든요. 이는 곧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 해양문화의 시발점을 상징합니다.” 김석천(43) 항로표지관리소장. 등대근무 경력만 20여년째의 베테랑. 그는 섬(우도)에서 자라 고교를 졸업한 뒤 곧장 등대원의 길을 걸었다. 우도에 3년, 추자도에서 5년 등 주로 제주의 섬 등대에서 근무했다. 마라도에는 1년여 전에 부임했다. 등대원들은 옛날과 달리 공무원 신분으로 2년마다 순환근무를 하게 된다. 을유년(乙酉年) 새해를 맞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우선 31일 서울 보신각 ‘화합의 종’ 제야 타종 인사 16명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됐다. 개인적으로는 등대원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지만 전국 유인등대 43개소 가운데 대표로 발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159평 해양문화공간 최근 완공 또 있다. 다름아닌 타종식이 있던 날 마라도 등대시설에 새로운 해양문화 공간이 들어선 것. 그는 “마라도가 결코 국토의 끝이 아닌 광복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장소가 될 것”이라고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 공간에는 대지 159평에다 100여평의 전시실 외에도 휴게공간 ▲사진촬영 코너 ▲거꾸로 보는 세계 지도 ▲광파의 시초인 장작불 모형의 조형물, 특히 마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꿈을 보관할 수 있는 타임캡슐까지 만들어 먼훗날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등대 탄생 90년 만에 동방의 새로운 불을 밝히는 국토사랑의 장소로 탈바꿈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10초마다 한번씩 깜박이는 마라도 등대의 불빛은 최장 40㎞까지 뻗어 나간다. 등대에는 태양과 풍력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기가 끊겨도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 최근에는 위성항법 장치까지 설치돼 마라도 주위를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 기상 상태 등을 실시간 제공해 주고 있어 한차원높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새해 소망요? 마라도는 1년내내 아무리 많은 파도가 쳐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불이 한번도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2004년의 괴롭고 어두웠던 풍랑은 이미 지나갔지요. 올해는 다들 힘든 일이 있어도 등대처럼 어두운 길에 불을 밝혀주는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 “관광객들 중에는 마라도를 어떤 낙도의 외딴섬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면서 “마라도를 국토사랑의 순례지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아울러 피력했다. 김 소장과 함께 일하는 등대원 고성봉(39)씨는 “이곳 30여가구의 주민들이 마라도에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희망을 안겨주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횟집을 운영하는 김춘광(34)씨는 “경제난의 여파가 마라도에도 불어닥쳤다.”면서 마라도를 떠나는 주민이 생겨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의미있는 지적을 했다. 전교 학생수가 3명이 고작인 마라분교의 김혜지(4학년)양은 “요리사가 꿈”이라면서 “컴퓨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올해 소망을 얘기했다.3학년의 김영일군과 2학년의 김은영양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차 선생님과 변호사가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마라도 김문기자 km@seoul.co.kr ■ 마라도 등대에 얽힌 사연 ‘군인집’으로 불렸던 마라도 등대는 한때 파괴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마라도 주민들에 따르면 1948년 4·3사건 때 서북청년단들이 쳐들어와 등대를 부수려고 했다는 것. 그러나 당시 나봉필이라는 주민이 서북청년단들을 겨우 설득시켜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후 나씨는 자진해서 등대지기가 됐고, 또 마을 주민들과 조를 짜서 밤마다 등대에 올라가 손으로 직접 불을 밝혔다고 한다. 나씨는 정부수립때까지 무료봉사로 등대를 관리했으며 정부수립 후에 밀가루와 구호물자 등으로 3년 동안의 보수를 한꺼번에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후 등대운영은 정부측으로 넘겨졌다. 한편 ‘마라’란 명칭은,1702년(조선 숙종 28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에 ‘麻羅島’로 표기돼 있다. 칡넝쿨이 우거진 섬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그 이후 언제부터인가 ‘馬羅島’로 표기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어부들 사이에는 남쪽에서 부는 바람인 ‘마파람’에서 유래됐다는 해석도 있다.
  • 독일월드컵 대륙별 중간점검

    독일월드컵 대륙별 중간점검

    2002한·일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그해 9월 아르헨티나-칠레전 등 남미예선을 시작으로 2006년 독일을 향한 여섯 대륙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출사표를 던진 팀들은 모두 197개국. 피말리는 레이스가 반환점을 돌고 있는 사이 90개 팀이 탈락했다. 39개 팀이 출전한 아시아에서는 1·2차 예선을 거쳐 한국 등 8개국이 최종예선에 안착했다. 타 대륙의 예선 진행 상황도 짚어본다. ●유럽-강호들의 혈투 유럽은 개최국 독일을 제외하고 51개 팀이 7개 팀 3개 조,6개 팀 5개 조 등 8개 그룹으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펼치고 있다. 가장 많은 13장의 본선행 티켓이 배정됐다. 각조 1위와 2위팀 가운데 상위 두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나머지 2위는 플레이오프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팀당 3∼5경기를 치른 초반 상황으로, 지난 대회 본선에 나오지 못했던 ‘앙숙’ 네덜란드와 체코가 같은 1조에 속해 혈전을 펼치고 있다. 네덜란드는 조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 체코는 루마니아(28위) 핀란드(43위)에 밀려 4위에 그치고 있다.‘아트사커’ 프랑스(4조)와 ‘무적함대’ 스페인(7조)이 각각 조 2,3위로 다소 부진한 편이지만 포르투갈(3조) 이탈리아(5조) 잉글랜드(6조) 등 터줏대감들은 조 1위로 순항하고 있다. ●아프리카-새로운 바람 상황이 가장 특이하다.5장의 티켓을 두고 이미 최종예선이 절반 넘게 진행됐다. 한·일월드컵 본선 멤버들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만 조 선두를 달리고 있을 뿐이다.6개 팀 5개 조에서 1위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데, 세네갈·카메룬·나이지리아·튀니지 등 기존 강자들이 토고·코트디부아르·앙골라·기니 등에 밀려 각각 2∼5위로 처져 있다. ●남미-두 개의 탑 4.5장의 티켓이 걸려 있는 남미는 단계별 예선을 거치지 않고 10개국이 내년 11월까지 홈앤드어웨이 단일 리그를 벌인다. 팀당 18경기 가운데 11경기를 치렀다. 아르헨티나가 승점 22(6승4무1패)로 1위.‘삼바 군단’ 브라질은 승점 20(5승5무1패)에 2위로 예선 내내 라이벌 아르헨티나와 선두를 뺏고 뺏기는 ‘시소 게임’을 하고 있다. 파라과이(4승4무3패)와 에콰도르가 승점 16(5승1무5패)으로 골득실 차에 의해 3,4위. 반면 5위 우루과이(14점)와 10위 볼리비아의 승점 차가 4점에 지나지 않아 오세아니아 1위와 플레이오프를 갖게 되는 5위를 점령하기 위한 경쟁이 뜨거울 전망이다. ●북중미-이변은 없다 3.5장이 걸린 북중미도 마지막 3차예선을 앞두고 있다.34개 팀이 6개 팀으로 추려졌으며,2002년 본선 멤버 멕시코·미국·코스타리카 등이 2차예선에서 조 1위를 거머쥐며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오세아니아-가장 험난한 여정 오세아니아에서는 반장의 티켓을 놓고 12개국이 나왔고, 호주와 솔로몬군도가 최후의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1위를 차지한다 해도 남미 5위팀과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예고된 상태. 월드컵 역사상 오세아니아 지역 팀들이 본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호주(74년)와 뉴질랜드(82년) 등 단 두 차례밖에 없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英 침략행각 고스란히… ‘포트 해밀턴’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해군 함정과 상선이 거문도에 드나들었고,1885년부터 1887년까지는 해군이 기지를 두었다. 그 동안과 그 후 몇 해 동안 해군 사병과 해병대원 10명이 이 섬과 근처 해역에서 사망하여 섬에 묻혔다.1886년에 사망한 2명과 1903년에 사망한 1명의 해군 병사의 기록은 비문에 새겨져 있으나 나머지의 묘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으로 병기한 거문도 영국군 묘지에 가면 ‘주한 영국대사관, 한·영협회, 영국부인회는 한·영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이 패를 세웠다.’는 동판이 세워져 있다. 묘지의 주인공에만 관심을 갖는 위 기록으로 보면 워낙 표현이 온건하여 영국군이 잠시 나들이라도 나왔다 간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거문도 무단점령은 두 말할 것 없이 제국주의적 침략 행각이었다. 거문도는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대한해협과 대마해협의 문호에 해당한다. 영국은 일찍이 거문도를 주목,1845년에 사마랑을 보내 탐사를 한 뒤 해밀턴항으로 명명했다. 서구열강은 이곳이 동북아의 군함과 무역선 중간기착지로 적당하다고 판단했다.1866년 미국의 아시아함대 슈펠트 제독도 5일간의 정밀탐사 끝에 ‘해군기지로 손색이 없다.’고 결론내렸다.1878년에 이곳을 다시 찾은 영국 실비아호 선장 존은 아예 ‘영국이 이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응이란 관점에서 무단점령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해석상의 명분일 뿐이다.35세에 외무차관,39세에 인도 총독, 후일 옥스퍼드대학 총장이 된 커즌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에 관해,“블라디보스토크나 나가사키 사이에서 함부로 차는 축구공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거문도 점령은 동아시아에서의 거점확보가 핵심 의도였다.1885년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군기지화하면서 22개월간 장기 점령한다. 김윤식 등 조선정부의 요인들은 보고를 받고도 섬의 위치조차 몰라 강화도 앞의 주문도와 착각하기도 했다. 조선정부의 무능이 이 정도였다. ●섬 3개 사이 만 숨어있어 군항에 딱 이 엄청난 국제적 사건을 이해하려면 한번쯤은 이곳에 들러봐야 한다. 거문도엘 가다 보면 뱃길을 따라 초도, 손죽도 등이 펼쳐져 이곳이 다도해임을 누구나 알게 된다. 동·서도가 삼산교라는 교각으로 연결되며, 그 가운데에 고도(현재의 거문리)가 자리해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등대로 가다 보면 3개의 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만이 요새처럼 숨어 있어 군항으로는 그만인 곳이다. 초대형 선박의 입·출항은 어렵지만 중간 연락항으로는 그만이다. 영국이 욕심 낸 이유를 알 만하다. 제국주의의 살아 있는 전시장과도 같은 섬 거문도. 영국군 묘역 바로 아래 바닷가에는 중국과 통신하던 해저 케이블이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전선(電線)은 ‘제국주의 침탈의 동맥’이었으니, 이는 본국과 교통하며 우리나라를 삼키려 한 야욕의 증거이기도 하다. 집단취락의 흔적인 일본식 여관, 소화13년(1938)에 건립한 거문항 확충비, 삼도(三島)신사터 등 식민의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야마구치(山口縣)현의 기무라 추다로(木村忠太郞)가 무인도를 개척하여 거문리를 조성한 까닭에 왜인들 사이에서는 더러 ‘목촌(木村)의 거문도’라거나 ‘왜도(倭島)’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왜인 후손들이 일본에서 ‘거문도회’를 조직, 이따금 이곳을 찾아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한다니 그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삼치와 고등어, 갈치잡이가 주업이다. 일본인도 예전에 이곳에서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그 고등어가 이곳에 ‘거문도 파시’를 열었다.5월말에 시작,10월까지 파시가 이어졌는데, 이 전통은 일제시대부터 76년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60∼70년대에는 겨울 동안에 삼치파시도 이어 열렸다. 고등어와 삼치가 한창 들던 60∼70년대는 거문도의 전성시대였다. ●60~70년대엔 고등어·삼치 많이 잡혀 이곳에서 어획된 삼치는 모두 일본으로 수출됐다. 한창 삼치가 들 때는 배 한 척이 출어해 보통 2∼3t, 많게는 6t까지 잡아 올리기도 했다. 경남 통영이나 삼천포 등지에서 200여척의 배들이 몰려 장관을 이뤘다.17세부터 어업에 종사해온 정복래(81)씨는 ‘파시평(波市坪)’이란 역사적 용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 말뜻을 ‘온갖 장사치들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곳에서 동·서도를 잇는 삼선교까지 이런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술집은 말할 것도 없고 옷과 비단, 신발가게에 강진 칠량에서는 옹기배까지 찾아들어 고기와 물물교환을 했다. 거나한 술판에 싸움 잘 날이 없었던 때도 이 무렵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유곽이 들어차 포구에 창녀들이 진을 쳤다. 당시 거문리에는 우물이 12곳이나 있어 수백 척의 배들이 몰려들어도 식수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 영국군이나 일본인이 동·서도를 마다하고 굳이 거문리로 몰려든 것도 풍부한 식수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거문도 사람들은 고등어보다 삼치를 더 가깝게 기억한다. 고등어 잡이가 경상도 선망배에 의해 독점되었고, 그 선망배들은 밤에 작업한 뒤 낮에 잠깐 항구에 들러 물만 얻어 싣고 떠나 주민생활과 깊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고등어는 모두 부산에 모였다. 그렇지만 폭풍이라도 불라치면 이곳에는 인근의 고깃배들이 몰려들어 며칠씩 묵어가는 바람에 골목길이 흡사 장터 같았다. 한 척에 수십명이 타던 시절, 어선 수십 척만 들이밀어도 그들이 푸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며 거문도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더 이상 어로선단이 몰려들지도 않았고, 많은 거문도 사람들이 원해나 원양어선을 타고 외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로지 갈치잡이만 성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말린 갈치나 생갈치 위판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여기서 솟구친 의문 하나. 왜 60∼7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어획고를 올리던 거문도가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었을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되면서 대일 청구권자금에 의한 노후 선박과 그물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다리며 잡던 어업’에서 ‘쫓아가 잡는 어업’으로 변신, 단기간에 엄청난 어획량을 올렸으나 그만큼 어자원은 급감했다. 여수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김진영 박사의 말을 듣자.“삼치나 고등어는 떼를 지어 움직이는 외해종(外海種)이다. 서식 공간은 정해져 있고 먹이도 제한돼 있어 이들 어류는 자기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고등어를 우리는 연간 20만∼40만t씩 잡아 올린다. 엄청난 양이다. 치어기의 생존 조건이 좋으면 일시적으로 급증하기도 하지만 어류 번성의 주기는 2∼3년이다. 확실히 우리의 ‘어획 강도’가 너무 높다. 샅샅이 뒤져 씨를 말리는 ‘완전어획’으로 연안을 찾아든 외해종 치어까지 모조리 잡아버려 결국 어자원 고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은 ‘느림의 철학’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한 마리라도 더 잡아들이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을 터이니 작은 놈들까지 싹쓸이할 것이 뻔한 이치 아닌가. 자원이 고갈되면서 우리는 고작해야 1년생 고등어를 사먹고 있으니, 이덕무가 ‘청장관전서’에서 말한 바 ‘소년어’를 잡아먹고 사는 격이다. ●또 하나의 명물, 100년된 등대 거문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거문도 등대이다. 백도의 아름다운 절경도 소중하지만 이 섬의 역사를 알려면 이 등대를 찾는 게 훨씬 정확하다.1905년에 세워진 등대이니 내년이면 100년. 열강이 각축하던 100년 전에 등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거문도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등대로 가는 바닷가 벼랑길은 지나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동백나무 터널을 수백m나 통과해야 한다. 등대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이만한 숲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한준봉(56) 소장은 “등탑 자체가 문화유산 감인 데다가 숲조차 뛰어나서 연간 1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해양수산부에서 거액을 들여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등대지기의 삶은 고달프다. 한 소장도 평생 오동도와 백야도, 소리도, 거문도 등 등대만을 돌아다녔다. 그는 아내의 출산 경험담도 털어놨다. 병원없는 절해고도에서 애를 낳는 바람에 자신이 직접 탯줄을 자르고 뒤처리까지 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 앓기라도 할라치면 장장 6∼7시간이나 배를 타고 여수까지 나가야 했다. 이렇듯 등대지기의 애환은 끝이 없다. 이곳에는 한 소장 말고도 김계인(54)·한현성(29)씨 등 2명의 등대원 ‘홀아비’들이 더 있다. 이곳에 초임 발령을 받은 한씨는 총각이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묻자 “등대에서 살겠다는 아가씨만 있다면….”이라며 말꼬리를 감춘다. 농촌 총각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남들 모르는 ‘등대총각’은 어쩌랴. 혹시라도 동백꽃 피고 지는 등대섬에서 살 뜻이 있다면 누구든 나서 보시라. 마침 관사도 비어 있어 새 삶에 운이 트이기도 할 것이니. 단, 등대의 삶이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점은 알아둘 것. 영국군 묘지, 등대 100년, 일본인 어촌은 언뜻 무관한 항목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거문도 위쪽 손죽도에는 왜구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이대원 장군의 사당이 있으니 이 역시 외세와 관련된 역사의 일부이다. 구한말 거문도의 지식인이었던 귤은(橘隱)은 거문항의 만(灣)을 삼호(三湖)라 명명했다.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뜻인데, 실제로 거문도는 역사 속에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 軍, 美7함대에 초계활동 요청

    군 당국은 최근 동해상에 출몰하는 국적 불명의 잠수함을 조기에 탐지, 식별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미국 7함대에 초계활동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5일 “군 당국은 지난 10월 동해에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나타나 대규모 탐색 및 퇴각 작전을 벌였으나 실패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미 7함대에 해상초계기(P-3C)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김종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지난달 중순 한국을 비공식 방문한 조나단 W 그리너트 미 7함대사령관(중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P-3C 지원을 요청했으며 그리너트 사령관도 긍정적인 의사를 피력했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中 잠수함’ 동북아 패권 노림수?

    ‘中 잠수함’ 동북아 패권 노림수?

    중국 잠수함 함대의 전력 증가가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균형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이 29일 보도했다. 중국 잠수함 함대의 규모가 커지고 활동범위가 확대되면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인 해상운송로에 대한 장악 능력이 확대되어 미국, 일본, 타이완(臺灣) 등 주변국가의 전략적 이익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은 핵잠수함 5척, 대륙간 탄도탄 보유 핵잠수함 1척 등 70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2010년까지 추가로 20척의 첨단장비들을 갖춘 스텔스형 핵잠수함을 취역시킬 예정이다. 이 경우 중국 잠수함은 질적으로는 뒤지지만 숫자에선 미국을 능가한다. 게다가 중국은 2년 안에 16억달러 상당의 러시아제 잠수함 8척을 인도받을 예정이다. 또 최첨단 제 2세대 잠수함 건조에도 들어갔다. 이 가운데 5척은 공격용 핵잠수함, 다른 한 척은 대륙간탄도탄 보유 핵잠수함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건조 중인 잠수함 가운데 내년쯤 첫번째 공격용 핵잠수함이 취역할 예정이고 새 대륙간탄도탄 보유 잠수함도 완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등 주변국가들이 중국 잠수함의 전력 증가에 예민한 것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군사력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 미 국방부 및 군사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중국의 군비지출은 해마다 500억∼700억달러.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번째로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군비 지출 224억달러의 2∼3배나 된다. 중국·타이완간의 긴장 고조, 내리막길로 내닫고 있는 중·일 관계 등 불안정한 동북아 안보상황도 주변국들이 중국 잠수함의 전력 증가를 더욱 불안하게 느끼게 한다. 동북아 지역이 중동산 석유 등 해외시장에 원자재 및 상품 수출을 높게 의존하는 만큼 중국 잠수함 함대의 증강으로 생명선인 수송로가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크다. 중국 잠수함들은 최근 영해 침범 사건을 빚은 일본 해역뿐만 아니라 타이완 및 남사군도 서사군도 해역 등 영토분쟁 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 주변국가들의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두 자릿수의 국방비 증가를 보여온 중국은 ‘원양 해군’창설을 목표로 해군력 강화에 군비증강의 최우선 목표를 두어왔다. 그 가운데 잠수함 전력 증가는 우선순위를 차지해 왔다. 잠수함이 제해권 장악에 필수적이고 적은 수의 건조로 상대적으로 높은 효용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중국 잠수함 전력의 증강은 중·일간의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며 동북아 지역에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란 점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륙세력에서 경제발전에 따라 해양세력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자위대, 유엔결의시 30일내 파견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방위청은 평화유지활동(PKO)이나 다국적군 지원에 관한 유엔의 결의가 있을 때 30일 이내에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자위대 개편 보고서를 마련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5일 보도했다. 방위청 ‘방위력검토회의’가 마련한 보고서는 신설되는 ‘중앙즉응집단’ 사령부가 자위대 해외파견과 테러 등 긴급사태에 대한 대응책 마련과 지휘를 맡도록 했다. 또 육ㆍ해ㆍ공 자위대의 통합운용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을 5방면으로 나눠 편성한 육상자위대 방면관구제를 바꿔 ‘육상총대제’ 도입을 검토하도록 했다. 일본 정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전보장과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가 이미 제출한 보고서와 방위청 보고서를 토대로 다음 달에는 새로운 ‘방위계획대강’을 확정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육상자위대의 전차와 화포는 줄이되 테러와 대규모 재해발생시 자위대를 신속히 파견할 수 있도록 병력 4000∼5000명 규모의 중앙즉응집단을 신설토록 했다. 육상자위대 정원은 상비자위대원 15만명, 예비자위대원 1만명 등 16만명으로 편성토록 했으나 재무성은 현행 정원 16만명보다 1만명 정도 감축을 요구하고 있어 1만명 안팎 줄이는 선에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해상자위대 호위함대는 현재 8척인 부대편성단위를 4척으로 줄이고 초계기부대는 8개대대 80대를 4개대대 75대로 축소토록 했다. taein@seoul.co.kr
  • 첫 이지스함 건조 착수

    첫 이지스함 건조 착수

    한국형 이지스(aegis) 구축함인 KDX-Ⅲ(7000t급) 1번함이 11일부터 건조에 착수, 오는 2008년 실전 배치된다. 국방부는 오는 2012년까지 3조 1361억원을 투입해 7000t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을 국내에서 건조하는 KDX-Ⅲ 사업과 관련,1번함은 2008년 말,2번함과 3번함은 2010년과 2012년 각각 전력화된다고 10일 발표했다. 이지스 구축함은 세계에서 미국과 일본, 스페인 등 3개 국만 보유한 해군의 첨단 무기 체계이다. 국방부는 1번함 건조업체로 최종 선정된 현대중공업과 이날 계약을 체결했다. 1번함은 길이 166m, 폭 21m로 대공·대잠·대함·대지 통합전투가 가능한 이지스 전투체계와 대공·대함·대지 유도탄, 장거리 대잠어뢰,5인치 함포, 헬기 2대를 탑재할 수 있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1996년부터 2003년까지 1000억원을 투입,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개발한 ‘하푼’ 함대함 유도탄도 33발(1발 21억원)을 초도 생산해 2005년 전력화하는 KDX-Ⅱ인 문무대왕함(4000t급)과 KDX-Ⅲ에 탑재해 운용할 예정이다. 2015년까지 5460억원을 투자해 모두 479발이 생산되는 하푼은 사거리 150㎞, 전장 5.4m로 자체 탐지 및 공격이 가능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KDX-Ⅲ 건조로 획기적인 해상전력 증대를 비롯한 1만여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며 “특히 하푼 국내 개발로 해외 구매 때와 비교해 1조원 이상의 수입 대체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北잠수함 출몰” 첩보… 긴급수색

    해군이 최근 동해상에 북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이상 물체가 나타났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13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동해상 영해 밖 해역에 북한 잠수함으로 의심되는 함정 2척이 바다 밑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출현했다는 첩보가 주한미군쪽을 통해 입수됐다. 합참은 동해상 방어임무를 맡고 있는 해군 1함대사령부에 이같은 첩보를 알리고 즉각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해군은 해상 초계기(P-3C)와 대잠 헬기(LYNX)를 급파해 폭뢰를 투척하면서 인근 해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북한 잠수함의 출현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국방부 남대연 공보관은 “잠수함 관련 첩보가 입수돼 해군이 곧바로 출동해 작전을 편 것은 사실이나 이상물체의 존재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며 “해상 작전에 나선 것은 첩보의 신뢰도가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잠수함이 갖는 중요성이 큰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이상물체 출현 첩보에 대한 최종 확인작업은 계속하고 있다.”고 밝혀 북한 잠수함이 동해상에 출몰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또 첩보의 정확한 내용과 입수 경로,이상 물체의 출현지점 등도 향후 북한 잠수함에 대한 대응력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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