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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산 쓴채 운집” 유권자들 참여열기/광역표밭

    ◎공단지역 후보들,“공해추방” 한목소리/연예인 후보에 “사인받기” 어린이 물결/주지스님 후보,개사유행가 불러 폭소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본격 합동유세가 열린 9일 각 유세장에는 비가 내리는데도 비교적 많은 청중이 모여 후보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등 뜨겁게 달아오른 선거 중반전의 열기를 반영했다. 이날 많은 비가 내린 경남·전남지역에서는 연설회가 대부분 연기됐으나 그밖의 지역은 예정대로 합동유세가 실시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장대비 속에서도 유권자들이 몰려 후보들의 공방전을 진지하게 하는 등 선거전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날 하오 마포 신석국교에서 열린 마포갑 제3선거구 합동연설회는 인기가수 이선희씨가 민자당 후보로 출마한 탓인지 궂은 날씨에도 불구,어린 학생팬까지 포함된 1천5백여 명의 청중이 모여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 특히 국회의원 유세에서도 보기 힘든 외신기자까지 취재경쟁에 나섰으며 민자·신민 후보간 「노래논쟁」 「나이논쟁」이 벌어져 이채. 5명의 후보중 4번째 연사로 나선 민자당의 이 후보는 신민당의 이남범 후보가 「노래하는 낭만을 즐기기엔 마포는 아직 할일이 많다」는 유인물을 돌린 데 대해 『노래 속에 서민의 슬픔·기쁨이 있으며 노래에서 번 돈을 이웃돕기에 써왔다』고 반박하자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고 이 후보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부 여성팬들은 환호와 울음이 범벅. 신민당의 이 후보는 호적등본 등을 제시하며 『민자당 이 후보의 생년월일은 67년 3월10일 생으로 피선거연령인 만 25세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 이에 대해 민자당 이 후보측은 『원래 생년월일이 64년 11월1일인데 호적이 잘못 등재되어 있어 지난 5월31일자로 법원판결을 받아 정정했다』고 해명. 민주당의 박일석 후보는 깨끗하고 신선한 정치,무소속 오진근 후보는 정치공해·식수공해 등을 내세우며 한 표의 지지를 요청했으며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돼 옥중 출마한 무소속의 이장우 후보는 유세에 참가치 못해 부인이 소복을 입고 유세장을 돌며 지지를 호소. 한편 이날 유세장에는 가수 현철,탤런트 나한일씨 등이 나와 민자당 이 후보를 지원했으며 이 후보의 사인을 받으려는 꼬마팬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녀 혼잡. ○…이날 하오 1시 서울 종로구 대신중고교 운동장에서 열린 종로1선거구 합동연설회는 8백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여당 후보의 지역개발공약과 야당 후보들의 정치공세가 전개되는 가운데 1시간30여 분 동안 진행. 유세장에는 민자당에서 이 지역 출신인 이종찬 의원과 안찬희 의원,김명윤 고문,신민당의 이우정 수석최고위원,박영록 최고위원,민주당의 이부영 부총재 등 중량급이 참석,자당 후보의 득표활동을 간접지원. 첫 번째 등단한 이성호 후보(민주)는 『이번 선거는 민주 대 독재,구정치 대 신정치의 대결』이라고 규정짓고 3당 합당을 공격한 뒤 『이영호 민자후보는 해바라기성 정치인』이라고 공격. 이어 등단한 박명수 후보(신민)는 『강경대군 사건 같은 일이 민주주의국가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공세를 편 뒤 『민자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민자당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면서 『야당만이 없는 자의 편에 서서 일할 수 있다』고 지지를 호소. 세 번째로등단한 이영호 후보(민자)는 『시의회는 정치싸움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살림살이를 다루는 곳이므로 앞의 두 후보와 달리 나는 정치연설을 하지 않겠다』며 야측의 정치공세를 피한 뒤 『대학교수·장관 등의 경력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에 봉사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출마의 변을 설명. 이 후보의 연설이 끝나자 청중 3분의2가 유세장을 떠난 가운데 마지막으로 등단한 한상필 후보(무소속)는 현재를 정치불신시대로 규정하고 당본위가 아닌 인물·능력 본위로 뽑아 달라며 지지를 호소. ○…이날 상오 11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2동 영일국교에서 열린 구로5선거구 합동연설회에는 비가 내리는 데도 1천5백여 명의 청중이 참석,우산을 받쳐든 채 후보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등 열띤 분위기. 이날 연설회에서는 구로공단이 위치한 지역특성을 의식한 듯 여야는 물론 무소속까지 모두 다섯 후보가 똑같이 근로자임대주책 건설,공해문제 해결 등을 공약으로 들고 나와 이채. 이날 연설회 도중 무소속 이현희 후보(30)의 선거원 20여 명은 교문 앞에서 노래와 무용을 해보이며 「노동자 후보」를 뽑아 달라고 부탁해 눈길.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8명의 후보자가 나온 서울 송파구 제2선거구의 합동연설회는 이날 하오 1시부터 잠실4동 잠실국민학교에서 3백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시작. 신도현 후보(33·무소속)는 자신이 해공 신익희 선생의 손자임을 내세워 『할아버지와 아버지 신하균 의원(3·5·6대 의원)의 뒤를 이어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면서 지지를 호소. 또 이재철 후보(39·무소속)는 『정치를 잘하면 우리 국민의 주소가 「행정도 편하군 이정도면 좋으리」가 되고 정치를 못 하면 「살기도 괴롭군 죽으면 편하리」가 된다』면서 행정경험이 많은 자신을 시의회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 이채. ○…서울 동대문구 청량중학교에서 열린 동대문갑 2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김두한 전 의원의 딸인 민주당의 김을동 후보(46)가 『잃어버린 국권을 찾아 만주를 떠돌던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과 한 시대의 영웅으로 불리던 아버지 김두환 의원의 화려했던 영예를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기 위해 출마했다』면서 지지를 호소. 유세장에는 강부자씨(49·여),윤승원씨(34) 등 인기탤런트 10여 명이 나와 김 후보의 유세를 간접지원. ○…서울 가락동 가락국교에서 열린 송포7선거구 합동연설회는 주민 3백여 명이 참석,시종일관 후보자들의 연설을 경청하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8 대 1)을 보이고 있는 이곳 유세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후보자들 연설 중간중간 선거운동원 및 지지자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분위기를 고조시켜 치열한 유세전임을 다시 한 번 반영. 후보들은 대부분 정치색 짙은 발언보다는 가락시장 개발,교육환경시설 보완,환경오염 방지 등 지역개발성 공약을 중점적으로 제시하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유도. 정당공천 후보 3명과 무소속 후보 5명이 나서 흡사 정당 후보 대 무소속 후보간의 경합장 같은 모습을 보인 이날 연설회에서 특히 무소속 후보들은 여야 정당을 맹공하며 「지역의 참일꾼」을 뽑아줄 것을 호소. 정광수 후보(무소속)는 『여야 정당이 그 동안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비판하며 『주민을무시하는 정당정치꾼들에게 주민들의 「분노」를 보여주자』고 주장했고 정대근 후보(무소속)는 여야 공천잡음을 집중거론하며 『기존정당의 하수인이 될 정치꾼을 뽑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 각 후보들은 이 지역의 최대 현안이 가락시장 문제라는 점을 십분 인식한 듯 모두 가락시장의 환경오염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해 주목. 김경곤 후보(무소속)는 『가락시장을 패밀리아파트 후문 녹지로 이전하겠다』고 말했고 김선호 후보(민주)는 오염방지세를 받아 가락시장의 환경오염을 막겠다고 약속했으며 정치색 짙은 발언을 한 김상두 후보(신민)도 연설 말미에 가락시장 악취제거와 축협 도축장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 이날 유권자들은 후보자 가운데 민자당 후보와 신민당 후보의 연설내용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 한편 인근 용마사의 주지스님으로 눈길을 끈 무소속의 유용주 후보는 등단하자마자 자신을 「무공해 인간」임을 내세우며 현정치상황을 「개구리 행동 같은 난장판 정치」라고 빗댄 뒤 「썩어빠진 정치 난지도에 버리자」는 내용의 개사유행가를 부르는가 하면 오리발 그림을 펴보여 한때 지리했던 유세장에는 폭소가 터져나오기도. ○…정한주 전 노동부 장관이 민자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안산 제1선거구의 첫 합동연설회가 열린 9일 안산 본오국교에서는 굵은 빗발 속에서도 5백여 명의 청중들이 모여 후보자들의 연설을 경청하며 「입맛에 맞는」 말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는 등 열띤 분위기. 첫번째로 등단한 정 후보는 『정관까지 한 경륜을 살려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며 『안산을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예술,산업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 두 번째로 나온 신민당 김대영 후보는 자신의 공약보다는 정 후보와 민자당에 대한 비난으로 연설시간을 거의 때운 뒤 공약은 정 후보와 다름없는 지역개발 등을 제시. 민주당의 청문회 스타 등을 소개하며 참신성을 역설한 안상호 후보에 이어 마지막으로 등단한 민중당 이정형 후보는 『서민을 위한,서민에 의한 정치가 바로 진보정치』라고 전제하고 『개발이익이 소수 특권층에 돌아가는 개발사업을 막겠다』는 등 서민들을 겨냥한 공약을 제시. ○…이날 상오 11시 강릉국교 운동장에서 열린 강릉 1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첫번째 등단한 노승현 후보(44·무소속)는 연설을 하기 전 선전을 약속한다며 미리 준비한 2개의 꽃을 두 상대방 후보의 가슴에 달아주어 눈길을 끌기도. 노 후보는 『지자제가 무슨 정치꾼들 노름이냐,주민 위해 헌신짝같이 일해보자고 나선 판에 정당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고 옆자리의 정당후보들을 은근히 겨냥. 또 이훈 후보(46·민주)는 『견제세력 없는 훌륭한 정치 없듯이 지자제도 멋대로 자기 갈 길만을 가는 여당 소속 의원들을 감독 지휘하기 위해 나같은 사람이 꼭 의회에 나가야 한다』며 한 표를 부탁. 마지막으로 나온 김명기 후보(54·민자)는 『현재 영동지방에 강원도청 분점형태로 운영중인 강원도 동해출장소가 이 지방사람들의 여망에 맞지 않게 기구가 작으므로 의회에 나가서 출장소 기구를 대폭 개편,강원도 동도역할을 톡톡히 해내도록 하겠다』면서,『강릉 남대천을 옛모습대로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게 하고 헐어빠진 시청사를 새로지어 영동지방 주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겠다』고 장담. ○…장대비에도 불구,10시30분부터 청주시 내덕동 청주농고 운동장에서 열린 청주 제2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세 번째로 등단한 전면 후보(민주)가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청중들에게 들어보이며 『어제 우리 선거운동원이 여당측으로부터 수표봉투를 하나 받았습니다』고 주장. 전 후보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된 안상렬 후보(민자)는 전 후보에 앞서 첫번째로 연설을 마쳐 이에 대한 공개적인 반론기회를 얻지 못하자 합동연설이 끝난 뒤 기자들과 유권자들에게 『수표를 건네주는 멍청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민주당 전 후보의 주장을 일축. 이에 대해 청중들은 『선관위가 전 후보로부터 문제의 수표를 넘겨받아 추적,금품제공인지 흑색선전인지를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 ○…이날 이리중앙국교 강당에서 열린 이리시 제2선거구 첫 합동연설회에서 첫번째로 등단한 최갑선 후보(민중)는 『수서비리·페놀오염·강군 치사사건으로 현정권의 모순과 비리가 드러났고 지자제 공천과정에서는 보수야당의 부도덕성이 낱낱이 밝혀졌다』고 민자·신민 양당을 싸잡아 공격한 다음 기층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민중당 후보인 자신의 지시를 호소. 이어 등단한 김학준 후보(민자)는 『신민당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받을 돈이 없어 민자당으로 나섰다』고 신민당의 공천관련 금품수수설을 공박.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소병기 후보(신민)는 신민계 후보들이 단골메뉴로 올리는 정부여당의 실정을 열거한 뒤 『도의원이 되면 이리시내 도로·주택 등 도시 기반시설과 복지시설을 확충,이리시를 전북에서 가장 앞서가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장담. ○…9일 하오 2시 김해군 진예면 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열린 김해군 제1선거구 합동연설회는 비 때문에 청중수가 기대에 못 미치자 3명의 후보 중 2명의 후보가 퇴장하거나 늦게 도착,민자당 김종한 후보의 개인 연설회장으로 돌변. 3명의 후보는 당초 진예중 운동장에서 개최키로 했던 합동연설회를 상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진예면사무소 2층 회의실로 옮겨 가졌으나 청중수가 2백여 명에 불과하자 한 후보는 연설을 포기하고 퇴장했으며 또 다른 후보는 10분이나 늦게 도착해 민자당의 김 후보만 10여 분간 연설하고 합동연설회를 마치게 된 것.
  • “생계 타격… 더 참을 수 없었다”/화염병시위 막은 고대앞 주민들

    ◎폭력 재발땐 앞으로도 몸으로 막겠다/“민자당서 얼마나 받았나” 대들땐 서운 『화염병이 난무하는 과격한 시위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이 나서서 폭력시위를 막아야 할 때입니다』 6일 하오 서울 고려대 앞 신제기로터리 주변 인도에는 이 지역 주민 7∼8명이 모여 앉아 지난 5일 이 학교 학생들이 벌였던 화염병시위를 막았던 얘기를 주고 받으며 『앞으로 화염병시위가 또다시 재연될 경우엔 주민 모두가 나서 막아야 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경영하거나 시장에서 행상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 주변에서 빚어지는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전 때문에 생계가 위협당하는 등 더 이상 고통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10여 일 전에 있었던 시위 때문에 매캐한 최루가스냄새가 아직까지 가시지 않아 어린이들이 목젖이 부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가면서까지도 인내해왔던 주민들은 한국외국어대생들의 정원식 총리서리 폭행사건을 계기로 급기야는 학생들의 화염병시위를 직접 몸으로 막고 나섰던 것이다. 『고려대 앞 신제기로터리에서는 5일 하오 5시50분쯤부터 이 학교 학생 4백여 명이 복면을 하고 쇠파이프를 든 것은 물론,언제나 그랬듯이 화염병을 투척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대와 1백여 m쯤 떨어진 우신향병원 앞과 제기시장 입구에는 경찰이 최루탄발사차를 대기시켜놓고 학생들을 해산시킬 준비를 하는 모습도 보였지요』 주민들은 학교 철책울타리를 뜯어내면서 거리로 뛰쳐나와 구호만을 외칠 때까지는 「이젠 좀 자제하겠지」 하는 한가닥의 기대 때문에 거리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는 역시 무너졌다. 시위학생들이 또다시 화염병을 마구 던져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들 가운데 인도에 서 있던 20여 명이 시위대의 「선봉대」 앞으로 달려나가 도로를 가로막고 학생들의 진출을 막았습니다. 힘센 남자들은 시위학생들 사이에 끼어들어 「제발 화염병만은 던지지 말라」고 애타게 호소했죠』 주민들은 『이때 일부 학생들이 「민자당에서 돈을 얼마나 받고 이 같은 짓을 하느냐」 「누구의 사주를 받고 왔느냐」고 대들며 멱살을 잡고 삿대질까지 해댔다』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햇다. 『등에 아기를 업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돌아다니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선봉대」 학생들은 막무가내로 경찰에 화염병을 던져댔어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주민들은 이내 목청을 높였다. 주민들이 나선 지 약 30분 지난 하오 6시20분쯤 됐을 때 시위학생들은 이들의 신분이 주민임을 확인하고는 『주민들과는 충돌을 빚지 말자』면서 준비한 5백여 개의 화염병 중 쓰다 남은 4백여 개를 들고는 더 이상 시위를 벌이지 않고 구호를 외치며 학교로 돌아갔다. 주민들은 학생들의 화염병시위도 막고 모처럼 최루탄 냄새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 앞에서 「삼표석유」라는 조그만 석유소매상을 경영하는 곽상만씨(28)는 『그 동안 화염병 불을 끄는 데 사용한 소화기 숫자만도 수십 개나 된다』고 상기하면서 『이젠 어떤 명분으로도 화염병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말했다.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경영하는 윤성남 할아버지(71)는 『총리라서가 아니라 스승을 폭행하는 학생들의 행동이 개탄스러울 뿐』이라면서 『화염병을 못 던지게 하는 법을 강력히 만들어야 한다』고 분개했다.
  • 외언내언

    「입이 백 개라도 할말이 없다」는 표현이 있다. 누가 보아도 명명백백한 큰 잘못을 범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사죄하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의 의사표시다. 다시는 그런 잘못을 않겠다는 반성의 뜻도 있다. 변명은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잘못을 범한 사람도 변명없이 선뜻 인정하고 사죄하며 훌륭하게 보는 것이 동양의 미덕이다. ◆총리를 모욕하고 교수를 폭행했으며 할아버지의 멱살을 잡은 아이들이야말로 입이 백 개라도 할말이 없을 것이고 없어야 한다. 뒤에서 그들을 부추기고 있는 철 안 든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할말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보기 흉하게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하고 책임전가하기에 분주하다. ◆『불행한 사태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특히 학교에 누글 끼친 데 대해 사과드린다. 이번 사건은 민주화 의지와 열망을 묵살한 노 정권 규탄의도일 뿐 정 총리에 대한 개인감정이나 보복차원이 아니다. 이 사건을 민주세력 말살계기로 삼으려는 현정권의 불순한 의도에 대해서는 단호히 투쟁할 것이다』 외대 총학생회의 성명이란 것이다. 눈꼽 만큼의 반성기미도 없다.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안하무인 아닌가. ◆아이들은 천지를 모른다고 하자. 배후의 어른들은 어떤가. 『외대사태의 1차적 책임은 잇단 공안 타살로 격앙되어 있는 학원분위기를 자극한 정 총리 자신에게 있다. 이 사건을 정권이 자신의 살인적 폭력성을 호도하고 공안통치 정당화에 악용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범국민대책회의 대변인이란 사람의 논평이다. 『표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어떤 야당 대변인의 제1성이었다. ◆입만 열면 국민과 국익을 내세우고 민주화를 전매특허낸 사람들 아닌가. 나라 걱정하고 국민 위하며 민주화 바라는 구석이 어디에 있는가. 적반하장의 변명뿐이다. 자기네 이익만 걱정하며 국민과 민주화를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범국민이 아니라 반국민이며 민주화 일꾼이 아니라 훼방꾼들을 국민은 보고 있다. 누가 국민이며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가 다시 한 번 솔직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 「캠퍼스 폭력」을 자책하며…/윤혁민 방송극작가(특별기고)

    ◎「뿌리」 못가르친 애비를 용서하라 애비는 요즘 밤과 낮을 거꾸로 살고 있다. 밀린 원고 때문에 밤을 새우다보니 아침이면 으레 당연한 듯이 잠자리에 들게 되고 언제부턴가 그것이 하나의 습성으로 굳어져버렸다. 시차가 다르다보니 TV를 안 보게 되고 최루탄 냄새,생살 타는 냄새가 끔찍해서 신문조차 외면을 해왔는데 어쩌자구 그날은 내손으로 그 신문을 들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주먹만한 활자도 충격적이었지만 어떤 개그맨이 억지로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서 분장을 한 것 같은 그 사진을 보았을 때 애비는 정말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신문을 안 보던 애비가 너무 열심히 신문을 보고 있는 게 이상했든지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 K군과 S군이 다가왔다. 너도 알다시피 K군은 너와 동갑내기이고 S군은 네 후배가 아니더냐. 애비가 두 번째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그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아니 총리가 호위도 없이 거긴 왜 들어가요. 나는 총리가 되었어도 지하철을 타고 운동권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는 대학에 들어가 마지막 강의를하고 온 사람이다. 그걸 내세우려구요』 『이런 때 선생님하구 저하구 세대차이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전 제목을 보는 순간에 통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애비는 그 순간 불현듯 너희들 남매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이건 K군과 S군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 남매의 환청인 것 같아서 아찔하는 현기증마저 느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시각이 다르고 감각들이 다른가. 어느날 술자리에서 애비의 친구인 너희 학교 P교수님이 이런 귀띔을 해준 일이 있었다. 『××과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기에 슬그머니 가봤지. 한 녀석이 앞에 나와 주먹을 흔들면서 열심히 외치다가 말이 막히면 자꾸 한쪽을 쳐다보는 거야. 거기 누가 있기에 그러나 해서 살펴봤더니 아 바로 그 놈이 구석줄 맨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 그 놈이 거기 앉아 고개를 끄덕이고 눈짓을 보내고 이젠 아주 거물급이더라구』 네 누이동생은 어떠했느냐. 그때도 새벽에 나오면 밤중에 들어가는 애비였기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 얼굴 마주치기가 힘들었지. 어느 날 밤에 너희 어머니가사색이 되어 들어와 벌벌 떨며 귀엣말을 하더구나. 『저애 큰일났어요. 밤엔 야학인지 뭔지 한다구 공장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양인데 말하는 걸 들으면 빨갱이가 다된 것 같아요. 어떡허죠』 애비라고 왜 이 땅의 현실을 모르고 너희들의 순수성을 모르겠느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너희들의 열정과 정의감으로 해서 한 사회의 썩은 물고가 트여지고 자칫 궤도를 이탈하려던 역사의 방향이 올바르게 바로잡혀지는 것을 애비도 목격을 했고 그런 젊은이들과 의식을 같이하는 아들 딸이 있다는 것을 내심으로 대견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비는 너희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처음엔 당황했고 마침내는 허탈해졌다. 너는 나름대로 애비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아버지와는 근본적으로 대화가 안 된다』는 식으로 대화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은 네 동생과 다를 바가 없었고 결국 애비와 자식간의 시각차이는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의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확인해주는 것으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계시다면 얼마나 이 못난 애비를 질타하시랴. 당신은 다섯 살난 아들을 끼니 때마다 밥상머리에 꿇어 앉혀놓고 혼자 식사를 하시면서 그 아들이 주발 뚜껑 열어드리고 닫아드리고 숭늉 떠다 바치는 것부터 가르쳐주셨다. 중학에 다닐 땐 저녁에 이부자리 봐드리고 아침에 방 앞에 기다렸다가 일어나시는 기척이 나면 들어가서 자리 정돈해드리고 「명심보감」 한 페이지를 완전히 외어야만 해방을 시켜주셨다. 그러면서도 애비는 사흘이 멀다 하고 매를 맞았어야 했다. 대부분은 애비 잘못이 아니라 네 삼촌들,고모들 잘못 때문이었고 『큰놈이 다스리지 못해 그렇다』며 동생들 앞에서 매를 때리실 때마다 애비는 이 무서운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으며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빌었으니 그 불효막심,아직도 이 애비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 애비는 평생에 그 할아버지의 손을 두 번밖에 잡아보질 못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뜻밖에도 약주를 하셔서 거나해진 할아버지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며 『고생 많았다』 하시더구나. 때가 겨울철이고 약주를하신 손이었으니 그 체온이 따뜻하게 전해오는 건 당연한 게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애비는 『아버지가 무서운 분이 아니었구나. 아버지 손두 이렇게 따뜻한 손이었구나』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스물다섯 해 동안 쌓여온 애비 나름의 그 큰 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 그리고 두 번째 마지막으로 만져본 그 손은 그로부터 7년 후 부산 출장중 여관에서 연탄가스로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너희 할아버지의 그 차디찬 손이었다. 자식에게 고통을 주고싶은 아버지가 세상이 어디 있느냐.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고 못 가르친 자식. 그 자식이 자라 험난한 세상 살아가는 데 딛고 올라설 토대 하나만이라도 내손으로 만들어 주자,그래서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필요 이상으로 엄하게 키우고 단련시켰는데 그걸 모르고 야속해 하는 자식들의 눈초리에 접할 때마다 얼마나 괴롭고 외로우셨겠느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버지는 자식한테 완전한 지도자가 되는 아버지이고 그보다 더 좋은 아버지는 자식한테정직한 친구노릇을 하는 아버지라는데 이 애비는 「완전한 지도자」도 「정직한 친구」 노릇도 못 해온 어정쩡한 애비가 되고 말았다. 지도자도 못 되고 친구도 못 되는 애비한테 무슨 권위가 있겠느냐. 살림은 아내에게 맡기고 자식교육은 선생님께 맡기면 그만인 줄 아는 평준화된 어정쩡한 애비들이 어찌 이 애비 하나뿐이겠느냐. 간혹 뜻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 어정쩡한 애비 대신 내가 이놈 토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회초리라도 들면 폭력이니 뭐니 해서 쫓아내기가 바쁜 세상이 돼 버렸는데 누가 너희들 한테 외풍에 버틸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겠느냐. 서 있는 바탕이 다른데 어찌 시각이 일치하기를 바라겠느냐. 모든 게 애비 탓이 아닌가. 애비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한 애비를 용서해라. 회초리를 들 용기가 없어 뿌리없는 너희들을 만들어놓고 구경꾼처럼 서 있는 이 어정쩡한 애비를 용서해라.
  • “노름빚 안갚는다” 살인/70대 할아버지 쇠고랑(조약돌)

    ○…서울 동부경찰서는 2일 황상록씨(71·성동구 중곡4동 241의12)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황씨는 지난 1일 하오 2시20분쯤 서울 성동구 중곡4동 S복덕방에서 이웃 김삼백씨(52·중곡4동 297의14)에게 『어제 노름으로 진 빚 2천6백원을 갚으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 황씨는 경찰에서 『지난달 31일 복덕방에서 숨진 김씨 등과 1점에 1백원짜리 「고스톱」을 치다 다른 사람에게 2천7백원을 잃었는데도 김씨가 내게 잃은 2천6백원을 갚지 않아 홧김에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
  • 간디 장례식 엄수/어제 인도 국장으로… 수십만 국민 애도

    【뉴델리 연합】 고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국장이 24일 뉴델리에서 고인의 미망인 소니아 간디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과 정부와 정당지도자 그리고 댄 퀘일 미 부통령,찰스 영국왕세자,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다케시타 전 일본 총리 등 세계의 전현직 국가 고위지도자들과 인도 주재 1백20여 외교사절 및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십만 국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힌두교 의식으로 엄수됐다.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유해는 이날 하오 1시(현지시간) 빈소가 마련돼 있는 틴 무르티하우스(네루기념관)로부터 그의 할아버지인 고 자와할랄 네루 전 총리,어머니이며 전 총리인 고 인디라 간디 여사 그리고 동생인 고 산자이 간디의 무덤이 있는 야무나 강변의 샤크티 스트할(권력의 장소)에 운구된 뒤 하오 4시쯤 화장됐다.
  • 붉은장미 공중투하 속 애도행렬 인산인해/피살 간디 장례식 이모저모

    ◎상가 철시·전 관공서 휴무… TV선 생중계/“인류의 커다란 손실”… 후세인도 조의 표시/“간디는 콤퍼지션 폭약에 절명”/힌두지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장례식은 24일 하오 4시경(한국시간 하오 7시30분) 3군 군악대의 진혼곡이 울려퍼지고 조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뉴델리시 야무나강 제방에서 힌두교 의식으로 엄수됐다. 간디의 아들인 라훌(17)이 관습에 따라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으며 인도 TV방송은 간디의 장례식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날 하오 1시경 간디의 장례행렬이 빈소가 마련됐던 탄 무르티하우스(네루기념관)를 출발,장례식장을 향해 뉴델리 도심 16㎞를 행진하는 동안 외국조문사절을 비롯,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뒤따랐다. ○…라지브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제단 조성에는 약 2백50명의 인부들이 동원됐다. 이들 인부들은 23일 하오 7시(한국시간 하오 10시30분)부터 작업을 시작,밤을 꼬박 새며 6만여 개의 벽돌과 장작을 쌓아 제단을 완성했다. ○…라지브 간디의 장례식이 거행된 24일 뉴델리의 많은 상점들과 학교는 문을닫았으며 정부 관청들도 모두 휴무했다. 인도정부는 장례식 때 일어날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6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요소요소에 배치했으며 군에도 최고경계태세에 들어가도록 명령을 하달. 경찰은 운구행렬이 지나는 도로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경계를 강화했으나 뉴델리의 거리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고 라지브 간디의 미망인인 소니아 여사는 24일 창백하지만 침착한 모습으로 자녀들에 기댄 채 간디의 유해가 틴 무르티 하우스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편의 유해를 어루만졌다. 대형 인도국기에 덮인 간디의 운구행렬이 틴 무르티 하우스를 출발하자 헬기 한 대가 저공비행을 하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붉은 장미꽃을 뿌렸다. ○…간디 전 총리는 군작전용으로 쓰이는 콤퍼지션폭약에 의해 폭사당했다고 사고 지역인 타밀나두주에서 발행되는 힌두지가 24일 보도. 이 신문은 또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이번 암살은 매우 전문적 기술을 가진 1명 이상의 조직에 의해 저질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힌두지는 꽃다발을 들고있다가 암살을 감행한 것으로 믿어지는 한 젊은 여자의 산산히 찢겨진 사체 사진을 공개. 이 신문은 범인이 C1·C2·C3 등으로 알려져 있고 조형성이 좋은 군용 콤퍼지션 폭약을 허리둘레에 감고 있다가 허리를 숙이면 폭발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추정. 인도 중앙정부의 내무담당 국무장관인 수보드 칸트 사하이도 이 여인의 사체에서 전선·용수철·수입된 건전지 등이 발견됐으며 상반신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고 밝혔다. ○…라지브 간디의 어머니 고 인디라 간디 전 총리가 암살당했을 당시 격한 분노와 보복 심리로 시크교도 3천명이 죽음을 당한 것과는 달리 현재의 분위기는 그가 이끌던 국민회의당에 대한 지지를 규합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안정을 위해 국민회의당에 투표하자」는 포스터가 붙은 틴 무르티 하우스의 담장을 지나 고 라지브 간디의 관을 보고 나온 많은 시민들은 추후 다시 실시될 총선에서 국민회의당을 지지할 것을 다짐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집단에서는 그의 죽음을 축하의 기회로 삼고 있는 표정으로,힌두교와 회교도간의 갈등이 일고 있는 카슈미르 출신의 한 회교도는 『10대의 내 아들이 카슈미르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라지브 간디가 당시 총리였다』고 말하면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은 거지에게 자선을 베풀었다고 소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의 죽음이 제3세계로서는 커다란 손실이라고 지적.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간디의 미망인 소니아 여사에게 보낸 조전을 통해 『우리는 라지브 간디의 가슴아픈 죽음을 깊은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간디의 죽음은 제3세계와 인류애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걸프사태 동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기는 했으나 중립적인 자세를 보였었다. ○…라지브 간디의 외할아버지이며 인도 독립 후 초대 총리인 네루의 이름을 딴 자와할랄 네루 대학에서 만난 일단의 학생들은 이번 혼란의 원인은 그의 어머니인 고 인디라 간디 전 총리가 야기한 권위주의적 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사학과 대학원생인 빔라찬드양은 『우리는 간디가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국민회의당이 이탈리아 출신의 카톨릭 교도인 소니아 여사를 당 총재로 지명한 것은 동정표를 모으려는 처사라고 공박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23일 간디의 미망인 소니아 여사(44)의 비극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크게 다루면서도 소니아 여사가 남편이 이끌던 국민회의당의 총재직을 거부하는 것이 그녀 자신과 인도를 위한 최상의 길이란 점을 숨기지 않고 피력. 간디의 피살로 언론들이 이탈리아 북부의 한 평범한 여성을 세계의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의 퍼스트 레이디로 만든 동화 같은 결혼 이야기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신문들도 이날 국민회의당이 소니아 여사에게 당 총재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 외언내언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의 산중턱 꽃동네 입구,가로 3m 세로1m의 바위에 새겨진 글귀이다. 꽃동네는 노인성 치매·반신불수·뇌성마비 등 버림받은 사람들의 보금자리.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힘조차 없으며 아무도 모르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1천9백여 명의 불쌍한 이웃들을 보호하고 있는 사랑의 동네이다. ◆이 동네입구에 새겨진 글귀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귀동 할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말. 이 세상 누구의 명언보다 진솔되고 뜻깊은 교훈이 담겨 있다. 최 할아버지는 지금도 한 손에 깡통을 들고 벙거지를 눌러쓴 모습의 동상으로 동네를 지켜보고 있다. ◆음성 꽃동네는 76년 9월10일,오웅진 신부와 최귀동 할아버지의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됐다. 음성 무극본당 사제로 부임한 오 신부는 이날 다리를 절룩거리는 60살쯤 되어 보이는 늙은 거지가 깡통에 밥을 얻어다가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병든 거지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때부터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 마련에 발벗고 나섰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40여 년간을 굶주린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체들을 거두어 묻어준 거지성자. ◆한 젊은 신부와 한 늙은 거지가 힘을 합쳐 만든 음성 꽃동네는 지금 21만평의 대지에 숙소·정신요양원·결핵요양원·노인요양원·자애병원 등이 들어서 있고 31만명의 후원회원들이 매달 1천원씩 내는 돈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하루평균 1백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가족들을 보살핀다. ◆음성 꽃동네에 이어 제2의 꽃동네가 경기도 가평군 하판리에 세워진다. 익명의 독지가가 내놓은 1만5천여 평과 산림청으로부터 임대한 국유림 17만여 평에 세워지는 가평 꽃동네는 1천5백명의 병들고 의지할 곳 없는 이웃들을 수용할 계획. 음성 꽃동네가 포화상태가 된 탓에 또 하나의 꽃동네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살벌한 줄만 알았던 이 사회에서 이처럼 꽃다운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으로 흥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자기실현이 요즘 학생의 첫째 욕구”

    ◎“교수직 50년” 연대 원일한 박사/“40년대엔 사회적 책임의식 강했죠”/설립자의 손자… 개교 1백6돌 감회 깊어 지난 11일 창립 1백6주년을 맞은 사학의 명문 연세대의 학교법인 이사인 원일한 박사(74)에게는 올해가 참으로 뜻깊은 해이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지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원 박사는 1885년 4월5일 미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 연희전문을 설립한 언더우드(원두우) 박사의 손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이 학교에 봉직하고 있으며 맏아들 한광씨(48)도 영문과 교수로 있다. 따라서 원 박사 집안 4대의 역사는 연세대학교의 작은 역사이기도 하다. 원 박사의 할아버지 언더우드 박사는 1915년 4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창천리이던 현재의 학교부지 일대의 땅 19만 평을 사들여 연희전문학교를 설립,초대 교장으로 학교의 터전을 닦았다. 그는 언더우드의 발음을 따 원두우라는 우리 이름을 썼다. 연세대 본관은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따 「언더우드관」으로 불린다. 원 박사의 아버지 원한경 박사도 이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34년 9월부터 41년까지는 제3대 교장으로 일했다. 원일한 박사는 1917년 10월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외국인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3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해밀턴대학에서 교육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원 박사는 40년 서울로 돌아와 연희전문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의 학생들은 고등교육을 받는 자부심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했으나 요즘 학생들은 자기실현의 욕구가 가장 큰 것 같다』는 것이 원 박사의 평이다. 그는 42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으로 돌아가 해군대위로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45년 전쟁의 승리는 제2의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이라는 또 하나의 기쁨을 주기도 했다. 『해방후 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이 이 학교에 머물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시절』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때 대학생들은 해방의 흥분과 조국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꼈으며가르치는 교수들도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원 박사는 41년 결혼,아들 셋을 두었다. 43년 맏아들이 태어나자 당시 연희전문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한국의 빛을 받고 태어났다」는 의미로 한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며 뒤에 아버지의 「한」자를 물려받기 위해 한광으로 고쳤다. 그는 한자도 한국의 상징인 한강과 통하기 때문에 한자와 마찬가지로 좋은 이름이라고 했다. 원한광 교수는 영문과에서 영미소설을 강의하고 있다. 둘째 윌리엄과 셋째 피터의 한국이름은 이 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용제 백낙준 박사가 영어이름의 원뜻을 살려 한웅과 한석으로 지었다. 흥분의 시대가 지나고 50년 6·25사변이 일어나자 원 박사는 다시 해군으로 복귀,현역장교로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53년 휴전회담이 이루어지자 원 박사는 유엔군측 수석대표 통역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연희전문학교는 연희대학교로 이름을 바꿔 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통합,연세대학교로 발전했다. 원 박사는 이때부터 83년까지 전공인 교육학을강의했다. 75년 부인과 사별한 원 박사는 호주 출신의 선교사로 한국에 온 이화여대 종교음악과 원성희 교수(58)와 77년 재혼했다. 파란눈에 다부진 몸집을 가진 원 박사에게 『한국말을 얼마나 잘하느냐 』고 묻자 『책상 위에 주전자로 물을 부으면 물방울이 「또르륵」 굴러 간다』고 말하며 웃었다.
  • 결혼 75돌 부부 금강혼례식/자녀·손주등 헌주만 30여분(조약돌)

    ○…올해 91살의 양장년 할머니와 89살의 신태동 할아버지가 28일 결혼 75돌을 맞아 자녀·손자손녀·친지 등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주 관광호텔에서 기념혼례식을 가져 화제. 이날 기념혼례식은 사모관대를 한 신 할아버지와 원삼족두리를 쓴 양 할머니가 맞절에 이어 술잔을 교환하는 순서로 진행돼 이들 부부가 75년 전에 치른 전통혼례를 재현했다. 기념혼례식을 올린 이들은 이어 자녀·손주·친척 등의 헌주가 30여 분 동안이나 계속되는 동안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고 하객들도 노부부의 백년해로를 경하와 부러움으로 지켜보았다.
  • 「두산」이 갚게 해야 한다/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페놀의 망령이 나라 안을 분탕질치고 다닌다. 무신경의 틈사귀를 뚫고 새어나와 독사의 혀끝같은 독기로 낙동강을 타고 흘러 언저리 사람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다. 한 번만으로도 모자란지 재조업한지 몇 날도 못가서 또다시 기어나와 같은 물줄기를 타고 독 품은 파충류처럼 달려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스로 악몽에서 수습되려고 노력하던 낙동강 언저리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안쓰럽고 가슴아프다. 외눈 하나 깜박이는 듯한 소홀함에도 순식간에 1천만명쯤의 선량한 사람들을 공황에 몰아넣는 이 위험하고 사악한 물질을 「두산」은 무엇 때문에 끼고 사는가. 꼭 돈벌이만을 위해서 그처럼 혼이 나고도 그걸 끼고 돌다가 마침내 그룹 총수가 자기 조상이 창업한 회사에서 손을 들고 마는 신세가 되게 했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이 몸서리나는 독물을 영영 고체로 동결시켜 나라 먼 곳으로 내동댕이쳐버릴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요괴처럼 킬킬거리며 비아냥거리는 「페놀망령」의 소리가 들린다. 『내가 없으면 누가 아쉬운데…?』 요괴임이 분명하지만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요괴가 있다. 페놀도 그런 것이다. 이로운 기능만 살려쓰고 요괴 노릇은 못하게 몇 겹이라도 싸 바르고,24시간 감시하여 밖으로 빠져나가 사람에게 해꼬지하는 독물이 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것 못했던 것이다. 좁은 땅에 사람은 밀집되어 가만히만 있어도 공해물질이 탄생될 판인 터에 살면서 변변한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는 국토의 전지역이 공장화해야 먹고 살 형편에 놓여 있다. 따라서 모든 기업이 현실적이거나 잠재적으로 공해업체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어느 기업의 갈라진 벽 틈을 뚫고 어떤 공해의 요괴가 빠져나와 우리를 향해 공포의 살을 쏘아올 것인지 알 수 없다. 페놀은 우리에게 그걸 경고하는 척후병처럼 찾아왔다. 공해요괴를 어설프고 엉성한 우리에 가둬놓은 채 별 감시도 하지 않고 생산력만 독촉하는 기업이 거의 다이다시피한 세월을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는 안 되게 되었다. 「페놀」의 분탕질이 그걸 적나라하게 증명했다. 몇 겹 옹벽을 쳐서라도실오라기 만큼도 새나오지 못하게 해야만 기업이 살아남는다. 기업의 그런 기능을 나라가 감사하지 못하면 정권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함께 이런 일도 생각해보아야 하게 되었다. 공해에 대한 지난날의 무신경이 우리 체질에 심어놓은 「패닉증후군」이 있으며 이 증후군은 분명히 치유되어야 할 증세라는 사실이다. 분노의 외침만 증폭시킨 결과 속죄양만을 제단에 올리고 사육제살인놀이의 뒤끝 같은 결과를 부를 수 있는 이런 증후는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작 진상은 가려지고 앞의 경험이 다음을 위한 교훈으로 공헌하는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페놀범 「두산」의 경우에도 그 증후군은 나타났다. 인민재판성 성토에 공황이 먼저 휩쓸어 사려있는 결과를 추출하는 데 방해가 되게 했다. 「벌」이 「죄」와 합당하지 못하면 원한을 축적시킨다. 오래 묵은 공해피해의 한을 지닌 대중을 자극하여 복수심에 불타게 하고 그 한풀이에만 취하게 하는 이런 대응도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페놀요괴를 풀어놓아우리 사회를 갈기갈기 상처나게 한 「두산」에게 살기등등한 「효수의 밧줄」을 들이대는 사람도 많았다. 그만한 분노를 지나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생각해보면 이런 측면도 있다. 첫번 실수로 그룹 전체가 얼이 쑥 빠진 상태였을 수도 있다. 야단을 심하게 맞은 아이들이 헛손질·헛발질을 하여 또다른 일을 저지르듯이 두 번째 저지른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능력있고 성숙한 사람은 위기가 닥쳐올 때 화불단행함을 생각한다. 두 번째 유출 때 어쨌든 재빨리 신고부터 하고 조치를 하려고 애쓴 흔적이 정상을 짐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인 구우들이 「왕초」라는 별명을 붙여 드렸던 고 장기영 선생을 나는 개인적으로 많이 존경한다. 그 분이 자신의 회사에서 실수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부하사원에게 하던 말을 기억한다. 책임을 느끼고 사표를 내러 간 부하사원에게 『…일을 저질러서 회사에 손해를 입혔으면 열심히 일해서 그걸 벌충해주는 것이 갚는 길이지 당신이 나가버리면 나는 어디서 그 손해를 메웁니까. …그 손해 메울 때까지 나갈 수 없어요…』 하고 말했었다. 「두산」을 없애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상처를 보상하게 하는 일을 잃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페놀에 의한 물리적 피해에도 분노를 느끼지만 더욱 속상하고 아린 것은 이 땅에서 유일한 「백년기업」이 이렇게 우리를 실망시켰다는 정신적 피해 때문이기도 하다. 독과점 품목으로만 재미를 챙겨온 기업이라고 폄하는 소리도 높지만 정치적 특혜 속에 급성장한 졸부의 혐의를 지닌 대기업에게 전열을 내주고 소리없이 탄탄하게 살아남은 그 생존관리능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업체의 최소한의 시장점유율만은 잠식하지 않는 것을 기업윤리로 삼았다는 금도도 인정하고 싶었다. 최근에 「민물고기 할아버지」인 원로 생물학자 한 분을 만나 뵌 일이 있다. 그 분 말씀으로는 『두렵고 걱정이 돼서 그렇겠지만 온통 난리만 칠 일이 아니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어요. 우리 환경이 손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된 건 아니어요…. 우리가 조옴 현명한 국민인가…. 소동은 그만 멈추고 세워놓은 대로 착실히 노력해가면 돼…』 두 번째 다가온 사고의 파랑 앞에 망연자실했다는 기업의 총수가 물러가고 전문경영인에게 회사운영을 내맡긴 「두산」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노생물학자의 희망적인 현답대로 정신차리고 일어나 지은 과오를 책임지고 바로잡으라고 이르고 싶다. 그렇게 하여 공해차단에서도 모범적인 명예로운 재생을 회복하는 일이 유일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견디느라고 너무 애써준 낙동강 언저리의 사람들과 정신적 피해로 열병을 앓은 온국민에게 사죄하는 길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 “동경「2·8독립선언」의 산실 지키자”/건물보전 모금운동 서울서도

    ◎YMCA서 앞장… “경매위기” 호소/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적극 호응/벌써 1억8천만원 모여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의 산실이며 70만 재일동포의 정신적 지주인 일본 도쿄(동경)에 있는 한국 YMCA회관을 지키기 위한 모금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77년 신축공사를 시작,80년에 준공된 도쿄 한국 YMCA사회관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공사비 가운데 60억원을 갚지 못해 일본인에게 경매처분당할 위기에 놓임에 따라 서울 YMCA가 지난달 15일부터 올 연말까지 「재일본 한국 YMCA 부채해결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으며 각계각층에서 이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금운동은 특히 지난 3·1절에 이어 상해임시정부수립 72주년에 즈음하여 더욱 열기를 띠고 있다. 이 모금운동에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노점상 및 양로원 할아버지는 물론 고사리 손의 어린 학생들로부터 경제·사회·종교단체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빈부격차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참여,흐뭇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낸 1만원이 민족유산 시켜준다」는 표어 아래 모두 30만명으로부터 30억원을 목표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 YMCA에는 모금운동을 편 지 20일 남짓된 13일까지 전국 각지의 3천5백12명으로부터 1억7천9백49만5천원이 답지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호진화실」을 경영하는 동양화가 전도경 화백(51)은 12일 하오 자신이 그린 그림 40점을 빚을 갚는 데 써 달라고 내놓았다. 전 화백은 『한국 YMCA가 경매처분 될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기독교신자로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면서 『초대전에 전시 될 작품이었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해 내놓았다』고 말했다. 서울 YMCA측은 이들 작품으로 13일부터 26일사이 2층 강당에서 동양화초대전을 열어 남는 판매대금을 후원금으로 쓰기로 했다. 이 밖에도 80대 노인이 지난달 20일 지팡이를 짚고 찾아 와서는 『민족지도자를 배출한 재일본 YMCA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쌈지돈을 선뜻 내어놓았고 익명을 요구하는 40대 여자 노점상도 남편 몫까지 하룻동안 번 2만원을 냈다. 도쿄 한국YMCA 부채해결을 위한 모금운동은 콘서트와 바자 등의 형식으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인기가수 김윤정양은 13일 하오 6시와 14일 하오 3시,6시 등 3차례에 걸쳐 서울 YMCA 2층 대강당에서 「재일본 한국 YMCA 부채지원 기금마련을 위한 콘서트」를 갖고 공연수익금을 서울 YMCA측에 기부한다. 또 오는 23일부터 28일까지는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7층 현대백화점에서 인기가수와 코미디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역시 기금마련을 위한 바자가 열린다.
  • 산불 끄다 간 「산할아버지」/김정례 전 보사 오빠 김정선옹

    김정례 전 보사부 장관의 오빠이며 동네에서 「산할아버지」로 불리는 김정선옹(76·동대문구 답십리동)이 지난 8일 하오 2시쯤 성북구 정릉2동 산87 정수국교 뒷 야산에서 혼자 산불을 끄다 불길에 휩싸여 숨졌다. 평소 산타기를 좋아했던 김옹은 지난 84년부터 이 야산에 4평 크기의 움막을 지어놓고 소일하면서 날마다 산 정상까지 오르내리곤 했으며 산에 버려진 쓰레기 등을 주우며 산과 벗해 살아오다 이날 움막앞 50m쯤 떨어진 야산 쓰레기더미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달려가 모래를 뿌리고 나뭇가지로 불을 끄다 불길에 휩싸여 중화상을 입고 동네주민들에 의해 고려대 혜화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날 하오 9시쯤 숨졌다. 숨진 김씨가 부인 김옥자씨(69)와 함께 살고 있던 집은 2남2녀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집 부근이며 나머지 3남매는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 「신문의 날」이 기쁜 여주지국 배달원 박명자·성춘복씨

    ◎서울신문 안고 새벽을 달리는 의자매/“보람 만큼 꿈도 영글어요”/2년 동안 배달사고 전무… “억순이” 별명/“암자 지어 무의탁 노인들 모시는 게 꿈”/집에 돌아가면 어엿한 분식점 주인으로 날마다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일터로 나가는 독신 의자매가 있다. 보통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을 시간이지만 세상소식을 보다 빨리,보다 널리 알리는 보람에 피곤함도 모른다.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상리에 있는 서울신문 여주지국 여성신문배달원 박명자씨(34)와 성춘복씨(33). 지난 83년부터 의자매를 맺고 지국에서 1백여m 떨어진 집에서 함께 사는 이들이 지국에 온 신문을 받아들고 독자들에게 돌리러 나서는 시간은 새벽 5시쯤. 박씨는 지국에서 내준 오토바이에 3백여 부를 싣고,성씨는 메는 가방에 1백 여부를 넣고 어둠이 깔린 새벽길을 달린다. 아무래도 시골읍이라 독자들의 집이 띄엄띄엄 있게 마련인 데다 신문을 한부 한부 정성스레 대문 밑에 밀어넣고 지국으로 돌아오면 어느틈에 1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모두 7개 구역으로 나누어3천 여부를 배달하고 있는 여주지국에서 두 사람의 배달구역은 2개 구역. 오토바이를 탄 박씨는 여주읍 외곽지역을,발로 뛰는 성씨는 여주읍내 중앙통지역을 맡고 있다. 지국사무실에서 잠시 쉴 때까진 이들은 신문배달원이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 어엿한 분식점 주인들이 된다. 비록 세를 낸 것이긴 하나 분석점을 경영하는 두 사람이 신문배달을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10월. 분식점에 자주 들르던 지국 여직원에게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배달원이 됐다. 처음에는 여성이어서 좀 서먹서먹하기도 했지만 이들에겐 남다른 꿈이 있었기에 『한푼이라도 더 벌자』는 각오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조용한 산골에 암자를 하나 지어 무의탁 할아버지 몇 분을 모셔다 약초를 재배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 두 사람의 꿈이다. 물론 암자를 지을 조용한 산도 이미 잡아뒀다. 이들은 모두가 독실한 불교신자로 지난 83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박씨가 성씨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열린 한 불교단체모임에 참석했다가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해보자」는데 의기가 투합해 함께 살게 됐다. 『장마철이나 비오는 날이 배달하기가 가장 어려워요. 신문이 비에 젖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니까요』 또 한 여름날 새벽엔 건물 지하실의 구독자들에게 배달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했다. 지하실 계단에는 흔히 술에 취한 사람들이 잠을 자기 일쑤여서 깜짝깜짝 놀라곤 하기 대문이다. 그러나 때론 예기치 않던 작은 부수입도 생긴다. 그 동안 억척같이 모은 사업자금(?)은 고스란히 예금돼 있다. 처음에는 35살이 될 때까지 꿈을 이뤄보려 했지만 아직 저축액이 모자라 꿈의 실현을 몇 년 더 늦추고 있다. 박씨는 그 꿈 때문에 평생에 그 흔한 파마도 단 한번밖에 못해 봤고 성씨 또한 20대 초반 뒤로는 좋은 옷 한 벌 사 입지 않았다. 물론 신문배달에도 더없이 성실해 보통사람 같으면 한달에 서너건씩은 있게 마련인 배달사고조차 아직 단 한 번도 내지 않았다. 두 사람에 대해 최정락 지국장(36)은 『학생배달원을 두고 있을 때만 해도 매일 새벽 일일이 전화를 걸어 나오게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고마워하며 『두 분의 성실성에 감명받아 미혼여성배달원 한 명을 더 채용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좁은 시골읍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자존심 때문에 배달일을 기피하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막상 일해 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 건강에도 좋고 일을 마치면 시간도 많이 생긴다』고 신문배달의 즐거움을 말했다. 최 지국장은 『여주군청에 다니는 공무원 한 분도 우리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고 귀띔하고는 『그분도 지금은 술도 덜 마시고 일찍 귀가하게 되고 건강도 좋아져 처음에는 극력 반대하던 부인이 요즈음엔 더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고 말했다.
  • 노인들의 한풀이 「모의국회」/진경호 사회부기자(현장)

    ◎소외당한 설움 목청높여 정부 성토 『4차선 도로 옆에 노인정이 웬말입니까? 노인들 보고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다 일찍 죽으란 말입니까? 정부 공무원들은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요?』 『옳소』 박병윤 할아버지(79)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노인정을 가리키며 전시적 효과만을 노린 정부의 졸속행정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1일 하오 1시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15의 66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전화」(회장 심철호·50) 지하강당에서는 60∼80대 노인 2백여 명이 모여 「노인모의국회」를 열었다. 열을 올리는 사람은 박 할아버지뿐만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오늘과 같이 잘 살게 된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 노인들이 과거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흘려서 일한 대가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회보장제도를 보면 노인들은 쏙 빠져 있어요』 「사랑의 전화」가 정한 매월 1일 「노인의 날」을 맞아 열린 이날 모의국회에 참석한 노인들은 너도나도 일어나 나라로부터,이웃으로부터,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설움을 맘껏 토로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5만여 명의 노인들에게 달마다 1만원씩의 노령수당을 지급하는 모양인데 이는 노인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입니다』 『옳소』 『맞다 맞어』 『어버이날에 정부가 하는 일이 뭐예요. 효자효부 표창하는 것 뿐이예요. 어버이는 제쳐두고 젊은이에게 상주는 날이란 말입니다』 『옳소』 『자녀와 별거한 노인들 절반 이상이 사글세 방에서 생활한답니다. 수십만채의 주택을 새로 짓는다는데 노인용 주택 짓는다는 말 들어봤어요?』 『맞습니다』 박수와 환호 속에서 노인들의 「한풀이」는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이날 행사에는 그러나 정작 이들의 질의에 답해야 할 정부측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해 가졌던 행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모씨(65) 등 지역 구의회의원 3명이 참석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노인문제는 이미 가족의 손을 떠나 국가가 책임져야 할 처지에 있는 만큼 정부는 행사위주의 전시적 행정보다는 양로원 건립,노인주택건설 등 실질적인 노인복지정책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박재간 한국노인문제연구소장(68)의 말을 끝으로 이날 「듣는 이 없는」 노인들의 「한풀이 모의국회」는 막을 내렸다.
  • 수사팀 54명… 비공개수사에 “구멍”/국교생 유괴살해 안팎

    ◎범인,「통화 추적」 피해 공중전화 이용/개설은행도 폐쇄TV 없는곳 골라 이형호군의 유괴살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유괴범이 치열하게 사전계획을 세우고 완전범죄를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범인이 지난 1월29일 이군을 유괴한 뒤 지난달 14일까지 모두 46차례에 걸쳐 이군 집에 전화를 걸어 거액을 요구했으나 자기의 연고지가 드러나지 않도록 반드시 공중전화를 이용했으며 통신시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통화시간은 3분을 넘기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범인은 지난달 5일과 13일 은행에 통장을 개설할때도 폐쇄회로TV가 없고 고객이 붐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지점을 이용해 경찰의 수사망을 피했으며 목격자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범인은 그러나 일반인이 잘쓰지 않는 「티켓팅」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 등 고등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전화를 걸때마다 약속장소를 세밀하게 지시하는 등 서울 지리에도 밝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괴살해된 이군의 가정은 아버지가 서울 신당동에서 피혁소매상을 하고 있으며 할아버지(65)는 서울에 빌딩 4채를 갖고 있을 정도로 알부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군의 아버지는 지난 85년부터 이군의 생모(34)와 별거,이혼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지금은 숨진 형호군과 형(11)을 데리고 동거중인 이모씨(29)와 그사이에서 낳은 막내 아들(5) 등과 함께 살고 있다. 지난해 이군의 담임을 맡았던 구정국민학교 이모씨(40·여)는 『이군이 평소 쾌활한 성격이나 과시욕이 너무 강해 친구들에게 할아버지가 큰 부자라고 자랑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군은 사람을 쉽게 사귀었으며 이때문에 범인이 쉽게 이군을 유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 사건을 접수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형사과의 2개 강력반 등 모두 54명으로 수사본부를 구성,그동안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온힘을 다해왔다. 경찰은 형호군 아버지의 이혼경력 등에 유의,원한에 얽힌 유괴살인사건일 가능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아버지 이씨와 형호군의 생모 및 동거중인 이씨의 주변인물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펴왔으나 뚜렷한 용의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범인의 전화목소리와 은행구좌를 개설할때 남긴 필적 등을 정밀 분석하는 한편 동일수법의 전과자 47명에 대해 조사를 해왔으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2월초부터 수사망을 넓혀 이군의 집 주변의 우범자와 불량배 및 오락실·만화가게 등을 돌며 탐문수사를 폈으나 단서를 잡는데 실패,앞서 조사했던 피해자 주변인물 등에 대해 다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계속 비공개로 이 사건을 수사하다 이군의 사체가 별견되자 범인의 몽타주를 돌려 공개수사에 나섰으나 유괴사건의 경우 목격자의 제보가 사건해결에 중대한 열쇄를 제공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때 공개수사의 시점을 놓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남기고 있다.
  • 외언내언

    구세군하면 우선 자선냄비가 떠오른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추운겨울 전국 주요도시의 길거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선냄비는 육신은 가난하지만 마음만을 결코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적은 돈을 던져넣는 냄비모양의 성금통. 딸랑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사라져가는 한해에 대한 아쉬움과 사랑의 마음을 일깨워주는 세모의 특징적인 풍경이자 구세군의 상징이다. ◆구세군은 1865년 윌리엄 부스가 영국 런던에서 창립한 개신교의 한 교파. 「한손엔 성경,한손엔 빵」이란 슬로건이 말해 주듯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구호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 데 군대식 조직을 갖춘것이 이 교파의 특성. 교회를 영문이라 부르고 교역자인 사관에겐 부위에게 대장까지 6단계의 계급이 부여된다. 신도는 병사,신학교는 사관학교. 구세군의 만국사령관은 에바 버로스대장으로 호주할머니이다. ◆구세군이 이 땅에 상륙한 것은 1908년. 영국의 사관 로버트 호거드 일행이 내한하면서 선교가 시작됐고 지난 88년 「한국개전 80주년」을 맞았다. 교세는2백여개의 영문과 10여만의 병사로 다른 교파에 비해서는 열세. 그러나 전국에 35개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봉사하는 기독교로서의 사명에 충실하다. ◆최근 한국 구세군에 새 사령관이 취임했다. 장희동부장(59). 군대로 치면 대장 다음의 중장쯤 되는 장성으로 임관한지 30년만에 최고사령탑에 올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구세군에 헌신하고 있는데 청렴하고 유능한 성직자로 신망이 높다고 한다. ◆장신임사령관의 취임일성은 노인복지,고아원 지원,윤락여성 재활돕기 등 사회 및 구호사업을 보다 활성화 하겠다는 것. 그러면서 교세가 너무 미약한 것을 걱정했다. 구세군의 교세가 미약한 것은 군대조직이란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교활동의 침체에도 원인이 있음을 자성해야 할 듯. 어쨌든 사회를 구원하는 정의로운 군대로서의 사명을 다해 주기 바란다.
  • 「독립할아버지」 백매수옹의 「그날」의 감회

    ◎“「3·1의 의기」 통일로 이어졌으면…”/“목터져라 외치던 「함성」 귀에 쟁쟁/일 총리 「파고다사죄」 진심이길…” 올해로 72번째의 3·1절을 맞는 「독립할아버지」 백매수옹(90·서울 성북구 성북2동 58의19). 현재 생존해 있는 독립유공자 열분중 한분인 백옹이 맞는 올해 3·1절은 감회가 남다르다. 증빙자료가 부족해 지난 83년에야 우여곡절끝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공로표창장을 수상한데 이어 지난해 12월26일 마침내 자랑스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뒤 처음 맞게 되는 3·1절이어서이다. 그래서 백옹은 3·1절을 하루앞둔 28일 맏아들 낙선씨(63),증손자 에스라군(7)과 함께 아직도 그날의 함성이 들릴 것만 같은 파고다공원을 찾아 탑석과 손병희선생 동상을 둘러보았다. 해마다 이곳에서 거행되던 3·1절 기념식이 올해는 취소됐다는 소식이 백옹의 마음을 더없이 안타깝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지난 1월초에는 일본의 가이후 총리가 이곳에 와서 사죄의 뜻을 표하는 분향을 올린 사실이 생각나 마음 한구석은 흐뭇해진다고 백옹은 말한다. 3·1운동 당시 백옹은 19세로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있던 경신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반장을 하던 백옹은 학교 선배들로부터 비밀리에 3월1일의 거사계획을 전해듣고 학우 40여명과 함께 태극기를 품에 지닌채 파고다공원으로 달려갔다. 백옹은 다음해인 3월1일 전국적으로 다시 일었던 「3·1절 기념시위」를 은율군 장터에서 주도했다. 그날 백옹은 시위를 마치고 귀가길에 일경에 체포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황해도 송화지청으로 넘겨져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특사로 풀려날 때까지 1년1개월을 평양구치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후 32년에는 평양신학교를 졸업,목사가 돼 복음을 전파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나간 90평생을 돌이켜 보면 그날들이 바로 엊그제의 일들처럼 떠올라. 하지만 독립을 찾고자했을 때는 일제를 상대로 하나가 되어 싸웠지만 지금은 하나가 둘이되어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으니…』 6·25 동란이 터지자 단신 월남한 뒤 다행히 맏아들 낙설씨 등 세자녀들과 상봉하는 기쁨을 얻었으나 고향에 두고온 부인 박초봉씨(90)와 선태씨(65) 등 다섯딸과는 아직도 만나지 못한채 외롭게 살아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 모두 믿고 사랑하는 식구가 되고 나라 사랑하는 정신으로 뭉쳐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졌으며 한이 없겠다』는 백옹은 『붉게물든 황해의 일몰과 어릴적 놀던 뒷동산,고향집 안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있는 꿈을 종종 꾸곤 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7개월만에 해방” 쿠웨이트를 가다

    ◎“쿠웨이트 만세”… 경적… 축배… 환호/시민들,소제 탱크 올라 북치며 춤춰/눈물 흘리며 다국군에 “고맙다” 연발/건물마다 탄흔… 유전 연기로 하늘은 “칠흑” 이라크군 점령아래 7개월간 망국민의 설움을 삼켜야 했던 쿠웨이트 국민들은 수도 쿠웨이트시가 해방되자 27일 모두 국기를 들고 길거리로 뛰쳐나와 얼싸안고 춤추며 해방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검문소로부터 북쪽으로 1백20㎞ 떨어진 쿠웨이트시로 직결된 알 파하힐 고속도로는 국가와 자비르국왕 사진을 단 차량들로 메워졌으며 시민들의 환호와 축포로 도로전체가 축제의 한마당을 이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길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었고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M16 소총과 기관단총으로 하늘을 향해 실탄이 떨어질 때까지 축포를 쏘아대 사실상 전쟁이 이미 끝났음을 대변했다. 지난해 8월2일 이라크군에게 점령당한 뒤 제대로 숨한번 쉬지 못하고 공포와 불안감속에서 해방의 그날만을 기다렸던 시민들은 해방을 확인하려는듯 승용차에 가족들을 태운채 도로를 누비고 다녔으며 차창밖으로 몸을 꺼내놓고 큰소리로 「알 쿠와이트 후르리윤」(쿠웨이트 해방)을 외쳐댔다. 여인들은 감격을 참지 못해 얼굴을 가린 차도르마저 벗어내리고 손가락 두개로 승리의 V자를 그려보였으며 군복차림의 청년 10여명은 소형 트럭위에서 북을 치며 춤을 추기도 했다. 파트만이란 한 소녀(11)는 『고맙습니다. 알라가 당신도 축하해 줄 것입니다』라며 다국적군 군복을 입은 기자에게 말했고 40대 초반의 한 남자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후세인은 물러갔다』고 소리쳤다. 펑크차림을 한 10대 소녀들은 흥에 겨워 펄쩍펄쩍 뛰었으며 아랍 고유의상을 입은 한 할아버지는 오른손으로 경례를 하고 왼손은 하늘을 향해 뻗은채 화단위에 서서 탱크를 탄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많은 시민들이 비디오카메라를 들고나와 감격적인 해방의 순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20대의 한 청년은 샴페인대신 음료수캔을 따 차위에 뿌려 축하했고 이라크군이 버리고간 소련제 T72탱크의 구부러진 포신위에 올라가 국기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7개월간 쿠웨이트 외곽에 피신했었다는 하마드 알타시티씨(28)는 『이라크군이 점령기간중 3천여명을 죽이고 부녀자 7백여명을 끌고갔다』며 『후세인은 나쁜×』이라고 분개했다. 열광하는 시민들을 뒤로 하고 쿠웨이트시로 접어들자 일부 건물에 탄흔이 보이긴 했지만 도시는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어 치열한 시가지전투는 없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시내거리는 해방을 기리려는 각종 차량들이 경적음을 울리며 돌아다녔으나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 한산했으며 적막하기조차 했다. 쿠웨이트시에서 지하생활을 해왔다는 자예드 살만씨(52)는 『이라크군 점령기간중 시내에 남아있던 사람은 손으로 헤아릴수 있을 정도』라며 『식량은 물론 전기와 수도까지 끊어졌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쿠웨이트시는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자 「칠흙같은 암흑의 도시」로 변해 정적이 흘렀으나 되돌아오는 도로연변에는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쿠웨이트로 가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검문소에는 이틀전과는 달리 미군 및 사우디경비병 10여명이 나와 철저한 검문검색을 실시,무단입국자를 저지하고 있었으며 해방된 쿠웨이트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외신기자의 차량행렬이 2백여m나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한국군 의료지원단의 도움을 받아 군복으로 갈아입고 국경검문소를 넘어 쿠웨이트시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타고 2㎞ 가량 달리자 쿠웨이트에서 사우디쪽으로 통하는 3차선 고속도로가 마구 파헤쳐져 있었다. 이라크군이 다국적군에게 밀려 퇴각하면서 다국적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일부러 불도저 등으로 파헤쳐 놓았던 것으로 그 길이는 무려 40여㎞에 달했다. 도로와 주변 사막지대에는 포신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이라크의 소련제탱크 T72와 포탄에 맞아 검게 불탄 장갑차가 수없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었으며 전신주는 중간부분이 부러져 있어 마치 전쟁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했다. 사막땅에 묻어놓은 송유관에서는 검은 원유가 줄줄 새어나와 모래웅덩이로 흘러들어가고 있었고 비릿한 원유 냄새는 코를 찔렀으며 녹슨 송유관이수도 헤아릴수 없을 만큼 사막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푸른 하늘은 파괴된 유전 여기저기에서 불기둥과 함께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로 시커멓게 뒤덮여 있었으며 그 사이를 프로펠러 4개가 달린 CH60 수송헬기 2대가 뚫고 전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도로 곳곳에는 바퀴가 없는 트랙터,전복된 승용차,대전차 로켓포에 맞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탱크와 장갑차 등이 널려있었고 각종 탄피와 포탄이 나뒹굴고 있었다. 탱크 등을 수송하던 대형트레일러는 폭탄에 그대로 맞아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송전탑도 포탄에 대파된채 주저앉아 있었다.
  • 외언내언

    파고다공원은 곧 탑공원이다. 그 곳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본래는 13층 석탑)에 연유하는 이름. 이 석탑으로 해서 전에는 이 언저리가 탑골(탑동) 또는 탑사동이라 불렸다. ◆동네 이름·공원 이름이 될 만큼 이 석탑은 정교하고 절묘하여 지금 우리의 국보 제2호. 당나라의 장수가 고구려를 칠 때 세운 것이라느니 고려때 원나라 공주가 중국 공인을 시켜 만들었다느니 하는 전설도 따른다. 하지만 김수온의 원각사비문에 분명히 조선 세조때 원각사 건물과 함께 세워졌다고 적어 놓았다. 더구나 해방후 지상에 있던 최상부 3층을 미군이 기중기로 들어올릴 때 나타난 각자는 건조 연월이 세조 13년 2월임을 알렸던 것. 조각·건조자는 18세의 천재 석공 김석동이었다. ◆본디 고려때는 흥수사가 있던 곳. 조선 태조가 조계종의 본사로 삼았다가 세조때에 원각사를 지었다. 역사가 흘러 1897년(광무원년),당시 총세무사로 있던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에 따라 이 곳이 우리나라에서는 맨처음인 현대식 공원으로 된다. 이 공원을 만드는 일을 지휘·감독했던 사람이황성신문 사장을 지낸 무궁화 할아버지 한서 남궁억. 당시의 직책이 내부 토목국장이었다. ◆파고다공원이 3·1운동의 발상지임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의암 손병희 등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함과 함께 수많은 국민들은 이 곳에 모였다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서울 거리로 휩쓸고 나갔던 것. 그를 이어 독립만세의 함성은 3천리 방방곡곡으로 메아리져 나간다. 그런 연유로해서 파고다공원에는 손의암의 동상과 독립선언 기념탑이 서 있다. 파고다공원은 독립만세 공원이다. ◆오늘 방한하는 가이후(해부후수) 일본 총리는 이 파고다 공원을 사죄 방문할 예정이라 한다. 그곳이 독립만세의 진원지였다는 것뿐,생각하자면 이 강산 그 어디라하여 「파고다공원」 아닌 곳이 있겠는가. 「상징적 방문」에 뜻이 있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그 사죄를 행동으로 이어가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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